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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석 2조 친환경 산업 도시광산 차세대 디스플레이 스마트 윈도우 지식경제부 기획, 한국 최초 시리즈 ⑤ 한국 최초의 냉장고는? 픽사, 그 무한한 창작력의 원천은? 화폐 안에 세상을 담다 0.03mm의 예술가, 화폐 디자이너 김종희 2013. 3월 CONTENTS

경제다반사 E-Book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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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다반사 e-book 3월호입니다. 재미있게 봐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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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경제다반사 E-Book 3월호

1석 2조 친환경 산업 도시광산

차세대 디스플레이 스마트 윈도우

지식경제부 기획, 한국 최초 시리즈 ⑤ 한국 최초의 냉장고는?

픽사, 그 무한한 창작력의 원천은?

화폐 안에 세상을 담다 0.03mm의 예술가, 화폐 디자이너 김종희

2013. 3월 CONTEN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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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호 > 빛나는 지식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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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광석보다 휴대전화에서 얻을 수 있는 금이 더 많아도시광산이라는 개념은 1986년 일본 도호쿠대학 선광제

련연구소의 난조 미치오 교수가 만들었습니다. 이 말은

석탄이나 석유는 쓰면 사라지지만 금속은 쓰고 난 뒤에

도 폐기물 속에 그대로 남아 있어 언제든지 재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도시광산의 자원 추출과정은 간단합니다. 먼저 휴대폰이

나 컴퓨터, 자동차 부품 등의 폐기물을 수거한 뒤 희귀금

속이 들어 있는 전자회로기판을 분류합니다. 간혹 전자제품을 분쇄한 뒤 자석을 이용해 금속만 걸

러내기도 합니다. 그 후 걸러낸 금속들을 녹는점이나 산과의 반응을 이용해 최종적으로 분류하면

다양한 금속들이 추출됩니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폐휴대전화 한 대에는 금(0.04g), 은(0.2g), 팔라듐(0.03g), 로듐

(0.002g), 구리(14g), 코발트(27.4g) 등이 들어있습니다. 휴대전화 한 대만으로는 제대로 된 금속을

얻을 수 없지만 이것들을 모으면 상당량의 자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금광석 1

톤에서 얻을 수 있는 금의 양은 대략 2~5g입니다. 폐휴대전화가 1톤의 양만큼 모이면 200~400g의

금과 은 1.5kg, 그 외의 희귀 금속까지 얻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 2007년 일본물질재료연구소는 일본의 도시광산 속 자원 축적량을 금 6,800톤, 은 6

만톤, 인듐1,700톤으로 측정했습니다. 세계 최대 금 자원국인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금 매장량이

간단한 퀴즈 하나. 금을 캐고 싶어 하는 남자 A와 B가 있습니다. A는 광산으로 금을 캐러 갔고, B는 도시 쓰레기장에서 망가진 전자기기 부품에 함유된 귀금속을 수거했습니다. 두 사람 중 더 많은 금을 수집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정답은 바로 쓰레기장으로 향한 B입니다.

보통 1톤의 금광석에서 약 2~5g의 금이 추출된다고 합니다. 반면 같은 양의 폐휴대폰에서는 200~400g의 금을, 폐전자제품에서는 20g의 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는 폐전자기기의 전자회로기판에 금, 은, 백금 등 귀금속물질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다양한 전자기기와 산업폐기물에는 각종 금속과 희귀금속들이 포함 되어 있어 산속의 광산 못지않게 많은 광물들을 채취할 수 있습니

다. 이처럼 산업폐기물에서 금속을 분리해 산업자원으로 재활용하는 것을 도시광산, 또는 어반 마이닝(urban mining)이라고 부릅니다. 도시광산은 자원을 재활용할 수 있는 데다 환경오염도 줄여주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친환경 산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자원도 얻고 환경도 보호하는 도시광산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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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0톤인 것을 감안할 때 도시광산이 지닌 경제적 가치는 어마어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도시광산으로 하루 2만kW의 전력을 생산하는 도시일본 후쿠오카현 오무타시는 도시광산을 이용해 하루 2만kW의 전력을 생산한다고 합니다. 원래

오무타시는 미이케 탄광의 석탄을 기반으로 성장한 산업도시였으나 석탄 광맥이 말라 산업이 쇠퇴

하자 인구수가 5만 명 이상 줄어들 정도로 쇠락해버렸습니다.

죽어가던 오무타시를 되살린 것은 도시광산 산업이었습니다. 오무타시는 1998년 ‘금속재활용생태

산업단지’로 지정되면서 폐기물고형연료(RDF) 발전시설과 자원순환기업인 시바타 산업을 설립했

습니다. 이곳에선 후쿠오카와 구마모토현의 28개 시·군에서 모인 315톤의 일반 쓰레기를 폐기물

고형연료로 재가공해 하루 2만600kW에 달하는 전기를 생산해냅니다. 이 전력은 오무타시와 인근

도시 40만 가구에 공급하고도 남을 양이라고 합니다.

오무타시의 도시광산 산업은 한해 20억 엔에 가까운 매출을 올리며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많은

일자리도 만들어냈습니다. 도시광산 산업은 오무타시 환경보호에도 일조했습니다. 폐휴대전화에

들어 있는 납이나 카드뮴 등의 중금속물질은 환경을 오염시키기 쉽습니다. 또한 인근 화력 발전소

의 석탄재나 건설 폐자재 등은 연소 시 이산화탄소와 다이옥신 등 다량의 유해물질들을 발생시키기

때문에 함부로 처리할 수도 없었습니다. 도시광산 산업은 이러한 산업 폐기물을 재활용해 도시 환

경 개선에도 크게 기여하고 있습니다.

