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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 주간교수 편집인 주소 이메일 창간일 김봉렬 양승무 선승범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회관 2층 [email protected] 1996년 11월 28일 2014.09.15 237 2면: 비상쇄신위원회, 쇄신안 발표 3면: 누리 사이트 개편 4면: 학생회 기획—총학생회 ‘늘품’ 5면: 학생회 기획—앞으로를 위해 6면: 서초캠, 리모델링으로 당분간 이전 7면: ‘세월호 위로예술제’ 개최 2면: 학내 소식 3면: 교원 성과급적 연봉제 도입 4면: 기성회비, 우리 학교는 지금 5면: 가을예술제 6면: 2014 미디어시티서울 7면: 문화 8, 9면: ‘리트윗 국보법’ 박정근 인터뷰 10면: 어느 안타고니스트의 죽음 11면: 어느 반영웅의 죽음 12면: 한국영화사 기획서평 13면: ‘초우상회’ 인터뷰 14, 15면: 칼럼

2014.09.15 제23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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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014.09.15 제237호

발행인

주간교수

편집인

주소

이메일

창간일

김봉렬

양승무

선승범

서울특별시 성북구 석관동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회관 2층

[email protected]

1996년 11월 28일

2014.09.15제237호

2면: 비상쇄신위원회, 쇄신안 발표

3면: 누리 사이트 개편

4면: 학생회 기획—총학생회 ‘늘품’

5면: 학생회 기획—앞으로를 위해

6면: 서초캠, 리모델링으로 당분간 이전

7면: ‘세월호 위로예술제’ 개최

2면: 학내 소식

3면: 교원 성과급적 연봉제 도입

4면: 기성회비, 우리 학교는 지금

5면: 가을예술제

6면: 2014 미디어시티서울

7면: 문화

8, 9면: ‘리트윗 국보법’ 박정근 인터뷰

10면: 어느 안타고니스트의 죽음

11면: 어느 반영웅의 죽음

12면: 한국영화사 기획서평

13면: ‘초우상회’ 인터뷰

14, 15면: 칼럼

Page 2: 2014.09.15 제237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9월 15일 제237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한국예술종합학교 부설 한국예술영재

교육원은 오는 10월부터 2015년 2월

까지 약 5개월 동안 ‘예술영재교육 지

역거점센터 지원사업’을 진행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고 한국예

술영재교육원이 주최하는 이 사업은

전국의 예술영재교육기관 중 5개 기관

을 한국예술영재교육원의 지역거점 센

터로 선정하여 예술영재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대한 운영비를 지원한다. 올해

는 1개 기관당 1,500만 원씩 총 7,500

만 원을 지원한다. 또한 한국예술영재

교육원과 각 지역 영재교육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교육프로그램 및 교수학

모형 등의 현장성을 강화하고, 예술영

재 교육인력의 전문역량을 높여 기관

간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모 대상은 예술분야와 관련하여

예술영재교육진흥법 제7조와 제8조에

의해 운영되고 있는 ‘영재학급’ 또는 ‘영

재교육원’에 해당하며 서면 심사를 통

해 선정기관을 정해 10월 2일(목)에

발표된다.

이 사업은 2008년부터 진행해왔으

며, 지난해에는 경남 양산교육지원청

이 운영하는 영재교육원을 비롯해 전

남 진도교육청, 경북 김천예술고, 서

울 신대림초등학교, 가천대학 과학영

재교육원이 선정되었다. 양산교육지원

청 영재교육원은 지난해 예산 2000만

원을 지원받았고 ‘음악 창작 영재 사업’

과 ‘영상예술영재 사업’ 등 새로운 영

재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2013년

도 지원사업의 수혜자가 되었다.

이번에 새로 임명된 김남윤 한국예

술영재교육원장은 “예술영재교육 지

역거점센터 지원 사업을 통해 지역 예

술영재들의 창의 인성을 함양하여 성

장을 도모하는 다양한 프로그램 개발

을 기대하고 있다. 이를 통해 자라나는

지역 예술영재들이 꿈과 끼를 발현시

킬 값진 기회를 얻길 바란다”고 밝히

며 많은 기관이 영재교육의 혜택을 받

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김채운 기자)

지난 7월 21일 서울시와 한예종은

‘시민대학 운영협력에 관한 업무협약

(MOU)’을 체결했다. 9월 말부터 한국

예술종합학교에서는 올해 하반기부터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무료 강의를 개

설할 수 있게 된다.

석관캠퍼스에서 열리는 수업은 ‘예

술과 신체의 감각’, ‘아시아 영화의 이

해’, ‘한국의 미와 현대미학 입문’ 총

세 강의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각의 강

의는 김종길, 최진석, 이명원(예술과

신체의 감각), 김소영, 하승우, 김정구,

유운성(아시아 영화의 이해), 심광현,

김채현(한국의 미와 현대미학 입문)가

맡아 강의를 하게 된다. 강의실은 세

강의 모두 본관 영상원 건물 L14에서

열리며, 신청하면 누구든지 들을 수 있

는 개방수업이다. 한예종 이외에 서울

시와 MOU를 체결한 대학은 경희대학

교, 성공회대학교, 이화여자대학교, 고

려대학교, 건국대학교, 서울대학교, 성

균관대학교, 한양대학교, 동국대학교

등이 있다.

한예종 서울시민대학을 주관하는

영상원 부설 트랜스:아시아연구소의

강진석 연구원은 “이번이 한예종에서

진행하는 첫 번째 시민대학이라는 점

과 분야에 있어서 영화, 미술, 문학, 미

학 등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는 점을 주

지해주셨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

다. 또한 “학생들에게 홈페이지를 통해

홍보를 진행하고 있으며, 현재 홍보물

을 교내에 부착할 기획”이라며 많은 학

생들이 이 강의를 알아주었으면 좋겠

다고 덧붙였다.

이 소식을 들은 학생들의 반응은 대

체로 긍정적이다. 문소정(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과 14) 씨는, “일반 시민들

이 미학에 대해서는 접할 기회가 적은

데, 이런 수업이 도움이 될 것 같다”라

고 말했다. 강의는 9월 3일부터 서울

시 평생학습포털(htp:/sl.seoul.go.kr/)

에 접속하여 신청할 수 있다. (권라임

기자)

예술정보관에서 소장자료 전시회를 연

다. 예술정보관 1층 로비에서 열리는

이번 행사는 9월 16일(화)부터 10월 2

일(목)까지 이어진다.

소장 자료는 두 가지 테마로 나뉘

어 전시가 될 예정이다. 특히 “예술 정

보관과 함께하는 한예종 20년”의 테마

는 예술정보관이 소장한 학교발행자료

중 한예종 운영 및 연혁과 관련된 자

료들을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아울러 “다대출 자

료 전시” 테마는 2014년도 1학기에 가

장 많이 대출된 자료를 예술, 문학, 일

반주제, 만화, 비도서 자료 등을 분야

별로 5순위까지 선정하여 전시하게 될

예정이다.

전시 기간 내 예술 정보관 방문자의

개인 소장 자료는 기증 및 인기도서와

교환이 가능하다. 기증 자료는 권수에

제한이 없지만 인기도서 증정은 기증

권수에 관련 없이 1권만 증정된다. 담

당자는 책나눔에 기증한 자료가 예술

정보관 미소장 자료인 경우에는 기념

품을 증정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전시시간 내 자료를 대출하는

이용자에게 선착순으로 기념품이 증정

된다. 기념품은 1일 30매에 한정되어

있다. 9월 16일(화)부터 18일(목)까지

는 전시 공간 벽면에 개교 이후 20년

을 맞이한 한예종 관련 영상물도 상영

될 예정이다.

2014년 1월 1일 부터 2014년 8월

30일까지 도서관 이용자 중 대출 책 수

가 많은 이용자를 다대출자로 선정한

다. 선정된 학생은 9월 18일 목요일 오

후 세시에 예술정보관 관장실에서 상

을 받게 된다. 시상자 선정 기준에서

교수는 제외되며 교직원은 2년 연속으

로 선정이 불가하다. 대상 기간 중 연

체일이 10일 이상인 자와 만화 대출자

는 선정 기준에서 제외된다. 최우수상

5명과 우수상 20명이 선정되는 이번

다대출자 시상의 부상은 문화상품권이

다. 최우수상에게 10,0000원 상당 우수

상에게 30,000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이

수여된다. 더 자세한 사항은 예술정보

관 정리실(02-746-9105)로 문의하면

된다. (김채운 기자)

가을에 만나는 도서관

서울시민대학 개설

예술영재교육 지역거점센터 지원 사업 진행

기억으로부터의 손짓

Page 3: 2014.09.15 제237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9월 15일 제237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한예종 학생이라면 누구나 아는 학교의

조형물이 하나 있다. 바로 예술극장 앞

에 있는 하얀색 다리 <시공간을 초월하

는 게이트>이다. 이 조형물을 설계한 주

인공이자 지난 9월 1일 미술원장으로

취임한 박선우(미술원 건축과) 원장을

9월 12일 미술원장실에서 만났다.

취임한 지 아직 이주도 지나지 않았습

니다. 소감이 어떠신지요.

저는 학부에서 공학을, 유학생활에서는

디자인을 전공한 우리 학교에서는 특이

한 이력을 가지고 있어요. 예술에서는

1+1=1이 될 수 있지만, 공학에서는 1이

아니고 2가 되어야 합니다. 즉, 확실한

결론이 있어야 하죠. 이러한 수학적인

사고방식을 융합하여 대부분이 예술이

전공인 선생님과 어떻게 보조를 맞출 것

인지 고민해야 합니다. 지난 재임 기간

에 여러 보직(학과장 5년, 부원장 2년)

을 수행하면서 운영방안을 잘 터득하고

있어 사실 별문제가 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전임 원장이 닦아 놓은 미

술원의 튼실한 기초위에 더욱 발전된 공

든 탑을 세워야죠.

보직 교수 수행을 여러 번 하셨는데

아무래도 가르치기만 할 때보다는 학

생들과의 소통에서 아쉬운 점이 있을

거 같아요.

저는 평소에도 학생들과 제 연구실에

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건축

과 학과장직을 맡았을 때는 오히려 건

축과 학생회 친구들과도 이야기 나누고

술도 마시면서 더 많은 학생과 가까워

졌죠. 물론 보직을 수행하게 되면 상대

적으로 학생들을 가르칠 수 있는 기회가

없어서 아쉽긴 하죠. 이번에 미술원장으

로 위임되면서 수업을 많이 하지 못하

는 것은 아쉬워요. 학생들을 직접 만날

기회가 적어졌죠. 대신 조만간 미술원

자치 학생회 친구들을 만날 계획입니다.

2014년 2학기 미술원 운영에서 중점

을 두고 있는 가치가 있나요.

최근 학교생활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미술원이 가장 하위에 있다는 사실을 들

었어요. 다소 충격적이었습니다. 미술원

학생들이 이용하는 이 건물은 70년대에

지어졌어요. 이 건물은 오래된 만큼 학

생들이 공부하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에

요. 특히 너무 추워요. 제 연구실 어항

에 있는 물고기들이 겨울마다 동사해서

사라지는데 학생들의 작업실이나 강의

실은 더 하겠죠. 교육 환경은 학생들의

생활에 아주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그런 부분이 얼른 개선되었으면 싶어요.

다행히 올해 본부에서 이 건물에 대한

개량사업을 진행한다고 해요. 이 건물이

오래되어서 그렇지 개량사업을 할 경우

공간적으로 개선될 수 있는 부분이 있

거든요. 좀 더 좋은 교육환경이 개선될

수 있게 개량사업 시 제가 꼼꼼히 살펴

볼 생각입니다.

미술원 학생들도 취업에 대한 어려움

이 많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런 문제

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미술원 졸업생들은 주로 두 분류로 나

뉘는 것 같아요. 취업하거나 작가로서

활동하거나. 하지만 쉽지만은 않죠. 혼

자 해결하기 어려운 과업이니 학교 관

계자나 학생들이 적극적인 자세로 논의

가 필요하다고 봐요. 미술원에서는 작

가로서 활동하고자 하는 졸업생들에게

미술원 소유인 인사동 175갤러리를 이

용하게 하고 전시비용도 지원합니다. 물

론 이걸로 문제를 완벽하게 해결시킬 수

는 없죠. 저는 졸업생들을 위한 ‘문래동

예술촌’과 같은 레지던스가 마련되었으

면 해요. 학교 재정상 당장은 힘들겠지

만, 우리가 꾸준히 노력해 볼 만한 방안

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

씀 남겨주세요

우리 학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서 단

골처럼 나오는 말 중에 ‘입학하기도 어

렵지만 졸업하기는 더 어렵다’는 말이

있지요. 옆에서 수년간 학생들을 지켜

본 교육자로서 공감하는 문장이에요. 중

도에 학업을 포기하거나, 휴학하는 많

은 학생을 보면 참 안타까워요. ‘고진감

래 흥진비래’라는 말이 있는데 ‘고생을

다하면 반듯이 달콤함이 따라오고, 즐거

움을 다하면 비극이 찾아온다’는 뜻이

에요. 학생들이 현재에는 힘들지만 저는

분명 그 후에 좋은 일들이 찾아올 거라

고 믿어요. (한지윤 수습기자)

김봉렬 총장은 9월 1일 교학처장, 미

술원장 등 8개 직위에 대한 보직 교수

인사를 단행했다. 임기는 2014년 9월

1일부터 2016년 8월 31일까지 2년이

다. 새로 임명된 보직은 △교학처장 민

경찬(음악원 음악학과) 교수 △미술원

장 박선우(미술원 건축과) 교수 △미

술원 부원장 김지원(미술원 조형예술

과) 부교수 △미술원 건축과장 우동선

(미술원 건축과) 교수 △공연전시센터

예술감독 박상현(연극원 극작과) 부교

수 △예술영재교육원 원장 김남윤(음

악원 기악과) 교수 △예술영재교육연

구원 곽태규(전통예술원 음악과) 부교

수이며 예술교양학부 주임 남수영(영

상원 영상이론과) 조교수는 연임된다.

학교는 지난 9월 1일 석관동 캠퍼스 총

장부속회의실에서 수여식을 가지고 임

명장을 수여했다.

민경찬 교수는 교육부 교과과정 심

의위원장을 맡은 바 있으며 작년에는

명동학교 교가 복원 작업 활동을 했다.

박선우 교수는 고려대학교에서 건축공

학과 석사학위를 받았으며 파주시 헤

이리 마을 아트밸리 다리설계 공모에

서 우수작으로 당선된 바 있다. 김지

원 교수는 프랑크푸르트 국립조형 미

술학교를 졸업하고 ‘맨드라미’와 ‘항공

모함’과 같은 연작 회화 작품으로 활

동 중이다. 우동선 교수는 현재 국제

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위원회 회원이

며 『궁궐의 눈물, 백 년의 침묵』 등 여

러 저서를 집필했다. 박상현 교수는 연

출가와 희곡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405호 아줌마는 참 착하시다』로 2004

년 대산문학상 희곡 부문에서 수상한

바 있다. 김남윤 교수는 바이올린 리

스트로 줄리어드 음악학교를 졸업하고

현재까지 바이올린 오케스트라를 이끌

며 활동하고 있다. 곽태규 교수는 국

립국악원 창작악단 예술감독으로 활동

한 바 있으며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제

46호 피리 정악 및 대취타 이수자이기

도 하다. 남수영 교수는 뉴욕대학교에

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이미지 시대

의 역사기억: 다큐멘터리, 전복을 위한

반복』 등 여러 저서를 집필했다. (한지

윤 수습기자)

보직교수 인사

우리 학교도 정부 방침에 따라 교원

성과급적 연봉제가 전면적으로 도입

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이 입수한

‘2014학년도 제6차 원장회의 결과’를

보면, 교무과는 6월 25일 열린 원장회

의에서 “‘공무원 보수규정’이 2011년

1월 개정됨에 따라 2015년부터 본교

전임교원의 보수체계가 현행 호봉제

에서 성과급적 연봉제로 일괄 변경될

예정”이라고 보고했다. 교무과는 “우

리 학교와 한국전통문화대학교를 제

외한 다른 국립대는 2011년 신임교원,

2013년 비정년교원, 2015년 정년교원

으로 이미 연봉제의 단계적 전환을 준

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료에 따르면 교육부는 2014년

6월에 ‘2014년 국립대학 교원 성과급

적 연봉제 운영지침’을 배포했고, 학교

본부는 이에 따라 다른 대학 사례 등을

검토했다. 이어 △8월~9월 학내 의견

수렴 등을 통해 우리 학교 (성과급적

연봉제) 운영규정 마련 △10월~11월

관련 규정에 따른 시험평가 시행 및 제

도 보완을 거쳐 2015년 1월부터 성과

급적 연봉제가 전면 시행된다.

교원 성과급적 연봉제는 교원의 업

적을 일정 주기마다 평가하여 연간 보

수총액을 결정하는 것이다. 정부 방안

은 근무기간에 따라 연봉이 자동적으

로 올라가는 기존의 호봉제를 폐지하

고 1년마다 교원의 성과를 평가해 S,

A, B, C 네 등급으로 나누고 이에 따

라 보수를 차등으로 결정하는 게 핵심

이다. 이는 이명박 정부가 2010년 9월

발표한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으로 추

진되기 시작했고, 성과급적 연봉제 시

행을 위한 공무원 보수규정 개정안이

2011년 1월 4일 국무회의에서 가결되

면서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이후 정부

는 2012년 1월 발표한 ‘2단계 국립대

학 선진화 방안’에서 과도한 보수격차

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다음

연도 기본연봉 누적(성과가산금) 비율

을 완화하기로 했다.

국립대학 선진화 방안은 “국립대의

교육성과에 대한 비판이 늘어나고 있

으며, 이러한 문제의 근본 원인은 국

립대학의 비효율적 운영체제”라는 문

제의식에 따라 △서울대 법인화법 제

정 △학장직선제 폐지 △성과급적 연

봉제 도입(이상 1단계) △총장직선제

폐지 △총장 대학운영성과목표제 도

입 △학부 교양교육 활성화 △기성회

회계제도 개선(이상 2단계) 등을 추진

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전국

국공립대학교수연합회(국교련) 등은

이러한 방안이 “대학 민주화와 자율성

을 무시하고 국립대학 법인화를 추진

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으며, 특히 성과

급적 연봉제는 다양한 전공을 무시하

고 대학 공동체를 분열로 내몰고 있다”

고 주장했다. 또한 이와 같은 정책 방

향은 2000년대 이후 강화된 한국사회

의 신자유주의가 대학사회에도 퍼지

는 것이라는 비판이 있었다.

우리 학교의 성과급적 연봉제 도입

에 대해 전규찬 영상원 방송영상과 교

수는 기자와 통화에서 “정부에서 전면

적으로 추진하는 정책이라 무작정 거

부하기는 상당히 어려운 측면이 있다

고 이해한다”면서도 “예술학교라는 특

성에서 합리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방

법이 있는지는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

했다. 또한 전 교수는 “대학 구성원이

라는 당사자의 측면에서 봤을 때 과연

옳은 방법이고, 예술학교에 적용될 수

있는 모형인지, 예술교육의 측면에서

정말 바람직한지에 대해 동의하기 어

렵다”고 덧붙였다. (선승범 기자)

“고생을 다하면 즐거움이 찾아옵니다”

내년 1월부터 교원 성과급적 연봉제 도입S, A, B, C 네 등급으로 나눠서 평가… 성과 따라 보수 차등 지급

“예술학교에 적용될 수 있을지 생각해야” 비판도

박선우 신임 미술원장 인터뷰

Page 4: 2014.09.15 제237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9월 15일 제237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만년 계류상태인 국립대학 재정·

회계법

비국고회계인 기성회 회계와 국고회

계를 통합하여 교비회계로 운영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국립대학 재정∙회

계법」이 2008년 발의되었다. 이에 대

해 많은 대학 구성원들은 해당 법안이

기성회비 반환 소송의 본질인 등록금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우회할 뿐이

라며 반발했다. 이 법안이 통과될 경

우, 명목상 기성회비는 폐지되지만 기

성회비와 수업료가 통합되기 때문에

등록금 인하와 같은 실질적 효과를 기

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2008년 6월 발간된 「국립대학 재정

∙회계법(시안)에 관한 공청회 자료집」

에 따르면 교육부는 “학생을 포함하여

재정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도록” 시안

을 수정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해

당 규정이 국공립대 등록금 인하에 영

향을 행사할 가능성은 미미하다. 학생

들이 재정위원회에 참여해도 기존의

기성회비 사용 범위를 축소시키지 않

는 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기 때문이

다. 실제로 한 사립대학이 기성회비를

폐지하고 이에 해당하는 금액이 전부

수업료로 통합된 전례도 있다.

