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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문초록본고는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에 대한 연구이다. 이색( )은 고려 말 문신( )이고, 학자이며 시인이다. 그동안 이색의 한시에 대한 연구는 이미 많은 성과를 이루고 있다. 그는 일상 서사( )에 다방면으로 관심을 두면서, 이를 시화( )하였다. 그의 시세계 는 소재 및 제재에 있어서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품 중에서 세화 십장생을 노래한 시는 우리나라 십장생도에 대한 문헌상 가장 이른 시기의 언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의 세화 및 십장생에 대한 연구는 주로 조선시대 연구가 주류를 이루 었다. 본고에서는 고려 말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 연구를 통해 그의 시가 갖는 의미를 탐구하 고자 한다. 고려 말 원 간섭기에 이색은 고려 지식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있었고 자국 의 문화 발전에 선도적인 인물이었다. 세화 십장생은 임금이 신하에게 세시( )에 송 ( )의 의미로 하사한 것이다. 이색은 이 그림을 병중( )에 다시 꺼내어 보고 시화( )하였다. 따라서 그의 세화 십장생시는 단순한 장수( )’에 대한 염원을 넘 어서 인간 존재의 삶에 대한 인식과 그 지향점을 살펴볼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 이 논문은 2018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8S1A5A2A01038908) ** 조선대학교 한문학과 강사.

한민족어문학회emunhak.com/chart/88_02_whangsj.pdf · 2020. 7. 16. · (NRF-2018S1A5A2A01038908) ** 조선대학교 한문학과 강사. ! "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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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歲畫十長生詩) 연구*

    황수정**1)

    ∥차 례∥

    Ⅰ. 머리말

    Ⅱ. 항구적 삶의 인식

    Ⅲ. 가변적 삶의 지향

    Ⅳ. 맺음말

    【국문초록】

    본고는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에 대한 연구이다. 이색(李穡)은 고려 말 문신(文臣)이고,

    학자이며 시인이다. 그동안 이색의 한시에 대한 연구는 이미 많은 성과를 이루고 있다.

    그는 일상 서사(敍事)에 다방면으로 관심을 두면서, 이를 시화(詩化)하였다. 그의 시세계

    는 소재 및 제재에 있어서 다양하고 풍부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작품 중에서 세화

    십장생을 노래한 시는 우리나라 십장생도에 대한 문헌상 가장 이른 시기의 언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의 세화 및 십장생에 대한 연구는 주로 조선시대 연구가 주류를 이루

    었다.

    본고에서는 고려 말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 연구를 통해 그의 시가 갖는 의미를 탐구하

    고자 한다. 고려 말 원 간섭기에 이색은 고려 지식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있었고 자국

    의 문화 발전에 선도적인 인물이었다. 세화 십장생은 임금이 신하에게 세시(歲時)에 송

    축(頌祝)의 의미로 하사한 것이다. 이색은 이 그림을 병중(病中)에 다시 꺼내어 보고

    시화(詩化)하였다. 따라서 그의 세화 십장생시는 단순한 ‘장수(長壽)’에 대한 염원을 넘

    어서 인간 존재의 삶에 대한 인식과 그 지향점을 살펴볼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 이 논문은 2018년 대한민국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된 연구임

    (NRF-2018S1A5A2A01038908)

    ** 조선대학교 한문학과 강사.

    https://doi.org/10.31821/HEM.88.2

  • 34 韓民族語文學 第88輯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항구적인 삶에

    대한 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는 천상의 항상성과 지상의 지속성을 노래한 작품이

    속한다. 즉 해와 구름, 물과 돌에 대한 작품이다. 이색은 자연 순환의 원리를 통해 삶의

    원천과 그 기상을 노래하고 있다. 따라서 작품에서 생성의 힘과 그 근원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다음은 인간의 가변적 삶에 드러난 그의 태도를 고찰할 수 있다. 소나무

    (松)ㆍ대나무(竹)ㆍ영지(芝)ㆍ거북(龜)ㆍ학(鶴)ㆍ사슴(鹿)의 시를 통해 표출하였다. 즉

    동식물의 영험과 무변성을 통해 정치가로서, 신하로서의 면모와 참된 지식인으로의 자세

    를 드러냈다. 이로써 그의 세화 십장생시는 삶의 근원을 제시하고 자신의 지향점을 다시

    금 표출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주제어 : 이색, 세화(歲畫), 그림, 십장생도(十長生圖), 항구적, 생성, 가변적, 지향

    Ⅰ. 머리말

    본고는 목은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에 대한 연구이다. 이색(李穡, 1328~1396)은 고려 말 문신이고, 학자이며 시인이다. 자는 영숙(潁叔)이고 호는 목은(牧隱)이다.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부친은 이곡(李穀)이며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다. 이색은 1341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진사가 된 후, 1348년 원나라에 가서 국자감의 생원이 되어 성리학을 연구하였다. 1351년 부친의 상으로 이후 귀국하여 고려의 대신이 된 인물이다. 이색의 한시에 대한 연구는 최근에도 많은 성과를 이루고 있다.1) 그는 일상 서사에 다방면으로 관심을 두면서, 이를 시화(詩化)하였

    1) 김동준, 「牧隱 李穡의 漢詩에 나타난 老年의 日常과 詩的 形象」, 한국한시연구제21집, 한국한시학회, 2013, pp.41-78; 임효정, 「이색 한시에 나타난 세시풍속의 양상 연구」, 울산대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8; 김재욱, 「牧隱 李穡의 詠物詩 硏究」,

  •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歲畫十長生詩) 연구 35

    다. 따라서 그의 시세계는 소재 및 제재에 있어서 다양하고 풍부하다. 그의 작품 중 세화 십장생을 노래한 시가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세화 십장생에 대한 가장 이른 시기의 언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2) 세화는 일반적으로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한 용도로 그려진 그림이다.

    즉 도화서(圖畵署)에서 수성, 선녀, 십장생 등의 그림을 그려 임금에게 드리고 임금이 다시 이를 재상(宰相)과 근신(近臣)에게 하사하는 송축용 그림을 말한다. 현재 세화라는 용어는 세시풍속과 관련된 용도로 그려진 그림이다.3) 일반적으로 이러한 세화 풍습이 본격적으로 성행된 것은 조선후기로 본다.

