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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생명과학과 법

의생명과학과 법cmsorgan.wku.ac.kr/.../12/의생명과학과_법_제6권.pdf · 2016-12-02 · 12월), 7-8면 12) 예컨대 장영민, “생명공학의 형법적 한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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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의생명과학과 법

  • 간행사

    - 3 -

    간 행 사

    어느덧 2011년 한 해도 몇 일 밖에 남지 않았군요! 연말이 되면 언론과 주

    변의 지인들에게서 흔하게 “정말 올해는 다사다난한 한 해였습니다”라는 인사

    치레를 자주 들어왔는데, ‘흔하다’라는 표현이 무색할 정도로 정말 바쁜 한 해

    를 보낸 것 같습니다.

    특히, 올해는 우리 법학전문대학원 특성화분야인 의생명을 더욱 발전시키

    는 한 해였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6월『의생명과학법 제5권』발간과 국내학술

    대회 개최를 시작으로 의생명과학법 연구총서, 의생명판례연구, 의생명 외국법

    제동향의 발간이 임박해 있고 명년 2월에 해외유명학자들을 초청하여 국제학

    술대회를 개최할 예정입니다. 이 모든 결과는 법학연구소장님과 여러 교수님

    들이 바쁘신 가운데에서도 우리 센터에 관심과 격려를 보내주셔서 가능한 것

    이었습니다.

    이번에 우리 센터는『의생명과학과법』제6권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많은

    논문의 투고가 있었지만 그 중에서도 오랜 심사 끝에 주옥같은 논문을 선별하

    였습니다.

    끝으로『의생명과학과법』제6권이 발간되기까지 애써 신 모든 분들께 다시

    한 번 더 감사의 말씀을 전해 드리며 2012년 새해에는 계획하시는 모든 일들

    이 성취되고 더욱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2011년 12월

    원광대학교 법학연구소 의생명과학법센터장 송 영 민

  • 목 차

    - 5 -

    의생명과학과 법 第6卷

    목 차

    ◈ 연구논문 ◈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 ·········· 김일룡 ········· 7

    생명윤리에 관한 법규범력 확보와 그 한계 ································· 황만성 ······ 41

    추가의정서 상의 GMO의 잠재적 위험에 따른 책임제도 ··········· 김은진 ······ 69

    심적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와 민사법적 문제 ····························· 송영민 ······ 95

    영상장비 수가인하 판결에 관한 소고 ··························· 박정일 원종석 ···· 119

    일본의 생명윤리와 대리임신의 법적규제 ····································· 이형석 ···· 139

    中國 臟器移植의 現況 ····································································· 昌新娟 ···· 165

    ◈ 부 록 ◈

  • 의생명과학과 법 제6권

    - 6 -

    의생명과학과 법 第6卷

    Contents

    The Structure of Burden of Proof in Medical Malpractice

    Suit revealed in Judicial Precedent ········ Kim, Il-Ryong ··········· 7

    Legal Regulation and it's Limitation in

    Bioethics ·············································· Hwang, Man-Seong ········ 41

    Liability on GMOs' Potential Risk in Supplementary

    Protocol ···························································· Kim, Eun-Jin ········ 69

    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and Civil Legal

    Issues ······················································· Song, Young-Min ········ 95

    Concerning the judgement on medical image equipment care expenses

    cost markdown ············ Bak, Jeong-Il Won, Jong-Seok ······ 119

    Bioethics and Surrogate pregnancy Regulation in

    Japan ······················································ Lee, Hyeong-Seok ······ 139

    The current status of organ transplantation in

    China ·························································· Chang, Xin-Juan ······ 165

  • - 7 -

    원광대학교 법학연구소

    의생명과학과 법 제6권 (2011. 12)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1)

    The Structure of Burden of Proof in Medical

    Malpractice Suit revealed in Judicial Precedent

    김 일 룡*

    Kim, Il - Ryong

    《 목 차 》

    I. 서 론

    Ⅱ. 변론주의

    Ⅲ. 증명책임의 분배

    Ⅳ. 판례의 입장에 대한 검토

    Ⅴ. 결 론

    Ⅰ. 서 론

    19세기 후반에 제정된 독일민사소송법(ZPO)의 개념과 이론체계는 주로

    계약을 둘러싼 분쟁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즉 위 법은 당시에 풍미하던

    *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원광대학교 법학연구소 연구위원, 법학박사.

  • 의생명과학과 법 제6권

    - 8 -

    개인주의, 자유주의의 영향을 받아 자유롭고 평등한 인격자가 합리적인 판

    단으로 맺은 계약의 존재를 예정하고 여기에서 일어나는 분쟁의 해결에 진

    력하는 형태를 취한 것이다. 우리의 민사소송법도 독일민사소송법의 영향을

    크게 받아 제정된 것이므로 그 이념 또한 같은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민사소송법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하여 도입된 원리가 처분권주

    의와 변론주의이므로 우리 민사소송법에서도 이를 전체를 통관하는 가장

    중요한 심리의 원칙으로 삼고 있다. 특히 변론주의는 소송요건 등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 본안 심리의 경우에 보편적으로 적용된다.

    종래 의료과오에 기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함에 있어 변론주의의 원리

    와 증명책임을 결합하여 고찰하면, 일반불법행위로 구성하는 경우에는 가해

    행위, 위법성, 고의 또는 과실, 손해발생과 손해액수, 가해행위와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라는 다섯 가지 사실 모두 원고가 증명해야 한다. 반면에

    채무불이행으로 구성하는 경우에는 일반적으로 채무가 성립한 사실, 상대방

    이 그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사실, 위법성, 손해발생과

    손해액수, 의무위반과 손해발생 사이의 인과관계는 원고가 증명하고, 귀책

    사유(고의⋅과실)에 대해서는 채무자가 무과실을 증명하여야 한다고 보는 것이 통설1)⋅판례2)이다.

    이렇게 보면 기존의 이론체계 하에서도 의료과오 손해배상소송을 불법

    행위가 아니라 채무불이행으로 구성하는 경우 무과실의 증명책임을 의사인

    피고에게 지우기 때문에 증명책임의 입장에서 한결 수월한 소송이 될 수

    있는 듯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의료과오에 기한 손해배상

    소송은 이행지체나 이행불능의 경우가 아니라 불완전이행 내지 적극적 채

    권침해에 해당하고, 의료계약은 위임계약의 성격을 띠므로 “채무의 내용에

    좇은 이행을 하지 아니한 사실”, 즉 피고의 선관주의의무 위반을 원고가 증

    명하여야 하기 때문에 실제로는 피고의 귀책사유에 대한 증명책임도 원고

    가 부담해야한다. 즉 의료계약은 위임계약이므로 환자가 완치되지 않았다고

    1) 곽윤직,「채권총론(제6판)」, 박영사, 2009, 87⋅91⋅100쪽; 김증한⋅김학동,「채권총론(제6판)」, 박영사, 2007, 89쪽.

    2) 대법원 2000. 11. 24. 선고 2000다38718,38725 판결.

  • 김일룡: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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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서 곧바로 불완전이행이 인정되는 것이 아니고 결과에 관계없이 의사에

    게 요구되는 주의의무를 위반한 경우에 비로소 불완전이행이 인정되기 때

    문에 주의의무위반사실은 원고가 증명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결론적으로 의

    료과오에 기한 손해배상소송에서는 불법행위로 이론구성하든, 채무불이행으

    로 이론구성하든 요건사실의 전부를 원고가 증명해야 하므로 증명책임의

    분배의 문제와 관련해서는 별다른 차이가 없게 된다.3)

    그런데 21세기가 시작된 오늘날은 더 이상 민사소송법이 상정하고 있는

    19세기의 목가적인 시대가 아니다. 즉 현재의 민사소송 상황은 개인사이의

    계약관계보다는 주로 불법행위 또는 불법행위와 계약이 교착하는 분쟁을

    대상으로 하고 그 분쟁의 모습은 복잡화⋅전문화⋅거대화되었으며, 분쟁당사자는 개인 대 개인이기 보다는 거대조직 대 피해자집단의 대립으로 옮겨

    가고 있다. 또한 분쟁당사자 사이에서는 증거가 편재화되고 강자와 약자라

    는 실질적 불평등관계가 형성되어 양 당사자의 완전한 평등을 전제로 하는

    종래의 민사소송의 틀을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데, 이러한

    특징을 가진 소송을 현대형소송이라고 부르기도 한다.4)

    이와 같이 현대형소송의 중요한 특질 중의 하나로 증거의 편재를 들 수

    있는데, 현대형 소송 중 증거편재의 문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소송 유형

    으로는 공해소송, 제조물책임소송, 의료소송을 들 수 있다. 이 세 유형의 소

    송은 어느 것이나 피해자인 원고가 증거를 확보하기도 어려울 뿐만 아니라

    설령 이를 확보하였다고 하더라도 그 증거에 대한 과학적⋅기술적인 메커니즘을 명확하게 밝혀 사실인정에 의미 있는 증거라는 것을 인정받기도 곤

    란한 상태에 있다. 요컨대 현대에 이르러서는 증명책임의 분배원리를 과거

    와 동일하게 적용하는 경우에는 법적 정의가 실현되지 못하는 상황이 초래

    3) 김용한, “의료과오”, 「대한변호사협회지」, 대한변호사협회, 1984, 33쪽.

    4) ‘현대형소송’은 법률용어가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당사자간에 호환성이 없고, 계쟁이익이 집

    단화되어 있으며, 법적용작업에 재량성이 인정되고, 장기적인 재판이 예상되는 유형으로서,

    다수가 관련된 공해소송 및 약해소송, 환경소송, 제조물책임소송 및 의료과오소송 등을 지

    칭한다[박태신, “현대형소송에 대한 고찰”,「인권과 정의(322호)」, 대한변호사협회, 2003.

