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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fd.kookmin.ac.kr 볼리바르 광장의 동상 2014년 중남미 여행기-5 - 페루(리마, 이까, 나스카) 편 - 3월 12일(수) , 아홉째날 리마 관광 아침에 우루밤바를 출발해 친체로 경유의 성스러운 계곡을 통과하여 쿠스코에 도착한 후, 오전 10시에 LA 2022편으로 쿠스코를 출발하여 1시간 반 지난 11 시 25분경 리마 공항에 도착하였다. 본격적으로 리마 시내 관광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페루의 수도 리마 (Lima)는 인구 약 750만으로 태평양에 면한 산크리스 토발 대지의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옛 도 시로, 적도 부근 연안 사막지대에 위치하고 있으나 페루 해류의 영향을 받아 기온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1535년 스페인의 침략자 피사로에 의해서 건 설된 도시로, 한때 남미 대륙에서 파낸 막대한 양의 은이 이곳을 거쳐 정복자들의 나라로 옮겨지면서 그 흔적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많은 유럽풍 건축 물들이 남아 있으며, 또한 이곳에 쌓여져 있던 은만 큼이나 구름처럼 사람들이 유입되어 현재는 소매치기 와 사기꾼, 각종 공해와 교통난 등 온갖 악명을 듣는 대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리마는 ‘잉카의 눈물’로 불리는 짙은 안개가 넘나드는 태평양과 맞닿아 있는 해안 절벽위에 미라플로레스(miraflores)라는 이름의 신도시를 건 설하여 이제 리마는 식민지 문화와 근현대 문화가 뒤섞인 복합적인 도시이자 남미로 들 어가는 관문의 하나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페루를 대표하는 국립 인류·고고학 박물관으로 주택가인 Pueble Libre 지역의 볼리바르 광장(Plaza Bolivar)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광장에는 볼리바르 의 두상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주변이 주택가라 박물관을 포함해 주변에 현대적 인 높은 빌딩 등이 눈에 띄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다소 한적하고 평화로운 그러면서도 왠지 고급스러움이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박물관 규모와 유물 양에 있어 페루 최대의 박 물관이라고 하는데 박물관 외관은 상당히 심플한 단층 구조의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 가자 입구 벽면에 페루의 역사적인 유물과 유적지에 대한 사진들을 모아 놓은 전시판이 있었는데, 어제 본 마추픽추를 비롯하여 보지는 못하고 지나쳐 온 모라이 등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또한 페루의 각지에서 출토된 토기를 시대별, 지역별로 정리해 놓은 연대 표도 벽에 걸려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Naver 지식백과를 통해 페루의 역사에 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페루의 역사는 원시 수렵농경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BC 2만 년 에서 BC 10세기까지 안데스 산악지대를 중심으로 몽골계 원주민이 거주하였고, 이후 이 들이 고대 토착문화를 형성하였다. 그러다 AD 1세기까지 정착 농경문화를 형성해 이들이 만든 토기·피라미드 등의 신전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이 시기를 차빈(Chavin) 문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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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바르 광장의 동상

2014년 중남미 여행기-5

- 페루(리마, 이까, 나스카) 편 -

3월 12일(수), 아홉째날 리마 관광아침에 우루밤바를 출발해 친체로 경유의 성스러운

계곡을 통과하여 쿠스코에 도착한 후, 오전 10시에

LA 2022편으로 쿠스코를 출발하여 1시간 반 지난 11

시 25분경 리마 공항에 도착하였다. 본격적으로 리마

시내 관광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페루의 수도 리마

(Lima)는 인구 약 750만으로 태평양에 면한 산크리스

토발 지의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아름다운 옛 도

시로, 적도 부근 연안 사막지 에 위치하고 있으나

페루 해류의 영향을 받아 기온은 그다지 높은 편이

아니다. 1535년 스페인의 침략자 피사로에 의해서 건

설된 도시로, 한때 남미 륙에서 파낸 막 한 양의

은이 이곳을 거쳐 정복자들의 나라로 옮겨지면서 그

흔적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많은 유럽풍 건축

물들이 남아 있으며, 또한 이곳에 쌓여져 있던 은만

큼이나 구름처럼 사람들이 유입되어 현재는 소매치기

와 사기꾼, 각종 공해와 교통난 등 온갖 악명을 듣는

도시가 되었다. 그러나 최근 리마는 ‘잉카의 눈물’로 불리는 짙은 안개가 넘나드는

태평양과 맞닿아 있는 해안 절벽위에 미라플로레스(miraflores)라는 이름의 신도시를 건

설하여 이제 리마는 식민지 문화와 근현 문화가 뒤섞인 복합적인 도시이자 남미로 들

어가는 관문의 하나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가장 먼저 간 곳은 페루를 표하는 국립 인류·고고학 박물관으로 주택가인 Pueble

Libre 지역의 볼리바르 광장(Plaza Bolivar) 옆에 위치하고 있었다. 광장에는 볼리바르

의 두상이 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주변이 주택가라 박물관을 포함해 주변에 현 적

인 높은 빌딩 등이 눈에 띄지 않아서 그런지 몰라도 다소 한적하고 평화로운 그러면서도

왠지 고급스러움이 묻어나는 느낌이었다. 박물관 규모와 유물 양에 있어 페루 최 의 박

물관이라고 하는데 박물관 외관은 상당히 심플한 단층 구조의 건물이었다. 안으로 들어

가자 입구 벽면에 페루의 역사적인 유물과 유적지에 한 사진들을 모아 놓은 전시판이

있었는데, 어제 본 마추픽추를 비롯하여 보지는 못하고 지나쳐 온 모라이 등의 사진이

눈에 띄었다. 또한 페루의 각지에서 출토된 토기를 시 별, 지역별로 정리해 놓은 연

표도 벽에 걸려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전에 Naver 지식백과를 통해 페루의 역사에 관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페루의 역사는 원시 수렵농경시 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BC 2만 년

에서 BC 10세기까지 안데스 산악지 를 중심으로 몽골계 원주민이 거주하였고, 이후 이

들이 고 토착문화를 형성하였다. 그러다 AD 1세기까지 정착 농경문화를 형성해 이들이

만든 토기·피라미드 등의 신전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데 이 시기를 차빈(Chavin) 문명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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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 인류·고고학 박물관 전경 및 안내 사진

페루에서 출토된 토기의 지역별, 시대별 연대표 및 출토된 토기

로 부르며, 이어 BC 3세기~AD 8세기의 모체 문명, 나스카 문명과 같은 제 1기 지역문화

시기를 거쳐, 8~12세기의 통일국가 형성기를 티아우아나코 문명으로 부르며, 치무문명이

속하는 이후 15세기까지를 제 2기 지역문화시기로 부른다. 13세기에 망꼬 카팍이 쿠수코

에 나라를 세움으로써 케추아족의 왕국이 탄생하였으며, 15세기에 이르러 파차쿠텍 잉카

가 페루 전역을 통일하게 되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몇 개의 페루 문명을 살펴보면 다음

과 같다. 먼저 멕시코를 중심으로 하는 중미에서 제일 먼저 발생한 문명이 올멕 문명이

라면, 남미에서는 차빈 문명이다. 이 문명은 기원전 850년경 페루의 북쪽 치클라요 해안

과 카하마르카 지역까지, 남쪽으로는 이까 골짜기에서 아야쿠초에 걸쳐서 발전했다. 이

는 페루의 산악지방과 해안지방의 약 3분의 2 정도를 포함하는 넓은 지역이기 때문에,

차빈 문명은 페루 역사에 새로운 지평을 연 문명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차빈'이라는 말

은 페루 북부 안데스산맥에 있는 표적인 유적 '차빈데완타르'에서 유래했으며, 차빈

문명은 고지에서 발생했으나 해발 3천 미터 의 산악지 에서 살 수 없는 열 지방의

고양이과 동물, 악어, 뱀이 그들의 조각이나 토기 등에 묘사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아

마존 강 유역 주민들과 관계를 맺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들이 건설한 신전의 회랑

한 모퉁이에 송곳니를 드러낸 인간과 재규어의 모습을 띤 신이 등장하는데, 이는 올멕

문명과의 유사성도 나타내고 있다. 차빈 문명이 비록 문화의 시작 단계에 불과하지만,

잉카문명을 비롯한 그 어느 시 의 유적과 유물에 비해서 그 수준은 손색이 없다는 평가

를 받고 있다. 이 차빈 문명은 기원전 400년경에 쇠퇴했지만, 그 후 1,500년 동안 차빈

문명의 상징 및 예술성은 남미 각지에서 발생된 여러 문명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제1기 지역문화시기에 속하는 모체 문명은 현재의 페루 북부 트루히요 시 근처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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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몬디 비석 및 독수리, 퓨마 등이 조각된 권위 상징 칼(?)

