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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fd,kookmin.ac.kr 년 중국 운남성 여행기 2006 (2) 운남 석림과 여강 - - [ 편에서는 석림과 여강에 대해 소개한다 참고로 편에서는 운남 민속촌과 구향동굴에 대해 2 . 1 소개하였다.] 일수 넷째날 9 20 ( ), 학술대회 석림 관광 , 이번 학술대회는 중국 대학과 독일 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국제학술 Beihang RWTH Achen 대회로 다른 학회와는 달리 학술대회 기간 중에 중국 운남성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석림(石 과 여강 관광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였다 중국측 입장에서는 학술대회를 통 ) ( ) . 麗江 해 자신들의 유산을 전 세계에서 온 참가자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여 겨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참으로 바람직한 국제학술대회 운영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아 , 좋았다. 오전에 학술대회에 참가하고 오후에 학술대회 개최 측에서 제공하는 년에 유네스코 세 , 2007 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석림 관광을 하였다 점심을 먹고 학술대회 참가자가 약 ( ) . 石林 명이라 대의 버스로 나누어 타고 출발하였다 버스는 이틀 전 구향동굴을 갈 때 가던 길 200 6 . 로 가다가 갈림길에서 석림으로 향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옆으로 괴석들이 나타나기 시 . 작하였고 이윽고 버스는 석림에 도착하였다. 석림은 곤명 시내에서 정도 떨어진 석림 이족자치현 내에 위치해 있으 120 ( ) 彛族自治縣 의 범위로 중국 대 자연경관중 하나이며 또한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카르스트 지 , 350 4 , 형 중의 하나이다. 석림 충경구 입구 안내판 및 입장권 ( ) 石林

년중국운남성여행기 - KookminCFDNTLAB/myongpdf/trip/...의필수배낭여행코스 중국소수민족인나시족 의신성한성지인 동파신원’, ( ) ‘ (納西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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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년 중국 운남성 여행기2006 (2)

    운남 석림과 여강- -

    [ 편에서는 석림과 여강에 대해 소개한다 참고로 편에서는 운남 민속촌과 구향동굴에 대해2 . 1

    소개하였다.]

    월 일 수 넷째날9 20 ( ), 학술대회 석림 관광,

    이번 학술대회는 중국 대학과 독일 대학이 공동으로 주최하는 국제학술Beihang RWTH Achen

    대회로 다른 학회와는 달리 학술대회 기간 중에 중국 운남성이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석림(石

    과 여강 관광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 특이하였다 중국측 입장에서는 학술대회를 통) ( ) .林 麗江

    해 자신들의 유산을 전 세계에서 온 참가자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여

    겨지면서도 한편으로는 참으로 바람직한 국제학술대회 운영 방향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아,

    좋았다.

    오전에 학술대회에 참가하고 오후에 학술대회 개최 측에서 제공하는 년에 유네스코 세, 2007

    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다는 석림 관광을 하였다 점심을 먹고 학술대회 참가자가 약( ) .石林

    명이라 대의 버스로 나누어 타고 출발하였다 버스는 이틀 전 구향동굴을 갈 때 가던 길200 6 .

    로 가다가 갈림길에서 석림으로 향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길옆으로 괴석들이 나타나기 시.

    작하였고 이윽고 버스는 석림에 도착하였다.

    석림은 곤명 시내에서 정도 떨어진 석림 이족자치현 내에 위치해 있으120 ( )彛族自治縣㎞

    며 의 범위로 중국 대 자연경관중 하나이며 또한 세계에서 가장 광활한 카르스트 지, 350 4 ,㎢

    형 중의 하나이다.

    석림 충경구 입구 안내판 및 입장권( )石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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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림 풍경구의 안내지도

    전형적인 열대 석회암지형으로 현재 해발 천 높이이며 고생대 발기인 억 천만 년 전만 하2 m 2 8

    더라도 바다 밑이었으며 바다에 잠긴 채 이상의 석회암과 백운암이 침적되어 이 지역1,000m

    석림 지질경관의 기초가 다져졌으며 천만 년 전에 지각운동으로 인한 상승작용으로 바다였, 3

    던 이 지역이 육지가 되었고 약 백만 년 전부터 지하수와 지표수가 암석을 따라 균열작용과,

    용식작용 을 일으키며 최종적으로 지금의 다양한 형태의 암석들의 조합인 석림 을( ) ‘ ’溶蝕作用

    이루게 되었다 석림지질공원은 유일한 아열대 고원지대의 석림으로 작고 아담한 석아. , ( )石牙

    와 높고 우뚝한 돌기둥이 무리를 짓거나 따로 떨어져서 다양한 석림 카르스트 모양을 갖추고

    있어 세계 각지의 전형적인 석림 카르스트 형태의 대부분을 이곳에서 찾아 볼 수 있기 때문

    에 현재 카르스트 지형의 전경도를 만들고 있다고 한다, .

    등소평 지시로 인공적으로 만들었다는 석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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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림 입구를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자 코끼리 열차가 있었는데 타고 가도 된다고 하였지

    만 내발로 직접 걸으며 보고 싶어 걷기로 하였다 이윽고 중국 지도자 등소평이 이곳을 방문.

    하여 산이 있으면 물이 있어야 하거늘 왜 물이 없느냐하여 이곳에 인공으로 호수를 만들어 바

    위와 조화를 이루도록 하였다고 하는 석림호 가 나타났다 등소평도 풍수를 아는 것인( ) .石林湖

    가 하는 생각을 하며 석림호를 따라가며 둘러보니 인공적으로 만들긴 하였지만 그런대로 이?

    곳 분위기와 어울리고 있었다.

    석림 풍경구는 크게 대소석림 내고석림 지운동 장호( ), ( ), ( ), (大小石林 乃古石林 芝云洞 長

    대첩수폭포 월호 기풍동 의 개 풍경구로 구성되어 있으나), ( ), ( ), ( ) 7 ,湖 大疊水瀑布 月湖 奇風洞

    그 중에서도 웅장하게 솟아오른 기암괴석이 장관을 연출하는 대소석림은 석림 관광의 중심으

    로 대석림 과 소석림 으로 나눠 구분되기도 하는데 이곳은 개발이 비교, ' ( )' ' ( )' ,大石林 小石林

    적 일찍 시작되어 시설도 잘 발달되어 있어서 여행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으로 석림의 주된

    입구도 이곳에 있다.

    대석림에서 노점상을 하는 사니인 모습( )撒尼人

    우리는 시간상 제약도 있어 우선 대석림으로 가기로 하였다 호수를 끼고 가다 상가들이 밀.

    집해 있는 얕은 고개 지역을 넘자 눈앞에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는 멋진 괴암괴석들이 장관을

    이루고 있는 대석림이 나타났다 장장 에 달하는 산책로를 따라다니며 구경하는 코스로 되. 7km

    어 있는데 대석림의 바위 높이는 일반적으로 정도인데 높은 것은 에 이르는, 5 10m , 30 40m∼ ∼

    것도 많았다 그런데 내 눈에 뜨인 것이 대석림 공터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는 이 족에서. ( )彛

    뻗어나간 사니인 들이었다 이들은 농산물을 팔기도 하고 관광객이 찾지 않는 시간에( ) . ,撒尼人

    뜨개질을 하고 있었는데 관광객 남자도 쭈그려 앉아 사니인들과 함께 뜨개질을 하고 있는 모,

    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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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석림에서 노점상인 사니인 이 뜨개질을 하는 것을 한( )撒尼人

    관광객 남자가 따라하는 모습이 인상적임

    이 사니인들은 오랜 옛날부터 석림지역에 살면서 석림에 아름다운 사연들을 엮어 석림의 아즈

    메 문화와 풍부하고 다채로운 가무를 창조하였다고 한다( ) .阿詩瑪

    많은 관광객들이 한 암석 앞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어 그 쪽으로 가서 안내인께 물으니,

    바위 석봉을 기리키며 저것이 유명한 사니족 처녀와 같은 모양을 한 아즈메 석봉이라( )阿詩瑪

    고 하였다.

