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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장 시극의 운율 279 제5장 시극( V ersdrama) 의 운율

제5장 시극(Versdrama)의 운율web.sungshin.ac.kr/~ktcho/Metrik/Kap_5.pdf · 2018-12-05 · 288 독일 운율학 개론 rå@ §NæH # æ9 ¡Æp ()c l-.7 â0ýá h "æ95 n ! Hç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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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5장 시극의 운율 279

    제5장 시극(Versdrama)의 운율

    5.1 희곡에서의 운문 사용

    희곡의 언어는 희곡이 예술 작품이라는 점에서 일상의 언어와 구별되

    며, 희곡이라는 특정 문학 장르의 언어라는 점에서 다른 문학 장르들의

    언어와 구별된다. 희곡의 언어는 그것이 산문이든 운문이든 일상 언어의

    ‘자연성’에 완전히 도달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희곡 언어의 구성은 작가

    의 예술적 의지와 청중에 대한 고려에 의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

    이다. 희곡의 언어는 작가에 의해 의식적으로 다루어진 언어로서, 양식화

    된 언어라는 점에서 일상 언어와 구별되며, 언어의 양식화는 일차적으로

    예술적인 면에서의 효과를 위한 수단이다.

    고대 희곡에서 19세기 낭만주의 극에 이르기까지 작가들은 희곡, 특히

    ‘높은’ 장르인 비극(Tragödie)의 언어는 당연히 운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

    고 산문은 일상의 소재로 다루는 ‘낮은’ 장르인 희극(Komödie)에서만 예외

    적으로 용인하였다. 그러나 적어도 레싱의 서민극이 산문으로 쓰여진 이

    후부터 희곡 언어로서 산문이 지니는 가치가 평가되고 희곡에서의 운문

    사용이 문제시되기 시작한다. 이것은 당시 문학의 모든 분야에 걸쳐 일게

    된 규범에 대한 저항과도 관련이 있으며, 특히 희곡 언어의 ‘자연성’에 대

    한 요구는 운문 사용에 대한 찬반 논쟁의 중요한 기폭제가 되었다. 사실

    주의와 자연주의의 희곡들이 대부분 산문으로 작성된 이후부터 희곡에서

    의 운문 사용은 더 이상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며, 현대

    희곡에서 운문이 사용될 경우에는 일상 언어의 산문체와 구별되는 언어

    형상을 통해 특별한 문체 효과를 얻고자 하는 작가의 의도가 결합되어

  • 280 독일 운율학 개론

    있다.

    규범적 입장의 희곡론을 기술한 프라이탁(Gustav Freytag)은 그의 희곡

    기법 Die Technik des Dramas(1863)에서 희곡의 예술성을 들어 희곡에서

    의 운문 사용을 옹호하였다. 그는 희곡에서는 현실의 사실적 모사가 문제

    되는 것이 아니라 청중으로 하여금 현실로부터 동떨어진, 작가가 창조한

    ‘예술적’ 세계 속에 들어가 있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러한 ‘예

    술적’ 효과는 운문을 통해서만 도달될 수 있다고 보았다. 운문이 극중 인

    물을 고상한 경지로 승화시키고 청중의 정서를 고양시키는데 반해 산문

    은 극의 다양한 분위기에 쉽게 부합할 수 있는 장점을 지니고 있지만 동

    시에 예술의 경지를 현실의 평범한 모사로 전락시킬 위험을 안고 있다고

    보았다. 프라이탁에게 운문은 시적 고양 수단이며, 그 자체로서 예술성의

    표현이었다. 그는 셰익스피어 이래 독일 희곡에서도 점차 보편화된 운문

    과 산문의 혼용을 비판하면서 한 작품 안에서 운문과 산문이 함께 사용

    될 경우, 문체상의 질적인 대조가 두드러지게 되며, 현실의 모사라는 느

    낌을 갖게 하는 산문 때문에 작품 전체의 예술성이 하락하게 된다고 하

    였다. 작가가 운문을 사용할 경우 표현상의 제한을 감수해야 하지만 운문

    의 리듬이 청중의 정서에 미치는 영향과 비유적․시적 표현들이 산문보

    다 운문으로 더 잘 표현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그것은 크게 보아

    손실이 아니라고 하였다.

    서정극(lyrisches Drama)의 대표적 작가인 엘리엇(T. S. Eliot)은 운문과

    산문의 표현력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프라이탁과는 상반된 견해를 갖고

    있다. 엘리엇은 운문보다 산문이 표현 가능성을 제한하며, 특히 감정 영

    역을 표현하는 데는 운문이 산문보다 우월하다고 보았다. 입센이나 체홉

    같은 대가들의 작품이 비록 커다란 성공을 거두었을지라도 언어 표현상

    의 제한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그들이 산문을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하였

    다. 엘리엇은 운문이 희곡에 활기를 부여하는 시적 수단이며, 따라서 작

    제5장 시극의 운율 281

    가의 과제는 모든 종류의 상황을 표현할 수 있는 율격을 찾아내거나 창

    조해내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희곡에서 운문사용의 전형

    을 본다. 진정한 희곡 언어로서의 운문은 평범한 사실의 진술에도 사용될

    수 있어야 하는데, 셰익스피어는 이 점에서 대가의 일면을 보여준다고 하

    였다. 그러나 엘리엇은 프라이탁과 마찬가지로 한 작품 내에서 운문과 산

    문을 혼용하는 것에는 반대하였다. 왜냐하면 희곡 대사의 문체적․리듬적

    효과는 무의식중에 전달되어야 하는데, 운문에서 산문으로 또는 그 역으

    로의 전환은 극에 몰두해야 할 청중의 주의력을 언어 매체에 쏠리게 하

    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언어 형태의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작가의 분명한

    의도가 결합되어 있는 경우에 한해서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하였다.

    코머렐(Max Kommerell)은 그의 저서 희곡에서의 운문 Der Vers im

    Drama(1952)에서 운문은 희곡이 지니는 수많은 예술적 요소 중 하나에

    불과하며, 희곡같이 ‘자연스러운’ 장르에서 인위성이 다분한 운문의 사용

    을 부적합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사실 희곡이 매우 인위적인 예술 장르임

    을 간과하는 것이라고 했다. 희곡의 언어 전체가 지니는 인위성에 비교한

    다면 운문의 인위성은 오히려 빈약하다고 할 수 있으며, 희곡과 같이 인

    위적으로 구성된 장르에서는 운문처럼 인위성을 지닌 언어 형태가 예술

    성이 결여된 산문보다 오히려 더 자연스럽고 적합한 언어 형태일 수 있

    다고 하였다.