결국 「국립대학 재정∙회계법」은 임

기 만료로 폐기될 때까지 근 4년간 계

류상태에 머물며 의도한 효력을 발휘

하지 못했다. 19대 국회 민병주 새누리

당 의원이 위 법을 다시 제출하였는데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기성

회비의 공백을 국고로만 지원하자는「

기성회 회계 처리에 관한 특례법안」을

발의하면서, 해당 문제는 정당간 대리

전 양상을 띄고 진행되었다. 이 사안이

오래간 ‘검토 단계’에 머무는데는 이

러한 국회 내부의 긴장과 관련이 있다.

기성회비를 둘러싼 불만

징수의 정당성을 차치하고라도 기성

회비 지출내역에 대해서도 여론은 좋

지 않다. 지출내역이 제대로 공개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총무과는 “현재

기성회비의 지출내역을 모든 학생들

이 자유로이 열람하기는 어렵지만 총

학생회의 요구가 있다면 언제든 열람

할 수 있다”고 답변했다. 반면 18대 총

학생회 늘품은 총무과에 기성회비 관

련 요구를 끊임없이 하고 있다고 주장

했다. 배상희(전통예술원 한국예술학

과 11) 총학생회장은 후보 시절 기성

회비 관련 요구사항을 공약으로 내건

바 있으며,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임기

중 학교와 총무과 쪽에 공개 요청했지

만 아직 공개내역을 받지 못했다고 말

했다. 일각에서는 총학생회가 아닌 일

반 학생도 기성회비 지출내역 열람권

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

다. 한대호(영상원 영상이론과 11) 씨

는 “학생이 직접 납부한 돈인 만큼 일

반 학생도 자유로이 [기성회비] 지출

내역을 열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

장했다. 할 뿐더러, “학생회비 지출내

역이 학생회칙에 따라 공개되도록 되

있는 만큼 기성회비 사용내역도 공개

해야 한다”며 더욱 근본적인 문제를

지적했다. 기성회비가 학교만의 문제

가 아니라 학생들의 수업권 보장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안이라는 것이

다. 총무과의 답변에 참고하면 식당,

학생 상담소, 신문사, 건강진료소 등

부설기관 운영, 도서관 장서 확충, 학

교 정보 인프라 구축, 축제, 신입생 오

리엔테이션, 교내 폐기물 처리, 공연

기자재 관리, 공연 지원, 별관동 시설

개보수 등 모든 사업이 기성회비와 밀

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1963년 문교

부 훈령으로 기성회비가 만들어질 때

의 주된 목적이던 ‘시설 확충’을 넘어

기성회비가 보다 광범위한 영역에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법인화의 사전단계라는 혐의

일각에선 기성회비가 법인화 문제와도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

고 있다. 해당 법안에 따르면 대학이

출연금 형식으로 예산을 운영할 수 있

게 되기 때문이다. <경북대신문> 1514

호 기사 “국립대 위협하는 재정회계법,

이대로 괜찮은가”(2013년 11월 4일)

에 따르면 대학교육연구소 이수연 연

구원은 “국립대학이 대학예산으로 적

립금을 쌓고 수익사업을 벌일 수 있다

는 것은 국립대 법인화와 다를 것이

없다. 국립대학과 대학법인의 경계를

없애는 것은 정부가 국립대에 추가적

으로 재정을 지원해야 할 의무를 포기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했다.

앞서 언급한 서울대 역시 법인화가 기

성회비 소송의 쟁점 중 하나다. 서울

대는 기성회비를 법인화 이후로 걷고

있지 않으므로, 서울대 법인회계는 기

성회비 의존도를 가질 수 없기 때문이

다. 지금의 서울대는 기성회가 명목상

으로만 존재할 뿐, 기성회 직원이나 재

산은 실질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상황

이다. 이경환 서울대 56대 총학생회장

은 “불법적으로 징수된 기성회비 반환

의 책임은 국립대학’법인’ 서울대학교

가 부담해야 한다”며, “서울대 기성회

의 불법 행위에 대한 반환 의무가 서

울대학교 법인으로 승계되었음을 입

증”하기 위해 “서울대 법인화법에 대

한 위헌법률심판제청까지 동시에 진

행 중”에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세태

를 미루어볼 때, 작금의 국립대 기성

회비 반환 소송은 기성회비의 명목상

폐지가 아닌, 법인화와 관련한 실질적

승계 상황을 고려하는 형태가 되어야

한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권지

혜 수습기자)

기성회비, 우리 학교는 지금

기성회비의 작은 역사

처음 국립대학 기성회비 징수의 근거

가 마련된 건 지난 1963년이다. 당시

정부는 대학 발전을 지원할 취지로

「대학, 고∙중학교 기성회 준칙」(문교부

훈령 104호)을 제정하였다. 학부모 회

원과 기부자 특별회원이 납부하는 기

성회비는 대학 당국의 재정난을 극복

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이후 국가가 대학을 지원할 재정적

여건을 갖추게 되며 국공립대 기성회

비 징수의 정당성이 도마에 올랐다. 특

히 기성회비의 과도한 이월금이 집중

적으로 질타를 받았다. 기성회가 예산

을 과도하게 편성한 뒤 실제 지출은 적

게 하여 의도적으로 이월금을 발생시

켰다는 혐의다. 실제로 2011년 국정

감사에서 한나라당 권영진 의원이 제

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강원대, 경북대,

서울대 등 국공립대 이월액의 총계는

726억원에 달했다.

그러나 문제제기는 기성회비 폐지

로 이어지지 못했다. 국립대학이 기성

회비에 재정적으로 크게 의존하고 있

어 즉각적으로 폐지할 시 대학 운영이

마비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결국

절충안으로 「국립대학 재정∙회계법」

2008년 11월에 제정안이 국회에 제

출되었다. 해당 법안은 기간 만료 후

폐기되었다가 19대 국회 새누리당 민

병주 의원이 새로이 제출하였고, 새정

치민주연합 유은혜 의원 역시 「기성회

회계 처리에 관한 특례법안」을 제출

하였다.

서울대의 대응

이경환 서울대 56대 총학생회장은

2013년 9월 기성회비 반환 소송을 위

해 프로젝트 팀 ‘스누캐시백(Seoul

National University Cashback)’을 만

들었다. 약 200명이 모집되었으며 반

환 청구된 기성회비 총액은 25억원을

상회한다. 2013년 7월 무렵 한국방송

통신대 학생들의 기성회비 전액 반환

소송이 승소한 소식이 이들에게 동기

가 됐다. 이경환 회장은 “일부 반환이

아닌 전액 청구 소송이라는 점, 대규모

집단 소송이라는 점, 다른 학교와 연

계되지 않은 서울대생들만의 소송이

라는 점”이 스누캐시백 활동의 특징이

라고 덧붙였다. 이경환 회장에 따르면

현재 서울대에서는 졸업생들이 전액

을 반환받을시 재학생과 서울대 재정

에 부담을 가중시킨다며 반대하는 의

견이 일부 있지만, 부당한 기성회비에

대해 자기 권리를 찾는 행동이라며 찬

성하는 의견이 우세하단다.

반면 우리 학교의 반응은 잠잠한 편

이다. 논의 역시 별다른 진전이 없다.

총무과 측은 “현재 이 사건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며 “법원의 최종

판단에 많은 관심을 갖고 주의 깊게 지

켜보고 있다”고 밝혔다. 실질적인 논

의는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셈이다. 그

렇다고 학교 본부가 쉽게 판단을 내리

기 힘든 상황이다. 법률 판단이 종결되

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른 국공립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2014.02

유은혜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이

「기성회계 처리에 관한 특례법안」 발의

1963

문교부(현 교육부)에 의해 「대학, 고∙중학교 기성회 준칙」

(구 문교부 훈령 제 104호) 제정

2008.11

「국립대학 재정∙회계법」 제정안 국회 제출

2009.04

「국립대학 재정∙회계법」 제정안이 공청회를 거쳐

국회 교육과학기술위원회 내 법안소위

(당시 위원장 임해규 한나라당 의원)에 회부

2011.06

안민석 민주당 의원이

“법안에 기성회계 직원의 고용 승계가 빠져 있다”며

「국립대학 재정∙회계법」 법안 폐기 청원

2012

「국립대학 재정∙회계법」 계류된 상태로 머물다

임기 만료되어 자동 폐기

2012.07

민병주 새누리당 의원이

「국립대학 재정∙회계법」 대표 발의

1963년 문교부 훈령이 근거…

‘기성회비 반환 소송’ 대법원 판결 앞둬

Page 5: 2014.09.15 제237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9월 15일 제237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한국예술종합학교의 부지가 본래 국

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 자리였

다는 사실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알 것

이다. 실제로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은

‘한예종’의 존재보다 ‘옛 안기부’를 더

친숙하게 여긴다. 이러한 한예종의 낡

은 이미지를 벗고 새로운 미래로 도약

하자는 뜻에서 2014년 9월 16일부터

18일까지 만 이틀간 진행될 예술제의

모토는 ‘아름다운 예술이 창조되는 한

국예술종합학교’로 잡혔다.

‘아 가을 예술제’로 이름 지어진 이

번 예술제를 주관한 한예종 제18대 학

생회는 “올해는 세월호 참사의 영향으

로 체육대회가 2학기로 미뤄져 다른

해보다 더욱 힘들게 준비했다”며 “한

국예술종합학교라는 장소성에 대한

재구성과 이를 바탕으로 하는 지속적

인 지역 예술축제로 자리 잡는 것”을

중심으로 두었다고 밝혔다. 그리고 “학

생들의 재미를 위해 예술제 3일만이

라도 옛날의 기억을 되살려서 신나게

놀아보고자 이번 예술제의 컨셉을 복

고로 잡았다”고 덧붙였다. 이 ‘복고’를

위해 학생회에서는 예년과 다르게 드

레스 코드를 ‘프레피 룩’(미국 고등학

교 학생들의 교복 스타일을 본뜬 캐

주얼 스타일)과 ‘교복’으로 잡아 드레

스 코드를 준수한 학생들에게 소정의

선물을 선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또

한 이 외에 1990년대 이후, 2005년 이

전 음악만을 인정하는 가요제를 신설

하는 등 새로운 시도를 많이 모색하

고 있다고 답했다. 학생 커뮤니티 크

누아넷에서는 자체적으로 축제 때 벌

일 좌판의 아이템이나 축제 아이디어

를 서로 나누는 등, 앞으로 다가올 축

제를 준비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새

로 생긴 드레스 코드에 대해 한 미술

원 학생은 “오랜만에 교복을 입는 것

이 매우 기대된다”며 “기숙사에 사는

데 추석 때 집으로 내려가자마자 교복

을 챙겼다. 졸업한 지 오래되어 사라

진 교복치마는 중고시장에서 재구매

하기도 했다”고 축제에 대한 기대감

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한편으로

“늘 재미없었던 우리학교 예술제가 바

뀌어봤자 얼마나 바뀌겠느냐”는 회의

적인 의견도 들려왔다. 익명을 요구한

학생은 “우리 학교 예술제가 재미없는

것은 이미 유명하다”며 “다른 학교에

비해서 규모도 작고 프로그램이 다양

하지도 않다. 연예인이 오는 것도 아

니지 않느냐”라고 부정적인 반응을 보

였다. 그러나 예술제를 준비한 학생회

에서는 “적은 수의 임원진들이 1학기

때부터 참여하여 만든 예술제다. 끊임

없는 회의를 통해 준비했다”고 대답하

며 “즐겨주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

외의 예술제에 대한 자세한 사항은 한

예종 총학생회 늘-품 페이스북(www.

facebook.com/karts.studentunion)

이나 총학생회 메일([email protected])

으로 보내면 답변을 얻을 수 있다. 예

술제에는 재학생, 휴학생, 졸업생들이

모인 총 60여개의 팀들이 예술제에 참

가할 예정이다. (권라임 기자)

과거를 넘어 희망으로

8월 입시 마무리

미술원 복도갤러리, <Designed Design>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2015

학년도 8월 입시 일정이 마무리되었

다. 연극원 무대미술과와 영상원 애

니메이션과가 일반전형을 실시한 가

운데, 음악원 기악과, 연극원 극작과

(서사창작전공), 영상원 영화과 및 방

송영상과, 무용원 실기과, 미술원 건

축과 등 5개원 6개과에서는 특별전형

을 실시했다. 입학관리과에서 입학정

보 홈페이지에 공개한 8월 입시 최종

합격자 현황에 따르면, 전체 경쟁률은

11.43대 1(모집정원 기준)로 지난해

10.46대 1보다 약 10% 상승한 것으

로 나타냈다.

대체로 모집 학과와 모집 인원이

지난해의 틀을 유지한 가운데, 지난

해 특별전형을 실시했던 음악원 성악

과가 올해 8월 입시에서 빠지고, 연극

원 극작과 서사창작전공이 이번 입시

에서 일부 인원을 특별전형으로 선발

하는 등의 변동사항이 있었다.

지원자의 수준이 합격선에 못 미친

다고 판단될 경우 입학 정원을 다 채

우지 않는 방침은 올해도 유지됐다. 일

반전형에서는 무대미술과의 합격인원

(15명)이 모집인원(18명)에 미치지

못했으며, 특별전형의 경우 극작과 서

사창작전공(모집인원 2명, 최종합격 1

명), 영화과(모집인원 10명, 최종합격

8명), 무용원 실기과 3개 전공(모집인

원 16명, 최종합격 7명), 건축과(모집

인원 8명, 최종합격 5명)가 각각 정원

보다 적은 합격자를 선발한 것으로 나

타났다. 일반전형은 8월 입시를 끝으

로 전형 일정이 모두 마무리 되었으나,

특별전형의 경우 8월 입시에서 선발하

지 않은 인원은 각각 10월과 11월 일

반전형 모집 정원으로 이월된다. 한편,

음악원 기악과의 경우 지원자 수(11

명)가 모집 인원(17명)을 밑도는 가운

데 지원자 전원이 최종합격했다.

입학정보 홈페이지에는 2015학년

도 10월 입시 지원자 현황도 공개되었

다. 전체 302명 정원에 6,632명이 지

원해 경쟁률 22대 1을 기록한 가운데,

연극원 연기과의 경쟁률이 124대 1(모

집 37명, 지원자 4,597명)에 달해 눈길

을 끌었다. (성민규 수습기자)

이번 전시는 미술이론과 복도갤러리

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디자인 기획

전으로, 서구로부터 유입된 ‘디자인’

이라는 개념이 한국에 정착하기 시작

하며 디자인 전공 학생으로서 받아왔

던 디자인 교육이 본래 디자인이 가지

고 있는 성격과 취지에 부합하는가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한다. 본 전시는 현

재 한국사회에서 디자인은 삶의 일부

로써 작용하는 것이 아닌, 위에서 아래

로 전달되는, 제도적 시행, 산업적 도

구로 활용되고 있어서 사람들 개개인

이 생각하는 디자인 인식이 불가능하

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여

기에서 비롯되는 획일적인 디자인 이

미지들이 결국 오늘날의 디자인 과다-

결핍의 시대를 초래한다고 보았다.

이번 <Designed Design : 제도의

디자인에 반(反)하기>전시에 대해 참

여작가와 기획자는 ‘우리가 생각하기

에는 우리의 주변에 있는 것들이 우

리의 디자인이며 우리를 대표한다’ 는

데에 의견을 한데 모았다. 이번 전시에

서는 제도권에서 보여주는 소위 말하

는 디자인적인, 심미안적인 것에 반(

反)하는 디자인 5점을 선보일 예정이

다. (신제현 미술원 전시조교)

한국예술종합학교 2014년 예술제

참여작가: 강나현, 강슬미, 안가람, 주용완, 한만오, 이주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사 디자인과 재학)

기획: 송준영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이론과 전문사 과정 수료)

전시 기간: 2014.09.16-2014.09.26

오프닝 초대일시: 2014.09.16, PM5:00

장소: 미술원 2F 미술이론과 복도갤러리

제도의 디자인에 반(反)하기

Page 6: 2014.09.15 제237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9월 15일 제237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무시로얼마 전에 계몽적인 톤으로 난민의 인

권을 위한다고 자처하는 어떤 전시에

가서, 빨대 끝을 이빨로 잘근잘근 씹으

며 작가들에게 질문들을 쏘아붙이고 왔

었다. 미술에서의 가치평가의 기준과

사회적인 어떤 반향의 가능성으로서의

시도를 평가하는 기준 사이의 거리가

어느새 내겐 퍽 멀어져 있었다. 누군가

아무리 선한 얼굴과 선한 의도로 세상

을 변화시키려 한다 해도, ‘작업으로서’

어떤 것들은 너무도 불성실해보였고 플

랫폼으로서의 기능도 제대로 하지 못했

으며, ‘작업’을 한다는 식의 작가적 자기

최면을 거치면서 그건 오히려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불명료하게 만드

는 장막처럼 기능했고, 이도 저도 아닌

것 같은 그런 것들을 볼 때마다 내심 화

가 났다. 그저 좋은 사람, 그저 좋은 시

도이기만 해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

이 들었다. 세상 사람들이 치밀한 고민

없이 모두 흐물흐물 허허히히한다해도

나 혼자 빈 부분들을 집어내고, 끝까지

고집스레 화를 내고 싶었다.

그런데 최근에는 어떤 이들이나 어떤

무언가 앞에서는 그저 허물어지는 것 같

은 마음이 되었다. 이상했다. 그것도, 날

카롭게 날을 세우고 형식적으로 세련되

었으면서 유머감각도 있고 미술사의 여

러 맥락들을 슬며시 지적으로 언급하고

변형하고 시대에 대한 진단을 호기 있게

내리고 사회적인 쟁점들에 대해 진지한

태도를 취하고 하는 식의 영리한 전시

앞에서가 아니라,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

으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는 듯한 전시

에서 그러했다. 이렇게 말하면 아주 무

책임해 보이겠지만, 이 마음은 대책 없

는 순진함이나 미술 자체에 대한 피로

감, 혹은 사회나 시대에 대한 무력감과

는 엄연히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갤러리 175에서 열린 전시 〈무시로〉

(2014. 8. 13 ~ 8. 26)를 보면서 나는 때

론, ‘온 마음을 다해 쓸쓸해졌다.’ 지하

전시공간에는 작가 개인이 기억을 반추

하여 다듬어 드러내고 싶은 것들이 있었

다. 작고하신 작가의 할아버지가 살던

집, 그 집 앞의 복숭아나무, 복숭아나무

에 매달린 복숭아를 함부로 못 따먹게 했

던 할아버지, 동물애호가 이웃. 작가 유

주영은 졸업 후 작업할 공간을 찾다가,

우연한 기회로 할아버지가 살던 시흥 외

곽의 집을 다듬어 작업실로 삼게 된다.

작가는 다른 이들처럼 레지던시 프로그

램에 선정되려 애쓰기보다, 스스로 공간

을 만들고 작업실을 함께 공유할 사람들

을 찾아 같이 가기로 한 것이다. 이 전시

는 그 과정에 대한 기록이자 이후의 결

과물라고 할 수 있다. 전시장 한 편에 놓

인 낮고 긴 탁자위에는 작가의 할아버지

가 사용하던 낡은 현미경이 있고, 그 왼

편, 그러니까 탁자의 가운데에는 작가가

만든 책들이 순서대로 놓여있었다. 어떤

책의 제목은 ‘그 해’, 그 옆의 책의 제목

은 ‘언제나’, 그 옆은 ‘복숭아꽃’이었다.

제목만 다르고 내용은 모두 같은 그 책

들 속의 모든 말들은 보라색이었다. 그

책에서 나를 무너뜨린 것은, 마음을 굳

세게 하고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는 할아

버지의 실제 일기를 발췌한 부분이었다.

어떤 선생님은 기억을 죽이는 것이

추억이라 하셨지만, 이 전시는 그저 ‘추

억팔이’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유주영

은 과거를 고스란히 재연하는 방식을

택하지 않고, 현재 내지는 현재와 과거

의 관계에 집중하며, 주변을 차분히 살

피고, 그것들을 연필과 지우개 등으로

오래 공을 들여 보여주고 있었다. 뒤집

어 누운 죽은 새의 눈은 반짝이고, 작가

의 작업실 옆 거대한 폐허의 어둠은 삽

으로 판 듯 깊고, 그 곁에는 부러진 송곳

니 같은 나무토막이 따로 떼어져 있고,

무언가 휘젓고 간 듯한 연기 같은 나무

들은 왜인지 모르게 눈을 아득하게 했

다. 전시명과 동일한, 나훈아의 노래 ‘무

시로’는 또 어떤가. 이미 와버린 이별인

데, 라고 시작하지 않나.

