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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5일 금요일 9

책과 사람 (13) 김순남 도서출판 각 대표

도서출판 각의 김순남 대표는 제주에 출판사다운 출판사 하나 있어야 한다며 만들어진 각의 초심을 늘 마음에 새기려 한다고 했다. 진선희기자

제주섬에도 출판사다운 출판사 하나는 있어야 한다는 자존심

으로,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오는 동네는 적어도 그 지역의 자

생적 문화생산시스템이 작동한다는 것을 증명한다는 자족적인

위안 속에 한 권의 책이라도 더 내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도서출판 각 대표로 있는 김순남 시인은 출판사 홍보용 전

단 위에 적힌 이 대목에 밑줄을 그어놓았다. 밖에서 응원을

보내던 그가 출판사 안으로 들어온 건 지난해 9월이다. 창립

자인 박경훈 전 대표가 제주문예재단 이사장으로 선임된 이

후 대표직을 공석으로 둘 수 없어 수락한 자리지만 부담감이

크다고 했다. 제주에서 지역 출판사 하나를 운영하는 일이 생

각보다 더 어렵다는 걸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각은 1999년 생겨났다. 제주에서 제대로 된 단행본을 내

는 출판사가 거의 없던 시절이다. 박 전 대표가 아는 이들의

장정을 몇 번 해주다 그 길로 출판사를 열게 된다. 그해 7월

10일자로 각 출판사 이름을 단 첫 책이 나온다. 이어도로

가는 길목 최남단

마라도 였다. 그 책

날개에 각은 새로

운 세계를 여는 눈

입니다 , 각은 깨

달음입니다 와 같은

각 출판사의 모토가

소개됐다.

마라도에서 시작된 각 출판사의 관심사는 제주4 3과 제주

문화로 확장된다. 그동안 각에서 펴낸 약 300종의 책 중에서

두 주제를 다룬 도서가 많다. 기획출판 시리즈 제목만 해도

4 3길찾기, 4 3의 진실과 문학, 제주도 무속의 탐구, 제주문화

원류 찾기, 제주대표 시인선으로 붙여졌다. 송성대의 문화의

원류와 그 이해 개정증보판, 현용준의 제주도무속자료사

전 , 박찬식의 4 3과 제주역사 , 강정효의 바람이 쌓은 제

주돌담 등은 각 출판사가 특히 아끼는 도서들이다.

출판이 지니는 사회적 가치와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제주

지역의 출판사라는 각오를 다져온 각 출판사는 어느덧 20년

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제주시내 여기저기 전전하다 2012년

지금의 제주시 원도심 삼도2동주민센터 인근에 둥지를 틀었

다. 2014년엔 제34회 한국출판학회상 등을 수상했다.

각 출판사는 섬 문화의 기록자 이자 제주문화의 저장고

를 표방한다. 제주 이주 열풍을 타고 반짝 관심 을 끄는, 잘

포장된 문화상품 같은 책에는 눈길을 두지 않는다. 잘 팔리진

않지만 지역의 지식과 문화의 거처로 오래도록 남는 책을 만

들려고 애쓴다.

출판사가 문을 닫지 않는 한 지역에서의 출판은 사업이기

이전에 문화운동이라고 생각합니다. 도서출판 각은 태생부터

문화운동을 시작한 셈이지요. 오늘도 여전히 우리는 문화운

동의 연장선에 서 있습니다. 아마도 이런 날이 쉽게 바뀌지는

않을 듯 하지만 저희들은 묵묵히 이 길을 가려합니다.

진선희기자 [email protected]

숨 참으며 파고 넘어온 세월에 바치다

박물관 한채 같은 삶에 주목

아, 살았구나 라며 눈물 짓는

섬의 쓰디쓴 사연 고스란히

시인은 몇 해전 몸에 걸친 옷 같은

직장을 내려놓았다. 요즘도 시인 있

어요? 시인은 뭘로 돈벌어요? 라고

묻는 아이들이 있는 이 사회에서 철

밥통 같은 일을 그만뒀다. 시는 내려

놓을 수 없었다. 거추장스러운 데가

많고 가려야 할 데가 많은 시이지만

시는 그를 물밖으로 꺼내 숨을 쉬게

해주는 아이들의 목소리 같은 거다.

물구덕 지듯 칠성판 지엉 먼물질

나강/ 귀상어에 쫓기고 샛바닥이 퍼렁

허게 시려/ 꼭 줄어질 것만 같을 때//

아이고 내 새끼덜, 저 큰놈 족은놈/ 갯

것이서 어멍, 어멍 부르는 소리 들리

면/ 아, 살았구나/ 저것들이 날 살리

는구나/ 내 울타리구나// 그냥 눈물이

나/ 눈물이 ( 울타리 중에서)

신작 시집 물에서 온 편지 를 낸

제주 김수열 시인. 한 사람의 지난한

생이 그 자체로 박물관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시인은 섬 제주에서 삶

이라는 파고를 힘겹게 넘어온 이들

이 혼자소리인 양 풀어내는 말에 귀

를 기울인다. 제주방언으로 그들의

구술을 고스란히 적어놓은 듯한 시

는 해학적이면서도 울림이 있다.