    대석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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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림의 아즈메 석봉( )阿詩瑪

    참고로 이곳에서는 처녀들을 만나면 모두 아즈메라고 부르는데 아즈메란 이족어로 아름다운, ‘

    처녀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또한 총각들을 만나면 모두 아헤이거 라고 부르’ . ( )阿黑哥

    는데 그 의미는 용감하고 근면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원래는 새머리 모양이었는데 세월에 닳아 지금은 개머리가 된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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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곳 전설에 따르면 먼 옛날 어느 한 가난한 집에서 예쁜 딸을 낳아 그 이름을 아즈메 라‘ ’

    고 했는데 노래 잘 부르고 춤 잘 추는 아즈메를 많은 총각들이 사모했지만 아즈메는 고아로,

    태어난 아헤이 를 사랑하여 약혼을 하였다 동네 부잣집 아들이 아름다운 아즈메를 마( ) .阿黑

    음에 두고 돈과 재물로 유혹했지만 아즈메의 마음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고 이에 화가 난, ,

    부자는 아헤이가 먼 곳으로 양몰이를 나간 사이에 아즈메를 강제로 잡아다 자신의 아들과 혼

    인을 시키려고 했지만 아즈메는 끝까지 마음을 굽히지 않았다 이 소식을 들은 아헤이가 밤낮.

    으로 달려가 아즈메를 구해 둘이서 집으로 돌아오는데 화가 난 부자가 둑을 터뜨려 그들은 물

    에 빠지게 되었는데 후에 아즈메는 강가의 돌로 굳어졌다고 한다, .

    대석림의 관목 숲과 함께 어울려 있는 석봉들

    숨바꼭질하기 좋은 대석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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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선가 비슷한 얘기를 많이 들어보았던 것 같은 전설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름대,

    로 재미있었다.

    대석림의 멋진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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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석림이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새겨져 있는 석병풍을 출발점으로 하여 석병풍 뒤로 나 있는,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정도로 여러 군데로 통해져 있는 통로를 발 가는

    대로 돌아보았다.

    대석림의 멋진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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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끼리 바위 두 마리의 학이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학 바위 등 갖가지 이름이 붙은 석봉과,

    바위 사이의 관목 숲들과 함께 바위에 새겨져 있는 사니족들의 제사활동과 춤 수렵 전쟁, , ,

    장면을 보여주는 암석화와 석각 등을 구경하였다.

    대석림의 검봉( )劍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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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이곳 석림이 마치 아이들 숨바꼭질하기 딱 좋은 곳이라는 느낌이 들면서 이곳에서

    자자손손 살면서 돌로 집을 짓고 돌로 길을 깔고 돌로 연장을 만들어 돌과 함께 살아가고 있

    는 사니족들에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사니족의 선조들은 오랫동.

    안 이런 카르스트 지형에 살면서 아주 오랜 옛날부터 돌을 가지고 씨름하면서 돌 문화를 형성

    했을 것이며 석림은 한마디로 현지 사니족들의 생활 그들의 종교 그들의 전설 그들의 노, , , ,

    래와 춤 그들의 자수 그들의 의상 그들의 건축 그들의 명절 모두에 깊숙이 융화되어 있다, , , ,

    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석림의 멋진 절경

    대석림의 서로 사랑을 나누고 있다는 학 바위 및 코끼리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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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사니족들이 사는 동네에는 항상 마을 곁에 밀지림 이라고 하는 수풀이 있는데( ) ,密枝林

    전설에 의하면 이 밀지림은 사니족 마을을 지켜주는 수림이라고 한다 그래서 부주의로 사람.

    들이 이 수림에 들어가면 밀지림이 화를 내서 들어갔던 사람이 병을 앓고 심하면 죽기까지 한

    다고 한다.

    대석림의 멋진 절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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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따라서 석림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니족인들은 지금도 해마다 음력 월이 되면 이 밀지림에서11

    밀지신에게 제사를 지내면서 사니족 마을의 흥성과 풍작을 기원하는데 이것이 바로 사니족들

    의 중요한 명절인 밀지절 이라고 한다‘ ’ .

    대석림의 연화봉을 끼고 있는 검봉지( )劍峰池 를 거쳐 전망대인 망봉정 에 올라가니( ) ,望峰亭

    눈앞에 대석림의 웅장하고 신비한 풍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소석림의 멋진 절경

    대석림을 돌아보고 소석림 쪽으로 가다 사니인 마을을 둘러보았는데 우리의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마을을 벗어나 앞으로 가자 연못이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소석림이 나타났다 대석림보다는 규모면에서 작지만 그런대로 공원에 와 있는 편안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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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고 있었다 특히 연못 한 편에 자리 잡은 빨간색 지붕을 한 정자가 마음에 들었는데 저곳. ,

    에서 술 한 잔 마시며 시라도 한편 읊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석림과 소석림을 돌아보고 왜 이곳을 돌의 숲 이라는 석림 으로 명명하였는지를, ‘ ’ ( )石林

    실감하면서 정문쪽으로 나오며 멀리 보이는 석림의 석봉들을 살펴보다가 눈에 확 띄는 봉우리

    를 발견하였다 자세히 보니 남근 을 너무나 닮아있었다 그래 이곳 석림에 온 김에 나. ( ) . ,男根

    도 바위에 이름을 하나 남기고 가고 싶어 남근석 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 )’ .男根石

    석림의 멋진 절경 마지막은 내가 명명한 남근 석( ( ) )男根

    다시 버스를 타고 곤명 시내로 돌아가서 대회 측에서 안내한 식당으로 저녁식사를 하러 들,

    어갔는데 식사를 하면서 보니 전면에 무대가 설치되어 있었다 식사를 어느 정도 마쳤을 때. ,

    무대가 열리며 공연이 시작되었다 주로 운남에 살고 있는 소수민족의 전통무용과 생활형태를.

    춤으로 보여주는 공연으로 공연 중 사용되는 도구들은 모두 소수민족들이 사용해왔던 수공도,

    구를 그대로 옮겨와 사용하고 있었으며 배우 중 는 전업배우가 아닌 실제 소수민족이 참, 70%

    여하고 있다고 한다.

    공연 중 기억에 남는 것은 며칠 전 운남 민속촌에서 보지 못하였던 라후족의 민속공연으로

    남녀가 박자에 맞춰 대나무 사이를 피해 뛰어 넘는 놀이로 어릴 적 여자아이들이 하던 고무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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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놀이와 유사하였다 나에게 이것이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지난 월 타이완을 여행하였을 때. 4 ,

    화롄지역의 원주민인 아미족 도 이와 똑 같은 전통공연을 하였기 때문으로 이 두 소수민족‘ ’

    사이의 관계가 궁금해졌다.

    월 일 목 다섯째날9 21 ( ), 곤명 여강 여강 관광- ,

    아침 일찍 짐을 정리하여 체크아웃을 한 후 버스에 올라 공항으로 향하였다 우리 일행이, .

    한 대의 전세 항공기를 낸 것 같이 우리가 탄 국내선 항공기에는 거의 이번 학술대회에 참가

    한 사람들이었다 곤명 공항을 이륙한 항공기는 곤명시내를 벗어나 높은 산악지대로 향하였.

    다 비행기 안에서 지금부터 가는 여강 리지앙 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이번 여행이 갑. ( , ) .麗江

    작스럽게 정해진 것이었지만 여행을 결정하기 전까지만 해도 중국 운남성에 관해서는 그저,

    우리나라의 한 개 도 와 같은 중국의 많은 성 중에 하나의 성 정도로만 이해하고 있었( ) ( )道 省

    기에 운남성에 있는 한 개의 작은 도시인 여강 리지앙 에 대해서는 더더욱 들어본 적, ( , )麗江

    도 없었다.

