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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www.seniormaeil.com 지인 가운데 만우절에 출산한 사람 이 있다. 대여섯 시간의 진통 끝에 아들을 낳았다. 그녀의 유머러스한 성격답게 산통의 순간을 웃음으로 보상받고 싶었나보다. 친척들에게 쌍둥이를 낳았노라 거짓 전화를 돌 렸다는 것이다. 쌍둥이도 유전이란 말이 있듯이 그 당시만 해도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웬 복덩이들이냐며 함박웃음꽃을 머금고 달려온 형제들 손에는 아기용품이 두 개씩 들려 있 었단다. 하지만 엄마 옆에 새근새근 잠든 신 생아는 한 명뿐, 소동이 일어난 것은 당연지사겠다. 만우절 장난이었노라 고백하자 한바탕 웃음 잔치가 벌어졌 다고 한다. 산모의 장난기 덕분에 두 몫의 축하를 받은 새 생명은 행운아 랄까.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하게 되 었으니 이거야말로 만우절의 순기능 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큰애를 3월 31일, 만우절 하 루 전날에 제왕절개로 얻었다. 안동 에 있는 S 병원 수술실에 누워있는데 마취주사를 등에다 찔렀다. 간호사가 열까지 세어보라 주문했다. 의사는 자꾸만 말을 시켰다. 수술이 진행되 는 것 같은데 아무 통증이 없었다. 창 자가 당기는 것 같은 느낌만 있을 뿐 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의 사가 “아들을 원해요? 딸을 원해 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이왕이면 아들이 좋다고 답했다. 그럼 바로 아들로 바꿔드리겠다는, 의사의 능청스러운 말이 들렸다. 난 또 그게 어떻게 그리 되느냐고 반문 을 했다. 못 믿겠으면 한번 보라며 핏덩이를 들고 보여주었다. 아들임 을 확인한 순간 무의식 속으로 빠져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의사가 만 우절 장난을 하루 앞당겨서 한 셈인 가 싶다. 만우절의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원 은 알려진 게 없다. 서양에서는 에이 프릴 풀스 데이(April Fools’ Day) 라 하며 이날에 속아 넘어간 사람을 4 월 바보(April fool)라 부른다. 만우절 해프닝 베스트라면 1957년 영국 BBC 방송국이 소개한 스파게 티 나무다. 이상기온으로 스위스에 있는 나무에 스파게티가 열렸다고 하며 스파게티를 수확하는 농부의 사진을 보도한 것.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스파게티 나무의 재배법을 물 었다고 하니 속은 시청자들이 있었 나 보다. 이 일화는 우리나라 영어교과서에 도 실렸다 한다. 황당무계한 장난, 그 시절의 순진한 낭만을 가늠할 수 있 다. 점점 웃을 일이 줄어드는 각박한 현실이다. 기획된 웃음이지만 하루가 즐겁다면 가벼운 거짓말을 허용하는 만우절이 유의미하지 않을까. 김채영 기자 [email protected] 테마기획-추억 속의 만우절 모두 아기용품 두개씩 선물 웃음 새 생명은 두 몫 축하 받은 행운아 가벼운 거짓말에 하루가 즐거워 그날 태어난 아이 1987년 4월 1일, 구름 한 점 없 이 맑고 따스한 날이었다. 33년 전 만우절, 대구와 인접한 경산군 진 량면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 임을 맡았을 때였다. 새벽 운동으로 조기회 회원들과 테니스를 하고 학교 사택으로 돌아 와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아침밥을 먹고는 보통 날과 똑같이 콧노래를 부르며 교무실로 향했다. 