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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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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이 부제목은 신뇨 개조께서 기록하신 영언에서 영감을 얻은 것입니다

『교법을 청문한다는 것은 그 말을 리브라이로 삼아 자신의 참된 불성을 찾아내어 진실을 깨달아 가는 것이다』

저희 편집스텝 일동은 독자 여러분이 법의 울림을 통해 영감과 마음의 깨달음을 얻어 일상의 정진에 활용해 갈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법을 청문하고 거기에서 가능성을 한껏 찾아내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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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교슈사마께서 가르침 한 길에 서신 이래 때마다 자신의 기도 속에서 감득하신 것 신뇨 영계로부터 나타난 영언 불전 등에서 인용하신 것과 성구를 『용천』이라고 이름을 붙이시고 집성하셨습니다 아래는 그 『용천』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1956년 4월에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제28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내 마음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두려움이 없다

섬겨가는 우리들은

끝없는 법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

또한 사람들에게 법을 전해야 한다

태어나기 어려운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법을 듣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타인과 함께 법을 듣고 기뻐하며

타인과 함께 손을 잡고 또한 즐거워한다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

언제나 함께 계신 부처님의 명호를

흐르는 물 소리와 함께 창화한다

Ⅰ영언

흐르는 물 소리에 기뻐한다

2

1956년 4월에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제28호에 게재된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친교를 소개하겠습니다 쇼쥬신인사마는 이

친교에서 부처님이 태어나신 것 (넓게는 강탄회 그 자체)을 단순히

석가탄생을 축하하는 이야기처럼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이 우리들의 인생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인식하도록 설해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탄생하셨기 때문에 그 생애의 가르침과 사상이 전해졌

으며 따라서 우리들도 지금 이 때에 운명개혁의 수행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신뇨엔의 화합중은 신뇨 개조의 생애와 가르침을

통해 시간을 초월한 부처님의 인도를 직접 받을 수 있습니다이토 토모지(영조 쇼쥬신인사마)

여래는 영원하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마을에 있는 절에서 하는 꽃축제1에 자주 데리고 가 주신 것이 하나의 추억으로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여래성품2이라는 경문 속에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것은 우리들 중생의 고뇌와 괴로움을 없애고 환희의 기쁨

1) 쇼쥬신인사마는 이 친교 속에서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드리는 강탄회를 「꽃축제」라는 명칭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일본에서는 강탄회를 「꽃축제」라고 일컫는 경우가 많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4월 8일에 행해짐

2) 대반열반경의 일부

Ⅱ영조 친교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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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세계로 인도하시려는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이 분명히 설해져 있습니다

이 몸 즉 불법의 모습을 인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하여 룸비니 동산에서 어머니 마야부인을 통해 태어나 동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야말로 이 세상에서 최상의 존재이다」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불가사의함3을 보였다

육신으로 나타난 것도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보여준 것도 세상을 구제하기 위함이며 고난의 세상을 인도하는 도사가 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마왕 파순도 바라문도 사문4도 부처의 탄생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였기에 오직 그 불가사의한 일들을 놀라워하였다

이렇게 여래성품에는 전해지고 있습니다 꽃축제를 단순히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끝내지 말고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참 뜻을 깨달아 유익하고 뜻 깊게 여겨가는 것이 불제자인 우리들의 중요한 정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 산스크리트어 아친티아(Achintya)에서 유래된 말로 궁극의 진실인 「진여」를 말로 표현하거나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는 오묘한 이치 또는 가르침 여기에서 쇼쥬신인사마는 석가의 탄생을 부처님의 심원한 불가사의로써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4) 바라문은 힌두교 카스트제도 안에서 가장 높은 스님의 위치 사문은 수행승을 말함

4

1950년대 후반의 영조 쇼쥬신인사마 접심도량 베자이텐당 앞에서

세 가지 항아리로 비유

우리들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여래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늘 인간본위로만 즐기려고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여러 가지 괴로움과 고뇌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언에서는 「먼저 남을 위하여 행할 것 대승을 위해 행하고 이승(자신)을 위해서 행해서는 안 된다」고 나타나 있듯이 언제나 부모의 자비로운 마음을 남에게 베풀어가는 것이 부처님과 함께 기뻐하는 일이며 따라서 대승을

5

위해 행하라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한 정진을 할 때 비로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고 힘차게 정진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부처님은 이것을 세 가지 항아리로 비유해 주셨습니다 세 가지 항아리란 깨진 항아리 물이 새는 항아리 완전한 항아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신심은 어느 항아리에 해당할까요 제일 첫 번째의 깨진 항아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으려고 해도 담기지 않는 덕성이 부족한 항아리로 불선(不善)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새는 항아리는 오로지 자기본위로 자신만 구제받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찬 항아리로 모처럼 정법이라는 귀한 법을 채우려고 해도 자신만 구제받고 싶어 하는 불손한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고 전해집니다 완전한 항아리란 어떠한 항아리인가 하면 언제나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과 실천을 표현하는 것으로 남에게 전하기 위해 정법의 부처님의 법을 언제나 충족시키고 있는 항아리이며 전해주면 줄수록 부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길을 택할 지

요즘 신앙은 자유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신앙은 자유입니다 새는 항아리를 정진을 통해 완전한 항아리로 만들어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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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새고 있다는 것을 잊고 언제나 채우려고만 하여 새는 것을 막지 못해 결국 깨지는 일도 모두가 그 사람들의 마음자세에 달려 있는 것으로써 자유입니다 각자의 마음의 모습에 달려 있는 것이며 자유로운 것입니다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불성을 깨뜨리는 일 깨진 항아리에 마음이 빼앗기는 일도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의 모습을 부처님께서는 비율부증(非律不證)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결국은 자유롭지 않은 것이라고 큰 자비로써 가르쳐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새는 항아리와 같은 우리들이라면 언제나 완전한 항아리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가 새는 마음을 고쳐가고 수리하여 완전하게 갖추어가는 것 그것이 시율응증(是律應證)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을 잘 알아가는 것이 불교도로서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이 꽃축제에서 그 이치를 잘 인식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2500년 전 먼 옛날 강탄과 함께 여래의 생명은 무한하다고 나타내주신 그 참뜻을 잘 새기면서 영원히 살아계시는 여래님의 큰 참마음에 일여하여 새는 항아리가 아닌 완전한 항아리가 되도록 마음을 쓰고 궁리할 때 상락아정의 환희세계가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영언에서는 「다리로 실천하는 것 발로 정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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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부처님의 발에 절해가는 실천을 하기 때문에 명행족(明行足)5의 여래님을 알게 됩니다」라고 마음과 실천의 모습을 명확히 가르쳐 주십니다 상쾌한 봄에 단단히 실천의 발을 내디뎌 부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갑시다

5) (산스크리트어 vidya-carana-sampanna) 지혜와 실천의 양면이 완전한 존재라는 것 여래 십호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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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2일 응현원에서 만남의 축제가 행해졌습니다 이

행사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나 귀원하기 힘든 분들과 그 분들을 돕고 계시는 가족 분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행해집니다 이번 호에서

는 그 때 발췌한 신뇨 게이슈사마의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방금 신뇨 개조 교슈사마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친교를 배청했습니다 「생명은 귀한 것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뇨 게이슈사마 서교

덧셈을 해 가듯이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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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 불편한 곳이 있으시지요 그렇지만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쇼쥬신인사마께서는 「살려지는 감사를 잊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고 살려지고 있는 감사입니다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ldquo이것을 할 수 없어 들리지 않아 보이지 않아 걸을 수 없어rdquo 라고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마이너스로 생각한다면 살아있는 것이 제로(0)가 되어버립니다

제로인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나 자신은 ldquo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rdquo라고 하나씩 덧셈을 해가듯 긍정적으로 인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면 ldquo이것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rdquo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감사와 고마움이 커져갑니다

신뇨 가르침은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신뇨 가르침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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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middot신뇨엔 역사 에서는 신뇨 가르침의 발상의 땅인

오늘날의 오야소노에서 근본당우middot신쵸지의 지진제가 행

해졌던 때를 되돌아봅니다

새롭게 완성된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 정문 앞에서 앞쪽 중앙에 젊은 교슈사마의

모습이 보인다

1938년 2월 15일 열반회의 좋은 날에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뵤제이쇼와 영능투시로 지금의 발상 성지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출발의 첫걸음이 될 지진제는 교도

Ⅳ신뇨엔 역사

신쵸지의 지진제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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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마 제3회기 전날에 해당하는 6월 8일에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을 봉수하는 이 날은 30도를 넘는 전날의 날씨와는 확연히 달라 10도 정도 낮았고 더불어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 다치카와는 쌀쌀한 하루였습니다

도사를 맡은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이른 아침부터 입조각1

으로 오시어 장마철 하늘을 바라보며 지진제 거행을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슈사마는 뵤제이쇼를 보시고는 오후부터는 비가 그칠 것이라고 확신하며 성스러운 의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라노 스님은 그 흔들림 없는 각오에 감동하신 듯 교슈사마에게 법의식에 대한 진행 방식을 상세하게 교시하셨습니다

ldquo이토씨 지금이야 내가 당신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반드시 당신은 크게 되고 가르침도 천하(天下)로 퍼질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스승으로부터 구전으로 받은 것입니다만 토공신(土公神)2을 정화할 때에는 소금 속에 많은 삼

1) 교단은 발족 당시인 1936년 이른 봄부터 1938년 가을까지 「입조각」으로 알려지고 그 후 10년 동안은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로써 1948년 1월까지 활동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교슈사마는 제호사에서 진언 밀교의 수행을 익히셨다

2) 토공신(土公神)이란 일본불교 안에서 대지를 신격화한 것으로 생각되며 산스크리트명 Prithvi(드넓은 자) 또는 일본명 지천(地天)으로 알려져 있다 지천은 불교에서 십이천 중의 하나이며 석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열었을 때 땅에서 용출하여 증명한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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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신격화한 지천상(地天

像 산스크리트어로 쁘리티비

ldquo드넓은 자rdquo라는 의미) 사진은

12세기 화폭의 사진 (교토국립

박물관 소장)

베를 반 정도로 잘라 넣고 백 평3에 한 되4정도 뿌리는 것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제(地祭)에는 많은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제 아들은 아무래도 신심을 싫어하여 이 길은 나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이토씨나 당신의 제자들이 지진제를 올릴 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의 독특한 정화로 이어가 주세요rdquo

우라노 스님의 말에는 교슈사마를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여 자신이 이어 받은 법을 전부 전수하시려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스승의 정확한 지시 아래 준비는 빈틈없이 행해져 도량부지의 모서리에는 청죽(靑竹)을 세우고 금줄을 두르고 사

3) 약 330평방미터 또는 3558평방피트에 해당한다4) 약 18리터 또는 04 갤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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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결계된 땅의 중심에는 제단을 설치 공양물 술을 올려 개식(開式)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진제에 신령이 강림

오후가 되자 걱정했던 비도 뵤제이쇼에 나타난 대로 그쳤습니다 비로 정화된 땅에는 맑고 청정한 햇빛이 쏟아지고 인접한 스와 숲에 있는 나무의 신록은 더욱더 빛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은 우라노 스님의 도사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고 신뇨 교슈사마는 수기 『신뇨엔 기록』에 그 모습을 자세히 적고 계십니다

1938년 6월 8일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되었다 전부터 부탁을 드렸기에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새벽부터 입조각에 오셨다 입조각에

서 점심을 마치고 스와신사의 서쪽 옆의 건설지로 갔다 후

원자들이 모든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에 우라노 스님이 도

사를 맡아 지진제는 개시되었다 나는 식에 참석하면서 함

께 라이카로 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라노 스님은 우선 후원자와 함께 지진 원문을 올렸다 억

양을 붙이고 게다가 청년과 같은 높은 음성으로 올리자 모

두 멈칫했다 길가는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

는 나에게 ldquo저 분은 어디에서 수행하시는 행자이십니까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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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행을 쌓은 목소리네요rdquo라고 칭찬했다 성지에는 구석

구석까지 신께 바치는 술과 정화의 소금을 뿌렸다

그 사이 우라노 스님은 ldquo갑자기 어깨가 당겨지는 것 같은데

뭔가 신이 감응되는군요rdquo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ldquo호법의 제

천선신 중에 특별한 신령이라도 오셨습니까rdquo라고 묻자 아

내 토모지도 ldquo아이(유이치)를 업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문이

끝나자 저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rdquo고 말하자 우

라노 스님은 ldquo부인은 입조각에 부동님이 입불하여 온 이래

특히 『감응』이 강해졌으므로 어떤 신이 감응했을지도 모

르겠네요rdquo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모

습으로 석장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진언을 외우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드디어 토지의 중앙에서부터 미신(未申 서남쪽)5방향으로 이

끌리듯이 가다가 ldquo여기 여기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가사의

하게 우라노 스님의 발은 대지에 딱 붙어 있는 듯 했다

아내 토모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

에 서서 함께 ldquo여기예요rdquo라고 말한다 내가 그곳으로 가자

우라노 스님은 내게 ldquo이것은 부인과 관계가 있는 신이네요

부인의 친정에 법화관계로 모셔진 이나리님이 안 계십니

까rdquo라고 말하니 토모지는 ldquo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

거듭해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이 신의 계통은 이바라키의 가사

마(笠間)6계통일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바라키

5) 개조 교슈사마는 남서쪽 방위를 중국 전통의 방위체계인 지지(地支12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체계는 목성 궤도의 관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6) 동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사마 이나리 신사는 일본 3대 이나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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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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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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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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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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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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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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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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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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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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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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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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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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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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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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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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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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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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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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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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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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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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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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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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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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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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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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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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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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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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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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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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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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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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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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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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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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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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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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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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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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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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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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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2: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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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교슈사마께서 가르침 한 길에 서신 이래 때마다 자신의 기도 속에서 감득하신 것 신뇨 영계로부터 나타난 영언 불전 등에서 인용하신 것과 성구를 『용천』이라고 이름을 붙이시고 집성하셨습니다 아래는 그 『용천』에서 발췌한 내용으로 1956년 4월에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제28호에 게재된 것입니다

내 마음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처럼 기뻐하며 두려움이 없다

섬겨가는 우리들은

끝없는 법의 흐름 속으로 들어가

또한 사람들에게 법을 전해야 한다

태어나기 어려운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

법을 듣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다

타인과 함께 법을 듣고 기뻐하며

타인과 함께 손을 잡고 또한 즐거워한다

내 마음은 기쁨으로 가득 차

언제나 함께 계신 부처님의 명호를

흐르는 물 소리와 함께 창화한다

Ⅰ영언

흐르는 물 소리에 기뻐한다

2

1956년 4월에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제28호에 게재된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친교를 소개하겠습니다 쇼쥬신인사마는 이

친교에서 부처님이 태어나신 것 (넓게는 강탄회 그 자체)을 단순히

석가탄생을 축하하는 이야기처럼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이 우리들의 인생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인식하도록 설해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탄생하셨기 때문에 그 생애의 가르침과 사상이 전해졌

으며 따라서 우리들도 지금 이 때에 운명개혁의 수행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신뇨엔의 화합중은 신뇨 개조의 생애와 가르침을

통해 시간을 초월한 부처님의 인도를 직접 받을 수 있습니다이토 토모지(영조 쇼쥬신인사마)

여래는 영원하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마을에 있는 절에서 하는 꽃축제1에 자주 데리고 가 주신 것이 하나의 추억으로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여래성품2이라는 경문 속에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것은 우리들 중생의 고뇌와 괴로움을 없애고 환희의 기쁨

1) 쇼쥬신인사마는 이 친교 속에서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드리는 강탄회를 「꽃축제」라는 명칭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일본에서는 강탄회를 「꽃축제」라고 일컫는 경우가 많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4월 8일에 행해짐

2) 대반열반경의 일부

Ⅱ영조 친교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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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세계로 인도하시려는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이 분명히 설해져 있습니다

이 몸 즉 불법의 모습을 인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하여 룸비니 동산에서 어머니 마야부인을 통해 태어나 동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야말로 이 세상에서 최상의 존재이다」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불가사의함3을 보였다

육신으로 나타난 것도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보여준 것도 세상을 구제하기 위함이며 고난의 세상을 인도하는 도사가 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마왕 파순도 바라문도 사문4도 부처의 탄생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였기에 오직 그 불가사의한 일들을 놀라워하였다

이렇게 여래성품에는 전해지고 있습니다 꽃축제를 단순히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끝내지 말고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참 뜻을 깨달아 유익하고 뜻 깊게 여겨가는 것이 불제자인 우리들의 중요한 정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 산스크리트어 아친티아(Achintya)에서 유래된 말로 궁극의 진실인 「진여」를 말로 표현하거나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는 오묘한 이치 또는 가르침 여기에서 쇼쥬신인사마는 석가의 탄생을 부처님의 심원한 불가사의로써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4) 바라문은 힌두교 카스트제도 안에서 가장 높은 스님의 위치 사문은 수행승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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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의 영조 쇼쥬신인사마 접심도량 베자이텐당 앞에서

세 가지 항아리로 비유

우리들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여래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늘 인간본위로만 즐기려고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여러 가지 괴로움과 고뇌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언에서는 「먼저 남을 위하여 행할 것 대승을 위해 행하고 이승(자신)을 위해서 행해서는 안 된다」고 나타나 있듯이 언제나 부모의 자비로운 마음을 남에게 베풀어가는 것이 부처님과 함께 기뻐하는 일이며 따라서 대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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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 행하라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한 정진을 할 때 비로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고 힘차게 정진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부처님은 이것을 세 가지 항아리로 비유해 주셨습니다 세 가지 항아리란 깨진 항아리 물이 새는 항아리 완전한 항아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신심은 어느 항아리에 해당할까요 제일 첫 번째의 깨진 항아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으려고 해도 담기지 않는 덕성이 부족한 항아리로 불선(不善)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새는 항아리는 오로지 자기본위로 자신만 구제받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찬 항아리로 모처럼 정법이라는 귀한 법을 채우려고 해도 자신만 구제받고 싶어 하는 불손한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고 전해집니다 완전한 항아리란 어떠한 항아리인가 하면 언제나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과 실천을 표현하는 것으로 남에게 전하기 위해 정법의 부처님의 법을 언제나 충족시키고 있는 항아리이며 전해주면 줄수록 부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길을 택할 지

요즘 신앙은 자유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신앙은 자유입니다 새는 항아리를 정진을 통해 완전한 항아리로 만들어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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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새고 있다는 것을 잊고 언제나 채우려고만 하여 새는 것을 막지 못해 결국 깨지는 일도 모두가 그 사람들의 마음자세에 달려 있는 것으로써 자유입니다 각자의 마음의 모습에 달려 있는 것이며 자유로운 것입니다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불성을 깨뜨리는 일 깨진 항아리에 마음이 빼앗기는 일도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의 모습을 부처님께서는 비율부증(非律不證)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결국은 자유롭지 않은 것이라고 큰 자비로써 가르쳐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새는 항아리와 같은 우리들이라면 언제나 완전한 항아리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가 새는 마음을 고쳐가고 수리하여 완전하게 갖추어가는 것 그것이 시율응증(是律應證)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을 잘 알아가는 것이 불교도로서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이 꽃축제에서 그 이치를 잘 인식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2500년 전 먼 옛날 강탄과 함께 여래의 생명은 무한하다고 나타내주신 그 참뜻을 잘 새기면서 영원히 살아계시는 여래님의 큰 참마음에 일여하여 새는 항아리가 아닌 완전한 항아리가 되도록 마음을 쓰고 궁리할 때 상락아정의 환희세계가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영언에서는 「다리로 실천하는 것 발로 정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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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부처님의 발에 절해가는 실천을 하기 때문에 명행족(明行足)5의 여래님을 알게 됩니다」라고 마음과 실천의 모습을 명확히 가르쳐 주십니다 상쾌한 봄에 단단히 실천의 발을 내디뎌 부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갑시다

5) (산스크리트어 vidya-carana-sampanna) 지혜와 실천의 양면이 완전한 존재라는 것 여래 십호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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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2일 응현원에서 만남의 축제가 행해졌습니다 이

행사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나 귀원하기 힘든 분들과 그 분들을 돕고 계시는 가족 분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행해집니다 이번 호에서

는 그 때 발췌한 신뇨 게이슈사마의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방금 신뇨 개조 교슈사마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친교를 배청했습니다 「생명은 귀한 것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뇨 게이슈사마 서교

덧셈을 해 가듯이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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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 불편한 곳이 있으시지요 그렇지만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쇼쥬신인사마께서는 「살려지는 감사를 잊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고 살려지고 있는 감사입니다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ldquo이것을 할 수 없어 들리지 않아 보이지 않아 걸을 수 없어rdquo 라고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마이너스로 생각한다면 살아있는 것이 제로(0)가 되어버립니다

제로인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나 자신은 ldquo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rdquo라고 하나씩 덧셈을 해가듯 긍정적으로 인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면 ldquo이것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rdquo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감사와 고마움이 커져갑니다

신뇨 가르침은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신뇨 가르침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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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middot신뇨엔 역사 에서는 신뇨 가르침의 발상의 땅인

오늘날의 오야소노에서 근본당우middot신쵸지의 지진제가 행

해졌던 때를 되돌아봅니다

새롭게 완성된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 정문 앞에서 앞쪽 중앙에 젊은 교슈사마의

모습이 보인다

1938년 2월 15일 열반회의 좋은 날에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뵤제이쇼와 영능투시로 지금의 발상 성지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출발의 첫걸음이 될 지진제는 교도

Ⅳ신뇨엔 역사

신쵸지의 지진제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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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마 제3회기 전날에 해당하는 6월 8일에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을 봉수하는 이 날은 30도를 넘는 전날의 날씨와는 확연히 달라 10도 정도 낮았고 더불어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 다치카와는 쌀쌀한 하루였습니다