이미 이별이 와버렸어도 투정이나

엄살 부리지 않고, 규모 있는 커뮤니티

나 전 지구상의 안녕을 기원한다고 선

언하지도 않고, 외려 작업실 근처 강아

지 한 마리가 사라진 후 남은 강아지들

의 변화 같은 걸 이야기 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담백함과 그리움과

진심으로 홀로 서기를 하려는 이 작가

의 첫 개인전을 기억하고 싶었다. 누군

가의 회상록이나 에세이 형식의 서사와

커뮤니티 아트에서의 과정 중심의 프로

세스, 그리고 그것을 최종적으로는 개

인의 작업인 회화로 풀어내는 이 전시

의 말걸기란 유난스럽지 않으면서, 어

딘지 특별했다. 입구와 맞닿은 왼쪽 벽

에 있었던 드로잉들이 좀 어수선하고,

노란 빛의 전시장 조명이 흰 배경의 그

림을 부분적으로 왜곡하고 있는 것이

어쩐지 불편했지만, 그건 별 거 아니었

다. 무시로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을 스스

로 만들어 다른 이들과 공유하는 것, 그

리고 누군가와 무언가의 부재를 기억하

고 그것을 자신이 이해한 방식으로 이

야기를 하는 것, 그런 것에 새삼 감사했

다. (최이나)

기록에서 낙오되는 것들이 있다. 실체를

부정당한 것, 권력에 의해 도려내 진 것

그리고 발언권을 부여받지 못한 것들이

그렇다. SeMA 비엔날레 2014 미디어시

티서울은 그러한 것들에 관한 이야기와

역사에 초점을 맞췄다. 이번 전시의 주

제인 귀신 간첩 할머니도 그것들을 대

변한다. 귀신은 역사의 서술에서 누락된

존재이자 잊혀진 정신문화의 전통을 상

징하고, 간첩은 동아시아・동남아시아

가 겪은 폭력과 전쟁 냉전의 역사를 상

징한다. 그리고 할머니는 이 모든 것들

과 관련 있는 존재로서 역사의 피해자이

자 기록되지 못한 것들의 증언자 역할을

한다. 미디어시티서울은 이러한 것들의

이야기를 통해 새로운 언어를 구성하여

변화와 희망을 모색하고자 했다.

전시에는 총 42명의 작가가 참여하

여 다양한 작업을 선보였다. 특히 일본

작가 타무라 유이치로의 비디오 작업

<세와료리스키보쵸(世話料理包丁)>

와 야오 루이중의<만세>, 그리고 에릭

보들레르의<시게노부 메이와 시게노부

후사코, 아다치 마사오의 원정>이라는

작품과 같이 어둡고 은폐된 역사를 증

언하는 작품이 눈에 띄었다. 또한, 오프

닝 퍼포먼스인 이상순 만신의 <서울새

남굿>을 비롯하여 무속과 관련된 작품

도 전시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 그 밖

에도 후쿠시마 원전문제와 같은 동시대

의 사건을 다룬 작품과 여성과 어린아

이를 주제로 한 작품도 있었다.

출품된 작품 중에는 수작도 있었지

만, 아쉬운 작품도 많았다. 국제적 테러

집단으로 기록되고 증언되었던 적군파

의 간부 시게노부 후사코와, 아다치 마

사오의 이야기를 다른 관점으로 풀어낸

에릭 보들레르의 다큐멘터리 작업이나,

에도시대 조선 통신사 살인사건을 다룬

타무라 유이치로의 작업은 지난 역사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호평할 만한 것들이었다. 그러나 김수남

<한국의 굿: 만신들 1978-1997> 연작과

김인회의 굿 아카이빙 작업은 기존의

작업과 기록물에서 보았던 것의 반복이

나 변주를 넘어서지 못했다. 해당 작품

들은 <만신>이나 <아시아 고딕> 등과 같

은 무속과 토착 신앙과 관련된 작업을

해 왔던 박찬경 커미셔너의 개인적 취

향 혹은 귀신이라는 주제를 위해 적당

히 빌어 온 것 같다는 의혹을 품게 했다.

작품 설치 및 상영에도 몇 가지 문

제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음향 문제가

그것이다. 많은 양의 영상 작업을 단일

한 전시관에서 상영할 때 발생하는 음

향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 다만,

비치된 헤드셋에서 소리가 들리지 않거

나, 헤드셋을 착용하였는데도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가 심각하게 개입하는 것

과 같은 문제는 주최 측에서 고려한다

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점

이 충분히 해결되지 못한 것이 아쉬웠

다. 또한, 양혜규 작가의 작품인 <소리

나는 춤: 이복 언니>를 고정해 놓은 점

도 이해하기 어려웠다. <소리 나는 춤:

이복 언니>는 관람객이 작품과 함께 전

시 공간을 돌아다니며 춤을 출 수 있도

록 제작된 작품이다. 작가는 관람객이

작품과 함께 움직였을 때 특별한 지각

적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을 의도했을 것

이다. 작품 파손이나 사고를 방지하려는

조치라고 생각되지만, 작가의 의도가 관

람객에게 전달되는 것을 어렵게 했다.

위에서 제시한 몇 가지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시티 서울은 냉전 구

도의 재형성, 역사문제에 의한 긴장상

태와 같은 동시대의 문제와 긴밀하게

조응하려고 노력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것이 2014년 미디어시티서울이

거둔 가장 큰 성과다.

SeMA 비엔날레 2014 미디어시티

서울은 11월 23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관과 한국 영상 자료원에서 열린

다. 관람료 무료.

문의 서울 시립 미술관 서소문 본관

02-2124-8988, 한국 영상자료원 02-

3153-2001 (강진수 기자)

열외된 것들의 서사SeMA 비엔날레 2014 미디어시티서울 <서울 귀신 간첩 할머니>

Page 7: 2014.09.15 제237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9월 15일 제237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시계 자체가 회전하여 정확한 시각을

알 수 없게끔 만든 시계. 바람이 불어

오면 구슬들은 제각각 다른 방향을 향

해 굴러가지만 이내 출발점으로 돌아오

고, 서로를 향해 끊임없이 물을 분사하

는 세 개의 분수는 서로에게 어떠한 변

화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결과가 부재

한 사물들의 나열. 작가 안규철의 개인

전 <모든 것 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

의 풍경이다.

작가는 이러한 무의미한 과정의 연

속, 의도와 목표가 일치하지 않는 것을

실패라고 규정짓고, 무한 반복되는 과

정에 머물러 있는 사물들을 통해 실패

에 대해 이야기한다. 전시 제목인 <모

든 것이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은 스

웨덴 시인 토마스 트란스뢰메르(To-

mas Transtr∙mer)의 시 <작은 잎(little

leaflet)>의 “우리는 모든 것을 보며 아

무것도 보지 않는다(We see all and

nothing)”라는 문장에서 고안해 냈다.

작가는 본다는 것에 대한 역설을 존재

와 가치에 대한 역설로 변환한 셈이다.

‘모든 것’은 실패하기 위한 움직임을, ‘아

무것도 아닌 것’은 곧잘 무의미함으로

연결되곤 하는 실패에 대한 은유다.

각각 작품들은 실패를 수행하기 위

해서 현실적인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작품의 제작 목적인 실패하는

것과 대조되어 더욱 허탈함과 공허함을

자아낸다. 예컨대 <세 개의 분수>라는

작품을 보면, 플라스틱 양동이 세 개에

설치된 분수는 서로를 향해 물을 분사

하는 구체적인 일을 반복하지만, 서로

에게 어떤 변화도 가져다주지 못한다.

또한, <완성되지 않는 건축>이라는 비

디오 작업에서는 완성되지 못하는 구조

의 벽을 끊임없이 쌓고 또 쌓는 무의미

한 노동을 하는 작가의 모습이 등장한

다. 작가는 이와 같은 대비를 통해, 늘

변화와 새로움을 갈망하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지만 늘 실패하는 현실을 비판하

며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가에 대

한 질문을 던진다. 동시에 실패를 받아

들이고 아예 실패를 목적으로 삼아, 운

명적으로 찾아오는 실패에 실패로서 저

항하는 법에 대해 이야기한다.

안규철의 전시는 실패에 대해 이야

기하고 있지만, 전시의 분위기는 무겁

지 않다. 작품 곳곳에 작가가 섞어 놓

은 유머 덕분이다. 비디오 작업 <식물의

시간>에서 파트너 없이 홀로 춤을 추는

작가의 모습이나, 혹은 비디오 작업 <3

인칭의 그리기>에서 페인트 붓으로 서

로의 등에 페인트를 칠하는 등장인물

들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그것이다.

이러한 희극적 요소들이 관람객들로

하여금 불편한 진실을 웃으며 받아들

일 수 있게 한다. 또한, 폴란드 시인 아

담 자가예프스키(Adam Zagajewski)

의 시 구절인 “타인만이 우리를 구원한

다(Only others save us)”라는 구절

을 천장에 새기고 그 아래 반짝이는 유

리구슬 발을 드리운 설치작품 <타인만

이 우리를 구원한다>을 통해 관람객들

에게 작은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나는

너를 원해>라는 작품에서는 타인의 손

에 의해서 자신의 목소리와 가치를 찾

는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서로가 서로

의 위로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

어둔다.

이번 안규철의 개인전은 실패에 대

해 논의를 통해 다른 차원의 긍정성을

찾고자 한다는 점이 의미 있다. 변화에

대한 피로감이나, 실패에 대한 무력감

을 느끼는 사람들은 전시를 보고 작은

위로를 얻어 돌아갈 수 있을 듯하다. 그

러나 이 전시가 작가가 의도한 것처럼

운명적으로 찾아오는 실패에 대해 저항

하는 방법이나 원동력이 될 수 있을지

는 의문이다. 자칫하면 냉소주의나 무

력한 상태로 이어질 수 있는 지점이 있

기 때문이다. 그것을 중화시키기 위한

작가의 위로나 유머러스함은 어딘가 가

냘픈 감이 있다.

안규철 작가의 개인전은 12월 13일

까지 청담동에 위치한 하이트 컬렉션에

서 열린다. 이번 전시에는 작가의 신작

뿐만 아니라 이전 작업 또한 살펴볼 수

있으며, 작가의 작업 노트와 에세이 등

도 열람할 수 있다. 이후에 작가의 작

업을 다방면으로 분석한 비평문과 작가

의 글을 수록한 엔솔로지도 발간될 예

정이다. 문의 하이트 컬렉션(02-3119-

0271) (강진수 기자)

이것은 실패에 관한 이야기다안규철 미술원 교수 개인전 <모든 것이면서 아무 것도 아닌 것>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8월 21일 문화

융성의 원동력인 문화기술(CT) 연구개

발(Research and Development 이하

R&D)의 추진 전략을 수립한다는 취지

로, 산학연 전문가 70여 명으로 구성된

전략기획단을 출범했다.

박근혜 정부는 2013년 2월 25일 취

임사에서 경제부흥과 국민행복, 평화통

일과 더불어 문화융성을 4대 국정기조

로 세웠다. 당시 문화융성을 담당하는

대통령의 직속 정책 자문기구로 ‘문화

융성위원회’를 출범하였고, 특히 2014

년 1월 6일 취임 2주년을 맞은 박대통

령이 기자회견에서 ‘문화야말로 우리가

가진 가장 소중한 자산이자 나라의 자

존심이다.(중략) 올해는 국민과 예술인

이 체감할 수 있는 정책과 사업을 시행

하려고 한다’고 밝힌 바 있어 문화융성

정책 실행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

아졌다. 이번에 출범된 CT R&D 전략

기획단은 ‘문화와 IT기술의 문화융합을

통한 창의 문화산업의 방향성을 제시하

겠다’는 문화융성위원회가 발표한 과제

의 실천을 보여준다.

CT R&D 전략기획단은 총괄기획단

(단장 문화콘텐츠 산업실장)을 중심으

로 영화, 게임, 음악 애니메이션.캐릭

터, 출판, 방송영상, 융복합, 공연.디자

인, 전시.디자인, 문화재 패션 서비스로

이루어진 장르별 12개 분과와 청년자

문 1개 분과로 총 13개 분과로 구성되

며, 각 분과에는 문화산업 분야의 산학

연 전문가들이 참여한다. 문화기술 연

구개발 전략기획단은 8월의 출범식을

시작으로 11월까지 4개월에 걸쳐, 문화

기술 연구개발 현안에 대한 대책 마련

을 비롯해 신규 연구개발과제 아이디

어 발굴까지, 문화기술 연구개발 사업

전 범위에 걸쳐 논의할 예정이다.

CT는 Culture Technology의 약

자로 문화콘텐츠를 창조.개발.제작.가

공.유통하는 지적 노하우 및 물리적 기

술을 일컫는 용어다. CT라는 개념은

1995년 카이스트의 원광연 교수가 처

음 사용한 이후, 2001년 8월 국민정부

시절 발표했던 ‘국가 핵심기술 6T’[CT(

문화산업), IT(정보), BT(바이오), ST(

우주), ET(환경), NT(나노)]에 포함되

면서 세상의 빛을 보았다. 한글로는 ‘문

화산업기술’이 정확한 표기이며, 경우

에 따라 ‘문화콘텐츠기술’, ‘문화기술’

등으로 불린다. CT의 대표적인 예로는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를 생각할 수 있

다. 작품 <다다익선>을 살펴보면 디지

털 미디어를 예술작품 창작에 일부 활

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디지털 미디어

만이 지닌 고유의 특징에 주목하며 새

로운 예술적인 가치를 창출해내고 있

다. 또한 2008년 황지우 전 총장 임기

시절 한국예술종합학교는 40억 규모로

유비쿼터스 시대의 예술과 과학 기술의

다양한 접속 기회를 예술교육의 차원

에서 적극 활용하려는 ‘U-AT’(Ubiq-

uitous Art and Technology) 사업을

계획했던 바 있다. 현재 카이스트에서

는 문화와 기술 융합 인재 양성기관으

로 CT대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

2005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와 과학기

술부의 협의로 지원을 받아오고 있다.

이밖에 국내외 콘텐츠 문화기술 관련

각종 이슈에 대한 연구 보고서는 한국

콘텐츠진흥원(kocca.kr)의 ‘CT 문화와

기술의 만남’을 참고할 만하다.

미디어법과 유인촌 전 장관으로 대

표되는 이명박 정부 5년간의 문화정책

은 문화예술계의 토지를 황폐하게 만

들어놓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예술

인들이 문화복지와 창작지원, 첨단 콘

텐츠 산업 육성이라는 구체적인 세부

사항까지 언급하며 ‘문화 융성’을 통한

‘창조경제’를 표방하는 박근혜정부의

문화정책에 의구심을 보내는 시선이

존재하는 이유다. 문화예술지원 확대

와 예술인 복지법 개정을 통한 사회보

장 확대, 문화예술단체 최저임금보장,

독립.예술.다양성 영화 제작지원 및 전

용관 확대 등의 뻔지르르한 보여주기

식 정책들은 진정 문화를 위한 것인지

우는아이 달래주기 식의 정책을 위한

정책인지 알 수가 없다. 특히 예술인 복

지법은 2012년 11월 시행에 들어갔지

만 산재보험 가입과 긴급생활비 지원

에 그쳐 근본적인 한계를 안고 있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지난 8월 17일 건강

보험료와 국민연금보험료를 최대 50%

까지 지원할 수 있는 예술인 복지법 개

정안이 발의되었는데, 아직 어떤 결과

가 나올지는 의문이다.

일반 대중들이 접하고 있는 문화계 현

장 또한 답답한 실정이다. 한류의 시발점

인 국내 방송프로그램의 규제가 강화되

는 한편, K-POP으로 대표되는 대중가요

는 여성가족부 산하 음반심의분과위원

회의 일관성 없는 잣대로 난도질 당하고

있다. 특히 디지털 미디어 기반 문화예

술 사업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게임 산업

이 셧다운제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상황

에 대해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자유로운 사고를 발판으로 한 문화콘텐

츠에서 제도적 틀을 들이대는 것은 자유

로운 사고가 생겨나는 근본적인 가치나

철학을 무시한 것”이라 비판했다.

문화산업기술의 발전을 위해서는 제

대로 된 기반 문화 산업이 있어야 한

다. 한번의 파도에 쉽게 무너지는 높다

란 모래성마냥, 세계 콘텐츠 시장에 내

실 없이 내던져진 문화산업은 위태위태

한 누란지위의 상황에서 언젠가는 무너

지게 될 것이다. 정부의 문화융성 정책

은 문화산업의 주체가 되는 문화예술인

을 위한 기반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수빈 기자)

문화융성 정책의 현주소는?

Page 8: 2014.09.15 제237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9월 15일 제237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1년 9월 21일 경기남부보안수

사대의 압수수색이 있었다. 이후 11

월 15일까지 5차례에 걸쳐 조사를 받

았다. 2012년 1월 11일 구속됐다.

1월 18일 수원남부경찰서에서 수원

구치소로 이감됐다. 1월 19일 1차

검찰조사를 받았다. 1월 20일 구속

적부심이 기각됐다. 1월 25일 2차,

27일 3차, 30일 4차 검찰조사를 받

았다. 1월 31일 검찰의 기소로 수원

지방법원 형사 단독부에서 재판이 시

작됐다. 2월 20일 보석금 1천만원을

내고 풀려났다. 3월 9일, 4월 18일,

5월 16일, 6월 20일, 7월 18일, 9

월 5일, 10월 10일에 걸쳐 7차례의

공판이 있었다. 11월 21일 재판부는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

다. 27일과 27일 변호인과 검사가 각

각 항소장을 제출했다. 2012년 12

월 14일부터 사건은 수원지방법원

형사 합의부로 넘어가 2심이 시작됐

다. 2013년 4월 23일, 5월 30일,

7월 4일에 걸쳐 3차례의 공판이 있

었다. 8월 22일 재판부는 일부 유죄

를 선고했던 원심을 깨고 무죄를 선

고했다. 8월 27일 검사가 상고했다.

9월 9일 대법원에 사건이 접수됐다.

2014년 8월 28일 대법원은 검사의

상고를 기각했고, 무죄가 확정됐다.

3년 만이었다.

서울시 충무로에서 사진관과 레

이블을 운영하는 박정근 씨의 이야

기다. 트위터 이용자인 그는 평소 북

한을 ‘개드립’이나 농담의 소재로 삼

았다. 북한의 주장을 공유하고 유튜

브에 올라온 혁명가요 동영상을 올렸

다. 검사는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봤다. 그것이 농담의 한 방법이었다

고 하더라도, 트위터에서 북한의 주

장이나 자료를 공유하는 행위는 결

국 많은 사람들에게 퍼질 수밖에 없

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상 이적행위 동

조 등에 해당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3년간 이어진 재판의 시작이었다. 1

심은 검사의 주장을 일부 인정하고

집행유예 2년에 징역 10월을 선고했

다. 2심은 “농담으로 한 트윗에 반드

시 매번 부연설명을 붙여야 하는 것

은 아니다”며 무죄를 선고했고, 지난

8월 28일 대법원 판결로 확정됐다.

공소사실은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

됐다: 첫째, 2010년 3월 트위터 계

정을 만든 박정근은 그해 8월 조선민

주주의인민공화국의 대남선전 기구

인 조국평화통일위원회가 개설한 ‘우

리민족끼리’ 계정을 팔로우하고 12

월부터 다음해 12월까지 우리민족

끼리의 트윗 96건을 공유(리트윗)했

다; 둘째, 2010년 12월부터 2011

년 12월까지 유튜브에 올라온 북한

혁명가요 동영상 29건을 링크해 자

신의 트위터에 올렸다; 셋째, 그러는

중간중간 “우리의 총대는 타협을 모

르는 계급의 주먹!”, “천만이 총폭탄

되어 결사옹위하리라!!!!” 등 김정일

을 찬양하고 김정일을 위하여 목숨

바쳐 싸울 것을 선전∙선동하는 취지

로 76건에 걸친 트윗을 올렸다. 피고

인은 이와 같은 방법으로 국가의 존

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

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

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했고, 이적표현물인 우리↗

“사람들이 개소리를 좀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자기소개를 부탁드린다.

“박정근이고, 조광사진관을 운영하고

있으며 얼마 전까지는 국가보안법 위

반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가 최근 대법

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이

다. 그 정도로 줄여서 말할 수 있겠다.”

굉장히 길었다. 오늘이 2014년 9월이

니깐, 2011년 9월에 압수수색을 받은

이후로 3년이 됐다. 압수수색 받은 날

이 기억나는지.

“기억이 많이 난다. 날짜도 기억난다. 9

월 21일이었다. 아침에 가게 문을 여는

데 남자 일고여덟 명이 와서 이것저것

물어보고 집과 가게에 있는 물건과 CD,

하드디스크 등을 압수수색했다. 그 경

찰들은 경기지방경찰청 보안수사대 소

속이었고 국가보안법 위반이라고 했다.

한 여덟 시간 정도 했던 것 같다.

가져간 물건들은 막상 별거 없었다.