모체 강에서 유래했는데, 이 문명은 옥수수와 물고기, 조공을 바치러 온 사람들, 멋진

가마를 타고 단상에 앉아서 손님을 맞이하고 하인에게 명령을 내리는 귀족, 자수로 수놓

은 갑옷을 입은 장수, 사냥꾼, 피리를 불고 북을 치며 흥겨워하는 사람들과 그 옆에서

상품을 벌여놓은 상인 등 일상생활의 모습을 뛰어난 사실주의 감각으로 도자기에 표현했

다. 또한 트루히요에는 해의 신전과 달의 신전이 있는데, 이는 그들이 태양과 달을 숭배

했음을 말해주고 있다. 계단식 피라미드형으로 된 태양의 신전은 가로 228미터, 세로

136미터, 높이 18미터에 1억 3,000만 개의 흙벽돌로 축조되어 있고, 달의 신전은 가로

80미터, 세로 60미터, 높이 21미터의 규모다. 모체 족은 또한 순장의 풍습이 있었는데,

일반 사람의 경우에는 도자기를 함께 묻었지만, 통치자가 죽으면 그의 부인, 제사장, 병

사, 개, 야마까지 산 채로 묻었다. 이렇게 발달했던 모체 문명은 그 시작도 명확하지 않

지만 멸망의 원인도 알려지지 않았다. 다만 서기 600년경 페루 해안의 엘니뇨현상으로

인한 홍수 피해 때문에 모체 족이 해안지역에서 내륙으로 이동했지만 여전히 홍수 피해

가 그치지 않아서, 이제 신들이 자신들을 돌보지 않는다는 생각으로 살고 있던 도시를

불태워버리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는 추측만이 있을 뿐이다.

모체 문명과 함께 제1기 지역문화시기에 속하는 나스카 문명은 페루 남부의 이까 강과

나스카 강 연안을 중심으로 번영했다. 이 문명은 기원전 700년경에 피스코 부근에서 발

생했던 파라카스 문명의 기술과 전통을 이어받아 자신들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했다. 그들

은 하나의 토기에 무려 11종류나 되는 색을 사용해서 물고기, 새, 곤충 등 일상생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을 정교하게 묘사해 자신들만의 독창성을 보여주었다. 아울러 해안에

서는 많은 양을 구할 수 없었던 알파카 털을 사용해서 다양한 형태의 직조기술을 보여주

었는데, 이는 그들이 산악지역과 교류했음을 의미한다. 나스카 문명을 세상에 널리 알리

게 한 것은 일명 '나스카 라인(또는 나스카 지상화)'이라고 하는 사막 위에 그려진 거

한 그림들이었다. 1930년에 개설된 리마와 아레키파 간의 노선을 비행하던 항공기 조종

사들이 나스카 사막에 널려 있는 수많은 기하학적 도형을 발견했으며, 이 도형들은 략

기원전 900년경부터 서기 800년 사이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 그림들은

단순히 막 기와 두 손을 사용해서 사막 표면의 검은 돌들을 걷어내고, 약 30센티미터

깊이로 파서 그 속에 있는 밝은 색깔의 흙이 드러나 보이도록 한 다음, 걷어낸 돌들을

옆에 둑처럼 쌓아놓는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이 선들은 총 18가지로써 새,

원숭이, 거미 등과 같은 동물들, 인간의 모습, 100개가 넘는 기하학적 도형을 표현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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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조기, 벽화 그림, 멋진 문양의 토기

멋진 문양의 토기 및 천사그림(?)

있으며, 이 도형들의 직선거리는 4미

터에서부터 10킬로미터에 이른다. 이

나스카 라인은 비가 오지 않는 이 지

역의 기후 덕분에 그 형태를 유지해왔

다. 이 선들의 용도에 해서는 의견

이 분분하다. 외계인이 와서 그렸다는

설도 있으나, 이 도형들이 나스카의

도자기나 직물에서도 많이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오히려 안데스문명

의 오랜 전통을 그 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밖에 나스카 문

명은 주변의 다양한 문화들과 비교하

여 상당히 독창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

다. 그 한 예로 여자의 자궁과 같은 모습인 원형무덤 속에 면이나 야마의 가죽으로 말아

져 있는 시신이 어머니 뱃속에 있는 태아의 웅크린 자세를 취하고 있는 독특한 무덤의

양식을 들 수 있다. 부장품으로 남아 있는 도자기는 여러 가지 색을 넣은 화려한 것이

많고 일부 무덤에서는 뇌수술을 한 유골이 나오기도 했다.

통일국가 형성기에 속하며 고전기 안데스 문명의 꽃이라 불리는 티아우아나코 문명은

페루와 볼리비아 국경의 티티카카 호수 남쪽 20킬로미터 지점을 중심으로 발전하였으며,

서기 600년에 인근 나스카 문명과 모체 문명을 위협하는 세력으로 부상했다. '티아우아

나코'라는 이름은 이곳 원주민 말인 아이마라어로 '가운데 있는 돌'이라는 의미인데, 이

는 자신들이 살고 있는 곳이 세계의 중심이자 우주의 근본임을 보여주는 말이다. 이들의

돌조각 기술은 안데스 지역에서 최고의 수준에 도달해 있었는데, 이는 후세에 큰 돌을

정확히 맞추어 쌓는 잉카의 전형적인 건축법에 큰 영향을 끼쳤다. 높이 2.75미터, 무게

10톤의 태양의 문이나, 가로 30미터, 세로 25미터, 지름 1.7미터를 파서 돌로 쌓고 벽면

에는 100개의 석상이 조각되어 있는 엘 템플레테, 그리고 그 중앙에 있는 높이 7.3미터,

폭 1.2미터, 무게가 17톤이나 되는 모놀리토 상 등이 표적인 작품이다. 이들은 또한

100톤에 달하는 석재를 정확하게 절단했다. 돌과 돌 사이에는 I자형의 홈을 연결부에 만

들고 거기에 구리를 박아 넣거나 또는 녹여 넣거나 해서 이를 꺾쇠 구실로 활용하는 기

술을 사용하기도 했다. 500년 이상 지난 후세에 잉카 최고 지도자의 한 명이었던 파차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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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 국립 인류·고고학 박물관의 유물 들

텍 유팡키가 이곳의 건축물들을 보고 감동을 받아, 당시 잉카의 수도인 쿠스코에 이와

똑같은 건물을 만들라고 지시를 내렸다고 전해질 정도로, 티아우아나코는 건축이나 도시

계획 면에서 안데스문명의 모범이 되었다. 아울러 계단식 농법과 인공적인 관개수로를

이용한 농사방법도 이 티아우아나코 문명 시기에 발전했다.

마지막으로 제 2기 지역문화시기에 속하는 치무 문명은 서기 1,200년경에 페루 북부의

해안지 에서 모체 문명을 계승하여 탄생했다. '치무'라는 말은 모체 골짜기의 옛 이름

인 '치모'에서 유래했다. 이 치무 문명의 수도는 지금의 트루히요 시 근교에 해당하는

찬찬으로서, 흙벽돌로 만들어진 세계 최 의 도시였기에 흙벽돌의 문명이라고도 불린다.

이 도시는 해안가 사막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건물이 모두 진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많은 건축물이 오랜 세월 동안 비바람에 무너져 내렸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높고 튼튼한

담은 남아 있다. 엄격한 신분체계를 유지하고 있던 치무 문명은 상당한 수준의 금속기술

을 보유하고 있었다. 특히 청동 합금 기술이 발달하여 곡괭이, 칼 같은 농기구와 장신구

를 만들어 사용했다. 후에 잉카인이 이들 금속기술의 장인들을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

스코로 데려갔다고 한다. 이들은 또한 직조기술이 발달하여 염색한 천에다 무늬를 넣고

레이스를 달아 화려한 문양의 직물을 생산했다. 또한 발달된 도로망 덕분에 인근 부족들

과의 교류도 활발했다. 치무 문명은 1450년경에는 그 영역을 리마에서 카라바요까지 확

장했으며, 교류의 범위를 에콰도르와 안데스 산악지역까지 넓혀 나갔다. 하지만 1461년

북부 해안지방까지 세력을 확장했던 잉카제국에게 정복당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유홍준씨의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하게 된

다’라는 명언이 있듯이 스페인 말을 전혀 모르고 페루의 여러 가지 왕조(?) 또는 문명

에 관해 자료를 통해 차빈, 모체, 나스카, 티아우아나코, 치무, 잉카 정도 밖에 모르는

내게 이 엄청난 유물들을 짧은 시간에 자세히 제 로 감상할 능력은 처음부터 없었지만

보이는 그 로 이들의 문화를 받아들이고 싶었다. 그나마 연 표에 내가 알고 있는 차

빈, 나스카, 모체, 치무, 파라카스, 잉카 등이 눈에 띄어 반가웠다.