도사를 맡은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이른 아침부터 입조각1

으로 오시어 장마철 하늘을 바라보며 지진제 거행을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슈사마는 뵤제이쇼를 보시고는 오후부터는 비가 그칠 것이라고 확신하며 성스러운 의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라노 스님은 그 흔들림 없는 각오에 감동하신 듯 교슈사마에게 법의식에 대한 진행 방식을 상세하게 교시하셨습니다

ldquo이토씨 지금이야 내가 당신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반드시 당신은 크게 되고 가르침도 천하(天下)로 퍼질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스승으로부터 구전으로 받은 것입니다만 토공신(土公神)2을 정화할 때에는 소금 속에 많은 삼

1) 교단은 발족 당시인 1936년 이른 봄부터 1938년 가을까지 「입조각」으로 알려지고 그 후 10년 동안은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로써 1948년 1월까지 활동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교슈사마는 제호사에서 진언 밀교의 수행을 익히셨다

2) 토공신(土公神)이란 일본불교 안에서 대지를 신격화한 것으로 생각되며 산스크리트명 Prithvi(드넓은 자) 또는 일본명 지천(地天)으로 알려져 있다 지천은 불교에서 십이천 중의 하나이며 석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열었을 때 땅에서 용출하여 증명한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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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신격화한 지천상(地天

像 산스크리트어로 쁘리티비

ldquo드넓은 자rdquo라는 의미) 사진은

12세기 화폭의 사진 (교토국립

박물관 소장)

베를 반 정도로 잘라 넣고 백 평3에 한 되4정도 뿌리는 것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제(地祭)에는 많은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제 아들은 아무래도 신심을 싫어하여 이 길은 나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이토씨나 당신의 제자들이 지진제를 올릴 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의 독특한 정화로 이어가 주세요rdquo

우라노 스님의 말에는 교슈사마를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여 자신이 이어 받은 법을 전부 전수하시려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스승의 정확한 지시 아래 준비는 빈틈없이 행해져 도량부지의 모서리에는 청죽(靑竹)을 세우고 금줄을 두르고 사

3) 약 330평방미터 또는 3558평방피트에 해당한다4) 약 18리터 또는 04 갤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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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결계된 땅의 중심에는 제단을 설치 공양물 술을 올려 개식(開式)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진제에 신령이 강림

오후가 되자 걱정했던 비도 뵤제이쇼에 나타난 대로 그쳤습니다 비로 정화된 땅에는 맑고 청정한 햇빛이 쏟아지고 인접한 스와 숲에 있는 나무의 신록은 더욱더 빛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은 우라노 스님의 도사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고 신뇨 교슈사마는 수기 『신뇨엔 기록』에 그 모습을 자세히 적고 계십니다

1938년 6월 8일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되었다 전부터 부탁을 드렸기에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새벽부터 입조각에 오셨다 입조각에

서 점심을 마치고 스와신사의 서쪽 옆의 건설지로 갔다 후

원자들이 모든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에 우라노 스님이 도

사를 맡아 지진제는 개시되었다 나는 식에 참석하면서 함

께 라이카로 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라노 스님은 우선 후원자와 함께 지진 원문을 올렸다 억

양을 붙이고 게다가 청년과 같은 높은 음성으로 올리자 모

두 멈칫했다 길가는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

는 나에게 ldquo저 분은 어디에서 수행하시는 행자이십니까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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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행을 쌓은 목소리네요rdquo라고 칭찬했다 성지에는 구석

구석까지 신께 바치는 술과 정화의 소금을 뿌렸다

그 사이 우라노 스님은 ldquo갑자기 어깨가 당겨지는 것 같은데

뭔가 신이 감응되는군요rdquo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ldquo호법의 제

천선신 중에 특별한 신령이라도 오셨습니까rdquo라고 묻자 아

내 토모지도 ldquo아이(유이치)를 업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문이

끝나자 저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rdquo고 말하자 우

라노 스님은 ldquo부인은 입조각에 부동님이 입불하여 온 이래

특히 『감응』이 강해졌으므로 어떤 신이 감응했을지도 모

르겠네요rdquo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모

습으로 석장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진언을 외우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드디어 토지의 중앙에서부터 미신(未申 서남쪽)5방향으로 이

끌리듯이 가다가 ldquo여기 여기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가사의

하게 우라노 스님의 발은 대지에 딱 붙어 있는 듯 했다

아내 토모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

에 서서 함께 ldquo여기예요rdquo라고 말한다 내가 그곳으로 가자

우라노 스님은 내게 ldquo이것은 부인과 관계가 있는 신이네요

부인의 친정에 법화관계로 모셔진 이나리님이 안 계십니

까rdquo라고 말하니 토모지는 ldquo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

거듭해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이 신의 계통은 이바라키의 가사

마(笠間)6계통일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바라키

5) 개조 교슈사마는 남서쪽 방위를 중국 전통의 방위체계인 지지(地支12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체계는 목성 궤도의 관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6) 동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사마 이나리 신사는 일본 3대 이나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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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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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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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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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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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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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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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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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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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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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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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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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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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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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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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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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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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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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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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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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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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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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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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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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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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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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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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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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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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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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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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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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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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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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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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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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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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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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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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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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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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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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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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3: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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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6년 4월에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제28호에 게재된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친교를 소개하겠습니다 쇼쥬신인사마는 이

친교에서 부처님이 태어나신 것 (넓게는 강탄회 그 자체)을 단순히

석가탄생을 축하하는 이야기처럼 받아들이지 말고 그것이 우리들의 인생에서 얼마나 큰 의미를 가지는지 인식하도록 설해 주셨습니다

부처님께서 탄생하셨기 때문에 그 생애의 가르침과 사상이 전해졌

으며 따라서 우리들도 지금 이 때에 운명개혁의 수행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신뇨엔의 화합중은 신뇨 개조의 생애와 가르침을

통해 시간을 초월한 부처님의 인도를 직접 받을 수 있습니다이토 토모지(영조 쇼쥬신인사마)

여래는 영원하다

어린 시절 초등학교 선생님께서 마을에 있는 절에서 하는 꽃축제1에 자주 데리고 가 주신 것이 하나의 추억으로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여래성품2이라는 경문 속에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것은 우리들 중생의 고뇌와 괴로움을 없애고 환희의 기쁨

1) 쇼쥬신인사마는 이 친교 속에서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드리는 강탄회를 「꽃축제」라는 명칭으로 말씀하고 계신다 일본에서는 강탄회를 「꽃축제」라고 일컫는 경우가 많이 있으며 일반적으로 4월 8일에 행해짐

2) 대반열반경의 일부

Ⅱ영조 친교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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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세계로 인도하시려는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이 분명히 설해져 있습니다

이 몸 즉 불법의 모습을 인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하여 룸비니 동산에서 어머니 마야부인을 통해 태어나 동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야말로 이 세상에서 최상의 존재이다」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불가사의함3을 보였다

육신으로 나타난 것도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보여준 것도 세상을 구제하기 위함이며 고난의 세상을 인도하는 도사가 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마왕 파순도 바라문도 사문4도 부처의 탄생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였기에 오직 그 불가사의한 일들을 놀라워하였다

이렇게 여래성품에는 전해지고 있습니다 꽃축제를 단순히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끝내지 말고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참 뜻을 깨달아 유익하고 뜻 깊게 여겨가는 것이 불제자인 우리들의 중요한 정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 산스크리트어 아친티아(Achintya)에서 유래된 말로 궁극의 진실인 「진여」를 말로 표현하거나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는 오묘한 이치 또는 가르침 여기에서 쇼쥬신인사마는 석가의 탄생을 부처님의 심원한 불가사의로써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4) 바라문은 힌두교 카스트제도 안에서 가장 높은 스님의 위치 사문은 수행승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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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의 영조 쇼쥬신인사마 접심도량 베자이텐당 앞에서

세 가지 항아리로 비유

우리들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여래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늘 인간본위로만 즐기려고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여러 가지 괴로움과 고뇌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언에서는 「먼저 남을 위하여 행할 것 대승을 위해 행하고 이승(자신)을 위해서 행해서는 안 된다」고 나타나 있듯이 언제나 부모의 자비로운 마음을 남에게 베풀어가는 것이 부처님과 함께 기뻐하는 일이며 따라서 대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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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 행하라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한 정진을 할 때 비로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고 힘차게 정진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부처님은 이것을 세 가지 항아리로 비유해 주셨습니다 세 가지 항아리란 깨진 항아리 물이 새는 항아리 완전한 항아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신심은 어느 항아리에 해당할까요 제일 첫 번째의 깨진 항아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으려고 해도 담기지 않는 덕성이 부족한 항아리로 불선(不善)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새는 항아리는 오로지 자기본위로 자신만 구제받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찬 항아리로 모처럼 정법이라는 귀한 법을 채우려고 해도 자신만 구제받고 싶어 하는 불손한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고 전해집니다 완전한 항아리란 어떠한 항아리인가 하면 언제나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과 실천을 표현하는 것으로 남에게 전하기 위해 정법의 부처님의 법을 언제나 충족시키고 있는 항아리이며 전해주면 줄수록 부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길을 택할 지

요즘 신앙은 자유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신앙은 자유입니다 새는 항아리를 정진을 통해 완전한 항아리로 만들어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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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새고 있다는 것을 잊고 언제나 채우려고만 하여 새는 것을 막지 못해 결국 깨지는 일도 모두가 그 사람들의 마음자세에 달려 있는 것으로써 자유입니다 각자의 마음의 모습에 달려 있는 것이며 자유로운 것입니다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불성을 깨뜨리는 일 깨진 항아리에 마음이 빼앗기는 일도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의 모습을 부처님께서는 비율부증(非律不證)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결국은 자유롭지 않은 것이라고 큰 자비로써 가르쳐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새는 항아리와 같은 우리들이라면 언제나 완전한 항아리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가 새는 마음을 고쳐가고 수리하여 완전하게 갖추어가는 것 그것이 시율응증(是律應證)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을 잘 알아가는 것이 불교도로서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이 꽃축제에서 그 이치를 잘 인식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2500년 전 먼 옛날 강탄과 함께 여래의 생명은 무한하다고 나타내주신 그 참뜻을 잘 새기면서 영원히 살아계시는 여래님의 큰 참마음에 일여하여 새는 항아리가 아닌 완전한 항아리가 되도록 마음을 쓰고 궁리할 때 상락아정의 환희세계가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영언에서는 「다리로 실천하는 것 발로 정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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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부처님의 발에 절해가는 실천을 하기 때문에 명행족(明行足)5의 여래님을 알게 됩니다」라고 마음과 실천의 모습을 명확히 가르쳐 주십니다 상쾌한 봄에 단단히 실천의 발을 내디뎌 부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갑시다

5) (산스크리트어 vidya-carana-sampanna) 지혜와 실천의 양면이 완전한 존재라는 것 여래 십호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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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2일 응현원에서 만남의 축제가 행해졌습니다 이

행사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나 귀원하기 힘든 분들과 그 분들을 돕고 계시는 가족 분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행해집니다 이번 호에서

는 그 때 발췌한 신뇨 게이슈사마의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방금 신뇨 개조 교슈사마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친교를 배청했습니다 「생명은 귀한 것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뇨 게이슈사마 서교

덧셈을 해 가듯이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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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 불편한 곳이 있으시지요 그렇지만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쇼쥬신인사마께서는 「살려지는 감사를 잊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고 살려지고 있는 감사입니다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ldquo이것을 할 수 없어 들리지 않아 보이지 않아 걸을 수 없어rdquo 라고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마이너스로 생각한다면 살아있는 것이 제로(0)가 되어버립니다

제로인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나 자신은 ldquo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rdquo라고 하나씩 덧셈을 해가듯 긍정적으로 인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면 ldquo이것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rdquo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감사와 고마움이 커져갑니다

신뇨 가르침은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신뇨 가르침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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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middot신뇨엔 역사 에서는 신뇨 가르침의 발상의 땅인

오늘날의 오야소노에서 근본당우middot신쵸지의 지진제가 행

해졌던 때를 되돌아봅니다

새롭게 완성된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 정문 앞에서 앞쪽 중앙에 젊은 교슈사마의

모습이 보인다

1938년 2월 15일 열반회의 좋은 날에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뵤제이쇼와 영능투시로 지금의 발상 성지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출발의 첫걸음이 될 지진제는 교도

Ⅳ신뇨엔 역사

신쵸지의 지진제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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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마 제3회기 전날에 해당하는 6월 8일에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을 봉수하는 이 날은 30도를 넘는 전날의 날씨와는 확연히 달라 10도 정도 낮았고 더불어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 다치카와는 쌀쌀한 하루였습니다

도사를 맡은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이른 아침부터 입조각1

으로 오시어 장마철 하늘을 바라보며 지진제 거행을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슈사마는 뵤제이쇼를 보시고는 오후부터는 비가 그칠 것이라고 확신하며 성스러운 의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라노 스님은 그 흔들림 없는 각오에 감동하신 듯 교슈사마에게 법의식에 대한 진행 방식을 상세하게 교시하셨습니다

ldquo이토씨 지금이야 내가 당신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반드시 당신은 크게 되고 가르침도 천하(天下)로 퍼질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스승으로부터 구전으로 받은 것입니다만 토공신(土公神)2을 정화할 때에는 소금 속에 많은 삼

1) 교단은 발족 당시인 1936년 이른 봄부터 1938년 가을까지 「입조각」으로 알려지고 그 후 10년 동안은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로써 1948년 1월까지 활동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교슈사마는 제호사에서 진언 밀교의 수행을 익히셨다

2) 토공신(土公神)이란 일본불교 안에서 대지를 신격화한 것으로 생각되며 산스크리트명 Prithvi(드넓은 자) 또는 일본명 지천(地天)으로 알려져 있다 지천은 불교에서 십이천 중의 하나이며 석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열었을 때 땅에서 용출하여 증명한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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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신격화한 지천상(地天

像 산스크리트어로 쁘리티비

ldquo드넓은 자rdquo라는 의미) 사진은

12세기 화폭의 사진 (교토국립

박물관 소장)

베를 반 정도로 잘라 넣고 백 평3에 한 되4정도 뿌리는 것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제(地祭)에는 많은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제 아들은 아무래도 신심을 싫어하여 이 길은 나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이토씨나 당신의 제자들이 지진제를 올릴 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의 독특한 정화로 이어가 주세요rdquo

우라노 스님의 말에는 교슈사마를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여 자신이 이어 받은 법을 전부 전수하시려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스승의 정확한 지시 아래 준비는 빈틈없이 행해져 도량부지의 모서리에는 청죽(靑竹)을 세우고 금줄을 두르고 사

3) 약 330평방미터 또는 3558평방피트에 해당한다4) 약 18리터 또는 04 갤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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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결계된 땅의 중심에는 제단을 설치 공양물 술을 올려 개식(開式)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진제에 신령이 강림

오후가 되자 걱정했던 비도 뵤제이쇼에 나타난 대로 그쳤습니다 비로 정화된 땅에는 맑고 청정한 햇빛이 쏟아지고 인접한 스와 숲에 있는 나무의 신록은 더욱더 빛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은 우라노 스님의 도사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고 신뇨 교슈사마는 수기 『신뇨엔 기록』에 그 모습을 자세히 적고 계십니다

1938년 6월 8일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되었다 전부터 부탁을 드렸기에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새벽부터 입조각에 오셨다 입조각에

서 점심을 마치고 스와신사의 서쪽 옆의 건설지로 갔다 후

원자들이 모든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에 우라노 스님이 도

사를 맡아 지진제는 개시되었다 나는 식에 참석하면서 함

께 라이카로 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라노 스님은 우선 후원자와 함께 지진 원문을 올렸다 억

양을 붙이고 게다가 청년과 같은 높은 음성으로 올리자 모

두 멈칫했다 길가는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

는 나에게 ldquo저 분은 어디에서 수행하시는 행자이십니까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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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행을 쌓은 목소리네요rdquo라고 칭찬했다 성지에는 구석

구석까지 신께 바치는 술과 정화의 소금을 뿌렸다

그 사이 우라노 스님은 ldquo갑자기 어깨가 당겨지는 것 같은데

뭔가 신이 감응되는군요rdquo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ldquo호법의 제

천선신 중에 특별한 신령이라도 오셨습니까rdquo라고 묻자 아

내 토모지도 ldquo아이(유이치)를 업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문이

끝나자 저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rdquo고 말하자 우

라노 스님은 ldquo부인은 입조각에 부동님이 입불하여 온 이래

특히 『감응』이 강해졌으므로 어떤 신이 감응했을지도 모

르겠네요rdquo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모

습으로 석장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진언을 외우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드디어 토지의 중앙에서부터 미신(未申 서남쪽)5방향으로 이

끌리듯이 가다가 ldquo여기 여기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가사의

하게 우라노 스님의 발은 대지에 딱 붙어 있는 듯 했다

아내 토모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

에 서서 함께 ldquo여기예요rdquo라고 말한다 내가 그곳으로 가자

우라노 스님은 내게 ldquo이것은 부인과 관계가 있는 신이네요

부인의 친정에 법화관계로 모셔진 이나리님이 안 계십니

까rdquo라고 말하니 토모지는 ldquo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

거듭해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이 신의 계통은 이바라키의 가사

마(笠間)6계통일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바라키

5) 개조 교슈사마는 남서쪽 방위를 중국 전통의 방위체계인 지지(地支12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체계는 목성 궤도의 관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6) 동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사마 이나리 신사는 일본 3대 이나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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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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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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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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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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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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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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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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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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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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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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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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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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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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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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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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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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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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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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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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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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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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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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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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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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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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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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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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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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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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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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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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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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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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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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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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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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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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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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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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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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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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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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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4: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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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세계로 인도하시려는 깊은 뜻이 있다는 것이 분명히 설해져 있습니다

이 몸 즉 불법의 모습을 인간 세상에 나타내기 위하여 룸비니 동산에서 어머니 마야부인을 통해 태어나 동쪽으로 일곱 걸음을 걷고 「나야말로 이 세상에서 최상의 존재이다」라고 세상 사람들에게 불가사의함3을 보였다

육신으로 나타난 것도 어린 아이의 모습으로 보여준 것도 세상을 구제하기 위함이며 고난의 세상을 인도하는 도사가 되기 위한 것이다 또한 마왕 파순도 바라문도 사문4도 부처의 탄생의 깊은 뜻을 알지 못하였기에 오직 그 불가사의한 일들을 놀라워하였다

이렇게 여래성품에는 전해지고 있습니다 꽃축제를 단순히 부처님의 탄생을 축하하며 끝내지 말고

부처님께서 탄생하신 참 뜻을 깨달아 유익하고 뜻 깊게 여겨가는 것이 불제자인 우리들의 중요한 정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3) 산스크리트어 아친티아(Achintya)에서 유래된 말로 궁극의 진실인 「진여」를 말로 표현하거나 마음으로 생각할 수 없는 오묘한 이치 또는 가르침 여기에서 쇼쥬신인사마는 석가의 탄생을 부처님의 심원한 불가사의로써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4) 바라문은 힌두교 카스트제도 안에서 가장 높은 스님의 위치 사문은 수행승을 말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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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의 영조 쇼쥬신인사마 접심도량 베자이텐당 앞에서

세 가지 항아리로 비유

우리들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여래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늘 인간본위로만 즐기려고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여러 가지 괴로움과 고뇌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언에서는 「먼저 남을 위하여 행할 것 대승을 위해 행하고 이승(자신)을 위해서 행해서는 안 된다」고 나타나 있듯이 언제나 부모의 자비로운 마음을 남에게 베풀어가는 것이 부처님과 함께 기뻐하는 일이며 따라서 대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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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 행하라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한 정진을 할 때 비로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고 힘차게 정진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부처님은 이것을 세 가지 항아리로 비유해 주셨습니다 세 가지 항아리란 깨진 항아리 물이 새는 항아리 완전한 항아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신심은 어느 항아리에 해당할까요 제일 첫 번째의 깨진 항아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으려고 해도 담기지 않는 덕성이 부족한 항아리로 불선(不善)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새는 항아리는 오로지 자기본위로 자신만 구제받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찬 항아리로 모처럼 정법이라는 귀한 법을 채우려고 해도 자신만 구제받고 싶어 하는 불손한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고 전해집니다 완전한 항아리란 어떠한 항아리인가 하면 언제나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과 실천을 표현하는 것으로 남에게 전하기 위해 정법의 부처님의 법을 언제나 충족시키고 있는 항아리이며 전해주면 줄수록 부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길을 택할 지

요즘 신앙은 자유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신앙은 자유입니다 새는 항아리를 정진을 통해 완전한 항아리로 만들어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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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새고 있다는 것을 잊고 언제나 채우려고만 하여 새는 것을 막지 못해 결국 깨지는 일도 모두가 그 사람들의 마음자세에 달려 있는 것으로써 자유입니다 각자의 마음의 모습에 달려 있는 것이며 자유로운 것입니다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불성을 깨뜨리는 일 깨진 항아리에 마음이 빼앗기는 일도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의 모습을 부처님께서는 비율부증(非律不證)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결국은 자유롭지 않은 것이라고 큰 자비로써 가르쳐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새는 항아리와 같은 우리들이라면 언제나 완전한 항아리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가 새는 마음을 고쳐가고 수리하여 완전하게 갖추어가는 것 그것이 시율응증(是律應證)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을 잘 알아가는 것이 불교도로서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이 꽃축제에서 그 이치를 잘 인식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2500년 전 먼 옛날 강탄과 함께 여래의 생명은 무한하다고 나타내주신 그 참뜻을 잘 새기면서 영원히 살아계시는 여래님의 큰 참마음에 일여하여 새는 항아리가 아닌 완전한 항아리가 되도록 마음을 쓰고 궁리할 때 상락아정의 환희세계가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영언에서는 「다리로 실천하는 것 발로 정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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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부처님의 발에 절해가는 실천을 하기 때문에 명행족(明行足)5의 여래님을 알게 됩니다」라고 마음과 실천의 모습을 명확히 가르쳐 주십니다 상쾌한 봄에 단단히 실천의 발을 내디뎌 부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갑시다

