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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A Story of Wall Street 추홍희

A Story of Wall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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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A Story of Wall Street

추홍희 저

2

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바틀비 스토리)

차례

I.1. “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A Story of Wall Street”

가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

어떻게 “바틀비”는 정치적 저항의 상징이 되었을까? 9

“바틀비 스토리”가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14

월 스트리트는 흡혈귀인가? 16

월 스트리트에서 교육이 강조되는 이유는? 17

I.2. 빌 게이츠가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는 모습을 언론이

대서특필하는 이유

빌 게이츠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악수하는 모습에

암시된 의미

21

미국식 문화인가? 24

신호 이론, 외연과 내포-associated connotations 26

빌 게이츠의 왼손과 비밀 27

언어의 역사성, 문화와 관습, 은유법과 관용어구 30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putting my hand in my

pocket”의 의미-(연상주의-근접성의 법칙)

31

“putting my hand in my pocket”의 의미-(원인 결과의

법칙)

32

“putting my hand in my pocket”의 의미-(상징적 의미) 34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35

빌 게이츠의 자선 단체 트러스트 구조 36

변화 발전의 조건-다양성의 차이와 자기 동일성의

유지

37

빌 게이츠의 의사 소통-외연과 내포 39

바르트의 의미 작용과 빌 게이츠 악수 사진의 의미

작용

41

빌 게이츠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모습과 암시 43

I.3.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 주해

서가 필요한가?

45

번역 Translation의 중요성 47

“바틀비 스토리” 영어 원문 읽기가 난해한 이유 48

법과 문화-언어의 의미와 표현 48

“ 황금률 ” 이란?-대안 alternative을 제시하는 새로운

이론

50

통합과 역동성의 가치에 대한 이해 53

3

II. “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 Street”

57

III.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 Street” 주해

1. 필연주의, 아담 스미스의 공감 개념

1.1. 아담 스미스의 공감 개념 168

1.2. 필연주의 입장에서 “바틀비 스토리” 해석 169

1.2.1. 반대자와의 공존이 필요한 이유 169

1.2.2. “바틀비 스토리”와 필연주의 해석 170

1.3. 필연주의 철학, 자유 의지와 니세시티 Necessity 176

1.3.1. 자유란 무엇을 말하는가? 176

1.3.2. 니세시티 Necessity란 무엇인가? 178

1.3.3.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180

1.3.4. 칼빈주의 Calvinism 운명예정설과의 차이점 180

1.3.5. 생존 명령 의무 이행과 비자발성 182

1.3.6. 자기 책임성과 사회 책임성 184

1.4. 프리스틀리는 누구인가? 185

2. 프라이밍 효과 Priming effect

2.1. 프라이밍 효과 187

2.2. 사고의 연상 이론-association of ideas 190

2.2.1. 결사의 자유가 중요한 까닭 190

2.2.2. 동업에 대한 인식 차이 192

2.3. 생각의 연결 고리 이론 194

3. 황금률 Golden Rule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3.1. 황금률의 의미 195

3.2. 상호주의와 일관성 원칙 197

3.3. 정언 명령 199

3.3.1. 가언 명령 199

3.3.2. 정의의 원칙과 우선적 적용 순서 200

3.3.3. 칸트의 정언 명령의 장점 201

3.3.4. 양심과 판단의 개념 202

3..4. 왜 황금률이라고 말하는가? 총체적, 2차적, 대안, 일

관성

203

3.5. “휴머니즘 종교”-“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 206

3.5.1. 조지 엘리어트의 “휴머니즘 종교” 206

3.5.2.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 207

3.5.3. 휴머니즘의 신조 209

4. 자선 charity은 무엇인가?

4.1. 영미국인의 기부와 자선의 전통 212

4.2. “믿음 소망 사랑”의 새로운 번역-KJB 212

4

4.3. 왜 미국의 최고 갑부들은 재산을 기부하는 걸까? 224

4.4. 신중함의 가치와 보수성의 가치-아담 스미스 227

4.4.1. 삶의 지혜의 원칙 227

4.4.2. 신중함의 가치, 보수성의 원칙 228

4.4.3. 경솔함의 비싼 대가 229

4.5. 동기 motive의 중요성 230

5. 왜 죽음을 금기시 taboo 하는가?

5.1. 죽음의 의미 234

5.2. 미네르바의 부엉이 236

5.3. 플로지스톤(불꽃) 이론의 탄생과 종언 238

5.4. 데드 레터 dead letter, 블랙 레터 black letter 240

5.5. 신성 숭배와 신성 모독의 경계 241

6. 보험 약관 소송 사례, 불법행위 책임론

6.1.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감 243

6.2. 언어의 빠른 전파성 244

6.3. 언어의 혼란과 사회 혼란의 상관 관계 245

6.4. 언어의 의미와 보험 약관 소송 사례 246

6.5. 사망 원인-불법행위 책임론의 발전 249

6.6. 구두 증거 배제 원칙 Parol evidence rule 252

6.7. “악마의 맷돌 Satanic Mills”–“악마의 공장” 254

6.8. Bar의 의미 257

6.9. WALL 차단벽-사적 공간과 공적 교류의 의미 259

6.11. 단어의 의미와 문장 구조 262

7. 통합적 해석 Synthesis이란 무엇인가?

통합적 법률해석 Synthesis 264

8. 살인죄의 고의 입증과 정신이상의 항변 사유

8.1. 아담스 살인 사건 재판 경과 과정 276

8.2. 정신이상의 항변 사유-“믹노텐 원칙” 277

9. 직업과 이름, 외연과 내포, 의미 작용

9.1. 등장 인물의 이름에 내포된 상징적 의미 280

9.2. Scrivener 직업에 대하여 288

10. 바르트의 기호학과 의미 작용

10.1. 기표, 기의, 의미 작용 293

10.2. 디노테이션과 코노테이션 294

10.3. 사진의 의미작용 295

10.4. 빌 게이츠 사진의 의미 작용 296

10.5. 문장 부호를 이용한 표현 기법 297

10.5.1. 문장 부호의 쓰임새 297

10.5.2. 합성과 진화 299

10.5.3. 키케로와 모방 복제 300

11.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

11.1. 차이와 변화-진화의 조건 302

5

11.2. “가이 팍스 데이”의 유래 303

11.3. 의미의 이중성과 경계선 305

11.4. 왜 가면을 쓰는가? 306

11.5. 로마 마리우스 군개혁과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 309

12.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이론

12.1 통제와 규율 사회, 파놉티콘 모형 314

12.2 시대 변화 신사고 새로운 방법론 316

12.3. 다윈의 비글호 탐사 항해- 하나님의 사명과 자연법

317

13. 키케로와 “키케로 추종자”에 대한 비판

13.1. 키케로는 “완벽한 법조인”의 롤 모델인가? 321

13.2. “완벽한 정치인”의 모델은 실재하는가? 323

13.3. “Caveat emptor 케비어트 엠토”이란 무엇인가? 324

13.4. “침묵은 금 silence is golden”인가? 328

13.5. 키케로 “의무론”-단기적 이익 vs 장기적 이익 332

14. 참고 문헌 338

6

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바틀비 스토리)

1. “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A Story of Wall Street (바틀비 스토리)”가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

어떻게 바틀비는 정치적 저항의 상징이 되었을까?

‘월 스트리트 Wall Street’는 ‘전세계적으로 알려진 부의 상징 global symbol of wealth’이다. 그런데 왜 ‘월

스트리트’에서 ‘시위’가 벌어지는가? 2011년 9월 뉴욕에서 시위군중들이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 Occupy

Wall Street!”는 구호를 내걸고 가두시위를 벌였고, 이들은 “가이 팍스 가면 Guy Fawkes mask”을 썼다.1 가

이 팍스 가면은 하얀 얼굴에 검은 먹으로 일그러진 눈썹에다 팔자 콧수염과 일자 턱수염을 특징으로 하는

데 경계의 표정에다 꽉 다문 입가에 알듯말듯한 미묘한 미소를 머금은 듯한 캐리커쳐에서 무언가 숨어 있

는 듯 이중성의 의미가 느껴진다.2 이 가면은 가이 팍스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V For Vendetta”가 2006

년 상업적 성공을 거두면서 널리 알려졌고, 2008년 “금융 위기” 발발 이후 월 스트리트에서의 산발적인 시

위를 벌일 때 사용되다가, 2011년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의 가두 시위, 2013년 전세계 450여 개 도심

시위에서 계속 쓰여지면서 정치적 상징성을 더해가고 있다.

OWS 시위 (2011) OWS 시위 (2011) A M 시위 (2013)

영화 (2006) 책 (1989) 만화 (1988)

MMM (2014) Anti-Rent (1844) 가이 팍스 (1605)

1 “The corrupt fear us. The honest support us. The heroic join us.” http://www.reuters.com/article/2011/11/02/us-usa-wallstreet-

protests-money-idUSTRE7A12DY20111102. 2 사람들은 생존, 적응, 재창조의 과정을 이어가는데 이 과정에서 자기 필요에 따라 실제 자신의 모습을 가리우는 가

면을 쓴 채 말하고 행동할 때가 있다. ‘집단 무의식 Collective Unconscious’의 정신분석학적 개념을 제시한 융 Jung

(1875-1961)은 사람들은 천 개의 ‘페르소나(가면)’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융의 성격 유형 이론에 따르면, 퍼스낼리

티(개성화)란 개인의 의식이 다른 사람의 생각으로부터 분리되고 차이를 갖게 되는 과정을 말하고, 자아란 자기의 감

각기관으로 받아들인 것에서 의식적으로 선택적인 결과로 자기 견해를 형성한다. 페르소나는 자아의 가면으로써 개

인이 외부 세계에 내보이는 이미지를 말하는데 이것은 개인이 사회적인 요구에 대한 반응으로써 사회적인 모습을 반

영하고 있다. 페르소나에 의해 싫은 사람까지도 관용하면서 융화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사회적 기대와 요구에 지

나치게 경도되면 자아가 자신의 내면으로부터 유리될 위험이 있으므로 자아와 페르소나는 긴장관계에 있기도 하다.

법에 있어서 가면 “Legal Mask”의 역할에 대해서는 Noonan, “Person and Masks of the Law” (1976).

7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의 가두 시위가 일어난 배경으로는 부가 상위 1%층에게 집중되고 나머지 99%

는 생존 투쟁의 상황으로 내몰리며 극심해진 빈부격차, 정치 부패, 정부 정책에 대한 재계의 입김 강화

현상 등을 꼽을 수 있다.3 그런데 여기의 시위 참가자들은 단지 외양적으로 보이는 것처럼 “99%”에 속하

는 사람들일까? 이러한 사건의 움직임을 뒤에서 조종하는 배후세력은 없을까? 이 세상에서 진실은 외

양적인 장식으로 가려져 있고, 배후세력은 바다 밑에 흐르는 거대한 조류와 같이 장막 뒤에 숨어서 거대

한 사건을 일으키는 경우가 흔하다.45 또 일이 터지고 나면 진실을 호도하는 경우가 있는데 예컨대 보수

주의자들은 국가 빈곤의 문제를 ‘부패’ 탓으로 돌리는 경향이 크다.6 하지만 자본주의의 구조적인 문제점

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국가가 행동 개시를 to launch an initiative 필연적으로 요구할 때가 있다.7 왜 영국

정치계에서 오늘날까지 “가이 팍스 사건”을 기념하고 있고 또 영미국에서 가이 팍스 불꽃놀이가 전통문화

로 이어 내려 오는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인식한다면 자본주의의 작동 구조와 그 진실을 이해하리라.

이제 가이 팍스 가면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거의 없겠지만8 바틀비 Bartleby가 월 스트리트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 같다. 금융인이나 법조인이라

면 바틀비의 정체를 모르고서는 월 스트리트 전문가로서 자신을 소개하기는 힘들 것이다.9 바틀비는 누

구인가? 바틀비는 “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 Street” (이하 “바틀비

스토리”라 줄인다)의 등장인물이다.10 “바틀비 스토리”는 “1%”에 해당하는 월 스트리트 변호사와 “99%”에

해당하는 임금 노동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여기에서 바틀비는 “I am occupied.”라는 말을

사용하면서 액면 그대로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지 않을 수 없었던 최초의 저항인으로 그려진다.11 바틀비

의 정체는 누구이고 왜 바틀비의 존재가 오늘날 다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의 대상이 되었을까?12

3 http://en.wikipedia.org/wiki/Occupy_Wall_Street#cite_note-9.

4 http://www.nytimes.com/2011/08/29/technology/masked-anonymous-protesters-aid-time-warners-profits.html. 가이 팍스 가면이

1년에 십만여 개가 팔린다고 하는데 가이 팍스 가면의 저작권은 영화를 제작한 타임 워너 회사가 보유하고 있다. 따

라서 대기업 회사의 우월적 지배에 분노를 제기하고자 가이 팍스 가면을 쓰고 가두시위에 참가하는 사람들은 결과적

으로 대기업의 매출액 성장에 기여를 하고 마는 역설적인 상황이 된다. 남미 군사 정권에 대항하여 반체제의 상징적

인물이 되었던 체 게바라의 이미지를 상품화한 경우와 마찬가지로 원래의 의도와는 다른 결과가 나타나게 된다. 보

드리야르의 주장대로, 문화도 경제에 편입 종속되고 만 것이다.

5 ‘무정부주의자’를 그리는 소설이나 영화의 주된 고객 대상은 젊은 층이다. 하지만 무정부주의자들의 견해가 역사상

성공한 예는 한 번도 없었다. 그리고 대개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직접적으로 생존 투쟁의 위협을 받는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대개 젊은이들은 부모에 의해서 생존이 보호되고 있다) 그들의 분노는 시간이 가면 달라지게 된다. 1960-70

년대 ‘우드스탁’ 히피 세대의 반전문화가 그러했듯이.

6 “Blame poverty on corruption.” 남미 국가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식민지를 강탈한 외부 세력이 개입한 구조적인 문제

임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인 일탈의 문제로 치부해 버린다면 근원적인 해결책을 강구해내기가 힘들 것이다. 7 대공황을 겪고 난 뒤 정부는 파국을 피하기 위해서 상황에 이끌려 가기보다는 선제적인 공격 preemptive strike으로

써 미리 대응 수단을 강구하기도 한다. 8 “The Guy Fawkes mask has now become a common brand and a convenient placard to use in protest against tyranny.”;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058020/How-Guy-Fawkes-masks-symbol-anti-greed-protests-globe.html “It’s a ‘ubiquitous

image’ now: in pictures from Occupy Wall Street, the Arab Spring, …” 9 “바틀비 산업 Bartleby Industry”이라고 칭할 만큼 “바틀비 스토리”에 관한 수많은 연구 논문들이 있다. 참고문헌 리스

트를 참조하라. “The Bartleby story is a favorite in Law and Literature courses for reasons that defy complete explanation.” 10 Herman Melville (1819–1891),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 Vol.I. Nov 1853, 546–557; Vol.II. Dec 1853, 609–

615, Putnam’s Monthly, New York, G. P. Putnam & Co. 11

바틀비를 소로우 Thoreau로 해석하는 글은 Oliver, E., "A Second Look at Bartleby." College English 6 (1945), 431-439;

Parker, H., "Melville's Satire of Emerson and Thoreau: An Evaluation of the Evidence." American Transcendental Quarterly 7 (1970),

61-67.

12 빈곤과 경제적 불평등의 문제는 오늘날 세계 각국의 상황을 볼 때 해결은 커녕 오히려 더욱 심각해진 측면이 강하

8

왜 저항을 두려워하는가?

월 스트리트를 움직이는 두 개의 힘은 탐욕과 공포라고 말한다.13 사람의 행위를 불러오는 동기는 탐욕뿐

만 아니라 공포와 두려움에 있기도 하다. 국가적으로 본다면 자유주의는 개인의 삶에 대한 국가의 강제

적 개입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시작되었고, 사회주의는 국가의 강제적 개입에 대한 희망을 가졌다. 14

정부가 사람들을 스크린하고, 가림막을 치고, 담을 쌓고, 사람과 사람 사이를 격리시키고자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바틀비 스토리”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이 그 이유를 설명해 준다. “내가 그와 접촉하게 되면

서 내 사고 방식이 이미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내 몸이 오싹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

한 어떤 탈선의 징후가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이 들자 나는 뭔가 즉결 조치를 재빨리 취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언어와 사상과 정보는 전염병같이 순식간에 퍼져 나갈 수

있고,15 파급 효과가 크기 때문에 미리 “차단하는 walled” 것이다.16 카오스 이론의 “나비 효과” 17가 말해

주듯 미시적인 작은 변화가 거시적 차원의 엄청난 사건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두려움을 갖는다.

“바틀비 스토리”가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월 스트리트는 미국의 심장부

다. 사회적 문화적 자원을 사용하지 못하는 새로운 하층민이 등장한 반면 극소수층에게 부의 쏠림이 심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분배 reditribution”와 “인정 recognition”의 정의론 정치학 담론을 참조하라. 13 “Wall Street is an avenue of avarice, where speculators feed on fear and greed.” Scheibe K, “The Drama of Everyday Life”, HUP,

2000, at 84-100.

14 ‘두려움’에 대해서는 노직의 “최소개입국가론 the minimal state theory”과 “소유권 이론 entitlement theory”을 참조하

라. “아나키, 국가, 유토피아” (1974). ‘희망’에 대해서는 보다 광범위한 국가 개입의 필요성과 정당성 주장한 “페비안

협회”를 참조하라. (Pease, “The History of the Fabian Society”, 1916.)

15 오늘날 교류의 시대에서 중세 시대의 성안에서의 격리된 삶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그럼애도 불구하고 오르

지 못할 만큼 담벽을 높게 쌓는다고 해서 완벽한 차단을 할 수 있을까? “만리장성”이 무너졌고, 인종차별의 벽이 무

너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높고 두꺼운 벽을 설치함으로써 인간의 이동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다. 이동성은 인간 본성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담벼락 wall을 쌓고 한 곳에 정주하는 지역성을 갖

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모든 성에는 안팎으로 통하는 길 즉 상호 교류가 존재한다. 성안에서의 지역적 폐쇄성으로

인해서 통일성과 일반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과 상호 교류가 통일성과 일반성을 유지하는 조건이다. 이것은

역설적 모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개방 체제의 본질적 효과에 속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16 보드리야르 Baudrillard에 따르면 현대 사회는 모델과 코드 미디어와 정보가 지배하는 사회이다. 실재 자체가 사라

져 가는 초실재 시대에는 시뮬라크르-hyper reality가 지배한다. “실재가 기호들로 대체되는” 즉 기호와 이미지를 통해

광고 뉴스 영상 상품 이런 것들을 생산해 내는 네트워크 또는 가상현실의 모습을 말해 주는 시뮬라시옹의 세계이다.

그것은 “흉내 낼 대상이 없는 이미지이며, 이 원본 없는 이미지가 그 자체로서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이 이미지에

의해서 지배받게 되므로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다. 이러한 보드리야르의 시뮬라시옹 simulation 개념으

로 보면, 시뮬라시옹의 세계는 자신의 가상성이 폭로되는 위험을 지속적으로 저지 차단하려고 한다.

17 마치 거미줄처럼 서로 연결된 글로벌 경제에서는 “나비 효과 Butterfly Effect”라고 부르는 연쇄 파장 효과의 결과를

미리 점치기란 매우 어려운 문제이다. 나비를 움직이게 하는 원인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람이라는 ‘외생 변수’다.

바람은 나비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지만 나비의 움직임은 바람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카오스 이론을 개척

한 미국의 기상학자 로렌츠의 1961년 세미나 발표 논문 “브라질에 있는 한 나비의 날개 짓이 미국 텍사스주에 발생

한 폭풍의 원인이 될 수 있을까?”을 상기해 보자. 로렌츠는 1961년 컴퓨터에 숫자를 입력하던 중 아주 미세한

0.000127이라는 숫자 하나가 계산결과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단순하게 0.506127 대신 0.506을

입력했다. 그러나 실제 계산 결과는, 애초의 생각과는 다르게, 처음의 아주 미세한 차이가 전체적으로는 엄청난 차이

를 낳는 결과를 가져왔다.

9

월 스트리트는 뉴욕의 현실적인 거리 이름이자 ‘부의 상징’이다. 아담 스미스가 밝힌 대로 자본력이 곧

권력이라면 월 스트리트는 세계를 제패한 미국의 얼굴이고 심장부에 해당한다. 영어와 판례법을 공유하

는 영미인이 대영제국과 팍스 아메리카나를 건설하였다.18 영미국이 세계를 호령하는 힘과 근원은 무엇이

고 또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세계 최고의 번영과 발전을 이룬 영미인의 원형 prototype은 찾아질 수

있을까? 19 “바틀비 스토리”는 월 스트리트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관계 relationship’와 자본주의에

필연적으로 수반된 문제들을 다루고 있으며,20 개별화된 존재가 아니라 타자와의 상호관계를 통한 인식의

문제는 보편성을 확보하고 있어 국가와 민족과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받

고 있고 또 학교와 대학에서 가르치고 배우지 않겠는가?21 이 책을 읽고 나면, 행간의 의미를 파고들며

진리를 탐구하는 학생과 일반인 독자는 물론 언론계 금융계 학계 법조계 정치권부의 관심 있는 전문가들

은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국부론”, 투키디데스의 “역사”, 홉스의 “리바이던”, 로크의 “사회계약론”, 다

윈의 “진화론” 등의 지식과 정보를 재음미하고, 워렌 버핏과 빌 게이츠의 독서목록22에 까지 관심을 가질

것으로 기대된다.

월 스트리트는 흡혈귀인가?

“돈이란 새로운 형태의 노예 제도이다. 누구나 상관없이 몰인격화하고 노예 관계에서 해방되게 만든다는

점에서 단지 다를 뿐이다.”23 이 말은 톨스토이가 “위조 지폐”에서 내린 분석적 결론이다. 월 스트리트 증

권 회사 골드만 삭스를 두고서 “사람들의 피 같은 돈을 빨아먹는 흡혈귀”라고 비난하는데, 과연 월 스트리

18 언어는 문화적 소산이다. “Languages are human creations.” 언어의 다양성이라는 특성이 그것을 분명하게 말해준다.

그리고 법 그 자체가 언어와 문화적 산물이다. 사람의 언어 사용은 사람의 생각, 감정, 신념에 영향을 준다.

http://www.wsj.com/articles/SB10001424052748703467304575383131592767868. 19

“인간은 시대나 장소를 초월해서 비슷한 점이 정말로 많다. 역사를 탐구해 보면 이런 주장이 새롭다거나 이상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역사의 효용가치 중에 첫 번째는 인간의 변하지 않는 보편적인 본성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역사는 온갖 다양한 상황과 환경 속에서 나오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또 우리 자신을 관찰해 볼

수 있는 그리하여 인간의 행동과 행위를 규칙적으로 불러오는 원천이 무엇인지를 알아내는 자료들을 제공해 주기 때

문이다. 전쟁, 음모, 파벌, 혁명 등에 관한 역사기록들은 다수의 실험 표본을 모아 놓은 것과 같아서 이를 통해서 정

치가나 인문사회학자들은 자기의 이론을 세울 수 있는데, 이것은 마치 의사나 과학자들이 식물과 광물 기타 외부 물

체들의 실험 표본을 통해서 그것들의 본질을 알아 내는 과정과 흡사하다.” (Hume, “An Enquir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The Harvard Classics (1909–14), “Of Liberty and Necessity”.) 20

개인은 그가 속한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백지상태에서 혼자만의 삶을 설계할 수 없다.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

에 표류하고 난 뒤 거기에도 다른 사람들이 곧 찾아오게 된다. 이야기 narrative란 타인과 결부된 사건을 말하고 이

야기는 상대방에게 해석된다는 특성이 존재한다. 21

“오래 전의 역사를 거슬러, 인문학과 과학에 관하여 미숙하나마 최초로 이론을 형성했던 원시적 형태의 인간 사회

를 관찰하는 것보다 마음을 더 기쁘게 하는 것이 사실 어디 있겠는가? 통치술, 점진적으로 세련되어지는 전달의 기

술, 보다 완벽한 모습으로 발전해 가는 인간의 삶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알아내는 것보다 마음을 더 즐겁게 하는 것

이 사실 어디 있겠는가? 가장 번영했던 제국들의 탄생, 발전, 쇠퇴, 멸망의 흔적을 추적해 보고 어떤 요인들이 제국

의 융성을 가져왔고 또 어떤 요인들이 제국의 몰락을 가져왔는지를 평가해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간단히 말해서, 전체 인류의 삶을 그 시초부터 있는 그대로 오늘날에 되살려 재평가해 보는 것 즉 당

대의 구경꾼들의 판단을 크게 혼란시켰던 모든 가식들을 제거해 버리고 난 뒤 나타나는 진정한 인간의 본 모습을 알

아내는 것보다 더 멋지고 더 다양하고 더 흥미로운 일이 다른 어떤 곳에 있다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오감을 통해

서든 아니면 상상력을 통해서든 이보다 더한 즐거움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Hume, “Of The Study Of History”

in “Essays and Treatises on several subjects” (1758). 22 http://www.gatesnotes.com/Books. 23 “Money is a new form of slavery, which differs from the old only in being impersonal, and in freeing people from all the human

relations of the sl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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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는 “돈 냄새가 나는 곳이라면 어디에라도 달려가 무자비하게 빨대를 꼽아대며, 사람의 얼굴을 문어발로

감싸 질식하게 만드는 흡혈마귀인가?” 24 혹시 이런 견해에 동조한다면 마치 가이 팍스 ‘가면’을 실제의

인물로 착각하는 것에 다름 아닐 것이다. 흔히 우리나라에는 “존경 받는 부자”가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왜 영미국에선 존경 받은 부자들이 많은가? 그 이유는 세계 최고의 부를 이룬 카네기, 게이츠, 버핏 등

월 스트리트의 기라성 같은 인물들이 “공동체 전체의 이익 interest of the community as a whole”을 위한 자선

charity과 교육 education사업을 펼치기 때문이 아닌가? 왜 영미국은 다른 나라들과 차이가 나는 것일까?

그 이유와 원천을 탐구하는 일은 누구에게나 흥미롭고 의미있는 작업이리라.

교육의 중요성

세상에 살아가는 현실의 사람들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어 판단을 그르치고 실수를 할 가능성이 크다. “현

실의 실제 사람들은 그런 실수를 “반복적으로 systematically” 하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서

그러한 실수를 줄이고 잘못을 고칠 수 있다.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서 능력과 희망을 배양한다. 교육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내가 나의 잘못을 시정하는 그 ‘결과’에 있다. 남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는 ‘kind’

의 의미는 남이 나의 잘못을 꾸짖을 때 내가 화내지 않고 책망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관용’적이고 ‘열린

태도’를 말한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남에게 공감하여 그대로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키워갈 수 있

다.25

언어는 단순하지 않고 많은 뜻을 함축하고 있다. (Semantic Pluralism). “바틀비 스토리”에서 거론되고 있

는 소재들을 그 속에 들어 있는 교육 철학 역사 법학 신학적인 의미를 깊이 파고들면 서로 촘촘히 연결되

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 거론되거나 암시하고 있는 역사적 사건들도 홀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한

줄에 꿰 매달아 놓은 옥구슬같이 고리로 연결되어 있고, 역사적 인물들의 사상과 사건은 실줄 날줄로 짜

여 있어 월 스트리트의 발전과 번영의 조건이 무엇인지 그 속뜻을 시사해 주고 있다. (연상주의 생각의 연

쇄 이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III부 2장을 참조하라.)

월 스트리트에서 교육이 강조되는 이유는?

리야드는 “행복 경제학”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인간 사회는 다람쥐 쳇바퀴 돌기에 비유할 수 있다.

제로-섬 게임과 비슷하다. 한 사람이 올라가면 다른 한 사람은 내려와야 한다. 뒤처진 패배자는 세금 정

책으로 배려할 수 밖에 없다. 또 적자생존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교육’을 통해 가르쳐야 한다. 교육

으로써 개인주의를 완화시킬 수가 있다. 이것은 아담 스미스가 공교육을 강조한 것과 맥이 닿는다.” 아

담 스미스는 자본주의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인간은

자기이익 추구의 이기심을 크게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육을 통해서 순화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월 스트

리트는 조사 연구 기관을 많이 거느리고 있는데 이들은 조사 연구 결과를 통해서 여론 조성 과정에 관여

하고 신문 방송의 뉴스 기사를 통해 헤게모니 장악에 일정 역할을 담당한다. 시카고 학파가 당시 주류를

24 “great vampire squidwrapped around the face of humanity, relentlessly jamming its blood funnel into anything that smells like

money." http://www.rollingstone.com/politics/news/the-great-american-bubble-machine-20100405. 25

사도 바울은 열린 마음의 자세와 태도를 가르쳤다. ‘kind’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다른 성경 구절을 보면 ‘kind’의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더욱 확실하게 이해가 된다. “Let the righteous smite me; it shall be a kindness: and let him reprove

me; it shall be an excellent oil, which shall not break my head: for yet my prayer also shall be in their calamities. 의로운 사람들이

내가 뉘우치도록 책망하면 그것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가 나를 비판하고 꾸짖으면 그것은 내 머리 속

의 윤활유가 되는 것이지, 결코 내 머리를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아무튼 내가 또 원하는 것은 나쁜 사람

들은 재앙을 당하고 만다는 사실이니 그것을 꼭 보여 주길 바랍니다.” (시편 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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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성하고 있던 케인즈 경제학을 비판하면서 경제학의 주류로 올라서게 되는 과정을 살펴 보면 신문 방송

언론의 활용과 대중 교육 강연 등 치밀하고 오랜 인고의 노력을 필요로 하였다. ‘로마는 하루 아침에 이

루어지지 않았다’는 역사가 보여주는 것처럼 국가와 사람을 변화시키는 데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

하다.

분업이 진행된 복잡한 경제에서 노동자의 지식 습득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였던 아담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자본주의의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인 ‘노동 분업’의 결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진솔하게

서술하였다. “노동의 분업이 진행되면 대다수가 노동으로 살아가게 되는데 대다수의 노동자들은 매우 간

단한 몇 가지 작업에만 매달리게 된다. 사람들의 지식은 그들 각자의 통상적인 직업에 의해 형성된다.

아주 간단한 작업을 하는 일에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거의 전부가 대개는 지식을 습득할 시간이 없다.

따라서 습득할 노력을 하지 않고 인간들이 그렇듯이 대체로 어리석고 무지하게 되어버린다.”26

정신적 나태와 육체적 타락은 이성적인 토론을 불가능하게 만들고, 사회적 참여의 기쁨과 의무를 느끼지

못하게 하며, 나라를 부름을 받은 국방 의무와 같은 큰 국가적 문제를 판단하는데 어려움을 겪게 만든다.

자기 직업에 뛰어난 기술을 습득하는 것은 지적, 사회적, 국가적 가치를 희생함으로써 얻어진다. 이러한

상황을 더 악화되지 않게 해야 하는데 아담 스미스는 다음을 강조한다. 진보된 문명사회에서, 정부가 나

서서 막아주지 않는 한 대부분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그러한 상황에 빠져들고 만다. 사회가 상업화되어

감에 따라서 개인이 원자화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마르크스는 사유권의 폐지와 공산주의 건설을 주창한

반면 스미스는 공교육의 역할에 대한 믿음을 가졌다.27

미국의 경제학자 갈브레이드는 인간이 참된 풍요로운 생활을 누리려면 교육을 통해서 잘못된 경제학의 통

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설파했다. “사람들이 더 많은 물건을 소비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

다. 사람들의 소비는 ‘의존 효과’에 의해서 생겨나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자각을 통해서 잘못된 경제 문제

를 해결해 갈 수 있을 것이라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바틀비 스토리”의 작가 멜빌 Melville은 “멜빌 산업”이라고 일컬어질 만큼 많은 사람들이 논하고 있는 미

국의 대문호다.28 그의 작품에 대한 개괄적 이해는 다음과 같은 사이트에서 얻을 수 있다.29 멜빌에 관련

된 박사학위 논문만 해도 1980년까지 531편에 이르러 그 후로부터는 더 이상 집계하지 않는다고 말하니

지금쯤은 그 수가 얼마나 많을 지에 대해서는 가히 짐작도 하기 어려울 것 같다.30 연구 논문 제공 사이

트인 “Jstor”에서 “Bartleby the scrivener”를 검색해 보면 관련 연구논문이 삼백여 편이 넘는 방대한 분량에

이르러 그것을 다 읽는다는 것은 거의 힘들고, 따라서 자신의 원하는 연구 분야와 방향에 따라 세부 검색

조건을 추가해야 한다.31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32은 차치하고서, 대학과 학교에서 크게 논의되는 대상

26 Smith, “The Wealth of Nations”, (1981), 781-782. 27

McMahon, “Happiness: A History” (2006). 28 The Melville industry is scarily bulky.”, “Melville has become the American Shakespeare”, http://observer.com/2000/06/another-

brief-and-daring-bio-teasing-tangled-melville-yarn/. 29 http://www.melville.org/melville.htm; http://www.online-literature.com/melville/; http://melvilliana.blogspot.kr/. 30 각주 28.

31 “바틀비 산업 Bartleby Industry”이라고 칭할 만큼 “바틀비 스토리”에 관한 연구 논문들이 수없이 많이 나와 있다.

참고문헌을 참조하라. 그 가운데 좋은 내용을 담고 있는 다음의 책을 추천한다. Inge, M., “Bartleby the Inscrutable: A

Collection of Commentary on Herman Melville's Tale ‘Bartleby the Scrivener’”, Archon Books, 1979; Newman, L., “A Reader's Guide

to the Short Stories of Herman Melville”, Thorndike Press, 1986; McCall, D., “The Silence of Bartleby”, CUP, 1989. 32 그람시의 ‘헤게모니’ 개념은 지배계급이 대중들의 자발적인 동의를 통해 지배 질서를 지속 유지하게 만드는 과정을

설명해 준다. 헤게모니는 고정적이고 불변적인 것이 아니다. 지배계급은 대중들의 동의와 순응을 통한 통제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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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나름대로 그 이유가 충분히 있다.

서 교묘하게 언어나 제도 기관을 이용하여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를 더욱 공고화하거나 끊임없는 조작을 시도하기도

한다. 이리하여 대중들은 불평등하고 억압을 받고 있는 기존의 지배 질서를 무의식적으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

다. 한편 체제 내부가 취약한 곳에서 대중은 돌발적으로 사회를 전복시킬 수도 있는 힘을 지니고 있어 (식민지에서

의 항거가 그 예) 무력과 억압적인 통치에 의존하는 것만으로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지배

계급은 교육과 문화적인 헤게모니 과정을 통해 지배 질서를 대중들이 암묵적으로 수용하게 만드는 소프트 전략을 취

한다. 푸코가 밝힌 대로, 학교 또한 권력을 행사하는 제도적 기관이고 지배 권력 구조에 의해 움직인다. 사람들은

지배 권력에 순응하지 하지 않으면 지배적 질서 체제에 편입될 기회가 박탈되고 만다. 예를 들어서 의사, 변호사, 기

술사 등 전문직업군은 전문대학원을 졸업하지 않으면 전문가로서의 직업을 가질 수가 없게 되어 있다. 전문가로써

직업을 가지려는 젊은이들에게 권력을 직접적으로 행사하는 사람은 대학의 교수들이지, 전통적인 정치 권력 개념으로

써 장관이나 의원들이 아니다. 학교 선생들은 미래 세대의 순응 구조를 길러내고 유지해가려는 지배 권력에 봉사하

는 역할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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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빌 게이츠가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는 모습을 언론에서 대서특필하는 이유

빌 게이츠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악수하는 것에서 암시된 의미

‘악수 handshake’는 인종과 언어를 달리해도 서로 통하는 세계 만국의 공통어라고 말한다.33 그런데 악수

에도 결례가 있는 것일까? 한국의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세계 최고의 재산가인 빌 게이츠를 면담했고, 그

다음날 일간신문 1면 머리 기사로 빌 게이츠가 대통령과 악수를 하면서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로

한 손으로 악수를 나눈 사진이 실렸다. 사진과 같이 빌 게이츠가 양복 상의 단추를 풀고 왼손을 바지 호

주머니에 넣은 채 한 손으로 대통령과 악수를 나눈 모습을 두고서 많은 사람들이 왈가왈부하고 악수 논란

the handshake furore이 일어났다.34 인터넷 뉴스 기사에 달린 댓글이 1600개 이상을 넘었음을 볼 때 국민

적 관심도가 무척 높았다는 것은 사실이다.35 빌 게이츠는 2008년 청와대를 방문하였을 때도 왼손을 바

지 호주머니에 넣고 악수를 하며 똑같은 모습을 보였는데 그 때도 같은 논란이 일어났다.36

빌 게이츠가 악수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청와대 사진을 살펴보자.

AFP AP abcnews

연합뉴스 한겨레 조선일보

경향신문 한국경제 해외문화홍보원

이러한 빌 게이츠의 악수하는 모습에 대해서 “그가 한국의 대통령을 하대하고 결례를 범했다 disrespecting

the South Korean president by his 'rude' handshake”는 지적과37 반대로 “미국 특유의 인사법 as an American style

33 다른 문화와의 비교는 다음을 참조하라. “A handshake can also be a faux pas in France if a kiss on the cheek would have

been more appropriate.”, http://www.dailymail.co.uk/news/article-2313604/Bill-Gates-disrespects-South-Koreas-female-president-

shaking-hands-keeping-pocket.html 34 http://www.telegraph.co.uk/news/worldnews/asia/southkorea/10011847/Bill-Gates-disrespects-South-Korean-president-with-casual-

handshake.html. 35 “Some South Korean media outlets have actually gone so far as to crop out the offending Gates appendage. Others, … highlighted

the other hand — it's on pretty much every front page in the country today, and South Korean TV has gone all-out, complete with

meteorologist-style green screens.”, Abad-Santos, “The Bill Gates Handshake: Offensive, or Just Weird? A Photo Investigation”, the

Wire, 2013.4.23. http://www.thewire.com/global/2013/04/bill-gates-handshake/64477/. 36 Ibid. 37 “This picture of Bill Gates shaking hands with South Korean President … with his left in his pocket was splashed across the

country's newspapers on Tuesday with the media accusing him of 'disrespecting' the leader.”; “Using one hand with the other tucked in

the pants pocket is considered rude here, done when one is expressing superiority to the other.",

http://www.seattlepi.com/local/article/Bill-Gates-handshake-sets-off-international-4456967.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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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 greeting”으로 “문화적 차이 cultural difference”라는 엇갈린 반응이 일어난 것이다.38 왜 두 사람이 만나서

반갑게 악수한 사진을 두고서 해석을 달리하고 논란이 일어나는가? 표현과 의미가 서로 차이가 나서인

가? 그같이 악수하는 모습이 미국인의 시각에서는 어떤 의미를 주는 것일까?3940

몇몇 언론사는 빌 게이츠가 왼손을 호주머니에 넣은 부분은 부각되지 않게끔 하체부분을 나오지 않게 하

거나 각도를 달리한 사진을 게재한 사실을 눈 여겨 볼 필요가 있다.41 빌 게이츠는 호주머니에 왼손을 넣

고 악수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이 한국에서 논란이 되니까 빌 게이츠의 왼손을 보이지 않게 처리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는 빌 게이츠의 본질적 경향이 사라지게 하는 예기치 못한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닌지?

이런 논란은 언어와 문화가 각각 다른 사람들이 서로 만났을 때 말을 전달하려는 사람이 가진 의도와 그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이 수용하고 이해하는데 서로 일치하지 않아서 생긴 문제가 아닐까? 영어의 관용

어구 idioms를 잘못 이해하게 되면 엉뚱한 해석을 낳는다든가 혹은 꿈보다 해몽이 좋다거나 아전인수격으

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기 쉽다. 만약 영어의 관용적 표현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이 같은 해프닝이 일어

나기 보다는 오히려 좀더 본질적인 문제가 논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미국식 문화인가?

우선 분명히 말해서, 왼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한 손으로 악수하는 것은 미국식 문화가 아니다.

미국 사람들 다수가 그렇게 악수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세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악수를 나누는 것도 아니고, 가장 정중한 태도는 두 손으로 악수하는 것이라고 한다.42 미국의 유명한 정

보교양지 “더 아틀란틱”의 뉴스 기사에서 “미국은 만나 인사를 나눌 때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악수를 하는

나라가 아니다”라고 단언하고 있다: “America is not a nation of hands-in-pants greeters.”43 비록 빌 게이츠가, 특

히 도움을 받는 사람들을 만날 경우 (예컨대 영미국에게 도움을 받는 프랑스의 대통령, 미국의 원조를 받

고 있는 유엔의 사무총장, 모금운동가인 보노 등을 만날 때),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모습을 자주 보이는

경향”이 큰 것은 사실이나, 다른 나라의 정상들을 만날 때 그렇게 악수하는 모습을 습관적으로 보이는 것

은 아니다.44

한편 빌 게이츠의 악수법을 결례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반박하자면, 와이어 기사를 인용하여 말하고 싶

38 “Bill Gates 'disrespects' South Korean president with casual handshake”, 각주 33.

39 "미국인이 잘 모를 모욕사례 1위 박대통령-게이츠 악수",

http://www.yonhapnews.co.kr/politics/2013/09/03/0501000000AKR20130903109200009.HTML; “일부 국가에서는 한 손을 주머

니에 넣은 채로 악수하는 것이 모욕으로 간주된다. 이 사진은 빌 게이츠 회장이 한국의 박근혜 대통령을 만나서 바로

그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지난 4월 한국에서 큰 논란이 됐다. In some countries, shaking a person's hand while

your other hand is in your pocket is considered an insult. A photo of Microsoft's Bill Gates doing just that while meeting with South

Korean President Park Geun-hye caused an uproar in that country in April.”, http://articles.chicagotribune.com/2013-09-01/opinion/ct-

perspec-0901-things-20130901_1_anthony-weiner-insults-10-things. 40

“We didn't notice Bill Gates's one-armed, one-hand-in-his-pocket salutation until South Korean media brought the apparently "rude"

gesture to our attention this morning.” 한국에서 큰 논란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미국인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각

주 35.

41 사진 © 각사 당일자 뉴스 기사. 몇몇 언론사는 빌 게이츠가 호주주머니에 왼손을 넣고 있는 부분을 보이지 않게

처리했거나 (조선일보, 한국경제, abc, 문체부 해외홍보문화원), 각도를 약간 달리한 (AP) 사진을 배치하고 있다.

42 “that's pretty creepy in any country.”, 각주 35.

43 각주 35.

44 “Indeed, it appears Gates's natural inclination is to put his left hand in his pocket, whether he's shaking hands or not.” 각주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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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45 빌 게이츠에게 손을 벌릴 입장이 아니라 대신 그에게 어떤 서류라도 전달한다면 그가 손을 호주머

니에 넣을 수 있겠는가?46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서는 누구에겐가 손을 벌리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그러면 자선가에

게는 어떤 형태로는 결코 비난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결론이 도출된다.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 갑부이자

최고 자선가로 잘 알려져 있는 월 스트리트의 아이콘이다. 경제학의 ‘낙수 이론 trickle-down economics’

에 대한 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빌 게이츠의 일거수일투족은 언론과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외부에

손을 벌리지 않으면 안될 사람들이 그의 손에서 돈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형편에 처해 있다. 이런

자본주의 본질적인 상황에서 빌 게이츠의 호주머니에 손 넣고 악수하는 모습은 언론의 관심거리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아담 스미스는 사회는 “보이지 않는 손 invisible hand”에 의해서 움직인다고 주장했는데, 보이지 않는 손에

는 ‘이기심’뿐만이 아니라 ‘이타심’과 ‘양심’ 또한 포함된다. 어떤 의미로든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인간 사회에서는 겉모양과 속내가 일치하지 않을 수 있고, 이에 따라서 속뜻을 탐구하는 작업이 요구된

다.47

45 각주 35.

46 사람의 생각은 시간과 장소의 영향을 받는다. 사람의 상황은 수시로 변하고 그에 따라 사람의 생각도 변한다. 사

람의 처지가 다른 경우에는 각자의 입장에서 해석의 차이가 나타날 수 있다. 하지만 ‘생존상황’에서의 인간의 마음은

‘보편적’일 것이다. 사막에서 허기에 지친 사람에게 물과 빵은 생존의 필수품이고 이런 ‘생필수품’을 건네는 사람에게

‘동기’ 여하를 불문하고 감사의 마음을 갖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

다”는 “행측이심 行厠異心”의 속담이 있다. 미국은 한국전쟁 이후 식량부족에 시달리던 한국에 미국의 잉여농산물(옥

수수 전분 등)을 원조해 주었다. 현재 한국의 경제성장으로 식량난이 해결되었는데 지금 와서 자기들에게 필요없는

잉여농산물을 가지고 원조해 주었다는 사실에서 그 동기가 순수하지 않았다고 반박할 수 있을까? ‘착한 사마리아인’

의 사례에서 보다시피 인간 모두가 동정심을 발하는 것은 아니고 또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은 순수한 동기 여부하고

는 상관없이 돕는 행위가 중요하다. 자기 자신의 생존을 확보하지 않고서 어떻게 남을 도울 수는 없기 때문에 잉여

농산물 여부는 관점의 대상이 아니다. 현재 상황에서 과거를 재단하기란 (굳이 노직의 이론을 들어서 설명할 필요도

없이) 힘들겠지만 잉여농산물(자신에게 불필요한 것이지만 상대방에게는 생존의 필수품이 된다)을 기근에 시달리는

타인에게 나눠준 행위 그 자체는 어떤 형태로든 비난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제 아무리 풍요한 부를 가진 사람일지라

도 ‘착한 사마리아인’처럼 직접 자선의 행동에 나서지 않는 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어려

운 과거는 잊기 쉽다는 의미의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우리 속담이 있는데 이는 호세아 13:5-6 구절과 맥락이

닿는다. “네가 사막의 메마른 벌판에 처했던 때를 분명히 기억하는데, 먹여 살려주고 이제 배가 부르니 마음이 교만

해져 날 잊었구나.”

47 우주 질서의 법칙은 ‘침묵’하고 있다. 다만 인간은 거기에 이미 존재한 진리를 ‘발견’하면서 인간의 삶을 발전시켜

왔다. 우주는 ‘빅뱅’하고 원자 분자 운동처럼 잠시도 쉬지 않지만, 뉴튼 아인슈타인 등 위인들이 말해주듯이 인간은

침묵속에서 진리를 발견한다.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이용하여 인류 최초로 우주 천체를 관측한 뒤 그가 발견한 진리

를 담은 책 제목을 “별의 메신저”라고 붙인 것은 사람은 침묵속에서도 대화를 하기 때문이 아닌가? 천체 관측과 원

자 운동(DNA 나선구조)의 발견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외양과 실체는 다를 수 있다. ‘해석 작업 interpretive process’이

없다면 진리는 발견되기 힘들 것이다. 다른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경제학자 베블렌 Veblen은 “유한계급론”에서 "과

시적 소비 conspicuous consumption"라는 개념으로 사회적 지위에 따른 근거를 설명했다. 한편 병적일 정도로 명품을

소비하려는 현상을 가져오는 것은 사회적 집단의 우월적 위치를 과시하려는 것, 또는 명품구매를 불러일으키는 기업

의 현혹적 마아켓팅에 있다는 등의 기존이론에서 벗어나 소비자 자신에게 기인한다고 주장하는 진화 심리학의 관점

이 있다. 명품 소비에 집착하는 이유는 “명품을 구매하면 나를 달리 대우할 것”이라고 믿는 “소비자의 환상 delusion”

에 있다고 설명한다. “값비싼 신호 이론 costly signal theory”이란 “신호의 비용이 신호의 진실성을 보장한다"는 뜻이

다. 동물들은 성적인 장식을 포함하여 자신의 적응도를 과시하기 위해 다양한 신호들 fitness indicator을 진화시켜 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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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 이론, 외연과 내포-암시적 의미 associated connotations

대통령의 집무실이나 공적인 장소에서 대통령과 함께 사진을 찍는다는 사실은 대통령의 의전사항이고 또

그것은 전세계의 언론을 통해서 전달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이런 사실에서 언론

장치를 이용하여 전달되는 메시지에는 어떤 의미가 암시되어 있다고 짐작할 수 있다. 언론은 빌 게이츠

가 왼손을 바지 호주머니에 넣는 모습을 부각시키는데, 언론의 사진은 몸짓이나 손짓으로 의사 소통을 하

는 신호 언어, 수화 sign language의 일종일 테고 몸짓 제스처를 이용해 의사 전달을 하는 바디 랭귀지

body language의 일종이다. 더욱이 “사진 한 장이 천 마디 말보다 낫다."는 속담을 기억하자.

대개 사람들의 대화는 알아 듣게끔 넌지시 말하거나 비유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흔하다. “교양이 있고 상

식이 높은 양반”-문화인-이 왜 굳이 상대방이 결례라고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

같은 방식의 악수를 하려는 것은 다른 어떤 의도가 있어서일까? 만약 의도된 표현이라면 어떤 의미가

암시되어 있을까? 그게 궁금하다. 이에 대한 답은 영어의 관용어구의 뜻에서 찾아질 수 있다. “Put

one's hand in one's pocket“의 뜻을 이해한다면, 그가 왼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악수를 나누는 모습에서 말

하고자 하는 암시적 의미가 무엇인지 쉽게 눈치채리라.

언어의 역사성, 문화와 관습, 관용어구의 발달

빌 게이츠의 왼손과 비밀

원활한 의사 소통을 하려면 말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어야 하고 또제대로 의미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

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가르치는가?48

어떤 사람이 어떤 불우한 이웃에게 돈 한 푼 주려고 하면 자선을 받는 입장의 사람은 그 돈을 쉽게 받지

않으려고 손을 뿌리치려는 경향이 있다. 누가 공짜로 주는 것을 쉽게 받지 않으려는 경향을 비단 우리나

라 사람들만의 정서는 아닌 것 같다. 모스 Mauss는 “증여론”(1925년)에서 원시 부족 사회에서 선물을 받

았을 경우 의무적으로 답례를 하게 만든 규칙이 존재하는데 선물을 주고받는 행위는 겉으로 자유롭게 보

이지만 실제로 그 관계는 강제적이고 의무적인 관계라고 논증했다.

왜 사람들은 그냥 주는 것을 쉽게 받지 못하고 사양할까? 일본어 표현에 누군가로부터 작은 선물이라도

받게 되면 그에 대한 고마움을 표현하는 정중한 화법으로써 “기노도쿠데쓰 氣の毒です”라는 말을 쓰는 경

우가 있다.49 이 말은 독이 있는 감정이 느껴진다고 직역되는데, 상대방은 기쁜 마음에 흔쾌히 줄지 모르

겠지만 그것을 받는 입장에서는 독으로 느껴진다는 것 즉 ‘마음의 짐’, 갚아야 할 어떤 ‘부담감’을 느낀다

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은 인간본성을 고려하여서일까 성경은 불쌍한 사람을 도울 때는 그 사람의

는데 이러한 신호가 그 진실성을 보장받기 위해서는 실제로 적응도가 높은 개체만이 발현시킬 수 있는 즉 적응도 낮

은 개체들은 따라하기 힘든 특성들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론으로써 그 대표적인 예가 멋진 긴 꼬리의 공작새와 긴

뿔 달린 사슴이다. 이는 도킨스의 "이기적 유전자 The Selfish Gene"의 개념과 연결된다.

48 '너희는 불쌍한 사람을 도울 때 오른손이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너의 착한 행실이 남의 눈에 띄지 않게 하

라.' "But when you give to the poor, do not let your left hand know what your right hand is doing, so that your giving will be in

secret.” (마태 6:4). (NASB). 49

http://www.weblio.jp/content/%E3%81%8A%E6%B0%A3%E3%81%AE%E6%AF%92.

17

면전이나 혹은 남이 보는 길거리에서 행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있다.50

영어 표현으로는 좀 더 직설적으로 ‘이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선언한다. 유명한 노벨상 수상 경제학자

프리드만의 “이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there is no such thing as a free lunch.”는 말은 인간 세상의 본질을

설파한 것이다. 우주 만물의 음양의 이치처럼 인생은 주고 받는 것 give-and-take이라고 말하지 않던가?

이러한 ‘상호성’의 원칙에 따라서 구제를 받는 사람은 부담감을 느끼게 마련인 것이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사람들은 죽음의 순간에서 자신이 갚아야 할 빚 debt이 남아 있는지가 관심사라고

한다. 이런 태도는 인생을 정리하는 단계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보는 것은 당연할 텐데 흙에서 와서 흙으

로 돌아가는 공수래공수거의 인생관하고는 약간 차이가 느껴진다. 사람은 어디에선가 누구로부터 이 땅

에 태어난 존재임을 인식할 때 부채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소크라테스도 임종의 순간 마

지막으로 남긴 유언은 의사에게 닭 한 마리를 갚아야 할 빚이 있는데 그것을 대신 갚아 달라는 말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유언을 인용하면, “이보게 내 친구 크리토, 내가 아스클레피우스에게 닭 한 마리를

빚지고 있는데, 잊지 말고 꼭 갚아 주게나.”51

이와 같은 근거로 보면, 상대방의 호의에 대해서 부담감을 느끼는 것은 인간본성이고 따라서 돈을 주고자

하는 손을 뿌리치는 이유는 무례나 결례나 굴욕감을 느껴서가 아니라 자신이 다시 갚아야 할 부담감을 느

껴서 나오는 행동 같다.

사람들이 일부러 사고를 내려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테고 그와 마찬가지로 불우한 사람들이 자신이

의도적으로 원해서 불우한 이웃이 된 사람은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부자도 행운이 따라서 부자가 된 경

우가 많고 마찬가지로 불행한 사람도 불운이 따라서 그렇게 된 나름대로의 사정이 있는 것이 아닌가?

행운과 불운은 개인의 의지와 능력과는 상관없이 우연하게 random 움직이는 우주 질서 법칙의 하나이다.

이러한 우연과 운명의 법칙은 투키디데스부터 아담 스미스 그리고 현대의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성의 물

50 “Take heed that ye do not your alms before men, to be seen of them.” (마태 6:1). "너희는 남에게 보이려고 의로운 일을 사람

들 앞에서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새번역). “너희는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일부러 선한 일을 하지 않도록 조심하라.”

(현대인의 성경).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구제 의연금]를 행하지 않도록 주의하라.” (개역개정). 우

리나라 성경은 대개 이와 같이 번역하고 있는데, 킹제임스성경을 그대로 번역하면, “구제 의연금 alms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내놓지 말고, 그들이 눈치채지 않도록 특별히 조심해서 하라.” 여기서 men은 구제 대상자 the poor를 지칭하

고, 6장 2절은 ‘위선자’처럼 사람들 많은 곳에서 행하지 말라고 충고하는데 여기서 ‘그들은’ 구제 의연금을 기부하는

일반인을 말한다. 구제 대상자 앞에서 의연금을 직접 전달하지 말라는 의미는 예컨대 학교 무상급식 논란에서 보듯

이 구제 대상자를 표시 나게 하면 어린 학생의 경우 마음의 상처를 입기 쉬운 것처럼 구제 대상자의 입장을 배려하

여 행여나 그들의 마음의 상처를 주지 말라는 의미이다. 기부 자선을 면전에서 하지 말고 대신 교회나 학교에 기부

금을 전달하는 것이 보다 낫다. 그러면 이들 구제 기관이 일괄적으로 시행하여 혹시나 생길 지 모르는 마음의 상처

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학교에서 차별없이 똑같은 교복을 입는 이유를 상기하라. (교복을 입는 학교에서 어린

학생들에게 무상 급식을 거부하고 빈부의 격차를 느끼게 하려는 일부 학교의 차별 정책은 옳지 않다.) 우리들이 “다

같이 가난했지만 행복했던 그때 그 시절”이었다고 회고하지 않는가? 왜 그렇게 느끼는가? 인간은 차별 대우를 받으

면 상처를 받기 쉽고 또 평등성을 추구하는 본성을 갖고 있다. 따라서 구제 대상자를 ‘차별’하지 않아야 하고 또 그

들을 인간답게 존중해서 대우해야 한다. “If someone is eligible for help, treat them with respect.” 보편적 복지에 대한 현

대적 이론으로 설명하면 티트머스의 주장이 타당하다. 영국의 사회학자 Titmuss에 따르면 선별주의는 낙인을 수반하

며 지불능력이 없는 사람과 있는 사람간의 이중구조를 가져와 공적 서비스의 상대적 열악함을 초래하기 때문에 적합

하지 않다. 51 “Crito, I owe a cock to Asclepius; will you remember to pay the debt? The debt shall be paid.” Plato's “Crito", 54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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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학 원리까지 과학적으로 증명되고 남는다. 그리고 행운과 불운이 순전한 자기 책임의 결과라면 보험의

존재 기반 자체가 무너지게 될지 모른다. 로또가 무작위 추첨으로 당첨되듯이 누구든지 언제 어디서 사

고가 날지 모르기 때문에 즉 ‘랜덤’하게 움직인다는 가정이 성립하기 때문에 보험 시장이 존재하는 것이다.

은유법과 관용어구-metaphor, idiom

은유법은 직유법과 달리 직접적인 비교 대상이 없이 표현되는데52 은유하는 말의 난이도와 그 의미가 내

포하는 정도에 따라서 수신자가 말하는 사람의 의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임의적으로 해석하는 경우

가 나타날 수 있다.53 또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은유의 대상이 달라지기도 하고 따라서 그 의미 또한 달라

진다.54 그리하여 은유에는 읽는 사람들 모두가 똑 같은 해석을 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는 경우도 생기

게 된다. (“악마의 공장 Satanic Mills”과 은유법에 대한 설명은 III부 6장을 참조하라.)

‘관용어구 idiomatic expression’란 개별적인 낱말이 갖는 뜻으로는 이해할 수 없고 새로운 의미를 갖는 어구

로써 굳어진 두 낱말 이상이 결합한 언어의 단위를 이른다. 예컨대 “It was raining cats and dogs.”의 뜻은

“비가 억수로 퍼부었다”는 의미이지 고양이와 개라는 의미는 들어 있지 않다. 만약 고양이와 개를 축자번

역하면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55 관용어구는 은유하고는 달리 다른 은유 대상의 지시어 없

이도 관용어구 자체가 하나의 의미를 갖고 있어 직접적인 의미를 전달할 수 있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putting my hand in my pocket”의 의미-1-(연상주의-근접성의 법칙)

“바틀비 스토리”에서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putting my hand in my pocket”라는 표현이 들어 있는 문장이 두

번 나타난다. “나는 내 돈을 꺼내려고 본능적으로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다가 오늘이 선거일이라는 것

이 기억났다. I was instinctively putting my hand in my pocket to produce my own, when I remembered that this was

an election day.” 여기에서 화자인 변호사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는” 이유는 “내 돈을 꺼내기 위해서 to

produce my own”였다. “I put my hand in my pocket for the wallet.”-이 문장 표현과 같이 사람들이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이유는 대개 지갑을 꺼내기 위해서이고 지갑을 꺼내는 경우는 돈을 쓰기 위해서이다. 앞서 예

시한 문장의 후반부에 “선거 election”라는 말이 이어지고 “기억났다 remembered”고 말한다. 이 문장에서

선거 때는 후보자가 선거모금 활동을 벌이고 유권자는 돈을 기부하는 선거와 정치 세계의 모습이 쉽게 연

상된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지역 정치가 ward-politician”, “정권 교체 change in the administration”, “연장자

elderly man (연장자 이 단어는 시군의 행정에 선출된 지역 유지 alderman 또는 교회 장로 elder가 연상된다)

52

“A similitude briefly expressed without any indication of comparison.”, “A Dictionary of Literary Terms”, Routledge; “Metaphor:

the transfer of a quality or attribute from one thing or idea to another in such a way as to imply some resemblance between the two

things or ideas.”, “Glossary of Literary Terms”, CUP. 53 “metaphor compares two or more things that are not in fact identical; a metaphor's literal meaning is used nonliterally in a

comparison with its subject.”

54 종교와 정치에 대한 엄격한 분리 정책을 의미한 “wall of separation”에 대하여 벽 wall의 은유 해석의 변화에 대한

글은 다음의 논문을 참조하라. http://www.heritage.org/research/reports/2006/06/the-mythical-wall-of-separation-how-a-misused-

metaphor-changed-church-state-law-policy-and-discourse. 55

관용어구 또는 개별적인 낱말로써도 의미가 통하는 경우도 있다. 헤밍웨이 글에 나오는 예를 든다면 “He slipped

into the familiar lie he made his bread and butter by.” 여기서 “빵과 버터”의 의미는 서양인과 동양인의 식생활 문화적

차이를 고려하지 않고서 “그는 버릇이 된 거짓말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들었다. 그 거짓말로써 그는 지금까지

빵과 버터를 벌어 왔던 것이다.”으로 번역해도 의미가 통한다. 하지만 ‘빵과 버터”의 직접적인 지시어라기 보다는 ‘돈

벌이’라는 추상적인 뜻의 관용어구로써 해석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표현으로 생각된다: “그는 먹고 살기 위해 해왔던

그 상습적인 거짓말을 또다시 해댔다.”

19

등의 표현이 나온다. 선거 때는 선거 자금이 필요하다는 것은 오늘날의 정치자금법의 존재를 봐도 예나

지금이나 변함 없는 사실이다. 이같이 선거와 돈의 관계는 서로 쉽게 떠올려지는 본능적으로 instinctively

‘연결’되는 연상 개념에 가깝다. (생각의 연결 고리 이론 연상주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III부 2장을 참조

하라).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putting my hand in my pocket”의 의미-2-(원인 또는 결과의 법칙)

두 번 째 나타나는 문장을 보자. “I re-entered, with my hand in my pocket.”-이 문장에서 “with my hand in my

pocket”이란 구절은 영어의 관용어구로써 그 의미를 파악해야 문장의 의미가 제대로 전달된다. “Put one's

hand in one's pocket“는 무슨 의미인가? 옥스포드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spend or provide one’s own

money”라고 설명하고 있다. (“The Oxford American College Dictionary”, OUP, 2006, at 1049.) 사전에서 이

어구의 쓰임새로 들고 있는 문장의 예를 보자. “I would urge you to put your hand in your pocket and give some

money to this family.” 이와 같이 ‘자선을 행하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with my

hand in my pocket”는 영어 사전의 설명대로, “자기 돈을 쓰다 spend or provide one’s own money”라는

관용어구의 의미로 해석해야 함이 옳다. “I re-entered, with my hand in my pocket.”-이 문장의 바른 번역은,

“(나는 돈 몇 푼이라도 쥐어주고 싶은 생각으로) 바지주머니에 한 손을 넣은 채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이렇게 “자기 돈을 쓰다”라는 관용어구의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는 점은 이 문장의 후반부의 의미를

살펴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이 문장의 후반부 구절 “my heart in my mouth”은 무슨 의미인가? 만약 이 표

현을 “내 입에 가슴을 넣고”라는 식으로 ‘축자 해석 directly translated word-for-word’을 시도하면 그게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물리적으로도 가슴이 입에 올라올 수 없고 또 가슴과 입이 다른 어떤 관계

가 있는 것도 아니다. “소리가 목구멍을 기어 올라왔지만 참았다”는 시중의 표현이 있는데, “my heart in my

mouth”의 의미는 “목이 잠기다”, “목이 매이다”는 뜻을 가진 영어 관용어구로 해석하면 의미가 매끄럽게 연

결된다. 가슴은 감정을 뜻하므로 “가슴이 목까지 차 오르다”는 감정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정도로 감정이

솟구친 상황을 말한다. 옥스포드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have one's heart in one's mouth”의 뜻은 “be greatly

alarmed or apprehensive”으로 설명하고 있으므로 (supra at 618) “my heart in my mouth”의 어구는 영어 사전의

설명대로, “to be extremely frightened or anxious; to feel strongly emotional about someone or something”, 즉 “가슴이

목까지 차 오르다”, “감정이 왈칵 북받쳐 올라왔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사람들이 전혀 예상치 못한 충격적인 소식을 접할 때,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의 표현은 영어로 “panic

in my mind”라고 쓰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my heart in my mouth”는 예컨대 몇 십 년 만에 만난 옛 친구를

만나 그 동안의 안부를 물을 때 느끼는 감정 즉 ‘감정이 울컥 솟아났다’는 뜻을 나타내는 감정이입의 표현

인 것이다. 그러므로, “with my hand in my pocket”의 구절은 뒤따르는 관용어구 “my heart in my mouth”의 뜻

과 함께 어울려 말하는 사람의 감정이 솟구치는 상황을 더욱 강하게 전달하는 효과를 나타낸다. “I re-

entered, with my hand in my pocket—and—and my heart in my mouth.”-이 문장의 번역은, “나는 돈 몇 푼이라도

쥐어주고 싶은 생각으로 바지주머니에 한 손을 넣은 채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런데-막상 들

어가니까 감정이 왈칵 북받쳐 올라왔다.”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putting my hand in my pocket”의 의미-3- 빌 게이츠의 호주머니와 상징적 의미

“out of pocket”이란 말은 돈을 잃고 빈털터리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흔히 자기에게 돈이 없다는 의미로 호

주머니를 털털 터는 모습이 “out of pocket”이다. 반대로 “in pocket”의 뜻은 호주머니가 두툼하다는 의미로

20

써 ‘자신의 영향력 안에 놓여 있다’는 의미이다. 호주머니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사람의 가진 부, 재

정상태를 나타내는 의미를 가졌다. 호주머니가 두툼한 부자들은 굳이 나서서 자신에게 돈이 많다고 천명

할 필요가 없고 단지 그것을 보여주면 된다. 물건이 상징적 가치를 가졌고 또 보드리야르의 개념으로 말

하면, ‘사용 가치 use-value’가 ‘기호 가치 sign value’로 전환되었기 때문이다.56

빌 게이츠의 호주머니는 더 이상 실재의 호주머니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곤궁한 사람들이건, 가진 자

들이건, 국가 정책담당자들이건 모두 어미가 물어오는 먹이를 쳐다보며 입을 벌리는 어린 새처럼, 부자들

의 호주머니를 쳐다보고 있다. 빈곤의 문제는 풍요의 문제와 같이 인간의 사회 경제적 시스템 문제이므

로 완전히 제거하기 어렵다. “월 스트리트를 점령하라!”의 시위가 일어난 것은 가난이 체제에 위협을 주

는 것과 마찬가지로 풍요도 체제에 위협을 준다는 것이 그 배경이 아니던가?

빌 게이츠는 세계 최고 갑부이자 세계 최고의 자선가이다.57 “with my hand in my pocket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영어 표현은 “spend or provide one’s own money 자기 돈을 쓰다”라는 관용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으

므로, 그가 한 손을 호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는 사진에 담긴 메시지는 신규 사업 투자, 경제적 원조, 금전

적 지원, 자선 사업이든 “자기 돈을 쓴다 spend or provide his own money”는 의미가 암시되어 있음을 눈치챌

수 있다. 따라서 빌 게이츠의 악수하는 모습에 대해서 ‘결례’이니 ‘미국식 문화’이니 하는 논란은 아무런

쓸모가 없는 소모전에 불과할 것이다.58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시뮬라크르’는 시늉, 흉내, 모방, 재현을 뜻하는 프랑스어로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이미지나 유사한 것,

모호한 재현이나 닮은 것, 단순한 속임수나 가짜”를 말한다. 신문, 방송, 영화, 인터넷을 통해 보이는 세

계는 가상으로 존재하는 시뮬라크르의 세계다. 현실이 아닌 가상의 세계이지만 인간 사회의 삶에 매우

깊숙이 침투해 있어서 현실보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보드리야르는 “이미지, 기호, 코드가 실재 대상

을 삼켜버린다”고 말했다. 이미지가 그 자체로서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이 이미지에서 의해서 지배받

게 되므로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다. 기호와 이미지를 통해 광고, 뉴스, 영상, 상품 이런 것

들을 생산해 내는 네트워크 또는 가상현실의 모습을 말해 주는 “시뮬라시옹”의 세계이다. “시뮬라시옹의

시대가 열리고 모든 지시대상은 소멸되어 버린다. 곧이어 사라진 지시대상들이 기호 체계 속에서 인위적

으로 부활됨에 의해서 시뮬리시옹은 더욱 강화된다.”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의 4단계 즉 재현, 변형,

은폐, 대체의 단계 가운데 대체 단계에서 일어나는 “시뮬라시옹은 더 이상 이미지나 기호가 지시하는 대

상 또는 어떤 실체의 시뮬라시옹이 아니다.” 지시하는 대상 또는 실체로부터 독립한 채, 그 자체가 스스

로 자립적인 생명력을 갖게 된다.59

56 기호가치’란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지위와 삶의 양식을 나타낸다. 다이아몬드의 예를 들어 보면, ① 공업용 도구

로 사용되는 사용 가치 ② 시장에서 매매 거래되는 교환 가치 ③ 연인에 대한 사랑의 징표로써의 상징 가치 ④ 디바

스15K같은 기호가치가 있다. “나는 소비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소비 사회 consumer society”에서 사람들은 소

비를 통해서 자기 존재를 확인받고자 하는데 샤넬-5를 사면서 기호로 신분과 계급의 차이를 나타낸다. ‘기호가치’란

다른 사람과 차별되는 지위와 삶의 양식을 나타낸다. 57 http://www.forbes.com/profile/bill-gates/. Bill Gates’ and Warren Buffett’s Giving Pledge, in which the ultra-wealthy pledge to

give away at least half their net worth to charity.

58 언론이라는 ‘중간 전달자’(매개된 mediated)를 통해서 말이 전달될 때 당사자의 의도 intent와 표현 expression이 일치

하지 않는 경우가 일어날 수 있고, 또 간혹 중간 매개체인 언론이 의도적으로 왜곡시키는 경우도 없지 않다. 보드리

야르는 “미디어가 전체주의적 메시지를 생산해 낸다”고 비판하였다.

59 보드리야르 Baudrillard, “시뮬라시옹”. ① the orders of simulacra ② the phases of the image ③ the three phases of

21

빌 게이츠의 자선 단체 트러스트 구조

빌 게이츠의 자선 단체 트러스트의 경우를 보자.60 자선 단체 트러스트가 설립될 때는 빌 게이츠가 구체

적 지시 대상이 되지만 설립되고 나면 빌 게이츠로부터 독립되어 트러스트 그 자체가 스스로 자립적인 생

명력을 갖게 된다. 빌 게이츠가 죽고 나서 그의 흔적이 사라져 버리더라도 오히려 빌 게이츠를 완벽하게

닮은 (시뮬라크르) 단체가 빌 게이츠가 꿈꾼 그대로를 재현(원본 실재), 변형(실재 흔적 찾기 어려움), 은

폐(실재를 은폐), 대체(실재의 부재)해 나가는 것이다. 트러스트 재산은 빌 게이츠의 원본 재산을 모태로

출발하고 목적에 맞는 여러 활동을 벌이는데 이는 게이츠의 개입없이 일어나는 변형 또는 은폐에 해당하

고 그가 죽고 나면 트러스트가 그를 대체한다. 현실의 개인 인물로서 빌 게이츠가 시뮬라크르의 공간에

서 여러 얼굴을 가지며 활동을 하게 된다. 트러스트는 빌 게이츠 원본을 재현하고 변형시키고 은폐시킨

시뮬라크르다. 그리고 그를 뛰어 넘어 스스로 원본으로 대체된 시뮬라크르다. 이들은 빌 게이츠 실재보

다 더욱 실재적이다. 빌 게이츠가 창업한 마이크로소프트 회사 또한 트러스트 구조에 의해서 움직인다.

월 스트리트에서는 모든 행동들이 원본, 모방, 재현, 변형, 은폐, 대체로 나타난다. 광산 철도 주택 등 기

초자산에서 생겨난 증권 시장의 구조 그리고 이들을 기초로 하여 생겨난 파생상품 시장이 증권 시장보다

거래 규모가 더 커진 월 스트리트 금융 시장을 보라.61 원래 모델을 뛰어넘는 역동성의 구조가 월 스트리

트를 받치고 있다. 금융 파생 상품이 그러하듯이, 월 스트리트는 시뮬라크르의 세계인 것이다. 빌 게이

츠는 창조적이고 실재적인 비즈니스와 부의 화신이고 월 스트리트의 아이콘, 신화, 상징, 환타지가 된다.

보드리야르는 실재가 아니면서 더 실재 같은 ‘하이퍼-리얼리티’이 지배하는 세계의 한 예로써 ‘디즈니랜드

Disneyland’를 들었는데, 실제의 미국은 디즈니랜드처럼 유치하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디즈니랜드가 존

재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시뮬라크르임을 감추기 위해서 또 다른 시뮬라크르인 디지니랜드로써 가림막

을 친다는 것이다. 월트 디즈니는 원본의 쥐를 미키마우스라는 시뮬라크르를 변형 생산해 냈고 이러한

변형된 이미지를 통해서 실재로 쥐를 바라보게 만들었는데 따라서 이제는 쥐의 본 모습이 어떤 것인지 구

별 불가능하게 은폐 대체되어 버렸다. 월 스트리트 또한 그것의 원본들인 카네기, 게이츠를 변형하고, 만

들어내고, 이런 변형된 이미지를 통해 월 스트리트를 바라보게 하는데 이제 월 스트리트의 본 모습이 어

떤 것인지 게이츠의 본 모습이 어떤 것인지 구별 불가능할 정도로 은폐되고 대체되어 버린 것이다.

변화 발전의 조건-다양성의 차이와 자기 동일성의 유지

주식, 채권, 주택담보대출증권, 파생 상품이 만들어지고 거래되는 월 스트리트 시장 구조를 보자. 진화론

이 설명하는 바와 같이, 발생한 ‘차이’를 사라지지 않도록 보존하여 다음 세대에 그대로 전달해 줄 수 있

는 어떤 실체가 존재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상품들을 설계하고 구조적으로 이끄는 “보이지 않는 손”의

정체는 누구인가? 종교기관, 교육기관, 회사 법인, 국가기관 등의 트러스트 구조에서 끊임없는 세대교체

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자기 동일성을 유지해 나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회 또한 유

전자처럼 자신을 불변적으로 복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인데 그 역할을 변호사들이 담당하고 있

다.

진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변화를 발생시키는 원인이 존재하는 ‘변이 조건’과 변화 발생한 이후에 다음

utopian and science-fiction 개념을 참조하라.

60 빌 게이츠 자선 단체 트러스트 홈 페이지, http://www.gatesfoundation.org/.

61 “Understanding Derivatives: Markets and Infrastructure”, https://www.chicagofed.org/publications/understanding-derivatives/index.

22

세대로 전달되는 ‘유전 조건’ 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진화의 조건은 변화가 일어나야 할 뿐만 아니

라 또 여기에서 그것이 후세에게 유전되지 못하면 변화의 원동력은 사라지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진화

가 일어난다는 사실 그 자체는 바로 다음 세대로 전달할 수 있는 불변적인 자기 복제의 능력이 생명체에

게 있음을 말해준다. 이 변하지 않는 자기복제의 능력과 또 변형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진화론과는 모순

되는 것처럼 일견 보일 수 있지만 1차적인 성격과 2차적인 성격을 이해하면 이러한 모순이 해결된다. 생

명체의 1차적인 본질은 불변적인 자기복제의 능력을 갖고 있고, 진화를 가져오는 변화란 생명체의 내적

본성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복제능력을 가진 생명체의 내적 본성을 방해하고자 하는 원인이

외부로부터 침입하여 교란시켜서 발생한다고 진화론은 가정한다. 영미법이 프랑스나 독일의 대륙법보다

우월하다는 것 그리고 영미국이 세계를 제패하게 된 원인은 바로 사회의 유전자가 다르다는 것에서 나온

다. 영미국의 핵심 유전자는 영미법인데 사회 생명체의 자기동일성을 계속 지켜가려는 사회의 자기 복제

능력-이 1차적 원칙을 변호사들이 담당하고 있다. 여기의 변이조건과 유전조건이란 말을 ‘다원성’과 ‘통일

성’으로 (들뢰즈의 개념으로 대체한다면 ‘차이’와 ‘반복’에 가깝다) 대체하면 보다 쉽게 수긍할 수 있을 테

고, 그러면 ‘통일성’을 유지해 나가는 유전자의 핵심 기능을 변호사들이 담당하고 있다는 것과 영미국 사

회의 근간을 이루는 그들의 힘이 느껴질 것이다.62

빌 게이츠의 의사 소통-외연과 내포

빌 게이츠가 왼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악수하는 모습의 사진에 담긴 암시된 의미가 담겨 있다면 그것은 그

가 월 스트리트 최고 재산가로서 돈을 투자할 여력이 있고 또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할 정도로 막강한 영

향력을 갖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최고의 자선가로서 빈곤을 퇴치하고 인류 발전에 공헌하고 있다는 사실

그러한 자선 사업을 통해서 많은 돈을 유용하고 현명하게 쓰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주는 것이 아닐

까?63 빌 게이츠는 사물을 대체한 기호와 이미지와 코드로 정보를 유발하고 전달하고 있다. 맥루한의

“미디어는 메시지”이라는 공식을 상기하라.

한편 발신자와 수신자가 분리되어 있는 곳에 상호적 의사소통은 불가능하다. 쌍방형 의사소통이 가능하

다는 인터넷 스마트폰에서도 대중매체에 의한 의사소통은 일방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언론사들의 인터

넷 소통은 댓글까지 포함하여 모두 통제 관리되고 있고 또 매체 자체가 일방적인 의사소통 구조에서 벗어

나기 힘들다. SNS 스마트폰 또한 그러한 한계를 극복해 내지 못하고 있기는 마찬가지이다. 보드리야르

가 말한 대로, 대중매체 형식은 의사소통이 아니라 비의사소통의 형식에 머물고 있다. 언론이 상호성의

의사소통 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은 빌 게이츠가 인터뷰로 통해서 논란을 잠재우지 않고 있지 않는 사실에

서도 알 수 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언론이 기사를 취급하고 있고 과잉 정보를 산출 배설하고 있지만 상

호적인 의사소통은 이루어지거나 유지되기 어렵다.

현재 인터넷 SNS으로 개방된 의사소통을 하고 상호성에 따라 서로 교환하는 대화를 실현할 수 있다고

여길 지 모르지만 사람들은 실재 서로 접촉하지 않고 서로에게 말하지 않고 다만 기계에다 대화하면서 의

사 소통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는 기계적인 가상에 불과하다. 언론으로 전달되는 빌 게이츠의 메시지는

수신자하고 교환의 양가성이 배제되어 있는 의사소통 구조에 놓여 있다. 기계는 거대한 대체 체계이다.

의사소통은 네트워크로 구성되어 있고 네트워크 속에는 어떤 주체를 확인할 수도 없다. 혼네와 다테마에,

62 Deleuze G., “Difference and Repetition” (1968). 63 게이츠의 ‘관심과 열정’에 의해 운영되는 게이츠 자선 트러스트의 주요 목적은 국제적 보건 의료 확대, 빈곤 퇴치,

교육 기회 확대, 정보 기술에 대한 접근성의 확대이다.

23

보이지 않는 속내와 겉으로 보이는 겉보기가 있다.64 달마대사가 손가락을 들어 달을 가르킬 때 손가락을

보는가? 달을 보는가?65

우리는 빌 게이츠에게 “당신이 노리는 의도가 뭐요?”-이렇게 당돌한 질문을 할 수가 없다. 이미지, 기호,

코드가 실재 대상을 삼켜버린 시뮬라시옹의 세계에 있고 교환의 양가성이 배제되어 있는 의사소통 구조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의 속을 떠보려고 한 마디 넌지시 던질 수 있는 대화의 기회를 갖고 있는

사람은 극히 제한적이다. 더욱이 교양인66이라면 그런 당돌한 질문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

순간 문화인을 포기하는 것이고 그건 형사범에게 질문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안광이 지배를 철할 정도

로 지식을 갈고 닦으면 속 마음을 꿰뚫어 볼 수 있지 않던가? 그리고 들뢰즈의 말로 답한다면, “어떤 제

스처, 어떤 억양, 어떤 인사의 몸짓이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을 먼저 깨닫지 못했다면 누가 진리를 찾으려

하겠는가?”

빌 게이츠가 악수하는 사진과 함축된 의미

빌 게이츠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행위가 의미하는 바는 자신은 미래의 인류 발전에 공헌하는 비즈니스

투자와 교육과 자선 사업으로 돈을 현명하게 쓴다는 그의 철학과 행동하는 양심을 암시한다. 이러한 해

석은 관용어구의 사전적 의미와 같이, 바르트가 사진의 의미작용에 대하여 개념 지은 ‘스투디움’으로 설명

된다. ‘스투디움 studium’은 보내는 정보로써 수신자는 총체적인 as a whole 의미로 판단하는데 코드가 서

로 통하고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것 즉 문화적이고 일상적인 의미를 갖는다. 속마음을 꿰뚫어 본다는

것은 송신자의 의도에 맞닿음을 뜻한다. 퀴즈풀이처럼 수신자가 송신자의 의도를 알아 맞출 때 ‘빙고’라

는 외침이 나오는 바로 그런 것이다.

바르트의 ‘의미 작용’과 빌 게이츠 악수 사진의 의미 작용

바르트는 “신화론”에서 ‘총체적’ ‘의미 작용’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이발소에서 잡지

한 권을 내미는데 그 잡지 표지에 프랑스 군복을 입은 한 흑인 젊은이가 눈을 들어 프랑스 국기에 거수경

례를 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이미지의 ‘의미 sense’이다. 그러나 순진하건 아니건 나는 이 이미지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즉 프랑스는 위대한 제국이라는 것, 모든 프랑스의 아들은 피부색의

구분 없이 그 국기 아래 충성으로 봉사한다는 것, 그리고 식민주의에 대해 비방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른

바 압제자들에게 충성하는 이 흑인의 열정보다 더 훌륭한 대답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나는 확대

된 기호학적 체계를 앞에 두게 된다. 즉 선행하는 체계로 이미 형성된 하나의 기표가 있다 (한 흑인 병

사가 프랑스식 거수경례를 한다). 하나의 기의가 있다 (여기에서는 프랑스의 특성과 군대적 특성의 의도

64 일본어 “바카 쇼지키 馬鹿正直”는 사슴을 말이라고 말하는 것에 숨어 있는 의도를 알지 못하는 “stupidly honest”,

“바보스런 솔직함”, “우직스런”을 뜻하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는 말이다. 말하는 사람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른다. 다테마에 建前는 외양 겉보기 겉치레 pretense, 혼네 本音는 마음 속의 진실한 감정

과 진실한 의도 true intentions를 말한다.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우기는 권력에 대해서 진실을 말하는 ‘순진한 바보’

에 대하여 III부 13장을 참조하라.

65 문자는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과 같다. 교종이 교리를 터득하면 불도를 완성할 수 있다고 보는 반면 선종은 ‘불립

문자’로써 수행과 계율을 중요시한다. “見月忘指”, "計著名字者 이름과 글자가 나타내는 것에 집착하면 不見我眞實 나의

실상을 보지 못한다."

66 Cultured man 교양인은 교육받은 사람을 말한다. educated, polished, refined, cultivated.

24

적인 혼합이다). 마지막으로 기표를 통한 기의 현존이 있다.”67

사진이 어떤 의미를 전달해 주는지 사진의 의미작용에 대한 바르트의 설명을, 빌 게이츠의 악수하는 사진

에 적용해 보자. 빌 게이츠가 왼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있는 의미는 슈퍼초강대국 미국의 월 스트리트는

세계의 부를 주무르는 심장부이고, 월 스트리트 최고의 재산가로써 영향력이 막강하다는 것68 그리고 ‘재

산을 현명하게 쓴다 use wisely’는 자선과 나눔의 문화적 전통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

이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는” 이유는 대개 “자기 돈을 꺼내기 위해서 to produce my own”이고, 호주머니

지갑이 두툼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자기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의 영어 표현은 “with my hand in my pocket”인데 이 어구는 옥스포드 영어 사

전의 설명에 따르면 “자기 돈을 쓰다 spend or provide one’s own money”라는 관용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이 빌 게이츠의 호주머니와 그의 왼손에 대해 내포된 의미를 고려한다면, 빌 게이츠의 호주머니에

왼손을 넣고 악수하는 모습은 더 이상 단순한 한 개인의 악수가 아니라, 그것은 미국의 교육과 자선의 문

화적 전통과 월 스트리트 정보통신의 비즈니스를 특성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 코드의 의사 소통에 해당한

다. 따라서 빌 게이츠의 악수법을 상대방에 대한 결례라고 지적하며 ‘문화적 차이’를 근거로 비난하는 사

람들은 상대방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지 못하는 모순에 빠지고 만다는 사실을 살펴 보라. 자신의 문화

적 차이를 내세운다면 반대로 상대방의 문화적 차이 또한 인정해야 한다. 상대방의 존재는 자신의 본 모

습을 비쳐 볼 수 있는 거울이거나 서로 마주 보는 두 개의 렌즈가 있는 망원경으로 이해되어야 함이 옳

다.69

빌 게이츠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모습과 암시된 의미

앞에서 말한 대로, 빌 게이츠가 왼손을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악수하는 모습을 결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은 현대 사회의 본질과 구조를 제대로 파악해 내지 못했다고 보여진다.70 진심으로 말해 정작 중요한 일

은 그처럼 창의적인 발상으로 새로운 비즈니스 혁명을 일으켜서 인류 발전에 공헌하는 일이고 또 자기의

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자선 사업을 펼치는 일이다.71 그가 호주머니에 손을 넣는 행위는 자기가 번

큰 돈을 현명하게 쓴다는 최고의 자선가로서의 면모를 암시하는 것이라면 우리 모두가 그의 모습을 따라

모방하고 반복하여 자선과 기부 행렬에 동참할 때 인류 사회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67 바르트, “현대의 신화”, 이화여대 기호학연구소 역, 동문선, 1997, 274쪽.

68 ‘당신은 내 손아귀에 들어 있다’의 뉘앙스는 부정적인 의미가 따르나 투자의 개념으로써 당신이 필요로 하면 자신

은 돈을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69

한편 빌 게이츠의 악수법이 논란이 되는 배경은 한국의 경제성장에 따라서 그만큼 대우받고 싶어하는 자존심에 있

다고 볼 여지도 충분한데 이에 대해서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이론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

70 ‘사전적인 의미’로써 이해하지 못하거나 혹은 ‘오독’의 가능성이 존재하는 것은 의미의 해석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

는 현상이다. 이는 현대에서 언어의 청각적 기능이 많이 사라진 결과가 낳은 부작용일 수도 있다. 아마 이런 측면

에서 소크라테스는 오해를 방지하기 위해서 직접적인 대화의 방식을 선호했던 것 같다. 한편 오독의 가능성의 문제

는 다양성이 나타나는 원인이기도 하고 또 통합작용을 통해서 발전적인 의미를 낳을 수 있으므로 꼭 부정적인 측면

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새로운 말이 생기는데 이는 간단하고 명확하게 이해하기 위해

서 언어가 더 복잡해진다는 언어 발전의 역설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인간 사회에서 법률이 제정되고 발전되는 과정

또한 이와 마찬가지로 이해할 수 있다.)

71 아담 스미스의 친구이자 멘토이었던 데이비드 흄은 돈을 벌어서 금괴에 넣어 두면 결국 다시 돈이 빠져나간다고

여겼다. 조나단 스위프트가 “화폐는 국가 경제의 피”라고 표현했다. 사람의 몸에 피가 돌지 않으면 죽고 마는 것처

럼 경제는 돈이 돌고 돌아야 성장한다.

25

빌 게이츠는 재산이란 하늘로부터 받은 축복이고 따라서 그것을 현명하게 쓰는 것이 미국의 기부와 자선

의 전통이라고 말했다. 돈이란 벌어서 장롱 속에 숨겨 두거나 곳간에 챙겨 놓는 것이 아니라 미래 세대

를 위해 현명하게 쓴다는 개념에 있다. 성경에서도 분명히 말한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고, 오로지 하늘에 쌓아 두라.”72 미국의 위대성은 미국인들의 자선 charity, 기부 donation, 선물하

고 증여하고 자선 서약하는 것 gift, grant, giving pledge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72

“너희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아라. 땅에서는 좀먹고 녹슬어 못 쓰게 되고 도둑이 뚫고 들어와 훔쳐 가기도 한

다. 너희는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어라. … 네 보물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 … for where your treasure is, there your

heart will be also.” (NASB, 마태 6:19-21). 필연주의 철학, 진화 심리학의 주장과 일맥상통한다.

26

3. 왜 “바틀비 스크리브너 월 스트리트 이야기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는 주해서가

필요한가?

<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는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7374을 번역하고, 글의 배경과

의미를 법률가의 입장에서 상세하게 해설한 책이다.75 우리나라에서 큰 논란이 일어난 빌 게이츠가 왼손

을 호주머니에 넣고 악수을 모습에 내포된 의미를 설명한 글, 영미법 국가의 법 문화를 설명하는 글 등으

로 구성되어 있다.

들뢰즈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을 독본으로 삼아 자신의 독특한 철학을 전개했는데 필자

의 작업은 그것에는 결코 비견할 수 없겠지만, 대륙법 제도와 문화에 익숙한 우리나라에서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는 영미법철학적 내용을 쉽고 간결하고 정확하게 해설하고자 노력했다.