    그런데 인터넷 등을 통해 조사해 보니 여강을 동양 또는 운남 의 베니스 중국여행, ‘ ( ) ’, ‘

    의 필수 배낭여행 코스 중국 소수민족인 나시족 의 신성한 성지인 동파신원’, ( ) ‘ (納西族 東巴

    이 있는 도시 만년설이 덮인 옥룡설산 위룽쉐산 이 있는 도시 아름다운)’ , ( , ) ,神園 玉龍雪山

    경관을 자랑하는 세계적인 트레킹 코스인 호도협 후탸오샤 이 있는 도시 티베트로( , ) ,虎跳峡가는 서남 의 실크로드인 차마고도 의 입구 도시 등의 표현을 쓰며 중국 여행의 백미( ) ‘ ’ ,西南

    라고 꼽을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곳이라고 극찬을 하고 있었다.

    참고로 여강은 예전에 대리 나시족의 왕도였으나 년까지만 해도 변변한 도로조( ) , 1990大理

    차 없는 산골의 고립된 오지 마을로 중국 사람들에게조차 잃어버린 땅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년 월 운남 지역을 강타한 진도 의 대지진으로 이 일대 모든 것이 파괴된 가운데1996 2 7.9 ,

    년전 중국 송나라 명나라 때부터 이어진 한옥 목조건물이 대다수인 여강고성800 , ( ,麗江古城

    리쟝꾸청 의 가까이가 파괴되는 큰 피해를 입었는데 이 참사로 인해 진흙 속에 숨겨진) 90% ,

    진주와 같던 여강은 도리어 전통적인 한옥들을 그대로 잘 보존한 아름다운 마을로 중국 전역

    에 더욱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때 여강을 방문한 장쩌민 주석의 관광지로서 개발하라 는. ‘ ’

    말에 따라 이 마을을 복구하는 과정에서 중국 정부는 비록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지라도 순, ,

    수하게 전통적인 모습을 갖춘 한옥들만 여강고성에 남도록 하고 기타 전통적인 외관에 위배,

    되는 건물들은 모두 철거시키거나 외곽으로 옮겨가도록 하였으며 신공항도 건설하였다 중국, ,

    정부의 이러한 노력에 발맞추어 유네스코에서는 이듬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여강고성을

    아테네 파리 등의 국제적으로 유명한 도시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으며 이후 더, ,

    욱 때 묻지 않은 이곳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전통 생활상을 보존해 나가면서 전 세계적으로 더

    욱 많은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게 되었다.

    여강은 중국 운남성의 북서부에 위치한 해발 의 도농 복합 고원도시로 금사강2,400 , (金沙m

    진샤강 중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칭장고원 과 윈구이고원 에 인접해, ) , ( ) ( )江 靑藏高原 雲貴高原

    있다 여강은 나시족 자치현 융성 현 화핑 현 이족 자치현을 관할하며. , ( ) , ( ) , ( ) ,永勝 華坪 彛族

    여강 고시가인 여강고성 여강 신시가 다얀 고시가 슈헤 고시가 바이샤 고시가( ), , , ,麗江古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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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및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호도협 협곡지역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계문화유산( ) .虎跳峡으로 지정된 여강고성 만년설이 덮인 옥룡설산 아름다운 경관의 호수공원인 흑룡담공원, , (黑

    헤이룽탄공원 등 관광자원도 풍부하고 소수민족인 나시족의 전통문화를 체험하기, ) ,龍潭公園

    위해 세계 각지에서 관광객이 몰려들면서 관광도시로 이름이 높아졌다 남쪽 지점에. 20km

    년 개장한 공항이 있으며 년 국제공항이 들어설 예정이다 현재 여강에는 나시족 사1994 , 2009 .

    람들의 대부분 거주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라후족 푸미족 바이족 이족이 거주하고 있다, , , , .

    역사적으로 여강에는 구석기시대 이후 신석기시대나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의 유적이 남아, ,

    있어 오래 전부터 인류가 살아온 것을 보여주며 현재 소수민족인 좡족 에 속하는 계파, ( )羌族

    인 나시족이 서기 세기경에 이곳에 정착했다고 전해진다 전국시대에는 진나라의 세력 하에3 .

    있었으며 촉군이 설치되었다 한나라 때에는 수구현이 설치되어 중원의 지배를 받게 되었지, .

    만 당대 이후는 티베트 남조 대리국의 지배하에 놓여졌다 년 명나라 군이 원나라 왕, , , . 1271

    조에 예속되어 있던 대리국을 정복하면서 이 땅의 영주를 여강 선위사 에 임명하였고 이, ‘ ’ ,

    것이 여강 이라는 지명의 유래가 되었다 참고로 선위사는 중국주변의 여러 민족이 통일국‘ ’ .

    가를 수립하지 않고 그 민족 내의 유력자들이 개별적으로 중국 왕조에 조공을 바치면 그들에,

    게 중국 왕조가 수여하는 토사 로 분류되는 관직명이다 여강에서는 나시족의 목 씨( ) . ( )土司 木

    가 선위사를 세습하게 되었으며 그 후 여강군민부라고 개칭되고 청나라 때는 류관 중앙관리, ( )

    이 지배하는 여강부가 되었고 중화민국이 성립되면서 여강현이 설치되었다 명청 때부, . ( )明淸

    터 서북지역 차 무역의 거점을 이루면서 실크로드와 맞먹는 차마고도 의 출발점이 되었다, ‘ ’ .

    년 월 인민해방군의 진출로 여강현 인민정부가 구성되었으며 년 월에는 여강 나1949 7 , , 1961 4

    시족자치현이 되었으며 년 월 일 주변지구를 통합해 지급시로 승격해 현재에 이르고, 2003 6 8 ,

    있다.

    이윽고 항공기는 약 분 정도의 비행을 마치고 여강 리장 공항에 도착하였다 드디, 50 ( , ) .麗江

    어 내 자신이 동양 또는 운남 의 베니스라고 불리며 나시족의 심장부이면서 동파문화( ) , (東巴文

    가 발원했던 발원지인 여강에 온 것이다 공항 밖으로 나오니 해발고도가 높은 지역답게) .化

    다소 쌀쌀한 날씨로 외투가 필요할 정도였다.

    버스를 타고 여강 시내로 들어가면서 가이드가 말하기에 창밖을 보니 여강의 나시족들이 신

    성시 여기는 만년설로 뒤덮인 옥룡설산 이 보였다 이 산의 해발은 로 한라산( ) . 5596m玉龍雪山

    개를 겹쳐 놓은 것보다는 조금 못 미치는 높이로 한마디로 웅장함을 간직하고 있었다 참고3 , .

    로 옥룡 이라는 이름은 예로부터 이 산의 아름다운 산세가 마치 옥의 빛깔인 은색의 용이’ ’

    춤을 추는 모습과 비슷하여서 붙여진 것이라 하며 여강의 소수민족인 나시족들은 이 산에 신,

    이 살고 있다고 믿고 있어서 예로부터 큰 일이 있을 때면 기도를 드리거나 제를 올렸다고 한,

    다 또한 이 산은 히말라야 산맥의 남쪽 줄기로 아시아판과 인도양판이 접하고 있어 지금도.

    지각운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조금씩 해발이 높아지고 있으며 이름처럼 년 내내 눈이 녹지, 1

    않는다 해서 만년설산이라고 불리고 있다 이와 함께 가이드가 몇 년 전 이 산을 정복하기 위.

