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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問題硏究 26권 제1(통권 제46) The Journal of Research in Education 2013. 2. Vol.26. No.1. pp. 35-57. 대학원생의 학문적 글쓰기 경험에 관한 연구 1) 김혜나(부산대) * 김대현(부산대) ** 이태영(부산대)강이화(한국대학교육협의회) < 요 약 > 이 연구는 학자 또는 연구자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대학원생들이 학문적 글쓰기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 살펴보고, 그들이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그러한 경험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내러티브 탐구 방법을 이용하였으며, 4명의 석박사과정 학생들의 학술지 논문 집필 및 게재 경험에 관한 현장텍스트를 저널 쓰기, 대화, 비구조화된 면담을 통해 수집 하였다. 학문적 글쓰기에 관한 대학원생들의 이야기는 글쓰기 과정에서 부딪치는 난관과 그것에 대한 극복, 그리고 이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학자로 성장해 가는지와 관련하여 해석하고자 하였으며, 연구결 과를 바탕으로 학문적 글쓰기에 있어서 대학원생의 교육과 지도에 대한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주제어: 학문적 글쓰기, 대학원생, 정체성 형성, 학술지 논문, 내러티브 탐구 . 서론 많은 학자들은 자신이 수행하는 교육, 연구, 행정 등의 여러 역할 중에서도 연구를 우 선 순위에 두고 있으며(Halsey, 1995), 연구로부터 얻은 새로운 결과는 학문적 글쓰기를 통해 학문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 나아가 사회의 구성원들과 공유함으로써 학계로부터 인 정받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Becher & Trowler, 2001). 학문적 글쓰기 는 이와 같이 연구자의 중요한 과업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김종배, 2004: 171). 대학원생들에게 있어서도 본인을 학생으로서 뿐만 아니라 학문 공동체의 일원으로 느끼 * 1저자 [email protected] ** 교신저자 [email protected] KYOBO Book Centre

대학원생의 학문적 글쓰기 경험에 관한 연구 김혜나(부산대) * ㆍ김대현(부산대) ** ㆍ이태영(부산대)ㆍ강이화(한국대학교육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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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問題硏究 제26권 제1호(통권 제46집)The Journal of Research in Education2013. 2. Vol.26. No.1. pp. 35-57.

학원생의 학문 쓰기 경험에 한 연구

1)

김혜나(부산 )*ㆍ김 (부산 )**

ㆍ이태 (부산 )ㆍ강이화(한국 학교육 의회)

< 요 약 >

이 연구는 학자 는 연구자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학원생들이 학문 쓰기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 살펴보고, 그들이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그러한 경험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

를 이해하고자 하 다. 이를 해 내러티 탐구 방법을 이용하 으며, 4명의 석․박사과정 학생들의

학술지 논문 집필 게재 경험에 한 장텍스트를 쓰기, 화, 비구조화된 면담을 통해 수집

하 다. 학문 쓰기에 한 학원생들의 이야기는 쓰기 과정에서 부딪치는 난 과 그것에 한

극복, 그리고 이를 통해 그들이 어떻게 학자로 성장해 가는지와 련하여 해석하고자 하 으며, 연구결

과를 바탕으로 학문 쓰기에 있어서 학원생의 교육과 지도에 한 시사 을 제시하 다.

주제어: 학문 쓰기, 학원생, 정체성 형성, 학술지 논문, 내러티 탐구

Ⅰ. 서론

많은 학자들은 자신이 수행하는 교육, 연구, 행정 등의 여러 역할 에서도 연구를 우

선 순 에 두고 있으며(Halsey, 1995), 연구로부터 얻은 새로운 결과는 학문 쓰기를

통해 학문 공동체의 다른 구성원, 나아가 사회의 구성원들과 공유함으로써 학계로부터 인

정받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다(Becher & Trowler, 2001). 학문 쓰기

는 이와 같이 연구자의 요한 과업 하나라고 할 수 있다(김종배, 2004: 171).

학원생들에게 있어서도 본인을 학생으로서 뿐만 아니라 학문 공동체의 일원으로 느끼

* 제1 자 [email protected]

** 교신 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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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問題硏究 제26권 제1호(제46집)36

도록 하는 주된 활동의 하나가 바로 학문 쓰기라고 할 수 있다(Jazvac-Martek,

2009: 256). 연구결과를 로 쓰고 공유하는 과정은 연구실이나 학과 단 를 넘어선 더

넓은 학문 공동체와 소통하고 상호작용하는 기회가 된다는 에서, 학원생의 정체성 형

성에도 향을 미친다(Adler & Adler, 2005).

이와 같은 학문 쓰기의 요성에도 불구하고, 여러 연구들은 많은 학자들이 학문

쓰기에 부정 인 감정과 태도를 갖고 있음을 보여 다(Belcher, 2009; Turner &

Edwards, 2006). 을 쓰는 것은 구와 의견을 나 든 간에 궁극 으로는 혼자 쓸 수밖

에 없는 것이라는 에서 고립되고 외로운 경험으로 묘사되기도 하고, ‘두려운, 국한시키

는, 망 인, 재미없는(길들여진), 고통스러운’ 등의 단어로 표 되기도 한다(Turner &

Edwards, 2006: 172). 이런 에서 볼 때, 아직 연구 경력이 부족한 학원생들에게 쓰

기는 더욱 두렵고 망 인 경험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학문 분야에서 신입자(newcomer)의 치에 있는 학원생들이

학문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완 한 멤버십을 인정받기 해서는 학문 쓰기 능력을

갖추는 것이 매우 요하며(Lave & Wenger, 1991), 학술 을 쓰는 경험은 그들이 학

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이처럼 학원생에게 학문

쓰기의 어려움과 그것이 갖는 요성은 학원생의 학문 쓰기에 한 연구의 필요성

을 제기한다.

학원생의 학문 쓰기와 련된 선행연구들을 살펴보면 주로 학문 문해

(academic literacy)의 에서 쓰기 노하우를 제시하거나, 교육사례 는 방안을 제시

하는 연구가 많이 이루어져왔다(김종배, 2004; Boice, 1997; Booth, Colomb, & Williams,

2003; Noll & Fox, 2003; Stortz & Panayotidis, 1998; Swales & Feak, 2001). 이러한

연구들은 주로 쓰기의 기술 (technical) 측면에 을 두고 있어 쓰기와 련된 정

의 측면이나, 쓰기와 정체성 간의 계를 보여주는 데 한계가 있다.

한편, 학원생들이 학문 쓰기를 하면서 실제로 어떤 경험을 하는지에 한 연구는

상 으로 부족한 상황이다. 학원생이 겪는 수업, 연구실/실험실 생활, 지도교수 동

료와의 계 등과 같은 여러 경험 의 일부로 쓰기 련 경험에 해 다룬 연구들(나

승일 외, 2009; 박희제, 2010; Adler & Adler, 2005)이 있으나, 쓰기 경험에 을 두

어 깊이 있게 살펴본 경우는 거의 없고, 쓰기 경험에 해 심층 으로 살펴본 경우

(McAlpine & Amundsen, 2008)에도 학원생들이 자신의 학문 경력(academic

career)을 지속해 나가는 과정 속에 쓰기 경험을 치시키기보다는, 경험 그 자체를 분

리시킴으로써 보다 풍부한 해석의 가능성을 제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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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생의 학문 쓰기 경험에 한 연구 37

이러한 맥락에서 본 연구는 학자 는 연구자가 되어가는 과정에 있는 학원생들이

학문 쓰기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지 살펴보고, 그들이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

하는 데 그러한 경험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규명하고자 하 다. 다만 학문 쓰기에

는 서, 보고서, 학 논문, 학술지 논문 등 다양한 유형이 있으며, 각 유형에 따라 의

형식이나 쓰기 과정의 반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본 연구에서는 학술지 논문을 심으

로 학원생의 학문 쓰기 경험을 살펴보고자 하 다. 학술지 논문은 지식 기반의 확

산, 학문 공동체의 규범 가치의 유지와 강화, 그리고 학문 공동체 내 개별 구성원들의

발 에 요한 역할을 해 오고 있다는 에서 학원생들의 학문 쓰기 경험을 연구하

기 한 의 유형으로서 합한 것으로 생각된다(Stortz & Panayotidis, 1998).