    6, 62쪽 내지 65쪽]. 본 논문에서는 공해소송, 제조물책임소송, 의료과오소송에 대하여 현

    대형소송의 특징으로서 다수당사자소송관계, 개시(discovery)제도, 설명의무, 증명책임 등에

    대한 논의 중에서 증명책임과 관련된 부분에 한정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 의생명과학과 법 제6권

    - 10 -

    될 수 있다.

    일찍부터 이러한 사정을 간파한 대법원은 의료과오소송을 비롯하여 공

    해소송, 제조물책임소송에 있어서 원고의 증명책임을 완화하기 위한 시도를

    해 왔고, 이제는 상당히 안정되고 일관된 판례를 내놓고 있다. 학자들은 증

    명책임의 전환 내지 완화를 시도한 독일의 이론적 도구들을 가지고 우리

    판례의 입장을 분석해 왔고,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음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논문에서는 좀 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민사소송 심리의 근간인 변론주의

    의 현대적 해석을 통하여 원고가 주장하는 법적 효과를 발생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법률요건에 대한 증명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떠한 사실이 증명

    의 대상인지 논구하고 증명책임의 전환 내지 완화에 대한 이론적 근거들을

    일별한 후에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증명대상인 과실과 인과

    관계에 대한 판례의 입장을 살펴보고 이를 모순 없이 설명할 수 있는 이론

    적 틀이 무엇인지 고찰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변론주의의 관철을 위하여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에 대한 새로운 해석론을 시도하기

    로 한다.

    Ⅱ. 변론주의

    1. 변론주의의 내용

    변론주의란 재판의 기초가 되는 자료인 사실과 증거의 수집⋅제출을 당사자의 권능과 책임으로 하는 주의를 말한다.5) 형사소송과는 달리 민사소

    송은 사적 자치의 원칙이 지배하는 재산관계에 관한 분쟁을 다룬다는 본질

    상, 재판의 기초로 되는 사실과 증거를 재판의 무대에 제출할 것인가 아닌

    가도 당사자의 결정에 맡기는 것이 당연하다는 데에서 이 원칙을 이끌어낼

    수 있다.6)

    5) 정동윤⋅유병현,「민사소송법(제3판)」, 법문사, 2009, 308쪽.

  • 김일룡: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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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론주의의 내용은 보통 다음의 세 가지 명제로 요약된다. 첫째로 법원

    은 당사자가 주장하지 아니한 사실을 판결의 기초로 삼아서는 아니되고, 둘

    째로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없는 사실(자백한 사실)은 그대로 판결의 기초

    로 하여야 하며, 셋째로 당사자 사이에 다툼이 있는 사실을 인정하는 경우

    에는 반드시 당사자가 제출한 증거에 의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첫째 명제는

    사실자료의 제출에 관한 것이고, 둘째와 셋째 명제는 증거의 획득에 관한

    것이다.

    통설은 당사자가 제출하여야 할 사실은 권리의 발생⋅변경⋅소멸이라는 법률효과의 판단에 직접 필요한 사실인 주요사실에 한하고 간접사실이나

    보조사실은 당사자의 주장 여부에 불구하고 사실자료로 삼을 수 있다고 한

    다.7) 예컨대, 피고는 금전적으로 매우 곤궁한 상태에 있었는데 원고 주장의

    일시부터 갑자기 그 곤궁이 해소되었다는 사실은 주요사실인 소비대차계약

    의 존재를 간접적으로 추인케 하는 간접사실이고, 증인이 과거에 위증죄로

    처벌받았다는 사실이나 서증이 위조되었다는 사실과 같은 증거능력과 증거

    력에 대한 사실은 보조사실로서, 이러한 사실은 법관의 자유심증의 범위 내

    에 있으므로 당사자가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요사실의

    존재 여부를 직접적으로 증명하기 위하여 제출하는 증거를 직접증거라고

    하고, 간접사실이나 보조사실을 증명하기 위하여 제출하는 증거를 간접증거

    라고 한다.

    2. 요건사실과 주요사실의 구별 필요성

    의료과오소송에서 요건사실인 과실을 종래의 통설과 같이 주요사실로

    본다면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주장하지 않고 막연하게 상대방에

    게 과실 또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위반이 있다는 주장만 하면 주요사실을

    6) 이를 본질설이라고 한다. 물론 변론주의의 근거에 대해서는 당사자의 이기심을 이용하여 진

    실발견의 효율성을 높이는데 변론주의가 필요하다는 수단설, 양쪽 당사자에게 불의타를 방

    지하고 절차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변론주의에 의해야 한다는 절차보장설, 이들 학설의 대립

    을 모두 지양한다는 차원에서 다원설도 주장되고 있다.

    7) 이시윤,「신민사소송법(제6판)」, 박영사, 2011, 302쪽; 정동윤⋅유병현, 앞의 책, 312쪽.

  • 의생명과학과 법 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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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장한 것이 되고, 이를 추인하게 하는 구체적인 사실은 간접사실이 되므로

    당사자가 일일이 주장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처럼 일정한 사실에 대한 법적 평가나 권리가 주요사실이라고 하는

    경우에는 상당한 문제점이 노정된다. 예컨대 구체적인 내용 없이 “과실이

    있다”라는 주장을 주요사실로 보게 되면 과실에 대한 구체적인 사실인 과

    속, 음주운전, 전방주시의무태만 등이 간접사실이 되므로 변론주의가 적용

    되지 아니한다. 따라서 당사자는 음주운전인가 아닌가를 둘러싸고 다투었는

    데 법원이 당사자가 전혀 거론한 바 없는 과속을 인정하고 이에 기하여 판

    결을 할 수 있다는 결론이 되는데, 이는 당사자에게 불의의 타격을 가하는

    것이 되며, 변론주의를 민사소송 심리의 대원칙으로 설정한 취지에도 어긋

    나게 된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과실에 대해서만 이러한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아

    니라는데 있다. 실체법상 일정한 사실에 대한 법적 평가나 권리가 법문에

    규정된 경우에는 모두 이와 같은 상황이 벌어진다. 즉 실체법상의 “신의칙

    위반”, “권리남용”,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 위반”, “정당한 사유”,

    “고의” 등도 모두 이에 해당한다. 이 중에서 신의칙 위반이나 권리남용, 선

    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 위반의 경우에는 모두 일반조항이고 궁극적으

    로 그 기준은 전체법질서와 사회관념⋅윤리관에 있으며,8) 공익적 색채가 매우 강하기 때문에 사적 자치를 근거로 하는 변론주의를 후퇴시켜야 하므

    로 당사자의 주장이 없어도 증거상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 사실을 판결의

    기초로 삼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하는 것은 타당하다.9)

    그러나 정당한 사유나 고의, 과실 또는 인과관계의 경우에는 공익과 관

    련된 내용이 아니므로 변론주의가 관철되어야 한다. 이러한 일반조항을 주

    요사실로 볼 경우에 발생하는 문제점은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이 문제

    를 해결하기 위하여 일반조항의 요건사실은 주요사실이 아니라 요건사실을

    구성하는 개개의 구체적 사실을 주요사실에 중하여, 즉 준주요사실로 보아

    8) 김증한⋅김학동,「민법총칙(제9판)」, 박영사, 2008, 310쪽.9) 신의칙위반과 권리남용의 경우에는 변론주의가 적용되지 아니하나,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

    회질서 위반의 경우에는 구체적 사실에 관하여 당사자의 주장이 필요하다고 보는 견해로는,

    강현중,「민사소송법(제6판)」, 박영사, 2004, 419쪽 참조.

  • 김일룡: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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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변론주의의 적용을 긍정하는 견해10)도 있고, 실체법상의 요건사실은 소송

    법상의 주요사실과 동일하지 않다는 것을 전제로, 당사자의 구체적 사실 자

    체가 주요사실이 된다는 견해11)도 있다. 그러나 준주요사실설에 의하면 일

    반조항의 경우에는 주요사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어 부

    당하고, 일반조항의 경우에만 요건사실과 주요사실을 구분하자는 견해12)는

    좀 더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요건에는 주요사실 개념을 그대로 인정하고, 이

    보다 더 추상적이고 해석이 필요한 요건은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실이

    주요사실로 보자는 견해인데, 실체법으로 규정된 모든 요건은 많은 적든 간

    에 결국 해석과 평가가 개입된다는 사실을 중시한다면 실체법상 일정한 법

    률효과를 발생시키는 법률요건은 그것이 일반조항 여부를 불문하고 법정된

    법률요건과 변론주의가 적용되는 법률요건에 해당하는 구체적 사실을 구별

    하여 전자를 법률요건, 후자를 주요사실로 보는 것이 논리적 일관성의 측면

    에서 더 타당한 것으로 보인다.

    3. 판례의 입장

    학설에 따라서는 정당한 사유, 고의, 과실 등과 같은 일반조항에 대하여

    요건사실과 주요사실을 구별하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즉 판례는 위와 같은 일반조항에 있어서는 이들 일반조항이 요건사실이기

    는 하나 그 자체가 주요사실이 되는 것은 아니고,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실을 주요사실로 본다고 하면서 이에 해당하는 판례로 대법원 1983. 12.

    13. 선고 83다카1489 전원합의체 판결을 들고 있다.13) 그러나 위 판례는

    “변론에서 당사자가 주장한 주요사실만이 심판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서 여

    기에서 주요사실이라 함은 법률효과를 발생시키는 실체법상의 구성요건 해

    당사실을 말하는 것인바, 대리권에 기한 대리의 경우나 표현대리의 경우나

    10) 이시윤, 앞의 책, 304쪽.