    한 등반이 시도된 적도 있지만 사상자만 냈을 정도로 아직까지는 아무에게도 정복당하기를 허

    락하지 않은 처녀산 이라고 하면서 아무래도 이 산을 이루고 있는 암석이 비교적 부서지‘ ’ ,

    기 쉬운 석회암으로 구성되어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부연 설명을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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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와집들이 점점 많이 눈에 뜨이면서 드디어 나시족의 심장부이면서 동파문화 가( )東巴文化

    발원했던 발원지인 여강 도심으로 들어 왔나보다 했더니 나중에 알고 보니 여강고성 중심지,

    로부터 가장 남쪽 끝인 고급 호텔들과 상점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의 버스주차장에 버스가 멈

    추었다.

    햇볕에 이불과 머리를 말리고 있는 여강 마을 풍경

    버스에서 짐을 찾아 호텔로 가기 전에 잠시 인원 파악을 위해 주차장에 머물고 있을 때 주,

    차장 주위 건물들을 둘러보다 참으로 낯익은 광

    경을 보게 되었다 점심 시간대인지 문을 닫은.

    상점 앞에 걸려있는 빨랫줄에 널어 햇볕에 말리

    고 있는 이불과 그 옆 건물 앞에서 거의 파자마

    차림에 슬리퍼를 신은 젊은 여자가 머리를 감은

    후 긴 머리를 빗으로 빗고 있는 광경이었다 이, .

    것이 내가 여강에 와서 처음 접한 여강의 문화풍

    속으로 한편으로는 놀랍고 다른 한편으로는 어,

    린 시절 시골 마을에서 볼 수 있던 향수가 떠오

    르며 왠지 시골 고향에 온 것 같은 친근한 느낌

    이 들면서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다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짐을 끌고 호텔로 가면서 주변을 보니 상점과

    호텔 등이 비교적 새롭게 지어진 건물들이었지만

    고성의 분위기를 유지시키기 위해 지붕을 고풍스

    러운 기와집으로 하는 등 통일된 형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엿보였으며 또한 상점 및,

    호텔 입구간판에 나름대로의 특징을 주고 있었여강 호텔 밀집지역 노상에 있는 죄수의 포즈를

    취할 수 있는 기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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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마침 길가에 관광객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 만들어 놓은 쇠사슬에 묶인 죄수 포즈를 취할.

    수 있게 만들어 놓은 기구가 있어 기념으로 사진 한 장을 남겼다.

    여관에서 숙박하였던 최고급 호텔 내외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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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강의 호텔들이 밀집해 있는 지역의 풍경

    우리가 숙박한 호텔은 물론 기와집으로 고풍스럽게 지어진 층 및 층짜리 최고급 호텔로3 2 ,

    몇 개의 부속 건물을 가지고 있어 객실도 많았지만 부속 건물마다 나름대로 개성을 살렸고, ,

    객실 내부도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초호화판으로 배낭여행으로 왔다면 상상도 못할 그,

    런 호텔이었다 호텔 내부 벽에는 동파문화의 발원지답게 여기저기 동파문자로 새겨진 액자나.

    병풍 등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참고로 여강은 나시족의 심장부이면서 동파문화 가. ( )東巴文化

    발원했던 발원지로서 동파문화는 나시족의 독특한 문화로 나시족은 그들만의 세계 유일한 상,

    형문자인 동파문자를 사용했는데 지금까지도 그 습성이 남아있다, .

    짐을 푼 다음 옷을 갈아입고 나서 호텔 내에 있는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였다 점심식사, .

    후 잠시 호텔 주변을 둘러보며 휴식을 취한 후 버스를 타고 백사벽화 바이샤벽화, ( , )白沙壁畵

    를 보러 여강 시내에서 북쪽으로 떨어진 나시족 전통마을인 백사촌 바이샤촌, 10km ( , )白沙村

    으로 갔다 참고로 동파문자와 함께 국보급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는 백사촌의 백사벽화.

    를 비롯하여 납서동경음악 은 세계적으로 보호되어야 할 진귀한 보물( ) ( )白沙壁畵 納西洞經音樂

    로 여강이 자랑하고 있다.

    백사벽화는 명 청 나라 시기인 년에 이 지역에 살던 동파교 둥바( ), ( ) 1385~1619 ( ,明 淸 東巴敎

    교 화가들과 중앙 평야지대에서 온 도교 예술가 티베트 지역의 라마교 화가 등이 그) ( ) ,道敎

    린 벽화로 작은 돈황 이라고도 불리는 이곳 백사촌은 현재까지 그 독특한 문화를 자랑, ( )敦煌

    하고 있다 이 벽화들은 같은 시기에 건축된 대보적궁 유리전 등 유서 깊. ( ), ( )大寶積宮 琉璃殿

    은 개 사찰에서 보관 전시되고 있는데 프레스코 기법으로 그려진 벽화는 모두 점 이상15 , , 200

    으로 이 중 점은 상태가 양호하다고 한다 벽화에는 부처 외에 관리 범죄자 여행객 사, 55 . , , ,

    형 집행인 등 일반인을 그린 점 이상의 초상화가 포함되어 있는데 검은색 은색 암녹색100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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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색 붉은색 등 강렬한 색깔이 주조를 이루고 또한 표현 기법이 생생하고 정확하여 예술적, ,

    가치가 높다고 한다.

    국보급 문물보호단위로 지정되어 있는 백사벽화( )白沙壁畵

    백사벽화 소개판 출전( :www.encyber.com)

    그림 내용은 고기잡이 말타기 옷감 짜기 춤추기 등 일상생활을 표현한 것이 대부분이다, , , .

    특히 대보적궁에 있는 여래회불도 에는 티베트 불교인 라마교의 나한과 함께 불( ) 18如來會佛圖

    교 도교 등 서로 다른 종교가 하나의 회화양식에 조화롭게 융합되어 있는데 비록 그림 속, ,

    인물들의 피부색이 다르고 복식이 다르다 해도 그들이 공존하는 이유는 중생의 고통을 덜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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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병과 재앙에서 민중을 구하는 것이다.

    백사벽화( )白沙壁畵

    백사벽화라는 현판이 걸린 사원 입구를 지나 안으로 들어가자 몇 개의 사찰이 있었고 새롭,

    게 단장한 커다란 벽에는 백사벽화가 새겨져 있었으나 백사벽화 실물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

    어 눈으로만 확인한 것이 아쉬웠다 사원 내부를 돌며 얼마 전 다년 온 실크로드의 교역 중심.

    지였던 돈황에 있는 무역 상인들이 자신들의 안녕을 위해 만들어 놓은 무수한 석굴 사원인 막

    고굴 이 떠오르며 차마고도를 통해 무역을 하던 무역 상인들도 자신들의 무사안녕을( ) ,莫高窟

    위해 이곳 중심 교역지인 여강에 사원을 지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며 이곳을 작은 돈황이라,

    고 부르는 것이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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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사벽화가 보관된 대보적궁( )大寶積宮

    사원 출구를 나오자 모든 관광지와 마찬가지로 좁은 골목 양편에 중국의 오래된 골동품 들

    을 파는 노점상들로 꽉 차있었다.

    백사촌 의 풍경( ) (1)白沙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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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사촌 의 풍경( ) (2)白沙村

    대부분이 옛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현대 기술로 옛것같이 재현시켜 놓은 것을 알면서도 처,

    음 부른 가격의 정도 가격으로 우리나라 윷과 같이 생긴 나무들에 소녀경 을 새겨 색1/5 ‘ ’

    깔을 입힌 물건과 상형문자가 새겨진 거북이 등껍질을 기념으로 샀다.

    일행들과의 만나는 약속 시간이 상당히 남아있어 나는 백사촌을 여기저기 둘러보았다 한, .

    마디로 여강이 나시족이 사는 관광도시라면 백사벽화가 있는 이곳은 그야말로 전형적인 시골

    농촌마을이었다 집들은 대부분 흙벽돌을 쌓아서 지었거나 흙을 그대로 발라서 만들었으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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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에는 조잡하지만 동파문자로 그려진 벽화 도 눈에 띄었다 또한 백사벽화 사원 지역 상가(?) .

