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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나이 일곱 무렵에, 나는 심리검사를 받았다. 결과는‘측정 불가였다. 나는 결과를 보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측정 불가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어른들의 의견을 물었다. 선생님은 대답했다. 검사를 성의 없게 했으니까 그런 결과나 나온 거겠지. 성의 있게 참여하라니까.나는 혼란스러웠다. 성의 있게 참여했는데.. 나는 혹시나 당시의 기분이 영향이 있었나 싶어 다시 간이 검사를 해보았다. 그러나 역시 결과는‘측정 불가. 이번에는 엄마의 의견을 물었다. 어른들은 내가 원하는지 항상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엄마에게 번이나 직업적성검사를 했는데도 결과가 다‘측정불가나왔는데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해야 할까를 물었다. 엄마는 직업심리검사 같은 것은 무시하고 차라리 수능 준비와 스펙 쌓기에 전념하라고 했다. , 어중이떠중이인 나는 공부나 해야겠구나. 어른들에게 내가 원하는 상담을 바라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생각 않고 그대로 공부만 했다. 남들이 하는 대로 스펙을 쌓고 수능의 언어, 수리, 외국어, 사회 탐구 영역을 골고루 공부했다. 아무 생각 없이 공부를 하면서도 이따금씩 친구들에게 적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대답은 같았다. “우리가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그냥 성적에 맞춰 전략적으로 대학이나 가야지 .어차피 내가 원하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기에 나도 그쯤이면 이야기를 멈췄다. 그리고 다같이 독서실에서 공부를 시작하고는 했다.

La petite princes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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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열 일곱 살 무렵에, 나는 심리검사를 받았다. 결과는‘측정

불가’였다.

나는 그 결과를 보고 곰곰이 생각했다. 그리고‘측정 불가’라는 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하고 어른들의 의견을 물었다. 선생님은

대답했다.

“검사를 성의 없게 했으니까 그런 결과나 나온 거겠지. 성의 있게

참여하라니까.”

나는 혼란스러웠다. 성의 있게 참여했는데..

나는 혹시나 그 당시의 내 기분이 영향이 있었나 싶어 다시 간이

검사를 해보았다. 그러나 역시 결과는‘측정 불가’. 이번에는 엄마의

의견을 물었다. 어른들은 내가 뭘 원하는지 항상 설명을 해주어야

했다. 엄마에게 두 번이나 직업적성검사를 했는데도 결과가 두 번

다‘측정불가’라 나왔는데 이 결과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생각해야 할까를

물었다. 엄마는 직업심리검사 같은 것은 무시하고 차라리 수능 준비와

스펙 쌓기에 전념하라고 했다. 아, 어중이떠중이인 나는 공부나

해야겠구나. 어른들에게 내가 원하는 상담을 바라는 것은 힘겨운

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별 생각 않고 말 그대로 공부만 했다. 남들이 하는 대로

스펙을 쌓고 수능의 언어, 수리, 외국어, 사회 탐구 영역을 골고루

공부했다. 아무 생각 없이 공부를 하면서도 이따금씩 친구들에게 내

적성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지만 대답은 같았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겠어. 그냥 성적에 맞춰 전략적으로

대학이나 가야지 뭐.”

어차피 내가 원하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을 것을 알고 있기에 나도

그쯤이면 이야기를 멈췄다. 그리고 다같이 독서실에서 또 공부를

시작하고는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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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얼마 되지 않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리고 수능 이후 원서를

작성해야 할 때가 왔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내가

가고 싶은 학과에 원서를 제출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리고 나 혼자

부담을 감당할 작정이었다. 남에겐 작겠지만 나에게 인생이 달린 것만

같은 문제였다. 원서를 작성하기까지 불과 열흘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다 잠에 들었나 싶었을 때, 나는 작지만 이상하게도

단호한 목소리를 들었다.

“너도 모르고 있네”

뭐지. 어디서 나는 소리일까.

“넌 네가 뭘 하고 싶은지 전혀 모르고 있잖아.”

“전혀는 아니야.”

나는 아무 생각 없이 대답을 해버렸다.

“그래? 그럼 네가 하고 싶은 게 뭔데? 잘하는 건 뭐야?”

나는 아이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내가 잘하는 게 뭐였지. 원의 공식

활용해서 문제풀기, 생각하며 읽기, 이런 것 말고 내가 즐겨 할 수 있는

건 뭐지.

난 이상한 아이와 시답잖은 이야기를 할 시간이 없었다. 내가 가고

싶으면서도 합격 확률이 어느 정도 되는 과를 탐색하는 것 만으로도

머리가 터질 지경이었던 나는 아이에게 대충 대답을 해주었다.

“그래, 나 아무 것도 모른다.”

아이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내가 잘 찾아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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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린 아이는 그 후로도 나를 매일 밤마다 찾아왔다. 그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나는 나의 성적이나 성격, 선호 등은 모두

말해주었지만 정작 그 아이의 정체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었다. 심지어

여자인지 남자인지도. 단지 인형을 좋아했다는 점에서 내가 여자라고

추측했을 뿐이었다.

“언수외사? 이건 뭐야? 등급? 백분율?”

“과목별로 내가 뭘 잘하는지 평가 받는 거야.”

“무슨 평가?”

“이 과목들을 골고루 잘해야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어.”

“아, 우리와는 다르구나.”

아이가 이제야 자신의 이야기를 하려는 순간이었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나는 캐물었다.

“너네는 어떻게 하는데?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는데?”

“우린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고르면 그냥 그걸 하면 돼. 우리 별은

너무 커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고르기만 한다면 거의 다 할 수 있게

해주거든.”

“별이 얼마나 크길래?”

“글쎄, 그건 모르겠어. 그냥 끝없이 이어져있어. 난 빛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없어지는 걸 여행을 떠나고 처음 봤거든.”

“빛? 태양이 지고 뜨는 걸 말하는 거야? 여행을 떠났다고? 무슨

여행?”

“응. 그런 것 같더라. 태양.”

“여행은 무슨 여행?”

“난 장미를 피우지 못했어.”

“응??”

아이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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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후의 대화를 통해 그 어린 아이에 대한 것을 꽤나 알 수

있었다. 그 아이는 지구가 아닌 아예 다른 별에서 온 것이고, 그 별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는 별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여러 가지 체험을 하게 하여 사회에 나갈 때쯤엔 자기가

잘하거나 좋아하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

아이는 혼자만 장래를 결정하지 못해 별에서 여행을 떠나도록 시킨

것이었다.

“그래도 너네는 좋겠다. 많은 체험을 할 수 있는 게 어디야.”

“아니, 난 싫었어. 어떤 걸 해봐도 날 흥미롭게 만드는 일이 없었거든.

난 내가 잘하는 것보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

“그럼 넌 아직도 네가 좋아하는 일을 못 찾은 거야? 그래서 아직도

여행을 하고 다니는 거고?”

“응. 근데 이제 여행이 끝나가는 것 같아.”

아이는 내게 처음 보였던 그 미소를 다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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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는 생각보다 다양한 곳을 다녀왔다고 했다. 아이가 첫 번째로

간 곳은 역사관이었다. 역사관은 별에서는 다루지 못했던 분야에 대해

다루고 있었다. 돌아다니면서 자신이 흥미를 가질만한 분야를 살펴보고

흥미가 생긴다면 그 역사관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행을

떠나왔다고 해서 어떤 것에도 흥미를 가지지 못하던 아이가 갑자기 어떤

분야에 흥미를 가지기란 어려웠다. 그러다 어떤 동영상이 아이의 눈을

이끌었다.

고대부터 지금까지 우리가 어떤 매체를 활용해 공부를 해왔는지를

보여주는 영상이었다. 특별한 영상은 아니었지만 갑자기 그 영상에 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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갔던 아이는 마지막에 비춰진 미래의 교육 방법을 보고 그 분야의

역사관에 들어갔다.