“바틀비 스토리”는 ‘월 스트리트’에 관한 이야기, ‘말 word’로 시작해서 최후의 심판자인 ‘법 law’으로 끝나

는 (law 단어를 거꾸로 쓰면 wall이 된다) 알파요 오메가인 언어와 법에 관한 이야기이다.76

사람은 각자 자기 일한대로 자기 ‘몫’대로 합당하게 대우받아야 한다는 원칙이 정의론의 기초 토대이자 생

명이다. 사람은 타고난 대로 살고, 일한대로 대접받는다. 법과 정의는 정당한 ‘몫’을 찾아주는 실제적인

결과에 그 존재가치가 있다. 따라서 법과 정의가 무너지면 사회 공동체 질서가 무너진다. “나는 모든 사

람들에게 각각 그가 행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마침이

라.”77 “바틀비 스토리”의 번역은 영미국이 세계를 제패하게 된 진실과 그 원형 prototype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인식이 중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이루어졌다. 대영제국과 팍스 아메리카나를 건설한 영미국인의

사고방식과 법문화의 핵심78이 무엇인지를 탐구하는 작업은 누구에게나 흥미로울 뿐만 아니라 대학생, 금

융인, 법조인, 직장인을 포함하여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79 (미국인들의 본질적인 신념은 “인간이

73 Herman Melville (1819–1891),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street”, Vol. I, Nov 1853, No. XI, pp. 546–557; Vol.II. Dec

1853, No. XII, pp. 609–615, Putnam’s Monthly, New York, G. P. Putnam & Co. 74 Herman Melville,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 Street” in “The Piazza Tales” and Other Prose Pieces, 1839–1860, vol. 9

of The Writings of Herman Melville, ed. (Chicago: Northwestern Univ. Press, 1987). 75

III부 14장 참고문헌 리스트를 참조하라. 76

신학, 철학, 심리학 등 다른 학문 분야에서 다양하게 해석되는 사실은 두말할 것도 없다. (문화 역사적 배경을 고

려하지 않더라도) 언어의 의미는 다양성을 갖고 있어-semantic pluralism, 다양한 해석을 낳는다. 77

“He that is unjust, let him be unjust still: and he which is filthy, let him be filthy still: and he that is righteous, let him be righteous

still: and he that is holy, let him be holy still. And, behold, I come quickly; and my reward is with me, to give every man according as

his work shall be. I am Alpha and Omega, the beginning and the end, the first and the last.” (계시록 22:11-13). 78

동의와 합의는 공동체 사회를 이루는 가장 기초적인 토대다.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란 모든 공권력은 법의 지배를

엄격하게 따르고 또 어떠한 폭력이나 자의성을 배격하고 또 자유와 평등과 다수의사 원칙에 따른 국민의 자기 결정

권에 기반하는 질서를 말한다. 이 질서의 기본 원칙으로는 최소한 다음의 요소들이 포함된다: 헌법에 구체화된 기본

적 인권의 존중, 무엇보다 생명권과 인격의 자유 형성권, 국민 주권, 권력 분립, 정부의 책임성, 법에 따른 행정, 사법

부 독립, 복수 정당의 원리와 모든 정당의 기회 평등과 헌법 범위내에서 야당의 구성권과 활동권.” “an order that

establishes public powers that are bound by the rule of law and that exclude any violence or arbitrariness, and that are based on the self-

determination of the people according to the will of the majority as well as freedom and equality. The foundational principles of this

order include at least the following: the respect for the human rights established in the Basic Law, above all the right to life and free

development of personality, popular sovereignty, the division of powers, government accountability, the subjection of administrative

powers to the law, the independence of judges, the principle of party pluralism and the equality of chances for all parties and their right,

within the limits of the constitution, to the formation and exercise of an opposition.” 독일연방헌법재판소, BVerfGE 2, 1 (1952) at 12,

영어 번역은 Capoccia, “Militant Democracy”, Oxford, at 211. 79

“전체 인류의 삶을 그 시초부터 있는 그대로 오늘날에 되살려 재평가해 보는 것 즉 당대의 구경꾼들의 판단을 크

27

스스로의 구원에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 humans must consent to their own salvation”는 것에 있는데80우리나라

에서는 영미국의 법철학적 개념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흔히 발견된다. 그 이유 하나

는 우리나라는 칼빈주의 전통이 강한 대륙법 국가의 제도와 문화와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고 있다는 사실

에 있을 것 같다.)

번역 Translation이란 무엇인가?

좋은 내용과 진실성을 지닌 책은 정보와 지식의 보고이자 마음의 양식이고 깨달음의 기쁨과 삶의 지침을

준다. 그런데 좋은 책이 다른 언어로 되어 있어서 보통사람들이 이해하는데 곤란함을 겪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번역의 개념에 대해서는 킹제임스성경 번역자가 “독자에게 드리는 서문”에서 표현한 문장만

큼 더 적절하게 비유할 수 있는 말은 찾아 보기 어려운 것 같다. “번역이란 햇빛이 들도록 창문을 여는

것이고, 알맹이를 먹기 위해 껍질을 까는 것이며, 지성소를 들여다보기 위해 휘장을 여는 것이며, 야곱이

라반의 양떼에게 물을 먹이기 위해서 우물가의 돌을 들어내 치워야 하듯이 사람들이 샘물을 길러 올릴 수

있도록 우물 덮개를 여는 것과 같다. 사실 보통 사람들에게 통용되는 일상언어로 된 번역이 없다면 배움

이 부족한 사람들은 마치 샘이 깊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두레박이나 다른 떠올릴 수단이 없어 마냥 서 있

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81

“바틀비 스토리” 영어 원문 읽기가 난해한 이유

법과 문화-언어의 의미와 표현-시대성과 역사성

멜빌의 “바틀비 스토리”는 난해한 글이라고들 말한다.82 그 이유는? “바틀비 스토리”에서 다루고 있는 법

원칙과 사건들은 19세기 중반 당시 미국의 사정뿐만 아니라 로마시대와 영국의 역사적 사건에까지 걸쳐

있고 또 언어학. 신학, 역사, 화학, 생물학 등 여러 분야에 걸쳐 광범위하게 다루고 있다는 사실에서 나오

는 것 같다. 따라서 영미국의 역사와 문화와 당시 시대적 배경과 구체적인 사건들을 이해할 때에야 비로

소 의미가 제대로 읽혀질 것이다.

진실의 발견, 사색의 향연, 심사숙고의 조건

“바틀비 스토리”는 많은 법철학적, 신학적, 과학적 논쟁을 포함하여 많은 논쟁 거리를 다루고 있다.83 자

게 혼란시켰던 모든 가식들을 제거해 버리고 난 뒤 나타나는 진정한 인간의 본 모습을 알아내는 것보다 더 멋지고

더 다양하고 더 흥미로운 일이 다른 어떤 곳에 있다고 상상할 수 있겠는가? 오감을 통해서든 아니면 상상력을 통해

서든 이보다 더한 즐거움을 어디에서 찾아볼 수 있겠는가?” Hume, “Of The Study Of History” in “Essays and Treatises on

several subjects” (1758). 80 “칼빈주의는 신학적 지향점이지 교단이나 단체가 아니다. 청교도 역시 칼빈주의자들이었다. 장로교는 스코틀랜드

칼빈주의자들에서 나왔다. … 그러나 19세기 개신교는 인간이 스스로의 구원에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는 반칼빈주의

신념으로 돌아섰다. 이는 미국인들의 매우 본질적인 신념이다.” 뉴욕 타임즈, 2014.1.4. “Calvinism is a theological

orientation, not a denomination or organization. The Puritans were Calvinist. Presbyterians descend from Scottish Calvinists. But in the

19th century, Protestantism moved toward the non-Calvinist belief that humans must consent to their own salvation — an optimistic,

quintessentially American belief.” http://www.nytimes.com/2014/01/04/us/a-calvinist-revival-for-evangelicals.html 81 Translators to the Reader, Preface to the KJB 1611. 82 “Melville's Bartleby is conceivably one of the most enigmatic characters in all of American literature. In fact, libraries abound with

books, treatises, and articles by scholars, literary critics, lawyers, and psychologists, all of whom, in a manner reminiscent of Melville's

narrator, struggle to decipher the scrivener's strange "disorder." Ronner, A., “The Learned-Helpless Lawyer: Clinical Legal Education

and Therapeutic Jurisprudence as Antidotes to Bartleby’s Syndrome”, 24 Touro L. Rev. 601 (2008), at 605.

83 가이 팍스 사건이 일어난 1605년, 킹제임스성경이 출간된 1611년, 갈릴레오가 개량 망원경을 이용한 우주 천체 관

28

유의지와 선택, 자유와 구속, 공익과 사익, 이기심과 양심, 자기이익추구와 자선 등 인간 본성상 핵심적인

개념들이 다루어진다. 바틀비와 화자인 변호사를 비롯한 등장인물의 말과 행동 그리고 글속에 등장하는

키케로, 마리우스, 프리스틀리 등 여러 역사적인 인물과 사건들은 대부분 혁명과 개혁에 관한 논쟁적인

controversy 성격을 갖고 있다. 논쟁적인 사건의 경우 대개 진실은 표면에 나타나지 않고 이면에 숨어 있

는 경우가 흔하다. 하지만 진실을 발견하는 길이 평탄하지 않고 힘들다는 점에서 대개 사람들은 안이하

고 편안한 자세로 기존의 통설에 기울고 마는 경우가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영미국에서 논쟁적인 사건들

은 우리와는 다른 역사와 문화적인 차이 때문에 또는 지식과 경험이 다른 사실로 인해서 전체적이고 통합

적인 이해를 하는데 있어서 곤란함을 겪을 수 있다. (키케로의 개념에 대한 설명은 III부 13장을 참조하

라.)

다양한 표현 기법

“바틀비 스토리”에서 수사학적 표현 기법인 직유 은유 환유 제유 등 다양한 비유법이 구사되고 있다. 인

유법이 쓰인 문장이나 수사적 표현을 문자 그대로의 뜻으로 축자 해석 또는 번역을 시도하는 경우 오역

또는 독자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따라서 행간의 숨은 뜻을 정확하게 파악

할 수 있는 능력이 요구된다.

언어, 문화, 역사, 시각 차이

“바틀비 스토리”에서 언어의 의미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이 나타날 수 있다.84 또 역사와 문화적 차이로

인해서 문맥 속에 들어 있는 속 깊은 의미를 놓치는 경우가 있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서로 사랑하

라”-이 성경의 말씀을 “황금률 Golden Rule”이라고 보통 말하는데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서로 사

랑하라”는 이 단순한 말을 모르는 사람이야 아무도 없겠지만 정확하게 그 의미를 분석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으리라. 황금률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하려면 필연주의 철학, 공리주의

사상, 칸트의 순수이성 비판, 아담 스미스의 정치 경제학 등 서로 관련된 개념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

고, 또 황금률과 월 스트리트의 핵심적 가치가 어떻게 연계되어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황

금률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부 3장을 참조하라.)

“황금률”이란?-대안 alternative을 제시하는 새로운 이론

인간의 삶 가운데 의도와 표현이 불일치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나타난다. 겉보기와 속내가 다르고, 의도

와 표현이 달라서, 오해가 생기고, 분쟁이 끊임없이 발생하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일은 항상 그 일이

지나고 나야 본 모습을 제대로 알 수 있는 법, 사람은 죽을 때가 되어서야 죽음의 의미를 알게 되고, 인

생은 나이가 들어서야 이해가 되고, 사람들의 이야기는 끝까지 다 듣고 나야 서로 얽히고 설킨 사건들이

비로소 이해가 된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85-헤겔의 이 유

명한 말을 다시금 생각해 보자. 일반인의 생각에서는 바틀비의 무모한 투쟁은 한낱 풀 한 포기의 가치도

되지 못할 만큼 값어치 없는 죽음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영미국의 발전을 가져온 원천적 철학에 해당하는

측 보고서 출간 1610년, 네덜란드의 Arminian 알미니안주의자들이 칼빈의 예정론에 대항하여 5개 조항의 항변서를

제출한 1610년, 종교 전쟁 (1618년 개시), 유럽 각국의 동인도회사 설립 (영국 1600년), 당시는 언어 문화 예술적으로

는 셰익스피어가 활동하던 시기였고, 산업혁명에 앞서 ‘코페르니쿠스적인 혁명’의 시기였다.

84 Aames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What I gained from my reading is a troublesome sense of the vastly different meanings scholars

find in ‘Bartleby.'” “First a scholar assumes that ‘Bartleby’ has meaning, perhaps even a meaning. Then he reads other interpretations

of ‘Bartleby,’ only to find them inadequate explanations of the tale.” 85 “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ammerung ihren Flug.”

29

필연주의 결정론의 입장에서 본다면 그의 죽음은 하나님의 섭리에 따른 것이고 그 의미가 결코 적지 않다.

화자인 변호사가 바틀비의 죽음을 보고서 “세상의 왕과 고관대신들과 함께 잠들었다!”고 독백한 이유가 바

로 여기에 있다. 휴양지처럼 아늑한 사무실에서 부자 고객들의 일을 처리해주고 편안하고 안락한 생활을

영위하던 월 스트리트의 성공 변호사가 지금까지의 안락한 자기 만족의 삶에서 벗어나 인간 사회 전체를

향한 깊은 동정심과 뜨거운 인류동포애를 발휘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바로 바틀비의 무모한 투쟁에서

비롯되었음을 볼 때 바틀비의 죽음은 왕과 대법관들의 죽음에 비견된다. 사람의 헛되지 않는 죽음의 의

미를 통해서 인간의 삶이 개선되고 또 인간의 존엄성이 지켜지는 것이다.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즈는 말했다.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 죽는다. In the long run, we are all dead.” 케인즈

는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을 해결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는 인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설

파했다. 먼바다 항해를 하다가 폭풍우를 만나면 즉시 살아남을 방도를 강구해야 한다. 폭풍우는 결국

그칠 것이라는 믿음에 의존했다가는 난파당하고 말 것이다. 시간이 자연스레 해결해 줄 것이라는 자유방

임주의 사고로는 무너진 시장을 치유해 낼 수 없었다. "장기적으로 우리 모두 죽는다."-이 말은 높은 실

업률을 해결하려면 거둬들인 세금보다 더 많이 지출함으로써 정부가 인위적으로 수요를 창출해야 한다는

케인즈의 경제이론을 설명해 주는 말이다. 같은 말이라도 경제학자에게는 경제학의 논리로 쓰임새가 따

로 있을 수 있고 또 누가 그 말을 사용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가 있는데 보수적인 견해인지 아니

면 진보적인 견해인지 여부는 문맥에 따라 결정된다.

아담 스미스, 케인즈, 마르크스 등 인간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를 치유해 준 위대한 이론은 기존의 이론에

대항해서 새로운 각도에서 새로운 해석을 시도함으로써 태어났다. 구약에서 신약으로 세상을 혁명적으로

변화시킨 예수의 황금률을 보자. 황금률 Golden Rule은 ‘원래의 original’ 것에 기반을 두고 새롭게 등장한

‘제2의 secondary’ 원칙이고, 기존의 주류에서 ‘파생된 derivative’ 원칙이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

고 있는 기존의 이론에 ‘대항해서’ 새로운 ‘대안 alternative’을 제시하는 원칙이다. 황금률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에서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새로운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황금

률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III부3장을 참조하라.)

시대정신과 역사정신

“바틀비 스토리”에서 언급되는 많은 역사적 인물과 사건, 아스토르 Astor, 아담스 Adams, 바이런 Byron,

키케로 Cicero, 콜트 Colt, 에드워즈 Edwards, 왕과 대법관 Kings and Counselors, 마리우스 Marius, 먼로

Monroe, 페트라 Petra, 프리스틀리 Priestley, 싱싱 Sing-Sing, 스피첸버그 Spitzenbergs, 툼스 Tombs, 트리

니티 교회 Trinity Church 등은 구체적 사건 내용을 알지 못한다면 정확한 의미를 연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본문에 나오는 대로 뉴욕의 형무소 감옥을 속칭 “The Tombs”이라고 부르는데, womb과 tomb “움”

과 “툼”이란 단어는 음운과 철자법 (orthographically and phonetically)으로 서로 연결된다. “bomb”은 (본문

에서 “의사당 폭파 기도 사건 Gunpowder plot”이 암시되고 화염불꽃 등이 묘사되는데) 폭탄을 뜻하고 같

은 음율 rhyme로 연결된다. 또 복지국가 건설 구호로 잘 알려진 관용어구 “요람에서 무덤까지 from

cradle to grave”와 같은 뜻을 가진 관용어구 “뱃속에서 무덤까지 from womb to tomb”와 연결되는데 이 관

용어구는 “탄생에서 죽음까지 from birth to death”를 의미한다. Womb은 태아가 자라는 엄마 뱃속을 말하

고 tomb은 사람이 죽어 묻히는 무덤을 말한다. 아이를 밴 엄마의 배와 무덤의 솟아오른 모습이 비슷하다.

사실 tomb의 어원은 “솟아오르다”라는 뜻의 라틴어에서 유래한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무덤과도 같은 감

옥에 새싹이 돋아남을 묘사하고 있는 것과 구빈원에 대한 묘사 등에서 태아에서부터 죽음의 순간까지 모

든 인간의 생명은 고귀하고 존엄하다는 생각과 국민의 삶의 개선에 대한 국가의 원초적인 책임의식을 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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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수 있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바틀비와 키케로를 연결하는 끈은 ‘신출나기’의 개념일 것이다. 바틀비와 키케로는

키케로가 평민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상승한 신흥 지배층이라는 배경과 바틀비가 신규 이민자라는 사정은

‘신출나기 novus homo’의 어려움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며, 이런 해석은 키케로와 로마 시대 역사를 살핀

연후에야 비로소 두 사건이 서로 연결된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86

통합과 역동성의 가치에 대한 이해

“바틀비 스토리”속의 두 주인공격은 변호사 사무소 직원인 바틀비와 화자인 변호사인데 책 제목인

“Bartleby, the Scrivener: A Story of Wall Street”만을 보고서 “바틀비 필기사”가 가장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

을 것으로 여길 지도 모르지만 실제 내용을 보면 그렇지 않다.87 바틀비의 직업은 화자가 전달하고자 하

는 정확한 의미를 제공하는 하나의 도구로 쓰인 즉 대립적 이야기의 전개 장치에 해당한다. 바틀비는 상

대방인 변호사가 변화되는 과정과 그 중요성을 극대화하는 대칭적 구도에 놓여 있다. 반대로 화자인 변

호사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그가 단독적인 주인공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화자인 변호사는 자

신의 얘기를 하지만 그 중심내용은 상대방인 부하 직원에게 일어난 일이다. 따라서 바틀비와 변호사 이

두 사람 중 누가 더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단정하기 보다는 이 두 사람과의 ‘관계 relationship’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된다.888990

바틀비와 화자 이들을 각각 별개의 위치에서 이해하려는 경우 (대륙법국가의 프로이트, 라캉, 지젝 등 정

신분석학 이론가들이 이런 입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관계의 역동성을 놓치기 쉽고, 바틀비를 소외

된 노동자의 전형으로 분석하거나91 화자인 변호사의 한계에 초점을 맞추는 분석이92 주된 흐름을 형성하

는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비평이 나름 훌륭한 분석을 해놓고 있긴 하지만 분석적 한계를 노출하고 있기

86

다음과 같은 한 평자의 의견을 참조하라. “First a scholar assumes that ‘Bartleby’ has meaning, perhaps even a meaning. Then

he reads other interpretations of ‘Bartleby,’ only to find them inadequate explanations of the tale.” It is this seemingly logical search for

meaning that causes much of the critical chaos around “Bartleby.” It assumes that Melville himself set out to create a single unified

theme or to convey moral or meaning.” 87

“바틀비 스토리”에서 화자인 변호사가 말하는 “I”, “my” 단어는 500번이 넘게 나오는데 비해, 바틀비를 나타내는

“You’ 단어의 사용 횟수는 그것의 1/5의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제목이 “바틀비-the scrivener”이어서 주인공이 외양

적으로는 바틀비인 것 같이 여겨질지 모르지만 실제 내용은 바틀비가 아니라 화자인 변호사라는 것을 표현빈도로 알

수 있다. 그리고 문학에서는 작가가 문화나 사회적으로 소외된 인물을 내세워 문화적 가치나 사회적 관계를 설명하

려는 경우가 많음을 볼 때 바틀비나 또는 그의 직업이 갖는 의미보다는 변호사와 바틀비와의 관계에서 중요성이 파

악되어야 할 것 같다. 이들의 관계는 “월 스트리트 이야기 A Tale of Wall Street”라는 부제가 말해 준다. 88 Patrick W, “Melville’s Bartleby and the Doctrine of Necessity”, American Literature (1969), 41: 39-54.

89 필연주의 경험철학론에서 세상은 다른 것들과 서로 연결 고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발적인 사건은 일어날 확

률은 매우 낮고, 인과론에 따라 ‘필연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각 부분은 상호 의존하는데 그림 퍼즐 놀이처럼 고리가

하나도 빠지면 안되기 때문에 서로가 꼭 필요한 ‘necessary’ 부분을 이룬다. ‘Necessity’는 다른 부분과의 밀접한 관

계 connection가 강조된다. ‘필연’을 근대 과학 철학 용어로 순수 이성, 선험적인 가정, rational, pure, a priori 등으로

바꿔 쓸 수 있다.

90 니퍼즈와 터키는 서로 경쟁 관계에 있는데, “Nippers”와 “Turkey” 이름에서 “nip and tuck”라는 말이 연상된다. “nip

and tuck”는 막상막하, 용호상박의 뜻을 가진 관용어구이다. 별개의 단어가 서로 관계를 맺게 되면 새로운 의미를 나

타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91 Barnett, "Bartleby as Alienated Worker," Studies in Short Fiction 1 (1974)1, 379-85.

92 Springer, “Bartleby and the Terror of Limitation”, PMLA, LXXX, 420-428. (1965); Stein, “Bartleby: The Christian Conscience”,

Melville Annual, 104-112,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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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하다. 여기서 관계란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고용 계약관계뿐만 아니라 변호사의 직업 윤리 의무까지

확장적으로 살펴 볼 여지도 있고 자유 의지와 구속에 관한 필연주의 결정론으로 분석될 수 있는 등 여러

측면에서 다양하게 해석이 가능하다. 이들 사이에 전개되는 역동적인 관계를 제대로 파악할 때, 키케로

와 프리스틀리 등 열거되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들에서 서로 공유하는 의미들이 찾아진다.

이야기 속에 담긴 자유 의지와 공감의 원리 등의 주제는 프리스틀리의 필연주의 경험철학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고 또 (글 속에 아담 스미스를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에 대한

이해를 요구할 것이다. “바틀비 스토리”의 이야기 전개 구도는 진리를 찾아내고 사회 발전의 이끄는 정-

반-합 thesis-antithesis-synthesis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시사해준다. (판례법의 법률 해석 과정에서 통합 작업

의 실례를 설명한 III부 7장을 참조하라.)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바틀비 스토리”를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원문에서 구사하는 비유,

인유, 상징, 암시된 개념 등에 보다 자세한 주해를 달아야 할 필요성이 존재하였다. 주해의 분량이 많아

서 각주로써 읽기에 불편한 경우는 별도의 독립적인 글로 III부에 배치하였다.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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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바틀비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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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바틀비 스토리)

나는 이제 장년에 접어든 사람이다.93 지난 삼십 년간 종사해온 내 전문직업94의 성격상 나는 재미나고 다

소 특이한 집단의 사람들을 좀 특별하게 접해 왔다. 내가 알기로는 이들에 대해 다룬 글은 여지껏 없는

것 같은데 바로 법률-문서 필기사 또는 스크리브너95라고 부르는 사람들이다. 나는 직업적으로뿐만 아니

라 개인적으로도, 이들을 많이 알고 지내왔고, 따라서 내가 마음만 동한다면 마음씨-좋은 양반들은 너털웃

음을 짓거나, 다소 감상적인 사람들은 눈물을 흘릴지도 모를 정도로, 다양한 이야기 꺼리를 전개해 나갈

수가 있다. 그러나 내가 보거나 들어서 알고 있는 필기사 중에 가장 이상한 바틀비의 삶에 관한 몇몇 구

절만 남기고 다른 모든 필기사들에 관한 전기를 쓰는 일은 포기하고자 한다. 다른 필기사에 대해서라면

일생을 다루는 글을 쓸 수도 있겠지만 바틀비에 대해서는 그런 전기를 쓸 수가 없다. 나는 이 사람에 대

한 충실하고 만족스러울 정도의 전기를 쓸만한 자료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96 이는 문학에는 돌

이킬 수 없는 손실로 작용할 것이다. 바틀비는 원본 자료 말고는 어떤 것도 확인할 수 없는 그런 존재

중의 하나인데 그에 대해서는 그런 원본 자료가 매우 적다. 그와 관련해서 결말 부분에 등장하는 모호한

소문 하나를 제외하면 내 두 눈으로 직접 바틀비를 경험한 충격적인 사실 그런 정도가97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는 전부이다.

내게 처음 모습을 보인 필기사 바틀비를 소개하기 전에 먼저내 자신, 내 직원들, 내가 하는 일, 내 법률사

무소, 전반적인 주위 환경에 대해 약간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겠다. 왜냐하면 그런 설명을 어느 정도 해

놓는 것이 곧 등장할 주인의 성격을 충분히 이해하는데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먼저 내 자신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하기로 하자.

나는 젊었을 때부터, 그저 편안하고 쉽게 살아가는 삶이 최고의 인생이라는 신념을 확고하게 줄곧 견지

해 왔다. 그리하여, 나는 다들 알다시피 활력이 넘치고, 또 때론, 심지어 분격하기도 하는, 긴장의 연속인

직업에 속하고 있긴 해도 그런 격렬함으로 인해서 나의 평화가 깨뜨려지는 경우를 겪어보지 않았다. 나

는 어려운 배심원 재판을 맡거나, 대중의 찬사를 불러 일으킨 적이 없는 그런 야심 없는 변호사 부류에

속하고, 더욱이 아늑한 휴양지98같이 차분하고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돈 많은 부자들의 채권, 담보증권,

93 나는 나이가 꽤 든 사람이다. 나이든 사람 elderly man이란 어휘는 올더맨 alderman이 연상되는데 올더맨 alderman

젠틀맨 gentlemen은 지역의 법관, 정치행정을 담당한 지역 유지급 인사를 지칭하는 단어다.

94 “avocation”은 직업이라는 뜻에 앞서서 부업이란 뜻으로 통했다. 기독교 국가에서 본업은 하나님의 사명에 봉사하

는 천직 vocation은 성직자이면서 세속의 부업 avocation으로 변호사라는 직업의 일을 한다는 의미를 준다. 직업은 본

업과 부업으로 구분된다. 변호사는 최소한 두 개의 복수 학위 (당시에는 신학과 법학)를 가졌다.

95 “legal scrivener” 직업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부 9장을 참조하라.

96 “I believe~“이 말은 “자기 자신이 알고 있기로는”라는 뜻으로 자기 자신이 인지했거나 알고 있는 정도와 범위내에서

의 사실을 말하는 것이지 자신의 어떤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다. 증언은 자기 자신이 직접 오감으로 경험한 사

실에만 효력이 있고,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2차적인 정보(“전문 증거”)는 증언으로써의 효력이 원칙적으로는 주어지지

않는다.

97 단어의 강조 표시는 원문에서는 이탤릭체로 표기했다. 이탤릭체의 사용은 낱말의 강조를 의미하는데 이 책의 한

글번역에선 이탤릭체를 사용하는 대신 밑줄을 그어 표시했다. 자모음이 결합된 한글의 특성상 이탤릭체보다 밑줄 강

조가 더 분명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98 retreat는 휴양지, 별장, 기도원의 뜻을 갖는다. 바틀비의 은둔처를 hermitage라고 표현하는데, 허미티지는 수도원으

로써 포도밭을 일구면서 일과 공부를 함께 해나가는 곳을 말한다. 우리말의 은신처와 은둔처는 격리된 곳을 의미하

는데 도망자로서 몸을 피해 숨기고 있는 곳을 은신처라고 하고, 자기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조용한 곳으로 낙향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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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매매 업무를 주로 맡으며 안정된 변호사로 활동하고 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 모두는 나를

아주 안전한 사람이라고 여긴다. 최근 고인이 된 존 제이콥 아스토르99는 시적 정열 따위에는 거의 관심

도 없는 인물이지만 그는 내가 가진 제일 큰 장점이 신중함100이고, 그 둘째는 업무 체계성101에 있다는 것

을 말하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자랑하려고 하는 허영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만 있는 사실을 그대로 전할 뿐이라는 것, 다시 말해 고 요한 야곱 아스토르 또한 나의 고객에 속했다

는 사실이다. 내가 그 이름을 즐겨 반복 사용한다는 것은 나 자신도 알고 있는데, 그 이유는 그 이름은

혀 굴리기 좋은 둥근 홀소리 발음이어서, 금괴처럼 낭랑하게 울리기 때문이라는 점을 이해하기 바란다.

그리고 나는 고 요한 야곱 아스토르의 호의적인 의견에 내 자신 무감각하지 않다는 점을 거리낌없이 추가

하고자 한다. 102103

내가 이 단편 소설에서 말하려는 이야기가 시작되는 때 그보다 조금 앞선 시기에 내가 처리해야 할 일이

104 크게 늘어났다. 뉴-요크 주에서 지금은 없어진105 예전의 그 좋은 형평법 법원106의 판사107 자리가 내

경우를 은둔처라고 말하는 차이가 있다. 원문에서 자유 의지의 정도가 따라 구분되는 어휘를 사용한 경우 그에 따라

번역에서도 단어 선택에 신중을 기했다.

99 등장인물들의 성명은 이름의 상징성, 프라이버시 존중,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실명 대신

가명을 쓰고 하고 있는 가운데 이름과 가족성씨까지 그것도 두 세 번씩 거론하면서 강조한 인물은 “요한 야곱 아스토

르”이다. 아스토르는 당대 미국 재계 서열 18위에 오를 정도로 대부호이었다.

100 “신중 prudence”의 가치에 대해서 아담 스미스는 “도덕감정론” 6부1편에서 자세하게 논하였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부 4장을 참조하라.

101 여기서 말하는 “방법론 methodology”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명이 따를 수 있겠으나 일반적

으로 이해하면, 우선 개념을 정의 definition하고, 이에 따라 분류해 나가고, 그것을 다시 subdivision department 세분해

가는 체계적인 방법론이 떠오른다. 뒷부분에서 화자가 설명하는 대로 “전제와 가정 assumption”을 먼저 하고 그 바탕

위에다 자신의 것을 추가하는 일 처리 방식을 말하는 것 같다. 법조인들이 이런 체계성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아마도

동일한 개념에 대해 같은 정의 definition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합리적인 논쟁이 성립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

고 이와 같은 방법론은 뉴튼의 “내가 멀리 볼 수 있었던 것은 단지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있었기 때문이다 If I

have seen further it is only by stand on the shoulders of giants.”의 고백해서 알 수 있듯이, 선례를 통하여 새로운 창조를 일구

어 내는 통합적 방법론을 시사해 주는 것 같다. 만약 이상론에 반대되는 현실론 realism으로 이해한다면, 객관성

objectivity을 확보하는 객관적인 분석 objective analysis 태도를 취한 실증주의 positivism 방법론을 지칭하는 것 같다.

“I do not generate the object from the thought, but the thought from the object.” 콩트는 말했다: “과학으로부터 예측이, 예측으

로부터 행동이 나온다. Saoir pour prevoir et prevoir pour pouvoir.”

102 “I will freely add that I was not insensible to the late John Jacob Astor’s good opinion.” “거리낌없이 freely”는 뒤에 나오는

바틀비가 자주 쓰는 “prefer not to” 즉 탐탐치 않게 여기고 주저하는 모습을 말하는 recalcitrant이라는 말과 대비되는 단

어이다..

103 당대 최고 부호를 고객으로 두고 있는 변호사라면 돈과 지위를 함께 가진 성공한 변호사라는 것을 암시한다.

104 avocations은 본업 vocation에 접두어 a가 붙어 부업의 뜻을 갖는다.

105 뉴욕 주에서 1848년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형평법 법원 Equity Court; Chancery Court이 폐지되고 보통법 법원

Common Law Court으로 통합되었다. 형평법은 왕의 직속하에 설치되어 보통법원이 법적 엄격성을 너무 강조한 결과

보통법원에서는 구제받지 못하는 사건들을 취급함으로써 출발했다. 법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는 정의의 관념에서 보

통법 법원에서 외면받는 억울한 사람들을 구제하려는 취지에서 출발했던 것이다. 이렇게 형평법은 국왕의 직속 법원

으로 설치된 역사적 유래와 그 사명으로 인해서 “정의의 사도”라는 별칭이 붙었다. 형평법원의 최고재판관으로는 도

덕성이 매우 높고 정의감이 투철한 천주교의 주교 가운데서 임명되었다. 형평법원이 발전해 감에 따라 형평법원의

법관을 변호사들이 맡기 시작하였는데 “유토피아”의 저자 토마스 모어 (1478 –1535년)가 변호사 출신으로서 최초의

형평법원 수장이 되었다.

106 형평법 법원은 보통법 법원 Common law과 경쟁 관계에 있었다. 지금은 형식적으로는 통합되었지만 실제 내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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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주어졌던 것이다.108 그 자리는 크게 힘든 업무도 아니었고 매우 만족스러울 정도로 급여도 좋은 자리

였다. 내가 화를 내는 경우란 거의 없다. 불법행위와 중범죄에 대해 분개해 마지않는 그런 위험스런 행

동은 내게서 더더욱 볼 수 없다.109 하지만 여기서 내가 성급한 결론을 하나 내릴 수 있다면 새로운 뉴-

욕 주헌법에 근거하여 형평법 법원의 판사직이 갑작스럽고 일거에 폐지된 것은 그건 너무 섣부른 행동으

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밝히고자 한다.110 또한 그 자리는 평생 동안 유지하는 종신직111이었는데 나는 불

과 몇 년 밖에 혜택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이건 여담이다.112

내 사무실은 월 스트리트 00번지의 2층에 있었다. 사무실의 왼쪽 끝에서는 건물 맨 꼭대기에서 마루바닥

까지 관통하는 햇빛이 드는 널찍한 공간이 있고, 하얀 벽으로 마감된 내부가 보였다.113 이런 광경은 풍

으로 보면 아직도 각자의 법 전통이 강하게 유지되고 있다. 일부 주에서는 최근까지도 형평법 법원이 남아 있다.

법인격체인 회사의 경우는 인격체인 회사의 대표자가 행사하므로 어떤 사건이 종결되려고 하면 형평법 법원이 행사

하게 되었다. 형평법 법원 체계가 현재까지도 존재하는 대표적인 주가 델라웨어 주이다. 미국에서 절대다수의 회사

의 본사가 델라웨어 주에 법인 주소를 두고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델라웨어 법원은 회사에 관련된 일을 가장 전문적

으로 특화하여 형평법 법원의 역사와 전통을 유지해 오고 있어 기업들이 선호한다다.

107 형평법 법원에서 “마스타 Maser in Chancery Court”는 판사에 준하는 권한을 갖고 있고, 거의 전권을 행사하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행정부와 사법부의 경계가 매우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는 사법부 독립의 영미법 체계에서

기능적으로 행정부의 “관료(편의적)적 판단”과 사법부의 “사법적 판단”의 경계는 분명하게 (magistrate의 경우 불분명

하게) 나뉘어져 있다. 역사적으로 원래 “마스터”라는 자리는 어떤 사건이 대법관 판사에게 보고해야 할 사건인지 여

부를 판단하는 일을 하는 즉 대법관을 보좌하는 (사법 판단은 판사만이 할 수 있다) 자리이므로 엄격한 의미에서는

행정적 관료와 사법적 판사의 위치를 동시에 갖고 있는 자리였다. 이런 중간적이고 혼합된 성격은 대륙법 국가에서

의 검사의 자리에서 볼 수 있다. (1850년대 당시뿐만 아니라) 지금의 형평법 법원의 “마스터”라는 자리는 사법적 판

단을 내리는 사법부 판사의 위치에 속한다.

108 “Old Boy” 네트워크를 가진 변호사에 속한다. 권위와 전통은 자랑할만한 가치가 있고 대개 존경의 대상이 된다.

“old”가 들어가는 명칭은 대개 좋은 의미로 갖고 있다. 오래된 법원 건물을 자기 사무실로 쓰고 있다는 것은 오랜 전

통과 최고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109 법관의 덕목 중에 최고는 침착성에 있을 것이다. Horace: “aequam servare mentem (To preserve a calm mind;

equanimity).” 110

화자인 변호사가 형평법 폐지에 대해서 섣부른 평가를 경계하면서도 일단 형평법 법원 폐지에 찬성할 수 없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모든 면에서 신중하게 고려하고 섣부른 단정을 거부하였던 그가 왜 여기서 형평법 법원이 보통법

법원에 통합되는 법원 개혁에 대해서는 단정적으로 우려를 나타내는 것일까? 아마도 그 까닭은 진화론자들이 자유

방임주의자들과 마찬가지로 정부 개입을 반대하는 이유와 같은 맥락이다. 인간사회에는 자연 법칙같은 일정한 법칙

이 작용하고 있음으로 (예컨대 적자생존이나 만유인력의 법칙) 인위적인 강제 개입은 우려된다. 다른 이유는 인위적

인 강제 개입을 시도하게 되면 인간 사회의 본성상 아무리 선한 의도를 가진 시도라고 해도 결과는 엉뚱한 나쁜 결

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이를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이라고 부른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부 11장 의

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을 참조하라.

111 “종신직”은 “life lease”의 어휘를 쓴다. “Life Lease”는 물권법 법률용어로써 살아 있는 동안까지는 계속 권리를 향

유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연방대법원 판사는 죽을 때까지 평생 근무할 수 있는 종신직이다. 보통 판사직은

오래 근무하는 평생 직업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화자가 그 자리를 맡게 되었을 때 그도 오랫동안 맡을 수 있을 것

으로 여겼지만 갑작스럽게 형평법원이 폐지되고 보통법 법원으로 통합되는 법원 개혁 조치로 인해서 화자는 형평법

원의 판사직을 그만 잃게 되었다는 것이다. (N. Y. Field Code of 1848).

112 화자가 해고된 사정이 도입 부분에서 설명되는데 결말 부분에서 바틀비가 우체국에서 해고된 사정과 비교된다.

헌법과 행정부의 교체로 인해서 갑작스럽게 해고되었다는 점에서 이 둘은 동병상련의 위치에 있는 것 같다. 영국에

선 형평법 법원이 폐지되고 보통법 법원에 통합된 때는 1873년이었다. 뉴욕은 이보다 앞선 1848년에 양 법원이 통

합되었다.

113 빅토리아 시기의 건물의 특징을 묘사하고 있는데, 디킨스의 “황폐한 집” 소설에 묘사되는 법원의 건물 풍경과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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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화 화가에게 요구되는 “생동감”이 결여된 것 같고, 아니면 축 처진 모습 같았다. 하지만 사무실 반대편

에서 보이는 광경은 확연하게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쪽 방향으로 내 사

무실 창문114을 통해 보면 오래되어 거뭇해지고 늘 그늘진, 우뚝 솟은 벽돌담이 쭉 내려다 보였고, 그 숨

은 아름다움을 찾아내는 데 망원경이 필요하지는 않지만, 근시를 가진 구경꾼도 볼 수 있게끔, 유리창가

에서 약 3미터 안까지 벽이 바싹 붙어 있었다. 주변 건물들이 굉장히 높기도 하고, 또 사무실이 2층에

있는 관계로, 옆 담벼락과 사무실 사이의 간격은 거대한 정사각형115 물탱크와 적잖이 닮았다.116

바틀비가 새로 들어 오기 직전까지, 내 사무실 직원은 법률문서 필기사 두 명과, 장래가 촉망되는 한 소

년을 사환으로 두고 있었다. 이들 순서대로, 터키, 니퍼즈, 진저넛의 이름을 가졌다.117 이들 이름은 사업

자 명부에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 지 모른다. 사실 직원 세 명이 서로를 부르는, 별명으로, 각자의 외모

나 성격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된다. 터키는 키가 작고, 좀 뚱뚱하여 숨을 헐떡이는 영국인118이었는데, 나

이는 내 또래, 즉, 예순이 그리 멀지 않는 정도이었다. 그의 얼굴은 오전에는, 불그스름한 혈색이 좋다고,

보이는데, 일단, 낮 12시-그에게는 저녁시간119인-를 지나면, 석탄을 가득 넣은 크리스마스 때 피우는 벽난

로 불처럼 확 타올랐고, 계속 빛을 내 타오르다, 만사가 그렇듯이, 서서히 줄어들고, 오후 6시 무렵이 되

면, 사그라졌다. 6시 이후에는 태양과 함께 절정에 이르는, 그 얼굴 주인을 내가 더 이상 보지 못했는데,

그 얼굴은 아마도 해와 함께 지고, 일어나, 절정에 오르다, 다음날까지 사라지는 것 같았다. 이는 마치

규칙적이고 변치 않는 영광의 승리처럼 보였다. 내가 삶을 살아오면서 이 세상에는 기이한 우연들이 많

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는데, 터키가 붉고 환한 얼굴색으로 아주 즐거운 미소를 짓는 때, 바로 그 중

요한 순간이, 내가 보기에 하루 24시간 중 그의 업무 능력이 심각하게 떨어지는 시간대이고, 그 때 하루

일과가 시작된다는 것, 이 또한, 기이한 사실이었다. 그 시간 때에 그가 일을 아예 손 놓고 있다거나, 업

슷하다.

114 원문에서 “dead-wall window”, “my windows”, “his window” 표현을 쓰고 있다. 보스가 자리잡은 곳은 창문이 두 개

이상인데 비해 부하직원은 창문도 없이 막힌 구석진 곳에 자리잡고 있는 모습이 연상된다. 변호사의 사무실 위치는

고층빌딩에서 주변경관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 view 있는 창가를 가장 선호한다. 요즘의 “먹방”이라는 법조 은어는 창

문도 없이 꽉 막힌 구석진 방에 자리잡고 있는 신참 변호사를 의미한다. 대저택에는 방 room이 많은데 대개 주택 가

격의 차이는 방의 수로써 결정된다. 방은 빛이 들어와야 좋으므로 창문은 방마다 달려 있게 되고 그리하여 창문 숫

자가 부의 척도로 여겨졌다. 오늘날 시내 전체가 조망되는 펜트 하우스는 부유층의 전유물인데, 빛이 드는 창문의

숫자가 부의 척도를 나타냈다. 영국에서 창문의 수에 따라서 세금을 매겼는데 이로 인해 세금을 줄이려고 창문을 벽

돌로 막아버리기도 했다. 영국에서 그 동안 150여 년간 시행되어 오던 “창문세 window tax”가 폐지된 때는 1851년이

었다.

115 왜 법원은 정사각형 구조 court를 선호할까? 궁정이나 법원의 건물 구조는 대개 사각형 구조를 띈다. “four corners

rule”라는 법해석 원칙이 있는데 여기서 four corners”는 글이 써진 4각형의 문서 종이를 말한다. 법관은 문서에 써진

문구로써 해석하지 다른 별도의 보충 자료를 필요치 않는다는 법 해석 원칙을 말한다. 또 4각형 종이는 균등, 평등

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군대 병영의 막사나 사무실을 쿼터라고 부른다. 천막을 치고 외국인들이나 피난민들을

임시 수용하는 곳을 ‘쿼터’라고 말한다. 보통법원의 초기 형태는 지방을 순회하면서 열린 순회재판소이었다.

116 당시 뉴욕에서 가장 높은 빌딩은 1850년에 지어진 트리니티 교회 (영국 성공회 소속)이었고, 그 높이는 284피트

(약86m)에 달했다. 당시 뉴욕 인구수는 약 50만 명이 조금 넘는 대도시로 급팽창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 높은 빌

딩에서 뉴욕시가지를 조망하기 위해서 성당 계단을 오르는데 1실링을 지불했다고 한다.

117 등장 인물의 이름 속에 내포된 의미에 대한 설명은 III부 9장을 참조하라.

118 1806-1807년 영국과 터키는 전쟁을 벌였고 (이후 세계1차 대전에서 적대국으로써 맞선) 영국(기독교)과 터키(이슬

람)는 역사적, 종교적으로 적대관계였다.

119 “Dinner over”라는 말에서 영국 이민자라는 암시가 들어 있다. 다른 사람들은 정찬 the big meal of the day이 저녁

만찬 dinner이지만 그에게는 점심이 정찬 dinner라는 의미인 것 같다. 그가 저녁에 먹는 음식은 저녁식사 Supper라

는 말을 쓸 것 같다. 영국식 간단한 아침 식사를 “English breakfast”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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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를 마다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제는, 그가 지나치게 원기 왕성해진다는

데 있었다. 그는 특이하고, 흥분하고, 당황하고, 변덕스러운 행동으로 부주의하고 경솔함을 나타냈다. 그

는 잉크병에 펜을 담그면서 조심하지 않는 듯 했다. 내 서류들에 그가 남긴 잉크 얼룩들은 모두, 정오,

12시120를 넘긴, 오후에 떨어뜨린 것이다. 실로, 터키는 오후만 되면 경솔해지고 또 얼룩을 만들어 사고를

칠 뿐만 아니라, 어떤 날에는 더 심한 경우도 있고, 또 소란을 피우기도 했다. 그럴 때는, 그의 얼굴 또

한, 무연탄 위에다 검은 숯댕이불을 붙여 댕긴 것처럼, 화염에 쌓인 깃발마냥 시뻘겋게 달아 올랐다. 그

는 의자로 불쾌한 소음을 내고, 또 모래통을 쏟기도 하고, 또 펜을 고치려고, 안달하다가 산산조각이 나자,

불 같은 성미로 바닥에다 홱 내던져버리고, 또 자리에 일어서서 탁자 위에 기대어, 엉망진창으로 서류를

뒤섞여 쌓아두기도 했는데, 이런 것은 그처럼 나이 지긋한 사람의 행동으로 보아주기에는 매우 민망한 정

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는 여러모로 내게 무척 중요한 사람이고, 또한 12시, 정오가 되기 전까

지는 가장 빠르고, 꾸준한 존재로써, 쉽게 견줄 수 없는 방식으로 대단한 분량의 일을 완수했는데 이러한

이유로 인해서, 비록 내가 그에게 가끔, 잔소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나는 그의 기행을 기꺼이 눈감아

주었다. 그러나, 타이르더라도 아주 부드럽게 했는데, 그 까닭은 그가 오전에는 매우 정중하고, 아니 더

없이 온후하고 공손한 사람이지만, 오후에는 자극을 받으면 말투가 약간 급해지는, 사실상, 무례해지는 경

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분명히 내가 말한 대로, 그의 오전 근무를 높이 평가하고 있어서, 그를 내보내지

않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12시 이후 나타나는 그의 불 같은 태도가 불편했다. 나는 사태를 평

온하게 해결하려는 사람이라서, 혹시라도 그의 험악한 반박을 불러 오지 않도록, 그를 면전에서 야단치는

것은 삼갔고, 대신 어느 토요일 오후에 내가 시간을 따로 내서 (그는 토요일이면 언제나 더 심해진다), 아

주 부드럽게, 넌지시 말해보기로 했는데, 이는 이제 그도 늙어 가고 있고, 그러니 근무를 단축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12시 이후에는 사무실에 나올 필요가 없이 점심 식사 후에 바로

숙소로 귀가해서, 오후 차 마시는 시간121때까지, 조용히 쉬고 있는 것이 가장 좋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안된다고 말하며, 그는 헌신적인 오후 근무를 고집했다. 그가 긴 자로 사무실 맞은 편 끝을 겨냥하는 동

작을 보이면서까지- 만약 자신의 오전 근무가 필요하다면 그렇다면 오후 근무는 더더욱 꼭 필요하지 않겠

는가? 하면서, 내게 웅변조로 장담할 때, 그의 얼굴색은 참기 힘들 정도로 뜨겁게 달아 올랐다.

“존경하는, 변호사님,”122 터키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저 스스로 변호사님의 오른팔이라고 생각합니다. 오

전에는 그저 부대원들을 소집해서 배치시키면 되지만, 오후에는 제가 직접 부대의 선두에 서서, 적진으로

용감하게 돌격합니다, 이렇게 말입니다!”- 그러면서 터키는 자를 들고 격렬하게 찌르는 시늉을 했다.

“하지만 터키, 얼룩은?” 이렇게 내가 말하며 넌지시 비추었다. .

120 ‘정오’ 시간은 시간의 중요성 time is of essence과 결정적인 순간 critical moment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121 tea-time, 오후 티타임 휴식 시간은 전통적으로 오후 4시경에 갖는다.

122 “존경하는, 변호사님”은 원문의 “with submission, sir,”이란 표현인데, 이 말은 상대방이 공적으로 지위가 높을 때 공

손함 the sense of humility을 나타내는 관용적 표현이다. 법정에서 “with submission”을 쓰면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면

서 자기 의견을 나타날 때 쓰는데 “존경하는 재판장님”이란 정도의 뉘앙스를 갖고 있다. “존경하는, 변호사님” 이렇게

쉼표를 넣는 까닭은 존경의 대상이 법관이란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말한 논리가 타당하기 때문에 수긍한다는 것

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사람의 지위를 보고서 무조건 고개를 숙이는 경향이 커서 쉼표 없이 “존경하는 변호사님”이

라고 표현할 것이다. (우리말에는 한자문화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쉼표 물음표 등 문장부호를 활용하는 글쓰기가 발

전한 것은 아니었다). “With submission” 이 말을 법정에서 쓰는 것을 들어보긴 했지만, 봉건제가 폐지된 오늘날 흔히

쓰는 말투는 아닌 것 같다. 오늘날 변호사들이 법정에서 이런 종류의 말은 "with all due respect" 또는 "with respect to

my learned opponent" 이런 표현을 선호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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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사실입니다,-하지만, 존경하는, 변호사님, 이 머리카락을 보세요! 저는 나이를 먹어가고 있습니다.

변호사님, 나른한 오후에 얼룩 한 두 점이 나온다고 해서 이렇게 머리가 희끈희끈해진 사람을 심하게 문

책할 정도는 아닙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설령 문서 한 쪽 전체를 얼룩지게 할지라도- 존중받을 만합니

다. 존경하는, 변호사님, 우리 둘 다 같이 늙어가고 있어요.”

이렇게 동료 의식123이라는 감정에 호소하게 되면 내가 이에 저항하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내가 무

슨 수를 쓰더라도, 그가 일찍 퇴근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눈치챘다. 그래서 그가 그대로 남아 있도록 내

버려두기로 생각을 굳혔고,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오후 시간에는 덜 중요한 서류를 다루게

해야 한다고 다짐했다.

내 직원명부에 두 번째에 올라 있는 니퍼즈는 구레나룻수염을 기르고, 창백한 얼굴인데, 대체적으로, 약간

해적같이 보이는 스물다섯 살 가량의 젊은이였다. 나에게는 언제나 그가 두 가지 사악한 권력-야망과 소

화불량-의 희생자로 보였다. 야망은 단순한 필기사에게 요구되는 일을 참아내지 못하는 어떤 성향, 예컨

대 법률문서의 원안 작성처럼, 엄격히 전문가124의 영역에 속하는 일에 주제 넘게 끼어드는 것에서 포착되

었다. 소화불량은 간혹 신경질적으로 성미 급하고 또 이를 드러내며 짜증을 낸다든지, 필사중에 실수를

저지르면 소리나게 이를 간다든지, 한창 열 올려서 일하는 가운데, 입안에서 쉿쉿거리며, 쓸데없는 악담을

내뱉는다든지, 특히 그가 일하는 책상 높이에 끊임없는 불만을 표한다는 것으로 나타나는 듯했다. 니퍼

즈는 기계를 만지는 데는 매우 뛰어난 재주가 있지만, 자기 책상 하나 자기 마음에 맞게끔 조절할 능력이

없었다. 그는 책상다리에, 종이 판지조각 등, 갖가지 종류의, 토막들을 넣다가, 마침내는 압지를 여러 번

접어서 절묘한 조정을 시도해내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떠한 새로운 시도도 답이 되지 못했다. 만약, 그

의 등을 편안하게 하려고, 책상 뚜껑을 턱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각도로 높이고, 책상을 마치 네덜란드식

가파른 집 지붕처럼 이용해서 글을 쓰고자 할 때면, 그의 두 팔이 저려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와는 다

123 변호사는 동료 의식 fellow feeling이 매우 강한 집단에 속한다. 동료 의식은 법조인들의 관계를 이어주는 기초적인

개념인데 이것은 자신이 상대방을 공정하게 대우하면 그 상대방 또한 자신을 공정히 대우할 것이라는 상호 호혜성에

기초한 관계이다. “association”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 III부 2장 연상주의 이론을 참조하라.

124 변호사는 특수한 의무를 부담하고 있는 전문가에 속한다. 변호사는 직원을 고용해서 즉 분업을 통하여 업무의 효

율성을 높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직원에게 대신 떠넘길 수 없는 일 즉 자신이 직접 해야만 하는 고유의 업무 영역이

존재한다. 예컨대 증인의 선서를 주재한다든가, 법으로 자기 자신에게만 주어진 일 등을 처리할 때는 직원에게 대신

떠넘길 수 없고 자신이 직접 손수 처리해야만 한다. 변호사가 부담하고 있는 의무의 성격상 변호사가 남의 이야기를

그대로 받아서 문서 작성만 해 주는 “대필” 성격의 업무를 맡지는 않을 테고 또 설령 대필 정도만 했다고 해서 변호

사 자신의 전문가 책임 의무를 면책 받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바틀비 같은 법률 사무소 직원이 제한적으로 대필

해 주는 경우 고객은 전문가 책임을 묻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제 국가에서 공무원은 상하관계에

있고 결재 제도를 택하고 있으므로 공무원은 상관의 지시 사항에 따르면 대개 면책되기 때문에 공무원 자신의 고유

업무 영역이 존재한다는 사고는 엄격하게 구별해 내기 어렵다. 우리나라는 예컨대 사법적 판단을 행사하는 검사 마

저 행정부의 편의성이 우선하여 “검사 동일체”라는 허구적 법리(한국에서의 검사는 실질적으로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헌법적 기관이고 사법적 판단이란 독립성을 의미하고 독립성이란 수직적 수평적으로 독립된 결정을 내린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런 측면에서 한국의 검사는 결재 지시 제도에 기반하는 국가 대리인 모델을 따르고 있으므로 사법 판

단의 독립성 원칙에는 부합되지 않는다)를 신봉하고 있는 형편이므로 일반직 공무원들에게 개인의 고유 업무의 개인

책임 의무를 부담시키기 어려울 것이다. 대륙법국가의 직업공무원제도에서 공무원은 국가의 지시를 행하는 대리인의

지위이므로 언제든지 명령만 내리면 다른 곳으로 전출입이 가능하고 따라서 자신이 직접 처리하고 그에 개별 책임을

묻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륙법국가에서 개별적 책임이 설령 존재한다고 해도 결국은 국가책임으로 귀결될 뿐이다.

현재 행정부에서 기안자 또는 담당자 실명제를 실시하는 것은 공무원에게 법적 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이 아니라 행정

편의상 관리 의무를 높인다는 차원이지 영미법 국가처럼 법적 책임을 부담시킨다는 의미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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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게 책상 높이를 허리춤까지 낮추고서, 책상 위로 몸을 구부려 글을 쓰려고 하면, 이번에는 그의 등이

따끔거리게 아팠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안의 진실은, 니퍼즈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지 못했다

는 것이다.125 그게 아니라, 그가 원하는 것이 달리 있다면, 그것은 필기사의 책상을 아예 치워버리는 것

이었다. 그의 병든 야망의 표출 가운데는 그가 자기 고객이라고 부르는, 초라한 외투를 입은 정체불명의

친구들이 방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도 끼어있었다. 사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그가 때로는, 꽤 중요한

지역 정치가였을 뿐만 아니라, 간혹 소액전담법원126에서 사소한 업무도 보았으며, 더 툼즈127 형사 법원

주변에서도 조금 알려진 인물이었다. 그러나, 내 사무실로 니퍼즈를 찾아와, 거드름을 피우며, 자기가 그

의 고객이라고 주장한, 한 사람이 다름아닌 빚쟁이였고, 부동산 소유권 증서라고 주장한 것은, 어음장128에

불과하였다는 사실을 믿을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러나 그의 이런 모든 결점과, 그가 내게 끼친 여

러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니퍼즈는 같은 영국 출신인 터키와 마찬가지로 내게 매우 필요한 사람이었다.

그는 깔끔하고, 민첩하게, 필기를 했고, 제 마음이 내키면, 신사적인 태도를 충분하게 보여주었다. 여기에

덧붙인다면, 그는 항상 신사답게 정장을 입고 다녔는데, 말이 나온 김에 첨언하면, 그런 모습이 내 사무실

의 신망을 더해주었다.129 반면에 터키에 대해서 말하자면, 나는 그가 내 사무실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많은 신경을 곤두세워야 했다. 그의 옷은 기름때에 찌든 모습인데다 음식점의 찌꺼기 냄새

를 풍기기 십상이었다. 그는 여름에 바지를 아주 헐렁하게 입고 다녔다. 그의 외투는 매우 초라했고 그

의 모자는 집어 주기 민망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가 영국인답게 타고난 예의바름과 정중함을 갖추었고,

또 서로 믿을 수 있는 영국인인 만큼, 사무실에 들어오는 순간 항상 모자를 벗기 때문에,130 모자는 내게

상관이 없지만, 그가 입은 코트는 별개의 문제였다. 그의 코트 복장에 대해서, 내가 그를 설득해보았지만,

효과가 없었다. 내가 그 까닭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니, 사람은 소득이 매우 초라할 정도로 적으면, 그

토록 윤기 나는 얼굴과 윤기 나는 외투를 동시에 뽐내고 다닐 수는 없다는 사실에 있었다. 언젠가 니퍼

125 변호사는 문제의 핵심이 어디에 있고, 어떤 결과를 원하는지 그 내용을 우선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고객이 원하는 대로 예컨대 트러스트 설립 조건 등의 법률 문서를 작성할 때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 지를 분명하게

알지 못하면 (고객 자신도 포함된다) 문서를 정정하고 수정해야 하는 반복적 수고를 하게 된다. 고객의 요구 지시

instruction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126 사소한 교통법규 위반이나 소액 사건을 다루는 소액전담법원 (뉴욕주에서는 “Justices’ Courts”으로 불렀다) 이곳에

서는 변호사의 개입이 꼭 요구되는 곳은 아니다. 소액사건인 경우 서로 원만하게 합의 해결하려는 노력이 시도되는

곳이기도 하여 변호사의 개입을 꺼리는 경우가 있다.

127 더 툼즈 형사 법원 건물은 1836년에 설치되었다. “더 툼즈 The Tombs”는 “툼즈 (공동묘지)”라는 무시무시한 그 이

름이 말해주듯이 흉악범을 다루는 형사 법정과 중범죄인을 수감하는 감방이 있는 그곳의 속칭이다. 더 툼즈에 해당

하는 영국 런던의 표현은 “올드 베일리 Old Bailey”이다. “뱃속에서 무덤까지 from the womb to the tomb"는 복지구호로

잘 알려진 “요람에서 무덤까지”의 말과 같은 뜻이다. “무덤”은 죽음을 뜻하고, “잠들었다 fell on sleep”는 표현은 사람이

“죽었다”는 뜻의 유퍼미즘 euphemism에 해당한다. 유퍼미즘은 당사자가 가질 수 있는 정서상의 거북함을 순화시키는

간접 어법의 표현 방식이다.

128 주식이나 채권의 소유권 증서하고 어음장은 그 증서 모양이 비슷하다. 흔히 “어음이 부도났다”고 말하는데 어음

증서의 모양은 비슷할지 모르지만 부동산 소유권 증서하고는 법적 효력에서 큰 차이가 난다. 원문에서 “bill”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여기의 “bill”은 법원 소장을 bill, 영장을 bill, 어음장을 bill이라고 하므로 여러 가지로 해석이 가능한

문장이다.

129 변호사 사무실 근무 직원들이 단정하게 정장을 차려 입는 까닭은 그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인간 세상이나 만물

의 움직임에는 인과법칙이 작용한다는 사고에서 상대방에게 정중하게 대하면 상대방도 나에게 정중하게 대할 것이라

는 “self-fulfilling prophecy 자기 실현적 논리”가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 같다.

130 영미국의 문화는 “실내에선 모자를 쓰지 않는 것 No Hats Indoors”이 에티겟이다. 특히 미국 군대에선 예의범절의

차원을 넘어서 엄격하게 지켜지는 규율에 해당된다. 종교적인 의미에서 빵모자(야물케 또는 키파라고 부른다)를 쓰는

유태인이라고 해도 미국 군대에서는 실내 모자 착용이 금지된다. (Goldman v. Weinberger 475 U.S. 503 (1986)). 우리나라

에서는 실내에서도 모자를 착용하는 문화이기에 영미인들의 에티겟의 중요성을 실감하기 어려울지 모른다.

41

즈가 목격한 대로, 터키의 돈은 주로 값싼 적포도주를 구입하는데 쓰여졌다. 어느 겨울날 나는 터키에게

매우 고상하게 보이는 내 코트, 부드러운 솜털이 들어간 회색 코트로써, 매우 편안하고 따스했고, 무릎에

서 목까지 단추가 달려 있는, 한 벌을 선물로 주었다. 나는 터키가 내 호의를 고맙게 여기고, 오후만 되

면 나타나는 그의 경솔함과 난폭스러움이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그렇지 않았다. 그렇게

솜털 담요같이 포근한 코트를 감싸고 단추를 꽉 채워주는 것이 오히려 그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었다고 나

는 진정 믿는다.131 말에게 귀리를 너무 많이 주면 오히려 말에게 해롭다132는 속담과 마찬가지에서 말이

다. 사실, 경솔하게 날뛰는, 말이 귀리를 먹으면 더욱 날뛴다는 속담과 꼭 같이, 터키도 코트를 입고서는

더욱 잘난 체했다. 코트가 그를 건방지게 만든 것이다. 그는 물질적으로 풍요해지면 오히려 망쳐지는

그런 사람이었다.133

터키의 자기 방종의 습성134에 관해서는 내 나름대로 대략 짐작할 수 있지만, 측은한 니퍼즈에 대해서는

그가 다른 방면에서 어떤 결함이 있던 간에, 적어도, 자기 절제를 할 줄 아는 젊은이라는 것을 나는 사뭇

확신하고 있었다.135 그러나 사실, 그는 타고난 천성대로 살아가고, 또 쉽게 흥분하고, 술기운이 있는 성

격을 타고나서, 별도로 음주할 필요가 없었다. 조용한 내 사무실에서, 니퍼즈가 가끔 벌떡 자리에서 일어

나, 탁자위로 몸을 구부리고, 팔을 넓게 벌려, 책상 전체를 붙잡고는, 마치 책상이 자기를 방해하고, 괴롭

힐 의도를 가진, 악의적인 임의 대리인이라도 되는 양, 이리 움직이고, 저리 획 내치면서, 책상을 바닥에

심하게 갈아대는 행동을, 어떻게 할 수 있다는 건지 생각해 보면, 니퍼즈에게, 술과 물은 둘 다 불필요하

다는 것을 확실히 인식하게 된다.136

131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 unintended consequence”에 대해서 III부 11장을 참조하라.

132 “한꺼번에 너무 많이 주면 배가 거북스럽게 불러오고 소화불량을 가져오게 된다.” “고마움을 모르는 사람에겐 호

의를 베풀어도 소용이 없다.”

133 여기서 자선 charity에 대한 기본적 인식이 드러난다. 자선에 대한 보다 자세한 이해를 하기 위해서는 영미법에서

의 “구빈법 Poor Law”의 기본 개념과 변천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영국에서 1601년 처음으로 국가가 나서서 가

난한 사람을 구제하려는 구빈법이 제정된 이후 산업 노동력이 크게 부족할 당시인 1834년 영국은 구빈법을 개정하였

는데 “New Poor Law 신구빈법”의 기본적인 관념 하나는 “열등처우의 원칙 the principle of less eligibility”를 도입한 것이었

다. 열등처우의 원칙이란 산업 자본주의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노동력이 부족해졌는데 노동 의욕의 저하를 막기

위해서는 국가의 빈민 구제 대상자에게 지급하는 생계 보조금은 사회의 가장 낮은 계층이 받는 임금수준보다 더 적

어야 한다는 기준이었다. 국가가 생활보조금을 지급하는데 있어서 최저 생계비 이상을 지급하면 다른 사람들(현재

일을 하고 있어서 생계비 지급 대상이 아닌 사람들)이 일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일하면서 받는 임금 수준보다 일하

지 않고 대신 국가에서 생계보조비를 받는 금액이 보다 많다면 누가 일을 하려고 하겠는가?)이라는 전제가 이 원칙의

바탕을 이루고 있었다.

134 자기 방종 self-indulgent과 자기 통제 self-control는 서로 반대 개념이다.

135 당시 “금주 운동” (예컨대 The Drunkard's Progress)이 힘을 얻어가고 있었다. 처음으로 메인 주에서 금주법이 제정

된 때가 1851년이었다.

136 포이에르바하 Feuerbach의 “기독교의 본질 The Essence of Christianity”은 1841년 독일어 초판 되었고, 조지 엘리

어트의 영어 번역판이 1854년 출간되었다.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에서 설명한 대로, 인간은 물(자연의 힘)

과 술(인간의 힘)을 필요로 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물은 육체의 불순물을 제거해 줄 뿐만 아니라, 물 속에서는

눈에 씌어진 비늘이 벗겨지므로 보다 분명하게 볼 수가 있고, 보다 분명하게 생각하고, 보다 자유롭게 느낄 수 있다.

물은 탐욕의 불길을 끄고 없애준다. 물 속에 들어가면 불타는 개인 이기심이 줄어들고 사라진다. 물은 마음과 육체

의 병을 치료하는 효력을 가졌다. 하지만 물이 가진 신성성은 보충될 필요성이 있다. 물은 자유와 평등의 근원적인

요소이다. 물은 인간에게 자연의 힘을 상기시켜주지만, 인간은 또 한편으론 동식물과 같은 자연과 구별되는 존재이

다. 인간은 포도주와 빵으로부터 자기 만족을 얻는다. 사람들은 물에서 자연의 순수한 힘을 찬미하고, 빵과 포도주

에서 인간의 마음과 의식의 초자연적인 능력을 찬미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세례에서 물을, 성만찬에서 포도주를 상

징적으로 사용하고 있고 가장 기본적인 예식으로 여긴다.

42

니퍼즈가 툭하면 짜증내고 그에 따른 신경과민이 그것의 특이한 원인-소화불량- 때문에, 주로 오전에 나타

나고, 오후에는 그가 비교적 순해진다는 사실은 나에게 다행이었다. 터키의 발작은 12시경이 되어서야

시작되므로, 두 사람의 기행을 한꺼번에 상대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이들의 발작은 경비병의 근

무 교대처럼 서로 번갈아 이어졌다. 니퍼즈의 발작이 시작되면 터키의 발작이 그쳤고, 그 반대도 마찬가

지였다. 이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나마 다행스런 자연의 배려였다.

내 사무실 직원 중 세 번째인 진저넛은 열 두 살쯤 된 소년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짐마차 마부였는데,

자기가 죽기 전에 아들이 마부석 대신 판사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기를 열망했다. 그래서 그는 아

들을 주당 1달러137를 받고, 법학도138이자, 심부름꾼이자, 바닥을 쓸고 닦는 청소부로서 내 변호사 사무소

에서 일하게 만들었다.139 진저넛은 자기만의 자그마한 책상을 갖고는 있으나,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책

상 검사를 해보면, 서랍에는 여러 가지 견과류 봉지들이 수북했다. 실로, 머리 좋은 이 젊은이에게는 위

대한 법학이라는 학문 전체가 하나의 과일 열매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140 진저넛이 하는 업무일 뿐만

아니라, 그가 더 없이 민첩하게 수행하기도 하는 일은, 터키와 니퍼즈에게 빵과 사과를 배달하는 임무였

137 당시 1850년대 노동자의 평균 임금은 얼마였을까? 당시에도 소년 노동 착취 금지법이 존재했다. 당시 직물 공

장에서 하루 일하고 받는 급료가 25센트에 불과했다. 막노동자의 하루 급료는, 72센트-$1.12이었다고 한다. 1860년,

막노동자의 하루 품삯이 96센트-$1.25이었다고 한다. (Margo, “Wages and labor Markets in the U.S” at 33). 변호사 사무소

에서 12세 소년이 장차 변호사가 되기 위한 도제 수업을 받는 조건으로 주당 $1의 임금을 받았다면 그건 소년 착취

의 수준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보여진다. 세계 최고 갑부이자 최고의 자선가로 유명한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15살

때인 1850년 피츠버그 전보 회사에 사무실 심부름꾼 소년으로 취직하여 주당 $2.50 급료를 받았음을 상기하라.

138 변호사 사무실 수습 사원의 급여 수준이 박봉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변호사 감독하에 법 지식과

법 실무를 배우고 익히면서 변호사가 되는 길을 걷고 있는 도제 신분이었기 때문이다. 예전의 변호사 제도는 변호사

사무소에서 일하면서 법률 지식을 배우고 익혀서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면 변호사로 임명되는 도제식 법조인 교육 제

도이었다. 하바드대 로스쿨이 설립된 때는 1817년이었다. 미국의 일부 주(캘리포니아주)는 현재까지도 로스쿨 대학

학위를 수여받지 않고서도 대신 변호사 사무소에서 도제식으로 일정 기간 일하고 배우고 나서 (로스쿨 이수 요건을

면제받는다)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면 정식으로 변호사로 임명되는 도제 방식을 아직까지도 유지해 오고 있다.

139 오늘날 “Law clerk”는 변호사 사무소에서 도제 수업을 받는 법학도뿐만 아니라 로스쿨을 졸업하여 판사 시보 등으

로 근무하는 법조인을 지칭한다. 오늘날은 선진국은 거의 고등학교까지 의무 교육 제도이기 때문에 최소한 14-16세

정도까지는 학교 교육을 받아야 하고 또 파트타임으로라도 일할 나이는 최소 12세 이상은 넘어야 가능하다. (현재

미국의 경우 의무 교육 16세까지, 일할 수 있는 최소 나이 14세 이상).

140 Nutshell은 땅콩이나 아몬드처럼 씨를 가진 과일을 말하고, “in a nut-shell”은 관용어구로써 핵심 요점을 간결하게

정리해 놓은 것을 뜻한다. 링컨 대통령이 독학으로 공부하여 변호사가 된 때는 1836년 이었다. 물론 링컨 대통령이

독학으로 공부하여 변호사가 되었다는 얘기는 과장된 측면이 많다. 왜냐하면 링컨이 변호사로 임명된 주된 요인은

그가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고 활동하면서 여러 가지 법률 제정에 큰 기여를 하는 등 이미 법조인으로서의 능력을 널

리 인정받았다는 사실을 참작하여 법원이 특별하게 변호사로서 임명장을 수여했기 때문이다. (영미법은 사법부 국가

이기에 변호사는 법원에 의해서 최종 임명된다. 그리고 의회 의원은 법률 제정의 임무를 담당하고 민원을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있으므로 변호사로서의 업무 처리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간주된다. 영미법국가에서는 독학으로 변호사

가 될 수 있는 길은 없다. 여기 문장 부분은 법률 과목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서 핵심 요점이 잘 정리된 요약집을 통

해서 시험 공부하는 모습을 암시하는 것 같다. 화자 변호사가 “실로 머리 좋은 이 젊은이에게는 위대한 법학이라는

학문 전체가 하나의 과일 열매 속에 담겨 있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법학이라는 큰 학문은 하나의 간결 요약

집으로는 이해될 수 없다는 점을 역설적인 표현으로 강조하는 것 같다. 법은 “6법전서”를 통째 암기한다고 해서 이

해될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독일이나 프랑스 등 대륙법 국가들에서 하나의 통일된 법체계를 완성하

려고 (예컨대 나폴레옹 법전) 시도했던 거대한 야망은 (통일적으로 체계화하려는 노력 그 자체에 대한 의미는 차치하

고서) 결국 (법의 본질상) 실현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43

다. 법률 문서를 필사하는 일은 다들 알다시피 무척 따분하고, 무미건조한 일이라서, 내 사무실의 두 필

기사는 세관과 우체국141 근처의 수많은 노점에서 구할 수 있는 잘 익은 스피첸버그 사과142로 자주 목을

축이고 싶어했다. 또한 그들은 그 특이한 빵-작고, 납작하고, 둥글고, 아주 향긋한-을 사러 진저넛을 뻔질

나게 보냈는데 이 빵의 명칭을 따서 그의 별명을 붙여 주었다. 어느 추운 날 오전에 업무가 몹시 지루하

게 느껴질 때면, 터키는 생강빵을 그저 바스락거리는 얇은 비스킷처럼 여러 개를 게걸스럽게 먹어 치우곤

했는데–사실 생강빵은 1페니에 여섯 개나 여덟 개씩 팔린다–그럴 때면 펜이 종이 위를 긁는 소리가 입에

서 바삭거리는 조각들을 집어 삼키는 소리와 뒤섞였다. 어느 무더운 오후에 터키가 흥분해서 저지른 실

수 가운데, 그가 한번은 생강빵을 혀에 갖다 대고 침을 묻혀서, 그것을 봉인해야 할 저당담보증서에다 살

짝 갖다 붙인 일이 있었다. 나는 그 때 그를 즉시 해고해 버릴까 하는 생각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나

그가 아시아인이 깍듯하게 절하듯이 고개를 숙이며, 143 “존경하는, 변호사님, 제 비용으로 문방구를 즉시

사와서 수정할 테니 관대하게 봐주세요.”라고 말하며 사과하는 바람에 내 마음이 진정되었다.144

현재 나의 주요 업무-부동산 매매 및 등기 전문 변호사, 그리고 각종의 난해한 법률 서류 작성-는 법원의

판사직을 맡고 난 이후로 눈에 띄게 늘어났다.145 이제 법률문서 필기사의 일감이 크게 불어났다. 나는

기존의 직원들을 다그쳐야 했을 뿐만 아니라 게다가 새로운 직원을 구해야 했다. 구인광고를 보고, 어느

날 아침 한 젊은 남자가, 여름이라, 사무실 문을 열어놓았는데도, 사무실 문앞에 꼿꼿이 서서 기다리고 있

었다. 지금도 그의 모습-맥없이 단조롭고, 애처로워 동정이 가는, 정말 슬픈 표정이 내 눈에 선하다! 그

141 당시 유럽에서 미국으로 밀려들어오는 이민자들로 뉴욕은 크게 발전해 가고 있었다. 이민자들이 많이 밀려 들어

오면서 세관과 우체국은 사람들이 몰리는 시내 중심가에 자리잡고 있었다.

142 스피첸버그 사과는 뉴욕의 명산품. “스피첸버그 Spitzenbergs”는 독일어이다. “spitzen: to sharpen, to peek”.

143 당시 뉴욕 근처 농장에서 흉년이 들어 임차농들이 지주들에게 임차비 인하를 요구하며 항의 시위를 벌였는데 그

중 다수가 인도인이었다고 한다. 뉴욕 주정부는 인도인들이 머리에 두건을 두르는 것 같은 괴기한 복장을 금지한 법

률 “An Act to prevent Persons Appearing Disguised and Armed”을 1845년에 제정했다. “The law made it a crime for any person

to “appear in any road or public highway, or in any field, lot, wood or enclosure” with their “face painted, discolored, covered or

concealed” or disguised in any manner to hide their identity. If they were arrested and could not give “a good account” of themselves,

they faced being deemed a vagrant and being sentenced to six months in jail.” http://occupywallstreet.net/story/new-

york%E2%80%99s-anti-mask-law.

144 “With submission, sir, it was generous of me to find you in stationery on my own account.” 원문의 영어표현은 터키 자신이

잘못을 범했고 그런 큰 실수를 하면 즉시 해고감이라는 것을 깨닫고서 변호사에게 깎듯이 절을 하면서 사과를 하는

장면 같다. 자신의 실수가 들키자 이에 변호사가 자신을 해고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크게 당황해서 말이 헛

나오면서 문법도 약간 틀리게 말해진 것 같다. 작가가 이런 정황을 전달하고자 일부러 문법을 약간 틀리게 표현한

것 같다. 터키가 자신의 실수가 변호사에게 들키니까 임시변통으로 웃으면서 말했다면 “(생강 과자를 검인지로

사용한 실수 그건) 회사를 위해서 내 돈 들여서 문방구를 사온 것인데요 그러니 한 번 봐주세요” 이런 뉘앙스를

풍기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을 것 같다. 한편 하지 말았어야 할 실수를 하였는데 그게 바로 예기치 않게

변호사에게 들켰으니 바로 해고당할지 모른다는 당황한 표정을 살린다면 “존경하는 변호사님, 제 비용으로 문방구를

즉시 사와서 수정할테니 관대하게 봐주세요.”- 이런 뉘앙스를 풍기는 표현으로 해석된다. 부동산, 유가증권, 유언

상속, 트러스트 업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변호사 사무실에서 실(seal 문서 봉하는 밀랍)은 매우 중요하게 취급된다.

“Signed, sealed, and delivered” is the ceremony with the authenticity of legal documents. 중요한 법률문서를 다루는 일에

잘못을 범하면 해고당할 수 있다. 화자인 변호사가 즉시 해고해버릴 마음이 일어났다고 말한 것을 볼 때 그런

상황을 터키가 즉시 알아차리고 사과를 하고 용서를 구한 것 같다.

145 영미법 판사는 거의 종신직이고, 또 “전관예우”의 부패 비리가 나타나지 않는다. 화자인 변호사는 형평법 법원이

보통법 법원으로 통합되는 법원 개혁 조치로 인해서 형평법 판사를 그만 두어야 했다. 형평법 법원의 판사 경력은

그 변호사가 유능하다는 징표가 되고 그 결과 고객이 더욱 많아지는 것은 자연스럽다. 영미판례법국가는 유능한 변

호사 중에서 판사를 임명하는 법관임명제도를 실시하고 있어서 우리나라에서의 판검사 재직 후 변호사를 개업할 시

“전관예우”의 관행에 기대어 큰 돈을 버는 법제하고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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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 바로 바틀비였다.

그가 가진 자격증에 대하여 몇 마디 물어본 다음 나는 그를 고용하기로 했다. 그토록 특별하게 침착한

면모를 갖춘 사람이 나의 필기사 군단에 들어오게 된 것이 기뻤는데 이는 그런 면모가 터키의 변덕스러운

기질과 니퍼즈의 불 같은 성격에 좋은 방향으로 작용하리라고 내심 생각했기 때문이었다.146

미리 말해 두었어야 하는 일이지만 반투명 유리 접문을 사이에 두고 내 사무실 공간은 두 부분으로 나뉘

는데, 한쪽은 필기사들이 차지하고, 나머지는 내가 일하는 공간이었다. 나는 내 마음대로 이 문을 열거나,

닫을 수 있었다. 나는 바틀비를 접문 바로 옆의 한 구석에 배치하기로 했다. 사소한 작은 일들을 처리

해야 될 경우를 대비해서, 이 조용한 사람을 내가 즉시 부를 수 있는 위치에 두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의 책상을 사무실 그 쪽에 나 있는 조그만 옆창문에 바싹 붙여 놓았다. 원래는 그 창을 통해서 벽돌집과

그 지저분한 뒷마당의 모습을 위에서 훤히 내려다 볼 수 있었으나, 나중에 건물이 높이 세워지는 바람에,

현재는 약간의 햇빛이 들어올 수 있는 공간 외에는, 전혀 경치를 내다볼 수 없게 되었다. 유리창가에서

1미터 이내 사이로 벽 하나가 있었고, 빛이 마치 거대한 둥근 천장의 아주 작은 구멍 틈에서 새어 나오는

것처럼, 저 높은 곳에서, 두 고층 건물 사이를 타고 내려왔다. 더욱 완벽한 배치를 위해서 나는 바틀비

쪽에서 내 목소리를 들을 수는 있지만, 그를 내 시야에서 완전히 가릴 수 있게끔, 높다란 접이식 녹색 칸

막이를 설치했다. 이렇게 해서, 그런대로, 사적인 자유와 서로간의 소통이 공존할 수 있었다.147

바틀비는 근무 초기에 엄청난 양의 필사를 해냈다. 필사하기를 오랫동안 굶주린 사람148 마냥, 그는 내

문서들을 막 집어 삼키는 듯했다. 소화를 시킬 휴식 시간도 갖지 않았다. 그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

했는데149 낮에는 햇빛을 받고 밤에는 촛불을 켜고 필사를 해냈다. 만약 그가 즐거운 마음으로 부지런히

일했다면, 나는 그의 근면함에 무척 기뻐했을 것임이 틀림없다. 하지만 그는 필사 일을 묵묵히, 단조롭게,

기계적으로 해나갔을 뿐이었다.

글자 한자한자150 꼼꼼하게 따져가며 필사의 정확성을 검증해 내는 것도, 당연히, 필기사의 일 중에 빠뜨

146 히포크라테스의 “인간 본성론 On the Nature of Man” 이후 4기질론 Four Temperaments: 다혈질 sanguine, 신경질

choleric, 우울질melancholic, 냉혈질 phlegmatic이 자리를 잡아왔다. 사상의학적 관점에서 화자 변호사는 냉혈질, 바

틀비는 우울질, 터키는 다혈질, 니퍼즈는 신경질로 분석한 각자의 성격 비교는 다음 논문을 참조하라. Wright, N.,

"Melville and 'Old Burton," with 'Bartleby' as an Anatomy of Melancholy", Tennessee Studies in English 15 (1970), 1-13.

147 “프라이버시와 교류 privacy and society”의 개념은 서로 상충되는 관계에 있다. 따라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

가 즉 균형 잡기가 중요하다. 프라이버시 권리의 확립은 미국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확립되었다. 자본주의 사

회에서 프라이버시 기본권의 중요성을 갈파한 미국의 브랜다이스 대법관의 유명한 “프라이버시 기본권 The Right

to Privacy" (4 Harvard L.R. 193 (1890)) 논문이 하버드대 로스쿨 논문집에 실린 해는 1890년이었다.

148 그가 영국으로부터 온 이민자임을 암시한다. 당시 큰 사회적 혼란이었고 또 그 결과 더욱 미국 이민을 부추긴 대

사건이었던 1845년-1852년 사이에 걸쳐 일어났던 “아일랜드 대기근” 사태가 연상될 만하다.

149 미국에서 노예노동은 악명 높았다. 도망친 노예를 체포하여 다시 원래 주인에게 되돌려 보내는 “탈주 노예 법

Fugitive Slave Act”이 1850년에 제정되었다.

150 법조인에게 글쓰기는 생명과도 같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철자법도 무척 중요시 여긴다. 일반인들에게는 철

자법이 하나 정도 틀렸다고 해서 큰 사단이 벌어지는 경우는 흔하지 않겠지만 법조인의 경우엔 약간 다르다. 판결이

라는 영어 단어는 judgment이다. 흔히 잘못 하기 쉬운 실수로 judgement으로 쓰는 경우가 나타나는데 실제로 로스쿨

수업 시간에 한 교수가 시험 답안지에 “judgement”으로 철자법을 틀리게 쓰는 학생에게는 감점을 주겠다고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경험한 적이 있다. 철자법 하나 틀렸다고 해서 문제가 된 실제 법원 케이스도 존재한다. 물론 지금은

법이 개정되어서 소송 문서에 철자법 하나 틀렸다고 해서 판결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는 생기지 않겠지만 “한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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릴 수 없는 한 부분이다. 한 사무실에 두 명 이상의 필기사가 있으면, 한 사람은 필사본을 읽고, 다른 사

람은 원본을 쳐다보면서, 필기사들끼리 서로 도와가며 이런 검토 작업을 한다.151 이 일은 아주 따분하고,

피곤하고, 졸리는 작업이다. 어느 정도 활기 발랄한 성격을 지닌 사람들에게 이런 일은 정말 참아내기

힘들 것이라고 나는 쉽게 상상이 된다. 예컨대, 활기 넘치는 시인 바이런152이 바틀비와 함께 즐거운 표

정으로 앉아서 꼬불꼬불한 필기체153로 손수 꼼꼼하고 빽빽하게 쓰여진, 무려 오백 페이지 정도에, 이르는

법률 문서를 검토했으리라고는 나는 믿기 어렵다.

가끔씩, 일이 한창 바쁠 때는, 조금 간단한 서류를 비교하는 일을 내가 손수 돕는 일을 마다하지 않는데,

이런 목적으로 나는 터키나 니퍼즈를 불러왔다. 바틀비를 칸막이로 가리고, 내 가까이에 둔 내 의도는

이런 사소한 경우에 그를 바로 부리고자 함이었다. 아마도 그날은 그가 근무 시작한 지, 삼일 째 되는

날이었던 것 같은데, 그 때까지는 바틀비가 끝낸 필사를 검토할 필요성이 아직 생기지 않았다. 소소한

일이긴 하지만 바로 처리해야 될 일이기에 즉시 일을 끝내려고, 나는 급히 바틀비를 불렀다. 내가 급하

기도 했고 또 즉각적인 반응을 당연히 기대하면서, 나는 고개를 숙여 내 책상에 놓인 원본을 들여다보면

서, 필사본을 쥔 오른손을 책상 옆으로, 조금 힘들 정도로 내뻗었다. 이는 바틀비가 자신의 은둔처에서

나오는 즉시, 사본을 넘겨받아 잠시도 지체하지 않고 작업에 착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바로 이런 자세를 하고 계속 앉아 있는 채 나는 그를 부르면서, 내가 그에게 요청한 일이 무엇이었는지–

즉, 작은 분량의 문서를 나와 함께 검토하는 일-에 대해 빠른 속도로 말했다. 바틀비가 자신의 은신처에

서 움직이지도 않고서, 그의 특유의 온화하고, 단호한 목소리로,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I would prefer

not to.”154라고 대답했을 때, 내가 놀란 것, 아니, 대경실색한 것을, 한 번 상상해 보라.155

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던 no reformation for mistake" 예전에는 그런 사례가 발생했다. 법률문서는 제 아무리 확실하

게 문구를 작성한다고 해도 시간의 경과에 따라서 해석이 달라지는 경우도 생기고 또 사람의 일인 이상 “문구를 실수

로 잘못 작성할 가능성”-이를 “scrivener's error”이라고 말한다-이 결코 배제될 수 없을 것이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될

수 없었던” 예전에는 한 문구가 틀리면 전체 법률문서가 무효로 되는 것이 원칙이었다. 유언장에서 실수가 발견되는

경우는 대개 유언을 남긴 사람이 이미 사망하고 난 뒤의 일이기에 사소한 실수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지 여부는 법률

쟁점이 되기도 한다.

151 이러한 확인 작업을 Proofreading이라고 말한다. 이런 작업은 무미건조하고 보통 사람들은 별로 내켜 하지 않는

따분한 성격의 일이다.

152 바이런 Byron (1788-1824)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으로 귀족계급이었다. 그는 터키(오스만 투르크)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의 독립 전쟁에도 참가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모방하기에서도 얻는 즐거움이 있다고 말했다.

학습은 모방을 통해 습득된다. 즉 모방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는다.

153 타자기 typewriter가 처음 개발되고 특허 등록되어 실용화되기 시작한 때는 1872년 이후이다.

154 바틀비가 “I would prefer not to.”라고 말하니까 화자인 변호사는 “You will not?”이라는 의미이냐며 되묻는데 이에 바

틀비는 다시 “I prefer not.”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것을 하고 싶지 않다 I would prefer not to.”는 표현은 거절 의지를 단

호하게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선택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다. 자기 의지가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불가피하다는 외양적인 뉘앙스의 측면에서 법정의 판사들이 선호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이유는 법정은 양

소송 당사자 중에서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줄 수 밖에 없는 불가피한 상황에 처해 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피하려

는 본래적 성질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표현은 자기 자신을 기준으로 하는 명령적인 command 의미가

아니라, 상대방이 제시한 기준 가운데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판결을 내리는 것이고 따라서 재판

관의 자유의지에 의해서 내리는 것이 아님을 보여준다. 한편 대륙법국가의 소송체계는 양당사자를 배제하고 국가의

대리인으로서의 검사가 양당사자의 이해관계를 배제하고 객관적인 입장에서 판결을 내릴 수도 있는데, 이런 진실 발

견의 소송체계하에서는 선택적인 판단이 아니라 “최선의 the best”의 판단 모형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영미법국가의

법원(특히 형평법)의 소송 형식은 (상대방을 먼저 공격하는 원고의 입장이든 방어권을 행사하는 피고의 입장이든) 여

러 가지 대안 중에서 자기에서 가장 유리한 방안이라고 여겨지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법을 선택 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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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마음을 가다듬으며, 나는 한 동안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앉아 있었다. 내 귀로 잘못 들었거나, 아니

면 바틀비가 내 뜻을 완전히 잘못 오해했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바로 떠올랐다.156 나는 내가 구사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어조로 내가 요청한 것을 반복해서 말했다. 그러나 매우 분명하게 들려온 것은 종전과

같은 대답인,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이었다.

“하고 싶지 않다?”, 이렇게 되물어보면서, 나는 몹시 흥분하여,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저쪽으로 성큼 큰

걸음으로 내걸어갔다. “그게 무슨 소리야? 너 정신 나간 거니? 내가 여기 이 문서를 서로 비교하는 것

을 도와달라는 거다-자 이걸 받아.” 라고 말하며 그 종이 문서를 그에게 내밀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가 말했다.

나는 눈이 뚫어지게 그를 노려보았다. 그의 얼굴은 야위게 생겼고, 회색 빛 눈은 별 움직임이 없었다.

불만의 인상이라곤 전혀 나타내 보이지 않았다. 그에게서 조금이라도 불안, 분노, 초조하거나 불손하다는

태도가 나타났더라면, 다시 말해, 그에게서 보통 사람의 면모가 있었다면, 나는 의심할 여지 없이 그를 사

무실 밖으로 사정없이 내쫓아버렸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차라리 키케로 석고흉상을 문밖으로 내치

는 것이 보다 나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돌아섰다. 나는 그가 자신의 필사 일을 계속하는 것을 보고서, 잠

시 동안 그를 노려 쪼아 보고 서 있다가 다시 내 책상으로 되돌아와 앉았다. ‘이것 참 묘하네’, 이런 기분

이 들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최고의 해결책일까? 아무튼 나는 처리해야 할 업무들이 많아서 시간이 촉

박했다. 나는 고심 끝에 그 문제는 나중에 한가한 시간이 나면 다시 꺼내기로 하고 당분간은 접어 두기

로 했다. 그리하여 다른 방에서 니퍼즈를 불러 서류 검토를 신속하게 끝냈다.157

있다니! 이런 의문이 들지 모르지만 영미법은 보통법 법원에 제소를 해야 하는지 아니면 형평법 법원에다 제소하는

것인지부터 당사자의 선택적인 사정에 놓인 경우가 흔하다. (소송을 해야 될 것인지 말아야 할 것인지의 판단 그 자체

부터가 선택적인 의미를 갖는다). “법에 있어서 정답은 없다”는 격언은 상대방이 어떻게 반응하느냐에 따라서 대응책

이 달라진다는 법 구제의 속성을 두고 하는 말이다. 장기, 바둑, 체스를 둬 보면 알겠지만, 전투는 공격과 수비로 이

루어지고 수비전술은 공격전술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 선호 preference, 선택 choice, 경향 inclination, 습관 등 이런

단어들은 인간은 자유 의지 free will를 가졌는가의 철학적 사고에 관련되어 있다. 근대 이전까지는 (예컨대 부모에 의

한 중매 결혼의 사례에서와 같이) 인간의 삶(생로병사, 직업, 결혼 등)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문제는 ‘운명’에

의해 결정된다고 여겼기 때문에 자유의지에 따른 ‘선택’의 문제는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눈부신 산업혁명의 발전

으로 인해 과거에는 자연의 과정으로서 단순하게 받아들여졌던 운명적인 문제들이 선택의 문제로 바뀌어지기 시작했

다. (낙태에 대한 찬반여부에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주장하는 것도 의학의 발전에 따른 선택 choice의 문제로 인식

이 전환되었기 때문이리라).

155 법조인은 뉴튼의 물리학 법칙처럼 마치 기계가 돌아가듯이 정확한 법칙에 따라 움직이는 경향이 있는데 그런 상

식이 깨졌을 때의 놀라움을 한번 상상해 보라.

156 자신의 의사가 상대방에게 어떻게 전달되는지의 문제 즉 의사 소통의 문제가 존재한다는 것을 수긍하고 있다.

