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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연구로 미래를 밝히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지역기관을 가다 _ ‘사국시대’가야의 영광을 되살린다 -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어∙울∙림 _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자연 속 문화재 _ 인간과 자연의 성스러운 만남,노거수 해외 유적과의 짜릿한 만남 _ 세계문화유산 속 보존과학의 신작로를 말하다 뿌리를 찾아서 _ 한민족의 DNA를 찾아 떠나다 개천절 기념 특별기고 _ 단군시조를 그리워하며 개천절 기념 100년을 돌아보다 국제교류 _ 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ACPCS 2기 사업 개시 21 Autumn + 2009 20

지역기관을가다 ‘사국시대’가야의영광을되살린다 …portal.nrich.go.kr/file_link/Report/2009_오신단[가을호]_리문화재연구로...비중있게그려지고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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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연구로미래를밝히는국립문화재연구소

지역기관을 가다_‘사국시 ’가야의 광을 되살린다-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어∙울∙림_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자연 속 문화재_인간과 자연의 성스러운 만남,노거수

해외 유적과의 짜릿한 만남_세계문화유산 속 보존과학의 신작로를 말하다

뿌리를 찾아서_한민족의 DNA를 찾아 떠나다

개천절 기념 특별기고_단군시조를 그리워하며 개천절 기념 100년을 돌아보다

국제교류_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ACPCS 2기 사업 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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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국시 ’가야의 광을되살린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권지희 사진│한태훈지역기관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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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MBC 드라마‘선덕여왕’이 인기를 끌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졌던 가야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가야의

독보적인 천문학 실력을 보여주는 책력이 등장한데 이어, 가야 출신인 김유신(금관가야)과 월야( 가야) 등이

비중있게그려지고있기때문이다. 하지만 가야는여전히미완의왕국이다. 고려시 학자김부식이‘삼국사

기’에가야를제외한고구려, 백제, 신라만을다루면서소외된존재가된까닭이다.

지금껏왜곡되고상실된가야의역사를복원하는일은한반도의역사를새롭게복원하는일이기도하다. 국

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존립 근거도 여기에 있다. 가야의 원형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부족한 문헌자료를 신

해 고고학적 조사연구에 의지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 지난 1990년 6월 16일

개소한이래지난19년간경상남도와부산, 울산지역에산재해있는가야의역사와문화를올바르게밝혀내기

위해밤낮없이현장을누비고있다.

철의 강국 가야를 누비며

7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가야는 크고 작은 소국들의 연맹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일본과의 해양교역과

철기문화를 토 로 고구려, 백제, 신라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강국이었다. 삼국이 한반도를 삼등분해 다투던

시기가불과98년동안임을고려하면가야가한국고 사에남긴족적은결코적지않다. 하지만가야에관한

연구는이제부터라고해도과언이아니다.

“가야는 삼국에 비해 문헌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아요. 그 실체도 모호한 것이 많지요. 하지만 그간의 고

고학적 성과에 힙 입어 최근에는‘삼국시 ’가 아닌‘사국시 ’설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가야문화권에

한실체를하나씩복원함으로써가야의정체성을정립하고, 또그것이가능한환경을만들어가는것이우리

연구소의역할이자목적이라고생각합니다.”

그간연구소의가장큰성과로함안성산산성에서출토된목간木簡(AD105년종이가발명되었지만상용화가

되기전까지사용한것으로목재를길고좁게다듬어문자를기록한나무판)을꼽을수있다. 함안성산산성은

아라가야의 옛 중심지로, 지난 1991년부터 올해까지 14차에 걸쳐 꾸준히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국내 출토 목

간의절반을넘는246점이출토됐다. 이들목간은문자자료의양이매우부족한고 사연구에크게기여하고

있다.

가야시 원형을 복원하기 위한 사업도 탄력을 받고 있다. 개소 첫해 창원 가음정동고분군(금관가야)을 시

작으로, 함안 도항리고분군(아라가야), 고성 내산리고분군(소가야), 창녕 송현동고분군(비화가야) 등 가야 소

국들의 고분군 발굴조사와 학술연구를 통해 당시 문화와 사회상을 규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또 봉림사지,

운흥사지, 지곡사지 등 절터를 비롯해, 남강댐 수몰지구 내의 선사유적 등 가야문화권역 내의 선사시 에서

역사시 에 이르는 다양한 문화유적에 한 조사를 통한 온전한 문화유산을 기록, 보존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올 7월에는 문헌으로만 존재해온 흥선 원군 서원철폐령의 실체를 확인한 것도 성과로 꼽을 만하다. 고종

실록에따르면 원군은서원이당파싸움의뿌리라는이유로1868년과1871년서원1,700여곳중47곳만남

삼국 아닌, 사국의 정립을 위해 가야에 한 실체를 하나씩 밝혀가고 있다. 경남 창원 가음정동고분군 등 가야 소국들의

고분군 발굴, 1500년 전 가야사람 복원 프로젝트 등 지금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사국시 ’가야의 광을 세우려 값진

땀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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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모두 철원매주撤院埋主, 즉 서원을 없애고 위패인 신주를 땅에 묻

을것을명했다. 하지만기록만있을뿐신주가어디에어떤방식으로

묻혔는지에 한유물자료는전무했다.

경남 창녕의 사액서원인 관산서원 사당터 조사 과정에서 옹기를

맞붙이고 옹기 둘레를 기와로 감싼 형태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관산

서원은 남5현五賢 중 한 사람인 정구鄭逑(1543~1620)의 위패가 모셔

져있는곳으로, 서원철폐령에따라1871년헐렸다.

양숙자학예연구사는“가까운근 의일임에도서원철폐령당시의

모습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물이 발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현재 위패는 보존처리를 진행 중이며, 별사터에 봉안된 나머지 2명

의위패발굴도조만간진행할예정”이라고전했다.

중과 공감하는 가야 연구

그동안많은성과를일궜지만, 올해부터본격적으로1차조사로축

적된 역사적 자료를 지식으로 변환해 중에게 전달하는 지식기반조

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2006년 첫발을 뗀 함안 성산산성 유

적 홈페이지(www.haman-sungsan.go.kr)가 표적이다. 이 홈페

이지는 학계 관계자나 일반인들이 함안 성산산성 현장을 방문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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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아도고 산성축조기술의다양한면을확인할수있도록방 한자료를제공하고있다.

최근에는 가야사람 복원연구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 2006년부터 2008년까지 창녕 송현동고분을

조사하면서 출토된 15호분의 순장인골이 시발점이 됐다. 그저 인골의 수치를 재고 뼈에 살을 붙여 외형을 복

원하는 수준이 아니다. 인골의 형질학적 특징을 뽑아내 가야사람의 모든 것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다. 주로 무

엇을 먹었고, 어떻게 생활했고, 어떤 질병이 있었는지 등 가야인이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를 되살리는

것이다.

연구소는이를위해지난해가톨릭의 와컨소시엄을구성하고, 고고학과의학, 유전학, 법의학, 인류학, 화

학, 물리학 등 각계 전문가를 모아 연구를 진행했다. 국내 인골 복원 연구를 통틀어 독보적인 성과라 할 만하

다. 연구소는여기에그치지않고오는11월연구결과를집약해‘가야사람복원연구’(가제)를제목으로책을발

간하고, 연말에는가야인골을실물인형으로제작해 중에게공개전시할계획이다.

올해부터는의령과함안, 창녕등경남지역의사지(절터)를 적으로조사하고있다. 절터는말그 로잊

혀진유적인동시에앞으로도계속잊혀질유적이다. 연구소는향후정확한절터연구를위해기초적인데이터

베이스(DB)를 구축하고, 지자체가 유적 보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현

재기본적인현장조사는완료된상태이며, 오는11월중‘경남의폐사지-의령, 함안, 창녕편’을발간키로했다.

미완의 강국 가야를 복원하는 일은 쉽지 않다.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가 관행적인 일회성 발굴조사 신 중

장기적인학술조사연구에방점을찍고있는것도그래서다. 무에서유를창조하는마음으로작지만큰한발을

내디뎌온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는앞으로도가야사연구의아카이브역할을충실히수행해나갈것이다.

