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조계산에서 전하는 수행의 향기 통권 186호 불기 이천오백육십년_2016 9

조계산에서 전하는 수행의 향기 송광사 9승보종찰조계총림송광사 통권 제 186호 2016년 9월호 발행처 승보종찰조계총림 송광사 57913 전남

  • Upload
    others

  • View
    1

  • Download
    0

Embed Size (px)

Citation preview

  • 조계산에서 전하는 수행의 향기

    통권 186호 불기 이천오백육십년_20169송광사

  • 승보종찰조계총림 송광사통권 제 186호 2016년 9월호

    발행처

    승보종찰조계총림 송광사

    57913 전남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 안길 100

    편집실 전화

    061-755-5328

    팩스

    061-755-0408

    발행인 겸 편집인 진화

    편집고문 각안 고경 일화 인석 정응

    편집장 중현 · 편집위원 이정범 이준엽

    사진 유동영

    편집디자인 호남문화원 062-383-3538

    인쇄소 한일원색

    홈페이지 www.songgwangsa.org

    2016년 9월 1일 발행

    등록일자 2001년 9월 19일

    등록번호 / 전남 라 00054

    contents 2 주장자

    폭염보다 부처님 은혜가 더 뜨겁습니다

    4 송광사산책

    구도의 발걸음

    6 법성료

    갈 때 또한 빈 손

    9 명상카툰

    10 조고각하

    겸손의 아름다움

    12 동화가있는서재

    피노키오

    16 산문밖정토세상

    사진을 대하는 자세

    18 송광사의문

    무무문

    19 16국사소개

    제9세 담당국사

    20 조계총림들여다보기

    산신각

    24 이달의사찰음식

    꽃만두 샐러드

    26 송광사불화이야기

    팔상탱·1

    30 템플스테이

    어린이 여름 수련법회

    34 송광사에서만난사람들

    여름수련법회 자원봉사자 유지혜

    36 불교상담

    애가 혼자 잤으면 좋겠어요

    38 고향수

    새벽예불

    41 책소개

    42 성보박물관체험현장

    43 제2대진각국사열반782주기

    44 송광사소식

    46 성보박물관소식

    47 감로암소식

    48 소설효봉

    범일묵적 梵日墨跡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이신 범일 보성 큰스님의 글씨를 통해 전해지는 감동을 함께하고자 한다.

    聞性空時妙無比 문성공시묘무비

    思修頓入三摩地 사수돈입삼마지

    無緣慈力赴群機 무연자력부군기

    明月影臨千澗水 명월영임천간수

    듣는 성품 공할 때 미묘함 비길 데 없고사유와 수행이 단박에 삼마지(삼매)에 들어가네.가림없는 자비심의 힘 모든 근기 제도함은밝은 달 그림자가 일천강에 비침일세.

  • 송광사보 54

    주장자

    범일 보성 梵日 菩成 l 조계총림 송광사 방장

    마하대법왕摩訶大法王께서 무단무장법無短無長法을 설하시고, 백

    장스님은 ‘쉬고 쉬어라’ 말씀하셨고, 조주스님은 ‘끽다거喫茶去

    하라’ 했습니다. 오늘 이 대중은 이번 폭염 속에서도 닦고 닦았

    으니, 오늘 닦은 바를 한마디 해보세요. 그야말로 화중생련火中

    生蓮이라 불꽃에서 아주 시원한 바람을 만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모두 출가해서 부처님 제자가 된 신분으로 일대사

    마치기를 약속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한 바를 나는 아직도

    본 바가 없으며, 들은 바도 없습니다. 내가 오늘 듣게 하고 보

    게 해서 나를 즐겁게 해준다면 아마 부처님도 환희심을 내실 것

    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면 부처님 은혜를 무엇으로 갚고자

    합니까.

    여러분!

    폭염보다도 부처님 은혜가 더 크고 더 뜨겁습니다. 오늘을 해

    제라 하지 말고 쉬어가겠다고 여기세요. 그래서 쉬었다가 다시

    모여서 이 모임을 계속 이어가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이 모임은 부처님 당시부터 2700년을 이어져 왔습니다. 죽림정

    사 대밭의 바람이 얼마나 시원한지 모두 아시겠습니까? 죽림정

    사의 바람을 쐴 때까지 폭염은 생각하지 말고 죽림정사 바람을

    생각하세요.

    아무쪼록 죽림정사에서 노닐기를 바라며 오늘 해제 법문은 줄

    이겠습니다. 그저 어둔한 말이라 법문이라고 말씀드리기 부끄

    럽습니다.

    마치겠습니다.

    폭염보다도

    부처님 은혜가

    더 크고

    더 뜨겁습니다

    조계총림 방장 보성스님 병신년 하안거 해제 법어

  • 6 송광사보 7

    유동영 사진작가의 송광사 산책_ 빛과 가람, 그리고 구도의 발걸음

  • 8 송광사보 9

    법성료_자경문 강의

    갈 때

    또한 빈 손

    其二는 自財를 不悋하고 他物을 莫求어다.

    둘째는 자기 재물을 아끼지 말고 남의 물건을 가지려 하지 말라.

    첫 번째 일상생활의 근본이 되는 의식주에 이어, 두 번째 항목은 고통의 근본 원인에

    대한 통찰이라 하겠다.

    三途苦上에 貪業이 在初요 六度門中에 行檀이 居首니라.

    삼악도의 고통에는 탐욕의 업이 최초가 되고, 육바라밀 가운데에서는 보시바라

    밀이 머리가 되느리라.

    고苦가 발생하게 되는 원인은 탐욕에 뿌리를 두고 있고, 이를 뽑아 낼 수 있는 방법 중

    최고는 보시 바라밀이다.

    慳貪은 能防善道요 慈施는 必禦惡徑이니 如有貧人이 來求乞이어든 雖在窮乏이라

    도 無悋惜이니라 來無一物來요 去亦空手去라 自財도 無戀志어니 他物에 有何心이리오.

    연각然覺 l 조계총림 송광사 승가대학장

    아끼고 탐하는 것은 좋은 길善道을 막게 되고, 자비로 보시함은 나쁜 길惡經을

    방어하게 되리니, 예를 들면 어떤 가난한 사람이 구걸하러 오거든 비록 궁핍하다 하

    더라도 인색하지 말아야 하느니라. 올 때 한 물건도 없이 왔고, 갈 때 또한 빈손으로

    돌아가리니, 자기 재물에도 애틋함이 없어야 하거늘 하물며 남의 재물에 어찌 마음을

    둘 수 있으리오.

    무언가를 아끼거나 탐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것은 벌써 본래의 모습을 왜곡시켜 보게 만

    든다. 예를 들면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 애착이 생기면, 설령 옆 사람에게 더 필요하고 본

    인에게는 그다지 필요 없는 물건이라 할지라도 그런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어 몰란 결

    에 자기가 소유하고자 행동하게 되므로 좋지 못한 업業을 짓게 된다. 따라서 마음속의 부처님

    마음, 진리를 따르는 길과는 반대의 길로 나아가게 되니, 좋은 길善道을 막게 된다고 하였다.

    중생들은 수 없는 세월 동안 형성되어진 업業을 가지고 있기에, 자기 업대로 좋고 나쁨

    을 판단하게 되는데, 여기에서 오는 탐심을 떨쳐 버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승 수행에서 첫 번째 항목으로 이를 제어하기 위한 보시바라밀을 두었다. 이러한 자비의

    보시는 부처님의 마음, 근본 마음자리에서 멀어지게 하는 악도惡道에서 벗어나게 해준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구걸하거든 비록 본인의 처지가 궁핍하다 하더라도 인색하게 굴지

    말고, 형편 되는대로 베풀라고 하였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가지고 온 물건 하나 없었고, 이

    세상을 떠날 때, 또한 가져 갈 것 없는데, 무얼 그리 탐내고 아낄 것이 있겠는가! 그저 이 세상

    에 살아 있는 동안 빌려 쓰다가 가는 것뿐이니, 본인이 가지고 있는 물건에도 애착함이 없어야

    할 것이거늘, 다른 이가 가지고 있는 물건을 탐한다는 건 부질없는 업만 쌓는 일이 될 것이다.

    萬般將不去요 唯有業隨身이라 三日修心은 千載寶요 百年貪物은 一朝塵이니라.

    만 가지 그 무엇도 가져 갈 수 없고, 오직 업만이 몸을 따를 뿐이라, 삼일 동안

    닦은 마음은 천 년의 보배요, 백 년 동안 탐한 물건은 하루 아침의 티끌이로다.

  • 10 송광사보 11

    명상카툰

    이 세상에는 오만 가지 물건들이 존재하고 있지만, 이 세상을 떠나 갈 때는 그 중에 그

    어느 것도 가져 갈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그 동안 지어 놓은 업業만이 남아서, 그 업대로

    몸을 받을 뿐이다. 즉 짧은 시간이라도 닦아서 형성되어진 좋은 업은 천년이 지나도 사라지

    지 않으니 좋은 보배가 되지만, 한 평생 탐내서 모으고 모은 재물은 죽는 순간 본인에게는

    아무런 쓸모없는 티끌과 같은 존재가 되고, 오히려 재물을 모으느라 탐내던 마음으로 만들

    어진 나쁜 업만 남게 되어 과보가 따라오니,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더 이상 억울한 일은 만들지 말아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도 내려놓기가 쉽지 않다면, 오늘도 부처님께 의지하여 수행에 힘쓰고 있는 도반들을

    보시라! 그리고 그들을 통해 다시 용기를 갖고 수행에 힘써 보자!

    頌曰 三途苦本因何起오 只是多生貪愛情이로다 我佛衣盂生理足커늘 如何蓄積長

    無明고

    게송으로 말하리라. 삼악도의 고통의 근본 원인은 어떻게 일어났는가? 다생 동

    안의 탐욕애정에서 일어났을 뿐이로다. 우리 부처님 가사 발우에 만족하거늘, 어찌

    쌓고 쌓아 무명을 기르는가!

    게송으로 정리한다. 삼악도의 고통의 원인은 수없는 생 동안 탐욕과 애정에 뿌리하고

    있을 뿐이다. 부처님 제자로서 가사로 몸을 감싸고, 발우에 공양을 받아먹는 것만으로 부처

    님 법 공부하는데 부족함이 없거늘, 다른 것들을 쌓고 쌓아서 탐욕을 방치하고 부추겨서 무

    명無明만 키우게 된다면, 결국 진리에서 멀어지고 윤회에 헤어나지 못하게 되니, 부처님에게

    서 더욱 멀어지게 될 뿐이다.

