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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일시 <코끼리> 11.3~13 <빨강의 보색은 녹색> 11.17~27 평일 8시, 주말 3시, 월 공연 없음 장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문의 070-8276-0917 혜화동1번지 6기동인 가을페스티벌‘녹색극장’ 여기는 당연히, 극장 <코끼리> & 극단 작은방 <빨강의 보색은 녹색> 프리뷰 ‘동시대를 감각하여 연극을 만들고 극장을 연다’는 모토를 앞세운 혜화동1번지 6기동인이 이번엔‘녹색극장’이라는 주제로 찾아왔다. 그들은“‘녹색극장’을 통해 자연과 인간, 자연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물음을 던지고자 한다.”항상 동시대의 날선 주제를 내세워 왔던 그들이었기에‘녹색극장’이라는 단어가 가져다준 이미지는 신선하고 낯설었다. 9월부 터 시작된 가을페스티벌 작품들은 고정관념을 깬 주제의 해석을 통해‘녹색극장’을 채워가 있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설득되지 못한 무대, 혹은 사고의 영역을 확장한 무대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주제와의 부합 여부를 떠나 견고한 틀을 깨뜨려 질문을 던지는 행위 자체이지 않을까. 그렇게 6기동인은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11월에는‘여기는 당연히 극장’과‘극단 작은방’의 작품이 관객과 만난다. 이들이 만들 어갈‘녹색극장’은과연어떠한모습일까. 사회 속 희생된 피해자를 응시하다 여기는 당연히, 극장 <코끼리> 베츠야쿠 미노루 번역 정상미 연출 구자혜 출연 권정운, 박경구, 박수진, 이리, 최순진 무대미술 김은진 조명 고혁준 사운드 목소 움직임 금배섭 의상 김우성 분장 장경숙 사진 김도웅 그래픽 강경탁 구자혜 연출가에게‘환경’은 평소 관심 있던 문제 하나였다. 그녀가 창작자로서 가장 주된 화두로 꼽는 것은 바로‘세대 담론’이다. 구자혜는 불합리한 세계(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받아 들여 그것을 내면화하는 다음 세대에 관심이 많다. 그렇기에‘환경’에 대한 관심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는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할 하나의 책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자혜 연출가가‘녹색극장’이라는 주제 아래 택한 작품은 일본 작가 베츠야쿠 미노루 <코끼리>. <코끼리>는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피폭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는 우연 히 3~4년 전 아르바이트로 한 기업 사보 인터뷰 진행을 통해 반핵운동가를 만난 적이 있었 다. 그때, 늘 발밑에 도사리고 있는‘핵’의 공포를 인식했다. 때문에‘녹색극장’이라는 주제가 결정되었을 때, 바로 이 희곡을 떠올렸다. “일단‘환경’이라는 주제에 맞았고, 작품을 읽었을 때 원폭투하의 피폭자를 바라보는 방식이 훌 륭하다고 생각했어요. 정상미 번역가님도 그러셨는데, 이 희곡이 당시 초연됐을 때 인물(피폭자) 을 신파적으로 다루지 않아 신선했다는 평을 받았다고 해요. 작년과 올해 세월호 관련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같잖은 윤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 요. 우리가 피해자들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가, 마치 숭고한 존재, 떠받들어야 할 대상처럼 보 고 있지 않은지… 이번엔 스스로 지니고 있던 그러한 같잖은 윤리의식을 벗어내고 싶었어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피폭자들은 그렇게 성정이 훌륭한 인물들이 아니에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 어요.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을 어떻게까지 추락시키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 어요.” <코끼리>의 배경은 등에 붉은 상처를 입은 피폭자가 입원해있는 병원이다. 병원이라면 당연히 치료를 목적으로 해야 하지만, 이곳은 마치 그를 실험용 쥐처럼 관찰하고 연구한다. 작품 속에는 3명의 피폭자가 마치 그라데이션처럼 단계별로 나뉘어 등장한다. 이미 죽음의 문턱에 가까워져 있는 환자, 그의 조카이자 잠복 상태에 놓여있는 피폭자, 그리고 이미 피폭 증 상으로 머리가 벗어졌다 다시 간호사. 그리고 환자를 보살피는 그의 아내와 의사가 등장한다. 이들 흥미로운 존재는 바로 여성인 간호사와 아내다. 간호사는 원폭투하를 당한 피해자지 다른 이를 치료하는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사회생활을 이어간다. 또한, 아이를 낳는 목표를 세우며 미래의 삶을 계획하는 건강한 인물로 그려진다. 환자의 아내는 자신의 삶 뒤로한 남편을 간호한다. 그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아내는 결국 남편을 떠난다. 벼랑 과도 같은 상황 속에서 두 여성은 남성들에 비해 주체적인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렇듯 <코끼리>에는 원폭 투하라는 공통된 사건 속에서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있는 인물들이 그려진다. 원폭투하의 직접적인 피해자뿐만이 아닌 그들 가까이에서 자신의 삶을 미뤄둔 채 간병을 하는 가족이라는 다른 피해자. 우리는 작품을 통해 이들이 어떻게 생겨났고, 또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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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시 <코끼리> 11.3~13 <빨강의 보색은 녹색> 11.17~27