‘가야사 아카이브’를 꿈꾼다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강순형소장

제가부임했을당시연구소의이름이‘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 습니다. 경주문화재연구소는 이

름만봐도‘신라’, 부여문화재연구소도‘백제’라는뚜렷한자기정체성을갖고있잖아요. 하지만창

원문화재연구소는일부전문가들을제외하면‘가야’와연결짓는것이쉽지않죠. ‘창원시에소속된

연구소냐’는 질문이 나올 정도 으니까요. 그래서 부임과 동시에 제가 한 일이 바로‘국립가야문화

재연구소’로명칭을변경하는것이었습니다. 앞으로그이름에걸맞게가야사연구의아카이브역할

을충실히해나갈것입니다. 다만안타까운것은국내에가야전공자들이의외로적다는것입니다.

가야에 한사회적인인식을높이고이를통해전공자를더욱확 하는것역시앞으로우리연구소

가 해결해야 할숙제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연구소가 올해 가을에 열리는 한국고고학전국 회

에서3가지주제중하나인「가야사람복원연구」라는발표를담당하게된것은큰의미가있습니다.

지난1년간본소및가톨릭의 와민관협력으로가야사람복원연구를진행해왔는데, 이를계기로가

야문화에 한정립과그에 한실체를하나씩제 로알리고복원하는일에최선을다할것입니다.

Mini Inter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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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사회과학원고고연구소의역사

중국사회과학원고고연구소는1950년8월1

일, 중국과학원설립초기의소속연구소로설

립되었다. 설립 당시 연구자들은 베이핑(베이

징北平의옛이름)연구원사학연구소와중국아

카데미(Academia Sinica)의 역사문헌연구소

소속의연구자들로충원되었다.

설립 초기인 1950년 초기에는 약 20여

명의 연구자만이 소속되어 있어 매년 1~2

군데의 현장 조사를 실시할 수 있을 뿐이었

으나, 1950년 후반에는 조직이 급격히 팽

창하여 300명이 넘는 연구자가 소속되었다.

그러나 1961년부터 실시된 행정조직 간소화

정책으로인해연구자들이다른기관으로배

치되어문화 혁명직전(1966년)에는약170

명의 연구자로 축소되었다. 현재는 173명의

연구자가 소속되어 있다. 50년을 넘는 긴 역

사를통해고고연구소는중국각지에서현장

조사를 실시하 다. 고고연구소 단독, 혹은

다른연구기관과합동으로조사한주요한성

과는 선사시 의 안양 샤오난하이小南海 동굴

유적, 샨시성山西省 샤촨下川 구석기 유적, 허난

성河南省 페이리강裴李崗 유적 등과 청동기 시

의 어리토二里頭 문화유적, 동샤펑東下馮 유적,

은허殷虛 유적, 류리허瑠璃河 유적, 동주東周시

및 서한西漢시 뤄양洛疼 유적, 동한東漢시

창안長安 유적 및 북위, 북조, 수, 당 등 중국

역 왕조 관련 유적은 물론 발해의 용천부

유적, 고창高昌국 위구르 불교 사원 유적 등

중국전토에걸쳐있다.

이 유적들과 관련된 중요한 보고서와 연

구 성과 이외에, 고고연구소는 고고考古(월간

지), 고고학보考古學報(계간지), 고고학考古學(연

1회), 고고학 참고자료考古學參考資料(부정기), 중

국고고학연감中國考古學年鑑(연 1회)등의 연속간

행물을발간하고있다.

현장 조사 연구 이외에도 고고연구소는

일찍부터 자연과학적 방법론을 고고학에 도

입하려고노력하 으며, 방사선탄소연 측

정연구실을중국에서제일먼저설치하 고,

중국고고학연구 부분의방사선탄소연

측정은고고연구소에서이루어졌다. 이외에

도 고고과기실험연구센터考古科技實驗硏究中心를

1995년에 설치, 동물고고학, 식물고고학, 화

학 및 물리학 분석, 방사선 탄소연 측정,

열발광연 측정, GIS분석, 금속조직학

(metallography) 분석등을실시하고있다.

외국기관과의교류는저우언라이周恩� 주

석에 의해 추진된 1978년의 중국 유물 해외

전시 이래, 고고연구소는 전 세계의 고고학

연구기관과협력적교류관계를이뤄왔다. 일

본, 미국, 유럽, 인도등을비롯한세계40여

개 국에서 800명 이상의 연구자가 고고연구

소를 방문하 고, 현재도 국제학술 회 개

최, 연구자 교류, 공동연구를 통해 지속적으

로교류를확 하고있다.

중국사회과학원고고연구소조직

현재 고고연구소는 원장 1명, 부원장 3명

밑에 본소에 3개 연구실, 2개 연구센터, 고

고자료소식센터, 고고잡지사와 지원조직(과

연처, 인사처, 당위원회사무실, 사무실, 고고

서점)과안양, 뤄양, 시안에소속기관을두고

있다.

사전고고연구실史前考古硏究室은 중국 신석기

시 문화의 근원과 문화적 유형, 시 구분,

분포 및 사회 경제형태 및 구조를 연구하고

있다. 산하에 지역에 따라 10개 공작 工作隊

를두고있다. 하상주고고연구실夏商周考古硏究室)

은중국하夏∙은殷∙주周 시 의문화를연구

하고 각 시기 도성都城의 고찰과 연구를 담당

하고 있다. 산하에 지역 및 유적에 따라 6개

공작 를두고있다.

한당고고연구실漢唐考古硏究室은중국고 도

시의기원과발전, 한당漢唐시기의도성제도,

고 중국및인접국의경제문화관계를연구

하고 있다. 근래에는 한당도성 유적의 연구

에 집중하고 있으며 산하에 지역 및 유적에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박형빈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어울림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中國社會科學院考古硏究所는 중국 베이징 왕푸징따지 27번지

中國 北京 王府井大街 27에 위치하고 있다. 기관 홈페이지는 http://www.kaogu.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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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8개공작 를두고있다.

변강민족종교고고연구센터邊疆民族宗敎考古硏究

中心는 2002년 한당고고연구실의 신쟝新疆공

작 , 네이멍구內蒙古 공작 를기초로성립되

었다. 변강지역의 고고학적 연구 및 고 종

교와의 관계 등 변강지역의 활동 및 유적 연

구를 통해 서로 다른 민족간의 역사 및 문화

적 발전, 중원지역과 변강지역의 문화적 교

류활동을 규명하여 중국문명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탐구하는 것이 목적이다. 산하에 지

역에 따라 3개 공작 및 불교예술고고팀佛敎

藝術考古組이있다.

고고과기실험연구센터考古科技實驗硏究中心는

1995년 성립, 2003년 사회과학원에서 선정

한 6개 중점연구실 중 한 곳. 산하에 자연과

학적 분석, 연 측정, 동식물고고학, GIS,

유물수복처리등10개학과가있다. 국가사

회과학기금, 국가자연과학기금, 사회과학원,

과기부, 국가문물국등으로부터15개과제를

수탁(7개 완료)하고 있고 중국사회과학원고

국가문물국의 승인을 받은 외국과의 공동연

구4개과제를수행(1개완료)하고있다.

고고자료소식센터考古資料信息中心는 1996년

고고연구소 도서자료실을 기초로 설립되었

다. 산하에도서관과박물관및자료소식팀博

物館和資料信息組이 있다. 고고학과 금석문학을

위주로 약 30만 권의 장서와 100 종류에 가

까운 정기간행물을 소장하고 있다. 그 외에

고고학연구관련의자료와소식, 연구동향을

정리, 전파하고고고학문헌목록등을작성하

고 있다. 1997년 편집실을 확 개편하여 고

고잡지사考古雜志社가 성립되었고 산하에 4개

편집부와 1개 종합실이 있다. 고고, 고고학

보, 고고학집간考古學集刊, 중국고고학( 문)의

정기간행물4종을발행하고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와의교류협력

현재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와 국립

문화재연구소와는 2건의 협약을 체결하

다. 1998년 6월 5일, “ 한민국문화재청국

립문화재연구소와 중화인민공화국 사회과

학원 고고연구소 간 문화재연구교류 협의

서”를 체결하여 문화재연구 전반에 있어서

연구교류 및 협력증진을 추진하기로 하 으

며, 2001년 2월 21일, “한중 고고학문화 공

동학술연구 협의서”를 체결하여 고고학 분

야의 공동연구를 촉진하기로 합의하 다.