  • 12 송광사보 13

    조고각하

    겸손의

    아름다움

    불교를 공부한 사람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과 비교하면 무엇이 다를까. 유식하고

    부자고 고관대작이 많은 것이 다르다 할지 모르겠다. 아니면 미남미녀가 많은 것이 특징이

    라는 주장도 있겠다. 정말 그런가. 아니다. 그런 조건은 불교를 공부하거나 안 하거나 관

    계없는 일이다. 종교를 믿어서 얼굴이 예뻐지고 돈을 많이 벌고 출세를 하고 유식해진다면

    그런 종교는 사이비거나 거짓종교일 뿐이다. 그런 건 종교의 영역이 아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사람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과 가장 큰 차이는 겸손과 하심을 터

    득했느냐에 있다. 만약 불교를 공부하고도 겸손과 하심이 인격에 나타나지 않는다면 그는

    헛공부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옛부터 불교에서는 공부를 잘 했는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유무식을 따진 것이 아니라 겸손과 하심을 어느 만큼 성취했는가를 살폈다.

    그래서는 아니지만 스님들 중에는 법랍도 높고 경학도 깊은 분이 일부러 공양주나

    부목 같은 하소임을 사는 분이 많다. 입으로만 하심을 말하기보다는 몸으로 터득하기 위

    해서였다. 내가 아는 어떤 스님도 주지소임이 끝나자 후원으로 내려가 공양주를 한 분이

    있다. 그 스님을 보면 아무 말씀도 안하는데도 얼굴과 행동에 겸손한 인품이 묻어났다. 그

    스님을 뵐 때면 교만한 마음이 절로 꺾이곤 했다.

    세속에 사는 사람도 겸손한 처신은 그의 인품을 다시 보게 한다.

    얼마 전 한 텔레비전에 본 영화배우 김혜자와 김혜수 씨의 인터뷰가 그랬다. 김혜자

    씨는 어느 종편에서 방송한 다큐프로그램에 출연해서 그동안 살아온 인생을 회고했는데

    “오랜 기간 연기생활을 편안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잘나서가 아니라 오로지 남편

    홍사성 l 불교평론 주간

    의 외조와 배역운이 좋았을 뿐”이라며 자기

    를 낮췄다. 이 최고의 여배우는 식사를 거

    른 제작진에게 손수 밥상을 차려주는 자상

    한 모습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30년 넘게 연기자로 활동하며 최고의

    자리를 지켜온 여배우 김혜수의 인터뷰도

    인상적이었다. 진행자가 그녀에게 ‘톱 오

    브 톱’으로 살아온 비결을 묻자 의외의 대

    답이 돌아왔다. “긴 시간 연기를 한 건 맞지

    만 ‘톱’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다. 정말 톱에

    있었던 적도 없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겸손

    은 카메라 앞이라서 가장하고 연출한 것이

    아니었다. 평소 언행이 묻어나는 것이어서

    사람을 감동시키는 매력이 있었다.

    두 잘난 여배우들의 겸손한 인터뷰는

    또 다른 아름다움이었다. 내가 잘나서가 아

    니라 남이 도와줘서, 운이 좋아서 여기까지

    왔다는 말은 작은 성취에도 으스대는 사람

    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그녀들의 종교가

    무엇인지 몰라도 불자로서 본받을만한 것

    이 참 많았던 장면이었다.

    불교가 겸손을 수행의 가장 중요한 덕

    목으로 내세우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

    다. 교만한 마음은 온갖 공덕을 다 무너뜨

    린다. 세상에서 내가 잘났다고 자랑해서 남

    의 존경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부처

    님 당시 머리 좋고 똑똑하기로 소문난 데바

    닷다가 좋은 예다. 그는 부처님처럼 존경받

    고 싶어 교단을 분열시키고 교주노릇을 하

    려 했다. 그러나 구멍난 바가지는 물이 새

    기 마련이다. 그는 시기와 질투로 부처님을

    해치려다 결국 파멸의 구렁으로 떨어졌다.

    돌아보면 우리 주변에는 이렇게 스스로 잘

    난 척하려다 망가진 사람이 한둘 아니다.

    부처님은 한 경전(중아함 10권 참괴경)에

    서 수행자들을 이렇게 타일렀다.

    “수행자들이여, 스스로 부족하고 부

    끄럽다는 생각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겸손

    과 공경을 잃게 되고 겸손과 공경을 잃으면

    바른 믿음을 잃게 된다. 바른 믿음을 잃으

    면 바른 생각을 잃게 되고 바른 생각이 없

    으면 바른 지혜를 잃게 된다. 바른 지혜가

    없으면 바른 몸가짐, 바른 계율, 바른 명상,

    바른 견해를 잃고 해탈과 열반을 잃게 된다

    …… 그러므로 수행자는 먼저 부끄러워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해탈과 열반으로

    가는 첫걸음이다.”

    요컨대 불도를 닦는 사람은 먼저 겸손

    하고 부끄러워하라는 것이다. 높아지려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려고 해야 인품이 완성

    된다는 것이다.

    불자들이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합

    장하는 것은 낮아지려는 다짐이다. 참 아름

    다운 수행법이다.

  • 14 송광사보 15

    정직

    동화가 있는 서재

    나무인형의 사람 되기

    거짓말을 하면 상대가 알아차릴 수 있

    을 만큼 표시가 나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

    람들은 대개 얼굴이 빨개지거나 말을 더듬는

    등 행동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온갖 거짓과

    속임수가 난무하는 오늘의 세계에서 살아가

    기 쉽지 않은 유형이다. 이번 동화의 주인공

    은 그 정도가 훨씬 심하다. 이렇게 광고하면

    곧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깃털 달린 모자를 쓰고 반바지 차림을

    한 나무인형을 찾습니다. 거짓말을 하면 코

    가 길어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피노키오다.

    아주 오랜 옛날 목수 일을 하는 제페토

    할아버지가 자식도 없이 홀로 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나무를 깎아 소년 모양의 인형을

    만들고 피노키오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그

    러던 어느 날 요정이 나타나 피노키오가 사

    람처럼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었고, 할아버

    지 말씀 잘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면서 착하

    게 지내면 진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사람처럼 움직이게 된 피노키오는 장난

    을 좋아하는 개구쟁이였다. 한번은 학교를

    빼먹고 여우와 고양이를 따라 인형극을 보러

    갔는데, 여우와 고양이가 피노키오를 극단

    이일야 l 전북불교대학 학장

    주인에게 팔아버리고 말았다.

    극단 주인에게 사로잡힌 피노키오는 창

    고에 감금되었다. 그때 요정이 나타나 피노

    키오를 나무랐지만, 자신은 학교에 가고 싶

    었는데 여우와 고양이 때문에 이렇게 되었다

    면서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갑자기

    피노키오의 코가 쭉 늘어났다. 피노키오의 거

    짓말은 계속해서 이어졌고 그러면 그럴수록

    코는 점점 길게 늘어났다. 피노키오가 울면서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뉘우치고 나

    서야 코는 다시 짧아졌다. 그리고 피노키오

    는 요정의 도움으로 창고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던 피노키오는 배를 타

    고 할아버지를 찾다가 커다란 고래에 삼키

    고 말았다. 고래 뱃속으로 들어간 피노키오

    는 놀랍게도 그곳에서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었다.

    이곳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던 할아버

    지가 불을 피우자 고래가 재채기를 하기 시

    작했다. 그 바람에 할아버지와 피노키오는

    고래의 뱃속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피노키

    오는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바다 위에서

    뜰 수 있었고 할아버지는 피노키오에 의지해

    무사히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피노키오가 할아버지를 구했다는 것을

    알게 된 요정은 피노키오를 칭찬하면서 진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이제 피노키오는 더

    이상 나무인형이 아니라 착한 소년이 되어

    할아버지와 함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

    그림 출처 : 핑크퐁! 인기동화

    https://www.youtube.com/watch

    ?v=qJy9j7eLWvs&nohtml5=False

    이솝우화

  • 16 송광사보 17

    정직, 양심의 소리

    동화 는 월트 디즈니의 애

    니메이션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본래는

    이탈리아 동화작가인 카를로 콜로디Carlo

    Collodi, 1826 ~ 1890가 1883년에 쓴 이 원작이다. 원작에서는 다소 폭력

    적이거나 비극적인 부분도 등장하는데, 디즈

    니가 아이들을 위해 피노키오를 친근하고 귀

    여운 캐릭터로 재탄생시켰다. 이 동화는 ‘꼭

    두각시 인형 피노키오…….’로 시작하는 동

    요로도 만들어졌으며, 몇 해 전에는 피노키

    오처럼 거짓말을 하면 곧바로 티가 나는 사

    람이 기자가 된다는 내용의 드라마가 만들어

    지기도 하였다. 그만큼 이 동화는 많은 사람

    들에게 관심의 대상이었다.

    누가 뭐라 해도 이 동화의 하이라이트

    는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

    어지는 장면이다. 참으로 흥미로운 발상이

    다. 어린 시절에는 그저 재미있게 읽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가볍게 넘어갈 문제

    는 아닌 것 같다. 인간의 삶에서 중시되는 정

    직, 양심과 관련된 문제라 보이기 때문이다.

    이 동화는 거짓말을 하면 사람의 몸에서 어

    떤 반응이 일어난다는 사실에 착안해서 만들

    어진 작품이 아닐까 싶다.

    피노키오의 코는 오늘날로 보면 거짓말

    탐지기와 같은 기능을 한다. 거짓말 탐지기는

    그 사람이 진실을 말하는지 거짓을 말하는지

    를 알아내는 기계다. 이 기계는 사람이 거짓

    말을 하면 맥박이나 혈압, 호흡과 같은 신체

    의 기능에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에 착안해서

    만들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이 기계의 정확도

    는 매우 높은 편이다.

    그렇다면 왜 인간은 거짓말을 할 때 몸

    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인간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는 양심이 작동하

    기 때문이다. 양심이란 어떤 행동이 옳고 그

    른지를 구별할 수 있는 마음이다. 그런데 이

    양심은 후천적으로 계발하는 것이 아니라 선

    천적으로 주어진 것이다. 인간이 거짓말을 하

    면 그것이 잘못임을 본능적으로 직감하게 된

    다. 그때 양심이 작동을 하면서 심장이 두근

    거리는 등의 변화를 이끄는 것이다.