평일 8시, 주말 3시, 월 공연 없음

장소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문의 070-8276-0917

혜화동1번지 6기동인 가을페스티벌‘녹색극장’

여기는 당연히, 극장 <코끼리> &극단 작은방 <빨강의 보색은 녹색>

프리뷰 �

‘동시 를 감각하여 연극을 만들고 극장을 연다’는 모토를 앞세운 혜화동1번지 6기동인이

이번엔‘녹색극장’이라는 주제로 찾아왔다. 그들은“‘녹색극장’을 통해 자연과 인간, 자연

과 자연,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물음을 던지고자 한다.”항상 동시 의 날선 주제를 내세워

왔던 그들이었기에‘녹색극장’이라는 단어가 가져다준 이미지는 신선하고 낯설었다. 9월부

터 시작된 가을페스티벌 작품들은 고정관념을 깬 주제의 해석을 통해‘녹색극장’을 채워가

고 있다. 이는 누군가에게는 설득되지 못한 무 , 혹은 사고의 역을 확장한 무 로 남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건 주제와의 부합 여부를 떠나 견고한 틀을 깨뜨려 질문을 던지는

행위 그 자체이지 않을까. 그렇게 6기동인은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11월에는‘여기는 당연히 극장’과‘극단 작은방’의 두 작품이 관객과 만난다. 이들이 만들

어갈‘녹색극장’은 과연 어떠한 모습일까.

사회 속 희생된 피해자를 응시하다

여기는 당연히, 극장 <코끼리>

작 베츠야쿠 미노루 번역 정상미

연출 구자혜 출연 권정운, 박경구, 박수진, 이리, 최순진

무 미술 김은진 조명 고혁준 사운드 목소 움직임 금배섭 의상 김우성 분장 장경숙

사진 김도웅 그래픽 강경탁

구자혜 연출가에게‘환경’은 평소 관심 있던 문제 중 하나 다. 그녀가 창작자로서 가장 주된

화두로 꼽는 것은 바로‘세 담론’이다. 구자혜는 불합리한 세계(부조리한 사회구조)를 받아

들여 그것을 내면화하는 다음 세 에 관심이 많다. 그렇기에‘환경’에 한 관심은 당연할지도

모른다. 이는 다음 세 에 물려줘야 할 하나의 책임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자혜 연출가가‘녹색극장’이라는 주제 아래 택한 작품은 일본 작가 베츠야쿠 미노루

의 <코끼리>. <코끼리>는 1945년 히로시마 원폭 투하 피폭자들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는 우연

히 3~4년 전 아르바이트로 한 기업 사보 인터뷰 진행을 통해 반핵운동가를 만난 적이 있었

다. 그때, 늘 발밑에 도사리고 있는‘핵’의 공포를 인식했다. 때문에‘녹색극장’이라는 주제가

결정되었을 때, 바로 이 희곡을 떠올렸다.

