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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 첨단기술 NOVEMBER 2016 1 재미있는 연구 이 용 희 한국고등과학원 원장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하다가 최근 한국고등과학원(Korea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KIAS) 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기초과학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 이 머리를 맴돈다. 고등과학원의 고유 임무를 요약해 보면, 첫째, 우수한 교수들을 중심으로 국제적 으로 인정받는 최고 수준의 기초 과학 이론연구를 수행하는 것. 둘 째, 젊고 유능한 박사후 연구원들 이 자유롭게 연구를 수행하며 성 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지원하는 것. 셋째, 국내 물리학 계, 수학계 발전에 널리 이바지하는 것. 고등과학원은 지난 20여 년간 순수 이론 물리학과 순수 수학을 사랑하는 연구자들의 열린 놀이 마당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발전해 왔으며, 고등과학원 고 유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고등과학원의 가장 핵심적인 프로그램 중에 KIAS Scholar는 것이 있다.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과학자들을 고등과학 원에 초청해서 KIAS 교수 및 젊은 연구원들과 함께 어울리면 서 연구할 수 있게 하는 장기 방문 과학자 프로그램이다. 올해 , 지난 12여 년을 꾸준히 KAIS Scholar로 고등과학원을 계 속 매년 23달 정도씩 방문하면서 공동연구를 수행한 코스 털리츠 교수(John M. Kosterlitz)201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경사가 생겼다. 한국의 고등과학원에서 우리와 함께 뒹굴던 과학자 중 한 사람이 노벨상을 탄 것이다. 지금 이 시 간 현재 고등과학원에 거주 중이며, 며칠 후 노벨상 수상식 참 여 차 스웨덴으로 출국할 예정이며, 수상식 후에는 다시 고등 과학원으로 돌아와서 내년 1월 중순까지 머물 예정으로 있다. 이런 분이 한국에 지속적으로 오는 것은 학문적으로 얘기가 통하는 친한 과학자들, 편하고 즐겁게 연구할 수 있는 연구 문 화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된 . 경제적인 지원만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장기간에 걸친 국가의 지원으로 멋있게 형성된 고등과학원 고 유의 열린 문화가 있었기에 이러한 인물들이 기꺼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물론 언젠가는 우리나라 과학자 중에서 이런 인물이 나타날 것을 기대해 보는 마음도 간절하 . 과학은 기본적으로 재미있고, 궁금한 것에 대한 본능적인 추 구가 아닌가 생각한다. 코스털리츠 교수는 ‘2차원에서 질서를 가지는 물질 상태가 가능한 것인지가 궁금해서 연구를 시작했 다고 담담히 말한다. 연구가 의미 있는 연구인지, 기초연구인 , 응용연구인지는 생각해 보지 않고 그저 궁금해서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그냥 궁금한 것을 잡아서 재미있게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럽다. 어떤 분야이든지 간에 자기 분야 에서 뭔가를 크게 이룬 사람들은 이런 재미를 아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재미가 있으면 열정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원 시절, 레이저가 문턱을 넘으면서 갑자 기 빛이 터지는 멋진 모습에 눈이 멀어서 레이저 연구를 시작 했다. 그 후 지금까지 레이저를 얼마나 작게 만들 수 있나?’, 빛을 얼마나 작은 공간에 집속시킬 수 있을까?’ 하는 등등이 궁금해서 계속 물어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하고픈 것을 재 미있게 할 수 있는 좋은 환경 속에 있을 수 있었으니 나는 스 스로를 무척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각자가 하고픈 연구를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 는 여유있는 연구 문화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내일을 생각해 본다. ([email protected])

재미있는 연구 - webzine.kps.or.krwebzine.kps.or.kr/contents/data/webzine/webzine/14847042681.pdf · 물리학과 첨단기술 november 2016 1 재미있는 연구 이 용 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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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 첨단기술 NOVEMBER 2016 1

재미있는 연구

이 용 희한국고등과학원 원장

카이스트 물리학과 교수로 재직

하다가 최근 한국고등과학원(Korea

Institute for Advanced Study,

KIAS) 원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기초과학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

이 머리를 맴돈다. 고등과학원의

고유 임무를 요약해 보면, 첫째,

우수한 교수들을 중심으로 국제적

으로 인정받는 최고 수준의 기초

과학 이론연구를 수행하는 것. 둘

째, 젊고 유능한 박사후 연구원들

이 자유롭게 연구를 수행하며 성

장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지원하는 것. 셋째, 국내 물리학

계, 수학계 발전에 널리 이바지하는 것. 고등과학원은 지난 20여

년간 순수 이론 물리학과 순수 수학을 사랑하는 연구자들의 열린

놀이 마당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발전해 왔으며, 고등과학원 고

유의 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고등과학원의 가장 핵심적인 프로그램 중에 KIAS Scholar라는 것이 있다.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과학자들을 고등과학

원에 초청해서 KIAS 교수 및 젊은 연구원들과 함께 어울리면

서 연구할 수 있게 하는 장기 방문 과학자 프로그램이다. 올해

는, 지난 12여 년을 꾸준히 KAIS Scholar로 고등과학원을 계

속 매년 2∼3달 정도씩 방문하면서 공동연구를 수행한 코스

털리츠 교수(John M. Kosterlitz)가 2016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하는 경사가 생겼다. 한국의 고등과학원에서 우리와 함께

뒹굴던 과학자 중 한 사람이 노벨상을 탄 것이다. 지금 이 시

간 현재 고등과학원에 거주 중이며, 며칠 후 노벨상 수상식 참

여 차 스웨덴으로 출국할 예정이며, 수상식 후에는 다시 고등

과학원으로 돌아와서 내년 1월 중순까지 머물 예정으로 있다. 이런 분이 한국에 지속적으로 오는 것은 학문적으로 얘기가

통하는 친한 과학자들, 편하고 즐겁게 연구할 수 있는 연구 문

화 등 여러 가지 요소가 복합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생각된

다. 경제적인 지원만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장기간에 걸친 국가의 지원으로 멋있게 형성된 고등과학원 고

유의 열린 문화가 있었기에 이러한 인물들이 기꺼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물론 언젠가는 우리나라 과학자

중에서 이런 인물이 나타날 것을 기대해 보는 마음도 간절하

다.

과학은 기본적으로 재미있고, 궁금한 것에 대한 본능적인 추

구가 아닌가 생각한다. 코스털리츠 교수는 ‘2차원에서 질서를

가지는 물질 상태가 가능한 것인지’가 궁금해서 연구를 시작했

다고 담담히 말한다. 연구가 의미 있는 연구인지, 기초연구인

지, 응용연구인지는 생각해 보지 않고 그저 궁금해서 연구를

했다는 것이다. 그냥 궁금한 것을 잡아서 재미있게 연구하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부럽다. 어떤 분야이든지 간에 자기 분야

에서 뭔가를 크게 이룬 사람들은 이런 재미를 아는 사람들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재미가 있으면 열정은 저절로 따라오는

것이라 생각된다.

개인적으로는 대학원 시절, 레이저가 문턱을 넘으면서 갑자

기 빛이 터지는 멋진 모습에 눈이 멀어서 레이저 연구를 시작

했다. 그 후 지금까지 ‘레이저를 얼마나 작게 만들 수 있나?’, ‘빛을 얼마나 작은 공간에 집속시킬 수 있을까?’ 하는 등등이

궁금해서 계속 물어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하고픈 것을 재

미있게 할 수 있는 좋은 환경 속에 있을 수 있었으니 나는 스

스로를 무척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각자가

하고픈 연구를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도와주

는 여유있는 연구 문화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내일을 생각해

본다.([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