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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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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한당들의 사진사’라는 제목은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보르헤스의 단편집 『불한당들의 세계사』에서 왔다. ‘불한당’이라는 말에는 사진기를 든 인간 앞에 버티고 선 불한당 같은 세계와 그 세계 앞에서 어떤 식으로든 정면으로 부딪치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혹은 개인적 자아로서의 우리들의 모습이 동시에 담겨있다. 우리는 사진과 글로 일상을 기록하고, 세상을 탐구하며, 보이지 않는 이면을 밝히려는 사진가들의 모임이다. 는 실명과 경력에 상관없이 오직 사진과 글을 통해 이 지면에서 존재를 드러내려는 이들이 닉네임으로 활동하며 만드는 사진과 사진에 대한 담론이다.

Citation preview

Page 1: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Page 2: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August 2015 창간호

p.6 p.18

CONTENTS 그래, 나는아마추어사진가다

25번째 사진

사진에 관한여러 정의들을다시 생각하다

오독오독

Sedimentation Series

p.36

반납 예정일

두바이사막에서

p.46

대답없는 질문

p.60

셀카의 시대,자기증명의 모순

까마귀는 눈이 없다

p.72

하룻밤(One Night)

까마귀는 눈이 없다

p.88 p.104

백가쟁명사진아카데미

비교기

학교종이 땡땡땡

장마

25번째 사진

Page 3: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편집

서문

당신이 20년 넘게 사진가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사람이라면,

당신은 과연 이론과 실전 능력을 확고히 갖춘 ‘전문가’인지 자문하라.

당신이 20년 넘게 사진을 전문적인 업으로 삼아온 사람이라면,

당신은 과연 ‘사진가’인지 ‘사진사’인지 ‘직업인’인지 ‘비즈니스맨’인지

자문하라.

당신이 20년 넘게 사진을 취미로 찍어온 사람이라면,

당신은 과연 ‘취미생활자’답게 사진을 즐기고 있는지,

‘작가연’하고 싶은 자인지 자문하라.

당신이 10년쯤 사진을 공부하고 배워온 사람이라면,

당신은 예술가의 고통을 각오하고 실천하는

‘작가’가 되고자 하는 것인지

사진의 즐거움을 탐닉하는 ‘사진애호가’인지 자문하라.

당신이 5년 미만의 시간동안 사진을 배워온 사람이라면,

당신이 과연 사진으로 자신과 세상을 다시 배우고 싶은

‘사진지망생’인지

같은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은 ‘동호회원’인지를 자문하라.

당신이 나이와 경력과 직급에 상관없이

이제 막 사진을 시작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과연 사진을 배울 자세가 되어 있는 ‘학생’인지

돈을 내고 기술을 연마하러 온 학원가의 ‘수강생’인지를 자문하라.

사진가, 작가, 취미생활자, 사진애호가, 사진직업인, 사진비즈니스맨,

사진사, 사진기자, 사진을 수단으로 다른 무언가를 하고자 하는 이들....

무엇이 좋고 나쁠 리는 없다.

다만 자신의 정체성을 자문하라.

즐거운 취미생활자면 취미생활자답게 즐겨라.

사진의 의미와 사진의 한계를 모두 알고 그 안에서 앞으로 나아가고자

고민하는 사진가라면 사진가답게 사진을 연구하라.

사진으로 고발을 하려거든 예술로서의 사진을 비난하지 말고

오직 더 부지런히 뛰어라.

사진으로 예술을 하려거든 예술가답게 고통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가라.

사진으로 비즈니스를 하려거든 포장하지 말고 정직하게 하라.

자랑하고 젠체하는 대신 제 역할을 하고

투덜대고 헐뜯는 대신 논리적으로 발언하고

무조건 옹호하고 칭찬하는 대신 날카롭게 비평하고 지적하라.

사진가나 예술가로 불리려거든 작품으로 보여주어라.

욕망하려면 제대로 생각하고 공부하고

가르치려면 자신부터 끊임없이 배워라.

어느 분야나 전문가들, 대가들은 그렇게 만들어진다.

어느 분야나 하수들은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이름만 앞세우고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러다 현재성을 잃은 채 몰락한다.

사진이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

잠시 카메라를 내려놓고, 다시 자문하고 성찰하라.

Photography, Back to the Basic.

나는 사진가였다?

Page 4: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글•사진

오독

오독

사진에 관한

여러 정의들을

다시 생각하다

07

Page 5: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인류 최초의 그림이 약 2만 년 전 알타미

라 동굴 벽화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하지

만 1994년 프랑스 쇼베 동굴에서 매머드와 코뿔

소, 말과 함께 사람의 발자국 등이 남아있는 벽화

가 발견되었고, 이는 무려 약 3만 년 전의 것으로

밝혀졌다. 가장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의

한 동굴에서 약 4만 년 전에 그려진 것으로 추정

되는 벽화가 발견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동물 그

림들과 함께 사람의 손을 그린 그림들도 있었다.

그러니까 인류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은

최소 2만 년 전에서 4만 년 전으로 더 거슬러 올

라갔다. 최초가 언제이든지 간에 수렵생활을 하

던 인류는 대대로 동굴 벽에 그들이 본 동물들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려놓았다. 이걸 두고 후대

의 인류는 예술의 기원에 대해서 ‘유희 기원설’, ‘

노동설’, ‘주술설’ 등을 들곤 하는데, 그중 무엇이

정확한 것인지 우리로서는 단정할 수 없지만, 사

냥하랴 수렵하랴 불가사의의 자연에 경배하랴 먹

고 살기도 바빴을 그들이 그림 따위나 그리고 있

었던 것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술’

을 위한 예술, 감상을 위한 예술 때문이 아니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의 한 대목을

인용해보자.

‘그 시대의 동굴 벽화는 원시인들이 경험에

서 얻은 동물에 관한 모든 지식을 담는 유일한 수

단이었다. 구석기 벽화가 그토록 뛰어난 사실성

을 보여 주는 건 아마도 동물을 쫓는 예리한 ‘사냥

꾼의 눈’으로 관찰한 결과이기 때문이리라. 동물

의 동작과 해부학적 구조에 대한 지식, 가령 급소

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들은 그들의 생존에 필

수적인 지식이었다. (중략) 그 때는 예술이 주술

이고, 주술이 곧 예술이다. 둘 사이엔 아무런 구별

도 없었다. 그리고 이것이 당시로서는 유일한 지

식 체계이자 정보 저장과 전달의 수단이었다. 그

들이 그토록 고달픈 삶 속에서도 예술 활동을 계

속했던 건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들은 알지 못했

다. 그러나 행했다.’

원시인들은 동굴 안에 코뿔소와 매머드, 들

소를 그리며 예술 활동을 했고, 이것은 곧 그들의

삶을 위한 생계의 방편이었고 이것이 곧 주술이

었던 것이다.

문자는 어떤가? 기원전 3500년경, 수메르

인들은 물건의 모양을 본떠서 글자를 남겼다. 우

리가 상형문자라고 부르는 것들이다. 형체가 없

는 추상적인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이들은 쐐기

문자를 고안했다. 이들은 물물교환을 위한 숫자

를 새기거나 부족의 신화와 전설, 영웅담을 진흙

을 구운 점토판 위에 남겨놓았다. 기원전 2천 년

전의 <길가메시 서사시>는 이렇게 해서 지금까

지 우리에게 남아있다. 인류는 문자로 자신의 시

대를 기록했다.

08 09

Page 6: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예술과 기록은 애초부터 하나였다.

그 둘이 분리된 것은 아주 후대의 일이다. 기록은

여전히 현실이고 현재며, 예술은 시대를 뛰어넘고

구상과 추상을 뛰어넘으며, 재현과 모방을 뛰어넘

는다. 기록은 세계라는 객체에 눈을 맞추고, 예술

은 주체의 안으로 더 깊숙이 들어가려고 한다. 하

지만 이것이 다인가? 최초의 기록이자 예술이 자

연, 그러니까 내 밖의 세계와 나를 동화시키려는

작업이었다면, 현대의 예술은 보편적인 세계로부

터 나를 분리시키는 작업이라고도 말할 수 있지

만, 최초의 것과 마찬가지로 후대의 예술과 기록

도 실상 내 안과 내 밖의 경계가 분명하게 구별되

지 않는다.