5) (산스크리트어 vidya-carana-sampanna) 지혜와 실천의 양면이 완전한 존재라는 것 여래 십호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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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2일 응현원에서 만남의 축제가 행해졌습니다 이

행사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나 귀원하기 힘든 분들과 그 분들을 돕고 계시는 가족 분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행해집니다 이번 호에서

는 그 때 발췌한 신뇨 게이슈사마의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방금 신뇨 개조 교슈사마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친교를 배청했습니다 「생명은 귀한 것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뇨 게이슈사마 서교

덧셈을 해 가듯이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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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 불편한 곳이 있으시지요 그렇지만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쇼쥬신인사마께서는 「살려지는 감사를 잊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고 살려지고 있는 감사입니다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ldquo이것을 할 수 없어 들리지 않아 보이지 않아 걸을 수 없어rdquo 라고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마이너스로 생각한다면 살아있는 것이 제로(0)가 되어버립니다

제로인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나 자신은 ldquo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rdquo라고 하나씩 덧셈을 해가듯 긍정적으로 인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면 ldquo이것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rdquo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감사와 고마움이 커져갑니다

신뇨 가르침은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신뇨 가르침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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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middot신뇨엔 역사 에서는 신뇨 가르침의 발상의 땅인

오늘날의 오야소노에서 근본당우middot신쵸지의 지진제가 행

해졌던 때를 되돌아봅니다

새롭게 완성된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 정문 앞에서 앞쪽 중앙에 젊은 교슈사마의

모습이 보인다

1938년 2월 15일 열반회의 좋은 날에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뵤제이쇼와 영능투시로 지금의 발상 성지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출발의 첫걸음이 될 지진제는 교도

Ⅳ신뇨엔 역사

신쵸지의 지진제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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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마 제3회기 전날에 해당하는 6월 8일에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을 봉수하는 이 날은 30도를 넘는 전날의 날씨와는 확연히 달라 10도 정도 낮았고 더불어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 다치카와는 쌀쌀한 하루였습니다

도사를 맡은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이른 아침부터 입조각1

으로 오시어 장마철 하늘을 바라보며 지진제 거행을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슈사마는 뵤제이쇼를 보시고는 오후부터는 비가 그칠 것이라고 확신하며 성스러운 의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라노 스님은 그 흔들림 없는 각오에 감동하신 듯 교슈사마에게 법의식에 대한 진행 방식을 상세하게 교시하셨습니다

ldquo이토씨 지금이야 내가 당신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반드시 당신은 크게 되고 가르침도 천하(天下)로 퍼질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스승으로부터 구전으로 받은 것입니다만 토공신(土公神)2을 정화할 때에는 소금 속에 많은 삼

1) 교단은 발족 당시인 1936년 이른 봄부터 1938년 가을까지 「입조각」으로 알려지고 그 후 10년 동안은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로써 1948년 1월까지 활동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교슈사마는 제호사에서 진언 밀교의 수행을 익히셨다

2) 토공신(土公神)이란 일본불교 안에서 대지를 신격화한 것으로 생각되며 산스크리트명 Prithvi(드넓은 자) 또는 일본명 지천(地天)으로 알려져 있다 지천은 불교에서 십이천 중의 하나이며 석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열었을 때 땅에서 용출하여 증명한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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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신격화한 지천상(地天

像 산스크리트어로 쁘리티비

ldquo드넓은 자rdquo라는 의미) 사진은

12세기 화폭의 사진 (교토국립

박물관 소장)

베를 반 정도로 잘라 넣고 백 평3에 한 되4정도 뿌리는 것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제(地祭)에는 많은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제 아들은 아무래도 신심을 싫어하여 이 길은 나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이토씨나 당신의 제자들이 지진제를 올릴 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의 독특한 정화로 이어가 주세요rdquo

우라노 스님의 말에는 교슈사마를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여 자신이 이어 받은 법을 전부 전수하시려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스승의 정확한 지시 아래 준비는 빈틈없이 행해져 도량부지의 모서리에는 청죽(靑竹)을 세우고 금줄을 두르고 사

3) 약 330평방미터 또는 3558평방피트에 해당한다4) 약 18리터 또는 04 갤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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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결계된 땅의 중심에는 제단을 설치 공양물 술을 올려 개식(開式)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진제에 신령이 강림

오후가 되자 걱정했던 비도 뵤제이쇼에 나타난 대로 그쳤습니다 비로 정화된 땅에는 맑고 청정한 햇빛이 쏟아지고 인접한 스와 숲에 있는 나무의 신록은 더욱더 빛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은 우라노 스님의 도사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고 신뇨 교슈사마는 수기 『신뇨엔 기록』에 그 모습을 자세히 적고 계십니다

1938년 6월 8일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되었다 전부터 부탁을 드렸기에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새벽부터 입조각에 오셨다 입조각에

서 점심을 마치고 스와신사의 서쪽 옆의 건설지로 갔다 후

원자들이 모든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에 우라노 스님이 도

사를 맡아 지진제는 개시되었다 나는 식에 참석하면서 함

께 라이카로 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라노 스님은 우선 후원자와 함께 지진 원문을 올렸다 억

양을 붙이고 게다가 청년과 같은 높은 음성으로 올리자 모

두 멈칫했다 길가는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

는 나에게 ldquo저 분은 어디에서 수행하시는 행자이십니까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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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행을 쌓은 목소리네요rdquo라고 칭찬했다 성지에는 구석

구석까지 신께 바치는 술과 정화의 소금을 뿌렸다

그 사이 우라노 스님은 ldquo갑자기 어깨가 당겨지는 것 같은데

뭔가 신이 감응되는군요rdquo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ldquo호법의 제

천선신 중에 특별한 신령이라도 오셨습니까rdquo라고 묻자 아

내 토모지도 ldquo아이(유이치)를 업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문이

끝나자 저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rdquo고 말하자 우

라노 스님은 ldquo부인은 입조각에 부동님이 입불하여 온 이래

특히 『감응』이 강해졌으므로 어떤 신이 감응했을지도 모

르겠네요rdquo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모

습으로 석장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진언을 외우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드디어 토지의 중앙에서부터 미신(未申 서남쪽)5방향으로 이

끌리듯이 가다가 ldquo여기 여기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가사의

하게 우라노 스님의 발은 대지에 딱 붙어 있는 듯 했다

아내 토모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

에 서서 함께 ldquo여기예요rdquo라고 말한다 내가 그곳으로 가자

우라노 스님은 내게 ldquo이것은 부인과 관계가 있는 신이네요

부인의 친정에 법화관계로 모셔진 이나리님이 안 계십니

까rdquo라고 말하니 토모지는 ldquo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

거듭해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이 신의 계통은 이바라키의 가사

마(笠間)6계통일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바라키

5) 개조 교슈사마는 남서쪽 방위를 중국 전통의 방위체계인 지지(地支12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체계는 목성 궤도의 관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6) 동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사마 이나리 신사는 일본 3대 이나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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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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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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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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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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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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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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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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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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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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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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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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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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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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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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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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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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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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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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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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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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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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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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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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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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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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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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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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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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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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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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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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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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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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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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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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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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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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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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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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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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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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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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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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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5: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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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후반의 영조 쇼쥬신인사마 접심도량 베자이텐당 앞에서

세 가지 항아리로 비유

우리들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여래를 깨닫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늘 인간본위로만 즐기려고 하는 생각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거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기에 여러 가지 괴로움과 고뇌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언에서는 「먼저 남을 위하여 행할 것 대승을 위해 행하고 이승(자신)을 위해서 행해서는 안 된다」고 나타나 있듯이 언제나 부모의 자비로운 마음을 남에게 베풀어가는 것이 부처님과 함께 기뻐하는 일이며 따라서 대승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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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 행하라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한 정진을 할 때 비로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고 힘차게 정진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부처님은 이것을 세 가지 항아리로 비유해 주셨습니다 세 가지 항아리란 깨진 항아리 물이 새는 항아리 완전한 항아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신심은 어느 항아리에 해당할까요 제일 첫 번째의 깨진 항아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으려고 해도 담기지 않는 덕성이 부족한 항아리로 불선(不善)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새는 항아리는 오로지 자기본위로 자신만 구제받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찬 항아리로 모처럼 정법이라는 귀한 법을 채우려고 해도 자신만 구제받고 싶어 하는 불손한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고 전해집니다 완전한 항아리란 어떠한 항아리인가 하면 언제나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과 실천을 표현하는 것으로 남에게 전하기 위해 정법의 부처님의 법을 언제나 충족시키고 있는 항아리이며 전해주면 줄수록 부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길을 택할 지

요즘 신앙은 자유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신앙은 자유입니다 새는 항아리를 정진을 통해 완전한 항아리로 만들어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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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새고 있다는 것을 잊고 언제나 채우려고만 하여 새는 것을 막지 못해 결국 깨지는 일도 모두가 그 사람들의 마음자세에 달려 있는 것으로써 자유입니다 각자의 마음의 모습에 달려 있는 것이며 자유로운 것입니다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불성을 깨뜨리는 일 깨진 항아리에 마음이 빼앗기는 일도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의 모습을 부처님께서는 비율부증(非律不證)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결국은 자유롭지 않은 것이라고 큰 자비로써 가르쳐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새는 항아리와 같은 우리들이라면 언제나 완전한 항아리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가 새는 마음을 고쳐가고 수리하여 완전하게 갖추어가는 것 그것이 시율응증(是律應證)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을 잘 알아가는 것이 불교도로서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이 꽃축제에서 그 이치를 잘 인식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2500년 전 먼 옛날 강탄과 함께 여래의 생명은 무한하다고 나타내주신 그 참뜻을 잘 새기면서 영원히 살아계시는 여래님의 큰 참마음에 일여하여 새는 항아리가 아닌 완전한 항아리가 되도록 마음을 쓰고 궁리할 때 상락아정의 환희세계가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영언에서는 「다리로 실천하는 것 발로 정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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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부처님의 발에 절해가는 실천을 하기 때문에 명행족(明行足)5의 여래님을 알게 됩니다」라고 마음과 실천의 모습을 명확히 가르쳐 주십니다 상쾌한 봄에 단단히 실천의 발을 내디뎌 부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갑시다

5) (산스크리트어 vidya-carana-sampanna) 지혜와 실천의 양면이 완전한 존재라는 것 여래 십호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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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2일 응현원에서 만남의 축제가 행해졌습니다 이

행사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나 귀원하기 힘든 분들과 그 분들을 돕고 계시는 가족 분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행해집니다 이번 호에서

는 그 때 발췌한 신뇨 게이슈사마의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방금 신뇨 개조 교슈사마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친교를 배청했습니다 「생명은 귀한 것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뇨 게이슈사마 서교

덧셈을 해 가듯이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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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 불편한 곳이 있으시지요 그렇지만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쇼쥬신인사마께서는 「살려지는 감사를 잊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고 살려지고 있는 감사입니다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ldquo이것을 할 수 없어 들리지 않아 보이지 않아 걸을 수 없어rdquo 라고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마이너스로 생각한다면 살아있는 것이 제로(0)가 되어버립니다

제로인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나 자신은 ldquo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rdquo라고 하나씩 덧셈을 해가듯 긍정적으로 인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면 ldquo이것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rdquo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감사와 고마움이 커져갑니다

신뇨 가르침은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신뇨 가르침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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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middot신뇨엔 역사 에서는 신뇨 가르침의 발상의 땅인

오늘날의 오야소노에서 근본당우middot신쵸지의 지진제가 행

해졌던 때를 되돌아봅니다

새롭게 완성된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 정문 앞에서 앞쪽 중앙에 젊은 교슈사마의

모습이 보인다

1938년 2월 15일 열반회의 좋은 날에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뵤제이쇼와 영능투시로 지금의 발상 성지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출발의 첫걸음이 될 지진제는 교도

Ⅳ신뇨엔 역사

신쵸지의 지진제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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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마 제3회기 전날에 해당하는 6월 8일에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을 봉수하는 이 날은 30도를 넘는 전날의 날씨와는 확연히 달라 10도 정도 낮았고 더불어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 다치카와는 쌀쌀한 하루였습니다

도사를 맡은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이른 아침부터 입조각1

으로 오시어 장마철 하늘을 바라보며 지진제 거행을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슈사마는 뵤제이쇼를 보시고는 오후부터는 비가 그칠 것이라고 확신하며 성스러운 의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라노 스님은 그 흔들림 없는 각오에 감동하신 듯 교슈사마에게 법의식에 대한 진행 방식을 상세하게 교시하셨습니다

ldquo이토씨 지금이야 내가 당신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반드시 당신은 크게 되고 가르침도 천하(天下)로 퍼질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스승으로부터 구전으로 받은 것입니다만 토공신(土公神)2을 정화할 때에는 소금 속에 많은 삼

1) 교단은 발족 당시인 1936년 이른 봄부터 1938년 가을까지 「입조각」으로 알려지고 그 후 10년 동안은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로써 1948년 1월까지 활동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교슈사마는 제호사에서 진언 밀교의 수행을 익히셨다

2) 토공신(土公神)이란 일본불교 안에서 대지를 신격화한 것으로 생각되며 산스크리트명 Prithvi(드넓은 자) 또는 일본명 지천(地天)으로 알려져 있다 지천은 불교에서 십이천 중의 하나이며 석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열었을 때 땅에서 용출하여 증명한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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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신격화한 지천상(地天

像 산스크리트어로 쁘리티비

ldquo드넓은 자rdquo라는 의미) 사진은

12세기 화폭의 사진 (교토국립

박물관 소장)

베를 반 정도로 잘라 넣고 백 평3에 한 되4정도 뿌리는 것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제(地祭)에는 많은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제 아들은 아무래도 신심을 싫어하여 이 길은 나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이토씨나 당신의 제자들이 지진제를 올릴 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의 독특한 정화로 이어가 주세요rdquo

우라노 스님의 말에는 교슈사마를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여 자신이 이어 받은 법을 전부 전수하시려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스승의 정확한 지시 아래 준비는 빈틈없이 행해져 도량부지의 모서리에는 청죽(靑竹)을 세우고 금줄을 두르고 사

3) 약 330평방미터 또는 3558평방피트에 해당한다4) 약 18리터 또는 04 갤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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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결계된 땅의 중심에는 제단을 설치 공양물 술을 올려 개식(開式)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진제에 신령이 강림

오후가 되자 걱정했던 비도 뵤제이쇼에 나타난 대로 그쳤습니다 비로 정화된 땅에는 맑고 청정한 햇빛이 쏟아지고 인접한 스와 숲에 있는 나무의 신록은 더욱더 빛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은 우라노 스님의 도사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고 신뇨 교슈사마는 수기 『신뇨엔 기록』에 그 모습을 자세히 적고 계십니다

1938년 6월 8일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되었다 전부터 부탁을 드렸기에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새벽부터 입조각에 오셨다 입조각에

서 점심을 마치고 스와신사의 서쪽 옆의 건설지로 갔다 후

원자들이 모든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에 우라노 스님이 도

사를 맡아 지진제는 개시되었다 나는 식에 참석하면서 함

께 라이카로 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라노 스님은 우선 후원자와 함께 지진 원문을 올렸다 억

양을 붙이고 게다가 청년과 같은 높은 음성으로 올리자 모

두 멈칫했다 길가는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

는 나에게 ldquo저 분은 어디에서 수행하시는 행자이십니까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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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행을 쌓은 목소리네요rdquo라고 칭찬했다 성지에는 구석

구석까지 신께 바치는 술과 정화의 소금을 뿌렸다

그 사이 우라노 스님은 ldquo갑자기 어깨가 당겨지는 것 같은데

뭔가 신이 감응되는군요rdquo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ldquo호법의 제

천선신 중에 특별한 신령이라도 오셨습니까rdquo라고 묻자 아

내 토모지도 ldquo아이(유이치)를 업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문이

끝나자 저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rdquo고 말하자 우

라노 스님은 ldquo부인은 입조각에 부동님이 입불하여 온 이래

특히 『감응』이 강해졌으므로 어떤 신이 감응했을지도 모

르겠네요rdquo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모

습으로 석장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진언을 외우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드디어 토지의 중앙에서부터 미신(未申 서남쪽)5방향으로 이

끌리듯이 가다가 ldquo여기 여기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가사의

하게 우라노 스님의 발은 대지에 딱 붙어 있는 듯 했다

아내 토모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

에 서서 함께 ldquo여기예요rdquo라고 말한다 내가 그곳으로 가자

우라노 스님은 내게 ldquo이것은 부인과 관계가 있는 신이네요

부인의 친정에 법화관계로 모셔진 이나리님이 안 계십니

까rdquo라고 말하니 토모지는 ldquo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

거듭해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이 신의 계통은 이바라키의 가사

마(笠間)6계통일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바라키

5) 개조 교슈사마는 남서쪽 방위를 중국 전통의 방위체계인 지지(地支12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체계는 목성 궤도의 관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6) 동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사마 이나리 신사는 일본 3대 이나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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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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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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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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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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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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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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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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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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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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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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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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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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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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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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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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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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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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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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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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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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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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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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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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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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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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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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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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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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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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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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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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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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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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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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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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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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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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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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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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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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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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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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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6: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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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해 행하라는 말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러한 정진을 할 때 비로소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알게 되고 힘차게 정진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요

부처님은 이것을 세 가지 항아리로 비유해 주셨습니다 세 가지 항아리란 깨진 항아리 물이 새는 항아리 완전한 항아리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신심은 어느 항아리에 해당할까요 제일 첫 번째의 깨진 항아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으려고 해도 담기지 않는 덕성이 부족한 항아리로 불선(不善)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두 번째로 새는 항아리는 오로지 자기본위로 자신만 구제받겠다는 욕심으로 가득 찬 항아리로 모처럼 정법이라는 귀한 법을 채우려고 해도 자신만 구제받고 싶어 하는 불손한 마음이 포함되어 있다고 전해집니다 완전한 항아리란 어떠한 항아리인가 하면 언제나 자식을 생각하는 부모의 마음과 실천을 표현하는 것으로 남에게 전하기 위해 정법의 부처님의 법을 언제나 충족시키고 있는 항아리이며 전해주면 줄수록 부처님께서 채워주신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길을 택할 지

요즘 신앙은 자유라고 말합니다 분명히 신앙은 자유입니다 새는 항아리를 정진을 통해 완전한 항아리로 만들어 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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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새고 있다는 것을 잊고 언제나 채우려고만 하여 새는 것을 막지 못해 결국 깨지는 일도 모두가 그 사람들의 마음자세에 달려 있는 것으로써 자유입니다 각자의 마음의 모습에 달려 있는 것이며 자유로운 것입니다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불성을 깨뜨리는 일 깨진 항아리에 마음이 빼앗기는 일도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의 모습을 부처님께서는 비율부증(非律不證)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결국은 자유롭지 않은 것이라고 큰 자비로써 가르쳐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새는 항아리와 같은 우리들이라면 언제나 완전한 항아리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가 새는 마음을 고쳐가고 수리하여 완전하게 갖추어가는 것 그것이 시율응증(是律應證)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을 잘 알아가는 것이 불교도로서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이 꽃축제에서 그 이치를 잘 인식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2500년 전 먼 옛날 강탄과 함께 여래의 생명은 무한하다고 나타내주신 그 참뜻을 잘 새기면서 영원히 살아계시는 여래님의 큰 참마음에 일여하여 새는 항아리가 아닌 완전한 항아리가 되도록 마음을 쓰고 궁리할 때 상락아정의 환희세계가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영언에서는 「다리로 실천하는 것 발로 정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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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부처님의 발에 절해가는 실천을 하기 때문에 명행족(明行足)5의 여래님을 알게 됩니다」라고 마음과 실천의 모습을 명확히 가르쳐 주십니다 상쾌한 봄에 단단히 실천의 발을 내디뎌 부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갑시다

5) (산스크리트어 vidya-carana-sampanna) 지혜와 실천의 양면이 완전한 존재라는 것 여래 십호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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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2일 응현원에서 만남의 축제가 행해졌습니다 이

행사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나 귀원하기 힘든 분들과 그 분들을 돕고 계시는 가족 분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행해집니다 이번 호에서

는 그 때 발췌한 신뇨 게이슈사마의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방금 신뇨 개조 교슈사마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친교를 배청했습니다 「생명은 귀한 것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뇨 게이슈사마 서교

덧셈을 해 가듯이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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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 불편한 곳이 있으시지요 그렇지만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쇼쥬신인사마께서는 「살려지는 감사를 잊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고 살려지고 있는 감사입니다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ldquo이것을 할 수 없어 들리지 않아 보이지 않아 걸을 수 없어rdquo 라고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마이너스로 생각한다면 살아있는 것이 제로(0)가 되어버립니다

제로인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나 자신은 ldquo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rdquo라고 하나씩 덧셈을 해가듯 긍정적으로 인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면 ldquo이것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rdquo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감사와 고마움이 커져갑니다

신뇨 가르침은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신뇨 가르침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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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middot신뇨엔 역사 에서는 신뇨 가르침의 발상의 땅인

오늘날의 오야소노에서 근본당우middot신쵸지의 지진제가 행

해졌던 때를 되돌아봅니다

새롭게 완성된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 정문 앞에서 앞쪽 중앙에 젊은 교슈사마의