157 여기서 바틀비는 자신이 마치 독립적인 사업자의 경우처럼 자신의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비록 변호사 사무소에 직접 고용된 상태이기는 하나 요즈음 같으면 같은 직장 내에서의 하청업자의 신분일 수도 있

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글 내용으로는 고용 계약상 지배인과 종업원 사이임이 분명하지만 다시 말해 여기서 고

용계약은 구두계약이었는데 바틀비가 독립적인 사업자의 신분인지 아니면 고용된 피고용인 신분인지는 별도로 따져

볼 여지 없이 고용자인 변호사가 상사와 직원관계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만약 고용 계약이 문서상 존재했다면

보통법 법원에 소송을 제기해야 했겠지만 구두계약이었으므로 만일 소송을 제기할 경우 형평법 법원의 관할 대상이

된다. 이러한 소송의 종류가 구두 계약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 소송인 “assumpsit”이다. 바틀비의 입장에선 그가 자

신이 원하는 대로 일감을 받아서 일을 처리해준다고 여겼다면 그것은 독립적인 단독 사업자에 해당하고 또 바틀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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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이 일어난 지 며칠이 지나서, 바틀비는 장문의 문서를 완성했는데, 그것은 형평법 법원에서 일주일

동안 진행된 증언158에 관한 네 통의 사본을 작성하는 것이었다. 그 문서는 반드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크게 중요한 소송이었고 따라서 고도의 정확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었다. 사전준비를 다 마친

다음, 4통의 사본을 4명의 직원에게 하나씩 나눠주고, 내가 원본을 읽을 생각으로, 옆방에서 터키, 니퍼즈,

진저넛을 불렀다.159160 이에 따라 터키, 니퍼즈, 진저넛이 각자 손에 문서를 들고, 차례대로 앉았을 때,

나는 이 흥미로운 그룹에 동참하라고 바틀비를 불렀다.

“바틀비! 빨리. 내가 기다리고 있잖아.”

카펫이 깔려 있지 않은 맨바닥에 책상다리가 살살 긁히는 소리가 나더니 곧 그가 자신의 은둔처 입구에

나타나 서 있었다.

“어떤 일이 필요하세요?” 그가 부드럽게 말했다.

“필사본, 필사본이야.” 내가 재촉하듯이 말했다. “지금 우리는 필사본을 검토할거야. 자 이걸 봐.”라고 말

하면서 그를 향해 네 번째 사본을 내밀었다.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161 라고 그가 말하고는 조용하게 칸막이 뒤쪽으로 사라졌다.162

자신을 그렇게 이해했을 지도 모른다. 독립적인 사업자 신분은 도예공이나 대장장이처럼 자신이 원하지 않으면 설령

고객이 일을 맡겼다 하더라도 그 일을 시작할 의무가 없었고 따라서 일을 제 때 끝내지 못했다고 해서 손해배상을

부담할 이유도 없었다. 이들 장인들이나 예술가들은 고객이 성화를 부린다고 해서 일을 끝내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

의 마음이 내켜야 일을 시작하는 것이며, 고객이 아닌 그들 장인 자신이 일을 언제 어떻게 시작하고 또 끝낼지를 선

택할 권리가 있었다. 이러한 장인들은 노예 신분하고는 달랐다. 노예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적인 일 preference

을 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따라서 자신이 하고 싶지 않는 일이라도 일단 주인이 시키면 그것을 따라야 할 의무가

있었다. 이런 점에서 노예의 계약 관계와 장인의 계약 관계는 차이점이 존재했다.

158 화자인 변호사가 서두에 자신을 소개하면서 자신은 배심원 앞에서 일장 연설을 해본 경험도 없는 그런 야심 없는

변호사라고 말했는데, 형평법 법원에서 이렇게 일주일간의 긴 증언을 받아내는 일을 했으면서도 자신은 정작 배심원

앞에서 변론을 펼친 적이 없는 변호사라고 말하는 까닭은 형평법 법원에서의 재판은 12명의 배심원단이 개입되는 배

심원 재판이 아니라 판사 한 명이 재판을 주재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배심원 재판을 행하는 보통법 법원과는 달리

형평법 법원에서는 단독 판사가 진행한다. 따라서 재판의 절차와 법원칙에서 양법원간에 차이점이 존재할 수 밖에

없다.

159 궁정, 법원, 대학 건물들은 대개 정(직)사각형 구조이다.

160 로마 시대 스토아 철학은 사람들이 행복을 얻는 4가지 기본 덕목으로 지혜, 정의, 용기, 중용을 들었다. 지혜: 선

한 마음, 훌륭한 판단력, 재치, 사려깊음, 창조성, 정의: 경건함, 진실성, 공정성, 공평무사함, 용기: 인내, 자신감, 고상

함, 순종, 근면함, 중용: 절제, 위엄, 겸손, 자제력.

161 “I would prefer not to”는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하고 싶지 않습니다”. “preference”의 표현은 인간의 자유 의

지 free will와 외부적 속박 constraints의 문제에 대한 철학적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다. 또 선택적 대안의 중요성을 강

조하는 형평법적 측면에서 살펴 볼 여지도 충분하다.

162 이 글에서 경제적인 측면은 크게 언급되고 있지는 않지만 당시의 “우선주” 열풍이 연상되는 여지가 전혀 없는 것

은 아니다. 우선주를 영어로 preferred stock이라고 말한다. 미국에서 우선주가 처음 발행된 때는 1836년이었고 그 후

철도건설 산업이 굉장히 크게 일어나 우선주 발행의 붐이 불었다. Evans, “The Early History of Preferred Stock in the

United States”, The American Economic Review, Vol. 19, No. 1 (Mar., 1929), pp. 43-58. 회사가 우선주 (preferred stock;

preference shares) 발행을 통하여 대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은 1840년 영국에서 발전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우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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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나는 마치 얼어붙은 소금 기둥163이 되어, 앉아 있는 직원대열의 맨 앞에 그대로 꼼짝없이 서 있

고 말았다. 나는 곧 정신을 차리고 나서, 칸막이 쪽으로 다가 가서, 그렇게 예사롭지 않는 행동을 보인

이유를 캐물었다.

“왜 거절하는 거야?”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이었더라면 내가 당장 무섭게 격노하여, 더 이상 무슨 말을 나눌 필요도 없이, 그를 내 면전에

서 모욕적으로 내쫓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적대감을 누그러뜨릴 뿐만 아니라, 묘한 방법으

로 나를 움직이고 당황하게 만드는 그런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바틀비에게는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이성적으로 대화를 시도해봤다.

“이 문서들은 바로 네 필사본이고 이걸 우리가 검토하려는 것이다. 이건 네 일을 덜어주는 것에 해당된

다. 왜냐하면 한번의 검토로 네 개의 사본이 모두 처리되니까. 이건 다들 쓰는 보편적인 관례다. 필기사

라면 누구라도 자기 필사본을 검토하는 일에는 돕고 나설 테다. 그렇지 않니? 말도 하지 않을 텐가?

대답해 봐!”

“나는 하고 싶지 않아요.” 그가 플루트 소리 내듯이 높은 어조로 대답했다. 내가 바틀비에게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동안, 그는 내가 하는 발언을 주의 깊게 새겨듣고, 그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아주 확실한

결론에 대해 반박할 수 없다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그가 대답할 때는 어떤 최우선적인 고

려사항에 지배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164

“그렇다면, 나의 요청-즉 일반적인 관례와 일반 상식에 따라 내가 한 요구를 따르지 않기로, 네가 결정했

다는 뜻인가?”

그는 그 점에 대해서는 내 판단이 옳다는 것을 인정한다고 간단하게 말했다. 그래 그렇다면 그의 결정은

두 번 다시 되돌이킬 수 없는 것이었다.165

발행 광풍이 불기 시작했는데 1849년 영국 철도 회사의 주식 발행 총액 중 66%가 우선주 발행이었다고 한다. 회사

가 우선주 발행을 선호하였던 이유 중 하나는 채권은 이자지급이 연체되면 채권자가 파산을 신청을 할 수 있지만 우

선주는 배당금 지급을 연체해도 파산을 신청할 수 없었던 당시 우선주 발행의 특권에 기인하였다. 우선주 발행은 당

시에 가히 혁명적인 수단이었음은 그 후 1880년대 미국에서 철도 건설 붐이 일어날 때 우선주 발행을 통한 대규모

자금 조달의 역사를 통해서 여실하게 알 수 있다.

163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할 적에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보았으므로 소금 기둥이 되었다.” (창세기 19:26).

164 형평법 법원은 비록 일반적인 법원칙이 확립되어 있다고 해도 그보다 더 높은 곳에 ”자연 법 정의 natural justice”

의 원칙이 자리 잡고 있다는 법철학적 사고를 전통적으로 견지하고 있다. 형평법은 보통법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잡

은 정의의 관념에 크게 지배하고 있다. 형평법 판사는 만약 일반적인 법원칙이라고 해도 그것이 어떤 터무니 없는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면 그런 법원칙은 잘못된 것임으로 그 경우에는 새로운 법원칙을 세울 수 있다고 여

길 것이다. 형평법에서는 법보다 정의가 우선 적용되고, 따라서 정의가 “최고의 고려사항 paramount consideration”이

된다. 인구에 회자되는 “정의가 승리한다 justice will prevail.”는 표현은 형평법에서 확립된 원칙이다.

165 법정의 결정-배심원의 평결이나 판사의 판결-은 한번 내려지게 되면 “다시는 번복할 수 없는 irreversible” 성질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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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란 유례없이 무모할 정도의 불합리한 방식으로 협박을 당하게 되면, 그가 지닌 가장 명백한 믿음마

저 흔들리기 시작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말하자면, 그 모든 정의와 그 모든 이성이 아무리 훌륭하다

할지라도, 그것이 모두 상대방 편을 들고 있다는 의심을 어렴풋이나마 해나간다는 것이다.166 따라서, 이

해관계가 없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그는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다잡을 요량으로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하게 된다.167

“터키,” 내가 말했다. “넌 이걸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옳지 않아?”

“존경하는, 변호사님” 터키가 아주 맥없는 어조로 말했다. “전 변호사님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니퍼즈,” 내가 말했다. “너는 이걸 어떻게 생각하는가?”

“저 같으면 그를 사무실 밖으로 내쫓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센스가 뛰어난 독자라면, 때는 오전이기 때문에, 터키의 대답은 공손하고 차분한 형태로 표현된

반면, 니퍼즈는 성깔 있는 형태로 대답하고 있음을 인식할 것이다. 그렇지 않은 독자를 위하여, 앞의 문

장을 반복하여 말하면, 니퍼즈의 험악한 마음 상태가 지금 켜져 있고, 터키는 그것이 꺼진 상태였다.)

“진저넛,” “너는 또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무리 작은 지지표168라도 내 편으로 끌어들이고 싶어서 내가 물

었다.

“변호사님, 제 생각에 그는 약간 미친169 사람 같아요.”170 진저넛이, 씩 웃으며 대답했다.

166 이러한 이유 때문에 법원은 항상 공정하게 법을 집행하려고 하고 또 그런 이미지를 가꾸고 지켜 간다. 사람들이

자신의 삶을 위해서라도 법을 더 이상 지키는 것이 무모하다고 어느 순간 여기게 되면 (프랑스 혁명 때처럼) 혁명적

으로 들고 일어날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167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의 개념은 자본주의 경제학의 시조 아담 스미스에게 매우 중요한 기초 개념이었다. 이

해관계가 없는 사람은 공정한 관찰자의 입장을 견지할 수 있는데 이런 공정성을 유지하는 본성을 양심 conscience이라

고 부른다. 교통사고에서 주위의 “목격자를 찾는” 노력을 흔히 볼 것이다. 그와 같은 일은 보강 증거 Corroboration를

찾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자신의 주장에 제3자가 호의적으로 (엄정한 제3자의 입장에서 공공 이익을 위하여 변론

을 행하는 것이나 결과적으로 자신에게 유리한 판결이 이끌어짐) 나서서 정식으로 변론을 맡는 독립적 변호인 역할을

“amici curiae” (“법원의 친구”라는 뜻인 라틴어이고 그 발음은 아미커스 쿠리에)이라고 말한다. 당사자소송 원칙이 지

배하는 보통법 법원과는 달리 형평법 법원에서는 법적 진실을 찾는 목적으로 제3자적 독립적인 위치에서 법원을 위

해서 변론을 펼치는 “amici curiae” 변호사 역할을 하는 허용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amici curiae” 변론 제도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무료 변론을 펼치는 “프로 보노 pro bono” 변호사 역할과는 다른 점을 유의하라.

168 당시에도 선거에서 부정적인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또 선거에 참여하고 투표할 수 있는 투표권 Suffrage 문제

가 제기되고 있었다. 비록 미국에서 여성참정권 Women's suffrage 부여는 뉴질랜드나 호주 같은 나라에 비해서 훨씬

뒤늦은 1920년에야 이뤄졌지만 1850년대 당시 뉴욕에서는 이미 여성 참정권 문제가 불거지고 있었다. Lucy Stone이

1850년 여성참정권 운동단체를 조직하였고 1852년에는 뉴욕에서 집회가 열렸다.

169 뉴욕에서 1834년 구빈법 Poor Law이 새로이 개정된 후 정신병력을 가진 사람, 부랑자 등을 강제로 구금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

170 루니 Loony, luny는 ‘미쳤다’는 의미로써 크게 실성한 사람을 지칭한다. 한편 산업혁명을 이끈 기라성 같은 인물들

의 모임 단체 “버밍햄 보름달 모임 The Lunar Society of Birmingham”이 있었는데 당시 지배기득권계층이었던 국교와 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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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하는 말을 들었지,” 칸막이 쪽을 향해 내가 말했다. “즉시 나와서 네 의무를 수행하라.”

그러나 그는 아무런 대답도 없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매우 난처해져서 잠시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

다. 하지만 또다시 처리해야 될 업무로 인해서 시간이 촉박했다. 나는 이번에도 이 딜레마에 대한 처리

를 나중에 한가한 시간이 날 때까지 미루기로 결정했다. 약간 힘이 부치기도 했지만, 우리는 바틀비없이

문서 검토 작업을 해냈다. 터키가 한 두 장 넘길 때마다 이런 식으로 일을 해나가는 것은 통상적인 관례

에 크게 벗어난다는 의견을 정중하게 내비치기도 하였고, 니퍼즈는 신경과민성 소화불량으로 인해서, 의

자에서 몸을 홱 비틀어대고 이따금씩 이를 갈면서 칸막이 뒤의 고집불통의 바보멍청이에게 악담을 퍼붓기

도 했다. 이건 여담인데 그(니퍼즈)로서는, 수고비를 받지 않고 다른 사람의 일을 해주기는 이번이 처음

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러는 중에 바틀비는 자신의 은둔처에 틀어 박혀 앉아, 자신에게 떨어지는 특이한 업무를 하는 것 이외

의 다른 것에는 눈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 필기사가 또 하나의 장문의 문서 작업에 몰두한 지 며칠이 지나갔다. 지난 번의 놀랄만한 행동 때문

에 나는 그의 행동거지를 면밀히 주시하게 되었다. 내가 살펴보니 그는 식사하러 밖을 나가지도 않았다.

아예 외출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이제까지 내가 알고 있는 사실로는 그가 내 사무실을

벗어난 모습을 결코 본 적이 정말로 없었다는 점이다. 그는 구석에서 지키고 있는 영원한 보초였다. 그

렇지만 오전, 열한시경에, 내 자리에 앉아서는 보이지 않는 동작으로 그쪽으로 조용하게 신호를 보내면

진저넛이 바틀비의 칸막이 입구 쪽으로 다가 간다는 것을 나는 알아챘다. 그런 다음 이 소년은 몇 펜스

를 쨍그랑거리며 사무실을 나갔다가, 생강 케이크를 한 웅큼 갖고 다시 들어와 바틀비의 은신처에 전달하

고 수고비조로 빵 두 조각을 받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그는 생강빵만 먹고 사는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그는 제대로 된 식사

를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채식주의자임에 틀림없을 텐데, 아니야, 그건 아닌 것 같

다. 그는 채소조차도 전혀 먹지 않고, 오로지 생강빵 말고는 아무 것도 먹지 않는다. 그러자 내 머리 속

은 오로지 생강빵만 먹고 사는 사람의 체질에 변화를 주는 확실한 효과에 관련된 엉뚱한 생각에 빠져들었

다. 사람들이 생강빵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생강빵의 특이한 몸체를 이루는 구성요소 중 하나로써 생강이

들어가고 또한 향긋한 맛을 그윽하게 풍기는 성분으로써 생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171 그러면 여기에서

생강이란 어떤 것을 말하는가? 얼큰하고 상큼한 것. 바틀비가 얼큰하고 상큼한가?172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생강은 바틀비에게 어떤 효과도 미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는 생강이 얼큰하지도 상

톨릭은 이들을 미친 사람들(미치광이를 영어로 “Lunatic”이라고 불렀다)로 규정하였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부 1장

프리스틀리는 누구인가를 참조하라.

171 “생강 빵”과 비슷한 의미로 한국에서는 “마늘 빵”이 있다. 한국인에게 마늘 garlic은 거의 필수적인 양념으로 쓰이

는 반면 서양인은 마늘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서양인의 음식 문화에서 생강 ginger은 매우 유용하게 필수적으로

쓰이는 양념 소재이다.

172 고추 맛 hot, peppery은 “톡 쏘는” 매콤하다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이다. 우리말로 얼큰하다는 말에 가깝다. Spicy

는 좋은 향기 smell, odor, aroma가 김이 피어 오르듯 묻어 나오는 “향긋한” 상태를 나타낸다. 상큼하다는 우리말 표현

이 적당한 것 같다. Spicy의 단어 뜻에는 (영국의 유명한 걸밴드 그룹 “Spicy Girl” 이름이 암시하듯) “섹시하다”, “감칠

맛 나다”는 성적인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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큼하지도 않는 것을 골랐을 것 같다.173

수동적 저항만큼 성실한 사람을 화나게 하는 것은 없다. 만약 그런 저항의 대상자가 몰인정하지 않은 성

격이고, 또 저항하는 사람의 수동성이 완전 무해할 경우, 저항의 대상자가 기분이 좋을 때에는, 그의 결정

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고 판명되는 것에 대해 그의 마음속으로는 동정적으로 해석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정확히 그런 식으로, 나는 바틀비와 그의 행동거지를 이해했다. 불쌍한 친구! 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는 전혀 해가 되지 않는다. 174 그가 오만방자하지 않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에게서 나타나

는 기행들이 그의 본의에서 나온 것이 아님은 그의 태도를 통해서 충분히 입증된다. 그는 내게 쓸모가

있는 사람이다. 나는 그와 좋게 지낼 수 있다. 만일 내가 그를 내쫓는다면 아마도 그는 좀 너그럽지 못

한 고용주를 만나게 될 가능성이 높고, 따라서 제대로 대우를 받지 못할 것이며, 어쩌면 비참하게 쫓겨나

굶어 죽게 될지도 모른다. 확실해. 여기서 나는 별로 어렵지 않게 달콤한 자기 확신에 빠져들 수 있다.

바틀비와 사이 좋게 지내고, 그의 특이한 반항심을 너그럽게 웃어넘기는 것은 내게 무슨 비용이 드는 것

도 아닌데다, 다른 한편으론 궁극적으로 내 양심175의 한 조각을 내 영혼에 비축하는 것이다.176 그러나

이런 기분이 언제까지나 변함이 없었다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바틀비의 수동성이 나를 짜증나게 했다.

나는 새로운 적대관계로 그에 맞섬으로써 그에게서 내 자신 속에 불같이 일고 있는 불만에 상응하는 무언

가 성난 불만을 촉발시키고 싶은 묘한 충동감을 느꼈다. 그러나 사실은 차라리 윈저 비누177 조각을 손마

디로 쳐서 불을 지피려고 하는 편이 보다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오후 나는 사악한 충동감에178

사로잡혔고, 이어서 다음과 같은 작은 소동이 일어났다.

173 요즈음 TV에서 “요리 맛” 코너 (요리사 chef가 요리솜씨를 보여주는 프로그램 등) 인터넷 SNS상에서 인기 있는

테마는 “먹방”(고급음식점, 맛있는 요리, 좋은 음식을 먹는 사진이나 이야기를 주로 올리는 경향)이 인기를 끈다고 한

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먹는 음식”은 생존의 문제뿐만 아니라 한편으론 “욕망과 탐욕 desire and avarice”의 상징적 의

미를 갖고 있다는 분석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174 해악 Mischief. 화자는 여기서 강제력의 개입을 정당화하는 논리로써 “타인에 대한 해악”의 기준을 들고 있다.

“타인에 대한 해악”에 대한 설명을 JS Mill의 “자유론”에서 옮기면 다음과 같다. “[원칙]은 인류가 개인적으로나 집단적

으로 어느 한 개인의 행동의 자유에 대해 정당하게 간섭을 할 때 요구되는 유일한 명분은 자기 보호라는 것이다. 문

명사회의 어느 한 구성원에게 본인의 의사에 반해서 정당하게 강제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목적은 타인에게 가

해지는 해악을 방지하는 것이다. That principle is, that the sole end for which mankind are warranted, individually or collectively,

in interfering with the liberty of action of any of their number, is self-protection. That the only purpose for which power can be

rightfully exercised over any member of a civilized community, against his will, is to prevent harm to others.”

175 형평법 법원을 “양심의 법정”이라 부른다. 양심의, 양심에 의한, 양심을 위한 법정이 형평법 법원의 기조일 것이

다. 형평법 법원에서의 최고 기준은 양심 conscience이다. 법과 정의는 재판관의 양심이 살아 있을 때 지탱된다. 양

심은 법을 지탱하는 최후의 보루다. 형평법 법원의 판사 출신으로서 화자인 변호사에게 가장 익숙한 단어가 양심일

것이다. 형평법의 알파요 오메가가 양심이다. 아담 스미스(대륙법 법체계를 유지한 스코틀란드 출신으로써 형평법

체계에 익숙하였다)는 양심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는 양심은 우리 행위의 위대한 재판관이자 공정한 관찰자

impartial spectator, 가슴속의 거주자 the inhabitant of the breast, 이성, 원칙 등의 개념으로 표현하였다. 우리 속담에 ‘가슴

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는 형평법의 양심이 바로 그와 같은 개념이다.

176 켈트족의 전설에 따르면, 자신의 잃어버린 영혼의 한 조각이 다른 사물 속에 숨어 있다가 우연한 마주침에 의해

다시 발견된다고 한다. 즉 전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숨어 있다가 우연한 기회에 잃어버린 영혼이 되돌려지는 것으

로 이것은 비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177 윈저 비누 Windsor soap는 거품이 풍부하고 향기가 그윽한 명품 비누로 알려져 있다. 영국 왕실의 별장인 윈저

성이 있는 윈저 숲 Woods of Windsor에서 생산되는 최고급 비누라고 한다. 비누는 마루바닥을 닦아내는 것처럼 더러

움을 추방하는 기능을 한다.

178 “사악한 충동감 evil impulse”. 창세기 8:21의 구절의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는 원죄

개념이 상기된다.

52

“바틀비,“ 내가 말했다. “그 문서 필사 일이 모두 끝나면, 내가 너와 함께 비교 검토할 테다.”

“나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뭐라고? 설마 그런 고집불통의 변덕을 마냥 부리겠다는 뜻은 아니겠지?”

대답이 없었다.

나는 가까운 접문을 밀어 제치고 터키와 니퍼즈를 돌아보며 흥분된 모습으로 고함치듯 외쳤다.

“그가 두 번째나 자기 문서를 검토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터키, 너는 이걸 어떻게 생각해?”

이 시간 때는 오후였다는 것을 상기해야 된다. 터키는 벗겨진 머리엔 땀이 흠뻑 솟고, 양손은 낚시줄 던

지듯 서류더미에 파묻고, 몸은 놋쇠 보일러처럼 뜨겁게 달아오른 채 앉아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요?” 터키가 으르렁댔다. “내 생각 같아서는 당장 그의 칸막이 너머로 쳐들어가,

두 눈이 멍들도록 두들겨 패줄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고선, 터키는 벌떡 일어나 양팔을 휘두르며 권투 시합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가 자신의 약속

을 이행하려고 막 뛰어 갈려는 찰나, 오후 시간에 터키의 호전성을 경솔하게 잘못 자극한 결과라는 것을

급히 깨닫고서, 내가 그를 붙들었다.

“터키, 자리에 앉아.” 내가 말했다. “앉고 나서 니퍼즈가 뭐라고 말하는지 들어 봐. 니퍼즈,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내가 바틀비를 즉시 해고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을까?”

“죄송하지만, 그건 변호사님이 결정할 일입니다, 변호사님. 나는 그의 행동이 꽤 유별나며, 또 터키와 나

랑 비교해 보면, 정말 부당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그건 그냥 지나가는 일시적인 변덕일 수도 있

고요.”

“아하,” 하고 나는 소리를 질렀다. “그렇다면 이상하게도 네 생각이 변했구만. 이제는 그에 대해 매우 호

의적으로 말하는 것을 보니.”

“모두 맥주 탓이겠죠.” 터키가 소리를 높였다. “유순함은 맥주의 영향이지요. 오늘 니퍼즈와 함께 식사

를 했거든요. 변호사님도 내가 얼마나 점잖은지 알 수 있겠죠. 내가 가서 그의 두 눈이 멍들도록 두들

겨 패줄까요?”

“너 지금 바틀비를 두고 하는 말 같은데. 그건 안돼. 터키, 오늘은 아니다.” 나는 이렇게 말하며 다음과

같이 재차 확인했다: “정식으로 요청하니179, 주먹을 거두어라.”

179 원문의 “pray”는 소송장 등에 쓰이는 법률용어로써 자신이 원하는 사항을 정식으로 진실로 요구한다는 강한 뜻을

53

나는 문을 닫고, 다시 바틀비에게로 다가갔다. 나는 내 자신의 운명을 재촉하고 싶은 유혹을 한층 더 느

꼈다. 내가 다시 반항의 대상이 되기를 애타게 바랐던 것이다. 바틀비가 사무실을 한 번도 나간 적이

없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바틀비,” 내가 말했다. “전저넛이 지금 밖에 나가고 없다. 네가 대신 잠깐 우체국에 갔다 와, 그렇게 할

수 있지? (우체국은 걸어서 3분밖에 안 걸리는 거리였다.) 거기 가서 나한테 온 우편물이 와있는지 확인

해 주기 바란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네가 하지 않겠다는 말인가?”

“난 안 하고 싶어요.”180

나는 비틀거리며 내 책상으로 돌아왔고, 책상에 앉아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러자 내게 숨어 있던

완강함이 되살아났다.

이 말라빠지고 땡전 한푼 없는 꼬맹이181 같은 내 종업원에게 주인인 내가 굴욕스럽게 퇴짜를 맞는 또 다

른 방법은 없을까?182 완전히 합리적인 것 이외에, 다른 무엇을 더 추가해야 그가 틀림없이 받아들이기를

거부할까?183184

가진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기도하다 pray”는 어느 정도 사적인 뉘앙스가 있는(그래서 우리나라 사람들은 절실한

말 “please”이런 말 등을 쓰면 오히려 말하는 상대방을 무시하려는 힘의 문화가 지배하고 있는 듯하다) 이런 것 같은

데, 사실 “pray”는 이렇게 “어필 appeal 하다”, “plead” 단어와 같이 “정식의” “진실로” 라는 공적 (말의 상대방이 존재한

다는 측면) 의미를 가지고 있는 강한 뜻이다. (기도도 개인의 마음속에 머무르는 사적인 것이 아니라 들어주는 상대

방(=하나님)에게 말한다는 측면에서 공적인 의미를 가진다.)

180 선호하다 prefer는 자신이 어떤 것 중에서 선택을 한다면 “~~을 하고 싶다”는 선택적 판단을 뜻한다. 어쩔 수 없

는 상황에서의 즉 명령과 강요의 상황에서가 아니라 자신의 주체적인 입장에서 내리는 자발적 선택의 결과이다. 하

지만 프리스틀리의 필연주의 철학에서는 인간의 자유 의지는 제한적이라고 본다. 자유 의지의 문제에 대해서 보다

자세한 설명은 ***쪽을 참조하라.

181 “꼬맹이”는 원문의 “wight”-이 wight 는 싸움 잘 하는 용맹한 소년을 이른다. 법관이 법정에서 쓰는 가발을 “wig”라

고 부른다. Wig의 어원은 “싸움 battle”의 의미를 가졌다. 결투할 때 모자를 쓰는 것과 같은 의미로써 즉 법정싸움은

어느 한 쪽이 이기면 상대방은 죽는 사생결단의 장이므로 정식 재판정에서 판사 변호사가 가발을 쓰는 전통은 결투

의 상징성이 들어 있다.

182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자유방임주의가 팽배했던 당시의 “고용 계약의 자유 the employment at will rule”, “해고 자유의

원칙 presumption of terminability at will”을 암시하는 것 같다.

183 주인과 하인의 관계 master and servant relation는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맺어진 관계다. 오늘날의 용어로 말하면

“고용주와 피고용인 employer-employee”의 고용 계약 관계를 말한다. 하인 worker이 주인의 명령에 복종하는 조건은

“정직이고 정당한 honest and lawful” 명령일 경우에 한해서다. 주인과 하인 사이라고 해도 정당하지 못한 명령이라면

하인이 거부할 수 있었다. 합리성은 인식 recognition의 문제이고 해석의 영역에 속한다. 한편 1847년에는 유명한

노예폐지론자인 다글라스 Frederick Douglass가 잡지 “The North Star”을 창간하는 등 당시에 노예폐지론은 시대정신으로

높아가고 있었다. (남북전쟁이 1861-1865년 일어났다.)

184 동의 Consent는 합리성에 기반을 둔다. 사람은 자기가 받아야 할 정당한 몫이 자신에게 분배되지 않을 때나 모

54

“바틀비!”

대답이 없었다.

“바틀비,” 더욱 큰 소리로 불렀다.

묵묵부답이었다.

“바틀비,” 이번에는 내가 고함치듯 불렀다.

귀신은 마술적 주문을 외워야 185 등장하듯, 세 번의 소환 끝에 비로소 바틀비가 자신의 은둔처 입구에 나

타났다.

“옆방에 가서 니퍼즈한테 내가 부른다고 말해줘.”

“나는 그렇게 안하고 싶습니다,” 그는 공손하고 차분하게 대답하고는 그냥 사뿐히 사라졌다.

“그래 아주 잘했어, 바틀비,” 나는 아주 침착하고 매우 엄정한 목소리로 내리깔고 나지막이 말하며, 당장이

라도 어떤 끔찍한 보복 조치를 취하겠다는 번복할 수 없는 강경한 메시지를 내비쳤다. 그 순간에는 실제

로 내가 그런 식의 어떤 조치를 취할 생각이 반쯤은 있었다. 그러나 내가 저녁 먹을 시간이 가까워짐에

따라, 무엇보다, 오늘은 심적 부담감과 당혹감으로 고통을 많이 겪었으니, 이만 모자 쓰고 바로 퇴근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걸까? 이 모든 일의 결론은, 다음과 같은 사항들이 어느 새 내

사무실에서 확정된 사실이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바틀비라는 이름의 창백한 모습의 한 젊은 필기사가 내

사무실에 책상 하나를 갖게 되었다는 것. 그는 시중의 요율대로 한 장(100단어)당 4센트의 돈을 받고 내

가 일감을 주면 문서 필사를 한다는 것. 그러나 그는 자신이 필사한 사본을 검토하는 작업에서는 항상

면제받고, 그 의무는 철저함이 말할 것도 없이, 더 뛰어나다는 칭찬 한 마디로, 터키와 니퍼즈에게 전가된

다는 것. 게다가, 이 바틀비는 아무리 사소한 것이건 심부름이란 일은 어떠한 경우에라도 결코 맡아 하

지 않는다는 것. 설령 그런 일을 맡아 달라고 그에게 간청을 하더라도, 그는 “그것은 하고 싶지 않다”라

고 말한다는 것-이걸 달리 표현하면, 그가 단도직입적으로 거절한다는 것-을 거의가 다 알고 있다는 것.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바틀비와의 화해가 눈에 띄게 이루어졌다. 그의 착실함, 전혀 방탕하지 않은 점,

부단한 근면성 (그가 칸막이 뒤에서 선 채로 공상에 빠지고 싶어하는 그 때를 제외하고), 높은 침착성, 어

떤 상황에서도 한결같은 태도 이러한 장점들로 인해서 그는 사무실의 중요한 자산으로 여겨졌다. 그 중

에 으뜸가는 것은 바로 이것-바틀비는 항상 거기에 있다는 것이다. 아침에 제일 먼저 와 있고, 하루 온

욕감을 느낄 때 반발심을 나타내는 것 같다. 무인정권 시기에서 하극상이 흔히 나타났다.

185 악은 한번으로 끝나지 않고 반복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사도 베드로가 하루 밤에 3번이나 부정하였고. 확실

한 결론을 얻기 위해서는 3번 확인해야 한다는 “삼세번 원칙 three times rules”이 거론되기도 한다. 우리나라 문화와

정서에도 속칭 “삼3번” 원칙이 흔히 등장한다. 악령 소설 등을 보면 대개 악령은 한 번 불러서는 즉시 나오지 않는

다. “수리수리마수리” “Abracadabra” 사례와 같이 주술은 같은 것을 여러 번 반복하기를 요구한다. 하지만 진실과 창

의성은 반복을 싫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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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일 그 자리를 지키며, 밤에 마지막까지 남아 있다는 것이다. 나는 그의 정직성에 각별한 신뢰감을 가

졌다.186 내게 매우 중요한 서류들도 그에게 맡기면 지극히 안전하다고 느꼈다. 물론 때로는 아무리 해

도, 내가 그에게 간헐적으로 무심코 화를 내는 것까지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왜냐하면 내 사무실에 머

물면서 바틀비가 누리는 암묵적인 약속 사항187이라고 볼 수 있는, 그 기이한 행태, 특권, 이제껏 들어보지

못한 면제사항들을 항상 명심하고 있기란 대단히 어렵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급한 용무를 신속히 처리

하려는 열망에서, 무심코 짧고, 급한 어조로, 바틀비를 소환188하기도 했는데, 예컨대, 빨간 끈189으로 어떤

서류들을 하나로 묶을 때 첫 번째 끈 매듭을 손가락으로 눌러달라고 부르는 경우가 그랬다. 그러면 당연

하다는 듯이, 칸막이 뒤에서, “나는 그걸 안하고 싶어요,”라는 뻔한 대답이 어김없이 들려왔다. 그러면, 인

간 본성 중의 하나이고 우리들이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인간적 약점190을 지닌 한 인간인 이상, 그렇게 삐

뚤어진 것191- 그런 비합리성에 대해 어찌 언짢아 하며 호통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내가 당하는

이런 종류의 거절이 매번 누적됨에 따라 부주의로 인해 우발적으로 일어난 실수를 내가 다시 반복할 개연

성은 줄어들 수 밖에 없었다.

여기서 미리 말해둘 것은, 좁은 공간에 많은 사람들이 들어 찬 법원 근처 건물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대

다수 법조인들의 관례에 따라, 내 사무실문 열쇠도 여러 개 있었다는 것이다. 하나는 내 사무실을 매일

먼지 털고 바닥 치우고 매주 걸레로 바닥을 닦아 청소하는 다락방 아주머니가 갖고 있었다. 또 하나는

편의상 터키가 갖고 있었다. 세 번째 것은 가끔 내가 호주머니에 넣고 다녔다. 네 번째 것은 누가 갖고

있는지 나도 몰랐다.

그런데 어느 일요일 아침 나는 유명한 목사의 설교를 들으려, 트리니티 교회192에 가게 되었다. 거기에

186 변호사 사무실 근무 직원에게 요구되는 것은 정직성 honesty이다. 정직성을 기반으로 신뢰 관계 confidence가 형성

된다.

187 여기에서 변호사와 직원의 고용계약은 구두로 맺어진 계약이지 문서상의 계약을 맺은 것은 아님을 상기하라. 구

두상 고용 계약을 맺었기에 만약 분쟁이 일어나면 형평법의 손해배상청구 소송 “assumpsit”소송을 진행해야 할 것 같

다. 만약 문서상 고용 계약을 맺었다면 보통법 법원에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할 수 있었다. 영미법은 대륙법

과는 달리 구두상 계약 (단기 임차권 계약의 사례)이라고 해도 물권법상의 (채권법상의 보호법익과 구별되는) 보호 법

익이 창출될 수 있다.

188 “소환 summon”의 형식은 형평법 법원의 특징에 해당하였다. 보통법 법원은 “대물소송 in rem”인 반면 형평법 소

송의 효과는 “대인소송 in personam”인 경우가 많으므로 형평법 법원은 직접 당사자를 법정으로 소환하게 된다. 서로

체계가 다른 법원 (예컨대 일상생활에 관계된 사건을 다루는 주법원과 연방차원의 공공 문제를 다루는 연방법원에서

쓰는 특정 법률 용어 court jargon들이 서로 다른 경우가 존재한다. 만약 소환에 불응할 경우 형사법적 제재가 따르

는 경우의 소환을 subpoena라고 부른다.

189 영국 정부기관, 법원, 변호사사무실에서 중요 서류를 빨간 끈 “red tape”으로 동여매는 풍습이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다. 현재도 여러 다른 색깔들로 구별하여 서류를 정리하는 법조인의 사무실 문화를 엿볼 수 있다. 정부 기관들이

어떤 처리가 요구되는 사안에서 판단을 즉시 내리지 않고 회피하거나, 다단계 의사 결정 과정을 돌려 거치게 하면서

판단을 교묘하게 늦추거나, 또는 절차를 복잡하게 만들어 비효율적인 관료 행정의 문제점이 나타남을 지적하는 용어

로써 “레드 테이프 red tape”라는 말을 쓴다.

190 infirmities는 병적 나약함, 인간이면 누구나 보편적으로 갖고 있는 인간적 결함을 뜻한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짓

기 마련이며, 창조된 사람인 이상 완전한 인간은 없다고 말하지 않는가?

191 삐뚤어짐 perverseness 은 단정함 straightness하고 반대된다. 전통적인 해석을 따르는 경우 즉 바른 견해를 견지

한 경우를 straight 라고 표현한다. 한편 속어로 동성애자 gay 등 삐뚤어진 성적 취향을 가진 사람을 “pervert”라고 표

현하고, 그렇지 않고 성적으로 바른 사람을 “straight”라고 표현한다.

192 월 스트리트 “Trinity Church”는 1846년에 세워진 영국 성공회 Anglican Church 소속 교회이었고, 남북전쟁 후 미국

성공회 Episcopal Church of America를 결성하였다. https://www.trinitywallstreet.org/. 개신교단인 성공회의 예배나 전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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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착하니, 설교시간보다 조금 일러서 잠깐 내 사무실에나 들렀다 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열쇠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막상 자물쇠에 꽂아 넣으니, 열쇠가 안쪽에서 끼워놓은 뭔가에 걸려 들어가지가 않

았다. 깜짝 놀라서 내가 소리쳤다. 그러자 황당하게도 안쪽에서 열쇠가 돌려지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그 야윈 얼굴모습을 내게 들이밀면서, 문을 반쯤 정도 열고 붙잡은 채, 위는 셔츠 차림에다, 아래는 요상

하게 헤진 아침 속옷 차림의, 바틀비 유령193이 나타난 것이다. 그러면서 미안하게 됐지만, 지금은 자기가

어떤 일을 한창 하는 중이기 때문에, 따라서 당장은 내가 들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조용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게다가 간단히 한 두 마디 말을 그가 덧붙였는데, 아마도 내가 근처의 구역을 두세 번 걸어

돌아보는 것이 나을 테고, 그 때쯤이면 자기가 하던 일을 끝낼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 내 변호사 사무실을 점유하고 있으면서, 곧 쓰러질 듯 야위었고 신사같이 태연하되,

침착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이는 바틀비의 전혀 얘기치 못한 등장에 정말 묘한 인상을 받은 나머지, 나는

바로 내 사무실문 앞에서 황급히 도망치듯 나와버릴 수 밖에 없었고, 그가 바라는 대로 했다. 그러나 이

황당한 필기사의 차분하고 뻔뻔스런 대범함에 무모한 반항이라도 일으키고 싶은 격정이 치밀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나를 무장해제시켰을 뿐만 아니라, 말하자면, 예전에 있던 남자다운 박력마저 앗아가

버린 것은 바로 놀라울 정도의 그의 유순함이었다. 왜냐하면, 자신이 고용한 종업원에게서 오히려 지시

를 받고, 더욱이 자기 사무실에서 나가라는 명령을 받는 그렇게 어이없는 일을 당할 때도 태연한 사람이

라면, 바로 그러는 동안, 남자다움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바틀비가 셔

츠 차림에다 또 헤어진 옷을 입은 상태로 일요일 아침에 내 사무실에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었는지

에 대한 생각으로 나는 좌불안석이 되었다. 뭔가 그릇된 일을 저질렀을까? 그건 분명 아닐 테지. 그건

상상도 할 수 없이 불가능한 거고. 바틀비가 부도덕한 사람이라고는 한 순간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지.

하지만 그가 거기서 도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었을까?–필사를? 그것도 분명히 아니야. 그가 무슨 기이

한 행동을 보이든 간에, 바틀비는 정말 바르고 단정한 사람이었어. 그는 거의 알몸에 가까운 상태로 책

상에 앉아 있을 사람이 결코 아닐 꺼다. 더욱이, 오늘은 일요일인데, 무슨 세속적인 일 때문에 이날 지켜

야 하는 전통적인 예법을 위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바틀비에게는 아예 꺼낼 수도 없는 것이었다.19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고, 끝없는 호기심으로 넘쳤고, 그러다가 마침내 사무실로 돌

아갔다. 아무런 막힘 없이 열쇠를 꽂아 넣고, 문을 열고, 들어갔다. 바틀비는 보이지 않았다. 걱정이 되

어 사무실 안을 쭉 둘러보고, 칸막이 뒤쪽까지 들여다보았으나, 그가 사라진 것이 분명했다. 그 자리를

좀더 자세히 살펴본 결과, 기간은 분명하지 않지만 바틀비가 내 사무실에서 먹고, 입고, 잤으며,195 그것도

등은 다른 개신교단에 비해 카톨릭에 가깝다. 예배에서 “공동기도서 The Book of Common Prayer”를 사용하는 등 교

회 통합의 성격이 강하게 드러난다. 교회 통합 운동은 성공회 교회 건축 양식을 고딕 양식으로 추구한 방향에서도

잘 나타났다.

193 “바틀비 유령 the apparition of Bartleby”은 변호사가 맞부딪힌 사람이 바틀비인지 아니면 바틀비하고 똑같이 닮은

바틀비 유령인지 모를 정도로 놀란 상태를 말해준다. 바틀비가 일요일 오전 시간에 교회에 가지 않고 사무실에서 나

와서 무슨 일을 한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전혀 뜻밖의 일이었기에 “바틀비가 유령처럼”으로 번역하기 보다

는 바틀비하고 꼭 빼닮은 “바틀비 유령”이 나타난 것으로 번역하는 것이 의미 전달이 보다 강할 것으로 보인다.

194 일요일 휴무 법률 (일요일에 가게 문을 닫게 하거나 또는 술 판매를 금지하는 법 포함)을 미국에서 “Blue laws”라

고 속칭한다. 일요일 강제 휴무법은 미국 일부 주에서는 아직까지도 시행 준수되고 있다. Blue laws는 1676년 영국

에서 제정된 일요일 휴무 법을 이어받은 것이다. 일요일 모두가 쉬게 된 것은 blue law 때문인데 이 법의 원래 취지

는 일요일에는 교회 예배를 보라는 것에 있었다.

195 인간 생활의 필수적 3 요소를 의식주 衣食住라고 한다. 성경에서는 먹을 것 eat의 순서가 입고 자는 것에 앞선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마태복음 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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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시, 거울, 침대도 없이 그렇게 했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쪽 구석에 있는 낡아 빠진 소파의

쿠션있는 자리에는 살짝, 드러누운 형태의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책상 아래에는 둘둘 말아놓은

담요 한 장이 치워져 있었고, 텅빈 난로의 받침대 아래에는 검은 구두약 통과 구두솔이 놓여 있고, 의자

위에는 비누와 더러운 타월 하나가 들어있는 양철 대야가 놓여 있고, 신문지 속에는 생강빵 부스러기와

치즈 한 조각이 싸여 있었다. 그래, 그렇구나. 바틀비가 이곳을 거처로 삼아, 독신자 숙소로 혼자 이용

해 온 것이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196 그러자 즉각 다음과 같은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정말

비참한 외로움과 고독함이 여기서 드러나는 구나! 그의 곤궁함도 큰 문제이다. 하지만 그의 고독은 얼

마나 더 끔찍한가! 생각해 보라. 월 스트리트는 일요일이면, 폐허가 된 고대 도시 페트라197처럼 인적도

없이 텅 빈다. 평일 밤도 텅 빈 그 자체다. 이 건물 역시 평일 낮에는 일과 사람들로 법석대다가, 밤이

되면 적막함만이 메아리 칠 뿐이며, 일요일은 내내 쥐 죽은 듯 쓸쓸하다. 그런데 바틀비는 여기에 거처

를 트고, 한 때 많은 사람들로 붐비던 바로 그곳이 적막함만으로 가득 찬 광경을 홀로 지켜보고 있는 것

이다- 순진해서 당한 마리우스198가 카르타고199의 폐허 속에서 시름에 잠긴 모습 같다고나 할까!

난생 처음으로 나의 마음은 가슴이 찔리듯 참을 수 없는 격한 슬픔의 감정에 휩싸였다. 이제껏 나는 아

름다운 슬픔밖에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다 같은 인간이라는 형제애를 느끼면서 나는 슬픈

감정을 도저히 주체할 길이 없다. 피를 나눈 형제같이 느껴지는 슬픔의 감정! 피를 나눈 형제같이 느껴

지는 슬픔의 감정! 아마 나나 바틀비나 다 같은 아담의 자손이어서가 아닐까! 나는 그날 내가 보았던

화려한 나들이옷으로 차려 입고, 미시시피시 강 같이 넓은 브로드웨이 거리를 백조가 미끄러지듯 유유히

나아가는,200 그 화사한 비단옷201과 생기발랄한 얼굴들을 기억했다. 나는, 그들을 윤기없이 창백한 필기사

196 개인 사유지가 아닌 공공의 어떤 장소를 무단 점유하고 생활공간을 마련하는 것-이를 Squatting (물권법 용어로는

adverse possession)이라 한다-은 그 자체로써 불법이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신대륙에 식민지를 건설한 영국의 식

민지국가들은 점유 시효 취득의 법리를 보다 폭넓게 인정해 왔다. 바틀비가 점유한 빌딩 사무실 공간은 일반주거지

역이 아니므로 건물 점유 사실만으로는 범죄행위에 해당되지 않았을 것이며 다만 건축물 침해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

의 대상은 될 수 있었다.

197 사막 가운데 한 때 번창했다가 폐허가 된 고대 유적 도시 페트라는 1812년 스위스의 한 젊은 탐험가에 의해 발견

되었다. 버건은 페트라 유적을 1845년 옥스포드대 수상작인 그의 시 “Petra”에서 “영원의 절반만큼 오래된, 장밋빛

같은 붉은 도시 A rose-red city - half as old as time!“라고 감탄해 마지 않았다.

198 로마 제국의 여러 정복 전쟁을 통해서 승승장구하였던 마리우스 Marius는 노년에 들어 판단을 그르치고 새로 부상

한 정치 군인들에게 패배를 당해 해외로 망명하는 신세로 전락하였다. 마리우스는 아프리카 카르타고까지 쫓기며 추

위와 굶주림으로 고생을 겪었다. 폐허가 된 도시의 길바닥에 주저 앉아 잠시 생각에 잠긴 마리우스-그의 누더기를

걸친 모습을 그린 미국 화가 Vanderlyn (1775 –1852)의 그림이 있다.

199 카르타고 (아프리카 북부 튀니지)는 지중해 섬 이탈리아의 시칠리아에 근접해 있고 로마 제국의 등장 이전까지 지

중해의 패권을 장악하였던 대도시였다. 노예를 기반으로 한 농업 그리고 지중해 상권을 장악해서 해상무역으로 크게

흥했던 도시였으나 로마의 침공을 받은 3차 포에니 전쟁 (BC 149-BC 146)으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아담 스미스

는 “도덕감정론”에서 카르타고의 전멸에 관한 설명을 곁들고 있다. 아담 스미스는 전멸 정책을 주장한 키케로의 입장

에 반대한 스키피오의 견해를 지지하였는데 아담 스미스의 견해는 프리스틀리의 견해에 연결된다. 이와 같은 아담

스미스의 견해는 근래 들어 1차 대전 종전 후 패전국 독일에게 물린 전쟁배상금의 가혹성을 비판한 케인즈의 입장으

로 이어진다. 이러한 현실적인 사고방식은 적을 전멸하기 보다는 교화하는 것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00 법원의 연초 시무식에는 고위 법관과 변호사들이 화려한 법복을 차려 입고 참석하는데, 시무식을 마치고 퇴장하는

광경을 보면 이와 같이 묘사된다.

201 그날이 일요일이라면 비단옷 silks은 화사하게 비단옷을 차려 입은 일반적인 사람을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변호사가 법정에 들어갈 때 입는 법복은 비단 silk으로 만들어진 옷인데 이에 연유하여 존경 받는 변호사들을 “silks”

라고 속칭한다.

58

와 대조해 보고, 내 스스로 자문해 봤다. 행복은 빛을 불러들이기에 사람들은 세상이 밝다고 여기는 반

면, 불행은 저 멀리 숨어 있기에 사람들은 불행이 없다고 여길 뿐이 아닌가! 이런 슬픈 공상들은-분명 병

들고 어리석은 두뇌가 낳은 키메라202같은- 바틀비의 특이한 행동과 관련된 좀더 특별한 다른 생각들로 이

어졌다. 어떤 이상한 것을 발견할 것 같은 예감이 내 주위를 맴돌았다. 그 필기사의 창백한 형체는, 낯

선 사람들이 무심히 지켜보는 가운데, 떨리는 수의에 덮인 채 입관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문득 자물쇠에 여는 쪽으로 열쇠가 꽂혀 있는, 바틀비의 닫혀진 책상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내가 무슨 나쁜 의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내가 비정하게 호기심을 충족시키려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그 책상은 내 소유물이고, 거기에 들어있는 내용물 또한 내 것이므로, 나는

대담하게 그 속을 들여다 볼 수 있다고 여겼다. 모든 것이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서류들도 제자리

에 잘 정돈되어 있었다. 서류 정리용 분류함은 깊이 들어가 있어서 내가 서류철들을 꺼내고, 깊숙한 곳

까지 더듬어 보았다. 바로 거기에 뭔가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서, 그걸 끄집어 냈다. 그것은 오래된 밴

대나 203비단 손수건으로써, 무겁고 매듭으로 묶여 있었다. 매듭을 풀어 보니, 그건 푼돈을 모아 놓은 저

축은행 저금통이었다.204

그 동안 내가 이 사람에게서 발견한 그 모든 알 수 없는 수수께끼들이 막 떠올랐다. 내 기억에 그는 대

답할 때 빼고는 절대 말을 하지 않았고, 때로는 자기 혼자만의 시간이 상당하게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독서하는- 아니 신문이라도 읽는- 모습을 본 적이 없으며, 오랜 시간 동안 칸막이 뒤쪽의 희미한 창가에

서서, 벽돌로 막혀진 벽205을 쳐다보곤 했다는 것이 기억났다. 내 분명한 기억으론 그가 무슨 카페나 식

당을 찾아간 적이 없다. 그의 창백한 얼굴에서 알 수 있듯이 터키처럼 맥주를 마신다거나, 심지어 다른

사람들처럼, 커피나 차를 마신 적도 없었다. 내가 알만한 어떤 특별한 곳에도, 간 적이 없다. 사실 지금

의 이 경우 외에는 산책 한번 나간 적도 없다. 그는 자기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이 세계 어디에라

도 사는 친척이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그토록 야위고 창백하지만 자신의 건강이 안 좋다는 말을 스스

로 꺼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 기억으론 그에게는 어떤 창백함의 무의식적인 분출- 내가 어떤 말

로 표현할 수 있을까?-희미한 귀족적 도도함이랄까, 아니, 그것보다 준엄한 과묵함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

려나, 아무튼 그런 분위기가 배어 있었다. 정말로 그런 분위기에 눌려서 나는 그의 특이한 행동들을 순

순히 받아들이게 되었는데, 그래서 그가 오랫동안 쭉 전혀 꼼짝도 않는 것으로 봐서 내가 알아차릴 수도

202 서로 다른 동물이 교합하여 보기 흉하게 태어난 이상한 잡종 괴수를 키메라라고 불렀다. 서로 다른 조직이 하나

의 조직으로 통합될 때 우려되는 문제점을 키메라 같은 괴물이 출현한다고 표현하기도 한다. 여기서 의미는 서로 다

른 계층의 사람들이 혼합되기 어려운 점을 상징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203 무늬가 들어 있고 밝은 색깔의 스카프 크기의 큰 손수건. 밴대나 Bandanna 손수건은 오늘날 길거리 데모 시위군

중(이슬람의 시위 군중 군사독재정권에 항의 시위)이 돌을 던질 때 얼굴 가리개로 쓰는 모습에서 나타난다. 밴대나

(포르투갈어)는 해적이 머리에 두른 두건을 말한다. 오늘날 대개 해적 영화를 보면 해적은 머리에 빨간 색의 밴대나

손수건을 동여맨 모습(해골 모습의 해적깃발과 함께)으로 등장한다. (동양 역사에선 머리에 빨간 띠를 두른 홍건적의

난을 기억하라). 손수건은 사람의 목을 졸라 죽일 수 있는 무기로도 작동하였다. 이런 측면을 고려하면 밴대나 수건

의 표현은 갱단 소유나 훔친 물건같은 부정적인 의미를 암시한다. 그런데 매듭을 풀고 보니 저금통장이었다. 사람

들의 의심은 종종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 화자인 변호사가 가졌던 전제나 가정들 중 많은 부분들이 바틀비와의 겪

은 사건을 통해서 잘못된 것으로 밝혀진다.

204 저축 은행 Savings bank은 오늘날과 마찬가지로 (저축은행은 이전에는 신용금고로 불렀다) 주로 서민들의 저축을

장려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205 창은 인식의 틀을 상징하고 또한 세제 법률과 경제적 상황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었다. 재산세를 굴뚝의 숫자로,

벽돌 두께로, 창문 수로 매기는 굴뚝세, 벽돌세, 창문세 등이 존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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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긴 하지만 아무튼 칸막이 뒤에 선 채 막혀진 벽을 응시하며 공상에 빠져 있을 것이 분명할 텐데도, 나

는 별로 중요하지도 않는 미미한 일 하나 그에게 부탁하기를 주저했던 것이다.

이런 모든 것을 곰곰이 되새겨 보고, 또 그것을 그가 내 사무실을 자신의 지속적인 거처이자 사는 집으로

삼고 있었다는 조금 전에 발견한 사실과 결합하면서, 그리고 그의 병적인 우울증까지 빠뜨리지 않고 생각

을 하게 되면서, 다시 말하지만 이런 모든 것을 두루 살펴 보자, 내가 조금 신중한 판단을 내려야겠다는

느낌이 스며 들기 시작했다. 내게 드는 첫 번째 감정은 순수한 우울함과 진실한 연민이라는 바로 그런

감정이었다. 그러나 내 상상 속에서, 바틀비의 절망적인 고독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그것에 비례하여 바

로 그 똑같은 우울함이 두려움으로 겹치고, 바로 그 똑 같은 연민이 혐오감으로 겹쳐지는 것이었다. 비

참함을 생각하거나 또는 직접 보게 될 때 어느 일정한 정도까지는 우리들에게서 최고도의 애정206이 우러

나올 수 있지만, 어떤 특별한 경우, 일정한 정도를 넘어서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데, 과연 이 말이 진실

일 뿐만 아니라, 너무 섬뜩하기까지 하다. 이것은 어김없이 인간의 마음에 내재된 이기심에서 기인한다

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잘못된 생각이다. 이것은 과도한 기질적 질환207은 어떻게 치유할 수 없

다는 절망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에게, 연민의 정으로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

란 거의 없다. 그런데 그런 연민의 정으로는 실질적인 도움의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는 인식을 마침내

갖게 되면, 영혼은 연민을 버릴 수 밖에 없다고 보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상식이다. 그날 아침 내가 목

격한 것에 의해 그 필기사가 타고난 불치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납득하게 되었다. 내가

그의 육신을 위해서는 자선208을 베풀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가 받는 고통은 육신 때문이 아니다. 고통스

러움을 겪는 것은 그의 영혼이다. 내 구호의 손길이 그의 영혼 속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것이다.209

나는 그날 아침 트리니티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자 하였던 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어찌됐든, 내가 직접

목격한 이상 나는 당분간 교회에 나갈 자격이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바틀비를 어떻게

해야 될 지에 대해서 생각해 봤다. 고심 끝에, 나는 다음과 같은 방안을 강구하기로 결론 내렸다. 다음

날 아침, 그에게 그의 이력과 기타 사항에 대해 몇 가지 질문을 차분하게 해 던져 보는데, 만약 그가 그

러한 질문에 대답하기를 분명하게 또는 마지못해 거절한다면 (내 생각에 그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습니

다’ 라고 말할 것 같다), 그럴 경우 얼마가 되건 내가 그에게 지급해야 할 그간의 급료에다 20달러짜리 지

폐 한 장을 더 얹어 주면서, 이제 그의 근무가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나는 말할 것이다.210 하지만 내가

206 에드워즈의 설명에 의하면 정서 affections는 사람들이 인식 understanding의 수준을 넘어서, 어떤 대상에 대해 감

정을 느끼고, 관심을 보이고, 좋아하고 하는 그런 성향이나 이끌림 inclination, 선호 의지 will, 마음 heart이다. 흄, 아

담 스미스, 프리스틀리 등의 경험철학자들에게 감정에 대한 개념은 공유된다.

207 “기질적 질환 organic ill”. 1850년대 당시에 사람이 불치병 incurable disease에 걸렸다면 의사의 처방에 의해 존엄

사도 가능하다고 본 일부의 의견이 나타났다. 하지만 영미인의 필연주의 경험론 철학에서는 우주질서는 인간 사회의

완전과 발전을 향한 인간의 노력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갖고 있다. 자연은 무궁무진한 것이고 인간 사회 또한 무한

한 발전을 해나간다는 철학적 기초에서 희망의 끈은 포기되지 않는다.

208 Alms은 의연금, 구호성금을 내는 것을 뜻한다. alms house는 사설 구호단체가 오갈 데 없는 빈민들에게 숙식을

제공하는 구빈원을 지칭한다. 공공단체가 운영하는 수용자 시설을 poorhouse라고 불렀다.

209 대륙국가에서는 영혼을 치유할 수 있다는 사고가 우위에 있다. 그리하여 프로이트 등의 정신분석학의 관념론이

성행한 것 같다.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의 변화는 “영혼의 구제”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하지

만 프리스틀리, 아담 스미스 등 영국의 경험론자의 사고는 인간의 보다 좋은 삶이 물질적인 풍요 그 이상의 고상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 있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그런 ‘좋은 삶’의 추구는 최소한 물질적인 풍요가 밑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다. 경험론은 보이지 않는 영혼의 문제보다는 인간의 밖으로 나타나는 행위에 더 큰

관심을 두었다는 점에서 대륙국가의 사고와 차이가 난다.

210 퇴직금은 severance pay. 산업사회의 발전으로 자유 방임주의가 팽배하였던 당시 “고용 계약의 자유 th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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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도울 수 있는 어떤 다른 방법이 있다면 내가 기꺼이 그렇게 하겠으며, 특히 그가 자기 고향으로 돌

아가기를 바란다면, 거기가 어디가 되었건 간에, 그의 여비를 내가 기꺼이 부담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게다가, 고향 집에 돌아간 후, 언제라도 무슨 도움이 필요할 경우가 생긴다면, 내게 편지 한 통 보내주고

그러면 틀림없이 내 답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다음 날 오전 시간이었다.

“바틀비,” 가림막 뒤에 있는 그를 향해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

대답이 없었다.

“바틀비,” 이번에도 계속 부드러운 목소리로 내가 말했다. “이리 와. 네가 하고 싶지 않은 어떤 일을 해달

라고 부탁하려는 것은 아니고- 그냥 네게 간단히 이야기나 할까 해서 그래.”

이 말을 듣고 그는 아무런 소리 없이 슬며시 모습을 드러냈다.

“바틀비, 네가 어디서 태어났는지 말해주겠니?”211

“나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어떤 것이든지 네 신상에 대해 말해주겠나?”

“나는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게 말해야 되는 것을 거부할 무슨 적절한 사유가 있다면 그걸 말해 보겠나? 나는 네한테 친

근감을 느끼는데.”212

그는 내가 말하는 동안 나를 바라보지 않고, 내가 앉은 자리 바로 뒤, 내 머리 위로 15센티미터쯤 떨어져

놓여 있는 키케로213 흉상에 계속 눈길214을 맞추고 거길 쳐다보고 있었다.215

employment at will rule”, “해고 자유의 원칙 presumption of terminability at will”을 보여준다.

211 당시 1850년 노동법 개정으로 도망친 노예들을 원주인에게 돌려보내는 노예추국법 Fugitive Slave Ac 1850이 시행

되었다.

212 구약성경의 에스더는 자신의 출신과 배경을 비밀에 부치고 살아 남아서 절멸의 다급한 순간에 처한 유대민족을

구해내는 임무를 완수하였다..

213 Cicero (BC 106-BC 43) 유명한 로마 시대의 변호사. 키케로에 대해서 화자인 변호사의 입장에서 본다면 당시 로

마의 혼란한 정치 상황 속에서 키케로가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에 대해 재판 없이 처형하고 반란을 진압한 사례에 비

추어, 자신도 주인에게 반기를 든 직원인 바틀비를 지체없이 즉시 해고할 수도 있겠지만 자신은 모든 법과 절차를 다

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모습까지를 보여준다는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214 영미인의 대화 문화에서 상대방이 말하는 도중에 말하는 상대방을 똑바로 쳐다 보지 않는 사람은 죄지은 guilty 감

정이 있다거나 또는 관심이 없다는 표시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태도는 조심해야 될 것 같다.

이런 태도를 보이면 말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이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가질 수가 있다. 반면 동양인은 (특히 윗사람

과 아랫사람 사이) 대화 중에 시선을 상대방에게 똑바로 맞추지 못하는 태도를 나타내는데 이는 동양인의 진노외 추

궁과 죄의식의 문화에서 나오기 보다는 공손함의 문화에서 나오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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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틀비, 네 답변을 듣고 싶은데 말해 보게나?” 그가 답변을 준비할 수 있을 만큼 상당한 여유 시간을 주

고 한참을 기다린 끝에 내가 말했다. 내가 그의 답변을 기다리는 사이, 그의 얼굴 표정은 내내 변하지

않았고, 다만 그 창백하고 힘없는 입술이 살짝 떨렸을 뿐이었다.

“지금은 내가 어떤 대답도 하고 싶지 않아요,” 하며 그가 말하고서는 다시 그의 은둔처로 물러갔다.216

내가 고백하건대, 내게 조금 약한 면이 있어서긴 하지만 이번 경우에 나타난 그의 태도가 거슬렸다. 217

그의 태도 속에는 무시하거나 모독하려는 감정이 숨어 있는 듯 했을 뿐만 아니라, 그가 내게서 받은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대우와 관용을 고려해 보면, 그의 삐뚤어짐은 배은망덕한 짓으로 보였다.

나는 다시 자리에 앉아 내가 어찌해야 될 지에 대해서 곰곰이 되씹어보았다. 그의 행동에 굴욕감을 느꼈

고, 그를 해고하기로 이미 결론내고 사무실에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무언가 미신적인 것이 내

심장을 두들기고, 내 목적을 실행하지 못하게 막아서고, 만약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이 사람에게 내가 감

히 쓰라린 말 한 마디라도 꺼낸다면 나는 천하에 몹쓸 사람이라고 비난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

침내, 그의 칸막이 뒤쪽으로 내 의자를 친근하게 끌여다 앉으면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바틀비, 그렇다

면 네 이력을 밝히는 것은 괘념치 말게나. 하지만 친구로서, 부탁하건대, 가능한 한 이 사무실의 관례를

따라주길 바라네. 내일이나 모레쯤 서류 검토하는 것을 돕겠다고 지금 말해 줘. 간단히 말해서, 하루 이

틀 지나면 네가 좀 합리적인 사람218이 될 거라고 지금 말해 달라는 거야. 그렇게 하겠다고 말해봐, 바틀

215 대륙법 국가에선 “진노의 하나님”의 개념이 우월하여 처벌과 추궁의 관점이 강조되는 반면 영미국에서는 “사랑의

하나님”의 개념이 우월하다. 따라서 영미국의 학교 교육에서 처벌의 관점보다는 보상의 관점이 앞선다. 프리스틀리

의 교육 철학에서 강조되듯이, 잘못을 처벌하는 ‘심판’하는 하나님의 개념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설령 잘못을 했더

라도 실수나 잘못을 고백하면 용서해주는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이 강조되므로 영미국의 학교 교육에서 처벌의 시스

템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은 처벌을 두려워하면 자신의 잘못이나 실수를 스스로 밝히려는 태도를 보이기 어

렵다. 영미국은 상대방의 동의를 구하는 시스템에 기반하므로 스스로 밝히는 것을 장려하고 자진 신고제의 인센티브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또 중요한 차이점 하나는 “모든 정보 제공의 의무 full disclosure” 개념이다. 대륙법 국가에

서는 국가가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는 생각은 매우 빈약한 반면 영미법은 정부에게도 솔직한 정보 제공의 의무를 부

담시키므로 설령 정부가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일지라도 공개해야 할 의무가 있다. 대륙법 국가에서 무슨 일이 터지

면 처벌을 피하고자 함구로 일관하거나 더 나아가 있는 사실도 덮어버리고 그 흔적을 지워버리며 증거 인멸까지 시

도하는 2차적 잘못을 범하는 경우가 흔히 일어난다. 반면 영미법은 잘못을 고치는 것에 강조점을 두는 “사랑의 하나

님”의 개념이 우월하여, 정보를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공개하는 “자진 신고 의무 duty of candour”제도 즉 설령 자신에

게 불리한 정보일지라도 있는 그대로 ‘먼저’ ‘솔직하게 candid’ ‘공개해야 being open’ 한다는 원칙이 법문화적으로 정착

되어 있다. 솔직한 자진신고 candour, 완전 정보 제공, 투명성 등의 개념에 대해서 영미법과 대륙법 사이에는 큰 간

극이 존재한다.

216 구약성경에서 에스더가 자신의 출신 신분을 왕이 물어보는 대로 순진하게 밝혔다면 왕비가 될 수가 없었을 테고,

따라서 유대민족을 멸망의 순간에서 구해내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또 카르타고 사람들은 로마 제국이 전쟁을 회피하

려면 모든 무기를 자진해서 갖다 버리라는 요구에 순진하게 넘어가서 전쟁을 회피하기는커녕 모두 몰살당하고 말았

던 사실-그와 같은 “순진한 바보”의 역사적 사건을 상기하면 만약 바틀비가 당시에 도망친 노예의 처지이었다면 그가

자신의 정보를 밝힌 순간 원래 주인한테 되넘겨져야 할 운명이었을 것이다. 일본어 “馬鹿正直” 바카 쇼지키, stupidly

honest를 참고하라.

217 바틀비의 대답 (증언) 내용에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그의 답변 태도를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증인에 대

한 변호사의 질문 방식이나 기술이 약해서 그가 원했던 답을 이끌어내지 못한 사실을 인정하는 표현이다.

218 산업사회가 발전하면서 각종의 산업 재해 사고가 크고 많이 일어나자 합리적인 사람의 행동 기준에 대한 설정 요

구가 드높아졌다. 법학에서 “합리적인 인간 reasonable person”이라는 개념이 처음 등장한 것은 1835년이고 법에서 “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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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지금은 좀 합리적으로 되고 싶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죽어가는 시체 같은 그에게서 나온 답변이었다.

바로 그때 접문이 열리더니 니퍼즈가 다가왔다. 그는 평소보다 훨씬 심한 소화불량 탓에 유별나게 밤잠

을 설친 것이 역력했다. 그가 바틀비의 그 최종적인 말을 엿듣게 된 것이다.

“뭐 하고 싶지 않다”고?, 니퍼즈가 이를 갈듯이 말했다. “내가 변호사님이라면, 그가 하고 싶다는 말을 하

게 만들 텐데요.” 그가 나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나는 그가 하고 싶다는 말을 하게 만들 텐데요. 난 그

가 선호하는 것을 주겠어요, 저 고집불통의 당나귀 같은 사람에게는! 변호사님, 이번에 그가 안 하고 싶

다고 말한 건, 대체 뭔가요?”

바틀비는 손발 하나 꿈쩍하지 않았다.

“미스터 니퍼즈,” 내가 말했다. “넌 당분간 입을 다물고 있었으면 싶은데.”

어찌된 영문인지, 최근에 나는 이 “선호하다 prefer”라는 단어를 딱히 적절하지 않은 온갖 경우에도 나도

모르게 무심결에219 사용하는 습관이 붙게 되었다. 내가 그 필기사와 접촉하게 되면서 내 사고 방식이 이

미 심각한 영향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어 내 몸이 오싹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심각한 어떤 탈선의 징후

가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이런 두려움이 들자 나는 뭔가 즉결 조치220를 재빨리 취하지 않으면 안된다

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니퍼즈가 매우 화내고 삐친 표정으로 나가자, 터키가 밝고 공손한 표정으로 다가왔다.

“존경하는, 변호사님,” 그가 말했다. “어제 여기 바틀비에 대해서, 내가 생각해봤는데요, 만약 그가 매일

시원한 에일 맥주221 1리터 정도를 마시고 싶어하기만 하면, 그가 고쳐질 수 있으며,222 그리하여 필사 검

리적인 인간”의 개념이 처음으로 제시된 케이스는 영국의 1837년 Vaughan v. Menlove 사건이었다. 산업 사회로 발전

되기 이전에는 사람들이 부주의해서 생긴 사고라도 사고를 일으킨 당사자에게 고의성이 없으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산업사회가 발전되면서 크고 작은 각종의 사고가 빈발하면서 시각이 달라졌다. 대규모 공장 노동자

인력이 필요하였는데 이들은 많은 경험이 요구되는 일도 아니고 따라서 모든 노동자는 거의 동일하게 취급되었다.

산업사회가 크게 발전하자 개인의 특이성은 어느 정도 선에서 희생되어야 하는 생각이 발전하게 되었는데, 그렇지 않

으면 대규모 사람들이 같이 살아가는 새로운 산업 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산업 사회로

의 급격한 발전은 “합리적 인간”에 대한 개념이 정립 (개인의 특이성이 희생되고 평균인이 요구됨) 될 것을 요구하였

다. 홈즈는 “보통법”에서 말했다: “For society to function, "a certain average of conduct, a sacrifice of individual peculiarities

going beyond a certain point, is necessary to the general welfare."

219 “무심결에 involuntarily”의 뜻은 사람의 자유 의지에 상관없이 즉 의도가 개입될 여지도 없는 사이에 무심결에 자

동적으로 일어난 행동을 말한다. 인간의 자유 의지가 중요하다는 것은 그만큼 선택의 책임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의

미한다.

220 “Summary action”은 증인의 소환 없이 문서 증거에만 의존해서 즉시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약식 재판의 한 종류를

말한다.

221 맥주 Beer는 발효 방법에 따라 크게 두 종류(애일 Ale, 라거 Lager)가 있는데 에일 Ale 맥주는 주로 영국산이고,

Lager 맥주는 독일산이다. Ale 맥주는 진저넛, 오후 차 마시는 휴식시간 tea time 등의 표현과 같이 영국 출신의 민

족성을 엿볼 수 있는 음식 관련 어휘이다. 에일 ale은 astor, ester 발효 향 ale, astor, ester 이렇게 발음, 향기, 맛이 서로

63

증하는 자신의 일에 끼어들게 될 것으로 봅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너 역시 그 단어를 쓰는군,” 내가 약간 흥분하여 말했다.

“존경하는, 변호사님, 무슨 단어 말씀입니까?” 하고 터키가 물으면서, 칸막이 뒤의 좁아터진 공간으로 공

손하게 밀고 들어왔고, 그 바람에 나는 그 속기사와 거의 부딪힐 뻔했다. “무슨 단어 말씀입니까, 변호사

님?”

“나는 여기에 내 혼자 있고 싶습니다,”223224 바틀비가 자신의 사적 공간이 혼잡해진 것에 화가 난 듯 말했

다.

“터키, 저것이 그 단어다,” 내가 말했다. “저것이 바로 그것이다.”

“앗, 선호하다 라는 그 단어? 네, 그렇죠. 정말 이상한 단어입니다. 나 자신은 그것을 한번도 사용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변호사님, 말씀 드렸듯이, 만약 그가 그걸 정말 원하기만 한다면.“

“터키,” 내가 그의 말을 끊으면서 말했다. “넌 제발 그만두게나.”

“아, 물론이죠, 변호사님. 변호사님이 내가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것을 원한다면요.”

터키가 물러나가 위해 접문을 열었을 때, 니퍼즈가 자기 책상에서 나를 흘깃 쳐다보고는, 내가 어떤 문서

를 푸른 색 종이와 하얀 색 종이 가운데 어느 쪽에다 필사했으면 싶은지 물었다. 225 그는 ‘하고 싶다

prefer’라는 그 단어를 조금도 짓굳은 억양으로 말한 것이 아니었다.226 이 단어가 그의 혀에서 무심결에

자동적으로 튀어 나온 것이 분명했다. 나 자신과 부하 직원들의 머리는 아닐지라도, 말을 이미 상당 정

도 변질시킨, 이 미친 사람을 확실히 제거해버려야겠다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즉시 해고

발표를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고 여겼다.

다음날 바틀비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면벽 공상227에 잠긴 채 그냥 창가에 서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차

렸다. 왜 필사를 하지 않느냐고 내가 묻자, 그는 더 이상 필사를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연결되고 있는 표현이다. 이민자들 사이에 자신의 출신국가를 말하지 않으려는 경향이 있는데 어떤 맥주를 택하는지

‘선호도’에 따라서 대략 어느 나라 출신인지를 가름해 볼 수 있다. 개인의 선호도는 문화적인 요인의 영향을 받는다.

222 영미 경험론의 입장은 사람은 개과천선 mending의 가능성을 갖고 있다고 가정한다. 실수와 잘못을 고칠 수가 있

다는 교육의 기능면에서 희망과 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223 “혼자 있을 권리 right to be alone” 즉 프라이버시 privacy는 인간 본성의 하나로 이해되고 오늘날은 헌법적 기본권의

하나로 정착되었다.

224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주장한 정부의 불간섭 정책 즉 자유방임주의 laissez-faire는 개인의 자율에 맡기는

“leave alone”, “allow to be”의 정책이었다.

225 빨간색은 보통법, 푸른 색은 형평법 법원을 뜻했다. 영미국에선 전통적으로 정치 정당의 색깔을 진보는 빨간색,

보수당은 푸른 색을 지금까지도 쓰고 있다. 색깔로써 지지 정당과 사상과 신조를 구분한 것이다.

226 말의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었는지 문제에서 말하는 사람의 지위, 입고 있는 옷의 색깔, 복장의 형태, 말의 억양,

어조, 성조, 뉘앙스 등의 보조사항으로 인해서 의미의 차이가 날 수 있다.

227 한편 면벽공상 dead-wall reveries의 긍정적인 측면을 보자면, 역사상 위대한 선구자들은 “일정기간 동안 침잠하며

다른 연구자들의 이론을 곱씹은 뒤 반박하는 새로운 이론을 내놓았다.”

64

“왜? 어떻게 지금 그만둔다는 거지? 그만 두면 무슨 일을 하려고?” 나는 크게 소리를 질렀다. “더 이상

필사를 안 한다고?”

“이제 그만입니다.”

“그렇다면 이유가 뭐야?”

“내가 말해 주지 않으면, 그 이유를 모르겠다는 건가요?” 그가 무관심하게 대답했다.

나는 단호하게 그를 쳐다보았다. 그의 눈동자는 흐리멍텅해져 있었다. 즉시 내게 떠오른 생각은, 그가

나와 함께 일을 시작한 처음 몇 주 동안 희미한 창가228에 앉아 누구도 흉내낼 수 없을 정도로 부지런하

게 필사를 해대더니만 시력이 일시적으로 손상되고 말았지 않았나 하는 추측이었다.229 230

딱한 모습에 내 가슴이 아팠다. 나는 그에게 뭔가 위로의 말이라도 건네고 싶었다. 한동안 필사하는 일

을 그만두는 것이 오히려 잘되었다고 넌지시 말하면서, 나는 그에게 이 기회에 야외로 나가 건강에 좋은

운동을 시작해보라고 권했다. 하지만, 이런 충고는 통하지 않았고,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로부터

며칠 후, 다른 직원들도 없는데다, 다급한 편지를 부쳐야 할 일로 급히 서둘러대던 나는, 바틀비가 다른

할 일이 하나도 없는데다가, 평소보다는 고분고분해져서, 급한 편지를 부치러 우체국에 다녀오리라는 생

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는 단도직입적으로 딱 거절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내가 직접 다녀와야 했

다.

여러 날이 그냥 지나갔다. 바틀비의 눈이 좀 나아졌는지 아닌지는 나로써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외관

상으로는 눈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그러나 내가 눈이 나아졌는지를 묻자 그가 아무런 답도 해주지

않았다. 어찌됐든 그는 더 이상 필사 일을 하지 않으려고 했다. 마침내 그가 나의 다그침에 대한 답변

으로써 필사 일을 영원히 그만두었음을 내게 통보해 주었다.

“뭐라고!” 내가 소리질렀다. “네 눈이 완치되면-전에 없이 좋아지는-그 때도 필사를 하지 않을 텐가?”

“난 필사 일을 포기한 겁니다.” 라고 대답하고는 그가 슬그머니 나갔다.

그는 여는 때처럼 내 사무실의 붙박이로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니-그게 가능하다면-그는 예전보다 더한

228 미국에서 가스등이 가정집에서 처음 사용되기 시작한 때는 1816년이었다. 토마스 에디슨이 백열전구를 발명한

때는 1879년이었고, 백열전구의 발명 이전의 조명은 석유 램프나 희미한 가스등을 사용하였다. 촛불은 값이 비싸서

높아서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에서 장발장이 촛대를 훔치는 장면을 상기하라) 부자들이 누리는 혜택이었다.

229 대규모의 거대 공장이 출현하고 유례가 없는 빠른 속도로 산업 혁명이 진행되는 가운데 열악한 노동자의 근무 환

경에 대해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영국에서 “하루 10시간 근무 법 the Ten Hour Act” 등을 내용으로 하는

1847년 “공장법”이 새로이 제정되었고, 1850년대 이후 계속적으로 개정되었다. 그만큼 노동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에

대한 개선 문제는 시대적인 요구사항이었다.

230 “밤에서 태어나 밤에 사라질 눈이니 / 우리가 눈을 통해 보지 않을 때 / 영혼의 빛은 광채 속에 잠든다. // 어둠에

드리운 가여운 영혼에게 / 신은 현현하고 신이 곧 빛이 되나 / 빛의 영역을 사는 영혼에겐 / 인간의 모습을 드러낸다.”

-블레이크, “순수의 전조 Auguries of Innocence” 중에서.

65

붙박이가 되었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가 사무실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렇다면 그가 왜 거기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가? 그는

이제 내게는 목걸이로도 쓸모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짊어지기에도 고통스런 부담만 주는 연자

맷돌231232 같은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그를 측은하게 여겼다.

‘오로지 그를 위해서 걱정을 하였다’고 내가 말하면, 그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겠지만, 그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내 마음이 불편해진 것은 사실이다.233234 그가 친척이나 친구 이름을 하나라도 내

게 말했다면, 나는 그 사람에게 당장 편지를 써서 이 가련한 친구를 어디 가깝고 편한 요양원으로 데려가

달라고 간청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혼자 외로운, 이 넓은 우주에서도 완전히 홀로된 듯했다. 대서양

한 가운데 떠 있는 난파선의 한 조각같이. 결국에는, 내 업무와 연관되어 있는 불가피한 사정으로 인해

서 다른 모든 고려사항을 접을 수 밖에 없었다. 내 인격적으로 최선을 다해, 나는 바틀비에게 6일 내에

무조건 사무실을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 사이에, 다른 거처를 구하는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라고 그

에게 말했다. 그가 직접 나서서 이사 갈 채비를 하고 즉각 착수하면, 다른 거처를 정해 나가는 데에 내

가 도움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내가 다음 말을 덧붙였다. “바틀비, 그리고 네가 마지막으로 내 사무실을

231 블레이크의 '악마의 맷돌 Satanic mills', “the mills of God”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부 6장을 참조하라.

232 연자 맷돌 millstone 뜻은 성경의 다음 구절을 참조하라.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

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

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태

18:6-7). 연자맷돌의 비유는 고의적으로 타인에게 나쁜 짓을 저지른 사람은 용서받지 못할 것이라는 예수의 비유에서

와 같이 의도의 중요성과 근본적인 악의 존재를 인정한다.

233 원문 “I speak less than truth when I say that, on his own account, he occasioned me uneasiness.” “on his own account” 문장에

서 “on (someone's) account”의 뜻을 가진 강조의 의미로 해석하여, “그를 위해서만 걱정이 되었다고 내가 말하면 그건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이겠지만 (왜냐하면 사람인 이상 어떻게 남을 내 자신의 몸보다 더 걱정할 수 있겠

는가? 또한 그가 잘못되면 내 자신에게도 좋지 않기 때문에 내 자신을 위해서도 그가 걱정이 된 것은 사실이기 때문

이다) 그 때문에 걱정이 되어서 내 마음이 불편해진 것은 사실이다. 이러한 생각은 경험론의 철학에서 나온다. 내가

동정심을 보이는 행위가 그 사람을 위해서일 뿐만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보면 내 자신을 위해서도 유용하다는 것이다.

234 화자인 변호사가 “너의 새로운 거처에서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편지로 내게 꼭 통지해 주게나. If

hereafter in your new place of abode I can be of any service to you, do not fail to advise me by letter.”라고 정중하게 이별의 말을

건네고 있는데, 이런 표현은 사업상 관계를 정리하고 헤어질 때 쓰는 상투적인 말이다. 어떤 일로 내가 필요하다면

즉 내가 해줄 수 있는 일 service이 생기면 네게 연락 주세요- 이런 뜻이다. “on his own account”라는 표현은 자기 명의

로 자기 사업을 하는 것을 말한다.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on (one's) own account: For oneself; by oneself:

He wants to work on his own account.” 변호사가 맡긴 일감을 바틀비 자신이 단독으로 수행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수고

비를 받은 관계 즉 단독사업자의 지위라고 이해할 수 있다. 바틀비는 자신을 변호사의 명령과 지시에 따르는 직원이

아니고 개인사업자라고 이해했기 때문에 변호사가 시키는 잔심부름은 절대로 응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독립사업

자와 종업원의 차이는 법적으로 차이가 있다. 바틀비의 경우를 오늘날의 사정으로 말하면, 회사내 하청업자라는 것

과 같다. 하청업자는 개인사업자 신분으로써 일감이 있으면 쓰고 일의 수요가 없으면 언제든지 관계가 청산된다.

하지만 화자인 변호사가 말하듯이 변호사와 바틀비의 업무 관계는 완전하게 구분되는 하청업자가 아니고 또 변호사

의 지시와 통제를 받는 관계이므로 “바틀비가 ‘독립적으로 일을 한 것 on his own account’이라고 말하면 다소 오해의

소지가 있긴 하지만 때로는 그런 관계 때문에 내가 불편함을 느꼈다.”-이러한 변호사의 설명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바틀비가 종업원도 아니고, 그렇다고 독립적인 개인사업자도 아닌 그런 어정쩡한 상태로 있어서- 즉 바틀비가 일을

시켜도 지시에 따르지 않고 또 그렇다고 그의 손에 일을 온전히 맡길 수도 없는 상황에서 변호사는 마음이 불편했다

는 뜻이다. 변호사는 직원이 잘못을 해도 변호사 자신이 책임을 지게 되는 막중한 책임과 의무를 부담하고 있기 때

문이다.

66

떠날 때, 비상금도 없이 나가게 하지는 않도록 배려하겠네. 이 시간부터 6일235 이내라는 것을, 명심하게.”

그 기간이 만료되어, 내가 칸막이 뒤를 살짝 들여다보니, 이런! 바틀비가 거기 있었다.

나는 코트 단추를 다 잠그고, 자세를 가다듬고, 천천히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어깨를 두드리고는, 이렇게

말했다. “시간이 다 됐다. 네가 이 사무실을 그만 떠나야 한다. 네가 딱하긴 하지만. 여기 돈 있어.

아무튼 넌 떠나지 않으면 안된다.”

“난 가고 싶지 않습니다,” 그가 여전히 내게 등을 돌린 채, 대답했다.

“넌 꼭 떠나가야 한다.”

그는 대답 않고 그대로 있었다.

이제껏 나는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질박하다 싶을 정도로 높은 정직성에 무한한 신뢰를 갖고 있었다. 나

는 그런 사소한 일에는 매우 경솔한 측면이 있는데, 내 부주의로 바닥에 떨어진 6 페니236 1 실링237 짜리

를 그가 주어서 내게 돌려준 적이 자주 있었다.238 그렇기에 그 다음에 일어나는 일들은 비범하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239

“바틀비,” 내가 말했다. “내가 너한테 지불해야 할 남은 일삯이 12달러인데 여기 이렇게 32달러를 내놓을

께.240 차액 20 달러241는 네 것이 되는 거다. 이것 그냥 받도록 하게나?” 그리고선 내가 그에게 지폐를

건넸다.

그러나 그는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다면 내가 돈을 여기에다 놓아 두기로 하지.” 라고 말하고, 돈을 책상 위에 놓고 문진으로 눌러두었

235 오늘날은 주5일 근무제로 바뀌었으므로, “영업일 기준으로 5일 이내로” 표현을 쓸 것 같다. 이 말의 뜻은 토요일,

일요일, 공휴일은 제외하고 5일이 지난 때를 말한다.

236 Six pence (6d) 16세기 중엽 종교개혁시기에 처음 주조된 이후 1971년까지 유통된 동전을 지칭한다.

237 페니, 실링은 영국의 화폐 단위이지만 당시 미국에서는 스페인의 페소 등 외국 화폐가 1857년까지 법정화폐로 동

시에 쓰였다. (12 pence to the shilling, with 20 shillings to the pound).

238 미국의 화폐 제도는 1900년 금본위제 Gold Standard Act가 시행될 때까지 금과 은의 이중 화폐 제도 Bimetallism

가 시행되었다.

239 바틀비가 떨어진 동전을 주어다 변호사에게 되돌려 준 적이 많았는데 따라서 그가 20달러를 후하게 퇴직금으로

더 보태준다고 해서 그것이 뭐 크게 이상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말한다. 즉 사람의 일이란 주고 받는 give-and-take

관계에 있고 그게 특별한 일이 아니라 자연스럽다는 뜻이다. 또 다른 해석으로는 사람은 작은 일로 신용을 얻으면

더 큰 일에도 신용을 얻게 된다는 뜻을 암시하는 것 같다. 정직하게 작은 동전을 주어다 되돌려 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데 즉 그렇게 돈에 대해서 정직한 사람이었음을 볼 때 20달러를 주어도 손도 대지 않고 돈에 대해 큰 욕심

을 보이지 않는 그의 태도는 크게 이상할 것도 없다는 뜻이다. 또다른 해석은 그가 과거에 적선을 했으므로 보상을

받는다는 인과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240 당시 1850년 금 1온스 당 대략 32$ 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1933년 금본위제 시행 당시 정부 고시가 금 1온스

당 $35 /oz 이었다.

241 1849년 Gold Coinage Act, 20달러 금화 (double eagle)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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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그리고선 나는 모자와 지팡이를 가져 들고 입구로 나가다가 살며시 돌아서며 이렇게 덧붙였다. “바

틀비, 이 사무실에서 너 개인 물건을 꺼낸 다음, 네가 사무실 문을 확실히 잠그도록 하게나- 그땐 너 이외

엔 모두가 퇴근했을 시간이니까-그리고 미안하지만, 열쇠는 문 앞의 깔개 밑에 살짝 넣어두게나, 그러면

내가 아침에 그걸 찾을 수 있을 테야. 내가 다시는 널 보지 못하겠지. 그러니 안녕, 잘 가게. 이제부터

너의 새로운 거처에서 내가 너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편지로 내게 꼭 통지해 주게나.242 바틀비, 안녕,

그리고 행운을 비네.”

그러나 그는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않았다. 어떤 폐허가 된 사원의 마지막 남은 기둥처럼, 그는 그가 아니

라면 텅 비었을 방의 한 복판에 아무 말없이 고독하게 그대로 서 있었다.

생각에 잠겨 집으로 걸어가고 있는 동안, 내 속의 허영심이 내 동정심을 누그러뜨리고 올라왔다. 바틀비

를 제거하는 나의 고수다운 처리 솜씨에 대해 내 스스로 생각해도 무척 대견스럽다고 여겨질 수 밖에 없

었다. 나는 이걸 고수답다243고 표현하는데, 객관적인 사고 능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분명히 그렇게 여길

것이다. 내 일처리 방식의 장점이라면 잡음이 없이 평화롭게 처리해 내는 것이리라. 야비하게 협박을

한다든지, 일종의 허세를 부린다든지, 성질 부리며 겁박한다든지 하는 일은 전혀 없었고 또한 사무실 안

을 왔다 갔다 홱홱거리며, 바틀비에게 거지같은 개인 소지품을 싸가지고 당장 나가라며 격한 명령을 쏘아

대는 일도 결코 없었다. 이와 비슷한 일조차도 없었다. 바틀비에게 큰 소리로 떠나라고 명령하지도 않

았고-하수라면 아마 그랬을 테지만-나는 그가 떠날 수 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당연시하고244 그리고 그러한

가정245 위에 내가 해야 할 말을 빠뜨리지 않고 모두 추가하였다. 내 일처리 방식에 대해 생각하면 할수

록, 나는 그것에 더욱 매료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음날 아침, 깨어나자마자, 나는 의심이 들었다.-

이건 아무래도 내가 잠자는 사이에 허영심의 기운이 빠져버린 탓이었다. 사람이 가장 차분하고 가장 현

명해지는 시간은, 아침에 막 깨어난 직후 그때이다. 내 일처리 방식은 변함없이 현명해 보였으나,- 그건

단지 이론상으로만 그랬다. 실무적으로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이 까다로운 문제였다. 바틀

242 “If hereafter … I can be of any service to you, do not fail to advise me by letter.”- 지금 다른 곳으로 떠나지만 그곳에서도 내

서비스가 필요하다면 내게 연락하라는 표현이다. 이런 표현은 오늘날에도 “If I can be of any service to you, please do not

hesitate to contact me.” 등 고객에게 쓰는 상투적인 문구에 해당한다. 영미인들은 헤어지더라도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은 크게 이상할 것이 없고, 비즈니스 관계상 자연스러운 것 같다. 프리스틀리의 필연주의 철학에

의하면 인간은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서로 연결이 되는 것이다. 동양인이나 영미인이나 다같이 사람의 인맥 즉 연결

망 network을 중요시하는 것은 맞지만 영미인의 결합 association에 대한 사고는 우리나라의 연고주의와는 분명히 다

른 개념이다.

243 “Masterly I call it”, “고수답다”고 표현하는데, 그가 형평법 법원의 판사 “Master”를 지낸 사실을 상기하라.