    5.2. 고대극의 운율

    고대 그리스의 시학에서는 장르에 관계없이 문학의 언어는 운문이어야

    하는 것이 자명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시학에서 “창작을 운문

    과 연결시켜 생각하는 것”이 사회적 통념인데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시인’

    이라고 부를 때 그들 작품의 ‘모방성’을 근거로 그렇게 부르는 것이 아니

    라 단지 작품의 외적인 언어 형상, 즉 운문을 보고 일괄적으로 그렇게 부

  • 282 독일 운율학 개론

    르며, 의학이나 자연 과학 분야의 저술도 운문으로 기술되었으면 그 저자

    를 ‘시인’이라고 부르는데 그것은 잘못이라고 하였다. 그러한 저술은 자연

    의 ‘모방’이 아니므로 그 저자들은 ‘시인’이 아니라 ‘자연 과학자’라고 불러

    야 옳다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운문을 모든 문학 장르에 공통된 ‘모방’의 수단으로

    보았다. 문학 장르는 그 모방의 성격과 사용된 율격의 종류에 의해 서로

    구별되며, 율격은 각 장르별 모방의 성격에 부합해야 한다고 하였다. 예

    를 들어, 이야기체로 모방하는 문학 장르인 서사시에는 헥사메타가 적합

    하며, 행동하는 인물을 모방하는 장르인 희곡에는 얌부스나 트로케우스

    같은 역동적인 운율이 적합한데, 특히 얌부스형 트리메타는 행동하는 인

    물의 대사에, 트로케우스형 테트라메타는 춤 동작을 묘사하는데 적합한

    율격이라고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하면 그리스의 비극은 원래 합창

    단시(Chorlyrik)인 주신 송가(酒神頌歌, Dithyrambos)에서 발전되어 점차 대

    사와 합창이 교대되는 극의 전형적 구조를 갖추게 되었으며, 원래 대화의

    율격은 트로케우스형 테트라메타였으나 점차 일상 회화의 율격인 얌부스

    형 트리메타로 대체되었다. 주신 송가는 원래 이원적 구조를 지니고 있었

    으며, 그 자체로서 이미 극의 요소를 갖고 있었다. 즉, 두 그룹으로 나뉘

    어진 합창단이 서로 마주보고 서서 질문과 대답, 주제의 시창(始唱)과 반

    복 등 역할을 분담하였으며, 이러한 이원적 구조가 희곡으로 발전하였다.

    답창을 맡은 합창단은 점차 합창단장 1인으로 대체되어 합창단가는 합창

    단과 합창단장 사이의 대창(對唱) 형태를 띠게 되었다. 합창단장은 처음에

    는 합창단의 노래에 상응하는 음조로 낭송하다가 점차 화답(Responsion)하

    는 역할에서 해방되어 독자적인 배우가 되었고 언어 형태도 낭송조에서

    대화체로 바뀌었다. 주신 송가에서 고대 비극으로의 변천은 이렇듯 음악

    (Melos)에 비해 말(Logos)의 비중이 점차 커져가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가창 운율에서 낭송 운율을 거쳐 대화의 운율로 발전하는 과정은 합창단

    제5장 시극의 운율 283

    (Chor) -합창단장(Chorführer) -배우(Schauspieler)로 발전하는 과정과 일치

    한다.

    아이쉴로스(Aischylos, 525-456 v. Chr.)에게서 이미 형식의 완성을 보여

    주고 있는 고대 비극의 내적 구조를 보면 대부분 서곡(Prolog)에 이어 합

    창단이 등장하며(Parodos), 사건의 진행은 합창단의 노래(Stasimon)에 의해

    여러 개의 대화 단락(Epeisodien)으로 나뉘어진다. 합창단가와 극중 인물의

    대사는 종종 동일한 내용을 다른 형식으로 반복하고 있는데, 합창단장이

    아나페스트 운율로 서창(敍唱)한 내용을 합창단이 여러 개의 절(節)로 구

    성된 노래로 반복하며, 합창단 노래의 내용은 다시 배우들의 대화에서 반

    복된다. 시, 노래, 대사, 다양한 율격의 병존 등 그리스 희곡에서 나타나는

    이와 같은 형식 요소의 다양성은 미학적 관점에서의 대비 효과이며 동시

    에 동일한 내용이 다양한 형식으로 반복된다는 점에서는 음악적 효과면

    에서 보면 변주곡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의 운율은 시행의 구성에서 음절의 양적 크기에 따른 분류

    와 배치를 규정하고 있으며, 짧은 음절과 긴 음절이 결합될 수 있는 가능

    성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운각을 구성하고, 같은 종류 또는 다른 종류의

    운각들이 결합하여 다양한 유형의 율격을 생성한다. 또한 하나의 장음이

    두개의 단음으로 대체될 수 있는 음량 음조론상의 가능성에 의해 동일한

    율격이라도 시행마다 리듬적 성격이 매우 다양하다. 고대 그리스의 작가

    들에게 운율의 규칙은 철저하게 준수해야 하는 의무였다. 아리스토파네스

    (Aristophanes)는 그의 희극 개구리들 Batrachoi(405 v. Chr.)에서 하계(下界)

    의 시겨루기(Agon)에서는 시예술의 질을 저울로 달아 판정하며, 희곡은

    시행 하나 하나를 자와 각도기, 그리고 콤파스로 재어 그 우열을 가린다

    고 풍자하고 있다.(V.797ff.)

    그리스 비극에 사용된 율격은 그 기능에 따라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인물의 대사에 사용되는 율격, 합창단가의 율격 그리고 서창(敍

  • 284 독일 운율학 개론

    唱, Rezitativ)의 율격이다. 대사의 율격으로는 얌부스형 트리메타와 트로케

    우스형 테트라메타가 사용되고 있는데, 테트라메타는 주로 격앙된 장면에

    서 사용됨으로써 극의 분위기를 운율상으로 차별화하여 표현하고 있다.