모습이 보인다

1938년 2월 15일 열반회의 좋은 날에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뵤제이쇼와 영능투시로 지금의 발상 성지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출발의 첫걸음이 될 지진제는 교도

Ⅳ신뇨엔 역사

신쵸지의 지진제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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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마 제3회기 전날에 해당하는 6월 8일에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을 봉수하는 이 날은 30도를 넘는 전날의 날씨와는 확연히 달라 10도 정도 낮았고 더불어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 다치카와는 쌀쌀한 하루였습니다

도사를 맡은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이른 아침부터 입조각1

으로 오시어 장마철 하늘을 바라보며 지진제 거행을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슈사마는 뵤제이쇼를 보시고는 오후부터는 비가 그칠 것이라고 확신하며 성스러운 의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라노 스님은 그 흔들림 없는 각오에 감동하신 듯 교슈사마에게 법의식에 대한 진행 방식을 상세하게 교시하셨습니다

ldquo이토씨 지금이야 내가 당신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반드시 당신은 크게 되고 가르침도 천하(天下)로 퍼질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스승으로부터 구전으로 받은 것입니다만 토공신(土公神)2을 정화할 때에는 소금 속에 많은 삼

1) 교단은 발족 당시인 1936년 이른 봄부터 1938년 가을까지 「입조각」으로 알려지고 그 후 10년 동안은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로써 1948년 1월까지 활동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교슈사마는 제호사에서 진언 밀교의 수행을 익히셨다

2) 토공신(土公神)이란 일본불교 안에서 대지를 신격화한 것으로 생각되며 산스크리트명 Prithvi(드넓은 자) 또는 일본명 지천(地天)으로 알려져 있다 지천은 불교에서 십이천 중의 하나이며 석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열었을 때 땅에서 용출하여 증명한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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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신격화한 지천상(地天

像 산스크리트어로 쁘리티비

ldquo드넓은 자rdquo라는 의미) 사진은

12세기 화폭의 사진 (교토국립

박물관 소장)

베를 반 정도로 잘라 넣고 백 평3에 한 되4정도 뿌리는 것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제(地祭)에는 많은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제 아들은 아무래도 신심을 싫어하여 이 길은 나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이토씨나 당신의 제자들이 지진제를 올릴 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의 독특한 정화로 이어가 주세요rdquo

우라노 스님의 말에는 교슈사마를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여 자신이 이어 받은 법을 전부 전수하시려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스승의 정확한 지시 아래 준비는 빈틈없이 행해져 도량부지의 모서리에는 청죽(靑竹)을 세우고 금줄을 두르고 사

3) 약 330평방미터 또는 3558평방피트에 해당한다4) 약 18리터 또는 04 갤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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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결계된 땅의 중심에는 제단을 설치 공양물 술을 올려 개식(開式)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진제에 신령이 강림

오후가 되자 걱정했던 비도 뵤제이쇼에 나타난 대로 그쳤습니다 비로 정화된 땅에는 맑고 청정한 햇빛이 쏟아지고 인접한 스와 숲에 있는 나무의 신록은 더욱더 빛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은 우라노 스님의 도사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고 신뇨 교슈사마는 수기 『신뇨엔 기록』에 그 모습을 자세히 적고 계십니다

1938년 6월 8일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되었다 전부터 부탁을 드렸기에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새벽부터 입조각에 오셨다 입조각에

서 점심을 마치고 스와신사의 서쪽 옆의 건설지로 갔다 후

원자들이 모든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에 우라노 스님이 도

사를 맡아 지진제는 개시되었다 나는 식에 참석하면서 함

께 라이카로 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라노 스님은 우선 후원자와 함께 지진 원문을 올렸다 억

양을 붙이고 게다가 청년과 같은 높은 음성으로 올리자 모

두 멈칫했다 길가는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

는 나에게 ldquo저 분은 어디에서 수행하시는 행자이십니까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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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행을 쌓은 목소리네요rdquo라고 칭찬했다 성지에는 구석

구석까지 신께 바치는 술과 정화의 소금을 뿌렸다

그 사이 우라노 스님은 ldquo갑자기 어깨가 당겨지는 것 같은데

뭔가 신이 감응되는군요rdquo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ldquo호법의 제

천선신 중에 특별한 신령이라도 오셨습니까rdquo라고 묻자 아

내 토모지도 ldquo아이(유이치)를 업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문이

끝나자 저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rdquo고 말하자 우

라노 스님은 ldquo부인은 입조각에 부동님이 입불하여 온 이래

특히 『감응』이 강해졌으므로 어떤 신이 감응했을지도 모

르겠네요rdquo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모

습으로 석장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진언을 외우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드디어 토지의 중앙에서부터 미신(未申 서남쪽)5방향으로 이

끌리듯이 가다가 ldquo여기 여기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가사의

하게 우라노 스님의 발은 대지에 딱 붙어 있는 듯 했다

아내 토모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

에 서서 함께 ldquo여기예요rdquo라고 말한다 내가 그곳으로 가자

우라노 스님은 내게 ldquo이것은 부인과 관계가 있는 신이네요

부인의 친정에 법화관계로 모셔진 이나리님이 안 계십니

까rdquo라고 말하니 토모지는 ldquo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

거듭해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이 신의 계통은 이바라키의 가사

마(笠間)6계통일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바라키

5) 개조 교슈사마는 남서쪽 방위를 중국 전통의 방위체계인 지지(地支12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체계는 목성 궤도의 관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6) 동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사마 이나리 신사는 일본 3대 이나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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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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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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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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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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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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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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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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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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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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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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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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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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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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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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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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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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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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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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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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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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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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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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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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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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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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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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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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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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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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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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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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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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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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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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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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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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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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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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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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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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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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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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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7: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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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도 새고 있다는 것을 잊고 언제나 채우려고만 하여 새는 것을 막지 못해 결국 깨지는 일도 모두가 그 사람들의 마음자세에 달려 있는 것으로써 자유입니다 각자의 마음의 모습에 달려 있는 것이며 자유로운 것입니다 눈앞의 일에만 사로잡혀 불성을 깨뜨리는 일 깨진 항아리에 마음이 빼앗기는 일도 자유입니다 그렇지만 그 마음의 모습을 부처님께서는 비율부증(非律不證)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자유로워 보이지만 진정한 자유가 아니며 결국은 자유롭지 않은 것이라고 큰 자비로써 가르쳐 주신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새는 항아리와 같은 우리들이라면 언제나 완전한 항아리가 될 수 있도록 스스로가 새는 마음을 고쳐가고 수리하여 완전하게 갖추어가는 것 그것이 시율응증(是律應證)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그것을 잘 알아가는 것이 불교도로서의 진정한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이 꽃축제에서 그 이치를 잘 인식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2500년 전 먼 옛날 강탄과 함께 여래의 생명은 무한하다고 나타내주신 그 참뜻을 잘 새기면서 영원히 살아계시는 여래님의 큰 참마음에 일여하여 새는 항아리가 아닌 완전한 항아리가 되도록 마음을 쓰고 궁리할 때 상락아정의 환희세계가 열린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영언에서는 「다리로 실천하는 것 발로 정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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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부처님의 발에 절해가는 실천을 하기 때문에 명행족(明行足)5의 여래님을 알게 됩니다」라고 마음과 실천의 모습을 명확히 가르쳐 주십니다 상쾌한 봄에 단단히 실천의 발을 내디뎌 부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갑시다

5) (산스크리트어 vidya-carana-sampanna) 지혜와 실천의 양면이 완전한 존재라는 것 여래 십호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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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2일 응현원에서 만남의 축제가 행해졌습니다 이

행사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나 귀원하기 힘든 분들과 그 분들을 돕고 계시는 가족 분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행해집니다 이번 호에서

는 그 때 발췌한 신뇨 게이슈사마의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방금 신뇨 개조 교슈사마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친교를 배청했습니다 「생명은 귀한 것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뇨 게이슈사마 서교

덧셈을 해 가듯이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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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 불편한 곳이 있으시지요 그렇지만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쇼쥬신인사마께서는 「살려지는 감사를 잊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고 살려지고 있는 감사입니다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ldquo이것을 할 수 없어 들리지 않아 보이지 않아 걸을 수 없어rdquo 라고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마이너스로 생각한다면 살아있는 것이 제로(0)가 되어버립니다

제로인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나 자신은 ldquo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rdquo라고 하나씩 덧셈을 해가듯 긍정적으로 인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면 ldquo이것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rdquo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감사와 고마움이 커져갑니다

신뇨 가르침은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신뇨 가르침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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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middot신뇨엔 역사 에서는 신뇨 가르침의 발상의 땅인

오늘날의 오야소노에서 근본당우middot신쵸지의 지진제가 행

해졌던 때를 되돌아봅니다

새롭게 완성된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 정문 앞에서 앞쪽 중앙에 젊은 교슈사마의

모습이 보인다

1938년 2월 15일 열반회의 좋은 날에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뵤제이쇼와 영능투시로 지금의 발상 성지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출발의 첫걸음이 될 지진제는 교도

Ⅳ신뇨엔 역사

신쵸지의 지진제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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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마 제3회기 전날에 해당하는 6월 8일에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을 봉수하는 이 날은 30도를 넘는 전날의 날씨와는 확연히 달라 10도 정도 낮았고 더불어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 다치카와는 쌀쌀한 하루였습니다

도사를 맡은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이른 아침부터 입조각1

으로 오시어 장마철 하늘을 바라보며 지진제 거행을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슈사마는 뵤제이쇼를 보시고는 오후부터는 비가 그칠 것이라고 확신하며 성스러운 의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라노 스님은 그 흔들림 없는 각오에 감동하신 듯 교슈사마에게 법의식에 대한 진행 방식을 상세하게 교시하셨습니다

ldquo이토씨 지금이야 내가 당신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반드시 당신은 크게 되고 가르침도 천하(天下)로 퍼질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스승으로부터 구전으로 받은 것입니다만 토공신(土公神)2을 정화할 때에는 소금 속에 많은 삼

1) 교단은 발족 당시인 1936년 이른 봄부터 1938년 가을까지 「입조각」으로 알려지고 그 후 10년 동안은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로써 1948년 1월까지 활동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교슈사마는 제호사에서 진언 밀교의 수행을 익히셨다

2) 토공신(土公神)이란 일본불교 안에서 대지를 신격화한 것으로 생각되며 산스크리트명 Prithvi(드넓은 자) 또는 일본명 지천(地天)으로 알려져 있다 지천은 불교에서 십이천 중의 하나이며 석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열었을 때 땅에서 용출하여 증명한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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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신격화한 지천상(地天

像 산스크리트어로 쁘리티비

ldquo드넓은 자rdquo라는 의미) 사진은

12세기 화폭의 사진 (교토국립

박물관 소장)

베를 반 정도로 잘라 넣고 백 평3에 한 되4정도 뿌리는 것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제(地祭)에는 많은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제 아들은 아무래도 신심을 싫어하여 이 길은 나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이토씨나 당신의 제자들이 지진제를 올릴 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의 독특한 정화로 이어가 주세요rdquo

우라노 스님의 말에는 교슈사마를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여 자신이 이어 받은 법을 전부 전수하시려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스승의 정확한 지시 아래 준비는 빈틈없이 행해져 도량부지의 모서리에는 청죽(靑竹)을 세우고 금줄을 두르고 사

3) 약 330평방미터 또는 3558평방피트에 해당한다4) 약 18리터 또는 04 갤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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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결계된 땅의 중심에는 제단을 설치 공양물 술을 올려 개식(開式)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진제에 신령이 강림

오후가 되자 걱정했던 비도 뵤제이쇼에 나타난 대로 그쳤습니다 비로 정화된 땅에는 맑고 청정한 햇빛이 쏟아지고 인접한 스와 숲에 있는 나무의 신록은 더욱더 빛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은 우라노 스님의 도사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고 신뇨 교슈사마는 수기 『신뇨엔 기록』에 그 모습을 자세히 적고 계십니다

1938년 6월 8일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되었다 전부터 부탁을 드렸기에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새벽부터 입조각에 오셨다 입조각에

서 점심을 마치고 스와신사의 서쪽 옆의 건설지로 갔다 후

원자들이 모든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에 우라노 스님이 도

사를 맡아 지진제는 개시되었다 나는 식에 참석하면서 함

께 라이카로 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라노 스님은 우선 후원자와 함께 지진 원문을 올렸다 억

양을 붙이고 게다가 청년과 같은 높은 음성으로 올리자 모

두 멈칫했다 길가는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

는 나에게 ldquo저 분은 어디에서 수행하시는 행자이십니까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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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행을 쌓은 목소리네요rdquo라고 칭찬했다 성지에는 구석

구석까지 신께 바치는 술과 정화의 소금을 뿌렸다

그 사이 우라노 스님은 ldquo갑자기 어깨가 당겨지는 것 같은데

뭔가 신이 감응되는군요rdquo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ldquo호법의 제

천선신 중에 특별한 신령이라도 오셨습니까rdquo라고 묻자 아

내 토모지도 ldquo아이(유이치)를 업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문이

끝나자 저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rdquo고 말하자 우

라노 스님은 ldquo부인은 입조각에 부동님이 입불하여 온 이래

특히 『감응』이 강해졌으므로 어떤 신이 감응했을지도 모

르겠네요rdquo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모

습으로 석장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진언을 외우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드디어 토지의 중앙에서부터 미신(未申 서남쪽)5방향으로 이

끌리듯이 가다가 ldquo여기 여기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가사의

하게 우라노 스님의 발은 대지에 딱 붙어 있는 듯 했다

아내 토모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

에 서서 함께 ldquo여기예요rdquo라고 말한다 내가 그곳으로 가자

우라노 스님은 내게 ldquo이것은 부인과 관계가 있는 신이네요

부인의 친정에 법화관계로 모셔진 이나리님이 안 계십니

까rdquo라고 말하니 토모지는 ldquo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

거듭해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이 신의 계통은 이바라키의 가사

마(笠間)6계통일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바라키

5) 개조 교슈사마는 남서쪽 방위를 중국 전통의 방위체계인 지지(地支12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체계는 목성 궤도의 관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6) 동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사마 이나리 신사는 일본 3대 이나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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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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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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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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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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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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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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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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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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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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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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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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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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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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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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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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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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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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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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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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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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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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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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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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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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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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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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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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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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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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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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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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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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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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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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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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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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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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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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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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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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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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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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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8: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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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 부처님의 발에 절해가는 실천을 하기 때문에 명행족(明行足)5의 여래님을 알게 됩니다」라고 마음과 실천의 모습을 명확히 가르쳐 주십니다 상쾌한 봄에 단단히 실천의 발을 내디뎌 부처님의 발자취를 더듬어 갑시다

5) (산스크리트어 vidya-carana-sampanna) 지혜와 실천의 양면이 완전한 존재라는 것 여래 십호의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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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2일 응현원에서 만남의 축제가 행해졌습니다 이

행사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나 귀원하기 힘든 분들과 그 분들을 돕고 계시는 가족 분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행해집니다 이번 호에서

는 그 때 발췌한 신뇨 게이슈사마의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방금 신뇨 개조 교슈사마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친교를 배청했습니다 「생명은 귀한 것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뇨 게이슈사마 서교

덧셈을 해 가듯이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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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 불편한 곳이 있으시지요 그렇지만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쇼쥬신인사마께서는 「살려지는 감사를 잊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고 살려지고 있는 감사입니다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ldquo이것을 할 수 없어 들리지 않아 보이지 않아 걸을 수 없어rdquo 라고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마이너스로 생각한다면 살아있는 것이 제로(0)가 되어버립니다

제로인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나 자신은 ldquo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rdquo라고 하나씩 덧셈을 해가듯 긍정적으로 인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면 ldquo이것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rdquo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감사와 고마움이 커져갑니다

신뇨 가르침은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신뇨 가르침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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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middot신뇨엔 역사 에서는 신뇨 가르침의 발상의 땅인

오늘날의 오야소노에서 근본당우middot신쵸지의 지진제가 행

해졌던 때를 되돌아봅니다

새롭게 완성된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 정문 앞에서 앞쪽 중앙에 젊은 교슈사마의

모습이 보인다

1938년 2월 15일 열반회의 좋은 날에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뵤제이쇼와 영능투시로 지금의 발상 성지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출발의 첫걸음이 될 지진제는 교도

Ⅳ신뇨엔 역사

신쵸지의 지진제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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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마 제3회기 전날에 해당하는 6월 8일에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을 봉수하는 이 날은 30도를 넘는 전날의 날씨와는 확연히 달라 10도 정도 낮았고 더불어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 다치카와는 쌀쌀한 하루였습니다

도사를 맡은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이른 아침부터 입조각1

으로 오시어 장마철 하늘을 바라보며 지진제 거행을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슈사마는 뵤제이쇼를 보시고는 오후부터는 비가 그칠 것이라고 확신하며 성스러운 의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라노 스님은 그 흔들림 없는 각오에 감동하신 듯 교슈사마에게 법의식에 대한 진행 방식을 상세하게 교시하셨습니다

ldquo이토씨 지금이야 내가 당신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반드시 당신은 크게 되고 가르침도 천하(天下)로 퍼질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스승으로부터 구전으로 받은 것입니다만 토공신(土公神)2을 정화할 때에는 소금 속에 많은 삼

1) 교단은 발족 당시인 1936년 이른 봄부터 1938년 가을까지 「입조각」으로 알려지고 그 후 10년 동안은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로써 1948년 1월까지 활동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교슈사마는 제호사에서 진언 밀교의 수행을 익히셨다

2) 토공신(土公神)이란 일본불교 안에서 대지를 신격화한 것으로 생각되며 산스크리트명 Prithvi(드넓은 자) 또는 일본명 지천(地天)으로 알려져 있다 지천은 불교에서 십이천 중의 하나이며 석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열었을 때 땅에서 용출하여 증명한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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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신격화한 지천상(地天

像 산스크리트어로 쁘리티비

ldquo드넓은 자rdquo라는 의미) 사진은

12세기 화폭의 사진 (교토국립

박물관 소장)

베를 반 정도로 잘라 넣고 백 평3에 한 되4정도 뿌리는 것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제(地祭)에는 많은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제 아들은 아무래도 신심을 싫어하여 이 길은 나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이토씨나 당신의 제자들이 지진제를 올릴 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의 독특한 정화로 이어가 주세요rdquo

우라노 스님의 말에는 교슈사마를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여 자신이 이어 받은 법을 전부 전수하시려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스승의 정확한 지시 아래 준비는 빈틈없이 행해져 도량부지의 모서리에는 청죽(靑竹)을 세우고 금줄을 두르고 사

3) 약 330평방미터 또는 3558평방피트에 해당한다4) 약 18리터 또는 04 갤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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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결계된 땅의 중심에는 제단을 설치 공양물 술을 올려 개식(開式)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진제에 신령이 강림

오후가 되자 걱정했던 비도 뵤제이쇼에 나타난 대로 그쳤습니다 비로 정화된 땅에는 맑고 청정한 햇빛이 쏟아지고 인접한 스와 숲에 있는 나무의 신록은 더욱더 빛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은 우라노 스님의 도사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고 신뇨 교슈사마는 수기 『신뇨엔 기록』에 그 모습을 자세히 적고 계십니다

1938년 6월 8일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되었다 전부터 부탁을 드렸기에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새벽부터 입조각에 오셨다 입조각에

서 점심을 마치고 스와신사의 서쪽 옆의 건설지로 갔다 후

원자들이 모든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에 우라노 스님이 도

사를 맡아 지진제는 개시되었다 나는 식에 참석하면서 함

께 라이카로 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라노 스님은 우선 후원자와 함께 지진 원문을 올렸다 억

양을 붙이고 게다가 청년과 같은 높은 음성으로 올리자 모

두 멈칫했다 길가는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

는 나에게 ldquo저 분은 어디에서 수행하시는 행자이십니까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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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행을 쌓은 목소리네요rdquo라고 칭찬했다 성지에는 구석

구석까지 신께 바치는 술과 정화의 소금을 뿌렸다

그 사이 우라노 스님은 ldquo갑자기 어깨가 당겨지는 것 같은데

뭔가 신이 감응되는군요rdquo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ldquo호법의 제

천선신 중에 특별한 신령이라도 오셨습니까rdquo라고 묻자 아

내 토모지도 ldquo아이(유이치)를 업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문이

끝나자 저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rdquo고 말하자 우

라노 스님은 ldquo부인은 입조각에 부동님이 입불하여 온 이래

특히 『감응』이 강해졌으므로 어떤 신이 감응했을지도 모

르겠네요rdquo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모

습으로 석장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진언을 외우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드디어 토지의 중앙에서부터 미신(未申 서남쪽)5방향으로 이

끌리듯이 가다가 ldquo여기 여기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가사의

하게 우라노 스님의 발은 대지에 딱 붙어 있는 듯 했다

아내 토모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

에 서서 함께 ldquo여기예요rdquo라고 말한다 내가 그곳으로 가자

우라노 스님은 내게 ldquo이것은 부인과 관계가 있는 신이네요

부인의 친정에 법화관계로 모셔진 이나리님이 안 계십니

까rdquo라고 말하니 토모지는 ldquo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

거듭해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이 신의 계통은 이바라키의 가사

마(笠間)6계통일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바라키

5) 개조 교슈사마는 남서쪽 방위를 중국 전통의 방위체계인 지지(地支12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체계는 목성 궤도의 관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6) 동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사마 이나리 신사는 일본 3대 이나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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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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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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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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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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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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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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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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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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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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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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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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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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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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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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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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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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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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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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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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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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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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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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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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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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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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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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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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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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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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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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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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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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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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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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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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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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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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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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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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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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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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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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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9: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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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2일 응현원에서 만남의 축제가 행해졌습니다 이