첨단기기 강국 한국, 50조 원의 보물섬현재 우리나라에도 도시광산 개발이 절실한 상황입니다. 디스플레이, 반도체, 자동차, 휴대폰 등 우

리나라에서 만들어진 첨단 기기들이 세계 시장을 누비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제작에 꼭 필요한 희귀

금속은 거의 수입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광물자원공사가 희귀금속을 수입하는 데 들어간 돈

만 약 13조1,000억 원이라고 합니다. 우라늄, 아연 등도 43조 원 이상 수입되었습니다. 국토가 좁

오무타시 리사이클 발전소 오무타시 에코센터 일본 도시광산 자원 추출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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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에서 자원 수입을 줄일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도시광산 개발입

니다.

지난 2011년 우리나라에서 버려진 휴대전화는 1,500만 대에 달합니다. 이중 재활용 된 것은 겨우

350만 대로 나머지는 모두 폐기처분되었습니다. 휴대폰 한 대에서 추출되는 희귀금속을 금액으로

환산하면 평균 3,217원이라고 합니다. 만약 이를 폐기하지 않고 도시광산 자원으로 활용한다면 우

리는 한 해 370억 원에 달하는 금속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외에도 TV나 냉장고, 컴퓨터 등의 가전

기기와 자동차까지 그 대상을 넓히면 도시광산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익은 훨씬 더 늘어납니다.

지식경제부에서 추산한 우리나라 도시광산 자원 누적 가치는 약 50조 원에 달합니다. 이런 소중한

자원을 활용하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도시광산 산업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나라는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폐 전자기기에서 광물을 추출해내는 기술이 부족한 편입니다. 때문에 저희

지식경제부에서는 도시광산 자원 표준 샘플링 기법과 함량분석 방법을 개발해 도시광산 산업 기술

을 발전시키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도시광산 산업이 발전하는 데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의 관심입니다. 도시광산 산업이 활발히 이루

어지기 위해선 폐가전제품의 회수가 꼭 필요합니다. 일본, 유럽 등의 선진국에선 국민 1인당 연평

균 폐가전 수거량이 4~6kg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2kg 중반에 그치고 있습니다. 이 때문에 현재 우

리나라 폐가전 업체의 평균 가동률은 50% 수준에 머물러 있다고 합니다.

도시광산 산업을 통해 50조 원의 재원을 확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서랍 깊숙이 처박혀 있는

안 쓰는 휴대폰이나 전자기기를 꺼내 가까운 리사이클링센터에 넘겨주기만 하면 됩니다. 국민 한

사람당 한 개씩 폐전자기기를 꺼내놓는 순간, 50조 원의 거대한 도시광산 산업의 문이 활짝 열릴 것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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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호 > 빛나는 지식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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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윈도우, 기존 유리와 무엇이 다를까?

가끔 길을 가다 보면 새까맣게 선팅 된 유리를 많이 보셨을 겁니다.

이 선팅 유리는 햇빛과 자외선을 차단하기 위해 개발되었지만, 야

간 사고 발생을 우려한 법규로 제대로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또 유

리의 기능도 빛의 차단에 그쳐 한계가 많았습니다. 때문에 태양광

의 투과율을 인위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똑똑한 유리, 스마트 윈도

우가 등장한 것입니다.

스마트 윈도우는 1934년 미국 폴라로이드사를 창시한 에드윈 랜

드 박사가 최초로 개발했습니다. 그 후 스마트 윈도

우 기술은 세계 각국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되어오다

1990년 우리나라의 한국유리공업에서 건축 창호용 제품에 이 기술을 도입, 응용해 2003년부터 본격 생산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2009년 스위스의 한 거리에 특이한 화장실이 등장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이 화장실은 버튼을 누르면 벽이 투명해진답니다. 아무리 얼굴이 두꺼운 사람이라도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화장실 안에서는 볼일을 보기 힘들 텐데, 이런 화장실은 대체 왜 만든 것일까요?사실 이 화장실은 벽이 투명해졌다가 불투명하게 바뀌는 변신 화장실이라고 합니다. 화장실 문을 열었다가 지저분한 변기와 악취에 인상을 찌푸린 경험이 누구나 한 번쯤은 있을 텐데요, 이 화장실은 문을 열지 않아도 버튼만 누르면 투명한 벽을 통해 화장실 내부의 위생 상태를 확인할 수 있고, 사람이 화장실 안에 들어가면 다시 벽이 불투명하게 변해 안심하고 일을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색을 자유자재로 바꾸거나 빛의 투과율을 조절할 수 있는 유리를 스마트 윈도우(smart window, 투과도 가변유리, 조광유리)라고 합니다. 스마트 윈도우는 일반 유리와 달리 사용자에게 고도의 편의를 제공하기 때문에 21세기 미래형 건축자재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떠오르는 스마트 윈도우, 그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스위스에 있는 투명한 화장실(사진:Oloom)

에드윈 랜드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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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 윈도우는 평소에는 짙은 청색을 띠다가 전기를 흘려보내면 투명해지는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유리 내부의 미세액정 속에 들어 있는 푸른색 광편광 입자 때문입니다. 스마트 윈도우는 고분자 분

산형 액정(PDLC, polymer dispersed liquid crystal)을 이용해 만들어지는데요, 이 액정 속의 광편광

입자들은 보통 상태에서는 불규칙 분산 운동을 하기 때문에 빛을 모두 흡수해 짙은 청색으로 보인다고 합

니다. 하지만 액정에 전기를 가하면 입자들이 규칙적으로 배열돼 빛이 통과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유리

가 투명해집니다.

이러한 성질을 갖고 있는 스마트 윈도우는 전기를 켜면 창이 투명해져 빛을 많이 투과시키고, 전기를 끄면

어두운 색으로 변해 빛이 차단됩니다. 스마트 윈도우 중에는 열을 내는 태양빛만 차단하는 종류도 있는데

요, 이를 사용하면 내부의 열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고 외부의 열도 실내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기

때문에 냉난방 에너지 절약에 매우 효과적이라고 합니다.

스마트 윈도우, 어디에 사용될까?