미술과 음악, 문자로 쓰인 글이 탄생하

고 나서도 아주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야 비로소 탄생한 사진이라는 장르는

어떤가? 그러니까 가장 현대적인 장르

인 사진은 괴이하게도 가장 ‘고대적’인

임무를 부여받았다. 기록이라는 임무.

‘사진은 객관적인 기록인 동시에 개인적인 고

백이 될 수 있으며, 실제 현실의 특정한 순간을 담

은 믿을 만한 복사본이자 필사본인 동시에 그 현

실에 관한 해석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오

랫동안 뛰어난 문학이 그처럼 되기를 갈망했으나,

문학적인 의미에서 결코 성취해내지 못했던 그런

경지이다.’

<타인의 고통>에서 수잔 손택이 말한 것처럼,

사진은 단박에 문학과 그림을 뛰어넘고 기록자의

역할을 맡았다. 오늘날 사진, 특히 다큐멘터리 사

진을 하는 이들이 ‘사진은 기록이다’라는 명제를

전가의 보도처럼 가슴에 끌어안고 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하지만 묻는다. 인류의 흔적에 기록성

을 띄지 않은 것이 있었던가? 유네스코는 세계문

화유산과 더불어 세계기록유산을 발굴하고 보존

한다. 고대의 파피루스와 양피지, 야자 잎과 나무

껍질, 섬유와 돌에서부터 필사본과 도서, 그림과

프린트, 음악과 지도 등 비문자 자료에서 사진과

영상을 포함한 디지털 형태의 모든 데이터에 이르

기까지 그 대상도 방대하다. 이 대상에 속한 그림

과 음악, 영화가 ‘나는 기록이다’라고 목청 높여 선

언하는 것을 보았는가?

10 11

Page 7: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사진의 증명성, 기록성을 간과하자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의아한 것은 왜 사진만이 유독 ‘기록’이라는

애초의 임무에서 한발작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느

냐는 것이다. ‘사진은 기록이다’라는 명제는 마치

‘사람은 포유류다’라는 명제와 다를 바 없지 않은

가? 이 짤막한 명제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거짓

이기 때문이 아니라, 흔히 이 명제에 매달린 이들

이 ‘사진은 예술이다’라는 명제를 대척 지점에 놓

기 때문이다.

자, 다시 묻는다. 사진은 예술인가, 아

닌가?

현대에 이르러서도 사진이 예술 장르에 속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왜 구태여 사진의 미학을 말하

는가(사진 미학 따윈 중요하지 않다고?), 왜 고

단하게 세계적인 사진 거장들을 연구하고(전쟁사

진의 일인자인 제임스 나츠웨이도 연구하지 않

겠다고?), 사진 속에 자신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구사하기 위해 애쓰는가(시대의 기록자임을 선언

한 매그넘 사진가들의 포토저널리즘 사진들은 기

록이기 때문에 독자적인 스타일이나 예술성과는

상관없다고?), 세계의 아트페스티벌은 왜 미술작

품과 더불어 사진을 취급하는가(그건 연출사진의

일이지 다큐멘터리 사진과는 무관하다고?), 사진

이 미술에 속하든 사진이라는 고유의 영역 안에

외따로 서있든 사진에 굳이 ‘감동’이라는 정서적

인 언어를 결부시키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분노

라든가 연민 같은 현실적 정서 때문이지 예술적

정서 때문이 아니라고)?

어떤 사진은 예술이 되고 어떤 사진은 중요한

증빙자료나 기록물이 되며, 또 어떤 사진은 단순

히 개인적인 추억이 된다. 사진이라고 다 같은 기

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완성도를 추구

하는 사진이 예술로서 작동할 수 있기를 갈망하

는 것은 사진이 눈앞의 현상을 그대로 재현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이면을 밝히고 해

석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 해석의 틈새에 사진

가의 주관성과 사진의 예술성이 끼어든다.

‘사진은 기록이다’라는 명제가 ‘사진은 예

술이다’라는 명제를 거부함으로써(혹은 그 반대

의 양상) 우리나라 다큐멘터리 사진가와 파인아

트 사진가가 둘로 갈라졌다. 다큐멘터리 사진가

는 예술이나 미학을 무슨 배부른 사치나 장식으

로 생각하고, 파인아트 사진가는 시대와 사회의

고통이나 절망은 딴 세상의 일인 듯 외면한다. 연

출사진은 사진의 진실을 외면한 사진 아닌 사진

이므로 미술 판으로 가라는 말이 들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 둘은 양립할 수 없는 적대자처럼 서

있다.

12 13

Page 8: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원론적인 질문을 여기서 다시 해야 할 이

유는 없다. 기록은 진실이고, 예술은 가상이며 환영의 것이라 주관적, 감

각적 아름다움만 추구할 뿐 진실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라면 고

대 플라톤 시대의 도덕적 예술관을 가진 자들일 것이다. 시대를 거슬러 올

라가 석고상처럼 서 있는 자들이다.

고대에서 중세,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미술작품과 건축

들은 종교와 관련되어 있다. 어떤 식으로든 종교미술적 성격을 띤 이것들

은 성서나 경전을 눈에 보이는 이미지로 시각화하고 신의 말씀을 해석하

고 숭배하기 위한 것으로 일종의 기록이다. 우리는 이것을 예술과 분리하

여 생각하는가? 오직 오늘의 한국 사진만이 기록성과 예술성을 분리한다.

지금에 와서 어떤 정의가 명제로서 선언되고 주장되기 위해서는 참,

거짓의 문제가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내포해야 한다. 사진은 언제까지 ‘인

간은 포유류다’ 식의 명제를 끌어안고 살 것인가? 일각에서 최근 대두되

고 있는 또 하나의 명제 ‘사진은 힐링이다.’라는 말이 우스운 것도 그 때문

이다. 사회적 유행어인 ‘힐링’을 활용한 이 명제는 사진에 대한 정의가 아

니라 상업성에 기댄 유행어에 불과하다. 사진이 개인에게 마음의 정화 내

지는 카타르시스 역할을 할 수는 있다. 그건 모든 예술이 가진 작용 중 하

나니까. 힐링을 예술적 카타르시스라고 고쳐 읽는다면, 음악은, 문학은, 미

술은 그 역할을 하지 않는가? 사진만이 유독 힐링을 내거는 건 얼마나 우

스운 일인가? 힐링이라니, 사진으로 도대체 무엇을 치유한다는 말인가?

굳이 치유라는 말을 적용하고자 한다면 오히려 사회의 고통, 시대적 아픔

을 돌아보고자 하는 사진들이어야 할 것인데, 힐링 운운하는 사진들이 어

디 그런가? 대개 자연의 멋진 풍광을 인화지에 옮겨놓거나 인간의 그림자

도 들어가지 않는 신선계의 사진들이다. 아름다움이 단순한 조형미와 색

채에 머무는 것이 아닌 것처럼, 복잡다단하게 얽혀있는 인간세상의 구조

와 시스템의 이면을 돌아보고 이해하지 않고서는 진정으로 아픔을 치유

할 길이 없다.

14 15

Page 9: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사진은 왜 시대착오적인 정의에 매달리는가? 이것이 우

리나라 사진계에서만 일어나는 일인지 해외에서도 비슷

한 양상인지는 알 수 없다. 짐작컨대 그만큼 우리 사진계

가 앙상하고 척박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명제에 매달

리면 다큐든 파인아트든 다른 분야에는 무관심해도 자

기합리화가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타 장르의 예술에,

미학에, 사진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따위에 아무 관심과

이해가 없어도 그 안에 안주하며 스스로 한 몫 할 수 있

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기록으로서의 사진만을 생각한다면 사진은 앞으로 CCTV나 블랙박스

영상을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말이 이미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다. 사진

이 기록이라고 외치는 사진가들은 전 세계에서 세상 구석구석을 무의식

적으로 기록하는 무수한 스마트폰 유저들과 어떻게 경쟁할 것인가? 반면

에 개인의 감각과 감성에만 몰두하고 시대정신에 무관한 예술가들이 후

대에 어떻게 평가받는지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아도 좋으리라. 지금 대

한민국에서 사진이 경시되는 이유는 사진에 대한 현대적 정의, 즉 사진

가들이 다함께 공유하고 일반 대중이 공감하며 세계와 나란히 (앞서가는

건 관두고라도) 할 수 있는 새로운 사진적 가치를 발견하는 정의가 결여

된 채 편파적이고 고전적인 정의에 붙들여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공부하지

않는 사진가들이 만들어놓은 불우한 현실이다.