행사는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나 귀원하기 힘든 분들과 그 분들을 돕고 계시는 가족 분들을 대상으로 해마다 행해집니다 이번 호에서

는 그 때 발췌한 신뇨 게이슈사마의 말씀을 소개하겠습니다

방금 신뇨 개조 교슈사마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친교를 배청했습니다 「생명은 귀한 것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뇨 게이슈사마 서교

덧셈을 해 가듯이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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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 불편한 곳이 있으시지요 그렇지만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쇼쥬신인사마께서는 「살려지는 감사를 잊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고 살려지고 있는 감사입니다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ldquo이것을 할 수 없어 들리지 않아 보이지 않아 걸을 수 없어rdquo 라고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마이너스로 생각한다면 살아있는 것이 제로(0)가 되어버립니다

제로인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나 자신은 ldquo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rdquo라고 하나씩 덧셈을 해가듯 긍정적으로 인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면 ldquo이것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rdquo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감사와 고마움이 커져갑니다

신뇨 가르침은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신뇨 가르침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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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middot신뇨엔 역사 에서는 신뇨 가르침의 발상의 땅인

오늘날의 오야소노에서 근본당우middot신쵸지의 지진제가 행

해졌던 때를 되돌아봅니다

새롭게 완성된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 정문 앞에서 앞쪽 중앙에 젊은 교슈사마의

모습이 보인다

1938년 2월 15일 열반회의 좋은 날에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뵤제이쇼와 영능투시로 지금의 발상 성지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출발의 첫걸음이 될 지진제는 교도

Ⅳ신뇨엔 역사

신쵸지의 지진제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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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마 제3회기 전날에 해당하는 6월 8일에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을 봉수하는 이 날은 30도를 넘는 전날의 날씨와는 확연히 달라 10도 정도 낮았고 더불어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 다치카와는 쌀쌀한 하루였습니다

도사를 맡은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이른 아침부터 입조각1

으로 오시어 장마철 하늘을 바라보며 지진제 거행을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슈사마는 뵤제이쇼를 보시고는 오후부터는 비가 그칠 것이라고 확신하며 성스러운 의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라노 스님은 그 흔들림 없는 각오에 감동하신 듯 교슈사마에게 법의식에 대한 진행 방식을 상세하게 교시하셨습니다

ldquo이토씨 지금이야 내가 당신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반드시 당신은 크게 되고 가르침도 천하(天下)로 퍼질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스승으로부터 구전으로 받은 것입니다만 토공신(土公神)2을 정화할 때에는 소금 속에 많은 삼

1) 교단은 발족 당시인 1936년 이른 봄부터 1938년 가을까지 「입조각」으로 알려지고 그 후 10년 동안은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로써 1948년 1월까지 활동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교슈사마는 제호사에서 진언 밀교의 수행을 익히셨다

2) 토공신(土公神)이란 일본불교 안에서 대지를 신격화한 것으로 생각되며 산스크리트명 Prithvi(드넓은 자) 또는 일본명 지천(地天)으로 알려져 있다 지천은 불교에서 십이천 중의 하나이며 석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열었을 때 땅에서 용출하여 증명한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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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신격화한 지천상(地天

像 산스크리트어로 쁘리티비

ldquo드넓은 자rdquo라는 의미) 사진은

12세기 화폭의 사진 (교토국립

박물관 소장)

베를 반 정도로 잘라 넣고 백 평3에 한 되4정도 뿌리는 것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제(地祭)에는 많은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제 아들은 아무래도 신심을 싫어하여 이 길은 나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이토씨나 당신의 제자들이 지진제를 올릴 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의 독특한 정화로 이어가 주세요rdquo

우라노 스님의 말에는 교슈사마를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여 자신이 이어 받은 법을 전부 전수하시려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스승의 정확한 지시 아래 준비는 빈틈없이 행해져 도량부지의 모서리에는 청죽(靑竹)을 세우고 금줄을 두르고 사

3) 약 330평방미터 또는 3558평방피트에 해당한다4) 약 18리터 또는 04 갤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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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결계된 땅의 중심에는 제단을 설치 공양물 술을 올려 개식(開式)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진제에 신령이 강림

오후가 되자 걱정했던 비도 뵤제이쇼에 나타난 대로 그쳤습니다 비로 정화된 땅에는 맑고 청정한 햇빛이 쏟아지고 인접한 스와 숲에 있는 나무의 신록은 더욱더 빛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은 우라노 스님의 도사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고 신뇨 교슈사마는 수기 『신뇨엔 기록』에 그 모습을 자세히 적고 계십니다

1938년 6월 8일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되었다 전부터 부탁을 드렸기에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새벽부터 입조각에 오셨다 입조각에

서 점심을 마치고 스와신사의 서쪽 옆의 건설지로 갔다 후

원자들이 모든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에 우라노 스님이 도

사를 맡아 지진제는 개시되었다 나는 식에 참석하면서 함

께 라이카로 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라노 스님은 우선 후원자와 함께 지진 원문을 올렸다 억

양을 붙이고 게다가 청년과 같은 높은 음성으로 올리자 모

두 멈칫했다 길가는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

는 나에게 ldquo저 분은 어디에서 수행하시는 행자이십니까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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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행을 쌓은 목소리네요rdquo라고 칭찬했다 성지에는 구석

구석까지 신께 바치는 술과 정화의 소금을 뿌렸다

그 사이 우라노 스님은 ldquo갑자기 어깨가 당겨지는 것 같은데

뭔가 신이 감응되는군요rdquo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ldquo호법의 제

천선신 중에 특별한 신령이라도 오셨습니까rdquo라고 묻자 아

내 토모지도 ldquo아이(유이치)를 업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문이

끝나자 저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rdquo고 말하자 우

라노 스님은 ldquo부인은 입조각에 부동님이 입불하여 온 이래

특히 『감응』이 강해졌으므로 어떤 신이 감응했을지도 모

르겠네요rdquo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모

습으로 석장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진언을 외우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드디어 토지의 중앙에서부터 미신(未申 서남쪽)5방향으로 이

끌리듯이 가다가 ldquo여기 여기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가사의

하게 우라노 스님의 발은 대지에 딱 붙어 있는 듯 했다

아내 토모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

에 서서 함께 ldquo여기예요rdquo라고 말한다 내가 그곳으로 가자

우라노 스님은 내게 ldquo이것은 부인과 관계가 있는 신이네요

부인의 친정에 법화관계로 모셔진 이나리님이 안 계십니

까rdquo라고 말하니 토모지는 ldquo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

거듭해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이 신의 계통은 이바라키의 가사

마(笠間)6계통일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바라키

5) 개조 교슈사마는 남서쪽 방위를 중국 전통의 방위체계인 지지(地支12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체계는 목성 궤도의 관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6) 동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사마 이나리 신사는 일본 3대 이나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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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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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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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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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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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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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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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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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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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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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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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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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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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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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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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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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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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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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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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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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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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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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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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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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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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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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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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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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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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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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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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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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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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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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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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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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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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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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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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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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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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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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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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10: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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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 계신 여러분들 불편한 곳이 있으시지요 그렇지만 생명이 있다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쇼쥬신인사마께서는 「살려지는 감사를 잊지 않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생명이 있고 살려지고 있는 감사입니다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은 ldquo이것을 할 수 없어 들리지 않아 보이지 않아 걸을 수 없어rdquo 라고 이렇게만 이야기하고 마이너스로 생각한다면 살아있는 것이 제로(0)가 되어버립니다

제로인 상태에서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태어난 나 자신은 ldquo이것도 할 수 있고 저것도 할 수 있다rdquo라고 하나씩 덧셈을 해가듯 긍정적으로 인생을 보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 가면 ldquo이것도 할 수 있어서 감사하다rdquo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감사와 고마움이 커져갑니다

신뇨 가르침은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신뇨 가르침은 바로 그러한 가르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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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middot신뇨엔 역사 에서는 신뇨 가르침의 발상의 땅인

오늘날의 오야소노에서 근본당우middot신쵸지의 지진제가 행

해졌던 때를 되돌아봅니다

새롭게 완성된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 정문 앞에서 앞쪽 중앙에 젊은 교슈사마의

모습이 보인다

1938년 2월 15일 열반회의 좋은 날에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뵤제이쇼와 영능투시로 지금의 발상 성지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출발의 첫걸음이 될 지진제는 교도

Ⅳ신뇨엔 역사

신쵸지의 지진제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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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마 제3회기 전날에 해당하는 6월 8일에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을 봉수하는 이 날은 30도를 넘는 전날의 날씨와는 확연히 달라 10도 정도 낮았고 더불어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 다치카와는 쌀쌀한 하루였습니다

도사를 맡은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이른 아침부터 입조각1

으로 오시어 장마철 하늘을 바라보며 지진제 거행을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슈사마는 뵤제이쇼를 보시고는 오후부터는 비가 그칠 것이라고 확신하며 성스러운 의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라노 스님은 그 흔들림 없는 각오에 감동하신 듯 교슈사마에게 법의식에 대한 진행 방식을 상세하게 교시하셨습니다

ldquo이토씨 지금이야 내가 당신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반드시 당신은 크게 되고 가르침도 천하(天下)로 퍼질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스승으로부터 구전으로 받은 것입니다만 토공신(土公神)2을 정화할 때에는 소금 속에 많은 삼

1) 교단은 발족 당시인 1936년 이른 봄부터 1938년 가을까지 「입조각」으로 알려지고 그 후 10년 동안은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로써 1948년 1월까지 활동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교슈사마는 제호사에서 진언 밀교의 수행을 익히셨다

2) 토공신(土公神)이란 일본불교 안에서 대지를 신격화한 것으로 생각되며 산스크리트명 Prithvi(드넓은 자) 또는 일본명 지천(地天)으로 알려져 있다 지천은 불교에서 십이천 중의 하나이며 석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열었을 때 땅에서 용출하여 증명한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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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신격화한 지천상(地天

像 산스크리트어로 쁘리티비

ldquo드넓은 자rdquo라는 의미) 사진은

12세기 화폭의 사진 (교토국립

박물관 소장)

베를 반 정도로 잘라 넣고 백 평3에 한 되4정도 뿌리는 것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제(地祭)에는 많은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제 아들은 아무래도 신심을 싫어하여 이 길은 나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이토씨나 당신의 제자들이 지진제를 올릴 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의 독특한 정화로 이어가 주세요rdquo

우라노 스님의 말에는 교슈사마를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여 자신이 이어 받은 법을 전부 전수하시려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스승의 정확한 지시 아래 준비는 빈틈없이 행해져 도량부지의 모서리에는 청죽(靑竹)을 세우고 금줄을 두르고 사

3) 약 330평방미터 또는 3558평방피트에 해당한다4) 약 18리터 또는 04 갤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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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결계된 땅의 중심에는 제단을 설치 공양물 술을 올려 개식(開式)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진제에 신령이 강림

오후가 되자 걱정했던 비도 뵤제이쇼에 나타난 대로 그쳤습니다 비로 정화된 땅에는 맑고 청정한 햇빛이 쏟아지고 인접한 스와 숲에 있는 나무의 신록은 더욱더 빛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은 우라노 스님의 도사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고 신뇨 교슈사마는 수기 『신뇨엔 기록』에 그 모습을 자세히 적고 계십니다

1938년 6월 8일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되었다 전부터 부탁을 드렸기에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새벽부터 입조각에 오셨다 입조각에

서 점심을 마치고 스와신사의 서쪽 옆의 건설지로 갔다 후

원자들이 모든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에 우라노 스님이 도

사를 맡아 지진제는 개시되었다 나는 식에 참석하면서 함

께 라이카로 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라노 스님은 우선 후원자와 함께 지진 원문을 올렸다 억

양을 붙이고 게다가 청년과 같은 높은 음성으로 올리자 모

두 멈칫했다 길가는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

는 나에게 ldquo저 분은 어디에서 수행하시는 행자이십니까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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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행을 쌓은 목소리네요rdquo라고 칭찬했다 성지에는 구석

구석까지 신께 바치는 술과 정화의 소금을 뿌렸다

그 사이 우라노 스님은 ldquo갑자기 어깨가 당겨지는 것 같은데

뭔가 신이 감응되는군요rdquo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ldquo호법의 제

천선신 중에 특별한 신령이라도 오셨습니까rdquo라고 묻자 아

내 토모지도 ldquo아이(유이치)를 업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문이

끝나자 저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rdquo고 말하자 우

라노 스님은 ldquo부인은 입조각에 부동님이 입불하여 온 이래

특히 『감응』이 강해졌으므로 어떤 신이 감응했을지도 모

르겠네요rdquo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모

습으로 석장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진언을 외우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드디어 토지의 중앙에서부터 미신(未申 서남쪽)5방향으로 이

끌리듯이 가다가 ldquo여기 여기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가사의

하게 우라노 스님의 발은 대지에 딱 붙어 있는 듯 했다

아내 토모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

에 서서 함께 ldquo여기예요rdquo라고 말한다 내가 그곳으로 가자

우라노 스님은 내게 ldquo이것은 부인과 관계가 있는 신이네요

부인의 친정에 법화관계로 모셔진 이나리님이 안 계십니

까rdquo라고 말하니 토모지는 ldquo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

거듭해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이 신의 계통은 이바라키의 가사

마(笠間)6계통일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바라키

5) 개조 교슈사마는 남서쪽 방위를 중국 전통의 방위체계인 지지(地支12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체계는 목성 궤도의 관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6) 동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사마 이나리 신사는 일본 3대 이나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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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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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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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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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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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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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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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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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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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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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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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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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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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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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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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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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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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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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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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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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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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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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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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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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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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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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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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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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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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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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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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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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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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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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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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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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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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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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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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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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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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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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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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11: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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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middot신뇨엔 역사 에서는 신뇨 가르침의 발상의 땅인

오늘날의 오야소노에서 근본당우middot신쵸지의 지진제가 행

해졌던 때를 되돌아봅니다

새롭게 완성된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 정문 앞에서 앞쪽 중앙에 젊은 교슈사마의

모습이 보인다

1938년 2월 15일 열반회의 좋은 날에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뵤제이쇼와 영능투시로 지금의 발상 성지를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출발의 첫걸음이 될 지진제는 교도

Ⅳ신뇨엔 역사

신쵸지의 지진제

역사탐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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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마 제3회기 전날에 해당하는 6월 8일에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을 봉수하는 이 날은 30도를 넘는 전날의 날씨와는 확연히 달라 10도 정도 낮았고 더불어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 다치카와는 쌀쌀한 하루였습니다

도사를 맡은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이른 아침부터 입조각1

으로 오시어 장마철 하늘을 바라보며 지진제 거행을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슈사마는 뵤제이쇼를 보시고는 오후부터는 비가 그칠 것이라고 확신하며 성스러운 의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라노 스님은 그 흔들림 없는 각오에 감동하신 듯 교슈사마에게 법의식에 대한 진행 방식을 상세하게 교시하셨습니다

ldquo이토씨 지금이야 내가 당신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반드시 당신은 크게 되고 가르침도 천하(天下)로 퍼질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스승으로부터 구전으로 받은 것입니다만 토공신(土公神)2을 정화할 때에는 소금 속에 많은 삼

1) 교단은 발족 당시인 1936년 이른 봄부터 1938년 가을까지 「입조각」으로 알려지고 그 후 10년 동안은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로써 1948년 1월까지 활동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교슈사마는 제호사에서 진언 밀교의 수행을 익히셨다

2) 토공신(土公神)이란 일본불교 안에서 대지를 신격화한 것으로 생각되며 산스크리트명 Prithvi(드넓은 자) 또는 일본명 지천(地天)으로 알려져 있다 지천은 불교에서 십이천 중의 하나이며 석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열었을 때 땅에서 용출하여 증명한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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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신격화한 지천상(地天

像 산스크리트어로 쁘리티비

ldquo드넓은 자rdquo라는 의미) 사진은

12세기 화폭의 사진 (교토국립

박물관 소장)

베를 반 정도로 잘라 넣고 백 평3에 한 되4정도 뿌리는 것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제(地祭)에는 많은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제 아들은 아무래도 신심을 싫어하여 이 길은 나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이토씨나 당신의 제자들이 지진제를 올릴 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의 독특한 정화로 이어가 주세요rdquo

우라노 스님의 말에는 교슈사마를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여 자신이 이어 받은 법을 전부 전수하시려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스승의 정확한 지시 아래 준비는 빈틈없이 행해져 도량부지의 모서리에는 청죽(靑竹)을 세우고 금줄을 두르고 사

3) 약 330평방미터 또는 3558평방피트에 해당한다4) 약 18리터 또는 04 갤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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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결계된 땅의 중심에는 제단을 설치 공양물 술을 올려 개식(開式)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진제에 신령이 강림

오후가 되자 걱정했던 비도 뵤제이쇼에 나타난 대로 그쳤습니다 비로 정화된 땅에는 맑고 청정한 햇빛이 쏟아지고 인접한 스와 숲에 있는 나무의 신록은 더욱더 빛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은 우라노 스님의 도사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고 신뇨 교슈사마는 수기 『신뇨엔 기록』에 그 모습을 자세히 적고 계십니다

1938년 6월 8일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되었다 전부터 부탁을 드렸기에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새벽부터 입조각에 오셨다 입조각에

서 점심을 마치고 스와신사의 서쪽 옆의 건설지로 갔다 후

원자들이 모든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에 우라노 스님이 도

사를 맡아 지진제는 개시되었다 나는 식에 참석하면서 함

께 라이카로 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라노 스님은 우선 후원자와 함께 지진 원문을 올렸다 억

양을 붙이고 게다가 청년과 같은 높은 음성으로 올리자 모

두 멈칫했다 길가는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

는 나에게 ldquo저 분은 어디에서 수행하시는 행자이십니까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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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행을 쌓은 목소리네요rdquo라고 칭찬했다 성지에는 구석

구석까지 신께 바치는 술과 정화의 소금을 뿌렸다

그 사이 우라노 스님은 ldquo갑자기 어깨가 당겨지는 것 같은데

뭔가 신이 감응되는군요rdquo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ldquo호법의 제

천선신 중에 특별한 신령이라도 오셨습니까rdquo라고 묻자 아

내 토모지도 ldquo아이(유이치)를 업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문이

끝나자 저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rdquo고 말하자 우

라노 스님은 ldquo부인은 입조각에 부동님이 입불하여 온 이래

특히 『감응』이 강해졌으므로 어떤 신이 감응했을지도 모

르겠네요rdquo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모

습으로 석장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진언을 외우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드디어 토지의 중앙에서부터 미신(未申 서남쪽)5방향으로 이

끌리듯이 가다가 ldquo여기 여기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가사의

하게 우라노 스님의 발은 대지에 딱 붙어 있는 듯 했다

아내 토모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

에 서서 함께 ldquo여기예요rdquo라고 말한다 내가 그곳으로 가자

우라노 스님은 내게 ldquo이것은 부인과 관계가 있는 신이네요

부인의 친정에 법화관계로 모셔진 이나리님이 안 계십니

까rdquo라고 말하니 토모지는 ldquo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

거듭해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이 신의 계통은 이바라키의 가사

마(笠間)6계통일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바라키

5) 개조 교슈사마는 남서쪽 방위를 중국 전통의 방위체계인 지지(地支12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체계는 목성 궤도의 관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6) 동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사마 이나리 신사는 일본 3대 이나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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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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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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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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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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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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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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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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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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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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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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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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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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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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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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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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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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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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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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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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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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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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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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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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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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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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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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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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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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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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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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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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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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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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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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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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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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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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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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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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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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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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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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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12: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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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마 제3회기 전날에 해당하는 6월 8일에 집행하게 되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을 봉수하는 이 날은 30도를 넘는 전날의 날씨와는 확연히 달라 10도 정도 낮았고 더불어 아침부터 폭우가 쏟아져 다치카와는 쌀쌀한 하루였습니다

도사를 맡은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이른 아침부터 입조각1

으로 오시어 장마철 하늘을 바라보며 지진제 거행을 우려하셨습니다 그러나 교슈사마는 뵤제이쇼를 보시고는 오후부터는 비가 그칠 것이라고 확신하며 성스러운 의식을 준비하셨습니다 우라노 스님은 그 흔들림 없는 각오에 감동하신 듯 교슈사마에게 법의식에 대한 진행 방식을 상세하게 교시하셨습니다

ldquo이토씨 지금이야 내가 당신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만 반드시 당신은 크게 되고 가르침도 천하(天下)로 퍼질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스승으로부터 구전으로 받은 것입니다만 토공신(土公神)2을 정화할 때에는 소금 속에 많은 삼

1) 교단은 발족 당시인 1936년 이른 봄부터 1938년 가을까지 「입조각」으로 알려지고 그 후 10년 동안은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로써 1948년 1월까지 활동을 계속했다 그 사이에 교슈사마는 제호사에서 진언 밀교의 수행을 익히셨다

2) 토공신(土公神)이란 일본불교 안에서 대지를 신격화한 것으로 생각되며 산스크리트명 Prithvi(드넓은 자) 또는 일본명 지천(地天)으로 알려져 있다 지천은 불교에서 십이천 중의 하나이며 석존이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열었을 때 땅에서 용출하여 증명한 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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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신격화한 지천상(地天

像 산스크리트어로 쁘리티비

ldquo드넓은 자rdquo라는 의미) 사진은

12세기 화폭의 사진 (교토국립

박물관 소장)

베를 반 정도로 잘라 넣고 백 평3에 한 되4정도 뿌리는 것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제(地祭)에는 많은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제 아들은 아무래도 신심을 싫어하여 이 길은 나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이토씨나 당신의 제자들이 지진제를 올릴 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의 독특한 정화로 이어가 주세요rdquo