현재 스마트 윈도우는 자동차, 선박, 항공기 등의 수송 분야와 주택 등의 건축 분야, 표지판 등 정보 표시

분야 등에 폭넓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스마트 윈도우는 색의 전환 속도가 1초 미만으로 빠르기 때문에 고속도로나 경기장 등 다수의 사람들이

모인 곳의 대형 정보 표시판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상품 판매 매장에서는 이 유리의 특성을 이용해 영업

시간에는 매장의 벽을 투명하게 유지해 내부를 공개하고, 폐점 후에는 불투명하게 바꿔 내부가 보이지 않

게 하고 있습니다.

스마트 윈도우를 자동차 선루프로 사용할 경우 가시광선을 40%까지 차단하기 때문에 운전자의 피부와 눈

을 보호할 수 있다고 합니다. 스마트 윈도우는 또 자외선을 99% 이상 차단해 커튼이나 블라인드를 대체할

수 있고, 가구나 섬유 제품의 변색도 크게 줄여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스마트 윈도우의 최대 장점은 앞서

언급한 투과율을 이용해 실내조명과 냉난방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는 에너지 절약과 차세대 디스플레이

로서의 활용 가능성입니다.

◆스마트 윈도우 응용 분야

정보표시 고속도로 표지판, 게시판, 점수판, 시계, 디스플레이, 광고스크린건축 채광창, 일광욕실용수송 자동차, 버스, 항공기, 선박, 기차기타 선글라스, 고글, 헬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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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창으로 TV 시청을? 스마트 윈도우의 전망

스마트 윈도우는 단순한 전시용 유리의 기능을 넘어 휴대

폰, 컴퓨터, TV의 최첨단 디스플레이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

습니다. 영화 <아바타>에서는 과학자들이 투명한 유리 모니

터에 데이터를 띄워놓고 연구를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

이언 맨>에서도 주인공 토니 스타크가 유리창을 터치해 수

트 개발에 필요한 자료를 제공받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가까운 장래에는 우리도 영화 속 배우들처럼 투명 모니터를

통해 데이터나 영상을 보게 될지도 모릅니다. 이런 상상은

생각보다 빨리 실현될 수도 있는데요. 지난 1월 미국 라스베

이거스에서 열린 국제 가전박람회(CES)에서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는 터치 방식으로 작동되는 스마트 윈도

우 디스플레이를 공개했습니다. 일반 유리창과 똑같이 생긴 이 디스플레이는 각종 프로그램과 인터넷 아

이콘이 컴퓨터 바탕화면과 같은 형태로 떠 있는데, 이것을 클릭하면 유리창을 컴퓨터 모니터처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이 스마트 윈도우는 블라인드 기능도 있어 이 기능을 터치하면 선팅한 창문처럼 빛을 차단합

니다. 영화에서 보던 미래 세계가 한발 앞으로 성큼 다가온 것 같습니다.

지난해 BBC 리서치가 발표한 보고서에

의하면 2011년 약 16억 달러였던 세계

스마트 윈도우의 시장 규모가 2016년

에 42억 달러로 세배 가까이 성장할 것

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도 이런 추세에

발맞춰 스마트 윈도우 기술 개발에 매진

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2년 국내의 유

리제조업체 에스디피아이는 미국 RFI

로부터 분극입자 제조 원천 기술을 도입

해 대형 스마트 윈도우 제조 기술을 독

자 개발, 미국 항공기 업체에 제품을 공

급한 바 있습니다. 또 지난 2008년에는 카이스트와 삼성SDI 중앙연구소가 유리창으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는 투명 태양 전지 유리창을 개발하기도 했습니다. 이 유리창은 햇빛을 흡수해 전기를 만들뿐 아니라 유

리창의 색깔과 명암을 조절하는 스마트 윈도우 기능도 갖추고 있어 에너지 절약과 쾌적한 실내 환경 조성

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성공적으로 잡은 제품으로 평가됩니다.

우리나라의 스마트 윈도우 기술은 앞으로도 더욱 활발히 개발될 것입니다. 우리의 신기술이 점점 확대되

어 세계 시장에서 우위를 다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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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2월호 > 通하는 테마

지식경제부 기획, 한국 최초 시리즈 ⑤

한국 최초의 냉장고는?

멜로디 카드와 냉장고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습니다. 열면 소리가 들린다는 것입니다. 다만 멜로디 카드를 열면 예쁜 오르골 음악이 들리고, 냉장고를 열면 “먹을 것도 없는데 왜 자꾸 문을 열어!” 하는 어머니의 핀잔이 들린다는 것이지요.

음식을 신선하게 보관해주는 냉장고는 아이들로 하여금 자꾸 문을 열게 만듭니다. 문을 열면 시원한 냉기가 뿜어져 나오며 각종 채소와 음료, 과일들이 먹음직스러운 모습을 드러냅니다. 아이들은 속이 비어 있는 줄 알면서도 ‘혹시 엄마가 맛있는 음식을 넣어놓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를 잔뜩 품고 수시로 냉장고 문을 열어봅니다. 그러다보면 어머니의 꾸지람이 쏟아지는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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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층에게만 허락된 사치품, 얼음

오늘날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냉장고의 기원은

고대 중국입니다. 중국의 고사성어에 벌빙지가(伐

氷之家)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주나라 때 장사나

제사에 얼음을 쓸 자격이 있는 고관대작의 집안을

뜻합니다. 당시 얼음은 매우 귀한 물건으로 얼음 창

고인 빙고에 넣어두고 국가가 관리하며 왕과 제후,

고위관리들만이 사용했다고 합니다. 이 빙고가 말

하자면 냉장고의 효시인 셈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신라시대에 석빙고가 있었고,

조선시대엔 서빙고와 동빙고를 둬 체계적으로 얼음

을 생산하고 관리했습니다. 특히 서빙고와 동빙고

는 임금이 관리에 관여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습

니다. 여름이 되면 왕실에서는 얼음을 제사에 사용

하고 냉국수 등의 특식을 만들어먹기도 했으며, 정2품 이상의 관리들에게 하사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얼음은 지배계층에게선 귀한 대접을 받았지만 백성들에게는 애물단지였다고 합니다. 당시

얼음은 겨울철 한강에서 채취했는데요, 백성들은 특별한 기구나 방한복도 없이 얼음을 책상 크기

로 잘라 빙고까지 운반하는 부역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추운 겨울에 커다란 얼음을 자르고, 그것을

오랫동안 들고 가야 했던 고통이 심하다보니 일부 백성은 채빙을 피해 야반도주하기도 했다고 합니

다.