    양심이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철학자 칸트를 빼놓을 수 없다. 양심에 대해

    서 그 누구보다 철저하게 연구하고 또한 최

    고의 찬사를 보낸 인물이니 말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언제나 감탄스럽고

    경건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들이고,

    다른 하나는 가슴속에 빛나는 양심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말이다. 밤하늘에 수

    많은 별들이 반짝이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

    에도 도덕법칙이라는 양심의 별이 반짝이

    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심을 따

    르는 것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마땅히

    ‘해야만 하는’ 일이라는 것이 칸트의 생각이

    다. 이것을 윤리학에서는 의무론이라고 부른

    다. 양심을 지키는 것은 인간의 의무이기 때

    문에 결코 어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양심을 지켜야 하는 이유

    는 사회 전체에 이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라

    는 공리주의적 설명도 있다. 어떠한 행위도

    그 자체로 옳거나 그를 수 없다. 옳고 그름

    을 판단하는 유일한 기준은 사회 전체에 이

    익을 가져다주는지의 여부에 달려있다. 예컨

    대 양심에 따라 약속을 지키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

    기 때문에 옳다는 것이다.

    어느 입장에 따르더라도 양심을 지키는

    것이 옳다는 결론이 나온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Honest is the best policy.”는 구

    호가 동화 의 교훈인 것도 다 이유

    가 있었던 셈이다. 또한 동화에서 나무 인형

    이 진짜 사람으로 변신할 수 있었던 것도 양

    심을 지키고 정직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놓쳐

    서는 안 된다. 작가는 어쩌면 생물학적이 아

    니라 윤리적인 측면에서 사람인가 아닌가의

    기준을 양심에서 찾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오늘날 이러한 가치들이 물질과 자본의

    힘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때로는 고리타분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

    다. “양심은 사람들이 들으려 하지 않는 작은

    목소리”라는 의 대사가 우리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러나 잊지

    말기로 하자. 윤리학적 담론을 떠나 정직하지

    못하면 우리들 삶이 피곤하고 불행하다는 사

    실을 말이다. 뺑소니 사고를 치고 달아난 사

    람이 공소시효를 넘겼는데도 불구하고 자수

    하는 이유도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

    은 바로 양심을 속이고 사는 삶이 고통스럽기

    때문이다. 그러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은 양

    심을 회복하는 이외에 달리 방법이 없다.

    양심에도 굳은살이 박이면 감각이 무뎌

    지기 마련이다. 그래서 양심을 속여도 거짓말

    탐지기가 반응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은 어떻

    게 될까?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이 동

    화가 아름다운 것은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하

    면 코가 길어지기 때문이다. 놓치지 말기로

    하자. 정직, 그것은 양심의 소리라는 것을 말

    이다.

  • 18 송광사보 19

    산문 밖 정토세상

    사진을 대하는

    자세 글·사진_연합뉴스 형민우 기자[email protected]

    사진이 발명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200여 년 전입니

    다. 프랑스의 과학자 니엡스가 무려 8시간 동안 창밖

    의 풍경을 담은 사진이 사실상 인류가 만든 첫 사진입

    니다. 사진이 대중화되자 화가들은 불안에 떨기 시작

    합니다. 폴 들라로슈는 “이 순간부터 회화의 역사는

    막을 내릴 것이다.”라고 단언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예언은 빗나갔고 회화는 회화 나름

    대로의 영역을, 사진 역시 사진만의 특성으로 공존하

    고 있습니다.

    사진은 추억을 재생하는 강력한 매체입니다. 빛바

    랜 흑백사진 속에서 잊힌 기억이 살아나고, 그리운 사

    람들을 다시 불러들일 수 있습니다. 어느새 훌쩍 커버

    린 아이들의 갓난아이 사진을 보며 흐뭇해하기도 하

    고, 돌아가신 부모님의 결혼식 사진을 보면 눈시울이

    붉어지기도 합니다.

    사진은 이처럼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우리를

    추억 속으로 끌어들입니다. 예전에는 카메라가 무척

    귀했습니다. 저희 아버지도 코닥 카메라를 장농 맨 아

    래 서랍에 보관하다 가끔 꺼내 우리를 찍어주셨습니

    다. 소풍 때에는 부잣집 친구가 카메라를 가져와 찍었

    고, 나중에 한 장씩 나눠 가졌습니다. 소풍, 입학식, 졸

    업식, 수학여행이 사진 속에 담겼습니다. 간혹 무척 뜸

    했지만, 가족끼리 여행을 간 사진이나, 명절 때 한복을

    입고 찍은 사진도 앨범에 들어갔습니다. 카메라가 귀

    한 시절이었던 만큼 사진 역시 귀한 시절이었습니다.

    요즘엔 어떤가요? 고화질 카메라를 장착한 스마

    트폰이 있어 거의 모든 순간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게

    됐습니다. 따로 필름을 사지 않아도 되고 사진관에서

    인화할 필요가 없으니 편리하게 찍고 볼 수가 있지요.

    맛있는 음식이 나오면 먼저 스마트폰으로 인증샷을 찍

    고 수저를 들고, 경치가 좋은 곳에 가면 ‘셀카’를 찍어

    친구들에게 자랑합니다. 사진을 멋지게 꾸미는 어플도

    다양해서 누구라도 멋지게 사진을 표현할 수 있지요.

    편리함과 속도로 무장한 스마트폰은 전화기의 영

    역을 넘어 카메라의 영역까지 장악하는 모습입니다. 실

    제로 니콘이나 캐논 등 카메라 전문회사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것도 고화질 스마트폰 때문입니다.

    스마트폰의 발달로 사진을 쉽게 접하고 찍을 수

    있게 됐지만, 정작 사진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매우

    가벼운 것 같습니다.

    찰나의 시간을 포착하고, 소중한 이들과 보낸 순

    간을 기록하는 사진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며 스마트

    폰을 드는 분이 많아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장 눈

    에 보이는 것을 찍어 누군가에게 자랑하고, 나를 꾸미

    는데만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닌지 자문해 볼 일입니다.

    쉽게 찍고 지울 수 있는 스마트폰 사진보다 먼지

    속에 잊혀진 빛바랜 사진첩을 한 번 꺼내 보는 것은 어

    떨지요?

  • 20 송광사보 21

    16국사 소개

    제9세 담당국사

    국사와 관련된 자료가 전하지 않아 자세한 행장行

    狀을 밝히기는 어렵다. 그러나 국사에 대한 전설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는데, 국사는 본시 금나

    라金國 태자로서 사문沙門이 되어 고려에 와서 조계

    산의 제9세 법주가 되었다 한다.

    무무문

    無無門

    효봉영각 앞에 있는 문이다. 문이라 하지만 사모지붕에 기둥이 네 개가 있는 정자이기도 하

    다. 기둥사이에 널빤지를 두어 잠시 앉아 쉬어갈 수 있도록 했다.

    조계총림 초대방장 효봉스님은 평생 무無를 화두삼아 정진했다. 노년에는 ‘무無라, 무無’하시

    며 화두를 놓지 않았다. 현판 ‘무무문 無無門’은 후학들에게 들려주는 효봉스님의 가르침이다.

    송광사의 문_無無門

  • 22 송광사보 23

    조계총림 들여다보기_산신각

    불교와 토속신앙이

    함께하는

    산신각 山神閣

    국사스님 기도처

  • 24 송광사보 25

    산신각山神閣은 산신을 모신 집이다. 불교에서 산신은 신장 가운데 한 분으로 부처님 당시 부처

    님께 불법을 보호해 줄 것을 부촉받은 분이다. 민속신앙에서는 산 그 자체를 신성시하여 신앙하거나

    산속에 사는 호랑이, 바위, 큰 나무 등을 의인화하여 신앙해 왔다.

    1700년 전, 불교가 한반도에 전해지기 이전에 이 땅에 살던 조상들은 다양한 신에 의존했다.

    신들 가운데 산신은 불교가 전래되기 이전부터 믿어왔던 토속신앙의 하나이다. 종교학자들은

    “가람이 자리한 산은 성스런 존재의 거주처이자 청정한 도량이라는 영지신앙靈地信仰과 불국토를 옹

    호하는 기능을 지닌 화엄신중華嚴神衆에 대한 신앙이 배경이 돼, 토착의 산신이 무리없이 불교에 수용

    됐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불교의례를 행할 때 옹호신중단의 하나로 산신단을 설치해 산신을 청

    했다.”는 것이다.

    산신각에서 봉행하는 산신거불의 내용을 보면, 첫째는 산의 덕을 칭찬하고, 둘째는 자기가 의지

    하여 살고 있는 산에 감사하며, 셋째는 시방세계에 있는 모든 산들의 영험에 대하여 절하고 있다.

    인간은 산과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다. 산의 덕과 흔들림 없는 마음을 배우고, 자기가 처해 있는

    곳에서 산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송광사 산신각은 대웅전 뒤쪽 수선사 구역인 상사당 위에 자리해있다. 송광사에 전하는 이야기

    에 의하면 보조국사가 모후산에서 나무새를 날려 공부할 도량을 찾았다. 나무새는 송광사에 앉았고

    이곳에서 정혜결사를 단행했다. 산신각은 나무새가 처음 자리를 잡은 곳 옆이라고 한다.

    1886년 제작한 송광사 사적부 지도(규장각 소장)에도 현재 자리에 산신각이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특히 1900년대초에 발간한 조계산 송광사 사고(등록문화제 제634호) 건물부에는 ‘산신각국사지기도처

    야山神閣國師之祈禱處也(산신각은 국사스님의 기도처)’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으로보아 오랜동안 기도처로

    자리잡아왔다.

  • 26 송광사보 27

    생표고 5개, 양송이 5개, 옥수수 100g, 파프리카 1개,

    피망 1개, 찹쌀(왕)만두피, 소금 약간, 간장.

    청주 1큰술, 물 2큰술, 설탕 1/2작은술, 녹말 1/2작은술,

    후추 약간, 굴소스 1큰술

    이달의 사찰음식

    꽃만두 샐러드

    1. 표고버섯, 양송이, 피망, 파프리카는 굵은 채를 썰어 다져 놓는다.

    2. 달군 팬에 표고버섯, 양송이, 피망 순으로 중불로 볶은 후 수분을 제거해준다.

    3. 만두피는 홍두깨로 오무려 가면서 꽃이 피어나듯 튀겨낸다.

    4. 모든 재료를 팬에 담고 양념에 버무려 불을 끄고 튀겨낸 만두피에 담아낸다.

    송광사 사찰음식팀

    무더운 여름 홍시식혜와 곁들이면 더욱 맛있어요.