    여기에 문헌상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세화 십장생의 기록으로 이색의

    세화 십장생의 의미가 있다. 이처럼 십장생도는 고려 말부터 세화로 그려져서 애호되었다. 이색의 기록4)을 보더라도 임금이 근신에게 내린 송축용 세화 십장생도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이색의 세화 십장생은 7언 절구 10수로 구성되었다. 해, 구름, 돌, 물, 소나무, 대나무, 지초, 거북, 학, 사슴 등 십장생의 그림을 시로 형상화한 것이다.5)

    고려대 대학원 박사논문, 2009; 성범중, 「牧隱 李穡의 風俗 關聯 漢詩」, 한국한시연구 제21집, 한국한시학회, 2013, pp.79-112; 변종현, 「李穡 漢詩의 風格 硏究」, 東方漢文學 제30집, 동방한문학회, 2006, pp.187-218; 윤인현, 「鄭知常ㆍ李穡의 詩風과 後代의 詩評」, 한국고전연구 제10집, 한국고전연구학회, 2004, pp.215-246; 어강석, 「牧隱 歌行詩에 나타난 特徵的 構法」, 한국한시연구 제22집, 한국한시학회, 2014, pp.97-136.

    2) 김용권, 「朝鮮時代 歲畵의 始原 硏究」, 동양예술학회, 2007, p.16; 김윤정, 「조선후기 세화 연구」, 이화여대 석사학예술 제12호, 한국동양위논문, 2002, pp.19-20; 이정인, 「조선시대의 세화(歲畵)에 대한 연구」, 홍익대 석사학위논문, 2006, p.19.

    3) 김윤정, 「조선후기 세화 연구」, 이화여대 석사학위논문, 2002, p.24. 4) 이색, 목은시고 권12, “歲畫十長生, 日雲水石松竹芝龜鶴鹿. 吾家有歲畫十長生, 今茲十月尙如新. 病中所願無過長生, 故歷敍以贊云”

    5) 이색은 고려 말 원 간섭기의 시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있었고 자국의 문화 발전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인물 중의 한 사람이었다. 황수정, 「고려시대 제화시의 생성과

  • 36 韓民族語文學 第88輯

    옛 동양 문화 특징 중의 하나는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놓고 모든 자연

    현상이나 자연물의 생태를 인간 중심으로 관찰한 결과를 인간사와 결부시

    켜 해석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십장생도 속에 보이는 모든 자연물은 그것이 현실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화면에는 이미 본래의 자연이

    아닌 인간적으로 해석되고 탈바꿈된 자연임과 동시에 작가사상과 정서를

    매개하는 상징물인 것이다.6) 이러한 세화에 대한 연구는 그간 주로 조선시대 세화를 중심으로 연구되었다.

    본고에서는 고려 말 세화 십장생시에 대한 연구이다. 이는 문헌 상 가장 이른 시기의 세화 십장생에 대한 시라는 점과 이색의 십장생도 시가 갖는

    의미를 탐구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우리 민족이 십장생에 담은 염원과 의미하는 바를 되새기고, 단순한 ‘장수(長壽)’의 의미를 넘어선 인간 존재의 삶에 대한 인식을 살펴본다는 데 의의가 있다.

    Ⅱ. 항구적 삶의 인식

    이색 한시에 대한 연구자들은 이색 시와 일상의 상관성에 대해 보다 분

    명한 견해를 제출하였다. 시 쓰기의 개인사적 정황, 시를 쓰는 태도, 소재의 확산 양상, 시 작품의 핵심적 성격, 성취와 한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7) 이러한 그간 이색 시에 대한 연구와 견해를 수용한다. 이를 바탕으로 그가 노래한 세화 십장생은 그림에 대한 작품이다. 그가 직접 표출한 그림에 대

    유입 문화, 동아인문학 제48집, 동아인문학회, 2019, p.31 참조. 6) 이정인, 「조선시대의 세화(歲畵)에 대한 연구」, 홍익대 석사학위논문, 2006, p.20.7) 김동준, 「牧隱 李穡의 漢詩에 나타난 老年의 日常과 詩的 形象」, 한국한시연구

    제21집, 한국한시학회, 2013, p.46.

  •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歲畫十長生詩) 연구 37

    한 작품이 있다. 이색이 직접 그림을 노래한 작품을 통해 그의 그림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模寫何從較異同 모사한 그림을 어찌 다름을 비교할 것인가

    瞻烏未可辨雌雄 까마귀의 자웅 구별할 수 없는 격이네.

    白頭花鳥無心管 백발 나이로 화조는 관섭할 마음 없고祇許江山入眼中 눈 안에 들어온 강산만을 허락할 뿐이네8)

    위 시는 이색이 노래한 세속의 4가지 기예 중에서 그림에 관한 작품이다. 이색은 거문고·바둑·글씨·그림 등 4가지를 세속의 필요한 기예로 보았다. 그 중에서도 위 작품에서는 이색의 그림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이색은 그림이 자연물을 모사한 것이나 실제의 모습과 다를 바 없

    다는 점을 시사한다. 그것은 마치 까마귀의 자웅을 구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도 하였다. 이색은 화조도보다는 강산을 그린 산수도에 관심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이색은 실존을 묘사한 그림에 대한 긍정적인 시선을 보이고 있

    다. 따라서 그림 묘사는 까마귀의 자웅을 구별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보았다. 그러나 세화 십장생시에서는 송축과 장수 기원의 뜻을 담은 것으로 그의 삶에 대한 인식을 알 수 있다. 임금에게 하사 받은 세화 십장생을 병중에 다시 꺼내보면서9) 영물(靈物)의 기운을 통해 생명의 원천을 되새기고 그 삶의 인식을 드러낸 것이다. 먼저 우주순환 원리의 무한성과 항상성에 대한 경외와 지상의 강한 지속성에 대한 생명력을 표출한 것을 알 수 있다.

    8) 이색, 목은시고 제9권, 「琴碁書畵」 중 . 이하 목은시에 대한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 DB를 주로 참고하였고, 일부는 필자가 재고하여 수정한 것임.

    9) 앞의 각주 4번 참조.

  • 38 韓民族語文學 第88輯

    1. 천상의 항상성

    圓象蒼蒼晝夜旋 하늘은 푸르고 푸르며 밤낮으로 회전하고

    山河大地海中船 산하대지는 바다 가운데 배와 같네.