    주변에는 아마 여강에서 자전거를 빌려 타고 왔을 것으로 짐작되는 관광객들이 눈에 띄었을

    뿐 백사촌 마을에는 야채를 늘어놓고 팔고 있는 노인 장기를 두고 있는 중년 남자들 커다, , ,

    란 망태기를 등에 지고 가는 노인 이발을 하고 있는 사람 등 대체로 나이가 든 사람 몇 명만,

    보일 뿐 조용하고 한적했다 어릴 적 시골마을을 걷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참으로 오랜만에.

    나는 백사촌 마을을 편안하고 유유자적하며 거닐 수 있었다.

    여강의 상점가 모습

    상점가 앞길을 말을 타고 가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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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강 시내에 있는 호텔로 돌아오자 학술대회 측에서 내일 아침에 여강고성을 관광하기로 한

    다며 그 때까지는 자유시간이라고 하면서 저녁식사 시간만을 알려주었다 호텔방에서 잠시, .

    쉬다가 하나라도 여강의 모습을 더 느끼고 싶어 밖으로 나와 발이 가는 대로 여강고성 주변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이 여강고성의 중심지로부터 가장 먼 고성의 가장 남쪽 끝에 있어서,

    그런지 몰라도 관광객들을 상대로 물건을 팔고 있는 이곳 상점가는 다른 관광지에 비해서 시

    끌벅적하지 않고 대체로 한적한 편이었다 그런데 석회암 돌로 만들어진 도로 한쪽으로 물소.

    리가 나서 보니 물이 흐르는 작은 수로가 있었으며 수로에는 사람들이 건널 수 있도록 여기,

    저기 나무로 만든 작은 다리들이 놓여 있었다 아하 이 물이 옥룡설산에서 흘러내려와 고성. !

    내부를 흐르고 있다는 물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시냇물을 보니 생각보다 무척 맑고 차가웠

    다 참고로 고성을 가로질러 흐르는 옥룡하천은 흑룡담 공원의 연못이 발원지로 고성의 중심. ,

    지 근처 커다란 개의 수차가 있는 옥룡교에서 동하 중하 서하 세 지류2 ( ), ( ), ( )東河 中河 西河

    로 나누어 남동쪽 방향으로 고성 안을 흐르면서 다시 수많은 작은 강이나 수로로 된다 짐작, .

    컨대 이 수로는 동하의 지류일 것이라고 생각하며 걷다보니 상점가 앞길로 말을 타고 가는.

    나시족 남자가 눈에 띄었다 여기서는 말을 타고 관광도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이 들며 한번.

    타보고 싶었지만 말을 탈 자신이 없어 그만두었다.

    길을 따라 북쪽을 향해 가다보니 신사나 절 같은 곳이 나타나 들어가 보았더니 옛날 무역,

    을 하는 거상들이 살던 원 이었는데 중앙에 커다란 광장을 두고 그 주위로 집을 지은 형( ) ,院

    태로 우리나라 칸 집을 보는 듯하였다 현재는 일부가 숙박업소로 사용되는 것 같았는데99 . ,

    집 안으로 들어가니 광장 반대쪽으로 하천이 있었는데 실버들 나무로 인해 풍광이 한마디로,

    끝내주었다 참으로 좋은 곳에 집을 지었구나 생각하며 원내를 걷다보니 하천이 원 내부를 통.

    과하게 만들어 진 것을 알게 되었다.

    옛날에 무역을 하는 거상들이 살던 원( )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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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을 나와 조금 진행하니 자형 삼거리가 나타나며 길이 넓어졌는데 알고 보니 그 도로가T ,

    말로만 듣던 차마고도 인 것을 알고 드디어 내가 차마고도를 직접 밝아보게 되‘ ( )’ ,茶馬古道

    었다는 사실과 조금 전 보고 나온 거상의 집인 원이 마방들을 상대로 한 거상의 집이었다는

    새로운 사실에 너무 기뻤다.

    동하 변의 거상이 살던 원 모습( ) ( )東河 院

    참고로 차마고도는 실크로드보다 여 년 앞서 만들어진 인류 최고의 교역로로 한나라 이200 ,

    전인 기원전 시기에 중국 서남부 운남성과 사천성에서 생산된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역하기

    위해 형성되었고 당 송 시대를 거치면서 번성하였으며 이후 네팔 인도 유럽까지 연결되었, , ,

    던 육상 무역로로 운남성과 사천성의 차와 티베트의 말을 교환했다고 하여 차마고도, (茶馬古

    라는 이름이 붙었다 또한 이 무역로를 통해 년 전 티베트 불교가 티베트의 주도인 라) . 1000道

    싸 에서 운남과 사천 지역으로 전래되기도 했다 길이가 약 에 이르며 평균 해발( ) . 5000拉薩 ㎞

    고도가 이상인 높고 험준한 길이지만 눈에 덮인 이상의 설산 들과 금사4,000m , 5,000m ( )雪山

    강 란창강 노강 누장 이 수천 의 아찔한 협곡을 이루어 세계에서( ), ( ), ( , )金沙江 瀾滄江 怒江 ㎞

    가장 아름다운 길로 꼽힌다 세 강이 이루는 삼강병류 협곡. (Three Parallel Rivers of Yunnan

    은 년 유네스코에 의해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 길을 따라Protected Areas) 2003 .

    물건을 교역하던 상인 조직을 마방이라고 하는데 수십 마리의 말과 말잡이인 간마런으로 이,

    루어지며 교역물품은 차와 말 외에 소금 약재 금은 버섯류 등 다양했다 근대 들어 차마고, , , .

    도를 따라 도로가 많이 건설되었지만 아직도 일부 마방이 활동하고 있다.

    이 길을 지나갔을 마방들의 행렬을 머릿속에 그려보며 길을 따라 북쪽으로 조금가다 북동,

    쪽으로 방향을 트니 다시 커다란 하천인 중하 가 나타났다, ( ) .中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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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자교 에서 본 중하 연변의 음식점들 모습( ) ( )万子橋 中河

    여강의 멋스러운 가게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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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강의 멋스러운 골목길가 가게들

    안내하는 나시족 아가씨와 함께

    하천에 나 있는 만자교 라는 다리를 건너며 하천 주위를 살펴보니 하천 양편에는 진( )万子橋

    흙과 나무로 만들어진 방 한 칸 또는 두 칸 정도의 음식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으며 모두,

    하천을 보면서 식사나 술을 마실 수 있도록 시설이 만들어져있으며 하천가에는 실버들 나무,

    가 바람에 살랑살랑 대고 있었다 와 신선놀음이 따로 없네 하는 생각이 들며 이도시를. , ! ,

    여강 이라고 하였는지가 비로써 실감이 났다( ) .麗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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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수로를 따라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골목길을 여유롭게 걸어가면서 수로에서 손바닥만

    한 금붕어가 헤엄치고 있는 것이 신기하여 한참 구경하기도 하고 현관을 멋지게 치장한 상점,

    이 눈에 띄면 들어가 상품들을 구경하기도 하고 길을 안내하는 나시족 아가씨와 기념촬영도,

    하면서 고성의 동쪽 지역을 발길 닿는 대로 돌아보았다 이곳이 배낭여행객들의 천국이라는.

    것을 다시 실감하며 일상에서 벗어나 어느 것에도 쫓기지 않는 모처럼의 여유를 만끽할 수,

    있었다.

    여강의 상점가 및 안내 표지판

    구천사 가는 길이라는 안내판이 눈에 띄었는데 이곳에도 절이 있다는 것이 다소 의( )九泉寺

    외라 많이 걷기는 하였지만 가 보기로 하고 길을 따라가니 자꾸만 산속으로 올라가는 길이었

    다.