  • 28 송광사보 29

    송광사 불화이야기_팔상탱·1

    불전도의 전통 속 팔상탱우리는 지극히도 짧은 삶을 질풍노도처럼 살다 갑니다. 그런데 유한한 수명 속에서,

    마치 영원히 살 것처럼, 질주하던 욕망의 전차에 브레이크를 거는 때가 있습니다. 바로 무

    상無常을 느낄 때입니다. 철석같이 믿던 신념과 바윗덩이처럼 확고한 존재감이 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릴 때입니다. ‘나’ 역시 생로병사라는 불가피한 여정 속에 있다는 사실

    이 머릿속을 가로지를 때입니다.

    자유를 향한 싯타르타 태자의 여정 한 가지 확실한 사실, 우리는 모두 언젠가 반드시 죽습니다. 일찌감치 어머니와 사별

    한 탓에 삶의 무상함에 눈 뜬 고타마 싯다르타 태자는 29살의 나이에 출가합니다. 그가 마

    가다국의 수도 라자가하(왕사성)를 지날 때였습니다. 비록 싯다르타의 옷은 고행으로 너덜

    하고 더러웠지만 내면의 고귀한 기품은 숨길 수가 없었습니다. 수려한 용모에 넋을 잃어버

    린 빈비사라 왕은 태자에게 자신의 왕국에 귀의하라고 권유합니다. 그 대목을 잠시 보도록

    하겠습니다.

    왕: 꽃 같은 청춘은 그대 것이다. 원한다면 500마리의 코끼리 부대와 이에 상응하는

    높은 지위와 재물을 주겠다. 그러니 내 군대에 참가하라!

    싯다르타: 왕이시여, 저는 히말라야 산 중턱의 용맹한 부족 샤카야(석가)족 족장의 아

    들로 태어났습니다. 스스로 집을 나와 구도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영원한 열반을 얻어 마

    음의 평온을 얻고자 함입니다.

    석가모니 일대기

    여덟 장면으로

    그린 불전도

    28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송광사영산전팔상탱,1725년,비단에채색,126×118.5cm

    ※팔상탱은석가모니부처님의일대기를여덟장면으로나누어그린불화를말한다.〈도솔래의상〉〈비람강생상〉

    〈사문유관상〉〈유성출가상〉〈설산수도상〉〈수하항마상〉〈녹원전법상〉〈쌍림열반상〉의8폭으로구성된다.

    글·사진 강소연 l 중앙 승가대 교수

  • 30 송광사보 31

    부질없는 욕망을 위해서는 한 순간도 살지 않겠다는 싯다르타 태자의 단호한 포부가 전해집니다. 고대

    인도인들은 인생을 사는 데 있어 다르마·아르타·카마의 세 가지 목적을 규정하였습니다. 다르마dharma法

    는 인간다운 행위를 위한 종교적 의무이고, 아르타artha利는 실리를 위한 처세의 길이며, 카마kama愛는 재생

    산을 위한 성애의 길입니다. 이상적 삶의 형태로 소년기에 아르타를 익히고, 청년기에 카마를, 노년기에 다르

    마를 익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는 고대 브라만교를 계승한 힌두교의 가치관입니다. 하지만 싯다르타 태자

    는 이것이 자유를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거부합니다. 그리고 정진에 정진을 거듭한 끝에 생로병

    사에서 해탈하여 영원한 자유를 얻습니다.

    어떻게 하면 생로병사에 구애받지 않고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을까? 수많은 성자와 현인들이 인간의

    한계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지는 길을 모색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간의 인식의 한계

    를 넘어선 곳에 많은 신들과 종교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삶과 죽음 이면

    의 문제를 신에게 의탁했습니다. 하지만, 석가모니 부처님은 이 문제에 스스로 도전했고 그 실체를 보았습니

    다. 그리고 그 길을 찾는 비법인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를 설하여, 우리들로 하여금 영원한 자유를 스

    스로 찾으라고 하십니다.

    왕: 무슨 그런 당치 않은 소리! 이렇게 젊은데 그런 늙은이 같은 소리를 하다니. 늙은이처럼 열반을 동

    경하다니. 그런 것은 늙으면 어차피 알게 되는 것. 인생의 목적은 다르마眞理와 아르타利殖와 카마愛欲이다.

    젊은 청춘에게 어울리는 것은 카마를 원하는 대로 즐기는 것이다. 늙으면 누구든지 어떤 식으로든 다르마에

    이르게 된다. 하지만 애욕은 즐길 수 없지 않은가. 자, 그 더러운 옷을 벗어버리고 나의 성으로 가자, 성에는

    많은 미녀들이 기다리고 있다.

    싯다르타: 제가 출가한 이유는 온갖 욕망을 좇고자 함이 아니었습니다. 욕망이란 것은 모든 불행의 씨

    앗. 한번 욕망에 덜미를 잡혀 휘둘리게 되면 결코 만족할 수 없게 됩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이 욕망을 만족

    시키는 것이 아니라, 늙음老도 아픔病도 죽음死도 없는 경지에 이르는 것입니다.

    - 『경집經集』 「출가경出家經」 중에서

    싯다르타태자의탄생

    을축하하는비천과

    상서로운기운,〈도솔

    래의상〉의부분

    태자의빈자리,아쇼다라는태자가출가한줄은꿈에도모른

    채잠자고있다.〈유성출가상〉의부분,팔상탱초八相幀草,종이

    에묵선,192.3×99cm.

    “어서태자의얼굴을보고싶소!”정반왕은태자를보고뛸뜻이기뻤다.

    〈비람강생상〉의부분

    석가모니의 생애와 불전도의 전통 영원한 자유를 향한 석가모니 부처님의 여정

    은 조형 예술로 시각화되어 불교미술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습니다. 유사 이래, 어떤 영웅 또는 제

    왕의 일대기도 이처럼 오랫동안 넓은 지역에 걸쳐

    화려하게 구현된 적은 없었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님

    의 일생을 조각이나 그림으로 묘사한 것을 불전도

    佛傳圖라고 합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

    Gautama Siddhārtha로 약 2,500년 전에 인도 북부 지방

    의 사캬Śākya 부족의 태자로 태어났습니다. 사캬무니

    Śākyamuni란 사캬 부족의 존경할 만한 자 또는 성자

    라는 뜻으로, 발음대로 한자를 빌어 옮기면 석가모

    니釋迦牟尼가 됩니다. 사캬의 뜻은 ‘지극히 어질다’

    라는 뜻으로 능인能仁으로 의역되기도 합니다.

    시대가 가장 올라가는 불전도는 인도의 바르

    후트 탑과 산치 대탑에 부조로 조각되어 있습니다.

    기원전 2∼3세기경에 조성된 이들 스투파(유골을

    안치하는 건출물로 탑파 또는 탑의 유래이다)는 초

    기 불교미술을 대표하는데, 여기에 조각된 불전도

    에서는 부처님의 형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부처

    님이 있어야 할 자리를 빈 공간으로 비워두거나 또

    는 다른 상징물들을 통해 암시를 합니다. 부처님의

    발바닥만 표현하여 그의 족적을 표시한다거나 부

    처님이 득도한 보리수 나무로 그의 상징을 대신합

    니다. 또 법륜으로 부처님의 설법을 대신하고 스투

    파로 부처님의 열반을 표현합니다. 이를 ‘무불상無

    佛像시대’라고 합니다.

    기원후 1세기부터는 간다라 지방과 마투라 지

    방에서 각기 다른 양식의 부처님 형상이 본격적으

    로 만들어지는데, 특히 불전도는 간다라 미술의 주

    요 주제로 채택되어 탄생·성도·설법·열반의 네

    가지 장면을 위주로 일대기가 조성됩니다. 그 후 대

    승불교가 일어남에 따라 법신·보신·응신의 삼신

    三身의 불신설이 성립되고, 중국과 한국을 중심으

    로는 여덟 장면의 팔상도가 정립됩니다.

    석가모니의 일대기 중에 가장 중요한 대목을

    여덟 장면으로 추려 여덟 폭의 화면에 그린 것을

    ‘팔상도’ 또는 ‘팔상탱’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

    에서 크게 유행한 팔상도는 주로 대웅전, 영산전,

    나한전, 팔상전 등 석가모니 부처님을 주존으로 모

    시는 전각에 안치됩니다.

  • 32 송광사보 33

    템플스테이_어린이 여름수련법회

    스님에게 집중 포화

    “미워서 그런 게 아니예요”

    조계총림 송광사 템플스테이관 법당은 ‘천진당’이

    다. 천진당에는 특별하게도 아이처럼 천진한 아기부처님

    이 주석하고 있다.

    이곳은 송광사 어린이법회 법당이기도 하다. 매주

    일요일마다 열리는 송광사 어린이 법회는 송광사 강원

    스님들이 지도하고 있다.

    올해도 여름방학을 맞아 8월 6일부터 9일까지 3박

    4일간 송광사 템플스테이관에서 전국 어린이 여름수련

    법회가 열렸다. 어린이법회를 이끌고 있는 (사)동련 산하

    의 어린이법회가 함께했다. 전국에서 무려 300여 명의

    어린이와 지도교사가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송광사 어린이 수련법회의 꽃은 둘쨋날 열리는 물

    놀이이다. 더구나 올해는 최악의 폭염이 이어져 모두들

    무더위로 힘들어하던 중이었다.

  • 34 송광사보 35

    대상 : 내 삶의 멘토를 찾는 사람들 인원 : 25명

    일시 : 매월 마지막주 금, 토, 일 (2박3일)

    동참금 : 성인 (13만원), 학생 (10만원)

    준비물 : 세면도구 (수건, 칫솔포함), 여벌 옷, 양말

    (여름에도 필수), 개인물통 (텀블러)

    신청방법 : 송광사 홈페이지 songgwangsa.org

    도착 시 등록처 : 산사체험관에서 15시부터 접수

    문의 : 송광사 템플스테이 사무국

    061-755-5350, 010-8830-1921

    물놀이는 송광사 입구 다연원 앞 잔디밭에서

    열렸다. 거대한 물통에 송광사 계곡물이 담기고, 아

    이들 손에는 미리준비한 물총(페트 병)이 들렸다.

    오후 2시, 물놀이 시작신호와 함께 아이들의

    함성이 울렸다. 그런데 대부분 물총의 방향이 스님

    들을 향해 있었다. 수련법회 기간동안 아이들과 함

    께 동고동락하던 강원스님들이었다. 아니나 다를

    까 일제히 쏟아지는 물줄기에 스님들의 줄행랑이

    이어졌다. 수련법회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등명스

    님(대교과)은 줄곧 혼자서 20여 명의 아이들을 대상

    으로 물총 놀이를 해야했다.

    왼손에 석고붕대를 두른 홍태욱(서울. 초4) 어

    린이는 온몸이 물에 젖어 바깥으로 쫓겨왔다.