교육공학관

“교육공학이 뭐지? 교육이랑 공학이 섞이면 어떤 게 나오는 거지?”

교육공학에 대해 자세히 생각하기 이전에 아이는 아까 본 영상에 대한

내용을 좀 더 훑어보았다.

교육공학은 감각적 실학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

교육공학은 시각교육, 시청각교육, 교수공학, 교육공학 순으로

발전하였다.

시각교육은 언어를 중심으로 하는 교육에서 탈피하여 학습 경험을

비교적 구체적으로 할 수 있도록 시각자료를 활용하는 것이다.

시청각교육은 시각자료에 청각적인 요소가 가미되어 조금 더 구체적인

자료를 제공하여 효과적인 학습이 이루어지게 하였다.

교수공학은 교육공학과 혼용되어 사용되기도 하지만 엄밀하게는

교수공학은 교육과정에 과학기술을 도입한 초기 과정이고, 교육공학은

교수공학 개념에 학습에 대한 포괄적인 설계, 개발, 활용 등의 의미가

포함된다.

“아, 우리가 자주 사용하던 이런 자료들도 나름의 과정을 거쳐 발전한

것이었네. 시각교육에 대한 개념이 생긴 것도 1900년대 초반인데 난

벌써 저런 자료를 활용하는 것에 어색함이 없는 걸 보니 그 동안 많은

선생님들의 노력과 수고가 있었겠구나. 하긴 우리 선생님은 최대한

다양한 자료를 보여주시려고 했지. 흥미를 유발하는 동영상뿐만 아니라

멀티미디어 자료 등 구체적으로 배우는 내용을 알 수 있게 해주셨어.

그런 결과가 다 저런 과정을 거친 것이었다니.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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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는 과거와 현재 선생님들께서 얼마나 수업 하나하나에 애를

쓰셨는지를 절감했다. 아이는 이번에는 그 중 가장 모호했던 감각적

실학주의에 대한 곳에 들어갔다.

감각적 실학주의란 교육에 있어 학습자들이 감각적인 경험을 하게

해주어야 한다는 이론이다.

“아, 감각적 실학주의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이 그 말이었구나.

학습자들이 감각적인 경험을 하게 해준다는 말이었어. 그래서 후에

시각자료나 시청각자료가 등장했던 거구나. 아, 특히 코메니우스라는

분은 개인의 흥미나 수준을 고려해서 학습의 순서까지 조절해야 한다고

하셨네. 감각적 실학주의의 기초를 세운 거나 다름 없어. 오, 이

세계도회가 최초로 그림을 그려서 설명한 거래. 완전 신기하다. 세계

최초의 그림 교과서라니, 진짜 대단하다. 난 교과서에 그림이 있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생각해보니 이것도 시작이 있었겠구나. 남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최초로 만든 사람일수록 대단한 것인데,

코메니우스라는 분께서는 정말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어린 아이는 계속 감탄사를 내뱉었다.

즉, 교육공학은 적절한 과학기술적인 과정과 자원을 창출하고,

활용하고, 관리함으로써 학습을 촉진하고 수행을 향상시키기 위해

연구하고 윤리적으로 실천하는 학문이다.

“흠.. 그래도 정의 자체는 어렵네..”

계속 진행하시겠습니까

이 분야에 대해 다음 별로 이동하여 다음 단계를 진행하겠냐는

의미였다. 어린 아이는 아직 확실히 흥미가 생겼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여전히 관심이 있다고는 할 수 있었다. 최대한 다양한 분야를 접해보는

것이 목적이었기 때문에 어린 아이는 이동하기로 결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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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떤 걸 가르쳐줄까, 하는 마음으로 어린 아이는 별에 들어섰다.

“저는 아무래도 학습자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행동만으로는 학습자의 변화를 확실히 알 수 없다니까요. 학습자의

정신적인 부분을 봐야 합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행동변화를 산출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결국 저의 둘 다 아우를 수 있는 저의 이론이 맞는 것 같군요,”

어린 아이는 종잡을 수가 없었다. 여긴 뭘 하는 별이고, 자신이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저기.. 전 교육공학에 관심이 생겨서 찾아왔는데요.. 여긴 무엇을

하는 곳이죠?”

“오! 일년에 네 명 정도 온다는 학생이 드디어 왔구나!”

“네, 그런 생소한 점도 제 맘에 들었거든요. 그런데 여긴 무엇을 하는

곳이죠?”

“네가 우리의 이론을 듣고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는 이론을

골라주렴. 우리의 이론은 인간이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단다.”

“그럼 나부터 시작하지.”

아이는 아직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지만 자리를 잡고 들을 준비를

하였다.

“아까 비고츠키 교수가 말했던 것처럼 우리는 인간의 학습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학습이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이지. 인간이 자신의

학습환경을 어떻게 활용하고 상호작용할 지를 연구하는 거야. 난

학습이론 중 원조라고 할 수 있는 행동주의를 대표해서 나온 스키너라고

하네. 우리 행동주의 학자들은 학습자들의 행동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믿지. 행동이야말로 가장 객관적으로 수량화할 수 있기 때문이야. 물론

저기 다른 교수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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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습자들의 행동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학습 내용이 구조화되어

순서대로 제공되어야 을 때에는 긍정적인 강화를 체험하게 하여 추후에

자율적으로 긍정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해. 만약 학습자가 긍정적인

행동을 하지 못한다면 할 수 있을 때까지 반복하게 하여 자발적으로

긍정적인 행동을 할 수 있게 하지.”

“파블로프의 개 실험과 비슷한 맥락이군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하지만 나는 쥐로 실험을 진행했어. 훗날의

사람들은 스키너 상자라고 부르더군. 꽤 유명한 것 같던데. 참 좋은

실험이었다고 말이야.”

“스키너, 너 말고도 두 명이 남아있어. 자랑은 그만하고 어서

진행하게!”

“알았어, 알았다고. 내가 한 실험은 쥐에게 긍정적인 강화를 하여

작동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거였지.”

“작동적 반응이요?”

“조작되어 있는 환경에 맞춰 학습자의 긍정적인 행동이 일어나게끔

한다는 거지. 실제로 쥐는 상자 안에서 움직이다가 지렛대를 누를 때마다

먹이가 나오는 것을 깨닫고 배가 고프면 지렛대를 스스로 눌렀지.

긍정적인 강화를 통해 긍정적인 행동을 고정한 거야.”

“그럼 행동주의는 어떻게 수업에 적용될 수 있죠?”

“학습을 하는 과정에서 긍정적인 행동을 할 수 있도록 계속

지시사항을 제공해야 해. 소그룹을 형성하여 교사가 지속적으로 피드백을

해줄 수 있지. 아니면 학습자 간에 피드백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도

방법이야.”

“우와, 굉장히 멋진 이론이에요.”

“흠, 나의 이론을 들어본다면 너의 생각이 달라질 거야. 행동주의는

학습자의 내적인 변화를 간과했거든. 그리고 성인 학습자에게는 적용하기

어렵다는 점도 있고. 나의 인지주의 이론은 행동주의의 이런 단점을

보완하였지. 내 이름은 피아제야.”

“그럼 인지주의 이론은 학습자의 내적인 부분까지도 고려한

것인가요?”

“그렇지. 인지주의 이론은 학습자의 내적인 정신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학습자가 이전에 갖춘 지식에 새로운 지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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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기적으로 연결하여 새로운 지식을 단단하게 다져야 한다는 거야. 난

여기서 스키마라는 개념을 도입하였어.”