16 17

Page 10: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글•사진

25번

째 사

@ 2008 미디어 속에 가려져 나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그래, 나는아마추어 사진가다

19

Page 11: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평범했다. 동시대 사회현상을 기

록한다거나 어떤 예술적인 표현을 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단순

히 내 홈페이지에 들어가는 이미지를 내가 직접 촬영한 사진으로

사용하고 싶어서였다. 당시에는 지금 같은 SNS가 없었다. 포털

사이트에서 제공해주는 무료 홈페이지에 자신의 신변잡기나 남

들과 공유하고 싶은 정보 등을 업 로드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때

나도 유행에 맞춰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었다. 포털사이트에서 제

공해주는 개인용 홈페이지의 디자인은 획일적이고 단순한 레이

아웃만 제공했기에 나만의 개성 있는 홈페이지를 위해 내가 직접

디자인을 해야 했다. 기왕 만드는 김에 홈페이지에 들어갈 이미

지도 내가 찍은 사진으로 사용하고 싶다는 생각, 그것이 내가 사

진을 시작하게 된 동기였다. 쥐꼬리만 한 한 달 월급으로, 그것도

매번 월급을 아내에게 갖다 바쳐야 하는 남자가 카메라를 산다는

것이 어불성설이었지만, 그래도 나는 샀다. 6개월 할부로 소니에

서 나온 500만 화소 최신형 디지털 카메라를 샀다. 지금이야 500

만 화소가 우습지만 그땐 디지털 카메라가 막 나오기 시작한 때

였고, 당연히 500만 화소의 디지털 카메라 가격은 내 월급보다

높았다. 하필 그 카메라를 고른 이유는, 밝히기도 쑥스럽지만 다

른 카메라에 대한 정보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것도 디자인만 보

고 골랐다. ‘뽐뿌’가 와서 산 것이니 그럴 수밖에.

카메라를 사고 2~3개월 동안 출퇴근하면서 주변의 모습을

찍었다. 홈페이지에 들어갈 이미지 소스를 선별하고 나머지 사진

은 갤러리 게시판을 만들어 올렸다. 내 홈페이지가 그럴 듯하게

완성되면서 내 사진들은 지인들에게 공개되었다.

그래, 나는아마추어 사진가다

20 21

Page 12: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사람들은 온갖 감언이설로 내 사진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혹시

사진 전공하셨어요?”와 같은 질문이나 “미적 감각이 뛰어나군

요.”와 같은 칭찬이 올라왔다. 처음엔 쑥스러웠으나 차츰 그들의

칭찬에 중독되어 갔다. 칭찬과 갈채는 더 많은 칭찬과 갈채에 대

한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법이다. 나는 시시때때로 카메라를 바

꿔가며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SLR클럽 같은 유명 사진 커뮤니

티 사이트에서 인기 있는 사진들을 흉내 내며 나름 사진을 배워

갔다. 사실, 대중의 입맛에 맞는 사진이 무엇인지 알아갔다고 하

는 것이 정확하다. 그로부터 3년이 지난 어느 날, 한 사진가의 책

을 통해 내가 여태까지 찍은 사진이 모두 쓰레기임을 알았다. ‘쓰

레기’라는 표현이 다소 거칠어 보일지 모르지만 당시 나의 충격

은 그만큼 컸다.

직장을 다니면서 틈날 때마다, 그것도 거의 출퇴근길 지하철에

서,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나름 열심히 사진을 찍고 또 찍었다. 3

년 동안 그랬다. 3년이라는 시간은 꼭 짧은 시간만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동안 해 왔던 것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허탈했다. 아내 눈치를 보면서도 사진을 찍는다는 것이 즐

거워서, 사진과 무관한 직장인인데 ‘사진 좀 찍는다.’는 소리를 듣

는 것이 우쭐해서, 때때로 아내에게 자랑처럼 보여주었던 사진과

말들이 한순간 부끄러워졌다.

세상의 모든 아내들이 가장 싫어하는 남편 취미를 뽑자면 낚시와

함께 사진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것이다. 사진으로 돈을 버는 것

도 아니고 이름을 날리는 것도 아닌데 사진 찍는다고 집밖을 싸

돌아다니느라 가족과 함께 할 시간을 ‘낭비하는’ 남편을 어느 아

내가 좋아할까? 그것도 아내 몰래 빼돌린 비자금으로 산 비싼 카

메라를 들고! 당시 막 태어난 아이와 아내에게는 미안했지만, 나

는 그때 한참 사진에 빠져있었다.

내가 본격적으로

사진에 몰두하게 된 지점은

바로 여기서 부터다.

22 23

Page 13: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 2011

시간이 사라져 버린 세월의 파편들.

@ 2008

우리가 지켜야 하는 것은 국가인가? 국민인가?

24 25

Page 14: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나의 마음 깊숙한 곳에 ‘창작’에 대한 욕망이 숨어있었던 것일

까? 어느 날 사소한 이유로 손에 들게 된 카메라를 통해 내 안에

숨어있던 그 어떤 표현욕구가 뜨겁게 분출되었던 것일까? 돌아

보면 나는 평범한 샐러리맨이라는 타이틀을 ‘사진가’라는 타이틀

로 바꾸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도 여전히 나는 ‘사진

을 좀 찍는 직장인’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그간 이러저러한 단체

전과 몇 권의 출판 프로젝트에 이름을 올리기도 했지만, 그것들

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내 인생을 바꿔놓지 못했고, 다른 이에

게 큰 울림을 주지도 못했으며, 세상의 어느 것도 흔들어보지 못

했다. 사진에 대한 나의 절심함은 ‘사진가’로 살아가는 이들이 가

진 의지보다 약했던 거다. 게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가정과 직장

을 핑계로 점점 더 나태해 지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한계가 온 것

이다. 하지만 카메라를 놓고 싶지는 않았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

다. 나 자신을, 나에게 사진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돌아봐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그간 사진에 대해 가졌던 생각과 인터넷과 책을 뒤지며 혼자 공

부했던 것들, 그리고 내가 찍은 사진들을 모두 무시했고, 버렸다.

깨끗한 백지상태로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6개월 동안

사진수업을 들었다. 그 6개월 동안은 오즈의 마법사의 도로시가

된 듯 사진이라는 신비한 세상을 모험하고 즐긴 시간이었다. ‘욕

망이라 불리는 전차’가 된 듯 열정적으로 사진을 찍었다. 늘 한

정된 시간에 허덕이는 직장인이며, 한 가정의 가장이라는 타이

틀 때문에 이런저런 제한이 많았지만, 그래서인지 사진은 더 절

실하게 다가왔다.

충격이 가신 후,

나는 사진에 더욱 몰두했다.

26 27

Page 15: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 2008

언제나 막차를 타는 기분이다. 놓치면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인가?

@ 2007

세월을 겪게 되면, 신념보다 먹고 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 세월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속해 있기 싫기 때문은 아닌지?

28 29

Page 16: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직장인으로서 아마추어 사진가인 나에게 ‘격정적으로’의 또 다른

의미는 ‘성실하게’이다. 사진으로 시대를 기록하고 세계를 기록

하며 작가 개인의 주관으로 사진을 예술의 단계까지 끌어올리는

사진가들처럼 나는 그렇게 할 수는 없을 지도 모른다. 나로서는

사진에 대한 관심과 열정을 오직 성실함에서 찾을 수밖에는 없

는 것이다. 로버트 프랭크나 마틴파 같이 사진으로 세상을 흔들

어볼 수 없고, 유진 리차드처럼 세상 곳곳의 사람들과 함께할 수

없으며, 아라키 노부요시나 모리야마 다이도처럼 자신의 의식을

앵글 속에 담아 격정적으로 이야기하지 못한다. 그러나 ‘그럴 지

라도’ 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에 매번 새로운 동기부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사진은 매우 사적인 것이다. 대중의 입맛을 고려한 패밀리

레스토랑의 스테이크가 아니다. 어떤 특수한 재료를 개발해 대단

히 맛있는 요리를 만들어낼 수 없고, 또 그렇게 하고 싶지도 않다.

자신의 하루를 온전히 그 분야에 걸고, 또 스스로의 인생을 걸고

살아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들이 ‘격정적’일 수 있는 이유는 단

순히 세상의 시선과 대중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스

스로에게 몰입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격정적인 마음가짐이 자

신의 작업에 강박에 가까울 애정이 되고, 그것이 스스로를 만족

시킬 수 있는 작품이 세상에 나오게 되는 동력이 될 것이다.