244 “Assumed”-이 뜻은 굳이 말을 하지 않아도 그럴 거라고 당연시하게 여기는 것을 말한다. “죽으면 죽으리라”, ”당

연히 물가가 오를 것으로 여겨진다” 등의 표현에서처럼 가정 assumption하는 것은 문서로 계약을 하지 않아도 당연한

계약으로 인정되어 계약 위반으로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법이 등장하게 되었다. 계약 위반으로 손해배상을

하려면 우선 계약이 먼저 존재해야 함을 증명해야 되는데 보통법원 common law에서는 그런 계약 문서가 존재하지

않으면 소송 자체가 성립되지 않아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길이 막혀 있었다. 그런데 대장장이한테 가서 생활도구를

만들어 달라든가, 나룻배 사공에게 강을 건너게 부탁한다든가, 이런 사례가 많듯이, 사람들의 일상생활에서 살아가면

서 거의 문서 계약 없이 말로써 계약을 하고 살아간다. 만약 계약 문서가 없으면 손해 배상을 요구할 수 없다고 한

다면 억울한 경우가 자주 생겨난 바 이런 경우의 소송은 형평법원에서 맡아주었는데 이러한 소송을 ‘assumpsit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이라고 불렀다.

245 가정 assumption은 가설 hypothesis 즉 “아직 입증되지는 않았지만 추론이나 이론의 기초로 이용되는 것”을 뜻한

다. 법에서 토대, 기초, 기본 원리 foundation, fundamental principle와 통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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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떠날 것이라고 미리 가정246하는 것은 참으로 절묘한 생각이었다. 하지만, 결국 따지고 보면, 그러한

가정은 단지 나의 가정일 뿐이고, 바틀비의 가정은 전혀 아니었다. 중요한 점은, 그가 나를 떠날 것이라

고 내가 가정했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가 그렇게 하고 싶으냐 아니냐의 문제였다.247 그는 가정보다 선

호에 의존하는 사람이었다.248

아침 식사를 한 후에, 내 가정이 맞을 지 아니면 틀릴 지에 대한 확률을 따져 보면서, 나는 시내로 걸어

갔다. 한 순간에는 내 예측이 참담한 실패로 판명될 것 같은 즉 바틀비가 평소대로 사무실에 건재해 있

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가, 다음 순간에는 그의 의자가 틀림없이 비어 있을 것이 확실한 것 같았다.

그런 식으로 내 생각은 수시로 바뀌었다. 브로드웨이와 커날 스트리트가 만나는 길모퉁이에서 나는 꽤

많은 사람들이 떼지어 서서 상당히 흥분한 상태로 매우 진지한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가 하지 않을 거라는 데에 나는 내기를 걸겠소.” 내가 지나치는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지 않을 거라고?- 그래 좋군!” 그럼 “돈을 거시오.” 내가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내 돈을 꺼내려고 본능적으로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다가 오늘이 선거일249이라는 것이 기억났다.

246 보험 분야는 “prediction estimate risk 예상 리스크”이론이 발달되었는데, 인간 사회의 미래 예측은 과거의 일어난 사

례들을 충실하게 모집하는 작업에 의존한다.

247 계약 위반에 의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의 종류에는, Assumpsit, Debt, Covenant가 있었다. Assumpsit 소송에서, 대

장장이 등의 전문가들은 고객과 계약을 맺었다고 해도 자신의 사정에 따라서 일의 착수 시기를 결정하지, 고객이 지

정할 성격이 아닌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런 경우 이들 전문가들은 일의 지연에 대해 손해배상의 책임을 지지 않는

다. 오늘날에도 변호사의 경우 소송에 착수하지 않았다면 착수금만 돌려주면 되지 그 이외 손해배상의 책임을 부담

하지 않는다. Assumpsit 소송의 본질에서 알 수 있는 철학적 함의 하나는 상대방의 생각은 자신의 가정과는 다를 수

있다는 점이다.

248 “preferences than assumptions”, 평균인, 합리성, 불법행위책임론에 대한 설명은 III장 6장을 참조하라.

249 ‘선거 election’의 의미는 정치적 대표자를 뽑는 공적 영역에서의 중요성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선택 election’

의 효과는 중요하다. ‘election’은 법률 용어로는 ‘선택 choice’의 뜻을 갖고 있는데, election은 형평법에서뿐만 아니라

보통법에서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고 계약법에서도 어느 것을 ‘선택 election’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이 나타난다. 보통

법에서의 election은 형평법과는 달리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은 선택할 수 없고 그에 따라 권리 자체가 달라지는 경

우가 있기 때문에 선택권의 행사는 매우 중요하다.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물건을 팔았는데 잔금을 받지 못한 경우,

계약을 취소하면 계약을 무효로 돌릴 수가 없다. 그런데 취소와 무효의 법률효과는 다르다. 계약이 무효이면 소유

권이 매도자에게 되돌아오고 그 당연한 결과로 물건값은 그대로 되돌려주어야 한다. 하지만 취소하게 되면 법률관계

가 달라지고, 잔금만큼 물건으로 되받거나, 아니면 손해배상을 소구할 수 있다. 손해배상 소송을 선택하게 되면 이

때부터는 자기 물건이라고 되가져갈 수가 없고 만약 가져갈 경우 도둑으로 취급 받을 위험이 있다. 왜냐하면 선택한

그 때부턴 물건의 소유권이 매수인에게 넘어갔기 때문이다. 순간의 선택으로 법률 관계는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것이

다. 하지만 대륙법에서는 물건값을 다 받지 못해서 손해배상을 추구하더라도 동시에 물건을 되가져갈 수도 있다.

대륙법에서는 상계의 개념이 우월하기 때문에 잔금을 다 받지 못한 경우에는 그와 동시에 권리를 추구할 수 있다.

예컨대 물건 판매대금 중 잔금이 밀려 있으면 물건을 다시 강제로 찾아오고 다시 손해 배상을 요구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상계가 원칙적으로 허용되므로 소유권으로 인한 불법 여부가 문제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영미법에서는 상

계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으므로 해결의 관점 또한 크게 달라진다.)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 국가에서는 꿩 먹고

알 먹고식의 일석이조의 개념이 우월한 것 같다. 하지만 “꿩 먹고 나면 알은 먹을 수 없다 you can't have your cake and

eat it too.”는 결론은 자명하고, 이같이 상호 배타적인 성질의 것은 두 가지를 동시에 누릴 수 없음(trade-off 관계에 있

다)에도 불구하고 ‘선택’의 중요성이라는 개념이 강조되지 못한 우리나라의 법문화인 것 같다. 따라서 자유의지의 문

제에서도 토마스 페인의 “자유 아니면 죽음”이라는 개념이 우리나라에서는 통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trade-off 관

69

내가 엿들은 말은 바틀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단지 시장직에 출마한 어떤 후보가 당선되느냐 아니면

낙선하냐에 관한 것이었다. 내 마음이 긴장된 상태에서, 나는 말하자면, 브로드웨이에 모인 사람 모두가

나처럼 흥분해서, 나와 똑 같은 문제를 가지고 서로 토론하고 있는 줄로 혼자 상상한 것이다. 길거리의

소요 사태250 때문에 내 정신이 잠시 깜빡 나갔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이걸 참으로 다행이라고 여기며, 나

는 가던 길을 마저 갔다.251

나는 의도적으로, 평소보다 일찍 사무실에 출근했다. 현관 앞에 도착해서 잠시 동안 귀를 기울이고 서

있었다. 사방이 조용했다. 그는 당연히 떠났을 테지. 나는 문손잡이를 돌려보았다. 문은 잠겨 있었다.

옳거니, 내 일처리 방식이 훌륭하게 효과를 나타낸 거구나. 그가 정말 사라진 것이 틀림없어. 하지만 뭔

가 우울한 기분이 함께 뒤섞여 일어났다. 내가 거둔 빛나는 성공에 괜시리 미안스럽다는 생각마저 들었

다. 바틀비가 나를 위해 남겨두기로 했던 열쇠를 찾으려고 사무실 문 앞 깔개 아래로 손을 넣어 더듬다

가, 실수로 내 무릎이 문짝에 부딪히는 바람에 마치 사람을 부르는 듯 노크 소리가 났고, 이에 대한 화답

으로 사무실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잠깐만요. 내가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는 중이거든요.”

바로 바틀비였다.

나는 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그 때 나는 오래 전 버지니아 주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구름 한 점 없는

어느 여름 날 오후에 번개에 맞아, 담뱃대 파이프를 입에 문 채, 죽은 바로 그 남자처럼 한 순간 빳빳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 사람은 아늑하고 열려진 자기 집 창가에서 사망했는데, 그 꿈결 같은 아름다운

오후에 창 밖으로 몸을 구부린 상태 그대로인 채 있다가, 누군가가 건드리자 푹 쓰러졌다고 한다. 252

“아직 안 갔어!” 한참 만에 내가 중얼거렸다. 그러나 그 불가해한 필기사가 나를 지배하고 있고, 또한 내

가 갖은 몸부림과 안달을 다해도, 완전히 빠져나갈 수 없는, 그 불가사의한 권위에 이번에도 복종하면서,

나는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길거리로 나왔고, 그러다 근처 구역을 걸어 돌면서, 이렇게 황당하게 전례없

계’와 ‘선택’에 대한 개념은 정확히 이해되어야 하고 또 강조되어야 한다. 이 개념은 대학 ‘경제학’ 교과서(“맨큐의 경

제학”, “새뮤엘슨의 경제학”)에서 경제학의 기초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음을 참조하라. 영미법에서는 어떤 ‘선택’을 하

느냐에 따라서 권리 자체도 달라지기 때문에 선택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영미인들이 정치적 선거에서 자신의 의

사를 적극적으로 개진하는 근본적인 배경에는 자유 의지의 철학적 인식뿐만 아니라, ‘선택’의 중요성에 대한 문제를

일상생활의 모든 면을 통하여 잘 알고 있기 때문이리라. 참고로 요즈음 미국에서 투표율이 떨어진 이유 중 하나는

영미인이 아닌 이민자들이 크게 늘어난 사실에 있기도 하다.

250 1849년 아스토르 길 거리에서 10,000명 이상의 군중이 모인 소요 사태가 발생하여 10명 이상이 사망하였다고 한

다. 1850년 재단사의 쟁의가 발생하였고, 1851년 철도노동자의 파업 사태가 일어났고, 1852년 인쇄공 노조가 결성되

었다.

251 “very thankful that the uproar of the street screened my momentary absent-mindedness”-이 문장에서 “screen”의 뜻은 “은폐”

의 의미가 아니라 마치 의사가 전염병이 걸렸는지 여부를 확인할 때 환자의 상태를 체크해 줄 때의 스크린 의미를

말한다. 의사의 체크, 스크린은 환자가 병에 걸렸는지 여부를 확인해주는 행동을 가르키는데 이는 좋은 의미를 갖는

다. 스크린은 은폐를 의미할 때는 부정적인 의미이지만 의사가 진단할 때는 긍정적인 의미를 갖는다. 똑 같은 사건

에서도 수용자가 그것을 어떻게 받아 들이고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의미는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

252 산업혁명의 급격한 진행으로 삽이나 파이프 라인 등의 쇠붙이에 번개가 닿아 사고사를 당한 경우가 많이 발생했

다. 영국에서 사망 확인서에 사망원인 cause of death으로써 번개 lightning에 의한 사고사가 처음으로 기록되기 시작한

때는 1852년이었다. 당시 산업 재해 사고가 크게 늘어나 보험 약관의 해석 문제로 법적 분쟁이 증가하였다. 화재

보험 약관에 따라 “화재에 의해서 by fire” 사고가 발생하였는지 사고원인을 둘러싸고 보험금 지급 분쟁이 많이 일어났

다. 화재 보험 약관에 대한 법률 해석에 대해서 III부 6장을 참조하라.

70

는 일을 당해서 이제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 지 궁리해 보았다. 내가 물리적인 완력을 행사해서 그

사람을 쫓아낼 수는 없었고, 심한 욕을 해서 그를 몰아내는 방법도 효과가 있을 것 같지 않았으며, 경찰

을 부르는 것도 썩 내키지 않는 발상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그가 내게서 일말의 작은 승리라도 거두게

내버려 두는 것-이것 또한 생각할 계제가 아니었다. 어떻게 해야 된단 말인가? 아니, 어떤 일도 할 수

없다면, 내가 이 문제에서 예측 가정할 수 있는 것이 더는 없을까?253 그래, 이전에 내가 미래를 내다보

며 바틀비가 떠날 거라고 가정했듯이, 이제 과거를 돌아보며 그가 이미 떠났다고 가정할 수 있지 않을까?

이 가정을 논리적으로 적용하면, 황급히 사무실에 뛰어들어가 바틀비가 마치 공기인 것처럼 전혀 보이지

않는 척하면서, 그를 향해 똑바로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런 식으로 일이 진행되면 일견 치명상을 입

게 될 것이다. 그런 식으로 ‘가정의 원칙’을 적용한다면 바틀비가 버텨내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254

그러나 다시 생각해 보니 이 계획이 성공할지는 좀 미심쩍었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서 그를 상대로 원

점에서 철저히 재검토하기로 다짐했다.

“바틀비,” 내가 사무실로 들어서며, 차분하면서도 준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난 심히 불쾌하다. 바틀

비, 내 마음이 아프단 말이다. 난 그래도 널 좋게 보았는데. 난 네가 신사다운 됨됨이를 지니고 있어서,

어떤 미묘한 곤경에 처해 있어도 약간의 암시 정도면 충분하리라고 생각했었다. 한 마디로 말해서, ‘가정

의 원칙’이 통할 거라고 생각한 거지. 그러나 내가 기만 당한 느낌이야.” 내가 진정 놀란 표정으로, 내가

전날 저녁에 놓아둔 바로 그 자리에 있는 돈을 가리키면서, 다음 말을 덧붙였다. “아니, 넌 아직 그 돈에

손도 대지 않았구나.”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를 떠날 테야, 아니면 안 떠날 테야?” 내가 여기서 불끈 화를 내며, 그에게 바싹 다가서며 다그쳤다.

“난 변호사님을 안 떠나고 싶습니다.” 그가 “안”이라는 그 단어에 부드러운 강세를 넣으며 대답했다.

“네가 도대체 무슨 권리로 여기 머물겠다는 거냐? 임대료라도 내냐? 내 세금이라도 부담하냐? 아니면

이 빌딩이 네 것인가?”

그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253 구제 조치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없다면 가정은 더 이상 의미가 없을 것이다. 전제나 가정은 어떤 결론을 얻

기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제로부터 결론을 잘못 도출하는 논리적 오류-난 세퀴터 non sequitur-를 범하는 경

우 즉 전제와는 전혀 무관한 결론을 꺼낸다든가 또는 원인과 결과가 전혀 연결되지 않는 무리한 연관을 이끌어 낼

때는 법으로부터 보호받을 수가 없다.

254 그런 식으로 “가정의 원칙 doctrine of assumptions”을 적용하면 불합리한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바틀비가 분명히

앉아 있는 것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보이지 않는다고 가정하면 그가 죽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황당한 결론이

도출되고 만다. 법인은 보이지 않는 그 무엇인데 법은 법인을 사람인양 똑 같은 것으로 가정하고 의제 legal fiction한

다. 하지만 이러한 가정의 원리는 불합리한 결론이 나올 가능성이 존재한다. “난 세퀴타”의 오류처럼 말이다. 화자

인 변호사는 바틀비에게 밀린 임금을 정산해서 주고 거기에다 20달러를 더 보태주면 거금에 해당하니 그가 냉큼 받

을 줄로 가정했고 그에 따라 돈을 주었는데 바틀비는 그 돈에 손도 안된 것을 뒤늦게 확인하자 자신의 가정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돈이면 다 통할 줄로 알고 가정했는데 그건 자신의 주관적인 확신에 따른 가정

일 뿐 상대방의 가정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71

“이젠 필사할 준비가 되어 있고 지금 필사를 하겠니? 눈은 다 회복됐냐? 오늘 오전에 간단한 문서 하나

를 필사해 줄 수 있니? 아니면 몇 줄 정도 검토하는 걸 돕겠니? 아니면 우체국에 잠깐 다녀오겠어?

한 마디로, 네가 이 건물에서 떠나기를 거부하는 것에 대해 그럴듯한 구실이 될 만한 어떤 일이라도 하겠

니?”

그는 아무 말없이 자신의 은둔처255로 물러났다.

나는 그때 신경질적으로 화가 치민 상태이었으므로 당장 더 이상의 감정 표현을 자제하는 것이 훨씬 현명

하다고 생각했다. 바틀비와 나 둘 밖에 없었다. 나는 비운에 간 아담스 그리고 이보다 더욱 불운한 256

콜트가 자신의 사무실에서 단둘이 있을 때 일어난 비극이 기억났다.257258 콜트가 아담스에 의해서 몹시

격분해진 상태에서, 경솔하게도 자신도 걷잡을 수 없게 더욱 흥분하는 바람에,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살인 행위-분명히 누구보다도 행위자 자신이 가장 후회했을 행위-로 치닫고 말았는지 콜트가 참으로 안타

깝기 그지 없다.259 260 종종 그 사건을 음미해 볼 때마다, 그런 말다툼이 공공의 길거리에서나, 또는 개인

집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사건의 결말처럼 그런 비극으로 끝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61

건물 위층에 가족들이 주거하는 것을 내버려둠에 따라 매우 불결해진 건물에 외딴 사무실- 카펫도 깔리지

않은 사무실에, 그러니 먼지 날리는 것이 뻔할 테고, 외양은 남루하다 싶은-에 둘만 남아 있는 정황- 바로

이것이야말로 그 비운의 콜트가 급성 공황발작을 일으키는데 크게 기여했음이 틀림없었을 것 같다.262263

255 Hermitage, retreat은 은신처, 은둔처, 요양원, 수용소, 보호소, 수도원으로 상호 대체될 수 있는 말인데 이들 단어

들을 좀더 세분한다면 자신의 ‘자유 의지’의 존재 여부에 따라서 이 말들이 나타내는 상황과 의미를 구별할 수 있다.

256 콜트는 감옥에서 자살로 생을 끝냈기 때문에 더욱 불운한 사람으로 말한 것 같다. 즉 사고사로 죽은 아담스보다

자살을 택한 콜트가 더욱 비운했다고 보는 것으로 자살의 정당성을 배격한다.

257 아담스는 인쇄업자 즉 언론계에 종사하였고, 콜트는 사업가이었다. 사건당사자들의 배경으로 살인 사건은 장안의

큰 화제거리였다. 주요신문들도 크게 취급했다. 콜트의 형은 총기제조 사업가로 부자이어서 유능한 변호사들로 변

론단을 구성하고 과실치사, 정당 방위, 정신이상에 무죄 등으로 정상 참작의 변론을 펼쳤다. 하지만 배심원에 의해서

살인죄로 평결 났고 사형이 선고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쪽을 참조하라.

258 범죄자로 처벌되기 위해서는 범죄 의도가 입증되어야 한다. 형법상 가장 기초적인 구성요건은 범죄 행위와 범죄

의사가 동시에 존재했다는 것. 즉 범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위법 행위 guilty act’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범죄 행위가 일어났을 때 범죄 의사 즉 ‘범행을 일으킬 마음의 상태가 존재 guilty mind’했음을 동시에 입증하여야 한

다. 이에 따라 검찰은 피고인이 범죄를 충분히 일으킬만한 범죄 동기와 범행과의 직접적 연관성을 밝혀내야 할 임무

가 있다.

259 당시 신문 기사와 여론은 콜트의 살인사건을 백만장자의 도덕파탄에 의한 파렴치범으로 몰고 갔다. 화자인 변호

사는 그러한 여론 재판의 인식과는 달리 the murder as a "misfortunate accident 우발적인 사고"라고 여기고, 피고인 콜트

에 약간의 동정을 보이는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그 이유에 대해서 III부 8장 글을 참조하라.

260 정신이상에 의한 무죄항변 기준 믹노텐 원칙 M'Naghten rule에 대한 설명 III부 8장 글을 참조하라. 정신이상의 무

죄 판단은 판사의 재량적 판단 discretion 영역에 속한다. 판사의 재량적 판단에 따라 살인범으로 사형이 선고될 수

있고, 아니면 무기징역으로 목숨을 건질 수도 있다. 법은 때로는 ‘사회의 선호’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한다. 배심원단

평결도 결국은 그 당시 공동체의 선호도에 따른 것이 아닌가?

261 완전히 프라이버시가 보호되는 사적 공간인 ‘집’에서 또는 완전하게 공적 공간인 ‘길거리’에서 서로 만나 이야기하

였다면 그런 끔찍한 사고가 일어나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것이 화자의 추측이다. 즉 공과 사를 분명하게 구분하는 것

이 바람직하다는 화자의 의견인데 현대 사회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서로 연접되어 있지만 그 연관관계와 접점

이 불분명하고 혼합되어 있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Wall(사적 공간)+Street(공적 공간)의 월 스트리

트의 의미에 대해서 III부 6장의 설명을 참조하라.

262 “domestic associations” 이 표현은 가정도 각자 독립된 한 사람과 다른 또 한 사람이 서로 결합된 존재라는 것을

뜻한다. 동양적인 부부일심동체라든가 대리인의 모형이 아니라 가정도 각자 독립된 두 별개의 인격체가 서로 독립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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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구약의 아담 시대부터 있어온 인간의 원초적인 분노 감정이 내게도 치밀어 올라 바틀비를 해치우

고 싶은 충동이 일어날 때, 나는 그 원초적 분노라는 놈과 맞서 싸우고 그 놈을 내동댕이쳐버렸다. 어떻

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글쎄다. 나는 그저 신성한 강제명령-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는

서로를 사랑하라”264는 신약의 말씀을 상기했을 뿐이다. 그렇다. 나를 구해 준 것은 아담의 자손인 예수

님의 바로 이 말씀이었다.265 사랑의 본질에 대한 고차원적인 해석들은 차치하고서라도,266 자선은 불확실

성이 따르는 미래의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결정을 할 때에는 낙관주의보다 비관주의에 따라야 하고 또 미

리 조심하고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원칙인 ‘삶의 지혜의 원칙’267과 ‘보수성의 원칙’268에 따라 자비를 베푸

는 사람을 보호해주는 뛰어난 안전장치가 된다. 사람들은 질투심 때문에, 또한 노여움 때문에, 또한 증오

때문에, 또한 이기심 때문에, 또한 영적으로 교만한 마음 때문에 살인죄를 저질러왔다.269 하지만 사랑하

는 마음 때문에 극악무도한 살인죄를 저질렀다는 말은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른 고상한

동기270를 찾을 수 없다면, 단순히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도 모든 인간은, 특히 성질 급한 사람은 사랑과

으로 결합하여 하나의 전체를 이루고 있다는 ‘결합체’의 구조로써 인식한다. 263

화자인 변호사가 범인에게 동정하는 시각을 가진 이유는 인간의 자유 의지가 환경에 구속 받아 자신의 책임을 묻

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는 “믹노텐 룰”을 인식하였기 때문이리라. 사람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한 불법성을 분간해 내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 인식 능력이 결핍된 경우 즉 이러한 경우는 이성적 판단 능력이 상실되었고 또 인간은 자신의

행동을 자제할 수 없는 정신적 충동 상태 Irresistible Impulse가 일어날 수 있는데 그러한 정신적 질환의 결과 사람의

자유 의사에 의한 결정 능력이 상실된 경우에는 형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책임론을 수긍하였기 때문이리라.

264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A new commandment I give to you,

that you love one another, even as I have loved you, that you also love one another.” (요한복음 13:34).

265 황금률 Golden Rule, 상호주의 reciprocity 윤리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부 3장을 참조하라.

266 사랑 charity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자선에 대한 해석 III부 4장을 참조하라.

267 자선은 “세상 지혜 원칙 wise principle”에 따라서도 행하는 것이 옳다. 세상 지혜의 원칙은 십계명 같은 절대적인

명령은 아니지만, 지혜의 말씀을 모아놓은 잠언이나 격언 정도에 해당하는 유용한 삶의 원칙이다. 칸트의 철학으로

는 ‘가언명령’에 해당된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부 4장을 참조하라.

268 “신중의 원칙” 또는 “보수성 Prudence의 원칙”에 대해서는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6부1편에 자세하게 설명되

어 있다. 보수성의 원칙은 변호사가 “악마의 대변인 devil’s advocate”의 역할을 담당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부 4장을 참조하라.

269 7대악 Seven deadly sins: ① 색욕 Lust ② 식탐 Gluttony ③ 탐욕 Greed ④ 나태 Sloth ⑤ 분노 Wrath ⑥ 시기

Envy ⑦ 교만 Pride.

270 동기 motive는 to induce a certain action 어떤 행동을 낳은 원천을 말한다. “원인 없는 결과 없다”는 자연 법칙에서

동기는 원인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범죄 동기는 수사관의 수사방향이나 변호인의 무죄입증에 또는 검사의

유죄입증에 중요한 단서로 작용하기도 하고 판사의 선고형량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동기는 형법상 요구되는 의도

intent, 기도(선동죄나 무고죄에는 이러한 기도가 입증되어야 한다)와는 약간씩 다른 차이가 있다. 범죄 행위를 입증

할 시 대개는 행동을 일으킨 동기를 입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 민사 사건이나 대부분의 범죄는 범죄의 행동

에서 의도가 드러나기 때문에 별도로 무슨 목적으로 또는 어떤 동기에 의해서 범죄 행위를 저질렀는지 까지를 추궁

할 필요는 없다. 과실치사나 부주의에 의한 재난재해로 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 살인죄에서 동기를 찾는 이유는

살인죄는 자주 일어나는 것도 아니고 또 인간으로서 가장 최고의 범죄이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

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살인 사건의 경우 (과학에서 원자를 발견해 들어가듯이) 그 배경과 동기까지 거슬려 찾아내고

자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 예방적인 처방전을 발견해 내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지금껏 살인에는 수많

은 동기를 찾을 수 있고 그에 따른 여러 범주로-생물학적 사회적 개인적 범주로 나눠서 잘 정리해 놓고 있다. 사람

의 행위는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이러한 범주에 거의 들어가게 되고 따라서 살인 동기는 거의 찾아질 수 있다. 하지

만 살인이 비난 받는 이유는 살인의 동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살인 행위가 일어났다는 행위

(그로 인해 상대방이 죽었다) 그 자체에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살인 동기의 존재 여부에 따라 고의적 살인

73

박애정신을 바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지금 답을 찾아야 할 당면 현안에 대해서, 나는 그 필기

사의 행동을 호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에 대한 나의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불쌍한 사람,

불쌍한 사람이야! 하면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그는 어려운 시기를 겪었으니, 그가 제 마음대로 행동해도 너무 개의치 말자.

나는 또한 바로 일에 매달리려고 애썼고, 이러면서 동시에 의기소침해진 마음을 달래려고 힘썼다. 나는

오전 시간 중 바틀비가 자발적으로 원해서, 자기 형편에 잘 맞는 때에 자신의 은둔처에서 일어나, 문 쪽

으로 정해진 행진대열에 참여하리라는 상상을 애써 해보았다. 271 그러나 그건 아니었다. 열 두시 반이

되자, 터키가 얼굴을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하며, 잉크병을 뒤엎고, 여느 때처럼 큰 소란을 떨기 시작했

다. 니퍼즈는 차츰차츰 조용해지고 정중해졌다. 진저넛은 점심대용으로 사과를 우적우적 씹어먹었다.

바틀비는 창가에 우두커니 서서 막힌 벽을 바라보며 깊은 공상 속으로 빠져 들었다. 이런 것을 누가 믿

어줄까? 내가 이것을 인정해야만 할까?272 그날 오후 내가 그에게 더 이상 말 한 마디도 않고서 내 사

무실에서 나왔다는 이것 말이다.

이렇게 또 며칠이 지나갔고, 그 사이에 한가한 틈을 이용해서, “에드워즈의 ‘자유 의지’에 관한 고찰”과 “프

리스틀리의 ‘필연주의 철학’에 관한 고찰”이란 책을 틈틈이 들여다 보았다.273 내가 처한 상황에서, 그러한

책은 도움이 된다는 생각이 들기에 충분했다.274 내가 어쩌다 이 필기사를 만나서 겪은 이런 고난들은 이

미 오래 전부터 모두 예정되어 있었으며, 바틀비는 전지전능한 신의 섭리에 따른 어떤 신비한 목적- 따라

서 나 같이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일개 미물로서는 헤아릴 수 없는 일이지만-을 띠고 내게 배치되었을 거

라는 이론이 설득력 있게 조금씩 와 닿기 시작했다.275 ‘바틀비, 칸막이 뒤 거기에 그대로 있어라,’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난 더 이상 널 박해하지 않으련다. 넌 이런 낡은 의자들 중 하나처럼 해도 안 끼

치고 시끄럽게 굴지도 않는다. 결론적으로, 네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만큼 내가 그렇게 사적

인 느낌이 든 적이 없다.276 마침내 나는 이것을 보고, 이것을 느끼는 거다. 바로 내 삶의 예정된 목적을

murder과 과실치사 manslaughter로 구분되고 이에 따라 비난과 처벌의 강도가 달리 작용된다.

271 인간이 공동체 사회를 이룬 법적 기초는 동의 consent에서 나온다. 홉스, 존 로크, 사회계약론자, 존 롤즈 “정의

론”을 참조하라.

272 사람이 충격적 사건을 접할 때 나타나는 태도에 대해 Kübler-Ross의 5단계 이론은 ① 부정과 고립 denial and

isolation ② 분노 anger ③ 타협 bargaining ④ 우울 depression ⑤ 수용 acceptance의 5 단계 stages로 나타난다.

273 여기서 “Edwards on the Will,” and “Priestley on Necessity.”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중인유법 Double Allusion이 쓰였

다. 따라서 “자유 의지”에 관한 에드워즈의 생각이 무엇인지와 “필연주의 상황결정론”에 관한 프리스틀리의 생각이

무엇인지를 개별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이 함께 공유하고 있는 개념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필요하

다. 조나단 에드워즈 (1703-53는) 미국의 신학자로 ‘자유 의지’에 관한 저서를, 프리스틀리 (1733-1804)는 영국의 신

학자로 ‘필연주의 철학’에 관한 책을 출간하였다.

274 ‘필연성 necessity’이란 어떤 ‘결정 determination’을 내릴 때 반드시 꼭 ‘필요한 necessary’ 것을 이르는 개념이다. 결정은 인간

의 ‘자유 의지 free will’의 개념과 연결된다. 프리스틀리의 필연주의 철학의 입장은 모든 인간은 완전한 자유 의지를 갖고 있는데

이 자유 의지의 행사는 외부적인 속박이 없는 경우에만 가능하다고 본다. 필연주의 철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III부 1장을 참조하

라.

275 근대 사회는 각자의 동의 consent에 기초하므로 설득 persuasion의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276 갈릴레오는 상대성의 운동 역학과 운동량 보존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이것은 뉴튼의 작용-반작용의 법칙 (“모든

작용에 대하여, 그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인 반작용이 항상 존재한다.”)으로 이어졌다. 수학의 황금비를 보면 자연

은 연접한 ‘상대방’이 존재함으로써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황금비를 이루는 피보나치의 수열을 보라. 수열 1, 2, 3, 5,

8, 13, 21, 34, 55, 89, 144, 233 이 수열은 “피보나치 수열”이라고 하는데 서로 이웃하는 두 수의 합을 구하면 바로 다

음 항이 되는 수열이다. 피보나치 수열은 황금비를 만들어낸다. 2/1 3/2 5/3 8/5…을 계속 계산하면 1.618…이란 황금

74

이제 꿰뚫어보게 된 것 바로 이것 말이다. 나는 만족해. 다른 사람들은 좀더 고상한 역할을 맡을 수도

있겠지. 하지만 바틀비, 이 세상에서 나의 임무는 네가 머물러 있고 싶은 대로 그 필요한 기간 동안 네

게 사무실 방 한 칸을 제공하는 것이다.’

만약 내 사무실 방을 드나드는 법조계 친구들이 내가 청하지도 않은 혹독한 비평을 마구 해대지 않았더라

면, 내가 이런 지혜롭고 성스런 정신 구조를 계속 유지했을 것이라고 나 자신 그렇게 믿는다. 그러나 편

견을 가진 사람들과 끊임없이 투쟁하다 보면 마침내 좀더 관대한 사람들이 내린 최상의 결정마저 고갈되

는 그러한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 종종 일어난다. 다만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내 사무실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통제 불가능한 바틀비의 기이한 면모에 놀라서, 그에 대해 조금 거친 말을 내뱉고 싶어한다는

것은 분명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한 변호사가 업무상 필요해서 내 사무실을 방문했다가, 그 필

기사 혼자 밖에 없음을 알고, 그에게서 내가 현재 어디 있는지 보다 정확한 정보를 얻으려고 시도했는데,

바틀비는 그가 불쑥 꺼낸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사무실 한가운데 서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런 자세를 취하고 있는 그를 잠시 지켜보고 난 뒤, 그 변호사는 찾아왔을 때와 마찬가지로 여전

히 내 위치를 모른 채, 사무실을 그냥 나서야 했다는 것이다.

또 언젠가 중재가 진행 중이라서, 사무실이 여러 변호사와 증인들로 붐비고 업무가 급하게 돌아갈 때, 거

기에 참석하여 그 중재과정에 깊이 관여하고 있는 법조계 인사가 바틀비에게는 아무런 맡은 일이 없는 것

을 보고는, 그의 (이 법조계 인사의) 사무실에 달려가서 그가 말한 어떤 서류를 가져와 달라고 요청했단

다.277278 이에 대해, 바틀비는 차분하게 거절하면서 이전과 같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그대로 있

었으리라. 그러면 그 변호사는 눈이 휘둥그래 해져 한참 째려 보다가, 대신 내게 말했을 것이다. 그러면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마침내 내가 직업상 알고 지내는 사람들 모두를 통해서 나도 알게 된

것은, 내 사무실에 두고 있는 그 이상한 존재를 놓고서, 호기심 어린 소문이 나돌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로 인해 나는 큰 걱정을 하게 되었다. 그러한 걱정 가운데는 그가 혹시나 질기게도 명이 긴 사람처럼 오

래 산다든가, 그가 내 사무실을 계속 점유하고 있다든가, 내 권위를 부정한다든가, 내 방문객을 당혹스럽

게 한다든가, 내 직업적 명성에 먹칠을 한다든가, 사무실 전체가 우울한 분위기로 물들게 한다든가, 마지

막 남은 저축으로 목숨을 연명해가면서 (그는 하루에 5센트밖에 쓰지 않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결국

어쩌면 나보다 오래 살게 되고, 그리하여 영속적 점유권279을 근거로 내 사무실의 소유권을 주장할 것이라

비에 수렴한다. 자연의 아름다움은 항상 조건에 대한 최적의 해를 찾아내고 그것에 따라 설계되어 있다는 것이다.

“physical reality itself is mathematical.” “Two pairs of opposite attitudes toward the problem of explaining the effectiveness of

mathematics.”

277 중재 재판은 당사자들과의 합의에 의해서 법정 이외의 장소에서 열린다. 영미법 국가에서 변호사 사무실은 (증인

의 진술을 취하거나 또는 급한 사정이 있는 경우 법정 참석과도 같은 효력을 갖는 등) 법정의 역할을 대신 수행할 수

있다.

278 중재 제도는 영국에서 출현하였고, 영국인의 문화적인 현상으로 이해된다. 미국에서 최초는 초대 대통령 워싱톤

의 유언에 나타나는데 워싱톤은 상속 분쟁 시 법원이 아니라 대신 중재를 이용해서 분쟁을 해결하라는 유언을 남겼

다. 최초의 중재 조항 arbitration clause이 들어간 사례는 1829년 문서에 보인다. (The Journeymen Cabinet-Makers from

Philadelphia).

279 인간의 역사 초기에는 인간이 자연을 소유한다는 생각은 엄두를 내지 못했고, “가진 자가 임자”라는 생각이 지배하

였다. 미국의 토착민인 인디언 또한 그런 법사고를 가졌으나 미국에 이주해 들어온 유럽 정복자들은 소유권과 점유

권의 구분 개념이 명확했다. 신탁법에서 죽은 사람이 영구히 물권적 재산권을 지배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영구구속

금지원칙 rule against perpetuities”을 두고 있다. 물권법에서 “영속적 점유권 perpetual occupancy”의 개념은 인디언에게

있어서는 보통법의 “완전한 소유권 fee simple title”과 같은 의미이었다.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에서 정복되기 이

전에 살고 있던 토착원주민들의 토지소유권은 부족 단위의 공동 소유의 개념이었으므로 소유권과 점유권의 분리 개

념은 불필요하였다. 하지만 “소유권을 행사하는 데 점유가 차지하는 비율은 10분의 9에 해당한다. Possession is nine

75

든가 하는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이런 모든 불길한 예견들로 인해 내 마음이 더욱 더 혼란해 지고, 또

내 친구들이 내 방의 귀신 같은 존재에 대해 듣기 거북한 말들을 시도 때도 없이 계속 해댐에 따라, 내

속에서 거대한 변화가 형성되었다. 나는 내게 잠재된 능력까지 모두 동원하여서, 이 참을 수 없는 몽달

귀신 같은 존재를 영원히 떨쳐버리기로 결심하였다.

그렇지만, 이 목적에 맞는 복잡한 계획을 궁리해 내기 전에, 나는 먼저 바틀비에게 영원히 떠나는 것이

합당하다는 이유를 간단하게 제시하였다. 차분하고 진지한 어조로, 나는 그런 이유에 대해 그가 세심하

고 성숙한 자세로 심사숙고해 보라고 일렀다. 그러나 그는 삼일간 심사숙고를 거듭한 뒤, 자신의 원래

결정이 이전과 동일하게 변함없음을 내게 통지해 주었는데, 간단히 말하면, 그대로 계속 내게 머물러 있

고 싶다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나는 코트의 마지막 단추까지 채우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을까?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은 어떤 것인가? 마치 귀신과도 같은, 이 사람에 대해서 내가 어

떻게 해야 하는지 양심280이 말하는 바는 무엇인가? 그를 네게서 떨쳐 내 버려라. 그래요, 내가 그렇게

해야 되겠지요. 떠나 보내버려라. 그래요, 그는 떠나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걸 어떻게 해야 되는

지 방법은요? 당신이라도 그 불쌍하고, 야위고, 활기 없는 인간을, 차마 밀쳐내지는 못할 텐데요? 당신

이라도 그렇게 힘없는 생명을 문밖으로 밀쳐내지는 못할 텐데요? 당신이라도 그런 잔인함으로 자신의

불명예를 가져오려고 하지 않을 텐데요? 아닙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그렇게 할 수

도 없습니다. 차라리 저는 그가 여기서 살다가 죽게 내버려두고, 그런 다음에 그의 유해를 벽 속에 묻어

주는 편을 택하겠습니다.281282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이 직접 어르고 달랜다 해도,

그는 꼼짝도 않을 텐데요. 그는 당신의 책상에 당신의 문진으로 눌러 놓은 뇌물마저도 그대로 남겨둔 사

람입니다.283 결론적으로, 그가 당신을 꼭 붙잡고 싶어한다는 것은 아주 분명합니다.284

tenths of the law.”는 법격언이 말해 주듯이 우선 현실적으로 ‘점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미국의 정복자와 토착 원주민

인디언과의 관계는 조약이나 계약법을 통해서 평화적으로 토지재산권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인디언에 대한 정복

전쟁을 통한 무력으로 해결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인디언의 “영속적 점유권”은 소수의 제한적인 경우로 한정되어

인정되었다.

280 형평법에서 요구되는 처리 기준의 핵심이 양심, 정의, 자연법, 천상의 명령이다. 전례도 없어 누구한테 물어볼 수

도 없는 그런 난감한 일을 처리해야 할 때 최후의 준거 기준은 오로지 이와 같은 단어들의 통칭인 ‘양심’이다. 어려

운 케이스를 만나면 오로지 양심에 따라서 분쟁을 처리해야 되는데 이 때 양심이 내게 명령하는 것은 무엇인가?

281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래서 자신은 죽어서라도 여기서 뼈를 묻겠다고 하는 인디언의 심

정을 상기해 보자. 미국 정부군과 인디언간의 마지막 전투는 1890년이었다. "내 여기 머물지 않고 / 내 일어나 넘어

가리리 / 내 심장을 피비린내 나는 운디드 니 그곳에 묻어 주오 I shall not be here / I shall rise and pass / Bury my heart at

Wounded Knee.", 베넷의 시 "American Names" (1931) 구절 중에서.

282 전쟁터에서 병사가 전사하면 전사자의 유해를 그의 고향으로 운구하는 것이 원칙이다. 인디언 정복 전쟁에서 전

사한 병사들의 유해를 죽은 자리에 그대로 묻는 이유는 시체를 운반할 관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유해를 벽

속에 묻어주는 편을 택한 것”은 자유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라 전사자가 장례를 치를 수 있을만한 유산이 없고 따라서

어쩔 수 없이 거기 벽 속에 묻을 수 밖에 없었던 절박한 사정을 암시한다.

283 유럽 정복자들은 인디언의 땅을 빼앗으려고 인디언을 서부로 내몰면서 갖은 수단을 써가며 어르고 달랬다. 그래

도 인디언에게 통하지 않자 할 수 없이 인디언을 정복하고 몰살하는 정책을 폈다. ‘내 뼈를 여기 이 언덕에 묻겠다’

는 사생결단의 각오로 물러서지 않고 마지막 투쟁을 택한 인디언의 역사가 상기된다. 물론 이 글 속에서 “인디언”을

직접적으로 암시하는 단어가 등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영속적 점유권 perpetual occupancy”과 관련하여 그리고 (로마 시

대 카틸리나의 경우처럼 인디언이 “자살적 전멸”이라는 최후의 항전을 택하게 되는 그런) 절박한 상황을 충분하게 연

상할 수 있는 대목이다.

76

그렇다면 뭔가 중대하고, 뭔가 예외적인 조치를 취하라. 뭐라고요! 그렇다고 경찰서 순경을 시켜서 그의

멱살을 잡아 끌어오게 하고, 그 죄없는 사람을 얼굴이 창백하다는 이유로 형사범을 가두는 감옥285으로 보

낼 수는 없지 않습니까? 만약 할 수 있다면 도대체 어떤 근거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게끔 하는 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겁니까?286 부랑자? 그는 부랑자가 아니더냐? 뭐라고요! 그는 몸 하나 꼼짝하는 것도

거부하는데, 그가 어떻게 부랑자나, 길거리의 떠돌이에, 해당되겠어요? 그렇다면, 당신이 그를 부랑자로

취급하려는 이유는 그가 부랑자는 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인 것이네요.287 그건 너무 터무니 없습니다.

생계를 유지해 나갈만한 자산이 있다는 재산 증명이 뚜렷하게 입증되지 않는다는 것.-그에게 그건 그렇다

고 보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의 능력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며, 그것이야말로 어떤 사람이 자신의 생계를 유지할 만큼 최소한도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

음을 보여줄 수 있는 반박 불가능한 증거 바로 그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

네. 그가 날 떠나려고 하지 않으니까, 내가 그를 떠날 수밖에 없어. 내가 내 사무실을 바꾸는 거야. 내

가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고, 그리하여 만약 새 사무실에서도 그를 발견할 시 그때는 불법침입자288로 법

원에다 소송을 개시하겠다는 뜻을, 그에게 정식으로 통고하는 거야.

이러한 나의 방침에 따라서, 다음날 나는 그에게 다음과 같이 직접 말했다. “이 사무실이 시청에서 너무

떨어져 있다는 느낌도 들고. 공기도 안 좋고. 간단히 말해서, 다음 주에 내 사무실을 옮길텐데, 이제 더

이상 네가 하는 일을 필요로 하지 않을 거야. 내가 이런 말을 지금 하는 이유는 네가 다른 일자리를 찾아

보라는 뜻이지.”289

그는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고, 그 외의 다른 어떤 말도 덧붙이지 않았다.

정해진 이삿날에 나는 짐수레와 인부들을 구해서, 내 사무실로 들어 갔고, 가구가 조금 밖에 없어서 몇

284 이 단락의 독백 부분은 “양심의 법정 (형평법 법원)”에서 양심에 따라서 내리는 천상의 명령을 의인화하여 “양심과

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이 불쌍한 사람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 이 때 양심이 명령하는 것은

무엇인가?

285 중대범죄는 보통법원의 관할이었다. 형평법 법원에서 부랑자 여부를 판결하고 또 노예 도망자를 감옥에 가둘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지만 얼마 못 가서 폐지되었다. 부랑자를 형사중범죄자로 취급한다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있었

기 때문이다. 대신 특별법이 제정되었다. 영미국의 판례법 국가에서 사법부와 행정부는 사법부 독립의 원칙에 의해

서 엄격히 구분된다.

286 당시 형평법 법원이 부랑자에 대한 강제 수용 여부를 결정하였다. 별도로 전담 판사가 있었다.

287 부랑자에 해당하는 요건을 정한 법률규정에 모호성이 있었고 따라서 자의적인 판단을 내릴 위험성이 있음을 암시

한다. 파산자라고 해도 독립적으로 생계를 유지할만한 최소한의 수단-means of support-이 있음이 입증되면 강제 수

용소 the poorhouse에 수용되는 것을 면할 수 있었다.

288 불법침입자 trespasser에 대한 소송(불법행위법은 민사법정에서 다룬다-대륙법국가처럼 검찰에 고소하는 것이 아니

라 영미법은 보통 법원에 정식 소를 제기해야 한다)은 보통법에 따라 보통법원에 제기한다. “The law”, “common law”,

“law and equity” 이런 단어는 문맥에 따라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보통법에 따른 소송은 그 결과를 비교적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보통법은 법원칙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에 누구나 예측가능하다. 반면 형평법은 판사

의 재량적인 사항이 많고 항변사유가 보다 폭넓게 인정되어 예측가능성이 줄어든다. 화자인 변호사의 판단으로는 현

재 사무실에서의 바틀비와의 법적 관계는 보통법의 관할 사항이 아니라 형평법의 관할 사항으로 여겼던 것 같다.

(물론 뉴욕에서는 1848년에 보통법원과 형평법원이 통합되었기 때문에 이런 구분은 무의미하겠지만 법의 실질적 내

용적으로는 현재까지도 구분적 의미가 존재한다.).

289 회사의 구조 조정으로 인한 해고는 정당한 해고 사유에 속하고, 통상적으로 사전 통지 절차를 밟는다.

77

시간 이내에 모든 짐을 옮겼다. 그러는 동안 내내, 그 필기사는 칸막이 뒤에 서 있었고, 나는 칸막이를

맨 나중에 옮기라고 지시했다. 칸막이가 철거되고, 그것이 마치 거대한 2절판 책처럼 접히고 나자,290 아

무 것도 없는 빈 방에는 꼼짝도 않는 그 혼자만 남게 되었다. 내가 입구에 서서 잠시 그를 지켜보는 동

안, 내 속에서 무엇인지 모르게 나를 심하게 꾸짖었다.

나는 돈 몇 푼이라도 쥐어주고 싶은 생각으로 바지주머니에 한 손을 넣은 채,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291

그런데 –그런데-막상 들어가니까 감정이 왈칵 북받쳐 올라왔다.292

“바틀비, 잘 있게나. 나는 이만 가네. 잘 있게나. 어찌됐든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그리고 약소하지

만 이것 받게나.” 라고 말하면서 뭔가를 그의 손에 슬쩍 쥐어 주었다. 그러나 그것은 곧바로 바닥에 떨어

졌는데, 그런데도, 나는 -이런 말 하기는 조금 이상하지만- 내가 그토록 떨쳐버리기를 갈망했던 그였음에

도 막상 내 손을 억지로라도 떼어낼 때 밀려오는 큰 아픔을 느꼈다.

나는 새로 임시 사무실을 마련하면서, 하루 이틀간은 문을 걸어 잠그고 일했고, 복도의 지나가는 발소리

에도 깜짝깜짝 놀랐다. 잠시라도 자리를 비웠다가 내 방으로 돌아올 때면, 열쇠를 꽂기 전에 문지방에

잠깐 멈춰 서서, 조심성 있게 주의를 살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은 부질없는 짓이었다. 바

틀비는 내 근처에 얼씬도 하지 않았다.

모든 일이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 낯선 사람이 다급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찾아와 내가 최근까

지 월 스트리트 00번지에 사무실을 두고 있던 사람이 맞지 않느냐고 물어 보는 것이었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온몸으로 스쳤고, 나는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렇다면, 신사양반,” 나중에 변호사로 밝혀진 그 낯선 사람이 말했다. “신사양반 당신이 거기 남겨둔 그

사람은 당신이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니오. 그 사람은 어떠한 필사도 거절하고, 어떠한 일도 하기를 거

부하며, 그저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만 할 뿐이고, 그 건물에서 떠나기를 거부하고 있어요.”

“신사양반, 내가 보기에도 매우 딱하군요.” 나는 차분한 척했지만 속으로는 떨면서 말했다. “하지만, 사

실은, 당신이 언급한 그 사람은 나하고는 전혀 아무런 관계가 없소- 내가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당신이 주장할 수 있는, 그런 일가친척 관계도 아니거니와 내 수하의 도제도 아니란 말이오.”

“왜 우리끼리 이래야 된다 말이오. 제발, 그 사람이 누군지나 말해 주겠오?”293

290 우리들이 흔히 “사업을 접었다”는 표현을 쓰는데 이 말에 상응하는 영어 단어가 “folded”이다.

291 “put one's hand in one's pocket: Spend or provide one’s own money.”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I부2장을 참조하라.

292 “I re-entered, with my hand in my pocket—and—and my heart in my mouth.” “my heart in my mouth”는 “목이 잠기다”, “목이

메이다” 뜻의 영어 관용구에 해당한다. “have one's heart in one's mouth: To be extremely frightened or anxious. have one's heart

in one's mouth, Fig. to feel strongly emotional about someone or something.” 자세한 설명은 I부2장을 참조하라.

293 “In mercy’s name, who is he?”-이 문장에 대한 해석은, "on earth"와 "in God's name"은 의미가 비슷하므로 “도대체,

그 사람은 누굽니까?” 이렇게 해석해도 무난하다. 하지만 "in God's name"의 말은 좀더 유감스러움을 표현한다고 보

면, 강조점이 “what”이 아니라 “why”에 주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따라서 ‘왜 바보같이 우리 둘이(변호사사이인)

서로 실랑이를 벌어야 한단 말이요! 내가 법적으로 추궁하지는 않을 테니 인간적으로 제발 그 사람 이름이라도 알려

줄 순 없겠소?’뭐 이런 정도의 뉘앙스를 풍긴 상황으로 해석할 수 있다. “in God's name!”은 마태복음 9:13 구절에 나

78

“내가 신사양반 당신한테 그걸 알려줄 형편이 전혀 못되오. 그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것이란 아무 것도

없고요. 이전에 내가 그를 필기사로 고용한 적은 있어요. 하지만 그가 내 밑에서 일을 그만 둔 지는 이

미 상당한 시간이 흘렀답니다.”

“그렇다면 내가 그를 처리하겠소, 좋은 하루 되세요, 신사양반.”

며칠이 지나갔으나, 나에겐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았다. 사실 내가 그곳에 들러서 불쌍한 바틀비가 어

떻게 지내는지 살펴보고픈 자선의 충동이 일어남을 종종 느꼈지만, 뭔지 모르는 어떤 소심함 같은 것으로

인해서 그걸 실행하지는 못했다.

또 한 주가 지나도 내게는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쯤은 그와 관련된 모든 일이 끝

났겠지 하는 생각이 마침내 들었다. 그러나 그 다음날 사무실로 들어가려는데, 몇몇 사람들이 신경이 극

도로 흥분된 상태로 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저기 오는 바로 저 사람이야. 그가 이제 나타나네.” 맨 앞에 있는 사람이 소리쳤다. 그 사람이 누군지

보니 이전에 혼자서 나를 방문했던 그 변호사이었다.

“신사양반, 당신이 그를 즉시 데려가도록 하시오.” 그들 가운데 뚱뚱한 사람이 내게 다가오며 외쳤는데,

그는 월 스트리트 00 번지의 건물 주인임을 내가 알고 있었다. “여기 신사양반들, 이들 내 건물의 세입자

들이 더 이상 견딜 수 없답니다.” 하고 그 변호사를 가리키며 건물 주인이 말했다. “미스터 비 B***라는

사람이 그를 사무실에서 쫓아냈더니, 그는 이제 건물 곳곳에 출몰하여, 낮에는 계단 난간에 앉아 있다가,

밤에는 건물 현관에서 잠을 잔답니다.294 모든 사람이 염려하고 있어요. 고객들이 사무실을 떠나고 있고

요. 시위 군중이 몰려들지도 모를 위험도 있다 하고요. 당신이 뭔가 어떤 조치를 취해주어야 하는데, 그

리고 그것도 지체 없이 즉시.”

이렇게 빗발치는 성화에 나는 대경실색하여, 뒤로 주춤 물러 났고, 그리고선 내 새 사무실에 들어가 문을

안에서 잠가 버리고 싶었다. 바틀비가 어느 누구와도 아무런 상관이 없듯이- 나하고도 아무런 상관이 없

다고 반복해서 강변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들은 내가 그와 어떤 연관이라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 마

지막 사람이라며, 내게 책임을 지우며 심하게 몰아 부쳤기 때문에 내가 무슨 말을 한들 소용이 없었다.

더욱이 (그곳 현장에 참가한 어떤 사람이 어렴풋이나마 위협했듯이) 신문지상에 노출될 것이 두려웠던295

나는 그 문제를 재차 숙고했고, 그리하여 나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상세하게 말했다. 만약 그 변호사가

내게 그의(그 변호사의) 변호사 방에서 그 필기사와 비밀 유지 조건으로 둘만의 면담을 갖도록 주선해준

다면, 그날 오후 그들이 불평한 그 골칫거리를296 그들이 제거해 내는데 내가 최선을 다해보겠다는 것이었

오듯이 “In the name of mercy give!”하고 같은 뜻이다. 솔로몬의 명판결로 유명한 성경의 일화 (열왕기 상 3:16-28), 한

아이를 두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다투는 엄마들의 다툼을 보자. 그 사건의 입장과는 반대로 여기서의 두 변호사는

바틀비를 서로 자신의 책임이 없다고 서로 미루는 상황이다.

294 그가 노숙자, 부랑자, 걸식자의 법률 요건에 해당됨을 의미한다.

295 법원은 최후의 권력자이고, 언론은 권력을 비판하고 그 이면을 파헤치는 “제4부”에 해당한다. 법원은 언론에 의해

감시 견제되는 이러한 관계에서 법조인은 언론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아마도 언론(여론)은 다수이고 또 어떤 결

과가 나타날지 그에 대해서 미리 예측을 하기가 어렵고 또 통제를 하기 힘든 대상임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296 “nuisance”는 골칫거리, 골칫덩어리로써 그런 불편을 제거하기 위해 불법침해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Nuisance

79

다.

내 오래 다녔던 예전의 사무실 계단을 올라가니, 바틀비가 거기 계단 난간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바틀비,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야?” 내가 말했다.

“난간에 앉아 있어요.” 그가 부드럽게 답변했다.

나는 몸짓으로 그를 그 변호사 방으로 데리고 들어갔고, 그러자 그 변호사는 우리에게 자리를 비켜주고

나갔다.

“바틀비,” 내가 말했다. “네가 사무실에서 해고된 이후 건물 현관을 계속 점유함으로써, 너가 나한테 크나

큰 시련을 안겨 준 원인이라는 건 너도 알고 있는 거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이제는 두 개 중에 하나를 택할 수 밖에 없어. 네가 무슨 조치를 취하든지, 아니면 무슨 조치가 너한테

떨어지든지. 그런데 어떤 종류의 일에 종사하고 싶니? 어딘가에 취직해서 다시 필사 일을 하고 싶어?”

“아니오, 나는 어떤 변화라도 이룰 생각이 없어요.”

“포목상에서 종업원의 일을 하면 어때?”

“그 일은 너무 꽉 틀어박혀 있어요. 싫어요, 난 종업원의 일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가 유별나

게 가리는 것은 아니에요.”

“너무 꽉 틀어박혀 있다고,” 하고 내가 소리쳤다. “아니 넌 언제나 틀어박혀 있잖아!”

“난 누구 밑에서 단순한 종업원의 일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그는 마치 그 사소한 문제를 즉각 매듭

지으려는 듯이 바로 대꾸했다.

“바텐더 일은 네 마음에 맞을 것 같냐? 그 일은 눈을 피곤하게 하지는 않아.”

“난 그 일은 전혀 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앞서 말했듯이, 내가 유별나게 가리는 것은 아니에요.”

그가 이례적으로 말을 많이 해서 나는 고무되었다. 나는 다시 원칙을 설명해댔다.

“좋아, 그렇다면 상인들의 외상금을 수금하러 지방을 돌아다니는 일을 하고 싶어? 그러면 건강도 나아질

테고.”

에는 공장폐수 사례 같은 공공 침해 public nuisance가 있고 사유지 침범 사례 같은 사적 침해 private nuisance가 있

다.

80

“아니오, 난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어요.”

“그렇다면 대화로써 젊은 신사를 즐겁게 해주는 여행 안내원으로 유럽에 가는 것은 어떻겠어, -그건 네 마

음에 들겠지?”297

“전혀 아닌걸요. 그 일에는 보다 직접적이고 확실한 측면이 있다는 인상이 들지 않는데요. 난 한 곳에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이 좋아요. 하지만 내가 유별난 것은 아니에요.”

“그럼 그렇게 한 곳에 그대로 붙어 있어라,” 나는 여기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만 소리질렀다. 그간 그

와 연결되어 분통 터지는 일을 수없이 겪으면서도 내가 정말로 버럭 화를 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밤이 되기 전에 너가 이 건물에서 나가지 않으면, 내가 이 건물을 떠날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정말로 내

가 이 건물을 내가 떠-떠-떠나야만 한다니까!” 그가 요지부동한 태도를 접고 순응하는 태도를 나타내게

하려면 내가 어떤 위협의 수단을 써서 겁줘야 하는 지 그 방법을 알지 못해서, 나는 조금 어정쩡하게 끝

을 냈다. 더 이상의 노력을 해본들 가망이 없다고 단념하고서, 나는 그만 일어서 나오려는 그 찰나, 최종

적인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그건 이전에 한번도 품어보지 않았던 생각은 아니었다.

“바틀비,” 그런 흥분되는 상황에서 취할 수 있는 가장 상냥한 어조로 내가 말했다. “지금 나와 함께 집으

로-내 사무실이 아니라, 내가 사는 곳으로- 가서, 거기 머물면서 우리 서로 여유가 생기면 그때에 네게 편

한 대로 조정하여 결론을 내릴 수 있을 텐데 그렇게 하지 않을래?298 자, 바로 지금, 우리 함께 가보자구.”

“아니오, 지금은 내가 어떤 변화라도 이룰 생각이 아예 없어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선 그냥 재빠르고 날쌘 동작으로 사람들을 요령 있게 이리저리 피해가면서,

그 건물에서 뛰쳐나와, 브로드웨이 방향으로 월 스트리트를 달음쳐 올라가서, 맨 처음 눈에 띄는 승합마

차에 올라 타고는 곧 어디론가로 사라져 버렸다. 내 마음이 차분해져 감에 따라 뚜렷하게 알 수 있는 것

은 건물주인과 거기 세입자들의 요구에 대해서, 그리고 바틀비를 돕고자, 또 가혹한 학대로부터 그를 보

호하고자 하는, 내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기대와 의무감과 관련해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일

은 이제 다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제 아무런 걱정근심도 없고 온전히 평온한 마음을 유지하려고 노력

했다. 그런 시도는 내 양심에 비추어도 전혀 거리낄 것이 없었다. 299 하지만 사실 내가 바랬던 것만큼

썩 성공적이지는 못했다. 격분한 건물 주인과 격앙된 세입자들이 다시 쫓아오는 것은 아닌지 매우 불안

해서, 나는 며칠간 내 업무를 니퍼즈에게 모두 맡겨두고, 사륜마차를 타고 도시의 북쪽 근처와 교외 곳곳

을 싸돌아 다녔다. 그뿐 아니라 허드슨 강 맞은 편의 저지 씨티와 호보컨까지 건너가 보고, 또 맨해튼빌

297 아담 스미스의 유럽 견문 여정이 연상된다. 영국이 프랑스의 해외식민지를 대거 차지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 유

럽의 “7년 전쟁 Seven Years War (1756~1763) 기간 동안 영국의 재무상이었던 찰스 타운센드 공작은 아담 스미스의

자유방임주의 사상에 크게 동감하고 있었는데 아담 스미스를 자신의 양자의 개인 교수로 삼아 그가 유럽 대륙 국가

들을 견문하는 여정에 동반하게 하였다. 아담 스미스는 1764-66년 3년간의 유럽 견문 여정에서 볼테르 등 여러 지

성인들과 교유하며 사색하고 자신의 경제 이론을 정련해 나가는 좋은 기회를 얻었다.

298 영미인들은 친구 사이에는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대화를 나누는 초대 문화를 갖고 있다.

299 사람의 행위를 불러오는 동기에는 자기 이익의 추구뿐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이타주의도 작동한다. 또 이기주의,

이타주의 이외에 제3자의 공정한 관전자의 입장에서 나오는 양심의 발로에서 동기가 나오기도 한다. 아담 스미스의

‘양심’에 대한 설명은 III부 4장을 참조하라.

81

과 아스토리아를 배회하기도 했다. 사실 나는 한동안 사륜마차 속에서 살다시피 했다.

내가 사무실에 다시 나왔을 때, 건물 주인한테서 온 ‘꼭 보시오!’ 메모가 내 책상 위에 놓여 있었다. 나는

떨리는 두 손으로 그것을 펼쳤다. 그것은 그 글의 작성자가 경찰에 알려서, 바틀비가 부랑자로서 더 툼

즈 감옥에 가두어 지게 됐다는 사실을 내게 알려주는 쪽지이었다.300 게다가, 내가 바틀비에 대해서 누구

보다 많이 알고 있으니, 그 곳에 출두해서, 사건 진술서를 정확하고 올바르게 작성하기를 바란다는 것이

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하자 나는 내적 갈등이 생겼다. 처음엔 화가 치밀어 올랐으나, 마침내는 거의 수

긍하기에 이르렀다.301 그 건물 주인은 열성적이고 급한 성격으로 인해서 내가 당사자라면 그렇게 결정하

지 않았을 그런 일 처리 방식을 적용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런 특별한 상황에 처한 가운데, 마지막

수단으로써, 그것만이 유일한 방안인 것 같았다.302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힘없는 필기사는 자신이 더 툼즈로 호송된다는 말을 듣고도, 조금도 저항

하지 않았으며, 맥없고 감정의 동요도 없이, 무표정한 태도를 유지한 채, 순순히 응하였다고 한다.

동정심 많고 호기심 어린 구경꾼 몇몇이 따라 나섰고, 바틀비와 팔짱을 낀 경찰서 순경들 가운데 하나가

앞장서는 가운데, 그 말없는 행렬은 정오의 혼잡한 큰 길에서 품어 나오는 그 모든 소음과 열기와 환희를

헤치며 줄지어 나아갔다.

메모쪽지를 받은 바로 그날 나는 더 툼즈, 아니 좀더 정확히 말하자면 법원 청사에 들렀다. 법원 담당자

를 찾아서, 내가 찾아온 취지를 진술하자, 내가 묘사한 그런 인물이 실제로 그 안에 있다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담당관에게 바틀비가 아무리 이해하기 힘들고 유별난 괴짜일지라도, 정말로 정직한 사람

이며, 동정심이 크게 느껴지는 사람임을 확실하게 말해 주었다. 나는 내가 아는 바를 모두 구구절절하게

설명해 댔으며, 그를 그 안에 계속 가둬 두게 하더라도 가능한 한 강제 구속은 면하게 하면서 뭔가 덜 가

혹한 조치를 찾을 수 있을 거라는 방안을 제안하며 내 말을 맺었다.303 솔직히 말해서 어떤 것이 덜 가혹

한 조치인지 내가 잘 알고 있지는 못했지만 말이다. 어찌됐든, 다른 대책을 취할 수 없다면, 사설 구빈원

인 암즈하우스에 그를 맡겨 두는 것이 보다 나을 것이다. 아무튼 나는 면회를 갖게 해달라고 간청했다.

비난 받아 마땅할 무슨 죄를 짓고 기소된 것도 아니고, 또한 그가 나타내는 모든 행동은 꽤 평화스럽고

300 화자인 변호사가 바틀비를 경찰에 신고한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바틀비는 자신의 상사이었던 변호사가 자기를

경찰에 신고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의심을 갖고 있었다. 변호사는 그런 “의심이 배어 있는 듯한 그의 말에 내 마

음이 몹시 아팠다”고 말하며, “바틀비, 널 이곳에 집어 넣은 것은 내가 아니야.”라고 뒤늦게 설명을 하는데 이미 그 때

는 바틀비의 상황을 바꿀 수가 없었고 때늦은 변명으로 여겨지게 되는 것 같다. 사람들 사이에는 이렇게 오해가 생

기는 경우가 많다. 시공간적 제약을 받는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의사 소통의 문제는 쉽게 극복될 수 있는 성격이

아닌 것 같다.

301 경찰에 신고하면 부랑자 수용소에 수감될 것이고 수감되면 자유가 구속된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는 변호사로서

비록 양심상 자기 자신이 직접 나서 신고할 수는 없었지만 그런 상황에서 다른 누군가가 대신 그 일을 해주었다는

것에 차라리 잘되었다고 느끼는 심정 (불감청고소원의 느낌이랄까)이 없지 않았다고 부정하기 힘든 상황 같다.

302 법은 “마지막 수단 as a last resort”에 해당한다. 법원은 최후의 보루로써 기능한다. 신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그

런 마지막 극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불가피한 상황 조치 necessity, 긴급피난, 정당방위와 같은 개념으로써 이해해야 함

이 옳다.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고 스스로 문제 해결이 있다. 그런데 법은 외부적 강제력을 의미하므로 법이

개입되는 순간 인간의 자유 의사는 그만큼 구속 받게 된다. ① 특별한 상황 such peculiar circumstances에 처한 가운데,

② 마지막 수단으로써 as a last resort, ③ 그것만이 유일한 방안 the only plan일 때 법이 개입하는 것이다.

303 변호사의 최후 변론 closing argument, summing up의 모습이 연상된다.

82

무해하기 때문에, 그가 감옥 주위를- 특히 잔디밭이 있는 에워싸인 구역을 자유롭게 돌아다니는 것은 허

용되었다. 그리하여 나는 그를 거기서 발견했다. 그가 거기 가장 조용한 구역에서 얼굴은 높은 벽을 향

한 채 딱 홀로 서 있는 동안, 내 머리 속은 모든 방향에서, 감옥 창문의 가느다란 틈새304를 통해, 살인자

와 강도들의 눈길이 그를 뚫어지게 지켜 보고 있다는 광경이 그려졌다.305

“바틀비!”

“당신이 누군지 내가 알아요,” 그가 돌아보지도 않고서 말했다. “그렇지만 당신한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무 것도 없어요.”

“바틀비, 널 이곳에 집어 넣은 사람은 내가 아니야.” 의심이 배어 있는 듯한 그의 말에 내 마음이 몹시

아팠으며, 그래서 내가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너한테는, 이곳이 그렇게 지독하게 몹쓸 곳은 아닐 꺼야.

여기 있다고 해서 어떤 비난 받을 전력이 따라 붙는 것도 아니다. 306 그리고 말이지, 이곳이 흔히들 생

각하듯 그렇게 슬픈 장소도 아니야. 보라, 저기엔 하늘이 보이고, 또 여기엔 풀도 보이네.”

“여기가 어딘지는 나도 알고 있어요.” 그가 답변은 했으나, 더 이상은 말하려 하지 않았으며, 그래서 나는

그를 두고 그냥 나왔다. 내가 다시 복도로 들어서자, 덩치가 크고 푸줏간 고깃덩어리처럼 생긴 남자가

앞치마 차림을 하고, 내게 다가오더니, 엄지손가락을 어깨 너머로 치켜들며 “저자가 당신 친구요?” 하고

말을 걸었다.

“그렇긴 한데요.” ‘

“그자는 굶어 죽을 작정인가 보지?307 만약 그렇다면, 감옥에서 내주는 콩밥으로 버티게 내버려 두면 되

지, 그게 전부일 뿐인 게지.”308

“그쪽은 누구요?” 그런 장소에서 그렇게 끼어드는 투로 말하는 사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내

가 물었다.

“나는 사식업자요. 돈 많은 사회지도층인사들과 관련된 자가 여기에 수감되면 그들은 나한테 부탁해서

뭔가 먹을 만한 음식을 수감된 친구들에게 배달시키지요.”

304 “from the narrow slits of the jail windows 감옥 창문의 가느다란 틈새를 통해서”- 절망과 죽음의 상징인 감옥, 그곳의

창문 틈새를 통해서 불빛이 스며드는 모습을 본다는 것- 그것은 ‘희망’을 암시한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발견하는 이

러한 극적인 표현은 미국의 국민 시인 마야 안젤로우 Maya Angelou의 넬슨 만델라를 추모하는 애도시 “HIS DAY IS

DONE (2013.12.7)에서 나타난다. “감옥의 창살 틈으로 솟아나는 아프리카의 희망을 보았습니다. We watched as the hope

of Africa sprang through the prison's doors."

305 바틀비가 벽을 뚫어지게 응시하면서 면벽공상에 잠긴 모습은 ‘성찰’과 ‘관찰’적 활동으로 이해될 수 있는 반면 그

와 반대로 감옥의 죄수들은 ‘감시 surveillance’와 ‘관찰 observation’의 대상이 되고 그리하여 규율적 지배를 당하는 파

놉티콘의 원리 그리고 원형 감시 감옥 구조가 그려진다.

306 하지만 강제 수용소에 수감되면 대개 수치로 여기거나 또는 밖으로부터의 비난과 ‘낙인 stigma’이 찍힌다는 문제점

은 쉽게 해결될 성격이 아니다.

307 만약 공공 수용소에서 굶어 죽을 경우 ‘부작위에 의한 살인 homicide by nonfeasance’ 케이스가 될지 모른다.

308 간혹 소설이나 영화에서 등장하는 사례인데 감옥에서 죄수들에게 배급하는 밥에는 벌레 grub가 간혹 발견된다.

콩밥이 나오면 죄수 가운데 정신이상자는 투정을 부리기도 하고 또 단식투쟁을 하다가 사망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83

“그런가요?” 감옥열쇠 뭉치를 들고 있는 감옥간수를 돌아보며 내가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좋소.” 사식업자의 손에 은화 동전을 슬쩍 밀어 넣어주면서 (이렇게 남모르게 돈을 받아 먹는

다는 뜻에서 사식업자란 은어가 생긴 것이다309) 내가 말했다. “저기 있는 내 친구에게 특별한 신경을 써

주길 바라오. 그쪽이 제공할 수 있는 최상의 음식을 넣어주도록 해주시오. 그리고 그에게는 항상 공손

하게 대하도록 하시오.”

“날 소개시켜주는 거, 그렇죠?” 그 사식업자는 자신의 사업을 불려나갈 견본을 보여줄 기회를 갖고 싶어

서 안달이 난 듯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310

그 필기사에게 분명 혜택이 갈 것이라고 생각해서, 나는 동의했다. 사식업자에게 그의 이름을 묻고, 그와

함께 바틀비에게 다가갔다.

“바틀비, 이 사람은 미스터 카트리트311이다. 그가 너한테 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곧 알게 될 거다.”

“나리의 하인, 양반나리, 나리의 하인입죠.” 그 사식업자가 앞치마가 땅에 닿도록 머리를 깊이 조아리면서

말했다. “여기가 마음에 들기 바랍니다, 양반나리. -음- 넓고 터진 공간에다 -음- 서늘한 방들도 있고- 양

반나리, 여기서 한동안 저희와 함께 머무르세요- 음- 기분 좋게 지내십시오. 나리, 카트리트 부인의 개인

별실에서 카트리트 부부와 함께 만찬의 기쁨을 누리시면 어떻겠습니까?”312

“난 오늘은 식사를 하고 싶지 않아요.” 바틀비가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음식이 내 속에 맞지 않을 겁

니다. 나는 만찬에 익숙하지 않거든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안뜰의 맞은 편으로 천천히 움직여 가다,

309 사식업자란 구치소나 감옥에 별도의 사식을 넣어주는 사람을 말한다. 이 문장에서 grubman이라는 단어가 생겨난

뜻을 이렇게 남들 모르게 슬쩍 돈을 받아 챙긴다는 뜻에서 사식업자라는 은어가 생겨났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감옥의

부패 현상을 말해준다.

310 “Grub”는 애벌레 구더기 거머리 번데기 변태 유충 기생충을 뜻한다. grubman은 달라붙어서 뜯어먹는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감옥 주변에서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벼룩의 간을 뜯어먹는 뒷골목 부패업자들이 결탁하고 있음이 연상된

다. 영어 사전에서 grub의 뜻을 찾아보면 “A person who seeks what they see by insistent solicitation and entreaty. A grub will

often consistently nag you if they really want what you got.” 우리나라 학생들 사이에 쓰는 은어인 꼰대, 변태, 후까시 등은

이런 nagging의 의미에서 유래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311 ‘Cutlets 카트리트’는 얇게 썩은 고기, 음식 조리 주방 기구를 말한다. 이 단어는 먹는 음식과 연관된다. 앞에서

언급된 로마시대 마리우스는 군대 개혁을 단행한 인물로 유명하다. 마리우스는 군인들이 배낭에다 모포와 주방기구

까지 집어넣고 직접 짊어지고 이동하는 새로운 전법을 개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다. 군대의 기동성을 제약한 주된

요인에는 식량배급의 문제가 있었는데 이젠 전투요원들이 배낭에다 주방기구와 모포까지 직접 챙기고 나가게 되므로

기동성이 크게 향상되었다.

312 카틸리나 Catilina의 이름을 직접 거명하지는 않았지만, 마리우스-키케로-카탈리나 인물들의 로마 시대의 역사를 통

해 유추해 보면, “Cutlets”의 카트리트 발음상 (영어로 Catiline 카틸라인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라틴 발음으로는 카틸리

나) 카틀리나가 연결된다. 키케로의 정적이었던 카틸리나는 키케로에 의해 반란 음모가 사전에 발각되었고, 카틸리나

반란군은 전원 몰살당했다. “카트리트 부인의 개인 별실에서” 이런 표현은 카틸리나가 연루된 여러 사건 중에서 여신

과의 간음 사건을 암시하는 듯하다.

84

막힌 벽을 마주 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이거 어떻게 된 거요?” 사식업자는 당황한 듯 나를 노려보며 말했다. “이상한 사람이구만, 그렇죠?”

“정신이 약간 나간 것 같아요.” 내가 미안하게 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신이 나갔다? 정신이 나갔다는 게요? 그래 이제 보니, 그게 사실이네, 난 저기 당신네 친구가 밀수꾼

이나 문서위조범인 줄로 여겼지 뭐야. 그들은 죄다 창백하고 세련되어 보이거든, 그런 위조범들은. 내가

불쌍한 마음이 들지 않을 수 없죠. 동정이 갈 수 밖에 없다니까요, 신사양반. 먼로 에드워즈313를 알고

있나요? 그가 동정하듯이 말을 덧붙이고는 잠시 말을 멈췄다. 잠시 후 그가 동정하는 투로 내 어깨에다

손을 갖다 대고, 한숨을 내뱉으며 말했다. “그 사람은 싱-싱 감옥에서 폐결핵으로 죽었죠. 그렇게 잘 알

려진 인물인데도 먼로314를 모르다니요?”

“모릅니다, 난 여태껏 문서위조범과 어울려 지낸 적이 없어요. 아무튼 난 여기서 더 이상 머무를 수가 없

네요. 저기 내 친구를 잘 돌봐주시오. 그러면 절대로 손해 볼 일은 없을 거요. 자 다음에 또 봅시다.”

이런 일을 겪고 며칠이 지난 후, 나는 또 한번 더툼즈 교도소를 찾아가 방문 허가를 얻었다. 바틀비를

면회하고자 복도를 쭉 다 돌아다녔으나, 결국 허사였다.

“그가 조금 전에 감방에서 나오는 것을 내가 보았소.” 감옥 간수가 말했다. “아마도 안뜰을 배회하고 있

을 성 싶은데요.”

그 말을 듣고 나는 그쪽으로 갔다.

“그 말없는 사람을 찾고 있소?” 또 다른 간수가 내 옆을 지나가면서 말했다. “저쪽에 그가 누워 있네.

저기 안뜰에서 잠들어 있구만. 그가 드러눕는 것을 봤는데 이십 분도 채 안된 것 같으요.”

“마당은 너무나 조용했다. 이 구역은 흉악범들에게는 개방되지 않았다. 사방을 빙 둘러 막고 놀랄 만큼

두꺼운 두께로 쌓아 올려진 벽은 감옥 안에서 일어난 모든 소음을 막아주었다. 돌로 지은 석조 건축물에

나타난 고대 이집트 건축 양식이 나를 우울하게 짓눌렀다.315 그러나 잘 다듬어진 잔디밭에 새싹이 돋아

313 Monroe Edwards (1808-47)는 텍사스주 노예 무역업자, 문서 위조범이었다. 앞에서 언급한 유명한 목사 조나단 에

드워즈와 성이 같다. 이 두 사람은 조상이 같은데 한 사람은 유명한 목사인데 반해 다른 사람은 죄인으로 전혀 상반

된 삶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것은 프리스틀리의 인간은 교육과 환경에 크게 지배당한다는 주장을 밑받침하는 한 예

가 된다.

314 여기서 “먼로”는 다른 성으로 구분되는 먼로 대통령과 “먼로 독트린”이 연상된다. 먼로 대통령 James Monroe

(1758-1831)의 대외 정책이었던 1823년의 “먼로 선언 Monroe Doctrine”은 유럽 열강의 아메리카 대륙 문제 개입에 대

항하여 미국 영토 보전 우선 정책을 추진한 것을 말하는데, 신생독립국 미국이 유럽 열강과의 대결에서 살아남는 것

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인식은 인간의 생존 법칙과 연결되는 개념이다.

315 푸진 (1812-1852)은 큰 시계탑 건물 빅벤으로 유명한 영국의 의회의사당 건축의 설계 기초를 제공한 건축가로 기

억되고 있다. 푸진은 트리니티 교회와 같이 교회 건축은 고딕 양식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영국 성공회는 19세

기초 교회 통합 운동을 지지하였는데 신구교도간 분열된 교회를 통합할 수 있는 통일적 양식의 원형이 중세 고딕 양

식에 있다고 보았고 이를 교회 건축의 기준으로 삼았다. ‘옥스퍼드 운동 The Oxford Movement (트랙타리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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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고 있었다. 그것은 영원한 피라미드의 심장과도 같았는데, 그 안에서, 새들이 떨어뜨린, 잔디 씨가, 어

떤 알 수 없는 마법에 의해, 돌 틈새를 뚫고, 싹을 틔운 것이었다.

벽면 바닥에서 이상하게도, 두 무릎을 몸 쪽으로 끌어 당겨 웅크리고, 차가운 돌 위에 머리를 대고, 비스

듬히 옆으로 누워 있는, 다 쪼그라든 바틀비가 보였다.316317 그러나 작은 미동 하나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잠시 멈칫했다가, 그에게 바싹 다가가서, 몸을 구부려서 보니, 그의 침침한 두 눈은 떠 있었다. 그

이외 다른 모습으로는 그가 깊은 잠에 빠져든 것처럼 보였다. 나는 뭔가의 이끌림에 의해서 급히 그의

몸을 만져보았다. 그의 손을 만지는 순간, 나는 식겁해서 온 몸에 전율이 일어나 내 팔 등을 타고 내 척

수를 적시며 내 발끝까지 떨렸다.

그때 넓은 이마에다 주걱턱을 가진 넓적 얼굴의 그 사식업자가 나를 뻔히 쳐다보았다.318 “그의 식사가

준비되었소. 그가 오늘도 식사를 안할 텐가? 그렇진 않겠지? 그게 아니라면 그는 밥을 먹지 않고도 살

수 있다는 건가?”

“식사를 하지 않고도 살지요.”319 이렇게 말하고 나는 그의 두 눈을 감겨주었다.320

“어라! 정말 그가 죽었구만요, 그렇죠?”

“왕과 대법관들과 함께 잠들었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321322

Tractarians)’과 ‘캠브리지의 캄덴 학회 Cambridge Camden Society’ 등이 이런 배경에서 등장하였다. 타놉티콘과 대조

되는 건축 양식은 푸진 Pugin이 주장한 정사각형 고딕 양식이다. 푸진은 파놉티콘 감옥 구조를 비인간적이라고 비판

하고, 대신 고대 이집트에서와 같이 보살핌과 배려가 있는 보다 인간적인 정사각형 구조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하였

다.

316 병원에서 진찰할 때 의사가 환자에게 누우라고 지시하면서 “Lie on your side.” 라고 말하면 어느 쪽으로 누울지 자

주 혼동되는 경험을 하는 것 같다. “on your side”는 왼쪽으로 드러눕는다는 것을 뜻한다. “Lie on your side.”는 “옆으로

누우세요.”의 뜻이다.

317 구약에 포로가 되어 한쪽으로 비스듬히 누워 있는 행동이 묘사되어 있다. "As for you, lie down on your left side and

lay the iniquity of the house of Israel on it; you shall bear their iniquity for the number of days that you lie on it. 너는 또 왼쪽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짊어지되 네가 눕는 날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 (에스겔 4:4).

318 주걱턱과 넓은 이마를 가진 사식업자의 얼굴 생김새 묘사는 부정적인 의미를 띠고 있다. 독일왕가는 주걱턱의 유

전병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319 “Jesus answered, "It is written: 'Man shall not live on bread alone, but on every word that comes from the mouth of God.'" 예수

께서 대답하셨다. 성경에 기록하기를 '사람이 빵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

이다' 하였다." (마태 4:4).

320 “빛이 세상에 들어오면, 빛보다 어두움을 좋아해서는 안됩니다. 먹을 것이 제공되면, 그걸 받아 먹어야 하고 굶어 죽어서는 안됩니다. 입

을 옷이 제공되면, 그걸 마다 하지 않고 입고 나가야 합니다..” (1611년 킹제임스성경 서문 중). 바틀비처럼 구빈원에서 재워주고 입혀주고

먹을 것을 나눠주면 그것을 감사하게 받아 다시 살아나야 할 것이다. 하지만 바틀비는 그것을 거부하고 만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다.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부 1장 아담 스미스의 동정심 개념과 필연주의 결정론을 참조하라.

321 “With kings and counsellors”은 구약성경 욥기의 구절을 우선 살펴보자. “With kings and counsellers of the earth, which

built desolate places for themselves 지금은 폐허가 된 성읍이지만, 한때 그 성읍을 세우던 세상의 왕들과 고관들과 함께

잠들어 있을 텐데” (욥 3:14). 태어난 모든 사람은 언젠가는 죽는다. 최고권력자이든 부자이든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

도 죽음을 결코 피해 갈 수가 없다. 사람이 죽을 때는 지위고하 빈부 귀천의 차별이 없다. 사람은 죽음 앞에 모두

가 평등하다. 사람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간다. 톨스토이가 웅변하듯이, 최고권력자이든 부자이든 하층민이든

사람이 죽을 때는 모두가 무덤 한 평 공간에 묻힐 뿐이다. 이런 측면에서 죽음을 통해서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간

86

* * * * * * * *323

이 이야기를 더 이상 계속 진행할 필요성은 거의 없을 성싶다. 불쌍한 바틀비의 매장과 관련된 짧은 토

막은 누구나 능히 상상할 수 있는 이야기이다.324 그러나 독자와 헤어지기 전에 내가 이런 말은 전하고

싶다. 이 짤막한 단편 소설을 읽고서 바틀비가 누구인지 그의 정체성에 대해 그리고 본 작가를 만나기

전까지 그가 어떤 삶의 태도를 가져왔는지에 대해서 호기심이 생길 만큼 독자들이 흥미를 느꼈다면, 나

역시 그런 호기심에 충분히 공감이 가지만 나에게는 그런 의문을 파헤칠 권한이 없다는 해명의 말씀325을

미리 드리고자 한다. 다만 여기서 그 필기사가 죽은 지 몇 개월이 지나서 귀동냥으로 들은 사소한 소문

하나를 밝혀도 될지는 모르겠다.326 그 소문의 근거가 어떤 것인지 내가 확인할 수는 없었고, 따라서 그

단한 진리가 재확인된다. 죽음을 통해서 인간 평등을 실현한다는 죽음의 “the Great Leveler”의 개념이 이와 같다. 우

리나라 판소리 회심곡 중 “백발가”에 나오는 표현과 의미가 상통한다: “빈객삼천 맹산군도 죽으면 자취도 없고, 만고영

웅 진시황도 여산추초에 잠들었고, 글 잘하는 이태백도, 천하명장 초패왕도, 천하명의 편작도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322 영어 원문에서 표현하는 “counsellors”는 영미국은 사법부 통치 국가이기 때문에 법관들이 King's Judges, King's

Council 국가 통치부를 차지하고 있으므로 “국왕과 대법관들 모두”가 어울리는 표현이다. 반면 대륙법 국가는 행정부

우위 국가이므로 “국왕과 대신고관들”, “왕과 고관백작과 함께”의 표현이 어울린다. 한편 형평법 폐지의 법원 개혁에

대한 의의를 음미해 보아야 할 것 같다. 하늘의 별같이 높이 우러러 보던 존경 받는 대인물이 죽음을 맞이한 경우

“별이 떨어졌다”는 유퍼미즘을 쓰는데, 여기서 인간 역사에 있어서 흥망성쇠의 법칙이 연상된다. 한 때 법과 정의를

세웠던 지금까지 많은 왕과 대법관들도 모두 죽었을 뿐만 아니라 지금 세상은 법과 정의를 세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왕과 대법관들은 그런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잠들어 버렸다!-이런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이런 해석은 이 문장 앞

뒤로 죽음의 의미를 강조하는 아스테리즘 * * * 기호는 상징적 의미를 보강해 주고 있다. 형평법 판사로 근무했던 화

자인 변호사는 형평법 법원이 보통법 법원으로 통합되면서 그만 직장을 잃고 말았다. 그는 서두에서 법원 통합 개혁

조치에 대해 시기상조라는 의견을 피력했는데 그것은 아마도 개혁에 대한 의도하지 않는 결과가 나타날지도 모른다

는 조심스런 염려에서 나온 견해이었을 것이다. 한 때 법과 정의를 세웠던 국왕과 대법관들도 모두 잠들었다. 하늘

을 찌를 듯 드높은 권세를 누렸던 형평볍 법원도 이제는 흥망성쇠의 역사 법칙 앞에 무릎을 끓고 말았다는 만시지탄

의 정서를 나타내는 표현으로 읽힐 수 있다. 왜 형평법 법원이 보통법 법원으로 통합될 수 밖에 없었는가? 형평 법

원이 보통 법원으로 통합된 이유는 형평법원의 부패와 소송 지연이 극에 달해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했기 때문이

아니었는가? 형평법원의 부패와 구조적인 문제점은 찰스 디킨스의 “황폐한 집 Bleak House”(1852년 3월부터 1853년

9월까지 신문 연재)에서 실감나게 묘사되어 있다.

323 별표 아스테리스크 asterisk는 아스테리즘, 아스토르, 에스더 단어들과 같이 별 star의 뜻을 가진 그리스어 aster에

서 나온 말이다. 별이 ‘중요하다’는 뜻을 가진 어휘인 바와 같이, 아스테리스크 별표는 강조의 의미가 있다.

324 Petra 사막의 동굴 도시는 카타콤부 즉 사람들이 살아가고 먹고 자는 생활공간이자 동시에 묘지이기도 했다. 투

키디데스의 매장 관련 이야기, 밀로스 섬의 카타콤부, 페트라 카타콤부, 이렇게 매장에 대한 이야기가 연결된다. 동

굴안의 카타콤부에서 사람들이 급히 죽어간 원인에는 전염병, 정치적 종교적 박해, 재해재난사고 등의 극한 상황에

처해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325 말했다, 대답했다, 진술했다, 답변했다, 반박했다, 해명했다, 이런 단어는 상호교환적이고 또 한 단어로 통일해서

쓴다고 해서 의미가 크게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특정 문맥 속에서 의미와 뜻이 더욱 분명해지거나 각각 달

라질 수 있다. 해당 단어의 적재적소에 따라 의미가 확장되고 정확해진다.

326 금융 증권 언론 정치 권력 세계에서 루머 rumor 정보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 지는 모두가 인정한다. 루머와 정

보의 생산과 유통 구조 그리고 숨어 있는 소문의 진원지와 배후세력의 의도와 진실을 파악하는 것에 집중하는 까닭

은 정보는 돈이고 권력의 원천이기 때문이리라. “소문에 사서 뉴스에 팔아라 buy the rumor, sell the news"- 잘 알려진

주식 투자 격언이다. 월 스트리트는 루머의 생산과 유통이 되는 루머 시장 그 자체라고 말해진다. 우리나라에도 “증

권가 찌라시”란 말은 단순히 증권가에 한정된 비즈니스 용어 jargon나 은어가 아니라 정치 언론 권력세계의 상투어로

자리 잡은 지 꽤 오래 되었다. 소문이 무성하고 소문에 의한 투기 거래가 성행하는 곳 또한 증권가이다. 소문이 없

다면 증권가의 생명은 유지하기 어려울 지도 모른다. 기업의 인수합병을 재료로 하는 차익거래의 존재는 더 이상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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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이 얼마나 진실한지도 내가 지금으로썬 알아낼 도리가 없다. 그러나 출처가 모호한 이 소문이 아무

리 가슴 아프다고 해도, 내게는 예기치 못한 관심을 어느 정도 불러일으키지 않은 것은 아닌 만큼, 다른

사람들의 경우에도 그럴 수 있을지 모르므로, 내가 이것을 아주 짤막하게 언급하기로 한다. 그 소문은

이렇다. 바틀비는 워싱턴에 있는 “수신자 불명 우편물 처리소”327의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었는데 정

권이 교체되자 갑자기 자신의 일자리를 잃고 말았다는 것이다.328 이런 소문을 곰곰이 생각할 때마다, 나

는 그 어떤 말로도 다 표현해내기 어려운 감정의 격랑에 휩싸이고 만다.329 수신자 불명 편지라니!330331

그것은 죽은 사람과 같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가? 천성적으로 또는 갑작스런 불운이 닥쳐 막막한 절망감

에 빠져들게 된 한 사람을 한번 생각해 보라. 그 막막한 절망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데, 이러한 수신자

불명 편지들을 반복적으로 끊임없이 다루면서 그것들을 분류해서 불태우는 일보다 더 적합하다고 여겨지

는 일을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332333 짐마차로 실어 날라야 할 만큼 대량의 수신자 불명 편지들이

매년 소각되고 있다. 간혹 거기 우체국 근무 직원이 접혀진 편지 속에서 반지를 발견하는 경우도 있는

밀이 아니다.