    11) 호문혁,「민사소송법(제9판)」, 법문사, 2011, 380쪽.

    12) 김홍엽,「민사소송법(제2판)」, 박영사, 2011, 374쪽.

    13) 김홍엽, 앞의 책, 374쪽.

  • 의생명과학과 법 제6권

    - 14 -

    모두 제3자가 행한 대리행위의 효과가 본인에게 귀속된다는 점에서는 차이

    가 없으나 유권대리에 있어서는 본인이 대리인에게 수여한 대리권의 효력

    에 의하여 위와 같은 법률효과가 발생하는 반면 표현대리에 있어서는 대리

    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법률이 특히 거래상대방 보호와 거래안전 유지를

    위하여 본래 무효인 무권대리행위의 효과를 본인에게 미치게 한 것으로서

    표현대리가 성립된다고 하여 무권대리의 성질이 유권대리로 전환되는 것은

    아니므로, 양자의 구성요건 해당사실 즉 주요사실은 서로 다르다고 볼 수밖

    에 없다.”고 판시한 것이 전부이고, 이 판례 어디에도 일반조항에 대하여

    요건사실과 주요사실을 구별하여야 한다는 취지의 내용을 설시한 것이 아

    니므로 이 판례가 일반조항의 경우에 요건사실과 주요사실을 구별하여 구

    체적 사실을 주요사실로 판단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오히려 많은 판례는 실체법상의 요건사실 중 과실 및 인과관계와 관련

    된 구체적 내용을 간접사실로 보고 이러한 간접사실이 증명된 경우에 주요

    사실인 과실 및 인과관계를 추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부합하는 단

    적인 판례로는 대법원 2010. 5. 27. 선고 2006다79520 판결을 들 수 있

    다. 이 판례에서 대법원은, “뇌성마비는 대부분의 경우 그 원인을 밝혀내기

    어렵고 분만 중의 원인은 6∼8%에 불과하다고 할지라도 뇌성마비의 가능

    한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는 분만 도중 발생한 저산소성-허혈성 뇌손상

    을 표상하는 간접사실들이 인정되는 반면 선천적 또는 후천적인 다른 요인

    의 존재를 추인하게 할 만한 사정은 발견되지 않는다면, 뇌성마비가 분만

    중 저산소성-허혈성 뇌손상으로 인하여 발생하였다고 추정함이 상당하다.”

    라고 판시하였고,14) 대법원 2009. 12. 10. 선고 2008다22030 판결에서도

    “환자가 치료 도중에 사망한 경우에 있어서는 환자 측에서 일련의 의료행

    위 과정에 있어서 저질러진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 있

    는 행위를 입증하고 그 결과와 사이에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 이를테면 환자에게 의료행위 이전에 그러한 결과의

    원인이 될 만한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을 증명한 경우에 있어서는,

    14) 같은 취지의 판례로는 2005. 10. 28. 선고 2004다13045 판결, 대법원 2008. 2. 14. 선고

    2006다48465 판결 등이 있다.

  • 김일룡: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

    - 15 -

    의료행위를 한 측이 그 결과가 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

    혀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입증을 하지 아니하는 이상, 의료상

    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거나, 그 결과의 발생에 의료상의 과

    실 이외의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간접사실들을 입증함으로써 그

    와 같은 증상이 의료상의 과실에 기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고 판시하였다.15)

    여기서의 “추정”은 사실상의 추정을 의미하는 것이 명백하다. 사실상의

    추정은 증명책임을 부담하는 자가 요증사실(직접사실)의 증명에 갈음하여

    간접사실을 증명한 경우에 경험칙에 의거하여 그 간접사실로부터 요증사실

    을 추인하는 것을 말하며, 재판상의 추정이라고도 한다.16) 판례는 “사실상

    추정”이라는 용어를 사용함으로써17) 구체적인 사실은 과실이나 인과관계를

    추인할 수 있는 내용에 불과한 것이지 그 자체가 직접 주요사실을 증명하

    는 것이 아님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러한 취지의 판례는 의료과오소송에

    한정된 것이 아니다. 예컨대 공해소송에서, “수질오탁으로 인한 공해소송인

    이 사건에서 (1) 피고공장에서 김의 생육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폐수가 배

    출되고 (2) 그 폐수 중 일부가 유류를 통하여 이사건 김양식장에 도달하였

    으며 (3) 그 후 김에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각 모순 없이 증명된 이상 피

    고공장의 폐수배출과 양식 김에 병해가 발생함으로 말미암은 손해간의 인

    과관계가 일응 증명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가 (1) 피고 공장폐수 중에

    는 김의 생육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원인물질이 들어 있지 않으며 (2)

    원인물질이 들어 있다 하더라도 그 해수 혼합율이 안전농도 범위 내에 속

    한다는 사실을 반증을 들어 인과관계를 부정하지 못하는 한 그 불이익은

    피고에게 돌려야 마땅할 것이다.”라고 판시한 것을 비롯하여,18) 공사 현장

    으로부터 흘러나온 황토가 양식어장에 유입되어 농어가 폐사한 사안,19) 화

    15) 같은 취지의 판례로는 대법원 1995. 2. 10. 선고 93다52402 판결, 대법원 2000. 7. 7.

    선고 99다66328 판결 등이 있다.

    16) 오석락,「입증책임론(신판)」, 박영사, 2002, 108쪽.

    17) 이러한 추정이 사실상의 추정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힌 판례로는 1998. 2. 27. 선고 97다3

    8442 판결이 있다.

    18) 대법원 1984. 6. 12. 선고 81다558 판결.

    19) 대법원 1997. 6. 27. 선고 95다2692 판결.

  • 의생명과학과 법 제6권

    - 16 -

    력발전소로부터 방류된 온수로 인하여 김양식장에 피해가 발생한 사안,20)

    공단 내 공장들의 폐수 배출로 인하여 재첩양식장에 피해가 발생한 사

    안,21) 군부대에서 누수된 휘발유와 등유가 인근 지하수로 흘러들어 토지를

    오염시킨 사안22) 등에서 위 판례와 동일한 취지로 판시하였다.

    제조물책임소송에서도 “소비자 측에서 그 사고가 제조업자의 배타적 지

    배하에 있는 영역에서 발생한 것임을 입증하고, 그러한 사고가 어떤 자의

    과실 없이는 통상 발생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정을 증명하면, 제조업자 측에

    서 그 사고가 제품의 결함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것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위와 같은 제품은 이를 유통에 둔 단계에서 이미 그

    이용 시의 제품의 성상이 사회통념상 당연히 구비하리라고 기대되는 합리

    적 안전성을 갖추지 못한 결함이 있었고, 이러한 결함으로 말미암아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추정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입증책임을 완화하

    는 것이 손해의 공평·타당한 부담을 그 지도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

    상에 맞는다.”고 판시하였다.23) 유사한 판례로는 점진적인 절연열화로 변압

    변류기가 폭발한 사건에서, “최소한의 내구연한이 기 사용기간을 초과한다

    면, 내구년한 전에 발생한 절연파괴는 위와 같은 절연열화를 최소화하는 방

    법을 취하지 않은 구조 내지 제조상의 결함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

    다.”고 판시하였으며,24) “급식방법이나 계사관리 또는 사료보관에 어떤 이

    상이 없었고 사양시험에 제공했던 사료들이 변질되거나 부패한 것도 아니

    고 또 이건 사료를 급식할 무렵 닭들에 시주한 뉴켓슬 예방주사의 시주방

    법이나 약품에 아무런 하자도 없어 적어도 그 사료에 어떤 불순물이 함유

    된 것이 틀림없어 제조과정에 과실이 있었고 이로 인하여 원고가 사육하던

    닭들이 위와같은 현상을 초래하게 된 경우에는 그 사료 제조 판매자에게

    불법행위의 책임이 있다.”고 판시하였다.25) 이들 판례는 구체적인 사실들이

    20) 대법원 2002. 10. 22. 선고 2000다65666,65673 판결.

    21) 대법원 2004. 11. 26. 선고 2003다2123 판결.

    22) 대법원 2009. 10. 29. 선고 2009다42666 판결.

    23) 대법원 2000. 2. 25. 선고 98다15934 판결.

    24) 대법원 1992. 11. 24. 선고 92다18139 판결.

    25) 대법원 1977. 1. 25. 선고 75다2092 판결.

  • 김일룡: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

    - 17 -

    증명된 경우에 과실이나 인과관계 또는 결함을 추정하는 방법을 취하는 것

    으로 보아 구체적인 사실은 주요사실이 아니라 주요사실을 추단하는 간접

    사실에 불과하다는 입장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판례의 태도는 기

    존의 통설적 입장에 입각한 것인데, 뒤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현대형소송에서

    는 새로운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Ⅲ. 증명책임의 분배

    1. 증명책임의 의의

    증명책임은 소송에 있어서 증명을 요하는 사실이 존부불명인 경우에 불

    리한 법률판단을 받도록 정하여져 있는 당사자의 일방이 부담하는 불이익

    내지 위험을 말한다. 증명책임의 분배에 관한 논의는 로마법 시대부터 있어

    왔으나,26) 당시에는 심판인의 입증책임의 적정분배와 증거재판은 사실의

    문제라고 보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 결과 로마법에서 증거법과

    이에 관한 일반원칙은 확립되지 않았으며, 법률상의 추정이 광범위하게 인

    정되고 있었다.27)

    그 후 독일민법이 제정될 즈음인 19세기 후반 증명책임 분배는 실체법

    의 규정을 원칙규정과 예외규정으로 구별하여 원칙규정의 적용을 주장하는

    자는 그 규정의 요건사실을, 예외규정의 적용을 주장하는 자는 그 요건사실

    을 증명하여야 한다는 법규분류설이 성행하게 되었다. 현재 통설로 자리잡

    은 학설은 독일의 법학자 Leo Rosenberg가 1900년에 박사학위논문에서

    주장한 법률요건분류설이다.28) 이 학설에 의하면 원고는 자기가 주장하는

    권리의 발생근거가 되는 사실에 대하여 증명책임을 부담하고 이에 대하여

    피고는 원고가 주장하는 권리의 발생에 장애가 되는 사실,29) 권리멸각사

    26) 오석락, 앞의 책, 70쪽.