일부 백성들에겐 골칫거리였겠지만 얼음은 1965년 이 땅에 냉장고가 처음 개발되어 본격 보급되기

까지 음식을 신선하게 유지시켜주는 귀한 물건으로 대접 받아왔습니다.

600가구 당 1대꼴에 불과하던 냉장고

1965년은 우리나라가 경제국가로 막 발돋움을 시작한 때였습니다. 변변한 가구 하나 없던 집안에

전화, TV, 냉장고 등 문명의 이기들이 하나, 둘씩 들어서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이런 가전제품들은 엄청난 부잣집에서나 쓰는 비싸고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비싼

것이 냉장고였습니다. RCA, 웨스팅하우스 등 미국 상표가 붙은 냉장고는 너무 비싸 서민들은 구입

할 엄두도 내지 못했습니다. 당시 미군부대 PX를 통해 몰래 반출된 냉장고가 18만 원에 거래되었는

데, 그때의 대졸자 초임이 1만1,000 원이었으니 그 값이 얼마나 비쌌는지 짐작되시지요?

우리나라에서 냉장고를 최초로 개발한 곳은 금성사(현 LG)로, 1965년 눈표냉장고(GR-120)라는

이름으로 처음 제품을 출시했습니다. 출시 당시 이 소형 냉장고의 가격은 8만600원으로 외국 제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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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비하면 상당히 저렴했지만 서민들에겐 여전히 금값이었습니다. 1968년 게재된 매일경제 기사를

보면 당시 우리나라에 보급된 냉장고는 총 5만 대로 600가구에 한 집 꼴이었습니다. 냉장고가 없는

가정은 얼음을 채운 파란색 스티로폼 아이스박스에 음식을 보관했고, 신문의 생활정보란에서는 냉

장고가 없는 집의 음식 보관 요령을 알려줄 정도였습니다.

비싼 몸값을 자랑하며 주방가구의 제왕으로 군림하던 냉장고가 일반인들에게도 친숙한 가전제품으

로 자리 잡게 된 것은 1980년대 이후의 일입니다. 1970년대 들어 금성이 직냉식 2도어 냉장고와 냉

수기가 부착된 냉장고를 출시해 인기를 끌자 삼성전자와 대한전선(현 대우전자)도 이에 질세라 시

장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시 세 기업간 경쟁은 ‘냉장고 삼국지’라 불릴 정도로 치열했습니다. 특히

70년대 후반에 금성과 삼성은 가전제품 점유율을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며 한국 가전제품의 양대 산

맥을 이루었습니다.

기업 삼파전이 가져온 결과는 어마어마했습니다. 1965년 채 1%도 되지 않던 냉장고 보급률이

1986년 95%를 기록할 정도로 성장한 것입니다. 한 예로 삼성전자의 냉장고 생산실적을 보면 1982

년 39만 대 선이던 생산량이 1987년 11만 대로 5년 만에 3배 가까이 증가했습니다. 냉장고 시장을

둘러싸고 펼친 기업 간의 치열한 경쟁이 기술발전으로 이어져 냉장고를 국민 주방가구로 만드는 데

일조한 것입니다.

1980년대 후반, 거의 모든 가정에 보급되어 포화상태가 된 냉장고는 과감한 변신을 시도합니다. 바

로 좌우 양쪽으로 문이 열리는 양문형 냉장고와 김치 전용 저장고인 김치 냉장고가 개발된 것이지

요. 특히 1995년에 만도기계(현 위니아만도)에서 첫 출시한 김치 냉장고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며

냉장고 시장 규모를 크게 성장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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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의 경쟁이 국가 경쟁력으로

기술경쟁으로 비약적인 발전을 한 국산 냉장고는

1981년부터 본격적으로 해외로 수출되기 시작

했습니다. 우리나라 냉장고는 우수한 성능과 저

렴한 가격으로 아시아·미국·유럽 등의 러브콜을

받으며 나날이 수출 물량을 늘려나갔습니다. 관

세청 발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냉장고 수출은

2009년 대비 41% 증가했고, 2011년 미국에서만

308만대가 판매되어 21억1,500만 달러의 수출

액을 기록했다고 합니다.

이 중 양문형 냉장고 시장은 우리나라가 독점하

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강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국제적 시장조사기관인 GFK와 NDF

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개발한 양문형 냉장고는 6

년 연속 세계 냉장고 시장 점유율 30% 이상을 차

지하며 판매 1위를 기록했습니다. 미국에서는 삼

성전자와 LG전자의 냉장고 시장 점유율이 46%를 넘어서자, 이를 경계해 우리나라 제품에 상계관

세를 부과하기도 했습니다.

50년 전까지만 해도 스티로폼 박스에 얼음을 넣어 음식을 저장하던 대한민국이 이제는 냉장고 시장

의 제왕으로 승승장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승리에 도취되어선 안 됩니다. 시장은 시시각각 변하

고 있습니다. 첨단 전자기술이 집약되어 있는 스마트폰도 1년만 지나면 오래된 물건이 되어버립니

다. 우리나라 냉장고가 아무리 우수한 기술로 만들어졌어도 사람들의 욕구에 따라 변화하지 않는다

면 1위 자리는 금세 빼앗길 수 있습니다.

기업들은 연구와 개발에 끊임없이 힘쓰고, 국내 소비자들은 기업의 이런 노력이 가능하도록 높은

소비자 의식으로 조언과 충고를 아끼지 않는 것이 서로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Page 14: 경제다반사 E-Book 3월호

2013년 3월호 > 빛나는 지식경제

픽사, 그 무한한 창작력의 원천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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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의 사랑을 독차지하던 카우보이 인형은 어느 날 최신형 우주 비행사 장난감이 나타나자

라이벌 의식을 느끼고 그를 쫓아낼 계획을 세웁니다. 탐험가의 꿈을 갖고 있던 할아버지는

지붕에 수천 개의 풍선을 매달고 멕시코로 떠나지요. 사람들이 떠나버린 텅 빈 지구에선 녹

슨 청소 로봇 하나만 남아 외롭게 지구를 지키고 있습니다.