    日輪萬古無停處 해는 만고에 멈추는 곳이 없는데可笑姮娥或後先 달이 혹 앞서고 뒤서는 것이 가소롭네.10)

    이 작품은 십장생 중에 해[日]를 읊은 것이다. 여기서는 특히 주야로 회전하며 만고(萬古)의 멈춤 없는 항상성을 언급하였다. 기구에서는 우주의 원리를 하늘로 그리고 있다. 하늘의 끝없이 넓고 푸름을 첩어(疊語)인 ‘창창(蒼蒼)’을 통해 강조하고 있다. 낮과 밤이 바뀌는 우주의 원리를 담고 있다. 또한 산하대지, 즉 지상의 넓고 광활함을 ‘해중선(海中船)’으로 풀고 있다. 기구와 승구가 하늘과 산하대지를 그렸다면, 전구와 결구에서 해와 달을 비교하였다. 비교를 통해 해의 항상성을 드러내고 있다. 해[日輪]에 대하여 ‘만고무정처(萬古無停處)’라고 한 것은 해의 속성을 드러낸 것이다. 마치 시경의 “밝고 밝은 하늘 위, 땅 아래 임하여 비추네[明明上天, 照臨下土]”와 같은 천인상관 세계관을 보여준다. 즉 우주와 인간의 상관관계를 통해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그지없는 생명력을 담아낸 것이다.

    觸石漫空勢迥殊 돌 부딪고 공중에 퍼지면 형세 월등히 달라져

    藏形海市與天衢 신기루와 하늘의 형체 전부 감춰 버리네.

    雖然舒卷迷人眼 비록 말고 펴고 사람의 눈을 미혹하지만

    興雨祈祈萬物蘇 주룩주룩 내리는 비 만물을 소생시키네.11)

    십장생 중 구름에 대한 작품이다. 만물의 소생과 우주의 조화를 다루었

    10) 이색, 목은시고 권12, 「歲畫十長生」 중 .11) 이색, 목은시고 권12, 「歲畫十長生」 중 .

  •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歲畫十長生詩) 연구 39

    다. 천지 자연의 소생과 만물 조화의 원칙을 그려냈다. 기구의 “돌 부딪고 공중에 퍼지면 형세 월등히 달라져[觸石漫空勢迥殊].”는 구름이 산봉우리와 부딪치면서 고중으로 퍼져 나오는 것을 형상화한 것이다. 이는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 희공(僖公) 31년 조(條)에, “작은 운기(雲氣)가 돌을 부딪고 나와서 점차로 모이면 하루아침이 다 안 가서 천하에 비를 두루 내리

    게 하는 것은 오직 태산(泰山)뿐이다.”12) 한 데서 온 말이다. 만물 생성의 원리를 담고 있다. 응결된 수증기는 작은 물방울이나 얼음 알갱이가 되어 일정한 곳에 몰리면서 구름이 된다. 또한 구름은 습기를 가진 공기 덩어리가 높이 올라갔을 때 생긴다.

    승구에서 ‘해시(海市)’는 실제로는 없는 사물이 눈에 보이거나 먼 곳에 있는 물체가 공중에서 보이는 현상을 말한다. 주로 바다나 사막에서의 신기루와 같은 현상이다. 구름의 생성과정을 마치 신기루가 하늘을 뒤덮는 형태로 묘사하고 있다. 사실 구름 자체는 일정한 형태를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화한다. 따라서 전형적인 형태를 판별하기도 어렵다. 장생에서의 구름의 의미는 발생→발달→쇠약→소멸의 과정을 통한 천지자연

    의 소생에 그 의미를 두는 것이다. 따라서 이색은 전구에서도 ‘미인안(迷人眼)’이라 하여 구름이 사람의 눈

    을 미혹하게 한다고 드러냈다. 구름의 비정형적인 형태와 그로인한 미혹됨을 묘사하였다. 결구에서는 구름이 이루어내는 생성의 힘을 드러내고 있다. 만물을 소생시키는 우주 조화의 원리를 담고 있다. 변함없이 이루어지는 우주의 원칙을 그리면서 생명 탄생의 생동감을 보여준다. 이색의 또 다른 제화시인 13)를 보면, “모사한 것이 어찌 그리 정교한가 묘처는 참으로 조화의 비밀을 누설한 듯하네[模寫何其精, 妙處眞天機].”

    12) 한국고전번역원, 목은시고 권12, 각주 참조.13) 이색, 목은시고 권3, 중에서.

  • 40 韓民族語文學 第88輯

    라고 한 바가 있다. 이처럼 이색은 십장생 중 천상의 해와 구름의 시에서 삶의 생명력과 그 원천을 그려낸 것이다.

    2. 지상의 지속성

    浴沂當日洒煩襟 기수에 목욕한 날 번잡한 가슴 씻었으니

    便識長流亘古今 문득 긴 흐름이 고금에 걸쳤음을 알겠네.

    一領仲尼川上嘆 한번 중니 냇가 탄식을 받음으로부터

    不容觀海始知深 바다를 봐야 비로소 깊은 줄 안다는 말 인정

    않노라.14)

    이 시는 세화 십장생 중 물[水]에 관한 작품이다. 물에 대한 시적 형상화에서 이색은 기구에서 論語 「先進」 편의 구절을 용사하였다. 자로와 증석, 염유, 공서화가 공자를 모시고 앉았을 때, 나눈 이야기 중 증석의 말을 취한 것이다. 세상의 쓰임에 처(處)할 바를 묻자, 다른 세 사람에 비하여 증점은 다른 기상을 보여주었다. 즉 “늦봄에 봄옷이 만들어지면, 관을 쓴 어른 5, 6인, 동자 6, 7인과 함께 기수에서 목욕하고 무우에서 바람을 쐬며 노래하며 돌아오겠습니다[暮春者 春服旣成 冠者五六人 童子六七人 浴乎沂 風乎舞雩 詠而歸].”라고 하였다.

    공자는 증점의 유유자적한 기상 높게 보았다. 이색 또한 일상생활의 떳떳함을 즐기고 가슴 속의 유연함이 절로 드러나는 삶이 고금에 이어진다고

    본 것이다. 승구에서 이러한 삶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욕기풍무우’의 자세는 인간이 지니는 이상적인 무소유, 즐김의 태도일 것이다. 세상의 번잡함을 피하고 자신에 집중할 수 있는 삶의 표본일 것이다.

    또한 전구에서는 끊이지 않고 흐르는 물에 대한 것으로 생명력을 드러

    14) 이색, 목은시고 권12, 「歲畫十長生」 중 .