“자랑은 하지 말라더니”

“스키너, 스키마는 내가 자랑을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 인지주의에

있어 매우 중요한 개념이야. 하여튼, 스키마는 학습자들의 머리 속에

있는 인지 구조라고 할 수 있어. 학습자들은 학습이나 다양한 경험을

통해 지식을 쌓고 스키마를 단단하게 구조화하여 정렬하는 거지. 후대

사람들은 마인드 맵 등을 통해 스키마를 구조화하더군. 하지만 마인드 맵

뿐만 아니라 학습 내용을 학습자가 알아보기 쉽게 내용을 구성한다면

학습자들에게 인지주의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지.”

“아, 저도 마인드 맵으로 많이 공부를 했어요! 그리고 차례를 잘

정리하면서 공부하면 체계가 잘 잡히는 것 같아 효율적으로 공부할 수

있었어요.”

“거봐, 나의 이론을 들으면 생각이 바뀔 거라고 했지?”

“흠, 피아제, 나의 이론을 들으면 이 학생의 생각은 또 바뀔 수도

있어. 난 아까도 소개했지만 비고츠키라고 해. 난 행동주의와 인지주의를

아우르는 구성주의를 따르는 학자이지. 난 특히 상호작용을 통한 학습을

중시해. 실제발달수준에서 잠재발달수준에 이르기까지 비계가 도움을

준다고 보는 거야. 비계가 학습 과정에 있어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거지.”

“비고츠키, 조금 더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것 같은데. 예를 들면

스키너 상자 같은..”

“아, 아무래도 그럴 참이었네. 내가 알아서 한다고, 스키너.

실제발달수준이란 학습자가 이미 갖추고 있는 지식 수준을 말해.

잠재발달수준이란 교사의 도움을 통해 더 발전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하는

거고. 비계는 교사나 아무 도움을 주는 자가 실제발달수준을

잠재발달수준의 영역까지 확장하는 데에 도움을 준다는 거야.”

“음.. 그래도 이해가 잘 되지 않아요. 용어가 복잡해서인지 이해하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실제 수업에서 구성주의가 어떻게 적용되는 지를 얘기해줄게. 그럼

좀 파악할 수 있을거야.

실제 수업에서는 문제기반학습으로서 활용될 수 있어. 학습자들과

교사가 주어진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떠올리며 문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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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결해보도록 하는 거야. 직접 문제 상황에 참여하고 다른 학습자들의

의견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학습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돼. 다른

학습자들에게서도 배울 수 있다는 점은 협력학습에도 해당된다고 할 수

있지. 협력학습 역시 문제기반학습과 같이 구성주의에 바탕을 둔 교육

방법이야. 협력학습은 단순한 지식을 넘어 커뮤니케이션 기술이나 창의적

사고력까지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이야. 학습자들을 이런 학습 과정을

거쳐 점차 간단한 문제뿐만 아니라 복잡한 문제까지도 해결할 수도 있지.”

“아, 조금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조를

짜주시면 조원끼리 제시된 문제에 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많이

가졌었어요.”

“그렇지, 그런 토론을 넘어 팀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도 구성주의에

바탕을 둔 학습 방법이라고 할 수 있어. 그럼 넌 어떤 학습이론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하니?”

“음.. 저는 꼭 한 가지만을 선택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지식 수준이

낮은 학습자에게는 행동주의가 적합할 것 같고, 어느 정도 지식을 처리할

수 있는 수준이 된다면 인지주의가 적합할 것 같아요. 구성주의는

학습자가 이미 갖추고 있는 지식이 꽤 많아야 적용할 수 있을 것 같고요.

그래서 꼭 한 가지 학습이론만을 설정하여 학습자들에게 적용하기

보다는 학습자들의 개인 특성을 반영하여 세 가지 이론을 절충해서

수업을 구성하는 것이 좋은 것 같아요.”

“그럼, 그게 사실 정답이지. 어떤 이론도 정확한 답은 될 수 없어.

그래도 네 마음에 가장 만족스러운 이론이 있지 않겠니?”

“음.. 제가 제일 좋아하는 학습이론은 인지주의이기는 해요. 저는

배워야 할 내용을 구조화해서 차례를 정하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그런

식으로 공부하면 머리 속에 내용이 차곡차곡 정리되는 느낌이거든요.

피아제 교수님께서 말씀해주신 그 스키마를 형성하는 거죠. 사실 저는

스키마라는 개념은 잘 몰랐는데 생각해보니 스키마를 형성하는 공부

방법이 제게는 잘 맞는 것 같아요. 여태까지 스키마를 형성하는 방법으로

공부를 해왔고요.”

“오, 아주 훌륭한 학생이군. 스스로 스키마를 형성할 줄 알다니, 아주

훌륭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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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 감사해요. 아, 그리고 저는 구성주의를 바탕으로 한 협력학습도

좋아요. 팀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이 힘들기는 하지만 이루는 과정에서

조원끼리 이야기를 하다가 좋은 아이디어가 도출되었을 때의 기쁨이

정말 좋더라고요.”

“흠.. 그럼 행동주의는 별로인 거니?”

“행동주의 이론은 조금 원시적인 것 같아요. 학습자들이 어리다면

아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수준이 높거나 나이가 있는

학습자들에게는 반감을 살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이번 학생에 있어서는 인지주의와 구성주의의 공동우승이네!

스키너는 분발해야겠고 하고 말이야.”

“다음 학생은 어떻게 될 지 모른다고, 피아제. 이번 학생이

행동주의를 그렇게 평가하는 건 유감스럽지만 말이야. ”

이어 교수들의 잡담이 이어졌다. 어린 아이는 흥미로웠다. 자신이

받았던 교육들이 다 이런 학습이론에 기초해있었다니, 매우 놀라웠다.

이젠 교육공학에 흥미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는

빨리 다음 별로 가서 다른 내용을 배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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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내가 놀라운 거 말해줄까?”

한참 이야기를 재미있게 듣던 나는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기에 빨리

말하라고 재촉했다.

“내가 가는 길에 우리 고향 별에 잠깐 들렀거든. 아주 잠깐.”

“응, 근데?”

“근데 싹도 나지 않았던 나의 장미가 싹을 틔우려고 하고 있는 거야.

흙을 뚫고 조금씩 나오려는 싹이 보이는데 다른 아이들의 싹과는 달리

줄기가 꽤 굵었어.”

난 장미 이야기에는 관심이 없었다. 빨리 화제를 돌리고 싶었다.

“아, 그렇구나. 그럼 너네 별 가서는 뭐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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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랑 얘기를 했지. 내가 드디어 관심이 생기는 분야가 나온 것

같아. 너도 이제 빛을 보고 있구나. 뭐, 이런 얘기들”

아, 오늘은 어린 아이가 더 이상 이야기를 해주지 않을 작정인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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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는 다음 별에 도착했다. 지난 번 별보다는 조금 작아 보였다.

“안녕! 드디어 왔구나! 넌 학습촉진 별에서 왔겠지? 여긴 수행향상

별이란다. 우리 별은 다른 별들과 달리 꽤나 작은 별에 속하니 부담 없이

둘러보고 가렴.”

말이 정말 많고 빠른 분이셨다.

“학습촉진 별에서는 교육공학이 적용되는 대상을 주로 학생이라고

생각했겠지? 물론 그 곳에서 언급하는 것도 기업이 포함될 수 있지만

특히 내가 여기 수행향상 별에서 이야기해줄 것은 학생에게도 적용될 수

있지만 기업 같은 조직까지도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하는 것이란다.”

아, 지난 번에 갔던 별이 학습촉진 별이었구나. 교수님들 이론 듣느라

별마다 이름이 있는 건 몰랐네. 여긴 수행향상 별이라고?

“우리는 조직의 수행향상을 위해 효율성과 효과성을 중시해. 여기에

생산성이 포함되기도 하고. 효율성과 효과성이 뭐가 다른 지는 알고

있니?”