박물관은 중앙 사각형 안뜰을 둘러싼 긴 회랑을 가지는 구조로, 회랑을 따라 위치한

각 방마다 유물들이 가득 전시되어 있었다. 회랑을 돌기 시작하며 바로 눈에 띈 것이 이

탈리아 여행가 라이몬디(Raimodi)가 1874년 농가 헛간에서 발견하였다는 BC 15-BC 3세기

의 차빈문화 때의 유물인 라이몬디 비석이었다. 우리나라 광개토 왕비보다 몇 백 년이

나 앞선 시 에 만들어진 것인데도 온전하게 발견된 것에 놀랐고, 또한 비석에 새겨진

신의 형상이 너무나도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는데 놀랐다. 비석 옆 안내문에 따르면 이

비석은 양손에 권위의 상징인 권표(창)을 들고 있는 차빈 시 신을 형상화한 것으로 뱀

으로 장식되어 있다. 아래쪽 1/3이 이 신을 나타낸 것으로, 위쪽 2/3는 뱀으로 나타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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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카의 자루에 쌓인 미라와 잉카문명의 토기 들

해안도로변 바닷가에 있는 멋진 음식점 Costa Verde 및 음식점에서 본 미라플로레스 해안절벽

머리칼 또는 왕관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라고 한다. 기독교에서만 뱀을 사악한 동물

로 취급하지만, 우리의 선조들은 마야나 잉카 문명에서 보듯이 뱀을 영물로 생각하였던

것 같다. 또 다른 것은 일행을 쫒아가느라 제 로 확인을 하지 못하였지만 권위를 상징

하는 상징적인 칼(?)로 수리, 퓨마 등이 칼 곳곳에 섬세하게 조각되어 있는 것이 특이하

였다.

전체적으로 이 박물관은 스페인 식민지 시 이전의 원주민이 지배하던 페루 고 문화

의 각종 유물들을 시 별로 지역문화별로 체계적으로 잘 정리하여 고 역사를 총괄적으

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이 되도록 전시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으나, 짧은 시간에 처음

들어보는 지역 문화의 이름도 많아 사전 조사한 문명의 이름 외에는 새로운 이름을 제

로 기억할 수 없었고 부분 토기로 만든 유물들이어서 제 로 구분을 할 수도 없었다.

그중 파라카스(Paragas)에서 출토된 직물(천), 직조기, 나스카의 자루에 쌓여 있는 미

라, 잉카시 토기 전시품, 고유의상을 입은 천사그림(?) 등이 특히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는다.

점심식사를 하러 음식점 [Costa Verde]로 갔다. 가이드 말로는 음식 종류 숫자가 많아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는 음식점으로, 이 음식점은 리마의 강남이라고 부르는 신흥지구

인 미라플로레스(Miraflores) 지역의 해안 절벽 밑으로 태평양 바다에 접해 나있는 해안

도로 변의 분위기 좋은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바닷가 방파제를 식당

벽으로 삼은 노천 식당으로 태평양의 파도소리와 함께 새하얀 파도가 그 로 느껴질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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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루식 세비체 요리

미라플로레스 지역에 있는 사랑의 공원

도로 경치가 좋았다. 음식은 뷔페식으로 종류는 많았

지만 그다지 입에 당기는 음식은 별로 없었다. 다만

가이드가 꼭 먹어보라고 한 페루식 세비체(Ceviche)

는 처음 먹어보는 음식인데도 내 입맛에 꼭 맞아 이

것만 몇 차례 가져다 먹었다. 세비체는 남미에서 해

산물 표 요리로 손꼽히는 음식으로, 페루식 세비체

는 생선이나 새우, 조개, 오징어 같은 해물을 레몬즙

에 절였다가 고수와 양파, 토마토, 고추 등으로 만든

소스를 뿌려 함께 먹는 것으로, 새콤하고 짭짭한 맛

이 난다. 내가 먹은 세비체는 날생선으로 만든 것으

로 옥수수와 함께 먹는 스타일이었는데, 태평양의 파도소리를 듣고 새하얀 파도를 눈으

로 감상하며 먹었기에 더욱 환상적인 맛을 냈던 것 같다. 식사 후 밖으로 나와 넘실 는

파도가 해안에 부딪치는 멋진 광경을 보며 바다 건너 저 멀리에 있을 한국 집이 떠올랐

다. 집 떠난 지 열흘도 지나지 않았는데 집이 그리워지니!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최근 연

구하고 있는 쓰나미가 떠올랐다. 이 주변이 지진 지역인데 만일 쓰나미가 이곳을 덮치면

엄청난 재앙이 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 여행기를 쓰고 있을 때 정말로 페루

밑에 있는 칠레 연안에서 강진이 있었으나 쓰나미 현상은 없었다는 다행스러운 뉴스가

있었다). 깎아지른 절벽 위로 피라플로레스 상업지구의 빌딩들이 자연과 멋진 조화를 이

루고 있는 것도 이곳에서만 감상할 수 있는 환상적인 풍경이었다. 참고로 미라플로레스

는 아침저녁으로‘잉카의 눈물’로 불리는 짙은 안개가 넘나들고 화창한 한낮에는 아름

다운 태평양 해변을 발밑으로 볼 수 있는 해안단구 절벽위 지역에 새로이 건설한 리마의

신시가지로, 현재 중심 상업지구에는 은행과 상점 등의 초현 적 빌딩들이 즐비하다.

다시 버스를 타고 해안단구 절벽위에 만들어진 작은 테마 공원인 사랑의 공원(Parque

de Amor)으로 갔다. 공원에는 두 연인이 잡기 어려운 포즈(?)로 키스하는 동상, 아름다

운 모자이크로 만든 왕관, 바다를 향해 뚫린 하트모양의 창문 등이 있어 연인들이나 신

혼부부에게는 최적의 장소일 것 같았다. 내게는 넓은 태평양을 따라 길게 뻗은 멋진 해

안 경치를 내려다 볼 수 있어 마음에 들었고, 노을 질 무렵 이곳에서 낙조를 본다면 환

상적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윈드서핑을 하고 나온 현지 젊은 청년들이 있어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다음에는 사랑의 공원에서 걸어서 약 10분밖에 걸리지 않는 가까운 곳에 위치한 라르

꼬마르(Larcomar)로 갔다. 라르꼬마르는 미라플로레스의 중심 상업지구에 있는 절벽 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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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라플로레스 지역에 있는 사랑의 공원

라르꼬마르

부분을 깎아 만

든 3층 규모의

복합쇼핑몰로

가이드 말에 따

르면 전 우그

룹의 김우중씨

아이디어로 만

들어지게 되었

다고 한다. 쇼

핑몰 옥상에 해

당하는 광장 길

건너에 이곳의 랜드 마크인 메리어트 호텔이 있었으며, 주변은 각종 고급식당과 호텔이

들어선 현 식 건물로 가득하여 이곳이 페루인가 의구심이 생길 정도로 서구화된 지역이

었다. 라르꼬마르 내부 시설은 미국의 유명 쇼핑몰에 버금가는 시설을 갖추고 있었으며,

쇼핑몰 어느 곳에서나 바다가 보이도록 설계되어있어 전망이 근사하였다. 일행 중 여성

분들이 쇼핑을 하는 동안 나는 선배와 함께 쇼핑몰을 한 번 둘러보고 다리도 아프고 해

서, 무료하게 부인들을 기다리는 남성 일행들과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동안이지

만 오랜만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버스를 타고 식민시 에 구축된 거리와 건축물 들이 몰려 있는 리마 센트로 구시가지

로 향하였다. 원래 리마 센트로의 중심 아르마스 광장으로 가려고 하였는데, 라르꼬마르

에서 여성 일행의

쇼핑이 다소 예정

보다 늦어지고, 도

로까지 교통체중으

로 막혀 할 수 없

이 몇 불록 떨어진

곳에서 내려 걸어

가기로 하였다. 남

문 안경점과 비

슷하게 안경점 거

리를 통과해서 걷다보니 눈에 확 들어오는 바로크 양식의 멋진 성당과 그에 못지않은 로

마식 건물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었다. 한 마디로 횡재한 셈이었다. 바로크 양식의 멋진

성당은 <자비의 성모 성당과 수도원>이라는 긴 이름을 가지고 있으나 보통 la Merced 성

당으로 불리는데 1536년 공사를 시작하여 1614년 완공되었다고 하는데 장식이 눈에 확

띌 정도로 화려하다. 맞은 편 건물은 예전 스페인 귀족이 살던 곳으로, 지금은 페루에서

유명한 Oechsle 백화점이라고 한다. 두 건물 사이 작은 광장에 성당을 바라보는 라몬 카

스틸랴 동상이 있었다. 참고로 그는 1845년부터 1862년까지 세 차례나 페루 통령을 역

임한 사람으로 진보정책을 실시하고 자유주의헌법을 제정하는 한편, 운이 좋게도 구아노

(새똥 천연비료) 판매에 따른 호황으로 근 국가의 기초를 확립시켰다고 한다.