    서창은 합창단장이 맡으며, 합창단이 무대에 등장할 때(소위 ‘행진 아나페스

    트’ Marschanapäste), 또는 극 중간에서 합창단의 노래에 앞서는 도입부의

    형식으로 아나페스트 운율로 이루어진다. 대사나 서창의 율격이 고정되어

    있는 데 반해, 합창단의 노래는 운율상으로 매우 다양하며, 율격의 선택

    이나 결합에 있어서 작가에게 커다란 자유가 부여된다. 합창단 노래의 형

    식상 특징은 두 개의 절씩 동일한 운율 구조를 갖는 소위 대립 악절 구

    조(antistrophische Struktur: α α' β β' γ γ' ...)이며, 종종 쌍을 이루지 않는

    하나의 절이 사이에 끼어들거나 끝을 마무리짓기도 한다.

    고대 로마의 시학에서도 운문은 문학의 자명한 표현 수단으로 간주되

    었다. 치체로(Marcus Tullius Cicero, 104-43 v. Chr.)는 그의 저서 웅변가

    De oratore에서 운문과 산문을 리듬적 속성에 따라 구분하고 있는데, 그

    에 따르면 운문은 전적으로 문학 작품에 유보된 언어 형식이며, 산문은

    웅변가의 언어 형식으로 운문과 일상 언어의 중간 형태로 운문처럼 완전

    히 리듬화되어 있지 않으면서 동시에 일상의 언어처럼 전혀 리듬이 없는

    것도 아니다. 만약 웅변가가 운문, 즉 리듬화된 언어로 말한다면 그것은

    잘못이라고 하였다. 언어의 리듬이 명백하게 겉으로 나타나게 되면 연사

    가 말하는 말의 내용과 그 사변적 흐름에 집중되어야 할 청중의 주의력

    이 딴 곳으로 돌려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에 반해 문학의 언어 형식

    인 운문에서는 리듬이 본질적 요소로서 운문의 리듬은 이론적으로 규정

    된 규칙을 엄격히 따라야 하며, 운문은 시작품의 언어를 다른 언어 형태

    와 구별시켜주는 외형적 특질이라고 하였다.

    치체로가 운문의 리듬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산문에

    도 리듬이 있음을 증명하고 웅변술에 있어서 언어의 리듬적 요소가 중요

    제5장 시극의 운율 285

    함을 강조하고자 함인데 반해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 65-8 v.

    Chr.)는 서간 형식을 빌린 논고 시학 ars poetica에서 문학에서의 형식이

    갖는 의미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그는 각 문학 장르의 특성과 형식 요소

    들을 역사적 발전에 따른 당연한 결과로 보았다. 즉, 각 장르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그 시적 내용에 부합하는 자연스러운 표현 형식을 찾았으며,

    그리스 문학에서 규정된 각 장르별 엄격한 규칙은 자연스러운 법칙성의

    표현이므로 이를 본받아야 한다고 하였다. 그는 작가가 장르의 규칙을 위

    반하는 것은 문학적 무능력과 예술적 수완(techne)의 부족함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장르의 규칙에는 장르에 따른 율격의 선택도 포함된다.

    즉, 서사시에는 헥사메타가, 희곡에는 얌부스 율격이 적합한 형식으로 간

    주되었다.

    고대 그리스극은 전체적으로 대사의 비중이 큰 ‘대사극’인데 반해, 고대

    로마극에서는 대사의 비중이 줄어들고 대신 음악을 동반하는 서창(敍唱,

    Rezitativ)과 영창(詠唱, Arien)의 비중이 늘어난 ‘창가극(唱歌劇, Singspiel)’으

    로의 경향이 나타나며, 세네카(Seneca, 3 v. Chr.-65 n. Chr.)에 이르러 대사

    와 서창, 그리고 합창단 노래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게 된다. 로마극의

    운율은 그 본질에 있어 그리스극의 운율을 모방하고 있다. 그리스 운율에

    서처럼 긴 음절과 짧은 음절의 배열에 의해 율격의 리듬이 결정되는데,

    희곡의 운율은 기악(器樂)의 동반 여부에 따라 대사의 운율(diverbia)와 서

    창과 영창의 운율(cantica)로 구분된다. 순수한 대사의 율격은 그리스의 얌

    부스형 트리메타에 해당하는 얌부스형 세나르이며, 그리스의 트로케우스

    형 테트라메타에 해당하는 트로케우스형 셉테나르는 음악을 동반하는 서

    창의 율격이었다. 칸티카는 음악이 동반되는 것을 제외하면 그리스극의

    합창단 노래와 공통점이 거의 없다. 그리스극에서는 사건의 진행이 합창

    단의 간주곡에 의해 규칙적으로 중단되면서 인위적 단위인 막(幕)으로 나

    뉘는데 반해, 로마극의 칸티카는 시점, 인물, 모티브 그리고 운율에 관한

  • 286 독일 운율학 개론

    아무런 규정을 갖고 있지 않다. 대부분 한 명의 합창단원에 의한 솔로 아

    리아의 형태를 취하고 있고, 대립 악절의 형식도 갖고 있지 않으며, 작가

    의 임의에 의해 효과적인 위치에 삽입되고 있다.

    5.3. 중세극의 운율

    중세의 시학은 본질적으로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시학을 답습하고 있

    으며, 따라서 문학 작품의 언어가 운문이어야 한다는 고대 시학의 견해가

    중세에도 그대로 이어진다. 물론 종교적인 입장에서 고대의 문학을 이교

    도의 문학이라고 배척하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예를 들어 히에로니무스

    (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420)는 “도대체 호라티우스가 시편과

    무슨 관계가 있으며, 버질이 복음서와 무슨 관계가 있고, 치체로가 사도

    행전과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하면서 성서 설화 시인인 유벤쿠스

    (Juvencus)에 대해 “그는 우리 주 예수님의 이야기를 운문으로 말하면서

    고귀한 복음의 말씀을 운율 규칙에 예속시키는 것에 대해 조금도 부끄러

    워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고대에 대한 이러한 일부의 부정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으로 중

    세는 고대 문학의 표현 형식을 그대로 수용하고 있다. 이교적이라고 간주

    하던 고대 문학의 세계관적 기반을 기독교적인 내용으로 대체시키고 외

    적 표현 형식은 그대로 수용함으로써 기독교적 내용과 그리스도 이전 형

    식의 결합이라는 중세 문학의 특질이 생겨나게 된다. 이교도 문학의 표현

    형식을 차용하면서 중세 기독교인들은 복음서에서도 운문의 요소를 찾아

    볼 수 있다고 합리화한다. 예를 들어 아라토르(Arator, ca. 500-550)는 사도

    행전을 운문으로 적으면서 “운문의 폭력은 성서에 낯선 것이 아니다. 시편

    은 서정적인 율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태고의 언어에서 예레미아의 탄식

    과 히옵의 말도 헥사메타로 되어 있었다고 한다.”고 하였다.