  •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歲畫十長生詩) 연구 41

    내고 있다. 논어(論語) 「자한(子罕)」 편에서, “가는 것이 이와 같구나. 밤낮을 쉬지 않는도다[逝者如斯夫 不舍晝夜].”를 인용하였다. 모든 천지의 조화는 마치 물의 흐름처럼 그침이 없이 이어짐을 드러낸 것이다. 논어 「옹야」 “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靜 知者樂 仁者壽”라 하였다. 물은 흐름 안에 있어야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생명력의 강인함과 그 원천을 십장생의 물을 통해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면서 이색은 장자 外篇 秋水,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에 대하여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井蛙不可以語於海者].”에 대한 불인정, 즉 바다를 봐야 깊은 것을 안다는 것에 대한 통찰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五嶽聯綿壓衆山 오악이 연이어서 뭇 산을 압도하는데

    只將沙土肉成團 오직 모래와 흙으로만 둥글게 뭉쳐졌네.誰知有石中爲骨 누가 알겠는가 돌이 한가운데 골격이 되어

    水囓雷搖兀自安 물이 할퀴고 천둥이 쳐도 끄떡하지 않는 걸.15)

    이 시는 십장생 중에 돌에 대한 작품이다. 오악을 중심에 두고 묘사하였다. 우리나라의 오악은 일반적으로 백두산·금강산·묘향산·지리산·삼각산을 말한다. 그러나 신라 때는 토함산·지리산·계룡산·태백산·부악을 오악으로 하였다. 또한 고려 때에는 덕적산(德積山)·백악(白岳)·목멱산(木覓山) 등에서 산신 제사를 지냈다.

    고려사(高麗史) 42권, 「공민왕세가(恭愍王世家)」를 보면, “새롭게 제정한 각 신령의 호칭을 뒤에 자세히 나열한다. 오악(五嶽)은 동악(東嶽) 태산지신(泰山之神), 남악(南嶽) 형산지신(衡山之神), 중악(中嶽) 숭산지신(嵩山之神), 서악(西嶽) 화산지신(華山之神), 북악(北嶽) 항산지신(恒山

    15) 이색, 목은시고 권12, 「歲畫十長生」 중 .

  • 42 韓民族語文學 第88輯

    之神)이라 칭한다.”16)라는 기록이 나온다. 이름 자체를 신격화하며 오악의 의미를 더하고 있다. 이러한 산악숭배는 왕조보존과 국가수호, 자연재해에 대한 극복의 의미를 실었다.

    조선시대에는 왕족의 무궁번창을 기원하고 절대적인 왕권을 상징하는

    궁중 길상(吉祥)장식화인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가 있었다. 5대 명산(백두산·묘향산·금강산·삼각산·지리산)과 붉은 해, 흰 달, 붉은 소나무, 계곡 폭포수, 강의 파도를 그린 그림이며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 일월곤륜도(日月崑崙圖)라고 불렸다.17) 일월오악도의 그림에서 보듯 오악은 왕권과 장수를 상징한다.

    이색은 십장생에서 돌의 장중함을 말한다. 어떠한 고난에도 우뚝하여 움직이지 않는 그대로의 모습을 높게 보고 있다. 산이 모래와 흙으로 둥글게만 뭉쳐졌다 해도, 함부로 흐트러지거나 무너지지 않는 것은 그 가운데 돌이 골격이 되어 받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인간 삶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시련과 역경 속에서 인간이 견뎌낼 수 있는 것은 원칙이 바로 서있

    을 때 가능한 일이다. 이는 논어 「학이」 편의 “본립이도생(本立而道生)”이라는 말처럼 기본이 바로 서야 나아갈 길이 생긴다는 말이 있다. 개인은 물론이고, 국가나 사회, 어떤 조직도 근본이 바로 서지 않으면 원칙이 무너지고 질서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색은 오악의 근간이 되는 돌의 의미를 삶의 근원과 그 기상으로 부각시킨 것이다.

    16) 고려사(高麗史) 42권, 「공민왕세가(恭愍王世家)」 19년조.17) 주로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어좌 뒤에 병풍 장식으로 놓았고 왕의 초상인

    어진을 모신 진전(眞殿)이나 왕의 신주를 모신 혼전(魂殿)에도 두었다. 왕권을 상징

    하는 그림이므로 왕이 있는 곳에 항상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가 있으며, 주로 병

    풍 위에 그려놓아 일월오악병((日月五嶽屛)이라고도 부른다. 이러한 일월오악도는

    왕권의 상징으로 길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왼쪽의 달과 오른쪽의 해 그 가운데 오대

    명산의 오악이 솟아있다. 김민수, 절대 왕권의 상징 '일월오악도(日月五嶽圖), 플러

    스코리아타임즈, 2010.03.07

  •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歲畫十長生詩) 연구 43

    Ⅲ. 가변적 삶의 지향

    이색은 세화 십장생 10수를 지은 후에 다시 그 십장생에 대한 시를 1수 더 지었다. 여기에서는 자신이 세화 십장생시를 짓게 된 연유를 강조하고 있다. 세화로써 임금께 하사받은 것에 대한 의미를 되새기고 신하로서의 충정을 드러내고 있다.

    心似葵花向日傾 마음이 해바라기처럼 해를 향해 기울어高吟又賦十長生 소리 높이 읊조려서 또 십장생을 지었네.

    乾坤倘許爲人瑞 천지가 혹 나에게 인서를 허락해준다면

    願把淸忠答聖明 원컨대 정직과 충성으로 성명께 보답하리.18)

    이 작품은 이미 자신이 지은 세화 십장생 10수에 대한 의미에 신하로서 충정을 다시금 표출한 것이다. 임금께 하사받은 세화 그림에 대한 보답의 의미를 강조하였다. 임금을 향한 그리움과 충정을 실은 것이다. ‘규화(葵花)’라든가 ‘답성명(答聖明)’의 묘사는 충직한 신하로서의 면모를 담고 있다. 따라서 병중의 이색은 간절히 건강 회복을 기원하면서 인서(人瑞)를 바라는 것이다. 인서는 덕행(德行)이 뛰어난 사람이나 혹은 특별히 장수(長壽)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색은 위 시보다 앞선 작품인 세화 십장생에서 이미 지식인으로서, 신하로서 나라에 대한 염원과 절조를 드러낸 바 있다. 이에 대한 것은 무변의 식물과 영험한 동물의 기상에 빗대어서 자신의 삶의 지향점을 드러냈다. 이색은 가변적인 삶을 담을 수 있는 십장생 중에서도 불변의 식물과 영험

    한 동물에 대한 묘사를 통해 불변의 지조와 삶의 지향점을 표출한 것을

    18) 이색, 목은시고 권12, 「旣賦十長生, 又自詠一首」.

  • 44 韓民族語文學 第88輯

    알 수 있다.

    1. 십장생의 무변성

    北崖有箇一株松 북쪽 낭떠러지에 소나무 한 그루가 있었는데老我移居再見冬 늙은 내가 이거해서 두 겨울을 보았네.

