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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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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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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01ㅣ예술강사컨퍼런스를 준비하며

002

주최 주관

기록과 공유

Page 3: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기록과 공유

Contents

01. 예술강사컨퍼런스를 준비하며

02. 행사 개요

04. 예술강사의 발(發),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03. 2012 예술강사의 발(發)

왜 예술강사 컨퍼런스를 준비하게 되었는가?

예술강사에게 듣고 싶었습니다

교류를 통해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컨퍼런스가 모두에게 퍼져나가도록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 김태황

/ 조양호

예술강사의 발(發)은

개최배경

추진과정

로고이야기

행사개요

행사일정

지식공유 발표 예술강사

그래픽 레코딩 참여 예술강사

지식공유 참가자

주제강연

지식공유

네트워크파티

자연이 말하는 것을 받아 쓴다

무대를 떠나 자유로와지다

발굴 Design think 디자인 씽크

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

발견 메모의 습관, 정보의 모자이크

아틀리에를 찾아온 어린손님

나는 왜 아이들이 그토록 보고 싶을까?

난 그때 잘 한다고 한거다!

아티스트의 예술이 교육이어야 하는 이유

발발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었던 소꿉놀이

예술가는 지루하고, 학생들은 비슷하게 느끼는 마음

가장 멋진 삶은 아티스트더라!

몸의 인류학 - 춤을 통해 나를 발견하다!

/ 김용택

/ 유치벽

/ 이효광

/ 신운섭

/ 예정원

/ 변미섭

/ 백선화

/ 우선영

/ 김재민

/ 강미영

/ 박종현

/ 안 령

/ 안은미

/ 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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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0

/ 013

/ 013

/ 013

/ 014

/ 014

/ 015

/ 148

/ 159

/ 162

05. 매뉴얼 - 준비과정의 기록

프로젝트 실행의 기본 프로세스

컨퍼런스 기획팀 구성과 실행업체 선정

컨퍼런스 주제 선정 및 강사 섭외

지식공유 이야기방의 운영 준비

홈페이지 및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

참가자 모집 및 안내

현장 운영을 위한 준비

후속작업

참고 - 추진일정

참고 - 참가자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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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예술강사 컨퍼런스를 준비하며

왜 예술강사 컨퍼런스를 준비하게 되었는가?

예술강사에게 듣고 싶었습니다

교류를 통해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컨퍼런스가 모두에게 퍼져나가도록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김태황

조양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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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1ㅣ예술강사컨퍼런스를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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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예술강사를 하는 이유”

“아이들과 함께 할 때 느끼는 감동의 순간”

“예술강사 그리고 예술가인 내 삶에 대한 이야기”

예술강사 워크샵, 연수가 아닌 ‘내가 선택한 그룹에서의 대화방’.

이 자리는 예술강사를 대상으로 처음 시도한 컨퍼런스였습니다.

소복하게 담겨 있을 각자의 이야기가 궁금함이 첫 번째 이유였고,

두 번째는 중요한 그 이야기들을 예술강사들이 서로 함께 나눌 수 있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전 인터뷰에서 흘러나온 주옥같은 이야기와 예술강사들의 쏟아지는 뜨거운 관심,

참가신청서에서 본, 짧지만 힘이 되는 메시지들 덕분에 행복한 마음으로 컨퍼런스를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서로의 경험은 끊임없이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험은 지식이고 지식은 나눌수록 커지기 때문입니다.

홀씨가 퍼져 꽃무리를 이루듯이,

한 해 한 해 더 늘어갈, 예술강사들의 대화방을 기대하며 2012년 컨퍼런스를 마칩니다.

고맙습니다.

컨퍼런스 참가신청 시 예술강사들이 직접 작성한 참가동기입니다.

이제 예술강사 3년차. 처음 시작했을 때 마음과

지금 나의 마음은 과연 똑같을까? 변하지 않았을까?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살아갈까? 궁금한 마음이 들었다.

-

이유선 (국악)

예술강사와 예술인. 작가와 선생님의 경계에서

함께 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 듣고 싶습니다.

굳이 예술강사로서의 모습이 아니라

예술인으로서 많은 이야기를 담아가고 싶습니다.

-

최가희 (만화애니)

예술가로서의 고민, 교육자로서의 고민.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다른 분들은 어떻게 중심을 잡아가는지 듣고 싶습니다.

-

이난희 (연극)

왜 예술강사 컨퍼런스를 준비하게 되었는가?

글 ;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Page 6: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1ㅣ예술강사컨퍼런스를 준비하며

008 009

어느 순간 예술강사는 예술교육을 소비하는 사람처럼 느껴졌습니다. 수요를 채워주는 도구처럼 보이기도 했

습니다. 많은 예술가들은 몸, 붓, 렌즈, 악기, 무대 등을 통해 사람들을 만나려고 합니다. 예술세계를 혼자만의

것으로 가둬두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예술가가 예술을 가르치는 행위는 당연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

런데 지쳐버린 예술강사를 만나게 된 겁니다. 강사연수를 통해서 예술강사를 만나면 ‘저 어쩔 수 없이 여기 앉

아 있거든요’라는 얼굴이 보였습니다. 경로를 설명할 수 없지만 다양한 회의 자리에서 만났을 때 그들의 얼굴

에는 행복은커녕 불안과 분노가 더 많이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술강사활동을 하는 개인을 보면 개성 넘치고,

열정 가득한 사람이었습니다.

/ 행복한 교실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열정과 행복이 넘치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예술가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문화부와 문화

예술교육 진흥원과 강사들이 맺고 있는 행정과 평가를 비롯한 이해관계의 불편함이 있습니다. 더구나 수천 명

의 강사는 집단으로 읽히기 쉽습니다. 집단은 한 개인과 다른 캐릭터를 갖게 됩니다. 문화예술강사 집단의 캐

릭터는 서로를 불신하게 만드는 행정적 구조 안에 들어 있습니다. 몸의 언어를 문서로 작성해야 하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이미지의 언어를 커리큘럼으로 만들라는 요구는 있었지만, 무엇이 적

합한 단어인지 찾아가는 방법을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는 겁니다. 더구나 매 수업은 일지를 요구했고 동어반복

이 지루하고 힘들어질 때면 평가기준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무엇을 했는지 어떤 대화가 학생들과 오고갔는지

가 중요하기 보다는 문서 작성하느라 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던 겁니다. 그렇게 점수로 환산되어 원하는 지

역의 원하는 학교에 원하는 수업시수를 가지게 되는 구조 안에 스스로 편입된 것입니다. 지식을 공유하기 힘든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다른 강사보다 평가에서 우위를 차지하지 않으면 손해가 되는 것입니다. 이때 양

질의 교육과정과 방법론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없었을 겁니다. 있다고 하더라도 높은 평가 점수를 받은 예술강

사의 범례가 공개되거나, 강좌를 개설해서 지불이 완료된 가공된 정보였습니다. 이 뿐이 아닙니다. 모든 학교

가 그렇지 않았겠으나, 문화예술교육에 대한 이해는 둘째 치더라도 최소한 학교에 온 예술가로도 대접받지 못

했습니다. 예술강사가 수업준비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 학교는 소수였고, 수업에서 사용해야 하는 장비

나 재료조차 관리되지 않는 현실이 무겁게 느껴진 겁니다. 어느 순간 평가에 의해 이리 저리 휘둘리는 자기 모

예술강사에게 듣고 싶었습니다

글 ; 김태황

(문화예술 디렉터)

습에 환멸이 느껴지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나열한 것이 문제의 핵심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문제를 발견했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모르게 된 것이 문제의 핵심입니다. 최소한 7

년 이상 방치해둔 것입니다. 이 컨퍼런스는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의지로 시작한 것이 아닙니다. 방법론

은 강사연수나 개설되는 다양한 강의에서 다룹니다. 강사들의 처우나 행정적 지원 문제는 공청회나 간담회, 설

명회 등을 통해서 다뤄야 합니다. 그 몫이 있습니다. 컨퍼런스에서 “예술가로 살아온 강사 당신은 누구세요?”

라는 질문으로 시작한 것입니다. 학교나 사회복지시설과 단체 등에서 직접 피교육자를 만나는 문화예술교육의

최전방(?)에서 활동하는 예술가에게 던진 질문입니다. 높은 평가점수를 득한 커리큘럼을 가지거나, 검증된 방

법론으로 교실이 행복해지지 않습니다. 커리큘럼과 방법론이 그 교사가 이해한 것이고 체화된 것이어야 합니

다. 교육의 질의 교사의 질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더구나 행복한 예술가가 강의할 때 교실과 학생이 행복해지

는 명료한 관계를 잊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 제 이야기를 해도 될까요?

컨퍼런스에서 교육방법론과 예술강사 사업에 대한 각종 행정적 불만에 대한 이야기를 제외한 이유는 “예술가

인 당신을 들려주세요. 우리는 당신이 어떻게 현재를 사는지가 궁금합니다.”라는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한

개인이 현재를 사는 이야기는 귀납적으로 현재의 한국사회 예술강사를 이야기 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

니다. 지식공유 발표를 하는 예술강사가 공통적으로 기획자인 저에게 했던 질문은 “정말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요?”였습니다. 교육과정 개발도 아니고, 새로 만든 방법론도 아니고,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어도 말해도 되는지에 대한 물음입니다. 목표를 세우고 달성하고, 문제를 개발해서는 해결책을 제

시한다고 믿는 사회에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과가 물리적으로 쥐어지지 않으면 불안해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말하기 힘든 것이 예술가와 예술강사의 삶입니다. 하지만 예술가와 예술강사의 시작을 말

하는 것이 예술교육의 장에서 만나게 될 어린이, 청소년, 노인, 장애인이 접하는 예술에 대한 태도에 가장 근

접한 것입니다. 예술의 시작에서 느낀 초보의 설렘과 호기심이 살아있게 환경을 만드는 사람들이 예술강사라

고 생각합니다.

Page 7: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1ㅣ예술강사컨퍼런스를 준비하며

010 011

교류를 통해 경험과 지식을 나누는 컨퍼런스가 모두에게 퍼져나가도록

글 ; 조양호

(지식공유 디렉터)

/ 예술

예술강사컨퍼런스를 한다고 했을 때, 이 컨퍼런스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은 컨퍼런스의 형식조차도

예술적이었으면 좋겠다는 것! 예술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만한 가치를 창조해내는 것이라고 한다

면 그 창조의 기술과 노하우, 경험을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시키고 있는 예술강

사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은 충분히 알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충분히’

모를 수 있는 것을 컨퍼런스라는 형식의 그릇에 담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 강사

공유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을 창조하여 전파시키는 사람, 그 사람이 곧 예술강사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형식

의 컨퍼런스를 진행하고 그것을 기록하여 공유할 것인가를 생각했을 때 놓치면 안 된다고 깨달았던 것은 예술

강사는 지식을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식을 공유하는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더군다나 그 지식은 어느 한 사

람에게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두루두루 유용한 지식입니다. 공유할만한 가치가 있는 지식이 모두에게 두루두

루 유용하다면 그것은 곧 사람을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이 됩니다. 그 힘을 잘 남기고 싶었습니다.

/ 지식

지식이 보편화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유용한 것이 아니라 앞서 이야기한대로 두루두루 유

용해야 합니다. 그러면 지식이 학문에 머무르지 않고 지혜가 되고, 삶이 됩니다. 즉, 교과서에 나오는 이야기

가 아니라 온전히 삶의 이야기여야 감동을 줄 수 있고, 변화를 줄 수 있습니다. 삶의 이야기를 가장 잘 전달하

면서 감동을 줄 수 있는 방식은 무엇일까? 그것은 곧 대화입니다. 사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두 사람간의 대화

로부터 시작됩니다. 그래서 이번 컨퍼런스의 주인공은 13명의 발표자 뿐만 아니라 250여 명의 대화 참가자입

니다. 한 곳에 머무르거나 어느 한 방향으로 흐르지 않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서로 연결되는 대화 속에서 진정

공유할만한 지식이 창조되었을겁니다.

/ 공유

공유할만한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 예술이라면 그것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예술적으로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텍스트나 사진, 동영상 말고 다른 무엇인가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그

것은 반드시 예술적이어야 했습니다. 자연스럽게 예술적인 공유방법을 창조해낼 수 있는 사람들은 곧 예술강

사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픽 레코딩! 이번 컨퍼런스에서 처음 시도해본 기록과 공유의 방

법일 것입니다. 컨퍼런스가 끝난 후, 그래픽 레코딩의 작품들을 보는 순간 그것은 기록물이 아니라 예술작품이

었습니다. 공유할만한 가치가 있는 지식을 기록하는 작품 자체도 공유할만한 것이었습니다.

/ 컨퍼런스

컨퍼런스 유행의 시대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보통은 발표자와 청중이 분리된 컨퍼런스를 많이 경험합니다.

하지만 이번 예술강사컨퍼런스는 그 간격을 줄이기 위해 많이 노력했습니다. 왜냐하면 예술은 사람과 사람을

구분 짓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창조적인 기술 너머의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색할 수도 있었겠지만, 예술이라고 하는 것은 항상 시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선도했던 것

이기에 어색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색함이 좀 더 많은 이들에게 공유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그

것이 곧 자연스러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Page 8: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행사 개요

예술강사의 발(發)은

개최배경

추진과정

로고이야기

행사개요

행사일정

02

/ 013

/ 013

/ 013

/ 014

/ 014

/ 015

STEP 01예술강사

사전 인터뷰

STEP 04참가자 접수

STEP 02발표내용 및 형식 확정

STEP 05참가자

모집 마감

STEP 03행사 기획단계의

아이디어와 관련 자료 기록 공유

STEP 06컨퍼런스

개최

STEP 07기록내용 공유 및

컨퍼런스 매뉴얼 배포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은

예술강사의 발(發)*은

학교와 복지기관에서 활동하는 예술강사**들이 참여하는 오픈컨퍼런스***입니다.

*** 예술강사의 발(發)ㅣ발(foot), 출발, 발전, 재발견 등의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예술강사ㅣ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16개 시·도 『문화예술교육센터』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의 현장실행가입니다.

*** 오픈컨퍼런스ㅣ프로그램을 모두 기획한 후 강의 형식으로 발표를 듣는 방식이 아닌, 특정한 테마에

맞춰 누구든지 기획하고 참여할 수 있는 네트워크 방식입니다. 다양한 사람들이 경험을 나누고

준비과정을 공유할 수 있는 열린 방식의 컨퍼런스입니다.

개최배경 2012년 최초로 개최되는 본 컨퍼런스는 다년간의 교육활동을 통해 형성된 예술강사들의 문화예술

교육에 대한 관점과 개개인이 축적하고 있는 경험을 공유, 논의하는 장을 펼치고자 기획되었습니다.

추진과정 퍼실레이터 (조력자, facilitator)로 참여하는 예술강사는 준비과정에서부터 함께 하였습니다.

최초 기획과 준비, 실행, 개최까지의 전 과정은 공식 홈페이지 (www,arteconference.kr)에서

공유되었습니다.

Page 9: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2ㅣ행사개요

014 015

로고이야기 내 안에서 시작된 씨앗은 꽃이 되어 피어나고, 다른 누군가의 씨앗이 되어 새로운 꽃을 피웁니다.

씨앗은 꽃으로 피어나기까지의 출발점이며 이로 인하여 아름다운 꽃이 만발할 수 있기에,

씨앗이야말로 이미 그 안에 생명을 내재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의 출발점에서 현재까지 함께 발전하여 온 예술강사들은 이제 다시

누군가의 출발점이 되어 퍼져 나갈 것 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조금 더 아름답게

만드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행사개요 일 시 2012년 11월 20일 (화) 14:00 ~ 19:00

장 소 KT&G 상상마당 / Thinkcafe with Cafe the way

주 최 문화체육관광부

주 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대 상 예술강사 200명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16개 시·도 <문화예술교육센터>에서 활동하는 예술강사

출발점을 나타내는씨앗을

붓터치의 느낌을 살려형상화

긍정의 에너지를나타내는 레드를

사용

행사개요예술강사의 발(發)

행사일정 13:00 ~ 14:00 참가자 등록

14:00 ~ 15:00 주제강연

예술강사의 발(發)

자연이 말하는 것을 받아 쓴다

무대를 떠나 자유로와지다

/ 김용택

/ 유치벽

15:00 ~ 17:30 지식공유

예술강사가

이끌어가는

10개의

그룹 이야기방

발굴(發掘)

Design think 디자인 씽크

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

/ 이효광

/ 신운섭

발견(發見)

메모의 습관, 정보의 모자이크

아틀리에를 찾아온 어린손님

나는 왜 아이들이 그토록 보고 싶을까?

난 그때 잘 한다고 한거다!

아티스트의 예술이 교육이어야 하는 이유

/ 예정원

/ 변미섭

/ 백선화

/ 우선영

/ 김재민

발발(勃發)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었던 소꿉놀이

예술가는 지루하고, 학생들은 비슷하게 느끼는 마음

가장 멋진 삶은 아티스트더라!

/ 강미영

/ 박종현

/ 안 령

17:30 ~ 19:00 네트워크 파티

모히또 세모금,

그리고

“발(發)”파티

몸의 인류학 - 춤을 통해 나를 발견하다! / 안은미

Page 10: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2012 예술강사의 발(發)

주제강연 자연이 말하는 것을 받아 쓴다

무대를 떠나 자유로와지다

지식공유 발굴 Design think 디자인 씽크

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

발견 메모의 습관, 정보의 모자이크

아틀리에를 찾아온 어린손님

나는 왜 아이들이 그토록 보고 싶을까?

난 그때 잘 한다고 한거다!

아티스트의 예술이 교육이어야 하는 이유

발발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었던 소꿉놀이

예술가는 지루하고, 학생들은 비슷하게 느끼는 마음

가장 멋진 삶은 아티스트더라!

네트워크파티 몸의 인류학 - 춤을 통해 나를 발견하다!

김용택

유치벽

이효광

신운섭

예정원

변미섭

백선화

우선영

김재민

강미영

박종현

안 령

안은미

/ 018

/ 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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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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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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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1: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3ㅣ2012 예술강사의 발(發)

018 019

자연이 말하는 것을 받아 쓴다

그래픽 레코딩

김용택 (시인/ 명예교사)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은 인격으로 형성해 가야하고, 경험은 예술로 녹여내야 한다.

38년간 초등학교 교사 생활 동안 자연을 관찰하는 아이들의 느낌과 생각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그런 일상의 모습과 생각을 일기로 쓰다 보니 어느 날 일기장이 시집이 되어있었다.

자연이 말하는 것을 받아쓰는 것, 그것이 나의 예술이다.

주제 강연

그래픽 레코딩 사진

양창규 (만화애니)

주제 강연 영상

반갑습니다. 강연분위기 아니고 공연분위기라서 거시기합니다. (웃음) 본래 강연장이 아니고 공연장이

죠? 맞습니까? (네) 날씨가 추워졌습니다. 감기 조심해야겠죠.

저는 전북 임실에 살고 있습니다.

“임실하면 뭐가 유명합니까?”

“치즈요”

“…. 다시 묻겠습니다. 임실하면 뭐가 유명합니까?”

“김용택”(웃음)

금방 학습효과가 있네요. 공부라는 게 어느 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게 아니고 오랜 세월이 필요합니

다. 공부라는 게 학교에서 책이나 선생님하고만 하는 게 아니고 일상적인 삶이, 구체적인 삶이 공부여

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금방 여러분들이 치즈와 인간 김용택에 대해 물어봤는데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모였다고 생각은 하겠습니다.(웃음)

내 고 향 임 실 읍 덕 진 면

임실읍에서도 좀 떨어진 덕진면이라는 곳의 소재지에서 4km 떨어진 곳에 장산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

습니다. 그 마을이 옛날에는 40가구 정도 있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서울로 가고 10가구가 살고 있습니

다. 원래 27명이 살았는데 지난달에 이장님 어머니가 돌아가셔서 26명이 되었습니다. 지난주에는 성민

이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25명이 되었다가 최근에 저희 어머님이 병원에 계셔서… 몇 명이 되었죠? 3명

이 줄었으니까 24명이 삽니다. 제가 왔다갔다하니까 실제 인구는 23명쯤 됩니다.

그 마을에 태어나 그 마을에서 자라고 그 마을에서 40분쯤 걸어가면 덕지초등학교가 있는데 거기를 졸

업하고 이웃에 있는 순창, 순창이 뭐가 유명합니까? (고추장요) 먹을 것들은 얼릉얼릉 잘알제. (웃음)

Page 12: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3ㅣ2012 예술강사의 발(發)

020 021

순창중학교와 순창농립고를 졸업하고 다시 선생님이 되어서 덕지초등학교에 왔습니다. 한 학교에서

는 5년밖에 못있기 때문에 덕지초등학교에서 5년 있다가 이웃 학교에 1년 있다가 다시 덕지초등학교

에 와서 5년 있고, 또 다른 학교에 1년 갔다가 다시 오고, 그렇게 6번을 왔다갔다하면서 2008년도에 정

년퇴임했습니다.

자 연 으 로 부 터 배 운 시

초등 6년과 선생님 30년 해서 36년을 한 학교에서만 있었습니다. 훌륭한 선생님이죠? (웃음) 제가 생각

해도 훌륭한 선생님같아요. 저는 농사를 짓는 사람 곁에 살았습니다. 농사를 지으며 살았죠. 농사짓는

사람들은 일상이 공부입니다. 행동 하나하나가 다 공부였던거죠. 농사짓는 사람들은 자연에서 일어나

는 일들을 자신들의 삶으로 가져와서 활용합니다.

봄이 되면 소쩍새가 웁니다. 소쩍새가 봄이 되면 ‘소쩍 소쩍’ 이렇게 웁니다. 들어보셨죠? 근데 어떤 해

에 우리 동네 소쩍새는 ‘소텅소텅’ 이렇게 웁니다. 그러면 그 해 우리 동네는 흉년이 듭니다. 왜냐하면

솥이 텅텅 비기 때문에요. 놀랍죠? 내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어머니 이야기입니다.

어떤 해에는 소쩍새가 ‘소꽉소꽉’ 이렇게 웁니다. 그 해에는 풍년이 듭니다. 놀랍죠? 농사짓는 사람들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자기들의 이야기로 가져와서 만들었던겁니다. 제 어머니가 자연의 소리를

듣고 저에게 이야기해주면 저는 어머니가 말하는 것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그게 시가 되었습니다. 농사

짓고 사는 사람은 시인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시인이라는 게 글로만 표현되는 게 아니고 일상적이고 구

체적인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을 자기의 이야기로 가져오면 그게 글이 되고 예술이 되는 거죠. 아주 구

체적인 삶이였던거죠. 봄이 되면 참나무 잎이 뒤집어집니다. 산 위로 바람이 불면 하얗게 뒤집어져요.

그러면 우리 어머니가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용택아, 저렇게 참나무 잎이 뒤집어지면 3일 후에 비가

온다.” 이렇게 이야기를 해요. 그러면 3∼4일 후에 정말 비가 와요. 개미가 이사가면 비가 오죠? 농사

짓는 사람은 자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이야기를 농사로 만들었던 겁니다.

농 부 는 예 술 가 이 고 시 인 이 며 철 학 자 입 니 다

농부들로부터 시를 배웠고 제 삶과 인생을 배웠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바람이 하는 일을 정확히 압

니다. 햇살이 하는 일을, 물이 하는 일을 정확히 압니다. 인간들이 세 가지 하는 일을 정확히 아는 것이

삶입니다. 철학사나 과학사를 따라가다보면 시작은 다 이 세 가지에 불을 붙여서 인류가 발생했습니다.

농사짓는 사람은 이미 오랜 세월부터 융합을 알았던 겁니다. 바람과 햇살과 물이 융합되어 있는 흙에다

가 생명을 뿌려서 생명을 가꿔서 나눠 먹고 너도 먹고 같이 먹었습니다. 상생의 가치죠. 농사짓는 사람

은 다 예술가이고 시인이며 철학자였습니다.

가 르 치 면 서 배 우 는 것 , 그 것 이 교 육 입 니 다

저는 오랫동안 초등학교 선생을 했습니다. 38년을 했는데 주로 2학년을 가르쳤습니다. 교육은 놀랍게

도 가르치면서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가르친다고만 생각하는데 가르치면서 배우지 않으면 교

농부들로부터 시를 배웠고 제 삶과 인생을 배웠습니다.

농사짓는 사람들은 바람이 하는 일을 정확히 압니다.

햇살이 하는 일을, 물이 하는 일을 정확히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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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2 023

육이 아닙니다. 너무 많은 것들을 2학년이 가르쳐줬습니다. 매 순간이 공부였습니다. 이루 말할 수 없

는 찬란한 하루하루였죠. 저만큼 인생을 잘사는 사람 아직 못봤습니다. 2학년 아이들이 저에게 가르쳐

준 것은 정직과 진실이 통하는 삶이었습니다. 정직하고 진실이 통했기 때문에 진심이 다가옵니다. 아이

들은 내가 이만큼 좋아해주면 아이들은 저를 요만큼 좋아해줍니다. 엄청난 일들이 벌어지죠. 진심이 통

하는 삶, 이게 가장 아름다운 삶입니다. 진심이 통하는 사람하고 우리는 같이 삽니다. 그렇죠? 우리는

진심이 통하는 사람과 결혼하죠. 진심이 통하는 삶처럼 세상에 아름다운 삶은 없습니다. 진심이 통해야

내 마음을 줘서 저 사람이 내 마음을 받고 저 사람 마음을 내가 받을 때처럼 행복한 게 어디 있습니까?

이게 진심이 통하는 세상입니다. 진심이 통하기 때문에 아이들의 삶은 진지하고 진정성이 있습니다. 놀

라울 정도로 진지하죠. 진정성이 있습니다.

여러분, 아이들 가르쳐봤죠? 아이들이 선생님에게 제일 많이 하는 질문은 “선생님 나가서 놀아도 되

요?”입니다. 하루종일 이르는 것은 “오빠가 때려요.” “언니들이 싸워요.” “유리창이 깨졌어요.” 근데

제가 선생을 해보니까 오빠가 때려서 죽은 놈도 없고 언니하고 싸우는 것도 별 나하고 상관없는 것이에

요. 그래서 나중에는 이르는 내용은 안 듣고 이르는 모습을 바라볼 때가 있습니다. 어쩌면 저렇게 아무

것도 아닌 것을 원망할 수 있을까? 놀라운 일이죠.

그런데 더 놀라운 건 그렇게 아이들이 진지하게 때문에 모든 게 새롭습니다. 초등학교 아이들 가르치

는 분 계세요? 네, 초등학교 아이들은 모든 게 새롭습니다. 그러니까 어디에 갖다놔도 그것을 자기 것

으로 만듭니다. 모래밭에 갖다놓으면 신발이 차가 되고, 냇가에서는 신발이 배가 됩니다. 하루 종일 놀

아요. 모래를 자기 것으로 만들어요. 어른들처럼 재고 계산하고 이런 게 아니고 놀 줄 압니다. 놀 줄 알

아야 살 줄 압니다. 모든 것이 새롭고 신비해야 감동을 합니다. 감동은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고 느끼

게 되어 생각과 행동을 바꿉니다. 생각과 행동을 바꾸면 삶이 바뀌고 삶이 바뀌면 세상이 바뀝니다. 공

부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자세히 들여본 후 감동해서 생각과 행동을 바꾸고 우리들의 삶을 바꿔

서 세계를 바꾸는 일입니다.

공 부 는 우 리 의 삶 을 풍 요 롭 게 합 니 다

예술은, 모든 인간의 활동세계를 바꾸는 일이 되어야 합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글쓰기를 가르칩니다.

아이들은 문학에 대해 알지를 못합니다. 언어가 안 통합니다. 그래서 제가 아이들에게 하나의 나무를 바

라보는 법을 가르칩니다. 아이들에게 각자 나무를 하나 정해주고 그 나무에서 일어나는 일을 글로 쓰게

합니다. 1년 내내 한그루만 바라보라고 하고, 바라보기는 바라보는데 자세히 보라고 합니다.

자세히 봐야 무엇인지 알게 됩니다. 무엇인지 알아야 이해가 되고 이해가 되어야 내 것이 됩니다. 내 것

이 될 때 비로소 인격이 됩니다. 지식이 인간을 가꾸어주는 인격이 되는 것입니다. 많이 공부하면 훌륭

한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그것을 안 가르치죠. 지식이 인격이 되는 것이 아니고

많이 알면 점수를 많이 받는 공부만 됩니다.

제가 물었습니다. “경수야, 네 나무 어떻게 하고 있대?” 경수는 이렇게 말했어요. “제 나무는요. 마을

앞에 느티나무인데요. 학교 오면서 보니까 느티나무에 할아버지들이 놀고 있었고요. 그 앞에 시냇물이

흐르고요. 시냇물 건너편에는 들판이 있었는데 들판에서는 사람들이 모내기를 했어요.”

놀랍죠? 그래서 그것을 써봐! 라고 했어요. 그러면 그게 글이 되는 겁니다. 공부란 하나를 알려주면 열

을 아는 것이어야 하는데 우리는 하나를 가르쳐주면 하나만 알게 합니다. 고민과 생각을 하면 안 되는

거죠. 생각을 못하게 하는 거예요. 이걸 알려주면 요것만 알아야 하지 옆에 뭐가 있다고 생각하면 대

학에 떨어집니다.

공부란 하나를 가르쳐서 열을 아는 것입니다. 자, 아이들이 하나를 알게 되서 열을 알게 되면 지식이 인

격이 됩니다. 인격이 될 때 사람들은 비로소 관계를 맺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이 앉고 있는 의자가 없

다고 생각해봐요. 여러분은 의자와 관계를 맺고 있습니다. 관계는 갈등을 가져옵니다. 제가 구두를 샀

는데 뒤꿈치가 아파요. 에이 모르겠다하고 그냥 신었더니 신발하고 뒤꿈치가 화해를 해요. 갈등이 조

정되고 조절되어서 조화로운 신발이 된 거죠. 갈등이 조절되고 조정해서 조화로운 삶을 살려고 할 때

사람들은 생각이 일어납니다. 생각이 중요하죠. 사람들은 생각을 따라 하기 때문이에요. 생각을 키워

주고 생각을 길러주고 생각을 조직하고 생각을 표현해서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게 공부입니다.

예술은 특히 그렇죠.

제가 가르친 아이들의 시입니다.

아버지강슬기

아버지의 일은 회사 일이다.

회사 일은 어렵겠다.

일이 꼬이면 풀기가 어려우니까

줄넘기 두 개가 꼬이면

풀기 어려운 거하고

회사 일은 같겠다

중간고사5학년 임채훈

오늘은

시험 보는 날.

나는 죽었네.

나는 죽었어.

왜냐하면

꼴등을 할 테니.

나는 죽었네

뭘 써요. 뭘 쓰라고요?문성민

시 써라.

뭘 써요?

시 쓰라고

뭘 써요?

시 써 내라고!

네.

제목은 뭘 써요?

니 맘대로 해야지.

뭘 쓰라고요.

1번만 더 하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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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4 025

벚나무윤예은

벚나무는 아름다운

꽃이 핍니다.

나는 아름다운 벚꽃을 보면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나는 그게 아주 좋습니다.

콩, 너는 죽었다

콩타작을 하였다

콩들이 마당으로 콩콩 뛰어나와

또르르또르르 굴러간다

콩 잡아라 콩 잡아라

굴러가는 저 콩 잡아라

콩 잡으러 가는데

어, 어, 저 콩 좀 봐라

쥐구멍으로 쏙 들어가네

콩, 너는 죽었다

언니양승진

언니가 코를 골아요.

코굴코굴 참 시끄러워요.

숨이 팔딱팔딱 뛰어요.

동시를 안 쓰고 잤어요.

언니가요.

쥐2학년 서창우

쥐는 나쁜 놈이다

먹을 것을

살짝살짝

다 가져간다

그러다가 쥐약 먹고 죽는다

아침

거미줄에

이슬이

동글동글

바람에 흔들린다.

가만히

들어보면

음악이 들릴까?

여름2학년 서창우

이제

눈이 안 온다

여름이니까

그림입니다. 저는 그림을 손봐주거나 글을 손봐준 적이 없습니다. 그림을 가르친 적이 없어요.

뭐를 가르치냐? 그냥 빡빡하게 칠해라. 그렇게만 가르칩니다. (그림을 보여주며) 대단하죠?

이와 같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합니다. 생각을 정리한다는 것은 우리가 살아왔던 세상과 우리가 살고 있

는 세상과 우리가 살아갈 세상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공부란 우리가 살고 있던 세상과 살고 있는 세

상을 공부해서 우리가 살아나갈 세상을 창조하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념이 있습니

다. 신념이 있는 사람은 늘 새로운 것을 향해 갑니다. 새로운 것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게 하고 공감을

갖게 하고 감동을 갖게 합니다. 예술은 관심과 공감을 넘어서서 감동을 줘야 합니다. 이게 예술입니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모든 것이 관심과 공감과 감동까지 가야 하는데 거기까지 가서 멈추면 예술이 아닙

니다. 예술은 감동을 주어야 합니다. 왜? 세상을 바꿔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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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을 주는 것은 살아 있다고 말합니다. 생명력이 있는 거죠. 생명력이 있는 것은 나무에 있습니다. 자

연에 있습니다. 산은, 물은, 강물은, 바람은, 햇살은, 다 살아있습니다. 살아있고 생명력이 있는 것은 감

동을 주는데 한그루의 나무를 바라보고 있으면 나무는 언제보다도 완성이 되어 있고 언제 보아도 새로

워요. 우리가 예술작품을 계속 보는 이유, 음악을 또 듣는 이유는 그것을 언제 들어도 완성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또 듣게 되고 그림을 걸어서 계속 보는 이유는 완성되어 있으면서도 새로워

보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어제 봤던 게 오늘 보니 다른 느낌이 있어야 합니

다. 늘 완성되고 새로운 것들, 이런 것을 우리는 생명력이 있다고 합니다.

새 로 운 세 계 를 보 여 주 는 것 , 예 술

내가 아이들에게 나무를 보게 하고 자연을 보게 하고 눈이 오는걸 보게 하고 꽃을 보게 합니다. 눈은 언

제나 완성이 되어 있고 새롭죠. 나무에서 새가 날아서 앉으면 새로워 보이죠. 나무에 눈이 내리면 새로

워 보이죠. 늘 완성되어 있고 늘 새로운 게 예술입니다. 그것들은 왜 완성되고 새로울까? 모든 걸 받아

들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모든 걸 받아들이는 힘을 길러 주는 게 예술입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받아들이는 능력과 힘이 없으면

자기를 세상에 세울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모든 걸 받아들여야 내가 강하게 섭니다. 삶이란, 인

생이란, 예술이란 바로 그런 겁니다. 하루하루 생활하는 것과 구체적이고 섬세한 국면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강력함 힘이 필요합니다.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서 우리들

에게 보여주는 것, 그 때 그 작품은, 삶은, 인생은, 정치는, 경제는 살아있다고 합니다. 결국은 우리의

삶은, 교육은 세상의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힘을 키워줘서 그 힘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는 힘을 갖

게 하는 것입니다. 그게 여러분이 현장에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끝이 없습니다. 인생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합니다. 타고난 머리는 40∼50대에 끝납니다. 그러지 않으

려면 농사짓는 사람이나 아이들처럼 세상에서 일어나는 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을 자기의 삶으

로 귀하고 소중하게 가꾸는 자세, 그런 삶의 태도가 훌륭한 예술가와 예술을 탄생시키는 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고맙습니다.

모든 걸 받아들이는 힘을 길러 주는 게 예술입니다.

받아들이지 않으면 받아들이는 능력과 힘이 없으면

자기를 세상에 세울 수 있는 힘을 잃어버립니다.

모든 걸 받아들여야 내가 강하게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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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를 떠나 자유로와지다

그래픽 레코딩

유치벽 (연극예술강사)

배우인 나는 무대에서 가장 자유롭다. 무대가 자유로워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삶이란 얼기설기 얽힌 관계에 대한 두려움과 타인을 통해 직면하게 되는 나의 사회적 얼굴이 갖고 있는

소통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예술강사로 살기 시작하면서 교육연극은 가르치는 행위를 넘어섰다.

무대 밖의 나에게 자유를 주기 시작한 것이다.

주제 강연

그래픽 레코딩 사진

고광현 (만화애니)

저는 대전에 있는 극단 빈글에서 연극연출가와 배우로 활동하고 있고 학교 문화예술교육 9년차 연극

강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컨퍼런스 이야기를 접하고 우리 예술강사 선생님들하고 이야기를 나

눌 수 있겠느냐는 제의를 받았을 때 곤혹스럽고 망설여졌습니다. 제가 대단한 삶을 사는 것도 아닌데

기획자께서 그냥 지금까지 해왔던 것, 어떻게 연극을 시작했으며 예술강사는 어떻게 시작했으며 예술

강사 9년이 지난 지금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소소하게 이야기하면 된다고 해서 수락했습니다.

아 직 도 생 생 한 연 극 첫 대 사

제가 연극을 시작한 계기 중 첫 번째는 치맛바람에 밀렸던 억울한 기억이 있습니다. 60년대 중반 초등

학교 5학년 때 동극을 했습니다. 담임선생님께서 어버이날 그 행사를 주관해 5학년 학생 중에 캐스팅했

는데 그때 제목이 『검사와 여선생』이라는 신파극이었습니다. 저는 공부도 잘 하지 못했고, 어머니가 치

맛바람이 쎈 것도 아니어서 아무 힘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다른 공부 잘하는 친구와 치맛바람이 쎈 엄

마를 둔 친구들은 주인공인 여선생과 검사를 맡았고 나머지는 조연급이었습니다. 저는 재판장이 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얼굴이 크다 보니까 재판장이 어울린다 생각했거든요.(웃음) 근데 재판장도 못 맡고

순사역을 맡았습니다. 지금도 그 대사를 잊지 못합니다.

“여태까지 주무시지 않으셨습니까?”

한 문장이었습니다. 친구가 재판장인데 저보다 잘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상당히 억울했죠. 두 번째는,

경기도 평택에 객사리라고 있습니다. 면소재지에 5일장이 열리는데 1년에 두세 차례 정도 여성국극이

와요. 여승국극을 하는 분들이 약장수도 같이 합니다. 막간에 배우들이 나와서 저희들은 둘러앉아있고,

그 배우들이 앞에서 약을 선전하고 약을 파는건데요. 그때 봤던 배우들의 분장한 모습이 너무 놀라웠습

니다. 문화적 충격이 컸습니다. 그 분장 속에서 상당히 환상적이었던 어떤 것을 봤습니다. 제가 미군부

주제 강연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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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가 있는 곳에 살아서 초등학교 1학년 때 초콜릿 맛을 처음 봤는데 그 맛처럼 놀랐습니다.

제 기억은 초등학교 때의 배반감, 그리고 여성국극에서의 환상적인 모습이 연극의 기억입니다. 어찌

되었건 그게 제가 알고 있는 연극을 처음 만난 경험이었습니다. 제가 연극을 하게 된 계기는 선배들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대학생활 절반은 서클이다. 대학에 가면 꼭 동아리활동을 하라고. 그래

서 대학에 가면 연극반에 들어가야지 했습니다. 아마도 억울함과 환상 때문에 선택했던 것 같습니다.

연 극 은 나 의 도 피 처

대학을 들어가서 연극반에 들어갔습니다. 대전에 있는 대학에 갔는데 제가 사는 평택이라는 곳이 경기

도였고 그때만 해도 충남이었죠. 충남 대전에 있는 대학으로 내려간다는 사실이 저를 못 견디게 했습니

다. 대학에서는 방황했습니다. 연극반이 저에게는 도피처였고 저를 숨기고 욕구를 드러내는 공간이었

습니다. 학교 강의실에는 1년에 10번 정도 들어간 것 같고, 학사경고는 계속 받고. 어찌되었던 서클활동

하면서 존재 이유를 찾게 되었습니다. 무대 위에서 하찮은 존재였지만 무대에서 그렇게 공연을 하는데

있어 연기를 못해도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줬습니다. 의례적인 박수였지만 저에게는 존재이유가 되었습

니다. 그런데 어느 날 무대에서 그런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탑조명 안에 들어가 조명이 저를 비추

는 순간인데, 탑조명이 서서히 들어오는데 손에 있는 솜털들이 그 조명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듯한 착각

을 느꼈습니다. 그 상태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데 묘한 기분과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연 극 , 삶 의 의 미 가 되 다

그 이후로는 무대에 서는 것이 가장 행복했습니다. 가장 편안했어요. 그러나 밖에서는 그러지 못했습니

다. 밖에서는 개인과의 관계가 힘들고 낯설었습니다. 누군가에게 진심을 드러내는 게 힘들었어요. 어

렸을 때 힘들었던 건 엄마가 심부름을 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심부름 가서 먼저 말을 꺼내기가 힘들었

어요. 그래서 그 문 앞에서 왔다갔다하면 “치벽아 왜 왔어”하면 그때서야 이야기했습니다. 다른 하나

는 인사하는 것이 힘들었습니다. 인사의 타이밍을 맞추기가 참 힘들었는데요. 촌에서 살았을 때 아침

에는 인사를 하는데 두세 번 만나면 또 인사를 해야 하나라는 의구심이 있었습니다. 동네에서는 인사

를 못하는 아이로 알았지만 저는 타이밍 때문에 고민해서 인사를 못했던거였습니다. 그렇게 내성적이

었습니다. 근데 무대 안에서는 자유로워졌습니다. 그 자유로움을 느끼는 순간 연극이 나의 삶의 의미

가 되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고향이 북쪽인데 두 분이 백령도에서 만나 결혼했습니다. 그런데다 저는 장남이고 해서

아버지는 제가 엔지니어가 되기를 바랬습니다. 기술을 배워야 정착하기 쉽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저

는 장남인데 그걸 배반했죠. 아버지 바람대로 이과를 갔는데 연극만 했으니까요. 연극을 하면서부터

는 방학 때도 평택에 안가고 활동을 했습니다. 그래서 집과는 점점 멀어지고 부모님 뵐 때는 미안해지

고 힘들어져서 집과는 담을 쌓게 되었습니다. 군대 다녀와서는 집을 아예 안 갔어요. 대학 3학년 1학기

마치고 군대갔는 데 군대에서 제대하는 순간 고민이 뭐였냐면 나가서 연극을 할 것인가, 대학을 온전히

다니며 직업을 가질 것인가였습니다.

무대 위에서 하찮은 존재였지만

무대에서 그렇게 공연을 하는데 있어 연기를 못해도

관객들이 박수를 보내줬습니다.

의례적인 박수였지만 저에게는 존재이유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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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를 구 원 해 준 대 사 한 마 디

그때 군대에서 명화극장을 하는데 “바람과 라이온”이었습니다. 거기 보면 주인공은 아랍 쪽에서 독립

운동하는 사람이고, 미국인 부인을 납치해서 둘이 사랑에 빠지고 하는 줄거리인데, 이제 이 여자를 보

내줘야 할 때 여자가 묻습니다. “당신은 왜 그렇게 힘든 길을 가느냐고” 그 남자가 이런 대사를 합니다.

말을 타고 가면서 “그래도 나는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을 알고 가기 때문에 행복하다.” 그런데 그 대사가

고민하는 저를 구원했습니다. 그래서 군대 다녀와서 학교를 그만두고 기성극단에 들어가 연극을 본격적

으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지역에서 연극한다는 건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경제적으로도 그렇게 성취로

도 그렇고. 연극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이후로 1년에 한번 정도 집에 가는데, 제일 괴로운 건 추석과 설

날입니다. 주머니에 돈은 없으니 갈 수 없고, 선물을 살 정도만 있어도 가겠는데 차비 정도밖에 없어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연극하는 친구들끼리 추석이되면 3박 4일 정도 텐트와 낚시대들고 대청댐

에 갑니다. 거기서 3박 4일 보내고 극단으로 돌아옵니다. 이런 생활을 한 10년 정도 했던 것 같습니다.

연 극 에 서 만 난 운 명

아버님이 돌아가실때쯤 연락이 왔어요. 암으로 병원에 계시는데 병원에서 더 이상 손쓸게 없어 퇴원하

라고 한다고 선고를 받고 누나에게 전화 와서 찾아갔습니다. 병실에서 하루를 자기로 하고 밤 10시쯤 아

버지가 주무시더군요. 그래서 나와서 포장마차 가서 소주를 4∼5병쯤 마시고 2∼3시쯤 병실에 들어갔는

데 혼자 앉아 있으니까 아버지가 “유치벽”하고 부르더라고요. “예”하니까 아무 말씀 안하셔요. 2∼3분간

침묵이 흘렀습니다. 견디기 힘들으셨겠죠. 제가 그때 39살이었는데 제가 먼저 이야기했습니다. “아버지,

장가갈까요?”하니까. “그래”하시대요.

그때 마침 연극하는 친구와 만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나서 결혼하자 그러니까 당황을 하죠. 그래서

결혼하자고 한 후 일주일 만에 처갓집에 인사하러 갔습니다. 그 친구와는 15살 차이가 나는데 처갓집에

가서 인사를 드리는데 장인어른이 어이가 없나보더라고요. 한참 둘의 얼굴을 보더니 처남한테 둘이 이

야기해라 하고 나가셔요. 처남과 술을 마시는데 어떻게 할려고하냐 그래서 아무 대답도 못하고 결혼하

겠습니다 했더니 처남도 아무 말 안하더라고요. 너무 어렵게 생각하고 갔는데 너무 어이가 없다보니 말

릴 상황이 아니라고 봤나봐요. 결국 인사드린지 한달만에 결혼했습니다. 아버님은 그때 퇴원해서 집에

계셨고 식장에도 못 오셨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유일하게 효도한 게 그겁니다. 39살에 결혼했는데

그 친구도 배우하고 연출하다보니까 먹을 게 없었죠. 근데 어찌하다보니 굶어죽지는 않더라고요. 처갓

집이 동네에서 슈퍼를 했는데 이 친구가 2∼3일에 한 번씩 가방을 메고 나가서 슈퍼에서 먹을 걸 가져

왔습니다. 아직까지 철이 없어서 행복했나봅니다.

예 술 강 사 의 길 을 알 려 준 아 내

세월이 지나다보니까 친구도 지치고 저도 지치고 특히 저는 역할을 잘 못했습니다. 연극만 하다보니

까 남편으로서의 역할, 부부끼리의 역할을 못했습니다. 그런 역할을 해본 적이 없으니까요. 연극에서

는 했지만. 그러다보니 서로 어려워졌습니다. 이 친구가 지금도 저를 선생님이라 부르는데 이미 이 친

구가 저랑 결혼할 때는 제가 평생을 연극할 걸 아는데 왜 불만을 가질까라는 철없는 생각을 했고요. 그

래서 서로의 역할에 대해 생각하고 이건 아닌가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때쯤 예술강사가 시작되었습니

다. 그 친구는 지금 10년째 연극강사하고 있는데 그 친구가 예술강사 시작한지 1년 후에 조심스럽게 이

야기하대요, 선생님, 혹시 예술강사 할 생각없냐고요. 힘든 시기인줄 알았기 때문에 싫다고 할 수 없

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못해 했습니다. 예술강사를 한다는건 참 힘든 일이었습니다. 제가 자랑할건 아

무것도 없고, 마흔 여덟이었던가, 그때까지 오로지 연극만 하고 살아왔다는 게 자랑이었다면 자랑이었

죠. 그만큼 예술강사를 한다는 게 힘들었다는 걸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인데요. 그 제의에 대해서는 예

스했습니다. 처음으로 연수를 받고 초등학교를 나갔습니다. 근데 지나고 보니까 예술강사를 한다는 게

저에게는 상당히 변화를 줬습니다.

저는 2가지 일을 못하는 성격입니다. 연극을 연출할 때 다른 곳에서 공연을 하자고 제안이 들어오면 절

대 못합니다. 일이 겹치면 절대 못해요.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건 불가능했습니다. 제가 어떤 책을

읽을 때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으면 끝까지 못 읽는데 그런 성격인 저였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듯이

연극적인 이야기를 빼놓고는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없습니다. 그런 처지였습니다. 물론 겉으로는 이

야기를 할 수 있었죠. 근데 그건 연극훈련을 통해 전하는 이야기였지 진심을 이야기한 적은 없었습니다.

교 육 연 극 을 통 해 변 화 가 생 겼 습 니 다

그런데 교육연극을 만나고 나서부터 저한테 변화가 생겼습니다. 아이들이 자유롭게 자기 의견을 드러

내고 자기 생각을 거리낌 없이 하는걸 보고 나서 저도 그들을 리드하다보니까 그래야 되고 해서 자연스

럽게 3년 지날 때 어떤 일을 동시에 하고 있더라고요. 예술강사를 하면서 연극을 병행하는 게 힘들었는

데 그걸 병행해가면서 하는데도 결과는 별로 모자름이 없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어떤 때는 일을 3~4

개 동시에 하기도 했습니다. 근데 동시에 하더라도 하나만 할 때와 별 차이 없더라고요. 한 번도 저에

대해, 제 자존에 대해, 능력에 대해 긍정해본 적이 없었던 거죠. 두려웠던거죠.

저는 지금도 분장을 할 때 행복합니다. 분장을 하는 건 숨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여자들이 짙게

메이크업하는 이유를 연극하면서 알았습니다. 예쁘려고 하는 게 아닌지 압니다. 분장, 화장을 짙게 하

는 것은 안에 있는 욕구와 자유로움과 지금의 나를 숨기고 또 다른 나를 드러내고 싶은 거죠. 저도 무대

에서는 그랬습니다. 메이크업하면 자유롭고 편해지고 했습니다.

지금 이곳처럼 이렇게 환해지면 불편해집니다. 컴컴할 때 자유로워집니다. 밝은 곳으로 나가고 이러면

힘들어집니다. 가서 어물쩡거리고 인사도 못하고 망설였는데 아이들하고의 만남으로 인해 그런 모습들

이 나도 모르게 비뀌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아이들과 만나거나 어느 분과 만나도 자유롭게 이야기

를 하게 됩니다. 제가 마음속 이야기를 편하게 전달하는 편입니다.

무 대 밖 에 서 얻 은 자 유

예술강사하면서 저에게 가장 큰 선물은 무대 안에서 자유로움이 아니라 무대 밖에서 자유롭게 시작했

다는 것입니다. 제가 아이들을 변화시키기 위해 교육연극을 하고 있지만 그건 거꾸로 저를 변화시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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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3ㅣ2012 예술강사의 발(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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것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아주 많이 변화했고 여러분에게 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제가 변화했다

는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예술강사를 하고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제가 변하고 성숙한 인간, 사회적인

인간으로 설 수 있었다는 게 행복합니다. 교육연극이 저에게 준 건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생기는 기쁨입

니다. 두 아이를 잊지 못합니다. 한번은 제가 잘못 들었을 수도 있는데, 수업이 끝나고 나오는데 한 아

이가 제 손을 붙잡고 아빠라고 불러요. 지금도 아빠라고 확실히 이야기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그렇

게 들렸습니다. 그 친구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게 했을 겁니다. 근데 그 순간 가슴이 덜컥 멈추는 것

을 느꼈습니다. 온 몸에 전율이 오더군요. 또 한 아이는 1학기가 끝내고 여름방학 들어갈 때였는데 1학

년 아이가 쫓아와서 ‘나 선생님 쫓아가고 싶다’그래요. 아, 그래서 정말 행복했습니다.

행 복 한 예 술 강 사

그래서 저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연극하는 것도 행복하고 예술강사를 하는 것도 행복합니다. 제가 올

해 56살인데 아마 이 예술강사를 몇 년 못할겁니다. 그럼에도 저는 연극자리하고 교육연극자리하고 함

께 하고 있을 것입니다. 나이 들어 몸이 부실하고 이야기도 부실하고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전하기 힘

들 때까지 그렇게 살면 행복할 것 같습니다. 우리 선생님들도 예술강사 하면서 많은 보람 느끼며 성취

를 느끼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저는 그래서 예술강사를 하고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제가 변하고 성숙한 인간, 사회적인 인간으로 설 수 있었다는 게 행복합니다.