학원생의 목소리를 통해 학문 쓰기가 그들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한

이야기를 나 는 것은 그 동안 연구주제로서 주목받지 못했던 학원생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주로 학원생의 상상에 맡겨져 온 학문 쓰기를

탈신비화하는(demystify) 역할도 할 수 있을 것으로 기 된다. 나아가 학문 쓰기에

한 체계 교육이 부족하고, 형식 , 기술 측면에 치우쳐 있는 상황에서 본 연구의 결

과는 학원 교육의 개선을 한 시사 을 제공해 수 있을 것이다.

Ⅱ. 연구방법

1. 내러티 탐구

본 연구에서는 학원생들이 학술지 논문을 쓰면서 겪는 경험을 이해하기 한 방법으

로 Clandinin과 Connelly(2004)가 제안한 내러티 탐구를 선택하 다. 내러티 탐구는

경험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식으로, 특정 장소 는 여러 장소에서 그리고 환경과의 사회

상호작용 속에서 시간이 경과하면서 이루어진다(Clandinin & Connelly, 2004). 장

속에서 이루어지는 내러티 탐구는 사람들의 삶에 해 이야기하고 다시 이야기함으로써

경험을 이해하고 의미를 만들어내며, 이를 통해 다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아

래에 제시된 바와 같이, 본 연구의 연구자이자 연구참여자인 학원생이 쓴 연구노트는

연구방법으로 왜 내러티 를 선택하게 되었는지를 말해 다.

우리는 교육학과 박사과정 학생으로 다른 공이지만 석사과정 때 학술지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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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썼던 공유된 경험이 있었고, 석사과정을 졸업함과 동시에 박사과정으로 바로

입학하 다. 박사과정에 있으면서 우연히 서로 학원 생활에 해서 이야기를 나

게 되었는데 공부하는 것에 있어서 약간의 회의감과 학원생으로서 정체성의

혼란스러움에 해서 이야기를 나 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그 혼란스러움의

심에는 논문이라는 것이 있었고 학원 생활의 가장 핵심이 되고 정체성에 향

을 수 있는 부분이 논문 쓰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의 공

유된 경험들에 해 나 고 공감함으로써 앞으로 학원생으로서 혹은 연구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한 길을 찾는 방법으로 내러티 탐구가 합할 것

으로 생각되었다. 우리는 내러티 탐구과정을 통해 학원생으로서의 논문을 썼

던 경험을 되돌아보고, 성장하고, 변화하고자 한다(연구자 A, 2012. 8. 30).

논문을 쓰는 학원생의 경험과 그 의미를 밝히는 것 뿐 아니라, 그러한 경험을 정체성

형성의 에서 살펴보는 데 있어서도 내러티 탐구는 합한 방법이 될 수 있다. 내러

티 탐구는 개인이 가진 실천 지식과 그것이 형성되고 실 되는 맥락에 한 이해를

통해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고, 이를 정체성이 구성, 유지, 변화되는 과정과 련되는 것

으로 보기 때문이다(Connelly & Clandinin, 1999: 4). 한 내러티 탐구에서 제안하는

개인 ․사회 (상호작용), 과거․ 재․미래(계속성), 장소(상황)의 삼차원 은유 공간

(Clandinin & Connelly, 2004: 111)은 학원생들이 처한 시․공간 맥락과의 계 속에

서 학술지 논문을 쓰는 경험을 입체 으로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한다.

2. 연구과정

본 연구에서는 내러티 탐구에서 제안하는 연구 차를 따랐다. 내러티 탐구의 차

는 장에 존재하기, 장에서 장텍스트로 이동하기, 장텍스트 구성하기, 장텍스트

에서 연구텍스트로 이동하기, 연구텍스트 작성하기로 구성된다. 아래에서는 이와 같은

차에 따른 체 연구과정에 해 기술하고자 한다.

장에서의 내러티 탐구에 참여한 두 연구자는 연구참여자들과 같은 학, 같은 학과

에 소속된 학원생들로, 연구자이면서 연구참여자로서 내러티 탐구를 시작하 다. 이들

은 연구가 시작되기 부터 장에 존재해 왔고 그 속에서 다른 연구참여자들과 이미 경

험과 장소의 일부를 공유하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연구자로서 장에 존재하는

것, 그리고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연구참여자가 되어야 하는 상황은 장에 존재하는 방식

이나 다른 참여자들과의 계 설정을 새롭게 할 것을 요구하 다. 이는 격한 환이라

기보다는 미묘한 조정에 가까웠으며, 장에서 장텍스트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완 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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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생의 학문 쓰기 경험에 한 연구 39

개입하기와 거리두기의 반복을 통해 두 연구자들의 자리매김이 지속 으로 조정되었다.

이와 같은 익숙하면서도 낯선 만남을 통해, 두 연구자(박사과정)를 비롯하여 본 연구의 주

제와 의도에 공감하고 학술지 논문을 쓴 경험이 있는 박사과정생 1명과 석사과정생 1명이

내러티 탐구의 공간으로 들어오게 되었다. 박사과정생들은 최소 두 편 이상 등재학술지

에 논문을 게재한 경험이 있으며, 석사과정생은 한 편을 게재한 경험이 있다. 참여자들은

모두 여성이며, 세부 공은 교육과정, 교육행정, 상담심리로 다양하 다.

장텍스트 구성에 있어서는, 내러티 탐구에서 사용되는 다양한 자료수집 방법

쓰기, 화, 면담이 활용되었다. 연구자들은 연구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연구자와 연

구참여자 간의 불평등한 계에 해 민감하게 의식하면서, 내러티 탐구에서 말하는 ‘

계 탐구’를 우선시하여 연구를 진행하 다(Clandinin & Connelly, 2004: 126). 내러티

탐구자가 있는 공간이 연구자와 연구참여자와 함께 존재하는 공간임을 인식하는 계에

한 민감성은 두 연구자가 연구자이면서 동시에 연구참여자가 되는 경험을 함으로써 더

욱 잘 유지될 수 있었다.

연구자이자 연구참여자인 두 학원생의 경험에 한 이야기는 3개월 간 매주 쓰

기를 통해 한 명이 학술지 논문을 썼던 경험에 해 생각나는 로 으면, 다른 한 명이

그것을 보고 연상되는 것들이나 새롭게 생각나는 부분들을 기록하는 과정을 반복하고, 1

∼2주에 한 번씩 만나 자유롭게 화하고 그것을 녹음하는 과정을 통해 수집되었다.

두 명의 연구자 외의 연구참여자들의 경험에 한 자료 수집은 비구조화된 면담을 통

해 이루어졌다. 각각의 연구자가 서로 다른 참여자를 면담하 지만, 주기 으로 만나서 연

구과정을 논의하고 면담에 해 성찰함으로써, 면담 내용이 연구 주제의 범 를 벗어나지

않도록 하면서도 개인의 경험에 따른 다양한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다. 면담은 참여자

한 명당 두 번 이상 이루어졌으며, 1회 면담시간은 최소 45분에서 최 1시간 30분까지

소요되었다.

이 게 수집된 장텍스트에서 연구텍스트로 이동하는 과정은 , 화, 면담에 한

녹음 자료 사 자료 분석과, 이와 동시에 이루어진 련 연구 분석으로 구성되었다.