    況是龍巒朝鵠嶺 더구나 이 용만이 곡령을 조회하는 곳엔

    拂雲蒼翠自重重 하늘 찌르는 소나무들 절로 겹겹이네.19)

    이 시는 소나무에 대한 찬이다. 겨울에도 푸름을 간직하는 소나무의 모습은 어렵고 힘든 상황 속에서도 굳건하게 절개를 지키는 선비의 표상이

    다. 이색은 십장생 중에서 소나무에 대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그 기상을 말하고 있다. 곡령(鵠嶺)은 송악(松嶽)을 말한다. 지금의 개성 북쪽 5리에 있는 진산(鎭山)으로 처음에는 ‘부소(扶蘇)’ 또는 ‘숭산(崧山)’이라고 하였으며, 이밖에도 ‘신숭(神嵩)’·‘곡령(鵠嶺)’이라고도 일컬어졌다.

    소나무의 일반적인 상징성은 변함없음과 절개, 불멸과 불사, 장생과 굳은 의지 등이다. 논어에 보면,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안다[歲寒然後 知松栢之後彫也].”라 하였다. 소나무의 변함없음이 지조와 절조의 상징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즉 세상이 어려워진 뒤에야 참된 선비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소나무는 정월(正月), 곧 새해의 의미도 담고 있다. 소나무, 매화, 동백 등이 봄을 상징하는 식물인데 이 중에 가장 우선하는 것으로 소나무를 꼽는다. 소나무는 특히 연말연시[歲暮歲時]에 가장 두드러진다. 추사 김정희도 소나무의 이런 특징을 에 표현하고 있다.20) 이색은 그

    19) 이색, 목은시고 권12, 「歲畫十長生」 중 .20) 조용진, 동양화 읽는 법(개정판), 집문당, 2014, p.121.

  •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歲畫十長生詩) 연구 45

    림 속의 소나무가 아닌 실제 자신과 함께 했던 소나무를 묘사하기도 했다. 이로써 영물로써의 소나무보다는 친숙한 자연물로써의 친밀감을 드러낸

    것이다.이처럼 그림을 시로 표현한 작품에서 화면(畵面)에 대한 직접적인 묘사

    보다는 시인의 의취(意趣)를 표출하기도 하였다.21) 또한 구름을 떨치고 푸른 하늘을 향해 꼿꼿한 소나무의 기상을 강조하였다. 이로써 소나무의 지조를 통해 이색 자신의 절조와 기개의 지향점을 함께 담아낸 것이다. 曾記幽居種竹看 일찍이 기억하기를 집에 대나무 심고서 보는데

    月牆風砌送微寒 달빛 담장 바람이 섬돌에 찬 기운 보내왔네.

    行年九十瞻淇奧 나이 구십에는 기수가의 대를 바라보며

    坐詠猗猗更整冠 앉아서 아름다움을 읊으며 다시관을 정제하네.22)

    이 시는 십장생 중에 대나무에 대한 작품이다. 이색은 먼저 대나무에 대한 기억을 이끌어내고 있다. 물상에 대한 막연한 완상이 아니라 자신의 체험 또는 기억에서 감성을 일으키고 있다. 기구에서 예전의 기억을 통해 대나무를 집에 심고 완상하던 때를 떠올린다. 대나무는 바람을 타고 달빛이 드는 담장 섬돌에 찬 기운을 보내왔다고 그리고 있다. 시각적인 부분보다는 서늘하게 느껴지는 찬 기운의 촉각적인 감각을 중심에 두고 있다. 이처럼 승구에서는 섬세한 관찰로 월장(月牆)이라고 하는 아름다운 표현에 풍채(風砌)라고 하는 찰나의 순간을 접목하고 있다. 시적분위기를 청량한 미감으로 승격시키고 있다.

    전구와 결구를 보면, 시경의 내용에서 차용하고 있다. 첨기욱(瞻淇奧)

    21) 황수정, 「고려시대 제화시의 생성과 유입 문화」, 동아인문학 제48집, 동아인문학회, 2019, p.30.

    22) 이색, 목은시고 권12, 「歲畫十長生」 중 .

  • 46 韓民族語文學 第88輯

    은 시경 위풍(衛風)에 “저 기수가 언덕을 보니, 푸른 대나무 아름답고 아름답도다.[瞻彼淇奧 綠竹猗猗]” 라고 한데서 나온 말이다. 시경의 주를 보면, 의의(猗猗)는 처음 나와서 유약하고 미성(美盛)한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푸른 대나무는 위나라 사람들이 무공의 덕을 찬미한 것으로 보고 있

    다.23) 위 무공(衛武公, ?~기원전 758년)은 춘추 시대 위나라의 제11대 군주이다.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한 뜻을 담고 있다.

    이색도 나이 90에는 기수가의 대나무를 바라보며 그 대나무의 ‘의의(猗猗)’함을 읊겠다고 하였다. 이는 성왕의 뜻을 받들고 그 덕을 칭송한다는 의미를 담은 것이다. 또한 다시 관을 정제한다는 것은 성왕에 대한 예를 표하는 것을 말한다. 즉 이색은 십장생 중 대나무를 통해서 임금의 덕을 기리고 자신의 절제된 삶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다.

    醴泉朱草是嘉祥 예천과 주초는 바로 아름다운 상서로움이니

    史冊聯書對有光 사서에 나란히 쓰니 서로 짝하며 빛을 내네.

    何似老人曾鵠去 어찌하면 노인들처럼 깊은 산에 은거하여

    療飢扶得漢明堂 지초로 요기하며 한실을 붙들 수 있을까.24)

    위 시는 지초에 대한 것이다. 기구에서 이색은 예천과 주초로 시의 감흥을 일으키고 있다. 예천과 주초는 늘 함께 병칭되는 것으로 태평시대 상서로운 것을 이르는 말이다. 이색의 다른 작품에서도 “바람과 비가 때를 같이 한다면 경성·경운·예천·주초와 같은 상서로움에 이르는 것이다[風雨以時, 而景星慶雲醴泉朱草之瑞至焉]25)라는 내용에서도 상서로움을 뜻하

    23) 詩經 卷三, 「衛風 淇奧」, “衛人 美武公之德 而以綠竹始生之美盛 興其學問自修之進益也.”

    24) 이색, 목은시고 권12, 「歲畫十長生」 중 .25) 이색, 목은집, 「西京風月樓記」,

  •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歲畫十長生詩) 연구 47

    는 내용으로 병칭하여 썼던 바를 알 수 있다. 즉 예천은 단맛이 나는 샘물이란 뜻이고, 주초 또한 상서로운 풀을 이르는 말이다. 승구에서는 역사책에 나란히 함께 기록되어서 더욱 그 서기에 빛이 남을 표현하고 있다.