교육연극이 저에게 준 건 아이들과의 만남에서 생기는 기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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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hink디자인 씽크

그래픽 레코딩

이효광 (디자인예술강사)

Design thinking 이란 여러 가지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디자이너의 감수성과 작업방식을

이용하는 사고방식이다. 오늘날 기업들은 디자이너들에게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소비자의

요구와 욕망에 좀 더 잘 부응하라고 지시한다. 과거엔 디자이너들의 역할이 전술적인 데 그쳤기 때문에

가치 창조(value creation)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반면 오늘날 디자이너의 역할은

전략적이며, 이전과 달리 새로운 형태의 가치 창조를 선도하는 것이 되었다.

지식공유 / 발굴

그래픽 레코딩 사진

김영순 (만화애니)

사전 인터뷰 영상 지식공유 영상

강 의 를 하 게 된 이 유 는 ?

저는 사실 오늘 수업이 있는데 휴강을 하고 이걸 하고 있습니다. 네, 기대하실 정도는 아니고요. 제가

오늘 여러분들이랑 할 얘기는 제 생각이에요. 그러니까 제가 컨퍼런스 홈페이지에 멋있게 써 놓은 말은

정의가 아니라 그냥 제 생각입니다. 그냥 쉽게 제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오늘 여러

분한테 드리고 싶은 말은, 처음에 컨퍼런스 발표 제의를 받았을 때, 거절을 했었거든요. 두세 번 거절을

했었는데, 예술가와 교육자의 만남이 예술강사라면 사실 저는 예술가 플러스 교육자가 아니라 강사 플

러스 디자이너거든요. 그래서 맥락이 달라서 처음엔 거절을 했었는데, 저를 인터뷰하신 선생님께서 ‘이

이야기는 충분히 말할거리가 된다’고 이야기를 하셔서 이렇게 한 부분을 맡아서 얘기를 하게 되었고요.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제 이야기 입니다. 여러분들 나름의 정의가 있겠지만 제가 생각

하는 예술교육은 어떤 것인지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이야기를 듣고 본인의 생각과 좀 다르다면 다르다

고 생각하셔도 되고, 같은 부분이 있으시면 같다라고 생각하셔도 상관이 없을 거 같아요.

저는 현재 예술강사 디자인분야 대표를 하고 있어요. 대표는 뭐 제가 훌륭해서 된 게 아니고요. 예술강

사 하시는 선생님들 중에서 제가 집이 제일 가깝다보니까 대표를 하고 있어요. 그 담에 호서전문대 경

영정보과에서 겸임 교수를 하고 있고요. 중앙대학교에서 인터렉티브랑 비주얼 이펙트 강의하고 있고,

동서울대학교에서도 인터렉티브 강의 하고 있습니다. 그밖에 여러 가지 디자인 노동을 하고 있는데요,

홈페이지도 만들고 전화로 뭐 만들어 달라면 다 만들어 줍니다.

나 만 의 교 육 방 법 론 은 ?

오늘 절대로 얘기해서는 안 될 내용이, 진흥원에 대한 불만은 얘기하면 안 된대요. 그 불만이라고 하는

게 저는 진흥원에 대한 불만을 얘기하면한 세 시간 네 시간동안 얘기할 수 있어요. 차라리 처음부터 이

런 이야기를 해달라고 저한테 얘기를 했었으면 흔쾌히 아우 당연히 ‘제가 한번 얘기해보겠습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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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을텐데 그런 불만을 말하는 자리는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되게 훌륭한 교육자가 아니에요. 전 학생

들을 굉장히 좋아는 하는데, 제 교육방법이 정확하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제가 공부를 많이 해서 정리

를 하고 이런 게 아니라, 제 나름대로의 교육 방법론을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래서 이런 이야기

들은 금지를 해주셨으면 하는 게 오늘 이 컨퍼런스의 조건이었거든요.

그래서 디자인 전공자분도 많으신데 디자인 사고가 예술 강사로서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에 대한 얘기와,

디자인도 과연 문화예술인가? 라고 하는 부분이 한번쯤 얘기해보고 싶었습니다. 종종 다른 분야의 선생

님들이, 술을 드시면서 디자인이 무슨 문화예술이야 라고 그러시거든요. 그러니까 우스갯소리로 “야, 디

자인은 사실은 문화예술교육에는 좀 약해.” 막 이런 식으로 농담을 하시는데, 저는 디자인도 문화예술이

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이제 이런 얘기도 잠깐 타 분야 선생님들과 함께 얘기를 해보도록 하구요.

그 다음에 문화예술교육이란? 제가 생각하는 문화예술교육이란? 이런 거에 대해서 잠깐 얘기해보고, 그

다음에 제가 생각하는 미래를 위한 문화예술교육, 진흥원에 그런 불만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문화예술교

육에 대해서 한번, 같이 얘기를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이 과 생 , 예 술 을 탐 하 다

그래서 제 이야기를 먼저 하면요. 선생님들에게 제 이야기가 별로 궁금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들어주세

요. 저는 사실 이과를 나왔는데 누구나가 다 갖고 있는 생각이 있었어요. 남자라면 다 이과를 가야된다

라고 하는, 그래서 남학교에서는 누구나 다 이과를 지원을 하게 되죠. 저 역시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이과

를 지원했습니다. 수능공부 할 때 수능시험과 이성에 눈을 뜨면서 공부를 잘하지 못했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공부를 굉장히 못했습니다. 결국은 그냥 저냥 4년제 전자공학부 컴퓨터공학과에 들

어와서 1학년을 지냈는데, 학점이 1.73 정도가 나온 거에요. 그래서 아! 이거는 안 되겠다 싶던 시기에,

같이 살던 옆방의 형의 컴퓨터는 사진 한 장 다운받으려면 세 시간 네 시간 컴퓨터를 켜놓고 학교를 가

야 되는, 응답하라 1997 시절 그 정도쯤에 그 형이 컴퓨터에 포토샵을 처음, 하는 거에요. 그 형이 하는

걸 본 후, 형 나도 이런 거 되게 하고 싶다. 라고 얘기를 했죠. 그 형이 했던 얘기가 이게 컴퓨터공학과

애들이 배우는 거야. 그때 당시에는 디자인학과에서 그걸 배우지 않고 컴퓨터공학과에서 그걸 배웠다

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옆방 형의 컴퓨터를 보고 나서 생각을 좀 바꿔서 하게 됩니다.

그 후 전문대학교 광고디자인과를 들어갔어요. 이 학교는 실기는 안보고 그냥 수능 점수로만 보는 학교

였습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현대백화점 디자인홍보실에 취업을 했는데, 스스로 보이지 않는 벽을

느꼈습니다. 전문대 졸업했을 때 제가 되게 잘난 줄 알았습니다. 디자인을 잘하는 줄 알았어요. 나름 전

문대 학생들 중에서는 높은 성적을 받았고 그래가지고 되게 뛰어난 학생인 줄 알았죠. 그런데 제가 한

것은 이상한 디자인이 되버리는 거에요. 너무나 당연하게. ‘왜 이게 이렇게 되야됩니까’를 물어봐도, 어

느 누구하나 자세한 설명은 안 해주고, 그냥 다시 하라는 말씀만 하시는 거죠. 그러면서 보이지 않는 벽

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과연 내가 보이지 않는 벽을 느끼는 게 내 학벌 때문인가. 라는 생각을 처음 했

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 편입을 해서, 다른 회사를 또 들어갔어요.

디자인 사고가 예술 강사로서

어떻게 적용이 되는지에 대한 것과,

디자인도 과연 문화예술인가? 라고 하는 부분을

한번쯤 얘기해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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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3ㅣ2012 예술강사의 발(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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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 자 인 에 대 한 깊 은 고 민 을 하 다

스포츠 유통회사에 또 디자이너로, 진급도 했죠. 대리도 하고, 작은 회사다 보니 과장까지 했었는데, 이

렇게 되도 계속 뭔가 제 스스로가 보이지 않는 벽이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 과연, 저 사람들이 말하

는 디자인 실력이라고 하는 게 뭐지? 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러면 저 사람들이 말하는 그 실력이 학벌

이라면, 내가 ‘그 학벌을 따 줘야되겠다’는 생각을 하고 대학원에 들어갔습니다. 대학원에 들어가서, 교

수님과 함께 3년 동안 연구실 생활을 하면서 고민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디자인이란 뭔지에 대한 본

질적인 고민과 함께, 공부를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교수님의 일도 많이 했지만 여러 가지를 많이 배웠습

니다. 그래서 졸업을 하고는 삼익악기 공연기획팀에 들어갔어요. 그런데 사실 시각디자인 전공인데, 시

각디자이너로서 대기업에 들어간다는 건 굉장히 어렵습니다. 저는 들어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힘들더

라고요. 그냥 사람들이 아는, 이름을 대면 아는 곳에 들어가보자, 라고 해서 삼익악기라는 곳에 들어가

서, 대우가 굉장히 좋았습니다. 세종문화회관, LG아트센터 같은 포스터도 만들고 프로모션도 진행하

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이렇게 힘들게 공부를 했는데, 이게 과연 내가 그 벽을 없애려고 시작했던

게 맞는 것인가라는 회의가 들기 시작했어요. 혹시 이렇게 회사 생활만 하다보면 이대로 과연 내가 공

부한 디자인에 있어서 한번쯤은 고민을 할 시기가 왔습니다.

배 움 을 나 누 다

내가 배운 디자인을 활용을 하려면 남을 가르쳐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때부터 다시, 처음부터

물속으로 뛰어들어 교육활동이라는 걸 시작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다 했습니다. 학원에서도 해보고, 직

업학교에서도 해보고 불러주는 데서 다 하고 디자인 노동자 일도 하고, 쭉 하다가 좀 지나고 나니까 강

의도 많이 들어오고 그러더라고요. 아는 사람이 소개도 시켜주고 해서. 그러던 중에 예술강사 디자인분

야 시범사업을 하는 단체가 제가 나온 대학교에서 그걸 하게 되죠. 저도 참여를 했다가 1기 때 디자인

예술강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문화예술교육이랑 그때 처음 만나게 되었어요. 지금도 오전에는

초등학교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대학교 가서 수업을 하면 살짝 기분이 이상합니다. 오전에는 떠들고 무

슨 말만 하면 리액션 좋고 이런 애들을 보면서 수업을 하다가 대학교를 가면, 가만히 좀비같은 분위기

의 수업. 오전과 오후가 너무 다른 거에요. 근데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올해도 디자인분야를 중학

교 고등학교 넘어가잖아요. 근데 전 초등학교가 제일 좋은 것 같아요. 초등학생들이 제일 좋고 해서 지

금도 이렇게 계속 쭉 디자인분야에서 교육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디 자 인 은 무 엇 이 다 른 가 ?

제 얘기는 짧게 할 거에요. 오늘 컨퍼런스에서 제가 받은 시간이 한 시간 반에서 두 시간 정도가 되는

데 사실 제 이야기를 길게 할 필요는 없을 거 같고. 원래 계획은 한 시간 강의에 나머지는 여러분이 썼

던 주제를 가지고 얘기를 하는 이런 식의 개념이거든요. 제가 주제를, 원래 디자인 씽크를 넣지는 않았

습니다. 원래 제가 넣었던 거는 강사는 힘들고 아이들은 지루하고. 원래 그걸 제가 하고 싶었었어요.

그래서 요즘에 강사 매너리즘에 빠져서 옛날에는 안 그랬거든요. 자면 가서 깨우고 떠들면 조용히 하라

고 했었는데 요즘에는 자는 학생은 그 학생 나름대로 받아들이고, 열심히 하지 않는 학생은 열심히 하

지 않는 대로 받아들이다보니까 과연 이 올바를 교육자라는 거에 대해서 생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그

래서 강사 매너리즘에 빠져가지고 그 얘기를 하고 싶었는데 그 얘기는 벌써 다른 선생님이 찜하셨대요.

그런데 그 분의 경력이 한 9년차 10년차 되시니까 제가 그런 얘기를 하면 우습게 느껴진다는 거죠. 그

러던 중에 저를 인터뷰하시던 선생님이 디자인 씽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래서 이렇게 생각

한다고 했더니 오 그럼 그거 한번 해보세요. 라고 해서 이렇게 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딱 쓰니까 되게 디자인 전문가처럼 보여서 처음에는 이걸 빼달라고 했거든요. 그리고 아까 동영

상 띄운 것도 사실은 별로 할 말이 없었어요. 이 얘기를 되게 진지하게, 옛날과 달리 디자이너는 창조

적 역할을 하고 소셜 이노베이션을 이끕니다. 이런 식으로 얘길 하면 아무런 재미가 없을 거 같아서 그

냥 찍고 이런 식으로 했습니다. 저는 몰랐는데 다른 선생님들이랑 얘기하다보니까, 디자인 분야의 수

업을 되게 궁금해하시더라고요. 디자인은 어떻게 수업을 할까 또 이 디자인을 똑같은 다른 분야 선생

님이 봤을 때 미술이나 이런 거랑 되게 비슷한데 뭐가 어떻게 다릅니까 라고 많이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해드렸던 말이 기존에 있는 걸 그리는 게 아니라, 제가 하는 디자인 수업은 지금 당장 미

술 실력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미래를 보는 거다 라는 말을 하거든요. 아이가 자라서 어떻게 될지 모르

잖아요. 이 아이가 진짜 먼 미래에 어떻게 될 지 모르는데 그 아이의 행동이 나로 인해서 바뀔지도 모른

다는 생각으로 수업을 하고 있습니다. 제가 대학에서 수업을 하면 자는 학생은 쫓아가서 다 깨워요. 그

리고 게임을 하는 학생이랑 웹툰을 보는 학생은 가만 놔둡니다. 그 이유는, 웹툰을 보는 학생에게는 항

상 그런 말을 해요. 니가 웹툰을 보다가 나중에 진짜 유명한 시나리오 작가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 거다.

니가 프로게이머가 될지 아무도 모르는거다. 근데 먼 훗날 니가 성공을 해서 인터뷰를 할 때 지금 이 영

광을 누구한테 돌리고 싶습니까 하면 대학교 때 제가 편하게 웹툰을 보게 해 준 게임을 하게 해 준 우리

이효광 선생님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라는 말이 나올 수 있게. 그러니까 자면 안 되고 그 외 모

든 거는 다 하게 해 줍니다. 그래서 이런 거에 있어서 다른 사람과 다른 게 혹시 제가 이 디자인을 전공

을 했고 이런 걸 배워서 그러는 건지 대학 얘기 때문에 잠깐 넣었던 거에요.

디 자 인 의 변 화

전공자분도 많으시고 한데 제가 잠깐 디자인에 대해 말씀을 해드리자면, 옛날에 이 그림 보신 적 있으

신가요? 휘페리테스라고 하는 되게 유능한 변호사가 자신의 여자 친구인 프뤼네의 옷을 벗기는 장면

이죠. 디자이너들 사이에서 예전의 디자인을 설명하라고 하면 이 사진을 딱 보여주는 경우가 많아요.

왜 그러냐면 헤테이라고 하는 사람은 당시에 몸을 파는, 직업여성이라고 하죠. 이때 당시에는 이런 일

을 하는 여성이 굉장히 성행을 했대요. 그런데 이 여자가 아름다워서 여신을 조각할 때는 이 여자의 몸

을 보고 조각할 정도로 이 여자의 몸이 엄청 아름다운 여성이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 여성을 사

랑한 대법관이 자기의 사랑을 안받아주니까 너는 이제 죽어야 한다고 하면서 법정에 세운겁니다. 법정

에 세워서 심판을 하는데 남자친구가 반론을 하다가 안 되니까 이 여자의 옷을 벗기죠. 그러면서 여러

분들은 이렇게 완벽한 여신의 몸을 한 이 여자를 죽이시겠습니까? 라고 했더니 대법관이 마지막에 그

런 말을 했답니다. ‘이 여자의 몸은 인간의 영역을 벗어나서 신의 영역이라서 인간의 법으로는 안 된다

이 여자한테는 무죄를 선고한다’는 말을 했대요. 그래서 이전에는 디자인이 무조건 아름답게 만드는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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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3ㅣ2012 예술강사의 발(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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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감성이랑 매력도가

엄청나게 높아도 안 예쁘면 안 사고,

예쁘면 필요 없어도 사던

그런 전통적인 역할에서,

요즘에는 쓰임의 사용성이

점점 같이 커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의 디자인이 굉장히 유행을 했죠. 그리고 아름답게만 만들기 위해서 굉장히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그

래서 이 필립스탁이라고 하는 산업디자이너, 아시는 분도 많으실텐데 이 사람이 2011년도에 자기가 자

기 입으로 얘기한게 2년 안에 자기는 디자인을 그만두겠다고 얘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어마

어마한 디자이너에요. 우리나라로 따지면 서태지와 아이들같은 전설적인. 그런데 이 사람의 작품은 항

상 그런 비판을 들어요. 예쁘기만 하고 쓸모는 없다. 그러니까 쓰기에는, 일하기에는 너무 예쁘다는 비

판을 많이 듣죠. 이렇게 마찬가지로 계속해서 그냥 이거를 레몬을 짜기 위해서 사는 사람은 정말 소수

고 장식을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하는거죠. 그래서 그랬던 것들이 점점 바뀌기 시작합니다.

아 름 다 움 에 서 실 용 성 으 로 의 변 화

1990년대에 들어서면서. 예전에는 사장님이라고 하면 다 이런 가죽의자에 앉았잖아요. 이러면서 유행

을 타던 게 허만 밀러사의 이 의자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이 의자는 150∼160만원정도 하고 지금도

가장 많은 CEO가 갖고 싶어하는 의자죠. 처음 나왔을 때는 디자인적인 매력도는 10점 만점에 4점, 편

할 거 같다는 생각은 10점 만점에 8점을 받았는데, 지금 현재 최고의 의자다라는 찬사를 받는 그런 의

자가 되었어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조금씩 생각이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전에는 감성이랑

매력도가 엄청나게 높아도 안 예쁘면 안 사고, 예쁘면 필요 없어도 사던 그런 전통적인 역할에서, 요즘

에는 쓰임의 사용성이 점점 같이 커져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에는 보시면 현대카드, 현대카

드 혹시 갖고 계신 분 보시면, 카드의 라운딩이 다르대요.

라운딩이 다른 카드는 약간 더 굴곡이 있는데 현대카드는 1미리랍니다. 1미리를 깎기 위해서는 다른 카

드의 네다섯 배 정도 되는 돈을 들여야 한대요. 근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카드를 계속 고집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카드에다가 알파벳을 써서 문화와 생활까지 같이 디자인을 해주는 거죠. 사용하면 너

한테 이게 좋으니까 이걸 써라. 라고 하는 기존의 그냥 카드와는 약간 다른, 여러분에게 어떻게 사용

했을 때 어떤 효과가 있는지까지 제안을 하는 이런 것까지 디자인이 넘보게 되었습니다. 해서 요즘에

는 누구나 다 스마트폰과 멀티미디어를 이용하고 있지만, 요즘 초등학생 교실을 보시면, 오늘 아침 뉴

스도 나왔는데 보신 적 있나요? 초등학교에 책을 보고 있는 학생은 한 명, 운동장에는 아무도 없고, 모

든 학생이 삼삼오오 모여서 스마트폰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만큼 이제 바로 앞에 있는 사람이랑도 카

카오톡을 하는 이런 세계. 책도 여기 안에서 보고 영화도 이걸로 보고 그러니까 점점 큰 티비도 사라진

다는 얘기를 하죠. 모든 사람들이 손안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이런 것까지 디자인 하나로 생활의 라이

프스타일까지 바뀌게 됩니다.

사 람 들 의 마 음 까 지 바 꾸 는 디 자 인 사 진

그래서 발전되는 것을 좀 얘기를 하기 위해, 보신 적 있으신가요? (영상) 자, 이런 식으로 여러분들이 보

시니까 어떠신가요? 그냥 지속가능한 발전. 그러니까 저는 이걸 보면서 한가지 되게 마음에 와 닿았던

게 ‘진정한 사막이란 상상력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는. 사실 이게 디자인교육과 굉장히 밀접하거든요.

문화예술교육과도 밀접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식으로 한쪽에 시소 모양을 닮은 아이의 말을 듣고 펌

프를 시소 모양으로 만들었다든지, 이런 것들이 문화예술교육에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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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국악이든 영화든 연극이든 간에 아이들의 상상력을 키워주는 수업이 주가 되어야 된다는 생각

으로 영상을 보여드렸고, 디자인은 현재, 디자인싱크라는 건 이런 식으로 많이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최근 디자인을 좀 더 쉽게 정의를 한다면 디자인은 나의 행동의 변화를 이끌 정도까지 발전을 했어요.

예전에는 디자인이라고 하는 직업 자체에 특수성이 있었다고 한다면 요즘에는 모든 사람이 다 디자이

너다라고 할 정도로 많이 바뀌었잖아요. 그리고 생활주변에 디자인 아닌 게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여

러분이 바뀌어서, 디자인 씽킹이나 소셜이노베이션 자체들이 제품을 만들거나 아름답게 심미성만 추

구하는 것을 벗어나서 소비자의 행동이나 사람들의 마음까지도 다 바꿀 수 있게끔 되었다고 하는거죠.

왼쪽 아래에 있는 두 사진은 요즘 디자인분야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서비스디자인에서 나오는 얘

긴데 처음에는 요런 식으로, 고지서를 보낼때에 니가 쓴 전력량과 니 주변, 그리고 보통 사람이 쓰는 전

력량을 다 표시를 해주는 겁니다. 이렇게 써주고 났더니, 사람들의 전력소비량이 엄청나게 확 줄었답니

다. 그러니까 사람의 이상한 심리가,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이 쓴다고 생각하면 줄이게 된다는 거죠. 이런

식으로 표 하나만 넣어줬는데 전력소비량이 굉장히 많이 줄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옆에 있는 사진은 서

비스 디자인에서 많이 나오는 사진인데, 잘 보시면 여기에 신호등이 있잖아요. 그래서 차가 여기 정지

선을 넘어가게 되면 신호등을 보지 못해서 출발을 할 수 없게 되는 거에요. 그래가지고 항상 차를 신호

등보다 뒤쪽에 세우게 되니까 사람들이 횡단보도를 차가 넘어가는 일은 없어졌다고 합니다. 이런 식으

로 예전에 예쁘게 만들고 꾸미는 게 디자인이었다면 지금은 이렇게 사회적인 부분인 공공기관을 넘어

서서 모든 게 많이 변하고 있습니다.

디 자 인 과 예 술 의 차 이 는 ‘ 목 적 ’ 입 니 다

그래서 오늘 오신 분들은 디자인 전공자분도 많으시고 타분야도 많으신데, 그러면 이제 여러분과 같이

얘기를 해봐야 하는 것에 대해서 얘기를 드릴까 해요. 디자인 씽킹이나 디자인이 이렇게 변하고 있다

는 하나의 얘기로 들어주시고, 디자인과 문화예술은 같을까요? 다를까요? 혹시 생각해보신 적 있으신

가요? 혹은 여기에 계신 다른 분야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냥 본인들이 아시는 디자인이랑 그냥 한 예

로, 저는 수업을 처음에 가면 디자인과 미술이 같을까요 다를까요 이걸 애들한테 가장 먼저 물어보거든

요. 그러면 애들이 미술은 그리는거고 디자인은 만드는거에요. 아니면 미술은 그리는거고 디자인은 꾸

미는거요. 똑같은 대답을 누구나 다 모든 학생들이 하죠. 근데 저는 이 디자인과 예술의 가장 큰 차이

점은 목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목적. 그러니까 그냥 만드는 게 아닌, 자신의 미적 욕구를 표현하기 위해

서 만드는 게 예술이라면,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야지만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애들한테 제

가 수업을 할때는 목적을 끌어내려고 많이 노력을 해요. 니 생각은? 왜 이렇게. 그리고 저는 절대로 애

들이 도와달라거나 그려 달래도 색연필 하나 안 댑니다. 왜냐면 그게 아이들의 것이고 아이들의 상상력

인데 제가 만약에 그리면 제 상상력이 들어가는 거 같아서요. 그래서 저는 한번쯤은 이 주제를 이번 컨

퍼런스의 주제로 생각할 정도로 심도 있게 얘기해보고 싶었어요. 디자인전공자가 아니신 선생님들도

이게 문화예술이라는 분야가 어떤건지에 대해서도 얘기를 하고 현재 디자인문화예술교육은 창의성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뭔가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이 디자인이다라고 해서 모든 부분과 사실 좀 겹쳐

자신의 미적 욕구를

표현하기 위해서 만드는 게 예술이라면,

목적을 위해서 만들어야지만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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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공예, 만화 애니, 여러 가지 분야와 겹치기 때문에 그래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디자인도 문화예술

이라는 겁니다. 어떤 면에서 그러냐면, 창의성 개념에 새로운 무언가를 만드는 것이 디자인과 겹치고,

디자인도 창조성과 심미성이라는 게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다는 거죠. 그러니까 외관을 심미성이 있어

서 자신의 미적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목적으로 가지면 이것도 예술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디자인도 저

는 문화예술이라고 생각을 해요.

훌 륭 한 예 술 교 육 은 ‘ 긍 정 적 착 각 ’ 입 니 다

마지막으로 제가 오늘 여러분에게 같이 얘기를 하고 싶은 부분입니다. 훌륭한 문화예술교육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나는 디자인 교육이다, 아니면 연극 교육이다 이렇게 생각하셔도 상관이 없습니다. 훌

륭한 문화예술교육은 저는 긍정적 착각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긍정적 착각이란 말 혹시 들어보신 적 있

으신가요? 인간은 착각하는 동물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런데 문화예술교육의 훌륭한 점은 아이들한

테 착각을 주는 게 가장 훌륭한 문화예술교육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아까 처음에도 말했듯이, 제가 생

각하는 거에요. 어떤 훌륭한 교육자가 말한 게 아니라, 수업을 할 제가 생각하는 훌륭한 문화예술교육

은 긍정적 착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착각이라는 거에 대해서 보면, 이 영화 보셨죠? 이 남자는

착각속에 빠져서 살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제가 잭 블랙을 되게 좋아해서. (영상) 이 남자는 착각하고

사는게 행운일까요 불행일까요? 만약 제가 이 남자라면 되게 좋을 거 같아요. 제 눈에 정말 아름다운

여성이 저를 정말 많이 사랑을 해준다면 행운일 거 같아요. 그런데 아이들한테도 똑같은 거라고 생각을

해요. 긍정적 착각을 주면, 아이들이 저는 커서 나중에 디자이너가 될 거에요. 저는 진짜 그림을 잘 그

릴거에요. 저는 뭐 나중에 정말 커서 훌륭한 의사가 될 거에요. 정말 훌륭한 예술가가 될 거에요. 라고,

착각 속에 빠지게 해주는 게 이 문화예술교육이 가져야 할 방향성이 아닌가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착

각하는 존재다 라고 하는 게 긍정적 착각으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게 됩니다. 실질적으로 심리학에서도 굉장히 많이 나왔던 얘기예요.

저는 초등학생들에게만은 아닌데, 저한테 얘기를 할 기회가 생기면 항상 행복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아까 그 가시오따스를 봐도 과연 이 발전이 누구를 위한 발전인지, 누가 행복하기 위한건지

이런 것들을 생각하듯이 저는 이 행복이라는 거에 대해서 좀 더 문화예술교육이 접근을 해야 한다고 생

각을 해요. 실질적으로 시험을 한 동영상도 있습니다.

커피 콜라 실험이라고 하는 되게 유명한 실험인데, 사람이 착각이 얼마나 다른 결과를 만드는지가 나와

요. 만약 제가 아이들을 차갑게 대했을 때 애들의 미래와 따뜻하게 대했을 때 애들의 미래, 그담에 내가

아이들에게 어떤 식으로 교육했을 때, 내가 교육을 조금이라도 잘못했을 때 아이들의 미래가 굉장히 많

이 바뀔 수 있다는, 정말 사소한 거 하나로도 아이들이 바뀔 수 있다는 걸 저는 이 동영상을 보면서 많

이 느꼈거든요. 실험내용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그냥 단지 몇 분 콜라를 들고 있었는지 커피를 들고 있

었는지에 따라서 사람의 착각이 바뀌게 되는 거에요. 그래서 어떻게 보면 이걸 보면 되게 세상 모든 게

하찮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영상) 보시면 그런 말이 나오죠. 착각 때문에 누군가를 굉장히 긍정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거를. 정말 굉장히 간단한 겁니다. 몇 분 동안 차가운 걸 손에 들었는지 따뜻한 걸 손

에 들었는지에 따라서 상대방을 대하는 게 달라진다는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걸 보면서 여러 가지 생

각을 하게 됩니다. 제가 면접을 볼 때 왜 따뜻한 커피를 준비하지 않았을까. 그러면 정말 좋은 회사를

들어갈 수 있었을텐데. 라든지 이런 생각도 했었는데. 아이들한테 착각을 하게 하고 좀 더 따뜻하게 대

하면 아이들은 이걸 가지고 좀 더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들더라고요. 그래서 이거에 대해서

저도 책도 보고 하는데, 거의 뭐 책보다는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시간이 더 많다보니까, 이런 걸 긍정적

착각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고 싶어 책을 찾다보니 와칭이라는 책이 있더라고요. 예전에 박진영이 힐링

캠프 나와서 한 거 보신 분 계신가요. 저는 그걸 보고 굉장히 놀랐던 게 신을 찾아가려고 하는 노력을

많이 한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양현석이 나와서 저는 열 살 때부터 했습니다 라고 하는데 그런 노력이

아니라 정말 나이가 먹었을 때 이거에 대해서 한 번쯤 고민을 하는게 더 진지한 고민을 하는 거 같아요.

그렇게 보니까 이 양자역학이라는 게 키워드로 떠오르더라고요.

제가 어디가서 양자역학 얘기를 하면, 무슨 디자이너가 양자역학이야 라고 하는데, 사람의 몸을 수억만

개, 수억조개로 쪼개게 되면, 미립자라는 게 나오게 되요. 마찬가지로 모든 사물을 다 쪼개면 최소 단위

는 미립자라는 게 나옵니다. 그런데 이 미립자를 가지고 그 역학관계를 하는 게 이 양자역학이래요. 근

데, 저는 처음에 이 얘기를 들었을 때 반반이었습니다. 아, 신기하다. 문화예술교육도 이렇게 되야하는

구나 라고 느낀 거 반면에 한편으로는 사람의 삶과 죽음이 생각하기 나름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간이 하찮아보인다고 할까요, 그런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잠깐 설명해드리자면, 양자역학에서

는 미립자를 통에다 놔두고 쐈대요. 쐈더니 양자역학은 구슬 모양일거야, 미립자는 동그란 모양일거야

라고 계속 생각하면서 봤더니 동그란 점들이 벽에 하나씩 점이 생기기 시작했대요. 그리고 나서 모든 사

람들이 미립자의 형태는 원이야 라고 연구를 끝났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러고 나서 이 연구를 하던 사

람이 잠깐 다른 데 가서 커피를 떠오는 순간, 보지 않았더니 미립자는 이런 식으로 아무런 존재가 없는

물결 파동처럼 이렇게 되었대요. 그러고 나서 다시 동그라미일거야 라고 생각을 했더니 다시 미립자들

이 동그랗게 변했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니까 이 요는, 어떻게 보면 제가 이렇게 생기지 않았을 수도 있

습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제가 되게 아이돌처럼 생겼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여러분이 저를 이렇게 보기 때문에 제가 이렇게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는 거죠. 그러니까 되게

무서운 이론이죠. 어떻게 보면 제가 보이려고 하는 것만 보게 되는 거고, 이 착각이라는 거의 양자역학

과의 관계는 좀 밀접한 관계가 있더라고요. 해서 아인슈타인이라는 사람이 양자역할에 대해 연구를 했

었는데, 이 사람이 ‘세상의 모든 것은 다 허상’이다, 그런데 그 ‘허상은 되게 끈질긴 허상이다’라고 양자

역학에 대해 말을 했다고 합니다. 이제 제가 긍정적 착각을 생각 하면서 아이들에게 정말로 얘기해주

고 싶은 거는, 많이 바뀌었습니다.

디 자 인 에 대 한 인 식 의 변 화

예전에 제가 예술강사 초창기에는 ‘선생님 저 디자이너가 될거에요’ 라고 하면 ‘하지마, 디자인 하지마

그랬거든요.’ 왜요? ‘그러면 야, 디자이너는 되게 힘들어. 월급도 적고 나중에 결혼하기도 힘들고 여러

가지가 힘들어.’ ‘디자이너가 좋은 점은 한 세 가지? 안 좋은 점은 한 열가지야. 차라리 더 좋은 다른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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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 행복한 사람으로 살아.’라고 얘기를 했었습니다. 근데 아 이거를 영상으로 접하고 생각이 바뀌게 된

게 한 1년 좀 더 되었어요. 그러고 나서는 애들이 저 디자이너 할래요 그러면 ‘그래 넌 훌륭한 디자이너

가 될 수 있을거야. 선생님보다 훨씬 더 능가하는 그런 우주적인 디자이너가 될 수 있을거야. 파이팅하

자 라고 말을 합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이 바뀌었다라는 거죠. 그렇게 했더니 애들의 결과물도 바뀌게

되고 애들의 생각도 바뀌게 되고 애들이 저를 대하는 것도 바뀌게 되고, 정말 저는 애들한테 바꾼거는

저는 뭐뭐가 되고 싶어요 라고 했을 때 그래 할수 있어 라고 말 한마디 바꾼 것 뿐인데, 애한테는 진짜

착각을 심어준 거 밖에 없는데 그 애는 점점 더 많이 바뀌어가고 있다는 거에요. 해서 이것도 많이 보

셨을 거에요. 말의 힘이라고 해서 다큐멘터리에 나왔던. 실제로 실험을 한 근거자료들이죠. 한쪽에다

가는 감사합니다 한쪽에다가는 증오합니다 말만 했을 때, 실질적으로 이 미립자가 물결의 파동을 바꿔

서 어떤데서는 정말 이렇게 길게 자라나게 하고, 어떤 데서는 적게 자라나게 하는 이런 식의 결과 실험

결과물까지도 나오게 되었다라고 하는 겁니다. 저는, 제가 이과를 나와서 그런지 과학맹신주의자예요.

철저하게 화학 성분 뭐가 들어가서 이게 사람 몸을 어떻게 만드는지, 그리고 지금 마시고 계시는 음료수

에는 합성착향료가 얼마나 들어갔는지 이런 거에 대해서 생각을 하면서, 내가 먹는 음식에 있는 이 거는

나한테 어떤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지, 내 눈으로 보지 않으면 믿지 않고, 과학은 뭔가 나중에 바꿀 수

있다는 약간 과학맹신주의자적인 그런 게 있기 때문에. 실제로 이렇게 보니까, 처음에 이걸 안 봤다면

저 역시 아 거짓말이야 라고 했겠지만 막상 보니까 저 역시 이걸 믿고 따르게 되더라고요.

아 이 들 의 미 래 를 상 상 하 는 것 , 그 것 이 문 화 예 술 교 육 입 니 다

결론적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이 이 동영상에 담겨 있습니다. 보시면 아실 수 있을거에요. (영상) 뭐 이

런 내용입니다. 그래서 제가 생각하는 착각은, 상대를 보는 것이 아닌 아이들의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 아닐까 생각을 해요. 지금 학생이 당장 미술, 음악, 영화 이런 것들이 아닌 이 아이의

미래를 착각하게 만들어주고 상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

을 합니다. 하고싶었던 말은 디자인 씽크라고 하는 것도 예전에서부터 점점 발달되면서 사람들의 이런

것까지도 바꿀 정도로 디자인이 발달을 했지만, 그 발달한 디자인도 문화예술이고, 그런 문화예술교육

은 현재를 보는 것이 아니고 미래를 상상하는 것처럼, 여러분도 여러분 나름대로 이걸 보면서 본인의

생각과 비교를 해보시고 괜찮다고 생각하시면 얘기를 해보시고 아니다라고 생각하는거에 있어서도 좀

더 얘기를 해보는 게 좋을 거 같습니다.

아 이 들 의 미 래 는 ‘ 나 로 인 해 ’ 바 뀔 수 있 다

이거는 마지막으로 감사합니다 인데, 이 학생이 매 수업시간 끝날 때 마다 제 얼굴을 그려줘요. 이 학

생은 수업을 그림을 되게 빨리 잘 그려서, 그림을 빨리 그리는 학생은 도화지를 더 줘서 본인이 그리고

싶은 걸 그리거나 아니면 본인이 생각하는 다른 걸 그리게 하는데, 그리고 수업을 짤 때 부터 두 시간

에 빠듯하게 짭니다. 근데 이 학생은 그렇게 해도 손 그리는 것도 되게 잘 그리고 그려주더라구요. 제가

11월 6일 이 학생 반 수업을 마지막으로 하는데, 만날 연습장에 그려주다가 떠나는 날이라고 색종이를

대서 그려주더라고요. 그래서 가지고 와서 항상 PPT 뒤에다가 써볼까 라고 생각해서 한번 넣어봤습니

다. 아마 여러분들도 예술강사를 하시면서 사실 제가 다른 얘기로 처음에 말씀드렸듯이 진흥원에 대한

불만과 이런 거 얘기하면 세 시간 네 시간 정도 얘기할 수 있다고 그랬죠. 저번에는 한 번 우리는 왜 연

봉 400만원에 열광하는가에 대해서 한두 시간동안 얘기한 적이 있는데 그것과 똑같은 맥락인거 같습니

다. 그냥 아이들 때문에, 디자인씽크로 생각한다면 아이들의 미래를 내 손으로, 아이들의 미래는 나로

인해 바뀔 수 있다는 그게 이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있는, 그래서 중학교 고등학생들은 저로 인해서 바

뀔 수 있는 가능성이 더 적다고 생각을 해서, 초등학생을 고집을 하고 있습니다. 제 생각은 여기까지입

니다. 여러분들의 의견과는 다르실 수도 있고 시작에도 말씀드렸지만 제가 잘나서 이 앞에 선 것도 아

니고, 그렇다고 뭐 제가 엄청난 교육 방법론을 가지고 있어서 여러분들한테 이렇게 수업하는 게 좋습니

다 라고 해서 드린 얘기도 아니고, 그냥 제 얘기, 제가 수업을 어떤 방법으로 하고 있다는 얘기를 드리

기 위해서 컨퍼런스 퍼실리테이팅을 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 학생이 당장 미술, 음악, 영화 이런 것들이 아닌

이 아이의 미래를 착각하게 만들어주고 상상하게 만들어주는 것이

문화예술교육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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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

그래픽 레코딩

신운섭 (연극)

배우는 희곡에 드러나지 않은 등장인물의 역사를 탐색한다.

무대위 배우의 ‘선택된 행동’은 이 탐색의 과정을 통해 엄격한 기준으로 선택된 ‘행동’이다.

이 ‘행동의 나열’을 통해 관객들은 등장인물을 이해한다.

배우가 등장인물에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려고 하는 것!

지식공유 / 발굴

그래픽 레코딩 사진

박미정 (만화애니)

사전 인터뷰 영상 지식공유 영상

오늘 하고 싶은, 함께 나누고 싶은 내용은 이런 거예요. 지금까지 어떤 예술행위를 해왔었고, 그리고 예

술강사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선생님들의 예술행위가 어떤 매력이 있었기에 지금까지 이 행위를 지속

할 수 있었는지, 충만했던 그 경험(기억)을 이야기 하고 싶어요.그냥 말하면 심심하니까 여기 사진을 한

번 보시면서, ‘아! 이 사진’, ‘이 사진을 보니까 그 기억이 떠올랐어! ‘난 이 사진을 얘기하면 될 것 같아’

하고 생각되는 사진을 한 장씩 뽑아 말씀하시면 됩니다. 사진 보세요. 다 제가 찍은 거예요.^^

가 르 치 는 일 이 ‘ 행 복 ’ 입 니 다

제 얘기를 먼저 할게요. 그리고 돌아가면서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배우의 일을 가장

많이 했습니다. 주로 연극을 많이 해왔습니다. 다음으로 많이 하고 있는 일이 가르치는 일입니다. 그리

고 사진 찍는 일을 하고 있어요. 근데 요즘에 배우의 일보다 가르치는 일, 사진 찍는 일이 많아지면서 살

짝 역전하려고 해요. 저는 요런 이미지 선택했고요. 어르신들 모시고 연극하는 공연하는 팀이 있어요.

인천에서. 활동하는 팀인데, 1년 동안 같이 공연 만들어서 한 번의 발표로 끝내지 않고, 지역의 요양원

등에 가서 순회공연을 하고 그래요. 그래서 극단 이름이 문화봉사단 실버극단학산이에요. 그렇게 공연

을 다니다 찍은 사진이에요. 배우가 공연 후 앞에 구경하시는 어르신과 악수 나누는 장면을 찍었어요.

찍고 보니 굉장히 좋더라고요. 공모전에 출품했는데 뽑혀서 전시도 됐던 작품이에요. 자랑하는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말이 이 사진과 같아서 선택했어요.

제 이야기 방에 가 써 놓은 글을 보셨죠. 배우의 일이란 게 대본을 받으면 하얀 종이위에 까만 글씨들

이 있는데 이 글씨를 읽는단 말이에요. 근데 그것만 가지고는 연기를 할 수 없거든요. 대본은 불과 30

페이지, 40페이지, 50페이지. 종이로 묶여 있지만, 연기자가 봐야 할 것은 30페이지, 40페이지가 아

니라, 이 밑에 있는 천 페이지, 만 페이지 되는 분량들을 읽어 내야지 배우가 연기를 할 수가 있거든요.

대본을, 대본 속 등장인물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텍스트를 종합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겠죠. 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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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고, 어떤 장소의 어떤 사람들인지 쫘악~ , 대본은 그야 말로 빙산의 일각인 거죠. 그런데 또 이

것만 이해한다고 연기가 되는 건 아니고, 이제 연기술이 필요하겠죠. 이 등장인물의 역사를 파악했다

면 그 사람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할까, 어떤 행동들을 취할까? 등 엄선된 기준으로 등장인물의 행동

을 선택하고 그 행동들을 무대 위에서 보여주게 되겠죠. 관객들은 그 배우의 행동을 통해서 등장인물

을 이해하게 되겠죠. 문제는 배우가 이 텍스트를 이해하지 못하면, 혹은 이만큼 이해해야 하는데 요만

큼밖에 이해하지 못하면, 관객들에게 그것밖에 전달될 수 없는 거죠. 또 이 만큼 이해한다. 쳐도 이것

을 전달할 기술(연기술)이 부족하면 거기서 또 어려움이 생기겠죠. ‘연기라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주 목 받 는 첫 경 험 , 바 로 ‘ 연 극 ’

연기경험을 이야기해볼게요. 저는 삼형제에요. 두 형님들이 다 공부 잘 했어요. 저 공부 제일 못 했거

든요. 그러니까 만날 찬밥이죠. 중학교 올라가면서 우연찮게 교회에서 성극을 하게 됐어요. 공연을 했

는데 주위에서 ‘잘한다! 잘한다!’ 그러니까, 진짜 잘 하는 줄 알고 교회에서 6년 동안 매년 성극을 했

어요. 그런데 연극하면서 매년 사람들에게 주목받는 느낌, 그게 좋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연극을 했

던 거 같아요.

대학 때 우연히 어떤 연극을 봤었요. 공장 아줌마들 이야기였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여기 계신 분들

연령대 같기도 하고, 우리 어머니 연령대 같기도 해요. 갓 대학 들어간 어린 나이에 아줌마들이 자기들

이 일하는 일터의 이야기를 연극으로 만들었던 건데, 그게 굉장히 충격이었죠. 대단히 정치적이고 사

회적인 연극이었어요. 아! 연극이 이렇게 세네! 연극이 이런 말도 할 수 있네! 이런 게 저한테 ‘빵’ 들어

왔었던 거예요. 그때부터 굉장히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런 얘기들을, 연극으로 하고 싶은 욕구가 생

겼죠. 1년을 다니고 휴학하고 곧바로 대학로 극단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은 그만두었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이렇게 살고 있어요.

기억에 남는 배역이 있어요. 90년 중반이었을 거예요. 극단한강에서 극단생활을 했었어요. ‘노동자를

싣고 가는 아홉 대의 버스’라는 작품이 있었어요. 9개의 장면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연극이었어요. 그

당시 사회적으로 정리해고가 문제였어요. ‘경영상의 이유로 기업에서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라는 걸

법적으로 허락해버리는 법이 날치기로 통과되었어요. 그 때 사회적으로 난리가 났었거든요. 아마 그맘

때 공연했어요. 그 연극에서 ‘구사대-회사를 구하는 대원’ 역을 연기했어요. ‘구사대’ 이게 뭐냐면 고용

주가 경영이 어렵다고 이 만큼은 잘라야 한다고 구사대로 활용할 만한 사람들을 돈으로 매수하는 거죠.

파업하는 동료노동자들을 내보내라는 거죠. 한솥밥 먹던 사람들인데, 파업하는 동료들을 내쳐야 한단

말이죠. ‘저 새끼들 다 몰아내야지 내가 산다!’ 라고 쇠뇌하면서 몽둥이 들고 파업장에 들어갑니다. ‘저

담벼락만 넘으면, 파업하는 저 인간들만 쳐내면, 딱 한 번, 딱 한번이면 된다!’ 라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쇠뇌 합니다. 담벼락 밑에서 신발 끈을 ‘풀었다.’ ‘묶었다.’를 반복하면서……. 이 장면을 연습하다가 그

만 감정이 폭발해버린 거예요. 배우로서 이 상황을 감당하지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한참을 엉엉 울었

죠. 공연 때는 울지 않았어요.(웃음)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런 얘기들을,

연극으로 하고 싶은 욕구가 생겼죠.

1년을 다니고 휴학하고 곧바로 대학로 극단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대학은 그만두었고, 그날 이후 지금까지 이렇게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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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나를 봐주는 어떤 욕구가 강했다! 라면,

이후 극단생활을 하면서 접한 연극들은 힘들지만 이 연극을 통해서,

이 역할을 통해 내가 뭔가 할 수 있겠다. 감당이 안 되는 고통이 따르지만

내가 이 세상에서 뭔가 할 수 있겠다. 어떤 충만함이랄까?

기 억 에 남 는 배 역

또 하나 기억에 남는 배역이 있어요. 2000년도인가 인천대우자동차있죠? 지금은 GM쉐보레 그러던데.

그 당시에 대우에서 대규모 정리해고가 있었어요. 공장 노동자들이 길거리에서 막 파업하고 그런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전경들이 이 파업노동자들을 강제 진압하게 되죠. 이 진압과정이 말로 어떻게 표현

할 수 없을 만큼 잔인했어요. 개 패듯이 사람을 때리고, 여기저기 머리가 깨지고 피 흘리고, 난리가 났

어요. PD수첩이 이 사건을 보도하게 되면서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사회문제화 되었어요. 그 시

점이에요. 그 당시 ‘외면’이라는 작품을 준비하고 있었어요. 신철수라는 인물이었어요. 신철수는 살아

남은 거고, 함께 일하던 친구는 이제 더 이상 같이 일 할 수 없게 된 거고, 함께 살던 회사아파트에서도

친구는 쫓겨나고, 신철수는 그렇게 친구를 외면합니다. 어쨌거나 살아야 하기에……. 그리고 몇 년 후

신철수는 강제진압과정에서 얻어터져 정신적으로 이상이 있는 친구를 다시 만나게 됩니다. ‘외면’ 이 작

품을 준비하면서 대우자동차 사건 등 사회적으로 무슨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지, 정리해고가 뭔지, 자료

수집하고, 인터뷰 할 거 아니에요. 뭘 알아야지 연기를 할 수 있으니까. 신철수가 의지와 무관하게 외

면했던 친구 진욱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편지’를 씁니다. 신철수의 역할로 친구 진욱에게 장문의 편지

를 써내려 갑니다. 지난 10여년 함께 생활했던 진욱에게, 지금은 정신을 놓아버린 진욱에게……. 여기

서 또 한 번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빵 터져 버렸습니다. 한동안 멍하니 울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배우

인 내가 이 상황을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었습니다.

연 극 으 로 ‘ 사 회 ’ 를 보 다

처음에는 나를 봐주는 어떤 욕구가 강했다! 라면, 이후 극단생활을 하면서 접한 연극들은 힘들지만 이

연극을 통해서, 이 역할을 통해 내가 뭔가 할 수 있겠다. 감당이 안 되는 고통이 따르지만 내가 이 세상

에서 뭔가 할 수 있겠다. 어떤 충만함이랄까?

우리 MB 아저씨가 있는 동안 ‘용산참사’가 있었죠. 그 담에 바로 ‘쌍용자동차 강제진압’이 있었죠. 여기

콜텍사진도 있고……. 그거 말고도 조금만 관심가지면 이런 고통스런 사건들은 많아요. 용산참사, 민

간인 5명과 진압경찰 1명이 사망한 말도 안 되는 사고죠. 새해 2009년 새해 초였던 같은데 조간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있어요. 다큐멘터리 ‘두개의 문’을 보시면 왜 말이 안 되는지 알 수 있어요. 이

후 국민적 저항이 의외로 적으니까 정리해고 문제로 70여일 파업 중인 쌍용자동차를 폭력적으로 진압

해 버리죠. 쌍용은 2009년 4월인가? 하루만에 2640명의 노동자들이 해고를 당해버려요. 부양가족까지

생각하면, 만 여명이 된단 말이지. 이 때문에 파업이 일어났고, 결국 폭력적으로 진압 당했죠. 그 진압

이 또 상상을 초월했죠. 인터넷검색하시면 당시 진압 영상자료 볼 수 있어요. 이후 쌍용에서는 23명이

죽었거든요. 스물 세 명이 죽었단 말이에요. 문제는 지금. 쌍용자동차에서 스물 세 명이 죽었다는 거죠.

제가 2000년 ‘외면’ 공연을 준비할 때의 모습과 겹치고 있어요.

‘ 진 짜 ’ 교 육 이 란 무 엇 일 까 ?

제가 이번 컨퍼런스 참가 오케이 하기 전 진흥원에 욱 했던 게 있어요. 2013년 예술강사모집공고에 대

학졸업자로 학력제한 둔 것을 보고 굉장히 화가 났었어요. 분노가 치밀어 올랐어요. 몇 년 전에도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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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로 발끈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 정말 도저히 못 참겠더라고요. 저 대학 졸업 안 했습니다. 저 고

등학교 졸업했습니다. 대학 다니다 연극하는 것이 더 좋겠다고 생각해 그만뒀거든요. 강사들의 항의로

어떻게 봉합은 됐어요. 근데 더 화가 난 건 이 과정에서 올라온 예술강사들의 댓글이었어요. 댓글을 보

면서 거기서 더 뚜껑이 열렸죠.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 ‘이만 한 것도 다행 아니냐?’ ‘고마운 것 아니

냐?’ ‘진흥원에 누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하겠다’ 이런 말씀들을 하시더라고요. 근데 그거는 선택 받은

사람은 그렇게 얘기할 수 있어요, 그쵸? 그렇잖아요. 어떤 선택의 여지도 없이 토요동아리 하는 사람

들은 뭐야? 이거 조금만 생각하면 그렇게 댓글 쓰면 안 되는 거거든요, 그렇잖아요? 본질적으로 해결

된 건 아무것도 없는데……. 함께 일하는 동료강사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예술

행위를 한다는 것인지? 전 용케 살았어요, 그런데 토요동아리하는 선생님들은 뭐냔 말이지. 예술강사

수업시수가 얼마나 된다고. 1년 학교에서 수업해도 끽해야 학교선생님 한 두 달 치 월급밖에 안되잖아

요. 그게 뭐 대단한 일자리도 아니고, 웃기잖아요.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이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그리고 가르치는 일들까지 해야 된다니……. 충격이었거든요. 각자 예술적인 충만한 경험들을 가졌었

던 적이 있었을 거고, 그 충만함 때문에 우리는 이 행위를 계속 할 것이고, 그 충만함 때문에 예술 행위

를 하고 이걸 가르친다고 했는데, 살짝 이게 의심스러워지는 거죠. 도대체 어떤 충만함일까?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내가 이런 생각으로 예술 행위를 해도 되나? 내가 가르침 행위를 해도 되나? 도

대체 무슨 생각으로 가르치고 있나?