그러나 이후 중국의 동북공정 추진과 한국

의 응 과정을 통해 한국과 중국의 문화재

연구 분야에서의 교류협력은 정체 상태에

놓여 있다. 근래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는

여러 경로를 통하여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

연구소와의 실질적인 교류협력 증진방안을

모색중에있다.

◀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조직도 ▶

소 장

부소장

사전고고연구실

하상주고고연구실

한당고고연구실

변강민족종교고고연구센터

고고과기실험

연구센터

고고자료소식센터

고고잡지사

지원부서

3

1_ 한 장안성 발굴광경 2_ 허난성 얼리투유적출토-터키석용두장 3_ 은허유적 발굴 80주년 기념 학술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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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김효정 자연문화재연구실 학예사자연속문화재

인간과자연의성스러운만남,

1

3

2

1_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

(천연기념물 제88호)문화재청 제공

2_ 익산 신작리 곰솔의 전경

3_ 벼락을 맞아 긴급 처리한 모습

(익산 신작리 곰솔)

4_ 용문사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

호) 흉고둘레 측정모습

5_ 함양 옹골리 은행나무 당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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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문명과수목

고 문명의 발상지들은 수원이 풍부했던 강줄기에 면한 축복받은

땅에 그 기원을 두고 있으며, 부분 과실이나 곡식이 풍성하게 자랄

수있는곡창지 다. 예로부터‘수목이자라는땅=생명의땅’이라는자

연의순리에 한믿음이강하 고, 수목의상징성은죽은사람의 혼

이수목으로환생한다는믿음을불러일으켰다. 나아가수목에 한인

간의 경외적 사고는 수목숭배와 같은 현상으로 나타난다(J. G.

Frazer). 이것은만물유신론萬物有神論(animism)적가치관이생활의전부

를 지배했던 고 인들이 가지고 있던 토착신앙적 우주관에 기초를 두

고있다. 이집트에서죽은사람을위한공간(사자의정원)은수목이주

가되는데, 죽은사람을시커모어피그로아래에서임시로순장하기도

했다. 또한 파피루스(사초과의 식물로 이집트에서는 8~9세기에 제지

용으로이용)는신과죽은자에게봉헌되었다. 고 의제사장들은신성

한수목을사용하여신과자신의매개로삼고신성한공간의상징으로

이를 활용하 다.이러한 수직적 우주관은 동∙서 문화권을 막론하고

부분의원시종교에나타나는종교적구조물이며, 고 인들의공통된

공간적 관념이다. 엘리아데는 천상과 지상을 연결하는 몽골인의 우주

산을성스러운나무의개념으로보고있다.

수목을 신성시하는 사상은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었는데, 당산

목∙신목∙성황목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주로 마을의 진입부에 분포

하여마을이시작되는표식을나타내는데느티나무, 은행나무, 소나무,

비자나무등이많았으며, 제물이나제수등을바치며발복을기원하

다. 예천천향리의석송령(천연기념물제294호), 풍태장리의느티나

무(천연기념물 제274호), 원성 성남리의 성황림(천연기념물 제93호),

서울 선농단 향나무(천연기념물 제240호) 등은 오늘날에도 동제가 전

승되고있다.

최초의신성한나무고조선의신단수

수목의신성함은우리나라의신화에도나타나는데마니산참성단은

(사적제136호) 성지로환웅이웅녀와혼인하고낳은단군왕검檀君王儉이

제사를지내던신성한장소이다. 단군왕검檀君王儉은고조선을창건한이

로우리민족의시조라할수있는데, 단檀이라는 자는박달나무로해

석하는 이가 많다. 또한「삼

국유사」에 단군왕검의 아버

지인 환웅이 태백산의 신단

수에 내려와 신시를 열었다

하는데, 태백산의 정확한

지명과신단수의수종을규

명하기는 어려우나, 략

백두산의 박달나무나 자작나무로 추정된다. 신단수神檀樹는 신수, 생명

의나무, 우주목으로서의나무, 지혜의나무, 회생의나무등과같은의

미로통하기도하 다. 단군왕검이제사를지낸강화참성단내의소사

나무가최근천연기념물제502호로지정되기도하 다.

노거수에얽힌전설

노거수는 적게 수십년에서 많게는 수백년을 살다보니, 산전수전을

다 겪은 노인처럼 이에 얽힌 우여곡절도 많다. 유명한 인물이 꽂아 놓

아 자랐다는 삽목설화나 애닯은 사랑의 증거로 자랐다는 순애보의 증

거, 임금을 위해 충성을 다해 싸운 신하와 지극한 효에 관련된 노거수

등다양한일화가남겨져있다.

순천 송광사 천자암 쌍향수(천연기념물 제88호)는 고려시 에 보조

국사普照國師 지눌과 담당국사湛堂國師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 짚고 온 향나

무지팡이를이곳에나란히꽂은것이뿌리가내리고가지와잎이나서

자랐다고전한다. 사실, 향나무를삽목하여번식하게하려면그해나온

1년생의가지를봄에땅에꽂아야뿌리를내리는데중국에서한국으로

오기까지많은시간이필요하다고볼때삽목설화의근거는희박하다

고볼수있다. 우연찮게도두그루의곱향나무는서로예를갖춰절을

하고 있는 형상을 지니고 있는데, 나무를 만지면 극락極�에 간다고 하

여일부러찾는관광객이많다.

남해 창선도 왕후박나무(천연기념물 제299호)는 아이가 없던 노부

부가잡은커다란물고기의배에서나온씨앗을심었더니나무한그루

가자랐다는전설이내려온다. 후박나무는해안가를중심으로방풍림,

어부림으로주로심어지기도한다. 세간에잘알려져있는속리산의정

이품송(천연기념물 제103호)은 세조(1464년)가 가마를 타고 가다 연이

걸린다고 하자 가지를 들어올렸다는 전설이 전하는 등 벼슬을 하사받

은노거수에 한이야기들이전해지나「조선왕조실록」이나「교지」등

에는관련자료를쉽게찾아볼수없다. 다만, 구전될뿐이다.

노거수의수령에 한진실

수목의 수령 측정에는 다양한 방법이 종합적으로 사용되는데, 생장

추를 이용한 연륜(나이테) 분석법과 비파괴 레이저 측정법, 수종별로

흉고직경과나무나이의관계를이용한추정법등이있다. 노거수의경

우 흉고직경과 전설, 문헌 등에 의한 종합적 수령 추정 방법이 이용되

고 있다. 용문사의 은행나무(천연기념물 제30호)는 1,100년으로 우리

나라최고의수령으로추정되는데, 과연나무가1,000년이상살수있

을지 궁금해 하는 이가 있을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 비숍 부근에 자

생하는메두살레나무는세계최고最古의수목인데수령은무려5,000년

으로추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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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천연기념

물센터에 전시된

문경 존도리 소나

무의 경우 2000년

지정 당시에는 수

령500년으로추정

하 으나, 고사한후나이테를정 조사해본결과250여년정도로측정

되었다. 문헌을통해확인할수있는연 도추정에의한것이므로정 한

수령측정에 한과제는지금까지도수목의단면을직접적으로절단하지

않고는쉽게해결할수없다. 그저지금까지의다양한방법을동원하여가

장근사치를구할뿐이다. 그러나노거수의수령에 한논의보다더중요

한것은장구한세월을우리와함께해온문화적가치에두어야하는것이

아닌가한다.

우리나라노거수들의투병기와나무의사

생로병사는인간뿐아니라모든생물이겪어야할과정이다. 노화에

의해쇠약해지고병이생기듯노거수도마찬가지인데, 수세(나무의건

강도, 활력도)가 쇠약해지면 잎의 수가 적어지고, 따라서 광합성을 할

수 있는 양이 절 적으로 감소하며, 이로 인해 수분과 양분의 이동이

원활하지못하고점차생육이나빠지는악순환을거듭하게된다. 노거

수 중에는 번개를 맞아 수세가 쇠약해져 고사枯死하는 경우도 있는데,

수고가높은수목은번개의피해를막기위해피뢰침을설치하기도한

다. 익산신작리의곰솔도번개를맞고응급처치를받았는데주로수목

전문가들이이런의사일을담당한다.

