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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18 최성우 사진 박병혁 talk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무엇일 까. 아마도 사랑, 따뜻함, 편안함 같은 말들일 것이다. 하지만 세 상에는 분명 일반적인 관심과 조금은 다른 시선을 받는 가족들 이 존재한다. 홀로 아이를 키우는 미혼모들의 이야기. 백연아 감 독이 주목한 어떤 가족의 모습이 그렇다. 엄마의 모습과 가족의 풍경 막바지 편집이 한창이던 백연아 감독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커 다란 포스터 하나가 눈에 띈다. 백 감독이 연출했던 첫 번째 작 품 <소리아이> 포스터. 판소리라는 꿈을 향해 나아가는 두 소년 의 성장담을 그린 다큐멘터리다. “소리꾼으로 성장하는 두 아이 의 모습에는‘아버지와의 관계’가 겹쳐져 있어요. 아버지에게 귀동냥으로 익힌 판소리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펼치는 성열이, 명창의 꿈을 유난스러울 정도로 지원하는 헌신적인 아 버지 밑의 수범이. 음악과 아버지는 두 소년에게는 절대적일 수 밖에 없는 존재이자 관계인 셈입니다.” <소리아이>를 연출하면서‘아이’들의 이야기에 흥미를 가지게 된 백 감독. 자연스레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 가족이라는 관계 로 시야가 넓어졌다. 어떤 관계보다 가깝지만 반대로 멀기도 한 부모와 자식 사이. 떼려야 뗄 수 없는 가족이라는 관계. 특히 한국사회에서 가족이 가진 의미를 이야기하고 싶어졌다고.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주목해봤으니, 다음은 어머니와 자식의 관계가 궁금해졌나 봐요.(웃 음) <달콤한농담>을구상하면서처음부터미혼모로주제를좁혔던건아니에요. 여러가지환경 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모습들을 취재했고, 미혼모도 그런 모습들 중 하나였죠. 그런데 미혼모들의 현실은 제가 막연히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힘들었고, 겪고 있는 사회적 차별이나 현실적인 문제들도 심각했죠. 그래서 미혼모의 문제를 하나의 챕터보다는 작품의 큰 주제로 삼 는게더좋겠다고생각을했어요.” <달콤한 농담>의 밑그림을 그릴 당시 백 감독은 임신 중이었다고 한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의 모습에 관심을 가지게 되고, 한국사회에서 가장 환영받지 못하는 관계 중 하나인 미혼모와 자식 의관계로그의시선이닿은것은그래서단순한호기심이나우연만은아니었을것이다. 특수한 상황 속 보편적 현실 <달콤한 농담>의 주인공은 4명. 세 명의 미혼모와 아이 한 명이 등장한다. 엄마, 아빠와 함께 셋 이서 살기를 꿈꾸는 준서는 엄마와 아빠가 결혼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무척이나 궁금하다. 준 서의 엄마 형숙은 미혼모들의 권리를 대변하는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다. 결혼의 전제는 자 식이 아니라 사랑이라고 믿는 강한 여자이지만, 홀로 아빠와 엄마의 역할을 병행하는 일이 얼 마나 힘든 일인지도 늘 새롭게 깨닫는다. 젊은 여성 사업가인 지영, 그가 생각하는 가족에는 아빠라는 역할이 필요치 않다. 다만 그를 괴 롭히는 것은 자신의 상황에 매우 만족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으로부터 쏟아지는 동정의 시선이다. 마지막 주인공인 현진, 현진의 남자친구는 그녀의 임신사실을 알게 되자 그녀를 떠 EIDF 사전제작지원 프로젝트 대상 수상작 달콤한 농담 감독

EIDF 사전제작지원 프로젝트 - about.ebs.co.krabout.ebs.co.kr/files/about/files/pr/magazine8/18-21.pdf · 이서살기를꿈꾸는준서는엄마와아빠가결혼한적이없다는사실이무척이나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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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우

사진박병혁

talk

궁금한

사람

깊은

이야기

가족이라는 단어에서 우리가 떠올릴 수 있는 이미지는 무엇일

까. 아마도사랑, 따뜻함, 편안함같은말들일것이다. 하지만세

상에는분명일반적인관심과조금은다른시선을받는가족들

이존재한다. 홀로아이를키우는미혼모들의이야기. 백연아감

독이주목한어떤가족의모습이그렇다.