    제5장 시극의 운율 287

    중세 문인들은 운문과 산문의 근본적 차이를 의식하면서도 실제에 있

    어서는 운문과 산문을 임의적으로 바꾸어 쓸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한 생각은 사실 로마왕정시대(753-510 v. Chr.) 이래 시학이 수사학의

    범주에서 취급됨으로써 운문과 산문의 경계가 점차 흐려지기 시작한 때

    문이기도 하다. 동일한 소재를 운문과 산문으로 다루어 두 형식의 텍스트

    를 대비시키거나(Opus geminatum) 한 작품 안에서 운문과 산문을 짧은 간

    격을 두고 교대시키는 형식(Prosimetrum)도 나타난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는 운문이 산문보다 질적으로 우월하다고 평가하였으며, 운문으로 표현할

    경우 표현상의 제약을 감수해야 하는 것이 당연시되었다. 세둘리우스

    (Sedulius)는 자신의 성서 설화를 운문으로 작성한 이유에 대해 독자들이

    산문보다 운문에 더 매력을 느끼며, 운문이 기억하기에 용이하기 때문이

    라고 하였고, 중세의 첫 시학서라고 할 수 있는 작시법 Ars versificatoria

    (1170)의 저자인 벤도메(Mathäus Vendôme)는 문학을 “진지하고 의미 심장

    한 소재를 운문으로 묘사하는 기능(techne)”이라고 정의하면서 율격은 독

    자의 주의력을 보조하고 작품의 이해를 용이하게 해주는 수단이라고 하

    였다. 문학을 규칙의 습득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기예(artes)로 간주한 중세

    시학의 관점에서 형식은 작가의 자율적 판단에 의해 부여되는 것이 아니

    라 엄격한 규칙에 따라 짜 맞추어지는 것으로 기능의 범주에 속하며, 문

    학의 외적인 미의 요소로서 동시에 문학의 본질적 요소이다.

    운율사에서 중세는 각운 시행의 등장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독일 각운

    시행의 출발점이 되고 있는 오트프리트시행은 그 전형을 고대 율격에서

    찾을 수 있다. 고대 운율의 미와 효과를 오트프리트는 다음과 같이 칭송

    한다.

    그들(즉, 그리스인과 로마인들)은 규칙을 엄격히 지키면서 동시에

  • 288 독일 운율학 개론

    소박한 문체로 글을 쓰며, 그들의 글은 상아 조각품처럼 (부분들

    이) 완전하게 들어맞도록 짜여져 있다. 글은 이렇게 써야 사람들

    을 즐겁게 할 수 있다.

    Sie máchont iz so réhtaz ioh so fílu sléhtaz,

    iz ist gifúagit al in éin selp so hélphantes béin.

    Thie dáti man giscríbe! theist mannes lúst zi líbe.

    (Zit. n. Schlosser, 1989:17)

    오트프리트시행은 한편으로 각운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게르만어의 두

    운시행과 구별되며, 다른 한편으로는 양음의 수만 규정하고 그 배열이나

    억음의 채움이 자유롭다는 점에서 고대의 율격들과 구별된다. 위의 시행들

    이 보여주듯이 각 시행은 전행과 후행이 운을 이루며, 모두 4개의 양음을

    갖는다. 각운은 원래 후기 고대의 수사학에서 사용된 문체 수단인 단어의

    어미음 일치(Homoioteleuton)에서 발전되어 나온 것이다. 기독교 문학에서

    각운의 사용이 점차 널리 확산되게 된 과정에 대해 일부 운율학자들은 각

    운이 ‘기독교적인 운’이며, 기독교에 의해 이교도 문화가 구축된 것처럼 두

    운시행에서 각운시행으로의 전환도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베얼리(Max Wehrli)는 오트프리트가 두운시행 대신 각운시행을 택한 것은

    두운시행이 이미 오랫동안 세속적인 내용에 사용되어 불순해졌기 때문에

    성스러운 복음서의 기술에 사용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

    고 해석한다. 브링크만(Hennig Brinkmann)도 이와 유사한 사변적 해석을

    하면서 두운과 각운을 ‘변화성과 불변성’의 대립으로 본다. 두운은 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운의 울림이 쉽게 사라지는 반면에, 각운은 뒤에 휴지

    부가 놓이기 때문에 그 울림을 오랫동안 음미할 수 있으며, 따라서 영원

    에 대한 믿음과 모든 차이를 초월한 일치에 대한 믿음이라는 기독교적

    신앙이 각운에 반영되어 있다고 본다.

    제5장 시극의 운율 289

    오트프리트 시행은 11세기에 들어서 4양격의 쌍운시행(Paarreimvers)으

    로 발전하게 되며, 이 율격은 이후 중세 서사 장르와 희곡 장르의 보편적

    율격이 되었다. 중세 쌍운시행은 음절수가 정해져 있지 않으며, 양음과

    억음의 배열에 관한 규칙도 없으며, 양음의 배열이 단어의 자연스러운 강

    세와 일치하는 율격으로 시행의 단위가 문장론상의 경계에 의해 분명하

    게 표시되어 있다.

    중세 종교극과 사육제극(Fastnachtspiel)에서는 쌍운시행 한 종류의 율격

    만 사용되고 있으므로 고대극에 비해 형식상의 단조로움이 없지 않지만

    율격의 성격상 리듬의 변화가 크고 자유롭기 때문에 극의 다양한 분위기

    와 내용을 무리 없이 율격의 리듬으로 반영할 수 있다. 쌍운을 지니는 두

    개의 시행이 두 명의 화자에게 나뉘어지는 소위 연결고리운(Stichreim)이라

    고 불리우는 운의 분리는 배우가 쉽게 대사를 외울 수 있도록 하는 실질적

    의미와 더불어 장면의 전환부에서 내용상 연결된 두 장면을 외형적으로

    도 연결시켜주는 기능을 갖기도 한다.