    27) 현승종 저, 조규창 증보,「로마법」, 법문사, 2004, 293쪽.

    28) 이를 근거요건설이라고도 한다[村上博已,「證明責任の硏究」, 有斐閣 , 1982, 62面].

  • 의생명과학과 법 제6권

    - 18 -

    실30) 및 권리저지사실31)에 대한 증명책임을 부담하게 된다.

    이와 같은 분배원칙은 법규의 구조를 기준으로 증명책임을 분배한 것이

    다. 따라서 예컨대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경우라

    면 민법 제750조의 해석상 권리발생근거가 되는 사실인 가해행위의 존재,

    가해자의 고의, 과실 및 가해행위와 손해발생간의 인과관계도 모두 피해자

    인 원고가 증명해야 한다. 그런데 증거가 가해자에게 편재되어 있는 현대형

    소송에 이 학설을 그대로 적용하게 되면 피해자가 증거를 확보할 수 없어

    사실상 피해구제를 포기한 것과 다름없게 된다. 이러한 난점을 해결하는 방

    법의 하나로 법규의 규정형식을 증명책임의 분배원리로 삼지 않고 실질적

    기준에 따라 다시 분배하고자 하는 학설이 대두되게 되었다.

    2. 현대형 소송에서의 증명책임 분배론

    가. 위험영역설

    위험영역설은 원래 1943년에 Michaelis가 제창한 것을 Prölss가 체계화

    한 것으로서 독일연방대법원의 판례법으로 승인되고 있는 이론이다.32) 이

    때 위험영역이란 피해자에게 발생되는 손해에 관하여 피고가 자유로이 처

    분할 수 있는 법적⋅사실적 수단을 가지고 일반적으로 지배 가능한 사실적 생활영역을 말하며, 보통 피고의 직접 점유 하에 있는 공간적⋅물적 지배영역을 뜻한다. 이 위험영역은 일정한 경우, 즉 손해의 원인이 피고의 위험영

    역에서 발생한 경우에는 증명책임분배의 규준이 되어 가해자(채무자)가 주

    관적⋅객관적 요건의 부존재를 증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 경우 피해자(채권자)는 손해의 원인이 오로지 피고의 위험영역에서 발생하고 피해자 자신

    29) 불공정한 법률행위, 선량한 풍속 그 밖의 사회질서 위반, 통정허위표시 등이 여기에 속한

    다.

    30) 변제, 공탁, 상계, 소멸시효완성, 착오, 사기⋅강박에 의한 취소, 계약의 해제, 권리의 포기⋅소멸, 면책 등이 여기에 속한다.

    31) 정지조건의 존재, 동시이행한변권이나 유치권항변의 원인사실, 기한의 유예 등이 여기에

    속한다.

    32) 오석락, 앞의 책, 82쪽.

  • 김일룡: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

    - 19 -

    의 위험영역이나 제3자의 위험영역, 그리고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 위험영

    역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만 증명하면 된다.33)

    위험영역설의 실질적 근거로는, 첫째 피해자는 가해자의 위험영역에서

    발생된 사건의 경위를 알아내기 어려우므로 항상 증명결핍의 상태에 빠져

    있게 된다는 점, 둘째 이와 반대로 가해자는 적어도 자기의 책임이 문제되

    는 한도에서는 그의 위험영역에서 발생된 사실관계를 가장 손쉽게 해명할

    수 있는 위치에 있다는 점, 셋째, 책임에 관한 규범은 손해의 발생을 예방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는바, 그와 같은 목적은 가해자가 될 지위에 있는 자

    가 자기의 위험영역의 사상을 증명하여 책임을 면하도록 하여야만 제대로

    이를 실현할 수 있다는 점 등에 있다.

    위험영역설을 적용하여 증명책임을 분배하려면 손해의 원인이 가해자

    단독 또는 가해자와 피해자 이외의 자가 공동으로 지배하는 위험영역에서

    발생하여야 하며, 증명주제가 불법행위⋅적극적 채권침해⋅계약체결상의 과실에 관한 경우일 것에 한한다. 독일의 판례는 위와 같은 유형의 사건에 해

    당하는 경우라고 하더라도 인과관계에 관하여는 위험영역설의 적용을 배제

    한다.34)

    나. 증거거리설

    위험영역설은 위험영역의 한계가 애매하다는 점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사실이 위험영역에 속하는가 아닌가의 판단을 당해 사실

    의 증명에 필요한 증거에 대한 거리와의 관계에서 추론하는 것이 더 쉬울

    수 있다. 이리하여 일본에서는 위험영역설의 입장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증

    명책임 분배의 일반적 규준으로서의 “증거와의 거리”의 관념을 정립할 수

    있다고 하고 이를 법률요건분류설의 분배규준에 갈음하는 새로운 분배규준

    의 하나로 주장하는 견해가 있다.

    즉 이 설에 의하면 원고가 어떤 사실의 증명에 필요한 증거를 보유하거

    33) 김홍엽, 앞의 책, 637쪽.

    34) BB. 70. 1414⋅1415, NJW 72. 251⋅252.

  • 의생명과학과 법 제6권

    - 20 -

    나 보유하기 쉬운 입장에 있는 반면, 피고는 그와 같은 증거를 보유하지 않

    거나 보유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는 경우에는 원고가 그 사실을 증명할 책

    임을 부담하고, 이와 반대로 피고가 어떤 사실의 증명에 필요한 증거를 보

    유하거나 보유하기 쉬운 입장에 있는 반면, 원고는 그와 같은 증거를 보유

    하지 않거나 보유하기 어려운 입장에 있을 때에는 피고가 그 사실을 증명

    할 책임을 부담하게 된다고 하면서 이를 일반화하면 어떤 사실의 증명에

    필요한 증거에 가까운 자는 그 사실에 대하여 증명책임을 부담한다는 명제

    가 성립된다고 한다.35) 만약 증거거리가 거의 같은 경우에는 증명의 난이

    에 의하여 증명책임을 분배하여야 할 것이라고 한다.

    의료과오에 있어서의 인과관계의 존재에 대한 증명책임을 설례로 들면,

    치료행위의 존재 및 손해의 발생에 관하여는 피해자(환자)가 증거를 보유하

    지만 치료행위에 관하여는 가해자(의사)도 증거를 보유한다. 그러나 피해자

    가 치료행위의 존재를 증명하기 보다는 가해자가 그 부존재를 증명하기가

    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따라서 치료행위의 존재에 대하여는 피해자로 하

    여금 이를 증명하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 하지만 치료행위와 손해의 발생간

    의 인과관계의 존재에 관하여는 피해자는 증거를 전혀 보유하지 않거나 보

    유하기가 어려운 반면, 가해자는 치료행위 전반의 관리자로서 인과관계의

    존부에 관한 증거를 풍부하게 보유하거나 보유하기 쉬운 입장에 있다. 따라

    서 인과관계에 관한 증거에 가까운 지위에 있는 가해자로 하여금 그 부존

    재에 대하여 증명하도록 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결론이 된다.

    다. 증명책임의 전환과 완화론

    위와 같이 근본적으로 증명책임 분배의 원칙을 수정하고자 하는 이론과

    는 달리 전통적인 법률요건분류설을 유지하면서 원고측의 증명책임을 면제

    내지 완화하려는 이론들이 있다. 이에는 일정한 경우는 증명책임을 상대방

    에게 전환하는 이론과 상대방으로의 전환은 인정하지 않고 원고측의 증명

    35) 石田穰, “證明責任の再構成”, 「判例タイムズ(322号)」, 1975. 8, 29面.

  • 김일룡: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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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임을 완화하는 이론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1) 증명책임의 전환

    증명책임의 전환이라 함은 특정한 경우에 증명책임 분배에 관한 일반원

    칙에 예외를 인정하여 상대방에 대하여 반대사실의 증명책임을 부담시키는

    것을 말한다. 보통 증명책임의 전환이라 함은 법률의 규정에 의해 전환되는

    것을 가리키지만,36) 최근에는 증명책임분배에 관한 일반원칙을 적용하였을

    때 부당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에 해석론으로 그 전환을 인정하려는 시도

    도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판례는 원칙적으로 해석에 의한 증명책임의 전

    환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정한 경우에 한하여 제한적으로 이를

    허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컨대 대법원 2009. 3. 26. 선고 2007두

    22955 판결에 의하면, 법인세과세처분 취소소송에 있어서의 과세근거로 되

    는 과세표준의 증명책임은 과세관청에 있는 것이고 과세표준은 수입으로부

    터 필요경비를 공제한 것이므로 수입 및 필요경비의 입증책임도 원칙적으

    로 과세관청에 있다 할 것이나 필요경비는 납세의무자에게 유리한 것일 뿐

    아니라 필요경비를 발생시키는 사실관계의 대부분은 납세의무자가 지배하

    는 영역 안에 있는 것이어서 과세관청으로서는 그 입증이 곤란한 경우가

    있으므로, 그 입증의 곤란이나 당사자 사이의 형평 등을 고려하여 납세의무

    자로 하여금 입증토록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경우에는 납세의무자에게 입증

    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 공평의 관념에 부합한다고 판시함으로써 소요

    된 필요경비에 관한 주장⋅증명이 없는 한 수입금액에서 공제할 필요경비가 없는 것으로 본다는 점에서 증명책임의 전환을 인정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2) 증명책임의 완화

    엄격한 증명책임의 분배에 따른 증명이 곤란한 경우에 형평의 이념을

    36) 예컨대, 민법 제750조에 대하여 제759조 단서는 가해자측에 동물의 종류와 성질에 따른

    주의를 해태하지 않았음을 증명하도록 하고 있으며,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제3조 단서는 운

    행자가 자기의 무과실을 증명하도록 증명책임을 전환하고 있다.