수세가쇠약해지면나무의줄기에주사를놓기도하고, 토양에비료

를주는데일종의 양제와같다. 또, 오래된나무의경우수간에상처

가나서이를메우기위한외과수술을하기도한다. 천연기념물로지정

된노거수는특별 우를받는데, 그가운데서도속리산의정이품송(천

연기념물 제103호)은 사람못지 않은 VIP급 진료를 받는다. 예전에 비

해수세가점차쇠약해지고, 바람에가지가잘려나가매년병충해방제

며, 수간주사등으로들어가는예산도적지않으니문화재로지정된상

류계급인수목의특혜이다.

무당들이말하는공공의적- 자연문화재연구실식물조사팀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샤머니즘적인 풍습이 아직도 남아 이로 인해

새해 토정비결을 본다거나 점집을 찾는 경우가 흔히 있다. 조상께 제

를지내는것은효를중시하는우리나라의 표적미풍양속이다. 지방

에서는 마을을 중심으로 정월 보름에 주민들의 안녕을 위한 당산제

를지내거나, 무속인들이노거수를 상으로제를올리는경우도흔하

게볼수있다.

당산제를지낼때는보름전부터제를주관할제관을선정하는데, 겨

울에도찬물에목욕재계를하고금기사항을꼭지킨다. 제관과마을의

중요한인물및풍물패등이참여하며제를올린후에는풍물패들과놀

이도하고, 마을사람이모여음복을한다.

노거수에 제를 올릴 때는 돈이나 옷 등 제물을 인근에 묻어두는데,

흙을파기도하고, 노거수에자연적으로생긴구멍이나제단밑에물건

을 숨겨두고 메우는 경우가 많다. 때로는 노거수 주위에 초를 켜두고

기도를올리다가화재가나는경우도있다. 노거수를조사할때는지방

자치단체의요구로부득이무당들이놓은제물을제거하기도한다. 그

러니노거수를모시는무속인들과사이가좋을리없고, 자연문화재연

구실식물팀이조사때마다긴장하는이유가여기있다. 노거수는 부

분농지나임지등과인접하여있어주변이한적한데, 오래된당집이라

도있을때는음산한분위기와당집과관련하여해를입었다는주민들

이야기에신참연구원들은주눅이들곤한다. 그중천연기념물제283

호 암 월곡리의 느티나무는 단연 으뜸으로 무속인들이 많이 찾아오

는까닭에인근에는항상제물이끊일날이없다.

나무와숲을이용한문화사업, 세계자연유산등재

국내에서 인기가 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인‘원령

공주’는 자연에 한 경외심과 보호를 주제로 삼고 있다. 숲을 구성하

는수목하나하나에정령이있다고믿는것은비단애니메이션뿐아니

라, ‘반지의제왕(숲에서헤메이는호빗족들을나무가도와주는장면)’

과같은 화를통해서도알수있다.

나무와숲을신성시하고경각심을일깨우기위한지역주민들의정기

적인의례행위는미시적으로는자연경관을보존하고, 거시적으로는지역

주민의화합과안정을도모해왔다. 당산목이나당산숲등은문화콘텐츠

로서 좋은 소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충북 보은에서는 이미 랜드마크

(land mark)적요소로정이품송을활용하고있는데, 당산목이나당산숲

관련 캐릭터의 발굴이나 전설의 스토리텔링(Story telling), 당산숲 테마

마을및당제를통한지역축제나투어의코스로활용될수있으리라본다.

최근 국제연합(UN)의 MAB(인간과 생물권 계획)에서는 자연성지

(Sacred Natural Sites)에 한 세계적 관심이 고조되어 관련 위원회

까지 조직되었다. 인간과 자연, 문화가 내재되어 있는 공간이 바로 자

연성지로, 우리의당산숲이나당산목도이에해당된다. 당산목과당산

숲은 우리 민족의 정신적 지주로서, 각기 전설을 지니면서 고유의 문

화적 특성을 보존해 왔다. 이들은 한민족 5000년의 역사를 뿌리로 지

탱해온이땅의소중한주인들로언젠가세계자연유산으로등재될날

을꿈꾸어본다.

문화재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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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속

보존과학의 신작로를 말하다

│한민수 보존과학연구실 학예연구사해외유적과의짜릿한만남

앙코르와트보존처리현장을가다

앙코르와트를 가기 위해 씨엠립행 비행기에 오르면서 문득‘문화재란 어떤 의미일까?’라는 막연한

질문을 해 보았다. 사실 이러한 질문에 누구나 답할 수 있겠지만 그 답들이 문화재를 모두 설명하

지는못할것이다. 갑자기‘이런생각을왜했을까?’라는반문도생기겠지만출장기간동안관련된고

민거리하나정도는들고다니는것도나쁜일은아닐것이다.

앙코르사원에들어가기위해우리는캄보디아문화유산관리청의씨엠립지부소속연구원인킴소딘

의 안내로 사원의 중앙로가 아닌 옆길로 들어섰다. 왜냐면 이곳에 온 이유가 단순히 아름다운 전경을

보며관광하는것이아니라세계적인문화유산이어떻게관리되고있으며, 어떤보존처리기술들이활

용되고있는지를조사하는것이목적이었기때문이다. 우리는이유적의건축에사용된암석의종류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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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_ 바이욘 사원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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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의 보존 상태, 처리 기법 등에 해 조사한 후 보다 자세한 보존처리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되고 있는 실제 보존∙복원 현장을 방문하기로 킴 소딘과 협의

하고, 제일먼저프랑스보존사업위원회소속팀(EFEO, The Ecole Francaise d’Extreme

Orient)이 진행하고 있는 바푸욘(Baphuon) 현장을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사업 책임자인

뮈샹(Musang)의친절한안내를받아이곳에쓰이고있는여러가지기법과약품들에 해

이야기를들었다. 부분의앙코르사원의축조에라테라이트라는암석이사용되고축조방

식또한여러조각의작은석재조각을퍼즐과같이맞추어복잡한형태로쌓아올리고내부

에는적심으로모래를사용하 기때문에단순히붕괴방지나방수처리로는안정성을확보

하는 것이 어려워 해체 후 복원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었다. 다음 현장은 일본의

JASA(Japanese Government Team for Safe Guarding Angkor)가참여하고있는바이

욘(Bayon) 사원의북쪽도서관을해체∙복원하는지역이었다. 이곳도건축에사용된암종

은비슷하며, 특징적으로3차원입체복원시스템을사용하는등현 기술을주로활용하고

있었다. 또한 복원에 사용되는 암석과 약품처리의 변화를 모니터링하기 위하여 시험편을

제작하여 옥외폭로시험을 실시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다음 방문국인 인도의

ASI(Archeaological Survey in India)가수행하고있는타푸롬(Ta Prohm) 지역을둘러보

았다. 이 사원은 오래도록 발견되지않은 탓에 300년된 나무들의뿌리가 건물을 붕괴시키

거나 휘감고 있는 특이한 지역으로 가히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물론 이러한 장관 때문에

화툼레이더의주요촬 지가됐었지만문화재를보존하는우리들로서는좋은경관이라

할수없을정도로마음이아려왔다.

타지마할에서보존과학의크기를보다

타지마할은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곳으로 1653년에 공사가 시작되어

22년동안2만명의인력이동원되어조성되었다고하니가히상상을초월하는 공사 을

것이다. 우리일행은성의중앙통로로들어서는순간온몸으로그기운을느낄수있었다.