이 과정에서 참여자들의 이야기를 이론 범주의 한 사례로 환원시키지 않기 해 주의를

기울 다. 분석 과정에서는 녹음 자료와 사 자료를 반복해서 듣고 읽으면서 학술지 논

문과 련하여 참여자 개개인들에게 의미있는 경험의 범주들을 추출하 다. 그리고 그것

을 토 로 학원생의 학술지 논문 경험에 한 이야기의 윤곽을 구성하 으며, 연구자들

간 화와 논의를 통해 지속 으로 수정하고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쳤다.

잠정 텍스트를 최종 연구 텍스트로 기술하는 데 있어서는 Clandinin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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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問題硏究 제26권 제1호(제46집)40

Connelly(2004: 278)가 내러티 텍스트를 ‘은유 스 ’로 표 한 것을 바탕으로 내러티

를 담을 형식에 해 고민하 다. 내용물과 양, 조각, 양념이 각각 다른 스 는 내러티

텍스트에, 스 를 담는 그릇은 연구텍스트의 형식에 비유될 수 있고 이는 텍스트의 목

과 청 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본 연구는 학원생인 연구자들의 경험으로부터 시작

되었다는 에서, 그리고 이론을 뒷받침하는 증거로서 경험을 환원시키지 않기 해서 이

론 배경을 연구결과의 해석에 통합하여 학자들의 이야기인 선행연구와 학원생들의 이

야기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쓰기를 시도하 다.

연구과정의 반에 걸쳐 장의 내부자로서 출발한 연구자들의 치는 계 형성을 포

함하여 장에서 야기되는 어려움들을 완화시켜 주었다. 하지만 공유된 공간의 이면에는

동료 학원생들과 공유되지 않는 연구실 내의 이야기 는 개인의 이야기도 분명히 존재

하고 있었다. 연구자이자 연구참여자로서 장에 존재하는 것은 공유된 장소와 사 장소

의 긴장 속에서 각 장소에서 나타나는 이야기들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상황은 자신의 조직 는 주변을 연구함으로 인한 권력 문제 연구자와 참여자 그리고

장에 한 험을 야기할 수 있는 문제도 함께 내포하 다(Creswell, 2007). 본 연구에

서는 이러한 험성을 인식하고, 연구참여자들이 면담에서 했던 이야기로 인해 불이익이

나 곤란을 겪지 않도록 하기 하여 연구자를 포함한 모든 참여자들의 이름을 가명으로

표시하 으며, 참여자 확인(member check)을 통해 본인임을 알 수 있는 내용이나 논문

을 통해 공개되기를 원하지 않는 내용은 모두 삭제하 다.

Ⅲ. 네 학원생의 이야기

1. 다은의 이야기

군가 내게 소논문을 썼던 경험에 해 한 마디로 말해달라고 한다면, 좌 과 물이

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을 것 같다. 힘들었던 만큼 얻은 것도 정말 많았지만 지 생각해

보면 도 히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던 그 긴 터 을 어떻게 견뎌왔는지 놀라울 따름이

다.

나는 학문을 깊이 기보다는 실습과 인턴을 통해 장의 문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학원에 들어왔다. 그래서 입학 당시 내 머릿속에는 논문이라는 것에 한 생각이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물론 졸업을 해 논문을 써야 한다는 것은 어렴풋이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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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생의 학문 쓰기 경험에 한 연구 41

고 있었지만, 내가 충분히 비된 후에 시작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논문과의 만남

은 생각보다 빨리, 그리고 불 듯 나에게 다가왔다.

학원 등록 을 마련해야 했던 나에게 교수님이 소개해주신 ○○1)은(는) 큰 메리트를

가졌다. 구체 인 설명을 듣지는 못한 채, 어느 정도는 분 기에 휩쓸려 ○○에 참여하게

된 나는 매월 연구비를 받는 신 논문 실 을 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때가 석

사과정에 입학한 첫 학기 다고 하면, 나의 막막함이 어느 정도 는지 짐작이 갈지도 모르

겠다. 새로운 환경에 응하고 수업내용을 따라가는 것만 해도 벅찬 일이었는데, 여기에

논문에 한 요구까지 덧붙여지자 그 모든 것들이 쓰나미처럼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았다.

처음에는 선배들에게 물어볼 생각도 하지 못했지만, 오래도록 혼자 끙끙 앓는 날들이

계속되면서 용기를 내어 주변에 도움을 구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구체 인 안내가

아닌 막연한 답뿐이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이해와 공감도 받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

되자, 나는 스스로 마음을 닫고 아무것도 잡을 것 없는 우물 속에 나를 가두었다. ‘논문

안 쓰면 이 다 다, 논문이 제일 요하다’와 같이 논문을 하고, 거창하고, 인고의

시련을 견뎌야 되는 것으로 표 하는 주 의 이야기들은 나를 더 주 들게 만들었고, 그

러면서 우물의 벽은 높아져만 갔다. 힘든 과정을 겪으면서 나 에 후배들에게 정말 잘해

줘야겠다고 생각해놓고서도, 막상 선배 입장이 되니 논문에 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

해줘야 할지 모르는 내 모습을 보면 마냥 그들을 탓할 문제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이 게 얽히고설킨 감정을 풀고 마음을 가다듬어서 실제로 작업을 시작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나로 하여 많은 생각들을 하게 만들었다. 나에게는

극한상황이었던 논문에 부딪치면서 나는 이 에 몰랐던 내 모습과 맞닥뜨리게 되었다. 내

가 알던 나는 도 을 좋아하고 안주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이었는데, 막상 그 도 이 닥치

니 두려워하고 힘들어하는 내 모습, 연약하고 회피하며 자신감 없는, 바닥의 숨겨진 내

모습을 보는 것은 무나도 괴로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내야 하는 상황이었기

에 나는 나를 토닥거리기보다는 재 하고, 막다른 골목으로 몰아넣을 수밖에 없었다. 논문

을 쓰면서 나처럼 힘들어하는 선배들을 볼 때는 잠시 로가 되었다가도, 논문을 끝내고

나서 쉽게 말하는 선배들을 보면 ‘나만 이 게 힘든가.’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고 고

독과, 나와 싸워야하는 외로운 날들이 계속되었다.

하지만 결국 논문을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주 의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2학기

때 내가 일했던 □□□2)의 담당선생님이 연구주제와 방법에 한 아이디어를 주셨고, 교

1) 국책사업.

2) 학교 내 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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敎育問題硏究 제26권 제1호(제46집)42

수님이 그 연구에 해 조언을 구할 만한 선생님과 설문참여자를 소개해 주시기도 했다.

차츰 도움의 손길들이 다가오면서 나도 힘을 얻었고, 설문을 해 발로 뛰는 등 박차를

가해서 논문을 마칠 수 있었다.

어렵게 논문을 완성하고 나자, 나를 기다리고 있는 하나의 시련이 있었다는 것을 알

게 되었다. 더욱 내동댕이쳐진 내 모습을 마주하게 한 것은 ‘게재불가’라는 심사결과 다.

논문을 쓰면서 힘들어하는 나를 본 주 사람들이 ‘힘든데 왜 붙잡고 있냐’는 핀잔을

때, 나는 속으로 힘들지만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리라고 다짐했고 그럴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심사결과는 ‘내가 별 거 아니었구나.’하는 망감을 안겨주었고, 완벽

하게 만들고 싶었던 내 논문이 그런 취 을 당하니 나 자신마 도 비참하게 느껴졌다. 당

시에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결과 지만, 돌아보면 그것은 내가 깎이고 다듬어지며 단단해

지는 과정이었다. 그런 과정이 없었다면 나는 겸손해질 도 몰랐을 것이며, 나를 들여다

보지도 않았을 것이다.