“음.. 그게..”

“그래, 모르겠지? 효율성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상의 결과를 만들어

내는 거야. 여기서 비용이란 자원도 포함되겠지만 시간, 노력 등도 다

포함되는 개념이야. 한편 효과성은 산출물이 얼마나 학습자들에게 도움이

되었는 지를 보는 개념이라고 할 수 있지. 이해하겠니?”

“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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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직의 수행향상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교육공학을 넘어서

인간수행공학이라는 개념이 도입되기도 해. 교육공학이 성과를 교육을

통해 얻으려고 하는 반면 인간수행공학은 꼭 교육이 아니더라도

인체공학, 환경, 동기 등 종합적인 전체 과정을 통해 성과를 얻으려고

하지. 하지만 인간수행공학에 대해서는 네가 자세히 알 필요는 없을 것

같구나. 넌 아직 교육공학에 대해서도 알아가는 단계니까 말이야. 아,

혹시 내가 너무 빨리 진행하고 있니?”

“네, 조금 빠른 것 같아요.”

“오? 그래? 그럼 조금 천천히 해야겠구나. 무조건 빨리 진행한다고

해서 수행향상에 도움이 된다고는 할 수 없으니까 말이야. 어찌되었든

말이지, 학습자의 수행을 향상시키기 위해서는 피상적인 학습을 넘어

깊이 있는 학습이 이루어져야 해. 깊이 있는 학습이 이루어진다면

학생들에게는 학습 전이가, 기업의 조직원들에게는 훈련 전이가

이루어진다고 표현하지. 둘은 말 그대로 지식을 받아들이고 자기

나름대로 새로운 환경에 적용시키는 것을 말하는 거야. 특히 기업에서의

훈련 전이는 생산성을 위해 빨리 진행되어야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지.

학습 전이가 이루어지는 것을 표로 나타낸 그림이 있는데, 여길 보렴.

자, 여기 표를 보면 말이다. 사실 이 표를 제공하는 것도 시각적인

자료를 제공하여 네가 효율적으로 학습을 하여 수행을 향상시키는 데에

목적이 있지. 아무튼 각설하고 말이야, 이 표는 깊이 있는 학습이

이뤄지는 준거를 나타내는 표라고 할 수 있어. 저 표는 블룸이라는

사람이 정의한 표인데, 교육목표가 크게 인지적, 정의적, 심체적 세

가지로 분류된다고 봤지. 그는 저 표처럼 학습 목표가 구체적으로 기준이

세워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 표를 보니 깊이 있는 학습의 정도를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니? 가장 깊이 있는 학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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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루어지기 위해서는 학습자들이 표의 가장 위에까지 도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건데. 이해할 수 있겠니?”

“네, 알 것 같아요.”

“흠, 그럼 나는 네게 아주 효율적으로 수행향상에 대한 설명을 다

해준 것 같구나. 혹시 질문 있니? 아님 나의 짧지만 강렬했던 강의에

대한 느낀 점이라도?”

“아뇨, 질문은 없어요. 저는 효율성과 효과성의 정의 차이도 신기했고,

인간수행공학이라는 새로운 개념도 신기했어요. 그래도 특히 마지막에

보여주신 블룸의 표가 기억에 가장 남아요. 솔직히 수행향상이라는

개념이 좀 추상적으로 생각되었거든요.”

“어머, 그랬니? 그러면 안 되는데. 다시 설명 해줄까?”

“아뇨, 근데 블룸의 표를 보니까 조금 구체화된 것 같아요. 단순히

수용을 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창출하고, 조직화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보다 더 깊이 있는 수업이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 점이 수행향상에 대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준 것 같아요.”

“너, 블룸의 표가 마음에 들었구나. 나의 시각자료를 활용한 효율적인

수업이 수행향상에 도움을 준 것 같군!”

어린 아이는 미소를 지었다.

“네, 감사해요!”

수행향상 별답게 짧은 시간에 많은 내용을 알려주신 것 같아 어린

아이는 기분 좋게 다음 별로 떠났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알려줄 때엔

조금 더 차분히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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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 도착한 별은 굉장히 큰 별이었다. 학습촉진 별보다도 더 큰 것

같았다. ‘교수설계 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는 현수막만이 날리고

있었다. 계속 걷다 보니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모형 구경하고 가세요.’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무슨 모형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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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그 별은 교수설계에 대한 컨퍼런스가 열리는 기간이었다.

전시회는 교수설계모형을 전시해 놓은 것이었다. 어린 아이는 인원이 찰

때까지 기다리고 안내원과 함께 전시회를 관람하였다.

“우선 교수설계모형에 대해 설명 드리겠습니다. 교수설계모형이란

수업을 쉽고 체계적으로 계획할 수 있도록 그림으로 표현한 것을

말합니다. 교수설계모형에는 학습 목표, 교수전략, 그리고 평가가

필수적으로 포함되고 기타 요소는 모형에 따라 다릅니다. 그럼 이제부터

모형을 하나씩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처음으로는 IDI 모형을 설명 드리겠습니다. 이 모형은 뒤에 설명드릴

두 모형에 비해 비교적 간단한 형태입니다. 이 모형은 정의, 개발, 평가

세 부분으로 구성됩니다. 정의는 현재 문제 상황을 정확히 규정하는

부분입니다. 개발은 정의에서 도출된 목표를 구체화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방법 또한 결정하는 부분입니다. 평가는 개발 과정에서 완성한 실행

과정을 실행하고 결과를 평가하여 수정, 보완하는 과정입니다. 다른

모형에 비해 비교적 간단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에이, 저런 모형 정도는 나도 만들 수 있겠다. 너무 간단하잖아?

“이 모형이 매우 간단하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이제 다음 모형을

봐주십시오. 여러분 중 다수가 알 수도 있는 바로 그 에디모형입니다.

에디모형에서 에디가 학자의 이름이라 착각하시는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여기서 에디는 두문자어입니다. Analyze, Design, Development,

Implementation, Evaulation. 의 각각 앞 글자를 따 만든 것입니다. 분석

단계에서는 요구분석, 환경분석, 학습자분석이 이루어집니다. 설계

단계에서는 분석한 결과를 가지고 목표를 설정하고 수업 내용을

설계합니다. 개발 단계에서는 수업에 필요한 자료와 교구를 직접

제작합니다. 실행 단계에서는 그 동안 제작한 생산물을 직접 실행하는

것이고 평가 단계에서는 생산물을 평가하고 수정, 보완합니다.

에디 모형은 가장 쉽게 쓰이는 모형입니다. 학생들이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에 많이 사용됩니다. 한편 가장 보편적인 교수설계모형은 딕 앤

캐리 모형입니다. 딕 앤 캐리 모형은 다른 모형들과는 달리 평가 기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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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그램 설계 이전에 설정해놓는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딕 앤 캐리

모형은 매우 자세하게 나와있기 때문에 여러분이 보시면 내용을 파악할

수 있으실 겁니다. 그럼 이상으로 설명을 마치겠습니다.”

“대단하죠? 저런 과정을 하나하나 다 거치다니.”

옆에 있던 다른 학생이 말을 걸었다. 어린 아이는 그 동안 혼자 여행을

다녔는데, 오랜만에 대화 상대가 생겼다. 옆의 학생은 국어교육과에서 온

학생이었다. 역시 수업 자체에 대한 별인데다가 컨퍼런스가 열리니

규모도 크고 사람도 많았다.

“그러게요. 저런 모형에 맞춰 프로그램을 산출해야 한다니. 그냥 쉽게

산출되는 것이 정말 없었던 거였어요. 그나저나 우리 이제 다음엔 어디로

가야 하죠?”