하드디스크에 야동 한 편 없었다. 손님

들 데이터랑, 저희 아버지가 업무차 북

한 가서 찍은 사진을 담은 CD에 ‘북’이

라고 써 있어서 가져갔다. <북촌방향>

포스터도 유심히 보더라. 북한 책이 두

권 정도 있긴 했다. 그리고 홍대 두리

반 행사에서 썼던 책자들이나, ‘소비에

트 사진사’ 같은 것도 가져갔다. 일단

뭔가 의심된다 싶은 건 다 가져갔다. 핸

드폰도 가져갔었는데 며칠 안 지나서

돌려받았다. 이번에 검찰에서 책 두 권

에 노트 한 권 정도 돌려받으라고 연락

이 왔다.”

기분이 어땠나.

“사실 아무 생각이 없었다. 워낙 갑작스

러운 상황에 있으면 사람이 멍해지지

않는가. ‘이거 언제쯤 끝날까’ 하는 생

각이 많이 들었다. 내가 한 게 뭐가 있

다고 굳이 재판까지 가야 하나 싶기도

했다. 근데 일단은 진짜로 (경찰들이)

왔으니깐 좀 겁이 많이 났다.”

그 뒤로 바로 경찰 조사를 몇 번 받았다.

“그렇다. 그런데 인터넷 국가보안법 사

범인 경우엔 (보통) 토지관할이 잘 지

켜지지 않아서 저는 서울 사람인데 계

속 경기도로 조사를 받으러 왔다 갔다

해야 했다. 항상 가게 문 닫고 나가야

했기 때문에 영업상 손해가 좀 컸다. 그

냥 경찰청 말고 소위 말하는 ‘대공분실’

에 가서 조사를 받았다. 11월까지 조사

를 받고 자료가 검찰로 넘어간 뒤에 한

동안 연락이 없다가 2012년 1월에 구

속됐다.”

2012년에 저도 트위터에 북조선 자료

를 몇 개 올렸다가 형사한테 연락이 와

서 계정 삭제하고 그런 일이 있었는데

한 번 만난 건데도 좀 놀랐었다. (박정

근 씨는) 한 번 조사받으면 몇 시간씩

하고 그랬을 거 아닌가.

“짧아도 4시간 정도는 한다.”

그땐 무슨 얘기들을 했나? 물어봤던 거

또 물어보고 그랬나.

“물어봤던 거 또 물어보고 그런 게 대

부분이었다. 다행히 친구들이 도와줘서

초기에 변호인단도 만들고 대응을 했

다. 자문도 많이 받았고. (그쪽에서) 주

로 물어봤던 건, 위험하다는 사실을 알

면서 그랬냐는 것이었다. 왜냐면 국가

보안법에서 이적성을 판단할 때, 자유

민주적 기본질서에 위배된다는 정을 ‘

알면서’ 그랬냐는 것이 중요한 지점이

기 때문이다. 사회주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제일 많이 받았

다. 제가 했던 대답은 ‘그럴 수도 있겠

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을 거 아니냐’

는 것이었다.

‘우리민족끼리’ 사이트는 원래 (남한

에서는) 막혀 있다. 저는 굳이 그걸 (프

록시 우회 등의 방법으로) 뚫고 들어가

서 본 적은 없었다. 근데 조사를 받게 되

면 그 사람들이 원문을 다 보여준다.

(사실 네가 리트윗한 트윗에 달려 있는

링크를 들어가 보면) 이렇게 긴 글이고

무시무시한 글이라고. 그러면 저는 본

적도 없는데 왜 보여주시냐고 말했고.”

변호인단은 어떻게 구성됐나. (‘민주사

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의) 이광철

변호사는 어떻게 알게 됐는지.

“구속된 다음에 변호인을 선임했다. 구

속되기 전까진 자문 정도만 받았고. 친

구가 촛불집회 때 재판을 받은 적이 있

는데 그 친구를 변호해준 분이었다.

(이광철 변호사는) 국가보안법 전문 변

호사였다. 통일운동 쪽 국가보안법 사

건을 많이 맡으셨었다. 처음에는 저도

그렇고 변호인단도 그렇고 그렇게 심각

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기소도 안 될 거

라고 봤다. 사실 그분도 처음엔 저 같은

사람을 좀 의아하게 생각하셨던 것 같

다. 애초에 사건 자체가 소위 말하는 ‘

친북’ 계열의 국가보안법 사건하고는

좀 다르니깐. 트위터도 안 하는 분이어

서 이해를 잘 못하셨다.

실제로 구속이 되고 나서 자료를 모

으는 과정에서 ‘이런 사람들도 국가보

안법에 걸리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신

것 같다. 이건 또 다른 문제라고. 변호

인단이 두 분이었는데 이광철 변호사와

소위 ‘피디(PD, 민중민주)’ 진영 변호

를 많이 맡으셨던 이민석 변호사가 있

었다. 변호인단도 서로 성향이 약간 달

랐다.”

2012년 1월에 1심이 접수돼서 그해

11월 21일에나 끝났다. 첫 공판이 3월

9일에 있었고 구치소도 갔었다. 구치

소 계실 때는 어땠나.

“보통 국가보안법 사범은 독거실에 보

낸다고 하는데, 제가 좀 편하게 좌변기

있는 데서 살고 싶다고 하니깐 사람들

많은 방으로 옮겨줬다. 소위 말하는 흉

악범들이 많이 있었다. 방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 사람이라 별일은 없었다. 처

음엔 사람들이 (나를 보고) 간첩인 줄

알았다. 들어온 지 1주일 정도 지나니

깐 신문에 나왔다. (그걸 보고) 살인으

로 들어온 옆방 아저씨가 자기도 억울

하게 들어왔는데 좀 도와주면 안 되겠

냐고 물어보기도 했다. 일단은 사람들

이 관심을 많이 가져줘서 생활하는 데

힘들지는 않았다.”

이후 공판이 시작됐다. 지금 생각하면

굉장히 황당한 풍경이었다.

“잘 볼 수 없는 광경이긴 했다.”

재판 지켜보면서 어떠셨나? 황당했을

것 같다.

“멀찍이서 당사자 아닌 사람이 본다면

진짜 황당했을 텐데, 어쨌든 변호인단

이나 저한테는 사건이고 진지한 문제니

깐 마냥 황당하다고 생각할 수는 없었

다. 빨간 줄이 생기고 말고의 문제였다.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그동안 트윗에

올린) 자료들을 모아서 법정에다 제출

하고 사람들 있는 데서 보여줘야 했다.

처음에도 반박을 안 해서 구속이 된 부

분도 있었으니깐. 재판이 진행되기 시

작하면 싫어도 다 보여줘야 한다. 정말

싫었다. 얼마나 섹스 얘기도 많이 하고

개 같은 소리도 많이 하고…. 근데 ‘내

가 그런 사람이 아니다’는 걸 입증하기

위해선 그렇게 해야 했다.”

구치소에서 ‘이명박 각하께 보내는 공

개서한’을 통해 “저는 농담을 굳이 설

명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었다. (재

판이 진행되면서) 생각이 좀 달라진 건가.

“변호인단이 저한테 얘길 많이 했다. 어

쩔 수가 없다고. 구속되기 직전에 변호

사님한테 ‘구속영장 떨어졌는데 어떡

해야 하냐’고 물으니깐 ‘그럼 (평소에)

북한 싫어했다는 반박자료를 빨리 준비

하라’고 그랬다. 변호사의 평소 정치적

성향이 어떻든 간에 의뢰인의 구속을

막아야 했으니깐. 처음엔 준비가 좀 미

흡했다. 그땐 제가 트위터 (일일이) 찾

아서 볼 줄을 몰라서 준비도 잘 안 했고.

법원 영장실질심사에서도 ‘내가 왜 여

기 있는지 모르겠다’고 말하기만 했다.

구속에 대한 이유는 간단했다. 한국

기술로 트위터를 막을 수는 없으니깐,

이 사람을 풀어주면 계속 그럴 거라고.

트위터를 못 막으면 이 사람이라도 막

아야 한다고. 구속영장을 보면 ‘재범의

여지’가 있어서 구속된다고 나온다. 사

실 재범의 여지로 구속영장이 청구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고 하는데. 제가 구속

돼서 감옥에 있는 동안 변호사 사무실

사람들이 트위터 자료들을 찾기 시작

했고 보석될 만한 자료들을 모아서 보

석될 수 있었다. 판사가 ‘왜 진작에 이

걸 안 모았냐’고 말하더라. 마침 (법원)

인사이동 계절이라서 보석이 좀 늦어지

기도 했다.”

그해 겨울에 1심이 선고됐다. 일부 무

죄, 일부 유죄를 받았다.

“제가 직접 작성한 부분은 대부분 무죄

가 나왔다. 리트윗이나 유튜브 링크 같

은 부분에서 유죄가 나왔고.”

양쪽이 항소해 2심으로 넘어가서 1년

가까이 항소심이 진행됐다. 무죄가 나

왔는데 검사가 대법원에 상고했다. 예

상했나.

“당연히 예상하고 있었다. 1심 때도 그

랬고 (검사의) 구형량보다 판결이 적게

나왔으니깐. 무죄 나오면 (검사가 상소

하는 게) 일종의 관례다. 대부분 항소

심은 보통 첫 공판을 열고 그 다음에

선고가 나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근데

제 사건 같은 경우는 1심 때 자료가 미

흡했던 부분이 있어서 ‘증거 더 모아놨

으니깐 재판을 더 해야 한다’고 변호인

단에 말했다. 1심 땐 트위터를 다 모아

서 백업하는 기능이 없었는데 그맘때

그 기능이 생겨서 아카이브 파일을 갖

다 (재판부에) 제출했다.”

법정 컴퓨터가 느려서 파일이 잘 안 열

리기도 하고….

“그랬다. 인터넷 익스플로러(IE)밖에 없

어서 크롬(Chrome)을 깔기도 했다.”

어쨌든 2심은 잘 끝났다.

“그게 좀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검경이

모은 자료는 일일이 캡처하는 것이었

으니깐. 제가 직접 트윗들 전부를 갖다

줄 거라는 예상은 못했을 거다. 전체적

인 것을 판단해 보라고 냈던 것이었다.

사실 전체적으로 내도 모자라는 부분

이 있다. (매번 트윗이 올라간 상황을)

완전히 입증하려면 그때 제 타임라인에

있는 사람들이 무슨 얘기를 했고, 그들

이 어떤 말을 했기 때문에 제가 무슨

트윗을 작성하고 리트윗을 하고 그랬

던 건지 다 봐야 하는데. 애초 트위터나

에스엔에스(SNS)를 흔히 다음 카페 게

시판처럼 생각해서 이런 사건이 벌어진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보통 인터넷상

의 국가보안법 사건들은 블로그나 카

페에 있는 게시물로 잡는 것이라서.”↗

‘리트윗 국보법’으로 기소됐다 무죄 확정 판결 받은 박정근 씨 인터뷰

Page 9: 2014.09.15 제237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9월 15일 제237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사실 재판이란 걸 받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 재판받는 심정은 어땠나. 서울

(강동구 암사동)에서 수원(수원지방법

원)으로 다녀야 했는데.

“물리적인 거리도 고역이었고, 우습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쓴 글에 대해 모르는

사람들한테 굳이 설명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으니깐. 어쨌든 검사는 이해를

못할 수밖에 없다. 트위터 사람들이 봐

도 내 트위터가 뭔지 잘 이해를 못하는

데. 다들 자기 생각만 말하고 자기 얘기

밖에 못하는 거다. 저쪽에서 ‘박정근 씨

이거 웃기다고 생각하세요?’ 하면 나는

‘뭐 안 웃길 수도 있고 웃길 수도 있지’

하는데 그럼 ‘안 웃기거든요’ 하고 만다.

트윗을 공소장에다가 써놓고 얘기를 한

다고 생각하면 (서로) 안 통한다. 자기

들도 답답했을 거다.

‘이게 다 뭐하는 짓이지’ 하는 생각

을 제일 많이 했다. 북한이 어쩌고저쩌

고, 이건 나중 문제였다. 별로 의미도 없

어 보였고. 사람들이 말한 ‘표현의 자유’

부분도 분명 이 재판에서 제일 중요했

지만 정작 본인인 제가 생각하기엔 ‘대

체 이런 걸 하는 이유가 뭐지’라는 생

각이 강했다.”

2심 공판에서 검사가 자기는 현충원에

다녀왔다며 ‘서울을 주사로 붉게 도색하

리라’, ‘서울 불바다’ 같은 트윗을 진짜

농담으로 올린 거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사실 (저는)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걸

지도 모른다. ‘검사님은 힘들 때 죽고

싶다는 말 안 해요?’ 제가 (트위터에)

쓰는 말이나 검사가 술 먹고 하는 말이

나 똑같아요. 술주정을 갖고 진지하게

얘기를 해버리니깐 말문이 막힐 수밖에

없었죠. 제가 트위터에 하는 말은 대부

분 술주정이랑 비슷한 건데.”

결국 2심에선 무죄가 나왔고 사건이

대법원으로 넘어갔는데, 대법원에 사

건이 꽤 오래 계류돼 있었다.

“변호사님이 국가보안법 사건이니깐 한

1년 정도 기다릴 생각 하라고 했는데

생각보다 빨리 나왔다. 한 2년 정도 걸

릴 줄 알았다.”

2013년 9월 9일에 사건이 접수돼서

올해 8월 28일에 판결이 나왔는데 답

답하셨을 것 같다. (대법원은 법률심이

기 때문에) 1년 동안 딱히 공판이 열

리는 것도 아니고 마냥 기다려야 했을

텐데.

“워낙 대법원이 일이 많아서 그렇기도

하다. 사실 (대법원에서) 부르면 부르

는 대로 문제였다. 전원합의체로 넘어

가서 뭔가 변론을 해야 하는 심각한 상

황이 됐다는 얘기니깐. 기다리는 건 어

렵지 않았다. 좀 짜증나긴 했지만. 처음

에 검찰로 넘어가서 기소가 되느냐 안

되느냐 그때 행동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일단 항소심에서 무죄가 나면 사

건이 파기환송될 확률이 그렇게 높은

편은 아니라서 그 부분에선 걱정을 좀

덜 했다.

사실 대법원 법정에 앉아 있는 사람들

이 다 “기각한다”, “파기환송한다” 이

런 한 줄 들으려고 앉아 있는 거 아닌가.

(실제로 거의 모든 사건이 단 한 줄의

선고로 끝난다.) 박정근 씨도 “피고인

박정근, 검사의 상고를 기각한다” 이

한마디 들으려고 간 건데, 그 말을 들

으니깐 기분이 어땠나.

“워낙 (하루에 몰아서 선고하는) 사건이

많다 보니깐 비슷한 (사건)번호가 나올

때마다 덜컹덜컹 했다. 일단은 ‘진짜로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갔으니

깐. (대법원은) 그냥 안 갈 수도 있었는

데 차라리 그냥 가서 어떻게 되든 듣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같이 가준다

는 친구들도 있었고. (선고를) 들으니

깐 뭔가 좀 가벼워졌다. 비슷한 (트위터

상의 국가보안법) 사건으로 걸린 친구

들이 제일 걱정이었는데 이번 대법원 (

무죄) 판결로 영향을 미칠 테니깐. 그렇

게 큰 영향은 아닐지라도…. 그 부분에

서 그나마 마음의 짐을 덜었다.”

무죄가 나오긴 했는데,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잘못을 안 했다는 뜻이 아

니라 트위터에서 북한 얘길 하다가 구

속된 사람이 있는 거고, 사람들이 바뀌

는 건 아니다”는 취지로 말했다.

“말 그대로다. 이런 지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사건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

은, 어쨌든 국가보안법 존재 자체가 잘

못됐다는 얘길 하고 싶은 건데, 사실 국

가보안법에서 무죄가 나오면 사람들에

게 불편한 부분이 있다. 변호사님도 그

런 생각을 했다. 왜냐면 법원은 ‘국가보

안법 자체가 잘못된 거야!’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어쨌든 국가보안법을 갖고

재판을 하는 거다. 무죄가 나와도 깔끔

한 기분이 안 든다.

저는 국가보안법이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근데 이렇게 무죄

판결이 나와버리면, (어떤 사람들은) ‘

국가보안법이 박정근 정도는 안 잡아

갈 만큼 발전했다’고 생각해버리니깐.

물론 무죄가 나와서 일단은 다행스럽

게 생각한다. 앞으로의 사건에서도 그

렇고. 그렇지만 이 사건으로 인해서 국

가보안법이 어떻게 바뀌어나갈까에 대

해선 회의적이다. 말 그대로 ‘박정근 정

도는 안 잡아갈 만큼의 법’이라고 생각

하는 사람이 다수가 될 거다. 그렇다고

제가 잡혀가고 그런 걸 원한다는 뜻은

아니지만.

무죄가 됐다고 완전히 끝난 건 아니

란 얘길 하고 싶었다. 이젠 트위터 사람

들이 어떤 불온한 글을 보면 ‘그러다 박

정근처럼 된다’고 말한다. 국가보안법

은 이미 저를 갖고 어떤 성과를 거둔 상

태다. 무죄가 나왔지만 자신은 계속 어

떤 기능을 수행할 테고, 저는 저대로 고

생했고. 그래도 이번 사건을 통해 국가

보안법이 잘못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거

나 국가보안법에 대해 알게 됐다는 사

람도 많아진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

각한다.”

보상 청구를 진행한다고 하던데.

“변호사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구속수감 부분에 대해

서 계산해서 국가가 보상해주는 부분

이 있고, 국가 상대로 민사 손해배상 청

구를 거는 게 있다. 전자는 절차가 간단

한 편인데 후자는 오래 걸릴지도 모른

다고 한다. 엄밀히 말하면 손해배상 청

구까지 다 돼야 사건이 끝난 걸로 봐

야 한다고 하더라. 나라에 돈이 없다고

들 하더라. 지금도 보상금을 못 받는 분

들이 꽤 많다고 들었다. 이걸 두고 <조

선일보>가 “법원에서 워낙 무죄 판결을

많이 해서 돈이 없다는 거 아니냐, 과거

사 배상도 하도 무죄를 많이 때려서 그

렇다”는 식으로 쓴 적이 있는데 말도 안

되는 기사였다. 아무튼 이제 시간이 좀

걸릴 일들이다.”

다른 얘길 좀 해보겠다. 옥인 콜렉티브

와 <서울 데카당스>(2013)를 만들었

다. 영상도 있었고 연극도 있었다. 어

떤 계기로 했던 건가.

“1심 끝나고 옥인 콜렉티브 쪽에서 연

락이 왔었다. 그때 만든 ‘최후진술서’가

옥인 콜렉티브에게 중요한 메시지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잘 살려서 작업으

로 만들 수 있으면 좋겠고 개인적으로

도 좋은 영향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

으로 작업을 진행했던 것 같다. 옥인 콜

렉티브가 (기본적으로) 사회적인 작업

집단이기도 하지만 근간엔 당사자 개인

한테 좋은 영향이 갔으면 좋겠다는 생

각으로 하는 게 많다. 콜트콜텍 노동자

들과 함께한 작업(콜트콜텍 해고노동

자들과 함께 만든 다큐멘터리 연극 <구

일만 햄릿>을 말함)도 그랬고.”

(<논픽션 다이어리>를 만든) 정윤석 감

독과도 준비하는 게 있는 걸로 아는데.

“(정윤석 감독이) 밤섬해적단 다큐멘터

리를 계속 찍고 있다. 그 과정에서 (친

구인 제가) 그 사건에 휘말렸다. 한반도

레드컴플렉스에 대한 얘긴데 그걸 가

장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

나가 제 사건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자주 만나서 얘기도 하고 그런다. 제 사

건은 좀 끝났지만 밤섬해적단 얘긴 아

직 안 끝났다.”

비싼트로피 레이블은 남미 쪽이랑 뭘

하는 것 같던데.

“예전부터 관심을 많이 갖고 있었다.

2005년 레이블을 시작했는데, 2006년

에도 브라질 뮤지션과 얘길 나누다가

좀 오래 쉬었었다. 그러다 레이블을 다

시 운영하고 나서 그쪽 음악을 소개하

려고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다. 최근엔

브라질 펑크밴드 ‘메르다’의 정규앨범

을 테이프로 내서 브라질에 보내줬더니

반응이 아주 좋았다. 그쪽 음악들이 특

색 있고 좋은 게 많아서 계속 그쪽 음악

을 소개하려고 한다. 내년쯤이면 한국

에 올 수도 있다.”

(영상원 학생이 만들었던) <농담>이라

는 단편도 있었다.