긴 터 과 같았던 논문 쓰는 과정과 망 인 심사결과를 견뎌내도록 한 데에는 신앙

의 힘도 매우 컸다. 사람들에게는 차마 말할 수 없는 애달 마음을 신앙에 기 어 쏟아

내고 로받을 수 있었다. 학 논문을 썼던 이번 학기에 처음으로 학교에 남아 밤샘을 했

는데, 지혜를 달라는 기도 덕분이었는지 내가 할 수 있는 것 이상의 것들이 나오기도 했

다. 밤을 지새우고 햇살을 맞으며, 하기 싫어서 도망 다니던 내가 이 게 해내고 쓰는

것에 한 자신감을 갖게 된 걸 보면서 몸은 피곤했지만 마음은 기쁨으로 차올랐다. 학술

지 논문을 써 본 경험이 없었더라면 졸업논문이라는 큰 벽을 이처럼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하다.

분명 학술지 논문을 썼던 시기는 나 자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축 쳐져 있었던 시기

다. 하지만 이것은 더 진지해지고, 나 자신을 보게 되고,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고민

하게 된, 동 의 양면과도 같은 경험이었다. 나를 더 강하고 단단하게 만들어 훈련의 과

정을 통해 이제 나는 주 앉아 울기만 하는 겁쟁이가 아니라 ‘울 수도 있지.’하며 혼자서

도 툭툭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나에게는 결과물로서의 논문보다는 논문을

썼던 과정이 더 의미있게 느껴진다.

논문은 △△3)도 아니고, 공부도 아니고, 논문을 쓴다고 해서 실천가의 자질이 갖춰지는

것도 아니다. 논문을 왜 써야 하는지에 한 의미를 찾는 것이 요한 것이다. 논문이라는

통과의례를 거친 덕분에, 여 히 많이 넘어지고 부족하지만 어떤 일이든 극복할 수 있겠

다는 기 와 희망으로 한발 한발을 내딛을 수 있을 것 같다. 내 안의 가능성을 보게 해주

3) 자신의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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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생의 학문 쓰기 경험에 한 연구 43

고, 나라는 사람이 알고 보면 더 아름답고 귀하고 많은 걸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었다는 에서, 논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물론 괴롭기도 했지만 오묘하고, 감

사하며, 선택받은 경험이었다.

2. 보미의 이야기

처음 학술지 논문을 쓰게 된 건, 석사과정 1년차 때 다. 당시의 나는 학원생에게 논

문이 그 게 요한 의미라고도 생각하지 못했고, 졸업을 한 수단으로 쉽게 생각을 했

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 참여로 막상 논문을 쓰게 되자, 두려움 반 설렘 반이 섞인

복합 인 감정이 려왔다.

보통 첫 논문의 주제는 어느 정도 지도교수님이 방향을 정해주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

는데, 내 경우는 달랐다. 학생이 알아서 하도록 맡기는 게 쉽지 않으셨을 텐데도 당시의

지도교수님은 나를 믿고 기다려 주셨다. 그 게 스스로 정한 나의 첫 논문 주제가 수치심

이어서 때로는 우스갯소리로 내 논문 자체가 수치스럽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했는데, 내가

하고 싶은 주제를 쓰는 것이었기 때문에 책임이 컸기도 했지만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처음 논문을 쓸 때는 논문이 어떻게 진행되느냐에 따라 내 존재의 휘청거림이 아주 심

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내 논리나 주제에 부합되게 이 잘 써지면 기분이 좋고 내가 괜

찮은 사람인 것처럼 느껴지다가도, 뭔가 하나 어 나고 뒤틀리면 그때부터 기분이 확 가

라앉고 망스러운 것이었다. 그런 내 자신을 보면서 그깟 논문이 뭐라고 이 게 내가 흔

들리는지 쓸하기도 하고, 별거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지기도 했다. 나는 논

문이 잘 써지느냐 그 지 않으냐에 따라 평가받을 사람이 아니라 있는 그 로의 나이고

논문 때문에 그 게 흔들릴 필요가 없다고 되뇌었다. 하물며 논문 하나에도 이 게 흔들

리는데,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얼마나 환경에 좌지우지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그 문

제를 삶으로까지 확장시키기도 했다. 이런 생각들을 할 수 있었다는 에서 논문 자체보

다는 논문을 쓰는 과정이 나에게는 더 의미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처럼 내게 요한 메시지를 첫 논문에 한 심사결과는 냉혹했다. 게재불

가라는 결과를 받아든 나는 학술지라는 시스템에 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단지 논문이

거 된 것일 뿐인데, 내가 주제를 선정하고 논문에 투자했던 모든 것들이 단 세 사람에

의해서 깡그리 무 졌다고 생각하니 무나도 속상했다. 자기가 쓰고 싶은 내용을 로

쓰고 그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면서 질을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어떤 세 명이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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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 에 의해 논문의 가치가 평가된다는 것은 자연스럽지 않은 과정으로 여겨졌다. 그리고

좋은 평가를 받기 해 틀에 맞추어야 한다는 것은 자유롭지 못하다는 느낌을 주기도 했

다. 학술지 논문은 정해진 의 형식이 있어 쓰기 편하다고 생각한 도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개인의 역량이나 잠재력을 제한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분명해 보 다.

이 게 첫 논문을 끝내고 나서는 마쳤다는 만족감만 있지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학

문 만족감이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식이 계속되다보면 끝없는 갈증이 날 것 같다는 생

각이 들었고, 우리보다 오래, 많은 논문을 써 온 교수님들은 논문을 쓰면서 스스로 나는

학자라고 받아들여질까, 아니면 많은 실 에도 불구하고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있을까

하는 의문도 가졌던 기억이 난다.

첫 논문을 쓴지도 어느덧 2∼3년의 세월이 흘러 이제는 여러 편의 논문을 한꺼번에 진

행하는 상황에까지 놓이게 되었다. 지 이 순간 나를 지배하고 있는 질문은 ‘ 심’에

한 것이다. 논문을 써보기 의 나는 다른 선배들을 보면서 ‘ 런 것도 써보고, 경험이 많

이 되겠다.’며 부러워했었는데, 막상 몇 편의 논문을 써 본 지 의 나는 내가 상상했던 그

자리에 있는 것일까?

논문을 쓰면서 가졌던 이런 런 생각들을 통해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진정한 연구자

라고 한다면 자신이 논문을 쓰는 주제에 해 주체 이고 진지한 태도로 근하는 것이

요하다는 것이다. 아직 박사과정 학원생임에도 불구하고 학문 만족감을 느끼고 싶

어했던 마음이 나의 욕심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만족감 이 에 내가 연구를 하고

논문을 쓰는데 있어서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가가 우선이 되어야 하며, 그러한 태도와 마

음이 내가 박사과정에 입학했을 때 가졌던 나의 심이었다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다.

학문 만족감은 나의 심을 얼마나 유지하면서 연구를 하고 논문을 썼느냐에 있는 것이

지 나의 논문이 학술지에 실리느냐 실리지 않느냐는 그 이후의 문제인 것이다. 이제는 박

사과정 학원생으로서의 나의 심을 발견하 기에 보다는 논문 때문에 쉽게 흔들리

지 않을 것 같다.

3. 연화의 이야기

공 분야의 권 있는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해 게재승인을 받는 것은, 다른 이들에게

는 어떤 의미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겐 미묘한 양가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물론 그것은 학문

공동체의 어엿한 구성원이 되었다는 소속감과 자부심을 느끼게 해 다. 언젠가 참석했던

학회에서 어느 교수님이 내 명찰을 보고 이러이런 논문을 쓰지 않았냐며 아는 체를 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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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생의 학문 쓰기 경험에 한 연구 45

었던 사건은 내게 그런 자부심과 동시에 부끄러움과 뭔지 모를 슬 느낌마 들게 했다.

이런 복잡한 감정은 박사과정에 들어오던 때부터 갖고 있던 것이었다. 한 편으로는 자

랑스러움과 자부심을 가지면서도, 다른 한 편으로는 소속되고 싶지 않았던. 그것은 학과나

공이라는 구분 안에 속하는 것에 한, 그리고 주 에서 들어 온 부정 학문풍토에

한 거부, 회피, 두려움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그 때 가졌던 부정 인 생각은 그 로 유지

하면서, 동시에 애를 써서 논문을 쓴다든지 하며 공동체의 일원이 되고자 노력하는 나 자

신을 볼 때면 정체성에 혼란이 생겼다.