“잠시 후에 라이글루스 교수님께서 교수설계이론에 대한 강연을

하신다고 들었어요. 같이 들으러 가요. 여기 컨퍼런스 하는 것 모르고

그냥 오셨나봐요. 굉장히 운이 좋으신데요?”

“아, 전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해서 여행을 하고 있는 중이었어요.

사실 컨퍼런스를 노리고 온 것은 아니고 그냥 다음 코스라고 온

것이었는데, 정말 운이 좋은 경우였네요. 네, 우리 교수님 강연에도

같이 가요. 근데 교수님께서 강연하신다는 교수설계이론이 어떤 것인지

알고계세요? 저는 아직 진로를 정하지 못해서 모든 것이 다

처음이거든요. 아직 아무것도 잘 모르고 있는 상태여서요.”

“아, 교수설계이론이란 학습자가 효과적으로 배울 수 있도록 돕는

이론이에요. 학습이론 별 다녀오셨죠? 거기에선 학습자가 어떻게

배울지에 대해 배웠다면 여기에선 교수자가 어떻게 가르칠지를 배우는

거라고 할 수 있어요.”

“와, 잘 알고 계시네요.”

“네, 저는 이미 와봤거든요. 다시 한 번 답사를 온 거에요. 혹시 어느

전공을 생각하고 계세요?”

어린 아이는 순간 멈칫했다.

“음, 아직 확정은 못했지만 교육공학을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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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저도 교육공학을 생각하고 다시 한 번 답사를 하고 있거든요.

엄청 반갑네요!”

“정말이요? 교육공학은 어떤 계기로 좋아하시게 된 건데요?”

어린 아이는 교육공학을 좋아하는 또래를 처음 만난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 원래는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였는데 먼저 교육공학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다니! 마치 내 전공인 것처럼 기뻤다. 아직 여행을

마친 것도, 자신의 진로를 확정한 것도 아니었지만 벌써 교육공학에 정이

든 기분이었던 것 같다.

“글쎄요, 국어교육을 전공하면서 조금 더 현실적으로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현대 기술과 국어교육을 접목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고요. 교육공학이 처음에는 굉장히 힘든데 하면 할수록

매력이 느껴져요. 너무너무 힘든데 다 하고 나면 뿌듯해서 다음

프로젝트를 빨리 해보고 싶어져요.”

어린 아이는 자신을 칭찬해주는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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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제 교수설계이론을 주제로 강의을 시작하겠습니다. 오늘

강의에는 정교화이론의 라이글루스 교수님을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교수님을 반겨주세요”

“안녕하세요 여러분. 오늘 정교화이론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누어 볼

라이글루스라고 합니다. 저는 종전에 사회자 분이 여러분께 말씀 드린

것처럼 정교화이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현재 제가 다른

이론에 집중하고 있는 상태이기는 하지만 우선은 정교화이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어봅시다. 중간에 질문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질문을

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우선 정교화이론은 정수라고 불리는 주제의 핵심에서 시작됩니다.

학습목표 중에서도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이 정수이지요. 그리고 그 정수와

관련된, 세분화된 주제를 곁가지로 많이 형성해야 합니다. 세분화된

주제를 다시 정교화하는 과정에서 각 주제는 유기적으로 연결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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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열화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 학습 목표에 가장 부합하는 수업

구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계열화란 정확히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계열화란 주제를 선정한 후에 다시 비슷한 주제끼리 묶고 순서를

결정하는 등의 절차를 거치는 것을 말합니다. 학습목표에 알맞은 수업

내용이 구성되도록 브레인 스토밍을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브레인

스토밍을 하고 다시 구조화를 하는 것이지요.”

“정교화이론은 비교적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것 같은데요, 어느 때에

가장 효과적으로 사용될 수 있을까요?”

“정교화이론은 다양한 주제를 생각하고 다시 그를 계열화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시간, 노력 등 많은 비용이 소모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수업 내용을 선정하는 데에 어려움이 있을

때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학습 목표에 정확히 부합하는 수업 내용을

찾기 어려울 때가 있겠지요. 그럴 때에는 학습 목표에 대한 다양한

소재를 우선 찾아보고 학습목표에 맞는 주제끼리 묶거나 없애나가는

것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대답이 되었나요?”

“네, 감사합니다.”

“네, 이로써 라이글루스 교수님의 강연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어린 아이에게 아까 그 학생이 다시 말을 걸어왔다.

“그럼, 계속 교육공학을 할 생각이에요?”

어린 아이는 아직도 확답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정도 할 수 없었다.

“음.. 아마 그럴 것 같기도 하고요.”

“교육공학은 굉장히 매력이 있는 전공이에요. 은근히 중독이 된달까요.

힘들어도 계속 찾게 되는. 정말 힘든 것도 사실이고요. 충분히, 잘

고민하고 좋은 선택하기를 바랄게요! 열심히 해요.”

“네, 감사합니다.”

어린 아이는 고개를 갸웃했지만 미소를 지었다.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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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넌 그때 교육공학에 확실히 발을 들이기로 한 거야?”

“아니, 말했잖아. 아직도 확실하지는 않다고. 그 때는 더 심했지.

여차하면 다시 맨 처음의 역사관으로 가버릴 기세였어. 그런데 오히려

다른 과목 전공생을 만나면서 교육공학에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던 것

같아. 내가 정을 들이고 있는 그 하나의 전공에 책임을 져야 할 것 같은

느낌이 든 걸까.”

“책임감이야? 아니면 흥미? 열정?”

“글쎄, 그건 모르겠네. 지금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난 후자였으면

좋겠다. 내가 책임져야 해서가 아니라 내가 진심으로 좋아해서 하는 게

훨씬 좋잖아.”

처음과는 다르게 어린 아이의 모습이 한층 더 성숙해 보였다. 이

아이는 뭔가를 또 깨달은 것일까. 그럼 나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이 아이는 나와 대화를 나누는 도중에도 계속 자신에 대해서 깨닫고

있는데 나는 아직도 어느 곳에 원서를 넣어야 할지 결정을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난, 난 어떻게 해야 할까.

“그래서 그 다음에는 어떤 별로 갔는데?”

“계속 같은 별에 있었어. 다른 구역으로 갔지. 이번에는 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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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는 다시 혼자 여행을 시작했다. 아직 교수설계 별에서 떠나지

않은 어린 아이는 별의 다른 구역으로 이동하였다. 그곳에는 굉장히

까탈스러울 것 같은 여교수가 혼자 있었다.

“학생인가요?”

의기소침해진 어린 아이는 작게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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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이곳에서는 분석과 메시지 설계를 같이 배울 거에요. 조금 따분하고

지루할 수 있는 내용이지만 잘 따라와 주길 바랍니다.

우선 분석부터 시작하죠. 분석은 교수 분석, 요구 분석, 학습자 분석,

환경 분석, 내용 분석 등 산출물을 만들어내는 데에 관련되는 모든 것에

해당됩니다. 우리는 오늘 그 중에서도 내용분석에 대해 알아볼 것입니다.”

“내용 분석이란 학습 내용을 분석한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우선 교육과정 분석을 해야 학습자에게 적절한 수업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체 과정을 고려하며 교육 내용을

체계화해야만 학습자들이 조금 더 효율적으로 학습할 수 있습니다.”

“전후로 이미 배운 내용이 있는지, 앞으로 배울 내용인지 그런 것들을

확인해야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학습 내용을 분석할 때에는 네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위계적 분석, 절차적 분석, 군집 분석, 통합적

분석이 있습니다.

각 분석 방법은 분석해야 할 내용에 따라 달라질 것이겠지만 오늘은

이보다 여러분들이 실질적으로 곤란해하는 학습목표 설정에 초점을

맞추려고 합니다.”

“내용을 분석하는 것보다 학습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인가요?”