…몰라……모르커라………모른덴

허난……………정말 모르쿠다게……

……………모르는 걸 어떵헙니까……

……………정말 모르쿠다게…………

…모른덴허나…………모르커라………

몰라……// 모르긴 무사 몰라? 다 알

멍도 경 고른 거주, 죄 어신 사름덜

살려보젠/ 그로부터 동네 사름덜이

몰라 구장 몰라 구장, 경 불렀주, 별칭

으로/참 고마운 어른이라났주, 몰라

구장/ 알아 구장이라시믄 우리 동넨

끝장날 뻔 ( 몰라 구장 중에서)

무자년이란 말로 상징되는 제주4

3이 제주 사람들에게 드리운 상처는

시집 곳곳에 얼굴을 내민다. 직접적

으로 4 3을 말하지 않더라도 소섬

할머니가 바닷물이 짜지 않고 쓰다

할 때도, 김남주 시인 생가에서 만난

해남농민회장이 참말로 어째 쓰까

이, 저 강정! 이라고 할 때도 녹록지

않은 섬의 운명을 헤쳐가야 하는 제

주 사람들의 오늘이 읽힌다. 지난 수

년간 이 나라도 제주 사람들을 외면

해왔다. 이런 현실을 위로하듯 시인

은 4 3당시 수장당한 희생자의 음성

으로 우리에게 편지를 띄운다.

조반상 받아 몇 술 뜨다 말고/ 그

놈들 손에 끌려 잠깐 갔다 온다는 게

/ 아, 이 세월이구나/ 산도 강도 여

섯 구비 훌쩍 넘었구나// 그러나 아

들아/ 나보다 훨씬 굽어버린 내 아

들아/ 젊은 아비 그리는 눈물일랑

그만 접어라/ 네 가슴 억누르는 천

만근 돌덩이/ 이제 그만 내려놓아라

/ 육신의 칠 할이 물이라 하지 않더

냐/ 나머지 삼 할은 땀이며 눈물이

라 여기거라/ 나 혼자도 아닌데 너

무 염려 말거라 ( 물에서 온 편지

중에서). 삶창. 9000원. 진선희기자

새책

▶다윈의 핀치(피터 그랜트 로즈메리 그

랜트 지음, 엄상미 옮김)=그랜트 부부는 1

973년부터 40여년간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핀치새를 관찰해왔다. 그들은 환경의 변화

에 따라 핀치새의 부리가 진화하는 모습

을 포착한다. 이를 통해 진화란 오랜 기간

에 걸쳐 일어나기 때문에 그 순간을 알아

차리는 일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통설을 깨트렸다. 부부의 연

구 기록이 집약된 결과물로 새로운 종의 이주는 기존 종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등을 풀어냈다. 다른세상. 1만4800원.

▶각색 이론의 모든 것(린다 허천 지

음, 손종흠 등 옮김)=각색의 과정 없이는

영화 한 장면, 만화 한 컷도 창조하거나

음미할 수 없는 시대가 됐다. 각색에 대

한 이해없이는 SNS조차 제대로 즐기기

어렵다. 저자는 각색 혹은 모방을 인류의

본능적 행동이자 예술적 쾌락으로 인식

한 아리스토텔레스를 따라 모든 문화 콘텐츠는 모방되어 전

달된다고 본다. 누가, 무엇을, 언제, 왜, 어디서, 어떻게 각색

혁명을 이끄는지 살폈다. 앨피. 2만5000원.

▶우리는 어떤 미래를 원하는가(박성원

지음)=하와이미래과학연구소에서 개발한

미래 예측기법을 이용해 20년 뒤 우리 사

회의 4가지 모습을 보여준다. 4가지 미래

모습은 경제의 지속성장, 붕괴의 새로운

시작, 보존사회, 변형사회로 나뉜다. 인구,

에너지, 경제, 환경, 문화, 기술, 지배구조

등 7가지 사회를 변화시키는 동인을 고려한 추상적인 미래상

이다. 사회 구성원들이 상상한 미래를 현실로 만들기 위해 무

엇을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도 다뤘다. 이새. 1만3000원.

▶한반도의 안보 위협은 무엇인가(정

병호 호사카 유지 지음)=이명박-박근혜

로 이어진 9년간의 보수파 정권에 이어

진보-혁신계인 문재인 정권이 출범했다.