  • 의생명과학과 법 제6권

    - 22 -

    살리기 위해 이에 의하여 불이익을 받는 당사자에게 증명책임의 일반원칙

    을 완화시켜 주는 몇가지 입법대책과 해석론이 있다.

    (가) 법률상 추정

    법률상 추정은 이미 법규화된 경험법칙, 즉 추정규정을 적용하여 행하

    는 추정을 말한다. 법률상 추정은 일반적으로 법률의 규정에 의하여, 예외

    적으로 법률의 해석에 의하여 인정된다. 법률상 추정은 사실추정과 권리추

    정으로 나누어볼 수 있는데, 민법 198조에서의 점유계속의 추정이나 민법

    844조에서의 처가 혼인 중 포태한 자에 대한 부의 친생자 추정 등 일정한

    전제사실에서 다른 일정한 사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사실추정이

    고, 민법 200조에서의 점유자의 권리추정이나 민법 830조에서의 부부의 특

    유재산의 추정 및 귀속불명재산의 공유추정과 같이 일정한 전제사실에서

    일정한 권리가 있는 것으로 추정하는 것이 권리추정이다. 법률상 추정이 허

    용되는 경우 증명할 당사자는 추정되는 사실을 증명해도 되지만 일반적으

    로 이는 매우 곤란하므로 그 전제사실만을 증명하면 되고, 상대방 당사자는

    그 전제사실에 대하여 반증을 하거나 추정되는 사실에 대하여 본증을 제출

    해야 추정을 깨뜨릴 수 있으므로 증명해야할 자의 입장에서는 증명책임이

    완화된 것이다.37) 판례는 명문의 규정이 없음에도 등기의 법률상 추정력을

    인정하고 있다.38)

    (나) 일응의 추정(표현증명)과 간접반증

    사실상의 추정 중에서 고도의 개연성이 있는 경험칙을 이용하여 간접

    사실로부터 주요사실을 추정하는 경우를 일응의 추정 또는 표현증명이라고

    한다.39) 주요사실을 막바로 증명할 수 있는 직접증거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37) 이시윤, 앞의 책, 507쪽.

    38) 대법원 2002. 2. 5. 선고 2001다72029 판결.

    39) 일응의 추정과 표현증명은 대체로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지만[Leo Rosenberg(오석락, 김

    형배, 강봉수 공역),「입증책임론」, 박영사, 1995, 195쪽], 일응의 추정은 영미법상 res ip

    sa loquitur에서 발전한 이론이고, 표현증명은 일응의 추정의 영향을 받아 독일에서 발전된

    이론이다. 굳이 개념적 차이를 따진다면 일응의 추정이 피해자의 증명책임을 경감하는 방법

    이라면 표현증명은 그 증명책임이 경감된 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 김일룡: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

    - 23 -

    어떠한 추정도 없이 그 증거로부터 주요사실을 인정할 수 있지만, 주요사실

    을 인정하는데 필요한 직접증거가 없다면 간접증거로 증명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간접증거에 의하여 인정되는 사실에 경험칙을 매개로 하여 주요사

    실의 존재를 추정하게 된다.

    표현증명은 주로 불법행위의 요건으로서의 고의⋅과실 및 인과관계의 추정에 관해서 인정되고 흔히 되풀이될 수 있는 통례적인 사건이 벌어진

    경우 이른바 정형적 사상경과가 문제되는 경우에만 적용될 수 있다. 이때

    적용되는 경험칙은 고도로 신뢰할 수 있는 경험칙이어야 한다.

    또한 표현증명은 그 실체가 고도로 신뢰할 수 있는 경험칙의 적용에 의

    하여 간접사실로부터 주요사실을 추인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므로 표현증명

    이 성립된 경우 상대방으로서는 경험칙의 적용에 의문을 일으키는 특별한

    사정의 존재를 내세울 필요가 있게 되는데, 이 특별한 사정의 증명이 바로

    간접반증이 되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간접반증에 의하지 않고 주

    요사실에 대하여 직접반증을 제출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이 경우에는 일응

    의 추정의 기초로서 이미 증명된 간접사실이 동시에 직접반증의 증명력을

    상실시키는 보조사실로 기능하고 있으므로 그 직접반증은 좀처럼 신용하기

    어렵다. 따라서 상대방이 이미 추정의 기초가 되는 간접사실의 입증에 성공

    한 때에는 표현증명을 번복할 수 있는 반증수단은 사실상 간접반증 밖에

    없는 셈이 된다고 할 것이다.

    여기에서 간접반증의 허용요건을 보기로 한다. 첫째, 주요사실에 관한

    증명책임을 부담하는 당사자가 간접증거에 의하여 주요사실의 존재를 증명

    하려고 하는 경우일 것. 간접반증은 간접사실로부터 주요사실의 존재가 추

    인됨을 방해하기 위하여 경험칙의 적용을 배제하려는 것이므로 주요사실의

    증명책임을 부담하는 당사자가 주요사실을 직접 증명하려고 하는 경우에는

    간접반증은 허용될 여지가 없다. 그와 같은 경우에는 상대방은 오직 주요사

    실의 존재에 관한 법관의 심증을 흔들리게 하는 직접반증을 제출할 수 있

    을 뿐이다. 둘째, 상대방이 간접사실과 양립할 수 있는 사실을 증명하려고

    하는 경우일 것. 일반적으로 당사자의 한 쪽에 유리한 간접사실과 상대방에

    유리한 간접사실은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서 하나가 존재하면 다른 하나가

  • 의생명과학과 법 제6권

    - 24 -

    존재할 수 없는 관계에 있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간접사실로부터 주요사

    실이 추론되는 삼단논법의 대전제가 되는 경험칙은 고도의 개연성을 가지

    고는 있으나 그와 동시에 예외의 가능성을 아울러 가지고 있는 것이므로

    하나의 간접사실이 이미 증명된 경우에도 다시 이와 양립할 수 있는 별개

    의 간접사실을 상정할 수 있다. 간접반증은 이러한 당해 간접사실과 양립할

    수 있는 다른 간접사실을 찾아내어 그 존재를 증명함으로써 경험칙의 적용

    을 배제하려는 것이므로 개념필연적으로 당해 간접사실과 양립할 수 있는

    간접사실이 그 증명주제가 되지 않으면 안된다. 셋째, 간접사실에 적용되는

    경험칙이 고도의 개연성을 가지는 경우일 것. 간접사실로부터 주요사실의

    존재를 추론하기 위해서는 경험칙을 적용하지 않으면 안되는 바, 경험칙은

    법칙이라고는 하지만 반드시 필연적인 것이 아니고 양자의 관계가 개연적

    이거나 가능적인 경우도 많다. 그런데 간접반증은 법관이 경험칙의 적용에

    의하여 주요사실의 존재에 관하여 확신을 품게 되는 것을 저지하려는 것이

    므로 그 경험칙은 고도의 개연성을 가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만일 경험칙

    이 저도의 개연성 내지 가능성 밖에 가지지 아니한 것이라고 하면 법관은

    그와 같은 경험칙의 적용에 의하여 주요사실의 존재에 관한 확신을 품게

    되지는 아니할 것이므로 간접반증은 구태여 요구되지 않는다고 할 것이다.

    (다) 개연성설

    개연성 이론은 공해사건에서의 인과관계의 증명은 과학적으로 엄밀한

    증명을 요하지 않고 가해행위와 손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존재하는 상당한

    정도의 가능성(즉 개연성)이 있다는 증명을 함으로써 족하고, 가해자는 이

    에 대한 반증에 성공한 경우에만 인과관계의 존부를 부인할 수 있다고 하

    는 이론이다. 이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원고에게 증명책임이 있다는 종래

    의 증명책임원칙을 유지하면서, 다만 피해자의 증명의 범위를 완화 내지 경

    감하는 반면에 가해자의 반증의 범위를 확대하자는 것을 그 골자로 하고

    있다.40) 종래 개연성이라는 용어에는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하나는 영

    40) 김홍엽, 앞의 책, 651쪽.

  • 김일룡: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

    - 25 -

    미법상 증거의 상대적 우월(preponderance of evidence)과 같은 의미로서

    민사소송에서의 증거평가에 대한 영미법적 원칙이다. 이는 대륙법에서 증명

    은 소명과는 달리 의심에 침묵을 명할 정도, 즉 십중팔구까지는 확실하다는

    확신이 필요하다는 의미에 대비되는 개념이다. 또 하나의 개연성의 의미는

    간접사실로부터 주요사실을 추인하는 경우, 즉 사실상의 추정에는 언제나

    경험칙을 매개로 하여야 하는데, 그 중에서 통상 일응의 추정 또는 표현증

    명이라는 것은 고도의 개연성 있는 경험칙이 존재하는 경우 그 간접사실을

    증명한 경우에는 간접반증을 통하지 아니하고는 이를 복멸시킬 수 없다. 그

    런데 고도의 개연성이 존재하지 아니하는 경험칙임에도 마치 고도의 개연

    성이 있는 경험칙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상대방의 반증(직접반증이든 간접반

    증이든 간에)이 없는 한 그 주요사실이 증명된 것으로 보자는 의미로 사용

    되기도 한다.