“일단‘환경’이라는 주제에 맞았고, 작품을 읽었을 때 원폭투하의 피폭자를 바라보는 방식이 훌

륭하다고 생각했어요. 정상미 번역가님도 그러셨는데, 이 희곡이 당시 초연됐을 때 인물(피폭자)

을 신파적으로 다루지 않아 신선했다는 평을 받았다고 해요.

작년과 올해 세월호 관련 작품을 하면서 스스로 같잖은 윤리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걸 깨달았어

요. 우리가 피해자들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가, 마치 숭고한 존재, 떠받들어야 할 상처럼 보

고 있지 않은지… 이번엔 스스로 지니고 있던 그러한 같잖은 윤리의식을 벗어내고 싶었어요. 이

작품에 등장하는 피폭자들은 그렇게 성정이 훌륭한 인물들이 아니에요.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

어요. 작품을 통해 우리 사회가 피해자들을 어떻게까지 추락시키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

어요.”

<코끼리>의 배경은 등에 붉은 상처를 입은 피폭자가 입원해있는 병원이다. 병원이라면 당연히

치료를 목적으로 해야 하지만, 이곳은 마치 그를 실험용 쥐처럼 관찰하고 연구한다.

작품 속에는 총 3명의 피폭자가 마치 그라데이션처럼 단계별로 나뉘어 등장한다. 이미 죽음의

문턱에 가까워져 있는 환자, 그의 조카이자 잠복 상태에 놓여있는 피폭자, 그리고 이미 피폭 증

상으로 머리가 벗어졌다 다시 난 간호사. 그리고 환자를 보살피는 그의 아내와 의사가 등장한다.

이들 중 흥미로운 존재는 바로 여성인 간호사와 아내다. 간호사는 원폭투하를 당한 피해자지

만 다른 이를 치료하는 등 끝까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사회생활을 이어간다. 또한, 아이를

낳는 목표를 세우며 미래의 삶을 계획하는 건강한 인물로 그려진다. 환자의 아내는 자신의 삶

을 뒤로한 채 남편을 간호한다. 그 고단한 삶을 이어가는 아내는 결국 남편을 떠난다. 벼랑 끝

과도 같은 상황 속에서 두 여성은 남성들에 비해 주체적인 결정을 내리고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렇듯 <코끼리>에는 원폭 투하라는 공통된 사건 속에서 서로 다른 상황에 놓여있는 인물들이

그려진다. 원폭투하의 직접적인 피해자뿐만이 아닌 그들 가까이에서 자신의 삶을 미뤄둔 채

간병을 하는 가족이라는 또 다른 피해자. 우리는 작품을 통해 이들이 어떻게 생겨났고, 또 어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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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요구하지 않는 것에 비해 생태주의는 환경문제가 우리의 사회, 경제,

정치적 문제들이 겹쳐 생겨난 것으로 보고 사회 전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주장한다.

신재훈 연출가는 정치, 경제는 물론 개인의 생활방식이 환경에 미치는 향을 인식했다. 개인

의 작은 일상이 뒤바뀔 때, 환경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작

품을 창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들어진 <빨강의 보색은 녹색>은 소소한 몇 가지의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야기

마다 소주제가 담겨 있으며, 각 장면은 작은 질문들을 던진다.

신재훈 연출가는 이동기의 칼럼「빨강의 보색은 녹색이다」제목을 그 로 가져왔다. 그러나

빨강과 녹색을 정치적인 은유로 해석한 칼럼과 달리 공연은 두 색의 정치적 해석을 배제한

다. 그에게 녹색은 자본주의와 비되는“느린 공동체의 삶”이다.

“보색은 가장 비 되어서 도드라지게 보이게 만드는 색이잖아요. 사회 속에서 은유적인 의미

로도 비되면서 실제적으로도 보색 관계인 게 재밌었어요.