갑자기 수많은 인파가 다니는 활기찬 모습의 거리로 들어섰는데, 바로 리마의 명동이

라는 유니온(la Union) 거리였다. 이 거리는 아르마스 광장과 산 마르틴 광장을 잇는 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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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Merced 성당 입구 모습 및 맞은 편 Oeschsle 백화점

리마의 명동인 ‘라 유니온’거리의 활기찬 모습

고 번화한 보행자 거리로 길

양쪽으로 카페, 안경점, 식

품점, 아이스크림 가게, 구

두 가게 등 다양한 상점들이

즐비하였다. 가이드 말에 따

르면 예전에는 다양한 물건

들을 파는 노점상까지 가득

했었는데, 지금은 치안과 질

서유지를 목적으로 노점이

금지된 상태라 다소 나아지

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소매

치기가 많으니 조심하라고

다소 겁을 주었다.

드디어 리마 센트로의 중

심인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as)으로 나왔다. 이 광장은 1998년부터 마요르 광장(Plaza Mayor)이란 이름을 같

이 사용하고 있으며, 1535년 쿠스쿠에서 고산증으로 고통을 받다 리마로 수도를 옮기기

로 결정한 피사로가 이 광장을 중심으로 도시를 건설해 나갔던 역사적인 광장으로, 광장

주위에 남아있는 통렬궁과 성당을 비롯한 식민시 의 옛 건물들이 당시 사회의 모습

을 잘 변해 주고 있었다. 남미의 전형적인 모습을 한 리마 성당(la Catedral de

Lima)은 광장 남동쪽에 있었다. 피사로가 직접 손으로 초석을 놓아 건설하기 시작했다는

이 성당은 페루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으로, 1555년 작은 성당으로 지어졌다가 그 후

주교가 지위에 걸맞은 성당을 원해 스페인의 세비야 성당을 모델로 다시 짓기 시작

하여 엄청난 공사비 부담으로 지지부진하게 진행되다가, 1746년 지진으로 파괴된 것을

1755년 원형 로 복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멕시코시티 성당과는 달리 높은 두 탑사

이가 너무 벌어진 것에 비해 거물 높이가 낮아서 중앙부분이 상 적으로 위축된 느낌

이었다. 성당 안에 피사로의 유체로 알려진 미라가 유리상자에 안치되어 있다고 하여 유

명한 성당이기도 하다. 내게는 이 광장 주위 건물들 중에서 성당 옆의 다소 현 적인

모습을 한 정부종합청사 같은 노란색 관공서(?) 건물이 더 친근하고 멋지게 느껴졌다.

광장 북동쪽에는 위병들이 정문 앞을 지키고 있는 통령궁(Placio de Gobierno)이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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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 대성당 및 멋진 관공서 건물

대통령궁 및 아르마스 광장 분수대의 물을 뿜는 사자조각상

다. 이 궁은 원래 피사로가 1541년 암살되기 전 마지막 몇 년을 살았던 곳으로, 1938년

개축하였다고 하는데 이제는 다소 현 적인 느낌이 풍기는 건물로 되어 있었다. 또한 광

장 한 쪽에는 분수 가 있는데 물을 뿜어 는 사자조각상들이 다소 특이한 포즈를 취하

고 있었다.

통령 궁 옆 골목길을 빠져 나가다 보니 멋진 건물이 눈에 띄어 사진에 담았는데 여

행기를 쓰는 이 시점까지도 어떤 건물인지 알 수가 없다.

가이드를 따라 조금 가다 보니 약 7만 명의 뼈를 담은 지하무덤 카타콤(Catacombs)이

있는 것으로 유명한 산 프란시스코 성당이 나

타났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길을 걸

어가면서 보니 알려진 로 성당 앞 광장에는

수많은 비둘기 떼가 있었으며, 1567년부터 바

로크 양식과 안달루시아 양식을 받아들여 7년

동안 지워졌다는 성당 외관장식도 볼만하였다.

시간이 허락하면 안으로 들어가 좀 더 자세히

보고 싶었지만 일행을 쫓아가느라 아쉽지만 포

기하였다.

버스에 올라 호텔로 가면서 패키지여행의 단

점을 절실히 느꼈다. 아직 여행의 절반도 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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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의 산 프란시스코 성당

지 않았는데 몸의 피

로로 감기에 걸려 힘

들어하는 사람들이

일행 중에서 절반 이

상 나타나기 시작하

였다. 원래 계획은

저녁식사를 하고 호

텔로 돌아가는 것이

었지만 , 아침 일찍

출발하였고 비행기도

탔기 때문에 호텔로

돌아가 잠시나마 휴

식을 취한 후에 저녁

식사를 원하는 사람

들이 다수를 차지하

였다. 할 수 없이 먼

저 호텔로 돌아갔다

저녁식사를 하러 가

기로 하고 호텔로 향하였다. 이틀 만에 돌아 온 호텔인데도 마치 한국 서울 내 집에 돌

아온 듯 반가웠다. 방을 배정 받고 이틀 전 맡긴 짐을 찾아 방으로 올라가 잠시 휴식을

취하였다. 고원지 인 쿠스코 및 마추픽추에서 심한 고통을 호소했던 다리의 상처도 해

발고도가 낮은 이곳에 와서는 문제가 안 되는지 다리의 고통도 사라졌다. 그러나 상처부

위를 살펴보니 이틀간의 고산지 생활로 인해 상처부위가 상당히 벌어져 있었으나 무사

히 견뎌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리 상처에 여성이 머리 감을 때 사

용하는 샤워 캡으로 다리 상처 부위를 감싸고 오랜 만에 전신 샤워를 하고 상처부위를

소독약으로 치료한 후, 저녁식사를 하기 위해 호텔 로비로 내려와 일행과 함께 식사를

하러 호텔 밖으로 나갔다. 저녁 식사는 오랜만에 삼겹살과 된장, 김치찌개가 나오는 한

식이었다. 지난 이틀간 고산증에 비하기 위해 금주를 하였기에 술도 고프고, 이런 좋

은 술안주에 소주가 빠질 수 없어 한국서 부터 가져 간 소주를 마시며 식사를 하였다.

다시 호텔로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내일 새벽 나스카로 향하기 때문에 일찍 잠을 청하

였다.

3월 13일(목), 열번째날 바에스타섬 및 와카치나 사막 관광새벽에 일어나 아침 식사를 한 후, 짐을 가지고 내려와 큰 짐은 호텔에 맡기고 배낭만

을 등에 지고 버스에 올랐다. 아직 어두운 리마시내를 벗어나 버스가 판아메리카 고속도

로(Pan-American Highway, PAH)로 들어서서 남쪽으로 달리기 시작하자 날이 밝아졌다.

팬아메리칸 하이웨이는 알래스카의 페어뱅크스에서 아르헨티나 남단까지 남북 아메리카

13개국을 종단하는 2만 6천 km가 넘는 국제 도로로, 현재 파나마와 콜롬비아 국경부근의

다리엔 지역이 환경문제로 약 87km 끊어져 있지만 지구상에서 가장 긴 고속도로임에 틀

림없다. 이 고속도로 건설의 목적은 각국을 잇는 주도로를 형성하여 교통과 물류이동을

위한 국가차원의 도로건설을 줄여 결과적으로 전체 아메리카 륙의 자연을 보호하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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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카스 펭귄 동상 앞에서

파라카스 어촌 마을 풍경

것이다. 얼마 전 한국도로공사에서 페루

구간 톨게이트 요금징수 시스템을 설치하

였다고 하니, 우리나라와도 관계가 있는

도로이다. 리마를 벗어나서 고속도로는 사

막의 해안가를 따라서 만들어졌는데, 황막

한 땅에 양계장도 눈에 띄었으며, 군데군

데 경치 좋은 곳에는 별장 같은 리조트도

있었다. 또한 사막에 건설되어 있는 SK 이

노베이션의 LNG 공장도 눈에 띄었다. 피스

코 근처에 오자 사막 땅에 포도 농장이 많

이 눈에 띄었다. 가이드 말로는 칠레산 포

도주가 우리나라에서는 잘 알려져 있지만

이곳 피스코에서 만드는 페루산 코냑도 유

명하다고 하였다. 피스코에서 고속도로에서 내려와 오랜만에 커피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다시 버스에 올라 국도를 달려 파라카스로 향하였다. 리마 호텔을 떠난 지 약

4시간 정도, 피스코에서 약 반시간 정도 걸려 빠라카스에 도착하였다. 여행사 안내서에

는 기상악화로 물개섬 관광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되어 있었는데 다행이도 날씨가 화창

하였다.