“많은 학생들이 실제로 구체적인 학습목표를 설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학습 내용 분석은 다양한 방법을 통해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지만 학습 목표를 구체적이고 명료하게 작성하는 것은 많이

어려워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선 학습 목표는 요구 분석, 학습자 분석 등의 단계에서 도출된

목적이 명료하게 드러나야 합니다. 산출물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통합적인 요소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과정에서 다룰 세부적인 사항이

약간 포함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저에겐 아직도 학습 목표를 명료하게 작성하는 것은 좀 난감하게

들리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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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같이 어려움을 겪는 교수자가 역시 많이 존재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알기 쉽게 학습 목표의 구성요소로서 ABCD 법칙이

존재합니다.”

“알파벳 ABCD 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네, 각각 Audience, Behavior, Condition, Degree 를 말합니다. 즉,

학습 내용을 수행하는 학습자, 학습 내용을 통해 기대하는 행동 결과,

학습자에게 제공되는 자원, 학습자의 수행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네 가지 기준을 포함하면 비교적 학습

목표가 구체적이면서도 명료하게 정리될 것입니다.”

“아, 정말 저 규칙에 맞춰서 써보니 훨씬 명료한 것 같아요.

‘학습자가 지점토를 활용하여 생동감 있는 사람을 만들 수 있다.’ 라고

하면 학습 목표가 명료하지 않나요?”

“네, 학습자, 기대되는 행동으로는 만들기, 자원으로는 지점토, 판단

기준으로는 생동감 있는 사람이 명시되었으므로 적합한 학습목표라고

보여집니다. 생각보다 빨리 수업 내용을 익히시는 것 같네요.”

어린 아이는 칭찬을 듣자 기분이 좋아졌다. 처음에 까탈스러워 보이던

모습에 경계를 갖추었지만 이제는 배우는 과정이 즐거워졌다.

“이번에는 메시지 설계를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부분은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메시지를 설계하는 수준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가장

기초적인 단계는 기계적 단계입니다. 이 단계는 계획이나 창의성을 전혀

필요로 하지 않는 단계입니다. 단순히 복사만 하는 아주 기초적인

단계입니다. 두 번째는 창의적 단계입니다. 이제는 자신의 생각이나

계획을 반영할 수 있습니다. 디자인적인 요소를 포함시킬 수 있는 능력도

갖춘 상태입니다. 최종 세 번째 단계는 구체적인 학습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스스로 자료를 수집하고 설계하는 단계입니다. 단순히 꾸미는 것을

넘어 내용 자체를 설계할 수 있는 단계로 이 과정은 간단해 보이면서도

복잡할 수 있습니다.”

“음, 교수님. 부탁을 드려도 될까요?”

“네, 무슨 부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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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보다 실용적인 사항을 배우고 싶어요.”

“실용적이라 함은 어떤 것을 말하는 것인가요?”

“메시지 설계 이론 같은 것 보다는 실제로 다른 사람의 눈에 잘

들어오게 하는 방법 같은 것들이요.”

“아, 어떤 것을 말하는 지 알겠네요. 학생은 비교적 빨리 수용하는

편인 것 같으니 그럼 그 부분으로 빨리 넘어가도록 하죠.”

“네, 감사합니다.”

“학생, 그러면 제가 연관 내용을 보다 더 전문적으로 가르쳐주실

교수님께 연락을 취해놓겠어요. 그 분께 배우는 것이 더 좋을 것 같네요.”

“아, 감사합니다.”

“열심히 공부해서 내용을 잘 받아들일 수 있길 바랄게요. 활용 별로

가시면 됩니다.”

“네, 교수님께서도 안녕히 계세요.”

어린 아이는 더 이상 주눅 들어있지 않았다. 오히려 당당한 모습이었다.

어린 아이는 이제 자신이 더 배우고 싶은 분야를 스스로에게 물을 수

있었고, 나아가 그 사항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요구할 수도 있었다.

처음 여행을 떠날 때의 그 의욕 없는 모습에 비한다면 분명히 엄청난

발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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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는 활용 별에 이르렀다. 별은 꽤나 작았다. 꼭 방금 큰

별에서 와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별은 비교대상이 없이도 정말 작았다.

어린 아이를 기다렸다는 듯이 한 남교수가 어린 아이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아, 자네가 교수설계 별에서 온다던 그 학생인가? 교수설계 교수님이

아무나 칭찬을 하진 않는데 말이야. 자네는 수업 내용을 아주 요점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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콕콕 집어서 잘 알아듣는다고 하더군. 그럼 나도 자네에게 기대 좀 해도

되겠지?”

어린 아이는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 웃음은 긍정의 의미로 받아들여도 되겠지? 자, 그럼 이제 본 수업

내용을 알려주지. 이곳은 활용 별이야. 활용한다는 것은 자네도 짐작하고

있겠지만 교수 자료를 실행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교수자료로서 활용할

수 있는 자료는 우리 교수자들이 선정해야 해.

교수 자료의 선정은 철저히 학습자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하네. 역시

가장 중요한 점은 학습자들이 학습 내용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가라고

할 수 있지. 아무리 좋은 자료라도 학습자들이 거부감을 갖는 등의

형태라면 난감하다고.”

“아, 맞아요. 옛날에 정말 좋은 자료라고 어떤 책을 통째로 복사해놓은

것을 사라고 하신 선생님이 있었어요. 그 자료가 좋은 것은 알겠지만

우리의 수준에는 너무 어려웠고 직접 사러 멀리까지 가야 했기에 저희는

그 분야에 대해 관심조차 갖지 않게 되었어요.”

“그렇지, 그러니까 학습자가 관심을 갖도록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 말이야. 그런데 말이지, 교수자와 학습자 간에 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교수자는 그 자료의 부적합성을 모르는 상태에서 그냥 계속

사용할 수도 있어. 오히려 학생들이 자신이 준 자료를 좋아하고 학습에

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 정말 최악의 상황이 아니겠니?

의사소통이 안 될 뿐만 아니라 나쁜 학습자료를 계속 사용한다니. 그래서

그런 상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자원 평가서를 활용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 될 수 있어.”

“자원 평가서요?”

“응, 그래. 자원 평가서. 말 그대로 교수자의 자원을 평가하는 거야.

자료가 학습자들의 목표를 성취하는 데에 얼마나 도움을 주는지, 자료의

내용이 학습자들의 수준에 맞는지, 아니면 자료의 정확성 자체에 대하여

등 자료에 대한 다양한 방면을 평가 받을 수 있지. 아, 교수자는 평가

받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된단다. 아무리 자신이 남을 가르치는 입장에

있다고 하더라도 학습자에게서 오는 피드백은 모두 잘 감안하여 훌륭한

학습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것이 정말 제대로 된 교수자라고 할 수 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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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자는 단지 가르치는 위치에 있을 뿐 그 위치가 더 우월하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이 교수님은 참 멋있는 것 같았다. 교수님은 자신의 자료에 대한

피드백을 계속 받기를 원했고, 이 자체만으로도 어린 아이는

감동적이었다. 자신이 교수자의 위치에 있어도 학습자와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고 스스로도 학습자에게서 배우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정말 열정적으로 보였다.

“비교적 활용 별에서 배울 부분이 많지는 않지?”

“네, 그래도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짧아도 정말 도움이 되는

말씀이었어요.”

“그래, 앞으로 열심히 하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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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아이는 다음 별로 떠났다. 이 별도 활용 별만큼이나 작았다. 별에

도착하니 정신 없이 무엇인가를 관찰하고 적는 사람이 있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교육공학을 배우러 온 학생인데요.”

어린 아이는 이제 당당하게 교육공학을 배우러 온 학생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다.

“오, 그래? 반갑다. 여긴 관리 별이야.”

다른 별들의 교수님들과는 달리 이 교수님은 굉장히 바빠보였다.

“일이 바쁘신가봐요?”