우리 삶에서 부득이하게 먹고 살다 보니 하지 못하는 것들이 생기잖아요. 물론, 그게 금기의

역도, 규율도 아니지만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개인의 삶은 어쩔 수 없이 위축되고 잃어갈 수밖

에 없게 되죠. 그런 삶과 비되는 게‘녹색의 삶’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빨강의 보색은 녹색>

은 우리 사회 속 현재 어딘가에서 아기자기하게 이루어지는 공동체의 삶을 그린 작품이에요.”

※ 기사에 게재된 사진은 여기는 당연히, 극장 <코끼리>의 연습장면입니다.

_김미지 기자 & 사진_박창현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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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 변화하는가를 응시하게 된다. 구자혜 연출가는 바로 이‘응시’에 초점을 맞춘다. 때문에 무 를 마치 백화점에 있는

쇼윈도처럼 연출했다.

“오히려 관객이 관망하는 걸 활용하면 어떨까 싶었어요. 병실 환자를 지켜보는 의사가 있고 그 의사를 바라보는 관객이

있고, 프레임의 프레임의 프레임인 거죠. 그것을 무 위 쇼윈도로 표현했어요.

세월호 피해자를 다룬 첫 공연이 생각을 더듬는 과정이었다면, 두 번째는 이상한 윤리가 작동했었던 시기 어요. 이제는

그것을 걷어냈어요. 이번에는 피해자들이 전면에 등장해요. 그들을 통해서 사회 혹은 국가가 피해자들을 어떻게 다루고

있는지, 역으로 추적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요. 피해자를 만들어낸 사회도 폭력적이지만 이들을 다루고 있는 방식이

더욱 폭력적인 거 같다고 느껴져요.”

인터뷰 말미, 구자혜 연출에게 물었다. “작품의 제목이 왜‘코끼리’일까요?”(작품 속에서 코끼리와 관련한 이야기는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녀 역시 정확한 의미를 찾을 수 없다고 했다. 배우들과 함께 추론한 몇 개의 답이 있을 뿐. 결

국, 그 답은 이 작품을 보게 될 관객들에게 남겨진 몫일지 모르겠다.

우리에게‘녹색’의 삶은 가능할까?

극단 작은방 <빨강의 보색은 녹색>

작∙연출 신재훈 출연 배윤범, 윤일식, 양택호, 문가에

드라마터그 유혜 | 무 , 조명디자인 남경식 | 의상디자인 이미나 | 분장디자인 장경숙 | 사진, 촬 최용석

신재훈 연출가에게‘환경’은 익숙하지만 낯선 단어 다. 가을페스티벌의 주제가 정해진 후 고민을 이어갔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갈피를 잡기가 더욱 어려워져만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환경문제가 현 사회의 체계, 즉 자본주의와

접한 관계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캠페인 이상으로 생각이 나아가지 않아 힘들었어요. 환경의식이 깊지 않았던 거죠. 환경이라고 하면 보통 자연보

호를 떠올리잖아요. 재활용, 분리수거 등 일상 속에서 장려되는 생활태도를 생각하다 질문이 던져졌어요. ‘환경을 보호

하는 게 그런 건가? 이게 근본적인 걸까?’생각을 거듭하니 환경문제가 자본주의라는 사회체계에서 비롯되는 것 같았어

요.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니 생태주의(ecologism) 사상이 비슷한 맥락을 가지고 있더라고요. 성장과 탈성장, 중심과

변두리, 독점과 공유, 효율과 비효율, 빠름과 느림… 이런 화두는 기존에 했던 고민이에요. 이런 문제가 환경운동가들이

일상에서 던지는 질문들과 비슷했죠.”