327 미국에서 우체국은 1825년에 설치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최초의 우체국 개설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해인

1884년이었다. 전보 전화가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편지가 의사 소통의 유일하고 주된 수단이었다. 구한말 한국인의

“우편” 제도에 대한 인식의 단면을 보여주는 글을 옮겨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884년 11월말 조선에 우편 제도가

처음으로 실시되었다. 한국인은 편지를 주고 받는 열의만은 결코 뒤떨어지지 않아서, 수 미터가 넘는 장문의 편지

그것도 예술적 가치가 뛰어난 그런 편지를 서로 주고 받기는 하지만, 그냥 생각나는 대로 급히 적어 보내는 관계로

돈 많은 양반은 하인을 시키고, 가난한 사람들은 친구에게 부탁하는 것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었다. 정부가 우

편 배달의 일을 맡는다는 것 그것도 돈을 받고 한다는 것은 위엄 있는 왕실 조정을 비하시키는 일이라고 여기는 의

견도 있었다. 신식 우편 제도는 얼마 가지 못하고 실패했다. 발행된 우표는 우체국 소인 한번 찍혀보지 못하고 폐

기되고 말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빨리 무용지물이 될 줄은 미처 몰랐던 것이다.” (“A Korean Coup d'Etat”,

The Atlantic Monthly, Nov 1886, 599-618, at 604.)

328 잭슨 대통령 (1829-1837)은 동부 기득권층에 반발하여 공직은 “임기제 Term limits; rotation in office theory”이어야 한

다는 이유로 공무원을 정치적 자기 지지자들로 임명하는 엽관제 Spoils system 인사 정책을 실시했다. 잭슨의 집권

1기에 연방공무원 중 20% 정도가 교체되었다고 한다.

329 화자인 변호사는 법원 개혁 조치로 인해서 종신직인 법관의 직장을 잃었다는 점에서 정권 교체로 인해서 직장을

잃었던 바틀비와 동병상련의 처지에 있다.

330 편지는 수신자가 받을 것이라는 결과를 가정하고 쓴다. 그러므로 편지를 보낸 송신자보다 편지의 상대방 즉 수신

자에게 도달했느냐의 여부가 중요하다. 영미판례법은 우리나라의 공시 송달 제도와는 달리 수신자가 직접 수취했다

는 사실을 송신자가 입증해야 한다. (Depew v. Wheelan 6 Blackf. 485 (1843)).

331 “Dead Letter Office”는 “수신자 불명 우편물 처리소”. 소문자 “dead letter”의 의미는 법률이 공식적으로 폐기되지는

않았지만 법률의 효력이 더 이상 나타내지 못하고 있는 것 (예컨대 우리나라에서 현재 사형집행법률이 공식적으로 폐

기되지는 않았지만 사형 집행은 더 이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런 상황) 즉 법률이 “유명무실하다”는 뜻이다.

332 마크 트웨인은 “미시시피강에서의 삶”에서 “의사가 되고 나서 얻은 것보다 잃어버린 것이 더 많지 않는가?”라며

의문을 나타냈다. 이와 같이 영미국의 한 분야에 천착하는 전문가 시스템이 대륙법국가의 일반 관료 시스템보다 우

월하지 않다고 반론을 제기하는 논자도 존재한다.

333 자기에게 가장 잘 어울린다고 여겨지는 일터에서 해고당한 사람이라면 어찌 다른 일자리를 구할 수 있겠는가?

사람은 타고난 능력과 적성이 있으므로 적재적소가 필요하고, 전문가의 능력 competence이 강조된다. 이런 견해에 따

르면, “막막한 절망감 pallid hopelessness”과 타고난 고독감을 가진 바틀비가 수신자 불명 편지를 다루는 일에서 해고되

지 않았다면 자살할 이유를 딱히 찾아보기 어려웠을 지도 모른다. 그와 같은 특성의 직업이 다른 사람에게는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그에게는 그의 타고난 운명 fate이었는지도 모른다. 형평법 법원의 법관이나 변호사

는 죽은 사람의 일을 다루는 일 즉 “죽음의 전문가”에 해당한다. 이런 점에서 변호사와 바틀비는 서로 동병상련의 입

장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영미법은 전문가 시스템에 기반하는 반면 대륙법국가의 공무원 제도는 일반 관료 시스템

(전문적인 한 부서에 머무를지 않고 순환보직형)에 의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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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334 그 반지가 끼워져야 할 손가락은 어쩌면 무덤 속에서 썩어 내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자선 모금단

체에다 가장 신속하게 은행 지폐를 보내본들, 정작 자선구호금으로 구제받아야 할 사람은, 먹을 음식이

없어 기아상태에 있거나 굶어 죽는다. 때늦은 사면을 단행하지만 사면 대상자는 절망해가면서 이미 죽었

고, 내일의 희망을 약속하지만 그 수신자는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런 죽음을 맞이하고, 좋은 소식을 기다

리다 끊임없이 반복되는 재난사고들에 그만 질려서 죽어 간다. 삶의 임무를 띠고 나선, 이런 편지들이

죽음으로 질주한 것이다.

아, 바틀비! 아, 인간이여!

Ah, Bartleby! Ah, humanity!335336337

334 “Sometimes from out the folded paper the pale clerk takes a ring.” 이 문장에서 “the pale clerk”을 “얼굴이 창백한 직원”으

로 번역한다면 그것은 오역으로 여겨진다. “pale”을 영어사전에서 찾아보면, “jurisdiction of an authority, territory under an

authority's jurisdiction”으로 설명한다. 참고로 “beyond the pale”는 “상궤를 벗어난” “용납될 수 없는” 뜻의 관용어다. “the

pale clerk takes a ring” 이 문장에서 사용된 “pale”은 부정관사 a 가 아닌 정관사가 붙여진 “the pale”이다. “창백한” 뜻이

아니라 “정당한 권한이 있는”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 다른 사람이 들어가서 비싼 반지를 찾아낸 것이 아니라 “연

방정부 소속 우체국”에 정식 근무하는 직원 즉 수신자 불명 우편물을 수색 검사할 정당한 법적 권한이 있는 직원이

발견했다는 뜻이다. “Only the clerks of the Dead Letter Office had permission to open letters.”

335 아포스트로피 apostrophe 수사적 표현 기법을 사용한 것이다. 아포스트로피 수사적 표현은 거론된 사람(바틀비)

은 이제 죽고 없다. 여기에 현재 없는 사람을 두고서 한 말을 쓸 때 사용된다. 아아, 비록 그는 갔지만, 인간의 삶은

죽고 나서 깨닫는 것! 만시지탄. 사람의 일은 항상 일이 지나고 나야 알 수 있다는 것. 모멘토 모리 Memento mori

“뒤돌아 보아라! 당신도 결국 죽을 수 밖에 없는 한낱 인간임을 기억하라! Look behind you! Remember that you are but a

man!"

336 보편적인 인간성 common humanity. “Humanity”의 뜻은 인간다움, 인간성, 인간본성 등 다양하다. 인류 humankind

인간종족 human species 인간족속 human race 인간 mankind 사람 man 개인들 individuals 등으로 상호 교환되는 단어이

다. 조지 엘리어트 Eliot는 약자에 대한 연민과 공감을 강조하는 인류애, 박애주의, 인도주의를 강조한 “휴머니즘 종

교 religion of humanity”의 열렬한 지지자이었다. 인간이 신이라 부른 모든 것은 실제로는 인간의 필요성과 욕망이 만

들어낸 이념적 산물 즉 인간은 자기 형상대로 신을 창조하였는데, 최고의 법칙은 “인간에 대한 인간의 사랑”이고, 사

랑이 인간을 결합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자 기독교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인간 사회가 보다 나은 사회로 진보하

기 위해서는 개인의 도덕적 지적 능력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타인에 대한 사랑, 이해, 동정심, 희생을

강조했다. 휴머니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III부 3장을 참조하라.

337 죽음의 의미에 대한 보다 자세한 설명은 III부 5장을 참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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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II

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바틀비 스토리)

주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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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연주의, 아담 스미스의 공감 개념

1.1. 아담 스미스의 공감 개념

사람은 누구나 정념과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은 타인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대신 경험할 수 없

고, 다만 타인의 행위와 상황을 관찰하고 이를 통해 타인의 감정을 상상해 볼 수 있을 뿐이다. 공감은

타인의 감정으로부터 나의 감정을 이끌어 내는 과정이자 감정으로써, 인간은 타인과의 소통을 통해 타인

의 감정을 이해하고자 하기에 공감은 일종의 능력 faculty이며 인간의 본성에 속해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

다. 공감은 인간이 상상력을 통해 타인의 감정에 대해 느끼게 되는 감정으로써 타인의 불행에 대하여 갖

는 연민, 동정심과 동의어이다.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1장 부분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 이와 상반되는 몇 가지 원리들이 존재한다.

인간은 타인의 삶에 관심을 가지게 되며, 단지 그것을 지켜보는 즐거움 밖에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더라도 타인의 행복을 필요로 하는 그런 원리들 말이다. 다른 사람의 비참함을 목격하거

나 또는 그것이 아주 생생하게 되살아나게 될 때 우리가 느끼는 연민이나 동정심이나 감정이 이런 원리들

에 속한다. 우리가 타인의 슬픔을 목격하고 슬픔을 느끼게 되는 일이 자주 있다는 것은 예를 들어 증명

할 필요조차 없는 명백한 사실이다. 이러한 감정은 비록 감수성이 매우 예민한 사람만이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간 본성의 다른 원초적 감정과 마찬가지로 꼭 착하고 배려심 높은 사람만이 갖고 있는 것은

아니라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성이다.”338

인간 본성에는 자기애 self-love와 자기 이익 추구 self-interest의 경향이 들어 있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은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타인들의 삶에 대한 본원적 관심을 갖고 있으며 또 타인으로부터 사랑 받고 인정받

지 못한다면 행복할 수 없다는 관계적인 감정339을 갖고 있다.

1.2. 필연주의 입장에서 “바틀비 스토리” 해석

1.2.1. 반대자와의 공존이 필요한 이유

필연주의 경험철학론에서 ‘Necessity’이란 말의 의미는 다른 것과의 밀접한 관계 connection 즉 ‘연결 고리’를 강조한

다. 세상은 다른 것들과 서로 연결 고리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우발적인 사건은 일어날 수가 없으며 모든 사건에

는 그 원인이 있는 ‘필연적’인 것으로 본다. 각 부분은 ‘상호 의존’하는데 그림 퍼즐처럼 어떤 연결 고리가 하나도 빠

지면 안되기 때문에 서로가 꼭 필요한 ‘necessary’ 부분이 된다. 여기서 ‘필연’이라는 말은 철학 용어로 순수 이성,

선험적인 가정, rational, pure, a priori 등과 동의어가 된다.

프리스틀리의 필연주의는 인간 사회에서 악과 고통의 존재를 수긍하는 사고체계이다.340 악의 존재는 전

338 “How selfish soever man may be supposed, there are evidently some principles in his nature, which interest him in the fortune of

others, and render their happiness necessary to him, though he derives nothing from it except the pleasure of seeing it. Of this kind is

pity or compassion, the emotion which we feel for the misery of others, when we either see it, or are made to conceive it in a very lively

manner. That we often derive sorrow from the sorrow of others, is a matter of fact too obvious to require any instances to prove it; for

this sentiment, like all the other original passions of human nature, is by no means confined to the virtuous and humane, though they

perhaps may feel it with the most exquisite sensibility.” Smith,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I.I.Ch1. Of Sympathy. 339 “the chief part of human happiness arises from the consciousness of being beloved.” Ibid, Ch V, Of the selfish Passions. 340

자연 질서는 상대방의 존재를 인정한다. 수학의 황금비를 보면 자연은 연접한 ‘상대방’이 존재함으로써 아름다움

93

체적으로 볼 때 단지 미미한 부분을 차지할 뿐이고 또 악의 존재는 궁극적으로 인간 발전을 위한 신적 질

서 속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악의 존재를 인정한다고 해서 악을 실행해도 좋다는 것을 말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악은 선의 반대편에 있지만 선의 실현을 위해서 존재한다.

“선악개오사”란 우리나라 속담과 같이 선한 사람뿐만 아니라 악한 사람도 모두가 나의 발전에 필요한 도

움을 주는 스승이 된다. 인간 세상의 악과 고통은 인류 전체의 번영과 발전을 위해서 존재하는 하나의

‘필요악 necessary evil’이라는 개념으로써 받아들이는 것이다. 사람은 배가 고파야 밥의 고마움을 알고,

반대자가 있기 때문에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으며, 악이 있기 때문에 선이 드러나게 된다. 이런 측

면에서 반대자의 존재는 나를 이롭게 할 수 있는 어쩌면 고마운 존재라고 볼 수 있다.

홉스의 필연주의 철학에서는 상대방의 존재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하다고 여기므로 투키디데스가 그러했듯

이 적을 전멸해 버리는 싹쓸이 정책은 바람직한 것으로 보지 않고 대신 유화정책을 쓰는 것이 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1차 대전 후 패전국 독일에게 전쟁배상금을 너무 과도하게 밀어붙인 프랑스의 정책은 결과적으로 나치 체제의 등장

을 불러오게 된 하나의 원인을 제공했던 것과 같이 전멸 정책이 꼭 좋은 것은 아니다.

1.2.2. 필연주의 입장에서 “바틀비 스토리” 해석

“바틀비 스토리”에서 화자인 변호사는 자신이 어쩌다가 바틀비를 만나서 그런 고통을 겪게 되는지 의문하

다가 필연주의 결정론에서 말하는 고통의 의미를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어쩌다 이 필기사를 만나서 겪은 이런 고난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모두 예정되어 있었으며, 바틀비는 전

지전능한 신의 섭리에 따른 어떤 신비한 목적- 따라서 나 같이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일개 미물로서는 헤

아릴 수 없는 일이지만-을 띠고 내게 배치되었을 거라는 이론이 설득력 있게 조금씩 와 닿기 시작했다.”341

“마침내 나는 이것을 보고, 이것을 느끼는 거다. 바로 내 삶의 예정된 목적을 이제 꿰뚫어보게 된 것 바

로 이것 말이다. At least I see it, I feel it; I penetrate to the predestinated purpose of my life.”

만약 바틀비가 없었다면 변호사의 이러한 공감과 깨달음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바틀비가 없었

다면 그저 안락한 삶을 추구한 평범한 변호사로서 일생을 마쳤을지도 모른다. 바틀비는 창조적인 일과는

거리가 멀고 복제와 모방의 단순 반복되는 따분한 일을 하는 단순 노동자이고 (“99%”에 속하는 “을의 입

장”에 처해 있는 사람) 반면 화자인 변호사는 월 스트리트에서 성공한 변호사로서 그가 거느린 직원의 삶

의 조건을 결정할 수 있을 만큼 힘을 가진 고용주이다 (1%에 속하는 갑의 지위를 갖고 있는 사람). 이

둘의 관계는 주인과 머슴의 관계에 있다. 하지만 무모한 바틀비의 행동을 통하여 평생 동안 고민 한번

없이 편안하게 살아온 그 변호사는 다른 사람의 고통에 공감하게 되는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된다. 사람은

남의 불행을 보고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고 동정심을 느낄 때 인식과 행동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평

생 동안 냉철한 판단력을 견지하고 편안한 인생을 살아온 변호사가 어떻게 그런 놀라운 변화를 겪게 되는

가? “바틀비 스토리”는 파란색의 비단 옷이 온통 붉은 염색물로 물들어 버린 것과 같이 서두와 결말은

완전히 대조된다. “젊었을 때부터, 그저 편안하고 쉽게 살아가는 삶이 최고의 인생이라는 신념을 확고하

게 줄곧 견지해 온” “긴장의 연속인 직업에 속하고 있긴 해도 그런 격렬함으로 인해서 그의 평화가 깨뜨려

지는 경우를 겪어보지 않았던” “아늑한 휴양지같이 차분하고 조용한 사무실 안에서, 돈 많은 부자들의 채

권, 담보증권, 부동산 매매 업무를 주로 맡으며 안정된 변호사”의 생활을 하던 그가 어떻게 격렬한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되며 타인의 고통에 동정심을 느끼게 되었는가? “신중하고” “아주 확실한 사람”이

을 자아낸다. 각주 276을 참조하라. 341 “Under the circumstances, those books induced a salutary feeling. Gradually I slid into the persuasion that these troubles of mine

touching the scrivener, had been all predestinated from eternity, and Bartleby was billeted upon me for some mysterious purpose of an

all-wise Providence, which it was not for a mere mortal like me to fath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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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타인의 고통에 격렬한 감정의 반응을 보이게 되었는가?

그는 바틀비의 기이한 행동들에 대해서도 그런 것은 고의가 아니라 “비자발적인 involuntary” 행동이라고

넘겨 버리던 사람이 아니었던가?342 그가 하는 말을 들어 보자. “나는 그 필기사의 행동을 호의적으로

해석함으로써 그에 대한 나의 격앙된 감정을 가라앉히려고 애썼다. 불쌍한 사람, 불쌍한 사람이야! 하면

서 나는 속으로 이렇게 되뇌었다.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서 그러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그는 어려운

시기를 겪었으니, 그가 제 마음대로 행동해도 너무 개의치 말자.”

더욱이 바틀비가 다른 나쁜 고용주를 만나서 고생을 할 가능성도 있는 마당에 그렇다면 자신이 “적선한

셈 치고” 계속 그를 고용하는 것이 보다 낫겠다고 여기며 자신의 관대한 마음에 스스로 만족해 하던 변호

사가 아니었던가? “자선은 불확실성이 따르는 미래의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결정을 할 때에는 낙관주의

보다 비관주의에 따라야 하고 또 미리 조심하고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원칙인 ‘삶의 지혜의 원칙’과 ‘보수

성의 원칙’에 따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을 보호해주는 뛰어난 안전장치가 된다”고 여기면서, “단순히 자기

이익을 위해서라도 모든 인간은, 특히 성질 급한 사람은 사랑과 박애정신을 바로 실천해야 할 것”이라고

믿으며, 자신에게 “해가 되지 않고” 또 자신에게 “쓸모가 있는 한” 계속 직원으로 근무하게 하며 그의 기

이한 행동을 관용하고 별로 개의치 않게 여겼던 변호사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언제부터 마음의 변화를 겪게 되었는가? 그 시점은 바틀비가 자신의 사무실을 점령하고 거기에

서 숙식을 해결하는 고독한 노숙자(최소한의 생존 요건인 의식주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상황)임을 그

의 두 눈으로 직접적으로 확인하게 된 때부터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즉각 다음과 같은 생각이 나의

뇌리를 스쳤다. 정말 비참한 외로움과 고독함이 여기서 드러나는 구나! 그의 곤궁함도 큰 문제이다. 하

지만 그의 고독은 얼마나 더 끔찍한가!”343 그 변호사는 바틀비가 겪는 비애감을 같은 인간으로서 공유하

게 되면서부터 감정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그의 독백을 들어보자. “난생 처음으로 나의 마음은 가슴

이 찔리듯 참을 수 없는 격한 슬픔의 감정에 휩싸였다. 이제껏 나는 아름다운 슬픔밖에 경험해 본 적이

없다. 그런데 지금 다 같은 인간이라는 형제애를 느끼면서 나는 슬픈 감정을 도저히 주체할 길이 없다.

피를 나눈 형제같이 느껴지는 슬픔의 감정! 아마 나나 바틀비나 다 같은 아담의 자손이어서가 아닐

까?”344

이때부터 그는 바틀비의 고독과 비애에 대해서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된다. 바틀비를 해고하기로 마음의

결정을 내린 후에도, 이렇게 말한다. “묘하게 무언가 미신적인 것이 내 심장을 두들기고, 내 목적을 실행

하지 못하게 막아서고, 만약 세상에서 가장 고독한 이 사람에게 내가 감히 쓰라린 말 한 마디라도 꺼낸다

면 나는 천하에 몹쓸 사람이라고 비난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틀비가 이제금 떠났으리라는 그의 가정이 틀린 것으로 확인되고 난후 바틀비의 태도로 인해서 격분이 들 때도 ‘사랑하라!’

는 신적 명령에 따르고 그렇게 격한 감정을 달래고, 또 그가 사무실을 옮기고 마지막으로 떠날 때, “그토록 떨쳐버리기를 갈

망했던 그였음에도 막상 내 손을 억지로라도 떼어낼 때 밀려오는 큰 아픔을 느낀” 사람으로 크게 마음의 변화를 겪은 까닦

은 아담 스미스가 “도덕감정론”에서 밝힌 대로 그에게서 동정심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동정심에서 그는 바틀비의

342

살인 homicide도 ‘고의성’이 없다면 살인 murder이 아니라 과실치사 manslaughter가 되어 책임이 경감된다. 343

“Immediately then the thought came sweeping across me, What miserable friendlessness and loneliness are here revealed! His

poverty is great; but his solitude, how horrible!”. 344 “For the first time in my life a feeling of overpowering stinging melancholy seized me. Before, I had never experienced aught but a

not-unpleasing sadness. The bond of a common humanity now drew me irresistibly to gloom. A fraternal melancholy! For both I and

Bartleby were sons of Adam.”

95

새로운 직장을 얻는 일에 도움을 주려고 최대한의 노력을 다한다. 하지만 바틀비는 변호사의 진심어린 제안과 충고들을 모

두 거부하고 만다. 그 변호사는 자신의 제안과 충고가 거절되자 마음의 격랑을 참지 못하고 길거리로 뛰쳐나가 격한 마음

을 달랜다. 그리고 그 후 바틀비가 강제 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그 변호사는 자신이 가진 자원을 동원하여

최선의 도움을 준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바틀비는 변호사의 호의를 거절하고 “당신한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아무 것도 없

어요.”라고 말하며 단절을 선택하고 만다. 바틀비가 구빈원에서 재워주고 입혀주고 먹을 것을 나눠주면 그것을 감사하게 받

아서 다시 살아나가야 할 방도를 강구하는 대신 나오는 음식을 거부하며 죽음을 선택한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만 것이다.

왜 바틀비는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가?345

바틀비의 기이한 행동들에 대해서도 좋게 해석함으로써 애써 간과해 버리거나 무심코 넘겨버린 것, 감옥의 간수나 사식업자

들까지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들의 선한 행동에 기대었던 모든 임시적인 조치들은 전부 실패한 것으로 결론난다. ‘선한 의도’

가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 못한 것이다. 긴급 구호 물자마저 “수신자 불명 우편물 처리소”로 귀결되는 현실을 보면서 모든

‘임시적 구제조치’들은 바라는대로의 결과를 가져오지 못한 것으로 보여진다. 인간 세상에서 임시방편은 한계가 크다는 것

인가? 그런데 이러한 인간사회의 문제점을 언제 깨닫게 되었는가? ‘수신자 불명 우편물’처럼, ‘너무 늦게 깨닫게 된다.’

They were too late.-만시지탄-이것이 우리 인간사의 고통이고 현실이다. 프리스틀리의 필연주의 철학에서 말하는 인간의 문

제점은 미연에 방지할 수 있어야 하고 또 어떤 문제가 있다면 그것을 선제적으로 대처해야 된다며 상황개선론을 주장한다.

변호사가 바틀비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그의 삶을 구제하지 못했다고 해서 변호사의 노력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일까? 인간사는 한갖 인생무상이고 모든 노력은 허무한 것으로 끝나고 마는 것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보

다 중요한 측면을 한번 생각해 보자. 시각을 달리해서 동정심 compassion을 가진 사람들을 보자. 변호

사가 말하는 대로, 세상에는 “동정심 많고 호기심 어린 구경꾼 the compassionate and curious bystanders”

들이 존재하고, 바틀비처럼 “정말로 정직한 사람이며, 또한 동정심이 크게 느껴질 사람 a perfectly honest

man, and greatly to be compassionated”이 많다는 것이다. 대영제국과 팍스 아메리카나를 건설한 영미국

인들의 원형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모든 사람은 동정심을 갖고 있다. 동정심은 “아, 바틀비! 아, 인간이여!”의 그렇게 타인의 아픔 속에 함께

들어가 느끼는 감정 즉 공감을 말한다. 아담 스미스가 말한 대로 인간이 아무리 이기적이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본성에는 분명 이와는 상반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들이 행복하기를 원하고, 또 다른

사람의 비참함을 목격하거나 아주 생생하게 되살아나게 될 때 연민이나 동정심을 느낀다는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이런 동정심이 세상을 이끄는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분명하게 말했다. 단언건대 스

미스의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에서의 주된 결론이 상호 배치되는 것이 아니다.

자기 이익 추구 self-interest는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인간은 사회적 구성원으로서

타인의 삶에 대해 본원적인 관심을 갖고 있으며 또 타인으로부터 사랑 받고 인정받지 못한다면 행복할 수

없다는 인간 관계적인 감정을 갖고 있다.346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추구하던 그 월 스트리트 변호사는 불쌍한 바틀비를 만난 후 그의 불행과 고통에

깊은 동정심을 느끼게 되면서 곤경에 처한 인간 사회의 문제점과 인간 사회 발전의 조건에 눈을 뜨게 되

었다. 인간의 운명이란 우주법칙처럼 인과론에 따라 정해져 있어서 어떤 사람은 불행하고 고통의 삶을

345 필연주의 경험론에서는 은혜의 하나님의 개념으로 모두가 구원을 받는 대상으로 보는 반면 대륙법국가의 칼빈주

의는 노아의 방주처럼 기적을 통해서 소수의 선택된 자들이 구원을 얻는다고 믿는다.

346 “the chief part of human happiness arises from the consciousness of being beloved”, 아담 스미스, “도덕감정론”, Ch V, Of the

selfish Pass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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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그렇지만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의 삶 또한 의미가 있다)

반면 어떤 사람은 행운의 삶을 살아가는 (행운의 삶을 사는 사람들은 자신의 부를 보다 유용하게 써야 한

다는 조건을 상기하라) 인간 세상에서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것347-하지만 악은 총체적인 입장에서 보면

미미한 수준이고 그리고 그 악은 보다 더 큰 선을 실현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써 필요한 존재라고 인

식하는 필연주의 철학적 사고를 재음미해 보는 일은 가치가 있다.348 대영제국과 팍스 아메리카나를 건설

한 영미국인들의 원형이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1.3. 필연주의 철학, 자유 의지와 니세시티 Necessity

1.3.1. 자유란 무엇을 말하는가?

우리는 흔히 자유의 반대말을 ‘부자유’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자유의 개념은 불명확하다. 자유 liberty의 반

대말을 속박이라고 이해하면 보다 명확해 지는 것 같다. 자유는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고

억압당한 상태는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상태를 뜻한다. 프리스틀리의 필연주의 철학은 토마스 홉스의 자

유와 구속의 개념을 이어받고 있다. 홉스의 자유에 대한 개념을 보자. “자유라는 말의 뜻은, 언어의 적절한 의

미작용에서 판단하건대, 외부적인 장애물이 없는 상태를 의미한다. 이런 장애물은 간혹 어떤 사람이 그가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권한과 능력의 일부를 빼앗아 갈 수 있으나, 그의 판단과 이성이 지시하는 바

에 따라서 그에게 남겨진 권능을 사용하는 것을 막을 수는 없다.”349

“자유란 행동을 나타내는데 외부로부터의 아무런 장애물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를 말하는데 여기서 장애물이란 행위

자의 본성에 속하지 않고 또 행위자 내부에 자리잡고 있는 내재적인 성질이 아닌 것을 의미한다.”350 홉스는 ‘자유’

를 ‘외부적 장애물의 부재 absence of external impediments’의 개념으로 보고 물의 흐름에 비유 설명하였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자유롭게 흐르는데 이것은 물을 막는 장애물이 없기 때문이고 또 물은 강둑이 있어서 넘치지

않고 아래로 흘러간다. 물은 거슬려 올라가는 법이 없는데 그것에 대해 우리는 물이 거슬러 올라갈 자유를 원한다

고 말하지 않고 거슬러 올라갈 힘이 없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장애물은 물의 속성과 같고 또 그것은 내재적인 성

질을 갖고 있다.”351 홉스의 이런 설명은 자유 freedom (the absence of external impediments)와 힘 power (the

internal ability to do something)의 개념을 구분하는 것으로 외부적인 제약이 없어서 자신이 원하는 행위를 할 수

있는 자유스런 상태인지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내재적인 능력을 갖고 있느냐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에게 외부적인 또는 내재적인 구속이 존재하느냐의 구별적 인식은 중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우주 안의 모

든 물체와 같이 물리 법칙에 따라 기계적으로 움직이고 행동을 하는 존재라고 이해할 때, 어떤 행동을 막아서는 장

애물이 존재하는 경우 그가 원하는 행동은 일어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외부적 속박이 있는 경우 먼저

347 “both good and evil are essential components of the total scheme.”, Patrick W, “Melville’s Bartleby and the Doctrine of Necessity”,

American Literature (1969), 41: at 53.

348 III부 1장 필연주의 철학에 대한 설명은 앞의 인용 논문 “Melville’s Bartleby and the Doctrine of Necessity”을 참조하고

그 기조를 유지하였다. 349 “By liberty is understood, according to the proper signification of the word, the absence of external impediments; which

impediments may oft take away part of a man's power to do what he would, but cannot hinder him from using the power left him

according as his judgment and reason shall dictate to him.” 홉스, “리바이던”, 14장. 350 “Liberty is the absence of all impediments to action, that are not contained in the nature, and in the intrinsic quality of the agent.”

프리스틀리는 홉스의 자유의 개념을 인용하고 있다. Hobbes, “Leviathan”, Ch 21. (1909 ed). 351 Hobbes, “Leviathan”, Ch 21 (1909 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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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장애물을 제거하지 않고서는 다른 결과를 기대하기 어렵다.352 어떤 사람의 손발에 수갑이나 족쇄가 채워진 경우

이 사람은 자유롭게 걸어 나갈 자유를 원한다고 말하는데 족쇄나 수갑은 외부적인 속박이지 자기 내부에서 오는 것

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손발이 잘려 나간 장애인의 경우에는 걸어 나갈 자유를 원한다고 말하지 않는데 그건 장

애물이 자신의 몸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353 인간은 자기 스스로 자유로운 결단을 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

라고 해도 외부적 속박이 있는 곳에는 자유의지를 행사한다고 볼 수 없다. 외부적 강제에 의한 동의는 비록 형식적

으로는 자신의 자유 선택에 의한 자발적인 동의가 이루어졌다 해도 그것은 강압의 결과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354

복종에 대한 동의가 없으면 결국은 내전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355

1.3.2. 니세시티 Necessity란 무엇인가?

극한 상황과 긴급 조치

‘니세시티 necessity’는 욕망과 그 결과와 결부되어 특정한 시간과 장소에서의 한계상황적인 개념이다.356

“바틀비 스토리”에서 “as a last resort, under such peculiar circumstances, it seemed the only plan.”라고 설명

하고 있는 구절이 이러한 극한적 상황에서 나타나는 해결책의 개념을 설명해 준다. 불가피한 긴급 조치

는 어떤 “특별한 상황 such peculiar circumstances”에 처한 가운데, “마지막 수단으로써 as a last resort”, 그

것만이 “유일한” 방안 the only plan이라고 여겨질 때 취해질 수 있다.

법원은 최후의 보루로써 개입하는데 신도 어쩔 수 없는 마지막 극한 상황에서 허용되는 니세시티

(necessity: 생존의 정당방위가 필요한 긴급피난의 상황)의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357 왜

냐하면 인간에게는 자유 의지가 있고 스스로 문제 해결이 있는 반면 법은 외부적 강제력을 의미하므로 법

이 개입되는 순간 인간의 자유 의사는 그만큼 구속 받게 되기 때문이다. ① 특별한 상황에 처한 가운데

② 마지막 수단으로써 ③ 다른 방안이 없고 오로지 그것만이 유일한 방안일 때 비로소 법이 개입되어야

한다.

352 필연주의 철학에서 세계는 기계가 작동하듯 철칙처럼 움직이므로 똑 같은 상황에서는 똑 같은 결과가 나올 수 밖

에 없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마치 톱니바퀴가 돌아가듯이 법칙적으로 작동되는 인간세계에서 기적-우연적이고 우발

적인 사건-이 일어난다는 것은 극히 희박하다고 인식한다. 따라서 먼저 상황을 개선하지 않으면 인간의 발전은 이뤄

지지 않는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353 Hobbes, “Leviathan”, Ch 21 (1909 ed).

354 외부적 속박이 있는 곳에 진정한 자유가 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에 ‘저항권’이 인정된다. 홉스와 로크 등 사회계

약론자들이 이러한 입장에 서 있다. 반면 대륙법에서는 개인은 (계약당사자가 아니라) 국가의 객체이므로 저항권의

개념이 부정된다. 355 “A covenant not to defend myself from force, by force, is always void. For (as I have shown before) no man can transfer or lay

down his right to save himself from death, wounds, and imprisonment, the avoiding whereof is the only end of laying down any right;

and therefore the promise of not resisting force, in no covenant transferreth any right, nor is obliging.”, Hobbes, “Leviathan”, Ch 14.

(1909 ed). 356

자유이냐 필연이냐의 문제, Necessity니세시티 개념은 자유이냐 생존이냐의 질문에서의 ‘생존’이라는 용어에 보다

적합할 것 같다. 사람은 의식주가 충족되지 못하면 한계상황에 이른다. 니세시티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 꼭 ‘필요

하다’는 의미를 말한다. 종교철학의 예를 들어 보자. 구원 신학에서 큰 논쟁을 불러왔던 칼빈주의 5대강령을 비교해

보면 이해가 보다 쉬울 것이다. 구원을 받는데 믿음과 세례는 필수적인 필요 조건이라고 말할 때 이 필요조건을 니

세시티라고 말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필요조건을 ‘불가피하다’는 말로 대체하기도 하는데 불가피하다는 말은

공급자(하나님)가 공급하는 어떤 조치(불가항력적인 은혜, 무조건적인 선택, 구원의 선물)들이 불가피하다는 칼빈주의

의 입장에서 선호하는 감이 있다. 357

대륙법국가는 예컨대 조선의 ‘경국대전’과 같이 ‘율령체계’가 정비된 때를 국가 체제의 완성으로 보는 경향이 있는

데 즉 법을 인간 행위를 이끄는 지도적 위치로 상정하는데 비해 영미법은 ‘사적 자치’의 전통이 우선하고 법의 개입은

“마지막 수단 as a last resort”으로써 이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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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사회는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들의 사회적 합의에 따라서 결성되었다면 거기에서 파생한 문제 또한

당사자간에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왜냐하면 인간 사회의 기초는 사람들간의 동의와 합

의 consent에 기초하므로 (국가권력에 대한 동의가 없으면 결국은 내전으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는 것과 마찬가

지로) 강압력을 동원한 분쟁의 해결방법은 한계가 노출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358

1.3.3.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

“Necessity is the mother of invention.”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다.”으로 통상 번역하는데 여기서 ‘필요’는 욕구 desire,

수요 demand의 의미는 물론이고 또한 그것을 넘어선 어떤 한계상황을 가르킨다. 배가 고프지 않으면 누가 밥을 먹

을 생각이 나겠으며, 인간 세상에서 어려운 문제가 없다면 어떻게 인간 사회가 발전할 수 있겠는가 그런 역설적인

가치를 지닌 말이다. “Difficult situations inspire ingenious solutions.” “위기는 곧 기회”라는 우리 속담과 같은 맥락이

다. 사람의 생존에 가장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necessarily’ 의식주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사람은 살 수가 없다.

그런 절박한 상황에 직면하면 인간은 새로운 창의적인 해결책을 강구해내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생존문제가 결

려 있는 막다른 한계상황에 처한 경우 살아남기 위해서 갖은 수단을 강구하게 되니까 새로운 발명품을 고안해 낼 수

있다는 것인데 인간은 위기를 절실하게 겪어야 변화를 가져 온다는 말이다. 신도 어쩔 수 없는 상황 마지막 순간의

굶주림과 추위와 갈증의 극한 상황에서는 살아 남기 위해서는 무슨 수단이라도 강구하는 긴급피난과 정당방위의 행

동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necessity’의 생존 투쟁의 절박한 상황을 ‘필요’로 번역하면 어감상 그 강

도가 약해지는 감이 있어 니세시티라고 영어 그대로 써서 새롭게 의미를 강조하고자 한다.

1.3.4. 칼빈주의 Calvinism 운명예정설과의 차이점

필연주의 결정론에서 ‘우연’(운, chance, fortune)은 예외적으로 존재한다. 우주법칙은 필연적인 법칙대로 움직이므로

‘우연’이라는 우발적 사건이 일어나기 어렵다. 필연은 우연과 반대되는 말이다. 필연 Necessity이란 말은 “논리적

필연성” 등 각 분야에서 구체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데 우선적인 사전적 정의는 “물리법칙” 즉 “인과론 The doctrine

holding that events are inevitably determined by preceding causes”을 말한다. 우주 만물의 모든 사건은 서로 연결 고

리로 촘촘하게 연결되어 있어 어떤 사건은 다른 앞선 원인이 있기 마련이라는 즉 미리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을

말한다. 필연주의 결정론에서 어떤 사건에 선행하는 원인이 있다는 말은 우주에서 동일한 사건은 반복될 수 없다

는 것을 뜻한다. 다시 말해 우주만물은 물리학법칙처럼 원인결과가 분명하게 움직이므로 똑 같은 상황이라면 똑

같은 일어나기 마련이며 또 반대로 상황을 바꾸지 않는 한 누구든지 똑 같은 행동을 반복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의

미한다. 필연주의 경험론은 현실적인 상황을 수긍한다는 면에서 자유 의지를 절대적으로 강조하는 ‘자유지상주의’

와는 서로 대립적인 위치에 서 있다.359

“될 성싶은 아이는 떡잎부터 알 수 있다”는 우리 속담이 이에 가까운 표현이다. 여기서 동양의 ‘숙명론’, ‘운명론’과

358

한국에서 어떤 분쟁 사건이 일어나자마자 당사자간에 문제해결의 노력을 시도하기 보다 무조건 먼저 고소 고발부

터 제기하는 법문화적 경향이 존재하는데 이건 옳지 못하다. 고소 고발이 오남용되는 법 제도와 법 문화는 과도한

검찰권이 개입되고 국가권력의 비대화를 가져오게 되어 개인의 자기 결정권이 침해되고 그만큼 인간의 자유권을 향

유하지 못하게 만든다.

359 콜린스 영어 사전 정의에 따르면 필연주의와 자유지상주의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다, “opposed to libertarian”. “The

necessitarian falls back upon the experienced reality of facts.” (The Century Dictionary, The Century Co., New York, 1911). 필연주

의 경험 철학은 오늘날의 카네만의 전망이론, 뇌신경학으로 이어지는데 이들이 왜 자유지상주의자들에 대항한 진보파

에 속하는지 그 배경(철학체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99

동의어로써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동양의 ‘운명론’은 미리 정해져 있어서 운명을 바꿀 수가 없다는 체념적인 개념

에 가깝지만 필연주의 결정론에서는 적극적인 상황타개론이 전개된다. 인간이 처한 상황을 개선해야 한다는 적극적

인 상황개척론을 의미한다는 측면에서 체념적인 숙명론과는 차이가 난다.

칼빈의 운명예정설 predestination

필연주의 철학은 칼빈의 운명예정설 predestination과는 구별된다. 칼빈주의 예정설은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이 예정되어 있다는 교리를 말하는데 초자연적인 시련을 통해 소수의 선택된 사람만이 살아남는다는 주장을

하는 반면 필연주의 결정론은 인과론에 의거하여 죄인은 벌을 받게 마련이지만 영원한 타락으로 단정되는 것은 아

니라고 주장한다. 칼빈주의는 천국 갈 사람과 지옥으로 떨어져 영원한 처벌을 받을 사람들이 무조건적으로

정해지는데 즉 영원한 저주가 존재한다고 여기나 필연주의에서는 영원한 지옥의 형벌이 존재한다고는 보

지 않는다. 칼빈은 사형(화형)을 지지했던 반면 필연주의 경험론은 사형제를 반대했다.

프리스틀리는 악마의 존재도 신의 질서 속에 편입된 것으로 이해하였다. 악의 존재는 신의 오류 때문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완전한 발전을 이루는 하나의 계획 가운데 존재하며, 악은 소수에 한정될

뿐이라고 주장했다.

현재의 개신교와 미국인들의 본질적인 신념은 ‘인간이 스스로의 구원에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 humans must

consent to their own salvation’는 ‘자유 의지’를 믿는 것에 있다.360

1.3.5. 생존 명령 의무 이행과 비자발적인 행위

“바틀비 스토리”에서 바틀비는 어느 날부터인가 자신의 필사 일을 더 이상하고 싶지 않다며 변호사의 지시와 명령을

거부하게 된다. 지시와 명령은 거부하는데 무슨 뚜렷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저 “하고 싶지 않다”는 단순한 말

한 마디 밖에 하지 않고 끝내 거부하고 만다. 국가와 사회를 움직이는 가장 기초는 서로간의 합의에 의한 것인데

서로 합의된 계약을 거부한다면 국가와 사회의 작동은 멈추게 될 것이다. 바틀비가 갑자기 평소 해오던 일을 더 이

상 하지 않고 그만 두자 변호사는 그럼 다른 일을 하면 어떠냐며 충고와 권유를 하는데, 바틀비는 다른 대안마저 하

고 싶지 않다고 막무가내로 거부하고 만다. 변호사가 다른 직업을 권해보자 바틀비는 이렇게 대답한다. “난 누구

밑에서 단순한 종업원 일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아요. I would prefer not to take a clerkship.” 이에 변호사는 다른 일들

을 계속 권해 보는데, 바틀비는 그런 일도 모두 싫다고 대답한다. “난 한 곳에 그대로 붙어 있는 것이 좋아요. 하지

만 내가 유별난 것은 아니에요.” 자신은 까다로운 사람은 아니라고 말을 하면서, 이것도 싫다! 저것도 싫다!는 정형

화된 대답만 하고 있다. 그러자 일생 동안 신중하고 참을성의 미덕을 제일의 신조로 삼아 온 변호사가 여기서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만 소리를 버럭 지르면서 이렇게 말한다. 그만 화를 내며 이렇게 소리쳐 말한다. “그럼 네가

하고 싶은 대로 그렇게 한 곳에 그대로 붙어 있어라. Stationary you shall be then.” 그 후 바틀비는 떠나기를 거부하

고 있다. “그 사람은 어떠한 필사도 거절하고, 어떠한 일도 하기를 거부하며, 그저 하고 싶지 않다라는 말만 할 뿐

이고, 그 건물에서 떠나기를 거부하고 있어요. He refuses to do any copying; he refuses to do anything; he says he

prefers not to; and he refuses to quit the premises.”361

360 “19세기 개신교는 인간이 스스로의 구원에 반드시 동의해야 한다는 반칼빈주의 신념으로 돌아섰다. 이는 미국인들

의 매우 본질적인 신념이다. But in the 19th century, Protestantism moved toward the non-Calvinist belief that humans must consent

to their own salvation — an optimistic, quintessentially American belief.” 각주 80을 참조하라.

361 건물 퇴거 조치에 대한 법이론은 재산권에 기초하고 있다. 변호사의 재산권 논리는 자유지상주의자 노직이 잘

설명하고 있음을 참조하라.

100

바틀비는 이 일도 싫다 하고 저 일도 싫다 하는 “하고 싶지 않다 prefer not to”는 말만 되풀이한다. 이런 바틀비의

‘선택 preference’은 바틀비의 ‘자유 의지 free will’에서 나온 것일까? 바틀비의 이런 행동은 미리 정해져 있는가? 필

연주의 결정론에 따르면 바틀비의 선택은 프로그램화되어 되어 있어서 항상 똑 같은 결과를 되풀이할 수 밖에 없다

는 것이다. 비록 바틀비의 스스로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을 스스로 한다는 측면에서 그것이 바틀비의 자유의지에 따

른 결과라고 보일지 모르지만 바틀비의 선택은 미리 입력된 대로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컴퓨터 프로그램처럼 정형화

되어 되어 있는 것이므로 바틀비의 선택은 자유 의지의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 누구나 그런 상황에 처하면 똑 같은

행동을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필연적’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왜 그 같은 진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걸까? 에드워즈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 의지는 인간이 ‘바라는

대로 will’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not free to will’, ‘비자발적인 involuntary’ 것이고, 루소의 말로 대답하면, 인간

은 쇠사슬에 매여있으나 사람들이 그것을 잘 인식하지 못하는 이유는 그런 사슬이 외부적 장식으로 가리

워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외부적인 강제력이 없는 것과 자신이 하고자 하는 것을 성취할 수 있는 힘

의 차이점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1.3.6. 자기 책임성과 사회 책임성

자기 책임성에 대한 근대 이전의 철학적 사고는 “심은 데로 거둔다는 종두득두”,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응보론 retributative system 이 지배하였고, 이는 인과론과 ‘천벌론’에 맞닿아 있어 생활의 모든 면에서

신이 지배하였다. 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삶에서 노력한 만큼의 대가를 누릴 수 있다.”는 개인 책임성은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 과정에서 “스스로의 책임과는 무관하게 삶의 불행을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경험하게 되었다. 바로 자본주의 경제 구조에서 ‘공황’이란 피할 수 없는 존재로 인해서 노동자들은

자기의 노력 hard work 과 자신의 능력 talent 과는 무관하게 생존을 담보하던 일터를 어쩔 수 없이 잃을

수가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지 못한” 노동자들에게 있어서 직장을 잃는다는 것은

생존의 문제이다. 따라서 최소한의 삶을 유지해 나갈 수 있는 방안이 요구된 것이고, 여기에 이 사태를

초래한 개인의 마땅한 ‘deserved’ 응분의 책임 여부(즉 개인 책임이므로 굶어죽어야 한다)를 따질 계제가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사람이 죽지 않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는 명제이고 다만 ‘누가’

대신 그 비용을 감당할 것인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체제에서 자유와 재산권은 어느

누구에게도 빼앗길 수 없고 또 침해해서도 안되는 신성불가침의 자연권에 속한다. 자유와 재산은 삶의

생존이 지속되는 한 갖는 자연권이기에 사람이 죽고 나면 아무런 쓸모가 없다. 이런 측면에서

신성불가침의 권리라고 말하는 것이다. 노동자에게 있어 자신의 능력과 노력을 다할 직장은

신성불가침의 재산권에 속한다고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생존의 바탕이 되는 직장을 자신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잃게 된다는 것은 누구 책임이고 또 누가 보상을 해 주어야 하는가? 이런 경우를 대비하여

국가가 세금으로 자기 책임 여부를 따지지도 않고서 생존을 보호해 주는 체제가 “복지 국가 welfare

state”이다.

1.4. 프리스틀리는 누구인가?

필연주의 경험론 철학의 대표적인 인물은 영국의 신학자, 화학자, 정치철학자인 조지프 프리스틀리이었다. 프리스틀

리의 “The Doctrine of Philosophical Necessity Illustrated”(1777년)에서 펄친 주장을 보자. 인간은 기계적이고 법칙적

으로 움직이는 자연 세계와 마찬가지로 엄격한 ‘인과론 causation’에 지배를 받고 있어서 자유 의지는 일정한 한계가

있다. 인간 세계 또한 우주질서 법칙인 인과론이 작동하는데 인간에게 있어서 동기 motive가 결과를 낳은 원인이

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선행하는 연결고리로써 정신을 개조하지 않으면 새로운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없다. 인간은

101

자유로운 사고, 탐구 정신, 의견 교환을 통해서 올바른 지식을 축적시켜 나갈 수 있고 또 이렇게 함으로써 과거의 잘

못을 수정하고 보다 나은 미래를 열어갈 수 있다.

프리스틀리는 언어는 다양성이라는 특성에 의해서 발전하는데 언어는 역사와 문화의 영향을 받는다고 여

겼고, 따라서 후세 세대에게 역사와 언어 교육을 실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주장했다.

프리스틀리는 성경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혁신적인 사회를 열어갈 기초를 쌓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성경의 언어는

비유법을 많이 쓰고 있으므로 축자적 문자 해석에 머무르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프리스틀리는 산업 혁명을 개척한 특출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정치 종교 역사 교육 기술 화학 등 다방면에서 뛰어

난 업적을 남겼다.

“버밍햄 보름달 협회 The Lunar Society of Birmingham”

산업혁명을 이끈 증기기관 발명자 제임스 와트, 진화론을 주창한 찰스 다윈의 조부이자 뛰어난 의학자이었던 에라스

무스 다윈, 산소를 발견한 화학자 프리스틀리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특출난 인물 14인은 매달 보름달이 뜨는 날에

함께 모여 맥주와 와인을 곁들여 식사를 하며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 정치 종교 기술 사업 등 광범위한 주제를 놓

고 심도 깊게 토론하는 사교 모임 단체 “버밍햄 보름달 협회 The Lunar Society of Birmingham”을 결성하였다. 미국

의 국부 중 한 명으로 추앙받는 벤자민 프랭클린은 여기의 준회원으로 활동하였다. Luna는 라틴어로 달을 뜻한다.

혁명적인 발상과 사고방식을 지녔던 이들 소수 선각자들은 보름달이 뜬 날 학구적인 토론 모임을 개최하였다. 이들

은 “과학이나 문화는 공식적인 교육보다는 오히려 대화를 서로 교환하는 가운데서 얻어지는 것으로써 달빛이 밝은

밤에 이웃들과 모임을 갖는 것이 지식을 습득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법”이라고 여겼다. 루나 협회가 갖고 있던 기본

적인 인식은 “좋은 삶이란 물질적인 풍요 그 이상의 고상한 가치를 추구하는 것에 있는데 최소한 물질적인 풍요가

밑받침되지 않으면 좋은 삶이 불가능하다 the good life is more than material decency, but the good life must be based

on material decency”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당시 지배기득권계층이었던 국교도는 이들을 미친 사람들(미치광이를

영어로 “Lunatic”이라고 부른다) 로 규정하였다. 급기야 프랑스 혁명 발발 2년 후인 1791년 7월14일 이들의 정기회

합 때에 난동을 피우고 프리스틀리의 실험실과 교회 등을 불태워 버렸다. 이러한 난동의 결과 프리스틀리는 어쩔

수 없이 1794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

102

2. “프라이밍 효과 Priming effect”-사고의 연상 작용

2.1. 프라이밍 효과

‘prime’은 최고라는 뜻이고 또 기독교에서 하루가 시작되는 아침 6시를 뜻한다. 이와 같이 ‘프라임’은 흔

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의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의미를 갖고 있는

단어이고 이와 같이 무엇을 촉발시킨다는 의미의 ‘점화하다’는 뜻을 갖고 있다. 사실 무엇을 ‘알고 있다’

는 지식이라는 의미는 무엇과 무엇이 서로 연관된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는 연상과 분별 능력, 추리력,

상상력을 말하므로 연상과 지식은 유사동의어에 가깝다.362

“프라이밍 효과”를 “연상 효과”라고 번역하는데 이는 “연상주의 associationism”, “the association of ideas” (영국

의 17-18세기 철학자 홉스, 로크, 흄, 하틀리, 밀, 베인 등 인간의 합리적 이성을 중시하는 경험론) 철학을

참작하면 이해하기 쉽다. 사람들의 사고의 연상 경향을 “점화 효과”라고도 번역하는데 불을 댕기면 심지

가 탄다는 것, 점화는 불꽃을 튀기는 것으로 다음의 예정된 수순을 촉발(스파크 spark)한다는 의미에서 나

온 말이다. “프라이밍 효과”는 잠재된 기억이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는 심리학 이론 (implicit

memory effect) 즉 사람들은 종종 마음속에 먼저 떠오르는 것에 지배되는 경향을 의미에서 “연상 효과”가

보다 적절한 표현같다.363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카네만이 밝히듯이 사람들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으로든 연상 작용을 하는 경향이

있다. 카네만 책에서 예를 들고 있는 것과 같이, w _ _ h 와 s _ _ p 여기에서 빈칸을 채워 단어를 적어내

라고 물으면 어떤 단어를 말할까? 사람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가 있을 텐데 그건 각자의 특수한

경험이나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죄를 지은 사람이 자기 지은 죄를 씻고 싶어하는

“맥베드 부인 증후군”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마도 w _ _ h 와 s _ _ p 에서 빈칸을 채우는 단어를 적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wash soup라고 말할 개연성이 높다. 하지만 앞에다 똑 같은 예에서 “먹다 eat”라는 단어

를 추가해 놓고 난 후 w _ _ h 와 s _ _ p 에서 빈칸을 채우는 단어를 적으라고 한다면 아마도 대개는 “I

wish to have a soup 수프를 먹고 싶다”라는 상황이 떠올라 가장 먼저 “wish soup”라고 말할 것 같다. 이

처럼 시각적으로 먼저 제시된 단어가 나중에 제시된 단어의 처리에 영향을 주는 현상을 “프라이밍 효과

priming effect”라고 카네만은 개념화했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화자는 바틀비의 기이한 행동들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다는 생각을 가졌는데 카네

만의 “전망 이론”에 따르면 사람들은 항상 합리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들이 착각하고

편견에 빠지는 이유와 그 인지적 편향 cognitive biases 구조를 밝힌 “전망 이론 prospect theory”으로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카네만은 “Thinking, Fast and Slow”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단어가 기억을 떠올리고,

기억은 감정을 유발하며, 감정은 다시 얼굴 표정과 일반적인 흥분과 회피 경향 같은 다른 반응들을 일으

킨다. 표정과 회피 동작은 그들이 연결되어 있는 감정을 강화하고, 그 감정들은 다시 그에 어울리는 생

각들을 강화한다.” “사람들의 몸은 실제 일어나는 일에 보여주는 반응을 축소 복제하듯 반응하고, 사건을

362 일본어의 표현을 보면 더욱 분명해 진다. 知っている, 心得る, 知らす, 存じる, 分かる, 知る.

363 맥락효과: 처음 제시된 정보가 나중에 들어오는 정보들을 처리하는 기본지침이 되어 전반적인 맥락을 제공하는 것.

"THE CAT" is a classic example of context effect. We have little trouble reading "H" and "A" in

their appropriate contexts, even though they take on the same form in each word.

103

해석하는 과정에서 감정적 반응과 신체적 위축이 일어난다.” 이러한 사건들을 불러오는 기본적 구조는

생각의 연상 작용 association of ideas에 기초한다. 사람들은 두뇌뿐 아니라 몸으로 생각하고, 과거의 지식

과 경험을 통해서 여러 생각들이 사람들의 의식적 사고 속에서 질서정연한 방법으로 잇따라 발생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이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구토와 소화불량에 관한 직원들 묘사, 프리스틀리의 필연성의 철학, “수신자 불명 우

편물 Dead Letter”를 부연 설명 하는 에필로그 등 여러 부분에서 사고의 연상이 작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바틀비를 키케로 석고 흉상(석고는 모조 미술품을 그대로 본뜨는 데 쓰여지는 것에 알 수 있듯이

키케로 본인이 아니라 그의 모방 복제품이다)에 빗대는 것에서 키케로가 귀족 가문의 배경 없이 지배 상

류층으로 신분 상승한 ‘새 인물’이라는 개념과 낯선 새 땅의 이민자로 들어온 새 인물 new man인 바틀비

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서로 이어짐을 알 수 있다. 사람의 자각 수준은 사람의 뇌에서 활성화된

복잡한 연결망 network이 작용한다. 카네만은 “한 생각이 다른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는 연결 작용을 ‘연

상적 활성화 associative activation’라는 과정을 통해 일어난다고 설명한다.

‘연상주의 associationism’는 ‘사고의 결합 이론’, ‘생각의 연결 고리 이론 association of ideas’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사람의 생각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고 여기고 사람의 행동을 이끄는 데에는 내면적 동기가 중요하

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화자가 말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행동과 감정이 전혀

의식하지 못한 장소나 시간 또는 사건들에서도 어떤 의미가 서로 관련되어 있다는 느낌을 갖기도 한다.

사람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심오한 우주법칙의 존재한다는 것을 믿고서 17-18세기 영국의 경험철학자들

은 사고의 결합과 그 순차적 연결 과정을 설명해 내는 어떤 규칙이 존재한다고 보고 이것을 깊이 연구했

다. 흄의 “인간 이성에 관한 연구”, 스미스의 “도덕 감정론”에서 연상주의를 설명하였다.

2.2. 사고의 연상 이론 association of ideas

2.2.1. “결사의 자유”가 중요한 까닭

사회를 이루고 사람 사이에 기본적인 관계를 형성하는 가장 기초적인 메커니즘은 사람은 자기 결정 의사

능력을 가졌고, 각자의 ‘동의 consent’에 의하여 사회를 이룬다는 생각에 기초한다.

수학 용어에 ‘결합 법칙 associative law’이 있고 집합론이 중요한 수학이론의 한 부분을 차지하는데, 영미

인들의 사고방식을 특징적으로 나타내 주는 단어 하나가 ‘어소시에이션 associations’이다. 복수의 사람들

이 함께 모여 결성한 조합 모임체를 지칭하는 어소시에이션은 그 모임체를 이루는 한 개인 한 개인과는

구별되는 별개의 ‘보이지 않는 그 무엇’으로써 여기에는 동호인 클럽, 협동조합, 동업자 관계, 연합 단체,

회사 법인, 기업 집단 등 조직 단체를 포괄하는 단어이다.

영미인들은 개인들간에 스스로 자발적으로 모임과 협회 조직을 만들고 발전해 왔다.364 교회 조직뿐만 아

니라 인간 사회의 거의 모든 직업 분야는 거의 단체 조직화되어 있다. 변호사 사무소 명칭을 예컨대 “***

Associates & Co”으로 쓰는 경우가 흔히 보인다. 변호사 의사 기술자 등 전문가 직업군은 길드 조합 단체

364

노직이 바라본 유토피아의 구조는 각자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뤄진 결사 단체이다. 각 개인은 ‘자유 연합’의 공

동체를 통해서 ‘보다 나은 삶’의 이상을 추구해 나갈 수 있는 존재이고, 결사 단체는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자발적

선택의 성격이 부각된다.

104

를 통하지 않고는 존재하기 힘들다. 농업협동조합뿐만 아니라 경영자 단체 등 농공상인을 통틀어 사회의

직업 단위는 길드 조합 단체 조직을 통하여 이루어진다. 사람은 이불 하나를 기울려고 해도 혼자서는 기

울 수가 없고 여러 명이 동시에 힘을 거들어야 가능했다. 인간 사회에서 새로운 발전은 독자적인 혼자의

힘으로는 이루어낼 수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조합 단체를 결성하여 서로 이익을 향유하고 또

‘파이’ 전체를 더욱 키워서 이익을 분배하는 시스템을 고안해 냈지 않았을까? 한 사람의 사고 작용은 다

른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고 또 타인에게서 영향을 받는 주고 받는 관계 ‘기브-앤-테이크 give-and-take’ 과

정에 해당한다. 어떠한 사람의 활동은 직간접적으로 다른 사람의 삶에 어떤 식으로든 관여되어 있다.

인간은 타고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상호의존적이고 이것은 보편적인 현상이다.365 사람들은 서로의 이

해와 발전을 위하여 즉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여기기 때문에 타인과 유대관계를 맺고 활발히 교류하는

것이다. ‘결사의 자유 freedom of association’는 국민의 기본권에 속한다. 유럽인권협약 11조을 참조하

라.366

한편 대륙법 국가에서는 개인을 국가의 관리 대상체에 해당하는 존재로 인식하여, 국가는 개인들이 단체

를 조직하는 것을 오히려 막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대륙법제에서는 조합이나 회사 같은 단체를 규율하

는 법이론이 상대적으로 발달되지 못했다. 국민은 국가의 직접적인 통제 대상으로 여김으로써 국가는 개

인이 단체화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경향이 강했기 때문이리라. 연속성을 갖는 단체에 대한 존중이나 그

가치를 존중하는 마음이 부족하다 보니 국가 권력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하고 큰 단체인 정당마저도 진중

하게 오래도록 연속되는 정도가 낮고 대신 쉽게 모였다가 쉽게 흩어지는 모래알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단체는 삶의 유한성의 개인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영원한 연속성을 가질 수가 있다. 영미국의

정당이나 회사는 단체들은 개인적인 한계를 뛰어넘어 오래 지속되고 끊임없이 발전되어 왔음을 상기하라.

같은 정치적 이념에 기반하는 정당 단체마저 쉽게 사라지고 마는 우리나라의 현실은 영미국의 사고방식과

는 크게 차이가 남을 알려준다. 사회공동체와 국가가 오래 지속하지 못한다면 어찌 영미국같이 세계를

제패할 정도로 번영과 발전을 이룰 수가 있겠는가?

2.2.2. “동업하면 망한다”는 사고 의식이 팽배해 있는 이유는?

우리나라는 조합이나 결사 단체를 결성하여 ‘더 큰 파이’를 만들어가는 조직화 또는 동업자 단체 의식은

열악하고 빈곤한 편이다. 대륙법제에서 회사법은 통일적인 상법의 틀에서 제정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된 때는 가장 최근인 2013년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에서의 ‘동업 의식’은 영미법

국가에 비해서 크게 차이가 나는데 이는 설립된 조합이나 회사 법인의 수가 영미국에 비해 적은 통계 수

치로도 확인된다. 우리나라의 낮은 동업자 의식에 대해서 극단적인 일화를 들어보자.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인을 말로만 흉내 내어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united we stand, divided we fall”고 연설을 한 적

은 했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동업하면 망한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365

경제학의 원조 아담 스미스가 “국부론”에서 조합 단체에 대한 이론을 피력한 부분을 상기해 보면, 영미인의 주류

적 사고방식의 기초는 동양인의 ‘천상천하유아독존’ 사고방식과는 서로 대척점에 서 있음을 알 수 있다.

366 결사의 자유권은 국가 기관에 의한 일체의 간섭 없이 정치적 의견을 형성하며, 또 정보를 취득하고 전달할 자유를

포함한다. 유럽 인권 협약 The European Convention on Human Rights. 11조 (집회 및 결사의 자유) ① 모든 사람은 자신

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동조합을 조직하고, 이에 가입하는 권리를 포함하여 평화적인 집회 및 다른 사람과의

결사의 자유에 관한 권리를 가진다. ② 이 권리의 행사에 대하여는 법률에 의하여 규정되고, 국가 안보 또는 공공의

안전, 무질서 및 범죄의 방지, 보건 및 도덕의 보호, 또는 다른 사람의 권리 및 자유의 보호를 위하여 민주사회에서

필요한 것 이외의 어떠한 제한도 가해져서는 아니된다. 이 조항은 국가의 군대, 경찰 또는 행정부의 구성원이 이러

한 권리를 행사하는 데 대하여 합법적인 제한을 부과하는 것을 막지 아니한다.”

105

반면 영미인들은 “동업하지 않으면 망한다”는 생각이 지배한다. 왜냐하면 흄이 말한대로 인간은 상호의존

적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사회 관계를 통해서 다른 사람들과 생각을 공유하고 합작하면서 서로의 장점을

배우고 서로 발전할 수 있다. 생각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생각들이 연접하고 이어져야 한다. 오늘

날 대형 병원이나 대학 기관에서의 연구 현황이 말해주듯이 작은 연구 실험도 개인 혼자서는 진행해나가

기가 어렵다. 소수적 천재들의 진리 발견 또한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연구

결과에 바탕을 두었다고 다른 사람들의 연결과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NASA가 존재하지 않

았다면 달나라 우주 여행은 영원히 불가능하였으리라. 지식 분야에서 동호인 조직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여가 추구 또한 사람들의 결합 단체 united에 의존한다.367 “버밍업 루나 협회”가 없었다면 영국에서 ‘산업

혁명’이 일어나기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기업은 실리콘 밸리가 그러하듯이 사람들간의 생각과 지식을 합

치지 못하면 발전하기 힘들다. 사실 월 스트리트의 비약적인 발전은 ‘트러스트’ 제도에 기반하였다. 368

마이크로소프의 빌 게이츠도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동업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전문가들(의사나 변호사 등)마저도 동업보다 개인 개업을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와 같이 결사 단체에 대한 이해가 열악한 이유 중 하나는 ‘사고의 결합’ 철학 체계가 상대적으로 빈곤하다

는 사실에 있는 것 같다. 흄이 말한대로 인간 사고의 연계성은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익숙해져 있어서

보통 사람들은그 가치의 중요성을 몸소 느끼지 못하고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2.3. 생각의 연결 고리 이론

자연 현상에서 먹구름이 몰려오면 비가 내리고 비 갠 후에 무지개가 뜨듯이 사건은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는 생각이 쉽게 떠오를 것이다. 사람들의 생각은 생각에 꼬리를 물고 다니는 것처럼 생각은 또 다른 생

각을 낳는다. 인간의 행동 또한 마찬가지로 볼 수 있지 않을까? 사람의 일에도 자연 법칙처럼 어떤 일

이 일어나면 거기에는 어떤 원인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쉽게 여길 수 있다. 인간의 행동을 일으키

는 것은 사람들의 머리 속에 들어 있는 생각이라고 보고 또 이러한 생각은 옥구슬을 매단 고리로 서로 연

결되어 있어서 하나의 행동이 나타나면 줄줄이 사탕처럼 일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경

우가 많다. 이렇게 어떤 일이 일어난 경우 그 일을 일으키는 어떤 분명한 원인이 존재한다고 믿는 사고방

식이 프리스틀리 필연주의 철학의 기본적인 구조다. 모든 사건과 생각은 어떤 것과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는 다른 것을 연상시킨다. 지식의 체계성도 이러한 연결고리에 의존한다.369 필연주의 철학

은 생각의 연결 고리 이론 연상주의와 맞닿아 있다.

367

한 예로 영국의 프로 축구 클럽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368 대기업간의 기업결합으로 독과점의 폐해를 커지자 1890년 셔먼 Sherman 의원이 발의한 독과점금지법 anti-trust

이 제정되었다.

369 규칙이 없는 것 같지만 무질서 속에 규칙이 있다. 예컨대 우리말은 쇠파리, 잠자리, 나비라는 말은 (**리, **리가

같은 접미사인 것 빼고는) 서로 어떤 연관성이 전혀 없다. 그런데 같은 뜻을 나타내는 영어를 보자. horse-fly, dragon-

fly, butter-fly, butter-fly. ~~fly가 붙어서 fly 날라 다니는 것으로 상관성이 쉽게 나타난다. 말과 소에 달라 붙는 쇠파리,

잠자리는 눈이 유난히 크고 불거져 나온 용같이 생겼기 때문에 붙인 이름이고, 나비는 하양나비 호랑나비가 많아서

나비 색깔이 버터색 같아서 butter-fly라고 붙였을 수도 있겠지만 나비는 불나방처럼 머리부터 들이대고 파고드는 모습

에서 버터플라이라고 이름 붙였을 것이다. 이렇게 보면 보이지 않는 일정한 규칙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말에도 쇠파리는 소에 달라 붙는 파리, 잠자리는 가만히 제자리에 돌고 있는 모습에서 잠자리, 나비는 이리 저리 날

라 다니는 것(날 비 飛자 음운탈락현상일 수도 있겠지만)을 말하는 것을 보면 어떤 규칙성이 보인다.

106

영국의 17-18세기 경험철학자들은 사람들의 생각은 결합되었다고 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 데는

그 원인이 존재한다고 여기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를 파악하기 파고들었다. 뉴튼은 사과가 떨어지는 원인

을 파고 들어 갔고 거기에서 중력의 법칙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영국의 경험철학자들은 사람의

몸과 마음은 별개로 따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마음도 몸처럼 “실체적인 physical” 것으로 인식하였다.

3. “황금률 Golden Rule”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바틀비 스토리”에서 화자인 변호사가 상대방을 해치고 싶은 범죄 충동이 일어났을 때 그것을 이겨내는

힘이 신약 성경의 황금률이었다고 고백하고 있다. “구약의 아담 시대부터 있어온 인간의 원초적인 분노

감정이 내게도 치밀어 올라 바틀비를 해치우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을 때, 나는 그 원초적 분노라는 놈과

맞서 싸우고 그 놈을 내동댕이쳐버렸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느냐고? 글쎄다. 나는 그저 신성한 강제

명령-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노니, 너희는 서로를 사랑하라’는 신약의 말씀을 상기했을 뿐이다. 그

렇다. 나를 구해 준 것은 아담의 자손인 예수님의 바로 이 말씀이었다.” “예수님의 바로 이 말씀”은 예

수의 “산상수훈”의 설교에서 가르친 “신의 명령 divine injunction”을 말한다. 이를 보통사람들은 대개 “황금

률 Golden Rule”이라고 부른다.

3.1. “황금률”은 무엇을 말하는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

라.”(마태 7:12).370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요한 13:34).371 이 이웃사랑의 실천계명은 구

약성경에도 나오는 계명이기도 하다: "'원수를 갚겠다고 분을 품지 말고, 동포 누구에게라도 앙심을 품지

말고, 대신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372 (레위기 19:18). 구약에서는 이웃 사랑하기

의 범위가 같은 동포에 한정되었지만 이방인을 포함하여 인류 전체로 확대되었고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상

의 측면에서 예수의 새로운 실천윤리 지침은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 자신과

자기 가족의 작은 범위 내에서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지만 공동체 사회로 확대해

서 많은 사람을 자기 몸처럼 자기 가족처럼 대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경험하리라. 또 예수의 실

천윤리는 “남들이 싫어할 일은 남들에게 행하지 말라”는 (예컨대 침묵) 소극적 의미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

라 대신 적극적으로 나설 실천윤리를 강조하였다는 측면에서 새롭고도 혁명적인 법률해석론에 해당하였다.

혁명적이라는 말은 과거에 없던 새로운 질서를 낳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이러한 예수의 산상수훈의 가르침을 “황금률”이라고 일컫게 된 시기는 종교 개혁이 일어난 16세기부터라

고 한다. 종교 개혁은 새로운 성경 해석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역지사지”라는 우리말이 있는데 이는 “네가 다른 사람의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겠는지 if we imagine

ourselves in someone else's shoes” 재차 생각해 보라는 뜻이다. "Treat others only as you consent to being treated in

the same situation." “역지사지”라는 우리말이 “황금률”과 동일한 뜻은 아니지만 “자신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

자 하는 대로 자신도 남을 대접하라. Treat others as you want to be treated."는 황금률의 의미를 갖고 있다.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남에게 사랑을 받고 싶어한다. 따라서 “남을 사랑하라”는 말은 누구에게나 타당한

보편적 원칙이 된다.

370 So in everything, do to others what you would have them do to you, for this sums up the Law and the Prophets.” 371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so you must love one another.” 372 Do not seek revenge or bear a grudge against anyone among your people, but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I am the LORD."

107

Wattles은 “황금률”의 구체적 단계를 다음과 같은 6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① 남이 나에게 기쁨을 주기를 원하는대로 너가 남에게 먼저 행하라.

② 남이 나의 감정을 배려해주기를 바라는 대로 너도 남의 감정을 배려해 주라.

③ 너는 다른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 너 자신과 똑 같은 이성적인 존엄성을 가진 존재로 대하라.

④ 남이 나를 사랑해 주길 원하는 대로 너가 남에게 사랑을 행하라

⑤ 남이 나에게 대우해주기 원하는 대로 너가 도덕 명령 원칙에 입각하여 남을 대하라.

⑥ 나에게 객관적인 양심의 원칙이 적용되기를 원하는 대로 남에게도 똑같이 그 원칙을 적용하라.”373

3.2. 상호주의 reciprocity와 일관성 원칙 consistency principle

‘새로운’ 실천계명 new commandment은 ‘나 자신’만이 아니라 ‘상대방’과의 ‘관계 relationship’를 깨닫는 것

을 필요로 한다. ‘상호주의’란 ‘서로 주고 받는 reciprocal’ 관계 또는 오고 가는 ‘쌍방형 two-way’의 관계

를 인식하는 것을 말한다. 흔히 ‘주고 받는 give-and-take’라는 말로 쉽게 표현되는데 여기서 너와 내가

똑같이 동일하다는 측면이 강조된다. 사람은 ‘양쪽 다 똑같이 both sides equally’ 중요한 존재라는 것 즉

사람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가르치는 말이다.

밀 JS Mill은 “공리주의 Utilitarianism”책 제2장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의 행

복의 관계에 대해, 공리주의는 이해관계가 개입되지 않고 악의 없는 제3자가 갖고 있는 공정성을 엄격하

게 자기 자신에게도 적용할 것을 요구한다. 공리주의 실천윤리의 핵심이 무엇인지는 나사렛 예수가 말한

‘황금률’로써 온전히 설명된다. ‘남이 나에게 해주기 원하는 대로 남에게 먼저 행하라’ 그리고 ‘이웃 사랑

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는 의무 원칙은 공리주의 실천윤리 원칙에 이상적으로 들어맞는다.”374

“나와 너 I and you”는 나는 너가 될 수 있고 너는 내가 될 수 있다. 나와 너는 서로 상호 교환 도치될 수

있는 관계이므로 나는 너와 똑 같은 가치를 갖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나와 너는 서로 “똑같이 대우를 받

아야 한다 be treated equally”. 황금률은 평등적인 관계가 분명하게 강조된다.

또 황금률은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일관성의 원칙을 필요로 한다. 무게나 길이를 재는 저울과 잣대는

언제 어디서나 똑같이 적용할 때만 의미가 있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이현령비현

령 또는 고무줄 잣대같이 일관성을 갖추지 못한다면 잣대로써의 기능은 상실되고 만다.

공정성은 한 번의 결정으로 세워지는 개념이 아니다. 공정하다는 평가는 여러 번에 걸쳐서 판단되는 일

관성을 요구한다. ‘일관성’의 가치는 시간의 경과를 통해서 즉 사람들이 반복적인 경험을 통해서 느껴질

때 비로소 사람들로부터 ‘얻어질 수 있다’. 인간의 마음은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서 초지일관의 마

음을 지속하기란 매우 어렵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미덕을 실천할 수 있겠지만 시간의 경과 속에 일관

373 "Do to others as you want them to gratify you."

"Be considerate of others feelings as you want them to be considerate of your feelings."

"Treat others as persons of rational dignity like yourself."

"Extend brotherly or sisterly love to others, as you want them to do to you."

"Treat others according to moral insight, as you would have others treat you."

"Do to others as God want you to do to them."

Wattles, “Levels of Meaning in the Golden Rule”, The Journal of Religious Ethics, Vol. 15, No. 1 (Spring, 1987), pp. 106-129. 374 “As between his own happiness and that of others, utilitarianism requires him to be as strictly impartial as a disinterested and

benevolent spectator. In the Golden Rule of Jesus of Nazareth, we read the complete spirit of the ethics of utility. ‘To do as you would

be done by’ and 'To love your neighbor as yourself' constitute the ideal perfection of the utilitarian morality".

108

적으로 쭉 실천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만리장성이나 로마의 성벽은 하루 아침에 세워지지 않았으며, 그

와 같이 법과 도덕성은 하루 아침에 세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정성은 판단을 받아들이는 상대방의

태도에서 ‘얻어지는 earned’ 개념이지 자신이 남에게 주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공정한 행위들이 오래

반복적으로 지속되고 나선 후에야 비로소 나타나게 된다.375

3.3. 정언 명령 Categorical Imperative

3.3.1. 가언 명령-목적 달성을 위한 실천적 명령

정언명령의 개념을 이해하려면 가언명령의 개념을 우선 이해할 필요가 있다. 가언명령 Hypothetical

Imperative이란 “~~하려면 **하라”같은 형식을 갖는 명령문으로써 욕구 desire나 의도하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실천적 수단으로써 요구되는 행위를 할 것을 명령한다. 가언 명령이란 만약 if 가정문이 붙는 것처

럼 ‘앞서 전제 가정한다’는 ‘가언’의 조건절이 들어 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미래에 대비해서 저축을 하

는데, “노후에 편안하게 살려면 저축을 해라.”-이 명령문을 보자. 어떤 목적을 의도하는 사람이라면 목적

을 이룰 수단를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 명령은 모두에게 타당한 것은 아니다. 왜냐면 저축을 하지 않

는 사람도 있고, 또 저축하지 않고서도 일만 할 수 있다면 잘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점에서 가언

명령은 모든 사람에게 타당한 명령을 뜻하는 정언명령과는 차이가 난다.

칸트 철학의 첫 번째 의미는 인간의 합리적인 이성에 따라 일관성의 원칙이 적용된다는 것을 밝힌 것에

있다. 일관성있는 적용에서 보편성이 확보되는 것이다. 일관성의 원칙이 제1의 적용 원칙이고, “다른 사

람을 수단으로 대하지 말고 목적적인 존재로 대해야 한다”는 그 다음에 오는 원칙이다. 다시말해 가치에

는 ‘우선적 적용의 순서’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칸트의 목적론 철학을 이어받는 존 롤스의 “정의론”을 살펴

보면 우선적 적용 순서의 원칙이 보다 분명하게 이해될 것이다.

3.3.2 정의의 원칙과 우선적 적용 순서

롤스가 제시한 정의의 원칙을 보자. 제1원칙은 “자유의 원칙”으로써 모든 사람은 최대한대로 누릴 자유와

기본권을 갖고 있으며 이를 모두가 평등하게 향유한다. each person has a right to the greatest equal liberty

possible.376 이 자유의 원칙은 모두에게 ‘최대한’의 자유를 ‘동등하게’ 허용해야 한다는 ‘Equal Maximum

Liberty 원칙’을 말한다.

인간 사회에서 사회 경제적인 불평등이 존재할 수 밖에 없고 따라서 어떻게 하면 이러한 불평등을 줄일

수 있는가의 문제인데, 제2원칙은 “차등의 원칙 difference principle”(a)377과 “기회 평등의 원칙 fair equality

of opportunity”(b)을 제시한다. 사회ㆍ경제적 불평등이 정당화될 수 있는 조건은 가장 취약한 계층이 가장

큰 혜택을 받을 경우에 한정된다.378 인간 욕구는 한이 없고 반면 자원은 희소하기에 기회의 평등은 최소

375 “The golden rule is best seen as a consistency principle. It doesn't replace regular moral norms. It isn't an infallible guide on which

actions are right or wrong; it doesn't give all the answers. It only prescribes consistency -- that we not have our actions (toward another)

be out of harmony with our desires (toward a reversed situation action). It tests our moral coherence. If we violate the golden rule, then

we're violating the spirit of fairness and concern that lie at the heart of morality.” 376

1. Equal Liberty. "Each person is to have an equal right to the most extensive total system of equal basic liberties

compatible with a similar system of liberty for all." 377

The difference principle permits inequalities in the distribution of goods only if those inequalities benefit the worst-

off members of society. 378

2. Social Inequality. "Social and economic inequalities are to be arranged so that they are both (a) to the greatest

expected benefit of the least advantaged and (b) attached to positions and offices open to all under conditions of fair

109

한의 필요 조건이 된다. 롤즈는 공정한 기회의 보장 원칙이 적용되어야 할 것을 강조했다. 정의의 원칙

이 서로 연접하고 있어서 우선적인 적용 순위가 분명하게 필요한데 이를 ‘사전편찬법적 우선순위

lexicographical priority’이라고 말한다. “사전편찬법적 우선 순위 적용”이란 미리 정해진 원칙에 따라서 기

계적인 적용을 하는 것을 말한다.379 어떤 사정이 있다고 해서 ABCD식으로 나가는 기본적인 단어 배열

순서를 흐트릴 수 없는 것이고 만약 그렇게 원칙을 훼손시키면 사전을 편찬할 수가 없게 된다.

롤스의 정의론에는 제1원칙인 자유의 원칙이 있고, 제2원칙에는 차등의 원칙(a)과 공정한 기회의 원칙(b)

이 있다. 이러한 원칙은 ‘인접’해서 ‘동시에’ 존재하는 ‘conjunction with’ 원칙으로써 어느 원칙이 우선적으

로 적용되는지의 문제가 떠오르게 된다. 그에 대한 답은 제2원칙에 대해 제1원칙이 우선적으로 적용되고,

제2원칙 가운데 차등의 원칙(a)에 대해 공정한 기회의 보장 원칙(b)이 우선적으로 적용된다. 쉽게 예를

들어서 설명한다면 돈을 더 주는 조건으로 노예 제도를 인정할 수는 없다는 것이고 또 금전적 보상 이전

에 기회 평등의 원칙이 먼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경제적 불평등을 해소시킨다는 명분으로 기본권

을 희생시킬 수는 없는 것인바 그 까닭은 제2원칙은 제1원칙에 앞서 적용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또 취약한 계층에 대해 경제적인 지원을 하기 이전에 공정한 기회가 우선적으로 누리게 해야 할 것이므로

경제적인 보상을 근거로 하여 차별적 대우를 하는 것은 정당화될 수 없다. 기회 평등의 원칙이 차등의

원칙에 대해 우선적으로 적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3.3.3. 칸트의 정언 명령의 장점

칸트의 정언명령의 장점은 상대방의 여부와는 상관없이 인간은 누구나항상 올바른 행동을 할 수 있는 존

재임을 말해 주는 것에 있다.380 하지만 인간 행동의 동기를 불러오는 목적을 강조하다 보면 인간의 ‘의

도나 목적’이 선하기만 하면 설령 결과가 잘못되어도 책임이 면해질 수 있다는 결론을 가져오기 쉽다.

사람들에게 있어서 동기는 행위를 낳는 요인이긴 하지만, 인간의 삶은 의도와 결과가 항상 일치하지 않

는다는 것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사람들이 원래 설계하고 의도하고 계획한대로

이루어진다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아담 스미스의 통찰을 다시 한번 확인하자. “모든 사람은 자기가

이룬 결과로써 판단되지, 의도한 계획으로써 판단되지 않는다는 이런 사실은 오랜 인류 역사를 통해서

존재해온 불평거리였으며 또한 사람들이 아름다운 덕목을 그리 높게 평가하지 않으려고 하는 생각을 낳

는 가장 큰 요인이기도 하다.”381

황금률의 실천윤리는 칸트의 실천 명령 개념에서도 똑같이 강조하는 행동 윤리 원칙이다. 유명한 칸트의

말을 다시 보자. “Act so that you treat humanity, whether in your own person or in that of another, always as an end

and never as a means only. 너는 사람들을 대할 때, 너 자신이든 아니면 다른 사람이든지 간에 구분함이 없

이, 항상 목적으로 여겨야 하고 결코 수단으로는 여기지 말아야 된다.”382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대개의 번

역은 이렇게 하고 있다: “너는 너 자신의 인격과 다른 모든 사람의 인격에 있어서 인간성을 언제나 동시에

목적으로 간주하여야 하며, 결코 단순한 수단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여기에서 ‘다른 사람’을 뜻하는

‘humanity’을 ‘인간성’, ‘인격’으로 번역하고 있어서 원문의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equality of opportunity". 379

제1원칙과 제2원칙에서 우선적인 적용 순서에 있음에 대하여 예수는 황금률의 원칙에서 분명하게 답변했다. 380

정언 명령의 일반적인 형식과 같이, 모든 합리적 사람은 그 자체로 선한 행위를 의욕해야 한다. Every rational

being ought to will the action good in itself. A good will must also be good in itself. a good will is good without qualification as

such an absolute good in-itself. 381 Everyone judges by the outcome, and not by the design—that has been the complaint down through the ages, and is the great

discouragement of virtue.” (TMS II.3.1.) 382 Kant, ”Grounding for the Metaphysics of Morals”, trd Ellington [1785] (1993). 3 ed. Hackett, at 30.

110

3.3.4. 양심과 판단은 각각 다른 개념이고 구별되는가?

칸트의 실천 명령 개념은 제3자적 객관적인 양심인 신의 이성에서 의존하는 개념이지, 사람들 각자 편할

대로 “자신의 내적 명령 private consciences”을 말하는 개념이 아니다. 그런데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실천

명령을 “자신의 내적 명령”이라고 이해한다면 황금률이 의미하는 “너와 내가 똑같이 취급된다”는 평등

equality의 개념이 그만 묻히고 마는 잘못된 결과을 낳을 수 있다. “각 개인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심판자”라고 말할 때 여기서 심판자는 자신이 아니라, 이해관계가 얽혀있지 않는

객관적이고 제3자적 입장을 가진 사람을 상정하고 의제하는 것으로써 사람은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이성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자기 자신이 선악의 판정자”라는 사고는 사람들이 자신의 양심에 반하여 행동하는 것은 모두 죄악이라고

잘못 생각하는 결론을 낳을 수 있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이 존재하고, 또 양심과 판단은 서로 다르다는

말인가? 양심과 판단은 다른 것이 아니다. 또 사람의 판단은 실수할 수가 있는 것이고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의 양심도 잘못을 범할 수 있다. 행태 (진화) 심리학이 밝혀내는 진실이기도 하지만 인간은 살기 위

해서는 자기 자신 마저 속이는 경우도 발견된다. 청소년기에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기도 하지만 자기의

양심을 잘못 알고 있는 경우도 있다. 어떤 이는 섹스 행위를 자기 양심상 허용되지 않는 죄악으로 간주

하기도 하지만 성인간의 합의에 의한 성행위를 양심에 반하는 죄악으로 여기는 성인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만약 그것을 금하는 국법이 있다면 어느 것이 양심인가? 이 경우 자기 자신의 내적 양심에 반하는 모든

행위가 죄를 범하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이런 국가에서는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사람들이 공동체를 형성

하는 가장 기초적인 수단은 사람의 동의 consent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각자 의견 private opinions과

각자의 양심 private consciences은 실로 다양하다. 그래서 서로의 동의가 중요하고 합의가 국가 사회의

기초이다. 양심은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하고 공정한 제3자적 관찰자의 입장에서 나오는 것이다.

3.4. 왜 황금률이라고 말하는가?

“…'가장 중요한 계명은 이것이다. … 너는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

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리고 둘째로 중요한 것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계명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383

① 전체적인 as a whole 총체적인 입장을 고려

황금률이란 첫 번째 그냥 떠오르는 대로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이 ‘결과에 미칠’ 영향까지 ‘gauge

their actions’ 다시 한번 ‘재고’하고 ‘재차 secondary’ ‘따져보는’ 것을 말한다. 한 문장 안에서는 해석을 하는

데 어떤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는다고 해도 전체 문장을 통틀어 보면 이상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 그런

불합리한 결과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 (in order to not reach an absurd decision) ‘개별적인’ 의미는 ‘전체적’이고

‘총체적인 as a whole’ 의미에 양보해야 한다. 판례를 인용하여 재정리하면, 개별적으로 보면 틀린 것은 아

닐지 몰라도 전체적으로 보면 ‘터무니 없는 absurdity’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 그것은 ‘억지 주장’에 불과하

므로 개별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전체적인 의미에서 재해석되어야 한다는 원칙을 황금률이라고 부른

383 “The first of all the commandments is, Hear, O Israel; The Lord our God is one Lord: And thou shalt love the Lord thy God with all

thy heart, and with all thy soul, and with all thy mind, and with all thy strength: this is the first commandment. And the second is like,

namely this, Thou shalt love thy neighbour as thyself. There is none other commandment greater than these. …” (Mark 12:29-33).

111

다.384385386

② 2차적 대안을 제시하는 해석 원칙

황금률은 제1의 원칙을 거부하고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충하는 역할을 맡는다. 의미가 불분명

한 경우 글에 쓰여 있는 대로 그 단어가 나타내는 일상적인 의미를 따라서 해석하는 “문언주의 the literal

rule” 해석 원칙을 따르고, 거기에서 터무니 없는 결과가 나타나게 되면-즉 전체적으로 보아서 ‘필요’하다

면 if the overall content of the document demands it.demand it, 새로운 의미를 찾아봐야 한다는 것이다.387

나중에 생긴 형평법이 보통법원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보통법원으로써는 할 수 없는 것을 보충하는 마

치 경제학의 보완재의 성격을 갖는다. 문언주의 해석 원칙이 확인된 때는 1584년의 헤이돈388 케이스에

서였다.

“황금률”은 ‘원래의 original” 것에 기반을 두고 새롭게 등장한 ‘제 2의 secondary’ 원칙이고, 기존의 주류에

서 “파생된 derivative” 원칙이고,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기존의 이론에 ‘대항해서’ 새로운

‘대안 alternative’을 제시하는 원칙이다.

신약은 구약에 기초를 두고 있으며 구약 없는 신약은 있을 수가 없다. 황금률은 구약에서도 나온 명령이

지만 부족 단위의 실천윤리의 갇힌 범위를 뛰어 넘어서 전세계적인 실천윤리로 새롭게 확장했을 때 혁명

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황금율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에서 ‘발상의 전환’을 통해서

새로운 혁명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389

③ 황금률은 일관성의 유지가 관건

황금률은 수학의 “황금비율” (세로와 가로 비율 1:1.618을 황금비율이라고 부른다)의 존재와도 같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적용되는 always act in such a way” “보편성을 갖는 법 universal law”이기 때문에 그와 같이 부

르게 된 것이다.

384 “the golden rule is right, vis, that we are to take the whole statute together, and construe it all together, giving the words their

ordinary signification, unless when so applied they produce an inconsistency, or an absurdity or inconvenience so great as to convince

the Court that the intention could not have been to use them in their ordinary signification, which though less proper, is one which the

Court thinks the words will bear." River Wear Commissioners v Adamson [1877] 2 AC 743. 385 Grey v. Pearson (1857), 6 H.L. Cas. 61.

386 경제학의 예를 들어 보자. 경제 위기 상황에서 어려운 가정경제에 대비하기 위해 소비를 줄이는 것은 개인에게는

합리적인 행위인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경제 전체를 더 큰 위험에 빠지게 한다. 개인의 합리적 행동이 경제 전체

의 합리적 선택으로 연결되지 않는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구성의 오류 fallacy of composition’라 하며, 대표적인 예로

케인즈가 주장한 ‘절약의 역설 Paradox of Thrift’이다. 절약은 개인의 차원에서는 미덕일 수 있으나 경제 전체의 수요

감소를, 이는 다시 공급 감소와 실업의 증가로 이어지고 결국 경제 전체가 어려워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고 주

장하며 경제학의 혁명을 가져왔다. 387 “The literal rule should be used first, but if it results in absurdity, the grammatical and ordinary sense of the words may be modified,

so as to avoid absurdity and inconsistency, but no further.” Grey v Pearson (1857). 388 Heydon's Case [1584] EWHC Exch J 36. 389

갈릴레오가 망원경을 최초로 발명한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이 고안 발명한 망원경을 개량해서 올바른 “방

법론”을 이용하여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우주 속에 존재한 진리를 발견하고 혁명적인 변화의 역사를 가져왔다. 마

이크로 소프트트의 빌 게이츠도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페이스북의 주커버그도 무에서 유를 창조한 인물들이 아니었

다. 혁명적 변화가 무엇인지 재음미해 보자.

112

자기와 타인의 관계에서 동등가치를 부여하지 않고, 대신 각자 자신의 주관대로 차별적인 적용을 주장하

는 것은 (예컨대 누구는 3대 독자이니까 군복무를 면제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긴다거나 자본주의 경제

사회에서 특혜를 추구하는 것) 나와 남이 다같이 동등하다는 평등 정신을 실천하라는 황금률의 의미를 제

대로 파악하지 못한 우를 범한 것이다.

3.5. “휴머니즘 종교”-“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

3.5.1. 조지 엘리어트의 “휴머니즘 종교”

‘휴머니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가로는 조지 엘리어트 George Eliot(1819-1880)을 들 수 있다.

1861년 출간된 “사일러스 마너 Silas Marner”에서 휴머니즘의 내용을 설명하였다. 그녀는 1846년 스트라

우스 Strauss의 독일어 책 “예수의 생애”를 영어로 번역한 “예수의 생애-비판적 고찰 The Life of Jesus,

Critically Examined”을, 1854년 포이에르바하의 독일어 책 “기독교의 본질”의 영어 번역본(“The Essence of

Christianity”)을 출간하였다.