눈앞에펼쳐진장관을뒤로한채본격적으로벽면이나기둥의보존상태와기법들에 해

서 조사하고 관련 전문가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규모면에서 상상이 가

겠지만타지마할의보존과복원에 한기본적인생각이우리와는약간달랐다. 예를들어

벽면아래부분의높이가 략5�6m라고가정할때그벽면을구성하는 리석판어려개

중 판 한 개의 크기가 1×3m이며, 이를 모두 한 번에 무늬를 파고, 흰색의 접착제로 각종

보석을 장식하여 만들었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

한 석판을 수 천장 붙여 벽면을 건축하 다고

보면된다. 즉, 보존∙복원 상이광범위한이곳

을 장기적인 차원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하기에는

시간적인 제약이 넘 크다는 것과 그들 국민이 지

닌 통념상 많은 관람객을 통제하고 작업할 수 없

다는 점이 우리나라의 실정과 다르다는 이야기

다. 물론타지마할의관리부서들은화학, 건축, 보

수, 유적관리로 세분화되어 체계적인 관리를 진

행하고 있지만 상황은 여의치 않아 보 다. 그래

서 현재에는 우선적으로 표면 오염이 심한 부분

에 해 머드팩(mud pack)을 이용하여 클리닝

작업을 하거나 균열 부위와 변색된 부분에 석회

질물질을이용하여보존∙복원하는작업을주로

수행하고 있었다. 물론 탈락되거나 소실된 부재

에 해 동일 암종으로 체 처리하는 복원 작업

은 광범위하고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었다. 이

와는별도로보존환경사무소와같은장소를마련

하여 타지마할 내 공기질과 분진, 온도, 풍향, 풍

속 등 보존환경에 한 지속적 모니터링 연구를

실시하고 있으며, 이 자료를 바탕으로 리석의

풍화와 환경인자와의 상호관계를 밝혀내려는 노

력도시도하고있었다.

2_ Conservation D AGNKOR에서 연구원들과 함께

3_ JASA팀 복원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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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사원과탈지마할보존의주인과만나다

하루 종일 구슬땀을 흘리며 실제 보존∙복원 현장을 돌아다니면서 얻은 지식과 의문점

을가지고우리는캄보디아문화유산관리청씨엠립지부(Conservation D’AGNKOR)와인

도ASI 아그라지부를방문하여기관장과접견하고그곳의연구동향과 외협력에 해이

야기를나누었다. 특이한것은두기관모두광범위한지역의중요문화유산을관할하고있

기 때문에 보다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선진국의 보존 시스템과 기술을 도입할려는 강한 의

지를 보 다. 또한 양국의 기관장은 자신의 직원 중에서 ACPCS 국제연수에 참가할 기회

를 주어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이러한 국제적 교류를 지속적으로 이어갔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듣는 순간 우리의 노력과 함께 ACPCS가 계속적으로 진행됨이 이러한 외협력

에얼마나중요한역할을하고있는지현지에와서한번더그중요성을느끼게했다.

생각에잠기다

델리 공항을 이룩하는 순간 그동안 보고 느꼈던 앙코르와트와 타지마할의 기억이 맴돌

고있었다. 그규모와형태에압도되었던순간, 하지만그것보다는지금까지석조문화재의

보존 및 복원기술과 관련하여 유럽 선진국의 동향만을 주로 조사해 왔는데 선진국이 아닌

나라들에 해서도그들이자국의문화유산을보호하기위해실제로어떠한재료와기술을

사용하고있으며, 선진국이말하는기술이실제어떻게적용되고있는지알아보는것도매

우중요하다는걸몸소느꼈다. 그리고이들문화재를보존∙복원하는작업에발빠르게참

여하고 있는 독일이나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도 이제는 이러한 부분까지 눈길을 돌려

야하는것아닌가라는조심스러운생각도해봤다. 이런저런생각들을접고마지막으로잠

을청하려는순간출발할때나의뇌리를스쳤던질문에 한 답을해보았다. ‘문화재란

인간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샘솟는 한없는 욕망의 소산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것이

좋은의도의욕망이었든나쁜의도의욕망이었든지앞선인간의문명생활을알수있게해

주는과거의소중한부스러기를창조하 고, 지금까지도그것이전해져우리들에게커다란

의미를주고있기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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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_ Conservation D’AGNKOR 5_ 나무뿌리

6_ 바푸욘 복원현장 7_ 마리알톰의 보존처리 현장(인도)

8_ 타지마할 앞에서 아킬레쉬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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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주∙지상현 보존과학연구실뿌리를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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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DNA를

찾아떠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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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알타이의 DNA 분석을 위한 인골을 채취하고

작년 9월 몽골 고고학연구소와 체결된「문화유산의 연구 및 보존」

공동연구 프로젝트는‘한민족의 기원을 찾는’연구사업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는 이미 고 유적지에서 출토

된 인골의 DNA를 분석하여 고 한반도 인류의 유전정보를 축적하

고, 이를 바탕으로 우리 민족의 DNA 역사를 연구하고 있었다. 하지

만 고 한민족에 한 인류학적 연구를 체계적으로 진행시키기 위

해서는 한민족의 원류와 연관이 깊은 것으로 알려진 몽골 알타이의

옛사람과현 몽골사람들의DNA를비교연구할필요가있었다.

지난 6월 몽골행 비행기에 오르며, 발굴된 인골을 어떻게 수습할

것인지, 앞으로의연구를어떻게진행시킬것인가에 해생각하다보

니 어느새 몽골 징기스칸 공항에 도착하 다. 다시 알타이시를 거쳐

샤하르 톨고이에 도착한것은다음날 해가기울어지기 시작한 오후5

시쯤이었다. 주변에는 우리 눈에 그저 돌무더기 정도로 보이는 적석

묘들이 널려 있었고, 먼저 도착한 몽골 고고연구팀에서는 그중 하나

를골라표본발굴을시작하고있었다. 지름4m 남짓의원형무덤을파

내려가는 모습을 며칠간 지켜보면서‘혹여 인골이 출토되지 않으면

어쩌지’하는걱정이앞서던순간손가락뼈처럼보이는물체가보이기

시작했다. ‘그토록 갈망하던 인골이 출토된 것이다’흥분을 가라앉힌

우리는 고DNA 분석을 위해 발굴 초기부터 외부오염이 발생하지 않

도록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인골을 수습하 고, 이러한 수습과정은

몽골측 연구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약 2000년 전 청동기~초

기 철기시 의 사람으로 추정되는 인골의 일부는 현재 고DNA 분석

을 위해 보존과학연구실 DNA 분석실에 보관 중이다. DNA 분석용

시료를 성공적으로 채취하고 8월에 실시된 2차 조사는 무형문화재연

구실의‘몽골 알타이 주변 서부 지역의 산간신앙조사’와 더불어 현지

토착주민의DNA 분석샘플을확보할목적으로이뤄졌다.

알타이에 오르다

무더위가기승을부리던8월, 무형문화재연구실과보존과학연구실,

몽골 고고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알타이 산간지역의 민속신앙과, DNA

조사를 통한 한국인과 알타이 현생인류의 유사성을 밝히기 위한 목적

으로 알타이에 도착한 건 현지시간으로 아침 8시쯤이었다. 국제선 항

공기에서의설렘과공항에서의하룻밤, 다시몽골국내선을타고오느

라 지친 심신도 알타이에 첫발을 디딘 순간 모두 사라져버렸다. 간단

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드디어 그토록 오고 싶었던 알타이에서의 장

정을시작하 다.

첫 목적지인 멍흐하이르항산을 향한 출발은 순조로웠고, 끝없이

펼쳐진 지는 한국에서 몸에 배었던 거리감을 상실하게 하 다. 멋

진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려면 자동카메라가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자꾸만윙윙거린다. 가까운듯멀고먼듯가까운 지의풍경들…….

사막에서의 간단한 점심 후에도 끝이 없을 듯한 목적지를 향해 가다

보니 어느덧 성큼 산이 다가온다. 길을 잃고 헤매기를 여러 번! 목적

지는 아직 먼데 해는 서산으로 넘어가 더 이상 갈 수가 없단다. 피곤

1_ 한∙몽 공동조사단

2_ 오트공텡게르산 정상의 만년설과 오보

3_ DNA분석용 인골수습

“”

손가락뼈처럼 보이는 물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토록 갈망

하던 인골이 출토된 것이다’흥분을 가라앉힌 우리는 고

DNA 분석을 위해 발굴 초기부터 외부오염이 발생하지 않도

록 원천적으로 차단하면서 인골을 수습하 고, 이러한 수습

과정은몽골측연구자들에게깊은인상을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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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에물이없다는핑계로씻지도않고그 로잠이들었다.