우라노 스님의 말에는 교슈사마를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여 자신이 이어 받은 법을 전부 전수하시려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스승의 정확한 지시 아래 준비는 빈틈없이 행해져 도량부지의 모서리에는 청죽(靑竹)을 세우고 금줄을 두르고 사

3) 약 330평방미터 또는 3558평방피트에 해당한다4) 약 18리터 또는 04 갤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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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결계된 땅의 중심에는 제단을 설치 공양물 술을 올려 개식(開式)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진제에 신령이 강림

오후가 되자 걱정했던 비도 뵤제이쇼에 나타난 대로 그쳤습니다 비로 정화된 땅에는 맑고 청정한 햇빛이 쏟아지고 인접한 스와 숲에 있는 나무의 신록은 더욱더 빛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은 우라노 스님의 도사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고 신뇨 교슈사마는 수기 『신뇨엔 기록』에 그 모습을 자세히 적고 계십니다

1938년 6월 8일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되었다 전부터 부탁을 드렸기에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새벽부터 입조각에 오셨다 입조각에

서 점심을 마치고 스와신사의 서쪽 옆의 건설지로 갔다 후

원자들이 모든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에 우라노 스님이 도

사를 맡아 지진제는 개시되었다 나는 식에 참석하면서 함

께 라이카로 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라노 스님은 우선 후원자와 함께 지진 원문을 올렸다 억

양을 붙이고 게다가 청년과 같은 높은 음성으로 올리자 모

두 멈칫했다 길가는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

는 나에게 ldquo저 분은 어디에서 수행하시는 행자이십니까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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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행을 쌓은 목소리네요rdquo라고 칭찬했다 성지에는 구석

구석까지 신께 바치는 술과 정화의 소금을 뿌렸다

그 사이 우라노 스님은 ldquo갑자기 어깨가 당겨지는 것 같은데

뭔가 신이 감응되는군요rdquo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ldquo호법의 제

천선신 중에 특별한 신령이라도 오셨습니까rdquo라고 묻자 아

내 토모지도 ldquo아이(유이치)를 업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문이

끝나자 저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rdquo고 말하자 우

라노 스님은 ldquo부인은 입조각에 부동님이 입불하여 온 이래

특히 『감응』이 강해졌으므로 어떤 신이 감응했을지도 모

르겠네요rdquo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모

습으로 석장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진언을 외우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드디어 토지의 중앙에서부터 미신(未申 서남쪽)5방향으로 이

끌리듯이 가다가 ldquo여기 여기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가사의

하게 우라노 스님의 발은 대지에 딱 붙어 있는 듯 했다

아내 토모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

에 서서 함께 ldquo여기예요rdquo라고 말한다 내가 그곳으로 가자

우라노 스님은 내게 ldquo이것은 부인과 관계가 있는 신이네요

부인의 친정에 법화관계로 모셔진 이나리님이 안 계십니

까rdquo라고 말하니 토모지는 ldquo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

거듭해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이 신의 계통은 이바라키의 가사

마(笠間)6계통일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바라키

5) 개조 교슈사마는 남서쪽 방위를 중국 전통의 방위체계인 지지(地支12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체계는 목성 궤도의 관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6) 동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사마 이나리 신사는 일본 3대 이나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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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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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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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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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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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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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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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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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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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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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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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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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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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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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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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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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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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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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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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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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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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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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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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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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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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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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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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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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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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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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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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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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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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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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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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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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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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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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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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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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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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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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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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13: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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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를 신격화한 지천상(地天

像 산스크리트어로 쁘리티비

ldquo드넓은 자rdquo라는 의미) 사진은

12세기 화폭의 사진 (교토국립

박물관 소장)

베를 반 정도로 잘라 넣고 백 평3에 한 되4정도 뿌리는 것이 좋다고 배웠습니다 그리고 지제(地祭)에는 많은 공양물을 올리는 것이 좋다고 들었습니다 제 아들은 아무래도 신심을 싫어하여 이 길은 나로 끝날지도 모릅니다 이제부터는 이토씨나 당신의 제자들이 지진제를 올릴 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의 독특한 정화로 이어가 주세요rdquo

우라노 스님의 말에는 교슈사마를 자신의 아들처럼 생각하여 자신이 이어 받은 법을 전부 전수하시려는 애정이 담겨 있습니다 스승의 정확한 지시 아래 준비는 빈틈없이 행해져 도량부지의 모서리에는 청죽(靑竹)을 세우고 금줄을 두르고 사

3) 약 330평방미터 또는 3558평방피트에 해당한다4) 약 18리터 또는 04 갤런에 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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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결계된 땅의 중심에는 제단을 설치 공양물 술을 올려 개식(開式)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진제에 신령이 강림

오후가 되자 걱정했던 비도 뵤제이쇼에 나타난 대로 그쳤습니다 비로 정화된 땅에는 맑고 청정한 햇빛이 쏟아지고 인접한 스와 숲에 있는 나무의 신록은 더욱더 빛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은 우라노 스님의 도사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고 신뇨 교슈사마는 수기 『신뇨엔 기록』에 그 모습을 자세히 적고 계십니다

1938년 6월 8일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되었다 전부터 부탁을 드렸기에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새벽부터 입조각에 오셨다 입조각에

서 점심을 마치고 스와신사의 서쪽 옆의 건설지로 갔다 후

원자들이 모든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에 우라노 스님이 도

사를 맡아 지진제는 개시되었다 나는 식에 참석하면서 함

께 라이카로 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라노 스님은 우선 후원자와 함께 지진 원문을 올렸다 억

양을 붙이고 게다가 청년과 같은 높은 음성으로 올리자 모

두 멈칫했다 길가는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

는 나에게 ldquo저 분은 어디에서 수행하시는 행자이십니까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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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행을 쌓은 목소리네요rdquo라고 칭찬했다 성지에는 구석

구석까지 신께 바치는 술과 정화의 소금을 뿌렸다

그 사이 우라노 스님은 ldquo갑자기 어깨가 당겨지는 것 같은데

뭔가 신이 감응되는군요rdquo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ldquo호법의 제

천선신 중에 특별한 신령이라도 오셨습니까rdquo라고 묻자 아

내 토모지도 ldquo아이(유이치)를 업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문이

끝나자 저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rdquo고 말하자 우

라노 스님은 ldquo부인은 입조각에 부동님이 입불하여 온 이래

특히 『감응』이 강해졌으므로 어떤 신이 감응했을지도 모

르겠네요rdquo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모

습으로 석장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진언을 외우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드디어 토지의 중앙에서부터 미신(未申 서남쪽)5방향으로 이

끌리듯이 가다가 ldquo여기 여기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가사의

하게 우라노 스님의 발은 대지에 딱 붙어 있는 듯 했다

아내 토모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

에 서서 함께 ldquo여기예요rdquo라고 말한다 내가 그곳으로 가자

우라노 스님은 내게 ldquo이것은 부인과 관계가 있는 신이네요

부인의 친정에 법화관계로 모셔진 이나리님이 안 계십니

까rdquo라고 말하니 토모지는 ldquo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

거듭해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이 신의 계통은 이바라키의 가사

마(笠間)6계통일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바라키

5) 개조 교슈사마는 남서쪽 방위를 중국 전통의 방위체계인 지지(地支12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체계는 목성 궤도의 관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6) 동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사마 이나리 신사는 일본 3대 이나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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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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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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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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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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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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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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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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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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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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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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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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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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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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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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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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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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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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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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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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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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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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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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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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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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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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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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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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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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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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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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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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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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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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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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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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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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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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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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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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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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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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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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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14: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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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이 결계된 땅의 중심에는 제단을 설치 공양물 술을 올려 개식(開式)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지진제에 신령이 강림

오후가 되자 걱정했던 비도 뵤제이쇼에 나타난 대로 그쳤습니다 비로 정화된 땅에는 맑고 청정한 햇빛이 쏟아지고 인접한 스와 숲에 있는 나무의 신록은 더욱더 빛나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었습니다 성스러운 의식은 우라노 스님의 도사 아래 엄숙하게 진행되고 신뇨 교슈사마는 수기 『신뇨엔 기록』에 그 모습을 자세히 적고 계십니다

1938년 6월 8일

올해도 어김없이 장마철이 되었다 전부터 부탁을 드렸기에

우라노 호카이 스님은 새벽부터 입조각에 오셨다 입조각에

서 점심을 마치고 스와신사의 서쪽 옆의 건설지로 갔다 후

원자들이 모든 준비를 해 두었기 때문에 우라노 스님이 도

사를 맡아 지진제는 개시되었다 나는 식에 참석하면서 함

께 라이카로 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우라노 스님은 우선 후원자와 함께 지진 원문을 올렸다 억

양을 붙이고 게다가 청년과 같은 높은 음성으로 올리자 모

두 멈칫했다 길가는 사람들도 발을 멈추고 사진을 찍고 있

는 나에게 ldquo저 분은 어디에서 수행하시는 행자이십니까 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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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행을 쌓은 목소리네요rdquo라고 칭찬했다 성지에는 구석

구석까지 신께 바치는 술과 정화의 소금을 뿌렸다

그 사이 우라노 스님은 ldquo갑자기 어깨가 당겨지는 것 같은데

뭔가 신이 감응되는군요rdquo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ldquo호법의 제

천선신 중에 특별한 신령이라도 오셨습니까rdquo라고 묻자 아

내 토모지도 ldquo아이(유이치)를 업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문이

끝나자 저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rdquo고 말하자 우

라노 스님은 ldquo부인은 입조각에 부동님이 입불하여 온 이래

특히 『감응』이 강해졌으므로 어떤 신이 감응했을지도 모

르겠네요rdquo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모

습으로 석장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진언을 외우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드디어 토지의 중앙에서부터 미신(未申 서남쪽)5방향으로 이

끌리듯이 가다가 ldquo여기 여기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가사의

하게 우라노 스님의 발은 대지에 딱 붙어 있는 듯 했다

아내 토모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

에 서서 함께 ldquo여기예요rdquo라고 말한다 내가 그곳으로 가자

우라노 스님은 내게 ldquo이것은 부인과 관계가 있는 신이네요

부인의 친정에 법화관계로 모셔진 이나리님이 안 계십니

까rdquo라고 말하니 토모지는 ldquo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

거듭해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이 신의 계통은 이바라키의 가사

마(笠間)6계통일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바라키

5) 개조 교슈사마는 남서쪽 방위를 중국 전통의 방위체계인 지지(地支12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체계는 목성 궤도의 관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6) 동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사마 이나리 신사는 일본 3대 이나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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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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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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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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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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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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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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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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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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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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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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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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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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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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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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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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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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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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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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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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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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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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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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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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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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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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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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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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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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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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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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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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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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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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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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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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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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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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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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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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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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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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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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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15: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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륭한 행을 쌓은 목소리네요rdquo라고 칭찬했다 성지에는 구석

구석까지 신께 바치는 술과 정화의 소금을 뿌렸다

그 사이 우라노 스님은 ldquo갑자기 어깨가 당겨지는 것 같은데

뭔가 신이 감응되는군요rdquo라고 말씀하셔서 나는 ldquo호법의 제

천선신 중에 특별한 신령이라도 오셨습니까rdquo라고 묻자 아

내 토모지도 ldquo아이(유이치)를 업고 있어서가 아니라 경문이

끝나자 저도 갑자기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rdquo고 말하자 우

라노 스님은 ldquo부인은 입조각에 부동님이 입불하여 온 이래

특히 『감응』이 강해졌으므로 어떤 신이 감응했을지도 모

르겠네요rdquo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적 조사를 하는 것 같은 모

습으로 석장을 흔들면서 작은 소리로 진언을 외우시며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다

드디어 토지의 중앙에서부터 미신(未申 서남쪽)5방향으로 이

끌리듯이 가다가 ldquo여기 여기rdquo라고 말씀하셨는데 불가사의

하게 우라노 스님의 발은 대지에 딱 붙어 있는 듯 했다

아내 토모지도 역시 그곳으로 간다 그리고 두 사람은 그곳

에 서서 함께 ldquo여기예요rdquo라고 말한다 내가 그곳으로 가자

우라노 스님은 내게 ldquo이것은 부인과 관계가 있는 신이네요

부인의 친정에 법화관계로 모셔진 이나리님이 안 계십니

까rdquo라고 말하니 토모지는 ldquo있습니다rdquo라고 말한다

거듭해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이 신의 계통은 이바라키의 가사

마(笠間)6계통일지도 모릅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기에 이바라키

5) 개조 교슈사마는 남서쪽 방위를 중국 전통의 방위체계인 지지(地支12지)로 표현하고 있다 이 체계는 목성 궤도의 관측에 바탕을 둔 것이다

6) 동경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이바라키현에 있는 가사마 이나리 신사는 일본 3대 이나리 중의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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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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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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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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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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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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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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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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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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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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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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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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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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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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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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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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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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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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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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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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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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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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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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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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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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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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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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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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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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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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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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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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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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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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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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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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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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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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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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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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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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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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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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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16: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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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6월 8일 오늘의 오야소노로 알려진 땅에서 지진제가 행해졌다 교슈사마

자신이 이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의 가사마를 마음속으로 되새겼다 아무튼 나는 나카노군에

게 부탁해 그 장소를 모래로 표시해 두었다

나카노군은 거듭 부지의 한 구석에서 가느다란 조릿대를 꺾

어 꽂았다 우라노 스님은 ldquo여하튼 임시 안치소(입조각)로

돌아가 부동님 앞에서 여쭈어 봅시다rdquo라고 말씀하셨다 물

론 임시 안치소로 돌아가서 여쭈어 보았다

그리고 조촐한 지진제의 축하 자리에서 우라노 스님은 ldquo올

해는 1938년입니다만 lsquo다치카와 부동존rsquo으로써는 10년으로

이후는 발전하여 갈 것입니다 이나리님은 그 성지의 수호

신 즉 성지의 진수로 보호해 주시기 때문에 더욱 번영할

것입니다rdquo

토모지도 또한 ldquo우라노 스님이 말씀하신 대로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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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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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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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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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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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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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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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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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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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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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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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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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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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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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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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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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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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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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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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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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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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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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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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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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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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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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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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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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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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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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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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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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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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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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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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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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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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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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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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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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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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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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17: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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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모가 법화경을 믿으면서 백모(타마에)님이 보호해 온 이나

리님입니다rdquo라고 말하자 우라노 스님은 다시 감응상태로 들

어가 ldquo틀림없습니다 그 신을 성지로 모시세요rdquo라고 영의

뜻을 가르쳐 주셨다

신뇨 개조와 영조(소오야사마)께서는 이 날의 기쁨을 다섯 편의 노래로 표현하셨습니다

지진제도 끝나 기쁘다고 아내는 말하네 조모님의 보호도 함께 존재하시네 (아내의 말을 듣고)

귀하게도 성지가 될 것이라 스님은 말하네 호법의 신들이 강림하여 지켜주시네 (우라노 스님의 말

씀을 듣고)

다치카와의 부동존은 10년이 되었네 앞으로도 변함없이 더욱 번성하리라 (우라노 스님의 예언)

개조 교슈사마가 위의 세 편을 노래하시자 쇼쥬신인사마는 다음과 같이 두 편을 노래하셨습니다

호법선신 조모님의 신심 우리가 이어받아 부동의 마음 영원히 지켜가리 (토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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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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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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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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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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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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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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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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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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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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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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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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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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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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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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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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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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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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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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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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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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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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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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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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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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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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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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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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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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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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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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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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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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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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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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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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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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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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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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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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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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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18: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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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새롭게 나아가리 성지와 함께 우리도 같이하네(토모지)

개조 교슈사마는 훗날 강림한 신을 맞이하기 위해 고향 야마나시현 쿄호쿠로 향하셨습니다 목욕재계한 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생가로부터 2킬로 정도 떨어진 「홍법대사 지팡이의 물」이라 불리는 용수에서 물을 길러 묵을 갈아 비문을 적으셨습니다 그리고 신령은 1938년 7월 17일에 성지 오야소노로 권청되었습니다 몇 년 후 교슈사마는 「가사마 이나리」의 「가사(笠)」7를 리브라이로써 부처님의 자비라고 관상하시고 법(노리)은 정법의 「법」이라 기도하시며 신뇨 교법을 수호하는 지령계의 호법선신으로서 「가사노리 이나리」라고 이름을 정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인증의 고난

지진제가 끝나자 개조 교슈사마는 도량의 건설을 서두르셨습니다 이 해 일본은 마치 전쟁 전야와 같은 양상을 보이고 있었습니다 전 해인 1937년에 일어난 중일전쟁의 전시상황이

7) 「가사(笠)」라는 문자는 일본의 전통적인 모자를 의미한다 볏짚과 왕골 갈대의 줄기 등을 엮어 만든 것으로 비나 해를 가리기 위해 사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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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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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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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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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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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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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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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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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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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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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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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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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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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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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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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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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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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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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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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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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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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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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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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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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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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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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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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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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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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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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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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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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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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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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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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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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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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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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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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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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19: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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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쵸지 공사가 종료된 다음 날인 1938년 10월 4일 동경에서 새로운 사원

설립허가가 정식으로 내려졌다 사진은 신뇨 소오야사마가 받으신 공식문

서이다

악화되고 군부의 발언권에 힘입어 일본은 급격한 전시체제로 이행하게 되었습니다 1938년 5월에 실시된 lsquo국가 총동원법rsquo에 의해 정부는 의회의 동의 없이 물자와 노동력 동원이 가능해지고 생활필수품과 물가통제도 강화되었습니다 「거국일치(擧國一致)」라는 이름하에 국민들은 꼼짝없이 전쟁에 협력하라는 강요를 받다가 2년 후에 개최 예정이었던 올림픽도 만국박람회도 연기가 결정되는 등 1938년은 전쟁의 기운이 어둡게 드리워진 해였습니다

한편 이러한 전시 상황의 확대로 군수산업은 현저하게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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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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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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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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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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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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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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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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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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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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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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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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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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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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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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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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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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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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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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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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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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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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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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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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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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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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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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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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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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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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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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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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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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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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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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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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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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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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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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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20: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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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했습니다 그 영향은 군과 관련된 공장이 집중해 있던 다치카와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입교 전에 근무했던 lsquo다치카와 비행기rsquo도 양산체제에 들어가 전해 2천명이었던 종업원이 1938년에는 7천명으로까지 급증하여 다치카와는 「군사도시」로써의 성격이 더욱 짙어졌습니다

전시 상황 하에 회당의 건축 자재의 확보가 어렵다는 것과 신앙의 자유가 억압받던 시대였기 때문에 교회를 건립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으며 하물며 군사 도시였던 다치카와에서는 지역사회의 따가운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총본산 제호사 또한 도쿄의 엄격한 조사를 거쳐서 인가를 받지 않으면 교회의 설립이 인정되지 않아 교슈사마는 전등의 법류품승의 수행을 익히는 한편 번잡한 법적 절차도 밟으며 교회설립의 준비를 진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건설이 시작되자 일부 후원자가 제멋대로 행동에 나서 신뇨 소오야사마의 노고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신뇨엔 기록』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1938년 6월 28일

진언종 제호파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소의 설계도가 완성됐

다고 나카야 씨가 알려왔다 그리고 나카야 씨는 ldquo바바군에

게도 이 일을 말해서 알고 있는데 오늘 명일날부터 일을

시작하라고 하겠다rdquo고 말했다 그것은 너무 독선적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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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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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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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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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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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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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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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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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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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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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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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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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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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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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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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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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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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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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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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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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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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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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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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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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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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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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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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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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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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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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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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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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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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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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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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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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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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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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21: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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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에 ldquo도면을 일단 제출하지 않으면 곤란한데요rdquo라고 나

는 말했다 나카야군은 ldquo이번 건축에 대해서는 선생은 직접

적으로 참견하지 말았으면 한다 이 일은 전부 건축위원회

사람들이 하니까rdquo라고 말했다

이것을 들은 나카노군은 ldquo나카야님 선생의 의향이 더해지지

않는다면 당은 완전한 법식에 맞지 않을 것입니다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면 곤란합니다rdquo라고 말했다 결국 의향은

더해지는 것으로 하여 일은 진행되었다

교단을 지키는 입장인 후원자 중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세간에 알리려는 목적으로 교단의 주도권을 쥐거나 건축공사를 통해서 사욕을 채우려는 사람도 나타났습니다 신뇨 개조와 영조께서는 그러한 「내적인 교란」으로 마음의 상처를 입으셨습니다 독신교도 신도님(고인)은 이렇게 술회하고 있습니다

「후원자 중에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을 진심으로 따르는 사

람과 뒤에서 남들 모르게 맹렬히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 매

우 고생스러우셨습니다 후원자 대다수는 교슈사마보다 나

이가 많아 젊은 교슈사마를 ldquo어이 선달rdquo이라고 지칭하거나

너무나 거만한 태도를 보였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저도

화가 났습니다만 교슈사마는 제게 ldquo비록 어찌되었든 부처님

의 가르침을 구하기 위해서 여기에 온 사람들이다 그러니

까 그런 사람이야말로 진심으로 섬기지 않으면 안 된다rdquo고

지도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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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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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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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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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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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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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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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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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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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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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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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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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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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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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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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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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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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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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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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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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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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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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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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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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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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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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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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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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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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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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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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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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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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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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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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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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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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22: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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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교슈사마의 상심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신쵸지의 건설을 추진함과 동시에 교슈사마는 혜인삼매야8의 가행에 들어가셨는데 전등의 칠단법을 수행하던 도중 쇼쥬신인사마가 몸져눕게 되고 마침내는 허리가 아파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까지 용태가 악화되었습니다 게다가 젖먹이였던 신도인사마마저 먹지를 못해 야위어 쇠약해지기 시작했습니다

ldquo귀한 수행을 쌓는 과정에 왜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helliphelliprdquo라고 무너져 내리는 번민을 부처님을 믿는 부동의 기도로 바꾸어 개조 교슈사마는 수많은 난국을 뚫고 준엄한 수행에 임하셨습니다 그리고 7월 8일 가행의 고비라고 불리는 부동명왕법에 들어가셨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다음과 같이 회상하고 계십니다