사연이야 어 건, 학원에 들어오게 된 이상 그곳의 규칙을 따라야 했다. 들어오기

에도 이미 박사과정으로서 교수님들에게 인정받으려면 1 자로 논문을 써야 한다는 이

야기를 들었다. 당시에는 막연하게 받아들 는데 들어와서 보니 그것은 다양한 의미로 해

석될 수 있는 것이었다. 나의 연구능력, 다른 교수님들 실 을 챙겨 수 있는 능력, 로

젝트에 들어갈 수 있는 능력 등등을 어필할 수 있는 방법 하나가 논문이었던 것이다.

나의 ‘능력’을 ‘논문 한 편’으로 증명할 수 있는 기회는 박사과정 3학기, 로젝트와

련된 논문의 한 꼭지를 맡게 되고, 결국은 체 논문 수정을 담당하게 되면서 찾아왔다.

내 경우에는, 주어와 서술어가 동일해야 하고, 인과 계가 명확해야 하며, 내 주장인지 남

의 주장인지를 분명히 구분하고 참고문헌을 달아야 한다든지 하는 논문의 형식과 법칙,

그리고 공분야에서 잘 쓰는 용어들과 문체를 악하는 것이 힘든 부분들이었다. 마지막

에 체를 수정하는 과정에서는 각자 분담하여 쓴 부분들의 문체를 어떻게 통일해야 할지

도 막막했다. 그리고 이 게 트별로 나눠서 썼던 논문은 총 하는 사람의 에 맞추

어야 하는 부분이 많았기 때문에 ‘내 논문’이라는 느낌이 덜했다. 논문이 게재되고, 주

사람들에게 축하를 받으면서도 내 건지도 모르겠고 실감도 별로 나지 않았다.

반면, 두 번째 논문은 다른 선생님의 학 논문과 련된 소논문에 참여하면서 쓰게 되

었는데, 실제로 설문을 실시하는 것 외에 문항을 구성하고 을 쓰는 것은 거의 내 몫이

어서 내 손으로 직 쓴 첫 번째 논문이 되었다. 그 논문도 우여곡 끝에 완성된 것이었

다. 막상 결과를 수집하고 보니 같은 주제의 선행연구와 별로 다른 이 없었는데, 연구법

에 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는 어디에서 틈새를 찾아 차별화를 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

았던 것이다. 그래서 잠시 단되었다가, 혼자 인터넷에서 연구방법 강의를 듣거나 책을

찾아보고, 연구실 선후배들과 서로의 논문에 해 피드백을 해 주는 모임을 갖게 되면서

다시 진행이 되어갔다. 동료들과의 의견교환은 혼자서는 추진하기 어려웠던 것을 시작하

게 해 계기가 되기도 했고, 내가 봤을 때는 완벽한 논문이지만 남들의 에는 허 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 게 내 노력이 많이 들어간 두 번째 논문이 최종 으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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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승인을 받았을 때는 ‘혼란스러워 하면서 썼는데도 승인이 되었구나.’하는 생각도 들고,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내 것이라고 느 던 그 논문도 잘 생각해 보면 특정 학문 세계에서만 통용되는

말로, 그리고 다른 이론가들의 말을 빌려 쓴 것일 뿐이었다. 구성을 내가 했고, 내가 썼다

뿐이지 완 한 내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몇 편의 논문을 써 본 경험이 쌓인 지 은, ‘학

술지에 실리게 잘 쓰는 것’과 ‘ 을 잘 쓰는 것’을 구분하게 되었으며, ‘논문을 쓰는 것’과

‘깊이 있는 연구를 하는 것’도 동의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학술지 논문이 가지고 있는

규정이나 형식상의 한계, 게재를 해서는 수용할 수 없는 심사내용에 해서도 반박하지

못하는 등이 그런 생각을 하게 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그 동안 논문을 썼던 경험들은 다양한 내용과 방법들을 해보면서 일 으로 내가

하는 질문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의 학문 을 세

워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런 과정들을 거쳐 온 재의 나는 학술지 논문을 쓰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 것 같다. 논문을 내 자식인양, 아바타인양 느끼지도 않고, 그 내 노

력을 결과물로 평가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실 이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의미

를 찾지 못한다. 타인에 의한 평가로 표되는 학술지 논문보다는 내가 스스로 고민하고,

깊이 생각하고, 심을 갖는 분야의 책을 탐독하는 것이 나에게는 더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4. 정린의 이야기

‘학술지 논문’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아무래도 가장 먼 떠오르는 것은 처음 논문을

쓸 때의 내 모습이 아닌가 싶다. 수업내용과 련해 논문을 한 번 써 보는 게 어떻겠냐는

교수님의 제안으로, 남들에 의해 어진 결과물로서의 ‘논문’이 아니라 내가 논문을 ‘쓴다’

는 동사 의미에 해 처음으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석사과정 1년도 채 마치지 못했는

데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도 물론 있었지만, 해 보고 싶은 마음, 그리고 잘 해내

고 싶은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매일 밤 연구실에 남아 련 연구들을 읽고 정리하는

일들이 즐겁게 느껴졌다. 하지만 ‘논문을 왜 쓰는지’하는 목 에 한 생각은 없었고, 그

내용에만 빠져있었던 것 같다.

처음으로 이랍시고 썼던 안은 서론, 본론, 결론의 구분도 없는 민망한 수 의 것이

었다. 학술지 논문을 많이 읽기는 했는데, 그것을 내 과 연결시키지는 못했던 모양이다.

어 든 그 민망했던 순간이 시작이 되어, 논문의 체제와 형식에 따라 을 쓰는 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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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생의 학문 쓰기 경험에 한 연구 47

차 익 나갔다. 논문의 형식을 습득하고 익숙해지는 데 한 와 에도 들었던 생각은,

물론 효율 인 의사소통을 해 필요한 부분은 있지만, 에서 핵심 인 부분이 아닌 형

식을 강조하는 것이 학문에 한 진입장벽을 높이는 역할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

이었다. 지 은 나도 논문에서 요구하는 기본 인 형식을 갖추지 못한 을 볼 때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걸 보면 학문 공동체가 제시하는 기 의 내면화가 상당히 진행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틀에 맞춘, 는 갇힌 쓰기가 쓰는 사람의 술 능력을 무력

화한다는 느낌은 여 히 가지고 있다.

학술지 논문을 이야기하는 데 있어서는 ‘심사’를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애써 썼던 첫

논문에 한 심사결과는 게재불가 다. 역시 무리 나 하는 생각도 들고, 논문을 평가하는

데 있어 지도교수님과 심사자 간, 그리고 심사자들 간의 기 차이는 나를 혼란스럽게 만

들었다. 이론 연구 던 논문에 해 실질 가치를 요구하는 심사평은 나로 하여 교

육학이 실용성을 시하는 분야라는 인식을 갖게 하는 데 큰 향을 주었다. 내가 쏟은

노력에 비해서는 다소 가혹했던 결과를 받아 든 나는 합리화가 필요했고, 학문도 다른 분

야처럼 그 자체의 세계가 있는 것인데 그것이 실과 연결되지 않는다고 하여 뭐가 그

게 잘못된 건가, 이론이 발 해야 실제가 발 하고 그 역도 성립하는 것 아닌가 하는 편

한 생각마 했었다. 논문의 의미에 해 곱씹어볼 수 있는 시간들을 거치고 난 지 은

실을 정 하게 악하거나 근본 인 문제 해결에 기여하지 못하는 학문은 의미가 없다

는 생각을 한다.