    중세 종교극은 고대 희곡의 기법에 영향을 받지 않은 독자적 장르로서

    특히 사건의 구성과 전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극작법과 전혀 연관이 없

    음을 보여준다. 교회의 의식에 근원을 두고 있는 종교극은 의식으로부터

    분리된 이후에도 계속 의식의 요소를 지니고 있었다. 종교극의 모체로 간

    주되는 «부활절 화답 Ostertropus»의 내용적 핵심은 세 마리아의 무덤방

    문 및 천사들과의 만남을 묘사하는 «여인들의 방문 visitatio sepulchri»으로

    원래 단성(單聲) 합창단들 사이의 대창(對唱, Antiphonie) 형식을 취하고 있

    었다. 종교극의 외형적 발전 과정을 보면, 합창이 점차 대화 형태로, 산문

    이 점차 운문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다. 원래 두 그룹으로 나뉘어진 합창단

    의 오라토리오풍 대창이 점차 천사, 마리아 등 극중 인물들의 그룹 대창

    으로 대체되고, 그룹 대창은 다시 등장인물들의 대화로 바뀌게 된다. 언

  • 290 독일 운율학 개론

    어 형식면에서 보면 산문이었던 대창의 텍스트가 점차 여러 개의 절로

    된 노래로 바뀌고, 궁극적으로는 극 전체가 운문으로 쓰여지게 되며, 극

    의 핵심인 «여인들의 방문»만은 예외적으로 계속 산문으로 작성되었다.

    라틴어만을 사용하던 종교극은 13세기에 이르러 민족 언어인 독일어가

    사용되고 세속적인 장면이 삽입됨으로써 외형상의 변화를 겪게 된다. 라

    틴어와 독일어의 혼용은 중세 종교극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중세 독

    일 종교극의 전형적인 구조를 보여주는 인스브룩 부활절극 Das

    Innsbrucker Osterspiel(1391)을 보면 독일어 텍스트는 대부분 선행하는 라

    틴어 텍스트의 자유로운 번역이며, 일반적으로 하나의 라틴어 시행이 한

    쌍의 독일어 시행으로 번역되는 경향이 있어 독일어 텍스트가 라틴어 텍

    스트에 비해 현저하게 분량이 크다. 또한 악장본(Dirigierrolle)으로 전래되

    고 있는 이 작품은 라틴어 텍스트 앞에는 «canit» 또는 «cantat», 독일어

    텍스트 앞에 «dicit» 또는 «dicat»라는 지문이 있어 무대 위에서의 제시

    종류가 달랐음을 짐작하게 한다. 즉, 라틴어 텍스트는 앙상블 그룹의 합

    창으로 불리워졌고, 독일어 텍스트는 한 명의 배우에 의해 낭독되었다.

    라틴어와 독일어는 그 기능상에도 차이가 있다. 라틴어는 성스러운 사건

    의 묘사에 제한되고 있으며, 라틴어를 모르는 대다수의 평신도들에게 라

    틴어 텍스트는 뜻보다 음을 통해 경건한 분위기를 창조하는 기능을 가졌

    다. 라틴어 텍스트에 뒤따르는 독일어 텍스트는 라틴어로 불린 노래의 내

    용을 평신도들에게 쉽게 이해시키려는 데 그 일차적 기능이 있으며, 장사

    꾼 장면이나 지옥 장면같은 속세적인 내용은 라틴어 텍스트 없이 독일어

    로만 쓰여졌다. 즉 거룩하고 신성한 영역과 사악하고 세속적인 영역의 구

    분을 언어 형식의 대조를 통해 표현하고 있다.

    중세 후기에서 근대 초기(15~16세기)에 뉘른베르크를 중심으로 한 남독

    지방에서 번성한 사육제극(Fastnachtspiel)은 세속극의 대표적 장르이다. 대

    부분 유쾌하며 노골적인 내용과 단순한 구성을 지닌 평균 200행 정도의

    제5장 시극의 운율 291

    작은 분량으로 웃음과 함께 현세를 긍정하면서 사육제의 유흥에 기여하

    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사용된 율격은 쌍운 시행에서 발전한 크니텔

    시행으로 17세기에 이르러 ‘세련되지 못한 운율’이라는 의미로 15~16세기

    의 예술성이 빈약한 시행을 경멸하여 칭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크니텔

    시행은 쌍운(Paarreim)을 지니며, 음절수에 따라 자유로운 크니텔 시행(der

    freie Knittelvers)과 엄격한 크니텔시행(der strenge Knittelvers)으로 구분되

    는데, 15세기의 사육제극은 주로 자유로운 형식을, 16세기의 사육제극은

    주로 엄격한 형식을 사용하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중세극은 단일 율격을 사용함으로써 복합 운율을 사

    용하는 고대극에 비해 운율의 리듬적 다양성을 극의 내용과 연관된 양식

    적 수단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 상당히 제약되어 있다.

    5.4. 르네상스극의 운율

    르네상스의 시학은 중세 독일의 문학 전통보다는 고대 시학의 영향 하

    에 있다. 특히 이탈리아와 프랑스 인문주의자들에 의한 고대 문학 이론의

    활발한 연구는 이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고대 시학에서와 마찬가지로 르

    네상스의 시학에서도 문학은 기예(artes)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즉 문학을

    예술이 아니라 하나의 기능(techne)으로 이해하는 르네상스 시학은 일반적

    으로 각 장르별로 소재, 구성, 언어의 선택, 문체, 비유법, 운율 및 음절,

    철자, 억양 등 세부적인 사항에 이르기까지 면밀한 규칙을 제시한다.