“한창 만들 동안에 구속이 돼버려서. 저

쪽도 좀 난감했을 거고 무섭기도 했을

거다. (국가보안법을 소재로 한 작업에

대해 더 말하자면) 그린피그나 옥인 콜

렉티브나, 보통의 국가보안법 사범들은

집회를 열고 그런 식으로 (대응을) 하

겠지만 제 사건에 대해선 작업하는 분

들이 관심을 많이 가지신 것 같다. 저도

이런 식으로 좀 틀어서 (얘기하는 게)

전략상으로도 더 나을 거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트선재센터 ‘북조선 펑크로

커 리성웅’ 공연 때도 제가 직접 판사로

나가서 사형 (선고를) 때리는 퍼포먼스

를 한 적도 있다. 뭔가 얘기하는 데에

효과적인 방법이랄까. ‘제가 국가보안

법 사건에 휘말렸는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냐’는 거. 제가 ‘운동권’이었다

면 여러 방법이 있었겠지만, 이 사건이

그런 것과는 멀리 떨어져 있는 건이다

보니 그런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뭔가. 물론

완전히 끝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일단

락이 됐으니깐.

“국가보안법 폐지하자고 여기저기 삐라

뿌렸던 게 제일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

리고 계정(@seouldecadence)을 지운

상태다. 어쨌든 ‘박정근 사건’이 될 텐

데, 뭔가 사람들이 저로 인해서 표현들

이 위축되는 게 싫다. 저 없을 때는 사람

들이 우리민족끼리 리트윗도 진짜 많이

했었는데. 무죄를 받았다는 건 일단 좋

은 소식이긴 하지만, 사람들이 ‘너 그러

다 박정근처럼 된다’고 말하는 걸 줄이

고 싶어서 아예 계정을 없애버렸다. 사

람들이 개소리를 좀 더 많이 했으면 좋

겠다.” (선승범 기자)

“사람들이 개소리를 좀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

‘리트윗 국보법’으로 기소됐다 무죄 확정 판결 받은 박정근 씨 인터뷰

↘민족끼리의 트위터 게시물, 북한 혁

명가요 동영상 등을 취득∙반포했다.

국가보안법 제7조(찬양∙고무)에 따

르면 이러한 행위는 최대 7년형에 처

해질 수 있다.

이와 관련해, 피고인은 1심과 2심

에 걸쳐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서울

시민 박정근이 수원지방법원에서 재

판을 받는 것은 토지관활 위반이다;

게시글 링크만으로 알 수 없는 별도의

원문—트윗 내용만으로 보이지 않는

북조선 사이트의 원문을 말한다—을

인용한 부분은 공소장 일본주의 위반

이다; 국가보안법은 각 범죄의 구성

요건 개념이 애매모호하고 광범위하

여 헌법에 위배되고, 북조선은 반국가

단체로 볼 수 없다; 트윗은 ‘표현물’

로 볼 수 없다; 피고인은 평소 북조선

체제에 대하여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

왔고 트위터 게시글도 북한을 농담의

소재로 삼거나 북한을 조롱하기 위한

소재로 주변 사람들에게 이를 알리기

위해 작성한 것이므로, 단지 그 내용

이 북조선의 주장과 동일 또는 유사

하다고 하여 곧바로 국가의 존립∙안

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실질

적 해악을 끼칠 명백한 위험성이 인

정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트위터 계

정으로 인용한 게시글은 이적표현물

로 볼 수 없고 이적 목적 또한 인정되

지 않는다.

일부 유죄를 선고한 1심 재판부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트위터 이용자

가 작성한 게시글은 내용이나 형식에

서 사적 형태를 갖추고 있더라도 불특

정 다수의 접근을 막을 수 없고, 이용

자의 팔로어가 그 트윗을 ‘리트윗’하

는 방법으로 신속하고 광범위하게 전

파된다; 장난을 치는 듯한 내용이라

는 것은 인정하지만, 박정근이 농담이

나 조롱을 목적으로 올린 트윗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그 주관적 의도를 곧바

로 파악할 수는 없다; 피고인의 게시

의도를 명확히 알 수 있는 내용을 언

제나 함께 설명한 것은 아니다; 사람

들이 장난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생

각했다 하더라도 이적행위 목적은 배

제할 수 없다. 2심 판결의 요지는 다

음과 같다: 개별 트윗의 내용이 반국

가단체의 주장과 일치했거나 긍정적

으로 평가한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국

가보안법 위반으로 단정하거나 이에

동조할 목적이 있었다고 쉽게 추론하

여서는 안 된다; 이적 목적의 여부는

피고인의 경력과 지위, 트윗을 작성하

게 된 경위, 다른 트윗의 내용 및 흐름

등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해야 한다; 만약 개별 트윗의 내

용만을 따로 분리하여 이적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면 트위터 이용자가 반

국가단체의 주장이나 활동에 관한 글

을 작성할 때마다 140자로 글자 수가

제한되어 있는 개별 트윗마다 이적 목

적이 아님을 밝히는 내용이 반드시 포

함시켜야 할 것이다; 이는 트위터 이

용자의 평소 성향이나 그가 작성해온

트윗의 전체 내용과 맥락 등은 고려

되지 못한 채 오로지 개별 트윗의 문

구만으로 범죄 성립 여부가 좌우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2심 판결은 대법원

에서 확정됐다.

Page 10: 2014.09.15 제237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9월 15일 제237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어느 안타고니스트의 죽음크리스토퍼의 놀란 감독의 <배트맨 비

긴즈>에서 레이첼 도스는 불에 타버린

웨인 저택의 잿더미 위에서 브루스 웨

인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고담이 더 이상 배트맨을 필요로 하

지 않게 되는 날이 오면 우리는 다시 함

께 할 수 있을 거야.”’

이 대사는 배트맨이 언젠가는 사라져

야 하는 존재임을 시사한다. 말하자면

배트맨은 마을의 평화와 질서를 되찾아

주고 난 뒤 황야의 석양을 향해 어김없

이 사라져가는 웨스턴 영화의 총잡이들

과 같은 운명을 지닌 사나이다. 이들은

문명과 질서의 수호자이지만, 역설적이

게도 존재 기반은 그 반대에 있다. 서부

사나이들이 공동체에서 스스로를 도려

내며 질서 회복에 마침표를 찍듯이, 배

트맨도 언젠가 법과 질서가 회복된 고

담에서 사라져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배트맨은 폭력과 공포로 고담의 법과

질서를 수호하기 때문이다.

배트맨은 태생부터 분열적이고 모순

적인 존재이다. 그는 박쥐를 공포의 상

징으로 사용하며 범죄자들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군림하지만 그 자신부터 박쥐

를 두려워한다. 고담의 경찰들에게 배

트맨은 어쨌건 결국은 체포해야 될 또

한 명의 무법자일 뿐이고, 빌런(Villain)

들에게 배트맨은 자신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존재에 불과하다.

“당신의 적이 당신을 규정짓는다.”

<배트맨: 아캄 오리진>(<배트맨: 아캄

어사일럼>, <배트맨: 아캄시티>와 함께

《아캄버스(Arkhamverse)》로 지칭되는

비디오게임)의 태그라인이다. <아캄 오

리진>의 포스터는 빌런들의 형상들이

모여 배트맨의 반신을 이룬다. 태그라

인과 포스터는 분열적 존재로서의 배트

맨을 잘 보여준다. 말하자면 배트맨의

적인 빌런들은 배트맨 자신의 일면이기

도 하다. 스케어크로우는 공포를 무기

로 이용한다는 점에서, 투페이스는 양

면성, 베인은 야만적 육체와 지능을 겸

비했다는 점에서 배트맨과 닮았다.

배트맨 자신 또한 그 사실을 어렴풋

이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배트맨은

범죄자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며

불구로 만들지언정 결코 살인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세움으로써 자신을

빌런과 구분 짓는다.

다른 빌런들이 배트맨에 내재된 분

열적 요소들을 드러내는 존재라면, 조

커는 분열적 총체라 할 배트맨 그 자체

를 드러낸다. 이 점에서 조커는 배트맨

에 등장하는 모든 빌런 중 단 하나의 특

별한 존재라 할 수 있다. 《아캄버스》에

서 조커는 배트맨을 만날 때마다 자신

을 죽여보라고 도발한다. 조커는 모순

적 원칙으로 자신을 괴물들과 구분 지

으려는 배트맨의 얄팍한 시도를 조롱한

다. ‘살인은 하지 않는다’는 실낱 같은

경계만이 배트맨이 스스로를 정당화하

는 기제라는 걸 조커는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조커는 배트맨이 자신들과 다르

지 않음을 끊임없이 되새기게 만들며

그의 불살(不殺)주의의 모순성을 폭로

함으로써 배트맨이 외면하고 부정하는

분열들을 끄집어내고 마주하게 만든다.

<배트맨: 아캄 시티>에서 조커는 죽

음을 맞이한다(마침 배트맨 TAS(The

Animated Series)에서 오래간 조커의

목소리 연기를 전담해왔던 마크 해밀

이 여기서 마지막으로 조커를 연기했

다.) 독에 중독된 조커는 해독제를 손

에 넣은 배트맨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롱한다.

“뭘 꾸물대는 거야? 빨리 해독제를 가

지고 와. 내가 네 여자친구도 죽이고, 고

담시에 독도 풀었어. 이건 그저 시작에

불과해. 그래서 뭐? 우리 모두 니가 결

국 날 구할 거라는 걸 알아”

조커의 조롱 앞에 배트맨은 주저하

는 모습을 보인다.

“네가 하는 모든 짓은 죽음과 고통으

로 끝났어. 사람들은 죽고, 난 널 막지.

그리고 넌 또 탈옥해서 같은 짓을 되풀

이 하지”

망설이는 배트맨의 모습에 동요한

조커는 해독제를 빼앗으려 배트맨에

게 달려들고 그 탓에 해독제는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난다. 바닥에 떨어

진 해독제의 잔해를 손으로 쓸어 모으

는 조커에게 배트맨은 “정말 재밌는 게

뭔지 아나? 여태까지 네가 저지른 모든

일에도 불구하고 난 널 구하려 했었다

는 거야.”라고 고백한다.

이 조커의 ‘죽음’은 어떤 장면보다 배

트맨 세계 내에서의 조커의 아이덴티티

를 잘 드러내주는 장면이다. 조커의 죽

음은 그가 끊임없이 조롱해 마지 않았

던 ‘분열적 존재’로서의 배트맨을 의심

하는 순간, 또한 역설적으로 배트맨이

스스로를 ‘분열적 존재’로서 인정하는

순간에 찾아온다. 바로 이 순간 배트맨

은 자신이 완전무결한 고담의 수호자이

기보다는 오히려 고담의 거대한 혼란과

무질서의 일부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이제 배트맨에겐 더 이상 조커라는 외

부의 거울상이 필요없게 된 것이다. 죽

어가는 조커 앞에서 배트맨이 자신의

분열과 모순에 대해서 내뱉은 ‘재미있

다’는 표현은 배트맨에 대한 조커의 평

가다. 조커의 표현을 빌려 자신을 정의

하는 이 말은 최고의 라이벌이자 자신

의 유일무이한 이해자에게 배트맨이 남

길 수 있는 최고의 작별인사다. (권데레)

세월호 특별법, 무엇이 문제인가?‘세월호’가 여전히 뜨겁다. 여당과 유가

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제정을 놓고 계

절이 바뀌도록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고, 여론 또한 “유가족들의 요구가

지나치다”는 의견과 “정부∙여당은 유

가족의 요구를 수용하라”는 의견이 팽

팽히 대립하고 있다. 이처럼 여야와 유

가족, 그리고 국민들까지 저마다 엇갈

린 목소리를 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

까. ‘세월호 논란’의 쟁점을 살펴보았다.

가장 논란이 되고 있는 부분은 진상

조사위원회에 대한 ‘수사권∙기소권 부여’

문제다. 유족들이 특별법 제정 시에 ‘진상

조사위원회’를 설치할 것을 주장하면서,

이 기구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달라고 요

구한 것이다. 이들은 “수사권과 기소권이

없다면 경찰청과 해안수산부, 해군 등에

서 증거 자료 제출을 거부하더라도 강제

할 방법이 없다”며, “객관적 진상 규명을

위해서는 수사권과 기소권이 반드시 필

요하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여당인 새누

리당은 “민간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부여

하면 사법 체계가 훼손될 수 있다”며 거부

의사를 밝혔다.

여당은 대신에 초점을 ‘특검 도입’으

로 옮기는 모습이었다. 여당은 유가족

을 배제한 여야 합의를 통해, 여당과 야

당이 각각 두 장의 특검 인사 추천권을

가지도록 하는 합의안을 발표했다. 그

러나 이는 유가족들의 반대로 인해 무

산되었다. 합의안에는 수사권과 기소권

에 대한 내용이 빠져 있으며, 특검에 있

어서도 여당에 특별검사 임명 추천권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여당이 “특별검사

추천 시 야당과 유가족 동의를 받겠다”

고 타협안을 제시했지만 유족들은 완강

히 거부했다. 이 때문에 일부 언론 및

여론은 유가족들의 입장에 대하여 ‘집

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등 부정적

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유가족들이 특별 검사 추천권

에 유독 ‘집착’한 이유는 특별검사 임

명 과정에 있었다. 지난 6월 13일 발효

된 ‘상설특검법’에 따르면 특별검사를

임명하기 위해서는 법무부차관, 법원행

정처 차장, 대한변호사협회장, 그리고

국회 추천 전문가 4명이 회의를 거쳐 2

명의 특검 후보를 추천하면 이 중 한 명

을 대통령이 특별검사로 최종 선정하도

록 되어 있다. 유족들은 이 과정을 문

제 삼았다. 진상 규명 시 청와대까지 수

사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상황에서, 대

통령이 선정한 특별검사가 과연 객관적

인 시선을 유지하며 수사에 임하겠냐는

것이다. 이 때문에 유족들은 진상조사

위 주도 하에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지

고 수사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특검

도입 시엔 후보 추천에서 여당 몫을 뺄

것을 주장하고 있다. 이를 놓고 여당과

유가족 대표단은 세 차례에 거쳐 협상

을 시도했지만 서로 한 발짝도 물러나

지 않았다.

여론 또한 팽팽하게 맞서는 모습이

다. “‘세월호 특혜법’ 지겹다”며 “산적

한 93개의 민생 법안은 언제 처리하느

냐”는 목소리와, “정부와 여당은 무엇

이 두려워 유족들에게 통 큰 양보를 하

지 않느냐”는 목소리가 연일 대립하고

있다. 특히 93개의 법안 처리를 놓고

는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 내부에서조

차 파가 갈리는 모습이다. 운동권 출신

의 강경파들은 ‘장외 투쟁’을 선언하며

“세월호 특별법 통과가 우선”이라고 주

장하는 반면, 초선 및 재선 의원 위주의

온건파들은 “‘민생 법안∙세월호 특별법

투 트랙(Two Track)’ 운영”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갈등이 풀어질 기미를 보이지 않자 여

당은 정의화 국회의장을 압박하며 밀린

법안을 직권 상정할 것을 주문하기도 했

지만, 정 의장은 “여야 간의 합의가 우선”

이라며 요구를 거부했다. 대통령과 정부

는 ‘유병언법’(범죄자가 상속∙증여한 재

산까지도 몰수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발의하는 등 책임의 화살을 유병언 일가

에만 집중시키기에 급급한 모습이다.

지난 넉 달 간의 임시 국회를 비롯해

9월 정기 국회가 시작된 이후에도 ‘세

월호 특별법’은 해결될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김영란법’(100만

원 이상 금품을 수령한 공무원을 면직

시키도록 하는 법안)을 비롯한 수십 개

의 법안들에는 먼지만 쌓여 가고 있다.

여야는 아직도 서로의 귀를 막고 자신

들의 목소리만 내고 있다. 그러나 명절

을 맞아 국회의원들이 확인한 추석 민심

은 ‘세월호 특별법’에 대한 찬성이나 반

대가 아닌, “무능한 국회가 가장 지겹다”

는 따끔한 질책이었다. 여야는 한가위

연휴 내 확인한 진정한 민심을 새기고

빠른 시간 안에 막힌 정국을 합리적으

로 타개해내야 할 것이다.

한편, ‘수사권∙기소권 부여’를 놓고

지난 8월 <KBS>가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찬성한다’가 58.3%, ‘반대한다’

가 38.6%로 찬성 비율이 높게 나타났

다. 같은 주제로 <조선일보> 및 <한국 갤

럽>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찬성’

이 각각 43.0%와 41.0%, ‘반대’가 각각

47.3%와 43.0%로 오차범위(±3.1%) 내

에서 팽팽했다. 그러나 ‘특별검사 추천

권 야당 일임’에 대한 <KBS> 여론조사

결과는 ‘찬성한다’가 37.2%, ‘반대한다’

가 54.5%로 반대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다. (성민규 수습기자)

Page 11: 2014.09.15 제237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9월 15일 제237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크로니클>(2012, 조쉬 트랭크 감독)은

우연히 초능력을 얻게 되었지만 영웅은

되지 못한 소년에 관한 영화다. 이 글에

서 나는 <크로니클>의 파운드 푸티지라

는 외피와 오늘날 영화가 처한 상황, 반

영웅 앤드류의 변화를 겹쳐보며 미디어

와 공동체를 열쇠말으로 주인공이 어떻

게 영웅이 못 되는지를 살펴보았다. 또

한 이 영화가 오늘날 미디어를 반성적

으로 성찰하는데 주목하며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있는지 추측해보았다.

<크로니클>에서 먼저 눈에 띄는 건

파운드 푸티지처럼 보이는 양식이다. <크

로니클>은 스스로 세운 원칙, 보다 관객

에게 종용하는 암묵적인 합의를 영화가

끝날 때까지 파기하지 않는다. 이 원칙

이란 바로 영화에 사용된 모든 영상은

허구 세계 내, 앤드류나 다른 누군가의

카메라로부터 비롯된 것이지 제3의 위

치에 있지 않다는 설정이다.

이 설정을 통해 <크로니클>이 모크

다큐멘터리처럼 현실과 픽션 간의 경

계를 교란하지는 않는다. 영화에서 앰

비언스와 몇몇 카메라 워크 역시 작품

의 허구 세계를 벗어나지 않지만, 시청

각적 훈련을 충분히 거친(아마 TV의 리

얼리티 프로그램을 통해 훈련되었을 것

이다) 현대 관객이 <크로니클>을 보며

정교하게 연출된 허구라는 점을 눈치채

기란 어렵지 않다. 초능력이라는 있음

직 하지 않은 소재를 다룬 탓도 있지만

우디 앨런의 <젤리그>가 우스꽝스러운

비현실적인 소재를 다루면서도 진지한

얼굴로 앞서 말한 전략을 취하는데 비

해 애당초 이 영화의 전략은 픽션의 지

위를 흔드는 것과 거리가 멀어보인다.

관객을 속일 의도도 없고 정말 속

는 관객도 없지만 만약 우리가 속아본

다면, 앤드류가 촬영한 클립들의 모음

인 이 영화를 누가 편집했느냐는 문제

가 떠오른다. <크로니클>은 <개를 문 사

나이>처럼(이 영상들은 실제로 촬영된

영상이며 우연히 발견한 누군가가 편집

을 했다는 자막을 통하는 식으로) 마무

리 박음질을 매끈하게 하지 않은 채 남

겨두고 있다. 앤드류가 촬영했으며 편

집을 누가 했는지는 명시하고 있지 않

은 이 영화의 서사를 따라, 서사적인 구

조로 편집되어 우리 관객에게 상영된

이 영상들을 파운드 푸티지 즉 발견된

단편이 아니라 아직 발견되지 않은 푸

티지로 고려해볼 수 있지 않을까? 여

기 이 푸티지는 촬영은 되었지만 상영

이 되기 전이다. 아직 영화가 되지 못

한 파일이다.

이 기록이 처한 상황은 프랑스 영화

감독 장 뤽 고다르가 필름과 디지털 영

상은 아직 만들어 지고 있지만 영화는

죽었다고 말할 때 그 시네마가 처한 상

황과 비슷해 보인다. 만약 영화가 경쟁

하는 다른 기원을 제치고 살롱에서의

대중상영을 특징으로하는 뤼미에르에

서 출발했다면, 영화의 삶을 지탱해준

것 중 하나는 수용이란 측면에서 대중

성(popularity)이다. 영화는 대중의 기

억과 경험과 관계 맺어왔다. 하지만 오

늘날 영화는 TV드라마에 그 자리를 내

어준 듯하다.

여기에 앤드류가 겪는 변화를 겹쳐

보자. 앤드류는 처음 카메라를 산 날에

자신의 모든 것을 찍겠노라고 다짐한

다. 이를 통해 일종의 사적인(private)

아카이브가 구성될 것이다. 어느 날 파

티에서 앤드류는 우연히 캐시를 만난다.

캐시의 질문에 앤드류는 “난 그냥 찍고

있어(I’m just filming.)”라고 말한다. 캐

시는 “난 블로그에 올리려고 찍어(I’m

filming for my blog.)”라 답한다.

초능력자들은 카메라를 갖고 놀면서

친해진다. 동시에 친한 사이는 카메라

를 함께 갖고 노는 사람끼리로 정의된

다. 셋 사이에 만들어진 작은 서클에는

스티브의 여자친구도 들어오지 못한다.