    “2주전에 왼팔을 다쳤어요. 그래도 물총놀이

    에 제가 빠질 수는 없지요.”

    어린이 수련법회 물놀이는 송광사 축제이기도

    하다. 사중의 노스님과 산내암자 대중들도 물놀이

    구경차 모였다. 30분이 흐르고 물놀이 일시중단 신

    호가 울렸다. 간식으로 얼음과자가 나왔다. 창원에

    서 온 박보연(초3) 어린이가 얼음과자를 먼저 스님

    에게 건네면서 위로(?)했다.

    “스님, 미안해요. 그래도 스님이 미워서 그런

    거 아니예요.”

    아이들이 쉬는 동안에 사중의 아저씨들이 부

    산하게 움직였다. 잠시 휴식시간에 물통마다 부족

    한 물을 채웠다. 이날 쓰인 물은 3t짜리 물차 한 대였다.

    또다시 물놀이를 알리는 신호가 울리고 아이들의 함성이 조계산을 뒤덮었다. 이렇게 송광사 어린이

    수련법회는 수많은 이야기를 만들어갔다.

  • 36 송광사보 37

    송광사에서 만난 사람들

    절에서 생활하는 것

    그대로가 수행 여름수련법회 자원봉사자 유지혜(동국대 1)

    “수련생들이 공부하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옆에서 도와준다고 했지만 미흡한 부분이 많았

    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상 웃는 모습으로

    대해주던 수련생 분들에게 감사 말씀 드립니다.”

    지난달 열린 제46차 송광사 여름수련법회

    자원봉사자로 참가한 유지혜(동국대1) 씨는 “힘은

    들어도 절에서 생활하는 것 그대로가 수행이다.”

    며 미소지었다.

    동국대 재학생인 유지혜 씨는 교양수업으로

    ‘불교와 인간’이란 수업을 받으며 불교의 매력

    에 푹 빠졌다.

    “불교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방학을

    이용해 송광사 여름수련법회 자원봉사를 신청했

    다.”는 유 씨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앞으로 어떻

    게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에 열쇠를 찾은 듯 하

    다.”고 밝혔다.

    유지혜 씨는 수련법회 마지막날 차담시간에

    자원봉사를 하면서 원주스님이 들려준 동자이야

    기를 수련생들에게 소개했다.

    “어느 절에 노승과 동자가 있었다고 합니

    다. 어느 날 노승이 동자에게 ‘내가 오늘 너에게

    도를 가르쳐 주겠다’라고 하시면서 마당에 동그

    라미 하나를 그려보라고 했습니다. 동자가 동그

    라미를 그리자, 노승이 ‘나는 지금부터 네가 이

    원 안에 있어도 너를 매질할 것이고, 원 밖에 있

    어도 너를 매질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때,

    동자가 매를 맞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정답은 원을 그렸던 선을 지우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저만의 선, 즉 ‘고정관

    념’이나 ‘편견’이라는 이름의 선으로 다른 사람

    의 행동에 옳고 그름의 잣대를 대고 있었다.”고

    고백했다.

    “앞으로 모든 생명의 평화를 위해 일을 하

    고 싶다.”는 유지혜 씨는 “사찰생활 가운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이 가장 힘들었다.”며 “그

    동안 새벽에 자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생활습

    관을 이번 기회에 고치겠다.”고 다짐했다.

  • 38 송광사보 39

    현대인을 위한 불교상담, 무엇이 힘드세요?

    효록스님 l 동국대 외래교수

    애가

    혼자 잤으면

    좋겠어요!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많다. 어떤 학자는 인간이

    겪는 심리적 고통의 대부분이 대인관계의 어려움이라고까지 말한

    다. 이 어려움의 근원은 주 양육자(주로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기인

    한다고 볼 수 있다. 갓난아이에게 주 양육자는 세상의 전부이자

    곧 세계이다. 여기 한 사례를 통해 아이가 어떻게 대인관계 맺는

    것을 익히는지 알아보는 시간을 2회에 걸쳐 갖기로 한다.

    지인의 소개로 찾아온 내담자의 어머니는 20살이 넘은

    자신의 아들이 나이에 비해 어머니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아

    직 혼자 자지 못하고 불안해한다며 아들이 무서워도 혼자 자

    기를 바랐다. 한편, 그는 최근 학교에서 친구들과 사이에서 생

    긴 대인관계 문제로 억울함이 머리끝까지 올라온 것처럼 보였

    다. 그는 친구들을 신경 안 쓰고 학교에 다니기를 희망하였다.

    어머니는 그를 상담실에 데려다주고 이내 돌아갔다.

    그가 태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사고를 당해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약해졌고 애민해졌다. 그래서 한

    동안 어린 내담자의 양육을 아버지가 맡기도 했다. 그의 부모

    는 이혼할 무렵까지 자주 다퉜고, 두 사람은 언어적으로 때로

    는 신체적으로 서로에게 폭력을 가했다. 어린 그는 어머니에

    대한 의존도가 점점 높아졌고, 부모 모두에게서 불안정한 애

    착관계가 형성되었으며 불안과 두려움을 느꼈다.

    그가 어렸을 때 부모는 이혼했고, 아버지가 집을 나간 지

    한 달이 되지 않아 어머니는 새 애인을 집으로 데려왔다. 어렸

    던 그가 어렵게 새아버지와 친밀함이 생길 무렵 어머니는 새아

    버지와 헤어지고 또 새로운 애인(아저씨)을 집으로 데려왔다. 어린 그는 자신보다 어머니만을

    챙겼던 새 아버지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는 어머니가 아저씨를 만나는 것을 몹시 싫어했고

    아저씨에게 심한 질투를 느껴 두 사람이 합치지 못하도록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였다. 그러자

    어머니는 어린 그에게 말을 듣지 않으면 ‘너 확 버려버리고 간다’는 말을 하곤 했다. 아버지

    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꼈던 그는 이러한 어머니의 말에 생존불안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어

    머니가 집 밖에서 아저씨를 만난 지 10년이 넘었다.

    상담이 진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혼자 자기 시작했으나 악몽을 꿀 때는 어머니

    를 찾곤 하였다. 그는 성인이 되어서도 어머니에게 집착하며 어머니의 옆자리를 다른 남자에

    게 내어줄 수 없었고 아저씨에 대한 적대감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만 5세 전후(4세~7세), 아동은 이성의 부모에 대해서 연애적 감정과 행동을, 동성의 부모

    에 대해서는 적대적 감정과 행동을 나타낸다. 이성 부모와는 성적 결합을 원하고 동성 부모는

    죽이거나 없어져 주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와의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삼각관계를 프로이트는 외디푸스(여자는 엘렉트라) 콤플렉스라고 했다. 이 시기에

    아동은 동성 부모와의 동일시(부모의 태도와 행동을 자기 것으로 만들면서 닮는 것)를 통해서 극복하

    거나, 수용할 수 없는 감정은 무의식(비의식)으로 억압한다. 심지어 공격자를 닮음으로써 불안

    을 방어하기도 한다. 다시 말해 두려운 대상의 특징을 닮아 자기 것으로 해서 그 대상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아버지의 폭력성을 닮기도 하고 어머니의 신경질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닮기도 한다. 이 시기를 건강하게 극복한 성인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부모가

    아닌 다른 대상에게 연애 감정을 느끼게 되고 부모로부터 독립을 하게 된다.

    그런데 외디푸스 콤플렉스가 적절하게 해결되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동일화할

    대상, 즉 부모의 부재(사망이나 이혼 등), 부모가 성격장애인 경우 등에는 적절하게 해결되지 못

    한다. 그의 경우는 전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가 느꼈던 삼각관계(어머니, 아저씨, 그)의

    갈등은 가정의 울타리를 넘어 연애할 때나 사회적 관계에서 재현되었고 전반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내담자의 신분을 보호하기 내용의 일부를 바꾸었음

  • 40 송광사보 41

    고향수

    중현 中玄 l 월간『송광사』편집장

    나는 무신론자다. 명색이 불교라는 종교의 성직자인 내가 무신론자인게

    어찌 보면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에는 모순되는게 전혀 없다.

    나는 이 세상에서 부처님을 가장 존경하고, 그 다음으로 마하트마 간디

    를 존경한다. 나는 부처님처럼 살고 싶고 부처가 되고 싶은 생각은 간절하지

    만, 부처님이 전지전능한 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신이라면 그런 생각을

    품는 것 자체가 심히 불경스런 일이다. 부처님은 말 그대로 깨달으신 분이다.

    그러나 부처님을 공경하는 마음은 절대적인 신에 대한 신앙과 본질적으로 다

    르지 않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어둔 법당 문을 열고 들어가 불을 켜고, 부처님

    전의 촛불을 켜고, 떠온 다기물을 올리고, 다시 밖으로 나가 도량석을 하고,

    대종을 친 후에 법당으로 들어와 새벽예불을 시작한다.

    아금청정수 我今淸淨水

    변위감로다 變爲甘露茶

    봉헌삼보전 奉獻三寶前

    원수애납수 願垂哀納受

    제가 비록 한 잔의 물을 올리지만, 저의 정성을 가득 담아 감로차를 올

    리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올리니 부디 저를 불쌍히 여겨서 자비를 베풀어 받

    아주기 바란다는 내용이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존경을 표현하고 있다. 이미 부처님은 더없

    이 높은 깨달음을 성취한 분이기에 내가 높이고자 해도 높일 수 없으니 나를

    낮추는 것이 그나마 내가 부처님께 예를 표하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서 내가

    공경하는 그만큼 나를 최대한 낮추어 나의 공경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물론 나는 기억도 나지 않는 첫 새벽예불 때부터 이런 마음으로 예불에

    임하지 않았다. 습관적으로 했고, 마지못해 했고, 하면서 졸기도 하고, 딴 생

    각하기도 하고, ‘이런 거 도대체 왜 하나’ 하는 생각을 수백 번도 더 하면서

    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랜 세월 예불을 하다 보니 어느새 예불은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란 생각이 머리에 박혀있다.

    새벽예불

  • 42 송광사보 4342

    행자시절, 밤사이 눈이 쌓이면 방장스님께서는 새벽 2시에 행자실로 전화를 해서 “스님

    들 새벽예불 가는데 불편하지 않도록 깨끗하게 눈 쓸어라.”고 하셨다. 행자들은 꼭두새벽부

    터 창백한 달빛과 눈빛에 의지해 차가운 눈 위로 불어오는 칼바람을 맞으며 눈을 쓸었다. 그

    러나 아무리 이제 갓 머리깎은 행자일지라도 예불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누구하나 방장스님의 지시에 토를 달지 않았다.