듣기만 해도 흥미를 유발하는 이 이야기들은 모두 미국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회사 ‘픽사

(Pixar)’에서 만들었습니다. 월트디즈니, 드림웍스와 어깨를 나란히 하며 미국 애니메이션의

3대 명가로 불리는 픽사는 기발한 상상력과 독특한 스토리텔링으로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폭

넓은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픽사가 처음부터 애니메이션 명가로 이름을 날린 것은 아니었습니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컴퓨터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었습니다. 기술적으로 어려울뿐더러,

컴퓨터가 자신의 일자리를 빼앗을 거라는 걱정으로 애니메이터들은 컴퓨터 그래픽을 거부했

습니다. 이러한 여건 때문에 픽사는 오랜 시간, 정부와 의료기관에 고성능 그래픽 디자인용

컴퓨터 픽사 이미지 컴퓨터를 판매하며 때가 오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다

1995년 월트디즈니와 함께 최초의 컴퓨터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스토리>를 만들게 되면서

픽사의 화려한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후 픽사는 <벅스 라이프>, <몬스터 주식회사>, <니모를 찾아서>, <월E>, <라따뚜이>, <업

(UP)>등 열 손가락을 모두 써도 모자랄 정도로 많은 히트작을 내놓습니다. 픽사 영화에는 무

엇이든지 할 수 있는 슈퍼 히어로나 멋진 왕자님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버려진 장난

감이나 괴물, 낡은 청소로봇 등이 주인공으로 등장하지요. 그럼에도 픽사의 이야기는 관객들

의 감정이입을 불러와 가슴을 뭉클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습니다. 재미와 감동에 교훈까지 선

사하는 것이지요.

Page 16: 경제다반사 E-Book 3월호

이렇듯 대단한 스토리텔링의 힘은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일까요? 픽사의 독특한 상상력은 도대체 어디에서 흘러나오는 것이며, 그 끝은 어딜까요? 픽사, 그 창

작의 원천을 알아보겠습니다.

창작의 원천 1 수정을 두려워하지 말라

픽사는 작품의 첫 구상과 제작이 끝난 완성품이 다른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말은 그만큼 많은 수정을 거쳤

다는 의미입니다. 작품의 성공을 위해서는 원래의 스

토리가 난도질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사실 <토이스토리>의 첫 번째 트리트먼트에서는 카우

보이 인형 ‘우디’가 아닌 ‘티니’라는 장난감이 주인공이

었습니다. 하지만 이 장난감이 캐릭터로서의 매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있자 미국인들에게 친숙한 카우보

이 인형을 주인공으로 삼고, ‘티니’를 우주인 영웅 피규

어 ‘버즈’로 바꿨습니다. 첨단 문명을 상징하는 우주인

피규어와 그와 대비되는 구식 카우보이 인형으로 캐릭

터가 재정비되자 스토리도 바뀌었습니다. 처음에는 티

격태격하다가 주변 상황 때문에 서로 협력하는 과정을

거치며 우정을 쌓게 되는 ‘버디무비’가 된 것이죠.

어린이들에게 겁을 줘 그 비명소리를 에너지원으로 삼는다는 기발한 착상의 괴물 이야기 <몬

스터 주식회사>도 여러 번 수정을 거친 작품입니다. 이 영화의 주인공 괴물 ‘설리’와 꼬마 숙

녀 ‘부’의 당초 캐릭터는 제련공장의 노동자와 괴물을 사냥하는 성인 남성이었다고 합니다.

이 스토리 역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여 <토이스토리>처럼 두 명의 인물을 중심으로 이

야기가 진행되는 구성으로 바뀌었습니다.

픽사가 스토리를 수정하는 것에는 이야기를 재미있게 만들려는 목적도 있지만 작품이 모두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실사 촬영이 가능한 일반 영화와 달리 인

물과 배경을 모두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에 프레임 하나하나가 제작비와

직결됩니다.

따라서 한 프레임도 헛되지 않도록 치밀하게 구성해야 하기 때문에 잦은 수정이 불가피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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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의 원천 2 현장조사는 이야기를 더욱 현실감 있게 만든다

픽사는 이야기의 소재가 정해지면 그와 관련된 자료

를 철저하게 조사합니다. 100% 상상력으로 만드는

애니메이션이라도 설계가 서투르면 그 이야기는 설

득력을 얻지 못합니다. 현장조사는 이야기에 현실감

을 불어 넣을 뿐 아니라 조사과정에서 뜻밖의 에피

소드를 얻어낼 수도 있습니다.

더러운 시궁창 쥐가 프랑스 최고의 요리사가 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 <라따뚜이>를 만들기 위해 제작

진은 미국 캘리포니아주 나파 밸리에 있는 고급 레

스토랑들을 돌며 주방을 비디오로 엄청나게 찍었습

니다. 제작자인 브래드 루이스는 식당의 견습생으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영화의 장면 중 주인공 쥐 ‘레

미’가 배수관에 흐르는 물을 타고 빠르게 이동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을 생생하게 연출하기 위

해 영화의 특수효과 팀이 캘리포니아주 새크라멘토

근처의 급류타기를 여러 번 하기도 했습니다.

픽사 제작진이 <니모를 찾아서>를 만들 때는 바다속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프랑스 해양학자 자크 쿠스토가 만든 다큐멘터리를 모두 섭렵하기도 했습니다. 이

뿐 아닙니다. 이들은 95리터 규모의 수족관에 온갖

종류의 바닷물고기를 풀어놓고 관찰했으며 몇몇 직

원은 하와이에서 스쿠버다이빙을 직접 체험하기도

했습니다.