첫 논문을 게재하는 데만 6개월 이상의 시간이 걸렸고 그 게 진을 빼고 나니, 게재가

되어도 기쁘다는 느낌이 없었다. 이후에는 공부한 내용을 논문으로 쓰기보다는 논문

을 쓰기 해 주제를 찾고 공부를 하게 되는 주객 도 상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실 으

로서 논문의 가치가 부각되는 사회 분 기와 학문 풍토 속에서 진정한 논문의 의미가 사

라지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만족할 만큼 충분히 공부하지 못한

상태에서 논문을 써야 하는 상황에 부딪칠 때는 당연히 만족감도 없었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 에서 보면 다른 사람들의 인정도 요하지만 그 이 에 나 자신의 만족이

더 기본 으로 충족되어야 할 조건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심을 갖는 주제의 연구에

충분히 몰입하고 헌신해야 그 속에서 나의 존재를 찾을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이 더 힘들

지는 몰라도 의미 있는 과정일 것이다.

논문 속에서 존재를 찾고자 하는 욕구가 실에서 얼마나 충족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

다. 그 동안은 논문을 써 본 경험에 해 단지 논문 쓰는 방법이나 기술 측면에서의 발

외에는 의미를 찾지 못했는데 지 생각해보면 그런 과정들을 통해 어느 정도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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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방향을 잡게 된 것 같고, 그 방향이 지 의 나를 이끌어주는 것 같다. 내가 그리는 나

의 모습은 내 색깔과 목소리를 찾고 그것을 속에서 드러낼 수 있는 모습이다. 그것은

주제 선정에서, 주제를 보는 에서 나타날 수도 있고, 직 인 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는 의 스타일에서 드러날 수도 있을 것이다. 보다 나와 착된 , 내 색깔이 듬뿍

묻어난 을 언제쯤 쓰게 될 수 있을지.

Ⅳ. 나와 논문, 그리고 학문 사이에서

앞 장에 제시된 학원생들의 이야기는 학술지 논문을 쓰면서 그들이 어떤 경험을 하

고,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 나가며, 이러한 과정을 통해 궁극 으로 어떻게 학문 공동체

의 구성원으로서 성장해 가는지를 보여 다. 이러한 경험은 그들이 치한 시․공간 맥

락과 상호작용하면서 그들의 정체성 형성에 향을 주는 것으로 보 다. 아래에서는 논문

을 쓰면서 겪는 어려움과 그것의 극복, 그리고 이를 통한 변화와 성장이라는 주제를 심

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해석하고자 한다.

먼 , 학원생들의 이야기에서는 논문을 쓰는 과정에 인지 측면과 정서 측면이 모

두 포함되며, 두 가지가 서로 하게 련되어 학원생들이 겪는 어려움을 형성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그것에 처하거나 있는 그 로 겪어내면서 자

신의 경험에 해 성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학술지 논문을 쓰는 데 포함되는 인지 측면은 주로 논문의 내용과 련된 지식, 그리

고 학술지 논문에 한 기술 , 차 (procedural) 지식 등으로 구성된다. 이 어느 것

이 논문 쓰기 과정에서 더 큰 향력을 갖는지는 단언하기 어렵지만, 앞에서 제시된 학

원생들의 이야기에서는 내용 지식보다는 기술 , 차 지식과 련된 어려움이 비교

더 부각되어 있다.

내용 지식과 련해서는 연구방법에 한 지식의 부족으로 선행연구와의 차별화에 어려

움을 겪었던 연화의 이야기가 있었다. 이는 연화로 하여 계속해서 논문을 진행시킬 수

없게 만들었고, 그녀는 논문을 단한 기간 동안 혼자서 인터넷 강의를 듣고 책을 찾아보

는 방식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것이 논문 쓰기를 다시 시작할 수 있는 디딤

돌로 작용했음은 분명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요한 역할을 했던 것은 연구실 단 의 소

모임이었다. 동료들로부터의 피드백을 통해 연화는 자신의 사 공간에서 이루어지던 논

문 쓰기를 공 공간으로 이동시키고, 다시 그것을 사 역으로 가져오기를 반복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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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생의 학문 쓰기 경험에 한 연구 49

자신의 을 객 으로 볼 수 있게 되고 논문을 계속 써 나갈 수 있는 동기를 얻게 되

었다.

학술지 논문에 한 기술 지식은 논문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 문장 구조, 인용방식,

의 논리 구성 체계 등과 같은 ‘형식’과 련된 것이다(Cameron, Nairn &

Higgins, 2009: 270). 특히 논문을 처음 쓰던 시 에서 학원생들에게 이 모든 것들은

새롭게 습득해야 할 상이었고, 논문에 해 부담을 느끼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하지만

기술 지식의 습득은 학생들이 연구 경력의 기에 가장 많은 노력과 심을 쏟는 부분

이기도 하고, 교육을 통해서나 실제로 논문을 써 나가는 경험을 통해, 그리고 주변의 도움

을 구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기 때문에 강한 감정 변화를 수반하지는 않는 것으로 보

다.

학원생들이 실질 으로 더욱 어려움을 느끼는 부분은 차 (procedural) 지식과

련된 것이었다. 논문에 한 차 지식은, 논문을 쓰는 것이 모든 연구가 끝난 후에

자가 알고 있는 것을 독자들에게 소통하는 선형 과정이 아니라, 쓰기와 다시쓰기를 계

속해서 되풀이하면서 의미를 생성해내는 과정임을 이해하는 것이다(Cameron, Nairn &

Higgins, 2009: 277). 이는 경험해 보지 않고서는 습득할 수 없는 것이므로 학원생들은

논문을 한 편, 두 편 써 나가면서 을 쓰는 과정에 해 이해하게 된다. 이 과정은 아래

에서 살펴볼 학원생들이 겪는 정서 난 과 한 련이 있다.

학술지 논문을 쓰기 , 연구참여자들은 개인에 따라 막막함만을 느끼기도 하 고, 두

렵지만 설 는 도 의식을 갖기도 했으며, 학원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로 수롭지

않게 받아들이기도 하 다. 하지만 논문을 하는 그들의 각기 다른 태도 아래에는 정체

성에 한 질문이 자리하고 있었다. 실천 문가가 되는 것을 목표로 학원에 들어온

다은의 경우에는 자신이 지향하는 문 정체성(professional identity)과 논문이 요구하

는 학문 정체성(academic identity)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 다. 학문 공동체에 소속되는

것에 한 상반된 감정을 가진 상태에서 논문 쓰는 과정으로 들어가게 된 연화 한 이미

자신의 정체성에 한 질문을 가지고 있었고 이것은 이후 논문에 한 참여도가 높아지게

되면서 정체성의 혼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들이 실제로 논문을 쓰는 과정으로 들어간 후 가장 심 으로 나타나는 감정들은

두려움, 힘듦, 외로움 등이었다. 학원생들은 선배나 지도교수, 다른 학자들의 고를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고 쓰는 과정에서의 수없는 반복을 측하기 어렵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정제된 과 자신이 쓰는 과정에서의 혼란스러움을 비교하면서 필자로서

자신의 능력을 불신하게 되고 좌 감을 느끼게 된다(Cameron, Nairn & Higgins,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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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그들은 이러한 감정이 나타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며, 을 쓰는 모든 사람들이

겪는다는 것 한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홀로 고통을 견뎌내는 경우가 많았다.

그 속에서 학원생들은 계속해서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모습을 보 다. 이처럼 계

성의 주된 방향이 자신의 내부로 향하게 되는 것은 쓰기의 과정이 기본 으로 혼자 겪

어내야 하는 과정이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여기서 보미는 자기가 만든 논문의 거

한 그림자에 짓 린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고, 논문과의 거리두기를 통해 주체 인 모습

을 찾고자 하 다. 반면, 다은은 논문을 회피하지 않고 직면하며, 자신을 더욱 논문에 내

맡김으로써 난 을 헤쳐 나가고자 하 다. 이 경우에는 오히려 논문과의 거리를 좁히려는

모습이 나타났고, 그 게 하는 데 있어서 신앙의 역할도 매우 컸다고 할 수 있다.