    흐르는 시냇물이 냉장고 역할을 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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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로 여강은 동쪽에 산이 있어 서쪽에서 동쪽으로 경사져 있다 올라가면서 보니 산속 지.

    역인 이곳 상점은 대체로 현대적인 서양식 레스토랑이나 카페 등으로 가득 차 있어 색다른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걷다 보니 상점 앞을 흐르는 수로의 물속에 음료수 등을 담은 나무 바구니를 넣어 놓은 것

    이 눈에 띄었다 아하 저것이 바로 삶의 경험에서 나오는 자연 냉장고로 참으로 기발한 아이. !

    디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골목을 지나다 다시 눈에 들어온 것이 끈으로 빨간 고추를 엮어 매.

    달아 놓은 것으로 우리나라 시골 마을에 와 있는 기분과 함께 나시족들의 고추 말리는 방법, ,

    이 우리와 같다는 것과 그들도 고추를 즐겨 먹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시족도 고추를 무척이나 좋아하는 것 같다.

    향촌천공 이라는 작고 아담한 현대식 분위기의 카페도 내 눈길을 끌었다 시골하( ) .鄕村天空

    늘이란 이름과 영어로 라고 쓰여 있는 것이 그 집 분위기와 너무나 잘 어울리며Country Sky ,

    마침 햇볕을 피해 노란색 파라솔 밑에서 음료수를 마시고 있는 청춘 남녀의 모습은 카페의 이

    름을 더욱 빛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동파문자 및 영어와 함께 나타낸 흘갈수 라는 상점 간판도 내 눈길을 잡았는데 영( ) ,吃喝睡

    어로는 라고 쓰여 있어 동파문자와 잘 어울리는 것은 알 수 있는데“eat, drink, sleep" ,

    더듬거리다 소리치다 자다 의미인 한자 흘갈수 와는 도저히 매칭이 되지 않았다 이‘ , , ’ ‘ ’ .

    리저리 궁리해보다 이것이 뜻이 아닌 중국식 발음인 치헤슈 로 받아들이면 우리말 취하‘ ’ ‘

    슈 와 비슷하니 결국 취하여 뻗을 정도로 먹고 마시자라는 의미라고 내 멋대로 해석해 버렸’

    지만 아마도 나시족말로 먹고 마시고 자다 가 체슈 라고 발음되는 것이 아닐까하고 추, ‘ ’ ‘ ’

    측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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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골하늘 이라는 이름이 어울리는 여강의 카페 모습‘ ’

    동파문자 및 영어와 함께 나타낸 흘갈수 라는( )吃喝睡 카페 간판 모습

    다리가 아플 정도로 걸어 올라가니 마침내 구천사 가 나타났는데 우리나라 절과 같( ) ,九泉寺

    은 것을 기대하였던 내게는 다소 실망스럽게도 조그만 암자 정도 크기의 절이었다 그러나 아.

    홉 개 샘물이 있는 절이란 뜻인 구천사 란 이름에 걸맞게 절 주위에 있는 조그맣지만( )九泉寺

    아담하고 운치 있는 연못들과 절이 참으로 잘 어우러져서 멋진 풍광을 주고 있어 그런대로,

    발품을 판 보람을 느꼈다 다리도 아프고 하여 여러 나라에서 온 관광객이 쉬고 있는 절 입구.

    돌다리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하며 주변의 환상적이며 운치 있는 풍광을 감상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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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천사 절 앞에 있는 운치있는 연못( )九泉寺

    구천사 절 입구 돌다리에서 쉬고 있는 관광객들( )九泉寺

    저녁식사 시간이 다가와 왔던 길을 뒤돌아 내려오다 보니 밀가루 전에 바나나 사과와 같은,

    과일을 믹서로 갈아 위에 얹어 만드는 일종의 중국식 파이 같은 것을 파는 나시족 노점상(?)

    여인이 눈에 띄었다 옷차림새나 얼굴 겉모습만으로는 우리나라 재래시장 리어카 좌판에서 장.

    사하고 있는 아줌마와 똑같게 느껴지고 만드는 것이 다소 신기하여 구경하다 하나 사서 먹어

    보니 생각하였던 것 보다 맛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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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점 음식점을 하고 있는 나시족 여인

    호텔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였는데 우리나라 갈비찜과 같은 양고기로 만든 요리였다 시장하.

    기도 하였지만 상당히 맛이 있었다.

    저녁 식사 때 먹은 이름을 알 수 없는 양고기 요리 음식

    저녁식사 후 방으로 돌아와 쉬려고 하였으나 여강의 밤문화를 직접 겪어 보고 싶어 다소,

    피곤하기는 하였지만 다시 밖으로 나와 고성 중심지인 사방가 스팡제 로 향하였다( , ) .四方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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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둑어둑해진 고성의 미로와 같은 골목길에는 인적이 별로 없었다.

    여강을 지배하던 총관부인 목부 모습( )木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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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방가로 가는 도중에 명청 때부터 서북지역 차 무역의 거점을 이루었던 도시답게 아까( )明淸

    보았던 것과 같은 거상들의 집인 원이 몇 개 눈에 띄었으며 이곳 여강을 다스렸다는 목, ( )木

    씨가 살았던 목부 라 불리는 총관부를 볼 수 있었다 이 건물들은 문화대혁명 시대에 파( ) .木府

    괴되었으나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해에 복원된 것으로 넓은 대지에 북경의 자금성을 흉, ,

    내 낸 장대한 건물이 늘어서 있었는데 석양빛을 받아 다소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참고로 목씨는 여강고성을 주도적으로 건설한 인물로 근처에 있는 사자산 도. , ( )獅子山

    소유하고 있었다고 하니 상당한 권력자였을 것이다 또한 본전과 연회용 건물이 이층 복도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것은 예전에 복도 밑이 바로 시장을 여는 광장이었기에 방해되지 않도록,

    배려한 것이라고 한다.

    이 목씨와 관련하여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벽에 둘러싸여 있는 중.

    국의 다른 오래된 도시와 달리 여강고성 주위에는 성벽이 없다 이것은 여강을 다스리는 왕, .

    조가 당시 명 의 태조였던 주원장의 이름 주 로부터 일부를 취한 목 이라는 이름( ) ‘ ( )’ ( )明 朱 木

    을 받아 목씨 성을 가지고 이곳을 다스렸는데 여강도 이민족의 위협에 직면하기도 했지만, ,

    목씨가 통치하는 지역을 성벽으로 둘러싸면 목 이 곤 이 되는 것을 싫어해 성벽을 축조( ) ( )木 困

    하지 않았다고 한다 실제로는 수로가 뒤얽힌 여강의 도시구조로 인해 성벽의 건설이 곤란하.

    였고 방어효과가 적으며 치수에서도 성벽이 불리하게 작용되는 것을 고려해 축조되지 않았, ,

    던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목부를 떠날 때쯤 이미 날은 어두워져 있었고 비도 조금씩 내리고 있었지만 사방가, , (四方

    까지 가보고 싶어 인사동 골목같이 좁고 미로처럼 이어져 있는 골목길을 빠져 나오니 고) ,街

    성의 중심인 사방가였다 참고로 사방가는 고성의 중심가로 예전부터 상인들이 교역을 하던.

    곳으로 고성 안의 얽혀있는 수많은 골목들이 모두 이곳으로 통하게 되어 있다 낮에는 화물, .

    교역시장이 서면서 수많은 인파가 몰린다고 하는데 비가 내리는 밤이어서 그런지 생각하였던

    것 보다 적막한 분위기였는데 사방가 서쪽 붉은 색 조명 아래로 누각들이 보이며 그 속에서, ,

    사람들의 목소리들이 나고 있었다.