엄마의모습과가족의풍경

막바지 편집이 한창이던 백연아 감독의 작업실에 들어서자 커

다란포스터하나가눈에띈다. 백감독이연출했던첫번째작

품<소리아이> 포스터. 판소리라는꿈을향해나아가는두소년

의성장담을그린다큐멘터리다. “소리꾼으로성장하는두아이

의 모습에는‘아버지와의 관계’가 겹쳐져 있어요. 아버지에게

귀동냥으로 익힌 판소리로 전국을 돌아다니며 공연을 펼치는

성열이, 명창의꿈을유난스러울정도로지원하는헌신적인아

버지밑의수범이. 음악과아버지는두소년에게는절 적일수

밖에없는존재이자관계인셈입니다.”

<소리아이>를연출하면서‘아이’들의이야기에흥미를가지게

된백감독. 자연스레부모와자식간의관계, 가족이라는관계

로시야가넓어졌다. 어떤관계보다가깝지만반 로멀기도한부모와자식사이. 떼려야뗄수

없는가족이라는관계. 특히한국사회에서가족이가진의미를이야기하고싶어졌다고.

“아버지와아들의관계에주목해봤으니, 다음은어머니와자식의관계가궁금해졌나봐요.(웃

음) <달콤한농담>을구상하면서처음부터미혼모로주제를좁혔던건아니에요. 여러가지환경

에서아이를키우는엄마들의모습들을취재했고, 미혼모도그런모습들중하나 죠. 그런데

미혼모들의현실은제가막연히생각했던것보다훨씬더힘들었고, 겪고있는사회적차별이나

현실적인문제들도심각했죠. 그래서미혼모의문제를하나의챕터보다는작품의큰주제로삼

는게더좋겠다고생각을했어요.”

<달콤한농담>의밑그림을그릴당시백감독은임신중이었다고한다. 아이를키우는엄마들의

모습에관심을가지게되고, 한국사회에서가장환 받지못하는관계중하나인미혼모와자식

의관계로그의시선이닿은것은그래서단순한호기심이나우연만은아니었을것이다.

특수한상황속보편적현실

<달콤한농담>의주인공은4명. 세명의미혼모와아이한명이등장한다. 엄마, 아빠와함께셋

이서살기를꿈꾸는준서는엄마와아빠가결혼한적이없다는사실이무척이나궁금하다. 준

서의엄마형숙은미혼모들의권리를 변하는사회운동가로활동하고있다. 결혼의전제는자

식이아니라사랑이라고믿는강한여자이지만, 홀로아빠와엄마의역할을병행하는일이얼

마나힘든일인지도늘새롭게깨닫는다.

젊은여성사업가인 지 , 그가생각하는가족에는아빠라는역할이필요치않다. 다만그를괴

롭히는것은자신의상황에매우만족하고있음에도불구하고주변으로부터쏟아지는동정의

시선이다. 마지막주인공인현진, 현진의남자친구는그녀의임신사실을알게되자그녀를떠

EIDF 사전제작지원프로젝트

상수상작

달콤한농담

감독

백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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났다. 그럼에도그녀는전남자친구와의관계회복을바라고,

또한아기를위한아빠가아닌자신을위한남편이일생의사

랑이되기를원한다.

“미혼모라는특수한집단의문제들은여자이기때문에겪게

되는 문제들, 여자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문제들입니다.

가부장적 가치관 아래서 살아가는 여성과 가족의 문제이기

도합니다. 여성과엄마로서겪는갈등을미혼모들이좀더

극단적이고첨예하게겪고있는것뿐이죠.”

미혼모라는 특수한 상황을 통해 가족이라는 보편적 관계를

들여다보는시도는충분한설득력과공감을이끌어낼수있

을것이라는게그의설명. 그리고그시도는무척이나즐겁

고감각적으로이루어졌다.

토크+ 다큐멘터리= 토큐멘터리

<달콤한 농담>은 미혼모 가족을 소외계층으로 규정하고 관

객의동정적시선을강요하기위해만들어진작품은아니다.

신그들이스스로를어떻게규정하고있으며그들이겪는

생활속진짜문제들이무엇인지, 또그들이무엇을바라는지

를그들의입을통해서직접듣는다. 그들이당면한문제를

알지도못하면서그들을도와야한다는당위적인문제의식만

을고압적으로던지는과오를범하지않는다.

“많은 미혼모들을 만났죠. 취재를 하면서 작품의 제목인

‘달콤한농담<Bittersweet Joke>’이자연스럽게정해졌어

요. 제가 만났던 많은 미혼모들은 자신의 삶을 비극적으로

보고있지않았고연민하지도않았어요. 오히려유머스럽고

담 했죠.”