    16세기의 작가들은 고대의 시학에서처럼 문학의 언어가 일상의 언어와

    구별되는 것이 자명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운율을 시적인 비유와 함

    께 문학의 외적 장식으로 간주했으나 문학 작품이 반드시 운문으로 쓰여

    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통일되지 않았다.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

    들은 운문을 문학의 언어와 일상의 언어를 구분하는 척도로 삼았다는 점

  • 292 독일 운율학 개론

    에서 비교적 입장이 분명했다. 즉 문학은 하나의 기예이고, 운문은 문학

    의 본질에 속하는 것이었다. 스칼리거(Julius Caesar Scaliger, 1484-1558)는

    문학은 “귀로 듣는 그림(veluti aurium pictura)”이며, 시적 비유와 운율은

    말의 장식이라고 하였고, 기랄디(Giambattisto Giraldi Cinthio, 1504- 1573)는

    문학을 “영감(靈感)의 문제로서 위대한 사건(magma)을 운문으로(per

    carmen) 다루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반해 쁠레이야드(Pléiade)의 대표

    자인 롱사르(Pierre de Ronsard, 1524-1585)는 “작가의 목적은 모방, 착상 및

    묘사에 있다. 착상이 좋고 고상하면 시행의 미적 배열은 물체에 그림자가

    따라 붙는 것처럼 저절로 이루어지게 된다. 소재와 착상은 유능한 작가의

    대상이며, 율격은 단지 교육받지 못한 시 장인(匠人)의 목표일 뿐”이라고

    함으로써 이탈리아의 인무주의자들과 비교되는 입장을 보여준다.

    16세기 희곡은 운문의 형식면에서 보면 이론과 실제의 불일치로 특징

    지워진다. 인문주의 학자들이 고대극의 운율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소개

    하였던 반면에 실제에 있어서는 중세 후기의 전통이 계속 이어져 엄격한

    크니텔 시행이 희곡의 율격으로 사용되었다. 작가들이 이 율격을 사용한

    것은 특정한 예술적 의도에서라기보다 청중에 대한 고려와 습관에 기인

    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의 운율법을 독일어 운문에 적용하려는 다양

    한 시도가 있게 되는데, 그것은 고대의 음조론과 작시법에 따라 독일어

    율격을 구성하려는 시도와 로만어 계통의 운율 규칙을 독일어에 적용하

    려는 시도였다. 고대의 음량 음조론에 따른 작시법이 음절의 장단을 규정

    하는 까다로운 규칙 때문에 관철될 수 없었던 반면 로만어 계통의 음수

    율 규칙은 베컬린(Georg Rodolf Weckherlin, 1584-1653)의 시들이 보여주듯

    이 쉽게 관철될 수 있었으나 오피츠(Martin Opitz, 1597-1639)의 운율 개혁

    이 성공함에 따라 보다 독일적인 운율에 의해 구축되었다.

    이론면에서 독일 운율을 개혁하려는 움직임과는 별도로 작가들은 실

    제5장 시극의 운율 293

    제 작품 활동을 통해 새로운 운율 규칙에 의해 율격을 구성해보려는 다

    양한 시도를 한다. 콜로스(Johann Kolroß, 1487-1558/1560), 비르크(Sixt

    Birck, 1500-1554), 렙훈(Paul Rebhun, 1500-1546) 등 인문주의 학교극의 작

    가들은 단어의 자연스러운 악센트를 유지하면서 고대 율격의 장단 규

    칙을 독일어의 강약 규칙으로 대체시키고자 시도하였는데, 특히 렙훈은

    그의 성서극 수잔나 Geistlich spiel von der gotfürchtigen und keuschen

    Frawen Susannen(1536)에서 다양한 종류의 율격을 사용함으로써 크니

    텔 시행의 지배에 제동을 걸었다.

    희곡의 대사와 합창단의 시행에 있어서 단어의 악센트를 고려하면서

    동시에 강약이 규칙적으로 교차하는 율격을 구성하려는 렙훈의 노력은

    후에 오피츠가 제창한 새로운 독일 운율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렙훈은

    라틴어 운율의 장단을 독일어의 강약으로 대체함으로써 독일어의 특성을

    살리면서 라틴어의 율격을 모방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카나의

    결혼 Hochzeit zu Cana(2. Aufl. 1546)의 후기(後記)에서 그는 새로운 율격

    구성의 원칙이 “정해진 음절수를 지키면서 악센트에 어긋나지 않도록 하

    는 것”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16세기 희곡이 크니텔시행 하나의 율격만으

    로 구성된데 반해 렙훈의 희곡은 율격의 다양성이 특징적이다.(2, 4, 6, 7,

    8, 9, 11음절의 얌부스 시행과 7, 8, 9, 10, 12음절의 트로케우스 시행). 그러나 시

    대를 앞선 렙훈의 희곡 운율 개혁은 동시대인들의 몰이해에 부딪쳐 1538

    년 익명의 작가가 수잔나의 텍스트를 8음절격으로 일률적으로 통일시

    켜 개작 출판하였고, 렙훈은 이에 격분하여 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양한

    율격을 사용한 이유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앞으로 다시는 이러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이제 설

    명하려 하니, 내 작품에서 8음절보다 길거나 짧은 시행을 사용한

    것은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심사숙고한 것이고 특별한 이유가 있

    는 것이다. 즉 한 장면의 첫 시행의 율격과 음절수로 그 장면 전

  • 294 독일 운율학 개론

    체의 운율을 통일하려고 노력하였으며, 인쇄상의 오류가 아닌 한,

    한 장면 안에서 길고 짧은 시행들이 혼합되지 않도록 하였다. 그

    러나 사건의 성격에 따라 어떤 장면은 짧은 시행으로, 어떤 장면

    은 긴 시행으로 작성한 것에 대해 해명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즉, 식자(識者)들이 «ratio decori»를 생각한다면 이에 대한 해답을

    스스로 얻을 수 있을 것이다.

    Damit mir nu sölches nicht ferner widerfahre / wil ich auch

    dissmal allein so viel zum bericht anzeigen / das mir meine

    reym / so lenger / oder kurtzer / denn acht sylbicht erfunden

    werden / nicht in eim traum endfaren / sonder mit gutem

    bedacht / und gewisser ursach / also von mir gestelt / auch

    mit sölchem vleis abgemessen sind / das wie der erste rheym

    einer jeden Scene ist / also in sölcher mass und zal die

    volgenden rheym der selben Scene alle sind / Und hab nicht

    ein unbesunnen gemeng langer / und kürtzer rheym in einerley

    Scena zusam geschleüdert / so fern sie im druck unverrückt

    bleiben. Das ich aber nach gelegenheit des handels etzlichen

    Scenis kurtze / etzlichen lange rheym zugeeygendt / davon ist

    on not hie rechenschafft zu geben / Nach dem

    die verstendigen diser sach / und die da rationem decori

    bedencken / sölchs von ihn selbs künnen abnehmen (...).