‘예술가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30 31

Page 17: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32 33

@ 2011

어쩌면 가려진 시간을 발견하는 것이 사진가의 몫이 아닌가 싶다.

Page 18: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지극히 개인적인 시각으로, 나에게 사

진이 주는 의미를 찾고자 할 것이다. ‘취

미’라면 어떻고 ‘아마추어’라면 어떤가?

‘그녀가 아니면 안돼서’가 아니라 ‘그녀

가 곁에 있고 그런 그녀가 좋아서’ 평생

을 지속하는 결혼생활처럼, 사진을 좋

아해서 평생 카메라를 놓지 않고 살아

간다 해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나는 여전히 사진을 좋아하고,

여전히 사진을 찍는다. 그리고

다시 시작한다.

그래, 나는 아마추어 사진가다.

아마추어가 어때서!

그래, 나는아마추어 사진가다

34 35

Page 19: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글•사진

반납

예정

37바다가 아닌 육지를 보고 있는 여자, @ 2015

시간은침강하고퇴적한다.우리가사진속에서볼수있는것은그맨꼭대기층에드러난극히일부에불과하다.

SedimentationSeries는우리가인지하지못하고지나쳐온것들에대해,시간이지나면서조금씩다시드러나는것들에대한기록이다.

Sedimentation Series

Page 20: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기다리는 남자, @ 2014 바다를 보는 사람들을 등지고, 단체 사진을 찍는 사람들, @ 2015

38 39

Page 21: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딸 셋의 해수욕하는 모습을 보는 아빠, @ 2010

40 41

Page 22: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낚시하는 부부와 등대 그리고, 바위, @ 2009

42 43

Page 23: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45모기장 안의 세 여자, @ 2009

Page 24: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글•사진

대답

없는

질문

두바이 사막에서출장보고서 ②

47

Page 25: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한동안 어른들의 해외 배낭여행이 TV 프로그램으로

방영되면서 인기를 끈 적이 있다. 70대 할배들과 4~60대

의 나이에 접어든 여배우들, 40대 가수들의 여행. 각기 다

른 시절을 살아왔던 분들이 오랜 동료들과 함께 인생의 마

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여행을 떠나 자신을 드러내고 서로

를 더 깊이 알아가는 모습은 언제든 또 할 수 있는 여행을

보는 것과는 다른 울림이 있었다(실제 ‘꽃보다 누나’ 편에

출연했던 탤런트 김자옥 씨는 이후 오래지 않아 60대 초반

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그때의 여행은 어떤 의미

였을까?) 산전수전, 소위 공중전까지 다 겪어본 이들이 배

낭을 짊어지고 한번도 해본 적 없는 그런 여행길에 올랐던

것이다.

생에 최초이자 다시는 하지 못할 마지막 경험이 될 수

있는 여행이 있다. 언젠가 다시 또 오리라 생각하기도 하지

만, 평생 다시 찾지 못하는 그런 곳도 있다. 그런 여행은 어

떤 장소가 아니라 어떤 시간 속의 여행이기 때문이다.

내가 두바이에 도착한 것은 새벽 4시가 채 안되었을 때

였다. 새벽이었지만 기온은 여전히 36도를 넘어서고 있었

다. 습하디 습한 공기가 온 몸에 내려앉았다. 개인적인 여

행이 아니라 업무차 출장을 온 것이었지만, 솔직히 일은 둘

째요, 새로이 방문한 이 도시에는 어떤 즐거운 일이 있을까

내심 궁금해졌다.

48 49

Page 26: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꽃보다 할배’ 편의 두바이 사막투어 장면이 남다르게

다가온 것은 나의 경험과 시간 역시 그곳 사막의 모래 속에

고스란히 묻혀있기 때문일 것이다. 며칠 되지 않은 두바이

출장 기간 중 운 좋게도 사막 투어에 합류할 시간을 낼 수

있었다. 3대가 함께 여행을 온 유럽인 가족들과 휴가를 즐

기려는 젊은 커플이 나와 함께 SUV 차량에 올랐다. 차는

곧 도심을 벗어났고 주변은 이내 사막의 황무지로 변했다.

SUV를 타고 하는 사막 투어는 나도 처음이었다. 사막의 모

래는 아기 살결만큼이나 부드럽고 따뜻했지만, 사막 투어

는 롤러코스트보다도 짜릿했다.

50 51

Page 27: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52 53

하이라이트는 사막 한가운데 캠프에서의 만찬이었다. ‘뇌쇄적’이라는 단어의 뜻을 단번에 느낄 수 있게 한 아랍 여인의 춤이 곁들여졌다. 한 상

가득 차려진 양고기는 우리 모두의 입맛에 맞았다. 낯선 여행자들은 하나가 되어 사막의 밤을 만끽했다. 음악과 춤과 맛있는 음식과 사막의 별빛, 이

것으로 충분했다. 아니, 넘쳤다. 만찬은 한바탕 대동놀이가 되어 끝났다.

사실 출장이란 열에 아홉은 사무실과 공항을 왔다 갔다 하는 지극히 무미한 일들의 연속이다. 빠듯한 일정, 부여된 업무들, 격식을 차린 만남….

그러나 가끔은 두바이 사막 투어와 같은 시간들로 인해 그나마 숨통이 트여지는 것이다. 언제 다시 이곳에 와서

저 아랍 여인의 춤을 볼 수 있을까? 일부러 여행을 온다면 나는 다시 이곳을 선택하게 될까?

모르겠다. 앞으로 어떤 장소가 또 다른 즐거움을 주고 옛 기억을 떠오르게 할 지.

오늘도 새벽 비행기를 타고 또 다시 먼 나라로 출장을 떠난다.

Page 28: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54 55

Page 29: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56 57

Page 30: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58 59

Page 31: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61셀

카의

시대

,

자기

증명

의 모

순(s

elf-

cam

era)

옥스퍼드 대학 출판사는 2013년을 대표하는 단어로 ‘selfie’를 선정했다.

셀피, 우리나라 식으로는 ‘셀카(self-camera)’. 이어 타임지는 2014년 최

고의 발명품 중 하나로 ‘셀카봉‘을 선정했다.

우리는 왜 너도나도 셀카를 찍고 인증샷을 찍어대는 것일까? 서울대 소

비자학과의 김난도 교수는 2015년의 트렌드 중 하나로 ‘증거 증독’과 ‘

일상의 자랑질’를 꼽은 바 있다. 증거를 보여주지 않으면 아무 것도 믿지

않는 의심의 시대, 이제는 눈으로 보여주고 증명할 수 있는 것만이 각광

받는 시대가 되었다는 것이다. 또한 SNS의 리트윗과 ‘좋아요’가 자기 존

재의 근거가 되는 타인지향적 나르시시즘의 세상에서 자랑은 일상이 되

고 일상은 자랑이 되었다고 분석했다.

‘SNS 친구들과의 관계는 자신을 더 멋지게 만들어 보이고 싶은 욕망을

부추긴다. 자신의 인간관계를 꿰뚫고 있는 소수의 지인들에게는 통하지

않지만, 낯선 타인들에게는 보다 완벽한, 혹은 자신이 원하던 이상적인

모습을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남에 의해 취하는 타아도취의 세상에서

셀피족들은 더 이상 아름다운 대상에 매료되지 않는다. 그 대상에 매료

된 타인의 반응에 매료된다.’ ( 김난도, <트렌드코리아 2015> 중에서 )

글•사진

까마

귀는

눈이

없다

self-camera

Page 32: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self-camera

개인이 스스로 자신의 사진을 찍고 올리는 행위

의 내면에는 ‘자기증명’의 욕망이 있다. 그런데 ‘자기

증명’이라는 말과 셀카 문화 사이에는 이상한 거리감

이 있다. 증명은 틀림없어야 한다. 사실과 불일치되

는 것은 증명이 될 수 없다. 그런데 현실 그대로의 자

신이 아니라 욕망하는 자신을 증명하는 것이라면, 이

시대의 자기증명이란 그 말 자체로 모순이 아닌가?

사진이 발명되기 전, 초상화로 자신의 모습을 남

기고자 했던 귀족들과 왕들도 자신의 모습이 보다 이

상적으로 표현되기를 원했다. 조선시대에 어진을 그

릴 때에는 털 한 올이라도 본래의 모습과 차이가 나

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극도의 사실주의를 추구했다

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적인 임금상을 그려내

기 위해 화가는 보이지 않는 공력을 들였을 것이다.