대외적으로 중국과 사드를 둘러싼 갈등

이 심각하고 북핵문제라는 고질적이고

복잡한 문제가 놓여있다. 불안정과 변화

의 정도가 탈냉전기보다 훨씬 심해졌다는 분석이다. 한국을

둘러싼 동북아정세부터 국제안전과 미사일까지 새로운 시대

의 안보위협이 무엇인지 제시했다. 황금알. 2만원.

▶과학이론 20(호소카와 히로아키 지

음, 김정환 옮김)=지난 100년간 과학은

사람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발전

했다. 자동차, 스마트폰, 컴퓨터, 세탁기,

청소기 등 일상생활에 유용하게 쓰이는

제품은 물론이고 우리가 입고 먹고 마시

는 모든 걸 현대과학에 빚지고 있다. 이

제 과학을 알지 못하면 경제, 문화, 예술 등 사회 전반을 이

해하기 힘들다. 우주론에서 생물학까지 100년간 눈부시게

성장해온 과학이론 중 20가지를 골라 소개해 놓았다. 보누

스. 1만3000원.

▶맛있게 멋있게 나답게(전형주 지음)

=단맛, 쓴맛, 신맛, 매운맛 등은 인생의 희

로애락을 닮았다. 어떻게 해야 맛있는 인

생을 살아갈 수 있을까. 여러 방송에 출연

하며 비타민 교수 로 알려진 저자는 먼

저 자존감을 높이라고 말한다. 그 다음엔

열정을 불태우며 몰입하는 희열이 필요

하다. 상대와 비교하지 않기, 잠시 멈추는 여유, 비움과 나눔,

인간관계 다이어트 하기 등 자신만의 인생 레시피를 만들어

보자. 팬덤북스. 1만3500원. 진선희기자

핵무기보다 위험한 건 생태환경 무시 정책

서울에 진짜 필요한 것은 맨해튼

다움 이 아니라 서울다움 이다. 서

울에 필요한 것은 잠자는 과거 전통

을 재해석해 오늘에 맞는 실행 가능

성을 찾아주는 일이다. 서울의 뿌리

를 보여줄 수 있는 도시 환경을 조성

해야 한다. 서울은 잘못된 방향으로

치닫고 있다. 유리와 강철로 지은 사

무실 빌딩과 아파트가 옛 골목을 완

전히 뒤덮고 있으며, 건물의 외장과

내장을 포함해 전통 건축의 흔적은

어디에도 찾을 수 없다.

서울 이란 단어 대신 제주 를 넣

어보면 어떨까. 그는 말한다. 급격한 도

시 환경의 변화는 활력을 주는 게 아

니라 혁신 정신의 연속성을 단절시킨

다고. 서울을 또 다른 싱가포르로 만들

어버리면, 서울의 복원력을 그토록 뛰

어나게 만든 모든 것이 죽어버린다고.

한국에서 이방인으로 10년 넘게

살아온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 한국

이름 이만열로 경희대 후마니타스칼

리지 교수로 재직중인 그가 한국인

만 몰랐던 더 큰 대한민국 을 냈다.

이 책은 한국이 지정학적 운명론을

떨치고 스스로 세상의 중심으로 걸어

들어가 대한민국의 원칙과 신념을 자

신있게 지구촌에 선언하라고 격려하

고 있다. 대한민국의 아픈 속내를 놓

치지 않으면서 탄핵 이후 우리가 당면

한 과제와 가야 할 노정을 제시한다.

그는 한국사회에서 벌어진 정경유착

의 뿌리 깊은 부패가 단순하게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처리에서 끝낼 것이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이는 정경유착

의 해체를 위한 첫 걸음이라고 봤다. 4

대강 사업에 쏟아부은 22조원이나 자

원 외교에 낭비한 수십조원은 비판의

화살을 피해 그대로 숨어 있지 않은가.

이명박 정부가 정부 조직과 공기업들

을 경유해 정책을 폈기 때문이다.

그는 북한의 핵무기보다 더 위험한

요소로 생태환경을 외면한 정책을 꼽

았다. 미세먼지, 중국 대륙의 사막화,

해수면 상승 등이 한국의 미래를 위

협하고 있는데 국가정책들은 큰 그림

을 그리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사회의 시대 정신이 병들고

있는 점에 대해서도 우려를 나타냈

다. 그는 즉시 만족 만 추구하는 문

화적 타락의 확산과 소비 욕구를 자

극하는 상업적 현상이 병으로 깊어

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사회의 미래를 상상

하고 능동적으로 미래 목표를 위해

행동하는 능력을 잃어버릴 위험에

빠져있다 며 불필요한 사치가 극단

적인 수동성을 유발하는 가운데, 우

리는 이해 불가능한 방식으로 전개

되는 사회에 끌려다니는 자신의 모

습을 발견하게 될 것 이라고 했다.

레드우드. 1만5000원. 진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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