생태주의는“전통적인 환경주의보다 더 근본적이고 급진적인 방법으로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사상”이다. 환경주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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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 밖에서 모든 이가 덜 일하고 덜 소비하는 것, 다른 한편으로 존재의 더 많은 자율성

과 안전을 확보하는 것. 빨간색은 부분의 문화권에서 오랫동안 금지나 위헌을 뜻한 반면

그 보색인 녹색은 적어도 유럽에선 위반 및 전복을 표했다. 그러나 뉴턴의 스펙트럼 실

험 뒤 18세기에 색의 분류와 의미 부여가 정착되면서 빨간색의 보색으로서 녹색은 허가나

자유를 뜻하기 시작했다. (…) 한편 녹색은 애초의 전복이나 허가의 의미를 넘어 20세기

전반에는 자연과 생명과 평온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 이동기, 「빨강의 보색은 녹색이다」中, 『한겨레21』(1107호, 2016)

생태주의의 두는 근 이후의 자본주의 문명에 한 근본적인 반성과 성찰에서부터 비

롯되었다. (…) 생태주의는 그동안 인간과 자연을 철저하게 분리하여 인간의 자연 지배를

정당화시켰던 기존의 이성∙인간 중심적 사고를 거부하고 인간 또한 생태계의 일부로서

자연과 상호관계를 맺는 존재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 『통합논술 개념어 사전』中 , 2007. 12. 15., 청서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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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2 The Korean Theatre Review 2016. 11

프리뷰 �

극단 사개탐사<피카소 훔치기>결국은‘사랑’이라는 것

일시 11월 5~13일 평일 8시, 토 3시∙7시, 일 4시, 월 공연 없음

장소 학로예술극장 소극장

작 윌리엄 미조리 다운스 연출∙번역 박혜선

출연 홍원기, 정재은, 김수현, 김주완, 이봉련

문의 010-2069-7202

윤색 신현진, 박혜선 무 디자인 김정란 조명디자인 황종량

음악감독 김철환 의상디자인 김우성 분장디자인 백지

조연출 한상웅, 염승철 사진 이강물 그래픽디자인 다홍디자인

기획∙홍보 초록나비컴퍼니

미국 디트로이트 인근의 낡고 오래된 예술가의 집. 주변은 마치 무당집처럼 시의어가 써진 설치미술로 가득하다. 4년 만에 변호사가

되어 갑자기 찾아온 아들‘조니’, 그의 쌍둥이 누나이자 거리예술가인‘캐시’, 그리고 30년째 각광을 못 받고 있는 화가 아버지‘오

토’, 신경쇠약으로 위태로워 보이지만 가족을 누구보다 사랑하는 엄마‘벨’. 그들은‘오토’가 제1회 오노요코기념상에서 추상미술상

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에 들떠있고, ‘벨’은 존 레논의 아들인 션 레논의 방문 소식에 흥분해 있다. 그러던 중 디트로이트 미술관 관

장‘워커’가 찾아와 피카소의‘책 읽는 여자’그림이 도난당했다며‘캐시’를 의심하는데, 오랜만에 집을 찾아 온‘조니’는 계속 뭔가

를 숨기는 듯하다.

‘2015 National Playwrights Conference’

최우수작품의 국내 초연

<피카소 훔치기>는‘2015 National Playwrights Conference’의 최우수작품

이다. ‘National Playwrights Conference’는 미국의 유진 오닐 재단이 주최

하는 창작희곡 공모전으로, 지난 51년 동안 매년 창작희곡을 발굴해왔다. 작년

에는 총 1,300편의 공모 작품 가운데 현 사회의 정서와 세계관을 잘 담은 59

편을 우수작으로 선정하고 미국 연극계에 선보 다. <피카소 훔치기>는 그 중

에서도 약 8개월간의 낭독과 심의, 수정을 거쳐 최우수작품으로 뽑힌 희곡이

다. 그리고 2016년 11월, 극단 사개탐사의 손을 거쳐 처음으로 국내 관객들과

마주하게 됐다.

박혜선 연출가는 지난해‘2014 National Playwrights Conference’선정작이

었던 <타바스코>를 공연하면서‘National Playwrights Conference’의 존재

를 알게 됐다. 이후 관심을 갖고 공모를 지켜보던 중에 <피카소 훔치기>가 눈

에 들어 왔다. 작가에게 연락을 해서 공연을 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했고, 다행

히도 곧 번역 작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박혜선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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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자본주의, 가족

<피카소 훔치기>는 무엇을 이야기 할까?