16세기 독일의 초상화가로 토머스 모어의 초상

화를 그렸던 한스 홀바인은 헨리 8세의 궁정화가가

되었다. 네 번째 신붓감으로 덴마크 왕녀와 독일 클

레베스 공작의 딸 중 양자택일을 고심하고 있던 헨

리 8세는 홀바인에게 두 사람의 초상화를 그려오라

고 명령했고, 홀바인의 그림을 보고 더 아름다운 앤

과 결혼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정작 결혼식에 나타

난 앤의 실제 모습은 초상화처럼 아름답지 않았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

결혼은 했으나 헨리 8세는 그녀와 단 한 번도 동침하지 않았고 6개월 후

마침내 이혼을 해버렸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사진의 거장 히로시 스기모토는 이 에피소드로 작품을 만들었다. 스

기모토의 ‘초상’연작은 헨리 8세와 그의 여섯 부인의 초상 사진이다. 19

세기 런던 마담투소 박물관은 한스 홀바인이 그린 7점의 초상화를 밀랍

인형으로 제작했고, 스기모토는 이것을 다시 사진으로 촬영했다. 즉 스

기모토의 ‘초상’ 연작에는 16세기 홀바인의 초상화와 19세기의 밀랍인

형, 그리고 1999년에 찍은 스기모토의 사진이 중첩되어 있다. 재현의 복

재와 복재의 복재, 그걸 통해 스기모토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인

물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초상조차도 사실은 오롯한 ‘재현’이 아니라

는 것. 그렇다면 기록된 사진과 역사는 과연 진실인가라는 질문.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포토샵은 증명사진의 증거 능력을 바꾸어

놓았다. 이제 이력서의 증명사진만 보고서는 그 사람을 구별해내기도 힘

들 지경이다. 셀카족들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의 수많은 어플들은 얼굴을

좀 더 ‘뽀샤시’하게, 좀 더 분위기 있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미화한다. 미

화된 증명사진, 이상화된 셀카 사진은 결국 자기증명이 아니라 자기욕망

증명의 증거 자료다. ‘내가 이곳에 있다’가 아니라 ‘사실은 내가 이처럼

이상화된 곳에 있지 않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되기를 욕망한다.’는 현장

부재증명. 그래서 이 시대의 셀카 사진은 완벽한 ‘알리바이’다.

62 63

Page 33: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우리는 이제 아무에게도 자신의 카메라를 맡기지 않는다.

셀카봉만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 2015

64 65

Page 34: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self-camera

self-camera 어떤 이들은 알리바이를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다. 오죽하

면 러시아에서는 무모한 셀카를 경계하기 위해 안전 캠페인까

지 벌인다지 않는가? 머리에 방아쇠를 당기고, 감전 위험이 있

는 철교 위에 기어오르고, 까마득한 벼랑 끝에 한 손으로 매달

린다. 그러다 다치거나 심지어 죽는다. 그 위험천만의 행위가

오직 셀카를 위해 시도된다. 이 무모한 도전이 자기 자신에게

스스로의 존재감을 증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들에게 자기

욕망을 증명하기 위해 이루어진다. 자기정체성조차도 남들에

게 선택되고 공유 받아야 하는 상품이 되어버린 시대. 우리는

그래서 남들이 찍어주는 나를 믿지 못한다. 셀카봉을 들기 위해

긴팔원숭이처럼 팔을 길게 치켜든다. 내가 원하는 각도로, 내

가 원하는 분위기로, 내가 원하는 대로 내 모습이 나올 때까지

찍어야만 흡족한 상품으로서의 나를 만들 수 있으니까.

최근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의하면, 2016년 미국의 대통

령선거는 ‘셀피 선거(Selfie Election)’란다. 대통령선거에 나선

후보들이 유권자들과 셀카를 찍느라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다

는 거다. 후보들이 일반 유권자들과 친근하다는 것을 홍보하기

위해서라면, 유권자들은 왜 앞다투어 후보들과 셀카를 찍는 걸

까? 내가 이런 이들과 같은 자리에 있었다는 걸 알리기 위한 수

단. 언젠가 법조계 인사와 젊은 CEO 출신들의 모임에 참석할

기회가 있었는데, 이들은 자신이 유명인사 누구누구를 알고 있

다는 것을 이야기하느라 모임의 대부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내가 무엇을 하고 무슨 생각을 한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내가 누구

를 알고 있다는 것이 자신을 드러내는 데 매우 중요한 모양이었다. 유명

인사와 찍는 셀카는 그렇게 그들이 불특정다수 앞에 놓인 하나의 상품

이자 욕망의 주체라는 것을 드러낸다.

남발되는 셀카는 자신 이외의 모든 것을 방치한다. 정치인이나 일반

인이나 할 것 없이 재해 현장에서 셀카를 찍어대거나 의료진이 수술 도

중 셀카를 찍어 SNS에 올림으로써 곤혹을 치르는 일이 끊이지 않는 것

도 그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장소나 상황, 타인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오

직 카메라에 비친 자신만이 주인공이다. 그들이 굳이 재해현장을 찾아가

셀카를 찍어대는 것은 내가 사회적, 역사적으로 이슈가 되는 곳에 와있

다는 것을, 그래서 스스로가 사회적, 역사적 사건의 참여자가 되었다는

것을 확인받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라도 해야 이 사회에서 ‘리트

윗’되는 존재가 되는 줄 아는 바보들. 이때 사진을 찍는 행위는 내 밖의

모든 대상을 나를 돋보이게 하는 부가적인 풍경으로 만드는 전횡의 행위

요, 배척의 행위다. 타인의 관람을 방해하든 말든 작품을 훼손하든 말든

박물관에서 셀카봉을 높이 치켜드는 것도 그런 까닭이다. 그들은 대상을

음미하거나 이해하지 않고 대상과 분리된 자신을 찍는다.

사진 속에 자신의 내면이, 본질이, 진실이 드러난다는 것은 이제

시대착오적인 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래도 사진을 믿는다고? 사진

으로 존재감을 확인받고 싶은 자신의 간절한 욕망을 믿는 거겠지. 무턱

대고.

66 67

Page 35: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어린 아이들은 셀카를 찍지 않는다. 사진으로 자신을 증명하는 것보다 세상에서 발견할 것이 더 많기 때문이다.

시간을 멈추어 놓아야 할 이유가, 욕망을 포장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 2015

68 69

Page 36: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71

우리들은 왜 그토록 사진을 찍어대는 걸까?

무엇을 증명하고 싶어서?

무엇을 소유하고 싶어서?

@ 2015

Page 37: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글•사진

까마

귀는

눈이

없다

73 @ 2015

Page 38: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74 75One Night

@ 2015 @ 2015

사막에서,

해안에서,

절집 아래서,

도시에서,

유원지에서,

쇠락한 온천지구에서,

섬에서,

어디서든 나는 쉽게 잠들었다.

어디서든 나는 쉽게 잠들지 못했다.

Page 39: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One Night76 77

@ 2014

Page 40: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One Night78 79

@ 2014

Page 41: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One Night80 81

@ 2013

모텔,

호텔,

민박,

콘도미니엄,

펜션,

식당 옆 옹색한 방,

한옥마을,

산장,

아, 여인숙만 빼고.

내 몸이 하룻밤 누웠던 물컹물컹한 방들,

내 몸을 하룻밤 덮어주었던 말랑말랑한 벽들.

Page 42: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One Night82 83

@ 2014

꽃무늬 벽지,

주홍색 커튼,

에펠탑이나 샌프란시스코 골든게이트브릿지의 촌스런 그림,

LG 벽걸이 TV나 때로는 오래된 금성 TV,

냉장고 속 생수와 비타민음료나 매실음료,

금방 닳아버리는 칫솔,

어젯밤은 누가 머물고 갔을까?

<화양연화>의 차우가 기억하는 <2046>과는 달리,

기억할 수 없는 방 호수.

그리하여 그 하룻밤은 언제나 기억 속에 둥둥 떠내려가네.

다시 아침이 밝아오고.