그런미혼모들의모습은기존의미디어가줄곧가졌던미혼

모에 한편견의시선을지양하고새로운시선으로그들에

게접근하는것을가능하게했다. <달콤한농담>은무엇보다

미혼모당사자와그아이들의목소리를전면에드러냈다. 한

국사회와가부장적역사의, 그리고현시 가족제도를둘

러싼쓰디쓴(Bitter) 이슈들을달콤하게(Sweet) 이야기했다.

“처음부터단기간에집중적으로찍자계획을했어요. 그렇게

4달정도를거의매일찍었지요. 생활을같이하다시피했어

요. 짧은시간에집중적으로풀타임으로찍었을때어떤결과

가나올까궁금하기도했어요. 물론촬 을마치고나서는시

간을무시할수는없다는결론에이르 지만(웃음), 신그

만큼집중했기때문에나올수있는부분이분명있다는점도

알게되었어요.”

<달콤한농담>은다큐멘터리다. 하지만등장인물들의모습은

마치연기를하는게아닌지의심하게될정도로카메라를의

식하지않으며자연스럽고꾸밈이없다. 마치편안하게친구

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달콤한 농담>을 다큐멘터리가 아

닌‘토큐멘터리’라고부르는이유도그래서일것이다.

“보통‘다큐멘터리’하면딱딱하기도하고설명적일것이라는

생각들을하시죠. 하지만<달콤한농담>은조금달라요. 등장

인물들의개인적인이야기들과미혼모들이함께모여앉아여

러주제에관해이야기를나누는토크가번갈아등장하는구

조를가지고있습니다.”

미혼모들의토크는<달콤한농담>에서그들의생각을 변하

는중요한장치다. 동시에풍자와블랙유머로가득한생기를

작품에불어넣는역할을한다. 다소시끄럽고빠른템포의그

녀들의수다는 화의스타일적인면에서도쾌활한분위기를

만들어내는중요한요소가되었다. 미혼모라는무거운주제를

경쾌하게접근할수있는이유가바로여기에있다.

세상을향한달콤한농담

백연아감독의 학시절전공은 화가아닌미술. 내러티브

가있는다큐멘터리에흥미를가진백감독은미술 학을졸

업하고런던으로건너가다큐멘터리연출을공부했다.

“제가사람을만나고이야기를하는걸좋아해서혼자작업하는비디오아트보다는많은사람

을만나고또많은사람과공감할수있는다큐멘터리가더좋아졌나봐요. 아주가끔앵 이독

특하다는칭찬을받을때도있어요.(웃음) 물론정석은아니죠. 하지만오히려정규 화과정을

배운사람이아니기에가질수있는특징인것도같네요.”

백연아감독은2편의작품을통해‘관계’를이야기해왔다. 그가<달콤한농담>을통해궁극적

으로이야기하고싶은관계의모습은무엇일까.

“미혼모들이아이를키울때가장크게직면하는문제는‘아빠가없다’는것입니다. 현실적으

로양육자가없다는거죠. 혈연으로이어진관계가오히려미약하다는것은바로그런점때문

이에요. 혈연관계가없어지면바로가족도해체되는것이지요. 그렇다면오히려가족이라는형

식이가족을힘들게하는건아닐까싶기도해요. 혈연이아니더라도가족을이해하고공감할

수있다면가족이라고부를수있겠죠. 사회가그역할을할수도있다고생각해요. 이를위해서

는우리가가족이라는관계를보는시선이조금은달라져야하겠죠.”

EIDF 2011에는 세상을 변화시키는 소리의 진원지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담겨있다. 주제가

‘세상에외치다(Be the Voice)’인이유도마찬가지다. 삶을이해하고인식의경계를확장시키

는것이다큐멘터리의역할이라면<달콤한농담>은그역할에가장충실한작품임에틀림없어

보인다. 가족이라는관계에 한우리의인식을새롭게할때라고유쾌하게외치는<달콤한농

담>은지난2010년EIDF 사전제작지원프로젝트 상을수상해방송콘텐츠진흥재단으로부

터3,000만원의제작비를지원받았다.

백연아

- 1976년생

- 서울 학교미술 학서양화전공

런던골드스미스칼리지미디어&

커뮤니케이션(다큐멘터리전공MA)

- 2008년다큐멘터리 <소리아이>.

시라큐스 화제다큐멘터리부문

그랑프리수상

<달콤한농담>

- 2010 EBS 국제다큐 화제

사전제작지원프로젝트 상수상

- ASIA SIDE OF THE DOC,

베스트아시안프로젝트상수상, 2011

- SUNNY SIDE OF THE DOC,

베스트프로젝트상(아트앤컬쳐ART &

CULTURE 부문) 수상,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