셋 간의 우정의 공동체가 꾸리는 것은

바로 앤드류의 촬영이다. 말하자면 미

디어를 매개로, 미디어의 매개를 전제

조건으로 하나의 작은 공동체가 만들

어진 셈이다.

하지만 여기서 그칠 뿐 더 확장되진

못한다. 촬영에 으레 뒤따르는 관람이

라는 행위가 이 영화에서는 결여되어있

기 때문이다. 앤드류가 찍는 영상은 어

디에 업로드 되고 있나? 누구에게 공유

되고 있나? 어머니를 촬영하며 앤드류

는 “수백만이 보고 있다”고 말하나 막

이 내릴 때까지 <크로니클>은 앤드류의

하얀 거짓말의 결백함을 증언하는 자리

에 서지 않는다.

이와 달리 할리우드의 영웅물에서는

미디어의 전파를 통해 영웅의 행동과

용기가 시민사회에 전달된다. 심지어

피터 파커(스파이더맨)는 비정규직 사

진가로 자신의 사진을 찍어 언론에 특

종을 제공하며 클라크(슈퍼맨)는 그 자

신이 기자다. 앤드류 역시 행위자이자

동시에 기록자이다. 초능력자이자 캐논

카메라를 든 소년이다. 하지만 그 초능

력은 고작해야 장기자랑을 위한 트릭으

로 활용될 뿐이며 관객은 동창생에 제

한된다.

<크로니클>에서 앤드류는 보편적 공

동체로 중개되지 못한다. 사회는 이미

주어져있지만 공동체로의 도약은 영화

에서 단 한 번도 이뤄지지 못한다. 앤드

류가 영웅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공명

심, 복수심, 이기심 등 어린 영웅이 가

질 만한 비영웅적 자질을 갖고 있던 피

터 파커를 생각해본다면 앤드류의 성격

결함을 탓할 수만은 없다.

여기서 잠시 이전 시대의 영화가 어

떻게 주체/공동체가 형성해내는지 돌

아보자. 전쟁기 제국 일본에서 만들어

진 <사랑과 맹세>(1945, 이마이 타다시,

최인규 감독)는 미디어와 트라우마를

통해 국민이란 주체를 형성하는 방식

을 보여주는 영화다. <사랑과 맹세>는

끊임없이 가미카제 특공대에 자원입대

한 청년 무라이의 흔적을 보여준다. 어

느 날 무라이의 집으로 한 우편이 배달

된다. 거기에는 무라이의 육성이 담긴

레코드가 있다. 자신은 자랑스러운 제

국의 일원으로 죽는다고 그러므로 여보

부인은 슬퍼하지 말라는 무라이 소위의

전언을 듣고 그의 부인은 입술을 꼭 깨

문다. 무라이의 아버지는 눈물을 참으

며 그의 뜻을 헛되이 하지 말자고 외친

다. 한 개인의 최후 고백이 이렇게 레코

드라는 미디어를 통해 그의 가족에게,

그리고 스크린을 통해 허구 세계 바깥

의 관객에게 전달된다. 또한 무라이 소

위의 사진이 아동들에게 공유되며 일종

의 공동 감각을 만든다.

이게 <사랑과 맹세>에서 미디어를

매개로 트라우마를 통해 공동체를 만드

는 방식이다. ‘우리’라는 상상된 공동체,

구체적으로 국가 건설(nation-building)

기의 민족이라든가 냉전기 자유세력이

라든가 하는 개념은 미디어를 통해 탄

생할 수 있었다. 나치의 제 3제국과 라

디오, 자유세력의 수장 미합중국의 미

공보국과 재즈, TV. 사회주의 국가의 경

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에이젠슈테

인의 <전함 포템킨>은 오뎃사 계단이라

는 트라우마와 접속하며 계급성을 창

조해냈다.

하지만 앤드류의 트라우마는 다르

다. 그의 트라우마는 가정환경에서 기

인하는데, 이는 역사와 전혀 접속하지

않는다. 아버지가 왜 폭력적으로 변했

으며 알콜 중독자가 되었는지 영화 내

에서 설명하는 바는 없으며, 현실 역사

와의 접면에 대해서도 어떤 힌트도 주

어지지 않는다.

<크로니클>에서 전제되는 공동체는

공동체라 부르기 민망할 수준이다. 이

는 규모의 문제라기보다 보편성의 문제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창동 감독의 <밀

양>은 경남 밀양시라는 버내큘러한 장

소에서 벌어지는 특이한 이야기가 아니

며 햇살이 지구 위 어디에나 내리쬐듯

그만한 보편성을 지니는 공간이라는 점

이 영화에서 재차 강조된다. 영웅의 전

형이라 할 두 웨인(Wayne)∙외진 마을

에 도달한 떠돌이 총잡이와 마천루의

도시에 거주하는 부르주아∙ 역시 같은

방식으로 보편성을 획득하며 영웅이 된

다. 이것이 <크로니클>의 앤드류가 걷

지 못한, 한 주체가 영웅이 되는 길이다.

<크로니클>의 주인공들에겐 적수가

없다. 그리하여 지켜야할 가정도 사회

도 없고 구원할 인물도 없다. 슈퍼맨에

겐 노부부와 가정, 미국이란 국가가 있

고 배트맨에는 도시 고담과 시민들이

있다. 아이언맨도 스타크 특유의 쿨함

에도 불구하고 시리즈의 마지막에 아

메리카니즘으로 귀결된다. <크로니클>

에는 적이 없다. 그리하여 대의도 영웅

도 없다.

<크로니클>은 앤드류의 초능력자 친

구들의 삶을 기록한 영화인 동시에 ‘기

록하기 위한 삶’과 이것이 이끈 파국을

그려낸 영화다. 미지의 동굴을 탐험한

이후 그들에게 초능력이 생기고 이는

그들의 삶에 비가역적인 순간이 된다.

무엇보다 앤드류가 행하는 촬영에 있어

이질적인 접면이 된다. 초능력이 생기

기 전부터 촬영을 해오던 앤드류는, 초

능력이 생긴 후 앤드류는 친구들에게

“우린 이걸 기록해야만해(We should

document this.)”라고 말한다. ‘그냥’에

서 ‘반드시’로 ‘찍다(film)’에서 ‘기록하

다(document)’로의 도약 혹은 변이가

일어난다. 여기서 촬영과 사건의 관계

가 뒤집힌다. 신기한 사건이 먼저고 촬

영이 나중이었다면 이제 그들은 촬영을

하기 위해 방 안에서 마트 주차장에서

파티에서 사건을 일으킨다. 더 이상 그

들은 자유롭게 피사체를 정해 셔터를

누르는 카메라의 주인이 아니라 빌렘

플루서의 표현대로 “카메라의 프로그

램에 복속된 노예”다. (박이현 기자)

(다음 호에 계속)

어느 반영웅의 죽음(1)

Page 12: 2014.09.15 제237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9월 15일 제237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한국영화사 기획서평『근대의 원초경』의 ‘한국 영화(사)’ 서술에 관해(2)

제232호에 실린 이 서평의 앞 부분(http://news.karts.ac.kr/?p=501)은

큐아르코드(QR코드)로 접속하면 확인할 수 있다.

김소영은 그간의 한국영화사 서술이

“식민지 조선 영화에서 해방기 영화를

거쳐 내셔널 시네마로서의 한국 영화

를 향해가는 선형적 과정으로 설정하

고 각각의 단계를 그 한국 영화의 단위

의 완성을 위한 단계”로 보았다고 비판

한다. 실제로 『근대의 원초경』은 이영일

의 『한국영화전사』나 유현목의 『한국영

화발달사』 등 여타 한국영화사 저작처

럼 한국영화 전체를 서술하려는 강박을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한국영화사 저작들

이 목차를 연대기순으로 정렬한 데 비

해 『근대의 원초경』은 그렇지 않다. 김

소영은 특정 작품이나 장르를 중심으

로 시대적 상황과 키워드에 맞게 재배

치해내며, 통상적인 시기구분을 따르면

서도 나름의 독특한 해석과 계보학으로

재구성한다.

통사서술의 강박을 벗어나려는 김소

영의 전략은 제목에서부터 엿볼 수 있다.

위에서 꼽은 다른 저작은 제목에 명시

적으로 ‘한국영화사’가 언급되어 있다.

국사라는 명명이 영토화된 근대국가에

서부터 사후적으로 민족/국가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것임을 비춰봤을 때, 우리

가 한국영화사라고 부를 때 그것은 (비

록 경계가 매끈하지 않을지라도) 굳건

하게 서 있는 무엇으로 전제해버릴 위

험이 있다. 『근대의 원초경』은 제목에서

부터 그런 문제를 피해간다. 물론 그렇

다고 『근대의 원초경』이 우리가 통상 한

국 영화라 부르는 영상들과 전혀 이질적

인 텍스트를 다루고 있지는 않다. 하지

만 저자가 겨냥하는 것이 간헐적인 단

절을 고려하도 크게는 선형적인 발전의

궤도를 따르는 한국영화사가 아님은 분

명하다.

이름지음의 전략을 우리는 제목뿐 아

니라 본문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한국

영화’라는 띄어쓰기가 그 한 예다. 다른

저서들은 한국영화를 ‘한국영화’라고

쓰는데 반해 이 책은 일관되게 ‘한국 영

화’라고 쓴다. ‘한국영화’라는 명명에는

상상된 공동체로서의 ‘한국’이라는 단

위와 그것에 의해 가능하며 동시에 거

기에 균열을 내는 ‘영화’라는 재현매체/

양식의 사이, 둘의 틈에서 출현하는 무

엇이 봉합되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

한국 영화’라는 호칭을 통해, 그러니까

한국과 영화 사이의 띔표를 통해 한국

이라는 민족/국가와 영화라는 재현 사

이의 자연스러운 매개에 균열을 내고 있

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의도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적어도 책 안에서 일관

되고 있는 띄어쓰기는 이런 독해의 가

능성에 열려있다. 『근대의 원초경』은 한국영화를 분절해

서 볼 것을 제안한다. 유예성을 열쇠말

으로, 이것이 낳는 생산적 긴장에 주목

코자 한다며 ‘한국 영화’라는 범주와 일

정한 간극이 있거나 그로부터 미끄러져

나가는 명명으로 조선 영화, 해방 영화,

남한 영화(분단시대), 한국형 블록버스

터를 들며 이를 통해 식민시대, 해방기,

냉전기, 세계화시대로 나누어 보자고 제

안한다. 이런 방식으로 한국 영화에 역

사적으로 접근함으로써 “한국 영화라

고 불리는 대상의 역사적 배열을 새롭

고 이질적이고 계보학적 방식으로 되감

아 재배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조선 영화라는 범주에 대해

돋보기를 들이밀어보자. 저자는 제국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에서 만들어진

영화를 조선 영화라고 부르길 제안한다.

현재에 포괄적으로 ‘한국 영화’로 호칭

되는 일제 강점기의 영화들은 역사적으

로 한국영화, 조선영화, 국산영화 등으

로 불리어 왔다. 영화사가 이영일은 우

리 영화계가 “조선 영화계”라는 표현을

사용했음을 강조하며 독자적인 국가성

과 식민지 조선의 비교적 자율적인 영

역을 설정하고 있다고 말한 바 있는데,

김소영 역시 이영일을 따라 일제 강점

기엔 호명과 범주 자체가 저항의 기호

였으며 조선 영화 문화를 판독하게 하

면서 동시에 구성하는 기호체계의 변화

였다는데 주목한다. 즉 ‘조선 영화’라는

호명에는 기호학적 저항성이 있다.

범주를 어떻게 지칭할지 뿐만 아니

라 범주의 경계 역시 문제가 된다. 제국

일본의 로컬이었던 조선에서 만들어진

이들 영화들은 선전적 영화라 할지라도

일본영화라고만 부르기 힘들다. 왜냐하

면 무엇보다 대상관객이 조선인이라서

극장을 종족적인 공간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사의 쟁점』을 저술

한 조희문의 “한국영화는 자본의 조달

이나 제작 주체와 관계없이 한국에서 한

국인 관객을 주 대상으로 만들어진 영

화”라는 정의로는 포착할 수 없는 구체

적인 영화들과 쟁점을, 김소영은 ‘조선

영화’라는 범주로 나누어 봄으로써 후

학에게 연구 과제를 남기고 있다. ↗

“식민시기 기존의 참조체계는 흉포하게

무너지고 문화적 패턴은 강탈당하고 가

치들은 무너졌다. 이런 역사적 조건은

탈식민시기, 참조체계를 어떻게 재구성

할 것인가, 어떻게 아카이브를 통해 사

회적 기억을 구성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를 보다 절실한 프로젝트로 만들

게 된다.”

탈식민주의학자 프란츠 파농의 말이

다. 파농을 따라 김소영은 냉전 시기 미

국의 세계 관리 차원에서 작동하던 지

역연구와는 분명한 선을 긋는다. 미리엄

한센의 버내큘러 모더니즘 개념을 적극

적으로 차용해 와, 비서구적 방법론이라

기보다는 서구와 비서구라는 지리적 소

재, 지정학과 관계를 가지면서도 주변,

소수를 위한 주류와의 시차에 근거한 방

법론을 시도한다. 이것이 김소영이 주창

하는 트랜스 방법론이다.

방법론 면에서의 전환뿐 아니라 대상

차원에서도 전회가 있다. 저자는 주류

한국영화사에서 유령처럼 존재하던 식

민지 시기의 여성 관객, 그리고 평가절

하 당하던 김기영 감독의 영화 등을 논

의의 중심에 불러온다. 이를테면 승자의

역사 바깥에 서 있던 낯선 이들을 불러

내는 셈이다. 저자는 그간 괄호 안의 영

역에 속해있던 젠더 문제를 한국 영화사

서술에 가져온다. 동시에 한국영화라는

아카이브를 통해 젠더에 관한 우리의 시

야를 재구성한다.

이처럼 『근대의 원초경』은 ‘유예성’

을 키워드로 근대성과 이를 둘러싼 주

체들의 경험과 경합을 풍부하게 논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억압된 기억은 사라

지지 않고 트라우마로 남아 우리의 자

아에 끊임없이 고통을 가한다. 저자는

트라우마라는 문제 틀에 천착하여 다음

과 같이 묻는다. “한국 근대사의 질곡이

동시대의 영화에 어떻게 일종의 PTSD

적 성격을 가진 이미지로 출현하는가,

혹은 동시대의 영화가 한국 근대사의 트

라우마를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가 또는

하지 못하는가, 그럼으로써 트라우마와

그것의 증후적인 후유증이 역사적 재현

과 이해에 던지는 질문은 어떤 것인가?”

트라우마와의 대면은 분명 어떤 치

유 가능성을 남길 것이다. 우리는 탈냉

전 시기 동아시아라는, 냉전의 틀이 무

너지고 신자유주의 시대가 도래한 이후

라는 ‘지금-여기’에 서 있다. 일본 우익

들의 교과서 재편, 고구려사에 대한 한

국과 중국의 갈등 등 다양한 쟁점이 부

상하며, 새로운 역사편찬이 시도되는 지

금의 때에 영화라는 대중재현매체를 통

해 내셔널리즘의 기원을 거슬러 올라가

균열을 시도하는 김소영의 저작은 소중

하다. (박이현 기자)

↘ 「콘택트 존으로서의 장르」는 이 책에

서 계보학적 재구성이라는 전략을 가장

잘 실현한 글 중 하나다. 저자는 여기

서 변방 취급 받던 액션 영화 혹은 활

극의 계보학을 한국 영화의 세 황금기

를 따라 추적한다. 첫 번째 르네상스기

는 1920년대 중반부터 1930년대 중반

의 식민시기다. 저자는 벌써 이 때 앞으

로 도래할 ‘내셔널시네마’의 윤곽이 만

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나운규의 <들쥐

>(1927)를 비롯한 식민시기 활극을 소

개하며, 이가 버내큘러한 식민 근대성

의 장소를 전시한다고 해석한다.

두 번째 황금기는 1950년대 중반부

터 1960년대까지의 시기로, 근대화로

특징지어진다. 이 시기에 제작된 액션

영화를 두고 저자는 주변부 남성을 교

화하여 산업 노동력에 편입하고자 하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경향이 있

다고 주장한다. 또한 홍콩 액션 영화 시

리즈인 외팔이 시리즈와 남한의 외다리

시리즈를 비교 분석한다.

세 번째 시기는 199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로, 키워드는 세계화다. 1992

년엔 기획 영화의 전범을 마련한 <결

혼 이야기>가 제작되었다. 저자는 기존

영화 제작의 관행에서 벗어나 프리-프

로덕션 단계와 홍보에 많은 노력을 기

울인 영화라는 데 주목한다. 다음 해인

1993년에는 1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

원하며 국민 영화로 자리잡은 <서편제

>(1993)가 제작됐다. 저자는 이 두 영

화를 기점으로 전환의 계기가 마련됐

다고 주장한다. 기존의 충무로식 제작

에 적극적인 관리 방식이 도입되었으며

이후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새로운 유

형으로 이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을 통해 김소영은 통사적 서술에서

는 보이지 않던 일련의 성좌를 이어내

는 데 성공한다.

강박과 함정을 피해 한국영화 탐험하기

한국영화, 나누어 보기

한국영화, 계보학적으로 보기 한국 영화를 통해 지금-여기를 돌아보기

Page 13: 2014.09.15 제237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9월 15일 제237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주성치 제품을 만들어 파는 초우상회

를 만났다. 상회의 경영은 영상원 영화

과 최고은, 최하나 씨가 공동으로 맡고

있다. 일은 누가 할까? 따로 없고 둘이

한다. 장사는? 그것도 둘이 한다. 그러

니까 티셔츠, 브로치를 비롯한 제품들

을 기획, 제작부터 유통, 판매까지 모두

최고은, 최하나 둘의 손으로 이뤄진다.

초우상회는 그간 꽤 많은 행사에 참가

해왔다. 동대문 봄장, 서울국제여성영

화제 아트마켓, 서대문 KTNG 상상마

켓, 서울아트시네마 플리마켓, 공원예

술상점 등 때로는 초대를 받아갔으며

때로는 불러주지 않아도 갔단다. 누군

가 깔아둔 판에만 자리를 펴는 건 아니

다. 초우상회의 주요 출몰지는 극장 앞

이나 거리, 학교 공터. 당신도 뜬금 없는

날, 뜬금 없는 데서 이들을 마주칠 수 있

다. 초우상회에게는 오늘만 장날이 아

니며 여기만 장터도 아니기 때문이다.

<만남, 반가움 혹은 당혹감>

만나서 반갑습니다. 2012년 9월 20

일이 창사 기념일이라고 들었어요.

하나 _ 당시 고은 언니는 재학 중이었

고 저는 휴학 중이었어요. 돈을 벌겠단

명목으로 휴학을 했지만 아르바이트는

안 하고 있었죠. 누가 시키는 하기 싫

은 일을 하면서 돈 버는 게 싫었거든요.

그래서 사업을 해야겠다 싶어 생각해낸

아이템이 주성치 제품 판매였어요. 같

이 할 사람을 생각해봤는데 주위에 주

성치 좋아하는 사람이 고은 언니 밖에

없더라고요.

먼저 디자인을 해 제작하기도 하지만

주문제작도 한다고 들었어요.

하나 _ 우리가 먼저 주문제작을 시작하

진 않았어요. 종로에서 장사를 하고 있

는데, 어르신들이 와서 이런 게 돈이 되

느냐고 훈수를 두시더라고요. 이런 거

팔 바에 박근혜 열쇠고리를 팔면 잘 팔

리겠다면서요. 어린 애들이 밖에 나와

서 고생한다며 집에서 돈도 안 주냐고

오해도 하시고요. 유독 한 어르신이 저

희가 너무 걱정이 됐는지, 계속 어슬렁

거리면서 지켜보셨어요. 그러다가 오셔

서 자기 사진으로 배지를 만들어달라셨

어요. 즉석에서 사진도 찍었죠. 그러면

서 연락처 남겨주시며 디자인 예쁘게

만들어달라는 말씀을 남기셨죠.

당혹스러우셨겠지만 재밌는 일화네요.

만든 배지는 어떻게 전해드렸나요?

하나 _ 한 주 뒤 거기로 또 팔러 나갔

는데 마침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직접

드렸어요.

고은 _ 한 달 뒤쯤인가? 영화 보러갔다

가 우연히 또 만났어요. 자주 나오시는

분인가봐요.

하나 _ 그런데 배지 값만 내신 게 아니

라, 동대문 의류 관련 일을 하시는지 커

다란 보따리에다가 악세서리랑 바지 같

은 물품을 저희 주시려고 잔뜩 가져오

셨더라고요. 같이 팔면 잘 팔릴 거라고

하시면서요.