Page 43: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One Night84 85

@ 2013 @ 2012

Page 44: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One Night86 87

@ 2012

Page 45: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글학

교종

이 땡

땡땡

지극히 사적이고,지극히 무모한

백가쟁명사진아카데미비교기

89

Page 46: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흔히 우리나라 사진 인구가 천만 명을 넘었다고 한다. 여기

서 사진 인구라 함은 4명 중 적어도 1명은 카메라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질좋은 ‘똑딱이’든 폼나는 ‘dslr’이든 사진기 한대쯤은 필

수품이 되었다. 그렇다 해도 카메라 가격이 그리 만만한 것은 아

니어서, ‘영혼까지 끌어 모아’ 마련한 돈으로 구입한 카메라를 장

롱 속에 묵혀 둔다면 안타까운 노릇이다. 기왕 카메라를 샀으면

무를 자르지는 못할지언정 시간은 베어야할 것이 아닌가. 그래

서인지 사진을 배우려고 마음 먹은 사람들이 많고, 또 사진을 가

르치는 강좌들도 쉽게 눈에 띄는 걸 보면, 사진이란 일반인들 사

이에서 어느 분야보다 더 인기있는 장르가 되었음이 틀림없다.

어느 분야든 그렇지만 좋은 강의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은 새

로운 깨우침을 얻는 일이다. 독학의 길은 고단하다. 자칫하면 저

혼자 엉뚱한 길에 빠져 헤어나오기 힘든 우를 범할 수도 있다. 타

고난 독학 천재가 아니고서야 눈이 뜨이고 귀가 번쩍 트이게 해

줄 선생님을 찾아 한 수 가르침을 받을 수만 있다면 그 얼마나 좋

은 일일까?

대한민국의 흔한 인터넷 동호회와 카페들 중 하나가 사진과

관련이 있다. 수년간 카메라를 들고 인터넷 사진동호회와 카페를

전전하다가 “내 사진은 왜 여전히 늘지 않을까?”를 고민하고, 세

계적인 사진가들의 사진이 지금까지 보고 들은 것과 ‘뭔가 달라

도 다른’ 것을 새삼 발견해낸 아마추어들은 고민에 빠지곤 한다.

하여, 지금 우리나라에서 아마추어들을 위한 사진강좌는 어떤 것

들이 있는지를 비교하는 친절을 베풀어 보기로 했다. 다만 미리

말해두건데, 여기서 언급하는 강좌들을 필자가 모두 들어보거나

최소한 강사를 모두 만나서 인터뷰를 하면서 이 글을 작성했을

거라는 믿음을 조금이라도 가지고 계시다면, 그러한 믿음은 증세

없는 복지쯤으로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본 글의 자료는 모든 것을 다 찾아준다기 보다는 자기 입맛에 맞

는 것만 제공해 주시는, 즉 편협한 지식이 넘치는 인터넷 바다의

도움을 빌었음을 밝혀둔다. 다시 말해 강의 소개와 커리큘럼만 보

고 작성한 것이다. 여기에 평소 사진계 안팎에서 보고 듣고 경험

하고 주워들은 나의 사견을 덧붙였다. 어떤 강좌를 추천하거나 또

어떤 강좌를 폄하하기 위해 작성한 것이 아님을 밝혀둔다. 그래서

지극히 사적이고 무모하다는 변명을 부제로 달아둔 것이니, 이 글

을 읽고 사진강좌를 선택해 들으려는 아마추어 분들이 있다면 선

택은 역시나 본인의 안목과 취향의 몫이다.

서론.

90 91

Page 47: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한미사진아카데미는 주야반을 통틀어 스텝1에서 4까지 수

준별 강의를 명료하게 분할했다. 사진의 기본원리와 테크닉에서

사진테크닉 숙달과 작품 리뷰, 그리고 한발 더 나아가 창의적 아

이디어에 의거한 작품 제작과 작품 리뷰와 전시를 연속으로 수강

할 수 있다. 거기에 마지막 스텝으로 사진 비평가와 작가들의 연

속특강을 듣는다면, 나를 위한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전시까지 쭉

이어달릴 수 있는 것이다. 이 과정이 각각 16주씩이니, 한 스텝에

4달씩, 그러니까 사진의 기본원리와 테크닉을 전혀 모르는 문외

한들도 딱 4개월 첫번째 스텝을 듣는다면 사진테크닉에 숙달될

수 있다는 뜻이다. 4개월을 더 투자하면 창의적 아이디어에 의해

작품 제작이 가능하고 리뷰 후 전시를 할 수 있다. ‘전 과정을 총

4개의 과정으로 나누어 맞춤지도’한다는 홍보문구가 과연 거짓

이 아니구나 싶다. 게다가 특전으로 전시할 때 액자와 프린트를

특정한 곳에서 20% 할인받을 수 있다니, 그 얼마나 좋은가! 문제

는 이 과정의 커리큘럼들이 모호하다는데 있다. 강사가 누구인지

만 제시되어 있을 뿐, 이것을 커리큘럼이라고 불러도 좋을까 싶

을 정도. 그러니 강사의 지명도에 기대어 그들이 사진의 기본원

리도 모르는 나를 창의적 단계와 전시 단계까지 끌어올려줄 내공

을 발휘해주기만을 내심 기대하고 수강신청을 할 수밖에 없겠다.

카메라를 처음 다루는 기초반부터 최봉림 비평가와 함께 포

트폴리오와 전시까지 할 수 있는 마스터반까지 다양하다. 선택

이 폭이 넓다. 사진을 시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주간반과 야간반

까지 있어 더욱 선택의 폭이 넓어 보인다. “어느 것을 좋아할지

몰라 모두 준비했어.”라고 말하는 듯 하다. 아시다시피 한미사진

아카데미는 2004년 국내 최초 사진전문 미술관으로 개관한 한미

사진미술관에서 하는 사진강좌이고, 한미사진미술관은 (홈페이

지를 그대로 인용하자면) ‘우수 의약품 개발을 통해 국민건강에

이바지해 온 ㈜한미약품이 문화예술의 대중화와 적극적인 활동

의 지원 및 활성화를 위해 창립한 공익문화예술재단’이 운영하는

미술관이다. 평소 보기 힘든 해외 사진가들이나 국내 유명 사진

가들의 사진전을 볼 수 있고 전시 오픈에 맞춰 멀리 해외에서 날

아오신 사진가들과의 대화시간을 마련하는 등 의미있는 프로그

램들이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송파구 올림픽공원 바로 맞은편

19~20층에 위치한 덕분에 작품 감상과 올림픽공원 감상을 동시

에 할 수도 있는 남다른 혜택도 있다.

본론.1 한미 사진아카데미

(http://www.photomuseum.or.kr/)

92 93

Page 48: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임종진은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 사진가다. 최근 캄보디아 사진집

을 출간했는데, 스스로를 사진가가 아니라 ‘사연 전달자’라고 불

러달라고 한다. 사진을 찍는 행위나 사진의 기술과 결과물보다

소통과 교감을 중점으로 두어 보다 근본적이고 내면적인 것에 집

중하고 싶다는 표현인 것 같다. 때문에 사진의 테크닉을 빨리 숙

달하고 싶은 성격 급한 사람은 이 수업을 듣다가 중간에 그만둘

지도 모르겠다. ‘달팽이’처럼 천천히 가고 싶고, 또 갈 수 있는 자

들이 이 골방을 찾게 될 것이고, 사진가 자체도 그걸 원하는 것인

듯 싶다. 수강생 모집의 과정별 소개도 그래서 ‘무엇을’ 배울 수

있다는 것보다는 ‘어떻게’ 배워갈 것인가에 대한 의미 부여로 이

루어져 있다. 추상적이긴 해도 의미와 과정을 중요시 하는 이들

의 마음에 공감을 줄 수는 있겠다. 기자 출신답게 세상과 소통하

는 글쓰기 강좌가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그런데 한가지 드는 의

문. 사연 전달자라고? 라디오에서 청취자들의 사연 읽어주는DJ

처럼 말인가? 아니면 한 사람의 특정부분을 확대해서 눈물샘을

자극하거나 공감을 유도하는 ‘인간극장’처럼 말인가?