개미들의 이야기를 다룬 <벅스 라이프>에서는 곤충

의 시선으로 보는 인간세상과 사물을 파악하기 위

해 벌레 크기의 소형 카메라를 개발했습니다. 이 카

메라가 잔디 사이를 헤집고 다니며 곤충의 시점에서

보이는 풍경들을 생생하게 전해줬는데요, 이때 사람

들의 눈에 비친 풀과 나뭇잎은 거대한 차양처럼 보

Page 18: 경제다반사 E-Book 3월호

였고, 곤충들이 마치 대형 스테인드글라스 천장 아래에서 사는 듯한 느낌을 줬다고 합니다.

덕분에 <벅스 라이프>는 사람의 시선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곤충들만의 환상적인 세계를 창

조해낼 수 있었습니다.

창작의 원천 3 회사가 자유로우면 발상도 자유로워진다

아무리 발상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그것을 억압하는 관습이나 인식이 있다면 그 아이디어는

평범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픽사는 사원들이 자유롭게 생각하고 상상력을 키워나갈 수 있도

록 다양한 제도와 규칙을 수립했습니다.

픽사에는 브레인 트러스트(brain trust)라는 조직이 존재합니다. 이 조직에는 픽사의 최고 창

조 책임자인 존 래스터와 8명의 베테랑 감독들이 있는데요, 이들은 작가나 감독, 제작자가 작

품과 관련한 도움을 요청하면 즉시 모여 그들이 만든 작업물을 보며 토론을 한다고 합니다.

이 토론에선 “무조건 고쳐라” 라는 식의 강제성이 없기 때문에 감독은 선배들의 조언을 듣고

자신의 작품을 좋은 방향으로 고쳐나갈 수 있다고 합니다.

또한 픽사는 직원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조직 문화를 만들었습니다. 자신의 작업물이 심

한 지적이나 비판을 받아도 사기가 꺾이지 않도록 직원들의 아이디어 교환과 피드백을 장려

했습니다. 픽사에는 ‘데일리 리뷰’라는 회의시간이 있는데, 스태프들은 이 시간에 제작중인

작품을 매일 동료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주고받습니다. 이렇게 미완성 작품을 조금씩 개선

하는 과정에서 작품의 질적 수준과 완벽성이 향상됩니다. 결국 데일리 리뷰는 구성원을 더욱

Page 19: 경제다반사 E-Book 3월호

창의적인 인재로 만들어주고, 사람들의 의견과 아이디어가 빛을 발하는 창의력의 보고가 되

는 셈입니다.

이 외에도 픽사는 픽사대학(Pixar University)이라는 사내 교육기관을 만들어 데생과 조각,

연기, 영화 제작, 글쓰기 등 100여 개가 넘는 과목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프로

그래머, 디자이너, 작가 등 영화 제작과 관련 있는 사람들뿐 아니라 요리사와 경비원 등 일반

직원들도 똑같은 자격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수강시간이 업무시간으로 인정되

는 것은 두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어때요? 이 정도면 픽사가 직원들의 창의력을 얼마나 중시

하는 회사인지 알 수 있겠지요?

21세기는 창조산업 시대라고 합니다. 드라마나 영화 같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물론 제품을

생산하는 일반 기업에서도 창조를 새로운 경쟁력의 원천으로 꼽고 있습니다. 이러한 창조는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발상이 있어야만 만들어집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에선 기존

의 고정관념과 낡은 관습, 보수적인 인식들이 아직 남아 있어 여기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곱

지 않은 시선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창의력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합니

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청년들이 자유롭게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이 하루 빨리

조성되어 픽사처럼 전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뛰어난 창작물이 이들의 손에서 만

들어지기를 기대합니다.

Page 20: 경제다반사 E-Book 3월호

2013년 3월호 > 빛나는 지식경제

손바닥만 한 구권이 사용되던 시절, 어머니는 천 원

권 뒷면을 보여주며 이러한 문제를 냈습니다.

"여기서 마당을 청소하는 청소부를 찾아보렴."

당시 천 원 권 뒷면에는 도산서원이 그려져 있었는

데, 보라색 계열의 색상 때문인지 그 서원그림은 고

즈넉하다 못해 쓸쓸해 보이기까지 했습니다. 분위

기에 취해 있었던 것도 잠시, 문제를 맞히면 천 원을

준다는 어머니의 말에 두 눈 부릅뜨고 지폐에 있는

청소부를 열심히 찾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청소부

는 끝내 찾을 수 없었고, 결국 못 찾겠다는 내 말에

어머니는 깔깔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지금은 쓸 게 하나도 없어서 집 안으로 들어갔어."

지금 생각해보면 허무하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문제

입니다. 하지만 작은 점과 선을 촘촘히 연결해 그린

지폐를 들여다보고 그 세밀함에 탄복했습니다. 손바

닥만한 크기에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미세한 풍경

들이 장식되어 있고, 인물은 선 하나하나가 살아 있

는 듯 생동감까지 느껴졌습니다. 이런 세밀한 그림

은 도대체 어떻게 그릴까 궁금증마저 일었습니다.

화폐 안에 세상을 담다 0.03mm의 예술가, 화폐 디자이너 김종희

Page 21: 경제다반사 E-Book 3월호

그 궁금증은 훗날 제가 커서 어른이 된 뒤에 풀렸습니다. 우리나라 지폐를 그리는 예술가들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지폐뿐 아니라 우리가 사용하는 신분증이나 상품권에도 이 분들의 손길이 고스란히

담겨 있지요. 이런 분들을 화폐 디자이너라고 말합니다. 아무리 작은 종이라도 이분을 만나면 그 안

에서 또 하나의 세상이 만들어집니다. 0.03mm의 선으로 세상을 창조해내는 화폐 디자이너, 김종

희 연구원을 만나보았습니다.

대전시 유성구 과학로에 위치한 한국조폐공사 기술연구원. 일반

사무실과 비슷해 보이는 이곳에선 '돈'을 휴지처럼 쉽게 볼 수 있

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디자이너의 모니터 위에는 오만원권 도

안이 큼직하게 띄워져 있고, 책상 위에는 세계 각국의 지폐들이

마치 쓰고난 사무용지처럼 가득 널려 있었습니다.