고은 _ 할아버지께 죄송하지만 그 물건

들을 같이 팔진 않았어요. 아직 집에 있

는데 애물단지 같아요. 바지가 겉은 가

죽이고 안은 솜이라 더워서 입지도 못

하겠어요.

<돈, 목적 혹은 수단>

한 번 장사 나가면 지갑은 얼마나 두

둑해지나요?

고은 _ 정산 해본 적이 잘 없어요. 무서

워서 확인을 못해봤죠. 초우상회를 시

작하고 딱 한 번 작년에 정산 해봤는

데 통틀어 60만원에서 80만원 정도 되

는 듯 해요.

하나 _ 저게 제작비는 빼고 계산한 거

예요. 손익분기점을 넘었는지도 잘 모

르겠어요. 올해 들어 많이 팔았으니 지

금은 넘긴 했을 거예요.

배지가 생각보다 돈이 별로 안 되는

거 같은데 계속 만들어 파는 건 주성

치에 대한 팬심 때문인가요?

하나 _ 돈이 안 되고 있지만 저희는 돈

을 벌려고 하는 일이에요(웃음). 다만

만들고 싶지 않은 걸 만들지는 않는다

는 원칙은 있죠.

고은 _ 작년까진 장사가 잘 안 됐어요.

학교에 장을 열면 하나도 못 파는 날도

있었죠. 그런데 올해 들어 아트시네마

씨네플리마켓이나 주성치 영화제 등 여

러 기회가 생겼고, 거기선 꽤 많이 팔았

어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요.

초우상회를 하며 생긴 수익을 나눈

적 있나요?

하나 _ 지금까지 번 돈을 사적으로 쓴

적이 없어요. 일을 할 때만 썼어요.

고은 _ 사실 급할 땐 빼 쓴 적도 있는데,

다시 넣었죠.

하나 _ 나중에 배분하면 좋겠다.

고은 _ 그런데 그나마 벌어둔 것도 시트

콤하는데 쓰고 있어서 평생 배분 못 받

을 지도 모르겠네요.

<영화, 본업 혹은 딴짓>

어떤 시트콤을 찍고 있나요?

고은 _ 2012년에 현대쎈타에서 창업워

크샵을 했을 때였어요. 유병서 씨가 아

는 사람이 팔아달라고했다며 소형 프

로젝터를 무더기로 가져왔어요. 어떻게

팔까 연구했는데, 영화를 찍어 상영회

를 열자는 안이 나왔죠. 그래서 하나 씨

가 창업워크샵을 영화로 찍어보겠다고

해서 시나리오를 쓰게 됐어요.

하나 _ 그 땐 의욕이 충만했어요. 뭐라

도 될 것 같은 분위기였죠. 그래서 1화

시나리오를 썼는데 정작 워크샵 멤버들

반응이 별로였고 결국 흐지부지 끝났죠.

시간이 지나 한 언니와 얘기를 나누는

데 어쩌다 졸업 영화 전에 연습삼아 재

미있게 힘 안들이고 뭐라도 하나 찍고

싶다는 얘기가 나왔죠. 그래서 시트콤

을 다시 만들겠다 마음 먹었어요. 장비

는 그때 그때 빌려 썼어요. 촬영은 아는

사람에게 작은 DSLR 빌려 썼고요, 녹음

은 스마트폰으로 했어요. 스태프 세 명

에 배우는 둘이었죠. 저희가 직접 연기

도 했어요.

앞으로 다양한 영화를 찍게 될 건데

요, 제작비를 어떻게 충당할 건가요?

고은 _ 윤성호 감독의 <할 수 있는 자

가 구하라>가 인디로 만들었지만 MBC

로 간 사례처럼 이차 창작이나 판권 등

으로 해결해도 좋을 것 같아요. 크라우

드 소싱 생각도 해봤는데 좋은 방법인

지 잘 모르겠어요. 다들 많이 쓰는 방법

이며 쉽기도 하지만요, 프로젝트 하나

만 일시적으로 후원해준다는 인상을 받

았어요. 뭔가 지속적으로 후원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좋겠는데.

다른 20대들은 소위 스펙을 쌓느라

바쁘다고들 하죠. 아마 그 친구들의

목표는 평범한 직장생활, 말하자면

나인투식스(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 삶)일 텐데요.

하나 _ 작년까지 나인투식스를 살겠다

는 생각을 전혀 안 했어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사는 건 아니잖아요.

그러다 올해 갑자기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걸 고은 언니한테 얘기

를 했는데 비웃음을 당했죠. “네가?” 하

면서요. 회사 업무가 걱정이라기보다

제 사회생활 문제가 걱정이에요. 회사

에는 상관이 있잖아요. 정상적인 한국

사람 대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게 가능

할까 싶어요. 당장 취직하려면 면접에

서 웃으며 얘기해야하는데, 내가 그걸

할 수 있을까? 저는 잘 모르겠어요.

고은 _ 웃으면서 해야지(웃음).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 하는 삶이면 되게

좋을 것 같아요. 공공기관에서 아르바

이트를 해봤는데 출근시간이랑 퇴근시

간이 정해져있어도 그 시간에 정말 퇴

근 하는 사람이 없더라고요. 다들 잔업

을 하느라 더 늦게 퇴근하거든요. 공장

에서 일해본 적도 있는데 거기도 잔업

을 하더라고요. 심지어 새벽1시까지 하

는 경우도 있었죠. 나인투식스는 사실

이상적인 삶이죠. 저희 부모님도 직장

생활하는데 그런 삶을 살고 있진 않아

요. 한편 요즘 단순한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단 생각을 종종해요. 초우상회도 하

고 미완성프로젝트도 하고 학교도 다니

다보니 여러 가지를 동시에 해야할 때

가 많거든요.

<미래, 현실 혹은 이상>

두 분이 졸업을 하고 직장이 생긴다

면 초우상회는 어떻게 될까요?

고은 _ 졸업 이후 규칙적인 일을 할지

말지도 아직 안 정했어요. 어쨌든 병행

할 수 있지 않을까싶어요.

하나 _ 지금도 초우상회에 올인 하는 건

아니여요. 시간이 될 때 하는 정도죠.

<친구들 영화제>에 간 날 농담 삼아 “동

기들 영화가 여기서 상영되는 와중에

우리는 계속 여기서 배지 팔고 있는 건

아닐까”얘기 하기도 했죠.

고은 _ 음, 그래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신다면요?

하나 _ 초우상회가 잘 됐으면 좋겠어요.

요즘 알라딘에서 책을 팔아 생계를 유

지하고 있어요. 얼마 전 트위터에서 최

규석 작가가 자기처럼 만화 일을 하려

고 하는 어린 후배들에게 생활에서 취

향을 지우라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

러면 편해진다고. 실제로 중고나라에서

피규어를 팔고 알라딘에서 책을 팔다

보니 그 말이 씁쓸하기보다 공감이 됐

어요. 제게 초우상회는 취향이자 돈벌

이거든요.

고은 _ 시립미술관에서 배지 전시하면

좋겠어요. 모마(MoMA)도 좋고.

하나 _ 뭐라고? 저는 싫어요.

요새 젊은 것들. 초우상회를 보며 떠

오른 말이다. 기성세대는 요즘 젊은이

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는 경쟁에 살

아남을 수 있도록 치열하게 살지 않는

다며 핍박하고 누구는 적자생존논리를

내면화했다며 증오한다. 누구는 현실에

너무 순응해서 재미없다 욕하고 누구

는 저항하지 않는다며 불만이다. 20대

는 정말 그런 삶을 살고 있을까? 적어도

초우상회는 아니다. 기성세대들이 부르

는 20대는 자신의 무언갈 투사한 상 같

아만 보인다.

어떤 어른도 한때는 청년이었다. 우

리 역시 세월이 흐르며 그들처럼 될까?

모르겠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확실하

다. 초우상회의 오늘은 청춘이다. 그리

고 이들에게는 오늘만 청춘이 아니다.

(취재 박이현, 사진 오병훈 기자)

돈 벌자고 하는 일초우상회 최고경영자 겸 최고노동자 최고은, 최하나 인터뷰

Page 14: 2014.09.15 제237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9월 15일 제237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몇 달 전 미국에서 나고 자란 사촌 언

니가 결혼한다고 알려왔다. 언니는 일

하고 있는 뉴욕에서 결혼식을 올린다

고 했고 한국에 있는 가족 모두를 초

대했다.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뉴욕

에 가게 됐다. 나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라 와서 내게 도시는 일상이고 도시

밖은 일상을 벗어난 여유였다. 그래서

성인이 되고 나선 언제나 자연지나 여

유로운 도시로 여행을 떠났다. 그런 만

큼 뉴욕에 가게 될 줄은 몰랐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봐 오기로는 뉴욕은 ‘도시’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뉴욕

은 빼곡히 들어선 높은 빌딩, 화려한 옷

을 입고 어디론가 정신없이 향하는 사

람들 그리고 차로 뒤엉켜 경적이 울리

는 복잡한 ‘도시’였다.

결혼식에 초대받은 지 얼마 되지 않

아 바로 미국으로 떠나서 아무런 준비

도 할 수 없었다. 텔레비전 속 이미지

만을 생각한 채로 뉴욕에 도착했다. 그

이미지는 타임스퀘어나 자유의 여신상,

센트럴 파크 따위 같은 유명 관광지였

다. 내게 주어진 자유 시간은 단 이틀이

었는데, 시간이 촉박하다 보니 텔레비

전 속 이미지를 찾아 나섰다. 정말 내가

뉴욕에 온 것인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도 있었다. 항상 ‘최신’이라는 단어 아

래 뉴욕의 새로운 전시와 공연이 미디

어에 오르내리지 않았던가. 내가 있는

곳이 동향의 가장 앞이라는 생각에 마

음이 들뜨기도 했다.

타임스퀘어는 복잡했다. 서울 하고

는 비교할 수 없는 규모의 전광판 속에

서 쉴 새 없이 영상물이 쏘아댔다. 보도

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관광객들이 줄

지어 걸었고 때때로 사람들이 무단횡

단을 하는 바람에 자동차 경적이 시끄

럽게 울렸다. 넋이 빠진 채로 타임스퀘

어 한가운데서 전광판과 수 많은 가게

를 올려보다가 오래 있을 수 없어 발

걸음을 재촉했다. 타임스퀘어나 센트럴

파크, 모마(MoMA) 등 뉴욕을 대표하는

이미지는 주로 미드타운에 있었다. 미

드타운을 돌며 모마(MoMA)에 다녀왔

는데 티켓 한편에 티켓 소지자는 피에

편스원(PS1) 미술관을 무료로 입장할

수 있다고 써 있었다. PS1은 맨해튼을

벗어나 퀸즈 지역에 있었지만, 공짜 티

켓도 생겼고 복잡한 곳을 벗어나고 싶

은 마음에 퀸즈로 향했다.

PS1이 있는 지역은 지나가는 자동

차나 행인이 없어 한산했다. 벽면에 그

래피티로 가득 찬 낮고 낡은 건물들이

맨해튼하고는 정반대였다. 해가 졌다

면 혼자 다니기 무서울 만큼 외지기도

했다. 맨해튼의 새 건물에 자리 잡은 갤

러리와는 달랐다. PS1은 퍼블릭 스쿨

(Public School)의 약자로 폐교된 초등

학교 건물을 개보수해 만든 미술관이

다. 모마(MoMa)나 구겐하임 등 미드타

운에 있는 미술관에서 유명 작가의 작

업을 전시한다면 PS1는 주로 신예 작가

를 위한 공간이다. 분위기도 사뭇 달랐

다. 페인트칠로 최소한으로만 보수했

고 낡은 벽면은 뜯어내 벽면 속에 벽돌

과 콘크리트가 그대로 를보였다. 지하

1층의 전시 공간은 축축한 곰팡내도 났

다. 조명과 작품들이 없었다면 버려진

건물이라고 생각할만했다. 그러나 낡

고 외진 것들이 몹시 반가웠다. 텔레비

전 속 뉴욕의 이미지를 산산조각 내주

길 바란 걸지도 모른다.

PS1을 다녀와선 유명 관광지는 사

진이나 영상 속에서 보기로 했다. 길을

걷다 보면 뉴욕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

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다. 마지

막 자유시간에는 여유롭게 사촌 언니

와 함께 집 근처를 산책하기로 했다. 사

촌 언니가 사는 곳은 다운타운과 업타

운 사이에 있는 첼시전이었다. 주변에

괜찮은 산책길이 있다고 해서 그 길을

걷기로 했다. 산책길로 향하는 길엔 탁

아소와 붉은 벽돌로 지어진 중후한 건

물이 있었다. 언니에게 무얼 하는 곳이

냐고 물으니 시에서 지원해주는 임대

아파트라고 했다. 언니는 가난한 사람

들이 많이 살았는데 점점 개발돼 땅값

이 올랐다며 지금은 아마 다른 지역으

로 떠났을 거라고 말했다.

다양한 사람들이 지나쳐간 첼시는

오래된 동네였던 모양이다.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도 시멘트가 아닌 벽돌이었

다. 척 봐도 세월이 흘러 보이는 건물들

이 즐비했다. 외벽에 터미널 창고라고

쓰여 있는 건물은 낡아 보여, 철거 직전

의 건물인 줄 알았지만 창문 너머로 사

람들이 다녔다. 옛날엔 창고였는데 지

금은 사무실로 쓰인다고 했다. 근처에

는 관광 명소가 된 첼시마켓과 고급 옷

가게가 있는 미트패킹이 있었다. 이름

에서 추측할 수 있듯, 이곳은 예전에 정

육을 하는 동네였다. 도살장과 육가공

공장, 정육점을 허물지 않고 고급 옷가

게나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가게 천막

위에 남아있는 고깃덩이를 걸어두는 고

리들이 그대로 남아있어 정육 하던 곳

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도축하는 곳

에 고급 옷가게라니 의아하기도 했지만

오래된 돌벽 때문에 제법 운치 있었다.

한참을 걸어 도착한 산책길은 공중

에 떠 있었다. 이 산책길은 하이라인파

크로 원래는 기차가 다니는 길이었다.

기찻길이 폐쇄된 후 30년간 방치되어

있다가 비영리 단체에서 공원으로 만드

는 프로젝트를 제안해 생기게 됐다. 매

년 이 하이라인을 가꾸면서 건물과 건

물 사이로 길을 만들고, 또 길을 따라서

건물을 짓고 있다. 사람들은 공중에 하

나 더 생긴 길을 도보로 이용하기도 했

지만 이야기도 나누고, 음식도 먹고, 볕

이 따뜻하면 낮잠도 취하는 쉬는 공간

으로 여겼다.

이쯤 되니 궁금했다. 도대체 뉴욕

은 어떤 곳일까. 이미 머릿속에 ‘도시’

는 없어진 지 오래였다. 하이라인을 따

라 걷다가 텅텅 비어있는 건물 무더기

를 발견하면서 조금은 알 수 있었다. 드

디어 철거하는 건물을 발견한 걸까 싶

었는데 언니는 이 건물 모두 한 주만 전

시하는 팝업 갤러리라고 했다. 목요일

에 모두 오프닝을 열고 일주일 후엔 모

두 새로운 전시를 준비한다. 내가 갔을

때는 전시가 모두 끝나서 텅텅 비어 있

었다. 그러나 돌아오는 목요일엔 관계

자들 뿐만 아니라 전시에 관심이 없는

사람, 돈이 없는 사람, 지나가던 사람들

도 갤러리에서 주는 맛있는 음식을 먹

고 오프닝을 축하할 것이다. 뉴욕도 그

랬다. 뉴욕이라는 도시는 지금 보이는

것이 아니라 뉴욕을 지나쳤던, 그리고

앞으로 지나치는 것들이었다. (박고운)

우리 대대엔 슬픈 전설이 있어. 대대엔

원래 개가 세 마리나 있었지. 이름은 순

심이, 덕만이, 해피. 그중 해피는 유독 말

썽을 피워댔는데, 둘보다 한 달 일찍 온

탓인지 어려서부터 괴롭힘을 많이 당했

어. 생각해봐, 대대 애들이 한 대씩만 쥐

어박아도 하루에 몇 대를 맞았겠니.

20대 혈기 왕성한 나이에 한국 애들

이 창의력은 또 세계적이잖아. 눈이 오

면 제설작업에 지친 대원들이 이글루

라며 개집을 눈으로 막아놔서 밖에서

벌벌 떨어야했고, 사람 만든다며 백일

동안 파와 마늘만 먹이기도 했어. 선임

한 명이 실수로 양파까지 줘버려서 망

정이지 정말 사람 될 뻔 했다니까. 비

보이가 유행하자 나이키를 가르킨다며

뒷발을 묶어 매달아 하루 종일 앞발로

세워놓기도 했지. 하지만 몸치였는지

별 효과는 없었데.

그래도 국방부 시계는 돌아가고 해

피도 짬이 찼지만 변하는 건 별로 없었

지. 분을 풀 데 없는 신병들은 해피를

괴롭혔고 그 신병들이 상병을 달 때 쯤

또 다른 신병들이 해피를 괴롭혔지. 해

피는 혼자서 개풀 뜯는 소리를 내며 여

기저기 어질러놓기 일쑤였어. 마음 착

한 행정관님은 그래도 해피를 이뻐했

지. “해피, 아 유 해피?” 못 하는 영어를

섞어가면서 말야.

어느 날 여단장님이 대대 순찰을 나

오셨지. 마침 목욕을 시킨다고 해피 목

줄을 잠시 풀어놨었는데 말그대로 아

주 개판을 벌여놨지. 여단장님은 웃으

며 말씀하셨지.

“허허, 한 개 대대에 개 세마리는 너

무 많지 않나?”

만장일치로 해피의 방출이 선택됐는

데 착한 행정관님은 차마 해피를 버릴

수 없었던지라 대대 뒷마당에 몰래 묶

어놓고 키우기로 했어. 뒷마당으로 옮

겨간 후 해피는 꽤 행복한 삶을 살았나

봐. 숨겨놓고 기르는 게 미안했던지 해

피에겐 짬밥 대신 사료가 보급되기 시

작했지. 빠졌던 털이 다시 자라고 배도

뚱뚱해졌지. 해피 삶에 드디어 행복한

순간이 찾아온 거야.

그러던 어느 날 해피가 사라졌어. 당

황한 행정관님은 훈련 핑계를 대며 대

대 총원을 동원해 탈영자 수색하듯 대

대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

“개시키 잡히기만 해봐.”

모두들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해피가

걱정되기 시작했어. 하지만 어디에서

도 해피를 찾을 수 없었지. 도망갔나보

다, 떠난 녀석은 잊어버리자했지만 많

은 사람들은 내심 해피를 걱정했지. 그

런데 신병 한 명이 해피의 목줄을 기억

해냈어.

“참, 목줄에 대대 이름을 적어놨으니

해피를 찾을 수 있지 말입니다.”

묶어놓고 키워서 미안해했었는데,

그래서 다행히 해피를 찾을 수 있겠구

나 싶었데, 다 하늘의 뜻이었는지.

며칠 뒤 한 농장에서 전화가 왔지. 털

복실복실한 흰둥이가 혹시 대대 개 맞

냐고. 행정관님은 행복에 겨워 눈물을

흘릴 뻔했다지 뭐야. 해피를 찾았구나!

“해피! 네, 우리 해피 맞습니다.”

그 말을 듣고 농장 아저씨의 표정도

밝아졌데. 왜냐면 해피가 농장의 닭 40

마리를 해체시켜놨거든. 그냥 닭도 아

니고 뭐 한약재만 먹고 자란 닭이라나

뭐라나. 그래서 순심이, 덕만이, 해피 모

두 보신탕이 되어야만 했어. 셋 다 덩치

가 꽤 되는지라 변상하는 데 돈이 더 들

진 않았데. 이게 우리 대대에 개가 한 마

리도 없는 이유야.

우리 대대엔 슬픈 전설이 있어. 하지

만 난 전설 따윈 믿지 않아. (박솔)

슬픈 전설

뉴욕 속의 뉴욕

Page 15: 2014.09.15 제237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2014년 9월 15일 제237호(격주간)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경마: 우리의 말이 말이 되어 달린다는 말이우리는 사람을 참 쉽게 죽인다.