처음에는 자기만족에서 출발했고, 나름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겠다, 거창하게 시작했다가 지금 와서 보

니 그 때는 배우로서 역을 충실히 수행하면 되는 거였지만 지금은 등장인물의 삶이 내 삶이 되어 버린

것 같아. 이런 모습들 속에서 몹시 우울했어요. 이거 예술 아니잖아요. 이거 교육 아니잖아요.

“선생님들 얘기, 어떤 예술적인 충만감이 있었기에 이 행위를 지속하고 있는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제가 꽃을 드릴게요. 이야기 다 하시고, 꽃을 다른 분께 드리면 그분이 이어서 이야기 하시면 됩니다.

선생님들 얘기,

어떤 예술적인 충만감이 있었기에

이 행위를 지속하고 있는지

그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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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의 습관, 정보의 모자이크

그래픽 레코딩

예정원 (미술)

사각사각 거리는 수첩 속 빼곡하게 기록된 이미지와 단어들은

규칙과 불규칙의 경계에서 정보를 다양하게 모자이크한다.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이미지로 메모하기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되는지에 대한

생각의 테일러링(Tailoring)을 다양한 방식으로 경험하고 이야기 나눈다.

지식공유 / 발견

그래픽 레코딩 사진

장경희 (만화애니)

사전 인터뷰 영상 지식공유 영상

제가 사실 프리젠테이션을 준비하기 전까지는 최종 미팅이 있었거든요. 그때까지는 이 동영상을 못찾

았었는 데, 우연찮게 오늘 새벽에 나오기 전에 혹시라도 하는 마음에 한 번 더 찾아오니 발견에 관련된

영상이 있더라고요. 제 섹션이 바로 발견이잖아요, 발견에 관련된 게 없을까 고민을 하다 찾아보니까

딱 이 아이가 캐치가 딱 되더라고요. 아! 하면서 말이죠. 선생님들 세션이 많을 텐데 제 세션을 선택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요,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비록 많은 것을 보여드릴 수가 없을 수도 있겠지만 그

래도 많이 가져가시고 많이 물어봐주시면서 함께 하는 시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용 도 에 맞 는 ‘ 그 릇 ’ 이 되 어 야 한 다

제가 조금 전 접시에 과자나 다과를 얹어주세요 라고 부탁을 드렸을거에요. 저희 어머님들께서 항상 음

식을 되게 맛깔나게 담으시잖아요. 그런데 저희 어머니는 그림을 전공을 하시긴 하셨는데, 음식을 잘

못하시는데요, 접시에 잘 담으시기는 담으세요. 가끔씩 그런 걸 보면 이미지들이 어떻게 담기느냐가 그

것도 하나의 정보 콘텐츠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선생님들이 저한테 메시지를 보내온 것 중에서 한번

하나씩 하나씩 소위 말하는 한땀한땀 읽어보니까 메모를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떻게 하면 활용을 잘 할

수 있을까요가 주를 이루고 있더라고요. 제가 보기에는 지금 선생님들 접시에 여러 가지 다과를 알맞

는 크기에 담아오셔서 따가지고 드시고 그리고 또 이야기도 나누시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이미 선생님

들은 정보를 잘 흡수하시고, 잘 담아내시고, 활용도 잘 하신다고 생각해요. 단지 몸으로 느끼는 거라고

생각을 하는데, 지금부터 제가 제 개인 이야기를 통해가지고 제가 어떻게 저 뒤에 보시면, 제가 메모를

해 놓은 걸 샘플을 몇 개 가져왔어요. 어떻게 저렇게 만들게 됐는지, 일상적인 이야기를 메모를 통해서

설명을 해드릴건데요. 그 전에 아직까지 저를 모르시는 분이 많이 계시더라고요.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

을 하고 있고요, 저는 원래는 디자인학부랑 디자인대학원을 졸업을 했고요 게임콘텐츠 디자인을 전공

을 했고요, 지금 학교문화예술강사 만화 애니메이션 하고 사회문화예술강사 미술 분야를 하고 있습니

다. 2010년 생활문화 공동체 모니터링을 했었고요, 그리고 작년에는 지금 아르떼365로 바뀐 아르떼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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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역 통신원으로 일을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 아이드림이라고 해서 KT하고 기업 사회연계

통합문화예술 교육을 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선생님들을 만났어요.

메 모 를 통 해 서 로 알 아 가 는 방 법 은 ?

제가 아까 그릇 얘기를 하는 바람에 이 선생님 공예과 출신인가 생각을 하실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저

는 항상 아이들에게 그릇을 막 불려가지고 키우기보다는 항상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예쁘게 담고, 그게

간장종지일지라도, 그 용도에 맞게 담을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솔직히 저희 밥그릇에다가 생선

은 안 담아서 먹잖아요. 진짜 급한 상황 아니고서는요. 그래서 항상 아이들에게 자기한테 알맞는 그릇이

되라고 말하고 있고요, 제가 사용하는 메모법도 항상 담는다는 의미를 띄고 있어요. 적는다는 의미보다

는요. 그리고 제가 다른 경력이 하나 있어요. 대단한 경력 아니고요, 화려한 경력도 아니고요, 지금 선생

님들 예술강사 선생님들이시잖아요. 선생님들 가르치는 학생들이 이 자리에 서있다면 어떤 생각이 드실

까요. 선생님들이 뿌듯해 하실까요? 제가 15년 전 쯤에 선생님들이 가르치던 학생이었습니다. 그때 당

시는 한국문화예술진흥원이라는 게 없었고요. 문화체육관광부에서 미술관 문화학교라는 게 있었어요.

미술관 문화학교 30일간의 프로젝트에 참가를 하면서 예술가 선생님들을 만났어요. 그러면서 아, 미술

이라는 게 단지 그리는 게 아니구나. 얼굴가지고 퍼포먼스도 할 수 있고, 스크린도 있고, 미디어 작업도

있구나 그런 걸 통해 디자인과로 선택을 하면서 이 자리에 그때 당시에 선생님들이 계셨던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게 조금 남다른 경력이라면 경력입니다. 이런 경력 하나하나가 저라는 사람을

만들어갈 수 있는 거름이 된 것 같아요. 프레젠테이션을 하기 전에 선생님들 서로 알고 계시는 분도 계

시지만, 모르시는 분들도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을 해서 6 by 6라고 해서요 미팅을 잠깐 하실 겁니다.

서로서로를 조금은 아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잠깐의 게임을 활용해서 우리가 고민하는 건 어떤 건지

포스트잇에다가 아주 간단하게 질문을 적어주세요. 예를 들어 메모는 어떤 걸까요? 그런 걸 적으셔도

되고요, 당신의 전공은 뭔가요 이런 걸 적으셔도 되고요, 당신은 결혼하셨나요 뭐 이런 걸 적으셔도 되

고요. 지금 잠깐 간단하게나마 서로에게 묻고 싶은 질문들을 거기 포스트잇으로 칸을 채워주셨으면 합

니다. 그리고 주사위를 돌려 가로, 세로에 맞춰 고른 후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메 모 는 끄 적 임 으 로 부 터 시 작 해 요

이제 말도 좀 풀리시고 손도 풀리시고 마음도 풀리셨나요? 조물조물? 제가 하나 팁을 가르쳐드리면요,

아이들과 처음 만나는 수업에서 이걸 활용하셔서 술래가 된 친구들이 포스트잇을 떼면 그 뒤가 투명하

잖아요. 거기에 이미지로 표현을 하는거에요. 그러면 그걸 들고 다른 테이블로 가져가면 어떻게 될까요.

수수께끼 놀이 같이 되겠죠. 그런 식으로 이미지 퍼포먼스놀이에도 아마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지금 포스트잇에 뇌를 그려놨습니다. 우리는 많은 이미지와 정보들을 보고 사용하고 있거든요. 많

은 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살아가고 있는데요, 이 뇌라는 게 특이한 게요, 얘가 큐레이팅을 해요. 미술

관에 있는 큐레이터처럼, 중요한 정보는 갖고 있고, 중요하지 않은 정보는 버려요. 뇌가 새침데기라서,

장기기억과 단기기억 이런 것들이 오고가는데요, 메모를 하게 되면, 단기기억으로 그냥 버려지는 아이

들이 스크랩이 된다고 생각해요. 모아둘 수 있다는 거죠. 그래서 많은 선생님들이 저한테 여쭤보시더라

저는 항상 아이들에게 그릇을 막 불려가지고 키우기보다는

항상 어떤 모양으로 어떻게 예쁘게 담고,

그게 간장종지일지라도,

그 용도에 맞게 담을 줄 아는 사람이 되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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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 선생님, 메모를 어떻게 활용을 해야 될까요? 저는 적었는데, 이거를 도무지 제 글씨를 못 알아보

겠어요. 아니면 이걸 도대체 어떻게 활용을 해야 되죠? 이런 얘기를 많이 하세요. 아까 전 뒤에 계시는

선생님께서도 오셔서 “메모를 잘하시나요?” 이렇게 물으시길래 “아니요 저 그런 거 못해요.” 분명히 제

가 메모로 발표를 하러 왔음에도 불구하고 메모를 못한다는 이유는, 지금 제 방에는 책도 이 만큼 쌓여

있기는 하는데, 메모지도 엄청나게 쌓여있거든요. 매일 메모를 하고, 지금도 선생님들 이야기를 하면서

메모를 하려고 이렇게 펜도 들고 있고요, 단지 끄적임을 잘 한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성 공 한 사 람 들 의 습 관 , ‘ 메 모 ’

선생님들 그런 경우 없으세요? 디자인과 출신이거나 아니면 무용하시거나 연극하시는 분들 중에서 시

나리오나 아니면 좋은 아이템들을 보고 어, 저거 내가 예전에 생각했던 내용인데? 그런 생각 있으시지

않으세요? 전 많거든요. 어 저거 내건데, 어 쟤가 왜 저거 해? 이렇게 한다거나, 제가 어린 시절 기억 중

에서 하나가 뭐가 있냐면요, 그때 당시에 컴퓨터가 도스였는데 사촌오빠가 자긴 컴퓨터 학원을 다닌다

고 자랑을 하더라고요. 너도 다녀라고 그러길래 아니 나는 솔직히 그런 거 싫어라고 말하니까 그래도 넌

다녀야 될 걸. 컴퓨터는 필요해 이러는 거에요. 그래서 어, 나중에 되면 그거 이미지 아이콘으로 클릭하

면 될 거야 이렇게 했는데 그게 스티브 잡스가 선보였죠. 제록스에서 개발한 GUI를 갖다가 입히면서요.

제가 조금 더 똘똘했으면 제가 제2의 스티브 정원이 되었을텐데 라고 생각하곤 해요. 그 생각들을 메모

로 쓴다면 또 다른 소비의 형태로 변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요. 하나의 적어놓았던 아이디어가

또 다른 아이디어로 되는 과정을 보여드리게 될 거에요. 혹시 선생님들 이걸 보시면서 누구의 낙서, 메

모 같다고 생각하세요? 바로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게이츠 입니다. 이 분의 습관이 뭐냐면 항상 메모

를 하신다는 거에요. 그 메모가 진짜 정갈하게 열심히 쓰는 메모가 아니라 진짜 낙서예요. 자세히 보시

면요, 얘는 아니야 땡 이렇게도 하구요. 우리랑 다른 점이 뭐가 있을까요? 이 사람은 자기가 보기 쉽게

끔 메모를 했고요, 낙서를 메모화시켰고요, 가장 중요한 거는 요새 소위 말하는 벤처 스타트업에서 가장

많이 말씀하시는 거죠. 실행력이죠. 그러니까 자기가 메모한 거를 갖다가 어떻게 해서든지 그걸 활용해

가지고 뭔가를 실행에 옮겼었다는 거죠.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릇을 그리고 메모를 어떻게 담을

것인가 해가지고 얘기를 드렸는데, 제가 생각하는 메모는 낙서하는 것이고, 메모는 곧 정보라고 생각합

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제 일상의 습관들을 설명을 해드리면서요, 조각난 글자들이랑, 시각으로 바라

보는 습관, 그리고 이미지 해체와 조합으로 재구성하기, 미완성된 공간에 의미 부여하기, 그리고 정보

의 조각들로 모자이크하기 이런 습관이 어떻게 생겼고 또 이 습관을 어떻게 활용했는지를 지금부터 설

명을 해 드릴 거에요. 그러니까 눈과 귀와 마음을 이렇게 번쩍 반짝이시면서 한 번 봐주시면 좋겠어요.

글 자 를 이 미 지 로 생 각 하 다

먼저, 파트1에서는 글을 모르면서도 책을 다독한 아이였습니다. 글을 모르는데 어떻게 책을 다독을 해.

네 맞아요. 어떻게 다독을 하죠? 어떻게 다독할 수 있을까요? 네 지금 선생님들 말씀하신 거랑 비슷해

요. 글자에서 보면요, 글자를 이렇게 읽다보면요, 빈 공간을 그림으로 봤었어요. 어렸을 때, 그래서 되

게 웃겼던 게, 그 빈 공간을 따라서 엄마가, 그림을 그리더래요. 사촌오빠가 많다보니까 항상 외가나 친

제가 생각하는 메모는

낙서하는 것이고,

메모는 곧 정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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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에 가면 같이 놀아줄 오빠나 언니들이 없는 거에요. 제가 어렸을 때 동화책 읽을 때 다들 대학생이고

그러니까, 책은 많이 접하고 있는데 글자는 모르고 이런 것을 자연스럽게 이미지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거죠. 그리고 신기한 거는 초등학교 입학할 때까지 어머니께서 선행학습을 안 시키셨어요. ㄱㄴㄷㄹ

밖에 모르고 학교를 갔었어요. 제가 다니는 초등학교가 (한 기업에서 만든 초등학교다보니까) 아버지께

서 인사부 원장을 하셨어요. 그러다 보니까 연수부 원장도 하시고 인사팀에 계시다보니까, 선생님들을

연수를 시키시는데 담임선생님께서 걱정이 되셔서 하루는 어머니랑 아버지를 부르시더니 얘기를 하시

더라고요. 애를 왜 공부를 안시켜가지고 데리고 오셨어요? 어머님. 그랬더니 저희 어머니께서 하셨던

얘기가 학교에서 가르쳐주시는 거 아니에요? 뭐 이렇게 하셨다는 에피소드가 있으세요. 아이한테 글자

하나 숫자 하나도 제대로 안 가르쳐주시고 학교를 보내셨다는 거죠.

이 미 지 는 또 다 른 이 미 지 를 만 들 어 요

제가 특이한 성향을 보이기 시작했어요. 이건 앨리스 인 원더랜드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이게 보면 뒤

에 꼬리모양으로 텍스트가 움직여요. 텍스트를 그림으로 바라봤고요. 조각조각으로 바라보기 시작했어

요. 조각조각으로 바라본다는 게 글자를 부러트려서 본다는 게 아니고요, 연극하시는 분들은 많이 하시

죠, 뭐 소소한 만남, 이런 식으로 문장으로 생각을 안하구요, 요리조리 바라보기 이런 식으로 단락단락

조각을 시켜서 바라보는 습관이 있었고 그러다보니 이러한 성향과 습관이 생겨났어요. 자세히 보시면,

낯선 풍경들 아니면 한 낮의 보리차 파티 이런 식으로 조각조각 글자를 적기 시작했어요. 대부분 메모

를 적으실 때 글자를 왼쪽에서 오른쪽, 오른쪽에서 왼쪽, 위에서 아래 이렇게 적으시는데 저는 이걸 갖

다가 하루는 요기에다가 적었으면요 또 하루는 이쪽에다가도 적어요, 조각조각 나눠가지고 글자를 적

는 그런 습관이 있었어요. 그런데 또 여기에서 보시면 아마 빈 공간을 보시게 될 거에요. 보시면 빈 공

간들이 있는데 그 빈 공간의 의미는 빈 공간이 텍스트 군데군데 남아있던 얼룩같은 빈 공간을 이미지

로 바라본 것도 있었는데요, 얘네들을 남겨둠으로써 나중에 이와 비슷한 내용이 있을 경우에 여기에다

가 글자를 옮겨 담을 수 있는 하나의 쉼 공간이라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다보니까 한장한장이 테마로

움직이기 시작했고요. 이게 이미지에 맞춰지면 또 다른 이미지에 맞춰서 그에 맞는 단어를 집어넣는다

거나 책이 소위 말하면 그림책처럼 움직이게 된 거죠. 그런 다음에 아까 이쪽 테이블 선생님들한테 말

씀드렸는데, 세 번의 청각 수술을 했었어요. 정기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초등학교 때 귀에 고막이 자꾸

파열이 되는 거에요. 파열이 되니까, 이 고막 파열 수술을 해야 된다고 해서 장애나 뭔가 문제가 있었던

거는 아니고요, 약해가지고 자꾸 파열이 되는 거에요. 그 파열되는 걸 막기 위해서 얘를 어떻게 할까 고

민을 하고 또 고민을 하다가 수술에 들어갔어요.

나 만 의 공 식 을 찾 아 내 다

그런데 수술을 하다보니깐 듣기보다는 보기에 치중을 많이 하게 되었고요, 그러다보니 여기에 이렇게

나와 있는 습성들이 저한테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쉽게 말하면 시각으로 소리라든지 맛을 바라본다든

지요, 음표가 콩나물 이렇게 있잖아요. 스타카토 부분에서 보면 이거 진짜, 말랑말랑 하면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는 거에요. 그때는 귀가 잘 안 들리니까. 그런가하면 후각에 민감해지기도 했었고요. 엄마

냄새, 베개에서 나는 냄새에 관심도 많이 가졌고요, 맛으로 재료를 분류해가면서 촉감에 있어서도 엄

마 실크옷 같은 거에 대해서 되게 집착을 많이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당시에. 그리고 청각을 세 번

수술했는데 얘기 청각이 안 좋아진건가? 이렇게 생각하실 수 있는데 되게 웃긴 게 얼마 전에 통합문화

예술교육 사업을 하면서 음악 선생님 연극 선생님, 영화 선생님들하고 같이 교육활동을 했었거든요. 근

데 음악 선생님께서 놀라시더라고요. 한 번 들었던, 모 가수의 음악을 들었는데 제가 만약에 나얼의 음

악을 들었으면, 나얼이 새로 나온 앨범이 있는데 저는 한 번도 못 들어봤어요. 그러면 비슷한 음이 나

오면 어 이거 나얼 목소리야 그렇게 맞추는 그런 게 있어요. 그런 선견지명이라고 하는 그런 약간의 그

런 게 있는데, 누구의 목소리를 들으면 그걸 잊지는 않고 기억해낸다는 거죠. 약간의 그런 민감한 부분

이 발달을 하게 되면서요, 참 못 그렸죠. 이게 실제 저 초등학교 1학년 때 그린 거거든요. 제가 되게 특

이한 게, 제가 핑크색을 싫어해요. 빨간색 핑크색 이런 걸 되게 싫어하는데, 저 파란색을 되게 좋아하

거든요. 그런데 왜 핑크색을 멀리했는지 모르겠는데요 그때 당시에는 이렇게 글자를 쓰면서 일기를 적

었는데, 이 일기를 적던 게 뒤에서 바라보는 걸로 바뀌면서 약간씩의 변화가 옵니다. 어떻게 오냐면요,

이게 여름에 귀 수술, 청각 수술을 하고 나서 그 다음에 수술을 하고 나서의 모습이에요. 뭐가 바뀌었

는지 보이시나요? 글자가 하나의 문장이었던 내용이, 기존에 일기였던 내용이 시로 바뀌게 되었습니

다. 땡굴땡굴 잘도 구르지 부딪치면 팡 안 부딪치지. 뭐 이런 식으로 소리를 이미지로 표현한다거나 이

런 습관이 붙더라고요. 다음에, 동시를 짓기 시작합니다. 글도 모르던 아이가. 나중에는 이런 식으로 장

문의 글자를 적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때부터 제가 글자가, 글쓰는 게 많이 늘어났다고 해야되나요, 늘

어나면서 글짓기대회 에 많은 관심을 갖고 이미지들에 의미를 부여하게 되었습니다. 키우던 강아지를

데리고 의미를 부여해서 이야기를 만들어냈다거나, 이런 식으로 많은 변화과정을 겪었던 거 같아요 제

가. 그러다보니깐 또 하나의 공식이 생기게 되더라고요. 비주얼 씨 잇이라는 거랑, 에디토리 히어링이

라는 거, 그리고 또 키네틱 두잇이라고 해가지고 이 세 가지가 생활 속에 습관으로 발달을 하게 되더라

고요. 그런데 요새 이게 교육에서 중요하잖아요. 이 방법들이요. 그런데 저는 우연한 수술과 일상을 통

해 그렇게 되었는데, 뭐 제가 잘나서 그런 건 아니에요. 그런 건 아니고요, 진짜 되게 많이 아팠었어요.

포 스 트 잇 수 집 은 내 취 미 에 요

귀 안에 플라스틱을 삽입을 해서 나중에 그걸 빼낼 때는 수술을 안 하고 마취 안한 상태에서 그걸 빼내

야 되었거든요. 그걸 세 차례를 하고 덕분에 이런 생활습성을 갖다보니까 나무를 보게 되면 저희 동네

가 해운대거든요. 소나무 밭을 지나가는데 옆에 철썩철썩 파도소리가 나잖아요. 그러니까 순간적으로

파도나무를 만드는가 하면, 아니면 저의 이미지를 반영하는 네 개의 토끼 귀를 가진, 토끼왕자님이에

요. 네 개의 귀를 가진, 네 번의 수술을 했기 때문에 네 개의 토끼 귀를 가진 왕자님, 이런 식으로 스토

리를 만든다든지 아니면 일상에 있는 이미지에 의미를 계속 부여하게 되더라고요. 다른 선생님과 얼마

전에 얘기를 했던 것 중에서도 하나가 뭐냐면, 메모를 스크랩을 하잖아요. 근데 특이한 거는 연극 선생

님이랑 다른 선생님이랑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또 다른 이야기로 변화가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하나

의 시나리오가 만들어지는 경험을 했었어요. 이런 식으로 기왓장을 보면서 예뻐 이렇게 하지 않고, 꿈

틀꿈틀거리는 기왓장 해서 기왓장이 꼭 지렁이처럼 꿈틀꿈틀거리는 느낌이 나는 거에요. 그리고 소리

가 나는 것같은 느낌이 나는거에요. 그러다보니까 꿈틀꿈틀 기왓장이라고 이름을 붙이기도 했었어요.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공부를 참 못했어요. 꼴등은 아니에요. 중간 정도는 했어요, 1등이 탐구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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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박또박거리는 이런 습관들이

하나둘씩 모이다보니까

이런 식으로 페이지에 하나의 이야기로

섹션이 만들어지고 단어들이 붙여지고,

하나의 보물창고같이

다시 끄집어 볼 수 있는 메모장이 되더라고요.

을 베끼는 그런 존재였어요. 이게 또 한 가지 습관이죠. 혹시 탐구생활 모르시는 분 계세요? 탐구생활

이 요만큼 얇잖아요. 근데 그게 그 탐구생활이 방학이 끝나고 나면 제 탐구생활은 이만큼 두꺼워졌어요.

그때 또 포스트잇을 굉장히 좋아했는데요, 여기 안 들어가 있는 습관 중 하나가 포스트잇 수집이었어

요. 아침에, 라디오 방송청취를 해요. 탐구생활 방송청취를 해요. 그러면 그걸 딕테이션을 해요. 엄마

가 귀가 잘 안 들리니까 그런 걸 보완해주기 위해서 딕테이션을 시키셨어요. 좀 들어라. 그렇게 해보니

까 너무 재밌는거에요. 받아 적는 그 희열감. 이 문제 100퍼센트 다 썼어 그런 거라든지, 그 방송이 끝

나고 오후에 티비에서 하는 방송 있잖아요.

습 관 이 모 여 보 물 창 고 가 되 다

그걸 또 하나 보면서 또 딕테이션 하고 보고 쓰고 생각하면서 쓰는 걸 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이게 되

게 웃긴데, 유용한 게 뭐냐면요, 아까 여섯 살, 다섯 살 아이를 가지신, 싱글로 보이시는 선생님. 대학

다니면 교수님들이 막 얘기하시잖아요. 그거를 농담 하나 안 빼먹고 다 쓸 수 있게 된 거에요. 그리고

길을 가다가 생각나는 게 있으면 그 자리에서 적고 폰에다가 계속 자판을 두들긴다거나 어디 종이쪽지

가 있으면 거기다가 다다닥 적는다거나 그런 습관이 남았던 거 같아요. 그러다보니까 이처럼 제가 학

부 때 했던 스크랩 들인데요, 컨퍼런스나 대학 교수님들 수업을 들으면서 한자 한자 적은 포스트잇이

에요. 지금 선생님들 책상에 있는 것과 비슷한 색상이죠. 제가 가장 좋아하는 브랜드랍니다. 하하. 가

장 애용하는 포스트잇이구요. 또 한 가지 글로 적으면 힘드시잖아요. 저는 어떻게 했냐면요 여기 보이

세요? 이미지로, 전환을 시켜가지고 표현 한다거나, 영어로, 가끔 한글보다 영어가 빠를 때가 있어요.

왓 이프 뭐 이런 식으로. 영어 잘 못하거든요. 그런데 빨리 적을 수 있는 단어만 그렇게 전환을 시킨다

거나, 중심 이런 간단한 한자. 가끔씩 보면 한글보다 한자가 빠를 때가 있어요. 이미지로 전환을 시켜

가지고 적으니까 빨리 적게 되고 또 다른 저의 정보 메모 방법론이 되더라고요. 이런 식으로 제가 대학

교 때 활용했던 기록을 통해서 다시 기억해내고, 이런 방법들을 몇 년 전에 했던 내용을 또 다시 리메

이크를 할 수가 있었다는 거죠. 또박또박거리는 이런 습관들이 하나둘씩 모이다보니까 이런 식으로 페

이지에 하나의 이야기로 섹션이 만들어지고 단어들이 붙여지고, 하나의 보물창고같이 다시 끄집어 볼

수 있는 메모장이 되더라고요.

메 모 는 재 미 있 는 놀 이 입 니 다

또 한 가지 네 번째는 여행에 대한 기억들이었습니다. 제가요, 아까 이 테이블에서도 이야기했는데 해

외여행 이런 건 아니에요, 아버지가 야 가자, 아버지가 부산 토박이십니다. 그래서 짐싸라, 가자 이렇게

하면 무조건 짐싸서 가야되요. 개근상을 한 번도 못 받아봤어요. 그게 공모전이나 아니면 대회나 이런

걸 나가면서 빠지는 경우도 있었는데, 아버지가 토요일 일요일에 여행을 가면, 월요일까지 조금 더 있

을까? 해서 학교에 전화를 해서 얘 못갈 거 같습니다. 이렇게 전화해주고 동해로 해서 주문진하고 동해

시로 해가지고 이렇게 오는 길 있잖아요. 설악산 미시령 해가지고 그 길로 항상 많이 다녔는데요 차안

에서 자구요, 38선 휴게소가 있어요. 거기에 감자가 되게 맛있거든요. 20년이 지나도록 맛있는 건 감자

하나밖에 없는 그 38선 휴게소에 가면, 결혼 안 하셨죠. 선생님? 데이트 하시면 꼭 38선 휴게소에서 아

침에 즐겨먹는 감자 요만한 알토란 감자 드셔보세요. 해뜨는 거 보면서 가거나 새벽에 아버지가 운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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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가면 나방들이 차 불빛에 불똥을 튀기면서 움직이는 그런 장면이나 아니면 꿩이 지나가는 장면이나

그런 것들을 보면서 스쳐지나가는 것들을 내가 어떻게 그걸 잡아야 되는데 그걸 어떻게 하지? 그런 생

각을 되게 많이 고민을 했었어요. 그러다보니까 스크랩으로 구성해보자 했는데 마침 아버지께서 하나

주신 게, 허름한 사진기 하나를 주시더라고요. 이왕 사진기 사주실거면 똑딱이, 어떤 건지 아시죠. 좋

은 것도 아니고 다 사용하고 난 찍찍 소리나는 거 있잖아요. 그러면서 이미지에 대해 스크랩하면서 이

때 제가 공부는 못했는데요, 뉴턴의 만유인력,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깨닫게 됩니다. 그게 뭐냐

면, 다른 애들은 책가방 메고 걸어가잖아요. 근데 저는 차 안에 있잖아요. 걔네들은 정지해 있는 건가?

내가 움직이고 있는건가? 내가 좀 더 빠르게 움직이고 있는건가? 그런 거에 대해서 아인슈타인의 상대

성이론이 딱 나타나게 되는 거에요. 그러면서 아 이게 마음에 안 드는 데 이걸 어떻게 하면 쪼개서 나만

의 이미지로 만들지 했던 게 이 사과를 분해하는 거였습니다. 분해를 해서 새롭게 재조합을 하는 것이

었죠. 그리고 제가 좋아하는 뒤샹 아저씨가 딱풀을 가졌다고 해서 모두가 꼴라주 작가가 되는 것이 아니

다, 하는 이런 에피소드 적인 얘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요. 저는 조금 다르게 작가가 될 수 있습니다. 하

하 재밌게 풀어나가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했었어요. 그러다보니까 메모가 하나의 놀이로 변하고, 수

수께끼 놀이로 변하게 되더라고요. 이렇게 한옥 지붕이 있으면 이런 식으로 분해를 해가지고 다시 재조

합을 시키니까 저만의 또 다른 한옥 판타지를 만드는 공간이 될 수도 있었고요.

놀 이 동 산 처 럼 , 우 주 공 간 처 럼

그래서 보니까 또 다른 세상을 만들게 되더라고요. 뭉게뭉게 한 느낌이 나잖아요. 어느 할아버지의 담

배피는 모습이 뭉게뭉게해서 보이는 거에요. 그 연상에 맞추다보니 이런 하나의 재밌는 놀이 공간으로

만들게 되더라고요. 때로는 이렇게 놀이동산처럼 만들기도 하고요, 때로는 우주공간처럼 만들기도 하

고요. 또 다섯 번째는 각각의 이야기가 하나가 된다는 거였습니다. 정보의 조합으로 모자이크가 되었는

데요,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테마를 만들게 되었었어요. 여기에는 없는데요, 저쪽에 수첩

보시면 아직 미완성된 작품이 보이실 거에요. 거기에 보면 머리가 하얀 여자의 사진이 잘려져 있는 게

있고, 또 파이프가 그려져있는 조각난 사진이 있어요. 그래서 선생님께서 그러시더라고요. 어, 지푸라

기같아. 아니에요. 마녀의 머리에요. 근데 얘가요, 소녀예요. 이렇게 얘기를 했어요. 그러니까 디자인

하는 선생님께서 소녀면 구두를 신고다녀야 하나? 오즈의 마법사 신발 신어야 되나? 하니까 제가 아니

요, 유명한 패션 잡지 에디터같은 또각또각 구두를 신고 다니는 마녀에요. 파이프를 보여 여러 가지 세

상을 볼 수 있어요. 이런 식으로 같지만 다른 하나의 재미있는 이야기로 변화가 되더라고요. 처음에 시

작할 때는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만든 게 아니었는데 다른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아니면 또

다른 환경에 의해서 이 이야기들이 변하게 되었어요. 이거는 선생님들 중에서 어떤 분이 그러시더라고

요. 다이어리에 분명히 그게 적는데 잘 안된다고. 제가 이거는 아마 영상에선 안 나왔는데, 제 다이어

리에 나와 있는 거에요. 여기 보면 하루 일과가 있어요. 여기 보면 조금 있다 말씀드릴 수업에 대한 내

용이 있어요. 저기에 보시는 것처럼 비주얼처럼 적는 방법이 있는가하면, 여기에 있는 것처럼 다이어리

에는 이런 식으로 제가 작업을 하고 있어요. 그날그날 있었던 거, 생각나는 게 있거나, 아니면 아이들의

사진을 찍거나 아니면 괜찮은 이미지가 있으면 그걸 오리고, 거기에 관련된 재밌는 글귀라든지 그런 게

있으면, 여기 하나 있네요. 맛차 맛 양갱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가끔 애들에게 양갱의 종류는 몇 가지가

있을까 얘기하면 팥 양갱, 레몬 양갱 이런 식으로 얘기도 하고요.

또 다섯 번째는

각각의 이야기가 하나가 된다는 거였습니다.

정보의 조합으로 모자이크가 되었는데요,

각기 다른 이야기들이 모여 하나의 테마를 만들게 되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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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 모 로 우 주 를 만 들 어 요

이걸 어떻게 활용할까 하는 생각을 했었어요. 저도 처음에는 심지어 저희 아버지도 얘가 조금 이상해졌

나. 얘가 은둔생활을 하나 하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할 정도로 말이죠. 근데 이게 활용이 되는 방법이 있

더라고요. 항상 제가 사용하는 수업 세팅이 있거든요. 교육 프로세싱. 선생님도 아마 교육을 만드실 때

활용하실 거에요. 저는 관찰하고 브레인스토밍 부분에다가 메모 프로세스를 접목을 시키거든요. 그래

서 이 프로세스를 신속하게 프로토타입 소위 말하면 콘텐츠를 만드는 거죠. 콘텐츠를 만들어서 개선을

시키는데 이 개선에, 저희는 오늘 메모 때문에 제가 여기까지만 설명드리는데요, 조금 더 짜투리를 설

명 드리면 이 부분에서 뭘 하냐면요. 아이들의 생각을 덧입힙니다. 그러면서 수업을 변화시키고 하는데

요, 이런 식으로 콘텐츠를 제작하고 실행에 옮기는 방법을 사용을 하면서 메모가 또 다른 학습의 콘텐

츠로서의 시작을 알리더라고요. 그러다보니까 여기 있는 그림은 이 메모 이미지를 통해서 아이들이 실

제 수업을 했던 내용이에요. 바닷물은 왜 바다에 그물이 던져지면 바다가 조각나. 이렇게 얘기를 했더

니 아이들이, 그러면 선생님 우리 세상을 조각내요. 이렇게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면 색종이로 조각

낼까 그러니까 이게 그때 아이들이랑 사용했던 모눈종이에요. 그게 전지사이즈였거든요. 근데 이걸 두

시간만에 아이들이 완성을 했어요. 저렇게, 우주를 만들래요. 우주에다가 그물을 던져서 조각내버릴래

요. 이렇게 하다보니까 되게 웃긴 게, 제가 저거를 벽면에 붙였더니 얘네들이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면

요. 뿅뿅 뾰뵤뿅 피웅 하면서 파악 하고 막 저걸로 놀이를 하더라고요. 그런데 이거 한번 만들고 싶더

라고요. 그 정도로 제 메모 습관이 아이들한테 가게 되고 아이들의 메모습관을 또 다른 의미로 가져오

게 되었는데요. 이 수업이 되게 웃긴 게 이야기가 있는 수업으로 변하면서 함께 성장하는 문화 프로젝

트로 테마도 만들어지게 되더라고요. 저한테는 이런 식으로. 테마를 항상 만들어가지고 수업에 적용하

기도 했구요. 원래 이런 거는 보여주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는데, 잠깐 보여드리면 그런 내용으로 만들

었던 수업 내용이구요. 이런 식으로 활동을 하죠. 저의 습관들을 아이들에게 적용을 시키다보니까, 소

위 말하는 시각미술 활동으로 만들어지게 되더라고요.

점 점 덧 붙 여 지 면 서 발 전 하 는 메 모

이거 같은 경우는 만화 애니메이션에서 활용되었던 내용이에요. 그래서 메모가 가져다준 재료 관찰하

기 습관이 한 가지 재밌는 반향을 불러일으켰었는데 그게 뭐였냐면요. 아이들한테 수업을 할 때 제가 항

상 했던 게 뭐냐면요. 수업 전에 칠판에 메모를 적어놔요. 저희 어머니께서 항상 하시는 게 생선 전자렌

지에 데울때는 나 접시 나 생선이지요. 비닐봉지에 싸서 아니면 폭파되어 버린다. 이렇게 적어놓고 가

세요. 엄마랑 항상 이야기로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게 포스트잇 메모에요. 제가 중학교 때까지만 해

도 엄마한테 물어봤더니, 엄마 요새는 왜 나한테 편지 안 써 이렇게 하니까 내가 늙었더니 글자 한 자

쓸때 마다 너무 힘들다야. 하시면서 포스트잇으로 대신 하시더라고요. 근데 이렇게 해서 수업 전에 개

요를 깔아놓고 아이들한테 이렇게 내용을 뿌려봤어요. 브레인스토밍 형식으로 매핑을 만들어놨거든요.

그랬더니 수업이 아니에요. 지금 아래 보시는거는요. 아이들이 수업 전에 이렇게 놀고 있는 거에요. 제

가 잠깐 화장실 갔다온다거나 코를 풀고 온다거나 하면 아이들이 이런 식으로 아니, 놀이 활동으로 이걸

읽고 나서 우리 오늘 뭐 할건지를 인지를 하고 놀고 있더라고요. 그리고 또 다른 발견이 얼마 전에 발견

을 하게 된 거에요. 이거는 되게 신기했던 게 제가 이렇게 만날 쓰는 메모에 어느 날 한 아이가 선생님,

저는 관찰하고 브레인스토밍 부분에다가 메모 프로세스를 접목을 시키거든요.

그래서 이 프로세스를 신속하게 프로토타입 소위 말하면 콘텐츠를 만드는 거죠.

왜? 이거 제가 조금만 바꾸면 안 되요? 하더라고요. 어, 바꿔바꿔. 맘대로 바꿔 이렇게 했더니, 얘가 플

러스마이너스에다가 중간에 전구마크를 이렇게 그리더라고요. 그러면서 선생님 우리 그러면 전구를 활

용해서 뭔가를 반짝반짝거리는 걸 만들어볼까요? 뭐 이런 얘기도 아이들과 하면서 수업이 메모를 통해

가지고 덧입혀지고 또 덧입혀지면서 발전이 되더라고요. 지금 십분 잠깐 쉬고 나서 선생님들 여기 테이

블 위에 차려져 있는 이 종이 위에다가 끄적끄적 거리는 낙서놀이를 하게 될 거에요. 서로 선생님들하

고 같이요. 낙서놀이를 하면서 제가 했던 스크랩이라든지, 그리기라든지, 못하셔도 상관없어요. 심지어

는 제가 또 잘하는 것 중에 하나가 마스킹테이프거든요. 마스킹테이프를 덕지덕지 붙인다든지 그런 걸

활용해서 생각의 테일러링 놀이공간을 편쳐 메모를 해보시게 될 겁니다. 그럼 십분 잠깐 쉬시고 이야기

도 나누시고 조금 쉬는 시간을 가지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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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틀리에를 찾아온 어린손님

그래픽 레코딩

변미섭 (만화애니)

얼마 전 작업실을 오픈했습니다. 작업실은 나의 사적공간입니다.

예술강사로 살면서 어린이는 친구이며 오브제가 되어주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나의 작업실로 찾아온 어린이들은 놀이를 시작했습니다.

사적공간이 놀이공간이 되고, 창의적 동기를 제공해 주는 어린이들이 생겼습니다.

나의 문화예술교육이 어디서 오는 것일까를 생각해 보며 이야기를 풀어나가고 싶습니다.

지식공유 / 발견

그래픽 레코딩 사진

김효진 (만화애니)

사전 인터뷰 영상 지식공유 영상

반갑습니다. 저는 만화 애니메이션 교육 강사로 활동을 하고 있어요. 학교에서 재량 수업을 진행을 하

고 있고요, 이 컨퍼런스에는 제가 작업하고 있는 이야기 그리고 작업을 통해서 아이들 수업을 어떻게 진

행하는지와 제 작업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이 세 가지가 동떨어진 것이 아니라 유기적으로 다 어울

려져있다 라는 것에 대해서, 제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제 작업 이야기를 하려고 오세요! 라고 했거든요.

그런데 정말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진행 방법은 약 30분 동안 제가 짧은 시간동안 제 이야기를 하고, 조금 쉰 다음에, 테이블에 뭔가 준비

된 것으로 간단한 실습을 하면서 다 같이 토론을 하는 그런 컨퍼런스를 할거에요. 그래서 저도 처음에

는 이 컨퍼런스가 뭔지 잘 몰라가지고 발표하고 잘했니 못했니 이런 거 하는 줄 알았더니 그런 게 아

니라 서로가 이야기하고 토론하면서 회고할 수 있는 그런 자리라고 하니까 좀 더 편안하게 한번 진행

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고 민 을 나 누 고 자 합 니 다

저는 현재 작업을 설치 쪽으로도 하구요, 연 두번 정도는 표지 디자인을 하고 있어요. 봄에 한 번 하고,

가을 끝날 때 쯤 해서 표지를 하고 있는데, 최근에 나온 거는 스틸을 많이 했거든요. 그런데 작가 선생

님이 의뢰 들어오면 책 표지 같은 것도 하고 있고요, 크게는 설치 미술로 공간에 직접 가서 활동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근데 제가 예술교육 강사로 근무를 하면서 제 작업에 되게 많은 생각을, 고민을 많이 했

거든요. 내가 정말 이 예술교육 강사를 왜 하는건지, 그리고 또 정말 진정으로 처음에 제 초심이 무엇이

었는지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는데, 그 고민이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는 답이 나오더라고요. 그래서 먼

저 제 아뜰리에 이야기를 시작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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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뜰 리 에 를 만 든 이 유 는 ?

제가 이렇게 아뜰리에를 만들게 된 계기는 지극히 제 개인적인 작업을 하려고 시작을 했어요. 아까 말

한 출판물도 있겠지만, 설치물을 가기 위해서는 또 다른 물체들을 만들려면 집에서는 못하거든요. 하도

남편이 뭐라고 해가지고, 뜯고 붙이는 건 못해서 공간을 하나 마련해야지 했다가 지극히 하나의 공간을

마련해놓았고, 그거뿐만이 아니라 학교에서 강의하시니까 다 아시겠지만, 저희는 매번 갈때마다 결과

물이 나와요. 그래서 그 결과물을 아이들한테 가져가 이렇게 하면 좋은데, 절대로 주지를 못해요. 왜냐

면 학교 특성상 연이나 아니면 월, 아니면 일 년에 한번 정도는 전시회를 해요. 아니면 아이들 대회를 내

보내요. 그래서 결과물을 항상 갖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집에 책장에다가 지금 예

술교육 강사로는 짧지만, 이제 6년차? 7년차이긴 한데요, 제가 미술교육 강사로는 지금 10년차 들어가

거든요. 그래서 매번 학교 갈 때마다 결과물 모아놓는 서랍장이 필요한 거에요. 그래서 책장에다가 매

번 학기초가 되면 무슨 초등학교, 무슨 중학교, 무슨 고등학교, 아니면 어디 센터 이렇게 분류를 해가지

고 매번 보관을 하다보니까 보관 장소가 너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뜰리에 한 쪽은 정말 수납

공간으로만 사용을 하고 있고, 또 한쪽에서는 작업을 하고요.

나 만 의 공 간 ‘ 아 뜰 리 에 ’

그래서 이제 아뜰리에를 내 작업하는 공간으로 만들어야지 했다가 그런데 정말 의외적으로 제가 이 아

뜰리에 장소를 비싼 곳을 구하는 상황은 못 되고 정말 허름한 집을 알아보게 되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집이 강원도에요. 바로 옆에는 논이고요, 바로 뒤에는 치악산이고요, 바로 앞에는 물이 흘러요. 치악산

계곡 물이. 그래서 여름엔 사람이 정말 많은데, 정말 낡은 집이라 정말 헐값에 구했는데, 그 위치가 바

로 옆에 원주고아원이에요. 지금은 고아원이라는 명칭이 없어지고 센터라는, 아동복지센터라는 명칭으

로 바뀌어있는데, 그 센터 바로 옆에 제 아뜰리에를 오픈했는데, 제가 아까 말한 대로 10년 동안 미술교

사 생활을 했다고 말씀드렸잖아요, 그 기간 동안에 (재능기부라는 말이 나오기 전부터) 고아원 아이들

과 미술 작업을 계속 진행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 유치원생이었던 아이들이 지금은 중학생이 되었고 고

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제 작업실에 자연스럽게 놀러올 수 있게끔. 제가 아까 말씀

드린 것처럼 이 아뜰리에를 나만의 공간으로 쓰고 싶었어요.

나 만 의 공 간 에 서 우 리 의 공 간 으 로

집에서 나와서, 애기 안 보고, 집안 일 하기 싫고 이럴 때 남편한테 나 작업해야 돼 이러면서 짐싸 갖고

나와서 막 음악도 틀어놓고 우아하게 있고 싶은, 정말 저만의 공간이고 싶었는데 장소가 위치적으로 아

이들과 가까운 곳이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오픈이 되는 거에요. 지나가던 아이들도 저게 뭐지? 제가 페

인트칠을 막 하고 있으면, 선생님 뭐에요 이사왔어요? 왜 그렇게 귀신나오는 집에 이사왔어요? 할 정도

로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왕래가 된 거에요. 어떻게 보면 이 아뜰리에는 작업공간이기 때문에 외부사람

과의 솔직히 차단을 많이 시키는 편이거든요. 특별한 분들, 일부러 영감을 얻기 위해 오픈하는 분도 계

시겠지만, 저는 사실 차단을 목적으로 저만의 공간을 했는데 이것이 처음에는 아이들을, 아이들을 대해

주는 스페이스가 되어버린 거에요. 그래서 그 안에서 아이들 노는 모습도 보게 되고, 그 대신 조건을 하

나 달았죠. 얘들한테, 여기는 내 공간인데, 너희들이 찾아오면 난 작업을 못해. 이 작업의 결과물이 안

유치원생이었던 아이들이 지금은 중학생이 되었고

고등학생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제 작업실에

자연스럽게 놀러올 수 있게끔.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이 아뜰리에를 나만의 공간으로 쓰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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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오면, 나는 집으로 다시 들어가야 돼. 나는 가정주부니까, 집에서 약속한 게 있었거든요. 나의 결과물

을 위해 하루에 두시간씩만 여기에 있겠다. 여기 있는 시간을 정해놓지 않으면 집안에 안들어가는 거에

요. 그렇게 약속을 했기 때문에, 결과에 대한 작업을 하기 위해서는 아이들과도 어느 정도 규칙이라는

걸 정하게 된 거에요. 그래서 내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방법은, 문은 언제나 잠겨있으니까, 저희가 바로

옆에서 노래방이 문을 닫았어요. 요즘 노래방을 잘 안가시나봐요. 금방 오픈하더니 금방 문을 닫으신거

에요. 그래가지고 그 반짝반짝 빛나는 거 있잖아요. 이름이 생각이 안 나네. 그게 큰 것도 있었는데, 그

게 작은 것도 있어서 그 하나를 사장님한테 얻어갖고 왔어요. 그래서 창가에 놓고 내가 이걸 틀어놓으

면 반짝반짝거리면 내가 있다는 거니까 조용히 들어올 수 있어. 내 작업실에 노크를 하지마 라는 약속

을 해 놓고 제가 오는 날은 이거를 트는데 애들이 손을 못대요. 왜냐, 전기를 꽂는 순간 전기세가 올라

간다고 아이들에게 말했거든요. 그래서 아이들이 틀지는 못하고, 이 불빛을 통해서 제가 있다는 걸 확

인을 하고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사회문화 하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이 센터 아이들은 밖으로 나가는 걸

다 허락을 맡아야 되고, 여섯시 이후에는 밖에 못나가요. 왜냐, 우리 아이하고 밖에 못나가기로 약속을

했으면, 센터는 더 철저한 관리가 있는데, 일곱시 여덟시에도 아이들이 제 불빛을 보면 선생님한테 허

락을 받고 제 작업실에 놀러오게 된 거에요. 그래서 여기서는 나만의 공간인데 아이들이 예전처럼 선

생님 그림 가르쳐주세요, 이거 어떻게 그려요? 선생님 이거 숙제로 내줬는데요 이렇게 절대로 그거 하

면 안돼. 너희들은 여기에 놀러온거야. 너 나중에 작가가 되고 싶다고 그랬지? 화가가 되고 싶다고 그

랬지? 그럼 너희들이 하고 싶은 거 해 라고 그냥 돗자리 하나만 사놨거든요.

교 육 은 관 심 으 로 부 터

그런데 그때부터 시작이 된 거에요. 제가 만화 애니메이션 시간에 해야 되는 그런 동작이라든지 수업 교

재라든지에 대해서 늘 항상 고민을 해야되잖아요. 뭐 1년차에 했던 거 2년차 때 그대로 쓰는 게 아니고

뭐 유행이라는 게 있어서 거기에 들어가는 레시피라든지 재료가 계속 변화를 줘야 되는데 매번 고민할

때 마다 머리가 너무 아픈 거에요. 그리고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다음 주가 두렵고, 아침에 눈뜨기도

싫고, 학교 가면 불안하고, 애들이 말걸면 막 이거 어떡하지? 얘가 나보다 더 뛰어나면 어떡하지 하고

불안이 생기거든요. 그래서 매번 작업실에서 실은 내 작업보다는 학교 교육, 교육에 관련된 커리큘럼

때문에 자꾸 시간이 가게되는 거에요. 그래서 이러면 안되겠다, 내 작업을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아이

들한테 그런 조건을 달아주니까 스스로 자기들끼리 놀게끔 두고, 대신 여기 있는 물건들은 다 건드려도

돼. 다 만질 수 있게끔 줬거든요. 그랬더니 아이들이 앉아서 놀잖아요. 뭐 인형놀이도 하고 가끔씩은 싸

우기도 하고, 제가 가끔 소파에 누워있어서 제 형체가 안 보이면 욕도 하고 뭐 난리가 나요. 그런데 아

이들 심리가 어른이 있다는 거와 동시에 착한 아이가 되는 거에요. 그리고 요즘 유행하는 개콘이나 이

런데서 쓰는 단어들도 제가 있으면 안 써요. 그런데 저만 없으면, 궁금해? 궁금해? 이러면서 오백원 달

라 칠백원 달라 이러면서 저는 개콘을 안보는데 귀로만, 아이들이 하는 소리를 듣고 아 재밌네 나 저거

학교가서 한 번 써먹어야지. 오늘 학습주제 궁금해? 뭐 이런 식으로 계속 아이들한테 질문하니까, 잘하

지는 못하더라도 선생님이 저런 말 쓰네, 어 선생님이 저런 거 하네 라는 식으로 아이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제 수업시간을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한테 이렇게 공간 활용을 하면서

저는 이렇게 시설이라는 것을 만들게 되었어요. 제 아뜰리에의 설립 배경이, 설립? 아뜰리에 만든 배경

오늘 학습주제 궁금해?

뭐 이런 식으로 계속 아이들한테

질문하니까, 잘하지는 못하더라도

선생님이 저런 말 쓰네,

어 선생님이 저런 거 하네 라는 식으로

아이들이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제 수업시간을

기다리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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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극히 제 작업이었지만, 나중에는 이 세 가지라는 것으로 되더라구요. 제 작업공간, 학교 교육에서

의 연장선, 그리고 아이들만의 또 다른 공간의 대여. 이 세 가지가 되다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게 된

거에요. 제가 놀때는 아이들이 난 여기 쉬러 온 걸수도 있거든요. 작업을 하러 온 게 아니라, 정말 생각

을 하기 위해서 왔는데 어느 순간 아이들이랑 놀고 있는 거에요. 노는데 아까 말했던 요즘 유행하는 단

어를 쓰면서, 그런 제스츄어를 하면서. 그리고 계절별로 놀이까지 계속 바뀌는 거에요.