"저희는 화폐를 제품이라고 부릅니다. 화폐 디자이너는 돈을 그

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돈을 돈으로 보려야 볼 수가 없거든요."

화폐를 제품이라 말하며 장난스럽게 미소 짓는 김종희 연구원. 그러나 화폐를 손에 쥐면 그의 눈빛

은 날카롭게 변합니다. 일반 사람들은 화폐의 액면을 먼저 확인하는 데 반해 김 연구원은 화폐의 문

양과 선 등의 디자인을 유심히 봅니다. 화폐 디자이너니까 어쩌면 당연한 이야기겠죠.

“화폐 디자이너는 말 그대로 돈을 만드는 사람을 뜻합니다. 화폐 외에도 국내에서 생산하고 있는 보

안제품에 대한 모든 디자인을 설계하는 것이 저희 업무죠. 재화로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은행권, 상

품권, 수표, 여권, 신분증 등이 모두 여기에 속해요. 기념주화와 훈장도 저희가 디자인하고 있습니

다.”

우리나라의 화폐 디자이너는 국내에 15명밖에 없는 희귀 전문직입니다. 게다가 보안이 엄격하기 때

문에 회사 일에 대해서는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다고 합니다. 1998년에 조폐공사에 입사한 김종희

연구원은 15년 가까이 이 일을 하다 보니 사람이 점점 쪼잔해지는 것 같다며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사람이 소심해진다고 할까, 그런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알고 보면 화폐가 다 손바닥만 한 종이잖

아요. 0.03mm 라인을 가지고 디자인을 하고, 그걸 오천 배로 확대해서 작업을 하다 보니까 쪼잔해

지는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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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김종희 연구원은 우리나라 지폐의 2막을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실력이 뛰어난 화

폐 디자이너입니다. 2006년에 새로 발행된 오천 원 권부터 2009년 오만 원 권까지 현재 사용되고

있는 모든 한국은행권 지폐 제작엔 그가 모두 관여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그는 광고 디자이너가 되

고 싶었다고 합니다.

“한남대 응용미술학과를 다녔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광고 디자이너를 꿈꿨죠. 졸업 후 3년 동안 광

고 기획사에서 일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98년에 외환위기가 터졌잖아요. 그래서 먹고 살기 위해 조

폐공사로 직장을 옮긴 뒤에 은행권 디자인 업무를 하게 되었어요.”

본인이 꿈꾸던 직업에 대한 미련이 남지는 않았을까? 하지만 그는 화폐 디자인도 세계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을 알리는 광고라며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드러냈습니다.

지금은 전 국민의 지갑에서 신권을 흔히 볼 수 있지만, 김 연구원은 당시 이들 신권의 기획을 맡았을

때 무척 부담스러웠다고 합니다.

“조폐공사는 60년 이상 된 오래된 회사예요. 그만큼 훌륭한 선배님들도 많이 계셨지요. 그런데 제가

그분들의 뒤를 이어 잘 해낼 수 있을까 두려웠어요. 국민이 잘 쓸 수 있는, 디자인이 잘 된 신권을 만

들어낼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과 제가 실수라도 하면 선배님들이 쌓아온 업적에 누를 끼치게 된다

는 걱정도 들었고… 그래서 처음 시작할 때 힘들고, 두렵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김 연구원은 그런 두려움을 떨쳐내고 새로운 화폐 디자인에 매달렸습니다. 그는 디자인 설

계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철저한 고증을 거쳐 신권 도안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디자인도 마찬가지지만 화폐 디자인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더욱 엄

격한 단계를 거쳐요. 화폐는 한국은행과 조폐공사가 함께 제작하는데, 한국은행에서 화폐 발행 계

획을 세우면 조폐공사로 통지를 하고 색채, 디자인, 학자 등 각 분야의 전문가를 모아서 자문위원회

를 구성합니다. 그리고 국민 여론을 반영해 화폐 초상에 들어갈 인물이 선정되면 저희는 인물에 맞

는 소재나 문양을 그리기 위해 자료조사와 디자인을 합니다. 이때 지폐 위조를 방지할 설계도 함께

하지요. 그런 뒤에 화폐도안 자문위원회의 고증을 거쳐 디자인을 확정 짓습니다.”

Page 23: 경제다반사 E-Book 3월호

화폐 디자인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일은 제품 원도와 원판을 만드는 일이라고 합니다. 제품원도란

지폐의 기본으로 인물, 문양, 위조 방지 장치 등이 모두 들어가 있는 전반적인 돈의 설계를 뜻합니

다. 특히 지폐에 그려진 인물이나 글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것이 모두 하나하나의 선으로 일

일이 섬세하게 손으로 그린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도면에도 디테일한

문양과 패턴들이 숨어 있습니다. 이 선들은 복사기나 스캐너 같은 장비로는 절대 구현해 낼 수 없다

고 합니다.

“우리나라 지폐는 선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만져보면 오톨도톨한 느낌이 나요. 이러한 인쇄를

요판인쇄라고 하는데, 위조지폐를 구분하는 데는 이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어요. 화폐디자이너는 이

러한 선을 인쇄 구성에 맞춰 디테일하게 표현하고, 위조를 방지하기 위한 패턴을 구성하는데 이것

이 난이도가 가장 높은 작업이지요.”

패턴 이야기가 시작되자 김 연구원의 눈이 빛납니다. 그의 말에 의하면 거실 바닥에 깔린 장판이나

창살 무늬, 벽지 등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모든 문양들이 화폐에 적용할 수 있는 패턴의 소스가 된다

고 합니다. 실제로 오만 원 권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에 그려진 문양들이 적용되어 있다고 합니다. 일

반 사람들은 무심코 지나치는 패턴들이 화폐 디자이너에게는 소중한 아이디어의 원천이 되는 셈입

니다.

2009년 4종류의 신권이 모습을 드러내자 대부분 사람들은 구권보다 세련되고 크기가 작아진 신권

에 만족해했지만 일각에서는 장난감 돈 같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지난

2007년 제작된 만 원 권 뒷면의 혼천의가 중국 유물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왜 한국의 지폐에 중국 물

건을 그려 넣었느냐는 항의가 일기도 했습니다.