조지 엘리어트는 인간은 (우주와 마찬가지로) 신의 섭리에 따라 설계되고 움직이므로 자연의 법칙을 떠날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지만 즉 인간은 환경의 지배를 받기 마련이지만 (따라서 절대적인 의미에서 인

간은 자유 의지 free will을 가졌다고 볼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 스스로 자유 의지에 따른 선택

적 결단에 따라 행동하여야 하고 (인간은 보다 나은 선택을 할 능력을 가졌다- 왜냐하면 인간은 선한 우

주를 창조한 신에 의해서 창조되었기 때문에), 그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을 가졌

다. 그녀는 경험철학과 자연법 사상의 전통에 연결된 인과응보론 causation의 관점 (물리학의 우주 법칙

처럼 사람의 운명은 과거 행위에 좌우된다)을 견지하였다.

그녀는 보편적인 인간성 common humanity은 사람들 각자 마음 속에 들어 있는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

man’s love for man”이라고 파악하였다. 그녀는 인류의 진보를 믿었고, 인간의 행복은 전체 사회의 행복

happiness of humanity as a whole을 위해서 개인 이기주의보다 공동체 가치가 우선할 때 달성될 수 있다고 보

았다. 그녀는 “인간의 도덕성의 발전은 그가 속해 있는 사회의 행복 happiness of the society s/he lives in에

기여하는 것에서 찾아진다”고 믿었다. 조지 엘리어트는 사람은 연민의 감정 없이는 이기적인 자신으로부

터 해방될 수 없다고 보았고, 이러한 해방에는 반드시 “고통 suffering”이 수반되지만 그것을 극복해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람에게 요구되는 가장 높은 헌신과 결단은 인간의 고통을 견디어 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은 아편 중독에 의해서가 아니라 다만 인간 내면의 맑은 의식과 깨우친 눈을 통한 인내이다.”390

이러한 사상을 인류애, 박애주의, 인도주의, 콩트 Comte가 명명한 “휴머니즘 종교 Religion of Humanity” 등

의 용어로 불렀다. 휴머니즘 종교는 ‘이기주의 egoism’에 반대하고, 대신 자기 희생과 ‘이타주의 altruism’

를 요구하고, 타인의 고통에 대한 연민과 공감이 강조된다.

3.5.2. 포이에르바하의 “기독교의 본질” 비판

“휴머니즘 종교”는 “신 중심이 아닌 인간 중심의 종교 a religion not of God, but of man, a religion of humanity”

라고 말한다. 조지 엘리어트의 견해는 특히 포이에르바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결과이었다. 포이에르

390 “The highest calling and election is to do without opium and live through all our pain with conscious, clear-eyed endurance.” (letter,

1860.12.26).

113

바하는 인간들이 신을 믿는 모든 종교가 실제로는 인간의 본성, 필요, 욕망이 무의식적으로 빚어낸 외재

화의 결과에 불과한 것이고 즉 인간의 주관적인 필요와 기대 실현을 위해서 인간이 주관적으로 만들어낸

하나의 도구 방편 unconscious objectification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했다.391 포이에르바하는 종교의

의미는 사랑 love 경외 admiration 동감 sympathy 연민 pity 인간 사이에의 희생 sacrifice of man for man에

있다고 보고 “인간 관계 그 자체가 바로 종교적인 성격을 갖는다”고 말했다.392

포이에르바하는 진정한 종교적 의미는 인간의 내적 이기적 욕구에서 만들어진 추상적인 신에게 바쳐질 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같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행할 때 그 의미가 있다는 것, 다시 말해 인간

의 문제는 인간이 구해낼 수 있는 주체 the savior is nobody but human라고 파악하고, 신을 인간의 위치로

from God to Man 끌어내렸다. 기독교는 “신은 사랑 God is Love”이라고 표현하는데 그는 역으로 “사랑이 신

Love is God”이라는 의미가 도출된다고 주장했다. “사랑은 신성보다 더 높은 능력이자 진리이며 따라서 사

랑은 신을 정복한다.”393

이와 같이 볼 때 “동료 감정 fellow-feeling (In love the reality of the species becomes a matter o feeling.)”은 동지애,

인간애 humanity와 동의어가 된다.394 사랑이 인간을 결합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자 종교의 본질이라면,

같은 인간으로서 연민의 감정에서 우러나오는 “인간 동료애 man’s love for man”는 자기애만큼 거의 ‘종교적’

인 것이다. “인간의 인간에 대한 사랑”과 “타인에 대한 희생”은 인간 자신의 형상대로 신을 창조한 인간

의 최고의 본성적 표현인 것이다. “사랑과 공감으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는 그 자체가 종교적인 성격을

갖는다.”

이와 같이 엘리어트가 주장한 휴머니즘의 개념을 비유적으로 쉽게 설명한다면, 천수답을 짓는 삼한시대

사람들의 종교가 태백산에 올라가 기우제를 지내며 “천지신명이시여! 비나이다! 하늘이시여! 우리를 도와

주소서! Heaven help us!”라고 하늘에 고사를 지내는 기우제의 종교이었다면, 휴머니즘은 고통으로 점철된

인간 사회의 개선을 위해서 “우리가 스스로 서로 돕자! Help one another”의 사랑과 우애와 협동의 실천 정

신으로 무장하여 공동 저수지를 만들며 인간사회의 개선과 발전을 도모하는 실천적인 종교라고 말할 수

있겠다.

휴머니즘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가장 쉽고 잘 표현해 주는 “휴머니즘의 신조”를 보자. 이것은 기독교의

“사도신경”과 거의 비슷한데 다만 신의 위치가 인간으로 대치된 것 같다. “휴머니즘은 무엇인가?”란 책에

다음과 같이 정리되어 있는데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3.5.3. 휴머니즘의 신조

나는 내가 우주 천체의 중심이라는 것과

나와 똑 같은 다른 사람은 존재하지 않으며

나는 전체 인류 가운데 한 부분에 속한다는 것을 믿는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존재했고 또 내가 죽은 후에도 존재한다는 것을 믿는다.

391

언어 또한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고 하지만, 언어는 편의성을 위하여 사람들이 부여한

의미를 반영한 인위적인 체계이다. 392 “Relationships of man to man, all the moral relations are per se religious.” Feuerbach, Eliot G., “The Essence of Christianity”, at

271. 393 “Love is a higher power and truth than deity. Love conquers God.” Feuerbach, Eliot, “The Essence of Christianity”, at 53. 394 Paris B., “George Eliot's Religion of Humanity”, ELH, Vol. 29, 4 (1962), 418-443, at 432.

114

나는 모든 인류가 공통으로 갖고 있는 것을 공유하고 있으며,

필요, 욕구, 감정, 지성, 지식 추구 등은 모든 인류의 보편적이라는 것을 믿는다.

내가 속한 인간 종족이 생존하는 한 나는 결코 죽어 사라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을 믿는다.

나는 내 자신을 보호해 줄 위대한 신의 존재가 필요하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만약 신이 존재한다면 좋겠지만, 아무튼 내 자신을 보살피는 것은 내 자신의 책임이라고 믿는다.

인간은 공동 선을 추구하는 존재라는 것을 믿으며 또 그 이유는 우리들이 신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다만

우리들은 평화와 공존을 추구하며 함께 살아가야 할 필연성 때문이라는 것을 믿는다.395

395 I am the center of my universe;

There is no one else quite like me.

I am part of the human species,

All who came before me and all who will come after.

I have things in common with all humankind:

Needs, drives, emotions, intelligence, and a thirst for knowledge.

As long as my specifies survives, I shall never die.

I have no need for a Greater Being to take care of me.

While that would be nice, it is my responsibility to take care of myself.

Human beings strive to be good because we need to live in peace and harmony, not because we fear God.

-Bennett H, “Humanism, What's That? A Book for Curious Kids”, Prometheus Books, Amherst, NY,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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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자선 charity은 무엇인가?

4.1. 영미국인의 기부와 자선의 전통

월 스트리트 최고 부자 세계 갑부 서열 1위에 2위에 올라 있는 빌 게이츠, 웨런 버핏은 자신의 모든 부를

자선 단체에 기부했다. 보통사람들은 자기 가진 것 중에서 자기 입고 먹고 살고 남은 것 그 중에 십 분

의 일에 해당하는 작은 돈을 내놓기도 어려운데, 하물며 세상의 부귀를 다 가진 그런 사람들이 어떻게 자

기 가진 돈을 자신의 핏줄도 아닌 다른 자선 단체에 기부할 수가 있다는 말인가? 부자들이 자기 가진

재산을 모두 다 내놓는다? 과연 그게 가능할까? 누구를 믿고? 무엇을 믿고? 하지만 영미국에선 그게

가능하다. 영미국인에게 있어서 자식에 대한 믿음은 덜할지라도 하나님의 법은 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법 원칙을 추구하는 법정이 바로 형평법이다. “법과 정의 law and equity”는 “보통법과 형평법”의

두 법원을 말한다. 이 두 법체계는 오늘날에는 하나의 사법부인 법원으로 통합되었다. 영미국인의 기부

자선의 문화, 전통, 법제도의 심연을 파악해 들어가 보자.

4.2. “믿음 소망 사랑”의 고린도 전서 13장에 대한 킹제임스성경의 새로운 번역

고린도 전서 13장은 가장 잘 알려진 성경 말씀이다. “믿음, 약속, 자선, 이 세 가지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선이다. And now abideth faith, hope, charity,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charity.” “믿음 소망

사랑”의 이 구절에 대해서 1611년의 킹제임스성경은 faith, hope, charity”으로 번역했다. 왜 17세기 당시 성

경번역자들은 “사랑”을 “charity”로 번역했을까? 성경의 “charity”를 “love”로 새롭게 번역하게 된 시기는

19세기에 이르러서였다. 신학자 프리스틀리와 에드워즈는 각각 킹제임스성경에서 새롭게 번역한 고린도

전서 13장의 해석을 강조하였다. 산업 혁명이 도래하고 국가가 사회적 약자를 돌보기 시작하기 이전까지

는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구제는 오로지 교회가 담당하고 있었다. 교회의 존재 기반은 사람들의 자선과 기

부에 의해서였다. 자선과 기부가 없다면 교회는 존재할 수가 없고 따라서 사회적 약자 또한 살아갈 길이

없었다. 따라서 자선은 생명과도 같이 중요했다. 오늘날 또한 마찬가지가 아닐까?396 킹제임스성경397이

출간된 17세기 당시 상황을 감안하여 고린도전서 13장을 다음과 같이 새롭게 번역하고자 한다.

1 내가 일반인들이 쓰는 언어와 천사들이 쓰는 언어로 말할지라도, 자선을 행하지 않는다면, 단지 변죽만

울리는 징과 꽹과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2 내가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가졌고, 모든 신비를 꿰뚫고, 모든 지식을 갖추었다 해도, 또 완전한 믿음

을 가져서 태산을 옮길 수 있을지라도, 자선을 행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요,

396

우리나라는 아직 “복지 국가”의 건설을 실현시키지 못했다. 복지국가의 건설은 맨 처음의 원칙으로 되돌아가서

다시금 짚어볼 때 가능할 것이다.

397 영국은 1604년 교회성직자임명법을 제정하며 로마 카톨릭의 지배로부터 독립하였다. 로마 카톨릭 교회의 지배를

받아온 영국이 로마 교황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자주 독립을 욕구를 실현시키는 과정은 매우 험난했다. 로마 카톨릭

에 대항하여 극단적인 대립과 극심한 내전의 과정을 겪어야 했는데 ‘의사당 폭파 기도 Gunpowder Plot 사건’(1605년

11월5일)이 잘 알려진 역사적 사건이다. 7년간의 고된 작업 끝에 1611년에 출간된 킹제임스성경은 이후 4백년 간

영어 영문학의 발전에 놀라울 정도로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킹제임스성경은 라틴 언어가 아니라 일반 민중 언어

인 영어로 번역한 성경이었다. 원전에 기초하여 새롭게 번역한 킹제임스성경 번역의 원래 취지는 그 때까지 혼재해

사용되어 오던 여러 본의 성경 번역물에서 나타난 성경 해석의 다툼을 해소하고자 하는 통합의 사고에 있었다. 킹제

임스성경에서 구약은 유태인 언어인 히브리 원어를, 신약은 그리스어 텍스트를 번역 대본으로 삼았다.

116

3 가난한 사람들을 먹일 만큼 많은 재산을 내가 축적해 놓았을지라도, 또 내 몸을 불사르는 희생을 감수

할지라도, 자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이다.

4 자선은 오래 가고, 공감하는 것이며, 자선은 더 가지려고 시기하는 것이 아니며, 자선은 뽐내고 자랑하

는 것도 아니며, 자선은 부풀리는 것도 아니다.

5 관례에 어긋나게 행하지 말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말며, 쉽사리 즉흥적으로 나서지 말며, 악의적인

의도를 품지 말라.

6 나쁜 짓을 저지를 생각조차 하지 말 것이며, 다만 진리를 추구하라.

7 모든 것을 주며, 모든 것을 진실로 믿으며, 모든 것을 확신하며, 모든 것을 참고 헤쳐나가야 한다.

8 자선은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다. 반면 신의 계시자라고 떠드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실패하기 마련

이다. 그냥 말로만 떠드는 것은 곧 그치고 만다. 자신이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것

도 곧 사라지고 만다.

9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부분적인 것이요, 우리가 예견하는 것도 부분적인 것 밖에 아니다.

10 그러나 완전한 전체가 되면, 그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없어 지니라.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깨달으며, 아이처럼 생각하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

어서는, 아이처럼 유치한 것들은 내가 모두 버렸노라.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통하여, 희미하게 보나, 다음에는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보게 되리라. 내가 지금

은 부분적으로 알고 있으나 다음에는 내가 모든 것을 알게 될 터이고 또한 내가 이해하였다는 것을 다들

알게 될 것이다.

13 따라서 믿음 faith, 약속 hope, 자선 charity, 이 세가지는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이중에서도 가장 중

요한 것은 자선이다.

“믿음, 소망, 사랑 faith, hope, charity” 이들 단어를 영어 사전을 찾아보면 3 단어 모두 “trust”라는 뜻을 가

지고 있다. “믿음, 소망, 사랑”의 구절은 성경본문 중에서도 가장 잘 알려진 구절의 하나이다. 여기서 믿

음은 loyalty 즉 기독교 교리에 순종한다는 뜻이고, 소망은 내가 미래에 기부하겠다는 의사가 있는데 그렇

게 할 것을 분명하게 약속한다는 뜻의 “약속, 확신, 자신감 confidence”을 말하며, “사랑”은 “아가페”를 말하

는데, 킹제임스성경에서는 아가페란 단어를 “채리티 charity”로 번역했다. (우리나라 성경 번역본은 19세

기 후반에 들어서 이루어졌으므로 새로운 번역에 따라 “자선”이라는 말 대신 “사랑”이라는 말로 번역하고

있다). “실천 없는 사랑은 무의미하다”는 의미에서 킹제임스성경에서 그리스어 “아가페”를 “Charity”라고

번역한 것이라면 그것은 적절하고 타당하였다고 여긴다. 더욱이 17세기 당시에는 교회가 구제를 전담하

던 시기임을 고려하면 분명하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양심이라고 부르기 어렵거니와 외부적으로, 결과적으로, 구체적으로 나타나지 않는

선의는 큰 의미가 없을 것이다. 누구든지 꿈 속에서 선을 행하지 않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며 또 반

대로 악몽을 꾸고서 악몽대로 행동하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의미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 큰 믿음을 가졌고, 또 그 믿음에 따라서 미래에 자선을 행하고 재산을 기부

할 것을 굳게 맹세하고 약속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즉 그런 믿음과 약속도 중요하지만 지금 바로 ‘자선’을

실천하는 것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지금 바로 ‘행동하는 양심’이 자선인 것이고, 이

자선을 실천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 된다.

자선의 개념이 무엇인지에 대해 영미법상의 트러스트 Trust 법제도와 비교하여 보면 더욱 구체적이고 쉽

게 이해가 되리라. 영미법상의 트러스트의 구조와 원리를 이해할 수 있다면 이 성경 구절이 더욱 쉽게

이해되리라. 기부가 법적 효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미래에 자기 재산을 공공 목적의 자선 단체에 기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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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겠다는 ‘기부 의사’와 목적을 문서로써 표시하고, 해당 재산을 내놓으면 기부자하고는 상관없이 자선 단

체가 독립적으로 유지해 나갈 수 있는데 이런 구조가 트러스트 제도다. 트러스트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는 법제도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트러스트는 표면만을 보고서는 트러스트를 움직이는 내막을 자세하

게 알기 어려운 이중의 법체계를 갖고 있다. 트러스트는 등기상의 명의와 실질적인 소유자가 다르게 나

타날 수 있다. 개념을 영어를 써서 반복하면, 트러스트(신탁)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신탁자 기부 의사

intention, 기부 대상의 신탁 재산 특정 gift, certainty of subject matter, 신탁 수혜자 certainty of objects의 특정

이렇게 최소한 3가지 조건이 존재해야 한다. Knight v Knight 49 ER 58 (1840). 하지만 일단 기부 재산부터

먼저 내놓으면 다른 2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아도 법적으로 신탁이 설정될 수 있다. 법원은 되도록이면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이루게 해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would rather than not that a will's provisions should fail").

가장 중요한 부분인 기부 재산을 공공목적으로 내놓았으면 바로 그 순간부터 법은 자선의 실체를 인정하

고 보호해 준다. 트러스트 법제에서는 형식적으로 갖추어야 할 직인이 누락되었다는 등의 형식적인 흠결

을 이유로 신탁의 설정을 부정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또 기부자가 기부약정을 통해 기부목적이나 사용방

법을 지정했다면 그런 경우 기부금 운영자가 기부자의 의도를 소홀히 하는 경우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영미법 국가는 교회, 회사, 국가의 운영과 구조는 기본적으로 트러스트이고 따라서 트러스트 법제에 내재

된 기초적인 형평법 법원칙에 의해서 운용 유지된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영미법상의 트러스트 Trust 법

제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금융상품의 상사 트러스트 제도가 도입되어 있긴 하지만 그것은 영미법상의

일반법상의 트러스트 법제하고는 차이가 있다) 자선과 트러스트 관계를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영미국인

들의 자선단체에 기부하는 전통이 이어져 내려 오고 있는 배경에는 트러스트 법 제도가 확립되어 있기 때

문일 것이다. 교회는 거의 국가에 버금갈 정도로 거대한 재산 규모를 가진 실체이었고, (교회가 곧 국가

이었던 이유는 교회가 형평법원의 시초였다는 것에서 짐작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회사’가 가장 큰

재산을 가진 실체이다. 영미법 국가에서는 대학과 학교의 모든 교육 기관 (공립이든 사립이든)은 그 구조

와 운영이 기본적으로 트러스트 법 제도에 따른다. 작은 개인 회사일지라도 회사를 운영하는 관리자는

트러스트 법원칙에 따른다. 작은 공동체 운영이든 국가 정책 결정자이든 이들은 트러스트의 법제에 의해

통제된다. 트러스트를 세우고 운용하고 유지해 나가는 실체는 변호사들이다. 교회, 회사, 국가를 이어주

는 실체적 손발이 변호사(법원)인 것이다. 영미국을 “사법부 통치 국가”라고 말하는 근원이 이런 구조에

서 연유한다. 재산이 힘과 권위를 가져다 준다는 말이 변함없는 진실이라면, 변호사들(법원)이 힘과 권위

를 가진 실체라는 결론은 자연스런 도출이다. 이와 같이 영미판례법국가는 변호사들이 중심이 되어 국가

와 사회가 움직여지고 있으므로 영미법은 국가와 개인이 정반합의 관계를 갖고 서로 발전적 관계에 놓여

있다. 영미법상의 변호사들은 대륙법국가의 국가공무원의 신분이 아니지만 이들은 국가 공무 (예컨대 등

기 업무 수행이 대표적이다-우리나라는 등기업무를 국가공무원이 법원조직이 담당하고 있다)를 수행하는

위치에 있다. 이는 대륙법의 국가의 개인의 일체관계하고 대조 대비되고, 이런 구조적 장점에 의해서 세

계초강대국을 건설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 본다.

“믿음, 소망, 사랑”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는 말은 우리에게 매우 익숙하지만 “믿음, 소망, 사랑”을 추상적

으로 이해한다면 우리들이 성경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

람이 자기 재산을 내 놓을 리는 만무할 테고 따라서 자기가 죽으면 당연히 교회 재산이 된다는 기독교의

교리와 믿음으로도 충분할 수 있겠지만 또 미래 시점에 기부하겠다는 그런 약속의 말도 믿을 수 있겠지만

뭐니뭐니해도 우선 지금 즉시 기부하는 자선의 실천이야말로 가장 확실하다는 말이다. 여기서 국가는 교

회는 일치되는 개념이다. 영미국의 기독교 국가는 교회와 국가가 일치한다. 물론 미국은 영국과는 달리

미국독립 전쟁을 통해서 국가와 종교는 분리된다고 헌법상 선언하고 있지만 공공의 이익을 위한 트러스트

법제에 의해서 국가와 공익 추구의 종교는 일치된다.

118

“믿음, 소망, 사랑” 표현에서 “믿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을 변치 않는 법칙으로 작동한다는 것을 믿는다는

것 즉 기독교의 “교의 교리”를 믿는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글로 옮긴 성경과 동일하

다. 따라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이 쓰여진 성경의 가르침을 믿는다는 의미이다. “소망”은 미래에 기부

하겠다는 의사 표시를 실천하겠다는 “약속”을 말한다. 소망은 미래의 기부 약속을 꼭 지키겠다는 신뢰이

고 그 신뢰를 충분히 지킬 수 있다는 자신감 confidence을 나타낸다. “사랑”은 사랑하는 내적 마음의 추

상적인 상태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가진 재산을 지금 바로 내놓는 기부행위를 지금 실천하

는 “자선”을 의미한다.

이렇게 “믿음, 소망, 사랑”을 이해한다면 “믿음, 소망, 사랑”은 “과거, 미래, 현재”라는 말로 서로 바꿔 쓸

수 있을 것이다. 성경은 과거 (성경은 과거에 기록됐다)에 해당하고, 약속은 다음에 실천하겠다는 다짐이

므로 미래에 해당하고, 사랑은 지금 바로 실천한다는 현재의 의미를 갖는다고 이해된다. “과거, 미래, 현

재” 이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누구든지 “현재”라고 대답할 것이라는 추측은 별도의 추가 논증을 필요로

하지 않고도 수긍할 것이다. 위와 같이 근거들로 보면 “믿음, 약속, 자선”으로 성경의 말씀을 번역하는 것

은 자연스런 결론이 된다. “믿음 약속 자선” 이 3 가지가 모두 필요하고 또 중요하지만 그 중에서도 지금

현재 바로 행동하고 실천하는 “자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킹제임스성경의 번역자들은

“faith, hope, charity”으로 번역했을 것 같다. 이를 우리말로 보다 충실하게 번역한다면 “믿음, 약속, 자선”이

되지 않을까? 기독교의 복음과 사명을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했던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은 하나님의 말

씀인 성경의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텍스트를 충실하게 따라서 편견 없이 번역했다는 사실은 모두가 동의하

고 있다. 그렇게 올바르게 성경을 번역한 번역의 위대한 힘에 의해서 킹제임스성경은 400년 이상을 전세

계적으로 영향을 떨쳐 온 것이 아닐까. 킹제임스성경의 “faith, hope, charity”의 한글 번역을 “믿음, 약속,

자선”으로 번역한다면 “자선”과 기부를 실천하는 새로운 역사와 문화를 창조해 나가는데 도움이 될 것 같

다. “사랑”이라는 말의 쓰임새가 산업사회와 후기 산업사회를 거치면서 현재 너무 “진부해져” “사랑”의 본

래적 의미가 많이 퇴색되고 변질되었다는 현실 인식에서, “믿음 약속 자선”으로 새롭게 번역하여 원래의

의미로 되돌아가자 Back to basics398는 제안을 하고 싶다.

킹제임스성경 번역자가 추상적인 사랑이라는 말 대신에 구체적인 자선을 지금 행동으로 옮기는 것으로 번

역한 것은 문맥상이나 법적이나 기독교 교의적으로 완전하게 일치하게 됨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400

년 동안 영미국인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킹제임스성경에서 (the word is used for a disposition to give to the

poor) “charity”로 번역하였다는 그 의미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

1 내가 일반인들이 쓰는 언어와 천사들이 쓰는 언어로 말할지라도, 자선399을 행하지 않는다면, 단지 변죽

만 울리는 징과 꽹과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1 Though I speak with the tongues of men and of angels, and have not charity, I am become [as] sounding brass, or a

tinkling cymbal.

2 내가 미래를 예견하는 능력을 가졌고, 모든 신비를 꿰뚫고, 모든 지식을 갖추었다 해도, 또 완전한 믿음

을 가져서 태산을 옮길 수 있을지라도, 자선을 행하지 않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닐 것이요,

2 And though I have [the gift of] prophecy, and understand all mysteries, and all knowledge; and though I have all faith,

398 A return to previously held values of decency.”

399 “믿음 소망 사랑”의 유명한 성경 구절에서 ‘사랑’의 그리스어 텍스트는 ‘agape’이고, 이를 킹제임스성경은 ‘charity’라

고 번역했다. 에드워즈는 ‘charity’를 ‘love’로 바꾸는 것이 보다 낫다고 제안하였다. “But, then, the word “charity,” as used

in the New Testament, is of much more extensive signification than as it is used generally in common discourse. What persons very

often mean by “charity,” in their ordinary conversation, is a disposition to hope and think the best of others, and to put a good

construction on their words and behavior. Sometimes the word is used for a disposition to give to the poor.”

119

so that I could remove mountains, and have not charity, I am nothing.

3 가난한 사람들을 먹여 살릴 만큼 많은 재산을 내가 축적해 놓았을지라도,400 또 내 몸을 불사르는 희생

을 감수하더라도, 자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런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3 And though I bestow all my goods to feed [the poor], and though I give my body to be burned, and have not charity, it

profiteth me nothing.

4 자선은 오래 가고, 공감하는 것이며,401 자선은 더 가지려고 시기하는 것이 아니며, 자선은 뽐내고 자랑

하는 것도 아니며, 자선은 부풀리는 것도 아닙니다.

4 Charity suffereth long, [and] is kind; charity envieth not; charity vaunteth not itself, is not puffed up,

5 관례에 어긋나게 행하지 말며, 자기 이익을 추구하지 말며, 쉽사리 즉흥적으로 나서지 말며, 악의적인

의도를 품지 마십시오.

5 Doth not behave itself unseemly, seeketh not her own, is not easily provoked, thinketh no evil;

6 나쁜 짓을 저지를 생각조차 하지 말 것이며, 다만 진리를 추구하십시오.402

400 “가난한 사람들을 먹일 만큼 많은 재산을 내가 축적해 놓았을지라도” 이 구절은 우리나라 성경번역에서는 거의 일

률적으로 “내가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는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내가 모든 재산

을 바쳐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이 내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하

느니라.”,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여기서 영어 번역 “bestow all my goods to feed” 중 ‘bestow’라는 단어를 ‘주다’는 뜻으

로만 알고 있기 때문에 “내 모든 소유를 나누어줄지라도”라고 번역하는 것 같다. 하지만 ‘bestow’라는 단어를 영어 사

전에 찾아보면 첫 번째 “to present as a gift or an honor; confer”라는 뜻만이 있는 것이 아니고 또한 “축적하다, 쌓아놓고

저장하다”는 뜻의 “to store, or house”의 의미가 있다. 앞의 ‘bestow’를 ‘준다’고 해석하면 뒤에 나오는 “자선(사랑)이 없

으면 내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의미와의 연결이 매끄럽지 못하다. ‘가난한 자’를 ‘먹여 살리다’라고 말할 때

‘가난한 자’ 부분의 단어는 그리스어 원문에 나오지 않는 것을 킹제임스성경 번역자들이 문맥이 통하도록 추가한 것이

고, 이런 사실을 그 해당 부분의 단어를 이탤릭체로 표기해 놓았기 때문에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베풀 만큼 많은 재산을 모았다고 해도 직접 ‘자선’을 행하지 않으면 그가 무슨 이익을 받을 수 있겠는가?-이런 해석이

보다 자연스럽고 타당하다.

401 우리나라 성경 번역은 일률적으로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며”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long’은

‘오래 간다’,’지속’의 의미이다. 교회는 개인 재산이 아니다. 교회는 신탁 재산이다. 신탁재산(트러스트)은 몇 백년

을 지나 영구히 지속되어 내려왔다. 신탁은 한 사람의 목숨처럼 일시적이고 유한적인 것이 아니라 일시성의 한계를

뛰어 넘는다. ‘Kind’를 흔히 ‘친절하다’고 번역하는데 ‘kind’의 의미는 남이 나의 잘못을 꾸짖고 훈계할 때 그것을 감

사하다고 받아들이는 태도를 의미하는 뜻을 갖고 있다. 교육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나의 잘못을 깨우쳐 줄 때

그래서 내가 나의 잘못을 시정하는 그 결과에 있다. 남에게 친절하게 대한다는 말은 남이 나의 잘못을 꾸짖을 때

내가 화내지 않고 기꺼이 받아들이는 관용적 태도를 말한다. 우리는 교육을 통해서 남에게 친절을 베풀고 또한 그

러한 남의 친절에 공감하여 그대로 받아들이는 열린 마음을 가지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이런 열린 태도를 사도 바

울은 가르쳤다. ‘kind’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다른 성경 구절을 보면 ‘kind’의 의미가 무엇을 말하는지 더욱 확실하게

이해가 된다. “Let the righteous smite me; it shall be a kindness: and let him reprove me; it shall be an excellent oil, which shall not

break my head: for yet my prayer also shall be in their calamities. 의로운 사람이 내가 뉘우치도록 책망하면 그것은 기꺼이

받아들여야 할 것입니다. 그가 나를 비판하고 꾸짖으면 그것은 내 머리 속의 윤활유가 되는 것이지, 결코 내 머리

를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아무튼 내가 또 원하는 것은 나쁜 사람들은 재난을 당하고야 만다는 사실이니

그것을 보여 주길 바랍니다.” (시편 141:5). “현대인의 성경” 번역은 다음과 같다: “의로운 자들이 나를 치고 책망할지

라도 내가 그것을 좋게 여기며 거절하지 않을 것이나 악인들의 악한 행위는 내가 대적하고 항상 기도하리라.“ “공동

번역 성경”은 “의인에게 매를 맞고, 그 사랑의 벌을 받게 하소서. 나의 머리 위에 악인들이 기름 바르지 못하게 하소

서. 나는 언제나 그들의 악행을 반대하여 기도 드립니다.” 이 성경구절의 ‘calamities’ 단어는 “바틀비 스토리” 맨 마

지막 두 번째 구절에 등장한다. 다시 강조하지만 이 ‘Kind’라는 단어는 나의 잘못을 책망하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이

는 태도를 뜻한다. 이렇게 ‘kind’의 의미는 ‘관용’과 ‘오픈 마인드’의 의미하고 맞닿는다.

402 우리나라 성경 번역자들은 거의가 일률적으로 “불법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진리를 기뻐하며”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그것은 ‘rejoice’ 단어를 ‘기뻐하다’는 뜻으로만 받아들이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rejoice’를 영어 사전에 찾아보면

“To have or possess“의 뜻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번역자들은 ‘가지고 있다’라는 뜻을 파악하지 못했기 때

120

6 Rejoiceth not in iniquity, but rejoiceth in the truth;

7 모든 것을 주며, 모든 것을 진실로 믿으며, 모든 것을 확신하며, 모든 것을 참고 헤쳐나가야 합니다.

7 Beareth all things, believeth all things, hopeth all things, endureth all things.

8 자선은 결코 실패하는 법이 없습니다.403 반면 신의 계시자라고 떠드는 사람에게 맡기는 것은 실패하기

마련입니다. 그냥 말로만 떠드는 것은 곧 그치고 맙니다. 자신이 알고 있으면 충분하다고 말할지 모르

지만 그것도 곧 사라지고 맙니다.

8 Charity never faileth: but whether [there be] prophecies, they shall fail; whether [there be] tongues, they shall cease;

whether [there be] knowledge, it shall vanish away.

9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부분적인 것이요, 우리가 예견하는 것도 부분적인 것 밖에 되지 않습니다.

9 For we know in part, and we prophesy in part.

10 그러나 완전한 전체가 되면, 그때에는 부분적인 것은 없어 지게 됩니다.

10 But when that which is perfect is come, then that which is in part shall be done away.404

11 내가 아이였을 때에는, 아이처럼 말하고, 아이처럼 깨달으며, 아이처럼 생각하였다. 하지만 어른이 되

어서는, 아이처럼 유치한 것들은 내가 모두 버렸습니다.

11 When I was a child, I spake as a child, I understood as a child, I thought as a child: but when I became a man, I put

away childish things.

12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통하여, 희미하게 보나, 다음에는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보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으나 다음에는 모든 것을 알게 될 터이고 또 내가 이해한대로 모두가 알게

될 것입니다.405

12 For now we see through a glass, darkly; but then face to face: now I know in part; but then shall I know even as also I

am known.

13 따라서 믿음, 약속, 자선, 이 세가지는 모두 필요합니다. 하지만 이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자선입

니다.

13 And now abideth faith, hope, charity, these three; but the greatest of these [is] charity.

문에 그와 같이 번역한 것 같다. 특히 ‘rejoice in’이라고 분명히 ‘in’이 붙어 있는데도 그저 ‘기뻐하다’로 단순하게 번역

하는 것 같다. 킹제임스성경의 번역대로 ‘rejoice in’은 ‘가지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킹제임스성경 번역대로 “기꺼이

진리를 추구하되, 나쁜 짓을 행여 마음 속에 품지도 말라”는 뜻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403 자선은 영원하다. 실패하는 법도 없다. 다시 말해 재산을 일단 내놓으면 공공목적으로 쓰여지지 결코 사적으로

쓰여지는 경우란 있을 수가 없다. 신탁(트러스트)이 성립하기 위해서는 신탁자 ‘기부 의사 intention’, ‘기부 대상의 신

탁 재산 특정 gift’, ‘신탁 수혜자 certainty of objects의 특정’ 이렇게 최소한 3가지 조건이 존재해야 한다. 하지만 일단

‘재산’부터 먼저 내놓으면 다른 2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법적으로 신탁 설정이 거부되는 경우란 거의

없다. 법원은 되도록이면 좋은 일을 하는 것을 이루게 해주려고 하기 때문이다 ("would rather than not that a will's

provisions should fail"). 가장 중요한 재산이 공공목적으로 내놓았으면 그 순간 법은 charity trust을 인정하고 보호해 준

다. 반면 트러스트 제도가 없는 대륙법나라들에서는 형식적인 요건의 흠결을 이유로 예컨대 직인 누락이라든가, 문

서로 증명이 안된다든가 하든 이유 등으로 신탁의 설정을 부정하는 경우가 간혹 나타난다.

404 신탁 trust은 부분적이라도 해석을 통해서 법을 통해서 완전하게 만들어진다. 이것이 형평법의 기초이다. 설령

부분적으로 부족하더라고 해도 전체적으로 평가해서 전체를 위해서 부분 부분을 이어서 완전하게 만들어 내어질 수

있다. 부분 부분이 모여서 전체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개체가 모여서 전체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전체에서 개인을

내동댕이쳐 내는 것이 아니라, 개인 하나 하나가 모여서 국가 공동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벌집처럼 하나의 벌꿀

은 각자의 영역이 있고 각자의 할 일이 있어 자신들은 자신들 부분밖에 이해할 수 없을지라도 국가공동체 전체적으

로 하나님같이 하늘에서 내려다 보면 전체를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더 크다 The whole

is greater than the sum of its parts.” 개인은 공동체 전체에서 조망할 때 비로소 각자의 이익과 각자의 몫을 올바르게 이

해할 수 있을 것이다.

405 카톨릭 교회에서 고해성사할 때 자신의 몸을 숨긴다. 희미한 창문 밖으로 형체만 보여서 상대방이 누구인지 정확

하게는 모른다. 마찬가지로 트러스트의 액면 그대로, 표면 위의 사항으로는 트러스트를 움직이는 배후가 누구인지

정확히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얼굴을 직접 맞대고 이야기하면 더욱 확실하게 이해가 될 것이다. 트러스트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동하므로 누가 트러스트를 움직이는 실체인지 잘 알기 어려운 경우가 흔하다.

121

4.3. 왜 미국의 최고 갑부들은 가진 재산을 기부하고 자선을 행하는 걸까?

“보이지 않는 손”-아담 스미스가 말하는 위대한 양심의 힘

월 스트리트는 자선과 교육 사업을 통해서 끊임없이 부가 증대되는 역동성을 보여준다. 세계 최고 갑부

인 빌 게이츠가 아프리카 기아 해방을 위해서 자선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그 동기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그것은 자기 자신의 일신의 편함을 추구해서는 결코 아닐 것이요, 자기 자신의 명예를 추구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다른 불쌍한 사람들을 보고 동정심이 넘쳐서 불현듯 자기의 모든 재산을 자선 사업에 쏟아 부은

것은 아니리라. 세계 최고의 갑부인 카네기, 버핏, 게이츠 등 수많은 월 스트리트 재산가들이 자기가 평

생 모은 모든 재산을 모두 공익 자선 사업에 선뜻 내놓은 동기가 무엇일까? 그들이 자선 사업을 펼치게

만드는 것- 그들을 움직이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아담 스미스의 통찰에 따르면, 그것은 자기

이익 추구도 아니고, 헐벗고 굶주린 사람들을 보고서 너무 마음이 아파서 동정심만으로도 부족하고, 최고

부자인 그들을 움직이게 하는 보다 강력한 힘은 이기주의 이타주의를 초월한 그 무엇에 있다.

아담 스미스에 따르면, 사람들이 지나치게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마음에 살아 있는 박애정신의 약한 불꽃 즉 인류동포에 대한 사랑인 휴머니즘이 아니라,

사람들의 행동을 불러 일으키는 데는 그보다 훨씬 강력한 동기인 인간의 내부 마음 속에 살아 있는 양심

conscience이다. 이러한 아담 스미스의 결론은 이기주의와 이타주의라는 두 개의 서로 배타적인 이분법적

구분의 함정에서 벗어나 제3의 해결 구조를 열어주는 것이 창문이고 열쇠가 된다. 아담 스미스의 인구에

회자되는 저 유명한 구절을 다시 보자. “우리가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양조장,빵집 주인의

자비심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들의 이익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It is not from the benevolence of the

butcher, the brewer, or the baker, that we expect our dinner, but from their regard to their own interest.” 하지만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의 자기애의 본성”에만 한정되는 개

념이 아니었다. 양심 또한 보이지 않는 손의 힘에 속한다. 양심에 대해 자세하게 논하고 있는 도덕감정

론 3부3장 중 간단하게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의 소극적인 감정은 거의 언제나 이처럼 야비하고 이처럼 이기적일 때, 어떻게 사람의 적극적인 천성

들은 흔히 그처럼 관대하고 그처럼 고귀할 수 있는가? 사람들이 언제나 다른 사람들에 관련된 일보다도

자기 자신에 관련된 일에 의해 훨씬 많은 영향을 받는다면, 무엇이 자선을 베푸는 사람들로 하여금 모든

경우에, 그리고 일반 사람들로 하여금 많은 경우에,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그들 자신의 이

익을 희생시키도록 촉구하는가? 자기애의 가장 강한 충동에 대항할 수 있는 것은 휴머니즘의 물렁한 힘

이 아니며, 신이 인간의 마음에 밝혀준 박애정신의 약한 불꽃도 아니다. 이러한 경우에 요구되는 것은

보다 강렬한 힘이고 보다 강제력 있는 동기이다.406 그것은 이성, 법칙, 양심, 가슴속의 살아 숨쉬는 것,

인간 내면 흉중에 있는 것, 사람의 행동을 결정짓는 최후의 판단자이고 조정자이다.407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할 때마다 사람들 내심의 가장 몰염치

406 When we are always so much more deeply affected by whatever concerns ourselves, than by whatever concerns other men; what is

it which prompts the generous, upon all occasions, and the mean upon many, to sacrifice their own interests to the greater interests of

others? It is not the soft power of humanity, it is not that feeble spark of benevolence which Nature has lighted up in the human heart,

that is thus capable of counteracting the strongest impulses of self-love. It is a stronger power, a more forcible motive, which exerts

itself upon such occasions. 407 It is reason, principle, conscience, the inhabitant of the breast, the man within, the great judge and arbiter of our conduct.

122

한 격정을 향하여 깜짝 놀랄 정도의 큰 목소리로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인 것이다. 개

인은 대중 속의 한 사람에 불과하고, 어떠한 점에 있어서도 그 속의 다른 어떠한 사람보다 나을 것이 없

으며, 사람들이 그처럼 수치를 모르고 맹목적으로 자기 자신을 다른 사람들보다 우선시킨다면, 그 사람은

마땅히 다른 사람들의 분개와 혐오와 저주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외치는 사람 말이다.408

사람들이 자기 자신들에 관련된 모든 것이 실제로는 사소한 것이라는 사실을 배우는 것은 오로지 이 중립

적인 관전자 impartial spectator로 부터이고 이 중립적인 관전자의 눈에 의해서만 자기애가 빠지기 쉬운 잘

못된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다.409

관용의 적정성과 부정의 추악성 자기 자신의 큰 이익보다 다른 사람들의 더 큰 이익을 위하여 자기 자신

의 그것을 양보하는 것의 적정성과 자기 자신의 최대의 이익을 얻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가장 사소한 이

익까지 침해하는 행위의 추악성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공평무사한 중립적인 관전자이다.410

많은 경우 사람들로 하여금 그러한 신성한 미덕을 행하도록 촉구하는 것은 사람들의 이웃에 대한 사랑도

아니고, 인류에 대한 사랑도 아니다. 그러한 경우에 통상 생기는 것은 보다 강한 사랑, 보다 강력한 애정

즉 명예스럽고 고귀한 것에 대한 사랑, 사람들 자신의 성격 속에 들어 있는 숭고함, 존엄성, 탁월성에 대

한 사랑인 것이다.411

4.4. 신중함의 가치와 보수성의 가치-아담 스미스의 견해

“자선은 불확실성이 따르는 미래의 알 수 없는 일에 대한 결정을 할 때에는 낙관주의보다 비관주의에 따

라야 하고 또 미리 조심하고 더욱 신중해야 한다는 원칙인 ‘삶의 지혜 원칙’과 ‘보수성의 원칙’에 따라 자

비를 베푸는 사람을 보호해주는 뛰어난 안전장치가 된다.” 이 견해에 대해서 좀더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4.4.1. ‘삶의 지혜의 원칙’

자선이 하나님의 신성한 명령에 해당한다든지 그런 다른 고차원적인 해석들은 차치하고서라도, 자선은 ‘삶

의 지혜의 원칙’에 따라서도 행하는 것이 옳다. 부모님 말씀은 하나님의 신성한 명령만큼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하나님 명령은 무조건 따라야 하지만 세상 지혜는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은 아니다. 부모님 말

씀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고, 성경의 이소처럼 그렇게 부모님 말씀을 거역하는 사람도 많이 존재한다.

하지만 부모님 말씀을 들어서 손해 보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경험을 통해서 대체로 다들

동의하지 않는가? 사람이 살면서 축적해온 그런 경험적 법칙에 속하고 그것을 잘 아는 사람을 현자라고

말한다. 성현의 말씀은 우리들이 듣고 따라 행하는 것은 결코 손해 보지 않는 지혜로운 원칙에 해당한다.

따라서 자선은 지혜의 원칙에 따르면 자기 자신을 보호해 주는 안전 장치에 해당하는 것이니만큼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자선이 행하는 것이 좋다. 세상 지혜의 원칙은 십계명 같은 절대적인 명령은 아니지만,

408 It is he who, whenever we are about to act so as to affect the happiness of others, calls to us, with a voice capable of astonishing the

most presumptuous of our passions, that we are but one of the multitude, in no respect better than any other in it; and that when we

prefer ourselves so shamefully and so blindly to others, we become the proper objects of resentment, abhorrence, and execration. 409 It is from him only that we learn the real littleness of ourselves, and of whatever relates to ourselves, and the natural

misrepresentations of self-love can be corrected only by the eye of this impartial spectator. 410 It is he who shows us the propriety of generosity and the deformity of injustice; the propriety of resigning the greatest interests of

our own, for the yet greater interests of others, and the deformity of doing the smallest injury to another, in order to obtain the greatest

benefit to ourselves. 411 It is not the love of our neighbour, it is not the love of mankind, which upon many occasions prompts us to the practice of those

divine virtues. It is a stronger love, a more powerful affection, which generally takes place upon such occasions; the love of what is

honourable and noble, of the grandeur, and dignity, and superiority of our own characters., TMS, III.I.47.

123

지혜의 말씀을 모아놓은 잠언이나 격언 같은 정도에 해당하는 좋은 원칙이다.

4.4.2. 신중함의 가치, 보수성의 원칙

“신중의 원칙” 또는 “보수성 Prudence의 원칙”은 아담 스미스의 “도덕감정론” 6부1편에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건강, 재산, 지위,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기울이는 신중함은 그것만으로 정말 높은 가치를 지녔

다고 보기에는 부족하고, 신중함이 그보다 더 훌륭한 가치라고 평가 받는 용기, 박애정신, 정의감과 함께

결합할 때 그 가치가 빛난다고 스미스는 말한다. 그리고 이런 모든 미덕은 자기 절제가 없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지혜롭고 분별있는 행동이 개인의 건강, 재산, 지위, 명예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아니라 이보

다 더욱 크고 고상한 목적을 계속적으로 그리고 매우 적절하게 추구하는데 나타날 때 이것을 신중함이라

고 말한다.”412

보수성의 원칙을 회계학 개념으로 설명해보자. 재무 재표 작성 기준으로 “불확실성 uncertainty”이 존재할

때에는 낙관주의보다 비관주의를 택하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이익은 예상에 의하여 인식하지 말아야 하

고, 손실에 대한 충당금의 설정은 예상될 경우 반드시 인식되어야 한다. 자산 평가는 저가로, 부채와 경

비는 고가로 평가되어야 한다. 이러한 회계 원칙은 과대 표시는 과소 표시보다 위험하다는 가정에 의하

여 정당화된다. 낙관주의에 의해서 잘되면 좋은 거고, 비관주의에 의하여 그러한 가정이 일어나지 않는

다고 해도 손해를 보지는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람의 미래 일은 누구라도 알지 못하므로 미래의 일은

불확실성과 그에 따른 위험과 리스크가 따르게 된다. 불확실성의 위험과 리스크가 존재하는 곳에서는 보

수성의 원칙이 지배하게 된다. 법이나 부모님 같은 보수주의자는 보수성의 원칙에 대개 지배당한다. 자

기 자식을 해치려고 하는 부모나 법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가정하고 일을 추진하

면 그대로 좋은 거지만 만약 비관주의적 견해가 존재하는 경우 그러한 나쁜 일이 일어나게 되면 그대로

돌이킬 수 없는 손해가 된다. “자선을 행하면 복 받는다”고 가정하고서 자선을 실현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 경우 비록 복은 받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벌은 받지 않기 때문에 (물론 자선을 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벌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파스칼의 “내기”의 확률 이론처럼 벌 받을 지 안 받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니까

미리 자선을 행하면 마음이라도 편한 것 아닌가?) 따라서 자선은 행할수록 좋은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일부 교회에서는 헌금은 하나님 명령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고차원적인 신학적 이론

은 차치하고서라도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미리 조심하라”는 이런 보수성의 원칙은 세상 경험칙상 대개

옳은 것으로 확인된다. 자선은 적선이 될지언정 결코 낭비는 될 수 없다는 측면에서도 자선은 대개 좋은

일이다.

위에서 설명한 보수성의 원칙은 변호사가 “악마의 대변인 devil’s advocate”의 역할을 담당하는 이유를 설

명해 준다.

4.4.3. 경솔함의 비싼 대가

아담 스미스는 신중함보다 경솔함이 더 위험하다는 것을 가르친다. 전쟁 영웅과 강도살인자는 똑같이 사

람을 죽이는 폭력을 행사하지만 사람들은 전쟁 영웅들에게는 갈채를 보내는 반면 강도살인자에게는 경멸

과 증오를 보내는 그 차이점이 바로 어리석음과 경솔함에 있다고 아담 스미스는 말한다. 흔히 많이 사람

들이 아담 스미스의 이 견해를 간과하는 경향이 있는데 스미스의 생각은 분명히 재음미되어야 할 것 같다.

412 Wise and judicious conduct, when directed to greater and nobler purposes than the care of the health, the fortune, the rank and

reputation of the individual, is frequently and very properly called prudence. (TMS, VI.1.16.)

124

해당 구절을 번역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들은 위대한 정복자들의 폭력과 불의한 행동을 보고는 흔히 어리석은 경이와 찬탄을 하게 되지만, 좀

도둑이나 강도 살인자들의 폭력과 불의는 언제나 경멸과 증오와 두려움의 대상이 된다. 전자는 후자보다

도 수백 배나 유해하고 파괴적이라고 하더라도 일단 성공하기만 하면 가장 영웅적인 대담성을 가진 업적

으로 간주되곤 한다. 후자는 언제나 인류에게 있어서 가장 천박하고 무가치한 범죄일뿐만 아니라 어리석

은 행위로 간주되며 증오와 혐오의 대상이 된다. 전자의 불의한 행위는 적어도 후자의 불의만큼 크다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러나 전자의 어리석음과 경솔함은 후자의 그것들만큼 크지 않다.413

사악하고 무가치한 재주꾼들은 그들이 마땅히 받아야 할 것보다 더 많은 신임을 받으면서 세상을 활보하

고 있다. 사악하고 무가치한 바보들은 언제나 모든 인간들 중에서 가장 큰 경멸의 대상이 될 뿐 아니라

가장 큰 증오의 대상이 되고 만다. 신중함이 다른 미덕들과 결합하면 가장 고상한 성품을 구성하는 것처

럼, 경솔함이 다른 악덕과 결합하면 모든 성품 중에서 가장 사악한 성품을 차지한다.414

4.5. 동기 motive의 중요성

“사람들은 질투심 때문에, 또한 노여움 때문에, 또한 증오 때문에, 또한 이기심 때문에, 또한 영적으로 교

만한 마음 때문에 살인죄를 저질러왔다. 하지만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극악무도한 살인죄를 저질렀다는

말은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다. 그렇다면, 다른 고상한 동기를 찾을 수 없다면, 단순히 자기 이익을 위해

서라도 모든 인간은, 특히 성질 급한 사람은 사랑과 박애정신을 바로 실천해야 할 것이다.” 멜빌은 이와

같이 설명하였는데 이러한 견해는 토마스 홉스의 주장이기도 하다.

동기 motive는 to induce a certain action 어떤 행동을 낳은 원천을 말한다. “원인 없는 결과 없다”는 자연

법칙에서 동기는 원인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범죄 동기는 수사관의 수사방향이나 변호인의 무죄

입증에 또는 검사의 유죄입증에 중요한 단서로 작용하기도 하고 판사의 선고형량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동기는 형법상 요구되는 의도 intent, 기도(선동죄나 무고죄에는 이러한 기도가 입증되어야 한다)와는 약간

씩 다른 차이가 있다. 범죄 행위를 입증할 시 대개는 행동을 일으킨 동기를 입증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일반 민사 사건이나 대부분의 범죄는 범죄의 행동에서 의도가 드러나기 때문에 별도로 무슨 목적으로 또

는 어떤 동기에 의해서 범죄 행위를 저질렀는지 까지를 추궁할 필요는 없다. 과실치사나 부주의에 의한

재난재해로 살인이 일어나기도 한다. 살인죄에서 동기를 찾는 이유는 살인죄는 자주 일어나는 것도 아니

고 또 인간으로서 가장 최고의 범죄이기 때문에 사회 전체적으로 가장 중요한 문제에 해당하기 때문에 살

인 사건의 경우 (과학에서 원자를 발견해 들어가듯이) 그 배경과 동기까지 거슬려 찾아내고자 하는 것이

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 예방적인 처방전을 발견해 내기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지금껏 살인에는 수많

은 동기를 찾을 수 있고 그에 따른 여러 범주로-생물학적 사회적 개인적 범주로 나눠서 잘 정리해 놓고

있다. 사람의 행위는 거의 비슷하기 때문에 이러한 범주에 거의 들어가게 되고 따라서 살인 동기는 거의

413 The violence and injustice of great conquerors are often regarded with foolish wonder and admiration; those of petty thieves,

robbers, and murderers, with contempt, hatred, and even horror upon all occasions. The former, though they are a hundred times more

mischievous and destructive, yet when successful, they often pass for deeds of the most heroic magnanimity. The latter are always

viewed with hatred and aversion, as the follies, as well as the crimes, of the lowest and most worthless of mankind. The injustice of the

former is certainly, at least, as great as that of the latter; but the folly and imprudence are not near so great. A wicked and worthless man

of parts often goes through the world with much more credit than he deserves. A wicked and worthless fool appears always, of all

mortals, the most hateful, as well as the most contemptible. As prudence combined with other virtues, constitutes the noblest; so

imprudence combined with other vices, constitutes the vilest of all characters. 414 As prudence combined with other virtues, constitutes the noblest; so imprudence combined with other vices, constitutes the vilest of

all characters.

125

찾아질 수 있다. 하지만 살인이 비난 받는 이유는 살인의 동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살인 행위가 일어났다는 행위 (그로 인해 상대방이 죽었다) 그 자체에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살

인 동기의 존재 여부에 따라 고의적 살인 murder과 과실치사 manslaughter로 구분되고 이에 따라 비난과

처벌의 강도가 달리 작용된다.

126

5. 왜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고 금기 taboo시 하는가?

5.1. 죽음의 의미

사람들은 죽음이란 숨겨져야 할 해골처럼 여기고 죽음이란 단어를 꺼내는 것조차 회피하려는 습성이 있다.

일본인들이 죽을 사자 발음과 같다고 해서 빌딩 층수에 4층을 표시하지 않는다는 미신적 습성은 아마도

죽음의 공포부터 도피하려는 심정에 기인하는 것 같다. 죽음이란 결코 피할 수 없는 것으로 인식하고서

되도록이면 그런 죽음에 대한 어떤 암시라도 피하고픈 사람의 감정이 이성적인 대책보다 앞서기 때문이리

라. 대개 사람들이 유언장을 미리 쓰려고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유언장을 준비하는 행동이 괜히 죽음

을 앞당기는 불길한 징조는 아닌지 그렇게 미신적 생각이 들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사람들은 밤에 꾸는

꿈이 자신의 행위하고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악몽을 꾸고 나면 왠지 몸이 움츠려 드는

것과 같이, 흔히 공포의 감정은 이성적인 대처를 방해한다.

대공황

자본주의 경제에서 피할 수 없는 가장 큰 두 가지 약점은 공황 Depression과 빈부격차의 문제라고 말한

다. 경제에서 공황은 사람의 죽음에 비견된다. 유명한 경제학자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가 자본주의 경

제의 본질적 요소라고 파악한 바와 같이 종말은 발전을 위한 필연적인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졸업은

어떤 단계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을 의미한다는 뜻에서 졸업식을 영어로 commencement라고 말하

는데 이 단어는 “시작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발전과 창조가 죽음을 통해서 나온다는 측면에서 경제적

의미에서 죽음의 과정에 해당하는 공황에 대해서 분석하는 것은 타당하고 또 그것을 두려워할 어떤 특별

한 이유를 찾아보기 어렵다. 경제학에서 다루어야 할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공황”이 들어가야 당연하

고 또 학교에서 깊이 배우고 가르쳐야 함이 마땅하다. 하지만 학교(대학에서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에서

는 공황에 대해 크게 다르지 않고 있다. 하지만 회피한다고 해서 공황의 문제가 저절로 해결된 것은 아

니었다. 이 시대 가장 성공한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이 교과서로 삼고 있는 “증권 분석 Security Analysis”

이란 책도 초판 (1934년)이 나온 후 약 70년이 지난 후에야 “대공황 Great Depression”에 대한 설명을 추

가하였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공황을 통해 무언가를 배웠다면, 무익한 토론과 논

쟁으로 결정을 늦추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는 않을 것이다.”

“증권 분석”의 책에서 다음과 같은 호레이쇼의 시 한 구절을 인용하고 있다. “현재 쓰러진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다시 일어설 것이며, 현재 명성을 떨치고 있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이 사라질 것이다.415

투키디데스가 밝힌 대로, 흥망성쇠는 인간 역사에서 반복되는 사실적 법칙이고 따라서 인간의 자만심을

경계하라는 의미를 주는 것 같다.

자연과 부활

우리 사람들은 성경에서 말하는 대로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다.416 죽어서 자연으로 되돌아

가지 못하는 경우란 결코 없다. 사람은 자연에서 태어나 자연에서 살다가 자연으로 돌아간다. 그렇다면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새싹은 씨에서 솟아나는데 농부가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는 먼

저 농토를 갈아 엎어야 한다. 새싹이 새 생명을 잉태하고 따라서 그렇게 신성하다면 묶은 땅을 새로이

갈아 엎는 것 또한 신성하다는 의미가 있지 않는가? 논밭을 갈아 엎는 것은 씨앗을 뿌리고 새싹을 틔우

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다.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잉태한다. 새로운 삶을 부활이라고

415 “Many shall be restored that now are fallen, and many shall fall that now are in honor.” 416 “All go to the same place; all come from dust, and to dust all return.”

127

말한다. 부활은 생명의 법칙인 것이다.

죽음이 가르쳐 주는 의미

중요한 것은 우리는 어떻게 해서 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을 지에 있다. 같은 실수를 막기 위해서는

과거의 잘못을 깨우치는 것이 우선적으로 요구된다. 뉴튼과 아인슈타인의 물리학 법칙을 알지 못하고선

결코 우주여행을 할 수 없듯이 지식과 인식 없이는 새로운 발전을 이룰 수가 없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마지막 문장은, “삶의 임무를 띠고 나선, 이런 편지들이 죽음으로 질주한 것이다. 아,

바틀비! 아, 인간이여!”417 이 구절의 의미는 한자 성어 만시지탄 晩時之歎이 어울린다. 그런데 여기서 주

의할 점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만시지탄의 의미가 “이미 일을 그르친 뒤에는 뉘우쳐도 소용이 없음”이

강조되고, 또 “이미 늦어서 소용이 없다”는 “사후약방문 死後藥方文”의 표현과 같은 의미로 동의어로 쓰이

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말의 원래적 의미는 소용이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로써가 아니라, "'토끼를 보

고 나서 사냥개를 불러도 늦지 않고, 양이 달아난 뒤에 우리를 고쳐도 늦지 않다 見兎而顧犬 未爲晩也 亡

羊而補牢 未爲遲也”이라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인 표현이었다. 이중부정의 문장표현 구조는 강한 긍정을

의미한다.

“아, 바틀비! 아, 인간이여!”이 문장을 통해, 독자들은 대개 만시자탄의 의미를 되새길 것 같다. 영미국인

에게 “인간적인 humanity”이란 말의 의미는 “뒤늦게 뉘우쳐도 이미 소용이 없다”는 “부정적인” 의미가 아

니라,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는 뜻에서처럼 뒷문장의 “고친다”는 개혁의 두 번째 뜻에 보다 강조점을

두는 “긍정적인” 의미로 쓰여진다는 점이다. 영어 구문 표현 중에 우리말 구조에는 흔한 것이 아닌 이중

부정문의 예를 들어보자. 영어 시험 문제 중에 단골로 등장하는 문장, “We cannot overemphasize the

importance of reading. 독서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I have never experienced anything so

painful in my life as A’s death. 나는 A의 죽음만큼 고통스러운 일을 경험해보지 못했다.” “바틀비 스토리”에

서 나오는 문장은, “Before, I had never experienced aught but a not-unpleasing sadness. 이제껏 나는 아름다운 슬

픔밖에 경험해 본 적이 없다.” 이와 같은 예에서 나타나는 “cannot ~~ too ~~ 아무리 ~~하여도 지나치지

않다”의 영어 구문 표현은 이중부정을 통해서 긍정을 강조하는 의미를 갖는다. 영미인의 사고구조로는

아무리 늦어도 결코 늦은 때가 아닌 것으로 이해된다. 우리 속담과 같이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

이 있으며”, “정말 종말이 오기 전까지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It ain't over till it's over.”의 표현이 그와 같

은 동일한 의미를 갖고 있다. 문제가 있다는 것, 그 문제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문제

를 해결해내는 capable of solving the problem 능력과 그 결과에 있다고 본다.

월 스트리트에서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의미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필연주의 철학을 강조한 프리스틀

리, 뉴튼, 아담 스미스 등 자연법칙 결정론자들은 사람은 어떤 동기 motives에 의해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 동기는 주변 환경에 연유 cause하므로 환경과 동기는 고쳐질 수 있다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영미인의

기계론 자연법 경험론의 철학이 동양의 ‘운명론’과 결정적인 차이가 나는 점은 운명은 바꿀 수 없다는 것

이 아니라, 운명은 교육을 통해서 바꿀 수 있고 또 새로이 개척할 수 있다고 믿는 점에 있다. 바꿔 말하

면 영미인도 한국인도 “운명”의 존재는 다같이 인정하는데 단지 그 역할과 정도는 서로 반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영미인에게 운명(정해진 법칙에서 어긋나고 예측하기 힘든 행운이나 기적이

작용하는 매우 특별한 것)이 전체 법칙 중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대략 10%정도 밖에 지나지 않는다고 믿

는 반면, 한국인은 정해진 운명이 90% 이상을 차지하기 때문에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고 여기고

그저 손 놓고 포기하는 개념으로 받아 들인다는 점이다.

417 “On errands of life, these letters speed to death. Ah, Bartleby! Ah, humanity!”

128

5.2. 미네르바의 부엉이

사람들은 미리 앞서서 이성적인 대처를 하려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마침내 파국적인 결말을 맞고서 그

때서야 때늦은 후회를 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들의 약점이 거기에 있고 그래서 사람은 죽고 나서야 깨닫

는다고 말하지 않는가? 이런 측면에서 헤겔은 말하지 않았을까?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

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418 역사의 운동 법칙을 찾아낸 헤겔이 역사는 현실이 무르익을 때 비로소

관념적인 것이 실제적인 것에 맞서서 나타난다고 말했는데 그가 삶은 다만 인식되는 것뿐이라는 의미로만

말했을지는 않았을 것이다. 바람이 대나무 숲을 흔들고 지나간 자리를 통해서 바람의 길을 알듯이, 진리

에 대한 인식은 시대에 선행하기 보다는 그 일이 모두 다 끝날 무렵에야 비로소 인식되는 것 같다. "어

쨌든 철학적 인식은 항상 너무 늦게 이루어진다. 철학이 이성의 회색에 회색을 덧칠할 때 인생의 한 모

습은 이미 지난 것이 되어 있을 뿐이다. 회색에 회색을 덧칠하면 그 인생의 모습이 다시 젊음을 찾지 못

하는 것이며 단지 인식할 뿐이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

이와 같이 설명한 헤겔의 메타포어를 우리 삶에 인용한다면 우리가 현재 복잡한 세상사에 얽혀 그 변동의

소용돌이 속에선 정확한 인식과 평가를 할 수 없을 것이며 지나가고 난 뒤 냉철한 분석과 냉정한 시각으

로 다시 전체적 조망 (파노라마, 부엉이 눈으로 보는 것)을 할 때에만 비로소 진실과 정확한 인식이 가능

하다는 말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로마 제국의 황제들은 부엉이를 어깨에 앉혀 국가의 수호신으로 삼았고, 미국 대통령 문장에 독수리가 등

장한다. 로마 제국의 개선장군의 행차 길에는 “Memento mori”라는 말을 전하는 노예가 따라 붙었다고 한

다. “모멘토 모리”는 “당신도 죽을 운명임을 기억하라 remember (that you have) to die”라는 뜻으로 “오늘

비록 승리했다고 너무 도취하지 말라”는 경고의 속뜻을 갖는데 오늘날 월 스트리트에서 중요하게 환기되

는 개념이다.

‘행태 경제학 Behavioral economics’의 많은 논문이 밝혀주듯이,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합

리적 인간 (이기적 인간, 호모 이코노무스 homo economicus)’ 모델은 실제의 현실적인 사람들의 모습과는

차이가 난다. 인간은 자기이익을 추구하고,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합리적으로 행동한다는 결론은 경제학의

순수한 ‘가정’이고 이는 법에서의 가상적인 장치인 ‘의제’에 해당한다. 반면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카네만의 주장

에 따르면, “실제 세상에 살아가는 현실의 사람들은 편견에 사로잡혀 있어 판단을 그르치고 실수를 할 가

능성이 크다. “현실의 실제 사람들은 그런 실수를 반복적으로 하게 된다 real people make mistakes

systematically.” 사람들은 교육을 통해서 그러한 실수를 줄여나갈 수가 있고 또 잘못을 고칠 수 있는 능력

과 희망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를 하기 마련이지만 또한 인간이기에 그

러한 실수를 막을 수가 있다는 것이다. 실수를 통해서 인간 사회의 진보가 이뤄질 수 있다고 보는

necessitarian 견해는 분명히 일리가 있다. 발전과 진보를 이루기 위한 조건 하나는 편견을 버리고 오픈 마

인드를 갖추어야 한다는 점이다.

5.3. 플로지스톤(불꽃) 이론의 탄생과 종언

플로지스톤(불꽃) 이론

사람들의 행동을 불러오는 동기에는 우리들의 마음 속의 생각에 좌우된다고 많은 사람들이 여긴다. 그런

데 사람이 죽으면 더 이상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 경우 그 동안 존재하던 뭔가가 나갔기

418 “Die Eule der Minerva beginnt erst mit der einbrechenden Dammerung ihren Flug.”

129

때문이라고 여길 것이다. 우리나라에선 사람의 몸과 마음은 별개이고, 사람이 죽으면 혼이 나간다고 여

기는 전통적인 사고방식이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다. (최명희의 소설 “혼불”). 혼불의 개념이 민간 신앙에

서 매력적으로 받아들여진 이유는 사람들의 마음과 몸에 대한 관념론적 사고에 기반한다. 사람들은 고대

로부터 나무와 숯을 태우는 경험은 일상적이었다. 금은동의 제련 또한 고대로부터 경험했다. 물건이 타

고 나면 재 (금속을 가열하면 금속회가 남는데 이를 ‘Dead Body’라고 불었다)가 남는데 재는 가열전의 금

속보다 무겁게 느껴진다. 시체도 죽기 전보다 더 무겁게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사람들은 혼이 나갔기 때

문이라고 믿었다. 사람들은 예전부터 연소, 호흡, 발효, 부패 작용의 경험적 이해에서 물질 변화 과정에

는 그 무엇이 존재한다고 믿었다. 물건이 탈 때 사람들은 거기서 나오는 뭔가 타는 냄새를 맡을 수 있고,

따라서 어떤 물건을 태을 때 연기가 나가듯이 사람이 죽으면 사람의 몸에서 뭔가 나간다는 것이 생각은

누구나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앞서 설명한 할로윈 축제의 기원과 영국의 고대 민간 신앙에서뿐만 아니라 근대 들어 미신이라고는 믿지

않는 자연과학자들도 연소 현상 같은 물질적 변화 과정에 대해서 단 하나의 간단한 원리로 설명하려는 생

각이 높았다. 물질이 타는 것은 물질 속에 ‘그 무엇’(이를 ‘플로지스톤’이라고 가정한다)이 있기 때문인데

이 플로지스톤은 불꽃과 함께 물질의 외부로 빠져 나오게 된다고 설명하면 사람은 대개 이에 수긍하는 편

이 강했다. 이와 같이 연소물질에 하나의 가상 물질(무색 무취 무형체)인 ‘플로지스톤 phlogiston’ (불꽃

flame을 뜻하는 그리스어에서 유래)의 존재를 과학자들도 가정하고 있었다. 산소를 발견한 화학자 프리

스틀리 또한 가상적이고 관념적인 존재 개념인 플로지스톤 이론에 집착했으며, 철학자 칸트도 플로지스톤

이론을 경탄해 마지 않았음을 볼 때 우리나라에서 민간 신앙의 ‘혼불’같은 개념이 아직도 뿌리깊게 남아

있는 이유는 이해할만하다. 하지만 한 때 과학자들까지도 신봉했던 플로지스톤 이론은 이미 200년 전에

사라져 종언을 고했다는 사실을 상기하라.

1772년 라부아지에가 모든 물질은 연소할 때 공기의 일부 즉 산소의 영향으로 인해서 중량이 증가하는

현상이 일어난다는 사실을 실험으로 증명해 주었고, 이로 인해 플로지스톤 이론은 곧 사라질 운명에 놓였

다. 1789년 출간된 “기초 화학” 교과서에도 실려 있는데, “물질은 있던 것이 없어지거나, 없던 것이 갑자

기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물질이 그 형태가 변하여 새롭게 생긴 물질로 존재한다 Nothing is lost,

nothing is created, everything is transformed.” 라부아지에는 질량보존의 법칙을 화학 방정식으로 증명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게 된 라부아지에의 기초 화학 교과서가 출간된 1789년에 플로지스톤 이론은 이론적

가치를 상실하게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에서는 미신적 신앙에 가까운 경외감으로 아직

도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면 기초화학 교과서를 다시 읽어봐야 하지 않을까?

5.4. 데드 레터 dead letter, 블랙 레터 black letter

“블랙 레터 black letter”라는 말은 인쇄체 글자, 텍스트를 말한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확실한 법을 “black

letter law”라고 말한다. 반면에 법이 죽어 있거나 작동 불능 상태에 있는 경우를 “Dead letter”라는 말을

쓰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사형집행법률이 공식적으로 폐기되지는 않았지만 사형 집행이 더 이

상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사형 법률은 “dead letter”에 해당되는 것 같다.

우리들은 대개 “법은 확실한 것 black letter law”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법은 완전하고

확실한 것이 아니다. 법은 수없이 만들어졌다가 수없이 폐기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확실한 법”

이란 언제 누가 결정하는가? 법률가라면 누구나 수긍하듯이, 법에는 영원한 것이 없다는 명제는 참이다.

하늘 아래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면 법 또한 자연법칙을 벗어날 수가 없다. 따라서 법은 태어날 때부터

130

“법은 확실한 것이 아니다”라는 법의 불확실성의 역설을 갖고 있는 것이다. 도전과 응전의 역동성은 “오

늘은 네 차례 내일은 내 차례”식으로 끊임없는 투쟁의 연속을 말해준다. 법은 항상 새로운 도전이 열려

있다. 법의 해석이란 고정불변의 고체가 아니라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 변화하는 액

체와 같다고 말할 수 있다. 법은 가장 확실한 것같이 여길지 모르지만, 다른 한편으로 제 아무리 “블랙

레터”라고 해도 시간과 장소와 상황에 따라 해석의 문제가 열려져 있다. 법은 항상 새로운 도전을 받기

마련이고, 끊임없이 재해석되는 것이며 또 이런 끊임없는 과정을 통해서 “확실한 법”이 무엇인지 알 수 있

게 된다.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리터스가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 You cannot step into the

same river twice.”고 말했는데, 해와 달이 뜨는 자연 사실과는 달리 인간 세상에서 사람의 일은 앞서서 일

어난 사건과 사실관계가 100% 같은 경우란 존재하기 어렵다. 또 시대와 환경이 달라져서 법적 쟁점이

달라질 수도 있다.

법원은 현재의 구체적인 사건을 해결해내기 위해서 이전의 사례를 살펴 보겠지만 법은 새로운 상황 속에

서 재해석되는 것이므로 이전의 판례는 새로운 상황에 놓인 현재의 사건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현재의 법

과 어떻게 통합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만들 것이다. 선례는 현재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 그 답을 찾을 수 있는 도서관에 단지 입장할 수 있다는 문고리 열쇠일 뿐이지 현재의

문제 자체를 해결하는 만능키는 아니다. 법적 추론 legal mind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

에 있다.

5.5. 할로-윈 hallow-ween-신성 숭배와 신성 모독의 경계선

할로-윈 hallow-ween은 ‘hallow’는 신성시하다, ween은 의도하다는 뜻이 결합된 단어다. 신성해야 할 할로

윈 축제에 왜 죽음의 귀신과 해골 등이 등장하는 것일까? 우리 사람들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다. (창세기 3:19). 우리 사람들은 죽으면 자연으로 되돌아간다.419 그렇다면 삶과 죽음의 경계는 어

디에 있는 것일까? 새싹은 씨에서 솟아나는데 농부가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는 먼저 농토를 갈아 엎어야

한다. 새싹이 새 생명을 잉태하고 따라서 그렇게 신성하다면 묶은 땅을 새로이 갈아 엎는 것 또한 신성

하다는 의미가 된다.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을 잉태한다. 논밭을 갈아 엎는 것은 씨앗을

뿌리고 새싹을 틔우기 위해서 필요한 과정이다. 죽음 없이 부활 없고 부활은 생명의 법칙인 것이다. 영

미인들의 이러한 숭고하고 장엄한 우주법칙과 부활의 존재를 믿는 생각은 별로 어렵지 않게 이해가 될 것

이다.

“신성시하다”의 영어 단어는 “hallow”인데 “논밭을 갈아 엎다”는 뜻의 영어 단어는 발음이 비슷한 “harrow”

이다. 우리나라 사람이 영어 발음 “r”과 “l” 구별하기 힘든 것은 익히 잘 알려져 있다. 혀 구부리는 유음의

발은 쉽지 않다는 것. 하지만 서양인들도 “r” “l”철자에 혼동을 하고 어느 철자가 맞는지의 문법 논쟁을 한

사실은 고대 그리스의 역사가 투키디데스의 아버지의 이름이 “Olorus”인지 “Orolus” 인지를 두고서 많은

고대의 논쟁이 있어 온 사실 (Marcellinus의 “The Life of Thucydides”)에서도 알 수 있다. r과 l 철자를 혼

동해서 새로운 영어 단어가 생겼다고 유추할 수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경우의 하나에 속하든 삶

과 죽음의 경계는 종이 한끝 차이라며 서로 의미가 상통한다는 뜻에서든 아무튼 “harrow”하고 “hallow”는

서로 의미의 연관이 있다고 여긴다.

419 “All go to the same place; all come from dust, and to dust all return.” (전도서 3:20.)

131

132

6. 언어의 의미, 보험 약관 소송 사례, 불법행위 책임론

6.1. 인간의 두려움과 공포감

가공할 만한 속도로 급속히 ‘산업 혁명’이 진행되던 19세기 당시는 공장 폭발 사고 등 ‘산업 재해’의 발생

에 대한 우려는 무척 커갔다. 산업혁명의 급격한 진행으로 삽이나 파이프 라인 등의 쇠붙이에 번개가 닿

아 사고사를 당한 경우가 많아졌다. 영국에서 정부 공식 사망 확인서에 사망원인으로 번개에 의한 사고

사가 처음으로 기록되기 시작한 때는 바로 1852년이었다. 당시 산업 재해 사고가 크게 늘어나게 되자 보

험 약관의 해석을 두고 법적 분쟁이 크게 증가하였다.

인간은 천둥 번개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컸고 또 자연 재해를 미리 회피하고 살아남는 지혜를 강구하여

왔다. 법원 판례를 인용하자. “전화기를 설치함에 있어 피뢰시설인 접지선을 설치하는 등 전화 통화시

낙뢰에 대비하기 위한 보안시설을 하지 아니한 것은 전화기설치보존상의 하자에 해당한다. 주위에 높은

구조물이 없는 농촌지역에서 천둥번개가 심할 때에는 전화기 등 전기기구를 사용하면 낙뢰의 위험이 있으

므로 이를 사용하지 말아야 할 주의의무가 있으므로 이를 게을리하여 낙뢰로 감전 사망한 경우에는 과실

상계를 해야 한다.”420

번개에 대해 일반인이 느끼는 공포감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여러 역사자료나 문학작품에서 확인된다.

최고의 역사서인 헤로도투스의 “역사”에서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살아 있는 생물 가운데서 신이 번개로 징벌하는 것은 가장 큰 것이고, 아무도 자만하도록 허용하지 않다

는 것을 폐하도 알고 계시지요. 신은 작은 것에는 구애하지 않습니다. 번개에 맞는 것은 언제나 큰 건

물이고 큰 나무입니다. 고귀한 것을 낮추는 것이 신이 하는 일입니다. 신이 시기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를 심거나 폭풍을 보내면 가끔 대군이 소수에 의해 패하기도 하고 예기치 않게 무산되기도 합니다.

신은 자신을 제외한 누구에게도 자만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두르면 언제나 큰 낭패를 맛보기

마련이고, 그로 인해 엄청난 고통을 겪게 되는데 반해 서두르지 않으면 여러 이익을 가져오는데 그런 이

익은 당장에는 눈에 띄지 않을 수도 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부가 드러난다.”421

산업혁명의 여파로 산업 재해의 발생의 수준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기술한 바대로

사람들의 사고방식까지 전환시켜 버린 막중한 결과를 몰고 온 아테네의 ‘대 전염병 사건’(430 BC, 426 BC)

처럼, 선지자적 능력이나 예지적 능력을 특별하게 가진 사람들에겐 크게 우려할 만한 수준으로 느껴졌을

지도 모른다. 또한 당시 뉴욕으로 밀려 들어오던 이민 물결은 고대 그리스 역사가 연상되었을지도 모른

다. 투키디데스는 당시 대전염병의 사건을 이렇게 기술했다. “그렇지 않아도 엄청난 재난이 벌어졌는데

시외에서 시내로의 집단 이주가 사람들의 고통을 증대시키고, 특히 그 중압감은 이주민들이 더 심했다.

살 집도 없이 무더운 계절에 숨막힐 것 같은 오두막 속에서 생활하고 있던 그들의 최후는 차마 눈뜨고 바

라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너무나 맹렬한 재난의 위력을 경험하게 되자, 판단력을 잃고 신성과 인간의

존엄성에 대해 아무런 가치도 인정하지 않게 변해 버렸다.” (투키디데스 B II, Ch7.52.)

420 1987.7.14, 선고, 86가합6203. 421 hurry always brings about disasters, from which huge sufferings are wont to arise; but in delay lie many advantages, not apparent (it

may be) at first sight, but such as in course of time are seen of all. Such then is my counsel to thee, O king!

133

6.2. 언어의 빠른 전파성

“바틀비 스토리”에서 화자인 변호사는 사무실 직원들에게서 무의식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언어의 모방성

copy, imitation과 반복성 repetittion, 전파성 contagion, infection을 얘기하고 있는데 모방의 전염성은 언어

현상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표현의 자유에 대한 헌법 재판 판례에서도 지적된 바와 같이 인터넷 매

체의 속성으로써 “신속성, 확장성, 복제성”을 들고 있다. 세계 각국의 911 테러방지법 제정의 사례에서

보다시피 법률 또한 그와 같은 속성을 갖고 있다. 영미법의 발전과정에서 역사적으로 신속하게 확립되었

고 (특히 신생국인 미국과 영연방국에 대한) 강한 전파성을 가진 판례법 common law의 역사를 상기하라.

법의 통일성을 가져다 준 하나의 요인에는 법은 모방의 경향이 크다는 법의 성격에 있을 것이다. 월 스

트리트 증권가는 “유행”의 성격이 강하게 나타나는 곳이다. 각 자본주의 경제 현실에는 상품의 주기성,

산업의 흐름, 증권 파동 등의 주기적 흐름의 작동이 확연하게 나타나는데 하나의 유형은 “그것”을 쫓아가

는 모방의 본성에 크게 나타난다.

6.3. 언어의 혼란과 사회 혼란의 상관 관계

투키디데스는 인간 사회에서 나타나는 부패와 타락의 현상과 그 원인결과를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말의 의미는 어떤 것에 같이 관련되어 있다는 의미를 더 이상 갖고 있지 못하고, 자기들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기들 마음대로 바뀌게 되었다. 무모한 만용이 헌신적인 용기라 여겨지고, 신중한 고려

는 겁쟁이의 변명으로 여겨지고, 중용은 사내답지 못한 약점을 은폐하는 것으로 여겨지고, 모든 것을 인

식하려는 시도는 아무 것도 안하고 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광적인 흥분이 진정한 남성다움의 조건

으로 여겨지고, 안전을 추구하는 것은 충성심이 없는 것을 가장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폭력에 호소하는

것이 언제나 신뢰받고, 그에 반대하는 것은 의심받는다. 음모에 성공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여기면서 그보다 더 뛰어난 사람은 음모를 사전에 발각해 낸 사람이라고 여긴

다. 한편, 애초부터 음모에 가담하지도 않는 사람은 당파를 깨려고 하는 자이거나 적을 두려워하는 비겁

자로 몰린다. 한 마디로, 악의적인 수단을 통해서라도 남을 이기려고 하는 자가 환영 받고, 전혀 악의가

없고 선한 사람을 오히려 해치려고 하는 악한 사람들이 득세하는 세상이 되었다. 정치적 동지 관계가 친

족 관계보다 우위에 있다고 여겨지고 있는데 그것은 이유를 묻을 필요도 없이 대담하게 행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치적 당파 관계는 기존의 법률에 의해 형성된 것도 아닐뿐더러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

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정치적 당파는 법에 무시하면서 형성되고 그리고 자신들의 사적인 이익을 추

구하는 데 있다.) 신의성실이라는 말의 의미는 법을 신성시하고 지키겠다는 약속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범죄행각에 동참하는 동료의식을 의미하는 것으로 여겨진다.”422

6.4. 언어의 의미와 보험 약관 소송 사례

화재보험은 보험 가입자가 화재 발생에 의해 피해를 입었을 경우 그 손해에 대해 보상받는 계약의 하나이

다.423 그런데 말의 일반적인 의미를 믿고서 보험에 가입한 보험가입자가 사고가 일어나서 보험금을 수령

하려고 하니까 ‘화재’에 대한 정의 개념에 대해서 다툼이 있고 그에 따라서 보험사가 보험금 지급을 거부

422 The meaning of words had no longer the same relation to things, but was changed by them as they thought proper. … The seal of

good faith was not divine law, but fellowship in crime. 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Clarendon Press, 1900, (Book 3.82.).

423 보험의 출발점은 이기심 또는 이타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미래에 닥칠 수 있는 위험과 리스크를 효과적으로 관

리하기 위해서 서로 의존하고 있는 구성원들간의 합리적 사고에 기초한 합의에서 생겨났다.

134

한다면 어떻게 될까? 계약상의 문구의 의미에 대한 해석 다툼이 있고 그에 따라 보험금을 수령하지 못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 그건 아마도 보험계약은 휴지 조각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것은 효과 없는

‘데드 레터’가 된다. 영어에서 ‘데드 레터 dead letter’라는 말은 “법이 공식적으로 폐지되지는 않았지만 효

력을 나타내고 있지 못하는 상황”을 가르키는 말이기도 하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표현한 “오래 전의 버지니아에서 벌어진 번개에 맞아 죽은 사건”을 실제 소송 케이스

로 살펴보자. 1843년 벌어진 보험금 지급 소송 Kenniston v. Mer. County Mutual Ins. Co'y. 14 N.H. 341 (1843)

에서 주택이“화재 발생 loss by fire"한 경우에 손해를 보전받는 화재보험에 가입한 가입자가 보험금을 신청

했다. 하지만 법원은 화재보험을 “화재”란 일반 통상적인 의미로 우리들 눈에 보이는 ‘불에 탄

combustion’된 경우를 말하므로 ‘번개 Lightning’에 의해 건물이 피해를 당한 경우에는 기술적인 의미에서

‘화재’ 발생과는 다른 것을 뜻한다고 주장하며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는 보험사가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한편, 1850년 뉴욕주 케이스 Babcock v. Montgomery County Mutual Insurance Company, 4 N.Y. 326 (1850)를 보

자. “번개에 의한 화재 fire by lightning” 피해에 대해 건물 화재 보험을 든 가입자가 번개로 인해서 건물

이 파괴되자 보험금 지급을 신청했는데 이에 대해 보험사는 “번개가 화재를 동반하지 않는 경우에는” 보

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며 거절하였다. 이 소송에서 법원 판단의 포인트는 “불에 탔거나 전소

된 without being burnt or consumed” 보험 약관 규정의 해석 문제에 있었다. 법원의 결론은 “번개는 불 fire

을 동반하지 않고도 발생할 수 있는 전기 또는 열이 발생하는 현상”이므로, 건물이 입은 피해 원인이 전

적으로 “화재 발생”에 의한 경우의 보험 계약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보험사의 손을 들어 주었다. 가입자

가 말한 피해 원인을 기술한 "was struck by lightning, and was thereby prostrated and demolished, and by the said

fire by lightning was overthrown and destroyed." 는 경우는 번개에 의한 화재 fire로 볼 수 없고, 대신 “다른 직

접적인 사고 원인이 immediate and only recognized cause of loss” 개입될 수 있다는 이유이었다. 법원의 이런

결론을 도출해 내는 데는 밀톤의 “실락원”등 문학작품과 프리스틀리, 파라데이 등이 전개하는 과학적 이론

들이 동원하였다. 이 판결이유에서 문학과 과학적 지식이 법학의 논리에 어떻게 원용되는지 그 구체적

과정을 보여준다.424

우리가 흔히 변호사는 ‘말 싸움’ 전문가라고 한다. 말은 서로 다르게 해석될 될 영역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때문에 (‘debatable land of differences’), 끊임없는 분쟁이 발생하게 된다. 말은 의사소통의 도구라고 본

다면 말은 서로 통해야 하는 그 기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말의 안정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법은 언어로 표현되고 법의 해석도 언어에 의존한다. 언어는 의사표현의 수단으로서 상대방의 존재를 가

정한다. 그러나 그 대상은 고정되어 있지 않다. 말은 고정불변의 성격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언어의 의

미는 쓰는 사람이나 쓰는 시간이 항상 달라지기 때문이다. 법은 고정불변적인 것이 아니다. 법은 어떤

424 “An old write [speaks] of insurances against fire as securing the insured from the "flames," and of the risk of the insurer being

diminished where "there is a plenty of water, and dispositions have been made for the extinguishment of fires." But these would have

very little influence in arresting the mechanical effects of lightning. …speaks of the liability of insurers for "accident by fire," when

"caused by lightning." [It] is said in reference to maritime insurers, that they "are liable for loss when the property is consumed by

lightning," &c. In Smith's Mercantile Law, 340, it is said to be immaterial how the fire was occasioned, whether by lightning or any

other cause. … Lord Ellenborough said, "if the ship is destroyed by fire, it is of no consequence whether it was occasioned by a cannon,

accident, or by lightning," &c. "Loss by fire, when caused by lightning, is held to be a charge upon the underwriters, under the word

'fire,' in our common form of policy." … These authorities which were referred to by the learned counsel for the defendants, show the

legal acceptation of the term "fire," in connection with "lightning," and it is but a reiteration of its popular meaning. It is the effect of

combustion, caused by lightning. The latter is not treated as "fire," but as an agent that may produce fire, which is the immediate and

only recognized cause of loss. Electricity, caloric or heat, may so act, without producing fire, as to cause great injuries to property; but

these are not embraced by an insurance against fire alone. (Austin v. Drew, 4 Camp. N.P. R. 360) On the whole, I think it clear that the

plaintiff has not averred a loss within the meaning of the policy; and that the judgment of the supreme court, with the very clear and

satisfactory reasons assigned in its favor by Mr. Justice Pratt, should receive the concurrence of this court.” Babcock v. Montgomery

County Mutual Insurance Company, 4 N.Y. 326 (1850).

135

하나의 정답이 정해져 있는 고정적인 물체가 아니다. 판례법은 법의 체계가 하나로 일률적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고, 유동적이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미국엔 연방법이 있고 또 주법이 존재하고, 각주마다 서로 법

이 다른 경우가 많다.

위의 뉴욕 케이스와 비슷한 시기에 위의 케이스들과는 다르게 결론 내린 매사추세츠 케이스 Scripture v.

Lowell Mutual Fire Insurance Company, 64 Mass. 356 (1852)를 보자. 이 사건에서 법원 판결문은 위에 예시한

케이스에서 적용한 해석들을 명시적으로 거론하면서도 그런 해석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화재가 발생한

이상 그것이 불꽃이 튀고 연소됐건 combustion 또는 폭발이 일어났는지 여부 등의 논쟁은 불필요하고 화

재 보험 약관은 화재의 일반적인 의미 the ordinary terms에 따라 해석되어야 할 것이라면서 보험가입자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러한 판결이유문은 법 해석의 유연하고도 다양한 방법을 잘 보여준다.425

6.5. 사망 원인-불법행위 책임론의 발전

사고를 불러온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인가를 밝히는 인과론 causation

사고가 일어나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은 인간의 본성상 당연한 요구에 해당한다. 근대 이전까지는 설

령 사고를 손해를 끼칠 의도나 또는 주의 태만이나 사고에 직접적인 중대한 실수가 없었다면 그런 책임

요인 “비난 사유 blameworthy”가 결부되지 않았음이 입증되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다시 말

해 사고가 불가피했다는 책임 회피 사유 justification and excuse가 존재한 경우에 사고에 대한 책임을 회피

할 수 있었다.

대체로 산업혁명 이전까지는 손해를 끼칠 의도가 없었다면 손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았다. 하지만 산

업혁명이 들어서면서 큰 재난 재해가 자주 발생하게 되면서 기존의 법이론은 새로운 사회의 요구에 부응

하지 못한 한계에 직면하게 되었다. 누구라도 사고가 일어나기를 계획하거나 의도한 경우는 (흔하지 않

지만 현실적으로 간혹 일어나는 보험 사기를 제외하고)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의도하지 않았지만 현실적

으로 사고는 일어난다. 따라서 해악을 끼쳤을 때 책임을 져야 할 필요성이 있다.

그런데 산업혁명으로 우후죽순으로 생기는 새로운 공장에서 각종 산업 재해 재난 사고가 끊임없이 발생함

에 따라 노동자들이 공장주인을 상대로 법원에 손해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해대면 공장주는 공장의

문을 닫아야 할 위험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산업혁명으로 국가 사회적 발전을 돕기 위해서는 공

장주의 책임 범위를 합리적으로 확정해 주어서 산업자본가들의 소송 위험을 덜어주는 것이 보다 나은 선

택이라고 볼 수 있었다.

이러한 사회 정책적 고려를 법원이 주도적으로 제시해 준 사람이 바로 쇼오 Shaw 매사추세츠 대법원장이

425 “Now it is obvious that mere smoke, without any direct action of heat, may do great damage to many kinds of merchandise, such as

delicate textile fabrics, esculent vegetables, articles of taste, and other numerous objects; and if a dwelling or a magazine take fire, and

some parts of it only be consumed, but the contents of apartments, to which the actual fire does not extend, are nevertheless damaged

by the smoke penetrating into and filling them, can it be doubted that the damage thus done is a loss within the ordinary conditions of a

fire policy? Semble, per Gibbs, Chief Justice, arguendo, in Austin v. Drew, Holt N. P. 127. Yet, incontestably, damage by smoke is an

effect, which is not in itself igneous action, though it be the result thereof; while, as we conceive, the explosion of gunpowder is

igneous action. In conclusion, we think the rule, which we propose for the present case, reconciles all the conditions involved in the

question; is conformable to the nature of things; and constitutes a coherent and consistent doctrine, namely, that where the effects

produced are the immediate results of the action of a burning substance in contact with a building, it is immaterial whether these results

manifest themselves in the form of combustion, or of explosion, or of both combined. In either case, the damage occurring is by the

action of fire, and covered by the ordinary terms of a policy against loss by fire.”, Scripture v. Lowell Mutual Fire Insurance Company,

64 Mass. 356 (1852).

136

었다. 쇼오 대법원장의 1850년 Brown v. Kendall 60 Mass. (6 Cush.) 292 (1850) 케이스는 불법행위 책임 이론

을 새롭게 열어주는 유명한 판결이었다.