    이색은 지초에 대한 표현 시를 통해 자신의 깊은 고뇌를 드러내기도 하

    였다. 전구에서 어떻게 하면 뜻 맞는 이들과 의기투합하여 조정의 안위를 잘 지킬 수 있을 것인지를 표출하였다. 전구에서 드러낸 네 노인(老人)은 진(秦)나라 말기에 상산(商山)에 은거하여 난을 피하고자 하였던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甪里先生)이다. 이들은 한 고조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깊은 산 속에서 지초를 먹으며 난세

    를 피하였던 인물들이다. 즉 상산사호(商山四皓)로 상산에 숨은 네 노인이란 뜻이다. 수염과 눈썹이 모두 희다라는 뜻에서 이와 같이 일컬어진다. 한 고조의 부름에도 응하지 않고 지초를 캐어 먹으며 은거하다가 장량의

    계책에 의해서 다시 초빙되어 태자를 보필하면서 한실(漢室)이 무사하게 되었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이색은 이러한 고사를 원용하여 자신의 염원을 담고 있다. 지금 현재는 병이 들어서 건강이 좋지 않은 상황이지만, 어찌하면 상산사호처럼 지초를 먹고 건강해질 수 있을까를 표출한 것이다. 이는 고려 조정의 안위를 끊임없이 염려한 면모를 보인 것이다. 병중에서도 십장생 그림 속에서 지초를 통해 장수를 기원하면서 그 안에 나라의 안위를 염려한 것이다. 상산사호와 같이 의기가 맞는 인사들과 힘을 다하여 조정의 안위를 위해 영원해

    돕고자 하는 마음을 담았다.

    2. 십장생의 영험성

    緬想龍圖躍在河 멀리 생각건대 용도는 하수에서 뛰어나왔고

  • 48 韓民族語文學 第88輯

    洛龜天錫瑞王家 낙귀는 하늘이 내려 왕가의 상서 되었네.

    自從表出神仙後 신선 거북으로 표출된 이후부터는

    却入山中嚥日華 문득 산중에 들어가 해의 정기만 삼키네.26)

    이 시는 십장생 중 거북에 대한 노래이다. 여기서 이색은 하도(河圖)와 낙서(洛書)를 기구와 승구에 연결시키고 있다. 하도(河圖)는 기원전 5,500년경 하수(河水)에서 용마가 가지고 나온 상(象)을 보고, 복희씨(伏羲氏)가 그렸다고 전해지는 용도(龍圖)를 말한다. 낙서(洛書)는 기원전 2,200년경 하(夏)나라 우왕(禹王)이 치수를 할 때 낙수(洛水)에서 나온 거북의 등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그린 것으로 귀문(龜文)이라고도 한다. 이에 대한 주역의 「계사전」을 보면, 다음과 같다.

    하늘이 신령스러운 물(物)을 내려 주시니 성인이 이를 법칙으로 삼았으

    며, 천지가 변화하니 성인이 이를 본받으신 것이다. 하늘은 그 뜻을 (인간

    세상에) 내려주시니 길흉화복이 나타나게 되었고, 성인께서 이를 그림[상

    징]그리신 것이다. 하수에서 용도가 나타나고 낙수에서는 귀서가 출현하여

    성인이 이를 법칙으로 삼은 것이다.27)

    이처럼 하도는 복희씨 때 황허 강에서 나온 용마의 등에 그려져 있었다

    는 그림이다. 이 그림이 바로 주역(周易) 팔괘(八卦)의 근원이 되었다. ‘낙서'는 우 임금이 홍수를 다스릴 때 낙수에서 나온 신귀의 등에 쓰여 있었다는 글이다. 이 신귀가 45점(點)으로 된 무늬를 등에 지고 나왔고, 이것이 바로 뒤에 천하를 다스리는 큰 법칙인 홍범구주(洪範九疇)의 근원이 되었음을 이른 말이다. 복희는 하도에 의해 팔괘를 그렸다고 전해진다. 각각

    26) 이색, 목은시고 권12, 「歲畫十長生」 중 .27) 주역, 「계사전」 상, 11장, “天生神物 聖人則之 天地變化 聖人效之 天垂象 見吉凶 聖人象之 河出圖 洛出書 聖人則之.”

  •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歲畫十長生詩) 연구 49

    별개로 취급되던 하도와 낙서가 병기된 것은 사기(史記) 공자세가와 회남자(淮南子) 숙진훈(俶眞訓)이며, 거기에는 하도낙서가 태평치세에 나타나는 상서로 설명된다.

    이러한 하도와 낙서는 공자에 의해 집대성된 선진유학(先秦儒學)의 학문적 사유의 근간이라도 볼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과 율곡(栗谷) 이이(李珥, 1536~1584)의 이기(理氣) 철학에도 근본이 되는 조선 성리학 정립의 근거28)라고 볼 수 있다. 태평치세에 나타나는 상서의 의미는 고려시대 이색의 거북 의상에도 담겨있는 자연의

    순환 이치를 말한다.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탐구한 하도와 낙서는 건강과 천체 등 다방면으로 연구할 수 있는 근간이 되었다. 또한 이색은 십장생도(十長生圖)에 의하여 거북이 태양 바로 아래에 있는 점을 감안하여 해의 정기만을 삼킨다고 표현하고 있다.

    하도란 말은 논어 「자한(子罕)」 편에서도 볼 수 있다. “봉황이 이르지 않고 황하에서 그림이 나오지 않았으니 나는 그만둘 것이다[鳳鳥不至 河不出圖 吾已矣夫].” 여기서 공자는 성군이 나타나서 덕치를 베풀기를 바랐으나, 그렇지 못하여 자신의 뜻이 이루어지 않음을 탄식한 것이다. 봉(鳳)은 신령스러운 새인데 순(舜)임금 때에 나타나서 춤을 추었고, 문왕(文王) 때에는 기산(岐山)에서 울었다고 전해진다. 하도(河圖)란 황하(黃河)에서 나온 용마(龍馬)의 등에 그려진 그림으로 복희(伏羲) 때에 나왔으니, 모두 성왕(聖王)의 상서(祥瑞)로운 기운을 말하는 것이다.

    이색 또한 십장생 중의 거북에 대한 표출을 용도와 낙귀를 통해 왕가의

    상서로 연결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거북이 신선(神仙)의 이미지가 확보되었다고 보고 있다. 그래서 십장생 중에서도 태양 바로 아래 위치한 점을

    28) 임병학, 「선진유학에 나타난 하도낙서」, 국학연구 제11집, 한국국학진흥원, 2007, pp.253-2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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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려내어 해의 정기를 삼키고자 한다고 묘사한 것이다. 이색은 이처럼 십장생의 영험함을 통해 자신의 장수와 삶의 지혜를 기원한 것이다. 더불어서 상서의 기운을 희구한 것이다.