연구참여자들에게 강한 감정을 불러일으켰던 다른 사건은 자신의 논문에 한 부정

심사결과 다. 학생으로서 노력을 많이 하면 좋은 평가를 받는 데 익숙해져 있는 학

원생들은 자신의 노력과 돌아오는 반응 간에 직 으로 련이 없어 보이는 논문 심사결

과에 의해 심리 으로 큰 향을 받았다(Female Science Professor, 2009). 과거와의 연

장선상에서 보면, 학부 과정에서부터 쓰기와 련해 창의 사고보다는 비 사고를

요구받아 온 탓에 아이디어를 로 옮기기도 에 자기비 에 의해 가로막히곤 하는 학

원생들에게, 추가 인 외부의 비 은 자신의 에 한 부정 생각을 더욱 강화시킬 수

있다(Cameron, Nairn & Higgins, 2009: 271-272).

이 과정에서 다른 사람으로부터의 피드백과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 자기 간의 불일치

로 인한 정체성 갈등이 나타나기도 했다. 학원생들의 이야기에서는 이에 처하는 방식

으로서 합리화와 자기 확인에 한 요구를 볼 수 있었다(Jazvac-Martek, 2009: 255). 정

린은 논문의 실용 가치를 시하는 심사평에 해 학문 세계와 실세계의 분리를 정당화

함으로써 자신의 입장을 합리화하고자 하 다. 하지만 이후 논문을 비롯한 학문 활동들

을 겪어나가고 그것에 해 성찰하면서 이분법 인식을 벗어나 자신의 학문 을 새롭게

확립할 수 있었다. 다은은 처음에는 심사자들의 에 비친 자신을 받아들이기 힘들었지만

결국은 수용함으로써 겸허해지고 겸손해질 수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자신의

논문에 한 외부의 검증을 거치는 것은 자신이 속한 학문 공동체와의 소통 기회이기도

하 으며, 이를 통해 학문 공동체에 한 인식과 자기 개념에서의 변화가 일어난 것이다

(Adler & Adler, 2005: 24).

이처럼 학술지 논문 집필이라는 요한 학문 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학문 공동체에

한 학원생의 참여 정도가 커지게 되는 것은 학자나 연구자로서 그들의 정체성 발달을

진하는 시발 이 되면서, 동시에 개인과 맥락의 특성, 양자 간의 상호작용에 따라 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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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생의 학문 쓰기 경험에 한 연구 51

과 혼란이 발생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었다(Lave & Wenger, 1991). 학원생들은 나름

로의 노력을 통해, 는 그것을 겪어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극복해가는 모습을 보여주었

고, 당시에는 몰랐지만 그 과정을 살아내고 난 후 돌아보니 그것이 단지 고통스럽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여 히 혼란스러운 정체성 형성 과정의 한 가운데에

있지만, 고통은 다른 희망과 변화의 시작이기도 하 던 것이다.

학문 공동체의 일원이 되기 한 요한 과정으로서의 논문 쓰기를 경험해가면서 학

원생들은 처음에 느 던 두려움과 고립감이 차 어들고 어느 정도 자신감이 생기는 반

면, 회의감과 혼란스러움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경험이 쌓이면서 학원생들은

자신의 논문 쓰는 능력이 차 발 해 간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기도 하고, 외부의 인정에

의해 확인받기도 했다. 논문에 의한 억 림에서 벗어나 논문을 다룰 수 있게 되자, 그들은

학문 공동체의 규범을 받아들이기에 바빴던 상황에서 한 걸음 물러서서 논문과 자신의

계, 그리고 이를 포함하는 학문 공동체의 체 경을 어느 정도 바라볼 수 있는 을 갖

게 되었다. 이러한 시선으로 봤을 때 논문을 많이 쓴다고 해서 더 잘 쓰게 되는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고, 논문을 더 잘 쓰게 되었다는 것이 반드시 만족스러운 일만은 아니

었다. 그것이 학문 인 성장이나 쓰는 능력의 발 과 꼭 같은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진정한 공부와 성장을 지향하고, 그 속에서 의미를 찾기 해서 학원생들은 각자의 방

식으로 논문과의 계를 맺기 시작한다.

논문을 쓰는 경험의 기에 다은은 자신을 논문으로부터도, 다른 사람들로부터도 고립

시키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럼으로써 오랫동안 깊은 곳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면한 끝에

차 자신을 가두었던 벽으로부터 나와 논문과의 거리를 좁 나갔다. 심사결과를 받을 즈

음에는 논문에 한 거 에 의해 자신이 비참해짐을 느낄 정도로 논문과 자신을 동일시하

기도 했다. 학 논문을 쓰면서 그녀는 자신을 더더욱 논문 속에 몰입시킴으로써 쓰기에

한 자신감을 얻고, 처음으로 논문을 통해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 과정의 끝에서 그녀는

논문과 공부, 논문과 실천가로서의 문성을 구분하고 있지만, 논문을 쓴 경험으로부터 얻

었던 자신에 한 깨달음을 앞으로의 삶의 방향으로 삼으면서 자신이 겪었던 경험에 한

애착을 표 하고 있다.

보미는 첫 논문을 쓰면서 자신이 논문에 종속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는 논문을 쓰는

과정과 심사결과를 하는 태도에서 나타났다. 자신이 쓴 논문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지

배당하는 모순 상황에서 벗어나기 해 그녀는 스스로에 의해 만들어지는 산물로서 논

문을 객 화하면서 주체로서 자신의 치를 재 상하고 있다. 이는 논문과의 지배 계

로부터 자신을 분리시키고, 나의 일부가 아닌 객체로서의 논문과 등한 만남을 시도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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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으로 볼 수 있다. 이 게 자신으로부터 나온 논문과의 분리된 계를 설정함으로써 그

녀는 새로운 갈증을 느끼기도 하 다. 과거의 내 모습, 과거의 내가 바라보았던 선배들의

모습, 지 의 나, 먼 훗날의 나를 변하는 교수들의 모습이 오버랩되면서 그녀의 재를

형성하고 있으며, 이제 그녀는 논문으로 인해 쉽게 흔들리지 않는 자신을 ‘ 심’에서 찾고

자 한다.

연화의 이야기에서는 앞의 두 연구참여자들과는 달리 논문과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논문

에 종속되는 모습이 나타나지는 않았다. 이는 그녀가 학문 공동체와 일정한 내 거리를

두고 논문 쓰기 과정으로 들어왔기 때문일 수 있다. 그녀는 학술지에 실리는 논문과 좋은

, 논문 쓰기와 깊이 있는 연구를 분리하고, 후자 쪽으로 자신을 지향시키고자 한다. 하

지만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던지는 질문들을 확인함으로써 자신의 심사와 학문 방향

을 정립하게 되었다는 에서 학자로서 자신의 정체성과 논문을 완 히 분리할 수는 없었

다.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선택한 논문과의 계는 실 이상의 의미를 논문에 부여하지

않으면서 계속해서 논문과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

는 진정한 공부와 성장, 그리고 학문 공동체가 요구하는 기 으로서의 논문 사이에서 계

속해서 갈등하는 모습을 보 다.

정린의 이야기에서는 첫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자신을 논문에 념시키는 모습으로부터

논문과의 착된 계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 속에서 자기 자신에 한

성찰을 심화시켰던 다은이나 보미와 달리, 정린은 논문 쓰기와 심사의 과정을 학문 공동

체에 해 악하는 계기로 환하며, 스스로 상정한 학문 공동체의 입장에 비추어 자신

의 을 구성하고, 재구성하는 모습을 보여 다. 시간이 지나면서 논문을 한 논

문을 쓰게 되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실 심의 학문 풍토에 한 회의감을 가지면서 그

녀는 논문을 통해 아무런 만족감을 가질 수 없는 심리 분리를 경험하지만, 만족스럽지

못한 논문에 한 수치심을 함께 가짐으로써 좀 더 논문에 다가가고자 하는 의지를 암시

하고 있다. 결과 으로 정린은 자신의 존재로 을 돌리면서 자신의 속에서 존재가 충

분히 꽃필 수 있는 것으로 논문과의 계가 형성되기를 기 하고 있다.