빠라카스는 작은 어촌 도시(마을)로 작은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물개섬인 바예스타섬이

인기 관광지로 되면서 우리에게 알려지게 되었지만, 역사적으로는 어제 페루 인류·고고

학 박물관에서 보았던 것과 같이 방직기와 직물(천)이 출토되어 이 지역에 인류가 오래

전부터 살고 있음이 입증된 곳이다. 마을은 전체적으로 조용하고 평화로운 어촌 마을로,

이제는 어업보다는 관광산업이 이 마을의 경제를 이끌고 있다. 이 마을에서 다소 조잡

하게 만들어져 있는 펭귄 동상이 먼저 눈에 띄었다. 물개가 아니고 웬 펭귄! 하는 생각

이 들었지만 물개 보다는 펭귄이 더 상품 가치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은

물개섬과 같이 페루 해안에는 물개(바다사자)는 물론이고 펭귄과 펠리컨 같은 다양한 해

양생물이 살고 있다. 적도와 가까운 페루 해안에 펭귄이 산다면 언뜻 믿기 힘들지만 실

제로 페루의 해안에 흐르는 차가운 훔볼트 해류 덕분에 여러 군도에 펭귄이 서식하고 있

다. 따라서 페루 해안은 해양자원의 보고이고 그래서 해안을 따라 수많은 어시장도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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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카스 보트 선착장 입구

야생성을 잃어버리고 애완용(?)이 된 펠리컨

서 있다. 항구 식당 앞 좁은 해변

에는 이미 야생성을 상실한 펠리컨

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큰 몸

짓으로 엉금엉금 사람을 졸졸 따라

다니며 사진모델(?)을 하고 있었

다. 자세히 보니 사람이 먹이로 펠

리컨을 조종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와 같이 페루 해안 주변 어시장

에는 어부들이 버리는 어류 부산물

들을 먹기 위하여 바다사자와 펠리

컨 떼가 몰려든다고 한다. 또 하나

내 관심을 끈 것은 바닷가에 세워

져 있는 십자가였다. 그런데 십자

가에 어부들이 배를 수선하고 고기

잡을 때 사용하는 각종 연장들, 해와 달, 성

경책, 해골 마스크, 예수를 그린 것 같은 초

상화 등이 장식되어 있어 놀라웠다. 안전에

한 희망(?)을 신에게 바라는 마음은 같으

나 이들은 유일신이 아닌 만신을 숭상하는

것 같다. 한국 기독교인이 보면 불경하다고

할 정도로...

항구 식당에서 보트를 탈 복장으로 갈아입

은 후, 선착장에서 기다렸다. 배낭을 메고

비옷을 입은 내 모습이 마치 임산부 같아 우

스웠지만 달리는 배에서의 추위와 바닷물 세

례를 받지 않으려면 할 수 없었다. 특히, 나

는 다리의 상처도 문제가 되므로. 다소 늦게 나타난 30인승 모터보트를 우리 일행만 단

독으로 타고 바다로 나섰다. 조금가자 사막형 섬에 나스카 지상화 같은 커다란 그림이

새겨져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아마 직조기와 천이 이곳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는데 아마

그들이 만들어 놓은 것일 것이라는 생각이 언뜻 들었지만, 그렇다면 파라카스 문명이 나

스카 문명보다 이전이므로 이것이 더 유명해져야하는데 그렇지 않은 것을 보니 후세에

이곳 사람들이 관광 목적으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판단하였다. 작은 갈라파고스라 불리

는 물개섬인 바예스타섬은 파라카스에서 배로 약 25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었는데, 몇

개의 돌섬이 모여 있는 우리나라 독도 정도의 크기로 물개가 몇 백 마리는 있겠구나하고

예상하였는데, 배가 섬으로 다가갈수록 엄청난 소리가 들리기 시작하며 눈앞에 도저히

믿기지 않을 정도의 엄청난 물개 떼가 나타났다. 배가 섬 주위를 도는 동안 여기저기에

산재되어 있는 엄청난 숫자의 물개와 함께 몇 마리의 펭귄과 펠리컨 등 각종 해양 조류

를 발견하고는 놀라움과 함께 내 눈을 의심할 지경이었다. 동물원에서나 볼 수 있는 것

을 야생상태의 모습을 이곳에서 볼 수 있다니, 한마디로 놀라움 그 자체였다. 가이드 말

로는 이곳 섬에 약 2만 마리 이상의 물개가 있다고 한다. 배가 동굴을 통과해 갈 때는

물개들이 부르짖는 포효 소리로 고막이 아플 정도였다. 큰 물개들이 바위 중턱에 멋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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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라카스 해변에 세워져 있는 십자가

포즈를 취하고 일광욕을

하는 모습, 데이트 하는

모습, 물개 학교에서 새

끼 물개들이 수영을 배

우는 모습(?) 등 여한이

없을 정도로 물개들의

멋진 모습을 보고 느꼈

다. 접안 시설 같은 것

이 눈에 띄어 배가 가까

이 다가갈 때 자세히 보

니 새똥(구아노)을 처리

하기 위한 시설로 엄청

난 악취가 동시에 엄습

하였다. 문득 구아노가

페루의 주요한 수출품

중의 하나로 페루 근

화에 기여하였으며, 이

로 인해 소위 ‘새똥전

쟁’이 있었다는 얼마

전 알게 된 기사가 생각

났다.

지난 100여 년간 우

리는 화학비료를 사용했

지만 그보다 오래전 남

미에서는 새똥을 사용하

여 농작물에 비료로 사

용하였다. 특히 페루에

는 수만 년 동안 새똥이

쌓여서 수백 미터에 이

르는 새똥이 쌓였는데 이것을 구아노(스페인어:guano, 케추아어의 ‘wanu’에서 유래)라

고 부른다. 현재 중요한 구아노 산지는 남미(칠레, 페루, 에콰도르)나 오세아니아 제국

(나우루 등)이다. 구아노는 잉카시 부터 사용된 천연비료로 인산 함량이 높아서 식물을

키우기에 좋아, 지금 유기농식품과 함께 각광받고 있다. 근데 이 새똥을 둘러싸고 100년

전에 지금의 석유를 둘러싼 전쟁과 같은 상황이 실제로 벌어진 적이 있었는데 그 전말은

다음과 같다.

유럽에서 도시가 팽창하고 인구가 늘어나면서 식량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시

도가 있는 와중에 남미에 진출한 유럽인들의 눈에 구아노가 들어왔다. 잉카인들이 사용

했다는 천연비료로 뛰어난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이로써 유럽에서는 1840년 부터 수많

은 배들이 구아노를 실어 날랐다. 페루는 새똥을 팔아서 막 한 부를 축적하기 시작했

다. 페루는 이 돈으로 규모 농장 사업을 벌이는데 점점 넓어지는 농장에 더 큰 자본이

들어가다 보니 아직 캐내지 않은 쌓여있는 구아노를 담보로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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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섬인 바예스타섬의 멋진 장관

물개섬인 바예스타섬의 멋진 장관

본을 빌리게 된다. 그런데 이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게 되고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

르게 된다. 그리고 결국 페루는 모라토리엄을 선언하고 구아노섬들에 한 국유화를 선

언하기에 이른다. 페루가 담보로 맡긴 엄청난 구아노를 차지하고 있던 유럽열강들은 벙

찌게 되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지난 역사에서 수없이 많았는데, 이는 제3세계국가 정치

인들의 문제이기도 하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탐욕 때문이기도 했다. 이미 엄청난 양의 구

아노를 실어 날랐지만 비료가 매년 사용되는 것이기에 이미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던

것을 힘 있는 유럽의 강국들이 포기할 리 없었다. 그동안 구아노를 실어 나르던 곳보다

많은 구아노를 발견했는데 이것이 페루 국경과 맞닿아있었다. 이것을 차지하기 위해서

영국과 프랑스는 칠레가 그 땅을 차지하게 만들어서 그것을 차지하고자 칠레를 지원하기

시작했다. 칠레 입장에서도 나쁠 것이 없었는데, 주변의 땅을 모두 차지하고 자원은 줘

버리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영국의 해군과 프랑스의 육군을 지원받은 칠레는 페

루와 함께 볼리비아까지 구아노섬 바깥으로 어내게 되었는데 이것을 일러 ‘새똥전

쟁’이라고 한다. 새똥전쟁의 결과는 아직도 페루, 칠레, 볼리비아의 국경을 결정짓고

있다고 하는데, 이 전쟁의 후반이 더욱 재미있다. 즉, 페루와 칠레, 볼리비아의 새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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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섬인 바예스타섬의 멋진 장관

쟁에서 초반 6개월 동안은 페루가 유리했다고 하나, 시간이 지나며 영국과 프랑스의 지

원을 받은 칠레가 당연히 유리해지기 시작했고 결국 페루의 그라우 제독이 패하면서 칠

레가 분쟁지역을 장악했다. 그런데 칠레는 여기서 전쟁을 그만두지 않고, 1881년 1월에

는 페루의 수도인 리마를 점령하여, 새똥전쟁으로 페루전체가 초토화되는 상황에 이르렀

으며, 이 시기에 칠레는 페루에서 상당한 보물을 훔쳐갔다고 한다. 하지만 오랜 시간 페

루가 저항했기 때문에 전쟁은 쉽게 끝나지 않다가 1883년 평화조약이 체결되면서 끝이

났다. 물론 당시 우위에 있었던 칠레가 결국 구아노가 많은 분쟁지역을 볼리비아와 페루

로부터 양도받기로 하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물개섬에 한 짙은 아쉬움을 남기고 파라카스로 돌아와 아까 옷을 갈아입었던 식당에