우선, 피카소의‘책 읽는 여자’를 훔친다. 미술관은 발칵 뒤집힌다.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몇 가지만 짚어본다. 첫 번째로‘피카소’의 그림이기

때문에. 두 번째는 그 그림의 가격이‘2억 원’상당이기 때문에. 세 번째는

중이‘향유해야 할 예술 작품’을 누군가가 사적으로 소유하려 했기 때문에.

더 많은 이유가 있을 수도 있고 정답이 없을 수도 있다. 다만 <피카소 훔치기>

는 이 도난 사건을 통해 오늘날 예술이 존재하는 원론적인 이유가 무엇인지 묻

는다. 자본주의가 요구하는 가치에 따라 예술 또한 가격과 등급으로 매겨지는

오늘날 우리는 예술의 가치를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가. 우리에게 예술은 무엇

을 의미하는가. 또 우리는 예술을 어떻게 향유해야 하는가.

현 예술 체제에 해 얘기하는 연극은 많지 않다. 창작극의 경우에는 그런 사

례를 더욱 찾아보기 힘들다. 박 연출가가 직역에 가깝게 번역을 하면서도 신현

진 미술비평가와 함께 윤색 작업을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카소 훔치기>는

미술 체제 비평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으로 무

위에서 논리적인 논의를 시도하려는 것은 아니다. <피카소 훔치기>는 예술의 의

미에 해 질문을 던지되 일상적인 언어를 사용한다.

등장인물들만 봐도 그런 사실은 명확해진다. 천재적인 실력으로 모작을 그리던

화가 지만 이제는 변호사가 된 아들, 진보적인 사회주의 예술가인 쌍둥이 누

나, 상을 받음으로써 재기하려는 원로 화백 아버지, 예술에 한 로망을 철석같

이 믿는 엄마. 이들은 모두 한 가족이다. 예술가 가족이기에 이들의 갈등은 곧

예술적 갈등이 된다. 작품에 등장하는 네 사람의 관계는 서로 다른 예술적 신념

으로 인한 다툼, 소통의 부족으로 인한 오해와 이해 등으로 나타나고 있다. 여

기서 예술과 가족이라는 두 축은 엄격하게 분리되지 않고, 오히려 논리와 드라

마를 부드럽게 조화시켜 전달한다.

아니, 사랑에 관한 이야기

어쩌면 <피카소 훔치기>는 예술과 자본주의의 상충, 모순을 꼬집는 날카

로운 연극의 탈을 쓴 가족 코미디에 가깝다. 박 연출가는 그 모든 얘기를

가능하게 하는 배경에‘사랑’이 있다고 말한다. 가족은 결국 서로 사랑하

고 화합하는 관계이고, 예술 또한 사랑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자본주의 시 는 어느 한순간 갑자기 도래한 것이 아니다. 예술가가 이

땅에 존재했던 역사는 그보다 더 길다. 그래서 박 연출가는 자본주의와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예술가의 모순 사이에서 결론을 내리기 보다

는 관객들과 아름다움, 자유, 사랑을 나누기로 했다.

“전에도 저희 극단은 가정폭력, 지구과학, 인간의 외로움 등 다양한 소재

를 통해서 개인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변화하는 사회에

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고민해왔어요. 이번 작품에서는 예술가가 어

떻게 각자의 힘겨움을 펼쳐내는지가 관건이 되겠죠. 하지만 정확하게 답

을 정하거나 어떤 결론을 내리자는 건 아니에요. 결론은 없어요. 그냥 예

술을 즐겼으면 좋겠고, 연극을 재미있게 보고 나가면서 우리 삶에서‘사

랑’이나‘자유’라는 단어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각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됐

으면 좋겠어요.”