    당당히 태극기를 걸어 놓은 벚꽃마을 사꾸라 카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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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광객을 불러 모우는 여강의 사방가 주위 음식점 밤풍경

    가까이 가서 보니 수로가 있었고 수로 양쪽으로 온통 술집 카페로 가득 찬 말로만 듣던 여강

    의 술집 카페 지역이었다 골목에서는 밤문화의 향연이 한창 펼쳐지고 있었는데 술집마다 나.

    시족 복장을 한 아가씨들이 손님을 호객하는 소리 술집 안의 찢어지는 음악소리에 맞춰 층, 1

    은 물론 층 누각에서 얼굴을 내밀고 운동장 응원소리와 같이 합창하는 소리 관광객과 얼싸2 ,

    안고 춤을 추는 등으로 떠들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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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며칠 전 곤명에서 만났던 조선족 김씨가 여강에 간다고

    하니 사방가 부근에 있는 사꾸라 카페 를 꼭 찾아가, ‘ ’

    보라고 하면서 그 집 여주인인 김씨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

    었다 사꾸라 카페의 여주인 김씨는 수년전 이곳 여강에.

    배낭여행을 왔다가 이곳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이곳 나시

    족의 청년과 결혼하여 이곳에 정착하여 사꾸라 카페 라‘ ’

    는 술집 겸한 음식점을 열었는데 장사가 잘되 지금은 사방

    가 근처 유흥지역의 음식점을 몇 개나 가지고 있는 재벌이

    되었으며 이곳을 배낭여행하는 한국인들은 모두 그 집을,

    찾아가고 숙박 등을 포함해 여러 가지로 도움을 받고 있,

    다고 하였다.

    사꾸라 카페는 술집 골목 입구 가까운 곳에 있었는데,

    가게 입구에 당당히 태극기를 걸어 놓고 있었으며 영어, ,

    일본어와 함께 한글로 벚꽃 마을 이라고 쓰여 있었다‘ ’ .

    이런 곳에서 태극기를 보는 것이 다소 신기하기도 하여 가

    게 안으로 들어가니 내부에 걸려 있는 만국기에도 태극기가 걸려 있었다 이곳에서 당당하게.

    사는 여주인을 만나보고 싶어 점원에게 말하니 현재 한국 친정집에 가서 만날 수가 없다고 하

    였다 카페에서 음식과 술을 시켜 먹으며 여러 나라에서 온 젊은이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즐.

    겁게 술을 마시며 즐기고 있는 광경을 보면서 젊은 배낭여행객들이 이곳에 오고 싶어 하며,

    이곳에 와서는 처음 계획한 체류기간보다 더 오래 머무는 이유를 알 수가 있을 것 같았다 비.

    오는 밤인데도 불야성을 이루고 있는 여강의 밤문화 속에 잠시 빠져 있다가 비가 그칠 기미,

    가 없어 보여 할 수 없이 비를 맞으며 호텔 숙소로 돌아왔다.

    월 일 금 다섯째날9 22 ( ), 여강관광 여강 곤명 인천, - -

    새벽의 여강을 보고 싶어 일찍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어제 밤에는 비가 내리더니 이제는, .

    그쳐 있었다 어제와 반대 방향인 호텔 뒤쪽에 나 있는 길로 들어서자 길에는 사람 통행이 거.

    의 없었고 상점들도 모두 닫혀있어 상쾌한 새벽 공기를 마시며 걸을 수 있었다 얼마를 걷다, .

    보니 삼안정 란 조그만 안내 표지판이 붙어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처음에는 안내 표( ) .三眼井

    지판이 세워진 위치에 있는 나무를 의미하는 것인가 하고 살펴보았는데 아무래도 글자의미,

    가 세개의 눈 구멍 을 가진 우물 이란 뜻이라 표지판에 쓰여 있는 설명내용이 중국어라 잘‘ ( ) ’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찬찬히 표지판의 글을 살펴보니 흐르는 물을 셋으로 나누어 맨 위에, ,

    있는 가장 깨끗한 물은 먹는 물로 중간 것은 야채를 씻는 물 그리고 맨 아래 것은 세탁용, ,

    물로 사용하도록 나누어 놓은 장소라는 것이었다 다소 의아하기도 하여 게간을 내려가 모퉁.

    이를 돌아서자 정말로 삼안정이 있었으며 우물에서는 나시족 여성들이 세탁을 하고 잇었다, .

    참고로 현재 여강고성 내에는 수도가 정비되어 있으나 세탁이나 야채를 씻을 때는 고성내 곳,

    곳에 남아있는 삼안정을 이용한다고 한다.

    사꾸라 카페 안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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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개의 눈 구멍 을 가진 우물 이란 뜻인 삼안정‘ ( ) ’ ( )三眼井

    다시 미로 같은 골목길을 이리저리 한가롭게 아침 산책하듯 걷다보니 갑자기 눈앞에 광장이,

    나타났다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여강의 아침 재래시장에 온 것이었다 우리나라 시골 오일장. .

    분위기와 흡사한 시장에서는 주로 각종 야채나 과일 및 고기 등을 팔고 있었다 이른 아침이.

    라 그런지 시장은 그다지 붐비지 않았고 거의 모두 이곳 현지인들로 옷차림도 평상복이었다.

    여강의 아침 재래시장 모습

    시장을 둘러보며 현지인들의 생활상을 살펴보았는데 야채를 사러 온 나시족 총각이 등에 지,

    고 있는 나무바구니 우리나라에서는 이미 골동품이 되어 버린 추를 사용하는 저울로 야채를,

    팔고 있는 야채가게 아저씨 등의 모습이 다소 신기하게 느껴졌다.

    아침식사 시간이 다가와 호텔로 돌아가는데 그만 길을 잃어버려 다소 고생을 하였지만 무사

    히 호텔에 도착하여 식사를 하고 학술대회에 참가하였던 일행과 함께 여강고성을 정식으로,

    관광하러 출발하였다 일행을 안내하는 사람이 간 곳은 어제 밤 헤매며 찾아갔던 고성의 중심.

    인 사방가로 그는 이곳 사람답게 지름길로 안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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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전의 여강 사방가 주변 풍경들

    사방가는 예전부터 상인들이 교역을 하던 곳답게 커다란 돌로 깔린 거리는 상당히 넓었고 자,

    세히 보니 고성 안의 수많은 골목들이 모두 이곳으로 통하게 되어 있었다 아직 이른 아침나.

    절이라 그런지 관광객들도 그다지 많지 않았다.

    아침의 여강 사방가 근처 술집 카페 거리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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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한낮의 사방가 근처 술집 카페 지역 풍경은 어제 밤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을 보

    여주고 있었다 지난밤 광란에 가까운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평온하고 깔끔한 분위기를 연출하.

    고 있었다 어젯밤 술에 취해 고래고래 노래를 부르던 이층 누각에도 젊은이들 몇 명이 한가.

    롭게 난간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낮과 밤의 야누스적인 이곳 모습은 오직 술집 카.

    페 지역을 말없이 흐르고 있는 수로의 물과 낮과 밤을 지켜 본 나만이 알고 있을 뿐.

    고성 전체를 보고 싶어 사방가의 서쪽에 있는 작지만 높은 언덕인 사자산 으로 향하( )獅子山

    였다 사자산 올라가는 가파른 계단길을 구불구불 올라가다 보니 한글로 낭만일생. ‘ (浪漫一

    이라고 쓰인 깨끗하게 단장한 숙박업소가 눈에 띄었다 아 이곳이 여강에 온 배낭여행)’ . ,生

    객들이 묵었는데 전망이 참 좋다고 인터넷에 소개한 곳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조금 더 언덕! ,

    길을 올라가다 앞에 선 일행이 오래되어 다소 고풍스러움마저 느껴지는 집으로 들어가 따라,

    들어갔다.