    3. 판례의 입장

    가. 증명책임의 완화방법

    대법원은 과거 “복강경에 의한 난관불임수술을 받은 사람이 다시 임신

    하는 경우는 의사의 시술상의 잘못에 그 원인이 있는 것만이 아니고, 시술

    상의 잘못 이외의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임신하는 율이 0.1-0.2% 정도 된

    다고 하여도, 이 사건에서는 불임수술을 받은 사람이 다시 임신하게 된 원

    인을 시술상의 잘못 이외의 다른 원인으로 볼만한 특별한 사정을 인정할

    수 없으니 그 원인을 의사의 시술상의 잘못으로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41)

    하거나, “손해부담을 공평의 원칙에서 결정하려는 민사분쟁에 있어서의 인

    과관계는 과학적 인과관계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므로 학설상 일반적으로

    코레라 예방접종의 피접종자가 유혈환자등인 경우 약 0.004프로의 치명율

    이 있다는 의학상보고가 있고 사체부검 결과 사망자가 비특이성 뇌의울혈

    41) 대법원 1980. 5. 13. 선고 79다1390 판결.

  • 의생명과학과 법 제6권

    - 26 -

    부종 및 출혈반점이 있어 그 출혈이 예방접종으로 인한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이상 달리 피해자에게 사인인 뇌출혈상을 일으킬만한 특별한 사

    정이 있음을 인정할 자료가 인정될 수 없다면 법적견지에서 예방접종과 피

    접종자의 사망간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

    시42)하여 일응의 추정에 입각한 듯한 입장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대법원은 “피해자측에서 일련의 의료행위 과정에

    있어서 저질러진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 있는 행위를

    입증하고 그 결과와 사이에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 이를테면 환자에게 의료행위 이전에 그러한 결과의 원인이 될

    만한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을 증명한 경우에 있어서는, 의료행위

    를 한 측이 그 결과가 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입증을 하지 아니하는 이상, 의료상 과실과 결

    과 사이의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입증책임

    을 완화하는 것이 손해의 공평·타당한 부담을 그 지도원리로 하는 손해배상

    제도의 이상에 맞는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판시하였으며,43) 이러한 판

    례의 논지는 그 이후에도 이어지고 있다.44)

    나. 과실과 인과관계의 동시적 판단

    대법원은 “피고의 주의의무 위반, 즉 과실과 원고 1의 상완신경총 손상

    으로 인한 후유장해와의 인과관계는, ① 피고가 원고 2가 임신성 당뇨 상태

    에 있게 된 것을 진단해 내지 못하였고, ② 위 원고의 임신성 당뇨로 인해

    (적어도 다른 원인들과 함께) 거대아를 출산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적어도

    다른 원인들과 함께) 견갑난산이 되었으며, ③ 피고가 거대아 출산과 견갑

    난산을 예견하지 못함으로써 제왕절개술이 아닌 질식분만 방법을 택하게

    되었고, ④ 그 견갑난산 과정에서 피고의 분만시술상의 과실이 더하여지거

    42) 대법원 1977.8.23. 선고 77다686 판결.

    43) 대법원 1995. 2. 10. 선고 2001다2013 판결.

    44) 대법원 1995. 3. 10. 선고 94다39567 판결; 대법원 1995. 12. 5. 선고 94다57701 판결;

    대법원 1996. 6. 11. 선고 95다41079 판결; 대법원 2001. 3. 23. 선고 99다48221 판결.

  • 김일룡: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

    - 27 -

    나 또는 불가피하게 상완신경총 손상이 발생한 것인바, 이와 같은 인과관계

    는 원고들이 입증하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 피고에게 입증책임이 전환되어

    있으므로, 피고는 적어도 그 인과관계를 이루는 사실들 중 어느 하나의 부

    존재를 입증하여야만 그 책임을 면하게 된다.”고 판시한 바 있다.45) 이는

    과실이 인정되는 경우 과실과 악결과 사이에 인과관계도 추정되기 때문에

    인과관계의 존부는 그 부존재를 주장하는 피고측에서 이를 증명하여야 함

    을 명백히 하고 있다.

    또한 태아가 분만과정 중 두개내출혈 등 두부손상을 입고 뇌성마비에

    이른 사안에서, “원고 1의 출산 직후 발견된 비정상적으로 큰 두개혈종과

    뇌부종 및 두개내출혈 등 두부손상은 원고 1의 분만 당시 소외 2가 위 인

    정과 같은 주의의무를 게을리하여 심슨겸자로 무리하게 태아의 머리를 집

    어 끌어내는 과정에서 가한 물리적 충격과 압박에 기인한 것으로 보이고,

    원고 2와 태아가 모두 출산 직전까지 극히 정상인 것으로 진단되었을 뿐

    아니라 출산 전후를 통하여 달리 뇌성마비의 원인이 될 만한 모체 또는 태

    아의 감염이나 이상이 있었음을 인정할 자료가 없는 이 사건에 있어서는,

    소외 2의 무리한 겸자사용으로 인한 두개내출혈 등이 원고 1의 뇌성마비의

    원인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하겠다.”라고 판시함으로써,46) 여러 가지 간

    접적인 사실을 토대로 의사의 과실을 추정하고, 그 과실과 악결과 사이에

    시간적⋅부위적 근접성이 있는 간접사실을 가지고 다시 인과관계를 추정하여 양자를 같은 평면에서 포괄적으로 추정의 법리를 적용한다.

    요컨대 판례의 입장은 그 증상의 발생에 관해 의료상의 과실 이외에는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여러 간접사실을 증명함으로써 의료상의

    과실을 추인하는 방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불특정 과실행위를 추정하는 것

    이 아니라 간접사실에 의해 특정과실행위를 추인한다. 이는 간접사실에 의

    해 “의료상의 과실” 외에 다른 원인이 악결과를 일으킨 것이 아님을 보임

    으로써 과실을 추인한 것이고, “의료행위” 외에는 악결과가 발생한 다른 원

    45) 2003. 1. 24. 선고 2002다3822 판결. 이를 책임원인과 인과관계의 일체적 판단이라고 한

    다[박종권, “의료과오소송에서 인과관계의 입증책임”,「비교법학연구(제2권)」, 한국비교법

    학회, 2003, 9쪽].

    46) 대법원 1992.12.8. 선고 92다29924 판결.

  • 의생명과학과 법 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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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이 없다는 이유로 과실을 추인한 것은 아니므로 결국 과실과 인과관계를

    동시에 판단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다. 경험칙 적용상의 특징

    대법원은 “환자에게 의료행위 이전에 그러한 결과의 원인이 될 만한 건

    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을 증명한 경우에는, 의료행위를 한 측이 그

    결과가 의료상의 과실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전혀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

    은 것이라는 입증을 하지 아니하는 이상, 의료상 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

    관계를 추정하여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도록 입증책임을 완화하는 것

    이 손해의 공평·타당한 부담을 그 지도원리로 하는 손해배상제도의 이상에

    맞는다.”47) 또는 “위 환자의 특이체질 기타 구체적 상태 등으로 인하여 그

    러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특별한 사정에 관하여 납득할 만한 이유를 제

    시하고 이를 입증하지 않는 한, 그 의료상의 과실과 결과 사이의 인과관계

    는 사실상 추정되어 해당 의사들에게 그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지울 수밖

    에 없다.”48)고 판시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의료행위는 고도의 전문적 지식을 필요로 하는 분야

    로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서는 의사의 의료행위의 과정에 주의의무

    위반이 있는지의 여부나 그 주의의무 위반과 손해발생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는지 여부를 밝혀내기가 극히 어려운 특수성이 있으므로 수술 도중 환자

    에게 사망의 원인이 된 증상이 발생한 경우 그 증상 발생에 관하여 의료상

    의 과실 이외의 다른 원인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간접사실들을 입증함으로

    써 그와 같은 증상이 의료상의 과실에 기한 것이라고 추정하는 것도 가능

    하다고 하겠으나, 그 경우에도 의사의 과실로 인한 결과발생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정들을 가지고 막연하게 중한 결과

    에서 의사의 과실과 인과관계를 추정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의사에게 무과실

    의 입증책임을 지우는 것까지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판시하였다.49)

    47) 대법원 2003. 1. 24. 선고 2002다3822 판결.

    48) 대법원 1998. 2. 27. 선고 97다38442 판결.

  • 김일룡: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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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대법원은, “의료행위에 의하여 후유장해가 발생한 경우, 그 후유장해

    가 당시 의료수준에서 최선의 조치를 다하는 때에도 당해 의료행위 과정의

    합병증으로 나타날 수 있는 것이거나 또는 그 합병증으로 인하여 2차적으

    로 발생할 수 있는 것이라면, 의료행위의 내용이나 시술 과정, 합병증의 발

    생 부위, 정도 및 당시의 의료수준과 담당의료진의 숙련도 등을 종합하여

    볼 때 그 증상이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합병증의 범위를 벗어났다고 볼 수

    있는 사정이 없는 한, 그 후유장해가 발생하였다는 사실만으로 의료행위 과

    정에 과실이 있었다고 추정할 수 없다.”고도 판시하였다.50)

    위 각 판례의 입장은 간접사실의 증명에 성공하였다고 하더라도 이를

    통하여 주요사실인 과실이나 인과관계를 추인할 수 있는 경험칙이 반대의

    간접사실을 증명함으로서 용이하게 복멸되는 수준의 것이라면 개연성이 담

    보되지 아니한 경험칙이고, 이러한 저도의 경험칙에 의해서 주요사실인 과

    실과 인과관계를 추정하게 되면 사실상 의사에게 무과실의 증명책임을 지

    우는 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허용되지 아니한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Ⅳ. 판례의 입장에 대한 검토

    1. 증명책임의 완화방법에 대한 검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대법원의 주류적 판례

    에 의하면, 주요사실인 과실이나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책임은 원고인 환자

    측에 있으나 주요사실을 추인할 수 있는 여러 간접사실을 증명함으로써 법

    규의 적용을 구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과실이나 인과관계와 같은 추상적이고 평가적인 개념을 직접 증

    명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불가능하다. 이들 요건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필연

    49) 대법원 2004. 10. 28. 선고 2002다45185 판결; 대법원 2010.8.19. 선고 2007다41904

    판결.