원 주 에 서 작 업 한 다 는 것 은

어떤 날은 딱지를 하면서 막 싸우는데, 요즘 딱지 옛날 딱지 같지가 않아요. 혹시 왕딱지라는 거 보셨나

요? 약간 말랑말랑하면서 큰거. 저는 딱지라 그래서 정말 생각하기에 종이 접어가지고 이런 딱지, 사각

형 있잖아요 그런건데, 놀잇감 자체가 틀린거에요. 아, 내가 지금 아이들한테 수업을 하기 위해서 책상

에 앉아가지고 내가 아는 소품을 내가 알고 있는 오브제를 이용해서 수업재료를 준비해가니까 애들은

재미없잖아요. 근데 얘들이 지금 무엇을 갖고 노는구나 라는 걸 보니까 아, 이걸 가져가서 내가 쓰면 좋

아하겠구나, 요즘 유희왕 카드가 유행이구나, 요즘 뭐가 유행이다 이거를, 내가 수업을 잘하려면 수업

을 할 대상과 소통이 잘 되야 되는거고, 그 아이가 잘 노는 모습을 보니까 아, 나 저거 한번 써먹어봐야

지. 그 생각이 들어서 그걸 제가 뺏는거에요. 가끔씩은 놀아봐라 할때도 있어요. 오늘은 뭐 하러 놀러왔

어? 이 친구들은 그냥 왔는데 야 왜 그냥와? 놀러왔잖아. 너 여기 작업실 와서 놀라고 그랬잖아. 강제

로 막 놀라고 할 정도로, 걔네들이 노는 모습만 봐도 어떻게 흘러가는구나 라고 영감을 받게 되는 시점

에 오게 된 거에요. 근데 그때 당시에 저희 원주에서는 좋은 점이 뭐냐면, 예술 교육을 하시는 분들, 회

화나 조각 하시는 분도 마찬가지지만, 엄청 지원을 많이 해주세요.

놀 이 는 또 다 른 이 름 의 교 육 입 니 다

강원도 와서 사시면 참 좋거든요. 그니까 저 올해 작품을 하고 싶은데 돈이 없어요 라고 시에다가 요청

을 하게 되면 돈을 탁 주세요. 대신, 영수증을 지급하세요. 영수증 주세요 라고 하세요. 초에 저는 아이

들을 위한 작업을 하고 싶구요, 만화 애니메이션 강사를 하고 있는데 만화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원주

에서는 처음으로 전시회를 하고 싶어요 라고 계획서를 막 웅장하게 썼어요. 그런데 아시다시피 계획서

가 정말 삐까뻔쩍 엄청 두꺼워야지만 공무원들은 통과! 해주거든요. 그래서 저도 그 생각에, 했던 똑같

은 회화 한다고 그럴까, 아니면 표지디자인 한다그럴까? 아니면 내가 공예를 하니까 도자기를 만든다고

그럴까? 안되는 걸 자꾸 할라그러는 거에요. 사실 돈이 궁한 건 아니었고, 전시를 하려면 그 티켓을 딱

타게 되면 원주에 가장 큰 예술회관을 빌릴 수 있는 순차적으로, 그게 너무 욕심이 났거든요. 돈도 조금

있더라고요. 그래서 이제 신청을 계속 했는데, 만화 애니메이션으로 한다고 하니까 공무원들도 어? 만

화 애니메이션? 에이 그런데 그냥 막 인쇄해놓은 전시는 너무 많이 봤으니까 그런 건 안되요 라고 하시

더라고요. 아니에요. 저는 설치 작가기때문에 직접 만들 수 있어요. 그래서 정말 원주에서 획기적인 작

업을 할거거든요 라고 피티를 딱 끝내고 나서 일주일 뒤에 이제 합격증과 함께 돈이 딱 왔어요. 아이들

이랑, 근데 이 돈을 받았으니까 전시회를 해야 하잖아요. 뻥튀기를 이만큼 해놔가지고 벌써 홍보는 막

들어가고. 시에서 하면 좋은 점은 돈이 풍족하지만, 제대로 못하면 다음 연도부터는 정말 짤없다, 기획

의도 자체도 말할 틈을 안주시거든요. 처음 시작하는 걸 정말 짜자잔 해야 하는데, 어떡하지? 말로는 인

쇄물 아니에요, 그랬는데 이거 인쇄물이 아니면 만화를 어떻게 보여주지? 인쇄물이 아니면 애니메이션

을 어떻게 보여주지? 라고 정말 애낳는 것 처럼 스트레스를 받았어요. 저 정말 머리카락도 그때보다 더

많이 빠지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 되니까 남편이 쳐다만 봐도 화가 나는 거에요. 왜, 뭘

봐 뭘봐 말걸지마 막 이 정도가 되었는데. 정말 누워서, 아 나 작업해야 돼 마음 먹었어. 모든 오브제들

을 갖다놨어요. 흙도 갖다놓고. 모래도 갖다놓고 재료들을 한쪽에 갖다놓고, 아이들은 집에 가기 싫잖

아요. 티비도 여러 명이 같이 보고 언니 오빠들에게 차례가 안되니까, 슬그머니 아이들이 다가와서, 나

쉬는 중이니까 너희들 놀고 싶으면 놀아 그러니까 애들이 앉아서 놀기 시작하는데, 그냥 이유 없이 갖

다놨던 의자, 이유 없이 갖다놨던 모래로 아이들이 놀이를 시작하는 거에요.

아 이 들 만 생 각 했 습 니 다

그게 애니메이션이라서 그렇게 할 수 있는데,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는 순간, 온몸이 막, 아니 내가 뭘

고민을 한거지? 내가 왜 여기서 고민을 하고 쟤네들한테 뭘 보여주려고 그러고 내가 왜 공무원한테 굽

신거렸지? 얘네들 이 모습만 보면 되는데, 어 이걸 찍어? 아 시간 지나면 안 되는데 그리고 또 애들한테

찍는다고 말하면 안 돼. 어우 내가 왜 CCTV를 설치를 안 한거야. 정말 고민을 너무 많이 했어요. 그래

서, 제가 애들이 어떻게 노나, 어 모래? 한명이 딱 놓더니 선생님 갖고 놀아도 돼요? 어어 마음대로 갖

고 놀아. 야 나한테 그런 거 묻지마. 애들이 놀기 시작하는데, 야 나, 티비에서 봤는데 스타킹에서 어떤

아저씨가 팔에다 이걸 묶고 그림 그리더라? 기다려 기다려 기다려. 샌드박스. 하고싶은 대로 놀아. 그

러고 한 명이 그림을 그려요. 걔는 그림을 참 못 그려요. 그랬더니 한명이 오더니, 야 총, 레이더 레이더

그러니까 아, 쟤네들의 노는 모습이, 나의 눈 깜빡거림이 하나의 동작이 되고, 그것을 연결하면 애니메

이션이 되는데, 나는 왜 아이들을 놀라고 하지 않고 교육이라는 목적으로 뭐 해 라고 하면서 꼭 결과물

을 생각을 했지. 저렇게 노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놀게 해 주고, 전시장에 왔을 때 움츠러들지 않고 가서

막 만들 수 있지 라는 고민이 없어졌어요.

결 과 보 다 는 과 정 이 중 요 해 요

그래서 예술관에서 정말 큰 장소에, 흙을 퍼다 나르고, 처음에 그러니까 팜플렛도 만들지 않았거든요.

시간도 너무 촉박했고. 모래 이만큼, 그 다음에 천일염 한 통 갖다놓고. 그리고 여기서 염색할 수 있게

끔 도구들을 갖다놓고 아이들한테 체험 장소이기도 하지만 결과가 바로 나오는 걸 시작을 했거든요.

이 과정을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왜 그런 게 있잖아요. 결과물이라는 게 나중에 보고서 작성을 해

야해요. 돈 받았으니까, 어디다 썼다는 계산서가 필요한 게 아니고, 어떤 결과물이 나왔고 이 결과물을

통해서 아이들이 어떤 반응을 했는지 다 작성을 해야 되거든요. 그래서 아 이걸 어떻게 하나의 결과물

로 만들지? 라고 고민을 하게 되죠. 작가니까. 이거를 어떻게 하나의 한 작품으로 다른 사람에게 알려

주고, 보고서를 만들지? 라는 생각을 막 하다가, 작업을 했죠. 어 빌 있네? 빌에다가 아크릴 천을 하나

만들까? 아크릴판이 비쳤으면 좋겠다, 비치는데 아래에 투과가 되면 더 좋겠다 여기 아래다가 천을 하

나 더 깔아야지. 빨간색 파란색 노란색 천을 깔고 모래 혹은 자기가 좋아하는 흙들을 갖다가 아이들이

놓고. 아 그럼 샌드 애니메이션을 자기가 와서 한명 하고 나면 호르라기 불고 신호를 주면 유치원 애들

관람 많이 오거든요. 쫙 줄 서가지고 3초, 하나둘셋! 하나둘셋! 그걸 하나하나 다 찍는 거에요. 그러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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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난치는 사람이 최고로 좋아. 왜?

그 아이가 얼마나 머리가 좋을까?

선생님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려고 하는 그 잔머리,

나는 그걸 그 아이한테 배우고 싶으니까

이런 식으로 그 아이를 막 칭찬을 했거든요.

연속된 그림이 사흘 내내 빔으로 바로 연속장면이 되고, 그런데 연속장면이 여기만 보면 안 되요. 여기

아래 아까 펴놓은 데 있잖아요. 그 장면도 하나의 작품이라서 한 작품으로 두 가지 작품이 나오는, 그

런 작업을 했었거든요.

아 이 들 의 마 음 을 이 해 해 야 합 니 다

쪼끔 흥분했는데, 아시나요? 이 아뜰리에라는 곳이, 많은 분들이 작업을, 저한테 메일을 주셨잖아요.

메일 주신 분들 중에서 한 서너분은 이런 분이 계셨어요. ‘이것을 수업에 어떻게 하게 되면 아이들이 좋

아하나요?’ ‘어떻게 해야지 아이들이 저를 좋아하고 빨아들일 수 있나요’라고 많이 물어보셨는데, 그거

에 대한 답을 해드릴 수가 없는 거에요. 저는 아이들을 이렇게 이렇게 흡수를 하려고 레크레이션도 배

웠고, 웃음치료 공부도 하고, 안되겠다 싶어서 좀 더 많은 뭐 이런 거 있어요. 어머니 교실 같은 것도

있는데, 거기에 가면 아이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대요. 그 교육도 받았어요. 결혼하기 전에요. 왜 받았

냐면,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는데 정말 어우 지금 뭐하자는 거야 나한테 해 라고 했는데 싫어요. 그래도

해야지, 수업시간이잖아. 싫어요. 그럼 싫다는 애한테 하라고 할 수 없잖아요. 그럼 차갑게 대하는 거

에요. 그럼 하지마. 하지마 그럼 가. 여기 왜 와있어. 학교잖아. 학교에 오는 이상, 정말 얘를 막 이렇

게 할 수가 없어요. 정말 저주를 부릴 수는 없잖아요. 어떻게든 해야 하니까, 제가 그거를 배우게 된 거

에요. 그런 센터에 가서 어머니 교실 가서 아이 자녀교육에 대해서 아 얘가 왜 그럴까 더 깊게 생각을

해보고 학기 초에 딱 가면 저는 그런거를 했어요. 선생님들이, 강원도만 그런 건지 몰라도 성적 순, 아

이의 특이사항을 미리 주세요 라고 하지 않아요. 선생님들은 어떠신가요. 학기 초에 선생님 반에 특이

한 아이가 있으면 주세요 라고 하시는 분도 있고, 저는 절대로 주지 말아주세요 혹은 정말 반의 장난꾸

러기, 정말 얘만 아니면 수업 분위기 완전 좋다 걔네들 명단을 주세요 라고 해서 그 아이를 칭찬을 하

는 거에요. 야 나는 장난치는 사람이 최고로 좋아. 왜? 그 아이가 얼마나 머리가 좋을까? 선생님이 싫

어하는 행동을 하려고 하는 그 잔머리, 나는 그걸 그 아이한테 배우고 싶으니까 이런 식으로 그 아이를

막 칭찬을 했거든요. 그래서 예뻐하자, 하기 싫어? 해야지 가 아니라 그래 하지마, 니가 원하는대로 해.

심심하면 날 찾아. 안 심심한데요? 언젠가 심심할거야. 1년 내내 여기 올건데 너 안 심심하겠어? 저 안

심심해요. 안 해요. 아이 그럼 걱정하지마. 그럼 너는 저 앞에 있어. 정말 철저하게 소외시키는 거에요.

그러면 걔가 어느 날 쭈뼛대더라구요. 그때 가서 한번 고개 돌릴 때 모델도 시켜주고, 애니메이션 시간

에 만화 시간에는 주인공이 되게 많이 필요해요. 그래서 그 아이를 주인공 시키고, 왕따 시키는 애가 있

다 싶으면 걔를 먼저 이용해서 수업을 했었거든요. 그래서 그 메일에 관련된 것들은 그런 것이 있었는

데, 다시 이제 본론으로 가겠습니다.

교 육 은 곧 나 의 작 업 이 됩 니 다

작품활동을 선생님들은 어떻게 하세요? 아이들을 위한 작업을 하시나요, 아니면 그냥 즐겁게 내 나이에

맞는 내 영감이 떠오르는 작업을 하시나요? 저는 제가 예술교육 강사라는 직업을 하면서 교육에 관련된

전시를 하게 되었거든요. 뭐 동화책을 하든 만화책을 하든 애니메이션을 하든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정말 동떨어지지 않게끔 하려고 노력을 했어요. 그 전에는 크로키 전시회도 했었고. 그 전에는 다른 전

시를 많이 했는데, 제가 이 발을 딱 들여놓는 순간 여기에서 멀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드는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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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일을 선택한 이상 내가 왜 이거를 1년만 할 건 아니잖아요. 2년 할 것도 아니잖아요. 나의 평생

직업이고 교육 강사로 있을 거면, 모든 작업이 교육과 예술과 통합적으로 혹은 유기적으로 같이 다 합

심해서 움직여야지만 좋은 결과물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을 하거든요. 그래서 저랑은 조금 다르게, 작

업은 작업대로, 교육은 교육대로 하시는 분도 있겠지만, 저는 이것을 같은 거라고 생각을 해요. 많은 분

들이, 저 방과 후도 하거든요. 월화수목금 강원도는 강사가 없어요. 4교시 4교시 풀타임 하고 월화수목

금 풀 수업이에요. 아니 그 수업을 어떻게 해? 그 많은 걸 어떻게 해? 아, 어렵지 않아. 우리는 학기 초

에만 어려우면 돼. 학기 초에만 정확한 규칙, 정확한 아이들과의 소통방법, 그리고 내가 아이들에게 무

엇을 말하려고 하는지 그 의도만 신호만 잘 정해놓으면, 5월달부터 우리는 그냥 앉아있으면 돼. 뭐뭐 하

자 그렇게 말만 하면 되거든. 그래서 힘들지 않아. 내 수업은 미술이든 만화 애니메이션이든 조각이든

다 별개라고 생각하지 않아. 이거는 내가 수업을 어떻게 이끌어가느냐에 따라서 다 내 수업이 될 수 있

다고 생각하거든 이렇게 하면서 저는 일주일 내내 풀 수업을 하고 있어요.

내 가 즐 거 워 야 아 이 들 이 즐 겁 습 니 다

아뜰리에가 있으면 좋은 점은, 휴식공간, 재창조, 그리고 모든 것을 위한 집합소, 창작소 그런 공간으로

저는 많이 활용을 하고 있어요. 시간제한 되게 많은데 정신없었다. 무슨 말을 하려 했냐면 요거였거든

요. 아뜰리에에 찾아온 손님, 이들을 통해서 나는 교육에 대한 또 다른 눈이 생겼고, 교육이 정말 앉아

서 하는 교육이 아니라, 답답하면 그렇게 말하잖아요. 공무원들 니네가 앉아서만 하니까 뭘 모르지. 니

네가 나와봐. 그게 말이 될 거 같애? 교육도 똑같아요. 아이들한테 그림 정말 못 그리는 아이한테 해보

자, 그려보자, 점수 낸다 당연히 말이 안 되잖아요. 그러면 우리가 그림 못 그리는 아이를 위해서 샘플

여러 개를 준비를 해야 되죠. 아, 저는 달을 못 그려요. 달을 그리는 방법은 요거야. 저는 사람 못 그려

요. 사람 못그려? 졸라맨 그릴 수 있니? 졸라맨 그릴 수 있대요. 정말 편한 게 졸라맨인데 세상에서 제

일 어려운게 졸라맨이거든요. 몸의 관절을 다 알아야 되니까. 야 옷 좀 입히고. 창피하잖아. 바지는 입

혀줘야지. 안 걸어다녀? 신발! 하나씩 하나씩 아이들 가르쳐주면 수업이 진행이 되거든요. 그래서 앉아

서만 교육하는 게 아니고, 수업 교재를 만들더라도 직접 가서, 이 문구사에 가면 포스트잇만 해도 여러

가지가 있으니까, 직접 가서 재료도 보시고, 만들어보시고, 또 결과물을 제가 의도했던, 처음에 애니메

이션 강사가 되었을 때 의도했던 게 뭐냐면, 아주 재미있는 만화 애니메이션이잖아요. 말로만 들어도.

학교가면 선생님들이 그러세요. 선생님은 좋겠어요. 애들이 좋아해서. 선생님도 좋잖아요. 만화 애니메

이션인데. 싫어할 이유가 없는 거잖아요. 아이들 다 좋아할 수밖에 없어요. 만화 애니메이션이거든요.

선생님들 되게 많이 부러워하시죠. 나도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업을 하고 싶어. 나는 그 선생님이 정말

이해가 안되는 거에요. 왜 아이들이 좋아하는 수업을 못할까? 좋아하게끔 만들어주면 되는데. 싫어할

수 밖에 없는 수업일 수도 있어요.

함 께 정 한 규 칙

만화 시간 하면 그림 그린다, 공예 시간 하면 만들기 한다, 연극하면 표현해야 된다, 성격상 안 맞는 친

구들은 못할 수도 있지만, 그 교재를 그런 아이들을 위해서 여러 개를 만들면 좋을 거 같아요. 하나의 주

제 아래 하나의 수업 교재가 아니라, 내가 학교에 가면 그 분위기를 만들어 주잖아요. 그 분위기에 맞춰

서 저는 교재를 여러 개를 만들거든요. 복잡하게는 만들지 않아요. 만약에 정말 갔는데, 학기 초에 그림

못 그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그림 잘 그리는 아이들이 있었다. 중간인 아이들이 있었다. 그러면 저는 교

안 자체도 여러 가지로, 하나가 아니라 두세 가지 이렇게 만들어서 수업시간에 못해요 라는 말은 절대

안되요. 저희 교실에 들어올 때 제가 갈 때마다 몇 학년 몇 반 교실로 가세요가 아니라 선생님 미술실로

가세요. 학교 선생님들은 만화 애니메이션을 미술로 많이 보시거든요. 미술실에 선생님 상주해계시면,

아이들 시간표대로 올거니까 받으세요 그러면, 저희는 그럴 때 학기 초에 약속을 했으니까, 되게 웃기

겠죠. 이러고 들어와야 되요. 아 하기 싫어 이러면서 올 수도 있어요. 그런데 이 규칙을 정해놓고, 들어

올 때마다 아이들이랑 정해놓는거죠. 들어올 때도 신나게, 대신 입은 막자. 너무 시끄럽거든요. 얘네가

한번 말하면, 세상이 다 떠나갈 것처럼 떠드니까, 입은 꼭 막고 들어와서, 내가 시작해서 표현할 때 까

지는 있어주기. 라고 해요. 해서 힘드시더라도.

강 원 도 로 놀 러 오 세 요 !

아뜰리에에서 저는 아이들한테 줄 수 있는 것들을 만들게 되었어요. 아뜰리에에서 나만의 개인 작품의

준비기간은 정말 짧고요, 미술교육 강사라는 것으로 인해서 더욱 좋은 교재 개발도 저는 계속 하고 있

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한테 그 교재 개발한 거를 같은 저랑 애니메이션이나 이런 분들은 보여드리면

좋겠지만 그런 분들이 안계시기 때문에, 좀 더 하셨으면 좋지 않을까? 교재 개발을. 그리고 좀더, 아이

들과 재미있게 노시면, 그리고 막아놓지 않고 오픈 하니까 나는 좋더라, 이거였어요. 네. 동네 할아버

지 할머니들도 봄 되면 애호박 하나 따가지고 논두렁에서 익었다고 갖다주실 때도 있고, 할아버지들 이

상하게 너는 뭐하는데 자꾸 왔다갔다해 그러시는 분도 있긴 있는데, 어쨌든 저는 작업실을 오픈해줬어

요. 그래서 아이들이 아무 때나 들어올 수 있고, 지나가던 사람들도 올 수 있고, 그런데 이게 환경적으

로 저랑 맞았으니까, 저의 아뜰리에는 제가 원하던 이런 것들이, 강원도라는 특성, 그리고 시골이라는

특성에 딱 맞아 떨어졌기 때문에 동네 마흔 넘으신 총각 오빠들이 들어와도 오픈을 해놓을 정도였거든

요. 그러니까 저한테는 맞았지만, 다른 아뜰리에 갖고 계신 분들은 그런 공간이 안 되실 수도 있으니까

그렇게 권유하는 건 아니고요, 강원도 오시면 구경을 시켜드릴께요. 많은 걸 얘기하고 싶었는데, 주제

는 딱 정해져있고, 이 아뜰리에라는 곳에서, 정말 나의 에너지 그리고 또 어떻게 작품이 활성화되는지

가 저의 주제였거든요. 제 이야기였습니다. 재밌으셨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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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아이들이 그토록 보고 싶을까?

그래픽 레코딩

백선화 (미술)

내 표정만 보면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 눈물을 보면 같이 슬퍼해 주고,

혹 내가 마음을 쉽게 열지 못해도 나를 놓지 않을 사람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식공유 / 발견

그래픽 레코딩 사진

박근애 (만화애니)

사전 인터뷰 영상 지식공유 영상

백선화구요 오늘 주제가 나는 왜 아이들이 보고 싶을까입니다. 다 오신 것 같아요. 순서는 저희 동영상

UCC를 준비해놨어요. 1분짜리. 그런데 저희들이 한 게 아니고 학생들이 한 거에요. 중학생, 고등학생

들이 한 건데 이 친구들이 생각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 1분짜리, 55초짜리 준비해놨고요. 그거 본 다

음에 간단하게 주제발표 25분 정도 하고, 휴식 10분 갖고요, 그거 끝난 다음에 60분정도 선생님들하고

얘기 나누는 걸로 하겠습니다. 그래서 많은 선생님들이 피드백 주신 게 있는데, 비슷하신 것 같아요 선

생님들 모두 다. 생각하는 거, 아이들, 소통, 공감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 그런 얘기들을 나누면서.. 사실 저희들이 연수 아니면 예술 강사들이 모여서 편안한 얘기를 할 수

있는 그런 장이 없었는데, 이번에 그런 장이 마련되가지고 개인적으로 기쁘게 생각하고, 저는 아동미

술을 하고 있어요. 평소 못 만나 뵀던 다양한 분야의 선생님들을 만나 뵙게 되어서 제가 굉장히 가슴이

뛰고 있습니다. 만나서 굉장히 반갑습니다.

아 이 들 로 부 터 받 은 선 물

먼저 동영상 세 개, 동영상 보셨고요. 동영상을 보신 거는 다른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만들었다는 거.

아이들이 이런 생각들을 갖고 있다는 거. 그럴 때 저희 선생님들이 어떤 생각을 보고 아이들을 만나고

있는지, 또 아이들이 어떤 관심을 바라고 있는지. 저 안에 우리 선생님들이 아이들 만나고 아이들을 만

나서 어떻게 해야 될까라는 답이 들어있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저는 이름은 백

선화구요, 이름 때문에 많은 분들이 여자선생님으로 알고 계세요. 산업디자인을 전공하고 지금 아동미

술 하는데 많은 분들이 ‘아니 산업디자인 전공해서 왜 미술을 해?’ 그건 제 이야기 속에 왜 아동미술을

하는지 아마 아실 것 같구요. 그냥 아이들하고 잘 놀아주는 거 밖에는 없어요. 그런데 그럴 때 아이들

이 끝내고 올 때 내가 좀 많은 것을 주고자 했는데, 도리어 많은 것을 받고 오는 때가 너무나 많이 있었

습니다. 저는 30대 초반 때는 그런 생각 안 해봤었어요. 그런데 40대 초반 되면서 눈이 올 때 항상 길을

가다 보면 뒤돌아보는 습관이 조금씩 생겼어요. 그럴 때 보면은 제 발자국이 하나, 둘, 셋 쭈욱 나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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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 멀리 있는 것들은 다시 눈에 쌓여서 이렇게 흔적이 조금씩 없어져가요. 그런걸 보면서 그 흔적들이

내가 예술대학을 가서 디자인을 전공하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을 했다가, 또 이 예술강사를 하고 이런

나의 인생길들이 아닐까, 생각이 많이 듭니다.

내 인 생 의 그 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이야기에요. 앨리스가 가는데 여러가지 갈래 길이 나오는 거에요. 그런데 고양이

한마리가 있는데 고양이보고 물어봐요. 어느 길로 가야되냐? 하지만 고양이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내가 도착하고자 하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한테 의미가 큰 삶인 거 같아요.

저는 산업디자인을 전공하면서, 한 30대까지는 저만을 위했어요. 그러니까 주변을 보지도 않고, 주변

돌이킬 것도 없이 오직 하나의 목표,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만 달려왔었어요. 이런 사회문화예술의

나눔, 아이들과의 이런 관계는 전혀 생각지 못한, 그냥 소위 ‘사회인’이었어요. 그리고 동기들보다 좀

인정을 많이 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많이 좀 자만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협회나 학교에서 나름대

로 주목도 받고, 그래서 ‘뭔가 그림이 그려지겠구나, 내 인생의 그림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살았어요.

잃 어 버 린 ‘ 나 ’ 를 찾 다

새벽에 ‘내가 이제 뭐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러는 중에 나 자신을 좀, 잃어버린 나

를 보게 된 거에요. ‘내가 지금 뭐 하지?’라는 생각이. 그러다가 과로를 너무 해서, 과로로 해서 그날도

새벽까지 프로젝트에 대한 고민을 하고 아침에 집에 와서 샤워하고 나가려고 하다가 그만 심장에 무리

가 생긴 거에요. 그래서 쓰러졌었어요. 아, 쓰러지면서 이렇게 사람이 죽는구나라는 것을 느껴봤어요.

그런데 제 기억에는 많이 시간이 흐른 것 같은데 깨 가지고 다시 시계를 보니까 거의 한 10분 정도 밖

에는 안 쓰러져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순간에 어릴 때 기억부터 지금까지의 기억이 영화에 보듯이

이 이게 거짓말이 아닌 것 같아요. 필름이 지나가더라고요. 아프면 이렇게 쓰러지면서, 아 이렇게 죽는

구나 쓰러졌다가 깨 가지고 119를 불러가지고 병원을 갔어요. 병원을 가서 6개월을 치료 받았는데 그

러면서 이제, 사는 게 나쁜 일은 한꺼번에 몰려오는 것 같아요. 그래서 아 6개월을 치료 받으면서 조금

이제 6개월 동안 모든 일을 못하게 되니까 너무나 화가 나더라고요. 나 자신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못하

니까. 너무. 그런데 다 낳고 좀 하려고 하니까 팔이 부러진거에요. 이쪽 팔이 부러졌었어요. 이쪽 팔이

부러져서 기브스를 3개월 동안 많이 골절되어서 하는데, 한번 또 이럴 때 아 장애인이 되어 보는 거에

요. 그런데 이제, 버스,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데 이렇게 불편하구나 대중교통이, 그 때는 두 팔이 멀

쩡할 때는 차가 흔들리든 먼저 가든 그런 것이 났었는데, 한 팔로 사회생활을 해보려 하니까 배려가 너

무 없구나, 나눌 수 있는 거, 양보 이런 것들이 아무 것도 없는 거. 아 우리나라는 힘들구나 어떤 신체

적 장애가 아니라 다른 장애를 가졌더라도 우리나라는 많이 힘든 사회이구나라는 것들을 많이 느껐었

어요. 그러면서 아 좀 의미 있는 일이 없을까라고 생각해 본 거에요. 한 번 아파보니까. 그래서 고민하

고 있는데, 연극 친구가 ‘야 좀 아파서 쉬고 있는데, 좋은 일 하는 게 없을까? 보람이 되고 의미 있는 일

이 있으면 좋겠어.’ ‘왜 하려고 해? 너 디자인 돈 잘 벌잖아.’ 이러잖아요. 그래서 그 친구 연극 친구가

그러면 학교 외 강사가 있는데, 진흥원에 있다고 한다. 그 친구가 그 얘기를 했었어요. 그런데 별로 생

앨리스가 가는데 여러가지 갈래 길이 나오는 거에요.

그런데 고양이 한마리가 있는데 고양이보고 물어봐요.

어느 길로 가야되냐? 하지만 고양이는 이렇게 얘기하고 있어요.

‘내가 도착하고자 하는 곳이 어디냐에 따라 달라진다.’

우리한테 의미가 큰 삶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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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왜 아무도 없냐고 그러니까,

몰라요 저 어릴 때부터 여기 있었어요

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있구나,

그러면 아이들하고

마음으로 다가서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요.

각을 안 했었어요. 학교예술강사 별로 신경도 안 썼는데. 그래서 처음에 학교예술강사를 애니메이션을

하게 됐어요. 만화 애니메이션 1년 했는데, 그 학교 교장선생님은, 이게 동아리활동이었는데, 꿈을 안

고 아이들하고 첫 만남이고 좋은 만남 속에서 해야지라고 하고 갔는데, 저는 그냥 그림자였었어요. 그

리고 그 학교는 교장선생님이 다 다른가봐요. 학업 우선이어서 아이들이 동아리활동 가야됩니다. 만화

필요없다고 야자시키고 그러면 저 혼자 가서 오늘은 그거 안 한답니다. 그러면 갔다가 그냥 다시 오고

늘 그랬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제 기억에 수업을 별로 안했던 거 같아요. 그러면서 열심히 했다고 일지는

그렇게 올리고. 그거 모를거에요. 아마.

다 시 찾 은 미 술 의 길

연구부장 선생님은 했다고 열심히 해주시고. 그래서 ‘아 이게 뭔가?’ 그래서 이제 초등학교를 갔는데 거

기서도 열의가 있는 담당선생님이 계시면 저도 신나고 열심히 하고 아이들도 그렇고, 그런데 관심 없는

선생님이 계시면 왔다가 가든 아무것도 신경 안 쓰고. 그런 선생님일 수록 일지 올렸습니다 얘기하면,

알았다고 했는데, 어느 날 가면 그날은 하나도 체크가 안 되어 있어요. 그런 경우가 많고 그래서 아 우

리 예술강사가 학교에서 이런 존재인가? 그림자같은 존재, 어떤 섬 같은 존재, 뭐 이런 존재였던 거로

저는 느꼈어요. 05년도에 했을 때. 지금은 아마 많이 좋아진 것 같아요. 지금 말씀 들어보면 그래도 좋

아진 것 같은데, 그때는 그랬었어요.

그러면서 이제 사회강사가 처음 미술이란 걸 뽑았어요. 왜 뽑았는가 들어가서 보니까 기존 선생님들이

많이들 그만두셨다 그러더라고요. 메세나에서 왔던 분들이 다 그만두고, 이제 전공자들만 남았다. 이렇

게 얘기하시더라고요. 왜요? 그러니까 메세나 있을 때는 많이 다양하게 하셨대요. 근데 진흥원으로 넘

어오면서 그런 분들이 계약이 안 되고 하는 바람에 결원이 생겼던 거에요. 열두 명. 근데 열두 명이었는

데 너무 많이 지원을 하셨더라고요 보니까. 그래서 저는 하고, 면접 하고 됐겠다 생각도 안하고, 너무

많이 좋은 선생님들이 오셔가지고. 그래 가지고 있는데, 됐다고 이제 연수 들어오라고 그래서 처음 들

어온 게 08년도 때 학교에 있다가 08년도 때 처음 사회 미술을 하게 됐어요.

처 음 만 난 아 이 들

첫 해년도에는 아이들을 잘 몰랐던 거에요. 얜 똑같은 학생이다라고 생각을 하고 갔는데, 얘네들은 똑

같은 학생이 아닌 거에요. 제가 있는데 의자들이 날라다니고 남자들끼리 싸워요. 내가 말렸는데도 애

들이 막 싸워요. 깜짝 놀랐어요. 말 안들어요. 애들보다 제가 더 소리가 높아요. 하루 종일 ‘야! 너 조용

히 안해! 어!’ 이러다가 끝나고 그래서, 아 생각을 다시 해봐야겠다. 왜냐면 전 똑같은 학생인데 엄청나

게 다르더라. 학교는 학교에 공부하러 온 애들이고 거기는 공부하고 집으로 간 아이들인데, 그런 특수

성을 알지 못하고 갔던 거에요. 그런 부분들 아이들하고 만나면서 얘기하면서 느꼈던 게 뭐냐면, 아이

들은 나를 버렸다고 생각하더라고요, 거기 아이들이. 왜? 했더니, 거기 아이들은 1년 지났는데 찾아오

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대요. 그래서 제가 왜 아무도 없냐고 그러니까, 몰라요 저 어릴 때부터 여기 있었

어요라고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있구나, 그러면 아이들하고 마음으

로 다가서야 되겠다라고 생각을 하게 되요. 원주에서 강원도 전 지역을 하고 있는데, 다행히 올해, 작년

에, 올해 강원도에서 선생님 두 분이 오셔서 아 이제 나눠서 해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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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술 은 내 친 구

그때 했던 것이 미술이라고, 그리기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도시에서 시골로 갔는데, 많은 친구들도 못

사귀구요. 별로 친하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늘 혼자 이렇게 생활을 많이 하는데 그래서 끄적끄적

그리기 시작했던 것 같아요. 운동장에서 그리기도 하구요. 공책, 이면지에 그리기도 하구요. 그러면서

그게 처음 경험했던 미술이라고 하는 거에요. 그러면서 계속 미술은 제 친구였던 거에요. 옆에. 얘기도

못하고 소통도 못한 유일한.. 이 친구만 있으면 나 혼자 얘기하고 재밌어 하고 웃고 또 남들한테 보여주

기도 하고 했던 어릴 때 그런 기억이 있는데. 아르바이트하면서 학원비 벌고, 등록금 벌고 이러면서 대

학을 좀 길게 마쳤어요. 왜냐면 1년 다니고 등록금 아르바이트 하면서 벌고요. 학원가서 아이들 가리키

면서 벌고, 그러면 또 다니고, 또 1년 또 쉬고 또 다니고 그러면서 대학을 다녔던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런 시간들이 아까워서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아요.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나만 성공하면 돼. 나만 잘

되면 돼. 다른 사람 필요 없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사회 예술 강사를 하면서 많은 곳을 다녀보면

서 느꼈던 것은 아 어떻게 하면 아이들하고 나하고 마음을 맞춰볼까? 그래서 생각한 게 이름을 빨리 외

우자. 그래서 아이들하고 얘기할 때 ‘야’가 아니라 존댓말을 꼭 써요. 그래서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존

댓말이구요. 그 다음에 꼭 눈을 맞추고, 선생님 눈 봐야지 꼭 눈 맞추고 제가 지금 서 있어서 죄송한데,

아이들하고 할 땐 저도 이렇게 무릅 꿇고 이렇게 눈 맞추고 얘기해요. 그래서 아이가 서 있으면 저도 이

렇게 눈높이로 얘기해주고요. 그래서 이제 눈을 맞추면서 얘기를 하니까, 조금씩 그 눈에서 조금 화 나

있고, 저 선생님은 왔다가 갈 사람인데 저렇게 거리감 두고 그랬던 아이들이 가까와지기 시작했어요.

이름 불러주고서부터. 아이들한테 누군가가 자기 이름을 불러주는 선생님이 계시구나. 또 자기한테 관

심을 가져주고 있구나 라는 걸 아이들도 아는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주면서 아이

들하고 얘기를 많이 해봤어요.

마 음 의 문 을 열 다

처음에는 아이들하고 얘기를 할 때 마음의 문을 쉽게 안 열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저도 어떻게 얘기하

지? 너 여기 왜 왔냐? 이렇게 얘기할 수도 없고. 그래서 선생님 얘기, 제 얘기를 많이 해 줬던 거 같아

요. 제 그림에 관한 얘기. 나는 혼자 있을 때마다 늘 그림이 내 친구였고,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걸 다 이

뤄 준 좋은 친구였다. 그래서 너도 한번 그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라는 얘기를, 제 얘기를 많이 해 줬

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아이들이 조금씩, 조금씩 변화되는 걸 느끼고, 또 아이들이 자기 얘기를 해요.

아이들이 조금씩 조금씩 마음 문을 열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결국 아이들하고 함께 할 수 있다는 거.

저는 처음 갔을 때 이렇게 꼭 얘기를 하거든요. 선생님은 3월부터 12월까지 올 거야. 그리고 정해진 요

일에 너를 꼭 만나러 오는데 우리 1년 동안 끝날 때는 이런 모습으로 변해 있으면 어떨까란 얘기를 좀

해요. 어떤 얘기냐면, 우리가 수업이 끝날 때는 우리가 이런 모습으로 변해있자. 소중한 만남이 됐으

면 좋겠다. 너와 내가. 그 다음에 따듯함 속에서 선생님 이름을 불러주고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는 관계

가 됐으면 좋겠다. 그리고 사랑스런 존재, 소중한 존재로 우리 약속을 꼭 만들어보자. 이 약속은 아이

의 미래에 대한 꿈의 약속이었던 것 같아요. 돌이켜보면 사회강사를 하면서 가게 된 것은 예전에 대학

다닐 때 한 1년 정도 음악 하시는 피아노 선생님이랑, 그 때는 고아원이었던 것 같아요. 보육원이 아니

라. 그 선생님하고 토요일 날 아이들 예능 가리키는 게 있었어요. 한 두명 해서 가리키고 싶은 아이들,

원장님이 추천해서 1년 동안 갔었는데, 그 때 중학생이었어요. 중학생이었는데, 얘기를 나누다 보니까

저희는 꿈 얘기를 많이 했더니, 저희는 꿈이 필요 없다. 꿈이 없다. 꿈을 가질 필요가 없는 거 같아요.

저희 인생에는... 이런 얘기를 많이 했었어요. 아이들이. 그 어린 나이에 굉장히 이런 세상 속에 아이들

이 있었구나 라고 알고 잊어버렸던 거에요. 알고 잊어버린 것. 그러다가 어느 순간에 버스를 타는데 터

미널에서 내려서 버스를 타고 가는데 왠 여고생이 저한테 아는 척을 해요. 안녕하세요, 선생님. 이러는

거에요. 그래서 저는 모르는 학생인데 인사를 하네. 그래서 누구지? 이랬더니, 저 그때 거기서 선생님

한테 1년 동안 배웠던 누구에요 라고 할 때, 돌이켜보니까 두 명의 학생이 있었거든요. 그 중에 한 학생

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저 미술하고 있어요. 어떻게? 했더니, 고등학교에서 디자인과를 가려고 준비

하고 있다. 진짜 우연하게 만나서 그 때 굉장히 기뻤어요. 그게 지금 돌이켜보면 보람인데, 기뻤고, 어

그래 잘 해봐. 열심히 하면 할 수 있을 것 같아 라고 해주고, 또 시간이 흘렀는데, 한 2~3년 흘렀던 것

같아요. 버스에서, 참 버스가 인연이 커요. 몇 번 버스인지. 그 학생, 큰 여학생이었는데, 대학생인 그

학생이 전 처다도 안 봤지요. 근데 제가 이렇게 잡고 있으니까 이렇게 오셔서 선화 선생님 아니세요?

라고 얘길 하는 거에요. 누구신데요? 이랬더니, 그 때 봤던 그 학생인 거에요. 그래서 너 뭐하니? 그랬

더니 저 디자인과 다녀서 저 지금 미술학원 강사로 일 하고 있어요. 라고 하더라구요. 그 학생은 자기

여동생하고 둘이 사는 친구였거든요. 그래서 그거 하면서 자기 동생도 나와서 둘이 같이 살고, 또 이걸

하면서 자기 꿈을 키워나갔다라고 들을 때 그 버스에서 내리면서 그 버스가 안 보이도록 처다 봤던 기

억이 있어요. 그런 기억 때문에 아마 사회강사를 지금까지 1년에 60시수 하면서 하고 있는 거 같아요.

아 이 들 에 게 받 은 큰 사 랑

어느 선생님이 그럼 선생님 뭐 먹고 살아요? 그래요. 전 딴 일 하고 있으니까. 딴 거 일 해서 먹고 살고

있어요. 그래서 저도 가끔 저희도 많이 주세요. 실수 좀. 이런 얘기 하고 싶은 때가 너무 너무 많은데, 저

희들은 별로 많지가 않아서... 그래서 저는 아이들 이름을 불러주면서 눈을 같이 좀 맞춰주고, 전 굉장

히 내성적인 학생이었어요. 그래서 지금 아마 여기 서 있는 걸 보면 다른 동기들이 백선화가 저렇게 많

이 변했어? 그럴 것 같아요. 이렇게 얼굴이 빨개져갔고 말도 못하고 그랬을 것 같은데, 선생님들 눈 처

다보면서 얘기하고 있잖아요. 이게 큰 변화인 것 같아요. 내성적인 성격이었는데 많이 좀 바꿨어요. 내

성적인 성격이다 보니까 어려운 점이 많이 있더라구요. 그런데 조금 조금씩 성격을 바꾸는데 노력해보

고요, 그러다 보니까 조금씩 이런 직업이 예술 강사라는 직업이 또 말을 많이 하는 직업이다 보니까 또

바뀌게 되더라고요. 그렇게. 아이들하고 신뢰감이 또 조금씩 쌓이고, 조금씩 쌓이고 1년 지나다 보니까

또 쌓이고. 그런데 전 불행히도 갔던 데를 2년 연거푸 가본 적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꼭 한번 가면 꼭

진흥원에서 딴 데를 보내시더라구요. 저희 사회 쪽에 아동미술 쪽에 남자 선생님은 저랑 네 명 정도 되

거든요. 나머지 다 멋지신 여자 선생님들이신데. 그래서 저는 가고 또 가고 할 줄 알았는데, 한번 약속

을 했던 게 있었어요. 그러면 내가 다음 연도에 널 보러 올게 그랬는데, 진흥원에서 선생님은 충청도로

가세요. 그러는 바람에 그 친구를 못 만나서 제가 일부러 시간을 내서 갔었어요. 왜냐면 약속이기 때문

에. 그 친구들은 많은 사람들이 자기하고 약속을 어기는 것을 많이 경험했어요. 그래서 그 약속을 안 믿

어요. 그래서 그 친구에게 가서 선생님이 오고 싶었는데, 딴 데로 가서 거기 있는 친구들이. 그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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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됐다. 그래서 너를 한 1년 동안 못 보러 오겠다. 하지만 내가 이런 얘기를 하려고 요번에 왔다라는

거. 이런 얘기를 해주니까 그런 관계 속에서 신뢰감이 더 쌓이는 것 같고요. 또 그럴 때 진실함이 조금

씩 조금씩 더해지는 것 같더라고요. 아이들하고 지내면서. 그러다 보니까 공적인 만남이잖아요. 저희

가 교육하러 갔는데. 근데 교육도 하지만 사적인 얘기도 많이 하게 돼요. 자기 얘기, 학교 얘기 그 얘기

밖에 없어요. 거기 다 모여 사니까, 학교에서 있었던 얘기 해주고 자기 얘기, 선생님 저 여기 3학년 끝

나면 이제 여길 나가야 하는데 어떡하죠? 이런 얘기부터 사적인 얘기를 조금씩 털어놓고 그래요. 그래

서 저는 어떤 때 보면 제가 많이 가졌구나. 또 많이 나눠줄 수 있겠다 했지만, 결국 아이들을 만나고 오

면서 내가 이렇게 더해서 전해준 게 아니라 마지막 수업 끝나고 오면서 내가 아이들한테서 사랑을 많이

받고 오는 구나 라는 걸 매년 느끼게 돼요.

놀 이 안 에 서 의 미 를 찾 다

그러면서 다른 직업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뿌듯함, 보람, 기쁨 이런 게 있겠다. 그 친구가 나의 영향

력을 받아서 어떻게 후에 변해 있을까? 내가 던진 작은 씨앗, 또 내가 던진 작은 기회를 통해서 그 친구

들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라는 기대를 갖고, 또 그런 아이들을 보러 가게 돼요. 그래서 제가 좋아하

는 책에서 조금 구절을 뽑아봤어요. ‘마지막 잎새’에서에요. 온 정성을 다 했어요. 만족스러운 미소를.

아직은 내 실력이 쓸만하군. 그때 깨달았어요. 비바람을 견디고 남아있던 마지막 잎은 영혼을 받쳐 마

지막으로 그린 훌륭한 그림인 것을요. 우리가 하는 일이 바로 아이들을 위해서 영혼을 바쳐서 마지막으

로 우리가 남길 수 있는 훌륭한 그림이 아닐까 생각돼요. 우리 선생님들이 하시는 일 하나 하나들이. 굉

장히 소중하고 또 고마운 일들이라고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많은 선생님들 하고, 이렇게 어떤 글

들이 올라왔나 쭉 보니까 아이들과의 소통, 관계. 다 사랑들이 넘치세요. 이렇게 글 들 마다 읽어보면

다 이런 선생님들이구나. 이런 선생님들을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알아주고 있나? 너무나 귀한 선생님

들의 귀한 이야기들을 들어보면서 저는 실제 제가 아이들하고 하고 있는 거. 왜 아이들을 만나러 가냐

면, 아이들을 상상하는 아이로 이렇게 하고 싶고, 그런 아이가 되는 것을 보고 싶기 때문에 가고 있어요.

아이들하고 할 때, 전 이런 말 여기 제가 이렇게 글을 썼는데, 수업을 진행하고 아이들하고 만남을 통해

할 때, 괜찮은 생각이다라는 얘기를 많이 해줘요. 선생님 이거 이렇게 해도 되나요? 예전에 이런 게 있

었다고 해요. 초등학교 선생님이 아이가 그림을 그렸는데, 하늘을 까맣게 그린 거에요. 그것도 대낮에.

그래서 선생님이, 야 하늘은 파랗잖아. 이거 잘 못 그렸어. 그러시는 거에요. 그런데 애가, 아니에요 선

생님, 밤에 그리면 까매요 라고 얘기 했던 거를 들었어요. 그러면서 상상할 수 있는 거, 생각할 수 있는

게 참 크구나. 그러면서 저는 아이가 어떤 거를 하더라도, 그렇게 한 번 생각해보자라고 얘기를 좀 많이

하구요. 생각 되어진다면, 생각이 되어진다면 그걸 할 수 있다고 저는 믿고 있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그

생각도 안되어지면, 생각이 안되어지면 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생각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된다라고 믿고 있고요. 또 그러면서 아이들하고 학교에서도 기관에서도 많이 좀 놀아주려고 하고 있어

요. 놀아준다는 게 단순히 그냥 놂이 아니라 그 속에 의미가 있으면 더 좋을 것 같아요.

아 이 들 과 마 음 을 나 누 다

그 담에 행복한 아이라고 했는데요. 요건 아이들이 자기가 존중받고 있다라고 많이 느낄 때, 나는 그래

다른 직업에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뿌듯함, 보람, 기쁨 이런 게 있겠다.

그 친구가 나의 영향력을 받아서 어떻게 후에 변해 있을까?

내가 던진 작은 씨앗, 또 내가 던진 작은 기회를 통해서

그 친구들은 또 어떻게 변해 있을까?

라는 기대를 갖고, 또 그런 아이들을 보러 가게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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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 행복해질 수 있어 라고 여겨지거든요. 그래서 존중받고 있는 아이들이 나중에 커서 존중해줄 수 있

다고 생각이 들어요. 그런 걸 경험을 못 해본 친구들이 지식적으로 존중해야 돼 해서 존중할 수는 없

다고 느껴져요.

여기 모델링 억셉트라고 적어 놨는데, 아이들은 어른들의 행동과 말을 보고 자라잖아요. 그래서 저희

예술 강사를 하면서 화를, 첫 번째 나갔을 때, 같이 야! 야! 이러고 한 후로는 야! 라는 말을, 화를 별로

냈던 게 없던 것 같아요. 쟤가 많이 소란스러우면, 쟤가 많이 관심을 달라는가보다 라고 해서 뭔가 하나

임무를, 특별한 임무를 맡기고 하죠. 예를 들어서 재료를 나눠주면, 너가 나눠주라고, 그래서 특별 임무

를 맡기니까 괜찮더라고요. 그래서 아이들을 사랑해주는 아이라고 세 번째 했는데, 공감해주는 거. 아

이가 무슨 말을 해줄 때, 굉장히 아니더라도 공감했던 거 같아요. 왜냐면 많이들 자기를 잃어버리고 사

는 애들이기 때문에, 얘기하면 ‘아 그래 맞아’ 그런 공감을 많이 해줬던 것 같구요. 그러다 보니까 그런

것 속에서 조금씩 ‘아 이 선생님은 내 얘기를 들어주는 선생님이구나’ 라는 걸 느껴가면서 조금씩 신뢰

감이 쌓이고요. 그리고 저는 아이들한테 항상 기회란 얘기를 많이 해요. 그래서 예술강사 나가시는 분

들이 대한민국에서 베스트라고 저는 생각하거든요. 요새 최근 들어 보니까 학교 예술강사나 사회 예술

강사 들어오기가 너무 힘들어요. 빡세요. 경쟁률이 너무 세요. 그런 얘기 많이 들어요. 그래서 많이 엘

리트,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보다 엘리트 집단이라고 느껴져요. 여기 특별 엘리트 집단, 유능한 엘리트

집단. 함부로 영역을 침범할 수 없는. 우리 영역 아무나 침범 못 하잖아요. 그런 특별한 집단. 그래서 이

런 우수한 선생님들이 너네들을 위해서 학교나 사회에서 기회를 주고 있다. 그래서 저는 이 아이들이 이

런 기회를 못 받았다라면 이런 기회조차 없다라면, 나중에 사회인이 됐을 때, 우린 사회에서 이런 기회

도 못 받았다 라고 하지 않고, 우리는 이런 기회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기회를 통해서 내가 변화될 수

있었다라고 말을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되기를 저는 굉장히 원하고 있어요.

사 랑 은 전 해 지 는 것

그러면서 아이들이 자신감 있는 아이가 됐으면 좋겠다. 이래서 저는 최선이라는 얘기를 많이 해요. 열

심, 최선, 못 해도 괜찮아. 너가 최선을 다 했으면 그게 가장 훌륭한 거야. 그런 얘기를 가장 많이 해주

고 있어요. 그래서 최선을 다 해서 그게 안 됐으면 그래도 인정을 해요. 근데 자기가 최선을 안 한 애들

은 인정을 안 하죠. 자기 거에 대해서. 근데 최선을 다 해서 못했더라도 ‘그래 난 최선을 다 했기 때문에’

인정을 하는데,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자기를 인정 안하고 고집만 많이 피우죠. 누구 때문에 그랬어요.