다음날 컵라면으로 아침을 때운 후 일찍 출발했지만, 15명의 일행

중 이곳에 와본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인지 또 길을 잃어버렸다. 묻고

물어 찾아가다보니 하늘과 닿아있는 고개가 보인다. ‘설마 아닐 거

야’하는내생각과달리차는산을기어오르고, 내몸은산소가부족

하다고 아우성친다. 눈알이 튀어나오고, 머리가 지끈거릴 때 1차 목

적지인듯 싶은 작은 마을로 들어섰다. 군청에서 소개받아 찾아가는

게르(몽골천막)촌은다시한번산을넘고밤9시가넘어만년설을만

나고서야끝이났다.

만년설 아래에서 별을 세다

마을주민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자동차 불빛아래 텐트를 친 후,

이틀간에 걸친 자동차여행의 피로가 려들자 나도 모르게 그 로

곯아떨어졌다.

잠든 지 얼마나 지났을까? 딱딱한 바닥과 만년빙에서 불어오는 찬

바람 탓인지 몇 번을 뒤척이다가 일어나 앉았다. 머리가 쑤시고 어질

어질한 게‘이게 바로 말로만 듣던 고산증이구나’하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난다. 고산증에는 약이 없고 하산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하는

데……. 나 하나 때문에 이번 조사에 차질이 생길까봐 걱정되어 밖으

로 나오니, 차가운 밤하늘에 무수한 별들이 나를 내려다 보고 있다.

아득히 먼 옛날 어릴 적 보았던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으니, 내가 드

디어 알타이에 서 있다는 현실감이 느껴진다. 한국에서는 좀처럼 보

기 힘든 은하수와 어릴 적 별을 보며 꾸었던 꿈을 생각하다보니 머리

가조금맑아진다.

그곳에서 만난 낯익은 사람들

그들은 굳이 DNA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한눈에 우리와 공통의 조

상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물론 연구자로서 느낌을 배제하고 오로지

수학적인 데이터로 연구를 수행해야함은 알고 있으나, 시간이 지날

수록 객관적인 생각이 사라지고 그들과의 공통점만 눈에 보이기 시

작했다. 우리의 연구목적을 말하고 그들의 협조를 구했을 때, 어쩌면

불결하거나 불쾌하게 느껴질 DNA샘플의 채취를 흔쾌히 허락하고

순수하게 웃는 그들! 멀리서 찾아온 손님을 접한다고 수테차(우유

차)와 먹을거리를 내어주는 그들을 볼 때마다 아련한 기억 속에 남아

있는어릴적시골풍경이자꾸만떠오른다.

무지개의 나라에서 찾아온 손님을 구경하려고 찾아온 옆집 꼬마는

카메라 앞에서 멋쩍은 포즈를 취해주고, 그보다 어린 꼬마는 뭐가 부

끄러운지 카메라를 들이 자 냉큼 달아난다. 멀리서 말을 달려 찾아

온 다른 아이는 한껏 멋 부리며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해 주었고, 즉

석사진을 찍어준다고 옷을 갈아입고 다시 나타난 할머니! 자기도 찍

어달라고 문 앞을 서성이던 이웃집 소녀……. 바로 잃어버린 과거의

우리 모습이 그곳에는 남아 있었다. 너무나 우리와 비슷하기에 눈에

보이는 그런 모습을 지워버리고 연구자로서의 객관적인 자세를 유지

하기가참으로힘들었다.

한국인과 닮은 친절함

1차 조사지역인 멍흐하이르항산을 뒤로하고 알타이시로 돌아가는

머나먼 고난의 길. 또다시 길을 잃어 아무것도 없는 평원에서 텐트

를 치고 노숙을 했지만, 다음날엔 알타이시의 호텔에서 목욕을 하고

시장구경을할수있다는작은소망으로견디고있을즈음. 다시한번

4_ 만년설에 뒤덮힌 알타이산맥

5_ 차를 임시방편으로 수리하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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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과그들의공통점을보게된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사막과도 같은 초원 한 가운데에서, 유럽에서

부터몽골까지5개국을둘러여행해왔다는 국인남녀! 몇분전우리

가쉴때손흔들며지나쳤던그들의차가더이상견디지못하고주저

앉아버린것이다. 내기억속에남아있는한국인은자기가손해를보

더라도 남의 어려움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사람들이었고, 우리 일행

인몽골인들도그런사람들이었다. 차를뒤집어임시방편으로수리하

여 멀리 있는 게르에 맡기기까지 총 4시간. 그동안 우리 주변을 지나

친 차가 3�4 뿐인 그곳에서 6명의 한국인과 9명의 몽골인은 멀리

서 온 국인 손님에게 작은 감동을 선사하고 있었다. 아마도 그들은

아무것도없는황무지에서바쁜일정에도불구하고몇시간동안이나

힘써주고, 호텔이있는알타이시까지태워준한국인과몽골인들의친

절함을 잊지 못할 것이다. 나 역시 몽골 시장구경과 맞바꾼 4시간이

한국인과몽골인들의공통점을보게된뜻깊은시간이었다.

지의 어머니산

며칠 전 알타이공항에 내려서는 보이지 않았던 가로수를 보고, 나

무와물과생명의소중함을새삼느끼며, 2차조사지역인오트공텡게

르산을 향해 출발한 것은 제 로 쉬지 못한 다음날 아침이었다. 거리

를단축하고자길도보이지않는산을넘어묻고또물어찾은오트공

텡게르산은 몽골의 최 성산 중 하나로 지의 어머니산으로 불리고

있었다.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사고방식과 친절함을

지니고 있었고, 우리 조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꺼이 DNA샘플

을 제공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위아래 10년은 친구’라는 말이

있다. 몽골의농촌에서도12년이하는친구라는말이있고, 서로격의

없이 어울리는 것을 자주 보았다. 한 번은 22살짜리 청년이 나와 친

구하자며 자고 가라고 한다. 한눈에 보아도 신혼집인듯 한데 자기 집

을 내주겠으니 자고 가란다. 자기들은 어머니집에 가서 자면 된다면

서……. 격의 없는 친절함을 뒤로하고 나오기가 왜 그렇게 부끄러운

지를자문하면서몽골과한국의유사성을다시느낄수밖에없었다.

오트공텡게르산을 떠나오기 전 몽골의 통령이 직접 제사를 지낸

다는 오보(몽골의 서낭당)를 보기로 했다. 산은 그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기 싫은 듯 구름과 안개로 정상의 만년설을 가리고 있었다. 산

의 관리인에 따르면, 오트공텡게르산은 사진이 찍히기 싫으면 그 모

습을 구름으로 가린다고 한다. ‘역시 우리와 비슷한 생각을 가지고

있구나!’라고 생각하며 산을 오르는데……. 거짓말처럼 구름이 걷히

고산의정상이보이기시작했다. 몽골의성산역시멀리무지개의나

라에서온손님을반겨주는듯해마음이뭉클해진다.

DNA 분석 결과가 기 된다

하얀 산 할아버지의 전설이 있는 곳!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있는 사

람들! 손해를감내하며어려운이웃을돕는순수한사람들! 우리의서

낭당과 비슷한 오보에 제사를 지내는 민족! 10년 정도의 나이차를 친

구처럼스스럼없이지내는사람들! 손님을 접한다고차와먹을거리

를기꺼이내어주는그들! 멋부리며카메라앞에포즈를취해주는아

이들! 우리가잃어버린순수함을간직한나라! 우리는몽골에서DNA

샘플이아닌그들의순수함이담겨있는감동을채취한듯하다.

4,000km의 장정은일정보다하루늦은30일오후늦게울란바타

르에도착하면서끝이났다. 도로가포장되고자동차의정체가스트레

스를 주는 시끄럽고 혼잡한 도시에 들어서면서, 아직 때 묻지 않은

자연과마음을간직한시골풍경을마음속에되새기며, 아직과거의흔

적이남아있는그곳에서우리연구자가해야할일들을생각해본다.