    三山渺渺是何方 삼신산은 아득해라 그곳은 어디인가

    欲駕胎仙叩玉堂 태선 타고 옥당에 들어가고 싶네.却恨平生無道骨 한스러운 건 평생에 도골이 되지 못했는데

    謾敎塵世慕昻藏 부질없이 세인들의 사모함을 받았네.29)

    이 시는 학(鶴)에 대한 묘사이다. 학을 묘사하기 전에 불로장생의 상징으로 신선이 산다는 삼산(三山)을 언급하였다. 삼산은 삼신산(三神山)을 가리킨다. 삼신산은 중국 동쪽에 있다는 봉래산(蓬萊山)·방장산(方丈山)·영주산(瀛洲山)을 가리킨다.30) 전설에 의하면, 그 정상에 선인(仙人)들이 살고 그 주변에 불로불사(不老不死)의 과일나무가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금강산·지리산·한라산을 지칭한다.31)

    삼신산은 인간의 불로장생 염원이 만들어낸 꿈의 산이라고 할 수 있다. 이색 또한 시 속에서 아득하여 갈 수 없는, 그렇지만 닿고 싶은 삼신산에 학을 타고 가고자 하는 마음을 그렸다. 삼산의 닿을 수 없는 아득함을 묘묘(渺渺)로 표현하였다. 더구나 어느 방향인지 짐작하기 어려움을 표출함으로써 공간의 아득함으로 도달할 수 없는, 닿을 수 없음에 대한 안타까움을 그려냈다. 옥당(玉堂)은 신선이 사는 집을 말한다. 이렇듯 기구와 승구에서는 학을 타고 옥당에 들어가 불로불사의 신선의 경지를 선망하였다.

    29) 이색, 목은시고 권12, 「歲畫十長生」 중 .30) 사마천, 史記 권6, 秦始皇本紀 條, “海中有三神山,名曰蓬萊、方丈、瀛洲,僊人居之.”

    31) 이수광, 지봉유설 2권, 山條, “世謂三山, 乃在我國, 以金剛爲蓬萊, 智異爲方丈, 漢挐爲瀛洲.”

  •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歲畫十長生詩) 연구 51

    전구와 결구에서는 이색은 현재 자신에 집중하였다. 도골은 ‘선풍도골(仙風道骨)’의 줄임말이다. 선풍도골은 외모가 남달리 뛰어나거나 비범한 사람을 가리킨다. 여기서도 비범하고 뛰어난 사람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기구와 승구에서 이어온 불사 신선에의 염원은 전구에서는 겸양의 뜻을

    담았다. 도골(道骨)이 아닌데도 세상 사람들의 많은 추앙을 받았다고 표현하였다. 실제로 목은은 이곡(李穀)의 아들이자 이제현(李齊賢)의 제자로 성리학을 고려에 소개, 확산시킨 인물로 성리학을 당시 새로운 사회 지향점으로 지목하였다. 또한 이색의 문하에서 고려 왕조에 충절을 지킨 명사(名士)와 조선 왕조 창업에 공헌한 사대부들을 배출하며 추앙받았다.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이숭인(李崇仁),정도전(鄭道傳)·하륜(河崙)·권근(權近) 등이다. 여기서 이색-정몽주-길재의 학문을 계승한 정도전 등은 조선 초기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이러한 이색은 십장생 중 영험한 학의 기운에 세상에 대한 은혜에 감사함을 담기도 하였다.

    代馬秦宮事已非 진궁에서 말 대신한 일은 이미 그릇되었는데

    吳臺游處又斜暉 오대 아래 놀던 곳엔 또 석양이 비끼었네.

    踰牆故入山中寺 담장 넘어 짐짓 산중의 절로 들어가서는

    天下紛紛足禍機 천하가 분분하여 재앙 기틀 그지없었네.32)

    이 시는 십장생 중에서 사슴에 대한 내용이다. 이색은 기구(起句)에서 사슴에 대한 연상 작용으로 지록위마(指鹿爲馬)의 고사를 활용하였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다’라는 뜻으로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강압적으로 인정하게 할 때 쓰는 말이다. 즉 남을 속이려고 옳고 그름을 바꾸는 것을 비유하는 표현이다. 간신 조고(趙高)가 二世인 호해(胡亥)를 농락하고

    32) 이색, 목은시고 권12, 「歲畫十長生」 중 .

  • 52 韓民族語文學 第88輯

    함부로 권세를 부린다는 뜻이다. 결국 조고가 권세를 남용하여 바른 말하는 사람을 은밀히 법으로 얽어 처벌하는 등 진나라가 멸망의 길로 들어서

    게 하였다. 이러한 바를 목은은 장생의 영물 사슴을 그린 시 첫 구에 ‘사이비(事已非)’라 하여 진궁의 일이 잘못되었음을 드러내고 있다.

    승구에서는 오대(吳臺)는 부차(夫差)가 미인 서시(西施)를 위해 지은 고소대(姑蘇臺)를 가리킨다. 춘추 시대 오왕(吳王) 부차가 서시에 빠져서 정사를 돌보지 않자, 오자서(伍子胥)는 부차(夫差)에게 간절히 간(諫)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죽임을 당하면서 “마침내 나라는 망하고 고소대(姑蘇臺)에 사슴이 노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33) 라고 하였다. 오나라가 망해서 고소대에 풀이 우거질 것이라는 승구에서도 기구에 이어서 나라가

    망하게 될 조짐을 언급하면서 사슴과 연관시켰다. 전구와 결구에서는 당시 불교의 번창으로 세상이 어지럽게 되었던 상황

    을 언급하였다. 석가가 성도(成道)한 후에 녹야원(綠野苑)에서 불법을 설(說)하였던34) 것을 이른 말이다. 이처럼 이색은 십장생 중 영험한 동물의 기운을 들어 나라의 안위와 조정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즉 십장생의 영험과 무변성에 빗대어 신하와 지식인으로서의 지향점을 다시금 표출한 것이다.

    Ⅳ. 맺음말

    본고는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歲畫十長生詩)에 대한 연구이다. 이색은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 사람으로 시호는 문정(文靖)이다. 부친은 이곡(李穀)이며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다. 그의 작품 중 세화 십장생을 노래한

    33) 사기 권118, 淮南衡山列傳.34) 한국고전번역원, 각주 참조.