“아름다움과 재치, 비움이 아닌 돈과 명예만으로 성공의 잣 가 매겨지

는 이 나라의 삶에 해 생각하게 해주었습니다. “사랑해”라는 말이 피카

소의 진품만큼이나 드문 이 나라에 해서 말입니다.”- 작가의 中

_박혜인 기자 & 사진_박창현 포토그래퍼

1514 The Korean Theatre Review 2016.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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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뷰 �

극단 인어<인어를 사랑하다>인어를 사랑할 수는 없어

일시 11월 8~30일 평일 8시, 주말 4시, 월 공연 없음

장소 학로 예술공간 서울

작 최원석 연출 오유경

출연 송인성, 양동탁, 한규남

문의 1544-1555

음악감독 이호근 움직임 최희 무 디자인 김준성 의상디자인 김우성

조명디자인 김상호 조연출 김민경, 송은혜 홍보마케팅 (주)컬처마인

‘한기’는 아내‘소진’과 친구‘연오’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되고 그들에게 뜻밖의 부탁을 한다. 둘의 관계를

받아들이는 신 셋이 서로 사랑하며 공존할 것과 생명이 위독한 자신의 아버지에게‘연오’의 장기를 이식

해 줄 것. 그리고‘한기’의 재산을 셋이 공동 명의로 소유할 수 있음을 덧붙여 제안한다. 이에‘연오’와‘소

진’은 자신들의 사랑이 지속될 것과‘한기’의 막 한 재산을 탐내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다. 하지만 이식

수술 후, ‘한기’의 집착이 드러나기 시작하고‘연오’와‘소진’은 한기에게서 벗어나려한다.

10년 만에 공개되는 최원석 작가의 처녀작

극단 인어가 아홉 번째 신작을 들고 돌아왔다. 두 사람은 2011년 <변태> 초연 때 이미

합을 맞췄던 사이다. 이번 신작은 최 작가가 10년 전에 쓴 처녀작으로, 오 연출가와 당

시 공연을 하려 했으나 자금 문제로 인해 오늘에서야 무 에 오를 수 있게 됐다.

“초고와 큰 차이는 없어요. 그런데 처음 희곡을 받아들었을 때는 좀 어려웠죠. 쭉 읽으

면서 정독하기가 힘들었어요. ‘왜 이러지?’하면서 캐릭터에 한 질문이 계속 생겼

고, 사에 해서도 그랬고요.

하지만 연출가의 세계와 작가의 세계는 따로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한 편의 희곡도

연출에 따라 다양하게 공연되어야 작품 자체의 생명력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때문에 캐릭터나 표현 방식이 작가의 의도와는 조금 달라지더라도 오 연출가는 자신

의 해석과 방식에 맞게 표현하기로 했다. 핵심은‘낯설게 보게 하기’ 다.

단 세 명만이 등장하는 연극. 두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 한 쌍의 부부와 친구간의

얽힌 관계.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를 구성하는 관계만을 보고 이 작품을 불륜 드라마로

해석한다면 <인어를 사랑하다>는 지극히 예상 가능한 이야기로 흘러가 버리고 만다.

중반부 이후에 등장하는‘식인’이라는 커다란 반전도 하나의 장치에 불과한 것으로 그

의미가 축소되기 때문에 관객과 연극 사이의 거리감은 반드시 필요했다. 오유경 연출가

Page 6: 프리뷰 - ktheater.bravod.co.krktheater.bravod.co.kr/filedown.html?up_file=2_13.pdf · 의해석과방식에맞게표현하기로했다. 핵심은‘낯설게보게하기’였다

정말 인어를 사랑할 수 있겠어요?

불륜과는 다른 색채를 갖되 예상을 뒤엎는 흥미로움을 전달할 방법은 등장

인물들의‘예상 불가능성’에서 찾을 수 있었다. 오 연출가는 배우들에게

각자의 배역이 행동하는 동기를 논리적으로 찾지 말고 비약시켜 버리라고

주문했다.

실제 희곡에서도 등장인물들은 어디로 튈 지 예상할 수 없고, 그 행동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 스스로 자신의 행동에 해 죄의식을 느끼다가도, 아

무런 이유 없이 혹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사소한 이유 때문에 순식간에

이기적으로 변해버린다. 그런데 이같은 등장인물들의 면모는 돌이켜보면

우리 자신을 닮아있다. 비이성적이고 모순덩어리인 인간의 모습이자 인간

사회의 다양한 군상을 과장되게 표현할 뿐이다.