한∙몽 양국의 알타이 조사는 2011년까지 3년간 계획되어, 고고학

및 민속학, 보존과학적인 측면에서 몽골의 고 유적과 민속신앙, 한

국인과의 유전학적인 유사성을 밝히기 위한 사업으로서 우리 연구소

의 역량을 총 동원하는 의미 있는 프로젝트다. 이러한 연구를 종합적

으로 해석하여 막연히 우리와 관계가 큰 것으로 추정하는 알타이문

화에 한 실체를 과학적으로 밝히고, 우리 민족과 알타이 문화와의

연관성에 한활발한연구가계속진행되었으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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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_ 알타이에서 만난 사람들

7_ 몽골 현지 주민의 DNA분석 시료 채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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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은 일제시 민족 동단결의 단초

개천절이 기념되기 시작한 것은 1909년이다. 1909년이라면 일제가 한국을 강점하기 한 해 전으로, 국

가와 민족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 신세 다. 그 때문에 국권 수호를 위한 민족운동이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던시기 다. 그래서어느때보다민족의 동단결이필요했는데, 이러한과정에서민족이단결

해야할당위성의근거로단군이새롭게주목되었다. 이것은단군에 한새로운의미부여의결과다.

전통적으로 단군은 우리나라를 처음 세운 국가의 시조로 여겨졌다. 그러나 전통시 에는 아직까지 단

군이 민족의 시조란 인식은 존재하지 않았다. 엄격한 봉건적 신분사회에서는 국왕을 비롯한 지배층과

평민∙노비를포함한피지배층이한핏줄이란인식은상상할수조차없기때문이다. 그러나한말의사

회변화와 시 적 요청은 단군 인식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즉, 단군은 국가의 시조에서 민족의 시조로

의미가 확장되었으며, 그 결과 우리 민족은 다 같은 단군의 자손이기 때문에 뭉쳐야 한다는 논리를 제

공했다. 이에 따라 한말에는 단군을 선양하는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고, 그 여세를 몰아 단군의 기

념일을제정해야한다는여론까지조성되었다. 이러한여론을수용해실천으로옮긴것이, 당시단군운

동의 구심점이었던 종교 다. 1909년 최초의 개천절 기념행사는 바로 종교의 주도 하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하지만기념식은 종교만의행사가아니었다. 한의학교大韓醫學校에서는휴교를하고학생들

개천절기념특별기고

단군시조를그리워하며

개천절기념100년을돌아보다단군을기리는 10월 3일개천절은 한민국의 표적인국경일중하나로, 매년정부는물론민간차원에서기념식과

다양한경축행사를거행하고있다. 그러나올해개천절의의미는다른해보다특별하다. 개천절을기념하기시작한지

꼭 100년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천절의 역사가 100년이나 되었는데, 과연 우리는 개천절을 제 로 알고 있는

지, 그정신을제 로기리고있는지를한번자문자답해볼때가된것같다.

│서 인하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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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참여시켰으며, 『소년』잡지에는4절로이루어진<단군절> 노래를악보와함께게재했다. 또『황성신

문』에서는사설을통해그의미를높이평가했다. 단, 이때의개천절은지금과는달리음력10월3일(양

력11월15일)에개최되었다.

개천절은 남북이 이념을 초월해 하나가 되는 날

개천절이처음거행된이듬해인1910년일제에의해한국은강점되고말았지만, 그럼에도불구하고개

천절은 국내외에서 꾸준히 이어져갔다. 국내에서는 종교가 중심이 되어 매년 음력 10월 3일 개천절

행사를가졌는데, 이때기념식과함께강연회∙연극∙음악회등도개최되었고, 많을때는수천명의인

파가 모여 들었다고 한다. 또 지방에서도 청년단체가 주관하는 개천절 행사가 있었으며, 1935년 10월

29일개천절을기해조선혁명당이<건국기념선언>을했다는점으로미뤄, 좌익단체에서도개천절을기

념했음을 알 수 있다. 국외에서는 상해임시정부가‘건국기원절’이란 이름으로 개천절을 기념하는 등,

중국등지에서도 개천절행사가거행됐다. 이렇듯개천절이정례화되고또그것이민족의식을고취하

는계기가되면서마침내일제는개천절행사를금지하 다.

그렇지만해방과더불어개천절은부활되었고, 미군정치하에서도개천절기념식은광복의기쁨을확

인하는 자리 다. 삼일절과 같은 기념일이 좌우익 세력 혈투의 빌미가 되었던 것과 달리, 개천절은 이

념을 초월해 성 히 거행되었다. 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국무회의와 국회를 거쳐 1949년부터 정식

국경일로채택되었다. 단, 이때부터개천절은음력이아니라양력10월3일로날짜가변경되었다. 이렇

듯 개천절은 한민국만의 국경일이 되고 말았지만, 남북관계가 호전되면서 개천절은 남북이 이념을

초월해함께기념할수있는민족적경축일이되기도했다. 그래서2003년과2004년10월3일에는평

양단군릉에서남북공동으로개천절기념식을가졌고, 이를통해민족적동질감을확인하는중요한계

기가되었다. 그러나민간단체들의노력에도불구하고이후남북공동개천절행사는중단되고말았다.

세계화시 개천절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자

개천절의 100년 역사를 뒤돌아보면, 개천절은 우리 민족에게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자주독립정신을심

어주는데 기여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민족이 위기에 처했을 때는 외세에 항거할 수 있는 정신적 토

를제공했으며, 민족이정파와이념으로분열되었을때는동질성을확인할수있는계기를마련해주었

다. 물론 세계화시 에 민족을 찾는 것은 시 에 뒤떨어진 발상일 수도 있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이란

울타리가 없으면, 세계화에 동참할 수도 없다. 국가와 민족이 확실할 때, 국제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

고세계화에동참할수있다. 따라서국수주의는곤란하지만, 민족의자주성은지켜져야하며, 이런의

미에서개천절은오늘날에도여전히의미있는국경일이다.

그럼에도불구하고개천절의의미는갈수록퇴색되고있는것같다. 한말이나일제시 는그렇다하더

라도, 광복직후에있었던개천절경축식의열기나당시사회지도층들이단군유적이있는강화도마니

산까지올라가개천절을기념했던것을비교하면, 지금은격세지감이있다. 기념식도형식적으로흐른

감이있고, 많은사람들은공휴일중의하나로치부하는경향이없지않아있다. 그러다보니개천절이

단군의탄생일인지건국일인지도모르는경우가많은것같다.

개천절은우리민족에게는생일과같은날이다. 개인에게생일이의미있는날이듯이, 개천절도우리민

족에게는 의미있는 날이다. 그러므로 개천절은 우리 모두가 단군시조의 홍익인간 정신을 되새기고 아

울러민족을생각하는날이되었으면한다.

1_ 강화도 마니산 참성단

2_ 사직공원 내 단군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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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문화재연구소, 2009 ACPCS 2기사업개시

신종플루도울고간아시아권문화재보존협력연구

정말 하늘도 그들을 도왔던 것일까. 전세계적으로 신종플루가 확산되면서 크고 작은 국제행사가 부분 취소되는 위기에 놓 지만,

2009 ACPCS 2기 사업은 작은 해프닝만을 치루고 무사히 닻을 올릴 수 있었다. 자칫 잘못하면 무산되거나 내년으로 미뤄졌을 이번

사업은 그래서 연구소는 물론 참가자들에게 더 의미 있고 특별한 행사로 기억될 듯싶다. 지난번에 다녀간 1기생과는 그 색깔이 닮은

듯다른2기생들이석달간한국에서소중한추억을만들어갈2009 ACPCS 2기사업을소개한다.

│김화숙 사진│김민정국제교류

‘2009 ACPCS 2기사업’참가자들과국립문화재연구소직원들이다같이모여기념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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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음바이러스가넘치는2기참가자

9월7일, 국립문화재연구소프로그램일자를맞추는것은거짓말을

좀 보태‘하늘에 별 따기’만큼 힘들었다. 이번 참가자들의 경우 모두

본국에서 바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 직항 라인이 없는데다, 일부는

비행기표를 발권해서 보내줄 경로까지 마땅치 않아 사관을 통해 인

편으로전달함으로써겨우입국시간을맞췄다. 이렇게우여곡절끝에

도착한 인천공항,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 다. 일행 중 한 명이 감기

증세를 보이면서 신종플루로 의심받아 참가자 5명 전원이 바로 병원

으로 달려가야 했다. 다행히 신종플루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고, 그동

안손꼽아기다리던2009 ACPCS 2기프로그램에참가하게됐다.