만우절도 보통의 날과 다를 건 없 었고, 6교시 수업을 마치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늘 그렇게 하듯 동 료들과 노가리 안주에 막걸리를 한 잔 걸치고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왔다. 딸아이가 달려와 안기려는데 아내가 하는 말, “술 마시려고 카메 라는 학교 두고 왔소?” “카메라는 무슨 카메라?” “2교시 마치고 중간놀이 시간에 자기 반 학생이라며 선생님께서 카 메라를 가져 오라고 한다고 해서 내 줬는데?” “뭐라고, 난 안 시켰는데?” 하늘이 노랗게 변했고 취했던 술 이 확 달아나 버렸다. 그 카메라가 어떻게 산 것인가? 용돈을 절약하고, 다른 사람의 숙 직을 대신해주며 숙직비와 출장비 를 모았다. 카메라가 벌써 몇 갠데 또 산다며 아내에게 이 욕 저 욕 다 얻어먹고 산 것이 아니던가? 한 달 월급보다도 더 주고 산 카메라. 난 딸을 안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털썩 주저앉아 고함을 냅다 질렀 고, 딸아이가 놀라 엉엉 울었다. 동 네 사람들이 모여 “참 선생님도” 하 며 웃는 것도 모르고. 아끼는 카메 라, 몇 번 찍어 보지도 못했는데 집 으로 와서도 아깝고 아까워 잠도 오지 않았다. 설친 잠에 눈은 벌겋게 붉어져도 학교는 가야지 하면서 ‘어느 놈인 지 잡히기만 해 봐’ ‘학교에 가서 어 떻게 조사를 하지’하는 생각으로 꽉 찼다. 교무실에 들어서니 선배 선생님들께서 기다렸다는 듯 “안 선생 어제 한 건 했다며?” 크게 웃 는다. 조그만 동네라 벌써 소문이 났구나 생각하니 카메라보다 더 부 끄러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빨 리 교실로 올라갔다. 조사해 봐야 지 하며 단숨에 4층으로 올라가니 빨간 보자기가 교탁 위에 놓여 있 었다. “내 카메라다!” 범인은 우리 반의 전교 어린이 회 장이었다. 불러서 물어 보았다. 선 생님께서 카메라 메고 다니며 친구 들 사진을 찍어 주는 게 그렇게 멋 있어 보이고 좋았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학생은 사 진을 찍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때 장 래희망을 결정했고, 죽을 작정하고 친구들 셋이서 만우절에 한 번 사고 를 치자고 계획을 했다는 거였다. 그 제자 건우(가명)는 퇴직이 얼 마 남진 않았지만 지금도 모 방송 국에 책임자로 근무한다. 내가 중 신해 친구 딸과 결혼을 했다. 부족 한 사람을 선생이라고 스승의 날 을 잊지 않고 제자들을 불러 모아 해마다 잔치를 벌이며 옛날의 이 야기를 한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지금의 내가 있는 건 선생님 덕분이라는 공치사도 잊지 않는다. 건우야 이제 미안해하지 마, 당 당해져 봐. 대한민국 최고의 방송 국이잖아. 그리고 선생님의 제자라 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며, 선생 님을 자랑하며 다니는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 다른 사람을 통해 칭 찬의 말을 듣는 건 얼마나 기쁜지. 더 제자들과 친해지고 더 제자들 에 대해 알고 더 제자들을 자랑하 고 더 제자들을 사랑할 게. 또 만나 자 건우야 그리고 제자들아. 글 사진 안영선 기자 [email protected] 숙직 대신해주며 장만한 카메라가 없어졌다 1987년 4월 1일 그날의 일기 만우절 추억이 깃든 카메라. “학교에 두고 왔소?” 아내의 말에 털썩 주저앉았다 범인은 전교회장, 카메라 멘 모습 멋있어 그랬다고 “선생님 덕분” 매년 스승의 날 잔치…또 보자 제자야! 아들 낳은 산모, 친척들에게 “쌍둥이래”