여기서 우리는 누구라도 될 수 있지만,

여기에서만큼은 소위 콘텐츠를 다루는

이들로 한정하기로 한다. 이를테면 11

화쯤에선 아빠를 죽이고 13화쯤에선 남

자주인공을 사경에 헤매게 만들 때 시

청률 추이가 가장 안정적이라는 걸 알

아낸 작가는 얼마든지 만년필촉을 들

어 남자주인공의 두 눈동자에 꽂아버릴

수 있다. 반대로 독자가 마음 붙일 대상

을 오리무중에 빠뜨리겠다는 비뚤어진

야심을 담아 등장인물의 매력을 전시하

자마자 죽여 버리는 경우도 있다. 이건

당연히 '불과 얼음의 노래'에 대한 얘기

다. 작가인 J. R. R. 마틴 본인으로선 주

인공들을 아슬아슬 살려두는 흥행 필승

법이 무람하게 적용되는 세태에 반기를

들 작정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과

적으로 무규칙 살해는 먹혀들었고 드라

마를 방영한 HBO는 쾌재를 불렀다. 이

런 사례들이 주는 교훈은 작품 속 인물

들을 결코 팔팔하게 내버려두면 안 된

다는 것이다. 반쯤 죽여 놓거나 죽인 척

하거나 아예 죽여 버리거나 셋 중 하나

는 해야 한다. 영화 <인셉션>을 이 관점

에서만 야만적으로 해체해보면, 크리스

토퍼 놀란이 욕심을 부려 이 셋을 작품

에 전부 적용해 작품내외적 가치를 얻

어낸 경우가 된다.

물론 가짜로 사람을 죽이는 게 무슨 큰

대수는 아니다. 대체로 가상과 현실 사

이는 지나치게 미끄럽고, 모니터 한 귀

퉁이가 깨져 캐릭터 그래픽이 현실의

테이블 위에 쪼르르 흘러내린 끝에 플

레이어 몰래 현실에서 암약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우린 심즈에서 남매

를 결혼시키려고 심혈을 기울이다가도

곧 애인의 연락에 전전긍긍하는 평범함

에 몰입할 수 있다. 한편, 소위 고급예

술을 하는 친구들이라면 가상의 생명체

를 죽여야 작품이 더 높은 차원(이란 게

있다면)으로 도약한다는 명분을 내세

울 수도 있다. 실례로 우리는 토마스 하

디의 <이름 없는 주드>에서 주드의 첫

째 아들이 주드의 동거녀가 낳은 이복

동생을 죽이고 자살하는 대목에 이르러

그 어린 것들이 영혼을 지옥에 자진납

세하게 만든 당시의 사회적 배경에 대

해 더 자세히 분노하게 된다. 헨리 제임

스의 <비둘기의 날개>는 또 어떤가. 자

신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했던 가난한 남

자 머튼의 속셈을 용서하며 부자상속녀

밀리가 죽음을 맞이할 때 우리는 굴절

된 연애가 신유형의 도덕 표본을 빚어

내는 광경을 절절하게 만끽한다. 그러

니까 잘만 죽이면 제대로만 죽이면 우

리는, 우리의 작품은 정말로 어딘가로

갈 수도 있다.

그런데 이게 정말로 그저 어디까지나

가상의 얘기에 불과할까?

우리는 처음부터 누굴 죽이려고 작품을

만들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누군

가를 살리기 위해서 작품을 만들지도

않는다. 뭐, 아주 가끔씩은 그렇기도 하

지만. 그러나 작품 자체가 합목적성을

띠는 대신 가냘픈 선의와 대의를 결집

시켜 간신히 호흡케 한 작품은 시간이

조금만 지나도 유치해진다. 어쩌면 사

람을 살리겠다는 각오 자체가 유치한

지도 모른다. 구원이라는 이상론이 허

황된 동화에 불과하기 때문일 수도 있

고 데즈카 오사무가 <블랙잭>에서 말한

“세계를 고치는 의사”가 의외로(!) 예

술가의 몫이 아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거나 유치한 느낌은 작품에서 척살

대상이고, 그래서 수많은 우리들은 차

라리 역방향, 즉 사람을 죽이는 길로 가

야겠다고 단순하게 결론을 내리게 되나

보다. 한 술 더 떠 우리는 사람을 팔팔하

게 내버려두면 안 된다는 황금률을 현

실에까지 그대로 적용한다. 그 대상은

주변인들이고, 구체적 방안은 앞서 얘

기했다시피 셋이나 있다. 반쯤 죽여 놓

거나 죽인 척 하거나 아예 죽여 버리거

나. 그래서 우리는 현실의 분노를 투사

할 샌드백으로 연인의 심장을 지정하고

건수를 잡았다 싶으면 사정없이 두들겨

팬다. 피카소만 호르몬과 교신하며 여

자를 먹어치우고 효용이 소진될 시점에

다다르면 웃으면서 다른 여자로 갈아치

운 건 아니다. 또 우리는 바쁘다는 이

유로 가족이나 친구들을 죽은 사람으로

치부한다. 절교는 결코 고흐만의 비밀

장기가 아니며 우린 귀 대신 손톱을 신

경질적으로 갉아 먹는다. 그리고 이조

차도 싫증이 나면 우리는 정말로 누군

가를 죽여 버리기도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우리를 죽인다.

물리적인 자살은 물론 이 테마를 굳건

히 장악해온 최중요 사안이다. 그리고

예종인이라면 누구나 외계를 똑바로 쳐

다보기에는 자신의 예술이 보잘 것 없

다는 이유로 세상을 등진 자를 가까이

두었거나 한 다리 건너 인지했던 기억

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지적하고

싶은 바는 보다 내면적인 차원에 근접

해있다. 인간은 다층적 존재다. 말하자

면, 내면에 무수한 칸이 수납돼있다는

얘기다. 우리가 빡빡한 현실의 법칙에

머리를 디밀고 한 칸 정도를 쓱싹 제거

한다고 해서 단숨에 발밑이 꺼져 고꾸

라져 죽지는 않는다. 어제까지는 영화

를 만들던 사람이 오늘은 슬쩍 고장 난

서랍을 내다버리듯이, 아니 더 적나라

하게 명시하자면 쓰레받기를 비우듯이

훌훌 털어버리고 간단히 학습지 회사에

취직할 수도 있다. 이렇게 자신의 일부

를 죽이는 과정엔 더 이상 막바지에 다

다른 젠가의 윤곽처럼 비틀거리는 비정

이 따르지 않는다. 사회에 책임을 물릴

수 있던 적기를 우리는 정치 냉소주의

로 어물쩍 지나쳐버렸고, 이제 이 판에

남느냐 마느냐는 적응과 도태라는 자연

의 선택으로만 남아버렸다.

나라고 해서 대단한 묘법을 갖고 있지

는 않다. 다만 예술에 발을 들이밀기 전

부터 인간애의 관점을 취해 인류로부터

한 단계 차원을 강등해 대상을 물색했

고 상호호혜적인 착취를 꿈꿨던 것도

같다고는 말할 수 있다. 내 손으로 누구

를 죽이지는 않고 아주 미미하게 타자

의 생명력을 흡입하며 빌붙어 지내는 길.

그건 바로 경마였다.

나는 경마를 시작한지 10년이 다 되어

가지만 단 한 번도 돈을 딴 적이 없다.

어쩌면 나는 내가 돈을 잃는 인간이라

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경마장에 가는

지도 모른다. 경마장에 가서 내가 하는

일은 별 게 없다. 버려진 예상지를 주워

서 다른 사람이 열심히 분석한 흔적을

따라 카드에 기입하고 흥이 나서 괜히

말 거는 아저씨들을 적당히 상대하다가

볼품없고 뚱뚱한 말들의 품세를 건성으

로 넘기며 죽은 말은 뛰지 못한다는 평

범한 진리를 새삼 시시하게 생각하고

다시 집에 돌아온다. 아저씨들은 내게

왜 혼자 경마를 하러 오느냐고 묻는다.

난 말이 달리는 걸 보러 온다고 답한

다. 그러면 기분이 상쾌해진다고. 사실

그게 본심은 아니었지만 10년쯤 똑같

은 대답을 하다보면 스스로 그렇게 믿

게 된다. 말들은 내 돈을 집어 삼키고 난

현실에서 내달릴 기운을 얻고 돌아간다

고. 어쩌면 나는 ‘말’이 달리는 것을 보

러 가는 게 아니라 그곳에서 여전히 ‘말

이 달린다’는 걸 확인하러 가는 것 같기

도 하다. 물론 말들은 늙고 병들고 트랙

너머에서 끝도 없이 숨진다. 그것은 가

상이 아니다. 그러나 경마는 계속된다.

그러니까 경마는 우리가 처한 모든 상

황을 빼닮은 작은 모형정원에 다름 아

니다. 온 우주가 우리를 무심히 지나치

듯이 말들이 죽어봐야 나와는 별 상관

이 없다. 그렇지만 그 별 상관없는 것

들을 보기 위해 나는 굳이 경마장으로

돌아온다. 나는 어쩌면 믿고 있는 것이

다. 내가 이런 식으로 계속 말들을 죽이

면, 정말 제대로 죽이면 어딘가로 갈 수

도 있을 거라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

는 말들을 참 쉽게 죽여 왔다. (전문영)

Page 16: 2014.09.15 제237호

한국예술종합학교 신문

‘일베’가 거리로 나왔다. 지난 6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유가족들 앞에

서 단식을 조롱하며 자유대학생연합 소

속 대학생들과 일베 회원 100여명이 ‘폭

식 투쟁’을 벌인 것이다. <한겨레>는 9

월 10일 치 신문 3면 ‘세월호 단식장서

폭식… 보수의 침묵이 부추긴 ‘일베의

일탈’’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이 사실

을 크게 다뤘다. 기사에 따르면, “개별

적 ‘인증놀이’ 수준에 그쳤던 일베 회원

들이 오프라인 공간에서 집단적으로 행

동한 첫번째 사례”라고 한다. 기사는 신

진욱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의 말을

빌려 “보수 정당과 언론이 이들의 일탈

행위에 침묵함으로써 이런 행태를 부추

긴다고 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거리로 나온 일베’를 논하기 전에 그

간 있었던 중요한 논란부터 몇 개 짚어

보자. 먼저 이들의 호남 혐오가 문제시

됐다. 전라도민을 ‘홍어’라고 비하하거

나, 5.18민주화운동에 북한의 사주가 있

었다고 주장하며 당시 희생자들이 입관

된 사진에 ‘홍어 택배’라는 설명을 붙인

일은 이미 유명하다. 동시에 이들은 전

두환을 복권하고, 김대중 전 대통령을 ‘절

뚝이 슨상님’ 등으로 칭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사거(死去)를 조롱하기도 한

다. 고인들에 대한 과도한 모욕이 문제

되자,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은 지

난해 5월 일베 사이트에 대한 운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검토하기도 했다. 이에

조국 서울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는 일베를 두고 “극우반인륜적 사상을

퍼뜨리고 역사와 사실을 조작하면서 사

회분열을 조장한다”며 민주당의 가처

분 신청을 지지했다.

당시 일베를 다루는 진보진영의 대

응은 분명 과도했던 측면이 있다. 먼저

5.18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다투는 문

제가 있다. 이는 사회적 토론을 거쳐 합

의할 일이지, 법적 조치를 통해 논의 자

체를 봉쇄해버릴 일은 아니다. 예컨대

5.18을 북조선이 사주했다는 주장은 극

우논객 조갑제 전 월간조선 대표가 이

미 논박했을 정도이니 더 얘기할 거리

는 아닌 것 같다. 5.18 희생자들에 대한

명예훼손 또한, 해당 사안에 맞는 형법

규정을 찾아 민사든 형사든 적절한 방

법으로 회원 개개인을 규제하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 사이트 자체에 대한 폐쇄

는 운영자들과 회원들의 권리를 과도하

게 침해한다. 과거사에 대한 증오발언

(hate speech)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해외 사례를 참고해 대의기구인 국회에

서 관련법을 제정하거나 사법부가 개

별 사안에 대한 판례를 확립하는 식으

로 일정한 절차를 지켜 규제하는 것이

맞다. 이 경우에도 본질적 권리는 침해

하지 않는 방법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하와 조

롱 문제가 남는다. 이 문제도 기본적으

로 표현의 자유를 인정하되 법적인 선

을 넘어서는 부분에 대해서만 처벌해야

한다고 본다. 정치인은 공적 인물이라는

특성상 어느 정도의 비난은 감수할 수

밖에 없고, 여기엔 형평성 문제도 있다.

이들의 비하와 조롱이 문제라면 이명박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세

간의 그것 또한 일일이 걸러내야 할 것

이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쥐명박이니

닥그네니 하면서 우리만 갖고 뭐라고

그러냐”는 일베 회원들의 항변은 충분

히 수긍할 수 있다. 다만 각자의 선택과

정치적 성향에 따라 이들과 상종하지

않거나 이들에게 침을 뱉을 수는 있다.

그렇게 사회의 뭇매를 맞으면서도 마

조히스트(피학성애자) 같은 태도로 비

난을 즐기던 일베가 드디어 거리로 나

왔다. 조금 의아한 부분이 있다. 본래 일

베는 ‘친목질’(인터넷 커뮤니티에서 회

원들이 사적으로 친해지는 것)을 금지

했다. 서로를 닉네임으로 부르지도 못

하게 했다. 운영자는 예전부터 “과도한

친목질은 커뮤니티를 망치는 주된 요

인”(공지 ‘닉 ㄴㄴ 친목질 ㄴㄴ’ 참조)

이라고 못박았다. 이번 일베의 ‘집단 행

동’이 친목질의 영역으로 포함될 수 있

는지, 또는 친목질로 발전할 여지가 있

는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회원들

의 이용 행태에 일정한 변화가 생긴 것

은 분명해 보인다.

이번 일베의 집단 행동에 대해 에스

엔에스(SNS)에서는 일본의 극우단체 ‘재

일특권을 용납하지 않는 시민 모임’(재

특회)를 다룬 책 <거리로 나온 넷우익>

의 저자 야스다 고이치의 말이 널리 회

자됐다; “(재특회를) 그냥 내버려두자

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내버려

뒀더니 어느새 거리로 뛰쳐나와 있었죠.

이것을 일본의 교훈이라고 생각했으면

합니다.” 그의 말은 극우 세력의 결집이

라는 면에서 일정 부분 새겨들을 가치

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좀 더 신중히 생각해 보자.

일베가 정말로 호들갑을 떨 만큼 새로

운 현상인가? 먼저 극우의 결집이라는

측면에서는 ‘가스통 할배’로 표상되는

국민행동본부 같은 사례가 있다. 보수

단체가 진보진영의 집회에 맞서 ‘맞불

집회’를 여는 것도 이제는 흔한 일이 되

었다. 사실 일베 정체성의 근간을 형성

하는 호남 비하나 여성혐오 또한 오랜

전통과 내력을 지닌 한국사회의 풍경이

아닌가? ‘이런 여자를 만나야 한다’는

식의 게시물이 ‘좋아요’를 수백, 수천개

씩 받으며 페이스북에 공유되는 모습은

일베의 그것과 그렇게 멀리 떨어져 있

지 않다. 일베는 사회문제의 원인이 아

니라 결과일 뿐이다.

어떤 이들은 일베가 드디어 ‘거리’로

나왔다는 데 적잖이 놀란 듯하다. 서두

에 언급한 <한겨레>의 편집을 보면 그

런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떤 현상을 부

정적으로 바라보거나 경각심을 가질 수

는 있다. 다만, 이러한 논의가 자칫 그들

의 권리 자체를 문제 삼는 것으로 이어

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그것이 불순한

집회이기 때문에 문제라고 말하는 순

간, 우리는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그것

은 우리의 권리를 위한 일이기도 하다.

일베를 통째로 악마화하며 그들의 권리

자체에 제약을 둬야 한다고 반사적으로

말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헌법에

대한 논의 자체를 금지했던 긴급조치

의 망령이 떠오른다. (선승범 편집국장)

‘일베’의 권리

학내 단신2014 트랜스 아카데미

한예종 트랜스아시아 영상문화연구소의

‘2014 트랜스 아카데미’가 9월 16일부

터 10월 28일까지 매주 화요일 마포아

트센터에서 개최된다. ‘파국 이후, 우

리라는 공동체:다큐 플러스’라는 주제

의 이번 강좌는 파국이 동시대 시각문

화에서 어떻게 표현되는지 검토한다. 9

월 16일에는 <레드 툼> 상영회 이후 구

자환 감독과 대화하는 시간이 마련되어

있다. 9월 23일에는 <원더풀 타운> 상영

회 이후 김소영의 ‘재난이 아닌 파국:이

미지와 사운드의 정치’ 강의가 있다. 9

월 30일에는 하승우의 ‘파국 이후의 풍

경:<투더지>, <늑대의 시간>’ 강의가 있

다. 10월 14일에는 김성욱의 ‘장 뤽 고

다르와 재앙의 몽타주’, 10월 21일에는

김정구의 ‘폐허 위의 사람들 그리고 카

메라:두하이빈의 <1428>과 중국 다큐멘

터리’ 강의가 있다. 10월 28일에는 유운

성의 ‘영화와 풍경의 지질학’ 강의가 있

다. 문의는 트랜스아시아영상문화연구

소(02-746-9570).

2014학년도 2학기

교학협의회 안건 모집

2014학년도 2학기 교학협의회가 개최

된다. 교학협의회란 학생회와 교수 대

표, 학교 본부가 모여 학생들의 불편이

나 건의를 수집하여 논의하는 회의로, 1

년에 2회 열린다. 2학기 교학협의회에

서는 1학기 교학협의회 결과를 토대로

학생들의 건의 사항이 잘 반영되었는지

에 대한 검토가 있을 예정이다. 총학생

회, 6개원 학생회에서는 재학생들을 대

상으로 9월 18일까지 교학협의회 안건

을 모집한다고 밝혔다. 교학협의회 안

건으로는 수업, 시설, 식당, 매점, 학생

자치 외 여러 비공식적인 각 원의 문제

들이 제출될 수 있으며 안건 제출자에

대한 익명 보장이 가능하다. 안건 제출

[email protected]으로.

2014년도 학생 체육대회 및

예술제 개최

9월 15일(월)을 시작으로 학생 체육대

회 및 가을 예술제가 개최된다. 체육대

회는 9월 15일(월) 10시부터 18시까지

석관동 캠퍼스 일대에서 진행되며, 예

술제는 9월 16일(화)부터 18일(목)까지

사흘 간 예술극장 앞을 중심으로 진행

될 예정이다.

행사 기간 중에는 셔틀버스 운행, 식당

운영, 차량 진입 등이 제한된다. 9월 15

일(월)에는 신이문역 셔틀버스 운행이

중지되며, 행사가 진행되는 4일 간 석관

동 식당은 석식을 제공하지 않는다. 9월

15일(월) 9시 30분부터 18시까지는 개

막식 및 체육대회 안전확보를 위해 본

부동으로의 차량 진입이 차단된다. 일

반차량은 미술원 별관지역으로 주차해

야 한다.

천장관 방역 소독 안내

천장관 기숙사에 방역 소독이 실시된

다. 9월 19일(금) 13시부터 16시까지 천

장관 내 각 호실 전체를 대상으로 살충,

살균 및 구서용 약품의 수동압축식분무

및 독이법이 병행될 예정이다. 기숙사

거주자들은 방역실시자들이 각 호실 내

에 출입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하며, 자

리를 비우더라도 문을 잠그지 않고 퇴

실하는 등 협조가 요구된다. 소독으로

인해 음식물이나 물품 등에 피해가 없도

록 미리 조치해두는 것이 좋다.

9월 교내 행사 안내

제16회 한국예술학과 학술대회가 오는

9월 25일(목) 10시부터 18시까지 석관

동 예술소극장에서 개최된다. 학술대회

는 한국예술학과 예술사/전문사 재학

생 12명의 주제발표 및 논평으로 구성

된다. K’arts 플랫폼 WHITE <마루콘

서트>는 교내의 역량 있는 학생들의 다

양한 작품을 공모 받아 창작활동을 지

원해주는 야외 상설공연으로, 클래식,

영화 음악, 전통예술 등의 다양한 공연

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루콘서트>는 9

월 12일(금)부터 9월 26일(금)까지 2주

간 공연전시센터에서 열린다.

서초동 크누아 홀에서는 타악기 앙상블

과 오르간 시리즈 공연이 계획되어 있

다. 오르간 시리즈는 재학생 창작 공연

과 바흐 탄생 300주년 오르간 연주회

로 구성된다. 타악기 앙상블은 9월 26

일(금) 19시 30분부터, 오르간 시리즈

는 9월 29일(월) 18시부터 크누아 홀에

서 진행된다.

편집국장 칼럼

발행인 김봉렬

주간교수 양승무

편집국장 선승범

편집 부국장 안가람

취재부장 오온유

취재부 권라임

취재부 김채운

취재부 권지혜

취재부 한지윤

문화부장 김수빈

문화부 강진수

사회부 성민규

사회부 권라임

학술·오피니언부장 박이현

사진부장 이주현

사진부 오병훈

사진부 이규호

편집부장 김형도

편집부 윤정빈

편집부 한지형

기자사령(9월 1일)

학술·오피니언부장 박이현

(영상원 영상이론과 12)

수습기자 성민규

(연극원 극작과 서사창작전공 14)

수습기자 권지혜

(연극원 연극학과 12)

수습기자 한지윤

(영상원 영화과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