뭐 때문에 많이 그랬어요. 하는 얘기를 많이 들어요. 그리고 자신감은 아이들 스스로 느끼는 게 아니라

선생님을 보고 아이들이 느끼는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아이들과 하면서 항상 자신감 있는 선생

님이었던 거 같아요. 사실 그거는 잘 모르고 자신감이 없더라도 걔 보다는 제가 더 많이 아니까, 그냥

어, 선생님이 더 잘 알지. 항상 다 잘 아는 선생님인 것처럼. 그래서 항상 자신감 있는 얘기를 많이 하고,

그런 행동들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또 학생들을 많이 관찰을 하는 것 같아요. 그 아이 이름을

불러주면서 기억하면서, 저 아이는 어떤 특징이 있나, 어떤가 라는 것들을 갈 때 마다 한두 명 하면, 한

달 정도 지나면 아이들이 어떤 아이구나라는 소양들을 조금씩 알았던 것 같아요. 근데 그런 시간이 헛

된 시간이 아니라 굉장히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왜냐면 그런 것들을 통해서 칭찬도 해주고, 격

력도 해주고, 응원도 해주고, 그러면 아 이 선생님이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고 또 저

는 처음 가면 사랑합니다라고 얘기를 해요. 그러면 와~ 변태 이런데, 왜? 이랬더니, 뭘 사랑해요? 근데

말에 힘이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사랑하지 않는 학생들이더라도 내가 사랑한다라고 얘기 하면 그 말이

계속 가고 전해지고 전해지고 하면 그 사랑이 간다라고 생각이 들거든요.

돈 보 다 중 요 한 가 치 , 바 로 아 이 들 의 ‘ 사 랑 ’ 입 니 다

그래서 아이들한테 ‘사랑합니다’라고 하면 어떤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은 특히 ‘웩, 웩’ 이러죠. 나중에

는 눈 보면서 먼저 선생님, 사랑합니다 이러면 진짜 저 아이가 사랑한다는 얘기를 하는구나 랄 때, 굉

장히 기쁘고요. 또 아이들한테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많이 한 거 같아요. 특히 안 된다는 얘기를 거의 안

썼던 것 같아요. 기억에. 안 돼! 이런 얘기를 안 했던 것 같아요. 할 수 있다. 너가. 할 수 있다는 얘기

를 많이 한 것 같은데, 왜냐면, 아이들의 장점을 찾는 데에는 많은 시간들이 지나가요. 하지만 시간들을

투자해야 되는 이유는 그걸 투자함으로 아이들 스스로 행하는 것에서 그것을 할 수 있다고 스스로 느

끼게 되는 거죠. 제가 자신감 있는 모습을 보이고 또 그 아이들이 난 할 수 있어 라고 느껴질 때, 아! 난

해 볼 수 있구나 라는 자신감을 느끼고 나갈 수 있겠다. 이런 아이들을 만나고 또 보고 하기 위해서 왜

주제가 왜 그토록 아이들이 보고 싶을까? 라고 할 때 바로 이렇게 커 가는 아이들. 난 비록 수많은 선

생님들 중에 하나지만, 저희가 사회하고, 학교하면 거의 5,500명, 5,600명~5,800명 되나요? 5,000명

분의 1명인 선생님이죠. 그 많은 5,000명 세워두면 엄청 나죠. 그 선생님 중에 단 하나지만 저희가 가

서 이런 아이들을 만나고 싶어. 또 이런 아이들과 함께 하고 싶은 시간들 때문에. 제가 한 번 여기 진흥

원 분 나가셨으니까. 계산을 해봤었어요. 여기 강사료 8만원. 회전. 교통비 4만원. 멀리 갔을 때. 그리

고 빼기 한번 해보는 거에요. 했더니 차량 유지비 왕복 6만원, 톨비 마이너스 2만원, 점심값 6천원, 저

녁 값 올 때 6천원, 아이들 가서 간식 사준 것 2만원, 내 커피 올 때 졸지 말라고 저녁에 오면은, 서울에

서 갔을 때 여기 서울에 12시 넘어서 도착했었거든요. 여기 커피 1,800원, 여기 원두입니다. 그래서 해

보니까, 남는 게 6,200원 곱하기 한 달에 네번 가니까, 24,800원. 월에. 네 월수입이 24,800원이에요.

그럼에도 많은 선생님들이 돈 되는 거 아닌데도 열심히 가시고 하는 것들은 바로 저희들이 아이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우리들이 전해줄 수 있는 그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에 가신다고 저는 믿고요. 그래서 저

는 항상 우리 선생님들 악조건 속에서, 저희 처음 진흥원 한 게 05년 때 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그래

도 많은 악조건 속에서 하시고 계시는 것을 많이 느끼고 있고요. 항상 수고하시는 선생님들 열심히 하

실 때 응원하고 있습니다. 나는 왜 아이들이 그토록 보고 싶을까? 주제 발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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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때 잘 한다고 한거다!

그래픽 레코딩

우선영 (무용)

애들아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바라보는 눈망울을 뿌리치고 달려간 길 그리고 열정과 오만, 실패.

나에서 너희로의 전환이 우리로 돌아올때 난 이제야 소박하지만 마음을 울리는 행복을 느낀다.

지식공유 / 발견

그래픽 레코딩 사진

차용호 (만화애니)

사전 인터뷰 영상 지식공유 영상

안녕하세요, 저는 무용예술강사 우선영입니다. 여러분들을 만나 뵙게 되어 너무 반갑습니다. 사실 준

비하는 기간 내내 너무 많은 고민에 싸여가며 준비했어요. 예술강사를 하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누구한

테 하고 이럴 데가 사실 없었고 저는 애들이 어려 동네 아줌마들과 얘기 할때도 우리들 이야기를 하기

도 그렇고 어려움이 있었지요. 여기 기획자 분께서 먼저 만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면서 너무나 잘 들어

주셨고 제가 정말 부담 없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습니다. 선생님들

하고 이렇게 만나서 더 많은 애기를, 제가 얘기하는 것 보다는 선생님들 이야기를 더 많이 듣고 서로가

나누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서 로 의 이 야 기 를 나 누 다

지금 보시는 이 사진은 제가 현재 출강하고 있는 학교 학생들 사진이예요. 제 자랑할 거리를 굳이 찾

자면 그것은 이 아이들이지요. 이 아이들의 춤사위가 멋지거나 훌륭하다는 것 보다는 표정이 밝고 편

안하고 재미있어요, 그래서 저는 이 사진 속 아이들과 함께 하고자 서두에 두었습니다. 자, 그러면 선

생님들하고 서로 소개 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고자 포스트잇을 준비했어요. 우선 여기에 선생님

들께서 <나는 ~~~같은 선생님이다!> 라는 문장에 단어를 넣어 나를 표현하는 문장을 만들어주시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간단한 소개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아, 선생님들 어떠셨어요. 서로 들으면

서 이 얘기도 맞고, 저 얘기도 맞고, 이건 내 얘기고, 맞아 이런 면도 나고, 저런 면도 나고, 그런 거 느

끼시지 않으셨어요? 그래요. 거울선생님 친구선생님 원투쓰리 선생님. 다 나오셨는데 정말 모두 공

감 가는 부분이었습니다. 자 그럼 간단하게 서로의 생각과 어떤 분과 함께하게 되었는지를 느낄 수 있

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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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에 게 도 ‘ 꿈 ’ 이 생 겼 어 요

그러면, 본 주제로 넘어가서. 제 주제는 <나는 그때 잘한다고 한거다!>입니다. 저는 정말 그때 잘한다고

했어요. 그리고 그런 줄 알았어요. 그런데 그것이 꼭 답이 아니었어요. 제가 어떻게 느끼면서 겪으면서

성장했는지 저의 이야기를 잠깐 하도록 하겠습니다. 처음 제가 무용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아주 어렸

을 때 몸이 너무 약해서 거의 병원에서 있었고 학교를 들어가면서도 점점 학교를 다니기 힘들게 되는 상

황이었지요. 어린 시절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엄마하고 집근처 큰 길을 조금씩 걸어가고 있었는데, 영

화배우같이 생긴 너무너무 예쁜 선생님이 그 길을 가시는 거예요. 정말 내 어린 눈에는 텔레비전에 나

오는 영화배우보다 정말 예쁘더라고요. 키도 크고. 그래서 그 분이 저의 처음 선생님이 되셨고, 그 분

학원에서 무용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런데 제 마음과 달리 처음에는 춤추지를 못했어요. 초등학교를

들어가서도 거의 학교를 못가서 애들이 저를 잘 기억을 못해요. 그런데 그 무용학원에만 가면 아프지

않은 거에요. 정말 신기하게 뭐 그냥 무용학원에 가서 처음에는 아무것도 안하고 그냥 거울보고, 스르

르 지나다니고, 이렇게 예쁜 표정 짓고, 괜히 빙그르르 돌고, 폼 잡아보고. 자연스럽게 그 곳에서 그냥

좋아서 남들 추는 거 보고면서 지나왔던 거 같아요. 그렇게 우연한 시작으로 좋아하는 것을 찾게 되었

고, 평범하게 중학생으로 지내다가 결국은 잘하는 것을 찾고자 서울예고를 들어가고, 대학을 들어가면

서 자연스럽게 제가 꿈이라는 걸 갖게 되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저는 교육자가 꿈은 정말 아니었어요.

다 시 찾 은 교 육 현 장

제가 지금 아이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갑자기 그것이 아니라고 하면 참 황당하긴 한데, 사실이에요.

저는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게 아이들이었어요. 절대 누구를 가르치고 싶지도 않았고, 특히 아이들은

요. 뭐가 막 부산스럽게 정신없이 옆에서 움직이고 질서도 규칙도 없이 사방으로 뛰고, 징징거리고, 시

끄럽고, 지저분한 거 막 묻히고 난 이게 정말 싫었어요. 그래서 내가 꿈에도 선생님이 될 것이라고는 절

대적으로 생각도 안 했었고, 늘 멋있는 무용가, 외국인도 알아보는 세계적인 한국인 뭐 그런 꿈을 꾸었

죠. 시간은 흐르고, 항상 전공하는 입시 학생들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었는데 그때도 그런 기

준은 있었던 거 같아요. 막무가내로 입시생 레슨을 하지는 않았고 학생이 나와 함께 시작을 했으면 합

격까지 최선으로 책임을 다해주려 애썼어요. 왜냐하면 그 아이한테는 돌아오지 않는 기로의 중요한 순

간이었기 때문이지요.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내 몸이 아파왔고 굉장히 큰 병까지 가게 되어, 이건 도

저히 안 되겠다 생각 하면서 자연스럽게 역시 교육은 여러 가지로 나하고는 맞지 않는 길이구나 하는 생

각과 함께 그 길을 접고 쉬고 있을 때, 우연히 예전에 대학에 계셨던 교수님께서 교사자격증 있는 사람

을 찾아 저를 학교에 소개해주신 것이 공교육의 첫 계기가 되었어요. 교육은 나의 길이 아니라고 춤추

겠다고 쉬고 있었는데 교수님 말씀에 저는 다시 교육현장으로 갔던 것이죠.

아 이 들 , 내 진 심 의 소 리 에 귀 기 울 이 다

그 학교는 상업중고등학교였는데, 그 지역에서는 꽤 알아주는 굉장히 학생들이 많은 학교였어요. 학급

수도 많았고요. 교사 자격증 자체가 체육이었기 때문에 고등학생은 체육, 중학생은 무용을 가르치게 되

었어요. 많은 분들이 무용선생이 고등학생 체육을 가르칠 수 있을까? 안될걸. 못할 거야. 두고 보자. 우

려가 많았음을 후에 알게 되었지요. 그런데 저는 속에 여자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라 남자가 들어 있었

우연히 예전에 대학에 계셨던 교수님께서

저를 학교에 소개해주신 것이 공교육의 첫 계기가 되었어요.

교육은 나의 길이 아니라고 춤추겠다고 쉬고 있었는데

교수님 말씀에 저는 다시 교육현장으로 갔던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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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라고요. 사실 이 학교에 갈 때 까지만 해도 내가 그 안에 남자를 같이 데리고 있는지 몰랐어요. 나 스

스로도 난 안될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건 웬걸, 첫 시간부터 갑자기 애들이, 선생님들도 다

아실 거예요. 이런 말 써도 될지 모르겠지만 학생들도 선생님 간봐요. 그렇죠?

첫 날 첫 시간에 저를 보고, 으음~ 딱 감 잡은 것이지요. 첫 반을 딱 들어갔고 그 다음 뒷 반 주루룩 다

정신이 없는 거예요. 교실에는 처음에 소개를 해야 하니까 그냥 다 받아주고 지나갔어요. 드디어 운동

장 수업, 애들이 체육복을 한 3~4명 입고 거의 교복에 슬리퍼 끌고 정신없이 줄도 안서고 떠들고 밀고.

순간, 저도 모르던, 정말 제가 꿈에서도 알고 있던 늘 샤방샤방 거리던 무용하는 제가 아니라, 갑자기

어디서 군인이 하나 탁 튀어나오는 거에요. 우리 때는 교련을 했었어요. 저희는 학교 다닐 때 붕대 감

는 것도 하고, 재식훈련도 했었잖아요. 고등학생 첫 수업 첫 반을 그렇게 보내고 난 후 그 어떤 반도 그

런 모습을 다시는 볼 수 없었어요. 그 후 무용시간, 체육시간, 아침 등교, 점심시간 체조, 대청소, 학교

행사가 있을 때, 저만 나타나면 애들이 알아서 각 반 반장, 조장의 통솔하게 조직적으로 스스로 정렬 했

지요. 그런데 지금 생각해봐도 이상해요. 난 때리지도 않고, 욕도 안하고, 아무것도 안했어요. 그냥 쳐

다보고 꼭 필요할 때 소리만 짧게, 그리고 마음을 다해 진심으로 왜 그것이 맞는지에 대해 말해 주었어

요. 아이들은 내 진심의 소리에 귀 기울여 주었던 것 같아요. 우리끼리의 소통이 이루어진 것 같다고 전

생각했었어요. 교장선생님도 체육부장님도 많은 분들이 칭찬해주시고 부러워도 하셨기에 전 그때 정

말 내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스 스 로 마 음 을 움 직 이 는 아 이 들

그 곳에서도 무용반을 처음 결성하게 되는데 학교에서 유명한 친구들만 서른 명이 넘게 왔고, 학교에서

는 무엇이 걱정되셨는지 폐지하자고 까지 하셨지만, 아이들의 다른 면을 여기서 볼 수도 있으니 몇 달만

해보고 만약에 안 되면 그때는 저도 학교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고 우선 유지를 했어요. 그런데 걱정

하던 그 아이들이 정말 다른 모습을 보여줬고 기타 과목의 학습 분위기까지 좋아져서 제가 너무나 뿌듯

했었지요. 그때는 뿌듯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은 제가 만든 것이 아니라 아이들에게 상황을 솔직

히 전달하고 의논하고 스스로 생각해서 결정하고 알아서 실천하게 해주었던 것이, 결정적으로 나만큼

은 그들을 믿어 주었던 것이 큰 움직임을 갖게 하였고, 최종 결과는 아이들이 스스로 마음을 움직여 만

들어낸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어떤 상황인지 아이들한테 솔직하게 얘기하고, 나는 이래, 근데 너희는 어

떻게 할래, 여기서 어떻게 해? 진행해? 갈까 말까? 등 큰 틀을 던져 주면, 아이들이 스스로 의견 조율하

고 선택하면 아이들이 해보겠다고 해서 시작을 한 일은 매번 굳이 밀지 않아도 천천히라도 가더라고요.

그런데 그때까지는 거의 제 태두리가 확실했고, 규칙과 조직화가 되어있었어요. 그래서 무용도 줄 딱

맞춰서, 들어 올 때는 밖에 실내화도 쫙 줄 맞춰야 되고 청소도 1조 빗자루, 2조 대걸레, 3조 창문, 4조

양동이, 5조 마무리로 구성하여 1조 싹 쓸고 지나가면, 2조 대걸레 싹 지나가고, 1~2조 할 때 3조 창문

닦고, 4조 양동이, 5조 마무리 정리, 그러면 우리는 10분 안에 청소가 끝나는 거예요. 무엇이든 규칙,

규율, 조직화 되어 진행했어요.

내 꿈 을 찾 아 서

그렇게 학교생활을 하다가 퇴직을 결심하게 되는데, 그 이유가 너무나 아이러니한 것은, 저는 아이들

한테 규율과 규칙과 원칙을 원하면서, 저는 그 규칙과 종소리가 너무 싫은 거에요. 아침에 일어나면 따

르릉으로 시작해서, 따르릉 교직원회의 들어가서, 따르릉 1교시 들어갔다가, 따르릉 나오고, 따르릉 밥

먹고, 따르릉 끝나고, 따르릉 집에 가서. 그럼 따르릉 자야 되는 시간. 그런 생활이 막 미치겠는 거에요.

나한테 몸서리나는 거에요. 나는 그렇게 몸서리치게 느끼면서 그저 제일 잘 한다고 확신하며 오만에 빠

져 있으면서 아이들의 문제도 그런 문제가 있을 것을 생각 못하고, 내 문제라고만 계속 생각을 했어요,

어찌되었든 나는 못하겠으니 가겠다고 한 것이지요.

“난 역시 춤을 춰야 해, 난 예술가야, 난 교육하고 정말 안 맞아. 그러니 과감하게 떨쳐버려야지.” 그런

데 애들이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그 아이들이……. 그리고 그 학교가 상업학교이기 때문에 불우한 아

우리끼리의 소통이 이루어진 것 같다고 전 생각했었어요.

교장선생님도 체육부장님도 많은 분들이 칭찬해주시고 부러워도 하셨기에

전 그때 정말 내가 제일 잘한다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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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도 있어요. 그런데 그 아이들이 정말 너무나 많이 울고 매달렸는데 난 왜 그때 그냥 왔는지 지금 생

각해보면 이해가 안 가요. 그리고 너무 미안해요. 그 아이들한테 정말 너무 미안해요. 학부형님까지 와

서 조금만 더 있어주면 안되겠느냐 했는데 저는, 난 내 길을 찾아야겠다면서 전교생 앞에서 연설도 하

고 나왔어요. “제 꿈을 꼭 실현시키고 멋지게 성공해서 내가 이렇게 돌아보는 기회를 갖겠다. 감사합니

다.” 이러면서 나왔어요. 우는 아이들 보며 침통해하시는 교장선생님 보며, 왜 내가 내 길을 간다는데

왜 자꾸 저러는지 이해를 못 했었어요. 아주 이기적인 결심으로 돌아서게 되었었지요.

아 이 들 을 떠 올 리 다

그래서 춤을 추고 싶은데 라는 생각으로 다시 왔지만, 6개월을 놀 수 없어 보습 학원을 찾았고 어느 곳

에서 저를 받아주셨어요. 인상이 좋대요.(웃음) 초등학교 3학년 아이들이었고 작은 학원이었는데 그 학

원도 운영이 잘 안되었던 이유가, 선생님들이 학생 통솔이 안 되었던 것 이예요. 근데 그걸 제가 통솔

다 해줬잖아요. 특히 우리 반은, 하루 만에 그 말썽만 부리던 아이들이 쫙 앉아서 다 공부하고 있는 것

을 보고 원장선생님과 학부형님 들이 고맙다고 많이 했어요. 그런데 그렇게 공부하는 척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이 올라서 학생들이 많이 찾아 왔었지요. 잘못하고 안하면 저는 눈물이 쏙 빠지게 혼내요.

아이가 가진 많은 것들 중 한 가지 잘못을 혼내주고, 많은 부분을 인정하고 굉장히 매번 칭찬해주면 아

이가 믿음을 갖게 되더라고요. 그리고 제가 실수한 것이 있으면 아이들한테 사과하고 아이들의 사과도

받고요. 제가 화가 나면 애들 말로는 눈 색깔이 변한대요. 애들이 그러더라고요. 그런데 고등학생한테

하는 얘기를 초등학교 3학년에게 하고 그 아이들이 그 눈빛을 봤으니 애들이 놀라기도 했겠죠. 그렇게

지나 그 애들을 또 6개월 만에 손을 놓고 참 저는 잘 버렸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너무 미안해요.

제가 지금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정말 아이엄마가 되고, 요즘 우리학교 아이들 보면서 가끔 그런 생

각을 해요. 내가 그 애들을, 너희의 반만큼 만이라도 했으면, 내가 이렇게 그 아이들에게 미안하진 않을

텐데, 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되어요.

또 다 른 세 상 을 배 우 다

그렇게 또 휙 버리고, 또 6개월 만에, 교수님이 하시는 연구소로 들어갔는데 춤을 추고자 들어갔지만 그

곳에서 또 선생님께서 저를 기획자로, 뭐라 그럴까 전반적인 일을 맡겨주세요. 4년 동안, 기획하고 진행

하고, 그런데 제 성격대로, 또 우리 그 센터만 하는 게 아니라 교수님이 진행하시던 다섯 개 분야의 많은

부분 다 관할하게 되어요. 그게 제 성격인거 같아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선배님들이 너 안 돼, 야 세상

에 너 그렇게 해가지고 되는 게 아냐 너 없어진다고 세상 안돌아가는 게 아냐, 그렇게 충고 많이 해주셨

지요. 그래도 앞 만 보고 달리고 “내 자리는 내가 만든다”는 생각으로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어요.

단체는 4년 동안 정말 많이 커졌고 저도 그곳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많이 배웠어요.

내 아 이 를 통 해 부 모 마 음 을 알 게 되 다

그렇게 지나 결혼을 하게 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요. 교수님은 아이 키우는 3년을 기다려주셨지

만 결국 돌아가지 못하고 아이들 키우는데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게 되었어요. 나를 닮아 우리 아이가

너무너무 아팠거든요. 오랫동안… 친정엄마 집 가는 길 언덕이 있었는데, 아이를 업고 매일 밤 그 언덕

을 수십 번 왔다 갔다 하면 얼마나 힘들어요. 정말 내 자식이니까 업고 다니지 아니었으면 벌써 그리고

나는 원래 애를 싫어하는데 안고 있으면 안 울고, 내려놓으면 울고 내 자식은 또 다르더라고요. 느낌이.

어느 날 달빛이, 언덕 위에 달이 그렇게 예쁜 거예요. 그래서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혼자 아이업고 지

금 생각하면 웃기는데 그때는 정말 가슴 저리게 슬펐어요. 그래서 내가 가진 나한테 가장 소중한 것과

우리 아이를 바꿨으면 좋겠다 그랬어요. 내가 뭐든지 다 포기할테니까, 우리 아이가 건강할 수만 있다

면, 오늘 하루만이라도 안 아팠으면 좋겠다고 가슴으로 얘기를 했는데, 진짜 잘 자더라고요. 아이가 그

날 처음으로 쭉 잤어요. 그리고 제 일이 딱 끊기더라고요. 너무 웃기죠. 말이 안 되죠. 너무 웃기는데 실

제로 그랬어요. 저는 달님이 있는지 35세에 알게 되었지요. 그래서 우리 아들한테, “달님 진짜 있다”라

고 말해요. 그렇게 저는 부모의 마음을 내 아이를 통해 알게 되었어요.

진 심 이 통 한 예 술 강 사 면 접

그렇게 아이를 키우다가, 예술강사 프로그램을 동생한테 듣고 면접을 보러 갔는데, 야~ 선생님들 너무

아시는 거 많고 너무 화려했어요. 나는 그냥 집에서 애를 보다가 왔는데, 선생님들이 다 뭐 질문에 대답

을 너무 잘하시고 저는 못 알아듣는 답도 너무 많더라고요. 여러 질문의 답변으로 앞 사람을 앵무새처

럼 따라하다, 이건 아닌데 싶더라고요. 제가 갑자기 가만히 있다가 말을 안 하고,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으니 왜 그러는지 물으셨어요. “저는 지금까지의 답변은 사실은 앞에 분들 하신 이야기를 그저 따라했

고, 몇 년 동안 집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런 거 할 줄 모릅니다. 그런데 내가 이전에 살았던 삶은 굉장

히 열심히 했던 삶입니다. 그 삶의 원동력을 나는 지금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다시 기회가 나

한테 주어진다면, 지금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부분을 1년 안에 완벽하게 해 내겠습니다.” 그랬어요. “그

리고 저는, 제일 싫어하는 것이 아이들이었는데, 난 그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서 직장을 그만뒀고, 그 아

이들을 지금 어떻게든 키워냈고, 이제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면 내가 아이들을 대하는 모습이 그 이전과

는 많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다시 또 새로운 전환점을 갖고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어쨌

든 오늘 면접 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뻔뻔하게 그렇게 면접을 마치고 서초동 길을 엉엉 울면서 내

려 왔어요, 겨울에 했잖아요. 얼마나 추워 몸도 마음도. 중학생 중등 선생님을 처음 뽑는 거였어요. 정

말 많이 울면서 내려갔어요. 그곳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쳐다보잖아요, 그럼 누구든지 걸리면 내가 한방

나가는 거예요.(웃음) 그러고 왔는데, 합격했어요. 그리고 저 정말 열심히 해서 1년 안에 발표했어요. 진

짜 그렇게 열심히 살면서도 그것이 정말 제가 잘하는 것인 줄 알았어요. 그때까지도.

굉장한 대단한 착각 속에서 내 생각 속에서 갇혀 살았던 거 같아요. 나는 항상 어려운 상황이거나 생각

의 위기에서 빠져서 나오고 싶을 때는 “컵에서 나가자”라고 생각해요. 커피를 마시다 보니까 컵이 보

이고 내가 그 안에 있는 거예요. 그 안에서는 이 모든 고민 나만의 것이 굉장히 큰데 이 컵에서 나와서

보면 큰 세상에 컵은 요만 하더라고요. 그래서 고민도 해결이 되고 내가 갖고 있는 자만심도 좀 재울수

가 있어서 항상 컵, 그리고 우선순위를 정하고 해결하면서 지금까지 가정을 지키면서 나름 열심히 살

았어요. 지금 다른 선생님들보다는 화려하게 멋지게 다니면서 많은 교육활동을 하지는 못했던 거 같아

요. 그렇지만 나름대로 제 세계에서 내가 한 학교밖에 못 간다면, 이 학교에서 정말 열개의 몫을 하려

고 정말 애를 썼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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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시 찾 은 행 복

예술강사로서 2006년도에 처음 가게 된 학교가 김포 통진중학교 이었어요. 그 학교를 지금까지 다녀

요, 여기 이 분이 담당 교사이신데 저 분이 없었으면 이 학교 예술강사 프로그램도, 지금처럼 활성화되

거나 확대되지도 않았을 거예요, 김포지역에 이 프로그램이 좀 느리게 확대되어갔을 것이라 생각되요.

저분은 정말 전폭 지원이에요. 저만 예뻐서가 아니라 다른 예술강사가 가셔도 전폭 지원이에요. 그리고

저하고 마인드가 잘 맞으세요. 아이들 중심으로 생각하고 실행하자는 것이. 그리고 또 처음 교장 선생

님은 체육 선생님이셨고. 현재의 교장선생님은 미술선생님이시기 때문에 많은 부분 이해의 폭이 넓으

시지요. 제가 하고자 하는 것은 뭐든지 “오케이. 마음껏 하세요.” “우리 아이들 즐겁게 지내게 해 주세

요” 그런데 그렇게 마음껏 할 수 있도록 배려해 주시니까, 제가 정말 잘 하고 있더라고요.

이렇게 수업하며 만나게 된 아이들이 2010년 대전에서 열린 예술강사 발대식에서의 공연으로 새로운

경험을 갖게 되었고, 아이들이 열 한명이 스물 여섯 명이 되고, 지금 서른 두 명이 되었는데 그 중에서

한 명은 지방 가 있고 한 명은 중국 가 있지요. 멀리 가서도 우쌤단으로 뭉쳐 있어요. 저희들끼리 이름을

지었는데 남자들 남무단, 여자들 미소단 이렇게 지어놓고, 단체명은 제가 우선영 샘이어서 우쌤단이래

요. 아이들이 까페지기를 정해서 우쌤단 까페도 운영하고, 요즘에 카톡으로 정신 없이 떠들고. 우리 애

들은 정말 모이면 너무 시끄러워요. 여자아이들은 뭐가 그리 좋은지 정신없이 웃어요. 정말 너무 시끄

럽고 정신이 하나도 없고 우리 애들은 뭐 연습할라 그러면 “애들아~자 이쪽으로 와서 음악 틀고” 우아

하게 무용선생님 답게 이런 거 안돼요. “야! 빨리와! 너 음악 왜 안틀어. 너 누구야~” 이렇게 하면서 불

러야지만 “알았다고요~ 아, 선생님 간다고요~”그럼 저희들끼리 불러 모아서 “야~ 똑바로 맞춰!”서로

다짐하고 또 웃고 떠들고... 싸우는 것인지 연습하는 것인지... 잠시 후 제가 동영상 보여 드릴거예요.

애들이 저를 세워놓고 그렇게 연습을 해요. 그런데 스스로 연습을 하고 스스로 규율을 정하니까 서로

틀린 애들을 지적하고 가르쳐줘요. 그러면서 애들이 맞추어 나가더라고요. 그때 저는 그냥 대형 봐주

고, 가끔 의견 주고, 큰 틀을 주제로 던져주면 애들은 스스로 동작 변형하고 맞춰가며 그렇게 발전해

왔던 것 같습니다.

나 부 터 변 해 야 한 다

아이들에게 스스로 할 수 있는 자율성을 주게 되었던 두 가지 계기가 있었는데, 교장선생님이 하루는

식사를 사주시며, 저한테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우선생님! 올 한해 정말 너무 고생했다고 정말 잘했

다고 대단하다고. 그런데 수업은 그렇게 잘하는 건 아니야(웃음)” 딱 그러시는 거에요. 왜 아니지? 나

는 분명히 애들 완벽하게 난 항상 완벽하게 했는데, 왜 아니지? 그렇게 큰 변화 없이 느낌 없이 시간

이 흘러갔어요.

어느 날, 연습시간에 ○○가 그러는 거에요. “야 임마 선생님이 시키는 것만 해~ 아, 쫌~” 또 ○○가 “선

생님 이거 이렇게 하면 안돼요? 이쪽으로 하면 동작이 불편해요.” 그때 쳐다봤어요. 그냥 생각하느라

눈을 쳐다봤을 뿐인데, 아이는 제가 화나서 쳐다보는 줄 알았나 봐요. 그런데 ○○이라는 아이가 이러

애들이 저를 세워놓고

그렇게 연습을 해요.

그런데 스스로 연습을 하고

스스로 규율을 정하니까

서로 틀린 애들을 지적하고 가르쳐줘요.

그러면서 애들이 맞추어 나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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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3ㅣ2012 예술강사의 발(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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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거예요. “그냥 그거 시키는 것만 해 짜식아~ 그냥 아~ 나도 해~” 이러면서 아이들끼리 다그치는 거

예요. 멀리 떨어져있던 두 경우의 이야기지만 분명 평범하게 느껴지지 않았어요, 밤에. 며칠 동안, 굉

장히 많이 생각했어요. 진짜 멘붕 왔어요. 그러면서 내가 애들에게 나름 열심히 한다고 하면서 나는 과

연 아이들에게 뭘 했지? 나부터 변해야 겠구나. 그러면서 애들을 조금씩조금씩 놔주기 시작했어요. 연

을 날리는 것처럼. 그렇게 놓아주니 요즘 중학생들 정말 자유롭지요. 중학교 2학년은, 북한에서도 못

들어 오잖아요. 우리 중2 무서워서.

그런 애들을 데리고 하는데 그 녀석들 정말 대단했어요. 그런데 그런 줄 알았던 정말 내가 미치는 줄 알

았는데, 나중에 보니까 애들이 스스로 질서를 만들더라고요. 진짜... 아이들에겐 시간이 필요했던 거예

요. 너무 질서 없이 하다가 자기네들이 스스로 질서를 찾을 때까지 시간을 줘야 된다는 거예요. 그 시간

이 애들도 필요해요. 왜 우리도 어떤 상처를 받으면 상처를 치유할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그 애들도 자

율성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중간 중간에 큰 진행의 틀을 하나 넣

어 얘기를 해줬어요. 그래서 그 아이들하고 지내면서 이제는 아이들이 작품을 짜요. 동작을 만들고 애

들이 공연장이나 경연대회를 참가하자고 스스로 선택해요. 이런 대회 있다는데 왜 선생님은 모르냐는

거예요. “아 그러냐?” 일부러 그래요. “아 그거 어디서 들었냐. 역시 너 쩔어, 나보다 확실히 쩔어. 너

확실히 정보력이 끝내준다” 그러면 그 아이는 그 다음 부터 정보를 찾아요. 제가 너무 완벽한 선생님의

모습 보다는 빈틈도 보여줘야 애들이 채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 같아요. 저의 빈 공간을, 아

이들의 빈 공간을, 서로 채워 주는 것이지요. 그럼, 우리 아이들의 연습과정과 무대에서의 모습을 아이

들이 운영하는 카페에 들어가서 어떻게 진행하는지 한 번 보시지요.

아 이 들 은 감 동 입 니 다

잠깐 영상 보셨고요. 나중에 아이들이 실제로 공연을 할 때는 정말 누가 봐도 저렇게 연습 안한 애들이

에요. 이때는 시 대회를 나가자고 그래서 나가고 상탄 줄도 모르고 집에 오던 때이거든요, 결과와 무관

하게 참가 했으니 수상자 발표도 안 보고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최우수 소식을 전해 듣고 “애들아 우리

일등 했대”그랬더니 “아, 밥 언제 먹냐 고요~” 아니 무슨 밥은 아까 먹고 또 먹어 그랬더니 “우리 일등

했다고, 박수라도 좀 치자, 일등 쉬운 거 아니다 모두 전공한 애들하고의 경쟁이었는데”그랬더니 “아 그

니까 5교시 들어가냐고요” 관심이 그것 밖에 없는 거였어요 이 아이들은. 그런데 이제는 알아요. 무대

를 즐기고, 스스로 연습을 해서 무대서기 전에는 모여서 “야 잘해, 너 여기서는 줄 똑바로 맞춰가지고

어쩌고저쩌고” 저희들끼리 서로 맞추고 지적하고 수용하고. 끝나고 나서 한 아이가 잘못했으면 지적하

고, 한 대 치고, 또 한 녀석은 위로하고……. 그것이 재미인 것 같아요. 아이들 서로가. 이 녀석들이 고

등학교 졸업 후에도 계속 모임을 갖고 제가 환갑되는 날 저를 위한 공연을 해준대요. 그리고 제 장례식

까지도 마무리로 해준답니다. 생각만 해도 가슴 뭉클한 말이지요.

아 이 들 에 게 배 운 나 눔 의 행 복

아이들하고 처음에는 저의 규칙에 맞추며 해왔던 모든 것들이 어떤 큰 계기가 있었다거나 어떤 큰 변화

를 겪었다기보다는 제가 지나면서 느꼈던 것 같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애들하고 진행하면서 느끼고 그

것이 제가 서로에게 배워왔던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래서 애들한테 미안한 것이고요. 지금의 많은 아이

들이 제 곁에 있어줘서 고맙고요. 이런 나눔의 시간 있어서 제가 참 고마운 거 같아요.

그럼, 선생님들하고 이런 부분 중에서 아이들한테 창작 작품을 맡기면서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

믿고 지켜보니 알아서 잘 한다지만 어디까지 지켜보기만 해야 하는지 등, 아이들의 예술강사로서 느끼

고 공감하는 부분들을 잠시 쉬는 시간을 가진 후 선생님들과 함께 6 by 6를 통해 이야기 나누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아이들의 이야기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너무 질서 없이 하다가 자기네들이 스스로 질서를 찾을 때까지

시간을 줘야 된다는 거예요.

왜 우리도 어떤 상처를 받으면 상처를 치유할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그 애들도 자율성에 대해서 느낄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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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의 예술이 교육이어야 하는 이유

그래픽 레코딩

김재민 (무용)

꽤 괜찮은 경제적 환경에서 자라 예고와 음대를 졸업하고 유학을 마칠 수 있었다.

유학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여러 진로를 생각하게 되었다. 보육원에서 사회문화예술교육강사로서

어린이를 만나면서 나는 훌륭한 연주자보다 좋은 음악선생님이 되고 싶어졌다.

보통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지만 예술강사라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지식공유 / 발견

그래픽 레코딩 사진

조은영 (만화애니)

사전 인터뷰 영상 지식공유 영상

김재민입니다. 오늘은 아티스트의 예술이 교육이어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 한번 얘기해볼까 합니다. 반

갑습니다. 네. 먼저 오늘 처음 뵙게 되었는데요, 저는 대구에서, 사투리를 들어서 아시다시피, 대구에

서 아동 음악으로 사회문화 강사로 9년째 활동하고 있는 김재민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그리고 많

은 방 중에 그 짧은 인터뷰를 보고 저의 방을 찾아주셔 사실 부담스럽지만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

실 저는 말주변도 잘 없고 사실 이런 컨퍼런스도 처음 참석했는데 이렇게 발표자가 되어서 사실 굉장히

당황스러웠습니다. 얼마 전에 진흥원에서 전화를 한 통 받았어요. 그냥 짧게 인터뷰 해줄 수 있냐고 하

는데 알았다고, 그것도 제가 서울로 가는 것도 아니고 대구까지 오신다고 하시길래 아 그럼 대구까지

오시는데 인터뷰 당연히 뭐, 할 수 있죠 해가지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일이 커져가지고 지금 여러분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당황스럽지만 제가 한달 동안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지금까지 정신없이 살아왔던

저 자신을 한번쯤 뒤돌아볼 수 있었고요. 학교와 사회문화 예술강사로서 선생님들이 느끼고 있는 점과

제가 느끼고 있는 점들을 나눠봄으로써 예술강사로 살아가면서 우리들의 삶을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시

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런 자리를 마련해 주신 진흥원과 디렉터 김태황 선생님 그리고 모든

선생님들께 감사드리고, 마지막으로 찾아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립니다.

저희 방의 주제가 아티스트의 예술이 교육이어야 하는 이유인데요, 제목이 어쩌다보니 너무 유창해졌

어요. 사진에도 보시다시피, 어렸을 때부터 제가 어떻게 살아와서 어떻게 예술을 시작했고, 제가 살았

던 생각했던 삶과 공부했던 시절, 그리고 예술강사를 어떻게 시작을 했고 그런 것들을 선생님들과 한번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가 선생님들이 느꼈던, 우리가 예술강사지 않습니까.

예술강사를 하다보니까 교육자로서만 느꼈던 점과, 예술을 하는 사람이지만 교육을 하다보니까 어떻게

보면 우리가 지금 남아있는 게 예술도 아니고 교육도 아니고 이런 질문도 해주시는 선생님도 많고, 그

주제에 대해 토론을 해 보고요. 마지막으로 우리가 학교나 사회 예술강사로 활동하면서 우리가 느꼈던

사회적인 책임감이라 할까요, 그런 것에 대해 한번 얘기를 나눠보고 싶어요. 먼저 제가 살아왔던 얘기에

대해서 재미는 없지만 한 번 해보겠습니다. 먼저 얘기에 앞서가지고, 연주를 간단히 짧게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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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릴 적 그 음 악 ‘ 바 하 의 미 뉴 엣 ’

네. 사실 그 곡에서도 느꼈다시피 저는 이제 1976년 5월에 남쪽 경상북도 경주시에서 태어났습니다. 따

뜻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지금은 아파트도 많이 들어섰고 도시도 커졌지만, 예전에 정말 왕릉하고 한

옥과 고도의 이미지 때문에 약간 오래된 도시 때문에 그런 느낌이었고 제가 어렸을 때 만해도 정말 시

내를 제외하고는 정말 다 논이고 밭이고 과수원이고 정말 말 그대로 시골이었습니다. 그 덕분에 저 같

은 경우에는 자연에서 뛰어 놀게 되어서 정서적으로 아주 좋았던 거 같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사진에

서 보셨다시피 과수원을, 지금도 과수원을 하시지만 그 당시에도 저희 할아버지께서 과수원을 하고 계

셔가지고, 과수원에서 저도 자랐습니다. 과수원 농사를 하셨지만, 저희 아버지께서는 그 당시에 서울에

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졸업하셨고 어머니께서도 대구에서 대학교를 졸업하셨어요. 그러다 보니 애들

한테 교육면에서는 빠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누나는 촌이었지만 피아노를 전공한다고

피아노를 시작 했었어요. 형도 제가 초등학교 1학년 때인 4학년 때부터 바이올린을 시작했었습니다. 근

데 지금 생각해보면 형은 바이올린을 그렇게 재밌어 하진 않았던 거 같아요. 그런데 바이올린 학원 갔

다오면 굉장히 한 곡만 굉장히 열심히 했었어요. 어릴 적에 저는 형이 연주하는 것 중에 하나만 기억이

남더라고요. 지금 커서도 그 곡이 생각나는데, 그걸 한번 연주해볼게요. 유창한 곡은 아니고요, 한번 들

어보시면 아실 수도 있는데 바하의 미뉴엣입니다.

독 학 으 로 배 운 하 모 니 카

이 곡을요 원래 템포는 이건데 형이 이 곡은 집에 와서 어떻게 연주를 했냐면요. 방금 그 곡인데 빠르

기를 이렇게 굉장히 빠르게 연주했어요. 그러다 보니 그 곡이 뭐였지 하고 나중에 배우다 보니 아 그

곡이 그 곡이었구나 커가지고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때 너무 어려가지고 초등학교 1학년 때고 하니

까 바이올린은 하지 않고요, 피아노 학원에서 피아노도 배웠고 그리고 음악을 좀 좋아하다 보니 학교에

서 리코더도 굉장히 잘 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악기 부는 걸 좋아해가지고, 학교 문방구에 보면 어

릴 때 하모니카 팔았었잖아요. 부모님께 받은 용돈을 모아가지고 하모니카를 독학으로 배웠는데, 그때

배웠던 하모니카를 지금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는데, 그때는 제가 그 하모니카를 해가지고

30년 뒤에 보육원 애들 가르칠 줄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었죠. 그리고 제가 제일 먼저 바이올린을 접하

게 된 시점은 초등학교 5학년 때, 학교에서 지금 학교에 보면 다 방과 후 교실 있잖습니까. 거기서 저도

처음으로 바이올린을 했었어요. 그때 집에 일단은 형님이 사용하던 악기가 있으니까, 아 여기 나오네

요. 제가 이번에 찾아봤는데요. 사실은 한번 들고 오려고 했는데 목이 부러져 있더라고요. 워낙 오래 되

서 부러져있고, 이 부분이 브릿지라고 그러는데 브릿지도 어디 가고 없고 안은 다 부러져 있더라고요.

음 악 을 할 수 있 었 던 환 경

제가 아마 고등학교 때 장식용으로 쓰시다가 다 부러진 거 같아요. 하여튼 결정적으로 집에 일단은 소

위 말해서 굴러다니는 형이 사용하던 바이올린도 있었고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처음 바이올린 시

작을 해보니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바이올린이 왜 남자애들 요즘도 애들 가

르쳐보면 싫어하는 애들도 있고 힘들어하는 애들도 있는데 저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재미있어서 학교

마치고 집에서 바이올린만 했었던 거 같아요, 어릴 때는 애들하고 노는 것보다 더 재밌었고 공개 수업

집에 형이 사용하던 바이올린도 있었고

그래서 시작하게 되었는데, 처음 바이올린 시작을 해보니까요.

저 같은 경우에는 굉장히 재미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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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는 게 있잖습니까. 바이올린도 공개수업이라는 게 있는데, 그때 여러 어머니들 앞에서 연주가 마

치고 난 뒤에 어머니들 앞에서 쟤는 백 명 중에 한명 나올까말까 하는 음악적 재능을 갖고 있다고 그러

시더라고요. 사실 어떻게 보면 한 백만분의 일은 되었어야 했는데 백분의 일 그 말에 저희 어머니가 코

가 딱 꿰어가지고 그때부터 개인레슨을 다니게 되었던 것 같아요. 형님이 바이올린 배웠을 때는 피아

노 학원에서 피아노 선생님이 바이올린을 가르쳤고 저 같은 경우에는 정식으로 정말 바이올린 선생님

한테 배우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촌에서, 어떻게 보면 진짜 경주가 지금도 보수적이지만 안동보다 더

보수적인 곳입니다. 진짜 보수적인 곳인데, 그래도 그 보수적인 곳에서 제가 바이올린을 시작할 수 있

었던 것은 그것도 남자가 여자도 아니고 악기를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은 서울과 대구에서 대학교육을 받

으신 저희 부모님 덕분이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도 생각해보면 저한테 참 축복이었던 것 같고, 되

게 감사해요. 지금도 잊지 못하는데, 초등학교 방과 후 시간에 했던 부레라는 곡을 연주해볼까 합니다.

언 제 나 함 께 했 던 음 악

네. 굉장히 짧게 연주했는데요. 백 명 중에 한명 그게 지금도 못 잊는데요, 여러 선생님들 다 그러실 거

에요. 그런 선생님들의 칭찬이 있었기 때문에 이 자리에 모두들 계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제 두 번째로 제가 본격적으로 연주자를 꿈꾸던 시기였는데요. 중학교 때는 대구에서 제 외사

촌도 바이올린을 시작해서 전공을 했었기 때문에 경주는 시골이다 보니 대구 같은 경우에는 교수님들

도 계시고 해서 경주에서 대구로 중학교 때부터 레슨을 다녔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 때도 누나는 제가

예고 다닐 때 음대를 같이 다녔기 때문에 대구에서 같이 자취를 했고, 어떻게 보면 어렵지 않게 누나랑

같이 쉽게 바이올린을 계속 배울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아쉽지만요. 대학 다닐 때만 하

더라도 교직 이수할 성적은 되었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음대 남학생들에게 교직 이수 할거니 물으면 내

가 악기 하려고 음대 왔지 선생 하려고 왔나 할 정도로 저희 때는 지금 생각하면 참 아쉽고 하지만 그때

만해도 선생 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그냥 정말 연주자, 연주하는 것에만 몰입을 했던 것 같습니다.

군대도 경찰대학교에 있는 국립경찰교향악단에서 군복무도 하고, 제대한 뒤에 대학 생활을 하면서 지

금의 아내 학교 후배를 만나서 학업과 연애를 동시에 병행하면서 대학 졸업을 했고 대학 졸업을 하고 바

로 선생님 소개로 오스트리아 빈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비 엔 나 에 서 의 음 악 생 활

음악의 도시 비엔나에서 훌륭한 선생님들에게 많은 것을 배웠어요. 유명한 세계적인 연주회도 많이 열

려 많이 접할 수 있었고, 소위 말하는 대가들 연주도 많이 볼 수도 있는 기회가 많았습니다. 그리고 잠

시 귀국해서 학교를 막 졸업한 아내와 결혼을 했습니다. 아내도 같이 성악을 했었기 때문에 빈에서 음

악생활을 같이 하게 되었습니다. 저희 같은 경우에는 교수님이 정말 중요했기 때문에, 폴란드 쇼팽 음

악원의 타데우스 가지나 교수님이라고 굉장히 유명한 교수님이 계셨어요. 그 선생님께 배울 수 있는 기

회가 와서 빈에서 폴란드로 다시 공부하러 가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 사진을 찾아보니까 몇 장이 없더

라고요. 그때만 하더라도 디카가 없어서 사진이 몇 장 밖에 없었습니다. 폴란드에서도 정말 좋으신 교

수님들 밑에서 많은 걸 배우고 석사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보 육 원 에 서 느 낀 감 정

제가 생각해보니 벌써 9년차더라고요. 2004년부터 쭉 해오니. 아, 청춘을 여기가 다 묻어놓은 거 같더

라고요. 그때만 해도 제가 20대였거든요. 20대 후반이었는데 지금 벌써 30대 후반으로 들어서고 있으

니, 하여튼 2004년 8월에 귀국을 했는데, 8월에 지금 저희가 하고 있는 진흥원 수업을 원래는 이 사업

을 문화나눔이라고 메세나 협의회라는 곳에서 이 사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거기서 강사를 모집한다고

처이모에게 듣고 알게 되었습니다. 와이프 이모도 무용을 하셨거든요. 그 때 제 원서도 와이프가 다 냈

습니다. 얼마 있다 보니 합격했다고 연수 받으러 오라고 하더라고요. 이 사업에 대해 아무 내용도 모르

고 갔어요. 시나 문화센터 아니면 구청에서 애들이나 일반인들 바이올린 가르치는 정도로 알고 갔는데,

가서 보니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우광혁 교수님께서 음악 강사 선생님으로 오셨습니다. 교수님께서 이

사업에 대해 설명해 주셨고 어떤 것들을 가르쳐야 하는지 배우게 되었습니다. 이 사업이 보육원에서 하

는 수업인지 그때 처음 알았어요. 갈 때만 해도 아무것도 모르고 짐만 싸가지고 갔는데 가서 교수님 말

씀하시는 거 들어보니 보육원에서 하는 이 일의 취지도 알게 되었고 내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

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습니다. 선생님들은 다 학교에 계시잖아요. 사회 선생님들도 계신데, 보육원에

처음 갔는데 가기 전 엔 보육원 애들은 사고만 치고 그러는 줄 알았거든요. 물론 별난 애들도 있고 했지

만, 대체적으로 다들 착하고 예뻤습니다. 그때가 8년 전인데 그때 느꼈던 것이 요즘 애들 초등학교 교

육과정5~6학년들만 하더라도 저희 예고 다닐 때 배웠던 수준의 내용을 학교에서 지금 배우고 있습니

다. 교과서 내용 보면 이렇게 어려운 걸 어떻게 하나? 할 정도로 어려운 내용을 배우고 있는데 보육원

갔더니 중·고등학생들이 도레미파솔라시도도 모르더라고요. 저는 어릴 때부터 경제적으로 아무런 어

려움 없이 배웠는데 아이들과 제가 출발점이 다르다는 것을 그때 첨 느꼈어요. 애들하고 수업하면서 나

는 뭐 배우고 싶다 그러면 부모님께서 항상 다 해주셨지만 우리 애들은 보니 물론 자기만 열심히 하면

학교에서도 배울 수 있고 해도 30년 동안 경제적으로 어렵지 않게 배워 온 저한테는 충격이었습니다.

그래도 애들하고 수업을 하다 보니 악보도 좀 볼 줄 알고 악기도 제법 보았습니다.

제가 느꼈던 것은 경제적으로 없어서 못 배우는 그런 애들은 없어야지 하는 어떻게보면 저한테는 사

회적인 책임감, 그때는 사실 그게 사회적인 책임감 그런 것도 알지도 못했지만 느꼈던 것 같습니다.

잠시 또 연주를 해보겠습니다.

아 이 들 로 부 터 찾 은 ‘ 존 재 감 ’

네, 엘가의 사랑의 인사입니다. 다들 아시죠. 사랑의 인사인데요, 얼마 전에 지금 제가 대구에서 수업을

하고 있지만, 영천에서도 수업을 하고 있는데 이 학생 입니다. 학교수업은 시수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

는데요. 사회 같은 경우에는 일 년에 30차 수업을 해요. 29차는 일반적인 수업을 하고, 마지막 한 번은

현장학습을 가는데 저희 같은 경우에는 수업을 3월부터 하다 보면 10월초나 중순 되어버리면 수업이 다

끝나버려요. 그걸 담당선생님이 애들한테 말했나봐요. 이제 다음 주면 수업이 마지막이라고 동국이란

친군데 “샘 다음 주가 마지막 수업이라면서요.”하며 아쉬워 하더라구요. 그래서 내가 애들 가르치면서

뭐라고 할까, 경상도 사투리로 볼로 가르친 건 아니구나, 그냥 가르친 건 아니구나 하는 뭐라 할까 저를

애들이 기다리고 있구나, 그래도 제가 오면 한 번씩은 왜 샘 일요일에 퀴즈 보고 있는데 왜 왔냐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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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은 무대는 아니지만,

교실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보여주고

아이들이 감동을 받았기 때문에,

그 순간 만큼은

최고의 예술가였다고 생각합니다.