    ‘예불은 꼭 해야 한다’는 말이 필요 없을 정도로 불가에서 예불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

    다. 내가 유독 인욕심이 강해서 그토록 참아가며 새벽예불을 한 것이 아니다. 다만 출가수행

    자의 삶이 그러하고, 승가僧伽의 문화가 그러하기 때문에, 싫지만 어쩔 수 없이 그리한 것뿐이

    다.

    그러나 그렇게 세월의 때가 묻다보니 어느 순간, 오늘 새벽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종종

    있다. 새벽예불을 시작하면, 마치 가슴 속에 작은 불씨가 피어올라, 금방 꺼질 것처럼 펄럭이

    는 작은 불꽃이 되어 타오르는 듯하다. 나도 모르게 한없이 경건해진다. 마치 작은 새를 품

    에 안은 듯, 법당을 나와서도 꺼트리지 않고 잘 보살피고 싶다. 이런 마음이 신앙심이다. 신앙

    심은 꼭 절대적이고 전지전능한 신이 있어야만 하는 것이 아니다. 신앙의 핵심은 나를 낮추는

    것이다. 나를 낮추고 낮추어서 모든 생명 있는 존재들을 부처님이라 여기고 공경하는 것이다.

    신앙심은 결코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한순간의 충동에 그치는 것도 아니다. 오랜 수행

    으로 다듬어가는 것이다. 예불은 그 자체가 마음을 다스리는 큰 수행이다. 신앙과 수행은 불

    교를 떠받드는 두 기둥이다. 수행 없이 신앙심은 유지될 수 없고, 신앙심은 수행을 이어가는

    힘이다. 사람이 아둔해서 20년 가까이 예불을 하고 나서야 이 사실을 깨달았다.

    솔직하게 고백하건대, 출가자의 본분을 잊고 살아온 나날들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러나 새벽예불 때 가끔 마음속에서 피어오르는 작은 불씨 하나 없었다면, 이런 반성

    조차도 하지 않고 살았을 것이다. 요즘 “돈만 밝히는 기복신앙이 판을 치고, 수행정신은 퇴색

    하고 있다.”는 비판이 불교계 안팎에서 들려오고 있다. 일리 있는 비판이다. 그러나 새벽예불

    만 제대로 해도 이런 비난은 어느 정도 면할 수 있을 것이다.

    길고양이의법문

    중현스님/아름다운인연

    송광사보 편집장 중현 스님(화순 용암사 주지)이 사보에 연재한

    글과 페이스북에 올린 일상 법문을 모은 책,

    이 나왔다. 사보에 ‛고향수’와 ‛세상속으로’를 연재하고 있는 중

    현 스님은 “사보 빈자리를 메꾸려고 시작한 글들이 어느새 책

    이 한 권 되었다.”고 밝혔다.

    이 책은 평범한 일상에서 마주치는 귀한 깨달음의 순간들을 따

    뜻하고 연민 가득한 시선으로 포착해 독자들에게 선사한다.

    중현 스님은 “‘내 안’에서 일어나는 숱한 마음들을 들여다보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며, ‘내 바깥’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

    을 외면하지 않는다. 내 마음이 아프면 남의 마음도 아프고, 남

    이 고통스러워하면 내 마음도 고통스럽다. 다른 이들이 괴로운

    데 나만 행복할 수 없는 까닭은 마음과 세상이 둘이 아니기 때

    문이다.”고 강조한다.

    화엄법계와천문학

    이시우지음/도피안사

    국내 1호 천문학자, 이시우 박사가 화엄사상과 천문학의 연관성

    을 밝힌 을 펴냈다. 어려울 것 같은 주제이

    지만, 쉬운 문장으로 화엄사상과 천문학의 이치를 소개하고 있

    어 웬만한 지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했다.

    별이나 은하 등 거대한 물질 역시 고유한 자성을 유지할 수 없

    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일체개고, 제행무상의 원리가 인간에

    게도, 우주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인간은 결국 우주의 한 구성요소일 뿐이다. 거대한 우주에서 보

    면 존재감도 거의 없다. 이 박사는 “그래서 인간은 우주적 질서

    의 조화를 따르는게 마땅하다.”고 강조한다. 우주심으로 볼 때

    인간의 근본적인 마음佛性을 지니고 있지만, 번뇌망상의 생동심

    에 의해 잘 나타나지 않을 뿐이란다. 즉, 수행을 통해 생동심을

    제어하면 가려졌던 본성, 즉 불성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이런

    가르침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화엄의 세계’와 우주의 이론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 이 박사의 설명이다.

    책소개

  • 44 송광사보 45

    성보박물관 전통책 만들기 체험현장

    실로 꿰맨

    선장본으로

    나만의 책을

    만든다

    화순 만연사

    조계산 광원암

    진각국사

    다례재 봉행

    송광사 성보박물관이 시민과 만나기 위해 직접 도심으로 나갔다.

    그것도 대낮이 아닌 밤마다 8월 12일부터 14일까지 3일간 순천문화의 거리로 나선 것이다. 이

    곳에서는 순천시가 개최한 ‘순천문화읍성 달빛야행’ 행사가 펼쳐졌다.‘달빛 아래 걸으며 즐기는

    문화재 야간관람’이란 주제로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는 마당이 마련됐다.

    송광사 성보박물관도 ‘전통책 만들기’ 체험행사를 펼쳤다. 전통책 만들기는 책표지에 구멍을

    뚫어 실로 꿰매는 전통선장(5침안정법)기법으로 자신의 책을 만들어 가는 체험행사이다. 이번 전통

    책 만들기는 송광사 성보박물관이 몇해전에 진행한 ‘찾아가는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의 하나로

    큰 인기를 모았다.

    송광사 제2대 진각국사 혜심스님의 열반 제782주기 다례재가 7월 29일 화순 만연사와 조계산

    광원암에서 봉행됐다.

    올해 처음으로 화순불교사암연합회가 만연사에서 봉행한 다례재는 송광사 주지 진화스님을 비

    롯한 지역사암 스님과 구충곤 화순군수 등 기관장과 불자 100여 명이 참석했다.

    다례의식에서 화순불교사암연합회장 자공스님(만연사 주지)은 “진각국사는 화순이 낳은 큰스님”

    이라며 “오늘의 한국불교 기틀을 세운 스님의 뜻을 기려 매년 지역 사암을 중심으로 다양한 추모행

    사를 펼치겠다.”고 말했다.

    전통책 만들기 체험지도는 성보박물관 학예사들이 맡았다. 이번 달빛야행에서도 호응이 좋아

    1천 900여 명의 시민이 참여해 자기만의 책을 만들어 갔다.

    성보박물관 신규나 연구원은 “어린아이들이 세상에 하나뿐인 자기만의 책을 만드는 것을 좋

    아했다.”며 “고유의 책 장정인 전통 선장본을 일반에 알리는 뜻있는 체험행사가 됐다.”고 말했다.

    또한 송광사성보박물관은 이번 체험행사에서 송광사 목어, 감로탑 등 송광사를 상징하는 도안을

    스템프로 제작해 참가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날 진각국사 승탑이 모셔진 조계산 광원암에서도 추모 다례재가 열렸다. 다례재에 참석한 송

    광사의 사부대중들은 승탑에 헌화하고 명상시간을 가졌다.

    특히 광원암 진각국사 추모재에는 진각국사 스님의 후손인 화순 최씨 일족도 참석해 함께 추모

    의 시간을 가졌다.

    진각국사 혜심스님은 화순에서 출생했으며 보조국사 지눌스님의 법석을 이어 송광사의 제2중

    창을 이끌고, 간화선 사상을 발전시켰다.

    제2대 진각국사 열반 782주기

    만연사 다례재

    광원암 다례재

  • 46 송광사보 47

    송광사소식송광사소식

    화순 유마사,

    칠석날 보살계 수계법회 봉행

    화순 유마사(주지 일장스님)는 8월 9일 경내 봉황루에서 보

    살계 수계법회를 봉행했다.

    칠석을 맞아 열린 이날 수계법회는 전계아사리 대경스님,

    갈마아사리 혜수스님, 교수아사리 원각스님이 증명하고, 모

    후산 유마사 금강계단을 마련하여 보살계 수계식을 가졌다.

    올해로 6회째 맞는 보살계 수계법회에 앞서 주지 일장스님

    은 인사말에서 “예로부터 칠월 칠석날 집안에 우환이 없도

    록 기도 정진했다.”며 “보살계 수계로 부처님과의 인연 종

    자를 심어 지혜를 증장시키는 불자로 거듭나기 바란다.”고

    기원했다.

    송광사는 8월 24일 사하촌 연방죽에서 연잎을 채취하는

    울력을 했다. 이날 채취한 연잎은 송광사를 대표하는 연잎

    차로 가공해 1년간 대중스님과 송광사를 찾는 이에게 제공

    한다. 송광사 연잎차는 뜨거운 햇볕 아래 맑은 공기와 시원

    한 바람, 청정한 기운을 받고 자란 백련 잎을 채취하여 씻

    고, 썰고, 살짝 말리고, 덖어 만드는 전통 덖음차다. 특히

    송광사 연잎차는 진한 향기와 구수한 맛이 일품이어서, 한

    번 맛본 이들은 자꾸 찾게 되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차다.

    이번 연잎 채취로 약 1개월의 가공 기간이 끝나면 향긋하

    고 구수한 연잎차의 맛을 볼 수 있다.

    사하촌 연방죽에서 백련 잎 채취

    임명장

    장흥 보림사_일선 스님 장흥 천관사_지행 스님순천 대승사_보리 스님

    조계총림 임회가 하안거를 마치고 8월 15일 목우헌에서

    열렸다. 이번 임회에서 보조국사 종재 이외의 국사스님들

    재는 다례재로 표기하기로 했다.

    또한 조계총림 발전을 위해 정기적으로 후원하는 회원을

    모집하기로 하고 CMS를 운영하기로 했다. 후원금은 조계

    총림 산하 수행기관 운영과 승려복지기금으로 사용할 예정

    이다.

    송광사 불일불교대학 경전반은 8월 12일 강진 백련사와

    장흥 보림사를 찾아 문화답사를 실시했다. 교무 정응스님

    과 함께 여름방학을 맞아 남도의 사찰을 찾아 떠나는 사찰

    답사는 경전반 학인 30여 명이 참석했다. 무더위 속에 열

    린 이번 문화답사는 신심을 키우고 학인들간의 화합을 도

    모하는 뜻깊은 행사였다.