“저희가 작업을 할 때 디자인이나 인물 구

성 등 모든 것을 철저히 고증하고 조사합니

다. 혼천의가 중국 유물이라는 주장이 있기

도 했는데, 중국의 혼천의에는 돌출 고리가

없어요. 하지만 우리나라 혼천의에는 있거

든요. 전반적인 느낌이 중국 것과 비슷할지

몰라도 우리 화폐에 그려진 혼천의는 우리

나라의 독자적인 기술로 조선 천문학자 송

이영이 만든 것입니다. 때문에 그런 주장이

힘을 얻어도 저희는 우리나라의 혼천의라

고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습니다.”

Page 24: 경제다반사 E-Book 3월호

김종희 연구원은 이 말을 끝내고 혼천의 옆에 있는 작은 망원경을 가리켰습니다. 그것은 보현산 천

문대의 천체 망원경으로 과거의 과학을 상징하는 혼천의와 함께 현재의 과학을 상징하는 소재로 그

려졌다고 합니다. 그는 이 망원경을 그리기 위해 보현산 천문대를 여섯 번이나 찾아갔는데요, 하루

는 산 중턱에서 차가 멈추는 바람에 무거운 장비들을 직접 짊어지고 천문대까지 땀을 뻘뻘 흘리며

걸어 올라가야 했다고 합니다. 엄지손가락만한 망원경을 그리려고 그러한 수고를 했을 줄이야….

새삼 그의 노력에 감탄하게 되었습니다.

“1983년 화폐 디자인이 바뀔 때 전반적인 콘셉트가 인물 초상에 지위를 나타내는 흉배 문양을 넣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만 원 권에 그려진 세종대왕에는 왕을 상징하는 용 흉배가 그려졌고, 문신인 퇴

계 이황과 율곡 이이에는 사슴, 학 등의 문양을 넣었지요. 그런데 용이 일부 종교(기독교)에서는 사

악한 동물로 취급되는데, 나라의 돈에 왜 사악한 용을 그려 넣었느냐는 항의가 들어오기도 했대요.”

화폐에 대한 웃지 못 할 에피소드는 또 있습니다. 지난해 인터넷 게

시판에서는 ‘세종대왕은 성형 중독자’라는 제목으로 신권이 발행 때

마다 얼굴이 바뀐 세종대왕의 초상이 게재되어 네티즌들에게 웃음을

선사했습니다. 특히 1973년에 발행된 만 원 권의 세종대왕은 높은 콧

날을 가진 서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웃음거

리가 될 일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안타까운 우리 역사가 숨어 있었습

니다.

“우리나라의 독보적인 디자인과 기술로 은행권을 처음 만든 게 1983

년입니다. 그 전에는 영국에서 인물 초상작업(요판인쇄 부분)을 맡았

지요. 세종대왕뿐 아니라 1972년 발행된 오천 원 권의 율곡 이이도

서양인의 외모를 하고 있습니다. 이때는 우리나라의 여건이 좋지 않

아 외국인의 손에 제작을 맡기다 보니 한국적인 정서가 반영되지 않

아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죠.”

하지만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나라의 조폐 기술은 선진국과 비교해

도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의 기술력은 해외에서도

인정받아 태국, 대만, 필리핀, 스위스, 미국 등 전 세계 30여 개국에

자체 기술로 만든 은행권과 여권, 특수잉크, 메달 등을 수출해 약 4억 1,500만 달러를 벌어들였습니

다. 올해에도 미국의 한 유통업체에 15만장의 상품권을 수출키로 해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 조폐 기

술의 우수성을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눈부신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김종희 연구원은 아직 축배를

들기에는 이르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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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앞으로 화폐가 사라질 수도 있어요. 카드사용량과 전

자 상거래가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거든요. 그 때문인지

실제로 화폐 사용량이 줄고 있어요. 현금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겠지만 사용량은 점점 줄 거예요. 우리 회사로선 가슴 아픈

일이죠. 그러니까 만 원 이하는 현금을 사용하시길 부탁드려

요(웃음).”

김종희 연구원이 화폐디자이너로 일한지도 어느새 15년이 흘

렀습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몇 년 이상 하면 질리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그는 시간이 거꾸

로 흐르는 것처럼 화폐 디자이너 일이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재미있고 흥미롭다고 말합니다. 위

조를 막기 위한 디자인 작업이 그에게 끊임없는 활력을 불어넣어준다는 것입니다.

“퇴직하기 전까지 새로운 화폐 디자인을 한 번 더 하고 싶은 게 제 바람이에요. 특히 화폐에 등장하

는 인물을 새로운 사람으로 하고 싶어요. 지금까지 우리나라 지폐는 조선시대 인물들로만 구성되어

있는데요, 이분들도 훌륭한 위인들이기는 하지만 근대에도 뛰어난 분들이 많이 계시거든요. 그분들

을 새 화폐의 주인공으로 넣어보고 싶어요.”

끝으로 김종희 연구원은 화폐를 쓰는 사람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돈은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만드는 겁니다. 그러니까 그만큼 관심을 갖고 소중하고 깨끗하게 사용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김종희 연구원이 알려주는 위조지폐 구분법!

1.지폐를 만져보자지폐를 만지면 오톨도톨한 촉감이 느껴진다. 스캐너나 복사기로 만든 위조지폐에서는 이러한 느낌이 나지 않는다.

2.지폐를 기울여 지폐에 부착된 홀로그램을 확인해 본다지폐에는 엄지손톱만한 홀로그램이 붙어있다. 오천 원 권의 경우 홀로그램을 기울여 보면 빛의 각도에 따라 한반도 모양과 숫자 5000, 태극기의 4괘가 번갈아 나타난다.

3.빛에 비춰보자지폐의 앞면 왼쪽, 그림이 없는 백지 부분을 빛에 비추면 숨겨져 있는 인물 초상(은화)이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