말도 해도 막상 마칠 때가 되니까 그래도 저 바이올린 하면 사랑의 인사 정도는 연주해야죠, 하는 그 소

리에 아 조금 가슴이 좀 뭉클해지더라고요. 그래도 나를 찾고 기다리고 악보도 못 보던 애들이 어디서

배웠는지 바이올린 곡이라 하면 사랑의 인사 정도는 할 줄 알아야죠 하면서, 그 말을 딱 해버리더라고

요. 아, 악보도 못 봤던 애들이. 다른 사진 한번 보시면, 어떤 식으로 수업을 하냐 그러면, 악보도 보지

만, 악보 못 보는 애들이 굉장히 많아요. 악보를 못 보기 때문에, 일일이 화이트보드에다가 나비야 같

으면 솔미미 다 적어요. 그러면 애들이 어느 정도 따라하면 계명창이 되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악보 보

는 것보다 이렇게 솔미미 적어버리니까 애들이 그거 보고 다 따라하더라고요. 그런 과정 속에서 저 같

은 경우에는 사회문화 예술강사로서 존재감도 찾은 것 같습니다.

음 악 선 생 님 이 아 닌 가 족 으 로

지금은 학교, 대구, 경주시 청소년 오케스트라 등 월화수목금토일 정신없이 쉬는 날 없이 일하고 있습

니다. 귀국 후 처음에는 이 사업 내용에 대해서 수업 내용에 대해서 몰랐을 때는, 그래 뭐 내 시간이

많으니까 첨에는 그래도 뭐 일자린데 어떻게보면 돈 벌려고 그런 생각을 해가지고 갔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지금은 감사하게도 저를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아가지고 쉬는 날 없이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2004년도부터 수업을 해왔던 대구의 한 보육원에서 와이프도 같이 사회문화 예술강사를 했었어요. 그

런데 임신 때문에, 임신 하더라도 여기 시설을 와이프하고 저하고 계속 같이 했었거든요. 와이프가 애

기 출산 후에도 저희 같은 경우는 어떻게 했냐면, 애가 엄마 젖밖에 안 먹었었어요. 애가 모유밖에 먹지

않아서 수업이 두 시간이지 않습니까. 저는 애하고 밖에서 차에서 기다리고 있고, 엄마는 수업하고 한

시간 있다가 와가지고 젖먹이고 그러고 또 가고, 그러면서 저희 큰 애도 같이 그 보육원에서 다들 애들

보면 가족처럼 하고, 그 시설에서도 저희보고 애들, 거기는 남자 선생님이 없었어요. 그렇다 보니 저보

고는 그냥 삼촌이라고, 진짜 가족이라고 그렇게 하시거든요. 그러고 얘가 커가지고 벌써 젖먹이가 커가

이렇습니다. 와이프는 그 다음 해에 좀 멀리 발령이 나서 와이프가 운전을 못해요. 못하다 보니 지금은

쉬고 있고 저 혼자 사회문화 예술강사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보육원 가면 수업 와가지고 애들이 악기 배우고 음악 수업하는 것보다 어떻게 보면, 과자 사주고 그런

것 때문에 오는 애들도 많고, 수업 가면 제 무릎에 앉고, 뒤에서 끌어안는 애들도 있고 하기 때문에 진

짜 아빠는 아니더라도 그때는 제가 예술가나 음악 선생님이 아닌, 애들한테는 가족이나 삼촌 같더라고

요. 한 번씩 애들한테 연주도 한 번씩 해줍니다. 진짜 음악회처럼, 멋지게 해주거든요. 그러면 애들이

감동 받아가지고 아 선생님 쩐다! 그러면서 자기들도 끽끽거리지만 한번 해보려고 하는 그 모습 속에 어

떻게 보면 뭐라 그럴까, 그 순간은 무대는 아니지만, 교실 안에서 최선을 다해서 보여주고 아이들이 감

동을 받았기 때문에, 그 순간 만큼은 최고의 예술가였다고 생각합니다.

사 랑 이 진 정 한 교 육 입 니 다

제가 2006년도에 집은 대구지만, 2006년도에 제가 부산의 가덕도에 있는 소양 보육원에 수업을 가게

되었는데 거기 소양보육원에 원장선생님이 아이들을 정말 친자식처럼 사랑해주시는 내 자식도 저렇게

못 키울 정도로 그 정도로 애들을 많이 사랑해주시는 선생님이셨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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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천에서 수업을 아홉시에 마치고

집에 가면 열시 정도 되는데,

몸은 진짜 힘든데 그래도 마음은 참 편안합니다.

제가 거기는 배타고 들어가야 되기 때문에, 토요일에 배타고 들어가면 토요일 하루 밤, 수업하고 거기

서 자고, 그 다음날 배타고 나오고, 지금은 가거대교가 놓여가지고 차타고 들어간다고 하더라고요. 하

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배타고 들어가고 배타고 나오고 했었는데 하룻밤 자면서, 그때 우연찮게 제가 보

려고 봤는 건 아니고, 원장선생님이 제가 가면 방을 하나 비워주셨어요. 방에 보니까 작은 메모가 하나

있더라고요. 거기가 교회 다니는 기독교 시설이다 보니 원장 선생님의 메모였는데 당신 자녀 내가 보살

필 테니 내 자녀 당신이 보살펴달라 그런 내용이었더라고요. 그게 뭐였냐면, 당신 자녀라는 것은 보육

원에 있는 애들, 부모는 있지만 경제적으로 안 되고 그담에 정말 어릴 때부터 태어날 때부터 고아, 그

런 애들을 어떻게 보면 친자식처럼 보살핀다는 기도문 같은 저 같은 경우에 그때 시간은 많이 지났지

만 그때 그 메모 보면서 헌신적인 모습과 메모가 감동적이었습니다. 주말에도 여기 사진에도 있다시피

한 살짜리 애하고 다섯 살짜리 애가 있는데 주말에 보육원 다닌다고 보육원에서 수업한다고 애들하고

놀아줄 시간이 전혀 없습니다.

사회문화 예술강사로 지내면서, 그래도 아빠가 이런 일 하면 애들도 제가 지금 못 놀아주지만 컸을 때는

이런 아빠를 이해해주리라고 생각하고, 제가 보육원 애들을 그만큼 더 사랑해주는 만큼 또 어떻게 보면

우리 애들도 커서 남들한테 좀 더 사랑을 받고 지내겠지 그런 생각이 듭니다. 영천에서 수업을 아홉시에

마치고 집에 가면 열시 정도 되는데, 몸은 진짜 힘든데 그래도 마음은 참 편안합니다.

이 곡처럼 제가 한번 연주를 해보겠습니다.

삶 을 돌 아 보 게 된 컨 퍼 런 스

아무 생각 없이 정신없이 살아왔는데 컨퍼런스 준비하면서 한번쯤은 삶을 한번 되돌아볼 수 있었고 내

가 정말 애들과 어떻게 지내고 있었는지도 한번쯤 생각해볼 수 있었고 또 어떻게 보면 나태해 질 때도

있어서 반성도 해볼 수 있었던 기회였던 것 같고요.

예술강사로 지내며 선생님들도 다 어떻게 보면 지금 수업을 하다보니까 예술가인데 다들 예술과 멀어

지고 있지않나. 어떻게 보면 한 번씩은 그런 생각도 해보셨을 것 같아요. 애들을 가르치다 보니 예술가

인데 예술은 없고 교육만 남지 않았는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원했던 삶은 예술가들의 삶이었던 것 같

은데, 지금 우리가 살다 보니 교육만 남았는가, 예술가는 멀어지고, 그랬을 때 선생님들은 자괴감 같

은 게 느껴지셨는지, 안 느껴지셨다면 왜 안 느껴지셨는지 그걸 한번 선생님들과 같이 얘기를 한 번 해

봤으면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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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었던 소꿉놀이

그래픽 레코딩

강미영 (연극)

이것은 내 삶에 어떻게 적용될까? 내가 처음으로 경험한 연극 연출은 소꿉놀이다.

컨퍼런스에서 진짜 소꿉놀이를 해보자. 연출도, 배우도, 관객도 한 몸이었던 소꿉놀이는

현재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가 되는지 이야기 나눈다.

소꿉놀이는 배우이자 연극강사인 내가 하는 모든 것의 시작이 되었다.

지식공유 / 발발

그래픽 레코딩 사진

박운용 (만화애니)

사전 인터뷰 영상 지식공유 영상

단출한 분위기에서 준비물은 너무 많이 엄청나게 해놨는데, 열여덟 분 쯤 오시니까 이십 명이 오신다고

하셔서 이십 인분 신청해놨는데, 준비물을 다 사용은 해보고 갈 수 있도록 할게요. 제가 하는 거라기보

다는 강사님들이 하셔야 될 부분이 훨씬 많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일단 제 소개부터 할게요. 저는 연

극 예술강사 강미영입니다. 네, 사회 쪽으로도 이제 3년차, 학교 쪽으로 10년차. 오래 되었어요. 나갈

때 되었나?(하하). 아직은 버티고 있는 강미영입니다. 그리고 저는 좀 편안한 분위기에서 했으면 좋겠

어요. 이게 이런 자리일 줄 모르고 거의 처음에는 이제 여기 디렉터님이 말씀하시기를 인터뷰 좀 하자

그래갖고 인터뷰를 우수 강사가 아닌 다른 분 이렇게 해가지고 인터뷰를 누군가가 말 좀 하는 사람? 나

밖에 없었던 거에요. 인터뷰를 할 사람이. 그래가지고 인터뷰를 했는데, 막 얘기를 이끌어 내주셨어요.

연극을 어떻게 처음 시작했니 뭐했니 뭐했니 이끌어내니까 이게 막 봇물처럼 튀어나왔어요. 다 얘기했

어요. 그랬더니 그렇게 얘기해주시면 된다고, 간단하게 정리해주시면 된대요. 아 그런데 제가 그때 공

연이 있는데 그랬더니 꼭 해야 된다고 하네요. 그래서 더블캐스팅이니까 가능은 할 거 같은데, 그러면

된다고 해서 너무 편안하게, 정말 너무 편안하게 생각을 하고 했는데 세 번이나 회의에 왔어요. 뭐 이렇

게 해야 된다, 이렇게 해라. 그런데 배우고 가게 되었어요. 그런데 저는 항상 머리가 띵 한 상태로 왔다

가 띵 한 상태로 가는 거에요. 얼굴에는 열이 펄펄 나고요. 일단, 지난주에 여기 답사 왔었어요. 4층에

갔는데 미닫이문이 되어있는 거에요.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래도 뭔가 하려면 열심히 뭔가 할 수 있을

거라고 상상하잖아요. 그런데 그 공간은 좁을 거 같은 거에요. 그래서 안 되겠다 빨리 다른 공간 내달라

그렇게 해서 한 층 밑으로 이 공간으로 왔어요. 위에처럼 아주 아늑하고 이런 맛은 없지만, 나름대로 우

리가 예쁘게 꾸며보도록 할게요. 네. 저는 여기 내려와 가지고 다른 데는 삐까뻔쩍하고 그런데 나만 이

러면 신경질나 환장하겠네 그랬거든요. 그래도 이제 어쨌든 여기 오게 되었어요. 여기가 동방이에요 동

방. 우리가 여기가 좋은 장소라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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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 연 히 맺 은 연 극 과 의 인 연

장소는 그렇게 되었고, 제가 끌려오게 된 이야기는 무엇이었나. 연극강사 어떻게 하니 너 연극 어떻게

하게 되었니 그런 이야기를 오만가지를 인터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가지고 얘기하다보면 아주 근처부

터 생각이 나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하다가 프로 극단에 들어갔다, 친구 따라 프로 극단에 들어가서 어

떻게 눌러앉은 건 나다. 꼭 그런거지. 그래서 그 친구는 뭐 그렇게 되고 나는 아직도 이렇게 혼자 방황하

며 이렇게 살고 있다. 그리고 이제 생각해보니까 대학교 때 내가 동아리를 들어갔다. 그런데 내 의지가

아니었어요. 절대로. 그때 친구 따라 갔다. 친구 따라서 갔는데 또 걔는 그만두고 네, 저만 하고 있었 더

라고요. 그런데 이제 대학교에서는 제가 성질이 그렇게 좋은 나긋나긋한 편이 아니기 때문에 그 동아리

에서 끝까지는 못 있었어요. 그 연극동아리라는 자체가 대학교 연극 동아리면, 젊은 분들은 어떤지 모

르겠지만 저는 87학번이거든요. 그때 세대는, 뭐랄까 고충이 많았어요. 그러니까 뭐할려고 그러면 나와

서 맞으래. 신고식을 맞는 걸로 하고 막 그래요. 그리고 뭘 막 막시즘 그런 걸 줘요. 난 책 읽는 거 되게

싫어하는데. 그걸 못 읽겠는거에요. 일단은 거기서는 작품을 하나 하고, 그냥 내가 못 하겠다 그러니까

제가 워낙 성격이 이러니까는 거기서도 빨리 나가라 그랬어요. 그래서 나왔고, 생각해보면 고등학교때

도 연극을 했던 거에요. 제가. 그래서 이상하다 나는 한 번도 내 의지대로 연극을 한 적이 없는데 왜 고

등학교 때도 연극을 했지? 가만히 생각을 해 보니까 가위바위보를 했었어요. 연극부를 아무도 안 가는

거에요. 그때는 뭔가 활동을 많이 해야 하는 거 같잖아요. 그래서 활동 적게 하는 수공예부, 운동하려고

바깥에 나가는 그런 거 그런 데로만 쏠리고 연극부는 안 가는데 가위바위보에서 계속 집니다, 제가 계

속 져서 연극부에 가요. 연극부에 가는데 거기서 뭐 뚜렷한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연극하는 선생님이

발성이라든가 발음이라든가 이런 거를 가르쳐주셨어요. 그래서 따라하는 척만 하고, 그리고 영화 틀어

놓고요. 고등학교니까 그 당시 저를 연극배우를 만들 생각이 전혀 없으신 선생님이시고, 나가서 배드민

턴이나 치자 뭐하자 그러면서 어쨌든 연극이랑 인연이 있었던 거에요.

연 극 이 전 해 준 설 렘

중학교에서는 별다른, 가위바위보에서 지면 꼭 체육부장 이런 거, 돈 걷는 거, 그런 거 했어요. 중학교

때는 연극과는 별 상관없이 지내고. 제가 어, 뭔가 이상하다 했던 건 초등학교 때에요. 초등학교 때 제

가 아주 오랫동안 5년 반 다니던 학교에서 전학을 가요. 전학을 가는데 제 뒤로 열두 명이 전학을 옵니

다. 이게 학교가 새로 생기니까, 찢어져서 보내잖아요. 그래갖고 제가 딱 첫 타로 가니까 열두 명이 막

온 거에요. 그 열두 명이 전학을 와서 그 아이들 성격이 다 저 같아서 막 나서고 이런 걸 좋아하더라고

요. 근데 저도 제가 나서는 줄 몰랐는데 그때 처음으로 학예회를 하는데 우리 연극을 한 번 해보자, 우

리 중에 나서기 되게 좋아하는 애가. 그래서 그러자 하고 신데렐라 동화책을 각색을 하기 시작해요. 제

가 또 각색했어요. 요기 대사 이렇게 빼고 이렇게 이렇게 하면 될거 같아 그랬는데, 나중에 캐스팅을 하

는데, 캐스팅을 할 때는 전부다 신데렐라를 안 하겠다고 하는 거에요. 그때는 그랬어요. 그때는 주인공

을 한다는 게 쑥스럽고 내가 나서면 안 될 거 같고 그런 분위기였어요. 요즘에는 막 하고 싶으면 내가 할

거야 신데렐라, 아니 신데렐라는 요즘 안한다고 하죠. 계모, 나 언니할거야 계모할거야 이러잖아요 요

즘에는. 그런데 그때는 계모 이런 건 신경 안 쓰고 신데렐라가 누가 될 것 이냐만 치중했었어요. 그런데

아무도 안한다고 하는데, 가위바위보를 하는데, 제가 집니다. 그래가지고 제가 처음으로 안경 쓴 신데

고등학교니까

그 당시 저를 연극배우를 만들 생각이 전혀 없으신 선생님이시고,

나가서 배드민턴이나 치자 뭐하자 그러면서

어쨌든 연극이랑 인연이 있었던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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렐라를 하게 됩니다. 가위바위보를 해서 그 가위바위보의 인연이 너무나 오래 이어졌었다는 거를, 인터

뷰를 하는 동안에 찾아내주셨는데, 그래서 그때 제 마음이 어땠냐면, ‘졌으면. 나 졌으면’ 절대로 말은

못했지만, ‘나 져서 신데렐라 했으면 좋겠다’ 했어요. 막상졌을 때, 어우 나 어떡해 이렇게 된거죠. 속으

로는 너무 떨리고 너무 좋고 그런데 정말 하기 싫은데 이렇게 된 거에요. 그때, 그랬을 때 그 떨림이 그

설렘이 지금까지 오게 만들었던 거 같아요. 아직도 무대 뒤에 서 있을 때 아직도 떨리거든요. 울렁증이

엄청 많은 사람이고, 또 이렇게 모셔놓고 얘기하는데도 불구하고 얼굴 벌게지고 가슴 동당동당 뛰고 그

래요. 그때 근데 저는 그게, 나쁘지가 않았어요. 나쁘지가 않았으니까 지금까지 온 거 같아요. 그리고

언제가 그런 설렘과 떨림을 바래왔던 거 같아요.

소 꿉 장 난 을 기 억 하 다

누군가가 바라봐주는 게 문제가 아니라 내가 무대에 설 때 막 떨리는 게 너무 좋았었어요. 그리고 또 생

각해봤어요. 거슬러 가니까 내가 소꿉장난을 했었더라. 소꿉장난을 했었는데, 그때 저는 소꿉장난의 엄

마 아빠 배역은 거의 안했었던 거 같아요. 뭘 하고 있었냐면요, 너 엄마 해. 너 아빠할래? 응. 너 동생

해. 응. 그래놓고는 저기 배경, 뭐 이렇게 해서 돌 저쪽에다 쌓아놔. 그리고 그때는 모든 것을 다 야외

에서 수급하던 때였어요. 실내에서 소꿉장난 하던 적이 없었어요. 저 만큼이 방 저 만큼이 부엌 저만큼

이 뭐, 이렇게 해가지고 뭐 그런 사람이었던 거에요. 그러다가 이제 끼어들기도 하고 나오기도 하면서,

제가 이렇게 왔다갔다가는 깍두기처럼 그렇게 놀았었어요. 생각해보니, 늘 그랬던 거 같아요. 엄마 해,

아빠 해, 난 애기해, 뭐 하자. 끝은 한 번도 내본 적이 없어요. 우리 끝을 어떻게 낼 건지를 생각해본 적

이 한 번도 없었던 거에요. 없죠? 네, 없어요. 시작은 분명히 했어요. 같이 시작했고, 그랬는데 어떻게

끝났는지는 생각이 안 나는 거에요. 그쵸. 그렇게 갔었어요. 우리가 깨끗하게 소꿉놀이를 “어, 오늘은

여기까지” 그랬던 적이 한 번도 없는 거에요. 완벽하게 어떤 극을 만들어서. 제 삶이 그게 아닌가. 아직

도 저는 아직 끝을 모르거든요. 어떻게 될지. 정해놓고 싶지가 않아요. 그런데 제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다는 거, 그리고 그 마음들 때문에 내가 애들을 가르칠 때 애들 마음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어요. 웃기고 있네, 안하고 싶긴 뭘 안하고 싶어. 살살살살 찔러줘, 할 수 있게 만드는 어떤 또 하나

의 요소가 되었던 거 같아요. 저한테는. 그렇게 깊이 여기서부터 쓰윽 들어가보니까 나한테는 처음은

소꿉놀이가 있었다는 거. 소꿉놀이에는 굉장히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있더라고요. 저처럼 연출을 한다든

지, 혹은 배우를 기가 막히게 엄마 흉내를 잘 내면서 여보! 이렇게 하는 애들이 있는가하면, 또 어떤 애

는 반찬을 잘 만들어요. 돌멩이에다가 옛날에 빨간 벽돌이 있었어요. 그걸 막 으깨가지고, 고춧가루 해

가지고, 그렇게 아무 풀이나 뜯어다가 진짜 김치처럼 만들어오고, 계란 꽃 얇게 떼서 진짜 후라이처럼.

그런 애들은 진짜 미술적인 감각이 있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또 어떤 애는 그렇게 집에 집착을 해요.

연 극 이 가 져 다 준 행 복

분명히 돌을 몇 개 더 쌓아야 된다. 담을 막 쌓고, 방은 요렇게 해서 요기에 뭐가 있었음 좋겠고 그렇게

집착을 하더라고요. 그런 것들. 제가 연출을 하는, 혹은 연기를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면, 분야가 다른

선생님들께서는 무엇인가 다른, 요리를 잘했거나, 혹은 건물을 잘 지었다던가, 또 뭐가 있을까요? 떨

려서 생각이 안 나네. 또 어떤 게 있어요? 소꿉놀이에? 그 안에 어떤 많은 요소들을 채우고 계시지 않

았었나. 그런 생각이 들어요. 이 얘기를 두 시간 했다가는 큰일 날 뻔했죠? (만약에 두 시간 하라고 했

으면 더 늘려갖고 왔겠지요) 어쨌든 저는 저의 처음이 그걸로 시작해서 제가 이 자리에 있고 그리고 연

극배우를 하는 제가 너무 기특하고 예뻐요. 비록, 돈은 못 벌지만. 매번 무대 위에 올라가서 어쨌든 박

수도 받고 내 나름대로 자책도 많이 하지만, 그거에 대한 슬픔은 없어요. 인간한테 어떤 상처를 받아

서 슬픔을 굉장히 많이 겪어봤는데, 연극한테 상처를 받아 슬픔을 느껴본 적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래

서 선생님들과 그런 처음을 얘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의 상징적인 소꿉놀이를 한 번 해보고 싶어

요. 선생님들 지금 앞에 책상 위에 아마 포스트잇이 놓여있을 거에요. 포스트잇이 없으신 분은 가져가

서 쓰시구요, 그리고 네임펜이 다 있으실 거에요. 거기에 내 인생의 키워드 세 개를 쓸 거에요. 세 개중

에 마지막은 꼭 나의 처음 키워드를 써 주세요. 나의 지금 이 자리에 온 나의 키워드. 저한테는 가위바

위보, 혹은 소꿉놀이라면 선생님들한테는 무엇이었는지. 두 가지는 선생님들 인생의 키워드를 적어주

시구요. 세 번째는 꼭 적어주세요.

그래서 선생님들과 그런 처음을 얘기하고 싶어요.

그리고 우리의 상징적인 소꿉놀이를 한 번 해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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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지루하고, 학생들은 비슷하게 느끼는 마음

그래픽 레코딩

지식공유 / 발발

그래픽 레코딩 사진

황중성 (만화애니)

박종현 (국악)

한해 한해 비슷한 일상, 점점 비슷해 보이는 학생들, 하지만 즐거운 학생들의 마음을 보고 싶은 것,

부족한 마음을 서로 메워주고 싶은 것, 이런 틈바구니에서 내가 즐거울 순 없을까?

사전 인터뷰 영상 지식공유 영상

안녕하세요. 제 이야기방에 와주셔서 너무 감사하고요, 처음에는 아 이걸 맡게 되서 되게 부담스러웠

거든요. 신청 안하실까봐 걱정이 되게 많이 되었었는데 제 방이 세 번째로 빨리 차가지고 엄청 기분이

좋았습니다. 선생님들 덕분이구요, 제가 할 이야기는 예술가는 지루하고 학생들은 비슷하게 느끼는 마

음이구요, 제 이름은 박종현 입니다. 여기까지는 녹음 때문에 말씀드린 거구요, 말을 좀 하래요.(웃음)

처음에, 사회문화 쪽에서 연락이 왔어요. 저보고, 선생님의 삶을 아주 그냥 진솔하게 있는 그대로 말씀

해주시면 된다고 인터뷰 잠깐 두 시간 정도만 하시면 된다고 그래서, 그냥 스스럼없이 제가 하겠다고

했어요. 근데 이렇게 크게 발표까지 하라 그러실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고요, 그때는 이제 그 다음에 발

표를 하라고 했을 때 제가 부담스러워서 안한다고 맨 처음에 거절을 했다가 솔직히 지금부터 얘기할 게

거의 대부분 저의 사적인 얘기거든요. 저의 완전 사적인 얘기라서 부담스러워서 못하겠다고 말씀을 드

렸다가, 그래도 선생님 주제가 강사들한테는 굉장히 공감이 되는 얘기다라고 말씀을 해주셔서 제가 용

기를 내서 한번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얘기할 것은 제 생각이고요, 제 느낌이거든요. 선생님들이 똑같이 느끼실 수도 있고 다르게

느끼실 수도 있는데요, 그래도 좀 긍정적인 마음으로 저를 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주제는 제가 정

한 거는 아니고요, 기획을 하시는 선생님이 제 인터뷰를 들으시고 제목을 정해주셨어요. 그리고 제가 이

제 주에 때문에 느껴지는 것들을 써봤습니다. 선생님들이 다 읽으셨던 내용이고요, 잠깐 영상 볼게요.

네, 이 영상을 보여드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야금? 마음? 네, 여기 선생님이 맞추셨습니다. 제 전공

이 가야금이고요, 그래서 제 영상을 보여드릴까 하다가 재미가 없을 거 같아가지고 드라마로 대체했습

니다. 재미있으셨어요? 네, 제 전공이 가야금이고요, 대학을 졸업하고 가야금으로 대학원을 졸업했습

니다. 하면서 거의 대부분 선생님한테 레슨 받으면서 가야금 위주로만 연습을 했던 거 같아요. 제 생활

패턴이. 그래서 대학원을 졸업할 때까지 그랬고요, 그렇게 하다보니까 제가 얘기하는 것들 그리고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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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에 있는 예술가 선생님들이 말씀 하시는 게 거의 대부분 여기 있는 거 위주로 얘기를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서로서로 연습을 어떻게 해야 되고, 우리가 지금은 공연 준비도 하고, 음반 제작도 하고, 대학

강의도 하고 싶고 그렇게 해서 나중에는 이제 저희가 제 전공이 국악이다 보니까 제일 최종의 목표는 인

간문화재 되고 싶고 뭐 그거야 뭐 잘 되면 다행인거고요, 그래서 인간문화재가 되고 싶고 아니면 대학

교수가 되고 싶고 이런 것들이었는데요, 이렇게 얘기를 하는 게 그때 당시에는 이렇게 다들 똑같은 얘기

만 할까 요런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제 자신이. 이때 제 자신도 불투명한 미래가 답답했었어요,

주위의 말씀하시는 선생님들 대화도 좀 답답하다는 그런 느낌을 많이 받았었습니다.

가 르 치 는 즐 거 움

이렇게 가야금 위주로 제가 연습을 하고 공연을 하다가 처음으로 학생들을 만나게 되었거든요. 이 친구

들이 제가 처음으로 가르쳤던 특기적성 학생들이에요. 이 친구들 만나고 수업 해보면서 아 이런 세상이

있구나. 그 전에는 나는 가야금만 연습하면 다 되는 줄 알았는데, 학생들 가르치면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구나 그런 것들을 많이 느꼈었거든요. 그래서 많이 배웠습니다. 이 친구들한테, 이것저것 이 친구

들과 서로 얘기하면서 서로 삶도 얘기하구요, 그리고 제가 막상 교육을 하다보니까 저 자신도 뿌듯하

고 되게 보람을 느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수업을 하다가 보니까 주위에서 예술강사가 있다고 한번 해

보라고 추천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먼저 예술강사가 되었고요, 가서 보니까 지루하게 앉아서 만

날 가야금만 뜯다가 여기 학생들을 만나서 수업을 하니까 너무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제가 그

렇게 수업을 못하진 않았던 거 같아요. 선생님들이 칭찬을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학생들을 잘 잡고 또

애들도 재미있어하고 그래서 피드백을 많이 받았던 것 같고요, 학생들도 제가 수업하는 걸 보면서 학생

들이 웃고, 저로 인해서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까 제가 너무 뿌듯하고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그

래서 이거는 옛날에 찍은 사진인데 이렇게 올려봤어요, 그래서 제가 이때는 1~2년 차라 예술강사 1∼2

년차여서 제가 사명감으로 똘똘 뭉쳐가지고 학생들한테 진짜 지극 정성으로 열심히 했던 거 같습니다.

지금도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사실 그때만큼의 열정은 아닌 거 같아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그리고 학

생들도 집중을 잘 했고 주위에서도 칭찬을 많이 해주시고, 그래서 제 생활이 참 행복하고 이 모든 생활

들이 활력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이렇게 수업을 하다보니깐요, 전에는 공연 위주로 제가 생활을 살

아오다가 교육 위주로 생활을 많이 바꾸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무시할 수 없었던 게, 교육을 하다보니,

돈이 많이 들어왔던 거 같아요. 그런 실질적인 부분에서도 좋았던 거 같아요. 그래서 제가 공연보다도

사람들이 주위에서도 추천을 많이 해주시고 그래서 예술강사 쪽으로 많이 돌아섰어요, 교육쪽으로 많

이 돌아선 것 같습니다. 여기 선생님들은 제가 알기로는 연세가 되게 오래 되신 선생님도 계시고 아닌

선생님도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선생님들의 시절은 어땠는지 잠깐만 한 10초만 생각해보시고요.

지 난 시 절 을 돌 아 보 다

자, 이렇게 제가 수업을 하다 보니 수업이 되게 빡빡했어요. 그래서 하루 일과가 아침에 이동을 한 2시

간 이동을 해서 학교문화예술교육을 하구요, 그 담에 다시 두 시간 정도 이동을 해서 방과 후 수업을 하

고요, 그 담에 저녁에는 사회문화예술교육을 또 했습니다. 그래서 저녁에 사회문화예술교육이 없는 날

은 뭐 선생님들도 거의 비슷하시죠? 수업일지 정리하고 다음 수업 준비하거나 아니면 토·일요일은 개

지금도 열심히는 하고 있지만, 사실 그때만큼의 열정은 아닌 거 같아요.

솔직하게 얘기하면. 그리고 학생들도 집중을 잘 했고

주위에서도 칭찬을 많이 해주시고, 그래서 제 생활이 참 행복하고

이 모든 생활들이 활력소가 되었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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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 레슨을 했었어요. 그래서 수업이 되게 빡빡했어요. 그 담에 그 와중에 제가 자꾸 교육 쪽으로 가다보

니 교수님이 가야금 놓지 말라고 자꾸 옆에서 말씀을 해주셨거든요. 그래서 가야금을 안 놓으려고 레슨

을 받았는데 결과적으로 지금 보니까 거의 연습을 하나도 못하고 레슨만 받았던 거 같아요. 그러니까 마

음에 욕심만 있어서 레슨은 받고 연습은 못하고 그런 것 땜에 제가 그 시절에는 되게 갈등을 많이 했었

던 거 같습니다. 어머니가 건강하신 편이 아니라 제가 집안일까지 좀 했었어야 했거든요. 그러니까 그

런 것에서 오는 저의, 제 삶의 너무 힘든? 예. 그래서 이거를 한 3년에서 한 5년차 정도까지는 계속 이

런 식으로 거의 토요일 일요일 좀 빼고는 거의 매일 이렇게 움직였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일단 결과적으

로 수입은 되게 좋았던 거 같아요. 좋은데 이렇게 제가 힘들게 하다보니까 그런 영향들이 학생들한테도

조금 갔던 거 같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랬던 거 같아요.

무 엇 보 다 중 요 한 건 , 소 통 입 니 다

그래서 영상 잠깐 볼게요. 예. 혹시 이 영화(리얼스틸)보셨어요? 안보셨어요? 아, 보셨어요. 선생님. 이

영화에서 보면 주인공이 로보트를 교육 시켜요. 그래서 복싱 선수로 만들게끔 해서 저렇게 하는데요,

지금 보시면 로보트가 거의 똑같이 움직이고 있잖아요. 그래서 제가 수업할 때 학생들이 그렇게 움직였

으면 그런 마음이 너무 간절했어요. 그때는 너무 제가 힘들었기 때문에, 일단은 거의 비슷하게 진짜 움

직였던 거 같아요. 애들을 잡아서, 그렇게 수업을 해서 선생님들이 일단 그렇게 반응이 나쁘지는 않으

셨던 거 같아요. 그리고 저도 제가 힘들지 않아야 되니까 애들을 더 그렇게 했던 거 같고, 그리고 학교

에서 원하던 것은 특히 국악이라서 조금 분야들이 다르시지만, 국악 선생님에게 원하던 것은 거의 실기

위주가 많았던 거 같아요. 학교 선생님들은 거의 당신들이 실기가 좀 부족하기 때문에 “이론보다는 실

기 위주로 많이 해주세요”이렇게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단소라든지 장구라든지 그런 것들 위주로

수업을, 그래서 실기 위주로 많이 해달라고 해주시다 보니까 단소 장구 이런 식으로 많이 했던 거 같아

요. 그러니까 제가 더 원했던 거는 애들이 빨리 실기가 확실하게 높아졌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고요,

그런 것들이 잘 되서 칭찬을 많이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런 식으로 수업을 하다 보니 애들이 실기

성적은 좋아지고 애들도 그렇게 싫어하지는 않았지만 학생들하고 소통이 많이 부족했던 거 같아요. 그

래서 연극 선생님이나 다른 분야의 선생님들은 대화를 많이 하시는 걸로 저는 알고 있거든요. 대화를

많이 하시면서 학생들과의 소통이 중요하다고 생각을 했었어야 되는데 제가 수업하는 걸 다시 돌이켜

보면 거의 대부분 그냥 실기 위주로 수업을 하고 학생들하고 대화라기보다도 그냥 그렇게 수업을 하다

보니까 더 그런 단점들이 있었어요, 학생들이 기술 향상은 되었지만 똑같은 거를 1반부터 10반까지 가

르치다보면 저는 정말 지겨워요. 그래서 여기 계신 국악 선생님들은 정말 절실하게 느끼실 거라고 저도

생각을 해요. 어떤 날은 도라지를 정말 1반부터 10반까지 계속 부르는데 속으로 어우 정말 돌아버리겠

네 뭐 이런, 그런 마음들을 너무 많이 느꼈었거든요. 그래서 제가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학생들과의 소

통도 안 되고 학생들의 창의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수업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런 것들이 잘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수업이, 내가 즐겁지 못했던 수업인 거 같았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삶의 소통이 정

말 중요하구나 이런 것들을 많이 느꼈었던 것 같습니다.

목 표 의 식 이 중 요 합 니 다

그리고 제가 1~2년차 사회문화예술을 하게 되었어요, 지금 제가 학교문화는 8년차고 사회문화는 6년

차인데요, 처음에는 사회문화 학생들이, 학교 학생들하고 너무 달랐습니다. 모범적인 학생도 있었지만

학교에서 힘든 학생들 있잖아요, 각 반에 한명 정도 있는 학생들을 한 열 명 모아놨다고 생각하시면 되

는데요, 그 학생들이 수업을 하다보니까 제 자신이 너무 힘들고 학생들을 어떻게 수업에 집중하게 할 수

있는지 그거 자체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수업을 하고 나오면, 1년차 때는 나오면서 눈물을 막 흘리

면서 내가 왜 이렇게 수업을 했지 왜 이렇게 밖에 안 되었을까 오늘, 이렇게 반성하는 시간을 많이 가졌

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때는 많이 힘들었고 2년차가 되고 그 다음에는 애들을 어떻게 하면 수업에 집

지금 생각해보면 당시 학생들과의 소통도 안 되고

학생들의 창의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수업을 했었어야 했는데

그런 것들이 잘 안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 수업이, 내가 즐겁지 못했던 수업인 거 같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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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하게 할 수 있을까 고민을 되게 많이 했어요. 그리고 계속 평소에도 고민의 연속이었어요. 학생들만

계속 1년 내내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던 거에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수업을 잘 시켜서 편안하게 학교

학생들처럼 마무리를 할 수 있을까 제가 고민을 많이 했는데요, 그러다보니 이것저것 연수에 참가하게

되고 해서 수업을 진행하는 그런 것들을 많이 연구하였습니다. 왜 이렇게 학생들이 집중을 못하고 재

미없어할까, 지금 생각을 해보니까 전공자랑 비전공자랑 좀 나눠져요. 전공자들은 어차피 이걸로 우리

는 먹고 살아야 하니까 뚜렷한 목표의식이 있지만, 그리고 또 가끔씩 대회를 나가거나 뭔가 해서 이렇

게 희열을 느낄 수 있는데요, 이거 학교문화나 사회문화의 학생들 비전공자들은 학교에서 시키니까 하

는 거고 특기적성 같은 거 있잖아요, 방과 후. 엄마가 시키니까 하는 거고, 수행평가 단소 시험 본다니

까 시험 열심히 준비해야 되고, 각 반에 반 정도는 되겠죠. 그런 애들은 재미를 느껴서 하는 애들이 있

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런 목표의식이 정확해야 되고, 제가 학생들한테 그런 것들을 조금 더

심어줬었어야 되는데 그런 걸 못 심어주지 않았나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교 육 을 하 면 서 느 꼈 던 고 민

결국은 지금 이렇게 8년이나 지나고 와서 그리고 이때 느꼈던 거는 저희 교수님은 생각하시는 게 조금

다르시긴 했지만, 예술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자기 목표를 향해서 달려가잖아요. 달려가다 보

니 자기의 입장만 생각해서 자기 일속에 빠져 생활을 하다 보니 다양한 대화가 오가지 않고 삶이 다양

하게 느껴지지도 않았고 대화들이 재미있게 안 느껴졌어요.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이 일을 하고 있는

데 학생들하고 수업하는 건 지루하고, 또 예술가들도 얘기하는 걸 들어보면 자기 세계 속에 빠져서 삶

의 다양성이 전혀 안 보이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이렇게 생활을 하다 보니까 집에서 저는 형제들이

네 명이거든요.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잖아요. 근데 형제들이 각각 와가지고 하는 얘기들이 너무 신비

롭게 느껴지는 거에요. 그러니까 내가 해보지 않은 그런 삶의 다양함이 학생들, 아니면 형제들에게서

그렇게 느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왜 이 순간을 이렇게 삶이 다양하지 못하고 대화가 다양하지 못할까

그런 생각들을 했고, 좀 더 재밌게 살면 좋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을 했고 제가 그렇게 못하고 있기 때문

에 그런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습니다. 선생님들은 3년에서 5년차 사이에 어떻게 고민을 하시는지 모

르지만, 한 번 선생님들의 삶이 어땠는지 생각해 보세요.

즐 거 운 수 업 을 위 한 고 민

그 다음에 6년에서 8년차 되니까 진흥원에서 중요시하는 게 평가였습니다. 평가가 되게 크게 부각되

었어요. 그래서 평가를 내가 잘 받아야 되는데 학생들하고 그렇게 소통이 잘 되는 편은 아닌데 큰일이

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평가 때문에 제가 자신을 많이 잃은 것 같아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평

가 위주로 제가 수업을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습니다. 그런데 서울은 주제랑 목표를 두 달 전에 보냈어

요. 그 다음에 평가 날짜를 일주일 전에 통보합니다. 교수님이 원하시는 시간에 들어오세요. 그러니까

일주일 전에 통보를 하십니다. 그래서 제가 수업 평가 준비를 하려면요, 사실 2월부터 준비를 하고 있

습니다. 내가 수업준비를 제대로 안 해 놓으면, 어느 날 어느 시간에 선생님 오실지 모르니까 항상 그렇

게 제가 고민을 하죠. 2월부터 계획하면서, 3월부터 제가 차곡차곡 계획했던 것을 올렸거든요. 그래서

이렇게 수업을 하다 보니 장점은 1년의 수업을 제가 계획하고 준비를 많이 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런데

단점은 학생들한테 조금 더 창의적이고 그때그때마다 제가 업그레이드 되서 학생들한테 좋은 걸 가르

쳐줄 수 있는데 그런 걸 잘 못하는 경향이 있었거든요. 그래서 학교문화에서는 이런게 장점이 되었고,

단점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창의적인 수업을 못하고 국악 위주로, 뭔가 교육적으로 평가가 좋게 나오

도록 수업을 계획하다보니까 조금 부족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더 제가 노력을

더 많이 해야되는데요. 지금도 그렇지만 잘 안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회문화는 그런 제약이

없기 때문에 수업을 제 마음대로 계획을 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르치고 싶은 거 가르칠 수 있

어요. 혹시 학생들이 교육적이지 못하고 국악적이지 못하더라도 학생들이 그날 보고 재미있어할 수 있

거든요. 그런 것들을 마음대로 준비를 할 수 있어요, 대신 학생들이 즐거우려면 제가 준비를 많이 해야

된다는 거죠. 그래서 학교문화를 수업을 3∼4시간 정도 준비를 한다면 사회문화는 하루 이틀? 그리고

계속 뭔가 학생들이 재미없을 것 같으면 계속해서 그게 고민이 되어 왔던 것 같아요.

즐 기 는 수 업 을 위 해 서

제가 6년에서 8년차 수업을 하다보니까 점점 갈수록 학생들이 많이 힘들어지더라고요. 정서적으로 불

안한 학생이 많아지다 보니, 학생들도 저한테 상처를 받겠죠. 그런데 저도 상처를 받았어요. 특히 사회

문화에서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조금 극복이 되었지만 그런 부분에서 상처를 받았던 거 같고요, 이런

것들을 좀 극복할 수 있는 수업이 되면 좋을 거라는 생각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학생들하고의

관계보다도 지금 생각해보면 학생들은 금방 잊혀져요. 근데 학교에서는 선생님들이 어떻게 대우하는

지, 사회문화는 훨씬 더 선생님들이 저한테 어떻게 대우를 하느냐에 따라서 많은 상처가 되었던 거 같

아요. 그래서 2년차 쯤 되었을 때 선생님이 처음으로 보육원에 와서 맡아서 하시는 선생님이었는데 일

단 성격이 막 그렇게 긍정적이고 밝고 이런 선생님은 아니었는데, 선생님 자체도 애들을 다루는 게 너

무 버거우셨던 거 같아요. 그리고 처음 일을 맡아서 해보니까 윗사람한테도 스트레스 받고 애들도 버겁

고 자기 삶도 버겁고 그렇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저한테 항상 짜증나고 화난 말투로 대하셨고요 제

가 뭔가 하나 준비를 좀 해달라고 하면 항상 그렇게 안 된다는 식으로 저는 못해준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셨었어요. 그래서 제가 그때 너무너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어요, 학습준비가 그렇게 잘 안 되는 상

황이어서 제가 거의 다 준비를 해가는 상황이 되었었어요. 그때는 정말 아, 저 선생님 왜 저러지 이러

면서 제가 너무너무 화도 났었어요. 지금 상담치료센터에서 수업을 하는데 이 선생님도 마찬가지인거

에요. 학생들이 버거우니까. 선생님도 되게 힘들어하시는 거에요. 그런데 제가 2년째 그런 선생님들을

봐왔잖아요. 그랬더니 올해는 선생님이 편안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때는 제가 너무너무 짜증나고 스

트레스 받아 죽을 뻔 했는데, 이제는 선생님들을 객관적으로 보게 되서 아 선생님이 저래서 힘들겠구

나 라는 게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선생님을 더 이해하고 제가 하는 게 더 지혜가 생겼던 거 같고요, 그

담에 이런 것들이 경험과 연륜이 없으면 안 되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일단 이렇게 제가 수업을 해보면

서 아 내가 많이 성장을 많이 했구나 라는 걸 많이 느꼈어요 그러면서 평가에 내가 뭐가 부족한가? 그

래서 작년에 제가 선생님한테 한 6년 동안 봐주신 분이 계신데요 그 선생님께 여쭤봤어요. 제 수업하는

게 어떤지 피드백을 좀 달라고 말씀드렸더니 선생님 수업은 다 괜찮은데, 선생님이 수업을 즐기셔야 해

요라고 하셨어요. 그때 정말 제가 머리를 얻어맞은 느낌이었어요, 그래서 그 인터뷰 때 그런 말들을 하

다가 주제로 이걸 잡으신 거 같아요. 저도 예술가들의 삶이 왜 저렇게 힘든가 하고 선생님들하고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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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3ㅣ2012 예술강사의 발(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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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많이 했던 거 같습니다. 그래서 6년하고 이제 8년차 정도 되니까 제가 평가를 위해서 수업을 좀 많

이 버렸어요. 그러고 나니까 제가 더 마음도 편안해지고 학생들하고의 소통도 조금 더 잘 되었던 거 같

구, 학생들의 실력을 늘려준다기 보다도 학생들을 그냥 즐겁게, 그냥 문화예술교육이 즐겁다는 걸 보여

주는 게 중요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그건 1∼2년차 때도 분명히 이미 했던 얘긴데, 이렇게 3년

차 5년차 오면서 그런 것들을 자꾸 잊어버리고 수업을 하다보니까 그렇게 느꼈던 거 같아요. 그러다보

니 경제적인 삶이 조금 힘들어졌어요.

균 형 있 는 삶 이 란

영상을 잠깐 볼게요. 선생님들이 보시면서 많은 생각을 하실거란 느낌이 들어서 준비했습니다. 여기서

나타내고자 하는 것은 사람의 욕심을 나타내고자 했던 거 같아요. 그런데 영상을 보면 삶의 균형이 풍

요하다는 것도 이야기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한테 그렇게 조금 제가 더 편

안하게 수업하려고 학생들한테 강요를 했던 거, 그런 것들이 많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어요, 영상이 지금

제가 생각하는 그런 것들, 그러니까 내가 어디에 더 많은 비중을 둬야 되고 균형을 맞춰 살아가야 될지

그런 것들에 대해 보여주고 있어서 선생님들에게 조금 도움이 되는 거 같아서 이 영상을 준비했어요,

그래서 예술가들이 왜 그렇게 좀 지루할 수밖에 없을까 라고 생각을 해봤던 게, 일단 예술가들은 결국

은 목표를 향해서 달려 나가고 있잖아요. 자기와의 싸움인 거 같아요. 특히 국악같은 경우는 거의 대부

분 악기를 혼자 연주하거나 같이 연주를 할 때 잠깐 연습하고 공연하는 거 외에는 그럴 일이 없기 때문

에 거의 대부분은 혼자와의 싸움이에요. 그 다음에 여기 보시다시피 자기가 뭐 잘하고 싶어서 잘하는

것이 아니고 예술이란 게 누가 좋아해줘야 되는 거잖아요. 남들이 이해해주는 예술가가 되어야 하고,

이런 것들이 충족이 안 되면 생활고에 시달리게 되죠. 그래서 참 예술가의 삶이 힘들구나 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 담에 보람이나 보상이 없을 경우 더 재미를 못 느끼는 거 같아요. 수업도 마찬가지로 제

가 지루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게 이런 예술가의 삶도 그렇고 아까 쭉 얘기했던 부분에서 더 힘들

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컨 퍼 런 스 를 통 해 느 낀 행 복

제가 이 컨퍼런스 진행하면서 제가 쭉 자신을 돌아보니까 뭔가 제가 반성해야 할 것들이 많았구나, 그

때 좀 못했던 것들을 지금 업그레이드를 해야겠구나 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선생님들도 삶의 목표를

다시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내가 왜 예술강사를 하면서 목표를 잊어버리고 살아왔지 라는 생각을 저는

많이 했던 거 같아요. 목표를 계속 생각하면서 했더라면 학생들한테 조금 더 좋은 수업을 했을 것 같고

저도 좀 더 즐겁게 수업을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찾다보니까 이 책이 보였는

데요. CEO들에게 예술가처럼 사업을 하면 성공을 할 수 있다고 말해주는 책인데요. 정작 나는 예술가

지만 일을 작품으로 보라고 했는데 저는 제 작품을 계속 학생들과 만들어가는 걸 못 했어요. 그다음에

학생들을 관중으로 보고 배려하고 이랬어야 했는데 그런 것들이 많이 부족했던 거 같아요. 선생님들은

이제 계속 어떻게 살아나가실지 생각을 해 보시고, 휴식을 취하실 것인지 뒤에 보신 것처럼 마구마구

돌진을 해나가실지, 아니면 저처럼 어떻게 하면 수업을 지겹게 안하고 즐겁게 할 것인지 조금 더 찾아

보는 그런 수업이 되도록 할 것인지 이야기를 했어요, 컨퍼런스가 우리 강사들을 위한 거잖아요. 이 컨

퍼런스가 어떻게 준비되는지를 강사들에게 다 보여주시고, 메일을 통해서 다 보여주시는 그런 것들이

내가 만약 컨퍼런스를 한다면 저렇게 준비해야겠구나 하는 생각, 그리고 준비하면서 좀 행복함을 느낄

수 있었어요. 이제 어떻게 하면 학생들과 즐겁게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고민을 하면서 수업을 준비해나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야기를 마치겠습니다.

예술가들이 왜 그렇게 좀 지루할 수밖에 없을까 라고 생각을 해봤던 게,

일단 예술가들은 결국은 목표를 향해서 달려 나가고 있잖아요.

자기와의 싸움인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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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멋진 삶은 아티스트더라!

그래픽 레코딩

지식공유 / 발발

그래픽 레코딩 사진

엄은현 (만화애니)

안령 (도자조형)

내 이름은 ‘안 령’

세상을 가장 멋지고 행복하게 사는 예술가가 되라는 엄마의 바람과 사랑이 담긴

이 특이한 이름에서부터 나의 예술적 경험은 시작되었다.

행복하고 멋진 삶의 정체성으로서 자연스럽게 선택한 예술가의 길!

지금 난 그 길을 가고 있어 행복하다!

사전 인터뷰 영상 지식공유 영상

이름표 본인의 이름이 잘 어필될 수 있는 걸 적으셨나요? 네. 지금부터는 한 5분 정도 시간을 드릴 거에

요. 일어서셔서 각자 돌아다니시면서 처음뵙는 분들도 있으실테고 또 구면인 분들도 계실 텐데요. 이야

기방의 또 훈훈한 분위기를 위해서 인사를 하시고 본인의 이름을 좀 어필을 하세요. 저는 00이구요. 제

이름의 뜻은 뭡니다. 혹은 저를 생각나게 하는 칼라는 무슨 색깔이래요. 왜냐면요 어떠어떠하고요. 하

시면서 서로 소개를 좀 해주세요. 이렇게 잘 어필을 했을 때는 이름표 뒤에 하트 스티커를 붙여주세요.

그래서 하트 스티커를 가장 많이 받으신 분 나중에 보겠습니다. 지금부터 시작해주세요.

선생님들 일어나서 살살 돌아다녀주세요.

자 이제 마무리해주세요, 선생님들.

자 지금 이름표에 하트 스티커 소개하면서 내가 가장 많이 받았다고 생각하는 선생님 계세요? 몇 개까지

받으 셨나 모르겠네요. 한번 세어보세요. 선생님들 그냥 개수를 말씀해주세요. 열개 받으신 분 있습니다.

열개가 제일 많나요? 두 분. 네 축하합니다. 저는 한분이 될 줄 알고 그랬는데 일단 박수 한번 쳐주세요.

두분 나와 주세요. 지금 여기 앞에는요 제가 개인적으로 선생님들을 생각하면서 오가면서 마트에 가다가

그냥 하나씩 제가 샀던 선물들이예요. 요 중에서 하나씩 골라가세요. 맘에 드시는 거. 네. 축하드립니다.

우 리 , 수 다 한 번 떨 어 볼 까 요 ?