서 점심식사를 한 후, 다음 예정인 와카치나(Huacachina) 오아시스 및 샌드카 사막투어

를 위해 이까(Ica)로 향하였다. 이까로 가는 도로 주변은 사막 지형으로 군데군데 포도

농장 같은 과수 시설이 눈에 띄었지만 부분 황량한 사막이었다. 그런데 이까에 접근할

수록 지붕이 없는 그저 거적 같은 것으로 울타리만 친 상자형 난민집(?) 들이 많이 눈에

띄었다. 또한 길가에 비닐로 만든 웅덩이가 가끔 눈에 띄었는데, 가이드 말로는 어이없

게도 물차가 이들 난민들에게 물을 팔아먹으려고 만들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드디어 오

늘 우리가 동심으로 돌아가 마음껏 즐길 오아시스 마을 와카치나 사막이 여기쯤인가 할

수 있는 언덕 형태의 사막이 듬성듬성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이까 도시가 나타났다. 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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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개섬인 바예스타섬의 멋진 장관

와카치나 사막의 샌드보드

와카치나마을 생명수 발원지

는 리마에서 남쪽으로 약

300km 떨어진 사막 한가

운데 있는 도시로, 생각

보다 작은 도시로 관광객

이 나스카 지상화를 보러

가는 길에 둘렀다가는 근

처에 있는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 동네인 와까치

나의 관광산업이 주요한

경제를 차지하고 있다.

이까 도심을 통과하여 멀

지 않은 곳에 자갈로 이

루어진 사막 지역에 우리

가 알고 있는 고운 모래

로 이루어진 넓은 와카치

나 사막이 우리를 반겼다. 와카치나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매우 조그마한 오아시스 마을로 사막 샌드카와 샌

드보드 체험 관광이 이 마을의 주된 산업이었다. 샌드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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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치나 사막 샌드카와 사막 전경

와카치나 사막 오아시스 전경

를 타러 가다 보니 오아시스의 수원지에 해당하는 이 마을의 생명수 발원지(샘)을 나타

내는 기념물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 일행은 몇 명씩 그룹을 만들어 샌드카에 올라탔다.

지프를 개량해 만든 4륜구동의 샌드카는 눈에 들어가면 아플 정도의 잔모래로 이루어진

사막을 모래바람을 일으키며 질주해 갔다. 피로가 싹 풀리며 스릴도 만끽할 수 있는 시

간이었다. 사막 정상에 올라 샌드카에서 내려서 사막을 둘러보니 상당히 넓은 면적의 사

막이었다. 다리 상처 때문에 아쉽게도 나는 샌드보드 타는 것을 포기하고, 일행이 샌드

보드에 엎드려 급경사의 사막 아래로 미끄러져 내려가는 광경을 지켜보는 것으로 만족하

였다. 몇 차례 샌드보드 체험을 마친 우리 일행은 다시 샌드카를 타고 오아시스 마을로

돌아왔다. 언덕위에서 본 조그만 오아시스를 둘러싸고 있는 와카치나 마을이 아늑하고

평화롭게 느껴졌는데, 이것은 관광객인 나의 감상적인 느낌으로 아마 저들은 살아가기

위해 그저 악조건인 이곳을 생활의 터전으로 삼아 열심히 살아가고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다시 버스에 올라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나스카로 향하였다. 이까에서 나스카로 가기

위해서는 험준한 사막형 산맥을 2개 넘어야하는데, 출발할 때 이미 오후 늦은 시간에 접

어들어 험준한 산맥 1개를 넘어 강을 끼고 있는 오아시스 마을에 도착하였을 때는 어두

워지기 시작하였다. 또 하나의 산맥을 넘어 또 다른 마을에 도착하여 오늘 저녁 먹을 과

일을 산 다음 이까를 떠난 지 약 3시간 걸려 나스카에 무사히 도착하였다.

나스카 도심에 위치한 일본식 분위기와 효율성으로 만들어진 리조트형 호텔인 Ca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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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카치나 사막 샌드카와 사막 전경

Andina Classic에 짐

을 풀고 저녁식사를

위해 밖으로 나갔다.

저녁 식사는 피자, 치

킨, 비프 중 선택하는

것이라 나는 칸쿤에서

가져 온 술을 반주 삼

아 비프로 식사를 하

고, 호텔로 돌아와 샤

워를 하고 나니, 바닷

물과 모래가 묻은 몸

이 개운해졌다. 오늘

은 그다지 많이 걷지

않았고, 고지 도 간

적이 없지만 버스에

장시간 앉아 있었고

또한 바닷물과 모래로

오염(?)되었을 다리상

처를 정성껏 소독하였

다. 잠이 오지 않아

나스카 시내를 잠시

산책하였다. 어두워

호텔로부터 멀리까지

는 가지 않았지만, 노

래가 흘러나오는 바,

젊은이들이 데이트하는 카페 등도 눈에 띄었으나 이곳의 밤문화는 체로 조용하다는 느

낌이었다. 호텔로 돌아와 내일 드디어 책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보던 나스카 지상화를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는 설렘을 가지고 잠이 들었다.

3월 14일(금), 열한번째날 나스카 라인(지상화) 관광 나스카 지상화 또는 나스카 라인으로 불리는 일련의 선과 도형은 페루 남부 태평양

연안, 일반적으로 나스카 평원이라 불리는 황량한 사막위에 18가지의 동물, 식물, 곤충,

인간, 물고기, 새와 함께 100개가 넘는 기하학 도형의 지상화가 장장 310 km에 걸쳐 그

려져 있다. 이 지상화는 나스카 문명 시 인 략 기원전 900년경부터 서기 800년 사이

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단순히 막 기와 두 손을 사용해서 사막 표면의

검은 돌들을 걷어내고, 약 30센티미터 깊이로 파서 그 속에 있는 밝은 색깔의 흙이 드러

나 보이도록 한 다음, 걷어낸 돌들을 옆에 둑처럼 쌓아놓는 아주 단순한 방법으로 만들

어졌는데, 비가 오지 않는 이 지역의 기후 덕분에 그 형태를 유지해왔다. 그림의 크기는

나무(70m), 손(50m), 벌새(70m), 콘도르(120m), 원숭이(90m), 개(50m), 플라맹고(285m),

앵무새(230m), 거미(46m), 고래(65m)와 같이 체로 4~300미터이고, 도형의 경우는

10,000 미터나 되는 것까지 있을 정도로 상당히 거 하다. 따라서 나스카 지상화는 상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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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카 공원 바닥에 새겨진 나스카 라인 및 호텔 주변 거리 풍경

에서만 선명하게 확인 할 수 있는데 드디어 오늘 그것들을 직접 내 눈으로 확인할 수 있

는 날이 밝았다.

새벽 4시 반에 기상하여 식당으로 가니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아직 여명의 호텔 주

변 나스카 시내를 산책하였다. 나스카는 사막에 있는 도시였지만 인구 5만의 도시로 어

제 거쳐 온 도시들에 비하면 도시다운 규모도 가지고 있으며, 비교적 차분한 중소 도시

의 형태를 가지고 있었다. 호텔 인근 공원을 거닐다 바닥에 선명하게 인공적으로 새겨진

나스카 지상화를 발견하고 기뻤다. 오늘 날씨는 좋은 것 같으니 어린 시절 과학책이나

만화에서 우주인이 만들었다는 신비의 나스카 라인을 내 눈으로 직접 제 로 확인할 수

있기를 기원하였다. 나스카는 여느 도시와 같이 메인 도로 주변은 그런 로 깔끔한 분위

기를 보였지만, 골목길로 들어서면 우리나라 60년 분위기를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었는

데 내게는 도리어 이쪽이 더 친근하게 느껴진다.

아침 식사는 호텔 뷔페식이었지만 오랜만에 일본풍으로 종류는 몇 가지되지 않지만 깔

끔하고 실속 있게 준비한 것이 마음에 들었다. 호텔 체크아웃을 마치고 버스에 올라 나

스카 공항으로 향하였다. 나스카 공항은 국내선 공항도 아닌 단지 나스카 라인을 관광하

기 위한 경비행기만을 위한 매우 작은 공항으로 도심에서 10여분 떨어진 황량한 자갈 사

막인 벌판에 위치해 있었다. 그런데 공항에는 항공사가 꽤 많이 있었으며, 돌아가면서

관제탑의 지시 로 경비행기를 띄운다고 하였다. 우리 일행이 17명이라 두 로 나누어

타야하므로 두 팀 간에 기다리는 시간이 꽤 된다고 하였다.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아직

발권 업무가 시작되지 않아 합실에서 기다리기 무료해 공항 내에서 경비행기 조종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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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탔던 경비행기와 실제 나스카 라인 부근 항공사진

조종사와 함께, 멋지게 변조한 선전용 사진, 나스카 시내 모습

함께 기념사진도 찍고, 나스카 라인에 한 안내판과 책자도 살펴보았다. 그런데 항공사

안내판에 소개된 나스카 라인은 천연색으로 나스카 라인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었는데,

공항 바깥 한쪽 벽면에 걸려있는 실제 항공사진에는 나스카 라인이 알아보기 어려울 정

도로 불투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순간 실제로 이러 상태라면 나스카 라인을 눈으로 제

로 확인하기 어렵겠다는 불안한 느낌이 들었는데, 이것은 조금 뒤에 어느 정도 사실로

판명이 되었다.