숙직 대신해주며 장만한 카메라가 없어졌다pdf.seniormaeil.com/10/1003.pdf모두 아기용품 두개씩 선물 웃음 새 생명은 두 몫 축하 받은 행운아 가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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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숙직 대신해주며 장만한 카메라가 없어졌다pdf.seniormaeil.com/10/1003.pdf모두 아기용품 두개씩 선물 웃음 새 생명은 두 몫 축하 받은 행운아 가벼운

3www.seniormaeil.com

지인 가운데 만우절에 출산한 사람

이 있다. 대여섯 시간의 진통 끝에

아들을 낳았다. 그녀의 유머러스한

성격답게 산통의 순간을 웃음으로

보상받고 싶었나보다. 친척들에게

쌍둥이를 낳았노라 거짓 전화를 돌

렸다는 것이다. 쌍둥이도 유전이란

말이 있듯이 그 당시만 해도 흔하지

않은 일이었다. 웬 복덩이들이냐며

함박웃음꽃을 머금고 달려온 형제들

손에는 아기용품이 두 개씩 들려 있

었단다.

하지만 엄마 옆에 새근새근 잠든 신

생아는 한 명뿐, 소동이 일어난 것은

당연지사겠다. 만우절 장난이었노라

고백하자 한바탕 웃음 잔치가 벌어졌

다고 한다. 산모의 장난기 덕분에 두

몫의 축하를 받은 새 생명은 행운아

랄까. 잊지 못할 추억을 간직하게 되

었으니 이거야말로 만우절의 순기능

이라 할 수 있겠다.

나는 큰애를 3월 31일, 만우절 하

루 전날에 제왕절개로 얻었다. 안동

에 있는 S 병원 수술실에 누워있는데

마취주사를 등에다 찔렀다. 간호사가

열까지 세어보라 주문했다. 의사는

자꾸만 말을 시켰다. 수술이 진행되

는 것 같은데 아무 통증이 없었다. 창

자가 당기는 것 같은 느낌만 있을 뿐

이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의

사가 “아들을 원해요? 딸을 원해

요?” 하고 물었다. 나는 그 와중에도

이왕이면 아들이 좋다고 답했다.

그럼 바로 아들로 바꿔드리겠다는,

의사의 능청스러운 말이 들렸다. 난

또 그게 어떻게 그리 되느냐고 반문

을 했다. 못 믿겠으면 한번 보라며

핏덩이를 들고 보여주었다. 아들임

을 확인한 순간 무의식 속으로 빠져

들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의사가 만

우절 장난을 하루 앞당겨서 한 셈인

가 싶다.

만우절의 유래에 대한 정확한 기원

은 알려진 게 없다. 서양에서는 에이

프릴 풀스 데이(April Fools’ Day)

라 하며 이날에 속아 넘어간 사람을 4

월 바보(April fool)라 부른다.

만우절 해프닝 베스트라면 1957년

영국 BBC 방송국이 소개한 스파게

티 나무다. 이상기온으로 스위스에

있는 나무에 스파게티가 열렸다고

하며 스파게티를 수확하는 농부의

사진을 보도한 것. 방송국에 전화를

걸어 스파게티 나무의 재배법을 물

었다고 하니 속은 시청자들이 있었

나 보다.

이 일화는 우리나라 영어교과서에

도 실렸다 한다. 황당무계한 장난, 그

시절의 순진한 낭만을 가늠할 수 있

다. 점점 웃을 일이 줄어드는 각박한

현실이다. 기획된 웃음이지만 하루가

즐겁다면 가벼운 거짓말을 허용하는

만우절이 유의미하지 않을까.

김채영 기자 [email protected]

테마기획-추억 속의 만우절

모두 아기용품 두개씩 선물 웃음

새 생명은 두 몫 축하 받은 행운아

가벼운 거짓말에 하루가 즐거워

그날 태어난 아이

1987년 4월 1일, 구름 한 점 없

이 맑고 따스한 날이었다. 33년 전

만우절, 대구와 인접한 경산군 진

량면 ○○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

임을 맡았을 때였다.

새벽 운동으로 조기회 회원들과

테니스를 하고 학교 사택으로 돌아

와 간단한 샤워를 마치고 아침밥을

먹고는 보통 날과 똑같이 콧노래를

부르며 교무실로 향했다.