저는 가장 멋진 삶은 아티스트더라 라는 이야기방의 퍼실리테이터를 맡은 안령이라고 합니다. 안녕하

세요. 아 너무 많이 떨리고요. 사실은 제가 거의 마지막까지 신청자가 없는 줄 알았어요. 혼자서 이야기

할 수도 있겠구나 라고 걱정을 했는데 이 방의 상태가 스무 명 이상을 받을 수 있는 방이라서 신청자를

받으시려고 끝까지 남겨놓으셨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번 컨퍼런스에서는 방의 이야기 방들이 열개가 있

는데요 그 이야기방들에서는 특별히 그래픽 레코딩이라고 해서 만화 애니메이션 강사 선생님께서 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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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는 30분의 주제 강연을 만화로 옆에서 그려주시고 계세요. 만화 애니메이션 엄은현 선생님 소개해드

립니다. 그리고 저희 방의 스탭 선생님 소개해드립니다. 특별히 제가 선생님들이 신청하실 때 궁금하신

점 적으셨던 거 제가 커뮤니티 방에 답변을 해드렸는데 혹시 보셨어요? 보신 분도 계시고, 가서 집에 가

서 보셔도 될 것 같은데, 저희가 특별히 이번 컨퍼런스에서 아까 눈치를 채셨을 지도 모르겠어요. 아까

김용택 시인하고 유치벽 선생님 나오셨을 때 뭔가 좀 특별했죠? 다른 컨퍼런스나 다른 어떤 포럼 이런

데랑 굉장히 다른 느낌을 받으셨죠. 왜 그러냐면 이번 컨퍼런스에서 공통적으로 저희가 뺄 것들이 있습

니다. 공청회나 간담회 또 정책 포럼이나 설명회 같은 것들은 뺄 거구요. 또 교수법하고 뭐 이런 것들은

오늘은 접기로 하구요. 대신에 더 하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뭐냐면, 예술가이자 예술교육가인 우리

선생님들의 현재, 2012년 현재를 돌아볼거구요, 또 호기심과 실험은 혼자 갖는 게 아니라는 거, 2번의

이유 때문에 제가 오늘 이 방에 섰는데요. 저의 작은 이야기, 제가 예술강사로서의 첫 시작, 예술의 범

주에 들어서게 된 저의 발발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선생님들하고의 또 훈훈한 이야기들도. 카페에서 정

말 친한,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친구들하고의 수다? 이야기의 분위기를 이어가고자 합니다. 사실은 이

렇게 한 해의 끝자락에 오면서는 좀 배치문제도 있고 여러 가지로 예민하기도 하고, 또 마음이 좀 서늘

해지는 해인 것 같아요. 그래서 딱딱하고 뻔한 얘기들 빼고, 제 작은 이야기로부터 시작을 할까 합니다.

엄 마 가 지 어 주 신 이 름 , 안 령

제 이름이 안령입니다. 우리가 가르치는 어린이나 청소년을 보면 자신의 진로 선택을 스스로 하는 애들

이 얼마나 될까 생각을 해봤어요. 이름에 앞서서 굉장히 생뚱맞은 얘기를 제가 하고 있죠. 어린이나 청소

년 시기에 가장 가까운 어른들이 롤모델이 되서 자기 삶에 굉장히 많은 영향을 주고받는 것 같아요. 가장

가까운 어른은 누굴까요? 우리 주변에. 가장 가까운 어른은? 그렇죠. 바로 부모님이시죠. 그래서 저는

특별히 어린 시절에 저희 엄마의, 엄마라고 그냥 할게요. 저희 엄마의 막연한 기대감이 좀 있으셨어요.

그다음에 엄마의 상상력의 발현, 그러니까 제 상상력이 아니라 엄마의 상상력의 발현이 보시다시피 특이

해도 너무나 특이한 안 령이라는 이름이랍니다. 령자는 방울 령자인데요, 어디 가서든 주목을 받는 그런

예술가가 되라 라는 뜻으로 사실은 제가 태어났을 때, 이름을 다 집안에서 어른들이 이름을 지어주셨어

요. 철학관에서 저희 엄마의 그 상상력의 발현으로 인해서, 아, 얘는 내가 예술가로 키워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특이해도 너무 특이한 이름을 이렇게 지어주셨어요. 그런데 엄마의 기

대감에 담긴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화면에 보이는 지금 대사를 좀 저희 엄마처럼 이렇게 해 주실 선

생님 계신가요? 특별히 이렇게 뭔가 해주시면 대가가 있어요. 해주세요, 선생님. 하하하 엄마, 어딨어?

엄마. 하하하. 앉아서 그냥 아무나 해주시면 좋을 거 같아요. 아빠가 해주실까요? (내가 가만히 보니까

가장 멋진 삶은 예술가더라 너는 무조건 예술하는 사람이 되어라.) 네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엄 마 의 결 정 적 인 한 마 디

저희 엄마는 이렇게, 사람들한테 기억되어지는 그런 행복하고 멋진 삶을 사는 예술가가 되라는 의미로

이렇게 특이한 이름을 지어주셨어요. 근데, 특이해도 너무나 특이하죠. 그러다보니까 제가 초등학교 시

절에 굉장히 놀림을 많이 받았던 거 같아요. 뭐 왕따는 아니지만, 이름을 가지고 자꾸 놀리는 게 저한테

는 굉장히 저를 축소시키는, 제가 작아지는 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유일하게 이 이름을 가지

저희 엄마의 그 상상력의 발현으로 인해서,

아, 얘는 내가 예술가로 키워야 되겠다

이런 생각을 하셨던 것 같아요.

그래서 특이해도 너무 특이한 이름을 이렇게 지어주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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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친구들이 놀리고 하는 것들에 대해서 대항은 할 수가 없었고 특별히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책을

좀 읽고, 동화책을 많이 읽고, 그림을 그리고 하는 게 저의 어떤 일상이 되 버렸던 거 같아요. 어릴 적에

가장 제가 저의 심금을 울렸던 그 동화책이 있는데요, 피노키오에요. 이 피노키오 하면은 제가 지금 한

삼십 사오년 전이에요. 초등학교 2학년 때, 미술 시간에 피노키오를 그리게 되었어요. 자기가 가장 읽

었던 동화책 중에서 가장 감명 깊게 읽었던 동화책의 주인공을 한번 그려라 선생님께서 그러셔서 저는

피노키오를 막 그렸는데 그걸 집에 갖고 갔더니 엄마가 무릎을 치면서 너무너무 칭찬을 하시는 거에요.

그 피노키오 그림을 보고. 너무너무 잘 그렸다 하시면서 외치신 말씀이 바로, 미술! 넌 미술이야.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그런 엄마의 칭찬 관심이 담긴 그 말 한마디에 제가 정말 막연히 예술가로서의 어떤

삶을 꿈꿨던 거 같아요. 그래서 또 자연스럽게 저는 그 길로 들어설 수 있도록, 그래서 제 이름도 이렇

게 지으셨겠지만요. 미술이라고 해서 미술만, 미술의 범주에서만 하는 게 아니라, 제게 굉장히 다양한

장르의 예술을 경험할 수 있도록 그런 길을 열어주셨던 거 같아요. 그게 어떤 치맛바람이 아니라 연극

에 뛰어들어서 제가 또 극을 할 수 있었고, 또 국악을 배울 수 있었고, 또 무용 발레 이런 식으로 어렸을

때 그냥 두루두루 이렇게 흡수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다양한 예술적인 환경을 열어 주셨던 거 같아요.

그런데 저한테 있어서 가장 중요했던 엄마의 한마디가 또 있었는데요, 뭐냐면, 제가 조금 더 무한한 예

술의 가능성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었던 멋진 삶이라는 거였어요. 중고등학교 시절에 교생 선생님 많

이 오시잖아요. 그 교생 선생님들을 보면서 꿈을 꿨던 거 같아요. 아, 왠지 멋있어 보이는 저 교생 실

습의 삶, 저거를 하려면 어떻게 하면 되지? 생각을 해봤더니, 대학에 가서 교직 과목을 들으면 된대요.

그래서 교생 실습을 보고, 교생 선생님들의 교생 실습은 정말 멋진 삶을 사는 거 같아.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자, 이분이 누구신지 아세요? 혹시 그러면 밑에 88이라는 거는, 무슨 뜻인지 아세요? 선생님

들? (올림픽) 네, 88년도에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이 있었잖아요. 그때 제가 고등학생이었어요. 하하하

그럼 제 나이가 가늠이 되시죠? 그때 88 서울 올림픽 기념 1년 전 표어 및 포스터 대회가 전국적으로 있

었는데, 그때 각 학교별로 모아서 서울시에서 제일 잘 하는 친구를 뽑게 되는데, 제가 이 분한테 상을

받았어요. 염보현 씨라고, 당시 서울 시장이에요. 그때 받았던 상장과 메달을 제가, 현장감 있게 가지고

오려고 했더니 학교에서 예선전을 치렀던 것만 있더라고요. 1987년도. 여기서 최우수상을 타서 제가 서

울시 대회에 나가게 됩니다. 그래서 염보현 시장도 만나게 되고, 엄마가 얘기했던 대로 나는 정말 미술

이야 라는, 저에게 있어서 예술가로서의 결정적인 발발의 사건이 되게 됩니다.

다 양 한 경 험 의 중 요 성

저는 학부하고 대학원에서 조형도자를 했어요, 특별히 입체를 선택을 하게 된 이유는, 어렸을 때 다양

한 그런 장르를 하면서 입체에 대한 감이 좀 생긴 거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전공을 했어요, 또, 미대 입

학을 함과 동시에 용돈은 그냥 줄 수가 없으니까 전공과 관련된 어떤 아르바이트라도 해라 이렇게 부모

님께서 말씀하셔가지고 제가 소소하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그러니까 예술교육가로서의 미미한 시작. 그

런 시작을 했었던 거 같아요. 그 담에 교생실습을, 제가 중고등학교 때 꿈이었잖아요. 그래서 교직을 어

렵게 들어서 교생실습도 했고, 그 담에 후에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하고 출산하고 하면서는 제가 잠깐,

우리나라 전통음식에 관심을 가지게 됩니다. 도자기를 전공을 했으니까 내가 새로운 거를 한번 만들어

봐야겠다. 그렇다면 전통음식하고도 접목을 하고요, 그 담에 나중에는 제가 한 5년 정도 대학에서 시간

강사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흙을 만졌지만 현재는 제가 금속을 만지고 있어요. 지금 제가 이

렇게 귀걸이 한 거 보이세요? 네 칠보 공예가로서도 활동을 하고 있어요.

운 명 처 럼 주 어 진 예 술 강 사

그리고 사실은 예술강사로의 발걸음이 저는 수동적인 발걸음으로 오게 되었고, 그리고 2010년부터

2012년 지금 현재로 3년차네요. 3년차 예술강사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작업을 했던 도자 작품이나 금

속 작품 너무나 이질적이죠. 이런 것들을 좀 사실은 갖고 와서 전시를 하려고 했는데 현장 상황이 여의

치 못해서 사진으로만 제가 학부랑 대학원 때 또 이제 나중에 했던 작품들을 보여드립니다. 네, 이거는

금속하고 한지하고 같이 했던 작품이에요. 이런 과정들을 거쳐서 지금의 제가 되기까지 가장 큰 삶의

조율의 시간이 있었어요. 여자면서 결혼을 하신 선생님들은 다 아실거에요. 양육. 그 담에 내가 정말 예

술가로서의 길을 가야 되는, 이 두 가지 길에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런 고민

과 갈등 사이에서 현실적인 자구책이 바로 예술강사라는 그런 길이었던 거에요. 마침 또 그때 예술강

사, 저희 파트 저희 분야의 1기를 뽑고 있었어요, 그래서 예술강사의 길로 오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아

무도 기대하지 않았고, 어떤 사람들도 의미부여를 하지 않았던 그런 일이었지마는, 저한테는 운명처럼

주어졌다고 생각을 해서 정말 열심히 또 나름대로 예술적인 표현을 즐기면서 온 결과들이 있었어요. 그

결과들이 저를 지칭하며 지금의 저를 꾸며주는 수식어들처럼 있는데요, 아까 저를 보시고 말씀하신 분

들도 있는데 열정, 정열. 뭐 그런 것들, 멘토 예술강사 이런 것들이 있는데요, 결국에는 이런 저를 꾸미

는 수식어들은 예술강사가 되고난 다음에 제가 조금 더 멋진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는, 행복한 메시지

들이 된 거라고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예 술 강 사 는 교 육 유 통 업

그런데 제가 예술강사가 되서 가장 중요한 게 제 나름대로 생각을 해보니까, 저라는, 안령이라는 예술

강사가 어떤 학교에 가서 그 학교와 학생들에게 미치는 영향, 그 중에서도 무엇이 달라졌는가라는 게

가장 중요한 거 같아요. 이제 매 학기, 학기마다 혹은 한해의 예술강사 활동이 마무리될 때 학생들한테

늘 얘기를 해요. 얘들아, 다양한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 너희들이. 꼭 예술가가 되라는 소리가 아니라,

너희들이 예술적인 표현을 즐기는, 또 그런 범주에 있는 사람들이 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경험을 해

야 한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그 다음에는 제가 예술강사 선생님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은 특별히 예술강

사라는 이 직업이, 예술유통업 이라는 얘기를 좀 하고 싶어요. 싱싱함을 유통하는 어떤 유통업? 특별히

저는 초등학생을 굉장히 좋아해요. 좋아하는 이유가, 일단은 말을 잘 듣고, 너무 예쁘죠. 그리고 그 아

이들의 가슴속에는 정말 씨앗이 다 하나씩 심겨져 있는 거 같아요. 미리. 심겨져 있는데 단지, 우리는

그 아이들을 거치는 예술강사라는 직업을 갖고 있는 거죠. 그래서 우리가 그 아이들한테 정말로 싱싱

한, 아주 시원한 물을 조금씩 뿌려주는, 물 뿌려주는 사람, 싱싱함을 유통하는 예술유통업을 한다고 생

각이 들어요. 저희들 말고도 그 한 아이가 어른으로 성장하기까지는, 수학 선생님 영어 선생님 학원 선

생님 저희 같은 예술강사, 많은 선생님들이 거치면서 다 물주고 이렇게 가시겠죠. 네. 저는 그런 선생님

들도 역시 교육 유통업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감히 해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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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3ㅣ2012 예술강사의 발(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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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삶에 있어서는 예술, 아티스트 이런 것들은

이미 저한테는 사전적인 의미를 뛰어넘어서 제가 몸으로 삶으로 그렇게 느끼고

그래서 현재 저는 예술강사라는 멋진 이름표를 달았고,

또 다시 이것들은 저한테 있어서 자연스럽게 귀함과 가치라는 이름을 지녀요.

예 술 강 사 라 는 멋 진 이 름 표

저는 이렇게 엄마의 막연한 기대감과 상상력의 발현으로 이런 특이한 이름을 또 갖게 되었어요, 제가 또

더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진입할 수 있는 멋진 삶이라는 저한테 영향을 주셨던 엄마의 그런 말씀들,

또 과거와 현재의 삶을 뛰어넘어서 예술의 범주 안에서 속해있고 그런 예술적 표현을 제가 이제 즐기고

있습니다. 예술에 대해서 제가 국어사전에서 찾아봤어요. 그랬더니, 같이 한번 읽어볼까요, “아름다움

을 표현하고 창조하는 일에 목적을 두고 작품을 제작하는 모든 인간 활동과 그 산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 네, 사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어요. 그런데, 제 삶에 있어서는 예술, 아티스트 이런 것들은 이미 저

한테는 사전적인 의미를 뛰어넘어서 제가 몸으로 삶으로 그렇게 느끼고 그래서 현재 저는 예술강사라

는 멋진 이름표를 달았고, 또 다시 이것들은 저한테 있어서 자연스럽게 귀함과 가치라는 이름을 지녀요.

예 술 강 사 는 현 재 진 행 형

그래서 제가 마지막으로 선생님들한테 해드리고 싶은 말씀은, 예술강사를 지금까지 하며 얻은 게 있다

면, 첫 번째는 만남의 축복인 거 같아요. 네. 다양한 선생님들,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학생들, 또 다양

한 학교들을 만났던 그런 만남의 축복이 있었어요, 두 번째는 감성인데요, 여러 분야의 예술강사 선생

님들이 계시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제 분야 특별히 저는 공예분야 예술강사인데, 공예분야는 이게 특

성 상 혼자서 작업하는 일이 많아요. 그렇기 때문에 누구를 알 필요도 없고 내가 내 작업만 잘하면 되는

데, 공예 예술강사를 하면서 무용을 하는 선생님을 알게 되고, 연극을 하시는 분, 사진을 하시는 분, 이

런 다양한 선생님들과의 관계를 통해서 우물 안 개구리를 제가 벗어났다는 거죠. 마지막으로는 사실은

표현하기가 좀 조심스러운 부분인데요, 여전히 성장하고 깨달아가는 그런 예술의 참 의미를 제가 지금

도 진행형으로 알아가고 있다는 거에요. 그래서 사실은 저희 직업이 어디 밖에 나가서 얘기하면 모르시

는 분들도 많고 그렇지만, 저희 스스로 저희 마음속에 그 귀함과 가치를 가지고 있으면 전혀 저희가 흔

들리거나 자신감 없어지는 그런 부분은 없을 거 같아요. 네, 그래서 저는 정말로 따뜻한 영혼의 응원을

우리 선생님들한테 보내드리고 싶어요, 지금까지는 이렇게 소소한 제 얘기를 짧게 말씀을 드렸어요, 한

5분 정도만 저희가 쉼을 갖고 그 다음에 선생님들하고의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네, 5분만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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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인류학 - 춤을 통해 나를 발견하다!

그래픽 레코딩

네트워크파티

그래픽 레코딩 사진

노경해 (만화애니)

안은미 (무용가/ 명예교사)

세상은 온통 아름다움을 가장한 무거운 실체들이 떠다닌다.

이 두껍고 불편한 껍질을 벗어던지는 첫걸음, 이것이 안은미가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은 춤이다.

관습을 벗어던지고 세상을 바꾸려는 힘, 이것은 여러분의 몸으로부터 출발한다.

이제 몸을 마구마구 흔들 시간입니다.

공연 영상강연 영상

안녕하세요. 저는 몸 팔아 먹고 사는 무용가 안은미입니다.

빛이 반사가 되서 안 보이는데요. 아마 무용 전공하신 분도 있고 여러 장르의 선생님들이 와계시겠죠?

서 계시니까 불편하죠? (네) 불편한 걸 자꾸 해봐야 해요. 자꾸 앉아만 있으면 엉덩이만 커지고 척추는

내려앉고 주름은 자꾸 늘어나요. 명예교사가 된지는 사실 한참 되었는데 그동안 안 부르다가 요즘 자꾸

불러요. 저희가 오늘 할 거는 저희가 워크샵 프로그램 있는데 제가 춤을 춘지가 5살 때부터니까 45년

춘거죠. 무용단은 1988년에 만들었으니 레파토리 만들어서 공연한 게 근 100작품이 넘고요. 저는 다다

익선을 좋아해서 실력이 없으면 많이 하라고 합니다.

자 유 인 임 을 잊 지 마 세 요

여러분도 예술을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예술이 갖는 기능이 없어진지 오래되었죠. 미디어에 밀리고, 교

육에서 밀려서 인재를 키우는데 놓쳤고, 예술은 전부 예술대학에 가서 증만 따면 예술가인줄 착각했다

가 나오니까 험악한 세상이고, 갈 데도 없고, 예술은 왜 이렇게 멀고 험악한지. 그렇지만 문화가 없는 삶

은 있을 수 없다는 걸 알거고 저도 빚내고 가난하지만 제 마음대로 사는 즐거움 때문에 살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 스스로 자유인이어야 한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마시고, 스스로 남이 살지 않는 길을 개

척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학생들이, 어린 아이들이, 주위 사람들이 저렇게 이상하게 살아도 죽지 않고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줘야 하는데 우리 스스로 우울해서 죽으면 자존심 팍팍 상하죠.

예 술 당 을 만 들 어 봅 시 다

여러분들이 배웠던 것을 내려놓아야 할 시대가 왔고, 우리가 세계가 나가는 방향보다 늦게 나갔죠. 가족

주의로 가다보니까 나는 뭐하고 있었나, 지금까지 젠 잘나가는데, 갠 뭐하지?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부

터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전 제 인생의 마지막 황금기는 60살부터라고 생각해서 준비하고 있고요. 저는

60이 되면 마녀가 될 거예요. 여러분들을 막 잡아먹고 다닐 거예요. 피를 빨아먹고. 이상한 마녀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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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3ㅣ2012 예술강사의 발(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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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바로 기르지 말고 삐딱하게 길러야 합니다.

자기가 알아서 다 똑바로 자랍니다.

자꾸 똑바로 하라고 하면 삐뚤어지고

삐뚤게 하라고 하면 똑바로 자랍니다.

상한 아저씨와 이상한 할아버지가 됩시다. 어차피 2모작 세대가 되고 늙은 사람만 사는 세대가 오기 때

문에 그때 확 휘어 잡아야 해요. 그걸 어린 아이들에게 양보하면 안 되고. 어린아이들을 잘 가르치면 안

됩니다. 대충 가르치고 우리가 잘 삽시다. 애들은 제들끼리 잘 커요. 우리 모두 예술당을 만들어봅시다.

전 국 의 할 머 니 들 을 만 나 다

제가 작년부터 이상한 바람이 왔는데, 전국의 할머니들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카메라 2∼3

대 메고 전국이 할머니들을 만나고 왔어요. 30초짜리로 해서 220명분의 할머니를 찍었습니다. 살아있

는 대화를 하고 왔는데 그 분들이 추는 춤이 우리가 자칫 사회에서 싸구려, 막춤, 관광버스 춤, 그건 춤

이 아니라고 말했던, 대학 나왔던 사람들이 선을 갈라놓았던 그 역사적 인류학적 순간을 무시하고 너

무나 아름다움을 향해서 열심히 몸 팔았죠. 그 진실을 마주하고 얼마나 겸손하고 눈물을 흘렸던지. 제

가 다시 태어났어요.

그래서 그 경험,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라는 작품을 하고 작년에 고등학생 6개월 만나서 같이 이야기하

고, 사실 이야기는 안했어요. 네 맘대로 해라. 만날 이상한 옷 입고 가서 앉아있고, 고민을 이야기 해봐

라고 해서 고민을 이야기하면 응 그 정도는 해야지. 인생은 원래 힘들어, 그러니까 그냥 해. 이러고. 또

고등학생들이 어떻게 할까요? 그러면 그거야 생각을 해야지... 그건 네가 해야지 이러고 다녔습니다.

아 이 들 은 삐 딱 하 게 길 러 야 해 요

그 이후에 국제고등학교 22명을 자식으로 입양했습니다. 엄마가 되서 페북에 아이들이 고민 있다고 글

을 올려요. 만날 고민 들어달라고 하는데 바빠서 많이 못해주니 미안한데, 어쨌든 걔네 들은 이상한 엄

마 만나서 계속 이상해지고 있다. 이상한 아이들을 많이 배양합시다. 이상한 균을 심고 정상적으로 자

라지 못하도록 합시다. 그게 창의적 21세기 가는 힘입니다. 똑바로 기르지 말고 삐딱하게 길러야 합니

다. 자기가 알아서 다 똑바로 자랍니다. 자꾸 똑바로 하라고 하면 삐뚤어지고 삐뚤게 하라고 하면 똑바

로 자랍니다. 그럼 나라에서 뭐라 하겠지요? 이상하다고. 그럼 우린 이상해 이럽니다. 이상한 사람을 길

러야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나가서 싸움을 할 수 있지. 정말 정상인만 기르면 이상한 유전인자를 당해날

수 없어요. 저도 외국에 많이 나가보지만 제가 이상해서 이긴 게 많아요. 동양애가 이상한 짓을 하니까

이해가 안 되는거야. 동양은 만날 달, 쌀, 명상 이런 게 해야 하는데. 아름다움이란? 침묵이란? 이런 걸

해야 하는데 전 너무 시끄럽잖아. 쟤네가 봐도 색깔이 이상하니까.

세 상 에 서 가 장 사 랑 스 러 운 남 자 들

그래서 두 가지 작품을 하면서 제 인생이 변했고, 지금은 아저씨들을 찍으러 다닙니다. 내일 또 떠납니

다. 경상도 아저씨들을 찍을 거고, 아저씨들 너무 귀여워요. 세상에서 제일 사랑스러운 게 남자인거 같

아요. 그 공연은 3월에 두산아트센터에서 아저씨들 무대에 세울 겁니다. 남자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만들겠습니다. 조상님께 바치는 댄스하고 사심 없는 댄스. 동영상을 보여드릴게요. 제가 무슨 일을

하는지 잘 알거예요. 영상 끝나면 극단이 17분 동안 춤추고 댄스를 가르쳐주고 할 겁니다. 자 무거운 옷

들은 내려놓고 신발도 벗고 갈데 까지 가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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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강사의 발(發),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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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공유 발표 예술강사

그래픽 레코딩 참여 예술강사

지식공유 참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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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스케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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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sign think 디자인 씽크

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

디자인싱크! 라고 하는 전문적인 이야기를 많은 분야의 선생님들과 나눠보고 싶었습니다.

문화예술교육중 디자인분야는 상업예술입니다. 예술처럼 본인의 만족과 욕구를 위해서 표

현을 하는 것이 아닌 목적에 의해서 만들고 제작되어 지는 것이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디자인을 문화예술교육으로 할 때는 목적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디자

인 문화예술교육에서 학생들에게 주고 싶은 것은 긍정적 착각입니다. 긍정적 착각은 사람

들로 하여금 뭔가를 이룰 수 있게 해주고 꿈꾸게 해줍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모든 문화예

술 교육에서 진정 필요한 것은 긍정적 착각이 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문적인 이야기를 전문적이지 않게 하려고 많은 노력을 하였습니다. 예술강사로서의 시

작과 고민을 이야기 하며 저 역시 시작과 고민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결론은 시작은 다

르지만 끝은 문화예술교육은 현재를 보는 것이 아닌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다는 점입니다.

현재 무었을 가르친다는 생각보다는 아이들에게 미래를 상상할 수 있다면 이것이 진정한

문화예술 교육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대안이 없는 불만은 그냥 불만일 뿐입니다. 할 수

있는 자가 하면 된다! 라는 생각을 가지셨으면 좋겠습니다.

진흥원에서 예술강사를 시작한지 8~9년 되었습니다. 연수받으면서 늘 아쉬운 것이 있습

니다. ‘좋은 생각’을 품은 분들의 이야기가 부족했습니다. 수업에 대한 강의는 많이 하지만,

교육 본연에 대한 이야기, 철학에 대한, 인생에 대한 좋은 이야기를 접할 기회는…없었습니

다. 김용택선생님의 시골초등학교의 생생한 교육현장 이야기, 유치벽 선생님의 연극인생이

야기는 제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지금까지 연수받으면서 들었던 그 어떤 강의보

다 좋았습니다. 좋은 생각을 품은 분들, 이런 분들은 자주 모셔야 했습니다. 안은미무용단

의 공연은 위태위태했습니다. ‘도대체 이게 뭐지?’ 나이트클럽의 경계를 왔다 갔다 했습니

다. 그 ‘위태위태한 긴장’이 재미있었습니다. 무용단 소개로 보여준 댄스영상이 너무 좋았

습니다. 영상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웃음이 좋았습니다. 이야기 방은 생각대로 잘 진행하

진 못했지만 다른 예술강사님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예술강사 송

년회를 이렇게 하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저처럼 사람들 앞에서 버벅 대면서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말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말할 수 있게 한 것’, ‘경청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좋았습니다.

나는 왜 이 예술행위를 하고 있나? 그리고 가르치고 있나? 어떤 충만함의 경험이 이토록 이

행위를 지속하고 있는 것일까? 이 충만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런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이야기가 충분히 진행되지는 못했습니다. 이야기 방에서 말은 장황했지만 질문은 정확하

게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진행되는 대부분의 말들은 예술가인 ‘나’의 행위가 아니

라 ‘예술강사’인 ‘나’의 현장에서 겪었던 미담? 이 주를 이루었던 같습니다. ‘예술강사 현장

지식 컨퍼런스’라는 표현이 예술강사로서 교육현장에서 겪는 어떤 어려움에 대해 잘 해결

해 낼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하는 것으로 이해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술강사 이전에 예술

행위를 해오던 사람으로서, 그토록 이 예술행위를 지속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

었는데……. 잘 진행하지 못한 저의 미숙함입니다. 해마다 반복되는 진흥원에 대한 불만,

교육현장의 어려움,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쁨의 순간들을 말할 수 있었고, 경청할 수 있는

태도가 따뜻했습니다.

진흥원의 모집요강으로 예술강사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다면,

이번 컨퍼런스는 예술강사에게 ‘약’을 준 격이었습니다.

더 이상 예술강사활동이 힘들 것 같다는 어느 선생님의 춤추는 모습이 눈에 밟힙니다.

지식공유 발표 예술강사

-발굴 / 이효광

지식공유 발표 예술강사

-발굴 / 신운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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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4ㅣ예술강사의 발(發),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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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 강사 지식공유 컨퍼런스 준비를 통해 단지 스쳐지나갔던 일상의 습관일 뿐이었

던 별 볼일 없던 끄적임과 메모들이 다른 이에게 지식의 또 다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부족함을 하나 둘씩 유용함으로 채워나가면서 또 다른 발견의 과정을 경험하

게 되었는데요, 특히 어린 시절의 잊혀졌던 이야기들을 다시 자신에 대해 돌아보고 생각하

는 계기가 되었던 발견의 시간을 통해 또 다른 발견과 잠시 잊고 있었던 발견을 그리고 같은

공간 속 다른 이야기로 재발견의 시간을 가졌던 시간들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희 말하는 메

모광들은 일상의 모든 것을 아이디어로 변화하고 그것을 실행하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그

리고 그들은 그것을 통해 세상을 조금씩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함이라고 생각

하지 않습니다. <메모의 습관, 정보의 모자이크>를 통해 테이블 위에 놓인 음식 하나만 보

아도 우리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이미 이러한 이미지 정보들을 잘 담아내어 소비하고 활용

할 줄 알고 있다는 걸 잊지 않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끄적이는 것입니

다. 조각난 단어, 이미지, 사진, 그리기, 암호, 숫자, 공식들을 통해서 말이죠, 잘 그리기와

잘 쓰기의 기준은 없습니다. 작가 혹은 전문가의 개인 작품집이 아니라 우린 메모를 하는

것이기에 우리에겐 이미 다양한 대안이 있다는 것을 이 이야기 방을 통해 느끼셨을 겁니다.

그리고 나만의 공식으로 채우고 비우고 또 채워 나가시길 바랍니다. 겹겹이 페이스추리처

럼 쌓이고 또 쌓이게 되면 이것은 또 다른 의미로써의 의미가 되는 정보의 모자이크 즉, 오

케스트레이팅(Orchestrating)과정을 느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생각의 공간을 만들어 메

시지를 보내고 그것으로 채우고 때론 쉼으로써 비우고 또 다른 의미로써 채워가세요. 세익

스피어(William Shakespeare), 헨리 5세(King Henry V)의 프롤로그(Prolog) 중, “오! 불

의 여신이여. 그대는 하늘이 만든 가장 밝은 빛입니다. 무대는 왕국이요, 막은 왕좌입니다.

장은 군주지요.”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 속 “그대의 상상의 힘, 벽 속에 갇혔던 힘…”이라는

구절이 나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나오는 단어인 Imaginary force라는 상상의 힘은 당시

의 사람들에게도 가장 큰 존재였으며 그것은 바로 최근 우리가 말하는 Creative 즉 창조성

을 위한 원천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창조성은 번뜩임과 아! 라는 감탄에서 나온다

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천재성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정보를 모자이크하고

큐레이팅하는 과정 속에서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낙서=메모=정보=아이디어를 바탕으로

메모를 단지 기록의 의미에서 벗어나 이야기 방을 통해 우리가 함께 했던 생각의 테일러링

(Tailoring) 놀이 공간의 의미로 발견에서 재발견을 하시기를 빌며…….

이번 컨퍼런스를 통하여 나만의 작업이야기 그리고 그곳에서 만나는 아이들을 통한 예술적

영감이 지금 내가 고민하는 예술과 교육에 많은 영향을 주고 없어서는 안 된다는 나의 삶이

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예술교육 강사일을 하며 난 예술 할 시간이 없다고 힘들어하고 때론 교육 할 시간이 없다며

힘들어 하던 내 모습에 생각 없이 나는 예술교육강사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며 너무 노력하

지 않는 건 아닌지 힘들다고만 생각하고 투정만 부리던 내 모습이 부끄럽기까지 했습니다.

많은 예술 활동이 지금 하고 있는 교육활동과 서로 많은 유기적으로 영향을 주고 있음을 컨

퍼런스를 준비하며 깨달았고, 나름 잘하고 있구나 하며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많은 강사선생님들이 예술교육강사로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 많이 혼

돈스러울 수 있습니다. 많은 예술강사 분들이 힘들어 할 때마다 함께 위로하며 혹은 힘을

얻을 수 있는 이런 컨퍼런스가 자주 있으면 좋을 것 같고 나는 이번 컨퍼런스를 통하여 활

동하고 있는 예술교육강사로서의 내 모습을 다 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뜻 깊은 기회였

습니다.

점차적으로 교육이 특정과목에 한정되지 않고 융합되어가고 있는 추세(통합교육)에 아이들

이 가장 관심 있어 하고 즐겁게 교육받을 수 있는 예술교육이 핵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는데, 그 자리에 예술강사가 자리 잡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이번 컨퍼런스를 통하여 내가 하고 있는 예술교육강사의 자리가 너무나 감사하고 나로 인

해 많은 아이들이 변화 할 수 있음을 새삼 느끼며, 나의 삶에 큰 활력을 준 컨퍼런스에 박

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메모의 습관,정보의 모자이크

아틀리에를 찾아온 어린손님

지식공유 발표 예술강사

-발견 / 예정원

지식공유 발표 예술강사

-발견 / 변미섭

Page 78: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4ㅣ예술강사의 발(發),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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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자율성에 맡기는 과정과 범위에 관한 부분을 좀더 이야기하고 싶었는데 길다고

생각하고 고민하며 준비했던 시간이 현장에서는 너무나 빠르게 지나간 순간 같았습니다.

아쉽습니다.

이번 예술가의 발(發)기획은 그동안 선생님들의 풍선을 펑터트려준 속시원한 외출이었습

니다. 많은 참가자와 참석자선생님들의 열정을 보면서 예술강사들이 그동안 얼마나 자신

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고, 나누고 싶은 갈망에 차있었음을 눈으로 확인한 시간이었습니다.

아직은 선생님들이 진행에, 토론에 서투름도 있었겠지만 그것 또한 성장의 밑거름과 발판

이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화를 나누면서, 아줌마들이 모이면 모두 자식자랑, 자식걱정이듯이 결국선생님들의 토

론주제가 어느곳에서 어떻게 출발하였든 그 공통의 고민과 화제의 도착점은 결국 가르치는

아이들의자랑, 고민, 걱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고, 학생들의 마음을 어떻게 함께나누고

어떻게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펼치도록 도와줄 수 있는가에 모든 관심과 고민이 있었

음을 알게되었습니다. 우린 모두 예술강사가 아니라 부모였던 것입니다.

선생님이 변하면 아이들이 변하고, 아이들이 변하면 세상이 바뀐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아이들과 문화예술현장에서 같이 호흡하며 표현하고, 공감하며 어우러진 우리 모습

속에서 아이들의 꿈과 미래를 봅니다. 나는 문화예술교육이 아이들에게 기회를 줄 수 있다

고 여깁니다. 나를 알아가는 과정속에서 무한한 가능성을 체험하는 것 자신을 재발견하는

것입니다. 아이들과 함께하는 그시간이 나에게는 너무나 소중한 만남입니다. 그 만남이 내

삶이기 때문입니다. 그삶이 예술강사의 삶이 되었습니다.

“온 정성을 다했어요. 만족스러운 미소를… ‘아직 내 실력이 쓸 만하군’.

그때 깨달았어요.

비바람을 견디고 남아 있던 마지막 덩굴 잎은…

영혼을 바쳐 마지막으로 그린 훌륭한 그림이라는 것을요…

<마지막 잎새에서>”

나는 왜 아이들이 그토록 보고 싶을까?

난 그때 잘 한다고 한거다!

지식공유 발표 예술강사

-발견 / 백선화

지식공유 발표 예술강사

-발견 / 우선영

Page 79: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4ㅣ예술강사의 발(發),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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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에 퍼실리테이터로 참여하길 결정하고 컨퍼런스 당일까지 엄청난 부담을 가졌습

니다. 소꿉놀이를 직접 실현해보기로 하였기에 그 부담은 배가 되었습니다. 예술강사들과

함께 소꿉놀이를 할 수 있을까? 유치하다고 생각하진 않을까? 진행이 순조롭게 될까? 생각

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엔 어떻게 해야 하나? 소꿉놀이가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다른 놀이들을 생각해 준비물을 늘리고 컨퍼런스 몇 주 전부터 여러 지인들을 이용

(?)해 시뮬레이션도 해보았습니다. 20대 30대 40대 까지!!! 20, 30대는 소꿉놀이를 흥미로

워 했지만 40대는 좀 어색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낸 배역표! 부채 접기로 뽑는 재

미까지 더 해보자는 의미로 만든 배역표가 이번 컨퍼런스에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해낸 듯 싶

습니다. 내 예상과 달리 소꿉놀이는 참여한 예술강사들의 도움으로 다른 놀이로 넘어갈 시

간도 없이 성공적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각기 다른 분야의 예술강사들이 모여 추억을 되새

기는 소꿉놀이! 가족이 되어 음식을 만들며 나누는 얘기를 듣고 있다가 울컥 눈물이 났습니

다. 예술강사! 선생님! 우린 누군가에게 많은 영향을 주고 있을지 모릅니다. 6년 전 예술강

사로 나갔었던 중학교 연극동아리 학생이 며칠 전에 날 찾아왔습니다. 그 당시 연극에 전

혀 관심도 없던, 담임선생님이 억지로 동아리에 밀어 넣었던 학생이었습니다. 중학교 졸업

후 베트남으로 이민을 갔고, 국제학교를 들어갔지만 언어를 잘 하지 못해 아이들과 어울릴

수 없어서 자기가 경험해 봤던 것은 연극 밖에 없는지라 연극 동아리에 들어가 그 곳에서

언어를 익히고 친구들을 사귀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자기가 평생하고 싶은

일이 되어 버린 연극을 위해 다시 한국으로 와서 외국인 전형으로 연극학과에 입학하게 되

었다고 날 찾아왔습니다. 우린 어쩜 한 사람의 인생에 지대한 영향을 주고 있을지 모릅니

다. 우리 아버지는 택시 운전사입니다. 어느 날 아버지와 통화를 하며 지방까지 수업하러

다니는 거 너무 힘들다고 투덜대며 투정을 부렸습니다. 아버지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직업엔 귀천이 있는 거 같아. 나는 천한 직업이야, 온갖 사람들이 차에 타서 별짓을 다한

다. 술주정 부리고 억지 부리고 욕하고… 근데 넌 귀한 직업을 가진 선생님이잖아. 존경받

는 선생님이잖아.” 나를 부끄럽게하고 울게 했던 아버지 말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전 직업

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택시기사 아버지를 존경합니다. 그리고 깨달은 것,

나는 귀한 직업을 가진 연극 선생님입니다. 예술강사님들!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우

리가 얼마나 많은 이들을 변화 시킬 수 있는지 생각하세요. 우리는 모두 다 존경받는 선생

님이랍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컨퍼런스를 준비했는데 일상으로 돌아와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벌써 일주

일이라는 시간이 지나 갔습니다. 한 달 전 진흥원의 전화를 받고 아무생각 없이 인터뷰에 응

했는데 김탕선생님과 2시간의 인터뷰로 지금까지 정신없이 살아온 나의 삶을 잠시나마 어

떻게 살아왔는지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해 볼 수 있었습니다.

생전 처음으로 컨퍼런스에 참여해봄으로 새롭고 신선한 경험을 해 볼 수 있었고 바쁘다는

변명 아닌 핑계로 사전 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저에게 최종 점검 회의에서 여러 선생님께서

보여주신 친절함과 따뜻함에 다시 한 번 용기를 얻고 모든 예술 강사선생님들이 함께 하고

있다는 따뜻한 동료애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컨퍼런스에서 아티스트의 예술이 교육이여야 하는 주제로 내가 살아온 이야기와 아이들과

의 만남을 이야기와 연주로 참석하신 선생님과 예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교육자인가 예술가인가 하는 질문을 토론에선 어느 선생님께서 지금 모든 것들이

통합적으로 이루어져가고 진행되고 있는데 굳이 예술가와 교육가를 구분하고 나누어 말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라는 말씀에 많은 선생님들도 공감을 했으며 공연을 하던 교육을

하던 각자 그 속에서 만족감과 행복함을 느낀다면 그것이 최고의 선택 아니겠냐는 말씀들

도 하셨습니다.

학교나 사회강사를 하면서 내가 느끼는 사회적 책임감이나 사명감의 실체는 무엇일까?라

는 질문 속에선 어떻게 보면 사회예술강사인 나와 참석하신 강사선생님들은 대부분 학교예

술강사여서 사회적 책임감에선 약간 다른 생각 들을 하고는 계셨지만 그래도 문화 전달자

라는 소명의식에 아이들이 변화 되고 아이들에게 예술을 가르치러 갔다가 그 속에서 아이

들에게 더 많이 배우고 온다는 점에서 많은 선생님들이 공감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시 바

쁜 일상으로 돌아와 예전처럼 바쁘게 지내고는 있지만 이번 컨퍼런스를 통해 앞으로도 내

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또 아이들과 어떤 만남을 이루어 갈지 생각하게 되었으며 이번

컨퍼런스를 마련하고 준비해주신 진흥원과 김탕선생님, 비타민컴 관계자분 그리고 수고하

신 모든 분들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티스트의 예술이 교육이어야 하는 이유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었던 소꿉놀이

지식공유 발표 예술강사

-발견 / 김재민

지식공유 발표 예술강사

-발발 / 강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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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4ㅣ예술강사의 발(發),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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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는 지루하고, 학생들은 비슷하게 느끼는 마음

지식공유 발표 예술강사

-발발 / 박종현

사회문화예술교육의 아동복지시설의 경우 대부분의 학생들이 많은 상처를 받고 입소하게

된 경우라 평소에 삐딱하게 감정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짧은 시

간 안에 이야기를 하게 되다 보니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다는 식으로 혹시나 오해하실까

봐 글 남깁니다. 그렇지 않은 모범적인 학생들도 있다는 것을 꼭 이야기 하고 싶습니다.

제가 아는 선생님들과 이 주제로 이야기 하면서 무엇이 문제점인지 끄집어내어보고 제 자

신이 먼저 반성을 하게 된 부분이 제일 많았으며 알고 있었으면서도 잊고 있던 것들이 다

시 한 번 생각해보았습니다. 또한 제가 어떤 마음으로 예술강사로 살아가야할지 생각해보

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실 이 주제가 짧은 시간 안에 무엇인가 해결될 부분이 아니라는 것은 모든 강사님들이 알

고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참가하신 강사님들은 지금 답답한 마음이고 제 발표를 듣고 무

엇인가 해결점을 보려고 오신 분들이 많이 계셨을 것인데 그런 부분들이 많이 해소되었으

면 좋았겠지만 개개인의 환경, 상황이 다 다른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발표를 준비하면서 강사님들이 저의 간단한 진흥원 사업 활동을 들으시면서 그날 대화를

위해서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랐고 더욱 솔직한 대화가 오고 갔으면 하는 마음이었습

니다. 그리고 강사님들의 진흥원 활동(문화예술교육활동)과 전공예술활동을 하면서 느끼는

것들을 되짚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준비 하였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올려주신 선생님이 계셔서 먼저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였

는데 생각보다 다들 솔직하게 말씀해 주셔서 더욱 편안하고 진지한 대화가 오고가지 않았

나 생각합니다.

4 by 4의 질문을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로 더욱 재미있어졌습니다. 3~8년차 선생님들 위

주로 계셔서 그런지 정말 하고 싶은 말씀이 많으셨던 것 같습니다. 시간이 없어서 결국 수업

을 하면서 자신은 즐거운지 안 즐거운지에 관한 이야기는 못해 봐서 너무 아쉬웠지만 한 선

생님의 지금 상황에 대해서 서로의 조언으로 지금까지 수업을 하면서 ‘이럴 때 어떻게 가르

칠 것인가?’ 인가보다 무엇이든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는 것처럼 내 마음을 어떻게 정리하고

학생들을 대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자신이 해보지 않

으면 안 되는 소중한 경험에서 나오는, 어디서 들을 수 없는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가하신 강사님들도 제 발표를 들으시면서 또 대화를 하시면서 많은 이야기를 들으셨고

컨퍼런스를 끝내고 가시면서 많은 생각을 하셨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성을 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고 이렇게 하면 좋겠구나 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야기한 것들을 되

짚어 보면서 힘들 때 컨퍼런스의 대화를 떠올려 본다면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

각을 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삶을 짧게 엿보았지만 이번 컨퍼런스가 많이 힘이 되어준 것 같습니다.

이런 좋은 기회를 내년에는 꼭 놓치지 마시길. 모든 예술강사들이 항상 즐겁게 생활하는 날

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화이팅!!!!!!!!

Page 81: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4ㅣ예술강사의 발(發),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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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하는 작업이라 많이 긴장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었는데 자료를 찾아보면서 조금

알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픽 레코딩이란 작업이 선전의 효과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광

고를 찍는 다면 이런 식이 겠구나. 라는 생각을 합니다. 머리도 좋아야 할 것 같고, 그린이

의 재치라던가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 탁월해야 겠구나... 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

것을 전체적으로 한 눈으로 파악할 수 있게 만드는 전체적인 그림과 핵심요약인 듯합니다.

제 갠 적으로는 원고를 받지 못해서 많이 긴장했던 시간이었지만 계속 준비하면서 간단히

그 분의 신상을 파악하고 그 분의 인터뷰 내용을 찾아보니 대략 그분의 강의 내용이 짐작

이 되더군요. 레코딩이라기보다는 저는 제가 받은 지극히 개인적인 느낌과 표현을 한 듯

합니다.

전반적으로 기다리는 시간은 긴장하고 뭘 해야 할지 몰랐지만 행사장에서 다른 분들의 그

림을 보고 파티를 구경하면서 즐거운 경험이 되었습니다. 이런 기회를 주셔서 또 하나의

추억이 생긴 듯합니다.

감사드립니다.

가장 멋진 삶은 아티스트더라!

지식공유 발표 예술강사

-발발 / 안 령

기획 단계에서부터 컨퍼런스 실행의 단계까지 촉박하지 않은 시간을 주셔서 감사한 마음

이 듭니다.

인터뷰에서 제가 예술에 발을 디디게 되었던 첫 발걸음(발발)을 이야기하며, 저와 제가 하

고 있는 예술작업과 예술강사로서의 시간들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되는 소중한 시간들

이었습니다. 그러한 저만의 경험에 관한 이야기들이 컨퍼런스가 시작되기 전, 한 달여 동

안 다시 제 마음 안에서 곱씹어지고 되새겨지며 정리되어 다른 예술강사 선생님들 앞에서

2012 현재, 예술강사로서의 삶을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들이었다

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예술로 말을 걸고 관계를 쌓고 소통을 하는 통로이자 예술의 싱싱함을

위해 그 누군가에게 늘 물을 주는 사람들, 예술의 유통업자들입니다. 우리를 만나는 그 사

람들이 예술의 통로인 우리를 통하여 보다 더 긍정적이고 더 행복하게 삶을 살아가며 즐겁

게 예술을 향유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술강사로서의 좋은 통로가 되기 위하여, 우

리 예술강사 선생님들이 충분히 위로받고 서로를 격려하는 채워짐의 시간들이 반드시 필

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예술로서의 우리의 시작이 언제였는지 다시 한 번 되돌아보며 현재 예술강사로서의 나의

삶을 확인하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었던 좋은 시간, 예술강사 컨퍼런스 : 예술강

사의 발!

이제 첫 번의 시작을 마무리하며 앞으로 더욱 다양하고 많은 예술강사들의 이야기들을 통

하여 예술강사로서의 우리 삶의 진솔한 경험들을 함께 공유, 공감하며 우리 서로가 힘의 원

동력과 좋은 통로가 되길 기대합니다.

전국의 예술강사 선생님들 화이팅~!!! 예술교육 화이팅~!!!

즐거운 경험,또 하나의 추억

그래픽 레코딩 참여 예술강사

-노경해 (만화애니)

Page 82: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4ㅣ예술강사의 발(發),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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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흥원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에 그래픽 레코더로서 참여하게 된 경험은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예술강사들이 함께 한자리에 모여서 이야기하고 춤추며, 웃고 소통하며 그

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꺼번에 날려버리는 기회가 된 자리는 처음이었기 때문일 것입

니다.

또한 이 행사에 나는 그래픽 레코더로서 참여하는 색다른 경험으로 함께하게 되어서 더 인

상적이었습니다. 그래픽 레코딩이라는 조금은 생소한 작업은 더 재미있는 일이었습니다.

주제를 이끄는 예술강사분과 한 명씩 짝꿍을 지어 컨퍼런스 때 예술강사가 하는 이야기들

을 주제를 잡아 한 장의 전지 안에 그림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형식으로 요즘 새롭게 유행

되는 컨퍼런스 표현형식이었습니다. 일러스트를 했던 경험이 있던지라 그림으로 내용을 전

달하는 것엔 두려움이 없었지만 그래도 많은 예술강사 선생님들이 내 그림을 본다는 생각

을 하니 마음이 가볍지 만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나와 짝꿍이 된 예술강사님의 이야기를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컨퍼런스 전, 주제를 발표할 예술강사님들과 짝꿍을 짓는 날엔 어떤 분과 한 팀이 될까하

고 살짝 설레기도 했습니다. 나의 짝꿍은 ‘예정원 쌤’ - 예정원 쌤의 꼼꼼하고 창의적인 다

이어리를 보고 한 눈에 반해버렸고 너무도 호기심이 일었기 때문에 짝꿍샘에 대한 대만족

이었습니다. 행사 당일 전까지 예정원 선생님이 충분한 자료를 보내주어서 사전에 기본적

인 스케치는 잡고 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한 번 더 예정원 선생님의 꼼꼼한 준비성을 알

수 있었습니다.

컨퍼런스 당일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재미있고 신나는 시간이었습니다. 토크시간

이 끝나고 한 곳에 그래픽 레코딩 한 그림들이 줄지어 붙여질 때 마음이 뿌듯했습니다. 한

눈에 그림이 붙여지니 다른 팀에선 어떤 이야기가 진행됐는지 충분히 살펴볼 수 있어서 모

두가 좋아했습니다. 처음 하는 그래픽 레코딩 이었지만 예상보다 훨씬 재미있는 작업이었

고 그림이 서로 소통하고 교감하는 역할이 됨에 보람 있는 경험이었다. 안은미 무용가의

신나는 댄스시간, 맛있는 간식, 그리고 세세하고 작은 곳까지 신경써주신 진흥원 담당자들

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해마다 이런 자리가 마련되어 예술강사들의 발이 즐겁게 춤추

고 소통하고 힘을 얻어갈 수 있는 자리가 계속되길 바랍니다. 내년에도 꼭 다시 그래픽 레

코더로 저를 다시 불러주세요.

이 행사가 목적달성을 했는가? 를 보자면 목적 초과달성 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예술

강사의 경험과 고민, 현실을 서로 공유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서로가 갖는 예술에 대한 감정

과 자신의 노하우를 공유케 하는 장으로서의 성공이라고 할까? 그러나 어느 정도의 성공인

가? 라는 질문에 뭐라고 말하기는 곤란합니다.

그 이유는 지금까지 이러한 컨퍼런스가 자주 있었던 것도 아니고(거의 없었다) 해서 어떤

기준이 될 만한 것이 없기에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예술강사의 입장에서 대화

의 창구를 열어놨다는 그 실험적 시작이 이행사의 가장 만족할 만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불편했던 점(시정할 점)은 없었나? 처음 시도되었던 것이라 섭외장소가 협소했던 점이라

는 것인데 다른 선생님들도 그런 반응을 보인 듯 합니다. 그러한 장소에서 행사를 치를 수

있는 곳을 여러 곳 비슷한 장소에서 구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다음에는 참고를 하시

는 게 좋을 듯 합니다.