7월 8일부터 나는 단법(壇法)에 들어가 아침부터 진지하게

부동명왕법을 행했습니다 그리고 개백에서부터 중원에 해

당하는 11일날 본산으로부터 제출한 서류를 수리했다는 10

일 날짜의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이때에 다시 한 번 깊은

위신력에 경외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며 불가사의를 느꼈습

니다 그리고 부동명왕법이 드디어 결원이 되는 7월 14일

계속 오전 3시에 일어나서 행해 왔던 수법의 마지막에 들어

갔습니다 그것은 약 3시간 동안의 수행이었습니다 모든 수

8) 제호사에 전해지는 재가법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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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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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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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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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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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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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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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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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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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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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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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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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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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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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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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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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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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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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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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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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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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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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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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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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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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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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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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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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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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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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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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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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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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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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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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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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23: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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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이 끝났을 때 서쪽에서부터 광명이 찬란하게 빛났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날 15일에 설립인가증 하부가 도착한 것

입니다

개조 교슈사마가 부동법을 성만하셨던 다음 날인 7월 15일 총본산 제호사로부터 설립인허가증이 송부되었습니다 그 감격을 교슈사마는 『신뇨엔 기록』에도 다음과 같이 적고 계십니다

1938년 7월 15일

어제 불가사의한 빛을 느끼고 오늘 제호 총본산 은사이신

사에키 대승정님으로부터 다치카와 부동존 교회설립 인가증

이 하부되어 그 서류가 도착했다 어제 부동삼매법의 결원

에서 불가사의한 빛을 보았을 때 이 허가증이 발송된 것은

아닐까 수법험득(修法驗得)의 묘과(妙果)를 얻었다

부처님의 자비에 감사하며

보잘 것 없는 자에게 깨달음을 주셨네

그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정진하리라 텐세이(天晴)9

향후 설립에 있어서는 여러 가지 장애(법난)도 있을 것이다

이 장애를 극복함으로써 몸에 제천명호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것을 깊이 느꼈다

9) 교슈사마는 「신죠(眞乘)」라는 이름을 쓰기 전에 「텐세이(天晴)」라는 승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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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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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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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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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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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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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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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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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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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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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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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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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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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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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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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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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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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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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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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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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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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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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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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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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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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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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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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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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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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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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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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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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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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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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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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24: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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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면히 전해져 내려오는 비밀스러운 혈맥을 수행함으로써 부처님의 위신력은 엄연히 움직여 교회설립 인가증이 하부되었습니다 나아가 때맞춰 쇼쥬신인사마도 신도인사마도 건강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그 어떠한 어려움을 겪더라도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중생제도의 길을 관철하겠다는 각오를 「법에 따라 아내(토모지)와 함께 정진하겠다」고 노래에 담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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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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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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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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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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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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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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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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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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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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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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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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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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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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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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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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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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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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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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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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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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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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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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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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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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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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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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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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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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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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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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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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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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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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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25: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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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뇨 개조와

영조님(소오야사마)의 추억

신뇨 게이슈사마는 2012년 8월에 발간된 일본어 교지

『춘하추동』에서 같은 해 봄에 간사이본부에서 신뇨 소

오야사마를 그리워하는 추억을 술회하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승으로 모시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지고 있는 모습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이번에 수축된 간사이본부의 개안을 앞둔 3월 26일 열반존상 봉안 middot 가사노리님 진좌 베자이텐님 권청의 의식을 행하기 위해 저는 간사이본부로 갔습니다

느티나무로 만든 산문(山門)을 지나 모자상(母子像)이 놓여 있는 현관에서 보전 그리고 계단을 올라 영조가 천화하신 방에 들어서자 신뇨 소오야사마의 참마음이 담겨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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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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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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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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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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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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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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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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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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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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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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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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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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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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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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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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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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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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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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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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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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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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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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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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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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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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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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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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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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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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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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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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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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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26: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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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에서 살아계실 때의 부모님의 모습이 되살아나 가슴이 벅찼습니다

돌이켜 보면 신뇨 소오야사마는 간사이본부의 땅을 찾기 위해 동쪽 나라현에서 북쪽 오사카부 미노오를 서쪽으로는 코베 거리를 넘어 스마에 이르는 넓은 범위를 걸으셨습니다 그것도 한여름이었기 때문에 힘드셨다고 생각합니다

몇 군데를 돌아보시고는 총본부로 돌아오시어 ldquo저 곳은 이러 해서 좋지 않다rdquo ldquo여기는 환경이 좋으니까 괜찮겠다rdquo ldquo청정한 느낌이 든다rdquo ldquo교통편은 어떨까rdquo라고 다각적으로 검토를 거듭하시며 영적으로 쇼쥬신인사마가 느끼신 것과 교슈사마가 뵤제이쇼로 보신 것을 합쳐서 정하셨습니다

그리고 1963년 신뇨 소오야사마는 서일본 교도의 거점으로 효고현 아시야시의 영빈관이었던 만대장(萬代莊)과 결연 그 다음해 만대장은 교법 선설의 불사 간사이본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개조 교슈사마는 이 만대1장의 이름에서 「만대에 걸쳐 고요한 정사」라고 교시해 주셨습니다만 그 말씀처럼 간사이본부를 방문하여 조용히 기도하면 누구라도 마음이 치유되고 상주의 법부모의 법애를 느낄 수 있습니다

1) 일본어로 「영원 영구」라는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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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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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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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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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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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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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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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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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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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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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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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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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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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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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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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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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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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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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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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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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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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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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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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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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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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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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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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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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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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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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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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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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27: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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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자이텐님 권청에 대해

간사이본부가 수축되고 간사이에서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시고 상주하셨기 때문에 신뇨 소오야사마의 상주를 증명하기 위해 상주제와 수축개안법요를 함께 행했습니다

법모 영조 쇼쥬신인사마 생탄 백 년이었기에 간사이본부의 수축과 더불어 간사이본부에 모시고 있던 가사노리님의 개안도 올렸습니다만 지령계 수호신뿐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천지는 일체가 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 정원에 하얀 모래가 있었는데 거기에 이전에 새끼줄 같은 뱀2이 몇 번이나 나타나 신뇨 소오야사마가 ldquo죽이면 안 된다 수호의 신이니까rdquo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일이 번뜩이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래서 25일에 가사노리님을 천좌하고 더불어 하치다이베자이텐님도 모시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하여 급히 오야소노에서 베자이텐당의 암석과 옥석을 정화하고 베자이텐3의 분신으로써 기념을 담아 26일 아침 오야소노에서 권청하여 모시게 된 것입니다

가사노리님이 계시고 연못에 베자이텐님 세이료님이 모셔

2) 뱀은 베자이텐님의 동물의 화신이라고 여겨진다3) 당시의 간사이본부에는 하치다이베자이텐님의 신상은 모셔져 있지 않

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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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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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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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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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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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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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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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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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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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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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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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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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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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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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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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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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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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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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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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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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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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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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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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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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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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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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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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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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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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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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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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28: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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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장래에 지장님도 모셔지면 이곳은 성지 오야소노와 똑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간사이본부의 가사노리님

본래 지령계 호법선신님인 가사노리 이나리 다이묘진님이 용출한 것은 1938년 6월 8일로 오야소노가 성지로 정해진 신쵸지 지진제 때입니다 쇼쥬신인사마와 도사를 맡으셨던 우라노 호카이 스님이 신령의 강림을 느끼셨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9월 17일 쇼쥬신인의 생가인 우치타 집에 모셔진 이나리 다이묘진님을 오야소노로 섭수하여 수호신4으로써 성지 오야소노로 봉안하고 그 16년 후인 1954년 2월 7일 새롭게 가사노리님의 신전을 신쵸지에 낙성했습니다 그때까지는 신의 이름을 적은 표찰5을 신체로 모시고 있었는데 교슈사마가 노인의 모습을 한 가사노리님의 모습을 투시하고 그것을 목각의 존상으로 새겨 봉안 입혼하셨습니다

그 때의 명판에는 「가사노리님의 존상을 모시고 정법을 미래 영겁으로 호지하여 널리 구제가 퍼져 기쁨을 얻기를 바란다」는 서원과 함께 『신뇨엔 유지 대표 이토 신뇨』라고 새겨

4) 자세한 내용은 본호의 신뇨엔 역사를 참조5) 신불의 영혼이 깃든 것으로써 신상 대신에 소박한 부적과 나무패가

이용되는 경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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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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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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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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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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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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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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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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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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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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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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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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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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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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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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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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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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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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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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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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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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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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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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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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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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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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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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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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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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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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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29: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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져 있습니다 ldquo이토 신뇨rdquo란 1950년 쇼쥬신인사마가 신뇨 삼매야의 가행

을 법필하고 교슈사마가 법명으로써 『신뇨』라는 이름을 배수하였습니다 그 후 이 이름은 원주셨던 쇼쥬신인사마와 함께 신뇨엔 그 자체를 나타내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는 「나와 원주」 원주란 그 당시의 쇼쥬신인사마를 말합니다만 「나와 원주를 일체로 한 것이 바로 이토 신뇨입니다」라고 친교하셨습니다 소오야사마 그 자체가 바로 『신뇨』인 것입니다

이때의 가사노리님의 존상과 사당 그리고 명판이 지금의 간사이본부에 모셔져 있습니다 쇼쥬신인사마의 말씀에 「호법의 위신력은 대승의 정진에 나타난다」고 하셨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개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를 비롯하여 가족 주위의 분들께 살아가는 감사를 이타로 돌려드리는 것이 대승의 정진입니다 감사를 이타로 돌린다면 호법의 신들이 수호하여 주신다고 법모 쇼쥬신인사마는 가르쳐 주셨습니다

또한 호법선신님이라고 말하면 1970년 5월 제호사에서 세이료다이곤겐님이 신뇨엔에 안좌되셨습니다 지금도 오야소노 경내의 베자이텐당 안에 비불로서 모셔져 있습니다

그 해 10월에 교슈사마는 북미 개교를 위해 바다를 건너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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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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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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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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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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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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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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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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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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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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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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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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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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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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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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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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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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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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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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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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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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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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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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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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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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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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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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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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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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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30: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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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니다 이 때 해외 포교의 첫발을 내디디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슈사마가 융화세계 현현 세계평화 실현이라고 바라시며 북미로 향하게 되신 것도 세이료다이곤겐님과의 법연을 강하게 느낍니다 그것은 세이료님이 조화 사이좋게 화합의 역할을 하시는 호법선신님이기 때문입니다

해외로의 신전

개조 교슈사마가 미국에 가셨을 때 영조 쇼쥬신인사마가 천화하신 간사이본부가 있는 아시야시와 미국의 몬테베로시가 자매도시였던 인연으로 아시야시의 의뢰를 받아 교슈사마는 몬테베로시에 성덕태자상을 기증하셨습니다

불가사의하게도 북미 개교의 이 여행은 10월 6일 쇼쥬신인사마의 명일날에 일본을 출발하고 그리고 날짜변경선이 있는 관계로 미국에 도착한 날도 6일이었습니다 도중에 급유를 위해 하와이에 들른 날도 6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로스앤젤레스에서 몬테베로로 향했습니다

증정식에서 교슈사마는 ldquo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에 평화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상이 모든 차별을 넘어 세상의 평화를 가져오는 사자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rdquo라고 말씀하시고 미국과 일본의 융화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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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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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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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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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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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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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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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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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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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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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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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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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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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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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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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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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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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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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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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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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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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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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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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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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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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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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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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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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31: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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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세계평화의 실현을 위해 참마음을 다하셨습니다 그리고 교슈사마는 돌아오시는 길에 하와이로 발걸음을 옮

기시고 아리조나의 진주만에서 원친평등의 회향을 행하신 이래 가르침의 등불은 확대되어 지금도 세계로 가르침은 넓혀지고 있습니다

신뇨 소오야사마가 유럽으로 가시어 제교융화의 길을 여시고 돌아오신 후 쇼쥬신인사마는 몸 상태가 안 좋으신 상태로 ldquo간사이에서 기다리는 분이 계시니까rdquo라고 하시며 교슈사마와 함께 간사이본부로 발을 옮기셨습니다 그것은 모든 신뇨 교도 분들에게 그저 짧은 시간이라도 가르침을 전해가고 싶다는 신뇨 개조와 영조님의 바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합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마지막 친교에 「타인의 일이 아닌 자신의 일이라고 모든 것을 자신의 수행으로 받아들이며 서로에게 합장하고 일체가 되어 신뇨이치뇨(진여일여)로 정진해 갑시다」고 하셨습니다

남의 일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마련이지만 그것을 모두 나의 일이라고 받아들이라고 자신의 수행으로써 무슨 말을 듣거나 상대로부터 당하거나 하는 것은 나에게도 ldquo당할 만큼의 그 무엇이 있지 않을까rdquo라고 사유해 가라고 서로 합장하며 일체가 되어 그리고 신뇨이치뇨로 정진해 가자고 말씀하시며 사유와 합장의 모습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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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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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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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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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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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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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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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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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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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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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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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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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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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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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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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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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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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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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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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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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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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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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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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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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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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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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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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32: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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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몬테베로시의 해리 세퍼드 시장에게 교슈사마가 근각하신

성덕태자상을 기증 (1970년 10월)

교슈사마가 쇼쥬신인사마에 대해 기록한 수기 중에 「자신의 괴로움은 하나도 이야기하지 않고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대승이타를 위해 몸을 바쳐 가르침의 진수를 나타내 준 원주 쇼쥬신인에게 저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열반의 가르침에 나타나 있는 대로 대승이타 타인을 위해 바치신 마지막 한 순간까지도 가르침을 그대로 정진하신 쇼쥬신인사마셨습니다

교슈사마는 쇼쥬신인사마의 구제의 힘을 알기 쉽게 『세계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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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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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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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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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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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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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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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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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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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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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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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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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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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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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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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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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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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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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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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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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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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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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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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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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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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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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33: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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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발고대수』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때부터 여러 종교를 하시는 분들이 가르침과 맺어지고 진실로 이 가르침을 정진하게 되어 섭수의 힘 덕택으로 구제받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1964년 교슈사마가 「간사이본부 설정에 의해 교선은 신전된다」고 나타내 주셨듯이 교원의 수레바퀴는 해외 전국으로 크게 넓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사이본부는 유일하게 둘도 없는 보물로써 중요하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포교의 상징 포교의 성지로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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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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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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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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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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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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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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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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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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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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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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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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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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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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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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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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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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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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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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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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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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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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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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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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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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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34: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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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소개할 분은 영국인 교도인 아란 로스님의 체험

담입니다 가르침의 정진을 통해 과거의 아픈 경험을 극복

해 가는 체험담을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에게 전해드리기

위해 이 원고를 준비하던 중에 대환희를 상승하셨습니다

지금부터 제가 말씀 드리는 것은 제 본심 거짓 없이 솔직한 말임과 동시에 여러 가지 생각을 자신에게 상기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글을 읽으신다면 무거운 아픔의 마음을 견뎌온 마음의 외침이라는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

Ⅴ체험담

과거를 떨치고 다시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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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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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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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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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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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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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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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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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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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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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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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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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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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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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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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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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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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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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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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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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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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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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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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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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35: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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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도 이렇게 말함으로써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어느 누군가의 마음이 움직이고 지금 어떤 상황에 있을지라도 앞으로 나아갈 길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깨달아 주신다면 그것이 저의 가장 큰 바람입니다

제가 지금의 자신에게 다다르기까지 인생의 편력은 사춘기에 시작되었습니다 기독교 감리교회의 가정에서 자란 저이지만 사실은 그 교회에 있는 사람에게 몇 년에 걸쳐 말할 수 없는 취급을 받고 있었습니다 사춘기의 아픈 경험을 필사적으로 몰아내겠다고 벼르고 있던 반항기의 저는 도망치듯이 엘림middot오순절 교회로 소속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이쪽이 훨씬 재미있었습니다

그 후 개신교의 목사가 되기 위해 신학대학에서 공부했습니다만 그 과정을 수료하고도 자신의 과거의 쓰라린 경험이 아직도 마음에 상처로 남아 교회에서 사람을 인도하는 입장이 되자는 마음이 생기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대신 정신간호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후 하나 또 하나의 길을 잘못하여 선택해 좋은 기회를 몇 번이나 놓치고 부딪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27년이 흘렀을 때에는 혼자 고독하게 정신적으로도 파국을 맞고 있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언제나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해 왔던 자신이 무엇이 어떻게 되어 이런 상황으로 내 자신을 몰고 왔는지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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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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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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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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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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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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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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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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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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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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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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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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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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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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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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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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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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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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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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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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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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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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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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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36: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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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만약 15살이나 19살 때의 자신에게 이후에 내가 거쳐야 할 길에 대해 말을 한다면 반드시 ldquo내가 설마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지 절대로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어rdquo라고 말했겠죠

그래서 인생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굳이 말한다면 제 인생은 제트코스터에 타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17세에 처음으로 정점에 도달한 이후부터는 오르락 내리락을 초스피드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신뇨엔의 가르침과 만나 그곳에서의 경험을 통해 과거 그 자체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만 과거가 자신에게 미치는 영향은 바뀔 수 있다고 깨달았습니다 「지구를 멈춰라 나는 내리고 싶다」는 뮤지컬도 있습니다만 정말 저는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신뇨 가르침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 실제로 「내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필수품인 스트레스 죄악감 일상생활에서의 트라우마로부터 정말 해방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지난 일은 지난 일로 받아들이고 일상생활 속에서 좋은 곳으로 눈을 돌려 그것을 거듭 쌓아가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에게 내재되어 있는 선한 것을 인정하는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러한 가운데에서 누구나가 가지고 있는 선한 개성 불성이 자신에게도 있다는 것을 더 강하게 실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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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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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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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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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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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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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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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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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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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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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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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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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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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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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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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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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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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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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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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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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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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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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37: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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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조 신뇨 교슈사마의 친교1에「lsquo행한 만큼 정진한 만큼rsquo이라고 합니다만 행한 만큼 인연

이 정화됩니다 정진한 만큼 깊이 정화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승의 정진에 의해 정화되면 장애가 없어집니다 장애가 없어지면 기도가 깊어집니다 당연히 기쁨도 솟아오릅니다」고 하셨습니다

저 자신 마음이 해방되고 인생이 바뀌었다고 실감을 얻은 가장 구체적인 예로 10대 때에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저는 교회에서 모두의 신뢰와 존경을 받는 유력 인물에게 심한 일을 당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철저한 계획 위에 교묘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 몇 년에 걸쳐 다른 젊은이에게도 같은 일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 그 남자를 용서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만약 다시 만나게 되면 자신이 어떻게 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제 그 때처럼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제 자신을 지킬 수 없는 쉽게 뜻대로 되는 어린아이가 아님을 그에게 알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5년에 걸친 분노 갈등 고뇌 끝에 그 사람이 당연히 법의 심판을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만 그래도 분노는 수그러들지 않고 복수까지 생각하고 있던 제 자신이었습니다

1)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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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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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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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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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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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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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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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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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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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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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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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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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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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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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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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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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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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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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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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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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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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38: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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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뇌와 초조함으로 갈등하며 저 스스로가 자신의 인생을 깊은 곳에서부터 엉망으로 만들어 갔습니다 이 상태는 2008년 2월 신뇨엔에 입신하기 전까지 계속되었습니다 무의식 중에 쌓이는 마음의 아픔과 꼬리를 해결하지 못하는 복잡한 인연 때문이라고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저는 겁쟁이고 불안하고 집중력이 없고 지금과 비교해 보면 마치 조그마한 잔영으로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9년 전의 저라면 참지 못하는 감정과 거절될 것이라는 공포감이 너무 커서 이런 글을 쓰리라고는 엄두도 내지 못했겠지요 제 마음에 모든 것을 굳게 가두어 두는 것이 훨씬 편했습니다 일대 일 상황에서 혹은 그룹 속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의견을 말할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신뇨엔에서 책임 있는 역할을 맡아 리더십을 갖는다는 것은 ldquo내가 설마 할 수 없어요 미안해요rdquo라는 느낌일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씩 신뇨 가르침을 정진하면서 저는 인생을 크게 전환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어떤 상담과 우정 신앙으로는 도저히 얻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저를 보고 새로운 성격 새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가 하면 접심수행에 정진하면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덕택으로 제 안에 있는 불성에 눈을 뜰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신뇨 가르침에서 발고대수2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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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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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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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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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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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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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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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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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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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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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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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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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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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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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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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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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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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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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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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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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39: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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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리는 료도지사마(교도인사마 신도인사마)의 끊임없는 도움과 자비에 의해 짊어지고 있던 인연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되고 일상생활 속에서 제 자신보다 상대를 위해 먼저 노력하여 자신의 불성을 찾아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저는 저입니다만 신뇨엔에서 가르침을 받았던 정진 특히 접심수행을 통해서 자신의 일 자신의 장점이나 단점을 더욱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생각하지도 못했던 다른 시선으로 인생을 주시하며 정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회복지사에게 물어보면 어릴 때 큰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은 평생 후유증으로 괴로워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가르침은 이러한 체험으로부터 인연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인연이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아직 모릅니다 어쩌면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 곳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가르침과 맺어져 대승상승으로 정