    50) 대법원 2008.3.27. 선고 2007다76290 판결.

  • 의생명과학과 법 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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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적으로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인 사실을 증명하는 방법에 의하여야 함은 의

    료과오소송이 아니라 다른 소송에서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이를 두고 의

    료과오소송에서의 증명책임의 완화방법이 사실상의 추정이라는 견해51)는

    찬동할 수 없다.

    의료과오소송에서의 판례가 일반적인 다른 소송에서의 판례와 다른 점

    은 증명해야 할 간접사실의 대상이 무엇인가 하는 부분에 중점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즉 간접사실로 증명할 대상이 주요사실을 증명하는데 있

    어서 고도의 경험칙이 적용될 수 있는 간접사실인지 아니면 이보다 낮은

    경험칙으로도 주요사실을 증명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하여 판례가 제

    시하는 기준이 중요한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판례는 “피해자측에서 일련의

    의료행위 과정에 있어서 저질러진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

    실 있는 행위를 입증하고 그 결과와 사이에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

    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 이를테면 환자에게 의료행위 이전에 그러한 결

    과의 원인이 될 만한 건강상의 결함이 없었다는 사정”에 해당하는 간접사

    실을 증명하면 원고는 과실과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책임을 다한 것으로 보

    고 있으며, 이는 주요사실에 대한 증명도 자체를 낮춘 것으로도 볼 수 있지

    만 엄밀하게는 증명된 간접사실에 적용되는 경험칙의 개연성 정도를 낮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2. 과실과 인과관계의 동시적 판단에 대한 검토

    이와 같이 판례는 낮은 정도의 경험칙으로 주요사실을 추단할 수 있는

    간접사실을 증명하게 되면 과실뿐만 아니라 인과관계도 동시에 증명된 것

    으로 본다. 물론 의사는 과실에 해당하는 간접사실의 존재에 의심을 불러일

    으키는 다른 사실을 증명하는 직접반증의 방법으로 과실의 증명을 방해함

    으로써 인과관계의 성립 또한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일단 과실이 인정된다

    면 인과관계를 부인하기 위해서는 환자의 악결과는 전혀 다른 원인으로 말

    51) 김홍엽, 앞의 책, 653쪽; 손용근, “의료과오소송의 입증경감에 관한 판례의 최근 동향”,

    「민사법연구(7집)」, 대한민사법학회, 1999, 362쪽.

  • 김일룡: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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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암은 것임을 의사측에서 증명하여야 한다. 이를 두고 2002다3822 판결

    에서는 증명책임이 전환된 것으로 표현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것이다. 주

    류적 판례는 의사가 간접반증을 통하여 인과관계를 복멸할 수 있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고 이것이 더 적절하다. 왜냐하면 인과관계라는 하나의 주요사

    실에 대한 증명책임은 당사자 중 어느 한쪽에만 존재하는 것이지 양당사자

    에 동시에 분산될 수 없음은 증명책임의 법리상 당연하기 때문이다.

    3. 경험칙 적용에 대한 검토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판례의 기본적인 입장은, 의료상의 과실과 인과

    관계에 대한 증명책임은 일반인의 상식에 바탕을 둔 의료상의 과실 있는

    행위 및 그 결과와 사이에 일련의 의료행위 외에 다른 원인이 개재될 수

    없다는 점을 증명하면 의료상의 과실과 인과관계가 추정되는 것이고, 이 증

    명을 복멸하기 위해서는 의사측에서 “전혀 다른 원인으로 말미암은 것”을

    증명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의사측에서 증명해야 하는 “전혀 다른 원인”

    에 대한 증명은 원고측에서 증명한 간접사실과 양립하는 별개의 간접사실

    을 증명하는 것이므로 간접반증에 해당한다.

    그러나 이러한 판례의 입장은 쉽게 수긍하기 어렵다. 먼저 일응의 추정

    과 간접반증의 예를 들어보기로 한다. 통행이 거의 없는 한적한 도로를 잘

    달리고 있던 자동차가 갑자기 인도로 뛰어들어 행인을 다치게 하였다면, 우

    리의 강한 경험칙상 일응 운전자의 과실을 추정할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증명책임 있는 당사자는 자신이 주장하려고 하거나 주장하고 있는 구성요

    건이 경험상 생활법칙과 합치한다는 사실 이외에는 더 증명할 필요가 없으

    며, 또한 당해사건에서는 사물의 통상적인 경과와는 달리 진행되었다는 사

    실 및 그 이유 외에 다른 증명을 더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52)

    이 경우에 피고가 자신에게 과실이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직접반증,

    즉 자신의 승용차가 인도로 뛰어든 적이 없다는 것을 증명할 수는 있겠지만

    52) 정선주, “법률요건분류설과 증명책임의 전환”,「민사소송(제11권 제2호)」, 한국민사소송법

    학회, 2007. 11, 146쪽.

  • 의생명과학과 법 제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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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는 이미 원고가 인도로 뛰어든 사실에 대하여 증명의 단계에 이른 것이므

    로 이러한 증명은 불가능하다. 결국 피고로서는 자신의 승용차가 인도로 뛰

    어들었음을 받아들이면서 그러한 행동을 한 이유가 뒤에 다른 차량이 충격

    하였기 때문이라거나 어린이가 갑자기 차 앞에 출현하였기 때문이라는 사실

    을 증명하여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간접반증이다. 이렇게 보면 간접반증이

    성립하려면 우선 원고가 과실이나 인과관계를 막바로 인정할 만큼 고도의

    개연성, 즉 정형적 사상경과가 존재하는 피고의 행위를 증명하여야 하는 것

    이다. 의료사고소송에서 수술용 메스를 뱃속에 그대로 남겨두고 봉합한 경

    우 정도에 이른다면 일응의 추정이 가능할 것이지만, 현재 우리의 판례에서

    원고에게 증명책임이 있다고 열거된 사항들은 도저히 일응의 추정을 인정할

    만한 정형적 사상경과에 해당하는 경험칙이라고 볼 수 없는 것들이다.

    결국 간접반증이 성립하려면 고도로 신뢰할 수 있는 경험칙의 적용에

    의하여 주요사실을 바로 인정할 정도로 증명된 경우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

    고도로 신빙성 있는 경험칙이 아니라 일반적인 경우에 불과한 경험칙을 이

    용하여 간접사실에서 주요사실을 추인하는 경우에조차 일응 과실 또는 인

    과관계가 증명된 것으로 보는 것은 법리상 불가능하다. 나아가 인과관계에

    필요한 모든 간접사실을 증명하지도 않고 그 중 몇 개 항목에 대해서만 신

    빙성이 그다지 높지 않은 경험칙에 부합되는 사실만 증명하면 주요사실이

    일응 증명된 것으로 보고, 나머지 간접사실에 대해서는 피고측이 반증하게

    하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물론 판례가 의사의 과실로 인한 결과발

    생을 추정할 수 있을 정도의 개연성이 담보되지 않는 사정들을 가지고 막

    연하게 중한 결과에서 의사의 과실과 인과관계를 추정할 수는 없다고 판시

    하고 있지만, 간접반증은 표현증명이 있는 경우에나 적용되는 것이지 낮은

    정도의 개연성만 있는 경험칙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동일한 결론

    에 귀착된다. 나아가 신빙성이 높지 않은 경험칙만으로 간접사실 중 일부만

    인정되더라도 과실과 인과관계에 대한 주요사실이 추인된 것으로 보게 되

    면 증명책임의 원리에 조차 법관의 자의가 개입될 가능성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53)

  • 김일룡: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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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소결

    가. 판례의 입장-개연성설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과실과 인과관계의 증명과 관련된 판례와 이에

    대한 검토를 한 결과, 이에 대한 대법원 판례의 입장을 사실상의 추정론이

    라고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사실상의 추정이란 간접사실에 경

    험칙을 적용하여 주요사실을 추인하는 방법 자체를 의미하는 것일 뿐이고,

    이러한 방법은 의료과오소송이 아닌 다른 소송에서도 널리 사용되는 개념

    이기 때문이다.

    의료상의 과실이 추정되는 경우 그 과실행위와 결과 사이에 인과관계는

    증명책임이 전환된다고 보는 일부 판례의 태도도 증명책임의 기본원리에

    부합하지 아니하므로 이 또한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

    다음으로, 의료과오소송의 증명과 관련된 우리 판례의 입장이 일응의 추

    정에 입각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대법원이 일정한 간

    접사실을 통하여 과실과 인과관계가 추정되면 의사인 피고로 하여금 간접

    반증의 형식으로 이를 복멸할 수 있게 한 것이 판례의 주류적 경향이기 때

    문이다. 그러나 간접반증이론은 원칙적으로 사상경과가 정형적인 경우, 즉

    고도의 개연성이 보장되는 경험칙이 적용되는 경우에 해당되는 것이지, 우

    리의 판례처럼 개연성이 높지 않은 경험칙을 적용하는 경우에까지 그 범위

    를 확대할 수는 없는 것이므로 부당하다.