만우절도 보통의 날과 다를 건 없

었고, 6교시 수업을 마치고 퇴근

시간이 되었다. 늘 그렇게 하듯 동

료들과 노가리 안주에 막걸리를 한

잔 걸치고 기분이 좋아서 집으로

왔다. 딸아이가 달려와 안기려는데

아내가 하는 말, “술 마시려고 카메

라는 학교 두고 왔소?”

“카메라는 무슨 카메라?”

“2교시 마치고 중간놀이 시간에

자기 반 학생이라며 선생님께서 카

메라를 가져 오라고 한다고 해서

내 줬는데?”

“뭐라고, 난 안 시켰는데?”

하늘이 노랗게 변했고 취했던 술

이 확 달아나 버렸다.

그 카메라가 어떻게 산 것인가?

용돈을 절약하고, 다른 사람의 숙

직을 대신해주며 숙직비와 출장비

를 모았다. 카메라가 벌써 몇 갠데

또 산다며 아내에게 이 욕 저 욕 다

얻어먹고 산 것이 아니던가? 한 달

월급보다도 더 주고 산 카메라. 난

딸을 안고 있다는 것도 잊어버리고

털썩 주저앉아 고함을 냅다 질렀

고, 딸아이가 놀라 엉엉 울었다. 동

네 사람들이 모여 “참 선생님도” 하

며 웃는 것도 모르고. 아끼는 카메

라, 몇 번 찍어 보지도 못했는데 집

으로 와서도 아깝고 아까워 잠도

오지 않았다.

설친 잠에 눈은 벌겋게 붉어져도

학교는 가야지 하면서 ‘어느 놈인

지 잡히기만 해 봐’ ‘학교에 가서 어

떻게 조사를 하지’하는 생각으로

꽉 찼다. 교무실에 들어서니 선배

선생님들께서 기다렸다는 듯 “안

선생 어제 한 건 했다며?” 크게 웃

는다. 조그만 동네라 벌써 소문이

났구나 생각하니 카메라보다 더 부

끄러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빨

리 교실로 올라갔다. 조사해 봐야

지 하며 단숨에 4층으로 올라가니

빨간 보자기가 교탁 위에 놓여 있

었다.

“내 카메라다!”

범인은 우리 반의 전교 어린이 회

장이었다. 불러서 물어 보았다. 선

생님께서 카메라 메고 다니며 친구

들 사진을 찍어 주는 게 그렇게 멋

있어 보이고 좋았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학생은 사

진을 찍는 사람이 되겠다고 그때 장

래희망을 결정했고, 죽을 작정하고

친구들 셋이서 만우절에 한 번 사고

를 치자고 계획을 했다는 거였다.

그 제자 건우(가명)는 퇴직이 얼

마 남진 않았지만 지금도 모 방송

국에 책임자로 근무한다. 내가 중

신해 친구 딸과 결혼을 했다. 부족

한 사람을 선생이라고 스승의 날

을 잊지 않고 제자들을 불러 모아

해마다 잔치를 벌이며 옛날의 이

야기를 한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겠지만 지금의 내가 있는 건

선생님 덕분이라는 공치사도 잊지

않는다.

건우야 이제 미안해하지 마, 당

당해져 봐. 대한민국 최고의 방송

국이잖아. 그리고 선생님의 제자라

고 당당하게 말하고 다니며, 선생

님을 자랑하며 다니는 것이 너무

자랑스러워. 다른 사람을 통해 칭

찬의 말을 듣는 건 얼마나 기쁜지.

더 제자들과 친해지고 더 제자들

에 대해 알고 더 제자들을 자랑하

고 더 제자들을 사랑할 게. 또 만나

자 건우야 그리고 제자들아.

글 사진 안영선 기자 [email protected]

숙직 대신해주며 장만한 카메라가 없어졌다

1987년 4월 1일 그날의 일기

만우절 추억이 깃든 카메라.

“학교에 두고 왔소?” 아내의 말에 털썩 주저앉았다

범인은 전교회장, 카메라 멘 모습 멋있어 그랬다고

“선생님 덕분” 매년 스승의 날 잔치…또 보자 제자야!

아들 낳은 산모, 친척들에게 “쌍둥이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