산업 혁명은 증기 기관 등 획기적인 ‘기계의 발명 시대 machine age’와 함께 일어났다. 사고가 자주 일어

났고 따라서 사고가 일어난 직접적인 원인을 파고 들게 되면서 법에서는 불법행위 책임 이론이 크게 발전

하게 되었다. 사고 원인을 파고들면 어떤 사람의 행위가 없었더라면 (예컨대 화재가 일어났을 경우, 어떤

사람이 성냥불을 갔다 대지 ‘않았더라면’ (이런 경우를 후에 ‘But For 테스트’라고 말한다)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여긴다. 하지만 사고 원인이 단순하지 않고 여러 가지 복잡한 원인들로 얽혀 경우가 많

고 또 사람들의 주의력의 정도도 각자 차별적이다. 따라서 사고 책임에 대한 판정 기준에 대해서 객관성

을 갖추기 위해서 사고에 관련된 특정 개별인의 기준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의 통상적인 기준에 의해서 따

져보는 새로운 관점을 필요로 하게 되었는데 이러한 배경에서 ‘합리적인 인간 reasonable person’ ‘평균인

ordinary man’이라는 추상적인 법적 개념이 정립되게 된다. 이러한 법적 개념이 등장하는 첫 케이스는

1856년의 블라이스 케이스이었다.426

사고의 직접적 책임론은 사고를 일으킨 사고의 직접적인 원인 여하에 따라서 책임 범위의 결과가 달라지

게 되므로 공장 사업주는 책임이 제한되어 유리하고 (따라서 이런 측면에서 judicial subsidy이라고 표현하

기도 한다) 또한 노동자들도 또한 주의 의무를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적 고려가 요구되었다. (노

동자가 재난재해 사고를 당해도 제대로 된 배상이나 보상을 받지 못하는 억울하고 비정한 ruthless 경우가

많이 나타났지만-이런 측면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사고가 일어나면 사업주에게 고의나 과실이 없어도 사고

에 대해 무조건 책임을 지게 되는 absolute liability 책임이론의 등장하게 되는데 이는 좀더 오랜 시간이 걸

렸다). 법에 있어서 정책적 고려 policy라는 말은 이전의 확립된 법리로써는 해결할 수 없는 새로운 사건

이 일어난 경우 ‘현재 당면한 사회적 필요성 the current needs of the community’에 부합되는 해결책을 모색하

고자 할 때를 말한다. 인간 세상에서 반복되는 파국의 위험성을 막기 위해서는 “치명적인 불상사가 일어

나기 전에 그것을 적당히 잘 수습하고 분쟁을 해결”하도록 인간의 사전적인 노력이 촉구되어야 한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구름 한 점 없는 어느 여름 날 오후에 번개에 맞아, 담뱃대 파이프를 입에 문 채,

죽은 바로 그 남자처럼 한 순간 빳빳이 굳어버리고 말았다”라는 구절에서 번개 감전사를 언급하고 있다.

당시의 법이론에 따르면 번개는 하늘의 심판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책임을 회피할 수 있었지 몰랐지만

1852년에 영국에서는 처음으로 사망원인으로 ‘번개사’를 사망진단서에 기록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에서

알 수 있다시피 산업혁명이 급격한 진행됨에 따라 끊임없이 발생하는 산업 재해 재난 사고 예컨대 공장

파이프 라인을 설치하다가 번개 감전사하는 경우 사업주의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여

기서 공장 노동자도 또한 천둥번개가 칠 때는 전기 감전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파이프 설치 작

업을 중단하는 등 위험을 회피할 의무를 부담하게 할 필요가 있었다. 보다 좋은 사회로의 진전은 어느

한 쪽만의 노력보다는 양방향에서의 노력이 요구된다고 보는 것이 보다 합리적인 생각인 것 같다.

6.6. 구두 증거 배제 원칙 Parol evidence rule

“의미 할당 semantic mapping” 능력이란?

글을 못 읽는 문맹까지는 아니더라도 만약 독해력이 부족하다면 독자나 시청자가 전달 메시지 속에 들어

있는 의미를 제대로 온전히 파악하기 힘들 것이다. 독자나 수용자는 자신이 아는 만큼 자신이 오감과 자

426 Blyth v Birmingham Waterworks Company (1856) 11 Ex Ch 781.

137

신의 지식과 자신의 인식으로 받아들이고 해석하기 때문이다. “의미 할당 semantic mapping” 능력이란

글쓴이가 의도한 본문의 의미를 독자가 자신의 지식과 경험에 연결시키는 과정을 뜻한다. 의미 할당의

연결 고리를 이어가지 못하면 글을 읽어도 본문이 무슨 말인지 제대로 알아보기 힘들 것이다. 말과 글은

기호나 상징처럼 지식과 이해가 전제되지 않으면 올바른 인식과 통합의 소통은 이뤄지기 힘들 것이다.

“Parol evidence rule” 구두 증거 배제 원칙

문서가 작성되어 당사자에게 전달되는 순간 그 이후에는 오로지 그 문서에만 의존하여 해석을 해야 한다

는 원칙 (이를 “Parol evidence rule” 우리말로 “구두 증거 배제 원칙”이라고 한다)이 있다. 계약서를 예로

들어보자. “구두 증거 배제 원칙”이란 계약 당사자가가 ‘서면’에 최종적으로 합의를 이룬 경우 ‘계약 내용

contents’에 대한 해석은 ‘서면 약정’의 ‘완전성, 최종성 finality of the utterance’을 ‘보존’하기 위하여 과거

또는 현재의 ‘구두’ 또는 다른 서면으로 된 다른 합의가 있다고 해서 자신들의 ‘최종적인 합의’가 담긴 ‘서

면’으로 된 계약 내용(약정)을 변경하지 못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의 ‘말’은 온전히 신뢰할 수 없다는 예컨대 시간이 흘러서 원래 의도가 그런 것이 아니었다든가 약속

을 이행하지 않는다든가 또는 ‘사기’치거나 허위의 가능성이 있다든가 그런 말의 불완전성의 문제점을 보

완하기 위해서 ‘글’로써 계약서를 쓴다. 만약 계약서를 작성하고 난 이후에도 ‘글’이 아닌 ‘말(구두)’-즉 원

래의 의도한 바-를 다시 따져 봐야 한다면 글(계약서)의 의미는 반감되고 말 것이다. ‘글 parol’은 사람들

이 ‘말 oral’로 의도한 바를 글로써 그대로 재현할 수 있다는 믿음 즉 의도와 표현은 일치된다는 가정에

기반한다.

그러나 만약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글로써는 완전하게 표현되지 못한 경우가 있다면 어떻게 되는가? 글

은 사람의 감정까지는 그대로 다 표현할 수 없다고 한다면 문자 텍스트는 사람들이 원하는 의사소통으로

서 완전하지 않을 것이다.

의도와 표현 intent and expression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

말과 글의 관계는? 의도와 표현이 일치하지 않는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해석의 방법론의 문제

가 나타난다. 물론 말에도 이런 불일치가 일어날 수 있지만 그럴 경우 즉시 수정이 가능하다는 측면에서

말과 글은 다르다. 사람의 ‘말’은 직접적인 증거로써 대화로써 치유가 가능한 반면 ‘글’은 간접적인 증거

에 불과하여 대화로써 즉시 수정이나 치유가 되기 어렵다. 말은 즉시 대화이지만 글은 시공간상의 제약

때문에 즉시 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말과 글의 이런 차이점에서 소크라테스는 글로써 대화하지 않고 의사 소통은 말로써 이해가 가능하고 또

오해의 가능성을 제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실천했다. 사실 소크라테스는 오로지 대화의 방법으로 진실

을 추구하고 전달했고 자신의 글을 단 한 편도 남기지 않았다. (소크라테스의 저작이라고 알려진 문헌들

은 모두 그의 제자들에 의해서 소크라테스의 말을 글로써 옮겨 적은 2차적 저작물이다.)

사람 관계에서 시공간의 제약을 타파한 최신의 ‘인터넷’ 기술로도 ‘말’과 ‘글’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완벽한

소통의 기술을 완전하게 성공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와 같이 글은 말을 따라잡기 힘든 제약성을 갖는다.

동양에선 서자심화 書者心畵 즉 글씨는 마음의 그림이라고 붓글씨는 사람의 마음까지 보여준다는 사고가

지배하지만 사실 인쇄 활자 문자에 의한 사람의 ‘글’은 사람의 감정 표현, 몸짓, 신호 같은 부수적인 정보

138

를 보여주기 어렵다. 이런 측면에서 글은 사람이 의도하는 진실이 그대로 전달되지 못하고 또 그와 같이

진실을 왜곡 조작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형평법의 한계가 여기에 존재할 것이다. 보통법원은 증인이 하

는 ‘말’을 증거로 삼는다. 반면 형평법원은 증인의 말 대신 쓴 ‘글’을 증거로 삼는다.

6.7. “악마의 맷돌 Satanic Mills” –“악마의 공장”

산업혁명 자본주의는 영국에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증기 기관 발명자 와트와 사업가 볼튼은 버밍엄

루니 협회의 회원이었다. 이들은 함께 1769년 런던에 앨비온 제분소 Albion Flour Mills를 세웠다. 기계화

된 거대 공장의 높은 생산력은 가내 수공업을 도태시켰다. 전통적 농촌 사회에서 순식간에 재벌 대기업

공장으로 들어선 한국의 놀라운 모습 이상의 충격적인 변화이었을 것이다. 생계를 영위하는 수공업 방앗

간들은 새로운 대형 공장 제분소를 “'악마의 맷돌 Satanic Mills”로 비난하였다. (차티스트 운동을 상기하라.)

“악마의 맷돌”이란 표현은 블레이크의 시 구절로써 잘 알려졌다. 블레이크는 “검은 악마의 맷돌”을 다음

과 같이 비유하였다. “아득한 옛날 저들의 발길은 / 영국의 푸른 산 위를 거닐었고 / 거룩한 신의 양이 /

영국의 아늑한 초원 위를 노닐었네 // 성스런 신의 얼굴이 / 구름 실은 언덕 위에 비추었을까? / 여기 이

어두운 악마의 맷돌 사이에 /. 예루살렘이 세워졌을까? //427 “여기 이 어두운 악마의 맷돌 사이에 Among

these dark Satanic Mills” “예루살렘 Jerusalem”이 세워졌을까?라고 말하는 구절을 보면 “악마의 맷돌

Satanic Mills”의 의미는 낡은 기득권 세력의 ‘교회’ “the mills of God”를 비유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하지만 독자들에 따라서는 당시 산업혁명 당시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거대한 공장의 숲을 비유한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이런 해석이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은유법의 관용어구와는 달리 A=B라고

무엇을 꼭 집어서 확실하게 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은유의 의미는 독자들 마다 달리 해석을 할 공간이

충분하게 존재한다. 또 독자들은 은유의 의미를 혼동할 confusing 수도 있을 것이다. 블레이크의 또 다

른 시집 "Jerusalem: The Emanation of the Giant Albion"에도 실려 있는데 “Satanic Mills”을 “검은 악마의 공

장들”로 해석할 수 있다. 블레이크는 알비온 제분소 Albion Flour Mills 공장 (1791년 화재로 소실되었고

다시 세워졌다- 대개 공장이 불타고 나면 새로운 기계들이 들어서고 공장은 더 발전하게 된다) 근처에 살

았다.

또한 요즈음 대학은 상업주의에 물들어서 단지 졸업장을 찍어내는 “학위 공장 degree mill”에 불과하다고

수준 낮은 대학의 현실을 공격하기도 하는데 “악마의 대학”으로도 해석한다고 해서 틀렸다고 단정하기 힘

들 것이다.

칼 폴라니는 “거대한 전환 Great Transformation (1964)” 책에서 자본주의 시장 경제 체제를 “'악마의 공장

Satanic Mills”'이라고 비유하며 자본주의 경제 체제는 공급과 수요의 시장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큰 흠결이 있기 때문에 국가가 미리 나서서 파국을 막아야 한다고 비판하였다. 폴라니의 비유 의미는,

산업혁명 당시 밀가루 공장이 전통적인 수공업자들의 생계를 파괴했듯이, 자본주의체제는 국가가 사회적

보호막을 마련하거나 지나친 사익 추구를 관리 통제하지 못한다면 화폐가치와 노동자 약자의 삶과 자연의

보호는 한 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 것이다.

427 And did those feet in ancient time / Walk upon England's mountains green? / And was the holy Lamb of God /On England's

pleasant pastures seen? // And did the Countenance Divine / Shine forth upon our clouded hills? / And was Jerusalem builded here /

Among these dark Satanic mills? //” (Blake, “Milton a Poem”, 1808.)

139

2012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 2부 축하 행사에서 “악마의 맷돌 Satanic Mills”이라는 주제의 황홀한 무대극

이 펼쳐졌다. 여기에서 비유의 의미는 “악마의 맷돌”이 산업혁명기의 자연과 인간성을 파괴되는 것을 단

순히 회고하고자 하는 것에 있지 않았을 것이다. 대량 생산 체제를 가져온 기계의 도입으로 전통적인 방

앗간의 인간 노동력은 기계로 대체되어 상실되었던 바, 노동자의 일터를 빼앗은 악마로 인식된 당시의 검

은 악마의 공장의 비유를 오늘날의 변화된 경제 현실에 비추어 현재의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요구되는 새

로운 조망의 관점에서 산업혁명 당시 Satanic Mills의 개념을 꺼냈을 것이다. (폴라니의 자본주의 경제 체

제 비판 의 입장에서뿐만 아니라, 대영제국의 영화를 상실하게 된 영국인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하자면 산

업혁명 당시 세계를 앞서나갔던 그 같은 국가적 활력을 다시 찾자는 의미가 숨어 있을 수도 있을 것이다.)

기계와 산업의 혁명적 변화는 산업혁명 시대 현상만이 아니었다. 현대에서도 컴퓨터가 본격적으로 사무

실에 등장하게 되자 타이핑 역할을 주로 맡아 하던 단순 사무실 노동자들은 사무실 자동화의 조류에 밀려

서 구조 조정의 대상이 되었고 그 당시 일부는 컴퓨터를 노동자를 몰아내는 악마의 맷돌애 비유하기도 했

었다. 하지만 지금 어느 누가 컴퓨터를 악마에 비유하겠는가?

“바틀비 스토리”에서 한 때는 자신의 이익 추구하는데 쓸모가 있어서 바틀비를 고용했지만 이제는 짐만

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그를 “연자맷돌 millstone”에 비유하고 있는데 그 구절을 다시 보자. “그가 사무실

에서 아무 일도 하지 않으려 하는데 그렇다면 그가 왜 거기 계속 남아 있어야 하는가? 그는 이제 내게

는 목걸이로도 쓸모가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내가 짊어지기에도 고통스런 부담만 주는 연자맷돌428 같

은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429

하지만 부담은 새로운 문제 해결의 기회를 제공할 수 있다. 발전의 요체는 우선 “문제를 인식하는 것

identify the problem”에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성경 시대 때부터 산업혁명 그리고 오늘날까지 역사를 통

틀어 볼 때, 발전은 창조적 파괴의 과정을 수반하지 않고서는 이루어지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기계의 발명과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의 삶은 개선되어 왔고 또 크게 발전되어 왔다. 정작 “맷돌”에는 악

마가 없었던 것이 아닌가? 아니면 설령 악마가 있다고 하면, 프리스틀리의 필연주의 철학의 결론과 같이,

악마도 발전을 이루는데 한 부분을 담당하는 존재라고 인정할 수 있다. 악마가 존재한다는 사실 그 자체

가 나쁜 것이 아니라, 문제는 그것을 거대한 발전의 한 부분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인간에게 있다고 보아

야 하지 않겠는가? 죽음과 삶이 이어지는 관계인 것처럼 부담과 기회는 서로 연결된 동전의 양면은 아

닌지?

6.8. Bar의 의미는?–넘지 못할 경계를 의미하는가?

법원은 토마스 모어가 그린 유토피아의 외딴 섬처럼 격리되어 있고, 법원의 문턱은 항해의 닻을 올리는

것만큼 무척 높다. 법원의 문은 보통 사람은 넘기 어려운 닫혀진 문이라는 묘사가 더욱 어울릴지도 모른

다. 최소한 행정부에 속하는 검찰이 사법권을 행사하고 있고 그에 따라 구속 이후에도 검찰에서 비공개

재판이 이루어지는 우리나라 같은 검찰-사법제도하에서는 더욱 그렇게 보인다. 물론 법원의 법정 자리

배치도를 살펴봐도 그렇다. 법관의 자리는 하늘만큼 높은 보좌에 앉아 있음을 상기하라. 법정의 판사석

변호사석 증인석은 각각 막대기-bar-들로 분리 표시된다. 모세의 지팡이가 권위를 나타내듯이 판사 가는

428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

려지는 것이 나으니라. 실족하게 하는 일들이 있음으로 말미암아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하게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하게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마태 18:6-7). 429 He would do nothing in the office: why should he stay there? In plain fact, he had now become a millstone to me, not only useless

as a necklace, but afflictive to bear.”

140

곳에 봉(막대기)이 앞장 선다.

영어 “Bar”는 그런 넘지 못할 “경계”를 뜻한다. 변호사 협회를 bar라고 부른다. “pale” 은 석회석처럼 하

얀 색깔, 창백한 얼굴색을 말한다. 백악기 때 만들어진 영국 해안가의 하연 절벽을 pale이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남아프리카에서는 백인을 지칭하는 말이다. 북아일랜드에서는 본토영국인들이 쳐들어와서 거주하

는 막대기로 둘러 처진 특정의 구역을 말한다. 올림픽 운동경기 종목의 하나인 장대 높이 뛰기를 pole이

라고 하는데 나무막대기 stick, stake, fence, boundary 라는 뜻의 pale과 pole은 어원이 같다. 나무막대기

는 우리나라 특정 신성 지역으로 출입금지 지역인 “소도”를 표시하는 긴 막대기를 “솟대”라고 하는데 이런

면에서 작대기의 의미가 “경계” “격리” “wall”의 의미를 갖고 있다는 것은 동서 고금을 막론하고 인간 본성

의 공유를 말해 주는 것 같다.

“Wall” 단어를 거꾸로 하면 “Law”가 된다. 여기서 더블 엘 “ll” 엘자 하나는 묵음이다. “법”과 “벽”은 서로

통하는 단어다. 그리고 그리스 라틴어 철자에 “l” “r”은 서로 어는 철자가 맞는지에 대한 철자법에 대한 논

쟁이 종종 있음을 볼 때 (“신성한 구역” 설명 부분을 참조하라) 서로 호환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wall”은 전쟁을 뜻하는 “war”단어하고도 서로 통한다고 보기에 월 스트리트를 “war” 스트리트라고 항의하

는 시위 군중의 의미가 이해되는 것 같다. 이렇게 언어의 관련성을 볼 때 월 스트리트 금융가를 상징하

는 금융가 로스차일드의 “전쟁의 포성이 울리면 주식을 사라”는 투자격언이 단순한 일화에서 나온 것이

아님이 이해된다.

6.9. WALL 장벽-사적 공간과 공적 교류의 의미

폐쇄 공간과 열린 공간

“wall 벽”은 안과 밖을 구분 짓는 경계선을 말한다. 벽은 “담을 쌓고 walled” 경계 표시를 나타낸 밖으로

부터의 차단벽이자 안에서 밖으로 소통하는 경계 구역의 바운더리 boundary를 나타내 준다. 우리들은 흔

히 벽은 쌓거나 또는 허물어 뜨려야 한다는 단편적인 개념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바틀비가 “면벽공상”을

하는 모습은 꽉 막힌 현실의 벽을 연상한다. “알아야 면장을 하지”-이런 우리 속담이 있는데 여기서 면장

은 한자의 면할 면免과 담 장墻의 免墻면장으로써 이 속담의 뜻은 “알아야 담벼락을 면하지” 즉 담벼락같

이 꽉 막힌 사람을 지칭한다. 사람이 배우지 않고 깨우치지 못하면 담벼락같이 꽉 막힌 사람이 되고 만

다. 이 속담이 크게 유행한 계기는 조선이 일제 식민지로 전락한 1910년 총독부령 제8호 面면에 관한

규정에 의해 행정구역상 면 제도가 새로이 생겨나면서 면장을 시킬만한 적당한 사람이 없어 인물난을 겪

을 때였다고 생각된다. 예전에는 문맹률이 워낙 높아서 “낫 놓고 기역자도 모르는 일자무식꾼”이 다수를

차지하였다. “알아야 면장을 하지”이라는 속담은 꽉 막힌 담벼락 같은 사람이 되지 말라는 의미 즉 어떤

일을 하려면 먼저 그것에 관련된 학식과 실무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Wall 벽

벽 그 자체는 안도 아니고 밖도 아닌 경계선의 이중성을 갖고 있다. 사람들의 왕래가 있다는 것 교류가

있기 때문에 성을 쌓은 것이다. 그래서 모든 성에는 바깥을 출입하는 문이 달려 있다. 이중성은 이러한

바깥과 안을 연결하는 실제의 담장구조만을 이르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상징으로써 기능을 말하기도 한

다. 성을 쌓는다는 것은 한편으로 자기 생활 구역의 신성함을 지키지 위함이었다. 벽은 소통과 차단의

이중성을 동시에 갖고 있다. (semantic pluralism). 우리나라 삼한시대에 소도라는 특정 구역을 신성시하며

141

출입 통제 구역으로 정하고 그곳의 일정한 선을 넘지 못하도록 담 wall을 세우거나 장승 같은 상징물을

세워서 경계표시를 하고 경계를 구분했다. 일반인들이 싸리로 싸립문을 세워 자기 집의 경계를 표시하거

나 영국이 북아일랜드를 쳐들어가 정복지를 삼을 때 자신들의 거주지역에 대해 나무막대기 pole를 세워

표시한 것은 소도 구역처럼 남이 일정 구역을 침입하지 못하도록 경계선을 표시한 것이었다. 신성함이란

자유를 의미한다. 그런데 이 선성한 자유는 밖으로부터의 차단이라는 역설적인 조건을 필요로 한다. 자

유는 이렇게 내재된 구속이 전제된다. 흔히 남녀7세부동석이라고 남녀간의 보이지 않은 선으로 ‘넘지 못

할 선’을 그어 놓고 있는데 그 선은 인간이 가진 인격을 신성시하고 존중하기 때문에 그어 놓고 있는 선

이다. 종교와 정치의 분리 원칙을 말하는 은유적 표현으로써 “wall of separation”의 의미를 살펴 보자.

“Wall of separation”

“월 스트리트 Wall Street”는 초기 네델란드 이주민들이 원주민인 인디언들의 거주 지역에 들어가 살면서

벽을 쌓고 walled 경계를 이룬 특정 구역을 표시한 말이었다. 하지만 wall과 street이라는 서로 상반된 뜻

을 가진 두 단어가 서로 연결되고 결합되고 혼합되어 새로운 의미를 지니고 있다. ‘Wall 담벼락’은 교류

가 차단된 중세시대의 성채가 연상되는 말이며, 성벽과 같이 누구도 넘을 수 없고 바깥과 안이 완전하게

분리되는 경계를 이루는 완벽하고 엄격한 ‘단절’의 의미를 갖고 있다. “성채 원칙 Castle Doctrine”이란 사

람의 주거지는 경찰의 압수 수색으로부터도 보호받는다는 개인 프라이버시의 절대권“inviolability of the

dwelling house”을 인정하고 있는 영미 헌법상의 원칙을 말한다. 약 4백년 전인 1604년경부터 확립된 이

원칙을 상징적으로 표현해 주는 격언은 “An Englishman's house is his castle. 영국인의 집은 그의 성이다.”

영미국인은 이와 같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혼자 떨어져 있을 left alone’ 사적 공간을 신성시 ‘sanctuary’ 여

기는 법문화를 지켜오고 있다. 이를 보호하는 미국 연방 수정헌법 제4조의 규정은 다음과 같다. “불합리

한 압수와 수색에 대하여 신체, 주거, 서류, 물건의 안전을 확보할 국민의 권리는 침해되어서는 아니된다.

종교적 선서나 비종교적 선서에 의하여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이유가 있어 특별히 수색할 장소와 압수할

물건, 체포•구속할 사람을 특정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영장은 발부되어서는 아니된다.”430

또 ‘Wall’은 은유와 상징적인 의미로 쓰인다. “Wall of Separation”은 은유적 표현이고, 미국 헌법에서 “종

교 분리”의 원칙을 나타나는 상징이자 관용어구의 의미로 쓰인다.431 이는 종교 자유를 찾아서 미국을 건

설한 미국의 법과 문화적 배경을 이해하지 않으면 그 의미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다. 한편

‘‘street’는 바깥의 길로써 누구든지 드나드는 공적 공간이다.

현대 사회는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서로 연접되어 있고 또 공기업 사유화 privatization 현상 가속 등 공

적 영역에서 사이익 추구의 여러 문제점이 나타나고 있다. “공유지의 비극”이 그 중에 하나인데 이는 “이

해관계의 충돌”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해서 발생되는 문제점이다. 이해 관계의 충돌이란 사회 전체의

이익을 위해서인가 아니면 자기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인가 긴장 관계에 놓여 있는 이 둘 사이의

충돌의 어떻게 조화와 균형을 이룰 것인지의 문제를 말한다. ‘월 스트리트’는 ‘자기 이익 추구의 극대화’

의 갇힌 성 wall이 아니라 사적 욕망이 공공의 이익의 방향 road으로 전환되어 개인과 국가 사회 공동체

전체의 이익으로 발전되어 가는 제3의 가상적 공간이 아닐까? 긴장관계의 공과 사적 영향이 서로 조화

되고 융합되어 번영과 발전으로 나아가는 ‘도상적 존재’가 아닐까?

430

“The right of the people to be secure in their persons, houses, papers, and effects, against unreasonable searches and seizures, shall

not be violated, and no Warrants shall issue, but upon probable cause, supported by Oath or affirmation, and particularly describing the

place to be searched, and the persons or things to be seized.” 431

Everson v. Board of Education, 330 U.S. 1 (1947).

142

차단벽의 효과는?

오늘날 교류의 시대에서 중세 시대의 성안에서의 격리된 삶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다. 그럼애도 불구하

고 오르지 못할 만큼 담벽을 높게 쌓는다고 해서 완벽한 차단을 할 수 있을까? “만리장성”이 무너졌고

인종차별의 벽이 무너지고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높고 두꺼운 벽을 쌓음으로써 인

간의 이동을 인위적으로 막을 수 없다. 이동성은 인간 본성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담벼락

wall을 쌓고 한 곳에 정주하는 지역성을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 모든 성에는 안팎으로 통하는 길 즉

상호 교류가 존재한다. 성안에서의 지역적 폐쇄성으로 인해서 통일성과 일반성을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동과 상호 교류가 통일성과 일반성을 유지한다. 이것은 역설적 모순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개방 체제의

본질적 효과에 속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6.10. 단어의 의미와 문장 구조

“바틀비 스토리”에서 “대답했다”는 말로 번역되는 영어 단어로써 answer, response, reply 등을 각 문장의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선택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대꾸, 대답, 답변, 응답, 반응 등의 단어는 상호 교차해

서 쓸 수 있다. 하지만 즉답한다거나 천상의 소리에 즉각 반응하였다는 경우 등 각각 구분해서 쓰이고

있다. Answer는 상대방의 말을 이어 받아 대답하는 것이고, reply는 뜸 들이다 정식 문서로 답변 제출하

다 할 때의 의미를 갖는다. Response는 뜸 들이지 않고 즉시 응답하는 것. 교회 예배에서 목사나 신부

가 먼저 물어보면 회중 신도가 바로 따라서 성경구절을 말하는 것이 그러한 예에 속한다. “기도에 응답

하다”라는 표현을 쓰는데, response는 계속 이어가는 도중에 일어나는 응답하는 것이다. 법률용어로써

answer, reply, response는 각각 상황에 따라 구분되는 뜻을 가지고 있다. “Reply”는 피고가 제출한 원고

의 질문에 대한 답변서에 대해서 원고가 재반박하는 문서 답변을 말한다. “A plaintiff's formal response in

answer to that of a defendant.” 답변(반박)에 대한 재반박(재반론)을 하는 것을 말한다. 소장에 대한 답변

서는 in reply를 쓰고, 만약 원고가 피고에 대한 답변을 요구할 때 inquiry 라고 한다. 이와 같이 “바틀비

스토리”에서 작가는 세심하게 단어를 구분해서 쓰고 있다. 대답하다, 진술하다, 답변하다, 반박하다. 해명

하다 등은 모두 비슷한 의미로써 한 단어로 쓴다고 해서 의미가 통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각 단어들이

특정한 문맥에서 의미와 뜻이 보다 구체화된다. 상황에 적절하다고 여겨지는 단어를 선택하게 되는데 그

의미는 문맥에 따라 판별된다.

143

7. 통합적 법률해석 Synthesis이란 무엇인가?

다음의 가상적인 로스쿨 형법 시간 수업 내용 대화를 통해서 통합적 해석의 방법과 그 과정이 어떻게 이

루어지는지를 살펴보자.432

범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위법한 행위가 저질러졌다”는 범죄 행위의 존재가 입증되어야 한

다. 외부로 표시되어 나타난 즉 저질러진 ‘범죄 행위’를 라틴어로 ‘Actus Reus 액투스 레우스’라고 말하는

데 영어로 ‘guilty act’, ‘wrongful act’, ‘criminal act’ 등으로 번역한다. 형법은 위법한 행위가 일어났어야 하는

것 ‘actus reus 범죄 행위’뿐만 아니라 이 때 ‘knowingly 고의 즉 범죄 의사’가 존재하였음을 범죄의 성립요

건(구성요건)으로 하고 있다. ‘범행을 저지를 의도 intent’를 라틴어로 ‘Mens Rea’로 표현한다. Mens Rea

는 ‘멘즈 레아’로 발음되고 그 뜻은 영어로 ‘evil intent’, ‘guilty mind’, ‘criminal thought’ 등으로 번역된다. 의

회가 제정하는 법률 규정은 알기 쉬운 일상적 영어 표현을 우선시한다. ‘knowingly’는 우리나라 법률 규

정의 ‘고의로’, ‘행위 또는 그 情을 알면서’의 법률 규정이 이에 해당되는 표현이다.

교수: 오늘 수업 시간에서는 지난 시간에 배운 범죄 행위의 개념을 실제 판례를 통해서 이해하도록 하겠

습니다. 지난 수업 사건에 배운 내용은 형법상 범죄가 성립되려면, 먼저 범죄 행위가 일어났어야 한다는

것 판례법과 제정법률에서 어떻게 범죄 행위를 다루고 있는지를 그 개념을 공부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토의할 판례는 R. v. Grey사건입니다.433

(변호사는 무엇이 법인지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하고, 판결문을 읽고서 어떤 면에서 항소를 할 수 있는

지 판결문의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해 내는 기술을 습득하여야 한다. 로스쿨 학생들은 변호사가 케이스를

고객으로부터 맡아서 판사의 판결을 받아내기까지 어떻게 처리해 나가는지-이를 “변호사로서 생각하기

thinking like a lawyer”라고 말한다-를 몸소 체득해 나가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케이스 수업은 표면적으로는

판사의 판결문을 배우지만 그 심층구조에는 “변호사처럼 사고하는 방식과 그 실무 thinking like a lawyer and

acting like a lawyer”를 배우는 것이다.

학생: 피고인은 대마초를 소지한 죄로 원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습니다.

(‘유능한 법조인’은 다른 사람에 비해 판결문을 읽고서 핵심 내용을 빨리 이해해내는 전문가 능력을 발휘

한다. 이러한 법조인의 전문가 능력은 하루아침에 얻어지기 어렵다.434 유능한 법조인의 기술은 물이 서

서히 스며드는 삼투압 과정처럼, 다른 법조인이 하는 바를 보고 따라서 배우면서, 수많은 사례들을 꼼꼼

히 읽고, 법리를 분석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통해서 서서히 축적된다.435)

교수: 양당사자(원심에서는 원고와 피고, 상급심에서는 항소인과 피항소인) 의 항소이유는 어떤 주장이었

나요?

432 로스쿨의 전통적인 수업방식은 ‘소크라테스 케이스 방법’을 따르고 있다. 소크라테스 케이스 방법론의 실례를 가상

적인 강의실 대화를 통해 설명하고 있는 덴버대 로스쿨 자료를 번역하고 실제 법원 케이스를 바탕으로 재구성하고

필자의 부연설명을 덧붙였다. https://www.law.du.edu/index.php/law-school-learning-aids/the-classroom-

experience/examples/socratic-method-example 433 1996 CanLII 35 (ON CA), http://canlii.ca/t/6jd5. 434 Maule J, “Classroom dynamics and learning culture”, at 92. 435 Sullivan W., “Educating Lawyers: Preparation for the Profession of Law”, Carnegie Foundation, 2007, at 47.

144

학생: 검찰은 피고가 살고 있는 방안에서 대마초가 발견되었다고 주장하고, 피고는 대마초가 방에서 발

견되었다는 하는 단순한 사실로는 형법에서 말하는 대마초 소지죄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법관과 의회입법자는 다른 위치에 있으면서 다른 방향으로 바라본다. 법관은 과거를 바라보고, 입법자

는 미래를 바라본다.”-롤즈 Rawls의 말이 시사하듯, 법원과 의회는 범죄의 처벌과 예방의 목적에서는 동일

하지만 서로 다른 관점에서 법을 적용을 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양자의 차이가 존재한다.)

교수: 범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위법한 행위가 저질러졌다’는 범죄 행위의 존재가 입증되어

야 합니다. 외부로 표시되어 나타난 즉 저질러진 ‘범죄 행위’를 라틴어로 ‘Actus Reus 액투스 레우스’라고

말하는데 영어로 ‘guilty act’, ‘wrongful act’, ‘criminal act’등으로 번역합니다.

학생: 마리화나를 소지할 범죄 의도의 존재와 스스로 마리화나를 소지 또는 소유 지배한 행위가 동시에

일어났음을 입증해야 합니다.

(‘소지 possession’에 관한 ‘행위’를 규정하고 있는 법률에 대해 다음을 참조하라.436 형법은 제정법률로 판

례법을 수정하는 경우가 많은 법분야 가운데 속한다. 성범죄나 마약범죄 등 입법정책적으로 의회입법의

형태가 일반적인 경향이다.)

교수: 앞서 배운 다른 판례 McHenry v. State 437에서 거론한 범죄 행위에 대한 개념의 파악과는 어떻게 다

른가요?

(판례법에서 법원칙을 발견하고 적용하는 데 있어서. 다른 판례들과 비교하고 대조하는 작업-즉 구별

distinguish할 수 있는 변별능력은 매우 중요하다. “법리를 적용한다 application of the rule”는 것은 이전의 사

례에서 적용한 법원칙을 유사한 다른 사례에서도 똑같이 적용한 것을 말한다. 여러 판례들의 관계를 정

확하게 알고 있고 이해하고 있는지 distinguished or explained 여부는 구별능력에서 찾아질 것이다.)

학생: 형법 용어로써 ‘범죄 행위 act’는 피고인이 그렇게 행위를 하고자 함을 인식한 상태에서 신체 동작

이 일어났음을 말합니다. 반면에 소지 또는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수동적인 의미로써 실제 행위가 일어

났다는 것이 아니라 그런 ‘정황 circumstance’이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교수: 이 사건에서 법률 쟁점은 무엇이었나요?

학생: 법률 쟁점은 일반인이 대마초나 향정신성 마약을 소지하거나 또는 그것들을 흡입할 만한 상황이 되

지 못한 장소이지만 그것들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판단된다면 마약소지죄로 유죄 처벌이 가능한 지의

여부입니다.

교수: 법원의 판단은? 판결 이유를 말해보겠어요?

436 “For the purposes of this Act, .. (a) a person has anything in possession when he has it in his personal possession or knowingly”-

N.Y. Penal Code:

http://public.leginfo.state.ny.us/LAWSSEAF.cgi?QUERYTYPE=LAWS+&QUERYDATA=@LLPEN+&LIST=LAW+&BROWSER=

EXPLORER+&TOKEN=49048708+&TARGET=VIEW, (45 N.Y. Laws Ann. § 3306.).; 21 U.S.C. §844(a) (2006). 437 McHenry v. State No. 79A02–0303–CR–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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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판례법에 따르면 마리화나를 소지하는데 고의뿐만 아니라 관리하고 지배할 의도가 있었다는 것까

지를 입증하여야 합니다. 제정법률에서 규정하고 있는 범죄구성에 따르더라도 판례법과 마찬가지로 피의

자의 고의와 관리지배의 의도라는 두 가지 구성요건이 ‘일체의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거의

완벽하게 입증 beyond a reasonable doubt’되어야 합니다.

(미국법원의 형사사건에서 판사가 평결에 임하는 배심원들에게 주지시키는 권고문 훈시는 다음과 같다.

“합리적인 의심이란 피고인의 유죄에 대하여 타당한 불확실성이 드는 것을 말합니다. “일말의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들지 않도록 하는 입증기준 beyond reasonable doubt”이란 배심원 여러분이 피고인의 유죄를

분명하게 확신하게 만드는 입증기준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 사람의 지식이란 완벽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은 거의 없고, 형사 사건에서 법은 모든 가능한 의심까지 전부를 뛰어넘는 입증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제출된 증거를 고려하여 판단한 결과 피고인이 기소된 범죄에 대해서 유죄라는 분명한 확신이 든다면, 피

고인을 유죄로 평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약 제출된 증거에 의해서나 또는 증거가 부족하여 피고인이

유죄라는 것에 대해 일말의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면, 그러한 의심이 피고인에게 유리하도록 하고 피고인

은 유죄가 아니라고 평결해야 합니다.”)438

교수: (학생 A를 향해), 방금 설명한 말을 전체 동료 학생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다시 한번 설명해 주겠

어요?

학생: 피고인의 유죄를 확정하기 위해서는 제출된 증거를 통해서 유죄에 대해서 어떤 합리적인 의심의

여지가 들지 않을 정도로 명명백백하게 유죄라는 것을 검찰이 입증해야 합니다. 피의자가 인식하고 있었

느냐에 대한 판단은 직접적인 증거가 없는 경우에 ‘정황 증거 circumstantial evidence’로써도 가능하다고 법

원은 판단했습니다. 다시 말해 그 장소가 피의자가 사용하고 있는 주거지에서 발견되는 경우에도 피의자

의 인식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법원은 판단했습니다. 이러한 경우 피의자의 ‘지배 의사 intention to

control’가 확인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교수: 그런데 이 사건에서 법원은 왜 무죄라고 판단한 것인가요?

학생: 법원은 마리화나를 피웠다는 직접 증거가 없는 이상 마약을 소지하거나 또는 그런 정황만으로는

유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판단했습니다. 좀 더 광의로 보아 운반도구를 이용하여 마리화나를 충분히 지

배하고 있었거나 또는 마약을 운반, 사용 또는 폐기할 상황에 있었다고 해도 유죄로 처벌될 수 없다고 판

단했습니다.

교수: 법원은 법리 적용이 옳은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 범죄의 구성요건을 구체적으로 각각 살펴봅니

다. 어떤 상황에서 피고가 마약을 ‘그의 지배 관리하에 두고 “under his/her control’있는지를 판단합니다.

이를 위해서 구체적인 법률 조문과 이런 법 해석에 관계했던 이전의 판례들에서 모두 찾아 검토합니다.

법원칙을 찾아내기 위해서 이들 속에서 각각 사실관계와 법원칙을 종합해 보는 것입니다. 만약 지금까지

의 판례들에서 이러한 ‘knowingly under his or her control’을 정확하게 설명하지 않는다고 봅시다. 예컨대

차량 속에서 발견되었는데 그 차량을 다른 사람이 사용하고 있었던 경우, 또는 택배로 부친 경우라면 이

438 미국 모범 형법 중 “jury instruc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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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 판례들에서 나타난 상황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을까요? 또는 법률 조문에서 규정한 ‘유사 지배

constructive possession’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학생: 교수님께서 예를 든 ‘가상적인 상황’은 실제적인 소지를 하였으나 소지할 의사가 없었습니다. 패키

지 안에 들어 있는 물건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한 상황이었기 때문입니다. 관리 지배할 의사 즉 사용하거

나 폐기할 권한 등을 행사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439 소지할 의사가 존재하지 않았고 또 어떤

제한된 범위내의 장소에서 발견된 경우 유사 소지로 볼 수 있다는 제정 법률에 규정된 조문 the statutory

language과 형사정책상의 목적 policy을 뛰어 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교수: 의회가 제정한 실정 법률의 취지가 이러한 종류의 소지를 금지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피의

자의 범죄 의사가 확인된다고 여길 때 피의자가 범죄 행위를 ‘인식’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인식은 적극적

인 인식과 수동적인 의미에서의 인식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우리들이 흔히 ‘이해’하고 있는가와 ‘단순

히 알고’ 있는가는 구분됩니다.

(법을 분석하고 적용하는 기술은 인지 능력을 필요로 한다. 이를 갖추기 위해서는 먼저 그것에 필요한

지식을 익혀야 한다. ‘mens rea’같은 법률용어를 익히고, 법조문에 관한 법률지식이 있어야 하고, 민사법정

과 형사법정의 차이, 사실심리와 법률심의 차이, 원심과 항소심 등의 차이점 등 그에 관련된 법 규칙들을

알고 있어야 한다. 여기에 필요한 지식은 단순히 알고 있는 사실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해력

comprehension은 단순한 지식만으로는 부족하고, 기존의 알고 있는 지식을 새로운 해석하는 인지 과정이

필요하다. 어떤 법원칙을 알고, 판례를 알고, 판결 이유를 알고, 또 어떤 개념을 주어진 다른 사건과 관

련해서 설명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가 이해하고 있다고 판단할 것이다. 단어의 뜻을 알고 있는 경우에도

이해하기 힘든 경우를 생각해 보라. 우리들이 이해될 때까지 읽기를 반복하는 과정을 참조해 보라. “이

사건에서 actus rea는 무엇인가요?”, “공식적으로 법률이 효력을 발생하기까지의 절차와 과정은?” 이런 질문

등으로 지식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뭐죠?”, “두 개념을 비교 설명

해 주세요?”와 같은 질문 등으로 이해 여부를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목수나 엔지니어 같은 장인의 직업은 장인들의 행동 동작을 지켜 보고 따라서 모방하면서 기술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와 같이 인지적인 도제 과정을 통하는 전문가의 경우 기본적인 기술 습득

은 암기하고 인식하고 이해하고 분석하는 과정이 수반된다. 이러한 인지적 과정은 외부적 행동을 통해서

모방하기란 쉽지 않다. “천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우리 속담이 있는데 사람의 마

음 속은 열어 젖혀서 꺼내 볼 방법이 없다. 따라서 인지적 작용을 하는 사람의 머리 속은 단지 질문과

대답을 통해서 외부적으로 표현되고, 지켜볼 수 있고, 모방할 수 있을 것이다. 반대로 가르치는 사람도

질문과 대답을 통해서 학생들의 이해 여부를 파악할 수 있다. 학생이 하는 말을 듣고서 틀린 부분이나

미흡할 부분을 수정해줄 수가 있는 것이다. 법 공부에도 이렇게 주고 받는 상호작용의 환경이 필요하다.

이러한 인지 학습 과정의 법률 공부는 강단에서 강의하는 식의 주입식 교육으로는 이루어지길 힘들다.)

교수: 범죄자로 처벌되기 위해서는 범죄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 입증되어야 합니다. 형법상 가장 기초적

인 구성요건은 범죄 행위와 범죄의사가 동시에 존재했다는 것. 즉 범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위법 행위

guilty act’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범죄 행위가 일어났을 때 함께 범죄 의사 즉 ‘범행을 일으킬

마음의 상태가 존재 guilty mind’했음을 동시에 입증하여야 합니다. 이에 따라 검찰은 피고인이 범죄를 충

439 exercise of dominion i.e. power to use, locate, dispose or designate us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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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히 일으킬만한 범죄 동기와 범행과의 직접적 연관성을 밝혀내야 할 임무가 있습니다. 이렇게는 범죄

사건이 일어날 수 없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을 이론 theory이라고 말합니다. 검찰과 변호인

의 핵심은 법적 이론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440

학생: 법률 제정자들이 법률을 제정한 취지는 어떤 행위를 금하고자, 예컨대 부동산 투기를 억제하고자

실거주자가 아닌 외부인에게 농지를 매매하는 것을 제한하는 법률 등과 같이 마약법도 마약의 흡입과 유

통을 억제하고자 마약단속법을 제정한 것입니다. 인간의 모든 행위에는 의도가 개입된다는 전제에서 범

죄 의사의 존재 mens rea를 범죄 구성 요건으로 정해 놓은 것입니다.

교수: 혹시 여러분 중에 영화배우 ***등 유명인들이 마약 관련 체포되었다는 오늘 아침의 신문기사를 읽

어 봤나요?

(법률 취지가 마리화나 끽연을 단속하고자 하는 것이라면 이런 목적은 달성되기 어려울 것이다. 마리화

나를 피우는 것에 대해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범죄 의식이 희박하고 또 사실상 마리화나를 끽연한 경우가

꽤 많다. 미국에서 마리화나 관련 건으로 연간 70만 명이나 이른다는 보고서를 참조하라. 이런 마리화

나 끽연에 관한 경험적 연구에 의하면 법률 제정의 취지는 달성되지 못했다고 보여진다. 이런 점을 감안

하여 네덜란드 같은 나라에서는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에 범죄시하는 법률을 없애버리는 비범죄화

decriminization의 형사 정책을 실현해 가고 있다.)

교수: 이러한 법 원칙은 누구에게 적용되나요?

(형사 사건이므로 피고인에게 대해서만 법률 효과가 발생한다. 법원은 하나의 사건들을 다루고 거기에서

개별적인 정의를 실현해 낸다. 만약 고등학교에서 마약 단속을 하는 경우 인권 침해에 대한 집단 소송

(미주리 주의 고등학교 압수수색에 대한 인권침해 집단 소송 케이스441이 가능할 것이며, 또 집안에서 마

리화나를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주법에 대해 사생활 보장의 헌법상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위헌법률 소송

을 제기하는 경우가 나타난다.)442

학생: 이 사건의 피고인과 미래에 기소될 잠재적인 피고인은 이번 판결 사건 내용과 연관 관계를 구별해

내기란 생각만큼 쉽지 않을 지도 모릅니다.

교수: 이런 측면에서 법은 하급법원이 법을 적용할 때 좀 더 쉽게 해야 하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사

법부에서 판단하는 일반 사건은 당해 사건에만 효력을 한정됩니다. 당해 사건을 떠나서 추상적인 일반인

을 대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선례를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Followed’ 경우에 한정될 것입니다.

한편, 법률취지와 형사정책상 고려를 넘어선다고 법원이 추론하는 경우에는 어떤 때일까요? 법원의 판결

은 마리화나를 피우는 사람이 늘어나서는 아니되겠다는 마리화나 법률 제정자의 취지를 부정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겠죠? 형사정책상의 목표와도 배치되는 것인데 왜 법원은 이렇게 판단하는 걸까요?

(제정법률과 법원의 선례와 실제 사건을 종합하고 통합적으로 분석하는 작업을 ‘Synthesis’라고 말한다.)

440

(우리나라 언론기사에서 무리한 “짜맞추기 수사”로 억울하게 피해를 당했다는 비판 기사들이 흔히 발견된다. 이

는 검찰이 범죄의 이론을 잘못 구성한 결과에 해당할 것이다.) 441 https://www.aclu.org/criminal-law-reform/minter-et-al-v-claycomb-et-al-complaint. 442 Ravin v. State 537 P.2d 494 (Alaska 19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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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법원은 결사의 자유를 제약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법원

은 국민의 기본권이 제약될 우려가 있지 않느냐에 보다 큰 관심을 갖는 것 같습니다.

(판례법 국가에서 법원은 국민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 the last bastion the Court as the last bastion of

liberty, to protect against overweening government” 라고 인식된다. 헌법상 보장되는 집회결사의 자유와 행복

추구권의 측면에서도 기본권의 침해 가능성을 막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므로 혼자

서는 살기 어렵고 항상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고 있다. 두 사람이상의 관련되는 공모죄 complicity의 구성

요건을 엄격하게 해석하고 있는 배경에는 역사적으로 공모죄는 정부가 국민의 집회 결사의 자유를 억압하

려는 정치적 목적에 봉사했던 사례가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이런 측면에서의 검토가 필요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한 사람이 자신의 지배 관리하에 전혀 놓여 있지 않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두 사람

이상이 공모하여 어떤 무고한 사람에게 죄를 덮어 씌운 전례가 적지 않았음을 볼 때 무고의 가능성을 경

계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또 O.J. 심슨 사건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경찰관들이 자신들의 싫어하는 사람에게 불리하게 작용하게

끔 증거를 조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R v. Grey 사건에서와 같이 마약사건 재

판에서 법정 증거는 오로지 경찰관들의 진술에 의존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에 혹시나 함정수사 또는

누군가가 마약을 몰래 숨겨 놓았다거나 하는 그런 경우라면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경우 억울하게 희

생당하는 사람이 나와서는 안될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법원의 입장은 검찰의 입장과는 차이가 날 수 있

다. 법원의 사법 재판은 행정부 편의 차원에서 재검토하는 것이 아니다. 또 판례법이라고 해서 제정법

과 전혀 관련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입법부가 제정한 법률 규정과 법원의 선례들을 통합

해서 종합적으로 분석해 낸다.)

교수: 이전의 판례들과 형법 법률 조문 그리고 현재 사건을 다같이 종합해서 판단할 때 법리는 어떻게 구

성되어야 할까요?

(법관이 당해 사건에서 판결의 결론에 도달하게 된 이론적 논리 과정을 ‘법적 추론 legal reasoning’이라

고 한다.)

교수: 왜 법원은 관리지배의 의사가 충분하게 나타나지 않았다고 판단했지요?

학생: 법원은 거주하는 방이 자신의 관리 지배하에 있다고 해서 바로 마약을 사용하거나 다루고 처분할

수 있는 관리 지배한다는 것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증거로 판단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본 것입니다. 법

원은 피의자가 마리화나에 대한 관리 지배의 행사 정도를 검찰이 입증하여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이 단계는 유사한 상황에 놓여 있는 사건이 실제로 법원 사건으로 법률적으로 다루어질 때 제정된 법률

의 규정과 그 법률을 해석할 때 종합적 분석을 하게 된다. 예컨대 마약 중범죄의 경우 마약 운반책까지

엄중 처벌하는 실정법률 규정의 형사정책상의 관점을 법원은 고려할 것이다. 법률 해석의 Synthesis 단

계는 애매 모호하거나 탄력적인 법률 조문을 해석하고 구체적인 사건에 적용할 때 추상성을 가진 법 개념

과 의미를 어떻게 종합적으로 응용해서 실제 사건의 결론을 도출해내는 작업에 해당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헤라클리터스가 “사람은 같은 강물에 두 번 다시 발을 담글 수 없다 You cannot ste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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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o the same river twice”고 말했는데, 해와 달이 뜨는 자연 사실과는 달리 인간 세상에서 사람의 일은 앞서

서 일어난 사건과 사실관계가 100% 같은 경우는 존재하기 어렵다. 또 시대와 환경이 달라져서 법적 쟁

점이 달라질 수도 있다.

법의 해석이란 고정불변의 고체가 아니라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다르게 적용될 수 있는 변화하는 액체의 성

격을 갖고 있다. 현재 계류된 구체적인 사건을 해결해내기 위해서 이전의 사례를 살펴 보는데 이전의 판

례와는 다른 새로운 상황에 놓여 있는 현재의 사건을 어떻게 통합적으로 적용해야 할 것인지 그러한 통합

능력이 현재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법적 추론 legal mind의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이유

가 여기에 있다.

150

8. 살인죄의 고의 입증과 정신이상의 항변 사유

8.1. 아담스 살인 사건 재판 경과 과정

1841년 9월 뉴욕 시내 빌딩에서 아담스가 콜트에게 피살된 살인 사건이 발생했다. 콜트는 다음해인

1842년 1월 17일 살인죄로 기소되었고 이에 재판이 뉴욕주 중범죄 형사 법원 the Oyer and Terminer 에서

열리게 되었다. 이 중범죄 법정에서는 판사 이외에 뉴욕시 의원 2명-(이들 배석판사를 “엘더맨 alderman”

이라고 부른다. 연방법이 아닌 주법에서는 3권분립이 엄격하게 지켜지지 않는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elderly man”으로 표현한 것은 발음이 같고 사회적으로 통상 지도층-사법부를 구성하는 기초 단위 판사인

“Justice of Peace”와 구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이 배석한 3명의 법관이 재판을 주재하였다.

희생자 아담스는 인쇄업자 즉 언론계에 종사하였고, 범인 콜트는 사업가이었고 또 그의 동생은 총기 특허

를 가지고 총기 제조업을 영위하여 큰 돈을 번 사업가이었다. 이러한 사건당사자들의 배경 또한 살인 사

건의 화제거리를 더했다. 대배심원단을 구성하기 위해서 300명이 넘는 주민들이 차출되었고, 주요 신문

들이 주요 기사로 크게 다루었다. 미국은 영미법의 전통대로 법정 재판 중심 주의를 따르고 있는데 이와

같은 큰 사건은 여론의 지대한 관심을 받게 된다. 콜트는 자신의 집안 배경으로 인해 유명한 변호사로

변론단을 구성하고 살인죄가 아니라 과실치사, 정당 방위, 정신 이상에 의한 정상 참작의 변론을 펼쳤다.

검찰은 처음에는 살인 도구가 권총이라고 주장했다가 사망자의 두개골 검시 결과 총상이 사망원인이 아니

라는 변호인의 반대심문에 직면하고 기소장을 변경했다. 당시 여론은 백만장자의 가정 문제를 화제삼고

범인을 도덕 파탄자로 몰고 갔다. 소수 신문만이 “불운한 우발적 사건 misfortunate accident”으로 보도했

을 뿐이었다. 살인범의 증언 이외에 결정적인 물증이 제시되지 못한 가운데 배심원에 의해서 살인죄로

평결났고 이에 사형이 선고되었다.

콜트는 상고했지만 기각되었다. 1842년 11월 11일, 뉴욕주지사에 의한 최종적인 재심이 열렸지만 법원의

판결 결과를 바꾸지는 못했다. 법원 판결 대로 1842년 11월 18일 교수형이 집행되기 직전 범인 콜트는

누군가 건네준 흉기로 자살했다. (People v. Colt, 3 Hill 432 (1842).

1843년 최초로 확립된 영국의 믹노텐 원칙이 그보다 1년 전에 열렸던 콜트재판에서 인정되었다면 콜트는

정신이상을 이유로 최소한 사형만은 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8.2. 정신이상의 항변 사유-“믹노텐 원칙”

살인범 콜트에게 사형 선고가 내려진 1842년 바로 다음 해에 영국에선 정신이상자에게 살인죄의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역사상 새로운 형사법 원칙이 탄생되었다. 새로운 원칙이 탄생되는 최초의 사건은 앞으

로 모두에게 영향을 미치고 정치 사회 법적으로 큰 반향을 불러온다. 역사적으로 오랜 가치를 두고 익혀

온 작품을 “고전” 문학, 고전 음악을 “클래식”이라고 말하는데 이와 같은 효과를 가져온 첫 케이스를 “고전

적 the classic test”케이스라고 말한다.

1843년 믹노텐 M'Naghten은 당시 영국 수상이었던 필 Peel이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고 믿은 환청 상태에

서 필을 향해 권총을 발사했으나 대신 수상이 아닌 수상의 비서인 드럼몬드가 그 총알을 맞고 사망했다.

이 사건에서 범인 믹노텐은 “싸이코” 정신병자라는 정신과 의사의 진단 결과가 증거로 채택되고 이에 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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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범인은 정신이상을 이유로 살인범이 아니라는 not guilty by reason of insanity 판결이 내려졌다. 국가

최고 지도자를 저격하려고 일어난 살인사건에서 살인죄가 아니라는 새로운 선례적 판결이 나오자 영국의

정치 사회는 떠들썩해졌다. 영국 국회(상원)는 대법원에 정신이상에 따른 무죄 판결 criminal insanity에

대한 정확한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결의를 채택했다.

대법원은 “믹노텐 원칙 M'Naghten rule”으로 잘 알려진 정신이상에 의한 무죄 판결 criminal insanity을 다음

과 같이 개념 정의했다. “범죄자가 범죄 행위 시에 정신병으로 인한 이성의 흠결이 작동된 상태이었고

그리하여 자신이 하는 행위의 내용과 성격을 인식하지 못했을 경우 또는 자신의 일으킨 행위가 잘못된 것

인지를 분간하지 못했을 경우에만 살인죄에 대한 항변사유로 인정될 수 있다.”443

오늘날까지 거의 모든 국가에서는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옳고 그름의 차이를 분간해 내지 못하는 정신 이

상 cognitive insanity 상태 아래 일어난 사건에서는 무죄 가능성의 규정을 두고 있다. 또 더 나아가 선악

의 구분을 할 수 있었다고 해도 자신의 행위를 스스로 제어할 수 없는 특수한 상태 즉 인간의 자유 의사

를 결정할 수 없는 자유 의사 결정 능력의 상실 volitional insanity의 경우에까지 정신이상에 의한 무죄 가

능성을 확장하는 경우도 있다.

형평법 법원은 대개 판사의 “재량적 판단 discretion에 달려 있다. 정신이상에 의한 무죄 항변사유는 판사

의 재량적 판단 영역에 속한다. 따라서 정신이상의 경우 무조건 무죄방면이 된다는 것이 아니라, 각자

특수한 사건의 특별한 사정에 따라 사건을 맡은 판사 각자에 따라 각각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판사의

재량적 판단에 맡겨져 있다는 것은 법은 때로는 사회의 선호에 의해서 결정되기도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판사는 사회 공동체의 의견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재량권 discretion은 자의성이라고도 번역되는데 재량과 자의는 동일한 의미는 아니다. 법에서 ‘discretion’

의 개념과 의미는 매우 어려운 부분에 속한다. 형평법 법원에서 법관이 내리는 기준은 discretion이다.

‘discretion 재량권’의 개념을 한 마디로 정하기는 쉽지 않다. 간단한 비유를 들어보자. 무죄와 유죄를 결

정하는 것에 대해 법관이 전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법관은 살인자를 무죄 방면할 수는 없다. 유죄인지

무죄인지 여부는 법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지 재판관의 재량에 달려 있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편

살인범이라고 해도 그에 대해 양형 처벌 양형을 정하는 것 즉 사형 또는 무기징역을 선고할 지 선고형량

을 선택하는 것은 법관의 재량에 속한다. 그러므로 어떤 법관이 무기징역의 선고를 내렸다고 해서 그 법

관의 판단에 대해 법적 시비를 논하기는 어렵다. 법의 영역인지, 재량의 영역에 속하는지에 대한 판단은

이런 간단한 비유로는 쉽게 설명되기 어렵고 힘든 영역이다.

443 “insanity was a defense to criminal charges only if at the time of the committing of the act, the party accused was labouring under

such a defect of reason, from a disease of the mind, as not to know the nature and quality of the act he was doing; or, if he did know it,

that he did not know he was doing what was wrong. (Queen v. M'Naghten, 8 Eng. Rep. 718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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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직업과 이름, 외연과 내포, 의미 작용

9.1. “바틀비 스토리” 등장인물의 이름에 내포된 상징적 의미

“나는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소크라테스가 말했듯이 누구에게나 가장 중요한 질문에 해당할 것이다. 이

런 질문은 자신의 개성 personality과 정체성 identity을 확인하려는 의도에서 던질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대개의 사람들은 이에 대한 답을 타인과의 관계성에서 찾는 것 같다. 사람의 이름은 타인과의 관계

relationship에서 붙여진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라는 싯구절이 암시해 주듯이, 사람은 이름을 통해서 나의 “존재”는 남에 의해서 “변화”의 대상이 되어 버

리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은 역설적으로 “너는 누구인가?”의 질문하고 같

아지는 것 같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화자 the narrator인 변호사를 포함하여 사무소 직원들, 마부, 빌딩 주인, 임차인, 감옥

의 교도관과 간수 등 모든 등장인물들은 끝까지 익명으로 남는다. 바틀비 이름도 그것이 성씨인지 이름

자인지 정확하지 않다. 이름을 붙이고 있는 변호사 사무소 직원들인 터키, 니퍼즈, 진저넛 이들의 이름은

모두 별명 alias이지 그들의 본명은 아니다. 중요한 등장인물이 아니면서 이름 일부를 나타내 주고 있는

사람은 “Mr. B—”와 “Mr. Cutlets” 두 사람이다.

주인공에 해당하는 중요한 두 명은 바틀비 그리고 화자인 변호사이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정하

는 것에 어떤 규칙을 부여한 것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그 이름들에서 상징성을 부여하여 각자의 역할을 암

시적으로 제시해 보이기도 하는데, 직원들인 바틀비, 터키, 니퍼즈, 진저넛이라는 이름 속에서 “주인과 머

슴” 관계와 거기에 결부된 “상호 신뢰 duty of mutual trust and confidence”의 묵시적 의무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아래에서 그 이유를 보다 자세하게 설명해 보고자 한다.

9.1.1. 바틀비- Bart-(le)-bee, Battle-bee

“바틀비 스토리”에서 변호사와 바틀비 양자간의 대립 갈등 담판 구조가 전개되므로 결국 영자간의 “결투”

의 대결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양자간의 대립과 갈등의 구조는 화자인 변호사와 바틀비 사이뿐만 아니

라 이 소설의 거의 전부를 관통하고 있다. 터키와 니퍼즈의 발작증은 번갈아 가며 on-off 나타난다. “이

들의 발작은 경비병의 근무 교대처럼 서로 번갈아 이어졌다. 니퍼즈의 발작이 시작되면 터키의 발작이

그쳤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였다.”

“바틀비 스토리”의 이야기 전개 구조는 형식적으로 이분법적 구도이나 내용적으로는 통합의 중요성을 제

시한다. I 나와 너 You, 삶과 죽음, 행복과 불행, 자유와 복종, 동의와 폭력, 자유 의지와 필연성, 선과 악,

설득과 명령, 타협과 거부, 침묵과 고함, 주인과 종, 고용인과 피고용인, 부자와 빈자, 저축과 자선, 정사각

형과 원형, 보존과 변형 변화와 전통, 개인과 전체, 규칙과 재량, 전쟁과 평화, 발전과 후퇴, 진보와 보수,

보통법과 형평법, 방종과 자기 절제, 급함과 느림, 단정과 신중함, 낮과 밤, 오전과 오후, 빛과 어둠, 같음

과 다름, 차이와 반복, 대화와 독백444 ….

444

대화 dialogue와 독백 monologue은 이야기 전개 구조 즉 문단의 구조 양식에서 보여진다.

153

바틀비 Bartle-by

투키디데스의 “역사”에서 흥미롭게 묘사되듯이, 인간 역사는 전쟁과 싸움의 연속으로 점철되어 있는 것 같

다. 두 사람이 힘으로 생사의 승부를 겨루는 “결투”는 영어로 “trial by battle”으로 말한다. 인류가 살아남

아 자손을 번식시키려는 본능을 말하는 다윈의 “생존 투쟁”의 개념은 영어로 “struggle for life” 또는 “battle

for life”라고도 표현한다 “Bartle-by 바틀-비”는 발음상으로 “바틀-비 battle-by” 즉 “투쟁”의 의미를 갖는다.

영어 ‘a’의 영국식 발음은 미국식 발음과는 약간 다르게 ‘애’가 아닌 ‘아’에 가깝다. 야구방망이를 영어로

bat ‘뱃트’라고 읽는데 영국식 발음은 ‘밧트’에 가깝다. 영국식 발음과 미국식발음의 차이점을 나타내는데

흔히 사용되는 예로 “tomato”를 영국인은 “토마토”라고 발음하고 미국인은 “토메이토”라고 발음한다. 따라

서 바틀-비는 전쟁이나 싸움이 수반된다는 의미를 갖는다고 유추할 수 있다.

바틀-비의 접미어 “–by”는 “위대한 갯츠비 Gatsby”, Catesby, Ingleby, Digby 등의 성씨가 보여주듯이 영미인

의 가족이름에 “-by”이 붙는 성씨는 흔하다. (격렬한 스포츠인 “럭비 Rug-by” 축구는 산업혁명의 발상지

영국의 버밍엄에서 시작되었다.)

또 다른 의미에 대한 유추는 다음과 같다. 멜빌의 성씨 Melville은 음절이 mel-vil-le 으로써 끝의 le는 꼭

없어도 되는 묵음으로써 불필요한 장식 철자에 해당한다. 바틀비의 “le”는 묵음과도 같다고 보면 Bartleby

의 음절은 “Bart-bee”가 되겠다. “Bart”는 “귀족” “bee”는 “벌”이니 “귀족 되기 위해서는 벌 같이 행동해야

한다”는 의미를 유추해 볼 수도 있다. 끊임없는 자본 축적과 신분 상승의 욕구는 인간 본성에 해당한다

면 보면 “바틀비”에서 느껴지는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또 “Bee”는 “꿀벌”이 서로 도와서 일을 하는 것

에서 파생된 것인지는 잘 모르지만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bee”는 공동체 사회에서 서로 함께 도우며 일하

는 것을 뜻하는 단어이기도 하다. 참고로 단어 철자법 맞추기 대회를 “spelling bee”라고 부른다.

바틀비의 직업은 “필기사 scrivener”로서 그가 하는 일은 텍스트를 그대로 자기 손으로 손수 “모방 copy”하

는 작업이다. 모방은 창조적인 일과는 대조 대비된다. 사람들은 창조적인 일은 진짜이고, 모방은 가짜라

고 여긴다. 따라서 남을 단순하게 그대로 모방하는 “따라쟁이”를 혐오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우리들

은 왜 “키케로”를 모방하려고 골방에 처박혀서 암기하는데 죽을 힘을 다해 쓰는가? 모방과 창조적인 과

정을 설명하면서 벌꿀의 비유를 흔히 든다. 에라스무스가 키케로를 단순 모방하려는 키케로 추종자들을

비판하면서 들었던 벌의 비유를 보자. 에라스무스는 키케로를 모방하려는 사람들을 “키케로의 원숭이

Apes of Cicero”라고 비판하였다. 사실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특수한 어떤 기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또

설령 그런 기교나 지식이 있다고 해도 자원과 시간의 제약을 가진 인간인 이상 “완벽한 정치인 perfect

orator”의 능력을 갖추기란 불가능하다. 완전한 변화 없이 단순한 복제로써는 새로운 창조성 originality을

얻기 어렵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하지 않는가? 살아 움직이는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립 구조 가운

데 새로운 통합을 일구어 내는 과정-(헤겔의 정-반-합 These–antithese–synthese) 이 필요한 것 같다.

“자연계에서 한 예를 들어 보자. 벌은 벌집에 꿀을 모이기 위해서 하나의 수풀에서 재료를 모와 오는가?

그게 아니라 벌은 온갖 종류의 꽃, 잡목, 수풀 모두를 정말 열심히 날아다니지 않는가? 또 벌이 모아온

것 그것이 바로 꿀이 되는 것도 아니다. 벌은 그들이 모아온 재료를 자신의 기관을 이용하여 액으로 변

화시킨다. 그리고 얼마 후에 새로운 것이 만들어진다. 이렇게 새롭게 만들어진 것은 이전의 꽃이나 수

풀이 가졌던 향기나 맛은 가려낼 수도 없을 정도로 모든 재료들이 적당한 비율로 서로 혼합된 것인데 벌

은 이렇게 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 낸다. 이와 마찬가지로 암양은 한 가지 풀로 뜯어 먹고서 우유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암소는 온갖 가지 풀을 뜯어 먹고 또 풀에서 즙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그 즙

에서 변화된 우유를 생산해 내는 것이다.” (Erasumus, Ciceronianus (The Ciceronian), at 82.)

154

9.1.2. 터키 Turkey-“텅 빈 사람들 The Hollow Men”

터키 Turkey는 미국에서 추수감사절에 특식 요리로 등장하는 칠면조를 말한다. 터키는 동양(아시아)과 서

양(유럽)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이슬람 국가 명칭이기도 하다. 터키는 이런 뜻 이외에 엉뚱한 짓을 하는

사람을 지칭하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a person who does something thoughtless

or annoying”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터키가 하는 업무 수행 행태를 보면 상호 연관성

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또 작가가 “터키” 이름을 가져온 온 소재는 앞에서 설명한 “가이 팍스 사건”에

연관시켜서 이해할 수 있는 힌트가 있다.

가이 팍스 인형은 지푸라기로 만든 허수아비이고 이를 밤에 태우는 풍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19세기

전반에 미국에서 유행했던 흑인 만담 극 민요 가운데 “건초더미 속의 터키 Turkey in the Straw"라는 노래

가 있었다고 한다. 건초더미 속을 헤비는 칠면조의 장면을 보면 무언가를 속(의도)을 파헤치는 장면이 연

상되는데, 터키는 이 노래가사에서와 같이 지푸라기하고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지푸라기 허수아

비는 가이 팍스의 허수아비를 연상할 수 있다. 허수아비 scare-crow 는 가짜지만 “겁을 주어서 scare” 참

새 crow를 쫓아내는 기능을 맡고 있다는데, 지푸라기로 만들어져 있어 속은 텅 비어 있다. 허수아비는

인형극에서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종되는 인형과 같고, 또 겉과 속이 다른 존재를 나타난다.

TS 엘리어트는 “텅 빈 사람들”의 시에서 인간 문명의 허망성의 위기를 한탄했는데 문학비평가들은 엘리어

트의 이 시는 1605년의 가이 팍스 사건 등을 연상-allusion-시킨다고 말한다. “머릿속은 짚으로 꽉 찼다

Headpiece filled with straw” 이라는 싯구절이 나타난 1연을 읽어보면 가이 팍스 사건을 쉽게 연상할 수 있다.

시 구절 일부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우리는 텅 빈 사람들 / 우리는 박제된 인간들 / 함께 기대고 있으

며, / 머릿속은 짚으로 꽉 찼다. / 아아, 우리의 메마른 목소리는 / 우리가 함께 속삭일 때 / 소리 없고, 의

미도 없다. / 마른 풀잎을 스치는 바람처럼, / 우리의 메마른 지하실의 깨진 유리 위의 쥐들의 발처럼.” (T.S.

엘리어트, “텅 빈 사람들 The Hollow Men”)

9.1.3. 니퍼즈 Nippers–은밀한 행각

니퍼 nipper는 전선이나 철사를 절단하는 데 쓰이는 공구를 말한다. 니퍼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일 때는

어린 아이를 지칭한다. 또 니퍼는 삥땅 뜯거나 날치기하는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음식과 관계된 터키,

진저넛과 관련해 보면 ‘니퍼즈’는 바다 게 발톱 lobster claws을 뜻한다. 이런 부정적인 의미에서 화자가

니퍼즈를 찾아오는 니퍼즈의 고객들에 대한 묘사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법원 주변에 맴도는 건달인 듯 부

정적인 의미로 표현한 것은 니퍼의 뜻과 연상관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니퍼즈와 터키는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데, “Nippers”와 “Turkey” 이름에서 “nip and tuck”라는 말이 연상된다.

“nip and tuck”는 막상막하, 용호상박의 뜻을 가진 관용어구이다. 단어가 별개로 있을 때는 의미가 없지만

서로 관계를 짖고 있으면 새로운 의미를 나타낼 수 있음을 보여준다.

9.1.4. 진저넛 Ginger Nut–어린아이에 대한 보살핌

진저넛 Ginger Nut은 12살 어린 소년이다. 그가 장래 변호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그의 아버지 (그의 직업

은 마차를 모는 마부이다)의 원대한 꿈에 따라서 변호사 사무실 심부름꾼으로 일하면서 법학도의 꿈을 키

155

우고 있다. 진저는 우리말로 생강을 뜻하며 생강의 생김새나 그 역할이 인간들에게 활기 넘치게 하는 향

기 좋은 양념에이듯이 진저를 사람에게 쓰면 생기 발랄한 어린 사람을 지칭한다. 영어 단어 ginger에는

생강이란 뜻 이외에 “살아 있는, 활력 넘치는”이라는 의미도 있다. 또 진저 ginger에 부사형 –ly가 붙으면

gingerly는 매우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는 뜻을 갖는다. 어른은 아이들을 부모-자식 관계처럼 매우 소중

하게 여기고 조심해서 다루고 교육을 잘 시켜야 한다는 뜻이 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문제가 각각 있는

다른 세 직원들과는 다르게 어린 학생 진저넛은 새로운 생명력을 상징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너트는 과

일의 핵심 열매를 말한다. 진저넛이 법학도의 꿈을 키우는 것을 암시한다. 또한 열매 씨앗이 새 생명을

잉태하듯이 아이는 어른의 세대를 이어받는 존재를 암시하는 것 같다. 생강은 향기가 좋다. 생강빵은

생강이 들어간 빵이나 비스킷을 말한다. 어린아이들이 즐겨 먹는 맛 좋은 비스킷이다. 생강빵 아저씨

Gingerbread man는 어린이 동요나 우화에 흔히 등장한다. “생강빵 아저씨 gingerbread man”라는 영미인

의 동요에 잘 묘사되고 있는 것과 같이 생강빵은 영미인의 문화에 깊숙이 젖어 들어 있다. 영국에서 전

통적으로 생강빵에는 사람 모습이 그려져 있다. 생강빵에 그려진 사람 모습은 뛰어난 인물을 상징하는데

엘리자베드 1세 때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영국의 문화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바틀비 스토리”에서는

변호사 사무소에서 어린 학생이 뛰어난 위인을 닮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의미를 암시하는 것 같다.

9.1.5. Mr. B— Bee-윙윙거리는 꿀벌의 우화

“Mr. B—”는 바틀비가 사무실을 점거하고 떠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화자인 변호사인에게 알려준 등장인

물이다. “B—“는 ‘Bee”라고 발음되어 ‘벌’을 쉽게 연상시킨다. 벌은 침입자가 벌집을 침범하려고 하면 그

위를 윙윙거리며 달려든다. ‘숫벌 Drone’이 윙윙거리며 경고하면서 자기 벌집을 지킨다. 벌에 대한 문학

적 비유는 영미국인에게 매우 흔하게 나타난다. ‘바틀비 Bart-le-by’에서 마지막 ‘-by’ 또한 발음상 ‘bee’를

연상할 수 있다.

9.1.6. Mr. Cutlets-키케로와 그의 정적 카틸리나

“Mr. Cutlets”는 “Mr B—“식으로 표현하면 “C—“라고 나타내어 발음상 ‘바다 sea’를 연상하는 것은 별로 어

렵지 않다. 멜빌은 바다에 대한 선호와 애착이 무척 강했다. ‘Cutlets 카트리트’는 주방 도구를 뜻한다.

사식업자와 쉽게 연관되는 단어이다. 또 키케로와 마리우스 등 로마 역사를 거론하고 있음에 비추어 카

트리트는 키케로에 대항해 반란음모를 꾸몄다가 전멸한 카틸리나 Catilina (영어로는 Catiline 캐털라인)가

연상된다. 비록 카틸리나 Catilina의 이름을 쓰지는 않았지만 “Cutlets”의 카트리트 발음상 (영어로 catiline

카틸라인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라틴 발음으로는 카틸리나) 유사한 명칭은 마리우스-키케로-카탈리나 로마

시대 역사를 통해 보면 의미가 연결되는 것 같다. 키케로의 정적이었던 카틸리나 Catilina (108–62 BC)는

키케로에 의해서 반란 음모가 사전에 발각되고, 카틸리나 반란군은 전원 몰살당했다. 카틸리나의 반란군

은 정부군과의 전투에서 (62 BC) 협공 당해 도저히 이길 승산이 없다는 것을 알았으나 항복 대신 적진 깊

숙이 정면 돌파하려다 전멸했다. 카틸리나는 지배귀족층을 대변했던 키케로에 대항했고 빈민층의 지지를

받았다.

9.1.7. 요한 야곱 아스토르 Astor

이름과 가족성씨까지 그것도 두 세 번이나 거론하면서 강조한 인물은 요한 야곱 아스토르 Astor(1763-

1848)이다. 아스토르는 당대 미국 재계 서열 18위에 오를 정도로 대부호이었다. 오늘날 국가 정상들이

머무는 세계 최고급 호텔로 명성이 자자한 뉴욕의 Waldorf Astor 아스토리아 호텔 또한 그의 가족 이름에

156

서 유래한다. 뉴욕 땅 부자 아스토르 가문이 아스토리아 호텔을 처음 지었다.

astro의 어원은 ‘별’의 뜻을 가졌고, 이민자, 항해자, 북극성 이런 단어와 연결된다. (별 중에서 북극성은

항상 제 자리에 서 있어 움직이지 않는 별이지만 모든 항해하는 선박이나 여행자들에게 등대처럼 가이드

역할을 해주고 있다는 의미에서 ‘이동’하는 ‘이민 immigration’의 뜻을 공유하고 있다.) 구약의 “에스더

esther” 또한 별의 뜻을 가진 이름이고, 따라서 아스토르와 에스더의 이야기는 같은 이민자로서 연결되는

것 같다. 부활절의 ‘이스터 easter’ 단어 또한 어원적으로 별과 연결됨을 유추할 수 있다.

독일 출신 이민자 아스토르는 모피 산업의 호황 붐을 타고 미국 모피 산업을 독점하며 급성장하여 당시

미국에서 18번째에 가는 백만장자로 성장하였다. 모든 산업에는 흥망성쇠의 사이클이 있다고 말한다.

모피산업 또한 그 예외가 아니었다. 그가 1808년 세운 “미국 모피 회사 American Fur Co”는 모피 산업이

쇠락기로 들어 들면서 마침내 1847년 파산하였다. 하지만 아스토르는 모피산업이 쇠락할 것이라는 감을

미리 잡고서 그보다 약 10년 전인 1834년에 회사 지분을 팔고 미리 빠져 나온 바람에 자신의 부와 재산

을 지켜낼 수 있었다. 1840년대부터는 모피 대신 비단 옷감이 패션산업의 총아로 떠올랐고, 그로 인해

모피산업은 급격히 쇠퇴하였다.

아스토르는 거금 2천만 달러의 거액의 유산을 남겼는데 그의 유산 일부는 뉴욕도서관이 세워지는데 쓰여

졌다. 아스트로가 모피의 재료인 비버를 포획하는 사업 (비버를 포획하는 사람들을 트래퍼 trappers라고

불렀다)을 확장하기 위해서 로키 산맥의 오레건 주 콜럼비아 강 유역에 1810년 세운 변방의 개척 도시

“아스토리아 Fort Astoria”는 미국 서부 지역을 개척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1847년 미국 연방 우체국이

이곳 아스토리아에 설치되었다. 전쟁과 독점을 통해서 미국의 거대 부자로 성장한 아스토르의 사례는 신

생독립국 미국이 제국으로 성장 발전하는 과정과 그 사례를 발 보여준다. 당시 미국의 유명한 작가 워싱

턴 어빙은 아스토르의 후원하에 아스토르의 모피 산업을 다룬 소설 “Astoria, or Anecdotes of an Enterprize

Beyond the Rocky Mountains”을 1836년에 출간하였다. 아스토르는 문학가 워싱턴 어빙을 자신의 아스토리

아 (로키산맥에 위치한 아스토리아는 도시 개척자 아스토르의 이름을 딴 도시명) 호텔에 묶게 하고 자신

의 모피 산업업계를 소개할 취지로 모피 산업의 성장을 다룬 자전적 소설을 쓰게 했다.

아스토르는 은퇴 이후에는 진화론에 연계되는 조류학을 지원하였으며 그가 남긴 유산은 뉴욕 도서관을 설

립하는데 기여하였다. 아스토르는 지식의 전파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 사업가이었고 자선가이었다.

진화론에 심취했고 교육과 자선가(카네기 멜론 대학교, 카네기 재단)로서 명성을 떨치게 되는 철강왕 카네

기(1835-1919)의 출현이 예고되어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카네기는 아담 스미스와 마찬가지로 영국의 스

코틀란드 출신이었다.

9.2. Scrivener 직업에 대하여

셰익스피어의 희곡 중에 스크리브너 scrivener가 등장해서 한 마디 대사를 읊는 장면이 나오는 “리차드 3

세”에 나오는 대사 구절을 보자.

“이게 먼 줄 아세요? 바로 헤이스팅스에 대한 검찰의 기소장입니다.

기소장은 법률 문서답게 또박또박 아주 훌륭하게 잘 썼습니다.

오늘 세인트폴 대성당 앞 광장에서 재판이 열릴 예정입니다.

앞으로 어떤 일들이 펼쳐질지 흥미롭게 전개될 것 같습니다.

157

어젯밤에 캐츠비가 이 기소장 원본을 가져다 준 후

여기에다 이렇게 옮겨 쓰는데 열한 시간이나 걸렸습니다.

원본을 작성하는데도 또 그만큼 시간이 걸렸을 테니 총 22시간이 지났습니다.” (세익스피어, 리차드 3세,

3막 5장)

위의 대사에서 말하는 것처럼 “scrivener”는 법률문서 원본을 손으로 직접 베껴 써서 사본을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을 말하며 “law-copyist”라고도 부른다.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문서를 복사하는 일은 복사기의

등장으로 지 이미 오래되었다. 복사기가 나오기 이전에는 타이피스트가 문서 사본을 작성했고, 등사기

mimeograph가 사용되었다. 최근에는 문서를 스캔하여 전자 문서로 저장한다. 작가가 문서 복사하는 일

을 사람을 가르키는 말로 “copyist” 단어를 놔두고 굳이 “scrivener”를 쓰는 이유는 아마도 “scrivener”는 라

틴어 어원이 말해주듯이 역사적인 의미가 있고 또 독립적인 ‘직업’의 의미를 보다 강하게 전달하기 때문일

것이다. 또 굳이 오늘날의 법률 해석의 한 태도로 본다면 “단어를 바꾸는 것은 우리를 둘러싼 세상과 환

경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것”이라며 문헌의 본문 의미를 고수하려는 문언주의 textualism의 사고가 들어있

을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폭넓은 상식과 깊은 전문성 (어찌 보면 이 둘은 상호 배타적인 성격을 갖는

다)의 지식을 추구하는 경향 (통합, 융합, 통섭 등의 단어로 표현된다)을 강조하면서 휴얼 Whewell이

1840년 “consilience”라는 단어를 선택한 이유가 기존의 잘 알려진 concordance 합치 coherence 일관성,

convergence 통합이라는 단어 대신 잊혀진 단어인 “consilience”가 오히려 희귀하여 그 의미가 훼손되지

않고 잘 ‘보전 preservation’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는데 그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바틀비 스토

리”에서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들이 암시하는 바는 “통합”의 가치를 강조하는 것들이라고 보여지기 때문이

다.

우리들이 새로운 언어를 쓰는 것은 의사 소통과 전달의 의미를 보다 확실히 하고자 하는 구별적 의도에서

나올 것이다. 이런 과정에서 바벨탑처럼 무너지지 않고 사회를 계속 유지 발전시키려면 필수적인 언어적

의사소통은 어떤 것일까? 그리고 우리 인간은 언어 사용을 통해서 생각 작용을 넓히고, 의사 소통을 하

고 교류하며, 개인과 사회의 문제를 해결해 가는데, 서로 마음의 공감은 어떻게 얻어지는 걸까?

scrivener의 어원인 스크라이버는 종이가 발명되기 이전 문서 저장 형태인 목간 죽간에 구멍을 뚫어서 서

로 이을 수 있도록 한 도구를 말한다. 바틀비가 하는 일은 법 문서를 글자 한 자도 안 틀리고 정확하게

그대로 베껴 쓰는 일 his job is to copy legal documents by hand이다. 많은 분량의 딱딱한 법 문서를 글자 한

자도 안 틀리게끔 정확하게 베껴 쓰는 일-그것은 단순 모방하는 일 mere copyist이므로 단조롭고 쉽게 지

루함이 느껴지는 일에 해당한다. 창조적인 일을 하고자 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면 단순 노무에

해당하는 단순 모방의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scrivener, law-copyist 직업을 두고서 우리나라에서는 대개 “필경사 筆耕士”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필경사”

는 일본어 번역을 한자 그대로 차용해 온 것 같다. 우리말에 직업으로써 “필경사”라는 단어는 없고, 가까

운 직업을 굳이 찾자면 “대서사” 정도가 될 것 같다. 물론 우리나라 행정부에서 왕조실록을 작성하거나

책을 필사하는 사람은 존재했기에 그런 직업과 비슷할 수는 있겠으나 우리나라에서 변호사 제도가 역사상

처음으로 등장하게 된 때는 20세기 들어선 1906년이었고, 영미국같이 변호사 사무소에서 고용되어 법률

문서를 작성하는 직업-scrivener은 존재하지 않았다. 요즈음의 경우 “대서사” 성격의 직업을 가진 부류를

“행정사”라고 부르고 있는데 법률 문서를 작성하는 변호사 업무가 발달하지 못한 (예컨대 영미국 같은 ‘트

러스트 trust’ 법제가 존재하지 않고 보통법 판례법의 발전이 낮은) 우리나라의 법제도와 문화상 영미법의

변호사 제도를 단순하게 대조대비하기가 쉽지 않은 측면이 있다.

158

“law-copyist”를 축자 번역하면 “사법 서사”라고 말하는 것이 어울릴 것 같으나 사법서사라는 단어는 일본

에서는 직업으로써 ‘사법서사’가 존재하는데 (우리나라의 유사한 ‘법무사’가 존재한다) 이러한 사법서사

Judicial scrivener는 ‘사법부 우위 judicial review’ 국가인 영미국의 변호사의 성격에는 크게 못 미치고 차이

가 난다. 영미국에서 사법서사나 법무사에 가까운 그 정도의 제한적인 업무 영역을 확보하는 직업이 없

지 않는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법무사나 일본의 사법서사 혹은 행정서사 직업에 가까운 영미법국가의

직업은 “paralegal (legal document preparer)”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변호사가 아니면서 변호사 사무소 소

속으로 제한적인 업무영역에서 법률문서를 고객 대신 써주는 일을 맡기도 한다. 변호사 사무실에서 부동

산 등기 업무만을 전문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직업을 conveyancer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대개 변호사 자격을 동시에 가진 사람들이 맡고 있다.

필기는 분실의 우려를 덜어내 진실을 보존하려는 목적, 필요할 때마다 꺼내 다시 보고 또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에게 정확하게 진실된 내용을 전달하려는 의사전달의 목적에서 필사가 행해졌다.

판례법국가에서의 scrivener, law-copyist 의 직업에 대해 법제도와 문화가 다른 우리나라에서 서기, 대서사,

대필가, 필경사, 필기사, 행정사, 사법서사, 타이피스트, 카피이스트 등의 단어로 완벽하게 번역되기에는

조금씩 부족한 면이 있다. 왜냐하면 영미판례법은 변호사가 법정소송실무뿐만 아니라 트러스트, 등기

업무 등을 전담 (토렌스 시스템과 구별되는 Deeds 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는 영미국)하고 있기 때문에

변호사의 업무 영역이 대륙법 국가하고는 법제도와 법문화적으로 많은 차이가 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하여 원문의 “scrivener”, “law-copyist” 단어를 번역하는데 가장 적합하다고 여겨지는

“필기사”라는 단어를 선택하기로 한다.

159

10. 바르트의 기호학과 의미 작용

10.1. 기표, 기의, 의미 작용-외연적인 의미와 함축적인 의미,

전달 메시지는 상대방에게 전달되어야 의미가 생긴다. 커뮤니케이션은 최소한 송신자와 수신자의 두 사

람의 상대방을 필요로 하는 것이고 상대방에게 도달해야 메시지는 의미가 있는 것이며 상대방에게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어야 최소한의 행동이 유발된다. 바르트에 따르면 의미작용은 기호를 만들 때와 그 기호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그것을 해석할 때 나타나는 작업이다.

봉수대에 불을 피워 하연 연기를 지퍼 오르게 하는 것은 봉수대 불은 기표이고 그것을 전달받는 사람들은

적이 쳐들어온다든가 어떤 위급한 상황이 일아 났다는 것을 말하는 의미이다. 여기서 기표 signifier는 봉

수대 불과 연기이고 기의 signified는 위급한 상황에 대처하는 행동을 말한다. 봉수대 연기라는 기표와 위

기 대처의 긴급 사태 발생에 대한 행동 요령이라는 기의와 결합하여 봉수대 신호의 기호를 만들어낸다.

봉수대는 연기는 구체적으로 일어나는 개별적 사건(표지)이고, 긴급사태 행동 요령은 추상적 관념이다.

사랑의 전도사 셰익스피어에게 장미는 사랑의 열정을 나타내는 기표이고, 기의는 사랑과 열정이다. 기표

와 기의를 결합하는 작용을 ‘의미 작용’이라고 한다. 영어로 ‘signification’라고 말하는데 사람들이 모든 신

호에 반응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고 행동을 유발시킬 만한 의미가 없다고 여기는 하찮은 일에는 별무반응

을 보인다. 수신자가 함의나 시사점 implication을 발견하지 못하면 송신자는 어떤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

한 것이다. 현재 가장 오래된 사진은 1827년이고 사진기술이 일반화된 때는 1860년대경이었다. 사진이

나타나기 전에까지의 신호체계는 장미와 봉수대처럼 사람의 오감으로 구체적으로 인지되는 직접적인 경험

이었지만 사진과 신문 방송의 언론 기관이 등장하면서 중간 매개자의 메시지 전달 기능이 중요해졌다.

9.11 테러 사건 때 뉴욕 쌍둥이 빌딩이 불타는 장면은 영상 화면으로 즉시 전달되었고 이러한 화면 정보

는 어떤 별도의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정확하고 언어를 통한 구체적인 묘사를 불필요할 정도로 분명하게

전달되었다. 그러나 사진이 모든 숨어 있는 의미까지를 그대로 전달할 수 있었을까? 2001년 911 사태

가 일어난 순간 시점에서 미국이 이라크를 침공하고 전쟁을 일으킬 줄을 상상할 수 있었던 사람들은 얼마

나 되었을까? 아마도 거의 없었거나 있었다고 해도 미미한 수준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의미를 해석하고 재생산해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연애하는 사람에게 장미꽃이 사랑을 고백하

는 의미를 가졌다는 기호체계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랑을 확신하고서

장미꽃을 바친 사람들이 항상 연애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수신자가 꽃을 전달한 사람의 의도를 받아

들이지 않는 경우도 흔치 않게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의미 작용은 해석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여기서 장미꽃을 갖다 바치면서 무릎을 끓고 사랑을 고백하는 청각적 의미와 시각적 의미가 함께 전달된

경우라면 실패할 가능성은 훨씬 크게 줄어들 것이다. 사람에게 의미작용은 시각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

고 언어의 청각적 의미 또한 매우 중요하다.445

10.2. 디노테이션 Denotation, 코노테이션 Connotation

외부적으로 표현되는 의미를 ‘Denotation 외연’이라고 말하고, 그 속에 어떤 상징적인 의미가 들어 있는

445 말은 '아' 다르고 '어' 다르다. 언어학에서 Phonetics, Phonology 분야를 참조하라. 소쉬르의 언어학 개념에서 ‘기표’

는 ‘말소리 sound’을 가르킨다.