    사자산 올라가는 길( )獅子山

    사자산 올라가는 길에 있는 객점 낭만일생( ) ‘ ’獅子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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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집은 전통적인 나시족 가옥을 개조하여 만든 카페로 일행 중 한 중국인이 사자산 정상에,

    는 년에 만들어진 만고루 라는 탑이 있어 여강 주변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으나1997 ( ) ,万古樓

    중간정도 높이인 이곳에서 조망하는 편이 훨씬 멋지다고 하면서 이층으로 안내하였다.

    고풍스런 기와지붕으로 뒤덮인 여강고성의 전경

    전통 카페 집에 놓여 있는 멋스러운 메뉴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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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풍스런 기와지붕으로 뒤덮인 여강고성의 전경

    이층으로 올라가니 테라스 형태로 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본 여강고성은 낡은 목조 건물이 밀.

    집되어 만들어진 검은색이 가미된 회색 기와지붕이 거의 같은 높이로 퍼져 있어 마치 잔잔한

    파도가 치는 호수를 보는 것 같은 환상적인 경치와 함께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을 주었다 한.

    동안 아무 말 없이 너무나 감동적인 여강고성의 풍경을 감상하였다.

    문득 테이블위에 놓여있는 메뉴판이 눈에 띄었는데 전통 카페에 딱 어울리게 한지를 엮어,

    만들어 놓아 마치 한권의 방명록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차를 한잔 시켜 마시면서 고성의 풍.

    경을 오래도록 기억에 남도록 다시금 한동안 감상하며 눈에 담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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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언덕길을 내려와 사방가로 오니 한낮이 되어서 그런지 관광객들이 상당히 모여 있었으

    며 한쪽에서는 나시족 전통의상을 입은 여자들이 공연을 하고 있었고 다른 쪽에는 예쁘게, ,

    치장한 흰색말이 자기 등에 탈 관광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낮의 여강 사방가 풍경

    한낮의 여강 사방가 풍경

    술집 카페 지역으로 난 서하 수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니 수로 양쪽의 카페들은 지난밤( ) ,西河

    에 쏟아 놓은 술냄새 등 어제 밤 광란의 현장을 정리하고 낮의 음식 손님을 받으려고 가게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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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를 청소하고 있을 뿐 통행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한적한 거리로 변해 있었으며 수로 연변에, ,

    심어 놓은 실버들나무가 햇볕을 차단해 주어 산책하기에는 딱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낮의 사방가 부근 술집 카페 지역에 있는 서하 풍경( )西河

    조금 가다 보니 서하 수로에 수문이 있었다 이 수문은 한밤에 수문을 닫아 수로에 흐( ) .西河

    르는 물의 수위를 높여 물을 사방가 주변 광장으로 흘려보내 청소를 하는 것이라고 한다 사.

    방가는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아주 완만하게 경사지어 있기 때문에 물은 반대측 강인 중하

    로 흘러 들어간다 고성이 정비된 명조부터 이미 이 시스템이 기능하고 있었다니 오래( ) . ,中河

    전부터 물의 흐름을 철저하게 유효이용하고 있었던 이곳 여강 사람들의 탁월한 생활의 지혜에

    흐름학을 전공하고 있는 나로서도 경의를 표한다.

    수로를 따라 조금 더 진행하니 엄청난 크기인 개의 수차 물레방아 와 옥룡교 가 눈2 ( ) ( )玉龍橋

    에 들어왔다 드디어 여강고성의 입구에 해당되며 여강고성을 동방의 베니스 라 불릴 만큼. , ' '

    운치 있고 아름다운 곳으로 만드는 시발점에 내가 와 있다는 사실에 가슴 뿌듯함을 느꼈다.

    참고로 옥룡설산으로부터 흘러온 옥룡천이 이곳 옥룡교 에서 동하 중하( ) ( ), ( ),玉龍橋 東河 中河

    서하 세 지류로 나누어 남동쪽 방향으로 흐르면서 다시 수많은 작은 강이나 수로로 되( ) ,西河

    어 여강고성 곳곳에 맑은 물이 흐르는 것을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

    옥룡교에서 북쪽을 보며 이 하천을 따라가면 호수공원인 흑룡담공원 헤이룽탄( ,黑龍潭公園

    공원 이 나온다는 사실에 가보고는 싶었지만 오늘 오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일행들과 약속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 아쉽지만 단념하였다 참고로 흑룡담공원은 옥룡설산 위룽. ( ,玉龍雪山

    쉐산 의 만년설에서 흘러내린 물이 호수를 이루며 이 호수의 물이 너무 맑아 옥룡설산과 하) ,

    늘을 비춰 완전한 대칭을 이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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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강 고성입구에 있는 대형 수차 물레방아( , )水車

    공원 내에는 명나라 때 만들어진 오봉루 해탈림 과 청대의 득월루( ), ( ) ( )五鳳樓 解脫林 得月樓

    등 고대 나시족 건축물들이 있으며 공원 북쪽 입구에는 나시족의 상형문자인 동파 문화, ( )東巴

    연구소가 있어 낯선 나시족들의 전통문화를 만나볼 수 있다 푸른 버드나무 고목과 누각 정. ,

    자 등이 조화롭게 배치되어 경관이 아름다우며 매년 겨울에 매화꽃이 만발할 때는 매화축제,

    가 열린다 나시족은 이곳에서 기후제를 지낸다고 한다. .

    옥룡교에서 이번에는 돌로 포장된 고성의 번화가인 중앙대로를 따라 시방가를 향해 돌아가

    면서 보니 고급 상점가를 포함해 중국 음식을 비롯한 서양 레스토랑 서양식 바 카페 빨래, , , ,

    방 인터넷카페 은행 우체국 등 여행자를 위한 모든 시설로 가득차 있었다 참고로 년, , , .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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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남 지역 대지진 전까지에는 이곳에 현대적인 콘크리트 건물도 있었다고 하는데 지진 피해,

    로 파괴되고 이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면서 완전히 철거해 버렸다고 한다 또한 다른.

    운남지역과 마찬가지로 이곳에서 큰 상점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외성인( ),外省人

    즉 다른 지역에서 온 사람들이나 다른 곳과 달리 영리만을 목적으로 상점을 소유하는 것이, ,

    아니라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여기저기 다니다가 우연히 이곳을 찾게 되었고 여강의 매, ,

    력에 반해서 아예 눌러 앉아 상점 주인이 되어버린 경우가 참 많다고 한다.

    나시 콘서트 홀이 눈에 띄어 잠시 안으로 들어가 보니 상당한 규모의 공연장 시설이 갖추어

    져 있었다.

    사방가 부근에 있는 나시 콘서트 홀

    사방가에서 아침에 온 골목을 찾아 들어서 반들반들하고 깨끗한 응회암으로 된 돌바닥을 밟으

    며 골목길 양쪽에 늘어선 흙과 나무로 지은 작은 전통집 가게에 진열되어 있는 것을 구경하면

    서 호텔로 돌아오다 가죽 장갑과 지갑을 팔고 있는 작고 아담한 가게에 들러 양가죽으로 직,

    접 만들었다는 수제 지갑을 기념으로 하나 샀다.

    벽에 동파문자가 아름답게 조각되고 채색까지 되어 있는 전통가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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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혁명시기의 옷차림을 한 나시족 노인

    또한 전통가옥의 벽에 동파문자가 아름답게 조각되고 채색까지 되어 있는 모습과 나이든 나시

    족 노인 두분이 그 옛날 쪽빛 물들인 옷에 문화혁명시기의 모자를 쓰고 등에는 나무 망태기를

    메고 환한 햇살을 받으며 즐겁게 걷는 모습을 여강에서의 마지막 풍경으로 머릿속에 기억하며

    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체크아웃하고 공항으로 향하면서 앞으로도 아름답고 평화로우며 여유로움을 느낄 수,

    있는 여강 만의 순수한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 .麗江

    Good Bye, Liji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