  •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歲畫十長生詩) 연구 53

    시가 있는데, 이는 우리나라 십장생도에 대한 가장 이른 시기의 언급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의 세화 십장생시에 대한 연구는 고려 말 십장생을 표현한 기록이자 시작품이라는 데 의미가 있다.

    또한 세화는 일반적으로 ‘새해를 송축하고 재앙을 막기 위한 용도로 그려진 그림’으로 정의된다. 임금이 근신(近臣)에게 하사하는 송축용 그림을 말한다. 여기에 문헌상으로 가장 이른 시기의 세화 십장생의 기록으로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의 의미가 있다. 이색의 기록을 보더라도 임금이 근신에게 내린 송축용 세화 십장생도라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이러한 십장생은 옛 동양 문화 특징 중의 하나로 인간을 우주의 중심에 놓고 모든 자연 현상

    이나 자연물의 생태를 인간 중심으로 관찰한 결과물이다. 이러한 세화에 대한 연구는 그간 주로 조선시대 세화를 중심으로 연구

    되었다. 본 연구는 문헌 상 가장 이른 시기의 십장생도에 대한 시라는 점과 이색의 십장생도 시가 갖는 의미를 탐구하였다는 데 의미가 있다. 우리 민족이 십장생에 담은 염원과 의미하는 바를 되새기고, 단순한 ‘장수(長壽)’의 의미를 넘어선 인간 존재의 삶에 대한 인식을 살펴봤다는 데 의의가

    있다.세화 십장생은 임금이 신하에게 세시(歲時)에 송축(頌祝)의 의미로 하

    사한 것이다. 이색은 이 그림을 병중(病中)에 다시 꺼내어 보고 시화(詩化)하였다. 따라서 그의 세화 십장생시는 단순한 ‘장수(長壽)’에 대한 염원을 넘어서 인간 존재의 삶에 대한 인식과 그 지향점을 살펴볼 수 있다는 데 의

    미가 있다. 이색은 세화 십장생시에서 송축과 장수 기원을 기본으로 하면서 시 속에 그의 삶에 대한 인식과 지향점을 표출한 것이다. 즉 임금에게 하사 받은 세화 십장생을 병중에 다시 꺼내보면서 영물(靈物)의 기운을 시에 담아서 그 생명의 원천을 되새기고 그 삶의 인식과 지향점을 드러낸 것이다.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는 크게 두 가지 관점에서 분류할 수 있다. 먼저

  • 54 韓民族語文學 第88輯

    항구적인 삶에 대한 인식을 살펴볼 수 있다. 여기에는 천상의 항상성과 지상의 지속성을 노래한 작품이 속한다. 즉 해와 구름, 물과 돌에 대한 작품이다. 이색은 자연 순환의 원리를 통해 삶의 원천과 그 기상을 노래하고 있다. 생명력의 강인함과 그 원천을 십장생의 항상성을 통해 강조하고자 한 것이다. 따라서 작품에서 생성의 힘과 그 근원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다음은 인간의 가변적 삶에 드러난 삶의 지향을 고찰하였다. 소나무(松)·대나무(竹)·영지(芝)·거북(龜)·학(鶴)·사슴(鹿)의 시를 통해 표출하였다. 즉 십장생의 영험과 무변성을 통해 정치가로서, 신하로서의 면모와 참된 지식인으로의 자세를 드러냈다. 이색은 십장생 중 영험한 동물의 기운을 들어 나라의 안위와 조정의 안녕을 기원하였다. 이로써 그의 세화 십장생시는 삶의 근원을 제시하고 자신의 지향점을 표출한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이색은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지식인으로서 긍지와 자부심이

    있었다. 또한 당시 자국의 문화 발전을 선도하는 인물 중에 한 사람이었다. 그는 세화 십장생시라는 작품을 통해서도 시인으로서 장수에 대한 기원을

    십장생 영물의 신비로운 생명력에 담아냈다. 이를 자신의 삶에 대한 인식으로 표출하였다. 또한 세화를 병중에 다시 꺼내보면서 십장생의 영험과 무변성에 빗대어 임금에 대한 충절과 절조를 그리면서 신하와 지식인으로

    서 삶의 지향점을 다시금 드러낸 것이다.

  •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歲畫十長生詩) 연구 55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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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색의 세화 십장생시(歲畫十長生詩) 연구 57

    Abstract

    A Study on Lee Saek's Sehwa Sipjangsaeng Poetry

    Hwang, Su-jeong

    This study speculated on the Sehwa Sipjangsaeng poetry by Lee Saek, a civil minister, scholar, and poet during the late Goryeo period. There were a number of achievements in studies on Lee Saek's Chinese poetry. He was much interested in daily narratives and expressed his passion for such narratives in poetry. It has been ascertained that his poetry explored diverse and abundant materials and subjects and his Sahwa Sipjangsaeng bibliograpically mentioned the Korean Sipjangsaeng painting in the earliest period. Existing relevant studies were usually focused on the Sehwa and Sipjangsaeng of the Joseon period.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xamine the Sehwa Sipjangsaengsi written by Lee Saek and its meaning. In the late Goryeo period that was politically intervened by the Yuan Dynasty of China, Lee Saek was a leader of cultural development with pride and dignity in his country as one of the Goryoe intellectuals. During those times, a king conferred with the Sahwa Sipjangsaeng on a subject to celebrate a new year. Lee Saek expressed his thoughts about the painting in a poem while recovering from an illness. Thus, his Sehwa Sipjangsaeng poetry has a meaning in that it led us to an awakening of human life and attitude towards it beyond the wish of longevity.

    His Sehwa Sipjangsaeng poetry was roughly classified into two perspectives: First, the poetry described his recognition of eternal life by expressing the homeostasis of the heaven and sustainability of the earth. That is, it described the sun, clouds, water, and rocks. The poet expressed the origin and spirit of life based on the principle of nature circulation in his poetry. Second, it led us to speculate about our vari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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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ttitude toward life through verses about pine trees, bamboo trees, a bracket fungus of the genus Fomes, turtles, cranes and deer. That is, he showed his true attitude as a politician, subject, and intellectual by expressing his thoughts about miracles and the unchangeability of animals and plants. Thus, it was concluded that his Sehwa Sipjangsaeng poetry suggested the origin of life and orientation towards life.

    Key Word : Lee Saek, Sehwa (歲畫), painting, Sipjangsaengdo, eternal, creation, changeable, orientation

    황수정

    소속 : 조선대학교 한문학과 강사

    전자우편 : [email protected]

    이 논문은 2020년 05월 25일 투고되어

    2020년 06월 14일까지 심사 완료하여

    2020년 06월 16일 게재 확정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