발권이 시작된다고 하여 항공사 카운터로 가니, 경비행기 탑승은 탑승자의 무게 등을

맞추어 인원별로 경비행기 탑승을 진행시킨다며 각자의 체중을 재고 조금 기다리자 가이

드가 탑승권을 나눠 주는데, 우리가 12인승 경비행기를 타기 때문에 일행 중 나를 포함

한 5명은 다른 승객들과 함께 다른 비행기를 타는 것으로 정해졌고 내 좌석번호는 운 좋

게도 1번이었다. 조종사 바로 뒷좌석이므로 제 로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행

1진이 먼저 경비행기를 타라 가고 나머지 일행과 합실에서 기다리며 보니 내가 탈 비

행기에는 다른 한국 여행사를 통해 온 한국인들과 일본인 2명이었다. 그런데 타 여행사

에서 온 한국인 남성이 30분 비행하는 시간을 늘려주고 또한 다 잘 보이게 비행해 달라

고 조종사에게 부탁하기 위해 1불씩을 걷어서 팁으로 주기로 자기네 팀은 정하였다며 우

리보고도 1불씩을 내라고 하였다. 일종의 뇌물을 쓰자는 거였다. 참 한국적인 사고구나

하면서 이곳에서도 그런 것이 통할까 하는 생각이 들며 그다지 탐탁하지는 않았지만 1불

을 냈다. 재미있게도 나스카 공항에서도 형식적으로는 일반 공항에서의 수속과 똑같은

시스템을 따르고 있었다. 안내 방송이 나와 여권 및 탑승권 검사와 함께 X레이 검사 를

통과해 안쪽 기실로 가서 조금 기다리니 공항 직원이 우리 일행을 비행기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었는데, 가면서 보니 우리 일행 1진 팀이 그 비행기에서 내리고 있었다. 이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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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카라인 탑승권영수증

비행기에서 내려 다 본 나스카 평원

고 세스나 경비행기에 올라 1번 좌석에 앉으려고 보니 아

까 1불씩 걷은 남성이 이미 내 좌석에 앉고서는 막무가내

로 자기가 이 좌석에 앉아야 된다는 것이었다. 좁은 비행

기 안에서 한국인끼리 다툴 수도 없어 할 수 없이 그 남성

좌석에 앉았지만 기분이 상하였지만 애써 잊기로 하였다.

비행기가 활주로로 가서 잠시 기하더니, 이윽고 활주로

를 힘차게 달랴 하늘로 날아올랐다. 드디어 내 눈으로 직

접 나스카 라인을 확인하는 순간이 오는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다소 흥분도 되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나스카

평원은 나스카 강 주변으로 도시와 좁은 초원이 형성되어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나스카 문명이 있었다는 것이 선

뜻 믿어지지가 않을 정도로 사람이 살기 어려운 자갈밭형

사막으로 마치 서해안 바다 갯벌을 보는 것 같이 복잡한

주름살 형상을 나타내고 있어 나스카 라인을 찾는 것이 마

치 숨은 그림 찾는 것 같았다. 드디어 거 한 삼각형, 사

각형 도형을 내 눈으로 직접 보았을 때는 놀라움 그 자체

로 탄성이 나도 모르게 나왔다. 조금 지나자 조종사가 유명한 나스카 지사와의 이름을

일본말로 알려주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너무 복잡한 선들로 뒤엉켜 있는 사막에서

아까 항공사지에서 본 거와 같이 너무 흐리게 보이는 나스카 지상화를 제 로 확인하기

가 어려웠다. 겨우 몇 가지 나스카 지상화를 확인하고 내 카메라로 담을 수 있었으며,

근처 판아메리카 고속도로를 달리는 컨테이너 운반트럭과 비교해 볼 때 지상화의 엄청난

크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눈 깜짝할 사이에 30분이 지났는지 항공기는 공항으로 돌아가

기 시작하였다. 너무나 아쉬워 아까 팁도 주었으니 한 바퀴 더 돌고 가지 않을까 기 도

하였지만 허사였다. 비행기에서 내리며 기 가 컸었던 만큼 너무나 허무하여 1불씩 걷고

내 좌석을 억지로 차지한 남자를 향해 ‘일본 관광객만 좋은 일 시켜줬군요’하고 한마

디 하였다. 공항 합실로 오니 현지 가이드가 각자의 이름이 들어간 나스카 라인 경비

행기 탑승 인증서를 일행에게 나누어 주었다. 좋은 기념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 올라 장장 8시간 걸린다는 리마로 돌아가는 귀경길(?)에 올랐다. 나스카 시내

를 벗어나 어제 왔던 길을 되돌아 달리다 보니 아까 항공기에서 보았던 도로변에 위치한

전망탑이 나타났다. 오늘 비행기를 일찍 탔기 때문에 일정상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버스

를 잠시 정차해 실제 나스카 라인을 가까이에서 접할 수 있는 경험을 가이드가 줄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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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스카라인 경비행기 탑승 인증서

라고 기 하였는데 아쉽게도 그냥 지나쳤다. 현지 가이드야 지겹도록 보아 흥미가 없을

지 모르지만 우리와 같은 관광객은 평생에 한 번 오는 것인데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못

하는 가이드의 배려 부족에 다소 실망하였다.

버스에서 나스카 라인이 어떻게 발견되었고,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조사된 내용을 떠

올려 보면서, 조금 전 내가 직접 본 나스카 라인을 왜 만들었을까를 내 나름 로 추정해

보기로 하였다.

나스카에 불가사의한 개천이 다수

존재한다는 사실은 16세기~17세기의

기록에도 등장하였으며, 1927년에 페

루의 고고학자 헤스페가 현지 조사를

벌였다. 그러나 그는 조사 보고서를

발표하지 않고 있다가, 1930년에 개설

된 리마와 아레키파 간의 노선을 비행

하던 항공기 조종사들이 나스카 사막

에 널려 있는 수많은 수수께끼 같은

기하학적 도형을 발견한 후 이것이 세

상에 알려지게 되었을 때인, 1939년에

뒤늦게 '도형(지상화)은 종교적인 의

식을 위해 사용된 고 의 신성한 도로

'라는 간단한 보고서를 발표하였다. 그러나 헤스페의 보고서에는 가설을 구체적으로 입

증할 만한 근거가 전혀 없어 설득력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헤스페의 보고서는 그다지 주

목받지 못하다가 때마침 제2차 세계 전이 발발하는 바람에 다른 자료들 속에 섞여 사장

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1941년 미국의 역사학자인 폴 코소크는 아내와 함께 나스카를

방문해서 지상화를 둘러본 뒤에 자신의 견해를 정리한 보고서를 학회에 보냈는데, 그는

동짓날 해가 어떤 특정한 개울 방향으로 떨어지는 것을 우연히 발견하고 지상화와 그 주

변의 직선이 천문학적인 현상과 관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소크는 자신의

주장을 입장할 만한 데이터를 얻지 못한 채 귀국할 수밖에 없게 되자, 독일에서 이주해

온 마리아 라이헤에게 연구를 의뢰했다. 라이헤의 연구는 제2차 세계 전으로 잠시 중단

되었다가 종전 후 다시 재개되었는데, 그녀는 지상화에 한 적극적인 조사와 연구를 통

해 적지 않은 사실들을 밝혀냈으며, 또한 그 결과들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연구 결

과에 따르면, 새와 물고기 같은 동물 그림보다 기하학적인 도형이나 직선 그림이 압도적

으로 많으며, 또 몇몇 직선은 '방사의 중심'이라는 어떤 특정한 지점으로 집중되고 있다

는 것이다. 그리고 지상에 그려진 도형의 거의 부분은 하나의 선으로만 이루어져 있는

데, 이는 붓글씨를 쓸 때 붓끝을 떼지 않고 한 번에 글을 써내려간 것처럼 도형이 그려

졌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통해 라이헤는 나스카의 지상화가 단히 큰 천체운행

도와 성좌를 나타내는 표일 것으로 생각했다. 즉, 그녀의 주장에 따르면 직선은 태양과

달, 별의 천체 방향을 표시하는 것이며, 지상화는 성좌를 나타낸다는 것이었다. 라이헤

의 주장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지닌 것으로 학회에서도 주목을 받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지상화와 천체의 관련성이 희박하다고 지적하는 연구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실