    그렇다면 증명책임을 상대방에게 전환하지 않으면서 고도의 개연성 있

    는 경험칙에 의하지 않고도 주요사실을 추정하고, 이에 대하여 간접반증을

    인정하는 판례의 입장을 설명할 수 있는 이론적 도구는 무엇인가?

    여기에서 공해소송의 증명책임에 대한 판례의 입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

    53) 일부의 표현증명의 사례와 징빙에 의한 증명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입증의 정도가 적용되

    는 반면에 다른 일부의 표현증명의 사례에 대하여 사실상 입증정도의 저하를 이룩하기 위하

    여 입증정도를 법감정에 따라 은밀히 조작하는 데에는 찬성할 수 없으며, 입증정도의 저하

    의 감추어진 수단으로서의 표현증명은 불필요하다고 할 것이라는 견해로는, 오용호, “공해

    소송의 인과관계에 대한 입증”,「민사판례연구(VII)」, 박영사, 1993, 182쪽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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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판례는, “공해로 인한 손해배상청구소송에 있어서는 가해행위와 손해발

    생 사이의 인과관계의 고리를 모두 자연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곤란 내

    지 불가능한 경우가 대부분이고, 가해기업은 기술적·경제적으로 피해자보다

    원인조사가 용이할 뿐 아니라 자신이 배출하는 물질이 유해하지 않다는 것

    을 입증할 사회적 의무를 부담한다고 할 것이므로, 가해기업이 배출한 어떤

    물질이 피해 물건에 도달하여 손해가 발생하였다면 가해자측에서 그 무해

    함을 입증하지 못하는 한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봄이 사회 형평의 관념에

    적합하다. 따라서 수질오염으로 인한 공해소송인 이 사건에서 (1) 피고들

    공장이 위치한 여천공단에서 재첩 양식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폐수가 배

    출되고, (2) 그 폐수 중 일부가 물의 흐름에 따라 이 사건 재첩 양식장에

    도달하였으며, (3) 그 후 재첩에 피해가 있었다는 사실이 각 모순 없이 증

    명되면 여천공단 공장들의 폐수배출과 재첩 양식이 폐사함으로 발생한 손

    해 사이의 인과관계가 일응 증명되었다고 할 것이므로, 피고들이 반증으로

    (1) 피고들이 배출하는 폐수 중에는 재첩의 생육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원인물질이 들어 있지 않으며, (2) 원인물질이 들어 있다 하더라도 안전농

    도 범위 내에 속한다는 사실을 입증하거나, 간접반증으로 원고(선정당사자,

    이하 '원고'라 한다) 주정웅과 원고 주식회사 강양통상 및 나머지 선정자들

    의 재첩 양식장의 피해는 피고 공장들이 배출한 폐수가 아닌 다른 원인이

    전적으로 작용하여 발생한 것임을 입증하지 못하는 이상 피고들은 그 책임

    을 면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시한 바 있는데,54) 이 판례는 공해소

    송에서의 증명책임에 관한 지도적 판례이다. 판례가 들고 있는 반증 중 (1)

    은 직접반증이고 (2)는 간접반증에 해당한다.

    앞에서도 설명하였듯이 개연성설은 고도의 개연성이 존재하지 아니하는

    경험칙임에도 마치 고도의 개연성이 있는 경험칙과 동일하게 취급하여 직

    접반증이든 간접반증이든 상대방의 반증이 없는 한 그 주요사실이 증명된

    것으로 보자는 이론이다. 의료과오소송에서 증명책임을 완화해야 할 필요성

    은 증거의 편재라는 점에서 다른 현대형소송인 공해소송과 별다른 차이가

    54) 대법원 2004. 11. 26. 선고 2003다2123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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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없다. 의료소송에서는 의료의 전문성, 밀실성, 재량성, 폐쇄성 등으로 인하

    여 환자의 증명활동에 커다란 장애가 되므로 그 곤란성은 공해사건과 같거

    나 더 크다고 할 수 있으며, 공해소송에 있어서의 위 판례가 보여주는 구조

    또한 의료과오소송에서의 판례의 구조와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다. 일본에

    서는 공해소송 뿐만 아니라 의료과오소송의 과실이나 인과관계의 증명에도

    개연성이론을 확대적용하고 있다. 즉 의료행위 직후에 이변이 생긴 경우,

    즉 외형적으로 불완전한 발생이 있었다면 이것을 곧바로 불완전한 이행이

    있었던 것이라고 추인하고, 의사의 과실을 추정함으로써 환자측의 주장, 증

    명책임을 경감시키고 있으며(외형적 불완전성에 의한 판결), 통상의 개연성

    증명방법으로는 개개의 구체적인 의료행위와 피해 사이의 인과관계를 증명

    하여야 하지만, 구체적인 의료행위를 지나치게 특정하여 증명할 필요 없이

    의사의 행위 중 하나의 행위에 의하여 피해가 발생한 것은 명백하지만 그

    행위가 A인지 B인지 알지 못하는 경우에도 인과관계의 주장⋅증명이 있다고 인정하기도 한다(선택적 인정).55)

    나. 변론주의 관철의 필요성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법적 평가에 해당하는 정당한 사유 내지 고의,

    과실과 같은 법률요건 자체가 주요사실인지 여부에 대해서 판례는 이를 긍

    정하고 있다. 즉 판례는 법적 평가에 해당하는 요건들조차 주요사실이라고

    보고, 이에 해당하는 구체적 사실은 간접사실로 보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간접사실에 대해서는 변론주의가 적용되지 아니하여 당사자에게 불의의 타

    격을 가할 수 있음은 앞에서 본 바와 같다. 따라서 법적 평가에 해당하는

    고의, 과실, 정당한 사유 등은 일정한 효력을 발생시키게 하는 요건들일 뿐

    이고 여기에 해당하는 구체적 사실이 주요사실이라고 보아야 변론주의가

    제대로 작동할 수 있고, 재판에서 당사자가 소외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나아가 만약 과실에 해당하는 구체적 사실이 주요사실로 보는 경우에는

    55) 자세한 내용은 신현호⋅백경희,「의료분쟁 조정⋅소송총론」, 육법사, 2011, 293쪽 이하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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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례가 설시하는 경험칙이 적용되는 여러 간접사실들은 그것 자체가 주요

    사실이 될 것이므로 간접반증의 개념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간접

    반증에 해당하는 사실들은 피고의 항변사항으로서 주요사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간접사실과 경험칙은 이중으로 증명도를 낮추는 역

    할을 하기 때문에 간접사실을 주요사실로 보고 경험칙 적용이 불필요하다

    고 하면 과실에 해당하는 주요사실의 증명도만 문제가 되므로 원고가 주장

    하는 과실의 증명도를 얼마나 경감할 것인가의 문제 외에 다른 문제가 발

    생하지 않아 이론적으로 더 간명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간접사

    실의 증명도가 80%이고 경험칙에 의한 개연성이 80%라고 하면 주요사실

    의 개연성은 64%가 되어 결국 증명점 이하의 증명을 가지고 주요사실을

    인정하는 결과가 됨에 반하여 간접사실 자체가 주요사실인 과실로 보게 되

    면 경험칙에 의한 개연성을 별도로 따질 필요가 없어서 증명점 이상의 증

    명도가 확보되는 것이다.

    Ⅴ. 결 론

    종래 우리 판례의 입장을 분석함에 있어서 독일의 이론에 의지하는 경

    우가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독일의 이론

    으로 판례의 입장을 분석하기에는 여러 가지 이론적 모순점이 노정되어 왔

    다. 즉 사실상의 추정론이나 일응의 추정론 및 증명책임 전환의 법리 모두

    우리 판례를 적정하게 분석함에 있어 일정한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필자는 우리 판례의 입장을 일본에서 발전되어 온 개연성이론에 입각한

    것으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개연성이론은 원래 공해

    소송의 증명부담을 완화하기 위하여 태동된 이론이므로 과실점에 대한 증

    명책임의 문제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일본에서도

    의료과오소송의 과실 및 인과관계에 대한 증명책임과 관련하여 개연성이론

    을 응용하고 있음을 볼 때 우리나라의 판례의 입장을 개연성설에 입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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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으로 파악하여도 무난하리라 본다.

    나아가 과실과 같은 법적인 평가 개념에 대해서도 변론주의를 관철하여

    당사자에게 불의의 타격을 가하지 않고 주요사실에 대한 증명도를 제고하

    기 위해서는 판례가 인정하는 간접사실들을 주요사실로 보고, 간접반증에

    해당하는 사실들은 피고측의 항변사항으로 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투고일: 2011. 12. 20 심사일: 2011. 12. 22 게재확정일: 2011. 12.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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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제 어

    의료행위, 과실, 인과관계, 개연성설, 증명책임.

  • 김일룡: 판례에 나타난 의료과오소송에 있어서 증명책임의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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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BSTRACT]

    The Structure of Burden of Proof in Medical

    Malpractice Suit revealed in Judicial Precedent

    Kim, Il - Ryong

    It is true that in the analysis of our position of judicial precedent,

    there were many cases where we depended upon the theory of

    Germany. As seen above, however, several points of theoretical

    contradictions were exposed in analyzing the position of judicial

    precedent through the theory of Germany. In other words, the legal

    principle of theory of estimation in actuality or theory of estimation

    in advance and the change in the burden of proof are showing their

    limitations in properly analyzing our judicial precedent.

    It is the opinion of the Author that it is most appropriate to look

    at the position of our jud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