“오, 프로그램을 실행시키고 관리하는 일은 매우 힘들지. 관리는

프로그램이 실행되는 내내 진행되어야 하거든. 관리 별이 작다고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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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단다. 관리는 한 프로그램을

완벽하게 마무리 짓는 데에 필수적인 과정이거든.”

“관리란 어떤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모든 것! 관리는 네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자원뿐만 아니라 정보,

전달체계 등까지 모든 것을 감독하는 과정이야. 그러니 실행만큼이나

바쁘고 할 일이 많지 않겠니? 게다가 관리자는 사람을 직접 관리해야

하는 경우도 많기 때문에 단순히 수치를 통제하는 역할만을 하는 것은

아냐. 다른 교수자나 학습자 간의 의사소통을 이끌어야 하는 역할도 해야

하고 전체 프로그램의 관리자가 되어야 한다는 거야.”

“아, 맞아요. 수업 내용 자체는 좋은데 수업이 진행되는 과정이 조금씩

삐그덕거리는 선생님들이 계셨어요.”

“그래, 그런 선생님들의 수업을 우리가 관리해줌으로써 프로젝트

절차뿐만 아니라 업무 분배, 의사소통, 위기상황까지 매끄럽게 진행될 수

있도록 하는 거야.

사실 프로그램들이 점차 다변화되면서 관리자들의 역할 역시 확장되고

있어. 생각해봐, 예전 프로그램들은 단순히 교수자가 학습자들에게

강의를 전달하는 것에서 프로그램이 완료되었단 말이야. 그런데 이제는

교수자와 학습자 간의 의사소통을 중시하고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교육하기 때문에 되려 우리 관리 전문가들이 할 일이 많아졌지. 그래도

난 내 일에 자부심을 갖는단다. 우리가 없으면 아까 네가 말한 선생님

같은 안타까운 교수자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야.”

“네, 정말 관리자가 필요한 것 같아요. 프로그램을 아무리 열심히

개발했다고 해도 그 프로그램이 진행 중이든 진행이 다 된 후이든

관리해 줄 사람이 정말 필요한 것 같아요. 교수자가 모든 위기 관리를

하기도 힘들어 보이고요. 어쩌면 프로그램을 개발한 후에 관리하는 것이

더 중요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프로그램의 내용 자체가 좋아도 관리가

잘 되지 않아 좋은 수업 내용까지 갉아먹는 것은 정말 안타까워요.”

“그래, 우리는 나름 굉장히 중요하고 많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좋겠구나.”

“알고말고요. 그 필요성을 굉장히 절감하게 되었어요. 감사합니다.”

“그래, 잘 가라.”

26

어린 아이는 자신이 받았던 수업들을 떠올리며 다음 별로 향했다.

관리가 좀만 더 이루어졌으면 수업이 훨씬 흥미로웠을텐데.

15

어린 아이는 이제 망설이지 않고 바로 다음 별로 향했다. 이제

프로그램을 구성하는 데에 필요한 모든 것을 배웠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코스가 남아있어 호기심이 발동되었다.

“왔느냐.”

어디선가 우렁찬 목소리가 들렸다. 주위를 돌아보니 고고한 배경 속에

흰 옷을 입고 수염을 기른 할아버지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반갑구나. 이 곳은 윤리 별이다. ”

“도덕 윤리의 그 윤리인가요?”

“도덕적으로 올바른 그 윤리를 포함할 뿐만 아니라 네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별이지.”

어린 아이는 자세를 바르게 해야 할 것만 같아 자세를 고쳐앉았다.

“허허 그렇게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거기 앞에 차나 한 잔

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하고 듣도록 하게. 가벼운 내용이니 마음을 가볍게

하고, 하지만 귀까지 가볍게 해서는 안 되네. 아주 새겨들어야 할

내용임에는 틀림없으니 말이야.”

할아버지의 말에 긴장이 풀린 어린 아이는 웃으며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27

“교육공학도들은 무엇보다 최신 지식을 갖추고 있도록 노력해야 하네.

기술을 다루는 전공이니만큼 현대 사회에서 발전하는 기술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최신 자료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

또한,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에는 교수자를 중심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학습자를 중심으로 생각하여야 하네. 어찌되었든 학습자가

지식창출능력을 갖추도록 하는 것이 목표이니 말이야.

그리고 한 가지 분야에만 매달릴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일을 모두 할 줄

알아야 해. 개발에만 머무르지 말고 실행, 관리 등 모든 일을 할 줄

알아야 한다는 거야. 복합적인 업무를 모두 할 줄 아는 것이 다음 일을

생각하면서 일 처리를 가능하게 하겠지. 그럼 적어도 우물 안 개구리는

되지 않을 걸세.

마지막으로는 창의성을 강조하고 싶네. 더 이상 학습자들은 뻔한

교수법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아. 계속 다양한 기술이 등장하는 만큼

다양한 교수법을 개발하여 학습자들이 흥미를 잃지 않고 학습할 수

있도록 해주게.

아, 마지막이라고 해놓고는 한 가지가 더 있네. 바로 융통적으로

상황에 대처해야 한다는 거야. 프로그램이 꼭 개발된 대로만 실행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 교육공학 역시 사람을 대하는 일이기 때문에

실행하는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지. 그 변수 앞에서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전문가답지 못한 모습이야. 그러면

학습자들 역시 자네에 대한 신뢰도도 떨어지고 결과적으로는 프로그램의

성과가 좌우되겠지. 그러니까 적당히 융통적으로 프로그램을 유하게

진행시킬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네.”

“우와, 정말 필요한 내용들을 일목요연하게 잘 설명해주셨어요.”

“허허, 나처럼 오래 살면 이런 이야기쯤은 금방 할 수 있지. 자네도

교육공학을 전공하면서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 훗날에 누군가가

교육공학에 대해 묻는다면 지금 나처럼 술술 말할 수 있게 노력하면

되는 걸세.”

“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그럼 여기 풍경이나 감상하고 차 다 마시고 가보도록 하게. 그 동안

긴 여정을 거쳐 이 곳에 왔을 텐데 잠시 쉬다 가도록 해.”

“네, 감사합니다. 그럼 저의 여행은 이제 끝난 건가요?”

28

“아니, 별 하나가 더 남았지. 하지만 그 별에 대해서는 말해줄 수가

없어. 아니, 나도 모르기 때문에 말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겠지.”

“아, 네. 어찌되었든 감사합니다.”

“그래, 잘 쉬다가 가. 마지막 별에서는 꽤나 긴 여행을 하게 될테니.”

16 어린 아이는 그런 과정을 거쳐 우리 별, 지구로 온 것이었다.

“우리 별에서 그럼 긴 여행을 하고 있는 거야?”

“응, 다른 별들에 비하면 매우 긴 여행을 하고 있지.”

“그럼 우리 별에서는 어떤 걸 배웠어? 매일 나랑 이렇게 수다를

떨어도 되는거야?”

“응, 이게 나의 최종 수업이었던 것 같아.”

“이게 수업이라고? 나에게 여행 이야기를 해주는 게?”

아이는 가만히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 답답해. 그리고 너 장미 이야기는 도대체 뭐야? 뜬금없이 장미

이야기를 자주 꺼냈잖아. 자세히 물어보면 대답도 항상 잘 안 해주고

말이야. 네가 말하고 싶지 않으면 이야기 안 해줘도 돼.”

항상 장미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면 얼굴이 굳는 어린 아이가 떠올라

황급히 꼭 이야기를 해 줄 필요는 없다고 뒷 붙였다.

“아니야, 이젠 말해줄 수 있어. 그건 우리가 그냥 기르는 각자의

꽃이야. 다른 아이들은 제 때 심어서 예쁜 꽃을 피우는데 내 씨앗은 싹도

나지 않았거든. 그래서 되게 슬펐었어. 나도 문제가 있는데 내

씨앗까지도 문제가 있다니. 그것도 나 혼자.”