그래서일까. 부탄, 방 라데시, 아프가니스탄, 중국, 미얀마에서 온

참가자들은 국가가 다르고, 지금까지 옷깃을 한 번도 스친 적이 없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서로 전혀 낯설지 않아 보 다. 오히려 오랜 친

구처럼편안했다.

“1기때의경우외향적이고활발한분위기 는데반해, 이번2기분

들은 그들에 비해 조용하신 편이죠. 하지만 다들 잔정이 많으시고 재

미있으신 분들이라 금방 가까워졌어요. 말수는 적으셔도 다들 은근히

웃기세요.”

국립문화재연구소2009 ACPCS 사업을담당하고있는복원기술연

구실 최정은 씨는 2기생들에 한 솔직한 감정을 이렇게 털어놓았다.

한국생활첫날겪었던해프닝때문이지그들사이에는신종플루도울

고간더독한(?) 웃음바이러스가퍼져있었다.

미술문화재연구, 국제교류포문을열다

ACPCS는매년동남아시아및중앙아시아국가의연구자들을초청

해문화재보존에관한범아시아적차원의연구협력을이루고자진행

하는사업이다.

지난 9월 7일 오리엔테이션을 시작으로 막을 올린 이번 2009년

ACPCS 2기 사업은 12월 4일까지 석 달 간의 일정으로 진행된다. 부

탄, 방 라데시, 아프가니스탄, 중국, 미얀마 5개국의 문화재 연구 관

련 담당자가 참가하고 있는데 이들을 잠깐 소개하면, 부탄의 타쉬 렌

덥(Tashi Lhendup), 방 라데시의 악사루자만 누리(Md.

Aksaruzzaman Nuri), 아프가니스탄의 라술 쇼재이(Rasool

Shojaei), 중국의 왕 씬(Wang Xin), 미얀마의 틴태앙(Tin Htay

Aung) 씨다. 이들은본국에서유∙무형문화재, 건축문화재등과관련

연구를맡고있다. 특히이번2기사업에는미술문화재연구분야가처

음으로 본 프로그램에 합류함으로써 범아시아적 차원의 미술문화재

연구교류의포문을열었다.

“올해1기사업때는무형문화재연구분야가신설되었는데, 이번2

기에는여기에미술문화재연구분야가더해졌어요. 앞으로는고고학,

고건축학 분야 등으로까지 점차적으로 분야를 늘려감으로써 더 폭넓

고심도깊은국제교류의기반을만들어갈예정입니다.”

최정은 씨는 이번 ACPCS 2기 사업이 약 13주 동안 크게 오리엔테

이션, 개인연구과제수행, 결과발표회순으로진행된다고설명한다.

11월 말 개별 연구과제 최종 발표회를 끝으로 공식 일정을 마치게

되는2기참가자들. 고국으로돌아갈때는문화재연구에관한학술정

보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 체험이라는 선물보따리를 한가득 안고 가길

바라본다. 그들의뒤를이어내년에는또어떤손님들이국제연수실의

빈자리를채워줄지사뭇기 가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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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쉬렌덥 (Tashi Lhendup) _ 부탄가정문화부문화재과부副보존가

한국을처음방문했는데첫인상이참좋아요. 특히연구소가있는 전은깨끗한데다시민들이다정다감하고친절한것같

아요. 이프로그램에는직장동료소개로참여하게됐습니다. 제가소속된부탄가정문화부내에는문화재보존및복원책

임자가4명있는데이중두명이이연수를받았어요. 그들소개로이프로그램을알게됐고유네스코공지를보고신청서

를내게됐죠. 저는이프로그램을통해금속부식, 도토기구성성분과열화과정을연구할계획입니다. 연수후에는부탄에

돌아가 나무, 직물, 회화의 생물적 열화에 관한 연구를 수행할 계획이며 특히 국가를 위한 책자를 발행하는 게 저의 작은

꿈입니다.

악사루자만누리 (Md Aksaruzzaman Nuri) _ 방 라데시국립박물관보존연구부어시스턴트연구원

사실 이번 한국 방문이 저의 첫 해외 나들이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무척 설레면서도 나름 두렵기도 했죠. 근데 연구소 내

천연기념물센터를 만나고부터 두려움이 많이 사라졌어요. 제가 근무하는 국립박물관 안에도 이와 비슷한 곳이 있죠. 이번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된 것은 방 라데시 한국 사관에서 띄운 공지를 보고 지원하게 됐습니다. 저는 해양 유적지에서 발

굴된 철제 유물의 보관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고 이번 연구과제도 철제 유물 보존처리, 부식 진행 억제 방안에 관한 것입니

다. 이번프로그램은보존과복원에있어저의지식을풍부하게해줄것으로기 됩니다. 연수를마치고돌아가면금속, 석

조, 도자기 등 방 라데시 박물관의 보존업무에 두루 활용할 계획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연수기간 동안 한국말을 꼭 배우고

싶은데, 열심히배워한국과국제교류를촉진하는데도한몫거들고싶어요.

라술쇼재이 (Rasool Shojaei) _ 아프가니스탄바미얀문화정보부박물관매니저

유엔 아프가니스탄 지원사업단에 근무하는 한국 단장 추천으로 이 프로그램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한국인 탤런트

김민종 씨를 닮았다고 하더라구요. 솔직히 누구인지는 잘 모르지만 기분은 좋네요. 바미얀에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발견

된 유물들이 있는데 진흙과 벽돌로 만들어진 것들이라 전문 기술력 부족으로 소중한 유물들이 훼손될 위험에 처해 있어

요. 저는 이번 프로그램에서 그 문제들에 관해 세계 공통으로 사용되는 도구들과 방법들을 알아가면서 진흙과 벽돌 유적

복원에 관한 연구를 수행할 계획입니다. 연수를 마치고 돌아가면 바미얀에서 Shahr-e-Ghulghula와 Shahr-e-Zuhak

의 흙과 미가공 벽돌로 만들어진 유적지를 복원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나기 전, 한국 바다를 꼭 한 번

보고 싶어요.

왕씬 (Wang Xin) _ 중국비물질문화유산보호센터어시스턴트연구원

한국은이번이두번째방문인데, 지난 5월강릉단오제행사에개인적으로참가했어요. 그때는봄이었는데가을에다시한

국을찾으니감회가새롭네요. 한국의가을산과하늘이참아름답고맑은것같아요. 개인적으로한국음식을좋아해서생

활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어요. 특히 제가 홍일점인데도 불구하고 다른 분들이 다들 재미있고 좋으셔서 연구소 생활이 즐거

워요. 저는 중국비물질문화유산보호센터에서 2006년부터 근무해오고 있으며 중국의 무형문화재 보호계획과 분류에 관한

연구를 진행한 경력이 있습니다. 이번 ACPCS 사업에서는 무형문화재의 문화생태학 보호에 관한 연구를 추진할 계획인데

현재 중국에서 진행 중인 문화생태학 보호지역에 관한 연구에 중요한 참고자료가 될 것으로 기 합니다. 나중에 중국으로

돌아가서도이곳과계속좋은인연을이어가고싶고기회가된다면교류사업도추진하고싶어요.

틴태앙 (Tin Htay Aung) _ 미얀마문화부소속미술공립학교교장

저는외교부를통해서이프로그램에참가하게됐는데한국에오니날씨가참좋아요. 사람들또한따뜻한인상만큼다정한

것같구요. 미얀마는미술을포함해풍부한문화유산을보유하고있습니다. 저는이프로그램을통해한국문화유산에 해

공부하고 싶습니다. 한국 전통 공예 양식과 그 생산방식에 관한 연구를 추진할 계획인데, 미얀마의 전통 미술 디자인을 바

탕으로 모형들을 제작해가면서 연구할 것입니다. 기본적인 재료들인 종이, 점토 제작, 풀, 페인트, 물감들을 사용할 것이고

이 연구는 8주 동안 가능하다고 봅니다. 이를 통해 얻을 소중한 경험들은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 간 문화유산에 관

한 폭넓은 이해를 도와줄 것이라 확신해요. 돌아가서 미얀마 전통 디자인에 한국의 미를 접목시켜 새로운 예술을 창조하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는언제한번한국민속촌을방문해전통생활방식을체험해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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