    (An die Deutschen Tichter und Leser, in: Susanna, 2. Aufl. 1544)

    «ratio decori»라는 개념으로 렙훈은 인물의 신분이나 성격상의 차이가

    말에서 암시되어야 한다는 고대 시학과 수사학에서의 원칙을 언급하고 있

    다. 즉 고대에서 문체의 종류에 관계된 개념을 운율의 형식에 확대 적용하

    고 있다. 렙훈은 재판이나 신앙 고백같이 비중 있는 장면은 긴 율격으로,

    제5장 시극의 운율 295

    일상의 세속적 장면은 짧은 율격으로 작성함으로써 내용적 비중의 차이를

    시행 길이의 차이를 통해 표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한 장면의 율격을

    통일시킴으로써 장면 내부에서도 율격의 변화를 통해 대화에 활기를 부여

    한 고대극의 기법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가난한 남자의 탄식

    Klag des armenn Manns von Sorgenvol, ynn theuerung und hungersnot(1540)

    에서는 한 장면 안에서 율격이 변하지만 율격의 변화가 단순히 인물의 교

    대를 강조하기 위한 표면적인 수단으로만 사용되고 있다.

    렙훈의 운율 개혁 시도는 개별적 모방이 있었지만 독일 작시법의 개혁

    에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 그것은 렙훈이 체계적 이론을 제시

    하지 못한 이유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 개혁시대의 작가나 독자

    의 관심이 주로 내용면에 치중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즉 문학의 사회적

    기능이 중요시되었고 미학적, 형식적 문제는 부차적이었기 때문에 새로운

    운율 원칙을 수용하기에는 아직 시기 상조였다.

    5.5. 바로크극의 운율

    독일 바로크 시학은 근본적으로 규범 시학으로 문학은 하나의 기예

    로 인식되었으며, 느끼고 표출하는 개인의 창조적 자율성이라는 관념이

    결여되었다. 바로크 시대의 특징적인 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시학과

    수사학의 밀접한 연결이다. 오피츠는 내용의 착상과 분류에 관한 규칙

    이 적용된다는 점에서 시학은 수사학과 일치한다고 보고 있으며(Opitz,

    Poeterey (1624), C IVr.), 하르스되르퍼(Georg Philipp Harsdörffer, 1607-1658)는

    그의 시학서 Poetischer Trichter(1647-50)의 서문에서 시학과 수사학의 밀

    접한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따라서 시학과 웅변술은 서로 형제자매의 관계이고 서로 연결되

    고 얽혀 있어 어느 한쪽도 다른 한쪽이 없이 가르치고, 습득하고,

  • 296 독일 운율학 개론

    실행되고 연습될 수 없다. 연사가 말의 내용에 적합한 비유와 신

    중하게 선정한 단어를, 그리고 청중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주

    제를 적절한 장식과 치장으로 장식할 줄 아는 것처럼 시인도 그

    의 예술적 관념을 자연스러운 색상으로 표현할 줄 알아야 한다.

    Diesem nach ist die Poeterey und Redkunst miteinander

    verbrüdert und verschwestert / verbunden und verknüpft / daß

    keine sonder die andre gelehret / erlernet / getrieben und

    geübet werden kan. Wie nun der Redner zu seinem Inhalt

    schickliche Figuren / abgemässne Wort und der Sachen

    gemässe Beschminkung und Beschmuckung anzubringen weiß /

    seine Zuhörer zubewegen: Also sol auch der Poet mit fast

    natürlichen Farben seine Kunstgedanken auszubilden / (...)

    (Poetischer Trichter, III (1653), S. jva).

    17세기 독일의 시학들은 독일어로 쓰여진 문학이 고대의 문학이나 동

    시대의 외국 문학과 질적으로 동등하거나 우월하다는 것을 증명하려는

    노력들이 특징적이다. 테오발트 훽(Theobald Hoeck, 1573-1624)은 시작품을

    독일어로 작성할 것을 호소하였고, 하르스되르퍼는 독일어가 다른 어떤

    언어보다도 어휘가 풍부한 최고의 언어로서 독일어는 그 자체의 특성을

    좇아야 하며 다른 언어의 규칙을 따라서는 안 된다고 하였다.(Poetischer

    Trichter I (1648), S. 17). 오피츠의 예술론도 이와 비슷하게 문화에 대한

    애국적 기조에서 출발하고 있다. 오피츠는 그의 독일 시학서 Buch von

    der Deutschen Poeterey(1624) 제 7장에서 운율에 관해 다루면서 각운의 순

    수성을 엄격하게 지킬 것을 요구하였으며, 여성운과 남성운의 이론적인

    구분을 최초로 독일 시학에 도입하였고, 독일어의 억양에 의한 율격을 권

    장하고 있다. 또한 청각상의 호음을 위해 ‘억음과 양음의 규칙적 교차’를

    강조하고 있다. 이에 따라 특정 단어들은 악센트 구조 때문에 독일어의

    제5장 시극의 운율 297

    시행에서 ‘사용 부적격’이라는 판정을 받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이들

    단어는 단어의 악센트에 따라 읽을 경우 ‘억음과 양음의 규칙적 교대’라

    는 운율 원칙을 위반하게 되며, 율격에 따라 읽을 경우 단어의 원래 악센

    트 구조가 파괴되기 때문이다. 독일어의 언어 특성인 악센트 관계를 고려

    한 오피츠의 운율 개혁은 이러한 제한성에도 불구하고 독일 문학에 획기

    적 영향을 미치게 된다. 왜냐하면 시인들은 이제 율격의 규칙이나 작시법

    같은 운문의 기본적인 문제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졌으며, 자유롭게 시

    의 테마와 모티브에 집중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독일어 율격에서 사용할 수 있는 운각 종류의 제한은 소위 ‘부흐너

    풍’(Buchnerart)이라고 불리운 닥틸루스 운각의 도입으로 인해 곧 해제되었

    다. 닥틸루스의 도입은 독일어 시행에서 양음과 억음이 규칙적으로 교차

    하는 율격 이외의 다른 율격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17세기 독일 문

    학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바로크 시학에서는 다양한 운각과 이들로

    구성되는 율격들이 갖는 각기 고유한 표현 효과와 양식적 가치의 차이가

    강조되고 있다. 체젠(Philipp Zesen, 1619-1689)은 세 기본 운각의 특색을 동

    작과 춤에 비교하였으며,

    이 세 가지 종류의 운각을 각각 그 속성에 따라 노래와 시와 춤

    과 결합시키면 듣고 보기에 매우 좋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Hier bei mus auch noch erinnert werden / daß es ohren und

    augen überaus annähmlich sei / wan dise dreierlei reim-ahrten

    / eine nach der andern und nach der natürlichen ordnung / mit

    singen / klingen und springen vermählet / d. i. her-gesungen /

    her-geklungen oder gespielet / und her-getantzet werden.