160

경우를 ‘Connotation 내포’라고 말한다.446 사람들은 사진을 통해서 어떻게 정보를 받아들이고 무엇을 알

게 되는 것일까? 건물에 불이 난 사진은 여러 경우에 일어날 수 있어 단일한 메시지를 가질 수 있지만,

한편으로 911 테러 사건의 경우와 같이 특정한 장소와 정치적 문화 종교적 제 요소를 감안하게 되면 의

미 작용은 단순하게 진행되지 않고 확산된다. 사진의 의미작용에 관하여 바르트는 ‘스투디움’과 ‘푼크툼’

이라는 개념을 제시하였다. ‘스투디움 studium’은 문화적 개념으로써 누구나 의미를 쉽게 알아차릴 수 있

는 것으로 예컨대 고층빌딩에서 큰 화재가 나면 사상자가 발생하고 인명피해와 재산피해가 나타날 것이라

는 객관적인 해석을 말한다. 알아본다는 것은 송신자의 의도에 맞닿음을 뜻한다. 수신자가 자신의 의도

를 알아 맞출 때 ‘빙고’라는 외침이 나오는 바로 그런 것이다. 스투디움은 보내는 정보로써 수신자는 총

체적인 as a whole 의미로 판단하는데 코드가 서로 통하고 느낌을 공유할 수 있는 것 즉 문화적이고 일상

적인 의미를 갖는다. ‘푼크툼 punctum’은 사진의 의미에서 나의 폐부를 예리하게(이는 은유적인 표현이므

로 표시하지 않게 은밀하게 그리고 매우 강렬하게 전달되는 메시지를 말한다- 흔히 우리가 ‘필이 꽂힌다’,

‘화살이 폐부를 찌르고’, ‘감동 먹다’ 등의 표현을 쓴다) 찌르는 것과 같은 어떤 깊은 의미를 가질 수도 있

는 것으로 이는 사람마다 각기 다르게 나타나는 주관적인 요소에 해당하는 것으로써 예컨대 이슬람 급진

파의 비행기 납치 자살 공격이라는 사실에서 정치 군사 종교 전문가들 중에 전쟁의 위기를 느끼게 되는

경우일 것이다. (보도 사진은 예술 사진과 차이가 나서 예술적 감각으로 설명하기란 힘들지 모르지만, ‘이

미지 정치’하고 주요 이슈를 물타기 해버린다든가 교묘하게 정보 조작의 능력을 발휘하는 고도의 정치 기

술자들 즉 정치계 은어의 ‘스핀 닥터’들의 존재를 상기하라.)

코노테이션

바르트는 사진을 코드 없는 메시지라고 말했는데, 사진에도 2차적 의미인 코노테이션이 들어가 있다. 그

것은 사진의 선택 (여러 장의 사진 중에서 하나를 고르는 작업이 개입된다), 기술적 처리 (게이츠의 왼손

이 안보이게 부분을 잘라내는 것처럼), 지면 배치(1면 머리 기사처럼), 제목과 기사 (‘결례 rude’라고 제목

을 다는 경우) 등에 의해서 인식될 수 있다.

10.3. 사진의 의미작용

바르트는 “신화론”에서 ‘총체적인’ ‘의미 작용’을 설명하면서 다음과 같은 예를 들고 있다. 이발소에서 잡

지 한 권을 내미는데 그 잡지 표지에 프랑스 군복을 입은 한 흑인 젊은이가 눈을 들어 프랑스 국기에 거

수경례를 하고 있다 바로 이것이 이미지의 ‘의미 sense’이다. 그러니 순진하건 아니건 나는 이 이미지가

내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다. 즉 프랑스는 위대한 제국이라는 것, 모든 프랑스의 아들은 피부

색의 구분 없이 그 국기 아래 충성으로 봉사한다는 것, 그리고 식민주의에 대해 비방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른바 압제자들에게 충성하는 이 흑인의 열정보다 더 훌륭한 대답이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나는

확대된 기호학적 체계를 앞에 두게 된다. 즉 선행하는 체계로 이미 형성된 하나의 기표가 있다 (한 흑인

병사가 프랑스식 거수경례를 한다). 하나의 기의가 있다 (여기에서는 프랑스의 특성과 군대적 특성의 의

도적인 혼합이다). 마지막으로 기표를 통한 기의 현존이 있다.”447

10.4. 빌 게이츠 사진의 의미 작용

사진이 어떤 의미를 전달해 주는지 즉 사진의 의미작용에 대한 바르트의 설명을 그대로, 빌 게이츠의 악

446

외연 denotation, extension 내포는 connotation, intension. 447

바르트, “현대의 신화”, 이화여대대학교 기호학연구소 역, 동문선, 1997, 274.

161

수하는 사진에 적용해 본다면, 빌 게이츠가 왼손을 호주머니에 넣고 있는 의미는 미국은 슈퍼초강대국으

로 월 스트리트가 세계의 부를 주무르는 심장부이고, 자신은 월 스트리트 최고의 재산가로써 영향력이 막

강하다는 것 (따라서 ‘당신은 내 손아귀에 들어 있다’의 뉘앙스는 부정적인 의미가 따르나 투자의 개념으

로써 당신이 필요로 하면 자신은 돈을 투자할 의향이 있다는 긍정적인 의미를 함께 갖고 있다), 그리고

‘재산을 현명하게 쓴다 use wisely’는 영미국의 자선과 나눔의 문화적 전통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나는 생

각한다. 우리들이 “호주머니에 손을 넣으려는” 이유는 대개 “자기 돈을 꺼내기 위해서 to produce my own”

이고, 호주머니 지갑이 두툼한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자기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의 영어 표현은 “with my hand in my pocket”인데 이 어구는 옥스포드 영어 사전의 설명대로 “자기 돈

을 쓰다 spend or provide one’s own money”라는 관용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이와 같이 빌 게이츠의 호

주머니와 그의 왼손에 대한 의미를 본다면, 빌 게이츠의 호주머니에 왼손을 넣고 악수하는 모습은 더 이

상 단순한 한 개인의 악수가 아니라, 그것은 미국의 교육과 자선의 문화적 전통과 월 스트리트 정보통신

의 비즈니스를 특성을 모두 아우르고 있는 코드의 의사 소통에 해당한다. 이런 측면에서 빌 게이츠의 악

수법을 상대방에 대한 결례라고 ‘문화적 차이’를 들어서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 사실 자체가 상대방의 ‘문

화적 차이’와 상대방의 내포된 의미를 읽어내지 못한 역설적인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빌 게이

츠의 악수법이 논란이 되는 배경은 한국의 경제성장에 따라서 대우받고 싶어하는 자존심의 영향이라고 볼

여지도 충분한데 이에 대해서는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 시뮬라시옹 이론을 통해서 설명될 수 있다.

10.5. 문장 부호를 이용한 표현 기법

10.5.1. 문장 부호의 쓰임새

“바틀비 스토리”에서의 문장 표현 중에는 하이푼과 “대쉬 ―”, “콜론 :”, “세미콜론 ;” 등이 자주 쓰이는 등

“아스테리크 Asterisk” 표현 기법을 구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employees”, 별표 * 아스테리크를 쓰고

있다.448

문장부호도 문법의 적용을 받으며 Asterisms 기호 또한 의미와 규칙이 있다. hollow star (☆), dinkus (***),

three asterisk (⁂). 타이포그래피(Typography)는 활자 서체와 활판 기호의 배열, 조합, 구성 등을 통해 시

각적 의미를 창조하고 새로운 의미를 표현하려는 기법을 말한다. (현대에 들어서 텍스트 문자와 형상화

이미지를 조합한 칼리그람 calligram, 컴퓨터 자판기 부호를 이용한 아스키 아트 ASCII art 등의 새로운 표

현 기법이 나타났다.) 별표 아스테리스크 asterisk는 아스테리즘, 아스토르, 에스더 단어들과 같이 별 star

의 뜻을 가진 그리스어 aster에서 나온 말이다. 별은 ‘중요하다’는 의미를 가진 어휘이고, 마찬가지로 아

스테리스크 별표는 강조의 의미가 있다.

Employées은 diacritic mark가 쓰였다. 우리나라의 문장부호 중 “방점”은 우리나라에서 세종대왕 훈민정음

창제 서문에서도 쓰였다. “employee”는 “피고용인”을 뜻하는데 이 단어에 찍는 점을 다이어크리틱

diacritic 마크(강세점)라고 부른다. 이 단어가 프랑스 외래어임을 표시해 줄 뿐만 아니라 “employer”는 “고

용주”, “employee”는 “피고용인 직원”을 의미하므로 철자 한자 차이로 뜻이 전혀 달라지는 이런 단어는 발

448

(아스테리크 문장부호를 이용한 표현기법은 한국어의 경우 영어의 관계 대명사가 없고 또 우리나라의 문장부호와

호환되기 어렵거나 곤란한 문장부호들도 있는 등 한글 번역에서 작가가 의도한 언어의 표현 의미를 100% 되살리기

는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언어의 문화적 차이점뿐만 아니라 실제 생활면에서 차이가 큰 경우 언어의 의미를 복원하

기라 더욱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번역상 애로를 극복해가며 최대한 원문의 의미와 그 배경까지를 정확하게 전달

하고자 주해를 상세하게 덧붙였다.)

162

음할 때는 강세위치가 강조된다. 철자, 강세 위치, 단어 뜻을 강조하는 역할을 한다. 접미어 “-ee”는 ”받

는 사람”, “피동적인” 뜻을 나타낸다. 수증자 donee, 피난민 refugee, 직원 employee, 이와 같이 “-ee”는

“받는 사람”을 뜻하는데 “모게지이 mortgagee”경우는 주의해야 한다. “부동산 담보 대출 증권”을 “모게지

mortgage”라고 하는데 “모게조 mortgagor”는 “-or”이 붙는다고 해서 돈을 빌려주는 사람 즉 은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빌리는 사람 즉 저당을 잡힌 채무자를 말한다. “-ee”이 붙은 “모게지이 mortgagee”는

채권자인 “은행”을 말한다. mortgagor, mortgagee 단어는 누구를 가르키는지 단어의 뜻에 대해서 법조인

경우도 종종 혼동하기 쉬운 단어라고 한다. 왜 돈을 빌려준 채권자의 입장인 은행을 “mortgagee”라고 말

하는 것일까? 그 이유는 은행이 소유권자로부터 소유권 증서를 받아서 담보로 쥐고 있다는 사실을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동산담보대출을 해주고 고리이자대금을 꼬박꼬박 ‘받는’ 입장

은 은행이니까, “mortgagee”는 채권자인 은행을 가르킨다는 것을 쉽게 기억하리라.449

10.5.2. 합성과 진화

화자인 변호사가 직원들의 기질 성향 등을 묘사하는 가운데 알코올, 반응, 효소, 기질, 연소, 인화, 산화,

환원, 불꽃, 가열성, 휘발성, 뜨거운, 접촉, 구조, 방법, 자극, 반응, 조건, 소금, 비누, 원료 물질, 가스, 등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은 당시 19세기 공업 화학의 놀라운 발전 상황을 나타내주기도 한다. “에스테르

ester”라는 말을 처음으로 만든 (“에스테르”는 “식초 에테르”를 뜻하는 독일어에서 유래) 사람은 독일화학

자로 1848년 영어 책이 발간되었다. 화자는 조건과 환경을 강조하는데 화학의 놀라운 변화를 상기해 보

라. 유기산을 산 촉매하에서 alcohol과 반응시키면 물과 R-COOR`와 같은 화합물을 생성하게 되는데 이

반응을 에스테르화 반응이라고 한다. ester를 합성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 공정들이 있다. 하나가 아닌

것이다. 에스테르화 반응에서는 어떤 결과가 얻어질 것인가 하는 것은 선택한 조건에 달려 있다. 산 Acid

에 대한 에스테르화를 원하면 알코올을 과량으로 사용하고 물은 생성되는 대로 제거시키면 된다. 에스테

르의 가수분해를 원하면 물을 과량으로 사용한다. 1611년 킹제임스성경에서 콤마 등 구두점 문장부호를

흔히 사용한 까닭은 조판 인쇄술의 비약적인 발전 그리고 성경을 교회에서 읽고 사용하기를 기대한 성경

출간의 취지와 목적을 반영하였기 때문이었다.

10.5.3. 키케로와 plaster-of-paris 석고 흉상

“plaster-of-paris”는 석고를 말한다. 프랑스 화학자 라부아지에 Lavoisier (1743-1794)는 “석고 plaster of

Paris”에 관한 여러 논문을 발표했다. 라부아지에는 영국의 프리스틀리와 같은 시기에 산소를 발견했던

화학자이었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프리스틀리를 비중 있게 거론하고 있는데 이 둘의 관계 그리고 작가

의 세무서 근무 직업과 프랑스 혁명 때 처형된 라부아지에의 개인사 등 역사적 사실을 배경에 두면

“plaster of Paris” 구절에서도 라부아지에를 연상할 수도 있다. 라부아지에는 산소를 발명하고 새로운 화

학혁명을 연 유명한 과학자이었지만 프랑스 혁명기에 부패 혐의로 처형된 사실과 그에게 뒤늦게 사면령이

내렸지만 그 때는 이미 처형되어 버린 후였고, 따라서 때늦은 사면령은 아무런 의미 없는 “Dead Letter”의

이미지를 줄 수 있다. 이런 배경 지식으로 보면 비록 작가가 라부아지에를 직접적으로 언급을 한 것은

아니지만 “plaster of Paris” 표현 구절은 모방과 복제의 의미뿐만 아니라 라부아지에의 연상개념으로 확대

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다리나 손의 뼈가 골절될 때 병원 의사는 석고 붕대를 처방하는데, 병원

449

다른 하나 예를 또 들어보자. 영미국인이 쓰는 “the law”를 쓸 때 문맥상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진다. “law and

equity”를 대개 “법과 정의”라고 번역하는데 “law and equity”라고 말할 때 “법과 정의”라는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라 “보

통법과 형평법”이라는 구체적인 법원을 가리키는 말이고 또는 실제 사건에서 구체적인 법원 판사가 실체적인 판결을

내릴 때 적용되는 구체적인 원칙을 말하기도 한다.

163

에서 뼈골절상을 치유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석고붕대”(속어로 흔히 “기부스”라고 말하는)가 처음 쓰여진

시기는 1851년부터라고 한다. 석고 붕대는 비록 시간이 오래 걸리는 단점은 있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저절로 아물고 원상으로 회복된다는 사실을 감안하여, 바틀비가 자기 혼자 있게 그냥 내버려 달라는 그의

호소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하나의 치료 방법 일테고, 따라서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치유된다고 믿는

자유방임주의 사고에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석고 주택은 프랑스에서 흔했는데 프랑스 주

택의 특징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석고 주택은 화재에 취약한 목조주택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였다.)

여기서 프랑스 혁명기 때 처형된 라부아지에를 연상하는 것은 지나친 견강부회라고 말할 지 모르나, 세무

관리로서의 멜빌의 직업, 혁명기 때 처형, 프리스틀리와의 밀접한 관계 등의 사실을 고려하면 연계될 수

있다는 상상력으로 언급한 것임을 참고하라.

164

11.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과 “가이 팍스 데이” 유래

11.1. 차이와 변화-진화의 조건

진화가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즉 생명체의 형질에서의 변화가 발생하기 위해서는 변화를 발생시키는 원인

이 존재하는 변이 조건과 변화 발생한 이후에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유전 조건 이 두 가지 조건이 필요하

다. 진화의 조건은 일어나는 변화가 일어나야 할 뿐만이 아니라 그것이 후세로 유전되지 못하면 변화의

원동력은 사라지고 말 것이다. 진화가 일어난다는 사실 그 자체가 말해주는 것은 바로 다음 세대로 전달

할 수 있는 불변적인 자기 복제의 능력이 생명체에게 있음을 말해준다. 이 변하지 않는 자기복제의 능력

과 또 변형이 일어난다는 사실은 진화론과는 모순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1차적인 그리고 2차적인 성격을

이해하면 이러한 모순이 해결된다. 즉 생명체의 1차적인 본질은 불변적인 자기복제의 능력을 갖고 있고,

진화를 가져오는 변화란 생명체의 내적 본성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복제능력을 가진 생명체

의 내적 본성을 방해하고자 하는 원인이 외부로부터 침입하여 교란시켜서 발생한다고 진화론은 가정한다.

우주자연질서의 우연의 법칙과 같은 맥락인 것이다. 생명체는 자기동일성을 계속 지켜가려는 자기복제

능력 이것은 1차적 원칙이고 차이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2차적인 성질에 해당한다. 진화는 “개별적 차

이”에 의해서 이뤄지는데 이러한 변이는 예측할 수 없는 우연한 미미한 변화가 서서히 축적되어 오랜 세

월에 걸쳐서 진행되는 것이어서 사람들의 눈에는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성향이 아니다. 카오스 이론의

“나비 효과”와 같이 미시적인 작은 변화가 거시적 차원의 엄청난 사건으로 발전할 수 있다.450

11.2. 가이 팍스 데이의 유래

종교혁명 당시 영국은 당시 제임스 1세 왕이 영국 성공회의 수장으로 올라서고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독

립하게 되자 로마 교회는 이에 저항하였다. 반란 음모자들은 영국 의회 의사당 건물 지하실을 임대하고

서는 거기에 화약고를 몰래 설치해 놓고 있다가 왕이 참석하는 1605년 11월 5일 의회 개회식에 맞춰 폭

약을 터트려 국왕과 정부 요인들을 일시에 암살할 음모를 꾸몄으나, 거사일 직전에 발각이 되어 미수에

그쳤던 정치적 종교적 반란 사건이 일어났는데 이를 통상 “의사당 폭파 음모 사건 Gunpowder Plot”이라고

부른다. 이 반란 음모 발각 사건을 주요 가담자의 이름을 따서 “가이 팍스” 음모 사건이라고도 부른다.

가이 팍스 사건에서 의사당 폭파 임무를 실행하는 주요 인물은 스페인에서 용병으로 활동하던 가이 팍스

Guy Fawkes (1570~1606)이었지만, 반란을 기도한 실제 주요 인물들은 로마 카톨릭 예수회 신부들과 이들

과 연계된 귀족 계급들이었다. 반란 음모의 핵심자급이었던 캣츠비 Catesby는 귀족출신으로 왕과 함께

사냥을 할 정도로 고위급에 속했다. 주요 실행 요원으로 잉글비 Ingleby는 귀족의 친척이었고, 딕비

Digby는 기사계급에 속했다..

450 각주 16을 참조하라.

165

당시 대법원장 코크의 심문으로 이루어진 재판 내용 (처음에 체포된 음모가담자가 묵비권을 행사하자 정

보를 캐내기 위해서 갖은 고문을 자행했고, 딕비는 능지처참의 형벌을 받았으며, 음모 주동자들의 목이

효수되었다)이 널리 알려졌다. 화약 폭파 실행조 중에서 누군가가 거사일 열흘 전에 지배층 귀족에게 거

사가 예정되어 있으니 몸을 보존 preservation하기 위해서는 의회 행사에 참석하지 말라고 귀뜸해 준 익명

의 편지 (“몬티글 Monteagle 편지”)로 인해서 폭파 음모가 사전에 발각되었다. 음모에 가담한 일부 귀족

들은 혐의가 밝혀졌어도 사형을 면하거나 벌금형 등에 그쳤다. 종교 개혁 당시 탄압당하자 반란을 기도

한 로마 카톨릭 예수회 신부들의 수도원 도피 그리고 수도원에서 시중들던 요리사의 제보로 인해서 이들

음모자들이 체포되었다.

영국 정부에선 하나님의 도움으로 사전에 발각하여 감사하다는 의미에서 “Thanksgiving Act 1605” 법률로

써 매년 11월 5일을 기념일로 정했다. 이 사건에 대해 영국 의회는 현재까지도 역사성을 잘 간직해 오고

있다.451 민간에선 기이한 복장을 한 가이 포크스의 허수아비를 끌고 다니다 밤이 되면 불태우는 화형식

의 풍습이 생겼다. 이런 풍습은 식민지 미국에도 전해졌고, 영국 미국뿐만 아니라 호주 뉴질랜드 등 영

연방 식민지 국가들에서 오늘날까지 불꽃놀이 풍습이 전해 내려 오고 있다.

1843년 영국에서 지방정부 조례로 화형식을 금지시키기도 했는데 당시 영국에서 로마 카톨릭 교회의 부

흥 운동이 일어나자 1850년에는 카톨릭 대주교의 화형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런 측면에서 가이 팍스

데이는 가이 팍스를 기념하는 것이 아니라 그와 반대로 반란 음모를 꾸민 로마 카톨릭을 경계하고자 하는

반면교사의 의미가 들어 있다는 것을 쉽게 읽을 수가 있다. 로마 카톨릭이 탄압을 받자 쿠데타를 일으키

려고 했으나 이런 반란 음모가 사전에 분쇄되었고 이로 인해 로마 카톨릭 신도들은 반란음모자의 배후세

력으로 낙인 찍혀서, 한동안 변호사도 될 수 없었고, 군대도 지원할 수 없었고, 선거권도 박탈되는 등 엄

청난 피해를 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충분히 새길 만하다.

인간의 일에는 우연이 작용하고, 또 제 아무리 확실한 예측을 할 수 있고 선한 의도나 대의명분을 갖고

일을 추진 실행한다고 할지라도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지거나 의도하지 않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패착

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1.3. 신성과 신성 모독의 경계-의도와 결과-외양과 속뜻

투키디데스의 “역사”에서 말하듯이, 인류의 역사상 전쟁과 음모는 끊임없는 인간 본성에 속하고 따라서 음

모자보다 미리 발각하여 음모를 사전 분쇄한 사람이 영웅이 되는 것이 당연하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

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데 가이 팍스 데이는 정부 요인을 암살하려다 거사일 이전에 사전 발각되어 음모

자들은 처형된 사건인데, 왜 미수에 그친 음모 사건을 기념하는 것일까? 하나님의 도움으로 음모를 사전

에 발각할 수 있었고, 그것에 감사하다는 의미에서 이 사건을 거국적으로 기념하는 “Thanksgiving Act” 법

률을 제정하였다.

이런 사고의 배경에는 프리스틀리의 필연주의 철학이 자리잡고 있다. 영미인들은 선한 것뿐만 아니라 악

한 것도 그 나름대로 어떤 의미가 있다고 여긴다. 악을 본받자고 나쁜 사건을 떠올리는 행사를 벌이는

것이 아니라, “선악이 개오사”라는 우리 속담이 있듯이, 선은 선대로 좋고 악은 반대로 어떤 의미를 주기

때문에 사전에 조심하고 사전에 미리 손을 써서 방지를 하는 것이 보다 낫다는 교훈을 얻기 때문에 나름

451 http://www.parliament.uk/about/living-heritage/evolutionofparliament/parliamentaryauthority/the-gunpowder-plot-of-1605/

166

대로 의미(쓸모)가 있다는 것이다.

“할로-윈 hallow-ween” 은 hallow는“신성시하다”, ween은 “의도하다”는 뜻이 결합된 단어다. 신성해야 할

할로윈 축제에 왜 “죽음”의 귀신과 해골 등이 등장하는 것일까? 우리 사람들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

아가는” 존재다. (창세기 3:19). 우리 사람들은 죽으면 자연으로 되돌아간다. “All go to the same place; all

come from dust, and to dust all return.” (전도서 3:20.)

계절이 바뀌는 11월에 벌이는 “할로윈 halloween” 축제의 기원도 비슷하다. 할로윈 축제 때 무서운 마녀

witches, 뱀파이어 vampires, 귀신 ghosts 등의 기괴한 복장으로 분장한 아이들이 집집이 돌며 “Trick-or-

Treat”(무서운 해골 분장으로 협박하는 것은 모금을 목적으로 속임수 trick 쓰는 것이다) 하는 것은 의도하

는 목적과 외양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Guy라는 단어는 가이 포크스 데이 기념

일이 생긴 이후 등장한 기이한 옷차림의 남자를 지칭한 의미로 사용되었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일반적인

남자를 지칭하거나, 친구나 동료를 지칭하는 보통명사화되었다.

가이 팍스 데이 때 어린아이들이 집집마다 돌면서 모금할 때, 이 헐벗고 굶주린 사람에게 “동전 한 푼 적

선해 주세요 "A penny for the guy!” 라고 적선을 부탁하면, 이에 대해 어른들은 똥이 무서워서 피하나 더러

워서 피하지 하면서 동전 한 푼 선뜻 내놓는 사람이 있을 테고, 또는 동냥할 때 옷이라도 좀 단정히 차려

입고 구걸하지! 뭐 이런 괴이한 차림을 한 놈에게 뭐 적선을 하라고? "A penny for the guy?"라며 달리 대응

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이들은 불꽃놀이 화약을 사는데 필요한 동전을 구할 의도를 가지고서 어른들

에게 귀신 가면을 쓰고 협박(장난치는 것)을 하는 속임수에 해당한다. 그런 복장은 참새를 쫓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허름한 차림새를 갖추고 있는 허수아비와도 같다. 복장에 대해서 어른들과 아이들의 시

선과 마음은 분명히 서로 다르게 해석할 수 있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는 속임수가 필요하기도 한데,

모금자는 모금을 달성하기 위해서 협박과 애원 사이에서 밧줄타기를 하는 것이다. 음양의 이치처럼, 질

서와 무질서의 이항적 대립관계가 있고, 양면의 칼날처럼 두 가지 대립되는 속성이 함께 포함되어 있고

또 변증법적 통합을 나타내는 것이 있다.

11.4. 왜 가면을 쓰는가?

가면을 쓰는 것은 성경 시대 때부터 존재했고 가면을 쓴 자를 위선자라고 비난해 왔다. 가면을 쓰는 이

유는 본심을 속이기 위해서였고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였다. 데모할 때는 “밴대나 수건”을 쓰거나 “월 스

트리트를 점령하라!”의 시위대가 익명의 “가이 팍스” 가면을 쓰면서 가두 시위를 벌인 것처럼 바틀비가 자

신의 정체를 스스로 말해주려고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은 자신들의 신원이 밝혀졌을 때의 역풍을 우려하

기 때문일 것이다. 대개 사건 주모자가 당국의 취조 심문에 순순히 응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죄를 지은

것을 알고 있거나 또는 최소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가면을 쓰는 또 다른 이유 하나를 보자. 가면을 쓰는 안동 화회탈춤 놀이를 상기해 보라. 탈춤놀이에는

적나라한 사회 고발과 사람들의 권력 본능을 질타하는 숨어 있는 전달 메시지가 들어 있다. 일본의 전통

가극 가부키歌舞伎나 노能에서 가면을 쓴다. 진정한 ‘의도’는 복장이 아니라 숨어 있는 ‘말’에 있을 것이

다. 하지만 가면을 쓰지 않으면 사람들은 ‘옷이 날개’라고 하여 화려한 치장이나 얼굴이 어떻게 생긴 누

구인지에 대해 온통 시선을 빼앗길지 모른다. 따라서 말하고자 하는 화자의 진정한 의도가 잘 전달되기

위해서도 가면을 쓰는 것이 필요하고 보다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사람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핵심적 메

시지는 때로는 숨어 있는 경우가 많고, 만약 발각되면 생명의 위협이나 어떤 피해를 입을 두려움이 있는

167

경우 그런 사회적 구조니 관계에서는 의도와 표현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또 만유인력이나 중력

의 법칙처럼 항상 거기에 있는 것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발견’할 때까지 숨어 있는 경우도 많다. “보이지

않는 손 the invisible hand”이 작용하는 우주질서와 인간 사회의 본성을 이해한다면 말이다.

흔히 사람들은 사건의 실체를 이해하는 수단은 밖으로 드러난 공식적으로 작성한 문건에 의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속에 흐르는 내막을 들쳐 보면 진실은 외부로 들어난 외양과는 다르다는 것을 뒤

늦게 깨닫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가이 팍스 가면은 창백한 얼굴에 검은 먹 같은 콧수염이 달린 피에로

같은 모습인데 사실 가이 팍스는 피에로 같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거대한 음모를 실행하는 하나의 부

품에 불과한 위치이었다. 영국에서 최고의 지위를 상실하게 된 로마 카톨릭 고위 성직자들이 의회 개원

일452에 맞추어서 국가 주요 인물들을 살해할 반란 음모를 꾸몄고, 가이 팍스는 돈을 받고 그 음모를 대신

실행한 행동책에 지나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반란 기도 사건에는 배후 세력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았고 또 그런 음모가 발각되고

나서 배후 세력 조직을 일망타진하려는 살벌한 검거 색출 역풍이 부는 경우가 많았다. 반란은 혼자 실행

하기 힘든 속성을 가졌기에 반란이 일어나면 그것은 한 개인의 일탈 행동으로 치부하기 어려웠다. 따라

서 반란 주동자나 반란 의도를 끝까지 찾아 내고자 고문까지도 서슴없이 자행했던 것이 지배권력의 속성

이었다. 역사를 통해 보면 권력 세계에는 원초적 인간 본성이 결부되어 있고, 또 그것을 획득하고 유지

하기 위해서는 음모와 배신이 끊임없이 일어난다. 이러한 권력과 탐욕의 세계에서 사람들은 ‘속내’와 ‘겉

보기’가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겉 모양새로는 속 마음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이것에 대

해서는 일본문화의 특징의 하나로써 ‘혼네’와 ‘다테마에’의 개념이 잘 알려져 있다.

“바틀비 스토리”에서 직원들이 하는 일을 군대의 분대 공격에 빗대어 묘사하고 있는데 ‘플래툰 platoon’은

돌을 던지며 싸웠던 인간의 원시 사회의 돌싸움에서 어원이 유래한다.

인간의 역사에서 싸움과 파괴는 피할 수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간 사회에서는 싸움 그 자체가 문제

가 아니라 공룡의 멸망 역사가 시사하듯이 인간은 역사상 외부로부터 공격에 의해서 멸망하는 것보다는

내부의 분란에 의해서 자멸하고 마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 중요한 교훈일 것 같다. 생존투쟁의 본질

과도 같이 우리 인류의 생존문제는 적군의 공격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부에 있는 진짜 적 The

enemy within에 달려 있다면, 나를 파멸시키는 나의 진짜 적이 누구인지를 알아 내는 것이 승리의 출발점

이지 않겠는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교훈은 “적은 항상 내부에 있다”는 것, “누가 너의 적인지를 정확하

게 파악하라.”

11.5. 로마시대 마리우스 군개혁과 의도하지 않는 결과의 법칙

마리우스 Gaius Marius 당시 로마의 군제는 징병제로써 군인으로 복무하려면 토지 보유 등 일정한 자격

요건을 필요로 하였다. 군인으로 전쟁에 참가해서 승리하면 전리품을 얻을 수 있는 특권이 있기 때문에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자격 요건이 필요로 했다. 일정한 자산이 없는 무산계급(당시 인구조사 시

5단계 구분에서 최하층을 차지한)을 프롤레타리이라고 불렀고 이들 프롤레타리아층은 군인 징집 대상에서

면제되었다.

군인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전리품’을 챙길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따라서 이들 무산계층은 가난에서

452

1884년 갑신정변 때 정부 요인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우정국 개국일을 쿠데타 거사일로 정한 것을 상기하라.

168

벗어날 기회 자체가 없었다. 그런데 평민층의 지지를 받은 마리우스는 로마에 정복된 외국인이나 최하층

빈민 계층에게도 군인으로 복무할 수 있게 하는 군인 충원을 지원병제로 바꾸는 군대 개혁 정책을 실시하

였다. 징병제 대신 지원제로 바꾸는 군대개혁을 단행되자 그간 도시로 몰려들어 일터 없는 다수의 빈민

들이 군인으로 대거 지원하였고 이에 로마 정권은 잦은 전쟁으로 절대적으로 부족한 군인의 수를 충당하

였을 뿐만 아니라 심각해진 빈민 문제도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 마리우스의 군대 개혁으로 도시의 가난

한 빈민들은 군대 충원으로 흡수되었고 이들은 의무 복무가 아니라 일정한 봉급을 받는 직업군인으로 복

무하였기 때문이다.

마리우스의 군대 개혁 중에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군단의 조직 구조를 대대(코호르스) 편제로 바꾼 전법

개혁 그리고 군인의 이동을 빠르게 하기 위해서 식기와 모포 등 먹고 자는데 필요한 필수품을 자신의 등

에 직접 둘레 매게 한 전술의 개혁이었다. 마리우스 군대개혁 이전까지는 군인의 전투야영 물품은 별도

의 마차에 실어서 보병의 이동에 뒤따라가는 마차 부대가 조달하는 형태이었는데 이러한 구조로는 군대의

이동이 느릴 수 밖에 없었다. 전투의 승리는 속도가 결정한다는 원칙은 동서고금의 역사를 통해서 쉽게

입증된다. 오늘날 야전 군인의 기본인 식기와 모포와 전투식량을 더블백(배낭)에 넣고 직접 매고 행군하는

것도 바로 마리우스의 군대 개혁에서 연유한 것이다.

대대 구조는 3개의 중대(마니풀루스)로 이루어진 부대였는데 이는 오늘날 군대 조직 편제의 기본으로 자

리잡은 초기 형태이다. 마리우스는 이전의 군단 조직이었던 웰리테스와 3개의 전열(하스타티, 프린키페스,

트리아리)의 구분을 폐지하고 대신 모든 군단병에게 똑같은 무기와 장비를 지급했다. 이전의 벨리테스와

3개 전열 구조는 병사들의 재산과 경험에 따라 구분 배치되었으나 마리우스의 개혁에 따라 군단병들이

전투대열을 만들 때 누구나 똑같이 대우받았다.

이러한 마리우스의 군제 개혁으로 로마 군대는 더욱 유연하고 빠르고 강력해진 군대로 거듭나고 성장 발

전하였다. 마리우스의 군대 개혁은 성공적이었고 마리우스 개인적으로도 전쟁의 승리를 발판으로 6번이

나 집정관 consul에 선출되는 등 정치적 성공을 거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국민의 나이 들어서 은퇴한

마당에 자기의 정치적 적이 정권을 잡고 있는 상황을 참지 못해 자신의 영광스런 과거의 힘을 다시 복구

할 수 있을 것으로 순진하게 믿고서 다시 정계에 복귀하였다.

그가 정계에 복귀하여 지배층(원로원)이 지원하고 또 법적으로도 정식 군사지휘관인 술라(젊었을 때 마리

우스의 참모로써 마리우스의 부하로 근무하였다)를 지휘관에서 물러나게 하는 법을 통과시켰다. 만약 마

리우스가 민중의 지지를 업고서 군사령관을 물러나게 하는 법이 통과되면 그 최고군사령관이 순순히 응할

것으로 판단했었다면 (“바틀비 스토리”에서 “innocent and transformed Marius”라는 표현으로 추측하자면) 그건

(술라같은 군인과 지배계층의 권력 의지에 대한) 인간 본성을 잘못 파악한 것-즉 너무 순진했다는 해석이

다.

한 도시가 전쟁으로 폐허가 될 때 그건 사람의 의지에 의해서가 아니다. 전쟁 고아가 생기는 것도 그 고

아는 아무런 죄가 없이 그저 당한 것이다. 가난 또한 마찬가지다. 근대 국가 발전으로 가난의 문제를

국가 개입으로 해결해 낸 영미국의 빈민구제법의 기본적 이념은 개인 책임으로 전가하는 대신 가난은 개

인의 자기 책임을 묻을 수 없고 453 또 자기 책임이 없는 곳에서도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죄 없는

453

한 때 국가의 최고 지도자였던 마리우스가 헐벗고 굶주리게 된 그 “철저하게 변모한 transformed” 모습의 사례처

럼 사람의 일에는 전적으로 개인적 책임으로 돌리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169

innocent” 인간의 존재를 수긍한 것에 있었다.

이런 확률적 무작위성의 개념은 보험의 발전과 밀접하게 연관 되어 있었다. 맨 처음 보험의 발전 영역을

이끌었던 해상 보험에서 조난사고는 선장의 책임이 아니라 인간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천재지변으로 일어

나기도 하며, 태풍이 불거나 쓰나미가 밀려온 현대의 자동차 사고 경우처럼 전적으로 운전자 개인의 책임

을 묻기 어려운 경우도 흔하다. 산업혁명과 보험의 발전으로 흉년 기근이 들어도 사람을 죽여서 제사를

올렸던 미신이 지배하던 구시대에서 통하던 천벌 개념이 더 이상 통하지 않게 된 것이다.

현재 헐벗고 굶주린 마리우스가 자기 의지로 그렇게 됐겠는가? 그게 아니라 군대가 반란을 일으켜서 내

전이 일어난 결과 타의에 의해서 그런 신세와 처지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폐허처럼 변모한

모습에 책임없는”, “죄없이 당한”, “순진해서 당한” 마리우스(또는 “무고한 마리우스의 쇠퇴한 모습”)라고 번

역하는 것이 보다 역사적이고 문맥의 의미를 살리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순진해서 당했다”는 해석은

당시 로마와 카르타고의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 로마는 카르타고에게 전쟁을 피하려면 “모든 무기를 로마

에게 넘길 것”을 최후 통첩하였는데 카르타고는 정말로 전쟁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그에 따라 로마의 조건

대로 수많은 무기를 자발적으로 모두 로마에 넘겨 주었으나 로마는 이제 전쟁 무기 없는 카르타고를 무참

하게 짓밟아버리고 온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렸다. 이런 역사적인 사실을 상기한다면 “innocent and

transformed”을 “순진해서 당한”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큰 무리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군대 실권자 술라 Sulla를 해임하려는 법이 통과되자 군의 신뢰와 지지를 받는 술라는 자기

휘하 군대를 동원하여 수도 로마로 쳐들어왔다. 당시 술라 군대는 아직 이탈리아 본토를 떠나지도 않았

고, 군대를 장악하고 있었던 실권자는 술라이었으며 그는 지배계층인 원로원의 지지를 받고 또 이들의 이

익을 대변하고 있었다. 따라서 마리우스의 정세 판단 미숙 또는 개인적인 욕심에 의존한 노욕의 결과 로

마 역사상 처음으로 수도 로마의 길거리에서 전투가 벌어지는 내전이 일어나게 되었다고 해석된다.

마리우스의 술라 축출 시도는 내전에서 군대와 지배계층의 지지를 받은 술라의 반발을 받고 내전이 일어

나 마리우스는 패퇴하여 로마를 도망쳐 빠져 나와 시칠리아 섬으로 거기서 다시 아프리카 카르타고까지

힘겨운 망명의 길을 걷게 되었다. 망명길의 마리우스는 한 때 승승장구한 장군의 처지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추위와 굶주림으로 심한 고난을 겪게 되었다. 마리우스는 폐허가 된 카르타고에서 자기의 쇠락

한 신세를 되새기고 된다.

이와 같이 마리우스의 개혁 조치 단행의 결과에서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났다. 이전의 자기 토지를

가진 사람만이 의무복무 시민징병제하에서는 자신의 재산을 지키기 위해 군단에 편입되고 출정하였다.

하지만 직업 군인이 된 도시 빈민 출신 병사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심과 책임감-즉 공익 개념-이 무뎠다.

직업군인은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자신의 직속 지휘관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이 보다 중요했던 것이

다. 자신의 생계를 책임져 주는 장군과 그에게 봉사하는 군인은 “사용자와 피사용자의 관계”를 맺게 된

것이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장군 휘하로 편입 종속된 것이다. 이렇게 군인이 자신의 이익 추구에 따라

자신의 지휘관에게 충성하는 군대가 사병화된 문제점이 나타났다. 이것은 마침내 변방의 군대가 루비콘

강을 건너 수도 로마로 진군하여 정권을 장악한 줄리어스 시이저의 사례가 말해주듯 사익에 집착한 군인

들이 쿠데타를 일으키게 되고 이에 따라 공익에 기반한 로마 공화정이 무너지게 되는 “예기치 못한 결과”

를 낳게 되었다.454 인간 본성의 결과일까 아니면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454

unintended, unanticipated, unforeseen consequences.

170

171

12. 시대의 변화와 새로운 이론의 등장

12.1 규율과 통제 사회 파놉티콘 모형

“파놉티콘 Panopticon”(pan모두+opticon보다)은 벤담(1748-1832)이 제안한 (1791년 출판) 원형 감옥의 건

축 구조 양식이었다.

<옆 사진: 벤담의 원형 감옥 설계도> 1832년 사망한 제러미 벤담은 그의

유언455에 따라 두상은 방부제로 처리되어 살아 생전 모습 그대로 밀랍인

형으로 만들어져 유리 상자 속에 넣어 영구 보전되고 있다. (옆 사진).

1850년에 런던대학 UCL으로 옮겨져 영구 보존되어 오고 있고, 그의 유

언에 따라 매년 기념 행사가 열리고 있다.456

파놉티콘은 수용자 각자는 각자의 독방에 수용되어 서로 격리되어 있는데 감시자는 언제든지 이들을 눈으

로 들여다 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어 중앙의 통제자가 항상 각 개인들을 감시할 수 있다. 감옥의 죄수

들은 감시 당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반면 중앙의 감시를 볼 수는 없는 구조다. 벤담이 파놉티

콘 구조를 제안한 이유는 죄수들이 전권을 가진 중앙의 감시자가 자신들을 항상 예의 주시 감시하고 있다

는 생각을 갖게 되면 자신들의 태도와 행동을 바꾸고 통제에 잘 따를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하였다. 감시

자가 인간인 이상 전지전능하게 모든 것을 감시할 수는 없기 때문에 대신 감시자는 그의 편재성

omnipresence을 죄수들이 끊임없이 확인하게끔 지속적인 노력을 한다. 수용자에게 감사자가 항상 지켜 보

고 있다는 생각을 주지시키는 도구 하나는 감시탑의 조명시설 즉 역광 장치를 이용하는 것이라고 벤담은

설명했다. 죄수를 바라보는 중앙의 감시자는 모든 죄수에 대해서 일거수일투족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visible) 관계에 있지만 죄수들은 감시자를 알 수 없게끔 놓여 있는 (unverifiable) 관계에서는 스스로의 규

율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시선의 불균형은 권력 장치가 된다. 소수의 감시자와 다수의 수용자 사

이에 비대칭적인 시선의 힘을 통해서 효율적인 감시를 달성할 뿐만 아니라 역으로 수용자의 변화된 태도

를 이끌어내는 훈육의 결과를 이끌 수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파놉티콘이 뛰어난 기능은, 그리스 신

화에 등장하는 파놉테스 panoptes와 같이, 소수의 통제자로써 그 많은 감옥의 죄수들을 감시할 수 있는

“중앙 감시 장치 central inspection principle”의 효율성에 있었다. 이런 측면에서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예

견한 “빅 브러더” 감시 체제 사회에 연결된다.

파놉티콘은 공리주의 철학의 기초와 마찬가지로 수감자의 태도와 그 결과를 더욱 중시하는 사고에 기반한

다. 이것은 일방적인 명령으로 통제하려는 대륙법의 사고방식과는 다르게 법은 쌍방형으로 움직인다는

사고에 기초하는 것이다. 벤담은 죄수가 스스로 노동을 자발적 결심하고 참여할 것이라는 자발적 노동을

기대했고, 독방에 혼자 있을 때 오히려 덜 고독감을 느끼고 또 감옥의 번잡함이나 탈주의 우려를 덜해주

는 등 당대의 죄수와 징벌의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는 개선책의 측면에서 타놉티콘 구조를 적극 주장했다.

푸코는 대륙국가의 잔혹한 징벌 체계를 자세히 설명했는데, 사실 벤담의 파논티콘은 수감자에게 잔혹한

체벌을 피하고 대신 수감자의 고통을 경감시키고자 하는 목적에서 파놉티콘 구조를 고안해 냈다.

455

벤담은 자기 시신을 의대 해부학 교실에서 해부 보존하여 사후 1백년 후에 자기 모습 그대로의 “Auto Icon”을 전

시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벤담의 구체적 해부 지시를 명시한 벤담의 유언장의 내용은 영국 정부 기록 보관소에서 읽

어볼 수 있다. http://discovery.nationalarchives.gov.uk/details/r/D7863973. 456 벤담의 두상이 방부처리되어 밀랍인형으로 영구 보존되어 있는 런던 대학 UCL의 벤담 자료집

>http://www.ucl.ac.uk/Bentham-Project/who/panopticon.; http://www.ucl.ac.uk/Bentham-Project/who/autoicon.

172

푸코는 권력은 강제력을 소유하고 있는 국가권력에서뿐만 아니라 형성된 관계 network에서도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푸코는 벤담의 파놉티콘 개념을 권력의 불균형 관계에 놓여 있는 예컨대 학교에서의 교사-학

생, 군대에서의 장교-병사, 병원에서 의사-환자 등 사회 전반에 적용하여 감시와 통제의 일반적인 권력 이

론을 도출해냈다.457 “파놉티콘은 누가 무슨 목적으로 이용하고자 하든지 간에, 일률적인 권력 효과를 생

성해 내는 아주 훌륭한 장치이다”458라고 푸코는 파악하고, 비인격화된 보이지 않는 규율 권력 이론을 제

창했다.459

12.2. 시대 변화 신사고 새로운 방법론

프리스틀리는 산업 혁명을 리드한 기라성 같은 특출한 인물 가운데 프리스틀리는 정치 종교 역사 교육 기

술 화학 많은 방면에서 큰 업적을 남긴 대인물이었다. 프리스틀리는 성경을 새롭게 해석함으로써 혁신적

인 사회를 열어갈 기초를 쌓게 되었다. 그는 성경의 언어는 비유법을 많이 쓰고 있으므로 성경을 축자적

문자해석에 머무르면 성경을 올바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조나단 에드워즈 (1703-1758)는, 투키디데스가 파악한 것과 같이, 인간 세상은 다툼과 분쟁이 끊임없이 전

개된다는 것 즉 인간본성을 제대로 이해하고서 기독교의 복음을 전파하는데 노력했다. 에드워즈는 성경

을 그 의미하는 바대로 사람들의 실제 생활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실제적 적용을 강조함으로써 말씀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 청교도 목사이었다. 에드워즈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는 신약성경 말씀도 사람들은 바로 자기자신을 사랑해야 함 self-love을 가르쳐주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즉 사람은 자신을 사랑할 Self-Love줄 알아야 되는데 이 원리는 이기심의 본질 selfishness과 통한다.

에드워즈는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고린도전서 13장 말씀을 킹제임스성경 번역에서와 같이 “자선 Charity”

이 가장 중요한 기독교인의 덕목이라고 강조했다.460 에드워즈는 “가난한 자들을 향한 자선의 의무”에서

인간의 자선에 대한 ‘경향성 tendency, habit’을 주장했다. 경향성은 성향 disposition 원리 principle 기질

temper마음의 틀 frame of mind 등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이러한 단어들은 “바틀비 스토리”에서 모두

나타난다. 경향성이 있다는 말은 오늘날의 용어로 프로그램화되어 있다는 말과 비슷하다. 그와 같이 인

간의 길은 하나님의 의지에 따라 예정되어 있으므로 인간의 의지는 자발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 의지는 인간이 ‘바라는 대로 will’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not free to will’, ‘비자발적인 involuntary’

것으로 파악했다.

12.3. 다윈의 비글호 탐사 항해와 “바틀비 스토리”에 미친 영향 – 하나님의 사명과 자연 법칙

457 교수와 학생과의 관계를 갑-을간의 권력관계로 표현하는 한겨레 신문 기사(2014.12.7)를 인터뷰기사를 인용한다.

“지도교수는 대학원생 입장에서 중요한 권한을 다 갖고 있다. 졸업 권한을 갖고 있고,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학생들에

게 인건비를 얼마나 줄 것인지도 결정한다. 모든 결정이 지도교수의 손을 거치지 않는 게 없어 '갑질'을 하면 당할 수

밖에 없다. … 대학교수와 학생은 직장 상사와 부하보다도 더 철저한 갑을 관계이[다]. … 직장은 이직이라는 선택지

가 존재하지만, 대학은 마음대로 옮길 수 없다. 취업에 반영되는 학점은 교수의 고유권한이며, 만약 대학원에 진학해

학업을 계속하려고 한다면 교수의 손에 평생의 운명이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458 “The Panopticon is a marvelous machine which, whatever use one may wish to put it to, produces homogeneous effects of power.” 459

“Discipline and Punish: The Birth of Prison”, 1977; “Postscript on the Societies of Control”, 1992. 460 “In these words we observe that something is spoken of as of special importance, and as peculiarly essential in Christians, which the

apostle calls charity. And this charity, we find, is abundantly insisted on in the New Testament by Christ and His apostles—more

insisted on, indeed, than any other virtue.”, “Charity and Its Fruits”, 1738).

173

<“비글호 탐사 항해”

책에 실린 삽화>

진화론의 대명사 찰스 다원은 영국의 항로 개척을 위한 해안 측량 임무를 맡은 탐사

선 Beagle호의에 승선하여 1831년부터 1836년 항해기간 동안 많은 기록을 남겼다.

비글호 선장은 이전에 아프리카 원주민을 영국으로 강제로 데려다가 2-3년간의 적절

한 시킨 후 다시 고국으로 돌려 보내 정착시켜 선교 임무를 완성하려고 계획하고 그

것을 실행했다. 당시 잡혀 온 원주민 4명에게 각각 보트 메모리 Boat Memory, 요크

민스터 York Minster, 푸에고 바스켓 Fuegia Basket, 지미 버튼 Jemmy Button 이렇게

영국식 새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들은 영국에서 영어, 기독교 교리, 농사법을 배운

후 병으로 사망한 메모리를 제외한 3명은 이번 항해에 비글호에 승선하여 선교사와

함께 고국으로 귀향하였다.

다윈이 비글호에서 처음으로 본 원주민에 대한 관찰 기록들은 간결한 문체이지만 문학적 표현으로 봐도

훌륭한 수준이었다. 다윈은 영양실조와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빈곤한 원주민의 모습을 목격하면서 동정을

느끼기도 했다. 다윈은 1833년 다음은 같은 기록을 남겼다. ”그들은 내가 어느 곳에서도 본적이 없었던

목불인견의 정말 비참한 사람들이었다. … 그 가엾은 사람들은 발육이 정체된 상태에 있었고, 흉측한 얼굴

은 하얀 회칠로 장식하고 있었고, 피부는 더러웠고 기름때가 흘렀으며, 머리카락은 온통 헝클어져 뒤엉켜

져 있었으며, 목소리는 귀에 거슬렸고, 몸짓은 거칠었다.”

”원주민들을 제 고국으로 돌아가게 하여 정착시키려는 To settle these natives in their own country” 생각이 비글

호 함장의 항해에 나서게 된 동기였다고 말했는데, “바틀비 스토리”에서 화자인 변호사가 고국으로 돌아가

재정착하기를 권하는 내용 즉 “내가 그를 도울 수 있는 어떤 다른 방법이 있다면 내가 기꺼이 그렇게 하

겠으며, 특히 그가 자기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면, 거기가 어디가 되었건 간에, 그의 여비를 내가 기

꺼이 부담할 수 있다고 말할 것이다. 게다가 고향 집에 돌아간 후 언제라도 무슨 도움이 필요할 경우가

생긴다면, 내게 편지 한 통 보내주고 그러면 틀림없이 내 답장을 받을 수 있을 것”-이런 충고도 같은 맥락

이다.

주인과 하인 관계 Master-Servant

영미인의 전통적인 “주인과 하인 Master-Servant”의 관계를 지배하는 기본적 의식 구조는 트러스트 법 이론

이 자리잡고 있다. 전통적으로 주인은 하인의 서비스를 받는 대신 하인의 복지를 책임지게 된다. 하지

만 이런 관계는 단순한 계약 관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고용관계는 “기본적인 상호 신뢰 mutual

trust and confidence”에 기초한 “묵시적 의무 implied obligation”를 서로 부담하는 기본적 계약 관계 이상의

관계를 갖게 된다. 봉건적 주인과 하인의 관계는 동등적 계약관계가 아니라 부모-자식의 관계와 같이 트

러스트 관계에 가깝다. 트러스트 관계는 특수적 지위에서 생기는 법률적 관계이다. 오늘날의 고용 관계

는 단순한 계약 관계에 지나지 않는다거나 또는 구조 조정시 자동 해고가 가능하다는 해고 유연성

doctrine of constructive dismissal의 노동 정책이 등장한 것은 많은 세월이 흐른 뒤의 일이다.

비글호의 항해와 다윈의 항해 일지 기록(이들 3명에 대한 관찰 기록을 포함한)은 당시 뉴스 기사로도 많

이 알려졌다. 그 후 1839년에 함장 피츠로이 그리고 다윈은 “영국 해군 함정 비글호의 측량 항해에 관한

이야기 Narrative of the surveying voyages of His Majesty's Ships Adventure and Beagle between the years 1826 and

1836, describing their examination of the southern shores of South America, and the Beagle's circumnavigation of the

globe” (“비글호의 탐사 항해 Voyages of the Adventure and Beagle”으로 통칭)을 출간하였다.

174

비글호의 항해 주목적은 영국의 항로 개척을 위한 남미대륙 해안에 대한 해로 탐사와 행해도 작성에 있었

다. 비글호는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까지 항해를 하였고 다윈의 갈라파고스 섬 탐사는 진화론의 정립에

큰 기여를 하였다. 비글호에 동승한 선교사들의 사명은 해군의 임무와는 달리 선교가 주목적이었을 것이

다. 마찬가지로 다윈의 동승과 그의 관찰 기록은 부수적인 목적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다윈

의 부수적인 동반 임무와 관찰이 “진화론”이라는 천지개벽의 새로운 이론을 가져올 줄 어느 누가 예상이

나 했겠는가? 이 책의 출간 때도 해도 진화론은 확실한 체계는 아직 정립되지 않았고 다만 암시되어 있

었을 뿐이다. 세상을 뒤흔들게 된 다윈의 “종의 기원 On the Origin of Species” (책제목 “On the Origin of

Species by Means of Natural Selection, or The Preservation of Favoured Races in the Struggle for Life”)은 1859년에

출간되었다. 그러나 1853년 이전에도 진화론의 핵심 사고를 이루는 사상들은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었다.

진화론을 설명하고 있는 체임버스의 책 “창조가 자연 역사라는 증거 추적 Vestiges of the Natural History of

Creation”은 1844년에 출간되어 큰 호응을 얻었다. “비글호의 탐사 항해”의 미국판은 1846년 Harper의

“New Miscellany”에도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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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키케로와 “키케로 추종자”에 대한 비판

13.1. 키케로는 “완벽한 법조인”의 롤 모델인가?

로마법은 영미법의 재판 실상과 크게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 영미국에서 키케로는 모범적인 변호사의 모델

로 정착된 것은 아니었다. 영미국의 학교와 대학에서 키케로를 배우고 가르치고 있긴 하지만461 키케로를

극구 모방하고자 하는 “키케로 추종자”의 모습을 보이는 대륙법국가들과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한다. 19

세기 영미국의 모범적인 법조인상에 대한 논문을 참조해 보면 그 차이점을 알 수 있다.462

키케로는 영미법국가에서 법조인의 롤 모델인가?

역사상 자료인 키케로의 연설은 영미국의 판례법 재판의 현실적 모습과는 크게 동떨어진 면이 많이 보인

다. 판례법 재판 진행은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로 증인 심문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진실이 드러나도록 하

는 것이지, 판례법의 재판과정에서 변호사가 일장연설을 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동류의 보통 사람들이 상식과 이성적인 판단력에 따라서 사안을 판단하지, 마치 우리나라 일제시대 신파

극으로 유명했던 “검사와 여선생”의 한 장면처럼 방청객의 “심금을 울리는” 일장연설은 그야말로 소설에서

나 나오는 이야기에 가깝다. 물론 법정 재판에서 모두 연설과 최후진술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증인의

법정 증거의 도입과 결론을 확인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취조심문이나 반대심문의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극적 전환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긴 해도 그것은 증인에 대한 질문과 대답 과정에서 나오는 대화의 일부

에서 포착되는 것이지, 검사나 변호사나 판사의 일장연설의 모습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판례법 재판에서

는 키케로가 재판의 승소 요인으로써 든 수사학적 유머 능력은 끼어들 여지가 없는 것이다.

또한 영미국인들은 모든 사람들은 진실을 파악할만한 인식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며 따라서 진실은 자

연스럽게 발견된다는 사고를 갖고 있다. 영미국인들은 겉모양의 포장에 의해서 진실이 호도될 수 있다는

사고방식을 거부하며, 또한 자신들이 다른 사람들로부터 조작이나 선동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여긴다.

유창하게 말을 잘하면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 있다고 여기는 생각을 역으로 해석하면 상대방을 조작의 대

상으로 여긴다는 말이 된다. 영미인은 자기 주관적인 자기 결정권을 가진 자신의 판단력을 믿기 때문에

“검사와 여선생” 같은 감동적인 연설에 의해 이성적 판단이 흐려지는 것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진실,

정의, 기본 상식 truth, justice, common sense이 통하는 사회가 영미국인의 공동체 현실이 아니던가? 따라서

“말 잘하는” 선동가의 일장연설로 진실이 왜곡될 수 있다고 믿는 경우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말 잘하고 글 잘 쓰는 법이 법조 실무하고 동떨어져서 존재한다고 보기 어렵다. 키케로처럼 독방에서 홀

로 책을 통해서 “완벽한 웅변가”로 성장할 수 있다고는 믿기 어렵다. 진실은 표현기교로써 호도되거나 감

춰질 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또 설령 그런 기교나 지식을 완벽하게 마스터했다고 해서 개인이나 사회의

잘못을 바로잡을 능력으로 바로 이어지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영미국의 판례법 교육(로스쿨)은 시험 기

술, 말 잘하는 웅변술, 수사학 기교 등을 배우고 가르치는 곳이 아니다. 영미법 시스템과 법 현실은 진실

을 추구하고 따라서 법조인에게 요구되는 법조 윤리를 강조한다.

461 “We learn our Latin from him at school; our style and sentiments at the college.”, Middleton, Conyers, The Life of Marcus Tullius

Cicero, III, (Boston- Wells & Lilly, 1818), 313. 462 Mary Rosner, “Reflections on Cicero in Nineteenth-Centuiy England and America”, Rhetorica: A Journal of the History of

Rhetoric, Vol. 4, No. 2 (1986), pp. 153-182;

William McDermott, “Reflections on Cicero by a Ciceronian”, The Classical World, Vol. 63, No. 5 (1970), pp. 14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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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2. “완벽한 정치인 perfect orator”의 모델은 실재하는가?

우리나라 같이 대륙법의 전통이 지배라는 문화에서는 시험공부를 통해서 완벽한 perfect 사람이 탄생될

수 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영미국인은 키케로의 완벽한 인간형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도 않고 또 나올

수가 없다고 생각한다.463 물론 모든 장점을 갖춘 이상형적인 인간이 되고자 하거나 또 그런 이상을 추구

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보는 것은 아니다. 다만 현실적으로 완벽한 이상적인 인간형이 존재할 수 없음

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그런 이상형이 될 수 있다고 하면서 그것을 모방하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

히려 그런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는 것에 해당된다고 의심하는 것이다. 인간의 본성과 능력에 비추어 완

전무결한 인간이 될 수 없음은 인간 역사상 당연한 것인데도 시험공부를 통해서 완전한 인간이 태어날 수

있다고 보는 생각은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인류가 하루 이틀 살아온 존재도 아니고 오랜 역사를 가지

고 있으며 또 현재 70억이 넘는 인구 중에 그렇게 완전무결한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통해 보

면 키케로가 주장하는 이상적인 완벽한 인간형은 현실적인 인간형이 아니라고 여겨진다. 키케로가 상정

한 완벽한 모범적인 사람이 나오기가 어렵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모방으로써 완벽한 인간이 나올 수 있다

는 주장은 흠결이 있고 또 거짓말이라고 여기게 되며 따라서 그런 주장을 하는 사람은 신뢰받기 어렵

다.464 영미국인들에게 말 잘하는 선동꾼은 진실한 면이 부족한 사람이라고 여겨진다. 트롤로페의 저서

“키케로의 생애”를 읽어보면 19세기 영미국 법조인의 사고방식을 알 수 있는데 이들은 말만 번지름하게

잘하는 사람은 신뢰성이 부족한 사람으로 여겼다.

영미인들은 남에게서 모방한 것을 가지고서 마치 자기 창작물인양 거짓을 말하는 사람을 크게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배경이 무엇인지 알 필요가 있다. 인류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진실성이 우선시되지 않

으면 안 된다. 진실성이 담보되지 않는 외형적 발전은 사상누각에 불과할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의 문화는 학문 추구의 장이든 일상적 사회 생활면에서 엄격한 ‘진실성’을 추구하는 데 인색한 측면이 나

타난다고 보고된다. 흔히 한국에서 여지껏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지 못한 한국의 한계를 거론하는 데 그

이유 하나가 여기에 있을 지 모른다. 한 때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법적 허구가 인구에 회

자된 적이 있는데, 어떤 부정한 수단을 써서라도 일단 챙기고 보자는 목전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고방식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사고 기저에 깔려 있고 또 팽배된 것 같다.

13.3. “Caveat emptor 케비어트 엠토”이란 무엇인가?

매매는 매도자와 매수자라는 쌍방의 두 당사자가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을 말한다. 매도자와 매수자는서로

대립하는 당사자인데 매매계약에서 누가 주의 의무를 다해야 되는지 그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을 두고서

대륙법국가는 로마법의 정신에 입각하여 매도자가 책임을 다해야 함을 강조한 반면 영미법은 로마법의 입

장과는 다르게 매도자에게 의무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할 주체는 매수자이고 매수자

가 자기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여긴다.

매매과정에서 매수자가 매도자보다 주의를 더 크게 기울여야 함을 강조하는 이 “매수자 책임 원칙”은 일

찍이 영국에서 확립되어 영미법의 원칙의 하나로 굳게 자리잡았다. 이 원칙은 매매 계약에서 매수자가

463 “The “perfect orator” is, we may say, a person neither desired nor desirable. We, who are the multitude of the world, and have been

born to hold our tongues and use our brains, would not put up with him were he to show himself.” (Anthony Trollope, “The Life of

Cicero”, Ch xi, Cicero’s Rhetoric.) 464 “Trollope labels Cicero a liar and a scoundrel: a liar because he has not acquired "that ... aversion to a lie which is the first feeling in

the bosom of a modem [Victorian] gentlem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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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매수자는 거래가 끝나기 이전에 매매물건을 직접 살펴보는 등 매수자가 사전

에 모든 주의를 다해야 한다는 법의 일반 원칙을 말한다. 이를 라틴어 “caveat emptor”의 법률 용어로 부

르고 영어로는 “Let the buyer be aware”으로 번역된다.

이 케비어트 엠토 원칙이 영미법상 처음 나타난 때는 영국의 에드워드 1세 때의 법률이고 그 후 여러 사

례를 통해서 확립되었다. 미국에서 이 케비어트 엠토 원칙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있다는 사실을 재확인시

켜 준 판결로는 1869년의 미국연방대법원 판결인 Barnard v. Kellogg 77 U.S. 383 (1869) 케이스가 있다.

물론 그 이전의 여러 케이스에서 법원칙으로 확립되어 있었음은 법률교과서에서도 확인된다.

미국의 1834년 법률교과서에서 정의한 케비어트 엠토 개념을 보자. “in the absence of an agreement between

the parties, the seller is responsible for defects only when he has been guilty of fraud. 당사자 사이에 다른 별도의 특

약 사항이 없는 매매 계약에서 매도자는, 사기를 치지 않는 이상, 물건의 하자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

다”는 계약법 일반 원칙으로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의 “caveat emptor 매수자 책임 원칙”은 대륙법

국가와 대비되는 영미법의 분명한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매수자 책임 원칙이 가장 크게 나타난 거래는 예로부터 토지 거래와 주택 거래 분야이었다. 토지와 주택

은 생활과 생산의 필수적 요소에 해당하기에 투기적 수요가 일어나기 어려웠고, 또 거액의 금액이 수반되

는 거래이므로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는 토지와 주택을 함부로 매매하는 경우는 거의 상상하기 힘들었다.

무엇보다 토지와 주택은 대개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적 지식으로 잘 알고 대상이고 또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성격을 가졌으므로 토지와 주택의 매매는 매수자가 직접 점검하기 용이하다. 따라서 매

수자가 미리 점검한다면 어떤 하자가 있는지에 대해서 찾아낼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은 기본적인 배경

에서 매수자 책임 원칙은 간결하고 분명한 법원칙으로 자리잡게 되었고, 자본주의 발전에 따라 토지 거래

나 주택 매매 분야를 넘어서 일반적인 상거래 원칙으로 확립되었다. 케비어트 엠토 caveat emptor 원칙이

나오게 된 요인을 좀더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① 매도자는 생산비나 투자비를 회수하고자 하는 자기 이익을 얻기 위해서 물건을 판다. 매수자 또한 마

찬가지로 사지 않는 것보다 사는 것이 자기에게 이익이 된다고 여기므로 매수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양

쪽 당사자는 각자가 취하는 이익이 서로 존재하기 때문에 매매 계약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② 모든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판단 능력을 갖고 있고 또 그에 따라 신중하게 생각하고 자신이 직접 결정

을 내린다. 계약 상대방은 각자의 이익에 따라서 누구나 갖고 있는 보통사람의 상식적인 신중함과 자신

의 의사 판단력을 동원해서 행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가 일상생활에서의 거래의 기본이고 또 보편적

으로 일어나는 일이며 이런 행태가 에서 작동되는 인간의 일반 원칙에 가깝다. 매수자가 매수를 하고자

원할 때는 자기가 직접 손수 물건의 품질을 꼼꼼히 살펴보거나 검사하고 나서 자기가 사고자 하는 목적에

적당하다고 여기지 않으면 매수를 그만 둘 것이다. 이와 같이 설령 물건에 대한 하자 책임이 매도자에게

있다고 해도 매수자는 자기가 사고자 하는 물건에 대해서 직접 점검을 하는 것이 매수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성향 때문에 매도자는 매수자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이다.

③ 사람들의 의식주에 관한 일상 생활에서 꼭 필요하기 때문에 상거래가 일어난다.

④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자기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살 것이므로 매수자는 자기가 모르거나 또는 자기에

게 필요하지 않는 물건은 사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⑤ 사람은 누구에게나 공통적인 일반적인 지식 수준을 갖고 있다. 매수할 때도 당연히 그런 수준의 지식

을 행사할 것이다. 따라서 물건에 흠이나 하자가 있다면 그것을 바로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보통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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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이 가지고 있는 감각적인 판단으로 알아낼 수 있거나 또는 직접 점검해 보면 찾아 낼 수 있거나, 만약

흠이나 하자가 숨어 있을 경우에는 흠이나 하자가 분명하게 있다는 것을 서로 인정하여 매매당사자 사이

에 특약을 맺고 해결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흠이 있으니 매매가격을 낮추는 등). 이와 같이 물건

에 대한 점검기회를 이용하면 보통사람이 갖고 있는 신중한 판단력과 지식으로 흠결 여부를 가려낼 수 있

을 것이다.

⑥ 이렇게 해도 찾아낼 수 없을 정도로 흠결이 깊이 숨어 있다면 매수자는 위험 부담을 안을 수 밖에 없

을 것이다. 만약 물건의 하자가 알 수 없는 요인에 의해서 생긴 경우라면 매수자는 운이 없다고 여길 수

밖에 없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한 흠결을 매도자도 모르고 있었던 경우라면 매도자에게 손해를 물을 수

는 없는 것이다. 매도자는 그 물건을 팔기 위해서 물건을 생산하는데 비용을 지출했음을 생각해 보라.

⑦ 물론 여기서 분명한 원칙은 매수자의 자유 의사에 따라 신중한 자기 판단력으로 매수를 결정했다고 해

서 매도자가 사기를 친 경우까지 매수자가 책임을 덮어써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매도자가 매수자를 속인 경우에 어떤 매수자가 사기를 당하고서도 매수 계약을 하였다고 여길 수 있겠는

가? 허위나 사기가 개입된 경우라면 당연히 매수하지 않았을 것임은 불문가지다. 따라서 매도자가 사기

를 친 경우라면 매도자가 그 책임을 당연하게 부담하는 것이다.

이렇게 매수자가 주의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매수자 책임 원칙 caveat emptor”은 논리적으로 현실적으로

타당한 것 같다. 그렇지만 우리나라 같은 대륙법 국가들은 이러한 영미법의 원칙과는 다른 원칙을 갖고

있다. 대륙법국가들은 매매 계약의 성격을 정해 놓고 있고, 매매 계약에 있어서 매수자에게 “신의 성실

good faith”의 원칙을 부담시키고 있으며, 매매 계약은 당사자간의 특별 관계에 기초한다는 사고를 갖고 있

다. 그리하여 매매 계약에서 매수자가 물건에 대한 흠이나 하자가 없음을 보증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그러므로 만약 물건에 흠이나 하자가 발견되는 경우 매매를 취소할 수 있다고 여긴다. 또 매도자는 자기

가 팔려고 하는 물건에 대한 가치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이에 따라 매도자는 매수자에게도

물건의 가치와 정보를 그대로 알려주어야 한다고 간주한다. 다시 말해 매수자는 물건을 사기 전에 꼼꼼

히 챙겨 보지 않고 있다가, 대신 매수자는 매도자를 믿고 산다고 말하면서, 사고 나서 조그만 흠이라도

발견되거나 또는 사정이 달라지게 되면 매매를 취소해 달라는 하는 것이 대륙법 국가의 기본적인 가정이

고 이것이 대개의 현실의 모습이다.

이렇게 대륙법 국가의 사람들은 매매계약에서 신의 성실의 원칙상 매도자는 허위 또는 사기를 치는 것이

허용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매매가격에 대한 정보도 매도자가 제공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적극

적으로 사기 치거나 또는 허위 과장 광고하는 행위는 금지될 뿐만 아니라 흠이나 부실을 숨기는 것도 금

지되는 것은 분명하다.

또 매도자가 물건의 가치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가정하므로 매도자가 폭리 수준으로 가격이 정해서

는 아니된다는 점을 전제하고 있다. 그러므로 매도자가 제시하는 가격 정보가 사고난 이후 내재 가치하

고 달라진 경우 매수를 하고 나서도 매매를 취소할 수도 있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상업 행위의 기본 속성상 특별한 경우가 아닌 이상 (단골 고객이거나 특수한 납품거래상이거나 하

청인 경우 등) 한번 팔고 난 물건을 취소하고자 하는 매도인이 누가 있겠는가! 그리고 설령 취소를 한다

고 해도 취소 비용이 들어가게 마련이다. 매수자가 주의 의무를 게을리한 경우에도 매수자 자신의 부주

의를 탓하기 보다는 매도자에게 책임을 묻고자 한다면 상거래의 속성상 어느 쪽이 유리하겠는가?

13.4. “침묵은 금 silence is golden”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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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법국가에서는 키케로의 격언처럼 “침묵은 금 silence is golden”이라는 덕목을 가르쳐 왔다. 자기 자신

의 정보는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져 왔고, 토론에서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발언하는 것을 삼가

는 경향이 크다. 타인에게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기대를 갖고 있는 것이 인간본성이라면 어느 누가 자기

결점을 스스로 밝히려고 하겠는가? 인간 본성상 자기 부족함은 감추고 자기 우월함은 자랑하려고 할 것

이다.

소금이나 일용할 양식을 매도자가 독점적으로 공급하는 전제국가에서는 매도자가 물건에 대한 하자가 없

다는 것을 보증해야 할 뿐만 아니라 폭리를 취할 가능성을 제거해야 할 것으로 매도자에게 의무를 부담시

킬 필요가 있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왕이나 가진 자들이나 상인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하려

는 기본적인 본성을 포기하는 경우란 거의 없다는 것이 밝혀졌다. 독점은 폭리를 낳게 마련이었다. 그

리고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소금이나 우유 등 생필수품마저도 매수자가 필요해서 물건을 산다는 측면을 감

안해 보면 매도자의 신의성실에 기대하기 보다 매수자가 스스로 모든 주의를 다해야 한다는 원칙이 보다

옳은 것 같다.

여기에서 오해하거나 혼동해서는 아니될 것은 영미법에서도 근대 대량 생산 공업 사회로 전환되면서 매도

자의 품질 보장과 허위 과장 광고에 대한 규제 등 영미법에서도 당연하게 “매도자의 책임 caveat venditor”

원칙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영미법에서 “소비자 보호법” 등 매도자 (공업 제품뿐만 아니라 금융상품

을 포함한다)의 책임을 강력하게 부담시키는 법률이 존재하고, 토지나 주택 매매에서도 매도자가 공시해

야 할 최소한의 조건을 명확하게 법률로 규제하는 등 매도자가 불법적인 사기나 허위 행위를 분명하게 단

속하고 있다.

거짓과 사기가 판치는 세상이라는 것을 다들 알면서도 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것일까?

“침묵은 금”이라는 속담과 같이 침묵은 항상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행위일까? 셰익스피어 희곡 “리차드

3세”에 나오는 대사를 보자.

“그러니 참 이 세상은 정말 거꾸로 돌아가는 거지요! 이렇게 뻔히 사기치는 짓을 모르는 바보 같은 사람

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다만 자기가 알고 그대로 감히 말했다가는 돌아올 피해가 무서워서 모두들 눈감

고 있는 것 아닙니까? 지금 세상은 정말 사악한 세상입니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제대로 말도 못하

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셰익스피어, 리차드 3세, 3막 5장).

이 대사에서와 같이, 지금은 불의와 불법이 판치는 세상이 되었고, 그렇지만 누군들 설령 진실을 알고 있

다 해도 진실을 말할 용기를 내기란 무척 어렵지 않겠는가? 왜냐하면 말 한마디 했다가는 자기 자신에

게 해가 미칠 것임을 모두가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지 오웰은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거짓

과 사기가 판치는 세상에서, 진실을 말하는 것은 혁명적인 행동이다” In a time of universal deceit, tell the truth

is a revolutionary act.“ 그런데 역사상 혁명이 일어난 경우는 거의 없다. 왜? 혁명이 그렇게 쉽다면 누군

들 못했을 리가 없을 것이다. 인간인 이상 어느 누군들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겠는가?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우기는 권력과 진실을 말하는 순진한 바보

솔직하게 진심을 말했다가는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것이 세상이라고 한다. 자기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진

솔하게 얘기하는 것을 일본말로 “바카 쇼지키 馬鹿正直”이라고 하는데 바카 쇼지키는 사슴을 말이라고 말

180

하는 것에 숨어 있는 의도를 알지 못하는 “stupidly honest”, “바보스런 솔직”, “우직스런’을 뜻하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갖고 있는 말이다. 여기서 “마록”을 있는 단어 뜻 그대로 번역하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없고

이 말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한자 고사성어 “지록위마”의 유래를 알아야 한다. 이 말은 사마천의 “사

기”에 나오는 등장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권력을 이용해 잘못된 것을 끝까지 우긴다”는 뜻으로 흔히 쓰인

다. 예컨대 “정부가 비행기나 함정 폭파 사건 등 대형 참사가 일어났을 때 진실 규명을 외면하거나 단

순 사고 사건으로 치장해 버리며 정부의 실패를 감추기 위한 ‘거짓말’의 수단을 동원하는 것을 가르킬 때

쓰인다.

정부의 변명이 사슴을 보고 말이라고 우기는 격이라고 국민들은 알면서도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데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권력은 외양 치장으로 진실을 가릴 교묘한 거짓말 skillful lying을 부릴 수 있는 능수능란

한 자원을 가졌고 따라서 만약 진실을 그대로 말한다면 자기 목숨을 잃을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때로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순진한 바보”가 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왜

사슴을 보고 있는 그대로 사슴이라고 말하는 것이 “순진한 바보”에 해당하는가? 말하는 사람의 숨은 의

도를 파악하지 못하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른다.

“지록위마” 고사성어의 유래를 살펴보자. 진시황제가 죽자 환관 조고가 실권을 장악하고 태자를 폐하고

대신 미련한 아들 호해를 왕의 자리에 앉혔다. 조고는 자신의 권력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누구인지 떠

보려고 호해에게 사슴을 바치며 말이라고 했다. 이에 왕이 말했다. "승상도 농담을 하는가? 사슴을 가지

고 말이라고 하다니 指鹿爲馬. 신하들이여, 그대들 눈에도 말처럼 보입니까?” 왕의 물음에 대해서 사슴

이라고 바른말을 한 신하들은 조고에게 모함을 당해 목숨을 잃었고, 말의 ‘외양 pretence’을 보고 말이라

고 대답한 즉 거짓말을 한 신하들은 살아남았다는 역사를 사마천은 기록하였다. 물론 여기서 사마천은

조고는 새로이 등극한 왕에게 피살되고 만다는 역사의 심판을 분명하게 기록하였다. 사람들의 말은 외양

속에 어떤 의도가 숨어 있는 경우가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숨은 뜻을 잘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181

13.5. 키케로 “의무론”-단기적인 이익 vs 장기적인 이익

당장 눈 앞의 단기적인 이익을 쫓는 행위와 장기적인 이익의 관점 차이-자기 이익추구와 도덕적 판단-자

기 이익 고수와 공동체 이익 추구-short-term vs long-term 관점의 차이

앞에서 영미법상의 매수자 책임 원칙이 대륙법의 매도자 책임 원칙에 비해서 보다 우월하다는 결론을 설

명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매도자 책임 원칙이 기본적인 법체계를 형성하고 있고, 키케로의 “의무론”을 강

조하고 있다. 키케로의 “의무론” 부분을 부연 설명 없이도 의미가 충분하게 설명된다. 우리나라에서 키

케로의 “의무론” 부분이 대학입시 시험 문제에 등장할 만큼 (서울대 입시 논술고사 99년 출제) 크게 강조

되고 있음을 볼 때 이 부분을 보다 정확하게 번역할 필요성이 있는 것 같다. 키케로의 “의무론” 해당 부

분은 다음과 같이 번역된다.

“자기 이익을 쫓는 행위가 도덕적인 올바름과는 충돌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는데 이런 충돌은 불가피한

것인지 아니면 서로 타협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심도 있게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경우에 해

당하는 다음과 같은 사례를 들어보겠다. 옛날 그리스 로우즈 섬에 흉년이 들어 먹을 양식이 부족해지자

곡물가격은 폭등했다. 이 때 어떤 정직한 사람이 지중해 건너편 외국 알렉산드리아에서 큰 배로 곡물을

가득 수입해 왔다고 보자. 다른 곡물 수입상들도 곡물을 가득 싣고 오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그가 분

명하게 알고 있다고 가정하자. 그가 항해 중에 곡물을 가득 실어오는 상선들을 실제로 보았다고 하자.

이러한 경우 이 수입업자는 로우즈섬의 사람들에게 이 사실을 밝혀야 할까? 아니면 입 다물고 침묵한

채 자기가 수입해 온 곡물을 가장 비싼 시장 가격으로 팔아 해치워도 될까? 내가 들고 있는 예는 도덕

적이고 양심적인 사람임을 가정하고 있어 만약 그가 사실을 감추는 것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

면 로우즈섬 사람들에게 사실을 감추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은 당연할 터인데 내가 여기서 질문하는 것은

그러한 침묵이 정말 도덕적으로 옳지 않은 것인지의 여부가 확실하지 않다고 의심이 드는 경우에 그가 어

떤 이유와 근거에서 로우즈섬 사람들에게 사실을 감추지 않을 것인지를 물어보는 것이다.” (Cicero, De

Officiis. 3.12.50.)

“… 안티파테르의 견해는 모든 사실은 공시되어야 한다는 것 즉 매도자가 알고 있는 사실은 매수자에게도

그대로 알려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디오게네스의 견해는 매도자는 물건에 하자가 있는 경우 그것을

외부로 밝혀야 하는데 외부 공시의 방법과 정도는 국내법률의 규정에 미리 정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법률 규정에 의해 제한된 경우 이외에는 매도자가 매도할 물건에 대해서 불법적인 사기나 허위 또는 과장

광고가 없는 이상, 자기에게 가장 유리한 가격으로 팔 수 있다는 입장이 디오게네스의 주장이다.

디오게네스: “나는 곡물을 먼 외국에서 수입해 와서 곡물을 매도하고 있는데, 다른 경쟁자들의 가격보다

더 높은 가격으로 팔지 않고 있으며, 시장에 공급이 넘칠 경우에는 가격을 더 낮춰서 매도할 것입니다.

이런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습니까?”

안티파테르: “무슨 말씀입니까? 각자는 사회 공동체를 이루는 동포 형제들의 이해관계까지를 고려해야

하고 또 공동체에 봉사할 의무가 있습니다. 이런 사회 공동체의 조건 아래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이고 따

라서 사람들이 준수하고 따라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은 내재적인 자연 법칙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르 개

인의 이익은 사회 공동체의 이익이 되는 것이며, 반대로 공동체의 이익은 개인의 이익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마땅한 사실들을 참작해도, 모두에게 풍족할 만큼의 곡물이 곧 도착할 거라는 좋은 소식을 동포 형

182

제들에게 감출 수가 있겠습니까?”

디오게네스: “하지만 감추는 것과 적극적으로 밝히지 않는 것은 분명히 다른 별개의 문제입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여기에서 상품의 내용이나 가장 좋은 품질이 어떤 것인지를 밝히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사람들

에게 뭘 감추고 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런 비밀을 아는 것은 곡물의 가격이 내려갈 것이라는 정보를

아는 것보다 매수자들에게 더 큰 이익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매도자인 나는 매수자들에게 이익이 돌아

갈 수 있는 모든 정보에 대해서 그것을 다 알려주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안티파테르: “네, 그렇습니다. 하지만 사람들 사이에는 하늘의 이치에 따라 맺어진 사회적 유대감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고려한다면, 사정은 달라진다고 보는데 이점은 수긍하리라 봅니다.”

디오게네스: “나도 그런 점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사회적 유대감’이란 말이 의미하는 바는

사유 재산이라는 개념이 전연 존재하지 않는 그런 사회를 뜻하는 겁니까? 만약 그런 사회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아무것도 결코 팔아서는 아니 되고 다만 공짜로 모두 나눠주어야 할 것입니다. ” (Cicero, De

Officiis. 3.12.51-3).

어떤 정직한 사람이 자신은 알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전혀 모르고 있는 어떤 결점 때문에 자기 집을 팔

려고 내놓았다고 가정해 보자. 그 집은 오염되어 사람이 사는데 문제가 많은 집인데도 건강에 나쁜 영향

이 없는 좋은 집으로 알려져 있는 경우, 방마다 뱀들이 기어 나오는 집인데도 일반 사람들은 그것을 모

르고 있는 경우, 또 목조 건물 구조에 문제가 있어서 붕괴 위험이 있음에도 이런 사실은 매도자인 집주인

외에는 아무도 모르고 있는 경우라고 가정하자. 만약 매도자가 주택 매수자에게 이러한 사실을 말해 주

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매수자가 생각하는 주택의 적정 가격 보다 훨씬 더 높게 팔려고 하는 경우 이 매

매를 부당한 거래 또는 ‘사기 fraudulent’ 매매에 해당된다(따라서 매수자가 매매를 취소할 수 있다거나 손

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는가?” (Cicero, De Officiis, 3.13.54.)

“안티파테르: “물론 부당한 거래에 해당합니다. 매수자에게 서둘러 거래를 끝내게 유인함으로써 매수자

에게 주택을 점검할 기회를 주지 않은 잘못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고의적으로 매수자를 착각에 빠

트린 행위에 해당합니다.”

디오게네스: “매도자가 집을 사라고 부추긴 말 한마디도 하지 않은 경우에도 매도자에게 집을 사라고 강

요했다고 볼 수 있습니까? 매도자는 자기가 좋아하지 않는 것을 팔려고 내놓았습니다. 매수자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매입했습니다. 만약 좋은 집도 아니고 잘 지어진 집도 아니면서 “주택 매매. 멋진 집임.

구조 튼튼함.” 이런 선전 문구를 걸어 놓는 것이 불법적인 사기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한다면, 자기가 팔려

고 내놓은 집에 대해 어떤 말도 언급하지 않고 그저 침묵한 것은 문제 삼을 수 없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매도자가 사기를 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점에 대해서도 자신의 판단력을 동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

시 말하지만, 명시적으로 언급한 것도 모든 것을 다 그대로 해야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

어떤 말 한 마디 조차 꺼내지도 않은 것에 대해서 어떻게 매도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겠습니까? 물건

을 팔려고 내놓은 매도자가 그 물건이 지닌 결점을 모조리 밝히는 것보다 더 어리석은 행동이 어디에 있

겠습니까? 주택 경매인이 집주인의 말이라고 하면서 “자 여기에 사람이 살기에는 적당하기 않은 집 한

채가 지금 매물로 나와 있습니다”라고 소리 높여 외친다면 정말 어리석은 행동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Cicero, DeOfficiis. 3. 13. 55.)

183

“그럼 키케로가 생각하는 해결책을 말해보겠다. 미곡상인은 로데스인들에게 사실을 감추어서는 아니될

의무를 부담하고 있고 또 주택 매도자도 마찬가지로 매수자에게 사실을 말해야 될 의무가 있다. 단순하

게 가만히 침묵을 지키고 있는 사실은 적극적으로 비밀을 감추는 행위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매도자가 알고 있는 사실이 매수자에게 알려지면 매수자에게 유리할 경우 매도자가 자기 이익을 위하여

타인이 그 사실을 알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적극적으로 사실을 감추는 행위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무엇

이 감추는 행위에 해당하는지를 분간하지 못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또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그런 감

추는 행위를 저지르게 되는 것일까? 어떤 경우이든지 간에 그런 사람은 솔직하고, 성실하고, 올곧고, 똑

바르고, 정직한 사람이 아니라 그와는 반대로 믿을 수 없고, 은밀하고, 요령 좋고, 간교하고, 속임수를 쓰

고, 교활하고, 사기와 배반에 물든 사람들일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이렇게 열거한 것과 같은 그리고 그

보다 더한 비난의 수식어가 붙는다면 그게 과연 자신에게 이익이 된다고 볼 수 있겠는가? (Cicero,

DeOfficiis. 3. 13. 57.)

단기적인 이익 vs 장기적인 이익

위와 같이 키케로의 “의무론” 중에서 매도자 정보 제공 의무에 관한 부분을 정확하게 번역했다. 키케로의

의무론를 통해서 영미법상의 “매수자 책임 caveat emptor” 원칙과의 차이점을 충분하게 인식할 수 있을 것

이다. 인간 본성과 상거래의 기본적인 성격에 비추어 본다면 상거래에서 매도자보다 매수자가 주의 의무

를 다해야 한다는 결론에 쉽게 수긍되지 않는가? 매매 거래에서 매수자에게 책임 의무를 부담시키고 있

는 영미법상의 “ 매수자 책임 원칙 caveat emptor ” 이 대륙법국가에서 기반하고 있는 “매도자 책임 원칙

caveat vendito”에 비해 보다 현실적임은 분명하다. 특히 주식 증권 시장의 구조와 생리를 이해한다면 매수

자 책임 원칙의 타당성과 그 중요성은 백 번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자본주의 상업의 속성상 매도자에

게 “신의 성실 good faith”의 원칙을 강조하면서 정보 제공 의무를 매도자에게 부담시키고 있는 대륙법의

기본적인 태도는 인간 본성과 자본주의 상업 거래의 기본적 특성을 간과하고 있는 측면이 크다. 물론 매

수자 책임원칙에도 일정한 한계가 있음은 분명하고, 또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영미법의 입법 추세는 소비

자 보호법 등 매도자의 책임을 강화시켜 오고 있다. 또 현재 양 제도상의 장점은 서로 수렴해가는 경향

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사회의 가장 기초적인 토대를 이루고 있는 법제도의 핵심에서 서로 차이점이 존

재하고 또 이런 차이점이 다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는 점을 정확하게 인식할 필요성이 있다.

아담 스미스가 논증한 바대로 자본주의의 기본 속성은 상대방의 호의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이익을

최대화하는 시키는 것에 있다. 사람들이 자기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반박할 수 없을 정도로 자명한 사실

이지만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바로 이익의 크기와 그 실현 시기를 언제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점이다. 영미국인은 “파이를 더 크게 키워서 더 큰 이익을 서로 나누자”의 사고에 쉽게 공감하여 장기적

인 이익을 추구하는 반면 대륙국가 사람들은 “남의 손의 백 마리 새보다 내 손 안의 한 마리의 새가 더

가치 있다”고 여기며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사람은 모두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방

향은 같지만 그 이익의 크기를 언제 어떻게 실현시키느냐의 관점에서 큰 차이가 존재한다. 이익의 관점

을 단기적으로 상정하느냐 아니면 정기적인 관점에서 보느냐의 차이에 따라 ‘이기주의’와 ‘이타주의

altruism’가 가름된다. 사람들은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하기 보다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이익이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어야 되고, 이에 따라서 참되고 행복한 인간 사회가 펼쳐질 수 있다는 점을 역사가 웅변해

주고 있지 않는가? 영미판례법에 기초한 대영제국과 미국이 세계를 제패한 이유와 그 정신적 토대가 바

로 여기에서 발견된다.

1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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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lson, J., "'Bartleby': The Walls of Wall Street." Arizona Quarterly 37 (1981), 335-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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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A Story of Wall Street

발행일 2015년 5월 15일 제1판제1쇄 발행

저자 추홍희

발행처 세계법제연구원

주소 경기 부천 원미구 부일로 205번길 46 (윌타운 601)

등록번호 제 387-2013-000054호

전화 070-4624-1335/ 010-2289-1335

email [email protected]

홈페이지 www.caselawcenter.com

블로그 caselawcenter.tistory.com

정가 29,500원

ISBN 9791195137916/93360

이 책의 국립중앙도서관 출판시도서목록(CIP)은

www.nl.go.kr/ecip 국가자료공동목록시스템

www.nl.go.kr/kolisnet 국립중앙도서관포털www.dibrary.net/

에서 이용할 수 있습니다.

이 도서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 추홍희 2015

저자 소개

추홍희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경영학석사)

뉴 사우스 웨일즈 대학교 로스쿨 졸업 (JD)

뉴 사우스 웨일즈 대학교 법학석사 졸업 (LLM)

COL 사법연수원 졸업 (GDLP)

KATUSA, LG 투자증권, Clyde & Co

호주법무법인 오스틴하워드 변호사

세계법제연구원 이사(현)

“인수합병M&A업무 한국시장 도입에 관한 연구”(석사논문)

“The Politics of Happiness” 역

email: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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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추홍희

고려대학교 법과대학 졸업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졸업 (경영학석사)

뉴 사우스 웨일즈 대학교 로스쿨 졸업 (JD)

뉴 사우스 웨일즈 대학교 법학석사 졸업 (LLM)

COL 사법연수원 졸업 (GDLP)

KATUSA, LG 투자증권, Clyde & Co

호주법무법인 오스틴하워드 변호사

세계법제연구원 이사(현)

“인수합병M&A업무 한국시장 도입에 관한 연구”(석사논문)

“The Politics of Happiness”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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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스트리트 변호사 이야기: A Story of Wall Stre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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