“감정이입이 불가능한 캐릭터라고 생각했어요. 어차피 감정이입이 안 된다

면 구경할 수밖에 없거든요. 구경을 흥미롭게 하려면 아예 그런 점들을 강

조시켜버려야겠다고 판단했죠. 오히려 연극이 끝난 이후에 관객들끼리 이

야기를 나누면서 수많은 모순과 키워드를 좇아가길 바라요. ‘그 사람은 거

기서 왜 그랬던 거야?’, ‘아까 그 장면은 무슨 뜻이야?’하면서요.(웃음)

연극의 제목부터도 그렇죠. 인어를 사랑한다는 말 자체가 모순이에요. ‘사

랑’을 육체적인 결합까지 포함하는 의미로 사용한다면, 현실적으로 인간과

인어는 사랑할 수 없는 거죠. 설령 인어의 상반신과 하반신이 바뀐다고 해

도 그 눈을 바라보며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결국 결합할 수 없는

조합을 말하는 거예요.”

1918 The Korean Theatre Review 2016. 11

그래서 뭘 먹는다고?

<인어를 사랑하다>에서 인육을 먹는 행위는 커다란 반전이자 핵심

이고, 어떤 계급이 다른 계급을 찍어 누르는 과정을 표현하는 수단

으로 사용된다.

“관객들이 식인 행위 그 자체로 받아들일 거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 확신이 있어요. 『베니스의 상인』에서도 살점을 떼어내는 행위

가 궁극적으로 샤일록이 가진 잔인성을 표현하잖아요. 그런 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노력할 거예요.”

이 작품은 진지하게 식인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적자생존을 이야기하고 약육강식의 세계를 이야기한다. 가진 자가

도리어 기생하고 없는 자의 피를 빨아먹는 현실을 괴기하게 풀어낸

다. 권력과 자본으로 얼룩진 사회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육당한 사람

들. 탐욕이 만들어내는 지배자의 물림. 인간의 탐욕 앞에서 사랑,

우정, 희생, 의리, 용기, 가족애와 같은 인간적인 가치들은 정복당하

고 만다.

오 연출가는 특히 이번 작품이 캐릭터가 완전히 살아야만 메시지

전달이 가능하다고 보고, 효과적인 캐릭터 표현을 위해 사의 강조

를 택했다. 예를 들면‘민중들을 억압하려는 속셈이다’, ‘공존은 있

을 수 없다. 다 같은 질서란 없다’와 같은 식의 사들이다. 배우들

은 빠르게 때로는 내지르는 듯이 사한다. 심상치 않은 문장 같아

도 이미 지나가버려서 곱씹을 수 없거나 아예 놓치게 되는 단어도

많다. 하지만‘불감증’, ‘느끼지 못한다’처럼 중복되는 의미를 표현

하는 말이 내포하는 것, 또 그것이 꼬집으려는 모순에 집중해 봐야

한다.

“진지한 내용을 진지하게만 가져가면 한계가 있습니다. 지루하거나

생각하다가 지칠 수 있고, 가르치는 듯이 들릴 수도 있고요. 스쳐지

나가면서도 가슴에 꽂히는 말들이 있을 거예요. 그런 몇 가지의

사들과 눈에 보이는 요소들만 가지고 가도 충분할 수 있어요.

권력은 없어지지 않고 흘러갈 뿐이죠. 우리는 수많은 딜레마 속에서

살아가지만, 강자는 여러 형태로 변화하고 퇴화하고 다시 강화하면

서 변태해가요. <인어를 사랑하다>는 세상의 순환 논리인 약육강식,

권력 문제를 얘기하려고 해요. 가장 일상적 틀에서 세상 논리를 이

야기하는 작품입니다.”

_박혜인 기자 & 사진_박창현 포토그래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