우리나라에서 ‘사진’하면 중앙대학교 아닌가. 사진의 핵심권

력 집단. 그래서인지 대학 강의명처럼 매우 간단 명료한 수업명만

으로 사람들을 유도하는 진격의 카리스마를 발휘한다. 창작사진,

사진세미나, 인상사진, 전시기획반 등등으로 명명된 수업들은 역

시 강사가 누구인지만을 밝힐 뿐, 강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어

떤 내용인지를 좀처럼 짐작하기 어렵다(레시피를 밝히지 않는 레

스토랑처럼 사진수업도 업계의 비밀이라서 그런지 수업 내용을

명확하게 밝혀둔 곳은 찾기 힘들다). 교수님들의 평소 지론과 주

장을 일일이 찾아보는 수밖에 없다. 아니면 평소에 교수님들을 잘

아는 사람들이 듣거나. 학교의 명성 덕분에 왠지 믿음이 갈 수도

있지만, ‘주목할 만한 사진 만들기’ 강좌에 이르면 생각 많은 이들

은 도대체 ‘주목할 만한 사진’이란 무엇인가 다시 혼자 생각에 잠

기게 될 것이다. ‘주목할 만한 사진’의 ‘주목하는’ 주최는 예술가들

인가 평론가들인가, 아니면 일반 대중들인가? 그것도 아니면 모

두인가? ‘주목할 만하’다는 것은 시각적 임팩트가 있다는 말인가,

창의적 주제가 있다는 말인가, 시대적 기록 측면을 말하는 것인

가? 그것도 아니면 어쨌든 인기 있는 사진을 찍는 법에 대해 일일

이 가르침을 준다는 것인가? 그것이 무엇이 됐든 한 학기 몇 시간

만에 ‘주목할 만한 사진 만들기’가 가능해진다면야!

2 중앙대학교 사진 아카데미(http://www.caupa.kr/)

3 임종진의 달팽이 사진골방 (http://cafe.naver.com/baramsoreecafe)

94 95

Page 49: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요즘 젊은 아마추어들에게 ‘핫’한 강좌다. 강좌가 다양하고

그 강좌 제목은 하나같이 상큼 발랄하다. 단과학원이나 인터넷

강의들 제목처럼 시선을 끈다. 강사들이 유명세가 있고 홍대 앞

이라는 지리적인 장점과 혜택이 많아 최근 인기 있는 강좌임에는

틀림없다. 무엇보다 KT&G 상상마당 사진지원 프로그램의 사진

공모전이 있어 젊은 사진가를 발굴해주니, 강좌를 듣고 공모전에

당선되고 싶은 열망의 아마추어 사진가들에겐 이보다 더 매혹적

일 수 없다. 이곳에서 지원을 받은 사진가들의 최근 활동이 왕성

하다. 이들을 모델 삼아 현대사진의 흐름에 맞는 사진을 배우고

찍는 방법은 그 다양한 강좌들을 직접 들어보기 전에는 역시 ‘상

상’에 맡길 수 밖에.

‘힐링포토’라는 독특한 타이틀로 사진을 가르치는 강좌가 최근 생겨났

다. 21세기 사진의 또 다른 가능성이라니! 홍보 문구가 장대하다. ‘포토아트

테라피’는 그 얼마나 세련되고 근사한 말인가? 그런데 사진예술도 아니고 ‘

포토아트’로 테라피를 할 수 있다니, 강남의 고급 스파나 마사지샵처럼 뜨

뜻하고 나른한 분위기가 연상되는 건 왜일까? 어쨌든 이 아카데미는 상상마

당과는 또 다른 유행과 트렌드를 만들고 싶은 것임에 틀림없다. 다만 인터

넷에서는 커리큘럼에 대한 정보가 부족해서 그 정체를 찾기가 힘들다. 사진

계에서 친숙한 이름들이 이 아카데미 강의를 맡고 있어서인지 적당한 무게

감이 느껴지는 것 말고는.

‘힐링포토아카데미’라는 이름에 걸맞게 심리학과 예술치료가 특이하

다. 사진의 원론을 배우기보다는 사진을 개인적 힐링에 활용하고 싶은 자들

이라면 도전해볼 만하다. 그런데 포트폴리오 리뷰에서 눈이 멈추는 것은 작

가를 지망하는 누군가에게 좋은 기회를 주기 위한 것이라고 좋게 생각이 들

지만은 않는다. 아마도 힐링포토 아카데미라는 이름이 주는 느낌이 포장에

는 ‘어벤져스’라 쓰고 내용물은 보통 과자들을 모아놓은 것처럼 낯설기 때

문이 아닐까? 아무튼 누구나 심오한 사진가나 예술가가 되어야 하는 건 아

니니까, 사진으로 힐링이라도 할 수 있다면 이 복잡하고 불편한 세상에 사진

의 새로운 대중적 가능성을 찾게 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사진이 내

인생에 근본적인, 혹은 순간적이라도 제대로 된 힐링이 될 수 있을까는 의문

이지만.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아니라 아프니까 사진이다?

4 상상마당 5 21세기 힐링포토아카데미

96 97

Page 50: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사진가 김홍희가 이끌고, 단독으로 강의하는 수업. 정교하

게 짜인 체계적인 커리큘럼 보다는 강사의 재량에 따라 진행된

다. 매 수업마다 수강생 모두의 사진 리뷰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진 테크닉보다는 강사 특유의 다방면에 걸친 인

문학과 예술 전반에 대한 언급이 재미와 깊이를 더해준다는 소

문. ‘사진집단 일우’라는 타이틀로 10년간 숱한 아마추어 사진가

들을 배출하여 그야말로 대한민국 아마추어 사진가들의 산실이

다. 이곳을 거쳐간 이들이 왕성하게 활동하여 한때 아마추어 사

진전시 붐을 일으키는데 한몫을 하기도 했다. 2~3년 전부터 ‘사

진사관학교 일우’라고 이름을 살짝 바꾸었는데, 사관학교라니,

스파르타 교육을 실행하는 대입학원처럼 사진가들을 마구마구

배출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가 싶기도. 사진가 김홍희는 최근에

는 방송에 자주 출현하며 연예인 아마추어 사진가들을 가르치고

있기도 한데, 강의 후 수십 명의 수강생들이 뒷풀이 식당을 점령

하고 단체샷을 찍거나 해외로 진출해 대한민국 아마추어 사진가

들의 위세를 수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모습을 페이스북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즐거워 보이는 것만은 사실. 사진을 핑계 삼아 사람

들 속에서 즐거운 모임생활을 하고 싶은 이들이라면 머뭇거릴 이

유는 없어 보인다.

사진가 성남훈이 이끌고 있는 사진 모임. 12주 예비 과정이 2월에 끝

났다. 아직 다음 강의계획은 찾을 수가 없었다. 꿈꽃팩토리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젝트 진행만으로도 개인의 노력에 따라 깊이 있는

사진작업을 할 수도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성남훈이라는 이름에 기대

어 다큐멘터리 사진을 배우고 싶은 사람이라면 두드려볼 수 있겠다. 다

만 현대사진의 흐름을 이끌고 있는 Making photo에 관심 있는 사람이

라면 좀더 생각해 보길 권한다.

6 사진사관학교 일우 7꿈꽃팩토리 사진 아카데미(http://dffactory.tistory.com)

98 99

Page 51: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현재 진행 중인 수업에 대한 정보를 보면 기초적인 부분부

터 다양한 실습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커리큘럼 상으

로는 사진의 기술적인 부분에 중점을 두고 있어 사진의 철학이나

예술성과는 일정 부분 거리가 있어 보인다. 현재 한겨레 사진기

자인 강사의 경력을 고려해, 사진에 시대적 흐름이나 이슈를 담

는 저널사진에 대해 심도 있게 알고 싶거나 사진의 기록성과 진

실성에 대해 배우고 싶은 이가 있다면 따로 문의를 해봐야 할 듯.

이제 사진에 입문하는 사람이나 카메라 기술을 배우고 싶은 사람

에게 적당한 강의인 듯하다.

우선 과정이 다양하고 강사진들이 화려하다. 다양한 분야의 사진가

들과 이론가들이 함께 강의하며, 실무적인 사진 강의도 있어 선택의 폭

이 넓은 편이다. 여행 사진이나 다큐멘터리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도

움이 될 것 같다. 입문반, 초급반, 중급반, 고급반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는 들어보지 않으면 알 길이 없으나, 단계별 과정과 단과과정이 마치 외

국어학원 같다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사진기술도 외국어기술과 비

슷하게 습득된다고 한다면 할말이 없지만. 6회 강의로 진행되는 ‘사진인

문학’이라는 강좌가 뜬금없어 보이는 건 그 때문이다. 강사가 한 명을 주

축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어서 다양한 인맥을 만들기에는 좋겠지만, 깊

이 있는 가르침을 얻기에는 목마름이 있을 수 있겠다.