그래픽 레코더로 참여한 나로서는 시간의 안배가 너무 촉박한 점을 꼽습니다. 나는 미리 어

느정도 준비를 해가지고 가고 빨리 움직인 관계로 시간에 맞출 수는 있었지만 다른 레코더

들(거의 대부분)은 많이 부족한 시간을 불만으로 꼽았습니다. 물론 레코더들도 많은 연습과

연구를 통해 효율적인 방법을 찾겠지만 지금보다 30분정도의 더 시간이 요구되어집니다.

그리고 다른 레코더들이 작업장소를 찾지 못해 해맨 점을 보면 그에 대한 홍보도 신경을 써

주셨으면 합니다. 좀 더 많은 인원이 참여를 한다면 좋을 듯합니다. 이것은 개인적인 생각

일 뿐 인원이 많아진다면 진행의 부담이 더 커질 것입니다. 장소섭외부터 진행하는 하나하

나가 어려울 수도 있겠지만 신청한 사람들 중에 안 온 사람들이 많은 것 같으니, 조금 더 많

은 인원과 발제강의자가 있다면 가능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강의 하시는 선생님들이 초점을 몇 분이 못 잡아서 약간의 핀트(이 행사취지)가 맞지 않거

나 선생님이 조금 우왕자왕 하신 분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강의를 하시는 분들에게 행사

의 취지를 정확히 인식시키고 섭외를 부탁했으면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강사 선생님들

이 훌륭한 경험을 말씀하셨던 것 같습니다.

대화의 창구를 열어놓은실험적 시작

그래픽 레코딩 참여 예술강사

-박운용 (만화애니)

그림이 서로 소통하고교감하는 역할됨의 보람

그래픽 레코딩 참여 예술강사

-장경희 (만화애니)

Page 83: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04ㅣ예술강사의 발(發),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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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 착각,

문화예술교육은 긍정적 착각이다.

행복한 착각. 긍정적인 꿈을 통해 학생들을 변화시키고

그로 인해 세상을 바꾼다.

짧은 시간 내에 좋은 정보 주시려고 애써주신 선생님께 감사 드리고요, 앞으로도 이런 시간을 더 많이 만들어 주셨으면 해요. 수고하셨습니다.

너무 좋은 소통의 장이었습니다. 정보와 함께 공감하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반갑고, 감사합니다.

그릇을 키우기보다는 각자의 형태에

맞는 스스로의 그릇을 만들고

담아내라는 말씀.

들여다 보는 것. 보는 능력.

학생들이 쉬는 시간에 칠판에 낙서를

하고 노는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거기서 얻을 수 있는 정보가 있다는 걸

알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낙서를 통해 아이들과

친밀감을 도모할 수 있고,

낙서로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할 수 있을 것 같다.

수업을 하기 전, 또는 수업 중 중요한 아이디어를 수집하고 컨텐츠화 시키는 것 필요할 것 같고, 몸으로 하는 수업이라 후에 유용할 것 같아요.

연주분야 10년 차 선생님의 이야기,

광철이의 변화되는 모습,

아이에게 강요나

정답을 주는 것이 아닌

스스로 감동을 받아 깨닫게 해주는 것.

연극분야의 참가 선생님께서

해주신, 아이들에게…

예술강사로서의 관점이

바뀌게 된 이야기. 감동이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나중에 저의 아틀리에를 꾸미게 되었을 때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지식공유참가자

아틀리에란 공간을

작가의 공간이 아닌

아이들과 함께 하는 공간으로

만듦으로써 영감을 얻은 재치가

엿보입니다.

Page 84: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04ㅣ예술강사의 발(發),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164 165

나의 계획과 의도에 따라

아이들을 맞추게 하기 보다는

어느 정도의 예상 밖의

일(활동)이 일어 나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

예술강사 면접 때 자신의 솔직한 고백과 기회를 주시면 최선을 다하겠다고 용기와 베짱이 멋져보였습니다. 우쌤! 보기보다 큰 힘이 보이네요.

강사로, 강사 일을 하면서 스스로 치유하고 회복 받을 수 있었던 시간인 것 같아서요.

선생님의 솔직한 인생 담이 나와 어찌나 비슷하던지!! 많은 준비에 감사 드립니다.

우리는 계속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며

청소년들에게 빛과 소금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함.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들.

나 혼자 힘들고 잘못 하는 게 아니라는

위로 주셔서 감사해요.

아이들은 잘못 지어진 건물처럼

잘못 지어졌다고 허무를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순간순간 정성과

진심으로 다가가야 할 것이다.

선생님 정말 ‘멋쟁이’

‘사랑’으로 아이들을 대하는

인격적인 선생님의 모습을

면밀히 느낄 수 있어

참 좋았다.

학교교육과 사회교육에 대상자

(아이들)이 다르다는 점…

접근 방식에 많은 생각을 하고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점..

아이들 그대로 노는 모습이 교육이다.

받아 들여라.

아이들과 선생님이 서로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정을 나누는 그런 수업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단 말씀이 기억에 남습니다.

예술교육이야말로

참된 전인교육의 장이 될 수 있다!

선진국형 교육이라 생각!

예술강사 스스로도

그런 중요함의 자부심 필요!

소외된 아이들을 위한 수업을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고민이 아니라

그 아이의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너무 많은 정보, 마음공유, 너무 많이 얻어가는 것이 많습니다. 한 선생님께서 힐링캠프 온 것 같다고 하셨는데 딱 그 마음 입니다. 그저 함께 한 시간이 모자라 아쉬울 따름입니다.

Page 85: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04ㅣ예술강사의 발(發),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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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갖고 있는 전공을 교육활동에

활용하여 작은 연주회 또는

공연이 될 수도 있고

학생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아이들에게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서로의 경험을 공유한 점.

다들 사연도 많고 이야기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좋았던 건 모두 사랑이 가득하신 강사님들이셔서 너무 유익한 시간 이였습니다.

다들 너무 너무 고생하시고 계시는데

오늘 이런 시간 덕에 힘을 얻고 갑니다.

아이들 전부와 씨름하려 하지 말고

잘 하는 아이 하나라도 보고

나도 즐거움을 찾자!

서로 어떻게

이 길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너무 좋았어요.

권태기에 빠진 강사생활에 다시 열정, 개발 불러 일으킴.

내가 고민하는 부분을 다른 분들도 똑같이 앓고 있는 것을 들으니 같이 해결하는 소통이 좋았고 더 힘든 조건에서 일하는 분들을 보며 구체적인 법을

더 계발하려 합니다.

준비 많이 하시느라 수고하셨어요. 저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어요. 또 만나요!

예술가의 장점을 살려

PPT 발표를 공연형식으로 연주하

여 또 하나의 감동을 얻고 갑니다.

모두 어려움이 있고 같은 고민을 하고 있구나 공감이 되었고 힘이 되었습니다.

명상음악과 무용일기를 말씀해 주신

것이 기억에 남고 써먹어야겠어요.

너무 멋진 것 같아요,

더 많은 소통을 하고 싶네요.

힐링의 교육,

교육에서 더 좋은 에너지를 받아

예술로 확장시킵시다.

예술강사이기에

감정을 건드릴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다들 속상하고 힘들구나

“버텨라”

Page 86: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매뉴얼-준비과정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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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 실행의 기본 프로세스

컨퍼런스 기획팀 구성과 실행업체 선정

컨퍼런스 주제 선정 및 강사 섭외

지식공유 이야기방의 운영 준비

홈페이지 및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

참가자 모집 및 안내

현장 운영을 위한 준비

후속작업

참고 - 추진일정

참고 - 참가자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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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세스 영상

Page 87: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5ㅣ매뉴얼 _ 준비과정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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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기획팀 구성

● 프로젝트를 위한 Task Force Team 구성

● 운영사무국 구성

프로젝트주제 선정 및 구성

● 전체 주제 선정

● 전체 형식 결정

● 전체 구성 결정

● 전체 예산 구성

● 메인 디자인 선정

● 행사 장소 섭외

● 사전 인터뷰를 통한 출연자(강사) 선정

● 사전 워크샵 진행

프로젝트전체 구성에 따른 준비

● 공간 사용에 대한 계획

● 공간 디자인 구성에 대한 계획

● 인력 운영에 대한 계획

● 장소 시스템 확인 및 인터넷 구축 계획

● 기념품 결정

홈페이지 및온라인 커뮤니티 운영

● Web page 제작

● 커뮤니티 게시판 구성

● 온라인 이벤트 운영

● 홍보

D-10 D-20 D-30현장 운영을 위한준비 1

● 공간 사용에 대한 구성 완료

● 공간 디자인 구성에 대한 계획 완료

● 인력 운영에 대한 업무 배치 완료

● 전체 큐시트 및 매뉴얼 준비

● 투입 인력 사전 교육

참가자발표

● 참가 확정자 개별 연락

● 행사 안내 사항 전달

참가자 모집 및안내

● 참가자 접수 및 안내

D-DAYD-01 D- -10프로젝트운영

● 인력 구성에 따른 배치

● 전체 공간 구성에 따른 설치

● 현장 물품 세팅

● 출연진 도착 확인

● 현장 리허설

● 참가자 등록 확인

● 큐시트 및 매뉴얼에 준한 행사 운영

● 철거

현장 운영을 위한준비 3

● 가상 시뮬레이션

● 참가자 행사 안내 SMS 발송

후속작업

● 참가자 설문지 취합 및 분석

● 평가회의

● 결과보고서 작성 및 공유

● 예산 집행에 따른 정산

● 후기 업로드

D-05현장 운영을 위한준비 2

● 최종 점검 회의 진행

● 필요 물품 최종 확인

D-35D-40D-50D-60

프로젝트 실행의 기본 프로세스

Page 88: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5ㅣ매뉴얼 _ 준비과정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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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퍼런스의

전체 주제 선정

진흥원과 디렉터, 운영팀이 두 차례의 회의를 통해 컨퍼런스의 전체 주제를 선정하였다.

전국 예술강사들이 만나서 교류하고 자신만의 경험과 지식, 지혜를 나눌 수 있는

첫번째 컨퍼런스임을 감안하여 “예술강사의 발(發)”을 전체 컨퍼런스 타이틀을 결정하고

아래와 같이 취지문 정리하였다.

씨앗은 꽃으로 피어나기까지의 출발점이며 이로 인하여 아름다운 꽃이 만발할 수 있기에,

씨앗이야말로 이미 그 안에 생명을 내재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교육 정책사업의 출발점에서 현재까지 함께 발전해온 예술강사들은

이제 다시 누군가의 출발점이 되어 퍼져 나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을 좀 더 아름답게 만드는 시작이 될 것입니다.

디자인 선정

컨퍼런스를 위한

Task Force Team 구성

<예술강사컨퍼런스>의 전체 콘셉트와 주제선정, 강연자 섭외, 행사의 진행과 기록,

후속작업 등을 위한 TFT를 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외부 전문가 2명, 프로젝트 에이전시

등으로 구성하여 2012년 9월부터 논의를 시작하였다.

주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문화예술교육

전문 디렉터 1인

주제 선정과 강사 선정 등 컨퍼런스 내용을 담당하는

문화예술교육 전문 디렉터

지식공유

전문 디렉터 1인

전체 컨퍼런스의 과정 설계와

지식공유 이야기방의 기록과 후속 작업 등을 담당하는 전문 디렉터

컨퍼런스 운영 컨퍼런스의 전체 실행업무를 담당할 프로젝트 에이전시

운영사무국 구성 * 컨퍼런스의 홍보와 참가자 모집 등 일상적인 운영 및 연락업무, 컨퍼런스 제반사항 등을

준비하는 운영사무국을 구성하여 TFT와 긴밀하게 협조하였다.

* 예술강사, 참가자, 디렉터, 운영업체, 진흥원과의 정보공유와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전화, 팩스, 이메일, 내부 인트라넷 (구글사이트) 등 준비하였다.

컨퍼런스 기획팀 구성과 실행업체 선정

컨퍼런스 주제 선정 및 강사 섭외01/ 02/

01출발점을 나타내는 씨앗을 붓터치의 느낌을 살려 형상화

02타이틀은 캘리그래피를 사용하여 디자인

예술강사의 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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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5ㅣ매뉴얼 _ 준비과정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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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 인터뷰를 통한

지식공유섹션 강사 선정

김태황 디렉터를 중심으로 진흥원과 함께 전국의 예술강사들 중 “예술강사의 발(發)”이라고 하는

컨퍼런스 주제와 부합하고 자신만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공유할만한 가치가 있는

경험을 나눠줄 수 있는 예술강사들을 섭외하기 시작하였다. 예술강사로서의 경험에 기반한

자신만의 이야기가 중요했기 때문에 전화나 이메일이 아니라 직접 예술강사가 활동하는 곳을

방문하여 사전 인터뷰를 진행한 후에 최종 섭외를 완료하였다.

컨퍼런스의

전체 형식 결정

예술강사 ‘지식공유’ 컨퍼런스라는 취지에 맞게 일방적으로 경험과 지식을 전달하고 참가자들은

듣기만 해야 하는 방식의 컨퍼런스가 아니라 모두가 참여하여 예술강사의 발표내용을 바탕으로

함께 대화하고 참가자 모두의 다양한 경험과 생각들을 공유할 수 있는 방식의 컨퍼런스가 되도록

10개의 이야기방을 만들었다. 음악, 디자인, 연극 등 다양한 예술분야의 색깔이 가미된

이야기방에서의 전체 진행은 진흥원이 아니라 예술강사 스스로가 담당하도록 하였다.

장소 섭외 컨퍼런스 참가자 전체가 모여서 주제 강연을 듣고 난 후 10개의 이야기방으로 흩어져서

참가자들 간의 대화를 통해 지식을 공유하는 컨퍼런스 방식에 가장 적절한 공간,

각 이야기방 별로 주제에 걸맞은 다양한 환경 조성이 가능한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KT&G 상상마당 전체 건물을 대관하였고, 부족한 공간은 KT&G 상상마당에서 1분 거리에 있는

<씽크카페 with 카페더웨이>를 대관하였다.

주제강연 강사 선정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예술강사들이 진행하는 지식공유 이야기방과 별도로

“예술강사의 발(發)”이라고 하는 전체 주제를 담아낼 수 있는 주제강연 발표자를 섭외하였다.

아이들과 함께 자연 속에서 예술의 가치를 찾아오신 김용택 선생님과 현재 예술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분들 중에서 주제강연자를 찾자는 생각에 학교 현장에서 아이들에게 연극을 9년 동안

가르쳐오신 유치벽 선생님을 섭외하였다.

네트워크 파티 구성 컨퍼런스의 마무리라 할 수 있는 네트워크 파티는 보고 즐기면서 끝나는 공연이 아니라

네트워크 파티 속에서도 예술강사들이 함께 어울려 호흡하면서 공감할 수 있는 내용과 형식을

고민하였다. 파티가 곧 주제강연일 수 있고 주제강연이 곧 파티가 될 뿐만 아니라

예술적 체험까지도 할 수 있는 파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여 “춤을 통해 나를 발견하다!”라는

주제로 명예교사로 활동하고 계시는 안은미 선생님을 섭외하였다.

지식공유 예술강사들과의

3차례의 워크샵 진행

예술강사가 이끌어가는 지식공유 이야기방 섹션이 2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참가자들과 함께

대화하고 공감대를 형성해야 하기 때문에 예술강사들과의 워크샵은 필수적이었다.

예술강사들의 일정을 감안하여 사전 워크샵은 2차례 나누어서 개최하였는데 이 워크샵에서는

전체 컨퍼런스의 취지를 설명하고 서로 발표할 내용들을 공유하고 이야기방에서의 대화를 어떻게

이끌어야 하는지에 관한 기본적인 팁과 노하우 등을 제공하였다. 최종 워크샵에서는 각 지식공유

이야기방의 발표 및 대화 방식을 최종 확정하고 운영팀에서는 예술강사들의 요구에 맞춰서

이야기방의 환경을 설계·디자인하고 진행에 필요한 도구 등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좀 더 예술적인

기록의 방식,

그래픽 레코딩을 위한

강사 섭외

이번 컨퍼런스에서 나온 예술강사들의 지식과 경험, 삶의 이야기들이 컨퍼런스 참가자들

뿐만 아니라 부득이하게 참석하지 못한 전체 예술강사들과도 공유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여 좀 더

효과적으로 과정을 기록하고 정리하고 공유할 프로세스를 기획하였다.

예술강사 지식공유 컨퍼런스이기 때문에 과정의 기록 또한 좀 더 예술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그래픽 레코딩이라고 하는 새로운 기록 장르를 실험하기로 했다.

이 역시 현장에서 활동하고 있는 예술강사들 중에서 그래픽 레코딩 작업을 진행해줄 수 있는

분들 중심으로 10명을 섭외하고 각 예술강사들과 매칭 시켜주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컨퍼런스 주제 선정 및 강사 섭외02/

장소대관은 행사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장소 상황에 맞게 전체 형식이 바뀔수도 있다. 전체 공간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를 충분히

고민하고 대관하되, 행사일 6주 전에는 장소를 미리 선정하고 구성하는 것이 진행하는데 무리가 없다.Tip

공간을 배치할때에는 운영팀의 물품을 보관 할 수있는 공간과 필요에 따라 음식을 준비할 수 있는 공간,

강연자 대기실, 화장실 등 행사 진행을 위한 공간 외 준비에 필요한 공간도 함께 구성한다. 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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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 때 제시한

방법 및 팁

1/2차 사전 워크샵에서 예술강사들에게 2시간 동안 지식공유 이야기방을 운영할 수 있는

몇가지 운영사례들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섹션을 처음 운영해보는 예술강사들을 위해

3가지의 아이스브레이킹 방법과 3가지의 대화 방법을 제시하였지만 이에 대한 선택 여부는

전적으로 예술강사들의 자율적 판단에 맡겼고 2시간 내에서의 시간 배정 또한 주제와 참가자수,

현장 분위기에 맞게 자체적으로 조정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예술강사들과 참가자들은 컨퍼런스에서 처음 만나는 사이로 서로에 대한 이해나 정보 없이

곧바로 대화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은 실제

예술강사 지식공유를 위한 대화만큼이나 중요하다. 사전 워크샵에서 제안한 세가지

아이스브레이킹 방법은 아래와 같다.

쓰리 키워드

3keywords

3keyword는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세가지 키워드를 포스트잇에

적은 다음에 돌아가면서 그 키워드의 의미를 설명하면서 자연스럽게

상대방에게 본인을 소개하는 방법이다. (준비물 : 포스트잇, 싸인펜)

식스 바이 식스

6 by 6

6 by 6는 사전에 제시된 36가지 질문(가로 6칸, 세로 6칸으로 나누어진

질문지)을 참가자들이 돌아가면서 주사위 2개를 던져서

정해지는 칸의 질문에 답하면서 자신을 소개하는 방법이다.

(준비물 : 모양이 다른 주사위 2개, 6 by 6표)

픽셔너리게임

Pictionary Game

단어나 숫자를 쓰거나 말을 하지 않고 오직 그림만으로 강사가 제시하는

단어를 테이블에 있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고 맞추는 방법이다.

강사가 제시하는 단어는 주로 경험, 행복, 합의 등 주로 추상적인

단어들이면 좋다. (준비물 : A4용지, 싸인펜)

지식공유 이야기방 운영의 기본 컨셉은 예술강사의 발표와 참가자들간의 대화이다. 이를 위해

효과적인 대화의 방법들을 사전 워크샵에서 제안하였다. 이 역시 선택의 여부는 전적으로

예술강사들에게 맡겼다. 여기서 제시한 대화의 방법은 총 3가지인데 대화라고 하는 것이 대화를

해보자고 자연스럽게 되는 것이 아니라 몇가지 대화를 위한 환경과 규칙을 정해줄 필요가 있다.

자기주도형 대화법

Open Space

Technology

(OST)

OST는 커피 브레이크에서 영감을 얻어 틀과 격식에서 벗어난 자유로움과

훌륭한 회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회의 방법으로 창안한 독창적 집단의

사결정방법으로 활용되고 있는 대화방법이다. OST의 진행은

01 대화하고 싶은 주제에 대해 참가자 스스로 제안하기

02 제안된 주제가 많을 경우 참가자들간의 합의 혹은 투표를 통해 3-개의

주제를 결정하고 제안자 주도 아래 자유롭게 테이블별로 대화 시작

03 제안자는 대화의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하고 대화 시간이 끝난 후

전체 참가자들과 공유

월드카페형 대화법

World Cafe

월드카페는 사람들이 카페와 유사한 공간에서 창조적인 집단 토론을

함으로써, 지식의 공유나 생성을 유도하는 토론 프로세스이다. 진행방법은

01 예술강사가 제시하는 한가지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참가자들이 4-6명까리 테이블별로 앉아서 대화를 나눈다.

02 1차 대화가 끝나면 테이블 호스트를 제외한 참가자들은

다른 테이블로 따로 이동하여 대화를 이어간다. 이때 테이블 호스트는

새로 온 사람들에게 앞선 대화의 내용들을 간략하게 설명해준다.

03 이 과정을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참가자 전원이 대화를 하게 되고

그렇게 대화 내용을 정리하여 전체가 함께 공유한다.

식스 바이 식스형

대화법

6 by 6

앞선 아이스브레이킹 방법의 하나로 제시한 6 by 6를 약간 변형한

방법이다. 예술강사가 미리 강연 주제와 관련된 36가지의 질문이나 미션을

정리해놓은 표를 나눠주고 참가자가 돌아가면서 주사위(약간 큰 주사위)를

던져가면서 예술강자 주도 아래 전체가 주제에 관한 대화를 하는 방법이다.

지식공유 이야기방의 운영 준비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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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야기방에서 진행된 운영방법

위와 같이 제안한 아이스브레이킹 및 대화법를 참고하여 예술강사들은 1월 10일까지

최종 지식공유 이야기방의 운영 및 대화방법을 확정하여 준비팀에 알려주었다. 실제 컨퍼런스에서

진행된 10가지 이야기방의 운영 방법은 아래와 같다.

Design think

디자인 씽크

-

이효광

* 총 17명의 참가자들을 4-5명씩 나눠서 4모둠으로 구성하고

이야기방에서 나누고싶은 주제 중 4개의 주제를 문제카드로 제작하여

모둠별로 1가자 카드씩 선택하여 토론한 후에 전체와 공유하는 방식을

채택하였다.

* 이를 위해 빔프로젝트와 스크린, 노트북, 스피커, A4용지와 필기도구

등은 준비하였다.

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

-

신운섭

* 빔프로젝트를 이용하여 강사가 가져온 사진들을 보면서 연극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 참가자들은 다 같이 둘러앉아 인화된 사진을 함께 보면서 각자 느끼는

감정과 경험을 이야기하였다.

메모의 습관,

정보의 모자이크

-

예정원

* 매일 음식을 담는 접시를 활용하여 그 위에 이미지와 정보를 담고

메모를 해보면서 일상을 통한 메모의 습관 들여다보기를 하였다.

이후 6 by 6를 응용한 5 by 5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 낙서와 메모의 차이와 연관성, 퍼실리테이터의 메모 습관 들여다보기,

메모의 습관이 가져다 준 의미 등을 설명한 후에 참가자들이 앉아 있는

테이블 위에서 낙서와 메모를 해가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틀리에를 찾아온

어린손님

-

변미섭

* 30분 주제에 대한 발표를 한 후, 색깔을 주제로 50분간

아이스브레이킹을 겸한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이때 참가자들에게 공통으로 던진 질문은

01 어떤 색을 골랐나요?

02 특정한 색을 고른 이유와 그 색에서 느끼는 생각은?

03 자신을 특정색과 비유해서 설명한다면? 이었다.

* 이후 예술강사가 정한 주제에 따른 모둠별 토론을 진행하고 토론 속에서

신선했던 이야기들을 서로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왜 아이들이

그토록 보고 싶을까?

-

백선화

* UCC동영상을 보면서 그 속에 드러나는 아이들의 생각을 읽어보는

시간을 가지고 주제에 대한 발표를 하였다.

* 이후 내가 가장 좋아하는 색, 가장 싫어하는 색, 친구에게 주고 싶은

색이라고 하는 질문을 통해 서로를 알아가는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을

가진 후 참가자들이 각자 이야기나누고 싶은 주제를 선정하여

테이블별 대화를 진행하고, 월드카페 방식으로 테이블 순회를 통해

다양한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하였다.

그 때

난 잘한다고 한거다!

-

우선영

* 1993년과 2010년 기점으로 무용과 무용교육에 대한 두번의

변화를 갖게 된 내용에 대한 발표를 한 후, 4개의 모둠으로 나누어서

예술강사는 학생의 예술작품에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

예술교육자의 태도가 급선회했던 경험이 있다면 무엇인지 등에 관한

토론을 진행했다.

* 토론은 테이블별로 2개의 주사위를 활용하여 제시된 주제에 대해

서로 대화를 나눠보는 시간을 가졌다.

지식공유 이야기방의 운영 준비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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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이야기방에서 진행된 운영방법

아티스트의 예술이

교육이어야 하는 이유

-

김재민

* 연주와 함께 주제에 대한 발표를 한 후, 30분간 모둠별로 나눠앉아서

“예술강사인 나는 예술에서 멀어지고 교육만 남게 될 때는 없었는가?”

라는 주제로 대화를 시작했다.

* 약간의 휴식 시간 후 “학교나 사회강사를 하면서 내가 느끼는

사회적 책임감이나 사명감의 실체는 무엇일까?”라는 두번째 주제로

모둠별 대화를 시작했다. 이때 모둠을 그대로 유지하여도 되고,

자유롭게 테이블을 옮겨서 이야기는 나눠도 되도록 했다.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었던 소꿉놀이

-

강미영

* 주제에 대한 소개와 발표를 한 후, 지금의 내가 되게 해준 예술강사의

처음을 한단어로 정리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 서로를 알아가는 시간을 가진 후에는 곧바로 소꼽놀이를 시작했다.

모둠별로 원활한 소꼽놀이를 위해 배역표(엄마, 아빠, 할아버지, 할머니,

동생 등)를 정한 후에 고무줄놀이나 공기놀이, 사방치기, 술래잡기 등의

다양한 소꼽놀이를 진행했다.

예술가는 지루하고,

학생들은 비슷하게

느끼는 마음

-

박종현

* 주제에 대한 발표를 한 후, 이 컨퍼런스를 준비하면서 느낀 점과 발표에

대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 이후 대화의 시간에는 “예술가는 지루하고, 학생들은 비슷하게 느끼는

마음, 천천히 천천히 즐겁게 바꾸다!”는 주제를 중심으로 약간 변형된

6 by 6 (주사위 대신에 윳놀이를 이용한) 를 활용하여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장 멋진 삶은

아티스트더라!

-

안령

* 주제에 대한 발표를 하기 전 참가자들간에 서로를 알 수 있는

아이스브레이킹 시간을 가졌다. 방식은 6 by 6를 활용하여 대형 주사위를

던져 예술강사들이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서로 질문하고 답하도록 하였다.

* 이후 “예술가가 되겠다고 생각하게 된 배경은 무엇인지, 예술강사로서

학생들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그룹별 대화를

나누도록 했고, 마지막에는 개인별로 포스트잇에 자신에게 주는

응원의 메시지를 쓰도록 했다.

지식공유 이야기방의 운영 준비03/

Web page 제작 행사 홍보와 안내, 참가자 모집, 참가자와 예술강사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홈페이지를 제작.

오픈하였다. 홈페이지는 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오픈소스솔루션인 XpressEngine으로 제작하였다.

www.arteconference.kr

홈페이지 및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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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이벤트

“문화예술콘텐츠를

공유해주세요.”

참가자들이 컨퍼런스가 열리는 KT&G 상상마당 곳곳에서

문화예술 관련 콘텐츠를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사전

이벤트 페이지를 구성하였다. 다른 예술강사들과 함께

공유하고 싶은 문화예술관련 콘텐츠를 소개해주는 이벤트를

개최하였고, 선정된 분들에게는 김용택 시인의 자필 서명이

담긴 책자 ‘달팽이는 지가 집이다’를 선물하였다. 또한 선정된

문화예술콘텐츠는 KT&G 상상마당 곳곳에 인쇄하여

부착하고 멀티미디어 자료의 경우 QR코드로 제작하여

스마트폰으로 바로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www.arteconference.kr/event

커뮤니티

게시판 구성

문의 게시판과 별도로 참가신청이 마무리된 후 지식공유 이야기방의 참가자들과 예술강사들이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을 홈페이지에 구성하였다. 또한 참가자들이

참가신청 할때 작성한 컨퍼런스에 바라는 점, 예술강사들에게 듣고 싶은 이야기 등을

예술강사들에게 전달하여 발표 준비와 이야기방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했다.

사전 인터뷰 동영상

편집 및 홈페이지 게재

참가자들이 지식공유 이야기방을 선택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사전 워크샵에서 예술강사들이

지식공유 이야기방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 것인지를 소개하는 인터뷰 동영상을 촬영, 편집,

업로드 하였다. 최종 편집된 동영상은 동영상 공유전문 서비스인 Vimeo에 업로드한 후에

Embed 기능을 활용하여 홈페이지에서 바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홈페이지 및 온라인 커뮤니티 운영04/

2012.10.29 (월) ~ 2012.11.09 (금)까지 2주를 모집기간으로 두었으나, 조기마감으로 인해 11.07 (수) 홈페이지를 통해

최종 참가자를 발표하였고, 추가 대기자를 받아서 불참을 통보한 참가자를 대기자로 대체하여 많은 예술강사들에게 참석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였다. 이후 참가자들에게 행사를 인지할 수 있도록 TM, SMS, 메일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안내하였다.

참가 접수 2012.10.29 (월) ~ 2012.11.07 (수)

참가자 발표 2012.11.07 (수)

참가자 개별 연락 TM 개별 연락 참석여부 확인 및 행사 안내 / 준비물 안내

SMS 발송 발표안내 / 전일행사안내

E-DM 발송 행사 안내 / 참가확정 안내 / 이벤트 안내 / 준비물 안내 / Thanks Letter

행사 안내 사항 전달 대중교통 이용 안내 및 개인컵 지참 안내

참가자 모집 및 안내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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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운영을 위한 준비06/

행사큐시트

프로그램 시간 내용 스크린 음향 조명

세팅 / 리허설 10:00~13:00 출연자 사전 리허설

등록 / 입장 13:00~14:10 참가자 등록 / 입장 Main 화면

트위터, 문자, 사진

프로그램 송출

BGM 하우스 조명

오프닝 14:10~14:13 영상 송출 오프닝영상송출 영상 소스 암전

예술강사의발주제강연

14:13~14:15 김용택님 소개화면 송출 김용택님 소개화면 등장 BGM 암전

14:15 ~ 14:40 김용택

자연이 말하는 것을 받아 쓴다

Main화면

강의 / 중계화면

강사 MIC 강연자 핀

14:40 ~ 14:42 브릿지 영상 송출

유치벽님 소개화면 송출

브릿지 영상

유치벽님 소개화면

영상소스

등장 BGM

암전

14:42 ~ 15:10 유치벽

무대를 떠나 자유로워지다

Main화면

강의 / 중계화면

강사 MIC 강연자 핀

15:10 ~ 15:12 공지사항 화면 송출

시간, 장소, 파티 안내 송출

공지사항 화면 BGM 암전

지식공유 15:12 ~ 15:30 10개의 그룹 이야기방 이동 / 휴식

안은미 무용단 리허설

Main 화면 BGM 하우스 조명

15:30 ~ 17:50 10 그룹 이야기방 운영

안은미 무용단 리허설

DJ 장비세팅 및 음향 리허설

영상 영상 음향

DJ 음악 송출

강사 MIC

강연자 핀

공연 조명

DJ 핀조명

프로그램 시간 내용 스크린 음향 조명

입장 ~ 17:50 참가자 이야기방 진행 후 재입장 Main 화면 트위터,

문자, 사진 프로그

램 송출

BGM 하우스 조명

네트워크파티 17:50 ~ 17:52 브릿지 영상 송출

안은미님 소개 화면 송출

브릿지 영상

안은미님 소개화면

영상소스

등장 BGM

암전

17:52 ~ 18:12 안은미 몸의 인류학 :

춤을 통해 나를 발견하다!

중계화면 강사 MIC 강연자 핀

18:12 ~ 18:22 영상 상영 영상 영상음향 암전

18:22 ~ 18:42 무용단 공연 중계화면 공연 음악 공연 조명

18:42 ~ 19:02 댄스 파티 진행 Main 화면

블랙 화면

DJ 음악 송출 DJ핀조명

공연조명

19:02 ~ 19:20 네트워크 시간 Main 화면

트위터, 문자, 사진

프로그램 송출

BGM 하우스 조명

폐막 19:20 ~ 19:30 폐막 화면 송출 Main 화면 BGM 하우스 조명

19:30 ~ 행사장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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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운영을 위한 준비06/

공간 구성 * 전체적인 공간 콘셉트는 원형 레드 카페트마다 하나씩 빨간풍선이 매달려 날아가는

홀씨 같기도 하고 풍선을 매단 실 사이로 걸으면 재미있는 숲길 같기도 한 콘셉트로

공간을 연출하였다.

* 예술강사들과 공유할만한 문화예술 관련 콘텐츠들을 공간 곳곳에 배치하여 참가자들이

이동 중에 자연스럽게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지식공유 이야기방

공간 구성

지식공유 이야기방의 경우는 발표 주제에 걸맞는 공간 콘셉트를 문화예술 디렉터가 제안하였고,

제안된 콘셉트와 예술강사들의 요청사항을 최대한 반영하여 각기 다른 공간을 연출하였다.

단, 전체 공간 구성에 사용된 소재와 통일성을 주어 전체 공간 안에서 개별의 공간 느낌을 주었다.

Design think

디자인 씽크

-

이효광

공간 콘셉트 : 無(없을 무)

진행에 필요한 물품 외에 공간안의

다른 소품들을 공간 밖으로 빼는

작업 진행

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

-

신운섭

공간 콘셉트 : 사이코 드라마를 하는

작은 무대

레드카페트로 만든 사이코 드라마

배경 백드롭과 의자 1개

메모의 습관,

정보의 모자이크

-

예정원

공간 콘셉트 : 각종 메모가 가능한

보드가 꽉찬 것

MEMO 글자가 음각으로 파진

레드카페트로 만든 백드롭과

몇장의 메모지 (음각: 카펫 천을

잘라내어 구멍을 뚫어 모양을 만듦)

아틀리에를 찾아온

어린손님

-

변미섭

공간 콘셉트 : 아틀리에(화실) 모습

아틀리에(화실) 그림이 음각으로 파진

레드카페트로 만든 백드롭

나는 왜 아이들이

그토록 보고 싶을까?

-

백선화

공간 콘셉트 : 인형을 가지고 구를 수

있는, 베개 싸움이 가능한 방

방바닥처럼 앉을 수 있는 동그란

레드카펫 180cm&90cm 사이즈

약 20장, 펠트 전등갓,

빨간색 좌식 교자상 6세트

그 때

난 잘한다고 한거다!

-

우선영

공간 콘셉트 : 엘레강스하고

우아한 천이 늘어뜨려진 공간

레드카페트로 만든 백드롭과 우아하게

늘어뜨려진 시폰 천

아티스트의 예술이

교육이어야 하는 이유

-

김재민

공간 콘셉트 : 럭셔리 / 부유한 사람의

편안한 집 / 굴러다니는 바이올린

고급스러운 거실 분위기가 음각으로

파진 레드카페트로 만든 백드롭

Page 96: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5ㅣ매뉴얼 _ 준비과정의 기록

188 189

현장 운영을 위한 준비06/

기념품 몰스킨 + 리플렛 예술가들이 주로 사용했다는 몰스킨 노트에 행사 리플렛을 삽입하여

워크북 형태로 제작하였다.

러기지텍 + 명찰 행사 이후에도 활용할 수 있도록 러기지텍을 명찰로 사용하였다.

행사 인력구성 하드웨어 오퍼레이터 / 운영 STAFF / 영상 촬영 팀 / 사진 촬영 팀

지식공유 이야기방

공간 구성

시작은 있으나

끝은 없었던 소꿉놀이

-

강미영

공간 콘셉트 : 골목, 공터

골목 풍경에 온듯한 느낌을 주는

가로등과 골목 실루엣이 음각으로

파진 레드카페트로 만든 백드롭을

골목 처럼 입구까지 길게 깔아 놓음

예술가는 지루하고,

학생들은 비슷하게

느끼는 마음

-

박종현

공간 콘셉트 : 연극 후 뒷풀이 하는

호프집

호프집 분위기 연출을 위해

지름 40cm 원형 레드 카페트 소재로

개인별 테이블 매트를 제공하고

대화에 방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풍선으로 장식

가장 멋진 삶은

아티스트더라!

-

안령

공간 콘셉트 : 예술가의 서재, 서점

서재의 분위기를 살려 주강사

연단공간에 원형 레드카펫과

강사좌석을 두어 안락한 공간을

확보하였고, 카페의 책장과 서재

분위기를 그대로 살림

각 공간마다 설치해야 하고 거치 해야 하는 모든 POP물은 철거가 쉬운 접착제와 접착하지 않고

거치할 수 있는 행거, 와이어, 깃발, 에어캡 등을 사용하면 행사가 끝나고 철거할 때 용이하며

건물의 벽과 천정 등을 손상시키지 않을 수 있다.Tip

행사 운영을 위한 인력은 전체 행사 콘셉트를 이해하고 행사 일정에 관한 내용 및 장소에 대한

정보를 기본적으로 숙지하여 본인의 역할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어야 행사가 원활히 진행된다.

이를 위해 사전에 STAFF 교육이 진행되는 것이 좋다.T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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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5ㅣ매뉴얼 _ 준비과정의 기록

190 191

현장 정보 공유 프로그램 운영

아래의 세가지 현장에서의 정보공유 프로그램은 IT개발자에게 별도의 프로그래밍을 요청하여

플래쉬 기능을 통해 현장에서 역동적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게 하였다.

문자 013으로 시작하는 번호를 이용하여 사람들이 80자 이내의 문자를 제시된 번호로

보내면 참가자들끼리 현장에서의 생각과 느낌들을 함께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트위터 트위터에 공통해쉬 태그 #예술강사의발로 글을 올리면 검색되어

행사장 곳곳에서 볼 수 있도록 하였다.

사진 공유 참가자들이 현장 사진을 찍어서 제시된 공통 이메일로 보내면 함께 현장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오프닝영상 예술가로서의 고민과 교육자로서 고민을 함께 가지고 있는 예술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그것을 해결하는 자리임을 드러내기 위한 취지의 영상을 상영하였다.

이를 위해 적청 안경을 쓰는 행위와 그것을 벗는 행위를 상징적으로 이용하였다.

현장 세팅 안내데스크 참가자에게 나누어줄 명찰, 노트, 생수, 적청안경, 개인 맵 등을 Kit로 구성하여

등록대 아래 준비하고 참가자 확인을 위한 노트북을 설치하였다.

도착하는 참가자들을 확인하고, Kit를 나누어 주며 라이브홀로 안내하였다.

라이브홀 로비가 협소하여 등록데스크를 야외에서 운영하여 추운 날씨에

대비하기 위해 파티오 난로 2대를 별도로 설치하였다.

지식공유

이야기방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카페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려서

다과와 음료를 준비하고, 사전에 강사들과 협의된 내용을 토대로 테이블 세팅,

프로젝트 및 빔, 음향 설치, 준비물품 세팅, 각 방의 콘셉트에 맞는

공간 디스플레이를 함께 준비하였다.

라이브홀 주제강연과 네트워크파티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공간으로, 사전에 주제강연을

위한 객석 배치와 스크린을 무대에 설치하여 무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하고,

이후 네트워크 파티를 위해 객석 의자를 치우고 음식 반입이 가능하도록

스텐딩 테이블을 설치하는 등 홀 전체를 파티장으로 연출하였다.

현장 운영을 위한 준비06/

오프닝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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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5ㅣ매뉴얼 _ 준비과정의 기록

192 193

페이스북 그룹 개설 컨퍼런스에서 발표와 대화를 이끈 예술강사들과

참가자들간의 지속적인 커뮤니케이션,

컨퍼런스 참가자뿐만 아니라 이후

전국 예술강사들과의 소통을 위해 페이스북에

예술강사 그룹을 개설하였다.

www.facebook.com/groups/arteconference

강사들과의 평가회의 예술강사들의 그룹 운영에 대한 진행 평가와 지속화 과정에 대한 내용 및 의견,

아이디어를 논의하였다.

Task Force Team 평가회의

컨퍼런스 디렉터와 진흥원 직원들과의 대화마당을 통해 컨퍼런스의 전체 과정을 공유하고

노하우와 경험을 나누었다.

웹 후기 및

결과보고서 작업* 미디어 자료 및 후기 취합

* 미디어 후기 업로드

* Thanks Letter 및 페이스북 그룹 안내

* 결과자료집 제작 및 배포

* 전체 공유를 위한 e-book 제작 및 게재

www.arteconference.kr/epilogue_detail

후속작업07/기록 작업 기록 작업은 그래픽 레코딩과 녹취를 기본으로 영상과 사진을 결합하여 기록하였다.

녹취 주제강연을 포함하여 지식공유 이야기방의 발표 내용,

네트워크 파티에서의 발표 내용은 모든 내용을 녹취하여 결과보고서에 게재하였다.

사진 / 영상 기본적인 사진과 영상을 통해 컨퍼런스 전체의 분위기를 기록하였다.

영상은 인쇄된 결과보고서에는 담을 수 없지만 이번에 시도한 새로운 방식의

결과보고서인 e-Book에 게재하여 좀더 현실감 있게 제공하고자 하였다.

그래픽 레코딩 컨퍼런스 최초로 시도한 그래픽 레코딩은 주제강연과 지식공유 이야기방의

내용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기록방식이다.

참가자들이 10개의 각기 다른 이야기방에서 들을 수 없었던 내용을

네트워크 파티에서 그래픽 레코딩 기록물을 통해 확인할 수 있도록 하였다.

현장 운영을 위한 준비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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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5ㅣ매뉴얼 _ 준비과정의 기록

194 195

참고 -추진일정#/

9월 / 10월

일 월 화 수 목 금 토

9 / 16 17 18 19 20

TFT 구성

21

TFT 기획 회의

22

23 24스피커 섭외 시작

25 26 27 28

TFT 기획 회의

29

30 10 / 1 2 3 4상상마당

장소 계약

5 6

7 8

1차 장소 답사

9 10스피커 1차 마감

11

TFT 기획 회의 /

중간 점검 회의

12 13

14 15운영 사무국

개설 /

웹 기획 회의

16각 시스템 업체

섭외 완료

17웹페이지

작업 시작

18중간 점검 회의 /

웹페이지

문구 완료

19디자인 선정 /

2차 장소 답사 /

최종 스피커 마감

20

21 22웹페이지 커밍순

페이지 오픈

23공간 구성 회의 /

현장 스케치

사진 촬영가 섭외

24컨퍼런스 안내

E-DM 발송

25착수보고회

26기념품 확정 /

시스템 업체

섭외 완료

27사전 워크샵 1차

28사전 인터뷰

촬영 완료

29웹오픈 및

참가신청 시작

30

2부 대화 테이블

기록용 장비 섭외

31사전 워크샵 2차

11/1케이터링 업체

섭외 완료

2기념품 확정

및 발주

3

11월

일 월 화 수 목 금 토

11 / 4 5물품 렌탈 업체

협의 완료

6행사 물품 구매 /

제작물 디자인

시안 전달

7참가신청 완료 /

조기마감_발표 /

참가자 확정

E-DM 발송 /

제작물

컨텐츠 전달

8참가자

개별 연락 TM

9참가신청 마감 /

제작물 시안 확정

및 발주

10최종 점검 회의 /

인력 섭외 완료

11 12

QR 코드

콘텐츠 확정 /

QR 코드 제작

13필요 물품

구매 완료

14전체 제작물

납품 및 검수

15예술강사 발표

자료 취합 완료 /

최종 참가자

리스트 확정

16참가확인

E-DM 발송 /

전체 운영

매뉴얼 회의 /

영상물 제작 검수

17인력 사전 교육

18 19참가 확인

SMS 발송 /

온라인 이벤트

당첨자 공지

20 21녹취록 작업 /

온라인 이벤트

당첨자 선물 발송

22결과보고서 및

매뉴얼 구성

23페이스북

그룹 개설 /

스케치 영상 검수

24

25 26

Thanks letter발송 /

웹 후기

1차 업로드

27녹취록 1차 완료

28 29컨퍼런스

평가 회의

30행사 결과보고서

제작 완료

12 / 1웹후기

2차 업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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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5ㅣ매뉴얼 _ 준비과정의 기록

196 197

12월 / 1월

일 월 화 수 목 금 토

12 / 2 3기록과 공유

원고 취합

4기록과 공유

미디어 자료 취합

5 6 7기록과 공유

원고 1차 교정

8

9 10 11기록과 공유

원고 2차 교정

12 13 14기록과 공유

원고 교정 완료

15

16 17기록과 공유

디자인 시작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1차 디자인

작업 완료

29

30 31 1 / 1 2

2차 디자인

작업 완료

3 4

3차 디자인

작업 완료

5

6 7기록과 공유

발주

8기록과 공유

인쇄 감리

9

E-BOOK

원고 전달

10 11 12

13 14기록과 공유

입고 및 배포

15 16 17 18

E-BOOK 완성

및 업로드

19

지식공유 이야기방 구분 분야 이름

발굴(發掘)

Design think 디자인 씽크/ 이효광

학교 만화애니 박현지

학교 디자인 정경영

학교 디자인 최승미

학교 디자인 나옥희

학교 디자인 조성연

학교 디자인 여서현

학교 영화 채유림

학교 디자인 신한나

학교 만화애니 김효진

학교 디자인 이현주

학교 디자인 송지현

학교 디자인 김현정

학교 디자인 신이레

학교 디자인 이희경

학교 연극 윤혜영

지식공유 이야기방 구분 분야 이름

발굴(發掘)

한 사람을 이해하려는 노력/ 신운섭

학교 연극 김현희

학교 영화 김선희

학교 국악 김가영

학교 연극 임채옥

학교 연극 구재숙

학교 연극 김아람

학교 국악 마지송

학교 무용 구은숙

학교 무용 김명검

학교+사회 연극 이난희

학교 국악 이유진

학교 국악 유금자

학교 무용 김자낭

학교 연극 박창호

학교 만화애니 황지영

학교 만화애니 황경주

학교 국악 송주연

학교 국악 정알현

학교 연극 박란주

학교 만화애니 하경아

학교 국악 이유선

학교 연극 윤수연

학교 국악 조현미

참고 -추진일정

참고 -참가자 명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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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5ㅣ매뉴얼 _ 준비과정의 기록

198 199

지식공유 이야기방 구분 분야 이름

발견(發見)

메모의 습관, 정보의 모자이크/ 예정원

학교 무용 강희정

학교 국악 황호경

학교 국악 김유경

사회 무용 최현주

학교 만화애니 사공영미

사회 미술 이영경

학교 국악 윤혜성

학교+사회 국악 김연우

학교 만화애니 오광열

학교 무용 이승주

학교 연극 곽민아

학교 사진 김춘숙

학교 만화애니 김혜영

학교 디자인 김지연

학교 연극 서미영

학교 연극 곽수정

학교+사회 미술 이수현

학교 만화애니 강수진

학교+사회 연극 이현경

학교+사회 영화 장윤하

지식공유 이야기방 구분 분야 이름

발견(發見)

아틀리에를 찾아온 어린손님/ 변미섭

학교 무용 김량희

학교 무용 최화정

학교 만화애니 변갑성

학교 공예 곽지영

학교 공예 탁정은

학교 사진 정윤기

학교 연극 김관규

학교 공예 김선정

학교 만화애니 최가희

학교 연극 오승수

학교 영화 박나래

학교 국악 이석종

학교 영화 김경화

학교 만화애니 임미정

지식공유 이야기방 구분 분야 이름

발견(發見)

나는 왜 아이들이 그토록 보고 싶을까?/ 백선화

학교+사회 국악 권혜영

학교 무용 장수현

학교 국악 공재숙

학교 국악 이연주

학교 연극 윤미영

학교 연극 정연숙

학교 공예 김덕신

학교 국악 황경화

학교 만화애니 이혜경

학교 디자인 박스란

학교 국악 윤다영

학교 국악 김상은

학교 디자인 이지은

학교 국악 조현숙

학교 사진 최승희

학교 만화애니 김경아

학교 연극 김경숙

학교 연극 조서율

학교 공예 송인진

학교 무용 김선경

학교 디자인 배민영

학교 무용 김서진

학교 국악 이미하

학교+사회 연극 윤은정

지식공유 이야기방 구분 분야 이름

발견(發見)

난 그때 잘 한다고 한거다!/ 우선영

학교 영화 안현진

사회 영화 김은화

학교 무용 박현정

학교 무용 은상희

학교 영화 김정선

학교 국악 홍희주

학교 만화애니 조경봉

학교 무용 이선화

학교 무용 김미영

학교 만화애니 이윤재

학교 연극 민혜진

학교 사진 류재영

학교 국악 황미숙

학교 연극 이명아

학교 연극 류현미

학교 연극 한정수

학교+사회 무용 김옥희

학교 연극 김도현

학교 무용 김미애

학교 무용 최경임

학교 무용 강영희

참고 -참가자 명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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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05ㅣ매뉴얼 _ 준비과정의 기록

200 201

지식공유 이야기방 구분 분야 이름

발견(發見)

아티스트의 예술이 교육이어야 하는 이유/ 김재민

학교 무용 이소영

학교 만화애니 김현정

학교 국악 오영지

사회 연극 김은미

학교 연극 최치은

학교 만화애니 윤민경

학교 연극 서미현

학교 만화애니 김하나

학교 만화애니 장어진

지식공유 이야기방 구분 분야 이름

발발(勃發)

시작은 있으나 끝이 없었던 소꿉놀이/ 강미영

학교 연극 김아정

학교 만화애니 백은진

학교 연극 김예선

학교 무용 설옥경

학교 연극 이현순

학교 만화애니 남경순

학교 연극 이성희

학교 연극 김혁종

학교 연극 신주희

지식공유 이야기방 구분 분야 이름

발발(勃發)

예술가는 지루하고, 학생들은 비슷하게 느끼는 마음/ 박종현

학교 국악 이지현

학교 무용 최지회

학교 무용 손애순

학교 연극 오미영

사회 음악 장예화

학교 국악 모승덕

학교 만화애니 송정화

학교 국악 남화주

학교 국악 김해숙

학교 연극 서혜숙

지식공유 이야기방 구분 분야 이름

발발(勃發)

가장 멋진 삶은 아티스트더라!/ 안 령

학교 무용 현아람

사회 음악 최윤정

학교 무용 오지혜

학교 국악 강경숙

학교+사회 미술 이도경

학교 무용 류영주

학교 사진 이승준

학교 만화애니 이현지

학교 만화애니 장명숙

학교 연극 전은정

학교+사회 영화 이지현

학교 연극 윤서정

학교 영화 권현주

학교 영화 신재준

학교 만화애니 추명호

학교 국악 김서진

학교 무용 김수현

참고 -참가자 명단#/

Page 103: 2012 예술강사의 발 컨퍼런스

주최

주관

전문 디렉터

총괄 운영

제작

공식 홈페이지

페이스북 그룹

문의

등록번호

ISBN

2012 예술강사 현장지식 공유 컨퍼런스

예술강사의 발(發) 기록과 공유

문화체육관광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문화예술 디렉터 김태황

지식공유 디렉터 조양호

㈜비타민컴 www.vitamincomm.co.kr

2013년 1월

www. arteconference.kr

www.facebook.com/groups/arteconference

T. 02.6209.5948 / Mail. [email protected]

KACES-1211-R001

978-89-6748-026-4 93370

저작자와 출처 등을 표시하면 자유이용을 허락합니다.

단, 영리적 이용과 2차적 저작물의 작성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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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ㅣ예술강사컨퍼런스를 준비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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