    조계총림 임회, 승려복지기금 CMS 운영

    불일불교대학 경전반 문화답사

    제21교구 송광사 신도회 정기간담회가 7월 22일 광주 무

    각사에서 열렸다. 이날 간담회에는 송광사 본말사 신도회

    임원 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신도회 활성화 방안을 주제

    로 토론했다.

    다음 간담회는 9월 21일 송광사에서 열린다.

    지난 8월 18일, 화성 용주사 신도 200여 명이 송광사를

    참배하고 장학기금 500만원을 전달했다. 이날 방생법회차

    송광사를 찾은 용주사 신도들은 대웅전에서 주지 진화스

    님에게 장학금을 전달하고 “물고기 방생이 아닌 인재방생

    으로 방생기금을 전달한다.”고 밝혔다.

    교구신도회 9월 21일 송광사에서 간담회

    용주사, 장학금 500만원 전달

  • 48 송광사보 49

    성보박물관 소식 감로암 소식

    감로암 삼성각 불사 동참자

    강호철. 김동웅. 김용성. 김홍기. 박병수. 박인태. 박정환. 배길남. 배재성. 배재형.

    옥형표. 유태한. 윤영길. 이재동. 임정선. 장선열. 장윤종. 정영규. 정재호. 채규준. 황원

    달마사 위탁유물 입고

    응진당 나한상 보수

    성보각 특별전 마치고 전시실 휴관

    송광사 응진당에 봉안되어 있는 16나한상 가운데 한 분

    의 손가락이 탈락되어 7월 20일 보수작업을 했다. 보수

    작업은 ㈜해성문화재보존 김윤주 사장이 직접 맡아 무사

    히 마쳤다. 응진당은 보물 1549호로 선원구역에 자리해

    있다.

    서울 달마사에 소장중인 만공스님 유물 5점이 7월 23일

    위탁보관으로 송광사 성보박물관에 입고되었다.

    달마사에 보관중이던 유물은 만공스님이 직접 쓴 편액 1

    점과 주련 4점으로 보관상태가 좋지 않아 훼손이 진행중

    이었다. 성보박물관은 훈증소독과 보존처리 등의 과정을

    거쳐 지난 8월 17일 수장고로 입고했다.

    성보각에서 진행중인 ‘무우수 아카데미’의 불화 특별전

    을 7월 31일 마쳤다. 이번 특별전은 3개월동안 약 1만5

    천여 명이 관람했으며, 도록과 리플렛을 배포했다. 이번

    특별전을 마지막으로 박물관 전시실은 휴관하며, 내년

    신축박물관이 완공되면 전시실을 개관한다.

    송광사 행정자료 전수조사송광사에 보관중인 행정문서 자료에 대한 전수조사를

    8월 18일부터 25일까지 실시했다. 이번 자료조사는

    2000년대 이전의 종무소 행정 자료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고 DB로 구축해, 보다 유용한 자료로 만드는 사업이

    다. 종단에서 실시한 이번 조사는 전라도 지역 4개 본사

    를 대상으로 먼저 시행했으며, 송광사를 마지막으로 올

    해 사업을 마무리 했다.

    동참문의 종 무 소 0 6 1 - 7 5 5 - 7 7 0 5

    동참계좌 우체국 501676-02-041153 (예금주 : 송광사)

    삼성각은 산신(山神)·칠성(七星)·독성(獨聖)을 함께 봉안하고 있는 전각입니다.

    삼성각에 모시는 칠성,산신,독성님은 중생을 이롭게 하며 부처님 도량을 수호하고 정법을 옹호하는 호법신장입니다.

    이번 삼성각 건립과 삼성탱화 조성 불사가 원만히 성취될 수 있도록 동참의 인연을 맺으시어, 뜻하는 바가 모두 원만

    성취되시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 감로암 감원 일화 합장

    조계산 감로암 삼성각 건립 및

    칠성·산신·독성 탱화 조성 불사

    산신탱화

    칠성탱화

    독성탱화

  • 50 송광사보 51

    효봉은 송광사에 주석하면서 후학을 일깨워주는 일뿐만 아니라 도량을

    정비하고 보수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하여 금강산을 돌아

    보고 온 해인 1944년 초가을에 영광루靈光樓가 완성되자 기뻐하며 ‘조계산

    송광사 영광루’란 시 한 수를 지어 읊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은 한민족에게 축복이면서 동시에 비극의 시작이었

    다. 일제의 식민 통치를 벗어났다는 점에선 매우 기쁜 일이었지만 동시에 북

    위 38도선을 기준으로 남한은 미국, 북한은 소련이 각각 점령 통치하게 되었

    다는 점에선 비극이었다.

    멀리 남쪽에서 그런 소식을 접한 효봉은 더할 수 없이 착잡했다. 고향

    에 두고 온 가족들 때문이었다. 출가 사문으로서 속가를 걱정하는 건 바람

    직한 일이 아니었으나 그렇다고 냉정하게 외면할 수도 없는 게 혈육이었다.

    그래서 효봉처럼 졸지에 이산가족이 된 개인에게는 남북의 분단이 더욱 서

    글펐다. 이미 수십 년 동안 이산가족으로 살았으나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재회할 수 있는 상황과 타의적인 분단으로 인해 마음대로 오갈 수 없는 상

    황은 확연히 달랐다.

    광복 후 정치·사회적으로 대대적인 변화가 시작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

    다. 불교계도 예외가 아니어서 우선 일제의 식민 통치가 남긴 잔재들을 씻어

    가야총림

    방장이 되어 작가 이정범 내는데 주력했다. 일제의 압력에 따라 대처, 육식 등이 허용되었던 왜색불교를 수행 위주의 청정 종단으로 되살려 나가는 게 시급했다.

    해방 직후인 1945년 8월 19일, 조선불교혁신준비위원회 위원들이 조선

    불교 조계종 중앙종무원의 업무를 인수했다. 그 뒤 9월 22일 ~ 23일 이틀 동

    안 전국 승려대회가 열렸다. 당시 불교계는 31본산으로 구성되었는데 이중

    27본산의 대표 60여 명이 태고사(현 조계사)에 모였다. 이 대회에서는 조선총

    독부가 제정하고 시행했던 ‘사찰령’을 폐지하는 등 일제의 잔재를 제도적으

    로 청산하는데 주력했다. 아울러 ‘중앙총무원의 주도로 산세가 수려하고 수

    용이 편리한 사찰 하나를 지정한다, 총림의 주지 및 모든 간부를 대처가 아

    닌 비구승으로 한다’ 등의 원칙을 정해 모범 총림을 설립할 것을 결의했다.

    1946년 11월 초순에는 해인사를 총무원 직속의 모범 총림으로 지정했으며,

    11월 6일에는 효봉을 총림의 조실(방장)로 위촉했다.

    가야총림은 이렇게 공식적으로 출범한 것이지만 실질적으로는 해방 이

    전인 1944년부터 총림을 세우자는 논의가 있었다. 그 주인공들은 청담, 성

    철, 우봉, 도우 등 선방 수좌들이었다. 그들은 1944년 가을 문경 대승사 쌍

    련선원에 머물 때 한국불교를 살리기 위해 모범 총림을 세우자고 뜻을 모았

    다.

    그리하여 만약 가야총림이 실현되면 조실로는 효봉 스님을 모시고 선

    원은 청담과 성철, 강원은 운허와 이광수, 율원은 자운에게 맡긴다는 복안을

    가지고 있었다. 그 뒤 이들의 복안이 현실화되어 공식적으로 가야총림이 설

    립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당시 젊고 패기 넘치던 걸출한 수좌들의 효봉에 대

    한 존경심을 짐작하게 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와 별도로 효봉은 송광사에 주석한 뒤로 목우가풍을 계승하고 정혜

    쌍수와 조계선풍을 일으키는데 주력해왔다. 그 뒤 해방을 맞아서는 보조국

    【역사소설】 /無無門•21

  • 52 송광사보 53

    【역사소설】 /無無門

    사의 정혜결사를 본받아 세속화되고 타락했던 왜색불교로부터 벗어나 청정

    한 승가사회를 구현하려고 했다.

    효봉이 송광사에서 추진한 정혜결사는 1946년 7월 15일부터 3년을 기

    한으로 시작되었다. 이 정혜결사를 시작하면서 효봉은 “일대사를 밝히지 못

    한다면 결코 산문을 나서지 않겠노라.”고 천명했다. 그리고 동구불출洞口不

    出, 오후불식午後不食, 장좌불와長坐不臥, 묵언黙言 등 규약을 정하고 용맹정

    진에 들어갔다. 처음엔 몇몇 수좌들이 따라하다가 차츰 숫자가 불어나 송광

    사의 대다수 대중이 이 정혜결사에 동참하게 되었다.

    하지만 효봉의 다짐과 달리 송광사에서 추진하던 정혜결사는 중단되었

    다. 부득이하게 가야총림의 방장으로 위촉되어 해인사 퇴설당으로 그 주석

    처를 옮겨야 했기 때문이다. 효봉이 가야총림의 방장으로 추대 받을 무렵,

    스승 석두 선사는 순창에서, 상수제자인 구산은 김천 수도암에서 각각 수행

    중이었다. 효봉은 가야총림의 방장으로 부임해달라는 청을 몇 차례 사양했

    으나 종단의 거듭된 부탁을 계속 사양할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그가 송광사를 떠나기 위해 삼일선원을 나섰을 때 당시 주지 소임을 맡

    고 있던 해은재선海隱載善을 비롯해 송광사 사부대중이 효봉 일행을 배웅했

    다. 해은이 대중들을 대표해 작별인사를 건넸다.

    “스님, 늘 평안하시고 가야총림의 일이 마무리 되시면 꼭 조계산으로

    돌아오셔야 합니다.”

    이때 효봉도 송광사를 떠나는 감회를 시로 적어 전달했다.

    我來松廣今十年 송광사로 온 지 어언 십 년

    國老懷中安食眠 옛 어른들 품에 안겨 편히 쉬었네

    曹溪一別緣何事 이제 무슨 인연으로 조계산을 떠나는가

    欲作人天大福田 인간과 천상에 큰 복전 일구려 하네.

    모범 총림의 조실로서 인천人天에 큰 복전을 일구겠다는 원대한 다짐은

    당연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해방 이후의 혼란했던 시국에서 중심을 잡

    고 종단을 이끌어나가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것은 효봉의 인생에

    서도 중대한 전환점이었다.