제로 나스카의 직선은 특정한 방향으로 집중되어 있지 않고, 모든 방향을 향해 뻗어 있

기 때문에, 지상화가 천체관측용이었다는 주장은 상당 부분 설득력을 잃게 되었다.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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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창문으로 내가 직접 찍은 나스카 지상화(숨은 그림 찾기임)

고 다른 몇몇 학자들은 나스카의 기후나 풍토 자체도 천체 관측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

하며, 설사 지상화가 천체의 운행과 관계가 있다고 해도 밤에는 거의 보이지 않는 지상

의 선이 천체 관측의 역할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미국의 천문학자

인 제럴드 홉킨스가 나스카의 지상화와 천체운행과의 상관관계를 컴퓨터로 분석해본 결

과, 둘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으며, 이로 인해 천체운행도설

은 결정적인 타격을 받게 되었다. 물론 홉킨스의 분석에도 문제점은 있었는데, 특히 모

든 직선을 완벽하게 데이터화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의 상이 되었다. 그러나 오히

려 천체운행도설의 신뢰성에 중 한 의문이 있다는 사실만큼은 틀림없는 사실로 받아들

여졌기 때문에, 그 후의 연구는 방향 전환을 할 수밖에 없었다. 천체운행도설을 주장한

라이헤 외에도 다수의 사람들이 나스카의 수수께끼를 설명하기 위해 다양한 주장들을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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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까의 택시 및 체인 레스토랑

놓았다. 그 중에는 나스카의 지상화를 UFO에게 보내는 메시지라거나 고 나스카인들이

기구를 타고 올라가 관측용으로 그렸을 것이라고 보는 다소 색다른 주장도 있다. 그러나

UFO에게 보내는 메시지 주장은 근거가 박약한 픽션에 불과하고, 또한 기구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견해에 따라 고 나스카에서 입수 가능한 모든 재료를 사용해 기구를 만든 다

음 날게 해보았지만, 기구의 비행 가능성과 지상화의 관계에 해서는 도무지 설명이 되

지 않으므로 기구설 역시 설득력을 얻기 힘든 주장으로 보인다. 부분 이러한 가설들은

높은 장소나 상공에서 관측하지 않으면 지상화를 그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오해에 기반

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 작은 밑그림을 일정한 비율로 계속 확 해가면 높은 장소에서

유도하지 않아도 지상화를 그리는 것이 가능하며, 사실 라이헤는 이 같은 방법으로 지상

화를 재현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결국 현재까지 제기된 다양한 주

장들은 거의 부분 결함이 있어서 지상화의 수수께끼를 해명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하

고 있다. 최근에는 나스카에서 오랜 옛날부터 살아왔던 사람들의 풍속과 전통, 멘탈리티

등에 관심을 갖고 문화인류학적 방법을 동원해 지상화의 수수께끼를 풀어보려는 움직임

도 있었다. 이런 시도는 몇 가지 흥미로운 결과를 낳았는데, 예를 들면, 학자들은 많은

직선이 교차하는 '방사의 중심'에 주목하고, 안데스 고원지 에 전해 내려오는 주술적인

도표(이정표)가 이와 유사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지상화가 길을 안내하는 역할을

하지 않았겠느냐는 추정이지만 아직까지 확실한 증거가 없는 상태이다. 그리고 종교 의

식을 위한 문양설과 제사장설을 주장하는 연구자도 적지 않은데, 이들 역시 확실치는 않

지만 나름 로 약간의 근거는 갖고 있다. 사실 이 도형들이 나스카의 도자기나 직물에서

도 많이 나타나고 있으며, 또한 안데스에는 나스카의 지상화와 유사한 상징을 사용하는

종교가 다수 존재하는데, 이들 종교에서는 태양과 달의 운행, 특히 하지와 동지 같은 특

정한 날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학설이 있으나 내 생각으로는 이 나스카 지상화는 종교적인 의식을

위해 사용된 고 의 신성한 도로라는 페루의 고고학자 헤스페의 의견에 한 표를 주고 싶

다. 다만 가이드도 말한 바와 같이 이 지상화들이 나타내는 동물, 식물, 곤충 등이 비를

기원하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으므로, 이 황량한 사막지 에서 비를 기원하기 위한 종교

의식을 위한 문양설과 제사장설로 조금 수정하고 싶다. 이와 함께 나스카를 떠나며 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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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까 근교 도로 옆의 난민 판자집 숙소

나스카 라인이 지상에서 그 모습을 쉽게

가늠할 수 없는데다가 엘리뇨 바람에 의

해 세월이 지나면서 점점 희미해지고 있

는 상태이며, 게다가 도마뱀의 머리 부

분을 잘라 낸 판아메리카 고속도로 같은

거 훼손부터 나스카 라인을 흉내 내서

그린 다국적 라인과 글씨들까지 사람들

의 무관심(?)이 겹쳐져 언제까지 나스카

라인이 원상태 로 보존될 수 있을지가

미지수라, 1994년 나스카 라인을 유네스

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고 하는

데, 한국인이 이곳에 태극기 라인을 하

나 더 보태 넣었다니 국가적 망신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오랫동안 나스카 라인이

잘 보존되어 우리 후손들도 감상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약 3시간 걸려 어제 지나쳤던 이까에 도착하여, 체인 레스토랑에서 모둠식(닭고기, 소

고기, 꼬치, 내장 등)으로 점심 식사를 하였는데, 상당히 맛이 있었다.

다시 버스를 타고 달리다 보니 어제 보았던 난민 판자집 숙소도 다시 눈에 띄었다. 아

침 일찍 일어났고, 비행기도 탔으며, 점심때 반주로 술도 마셔 피곤하여 잠이 들었다.

피스코에서 잠시 버스에서 내려 휴식을 취한 후, 다시 출발하여 리마로 오면서 멕시코의

아스텍과 페루의 잉카 제국의 흥망성쇠가 너무나도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째, 아

스텍은 해발 2400 m의 멕시코 고원의 호숫가 지역에, 잉카는 해발 3400 m의 페루의 안데

스 산맥 쿠스코 고원 지역에 터전을 잡고 부족국가를 세웠는데도 불구하고 거 한 제국

을 건설하였다. 이것은 이들 지역이 주변 다른 부족 국가들보다 환경면에서는 척박하였

지만 도리어 이 때문에 생존을 위해 정신적인 면에서 더욱 강했기 때문에, 상 적으로

환경이 좋은 주변 부족국가들을 복속시켜 거 한 제국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둘째,

아스텍과 잉카제국 모두 약 200여년의 짧은 기간에 거 제국으로 커졌다가 어이없이 멸

망하였다는 점이다. 이것은 아스텍이 중미 여러 부족을, 잉카제국이 페루를 포함한 남미

여러 부족을 무리하게 통합시켜 거 제국을 만드는 과정에서 정치적 혼란과 내부 세력

다툼을 겪어 국력이 쇠잔하였고, 또한 핍박받아오던 피지배 부족의 배신도 합세되어,

수많은 정규군 병력을 가지고 있던 아스텍과 잉카제국이 깡패집단에 가까운 수백 명의

스페인 기마부 에게 어이없게 순식간에 패퇴하여 패망하였다는 점이다. 셋째, 두 제국

모두 태양신을 숭배하고, 농사에 종사하던 나라가 천재지변으로 인한 가뭄에 시달려 사

회적 혼란이 왔을 때, 그 옛날 유태인들이 메시아를 기다리듯 아스텍 사람들은 자신들을

떠났던 전설속의 주신 ‘케찰코아틀’이, 잉카인들은 창조신 ‘비라꼬차’가 다시 돌아

와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견뎌오다, 마침 긴 머리, 흰 피부를 한

코르테스와 피사로를 각각 전설속의 왕과 창조신이 약속 로 돌아온 것으로 착각하고 그

들을 받아들였다는 점이다. 이러한 생각이 들며 통치자인 왕의 과욕(?)과 과신(?)은 핍

박받는 피지배 종족의 배신과 민심의 이반을 불러와 아스텍, 잉카 제국과 같은 거 왕

조가 허무하게 멸망할 수 있다는 역사적 진리를 현 국가의 통치자들이 명확하게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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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raton 호텔 로비에서 공연된 페루 전통 무용

하고 행동해야하는데, 현재의 중남미 국가들(물론 우리나라를 포함해 다른 나라들도)의

상황은 이러한 점에서 예전과 그다지 달라지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며 마음 한구석이

왠지 편치 못하였다.

예정보다 일찍 리마시내에 도착하여 우리나라 남 문 시장 같은 큰 시장에서 잠시 쇼

핑을 하고 저녁식사를 한 후 호텔로 갔다. 내일 아침에는 브라질로 떠나기 때문에 짐을

정리하고 다리 상처 소독을 하고 나서, 카톡을 하려고 로비로 내려오니, 마침 로비에서

페루 전통 무용 공연을 하고 있어 잠시 구경하다 방으로 올라와 잠을 청하였다. 오늘로

써 만 5일간의 페루여행을 무사히 마치게 된 것을 감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