이처럼, 학원생들이 논문 쓰는 과정에서 진정으로 얻었다고 느끼는 것은 단순히 논문

에 한 기술 지식이나 논문을 더 잘 쓰는 능력 이상의 것이었다. 그것은 그 에 알지

못했던 자신과 만남으로써 혼란을 겪게 하기도 하 지만, 연구자로서 자신의 모습을 찾아

가는 과정이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학원생들은 논문과의 계를 재형성해 나갔으며,

이를 통해 논문의 의미를 재음미하는 모습을 보 다. 이 과정에서 타인의 평가나 실 으

로서 논문의 가치를 부정 으로 받아들이기도 하 고, 이는 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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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생의 학문 쓰기 경험에 한 연구 53

어떠해야 하는지를 고민할 수 있는 바탕이 되었다. 그들은 논문을 쓰는 과정을 통해 성장

하고 성숙해가는 자신을 발견하면서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데 있어서 진정으로

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해 고민하고 있었다.

학원생으로서 그들은 여 히 그 과정의 한 가운데에 놓여 있다. 그리고 자신과 논문,

학문 간의 계 속에서 나름의 의미를 찾아가야 하는 문제에 지속 으로 직면할 것이다.

하지만 울 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던 지난날과 달리 이제는 학문 공동체에 소속된 개

인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이고 논문과의 계를 확립해가면서, 그들은 앞으로 연구자로서,

학문 자로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모색하고 있다.

Ⅴ. 논의 결론

다은: 이런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지극히 사 인 이야기가 공 인 이야기라고.

나만의 개인 이고 나만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군가에게 울림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소 한 게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들고…

이 에서는 학원생의 목소리를 통해 학문 쓰기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학원생의 삶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이야기하고, 다시 이야기함으로써 이를 통해 다시

살아갈 가능성을 발견하고자 하 다. 에서 인용한 다은의 말처럼, 학술지 논문을 썼던

자신을 되돌아보고, 그것을 이야기하고 다시 이야기하는 과정을 통해 개인 으로 우리는

자신과 논문의 계를 새로운 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며, 이를 바탕으로 이

제 다시 살아갈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

논문 작성의 기술, 과정, 그것이 야기하는 감정에 해 알지 못했던 학원생들에게 논

문을 쓰고 평가를 받는 것은 두렵고, 외롭고, 힘든 과정이었다. 숙련된 자들도 여 히

쓰기에 어려움을 느낀다는 에서 이는 쓰는 것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감정으로 볼

수도 있지만, 충분한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쓰기가 반드시 고통스러워야 할 필요는 없다.

외국에 비해 국내에서는 정규 교과목으로 학원생을 한 학문 쓰기 교육이 이루어

지는 경우가 매우 으며, 특강 형태의 비정규 로그램에서는 주로 쓰기의 기술 측

면만 다룸으로써 복잡한 쓰기 과정의 단면만을 포함하고 있다.

학원생들이 논문을 쓰면서 겪는 어려움은 그들이 처한 환경에서 논문을 신비스러운

것으로 만들거나, 혼자 할 수 있는 것, 즉 별로 문제되지 않는 것으로 취 하거나, 논문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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련된 이슈들에 해 화할 수 있는 기회나 장이 부족함으로 인해 강화되기도 하 다.

이로 인해 학생들은 어둠 속에 남겨진 기분, 요한 학문 지식 생산 과정에 근하지

못하는 기분, 시행착오를 통해서만 배우는 기분을 느끼거나 논문 집필에 한 학습이 복

권당첨과 같이 우연히 일어나는 것으로 여기게 된다(McAlpine & Amundsen, 2008: 84).

이런 에서 볼 때 학원생이 학자로서의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체 경 속에 학

문 쓰기를 두고, 쓰기와 련된 지식과 감정을 포 할 수 있는 교육의 필요성이 제

기된다. 재 이루어지고 있는 논문 작성 련 특강이나 연구방법 련 정규 수업들을 통

해 논문에 한 기술 지식들은 다루어지고 있지만, 차 지식이나 정서 측면에

한 지원은 매우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논문과 련된 정서 어려움을 토로하고 실제

인 논문 쓰기 과정 반에 걸쳐 안내와 지원을 제공할 수 있는 교육이 제공된다면 학원

생들이 겪는 어려움이 완화될 수 있을 것이다. 를 들어, 첫 시간에 쓰기에 한 두려

움을 서로 이야기하고 공감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수업이 끝남과 동시에 학생들이 논문을

투고할 수 있도록 주제 선정, 논문의 구조와 스타일에 한 안내, 실제 쓰기 연습, 학술

지 선택, 학술지 편집자와 일하는 방식 등 논문의 과정을 다루는 과목을 가르쳤던

Becher(2009)의 이야기는 이러한 교육의 방향과 내용에 해 시사 을 수 있을 것이

다.

뿐만 아니라, 학원생들이 학자로서 정체성을 형성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학문 쓰

기의 의미에 해 화하고 논의하며, 그것을 바탕으로 쓰기 과정에 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를 해서는 숙련된 자와 심자 간의 멘토십

(Turner & Edwards, 2006)이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다. 상호신뢰와 서로 간의 차이를

존 하는 민주 계 에서 교수나 선배가 심자인 학원생에게 학문 쓰기의

통과 담론에 한 근을 제공하고, 서로의 을 공유하고 화를 나 는 멘토십은 멘토

와 멘티 둘 다에게 만족감과 자신감을 주고, 학문 쓰기에 한 인식과 경험을 바꾸어

놓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처럼, 지 까지 이야기된 학원생들의 경험이 단지 우리만의 이야기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학원생들의 삶과 경험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그들을 한 지원에 감을

주기를 바란다. 환상 속에서만 학술지 논문이 어떤 것인지를 상상하고 있는 학원생들,

실로 다가온 환상을 마주하여 어 할 바를 모르거나 치열하게 분투하고 있는 학원생

들, 그리고 그들의 경험에 향을 수 있는 사람들과 우리의 이야기를 함께 나눔으로써,

이야기가 더욱 풍부해지고,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계기가 되기를 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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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생의 학문 쓰기 경험에 한 연구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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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일 2012년 12월 31일/ 심사일 2013년 1월 14일/ 최종 심사완료일 2013년 2월 19일]

김혜나(제1 자): 부산 학교 교육학과 박사과정, 공 심분야는 교육과정,

고등교육, e-mail: [email protected]

김 (교신 자): 부산 학교 교육학과 교수, 공 심분야는 교육과정, 교육

과정 철학, 학제 연구, e-mail: [email protected]

이태 : 부산 학교 교육학과 박사과정, 공 심분야는 상담심리, 청소년상담

강이화: 한국 학교육 의회 연구원, 공 심분야는 교육과정, 고등교육, 학제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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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생의 학문 쓰기 경험에 한 연구 57

Abstract

A Narrative Inquiry on Graduate Students’ Academic Writing Experiences

Kim Hye-Na(Pusan National University)

Kim Dae-Hyun(Pusan National University)

Lee Tae-Young(Pusan National University)

Kang E-Wha(Korean Council for University Education)

We tried to understand graduate students’ experiences on academic writing and

their meaning in terms of students’ identity formation as academics. Toward this

end, we based on narrative inquiry to explore what experiences four graduate

students went through in writing and publishing journal articles. Four stories were

constructed by journal writing, conversation and unstructured interviews. We

interpreted the stories regarding what difficulties the students experienced in

academic writing, how they overcame the difficulties and formed their academic

identity based on the experiences. From the results, we suggested implications on

education for academic writing of graduate students.

Key Words: academic writing, graduate students, identity construction, journal

article, narrative inqui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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