    해은 주지가 송광사로 꼭 돌아와 주십사 했을 때 효봉은 당연히 그렇게

    될 것으로 믿었다. 송광사야말로 그의 깨달음이 꽃을 피우고 아름답게 열매

    1920년대에촬영한해인사전경

    를 맺은 고향의 뒷동산 같은 곳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보조국사의 발자취를

    배우고 익히는 사람, 즉 ‘학눌’이란 이름을 지을 만큼 목우가풍을 아끼고

    사랑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 54 송광사보 55

    【역사소설】 /無無門

    그러나 그는 열반에 들고 영롱한 사리가 되어 돌아가기 전까지는 다시

    송광사에 주석할 수 없었다. 험악하고 흉흉하기 이를 데 없이 흘러간 세월

    때문이었다.

    법보종찰 해인사는 9세기 초 신라 애장왕 때 화엄십찰華嚴十刹의 하나

    로 창건된 도량이다. 있는 그대로의 세계가 한없이 깊고 넓은 큰 바다라면

    중생의 번뇌와 망상이라는 파도가 멈출 때 우주 실상이 그대로 비치는 경지

    를 해인海印이라 한다는 화엄경 구절에서 해인사라는 이름이 비롯되었다. 역

    사적으로 희랑希朗, 균여均如, 의천義天과 같은 걸출한 학승들이 배출된 이

    가람은 세계문화유산과 국보, 보물 등 70여 점의 유물을 보존하고 있는, 국

    내 최대 사찰로서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효봉은 10년 동안 머물며 후학들을 제접하던 송광사 삼일암을 떠나 해

    인사 퇴설당堆雪堂으로 이거했다. 퇴설당이란 당호는 중국 선불교의 초조 달

    마대사와 그의 제자 혜가慧可 사이의 일화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본래 유학

    을 공부했던 혜가는 어느 날 달마대사 이야기를 듣고는 소림사로 찾아가 면

    벽 수행하던 달마에게 가르침을 청했다. 달마가 외면하자 혜가는 동굴 앞뜰

    에 서서 달마의 허락이 있길 기다렸다. 때마침 큰 눈이 내려 무릎까지 쌓였

    다. 그 눈을 고스란히 맞으며 혜가는 밤을 새웠다. 이튿날 아침 달마가 눈을

    잔뜩 뒤집어쓴 혜가에게 물었다.

    “그대의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가?”

    혜가는 지체 없이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칼을 꺼내 자신의 왼팔을 잘랐

    다. 그때 뜰에서 갑자기 파초 잎이 솟아났다. 혜가는 그 잎으로 자신의 잘려

    진 왼팔을 감싸 달마에게 바쳤다. 이 입설단비立雪斷臂의 일화처럼 불제자는

    모름지기 눈 쌓인 굴 밖에 서있는 듯한 마음으로 수행의 길을 걸어야 한다

    는 뜻에서 퇴설당이란 당호가 정해졌다.

    효봉은 퇴설당에 입실하면서 일제로부터 왜곡된 수행가풍을 올바르게

    일으켜 세우겠다는 원력을 새롭게 다졌다. 그런 원력은 청담, 성철, 자운 등

    눈 푸른 납자들이 이미 세운 바 있거니와 그런 의지에 동참하는 젊은 수행

    자들을 지도하고 격려하는 일이야말로 당시의 효봉이 감당해야 할 역할이었

    다.

    송광사의 도인 스님이 가야총림의 방장으로 부임했다는 소식이 알려지

    자 그 무렵 전국 각지에서 110여 명의 젊은 납자納子들이 모여들었다. 효봉

    은 그들의 팔팔한 기상과 구도에 대한 열정을 목격하며 이 나라 불교의 동

    량으로 잘 키워내겠노라 더욱 다짐했다.

    하지만 당시의 모든 사찰들처럼 가야총림의 해인사 또한 살림살이가

    지극히 궁핍했다는 현실적인 한계가 있었다. 가야총림은 종단 차원에서 설립

    된 것이었으나 종단의 지원이 따르지 않았다. 결국 방장이 그 살림살이까지

    도맡아해야만 했다. 매일 참배하러 드나드는 신도와 객승, 총림 학인과 사찰

    사무를 맡은 종무원, 처사, 공양주 보살 등 수백 명의 끼니를 책임지는 것도

    조실 효봉의 몫이었다. 이에 효봉은 김천 수도암에서 수행에 전념하던 상수

    제자 구산에게 부탁해 가야총림의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도록 했다.

    사실 선방 수좌가 원주를 맡는 것은 꽤 어색한 일이었다. 구산은 백련

    암 중창 불사 때 화주를 맡은 경험이 있었으나 총림의 원주는 처음이었다.

    그러나 은사의 명성을 듣고 해인사로 모여든 수행 납자들의 기아 상태를 외

    면할 수가 없었다.

    그의 상좌 원명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엔 사찰마다 먹을 게 귀해 속가에

    서 식량을 가져오든가 본인의 힘으로 해결해야 할 정도였다. 가야총림도 양

    식이 귀해 날마다 감자로 연명했다. 이를테면 ‘더북더북 썰어서 삶은 감자를

    먹고 선방에 앉아있으면 이내 배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곤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수좌들은 공부에 대한 일념으로 누구하나 불평하는 사람이 없었

    다.

  • 후원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송광사가 전하는

    수행의 향기,

    월간 『송광사』를

    정기구독하십시오.

    월간 『송광사』를 정기구독하는 것

    은 수행에 일로매진하는 송광사의

    많은 스님들께 올리는 공양이자,

    불자님의 마음밭을 일구는 생활

    속 수행입니다.

    1년 정기구독료 3만원

    정기구독 회원

    김효수, 김노수, 장재혁, 손의수,

    대원영재, 김순희

    법보시 후원

    김부원, 이지수, 김예림(가족3명),

    원만성,조재자, 정성태, 송선화

    김용인영가 최추림영가

    황재순

    송광사 불사 동참에 감사드립니다.

    김민주 1397

    김태현 3232

    김도현 1398

    이이남 1925

    손예린 1108

    양진철 1202

    박춘수 1828

    정민혁 1135

    박진석 1829

    정인서 1136

    강승회영가 1623

    정현우 1137

    손진웅 2381

    정형수 1273

    김외선 1684

    정승원 1274

    강동호 1685

    정주원 1275

    최준철 1821

    정원준 1276

    김신애 1822

    이성훈 1689

    최우영 1823

    이광훈 1690

    허진영가 1415

    김주완 3362

    한강수 2550

    한영수 2551

    ◈ 관음전 신규 인등회원 명단

    ◈ 영산전 팔상탱화 동참자

    ◈ 16국사 진영봉안불사 동참자

    개인 :

    개인 :

    (2016.7.21 ~ 2016.8.20)

    • 사중 승합차 – 금강지 보살 (3,500만원)

    • 살수차 – 윤덕심 (300만원), 김채은 (100만원), 윤성원 (100만원), 금령사 (100만원), 무량승 (100만원),

    명파 (100만원), 무기명1인 (100만원), 이승일영가

    • 피자대중공양 – 정일상, 혜정심

    • 메밀국수 대중공양 – 유나현묵스님, 취봉선사문도, 혜안심

    • 자장면 대중공양 – 여해스님

    •기타후원 대중공양물 보시 – 안숙원. 천호종. 연혜선. 노형희. 정은아. 이선희. 이향선.권점숙. 김중원.

    이현옥. 고불암대중. 불일학당1기. 박선영. 안성희. 이희영. 서공스님.

    용호정사대중. 홍원심. 행복한밥상. 정정애. 연화성. 지월보살. 수연행. 이연우.

    양법성화. 월하연. 혜명화. 향성월. 서지미. 맑은소리맑은나라. 윤덕심.

    부산불교대학. 김화령. 수선행. 가창칼국수. 다송원. 벌교식당. 부동지.

    포교사합창단. 지혜장. 원행보살.

    ◈ 원주실 대중공양

    문 의 : 송광사 편집실 061-755-5328

    후원계좌 : 우체국 501676-01-001432 (송광사)

    블 로 그 : http://blog.naver.com/songgwang01

    송광사는 전남대 화순병원을 비롯 전국의 병원

    에 월간 『송광사』를 법보시하고 있습니다. 월간

    『송광사』를 병마에 고통받는 환우들에게 보내는

    운동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월간 『송광사』 법보시 안내

    송광사에서는 대중공양 물품을 후원받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보내주신 물품은 사중스님들과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쓰일 예정입니다. 불자님들의

    많은 후원 부탁드립니다.

    ◈ 주소 : 전남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 안길 100

    ◈ 문의 : 원주실 061)755 - 5301, 010 - 9440 - 5301

    대중공양 물품 후원 받습니다

    홈페이지_ www.songgwangsa.org

    페이스북_ Facebook.com/SongGwangsa

  • 승보종찰 송광사 주지 진 화 합장

    송광사 사부대중은 그동안 사진으로 대체되었던 영산전 팔상탱화(보물 제1368호)를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하여 다시 영산전에 봉안하고자 합니다.

    이번에 새롭게 복원하는 영산전 후불탱화는 영산회상도와

    부처님의 생애를 묘사한 여덟 점의 석가후불도입니다.

    영산전 팔상탱을 새롭게 모시는 인연공덕으로 다함께 성불도생하시길 간절히 기원합니다.

    접 수 기도접수처 : 061) 755 - 5306

    계 좌 농 협

    351 - 0482 - 9771 - 03 (예금주 : 송광사)

    우 체 국 501676 - 01 - 002456 (예금주 : 송광사)

    국민은행 783601 - 01 - 464275 (예금주 : 송광사)

    대시주 | 2,000만원

    대시주자는 시주질에 기재.

    대중질大衆秩과 시주질施主秩은 탱화 뒷면에 기록.

    일반동참 | 1구좌 30만원

    구좌 당 접수받으며, 1구좌 이상 가능.

    한 점의 팔상탱에 여러 구좌를 올릴 수 있으며

    여러 구좌를 한 점 이상의 팔상탱에 올릴 수도 있음.

    동참자 명단은 복원된 팔상탱에 복장.

    영산전 팔상탱화 봉안 불사

    영산전 팔상탱 을 새롭게 모십니다

    5. 설산수도-설산에서 수도를 하다 6. 수하항마-보리수 아래서 마귀의 항복을 받다

    송광사 금강산림대법회 승보종찰 조계총림 송광사에서는

    제방의 큰스님들을 모시고 금강산림대법회를 봉행합니다.

    대법회 기간동안 매일 영가천도 기도를 봉행하며, 일주일에 한 번씩 큰 스님들의 초청법문이

    펼쳐집니다.

    대법회에 동참한 불자님에게는 깨달음의 향훈이 함께하는 시간이 될 것이며, 인연있는 영가분

    들에게는 극락왕생을 발원하는 뜻 깊은 시간이 될 것입니다.

    나무금강반야바라밀

    제12회

    승보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