8 한겨레 강재훈 기자의 포토청(http://www.photochung.net/ )

9 내셔널 지오그래픽 사진 아카데미(http://www.ngpa.co.kr/main/ngpa_intro.php)

100 101

Page 52: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을 사진 이미지로 표현하고 싶어 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나의 필요에 맞는 사진찍기를 가르치는 곳이 어디인가를 커리큘럼과

강사의 특성을 잘 고려해 선택하면 될 일이다. 다만 요즘은 모든 강

좌의 끝에 리뷰와 전시가 필수항목처럼 달려있고 3개월~1년 정도의

과정을 거친 후 졸업전을 하며, 졸업전이나 단체전(능력에 따라 개인

전)을 하고 나면 누구라도 사진작가로 호칭하는 일이 비일비재다. 덕

분에 많은 사람들이 이 강좌를 듣고 나면 나도 사진작가가 될 수 있

겠다는 생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사진 인구는 많은데, 작가주의 정신을 가지고 자신만의 고유한 스타

일을 가진 작업을 지속하는 사진가가 드문 것은 이렇게 너나없이 작

가라고 호칭될 기회를 제공해주는 아마추어 사진강좌가 한몫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를 지울 수 없다. 프로 사진가들이 아마추어의

눈높이에 맞추어 소위 ‘사진빨’ 좋은 출사지를 전전하거나 전시를 봐

주면서 사진이라는 매체를 개인만족의 도구로 삼는 이들에 의식적, 무

의식적으로 영합하거나, 학벌과는 또 다른 패거리문화를 만드는 경향

도 있어, 전체 사진계의 하향평준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

려도 다만 필자의 기우였으면 좋겠다. 강좌는 강좌일 뿐, 어느 누구도

그대를 작가로 만들어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더구나 그대가

그토록 추앙하며 쫓아다니는 잘 나간다는 사진가 선생님도 어쩌면 진

정한 작가가 아닐지도 모르는데.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하는 사진강좌는 이보다 더 다양하다. 시

간과 비용도 그만큼 다양하다. 상상마당 같은 곳은 물론이고 프로사

진가들이 개인적으로 강좌를 개설하고 아마추어들을 가르치는 일이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만큼 사진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아서이고,

그만큼 프로사진가들이 가난해서이다. 배우고 싶은 자 골라서 배우

고, 사진을 업으로 하며 후학을 양성하고 싶은 자 자신의 재량껏 마

음껏 가르칠 수 있으니 수요와 공급자의 법칙으로 일거양득이지만

여기에는 간과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카메라를 다루는 법은 기술

이지만, 사진이라는 장르는 기술만으로는 습득되는 것은 아니다. 맞

춤법을 정확하게 알고 현란한 문장력을 가졌다고 글쓰기가 되는 것

이 아닌 것처럼,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세상을 읽는 법, 나를 표현

하는 법, 세상과 소통하는 법, 나만의 컨셉과 스타일을 찾아가는 법

을 배워야 비로소 사진과 만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온전히 사진

을 하는 사람들을 ‘작가’라고 부르는 것이다.

앞에서도 한번 언급했지만, 사진을 배우는 것이 모두 사진가나

작가, 혹은 예술가가 되기 위한 것은 아니다. 필요에 따라 업무에 활

용되는 자료사진을 잘 찍으려고 오는 사람들도 있고, 가족사진이나

여행사진으로 추억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배우고자 하는 이도 있으

며, 즐거운 취미생활을 위해서, 또 무언가 충족되지 않는 나의 내면

결론.

102 103

Page 53: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글•사진

25번

째 사

장마

105언젠가, 언젠가, 라고 외치는 무모한 기대. @ 2014

Page 54: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106 107

본능

적으

로 뜨

거운

빗 속

을 달

렸다

. 끝을

알 수

없는

육지

와 바

다의

경계

로. @

2014

Page 55: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108 109

장마

의 계

절엔

어김

없이

목이

말랐

다. 사

랑에

목 마

른 사

람처

럼. @

2014

Page 56: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110 111비가 그칠 무렵, 다시 돌아가야 하는 무렵. @ 2014

Page 57: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불한

당들

대답없는 질문

언젠가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마지막까지 간직하고 싶은 것을

카드에 써서 남겨 놓는 게임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때 난 ‘호기심’을 마지막 카드로 남겨 두었다.

아무 것에도 관심없고 아무 것도 신기한 것이 없다면

고민도 없어질까? 재밌을까?

대답이 없더라도 계속해서 물어보려 한다.

왜?

그래서?

학교종이 땡땡이

큰일이다.

학생들에게 점심시간과 쉬는 시간이 사라졌다.

선생님들에게 수업 시간과 쉬는 시간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학교에서 질서와 약속이 사라져 버렸다.

학교에서만이 아니다.

사회에서 인간의 예의가 사라지고,

기업에서 생명에 대한 존중이 사라지고,

국가에서 인권을 지키던 경종도 사라졌다.

살벌하고 안타까운 뉴스를 접할 때마다

잊혀진 학교 종소리가 그립다.

학교를 졸업한 지 오래됐지만

우리들이 받아야 할 수업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 아닌가.

어딘가에서 땡땡이 치고 있는 학교종을 찾아야겠다.

그 작업을 카메라와 함께.

25번째 사진

The Dream is in your LIFE.

세상을 보고. 무수한 장애물을 넘어 벽을 허물고,

더 가까이 다가가 서로를 알아가고 느끼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살아가는 인생의 목적이다.

인간사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일이 후회하는 것이기에.

까마귀는 눈이 없다

새는 새이되, 몸 전체가 검어서 도대체 눈이 어디에

붙어 있는지를 알 수 없으므로 ‘새 조 (鳥)’자의 머리

부분에서 눈 부분의 한 획을 뺀 새가 ‘까마귀 오(烏)’다.

그러니까 까마귀는 눈이 없는 새다. 다시 말하면,

몸 전체가 눈이 되어버린 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까마귀처럼 양면성을 가진 새가

또 있을까? 재수 없는 흉조라고도 하고

반포보은(反哺報恩)의 효조라고도 한다.

죽음을 상징하는 불길한 새이기도 하고,

태양의 정기를 받은 신령스런 새이기도 하다.

온 몸으로 눈을 삼아 세상의 양극단을 높이 나는 새.

까마귀가 눈부시게 검을 수밖에 없는 것은 그 때문이다.

烏, 나의 사진이 불우한 천재 작가 에드가 앨 런 포

(Edgar Allan Poe)의 詩 ‘갈가마귀(The Raven)’처럼,

세상의 모든 불행과 고통과 슬픔 앞에 바쳐지는 노래였으면.

‘Nevermore’라는 대답 밖에 들을 수 없으면서도

끝끝내 질문을 멈출 수 없는 이들을 위한 노래.

반납 예정일

책을 빌린다.

비디오테이프를 빌린다.

집을 빌린다.

지금 살고 있는 지구를 빌린다.

지금 사는 시간을 빌린다.

우리에겐 반납 예정일이 있다.

반납일이 언제인지 알 수 있는 것과 알 수 없는 것이 있다.

알 수 없는 것이 있기에 간절하고,

진정성 있게 살고 싶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오늘도 빌려온 책을 펼치며 묻는다.

나의 반납 예정일은 언제일까?

오독오독

처음부터 오독(誤讀)이었다.

무엇을 알겠는가?

세상을 오독하고, 그대를 오독하고,

사진을 오독하고, 나를 오독했다.

온통 오독 투성이다.

그 오독으로부터

나는 지금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 번에 꿀꺽 넘어가지 않는

이 삶의, 세상의, 단단함을

오독오독 씹으련다.

Page 58: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불한당들의 사진사 로고는

‘윤주씨의 잡글씨’에서 제작됐습니다.

불한당들의

사진사는 매

달 게스트

원고를 받습

니다.

물론 ‘불한

당스러운’ 분

들의 원고만

받겠습니다

.

불한당들의 사진사 작가들은

실명이 아닌 닉네임으로만

활동합니다.

작가 실명과 경력과는 상관없이

오직 이 지면에서의 사진과 글로만

존재를 드러내고 발언하겠다는

뜻입니다.

Page 59: 불한당들의 사진사 창간호

불한당들의 사진이 궁금해?

(http://issuu.com/ 에서는 책으로 펼쳐보실 수 있습니다)

불한당들의 사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