비교적 평온했던 어린 아이의 표정이 다시 어두워졌다. 나는 아무 말도

해줄 수 없었다.

그러다 다시 표정이 밝아졌다.

“근데 내가 지난번에 말해줬잖아. 싹이 올라오는 것을 봤다고. 아마

지금쯤엔 이파리도 피지 않았을까?”

29

“그렇겠다! 이젠 꽃이 폈을지도 몰라.”

어린 아이는 너무나도 밝은 미소를 지었다. 처음 보는 미소라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나도 곧 같이 웃어주었다.

“그래, 이제 나는 내 임무를 다한 것 같아. 난 이제 여행을 마쳐도 될

것 같네. 안녕”

그러고 어린 아이는 사라졌다.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린 아이는

그렇게 떠났다.

17

안녕, 난 어린 아이야. 난 너의 이름도 모르지만 너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아 너무 고맙고 미안해.

네가 떠난 이후에 나도 내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보려고 애썼어. 너도

좋아하는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였지만 직접 접해보고 너의 길을

찾은 거잖아. 나도 너처럼 내가 즐겨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결심했어.

그래서 나, 너처럼 다른 별로 여행을 갈 수는 없지만 다른 나라로

여행을 가기로 했어. 아, 여기는 땅을 나눠서 각각 다른 나라로 구분을

해놓거든. 그래서 다른 나라에 가서 내 맘대로 돌아다니면서 다양한 것을

접해보려고. 다양한 사람들이랑 다양한 문화를 접하다 보면 내가 진짜

웃으면서 할 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넌 잘 지내니? 네가 어느 별에서 왔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냥 가끔

하늘을 볼 때 네 생각을 해. 네가 있어서 우유부단하고 무책임한 삶은 안

살게 되었다고. 뭐, 그걸 책임이라고 할 지, 열정이라고 할 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어쨌든 긍정적인 방향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

넌 나에게 공주나 다름없었어. 매일같이 나를 찾아와 다양하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해주고, 결국 내 인생을 구해주기까지 했잖아. 네가

실제로 그 별의 공주일지는 모르겠지만 나에게 넌 환상 속의 공주처럼

예쁘고 고마운 존재야. 아, 근데 지구에도 공주가 있니? 아무튼, 공주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야.

30

가끔 너의 장미도 생각이 나. 처음에는 네가 왜 자꾸 장미 이야기를

꺼냈는지 이해도 못하겠고, 여행 이야기만 듣고 싶었는데, 너에게 정말

중요하고 너를 대표하는 건 너의 장미 같다. 지금쯤이면 아주 만발해서

미친 장미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겠지? 네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보여줬던 모습처럼 항상 밝고 당당하게 다닌다면 장미는 언제나 활짝

피어 있을 거야.

그리고 한 가지 더 부탁이 있다면 네 화려한 장미에 가려진 다른

아이들의 씨앗을 보살펴줬으면 좋겠어. 네가 나에게 해준 것처럼

아무렇지 않은 이야기를 하다 보면 그 아이들도 느끼는 바가 있을 거야.

네가 화려해지는 것은 참 좋지만 그 뒤에 또 과거의 너처럼 상처 받을

아이들이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된다.

그럼, 이름도 모르는 아이야. 고마웠어. 잘 지내

18

안녕, 지구의 아이야. 난 너의 이름도 모르지만 너에게 많은 도움을

받은 것 같아 너무 고맙고 미안해.

너를 떠난 이후에 나는 우리 별에 도착했어. 그리고 너와 이야기를

하며 내가 그 동안 겪었던 것을 되새겨보니 난 교육공학을 진로로 해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 물론 너는 이미 예상을 했겠지만 말이야.

내가 잘 해낼 수 있을 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 근데 내가 즐기면서 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그 정도의 확신은 있었거든.

넌 잘 지내니? 난 너의 별의 위치를 알지만 너는 모르니까 서운하더라.

우리 별의 위치라도 알려주고 올 걸. 난 가끔 지구 쪽을 보면서 네

생각을 해. 넌 이제 네가 하고 싶은 것을 찾았는지, 지금 어떤 걸 하고

있을지. 확실히 그냥 되는대로 살고 있지는 않을 것 같아 마음이

놓이기는 해. 내 추측이 사실이기를 바라.

넌 나에게 공주나 다름없었어. 난 매일같이 너를 찾아가 내 이야기만을

했는데도 넌 항상 잘 들어줬잖아. 네가 실제로 지구의 공주일지도

모르겠지만 나에게 넌 환상 속의 공주처럼 예쁘고 고마운 존재야. 아,

근데 지구에도 공주가 있니? 아무튼, 공주는 정말 소중한 존재라는

뜻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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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장미는 네가 말해준 것처럼 꽃을 피웠어. 너무 화려해서 나의

씨앗을 비웃던 친구들이 이제는 내 꽃은 우러러봐. 참 우습지만 나도

기분이 좋아.

그렇다고 내가 내 꽃을 가지고 으스대는 것은 아니야! 분명 나처럼

화려한 꽃 뒤에서 상처받는 씨앗들이 많을 것이라는 걸 난 알고 있거든.

너와 이야기를 나눴던 것처럼 그 아이들과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내가 큰 도움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처음에는 우울한 표정이었던

아이들이 점점 표정이 밝아지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지더라.

그럼, 이름도 모르는 아이야. 고마웠어. 잘 지내.

32

Epilogue

한 학기 동안 배운 내용을 다시 창출해내는 것은 분명 난감한

과제였다. 어떻게 보면 핑계일수도 있겠지만 형식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그 형식을 어떤 내용으로 채워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그래도 이 과제를 마치는 지금 기분이 굉장히 이상하다. 한 학기가

끝났다는 것도, 이 과제가 끝났다는 것도 모두 이상하다.

2013학년도 1학기 교육공학 수업을 들으며 나에게 가장 큰 영향을

준 것은 단연 팀 프로젝트일 것이다. 교육공학과의 팀 프로젝트에 대한

악명을 익히 들었기에 겁이 났었다. 그러나 좋은 조원과 조장 선배를

만나 무난하게 프로젝트를 마친 것이 너무나도 기쁘다. 우리가 선정한

주제 자체가 내 마음에는 들지 않았었는데, 오히려 프로젝트를 추진하며

나도 참여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팀 프로젝트는 서로에게

부족한 점을 서로 메워주며 진행해야 하는데, 언니들에게 너무 받기만 한

것 같아 미안할 정도였다. 최대한 과정에 참여하며 내가 할 수 있는

분야에는 성실하게 쫓아가려고 노력했다. 주말마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며 사소한 부분이더라도 프로그램이 발전해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기분이 좋았다.

저널 과제의 경우에는 사실 처음에는 이런 걸 왜 하는 거지, 시험

기간에도 해야 하고, 시험이 끝나고도 해야 하고, 등 불만이 많았다.

그러나 막상 저널을 작성하며 한 학기 동안 배운 내용을 복습할 수도

있었고, 필기 내용을 보며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과거를 회상할 수도

있었다. 사실 너무 도전적인 형식을 정했기 때문에 원작의 심오한 의미를

거의 담아내지 못했다는 것과 디자인적 요소에서 아쉬운 점이 많지만,

최대한 노력은 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싶다. 항상 마음만

먹고 제대로 하는 것은 없었던 나였기 때문에 이번만큼은 처음에 정한

형식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완성시키겠다는 굳은 결심을 했었다. 그

결과가 긍정적일지, 부정적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과제는 분명 나

스스로에게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한 학기를 마치며 늦은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남은 시간은

많기에, 나도 어린 아이처럼 화려한 꽃을 피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