2) 오늘날 신뇨엔에서 「발고대수」라고 불리는 힘은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의 타계를 통해 나타난 것으로써 신뇨 교도 사이에서는 열반경에 나타난 신통 불가사의한 힘(보살의 자비)이 나타난 것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신뇨의 가르침을 실천으로 나타내어 갈 때 실천자가 깨달음으로의 길을 정진하고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도록 발고대수의 힘이 현현된다 필자는 진지한 노력과 구체적인 실천을 통해 발고대수의 참마음을 현실에서 체험한 것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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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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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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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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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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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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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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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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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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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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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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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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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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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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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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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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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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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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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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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40: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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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이 시작되자 발고대수의 힘을 체험하게 되어 그 인연이 제 인생에 미치는 영향을 멈출 수 있게 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대승을 받은 후 제 정진은 벽에 부딪쳤습니다 영위향상의 에자의 영언은 제 자신이 과거의 무엇에 사로잡혀서 악 인연을 끊지 못하고 있다는 것 더욱이 전진하려고 하면 그것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 후 영능자가 제게 영언에 나타난 것에 정진하라고 친절하게 격려해 주셨습니다

후일 마침 방문한 포교사께 특별접심을 받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까지 받은 영언을 일상생활에서 실천하고자 「무상접심」의 노력을 거듭하고 이제 과거의 괴로운 경험을 드러내서 말할 때라고 확실히 느끼고 있었습니다 마음을 열어 갈 때라고 포교사는 제가 한마디 말을 하기도 전에 이미 그 상황의 무게를 영적으로 살피시며 애매하고 막연한 설명으로 숨어서는 안 된다고 자신의 기도 속에서 직접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께 이야기를 해 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날 그 방안에 누군가가 있었다고 저는 확실히 느꼈습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제 마음의 아픔이 시작된 그 때부터 계속 곁에 계셨다고 교슈사마가 정말로 상주하신다는 것을 지금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과거의 그 때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항상 우리들과 함께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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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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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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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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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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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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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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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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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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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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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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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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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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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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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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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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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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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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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41: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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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그리고 그 어떠한 힘든 괴로움도 교슈사마께 맡겨간다면 반드시 긍정적으로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이것이 그 날 감사 속에서 받은 영언의 주요한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실천으로 옮겼을 때의 결과는 대단했습니다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신경 쓰이지 않았습니다 결말 없는 문제라는 감각은 사라지고 과거와도 마음 편히 마주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교슈사마와 쇼쥬신인사마가 또한 교도인사마와 신도인사마가 참을성 있게 끈기 있게 지켜봐 주신 것에 깊은 감사를 느끼며 그 체험 자체에 대해서도 지금은 감사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자신의 집착을 버리고 불성을 찾아 가려고 노력하던 중에 잃어버린 인생을 되돌려야 한다거나 스스로 인생의 방향을 잡아야한다고 고민하는 일도 없어졌습니다 물론 아직 긴 인생이 남아 있고 자신을 바르게 해 가는 것도 항상 중요하지만 이제 어두운 인연의 씨가 잡초처럼 마음을 죄고 크게 마음의 성장을 방해하는 일은 사라졌습니다 실제로 해방된 기분입니다

영조 쇼쥬신인사마의 훌륭한 말씀3에 감명을 받았습니다「이 세상이 사바세계에 있는 한 슬픔과 고난이라는 암흑은

찾아옵니다 이럴 때 많은 사람들은 푸념과 불만과 한탄을 합

3) 신뇨엔 출판물 ldquo등명rdquo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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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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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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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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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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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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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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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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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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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50

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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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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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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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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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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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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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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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42: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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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다만 그것으로 고통이나 재난을 제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부처님의 마음을 믿고 감사를 갖고 정진을 관철해 갈 때 암흑은 없어지고 기쁨의 빛이 돌아옵니다」

과거의 아픔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그 과거가 누구 때문인지에 상관없이 결코 간단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저는 신뇨 가르침에 의해 지금까지의 인생 어깨를 맴도는 짐 때문에 당당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던(지금은 그것이 「윤회」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짐을 내리는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과거를 결코 지울 수는 없지만 과거에 시달리는 자신을 내려놓음으로써 이전보다 강한 마음 자신감 희망을 가지고 미래로 나아가는 새로운 자신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10년 전의 저를 아는 사람은 제가 얼마나 변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도 제가 기독교이며 동시에 신뇨엔의 불교도라고 생각합니다 자유롭게 그렇게 해도 된다고 격려해 주셨습니다 기독교에서 자라 정진한 것이 신뇨 가르침을 나름대로 이해하게 된 기반이 되었다는 것에 너무나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 안에 신앙의 모순은 없고 있는 것은 융화뿐입니다 그것은 교슈사마 그리고 특히 쇼쥬신인사마가 체현하신 신뇨엔의 가르침의 정신과 일치하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은 각자 신뇨 가르침의 여러 도정에 있어서 나아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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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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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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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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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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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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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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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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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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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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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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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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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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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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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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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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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43: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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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가르침의 거리가 각기 다르지만 정진하고 있는 길은 틀림없는 길입니다 게이슈사마가 길을 인도해 주시듯이 한마음으로 모두 다 함께 그 길을 정진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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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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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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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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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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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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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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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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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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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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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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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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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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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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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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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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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6월 발간된 일본어 계간지 환희세계 에 게재된

인터뷰에서 호마의 의의에 대한 시타라 미노루 국원의 말

씀을 소개합니다

- 신뇨엔의 호마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호마에는 상구보리와 하화중생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밀교이므로 자세하게는 말씀 드릴 수 없지만 호마의 전반부는 도사님이 관상과 진언과 밀인으로 부처님과 입아아입(入我我入)하여 일체가 되는 부처님을 향한 상구보리입니다 그리고 부

Ⅵ신뇨 교학 1

호마 - 정보리심의 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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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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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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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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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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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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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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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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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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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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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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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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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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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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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45: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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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님의 서원과 도사님의 바람이 하나가 되어 중생의 보리심 향상과 동시에 복리로써 공덕 효험이 도사님을 통해서 나타나므로 하화중생으로 물심양면 부여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호마는 일본에 밖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기원이 된 바라문교 현대에서는 힌두교나 티벳밀교에도 있습니다만 일본만큼 확실한 수행 또한 법요로써 이론과 실천의 양식이 갖추어진 장엄한 수법은 볼 수 없다고 듣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까지 확립된 호마를 현대에 전하는 것은 일본의 전통불교의 진언종과 천태종이 대표이고 그 사원에는 호마당이 있습니다만 본존과 수행자인 승려가 중심이므로 좁은 당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신뇨엔의 경우도 신쵸지나 응현원의 명왕의 방 등 호마를 올리는 도량은 넓지는 않습니다만 교도가 참석할 장소는 있습니다 어떠한 법요도 그렇습니다만 이것은 출가불교를 기반으로 한 재가불교입니다 신뇨 가르침에 있어서 중요한 점입니다 법요에 참석해서 경을 함께 올리고 법을 수법하는 것이 신뇨밀의 특징입니다 여러분은 재가이면서 출가승이 하고 있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즉 법요 중에 참석자도 함께 독경하며 기도하고 부처님과 입아아입을 하는 수행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마음이 부처님의 서원과 신뇨 소오야사마(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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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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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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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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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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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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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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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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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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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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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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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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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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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46: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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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와 영조) 료도지사마(교도인 middot 신도인사마) 그리고 도사 신뇨 게이슈사마의 기도와 하나가 되어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중생이 신뇨와 일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다른 종파의 호마에서는 구할 수 없습니다 신자는 단지 이익만을 받는 수동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이것은 신뇨엔의 호마와 타종파의 호마가 서로 다른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사무국으로서 도사님의 모습을 뵌 적이 있습니까

떠오르는 것은 신뇨 교슈사마가 호마를 끝내고 돌아오시면 ldquo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네rdquo라고 절실히 말씀하시는 일입니다 당시 젊었던 저에게도 말을 건네 주셨습니다 저는 힘드신 것도 깊은 참마음도 몰랐기 때문에 그저 ldquo네rdquo하고 답을 올렸습니다만 교슈사마가 ldquo아 다행이네rdquo라고 정말로 안심하시는 모습을 매번 뵈었습니다 교슈사마가 얼마나 큰 힘을 담으시고 모두의 마음의 성장과 효험을 기도해 주셨는지 그 깊이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호마는 육체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대단히 부담이 큽니다 입교에서부터 만년에 이르기까지 변함없이 전신전령으로 임하셨던 수법이 호마공이었고 교슈사마 게이슈사마의 호마를 올리시는 기도의 집중력은 헤아릴 수 없습니다 이제 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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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47

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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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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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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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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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52

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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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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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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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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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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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47: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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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사마와 게이슈사마가 그 영역으로 들어가시면 도사 자리에 앉으시는 순간 아니 앉지 않으셔도 항상 부처님과 입아아입하시며 일체가 되시고 신뇨의 공덕을 널리 펼치시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 호법선신님이 접심도량에 장엄된 올해 잘 인식해야 할

것이 있습니까

호마 용지에 「법락(法樂)」이 있습니다 이것은 호법선신님들을 공양하고 감사를 올린다는 뜻입니다 신뇨 교도는 매일 호법선신님에게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감사의 법락을 신청하면 호법선신님도 호마의 공덕을 입어 여러분의 수행의 성취를 위해서 움직여 주시고 정진이 방해를 받지 않도록 비록 인간적인 소원이라도 들어주십니다

신뇨 교도는 자신의 마음의 향상 상구보리를 하며 자신의 가능성을 넓힙니다 그리고 각자가 생활하는 장소에서 타인을 위해서 베풀려고 하는 노력 하화중생을 해 갑니다 이것이 사회 즉 도량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살리고 대승의 실천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 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호마를 부탁하면 힘이 현저하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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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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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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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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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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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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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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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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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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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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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57

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48: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47

자신을 살려가기 위해서 호마에는 여러 기원의 항목이 있습니다 자주 자신을 위해서는 부탁해서는 안 된다는 교화를 듣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조금 바꾸면 힘들어하고 있던 자신이 구제됨으로써 정진이 가능해지고 자신의 능력이 개발된다면 더욱더 세상이나 자신의 가까운 주위에 공헌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 기원이란 자신을 위해서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이타의 소원도 담겨져 있고 자리(自利)와 이타(利他)의 양면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교슈사마의 친교에 ldquo호마의 취지는 정보리심의 개발에 있다rdquo고 하셨습니다 힘을 받고 싶다고 부탁을 함으로써 스스로의 불성과 가능성을 개발하고 세상을 위해 사람을 위해 대승이타로 살아가는 자신이 되어갈 수 있게 됩니다

48

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49

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50

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51

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52

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53

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54

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55

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56

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57

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49: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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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식에 불타를 초대

먼 옛날 석가모니 부처님이 살아계셨을 때의 일입니다 ldquo내가 이 나라에서 가장 예쁜 최고의 미인을 너의 부인으로

맞아주겠다 그러니까 안심하고 이 나라를 굳건하게 통치해야 한다rdquo고 정반왕은 난타왕자1를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1) 난타왕자 자신도 굉장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아름다운 난타」라고 불렸다

Ⅵ신뇨 교학 2

상전법륜(常轉法輪)

불타의 제자들

마지못해 제자가 된 난타

49

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50

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51

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52

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53

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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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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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56

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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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50: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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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타는 마하파사파제가 낳은 자식으로 석존과는 10살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이복동생입니다 작은 나라를 대국으로 만들기 위해 그 꿈을 맡겼던 싯다르타 태자가 출가해 버렸기 때문에 왕은 얼굴이 닮은 동생 난타에게 희망을 품고 있었습니다

ldquo싯다르타 태자가 드디어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인도 제일의 대국인 마갈타국에서 가르침을 넓히고 있다 빈바사라왕도 귀의하고 죽림정사를 기진했다rdquo

이러한 소문이 퍼질 무렵 난타도 훌륭한 성인이 되었습니다 부왕의 약속대로 신부 찾기가 시작되고 아름다운 여성이 왕비로 채택되었습니다 난타도 기뻐했습니다

한편 급고독장자의 요구에 응해 불타는 인도 제2의 대국인 교살라로 순교를 가신다는 이야기가 들어왔습니다 교살라국은 가비라성 바로 옆이었습니다

정반왕은 부디 불타를 초대하여 난타의 결혼식을 올리려고 생각하고 기원정사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지금까지 초대를 거절했던 세존도 이번에는 승낙했습니다 성도에서 6년 출가에서 실로 12년 만에 드디어 석존의 귀국이 성사되었습니다

불타가 고향에 도착하자 바로 성대한 결혼식이 행해졌습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세존은 난타 앞으로 나아가 자신의 발우를 내미시고 그것을 난타가 반사적으로 받자 뒤를 돌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50

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51

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52

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53

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54

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55

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56

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57

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51: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50

수도

왕국 지명

ldquo형님 무엇입니까 이 발우를 어떻게 할까요rdquo난타는 놀라서 물었지만 세존은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하실 뿐입니다 어쩔 수 없이 난타도 발우를 가지고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옷을 갈아입고 머리를 빗고 있던 신부는 두 명의 모습을 보고 무언가 불안한 마음이 들어 ldquo왕자님 어디에 가십니까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고 창으로 몸을 내밀며 외쳤습니다

ldquo불타를 배웅하고 바로 돌아오리다rdquo그러나 난타는 교외에 있는 수행림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51

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52

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53

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54

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55

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56

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57

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52: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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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들에게 환영을 받고 세존 곁에 앉은 난타가 발우를 돌려드리고 돌아가려고 하자 ldquo잠시만 기다려 주세요rdquo라고 모두가 말렸습니다 어찌어찌 나갈 기회를 잃은 난타에게 세존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ldquo세간의 생활에는 욕망이 많고 노병사의 고뇌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출가의 몸에는 집착이 없고 해탈의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어떠하냐 훌륭하지 않느냐 너는 어떻게 생각하느냐rdquo

존경하는 형의 말에 반론할 마음은 없었지만 빨리 신부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난타는 일단

ldquo네 진심으로 귀한 일입니다 저도 언젠가 이러한 마음이 들었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오늘은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rdquo

이렇게 답하고 끝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세존은ldquo그래 그렇군 그렇다면 소원을 들어주지rdquo미소를 지으며 옆에 있는 제자에게 신호를 보내셨습니다기다리고 있던 비구는 살며시 난타 곁으로 다가가 갑자기

머리를 자르려고 했습니다ldquo이 무슨 짓이냐rdquo 깜짝 놀란 난타를 뒤로하고 삭발은 그

대로 행해져 눈 깜짝할 사이에 반질반질한 머리가 되어버렸습니다 난타는 멀리서 ldquo난타 난타rdquo라고 이름을 부르는 신부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

52

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53

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54

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55

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56

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57

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53: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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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고 관념한 난타에게 석존은 스스로 계를 받게 하고 비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가르침에 살아가는 일은 귀하다고 말하면 그만인데 왜 이렇게 강인한 행동을 했을까요 아니면 세존은 먼 장래에 일어날 석가족 섬멸이라는 비극을 바로 예감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귀 저편에 남아있는 신부의 목소리

이렇게 출가한 난타인데 남겨 둔 신부가 잊혀지질 않아 수행을 익힐 수가 없었습니다 기도를 하려고 눈을 감으면 신부의 얼굴이 떠오르고 ldquo왕자님 빨리 돌아오세요rdquo라는 목소리가 귀 저편에서 떠나질 않는 것입니다 매일 마음을 졸이며 지내고 있는 사이에 난타는 몰라보게 야위어 갔습니다

함께 수행하고 있던 비구가 걱정이 되어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얼굴색이 많이 안 좋은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rdquo난타는 속마음을 털어놓았습니다ldquo저는 조금도 기쁨을 가질 수 없습니다 결혼식 도중에 홀

53

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54

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55

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56

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57

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Copyright by Shinnyo-en

발행처 신뇨엔 한국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 97길 46 인쇄처 도서출판 홍경

이 발간물은 RESONANCE NO19sdotDecember 2015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Page 54: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 2016-06-27 · 들으라, 찾아내라, 깨달으라 법의 울림 No.14호부터 부제목으로 싣게 되었습니다. 이 부제목은

53

로 남겨둔 아내가 신경이 쓰여 아무래도 수행에 집중할 수 없습니다 더 이상 너무나 괴로워서 집으로 도망가고 싶었던 적이 몇 번인지 모릅니다rdquo

심각한 표정을 보고 비구들은 바로 불타에게 보고했습니다 가엽게 여기신 세존은 난타를 불러 신통으로 그의 마음을 잘 관찰하시고 나서 말씀하셨습니다

ldquo난타여 가르침의 기쁨을 맛보고 있느냐rdquoldquo기쁨 같은 것은 없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가고 싶습니다rdquoldquo가엽게도 너는 지쳐있구나 때로는 휴식도 필요하지 오늘

은 설산에라도 가보지 않을 테냐rdquoldquo세존이시여 그런 농담을 그토록 먼 곳을 어떻게 갈 수

있겠습니까rdquoldquo걱정 없다 나를 단단하게 잡고 있거라rdquo세존은 난타의 팔을 잡고 신통력으로 한번에 설산 정상으로

날아오르셨습니다 그런데 그 도중에 산불이 나서 검은 연기가 치솟고 있었습니다 들여다보자 그 안에는 털이 이쪽저쪽 다 타버린 한 마리의 원숭이가 도망쳐 나오고 있었습니다

ldquo저 원숭이를 보았느냐rdquo라고 세존이 물으셨습니다ldquo네 보았습니다 참혹한 모습이네요rdquoldquo너의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난타는 야속하여 부루퉁하게 답했습니다

54

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오늘은 특별히 너에게 삼십삼천을 보여주겠다 나를 단단히 붙들어라rdquo

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55

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56

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57

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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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비교도 안 됩니다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저의 아내가 아름답습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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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이 말을 끝낸 순간 두 사람은 삼십삼천에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바로 천국의 아름다운 화원이었습니다

마침 신들의 왕인 제석천이 오백 명의 천녀들을 데리고 놀러 왔던 참이었습니다 빛나는 천녀들을 가까이 보고 나서 세존은 또 물으셨습니다

ldquo난타여 저 천녀들을 보았느냐rdquoldquo네 보았습니다 눈부실 뿐입니다rdquoldquo네가 자만하는 아내와 비교해 어떠하냐rdquoldquo아무리 제 아내이지만 발밑에도 못 쫓아갑니다 이 천녀들

을 보면 제 아내는 조금 전의 원숭이와 같습니다 천녀 쪽이 백배 천배 그 이상으로 아름답습니다rdquo

천녀를 구하며 수행에 노력

너무나 솔직한 난타의 답변에 세존은 쓴웃음을 지으시며 ldquo어떠하냐 이러한 천녀를 내 것으로 하고 싶지 않느냐rdquo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난타의 얼굴이 빛납니다

55

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56

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57

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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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아니 그런 일이 가능합니까rdquoldquo물론이다 단지 지금 이대로는 불가능하다 내가 설하는

범행을 단단히 익히고 아라한의 지위를 얻는다면 신통으로 언제나 가능하다 약속하마rdquo

이것을 듣고 난타는 처음으로 기쁨이 솟았습니다 그렇게 집착하던 아내의 일도 다 잊고 정사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기꺼이 수행에 힘쓰게 되었습니다 여러 집착도 불만도 일단 다 제쳐놓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사이에 난타의 기도는 점차 깊어지고 수행의 성과도 올라가 조금씩 신통도 몸에 붙게 되었습니다 늦었지만 가르침의 훌륭함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습니다

주위의 비구들은 그러한 난타를 보고 물었습니다ldquo친구여 최근 당신의 얼굴에 희망이 가득하고 수행도 잘 하

고 있는 것 같은데 대체 어떠한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까rdquo

56

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모두 비판과 경멸의 눈빛으로 떠나가 버렸습니다난타는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역시 자신이 잘못했다고 깊이

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실의 감사와 기쁨을 알게 되었습니

57

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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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dquo실은 이 수행을 완성하면 삼십삼천의 아름다운 천녀를 내 것으로 할 수 있습니다 세존도 보증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수행이 즐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rdquo

난타는 정직하게 답했습니다 그러나 비구들은 기가 차서ldquo뭐라고 청정한 가르침 속에서 그런 미녀들의 욕망을 위해

서 수행을 하고 있다니helliphelliprdquoldquo당신은 천녀를 갖기 위해 범행을 익히고 있는 것입니까

그래도 불타의 제자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면 돈을 위해서 일하는 상인과 다를 것이 없지 않습니까 그런 마음을 버리지 않는다면 아라한을 얻을 수 없습니다rdqu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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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성했습니다 자기 본위의 소원을 다 버리고 나중 일은 불타에게 맡기자고 마음을 정하고 정진에 철저히 노력한 결과 드디어 마지막 벽을 깨고 아라한의 경지를 열 수 있었습니다

해탈의 경지의 훌륭함 안심과 힘과 기쁨과 부처님의 자비에 가득 차 처음으로 천녀들에게 눈이 현혹되었던 자신이 바보처럼 느껴졌습니다

난타는 세존 곁으로 달려가서 말했습니다ldquo세존이시여 말씀하신 대로 범행을 익히고 드디어 아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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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이제 너에게 번뇌는 존재하지 않으니까rdquo이렇게 말씀하시고 세존은 정말로 기뻐하셨습니다더욱이 제자들을 향해서 그의 노력을 칭찬하시며ldquo내 제자 중에 제근(諸根)을 갖추고 조복(調伏)하는 자의 제

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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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이제 이전의 약속을 취소하고 싶습니다rdquoldquo그러하냐 그렇다면 나도 이제 그 약속에서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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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은 난타이다 그야말로 진실로 비구이다rdquo라고 선설하셨으므로 모두 난타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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