    (Zesen: Hochdeutscher Helikon (1656), S. 61)

    또한 멘링(Johann Christoph Männling, 1658-1723)의 시학에서는 희곡에서

  • 298 독일 운율학 개론

    의 율격과 장르의 조화가 강조되고 있다:

    얌부스시행들은 희극보다는 진지한 사건에 사용된다. 왜냐하면 얌

    부스 시행들은 영웅적 성격 때문에 장중하기 때문이다. 트로케우스

    시행들은 장중한 사건보다는 모든 종류의 노래와 유쾌한 가곡에 더

    어울린다. 닥틸루스와 아나페스트 시행들은 껑충껑충 뛰는 성격 때

    문에 소네트와 즐거운 내용의 노래에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Jambische Verse werden mehr zu ernsthaften Sachen / als

    Schertz- und Lustspielen gebraucht / weil ihrer Helden-Art

    nach sie gravitätisch sind. Trochaische schicken sich mehr zu

    allerhand Liedern und lieblichen Gesängen als gravitätischen

    Sachen. Dactylische und Anapästischen dienen wegen ihrer

    springenden Art am besten zu Kling-Gedichten und lustigen

    Liedern (...)

    (Männling: Europaeische Parnassus, 1685, S. 46)

    하르스되르퍼는 시인의 시적 정신이 산문으로도 표출될 수 있지만 비

    극에는 운문이 더 적합하다고 보고 있는데, 이것은 단순히 전통 때문이

    아니라 효과를 위한 이유 때문이라고 하였다.

    (청중을) 감동시키기 위해서 비극이나 목가극(牧歌劇)에서는 운문

    을 사용하는데, 운문은 마치 트럼펫처럼 단어와 말에 큰 무게를

    부여한다. 희극에서는 산문도 사용할 수 있는데 산문으로도 작가

    는 자신의 창작을 표현할 수 있다.

    (...) Weil die Gemüter eifferigst sollen bewegt werden / ist zu

    den Trauer- und Hirtenspielen das Reimgebänd bräuchlich /

    welches gleich einer Trompeten die Worte / und Stimme

    제5장 시극의 운율 299

    einzwenget / daß sie so viel grössern Nachdruck haben. Zu den

    Freudenspielen dienet auch die ungebundene Rede / in welcher

    der Dichter gleichwol seine Erfindung kan sehen lassen.

    (Poetischer Trichter II (1650), S. 79).

    하르스되르퍼는 한 작품 내에서 내용의 흐름이나 사건의 성격에 따라

    율격이 변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고 이러한 율격의 변화를 특히 희곡

    에서 분위기의 급작스러운 전환을 두드러지게 하는 적절한 수단의 하나

    로서 권장하였다.

    17세기 중반에 이르기까지의 독일 희곡은 중세 독일의 전통, 근대 라틴

    어로 작성된 학교극과 교회극, 영국 희극 배우들의 연기법 그리고 이탈리

    아의 오페라 등 다양한 요소가 혼합된 혼돈 현상을 보여주고 있는데, 그뤼

    피우스(Andreas Gryphius, 1616-1664)에 이르러서야 이러한 혼돈 상태에서 벗

    어나 예술 장르로서 자리를 잡게 된다. 희곡의 형식에 관한 한 그뤼피우스

    에게서 바로크의 전형적 요소라고 할 만한 새로운 것을 찾을 수 없다. 작

    품 전체를 5막으로 구분한 것, 대사의 과도한 비중, 언쟁이나 토론의 격행

    대화식 구성, 대사의 중간이나 합창단의 노래에서 절(節)의 구성 등은 고대

    희곡의 형식 요소들이다. 막의 대사는 부분적으로 삽입된 서정적인 시행

    그룹을 제외하면 대부분 알렉산드리너로 작성되고 있다. 알렉산드리너는

    바로크 희곡의 간판적 율격으로서 정치적․역사적 사건을 주로 다루고 있

    는 바로크극의 장르적 특징인 위엄을 표현하는 장중한 율격이다. 그러나

    알렉산드리너는 그 운율적 특성 때문에 시인들에 의해 종종 표현상의 제약

    이 따르는 율격으로 받아들여졌다. 즉, 시행이 체주어에 의해 이등분되는

    운율상의 특성은 작가에게 사고를 짧은 병렬적 문장으로 구성할 것을 강요

    하며, 규칙적인 얌부스 리듬과 여성 쌍운과 남성 쌍운의 지속적 교차는 표

    현상의 제한을 가져온다. 브라이팅어(Johann Jakob Breitinger, 1701-1776)는

    알렉산드리너의 운율적 속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탄식한다.

  • 300 독일 운율학 개론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도록 허락하지 않는구나!

    여섯 마디로 나누어지고, 중간이 꺾이는 이 율격이.

    길이는 충분히 길지만 그 때문에 더욱 도움이 되지 못하고,

    발은 제대로 달려 있으나 그렇다고 더 빠르지도 못하다네.

    Zu sagen, was ich will, erlaubt die Versart nicht,

    Die in sechs Gliedern geht, und in der Mitte bricht;

    Am Cörper lang genug, behülflich desto minder;

    Mit Füßen wohl versehn, doch darum nicht geschwinder.

    (Breitinger: Critische Dichtkunst(1740), S. 455)

    막의 율격이 주로 알렉산드리너인데 반해, 음악이 동반되는 합창단가는

    율격과 연의 형식이 다양하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막과 합창단가의 우

    의적(寓意的) 관계와 운율 형식의 차이는 리브레토(Libretto)에서 서창(敍唱,

    Rezitativ)과 영창(詠唱, Arie)이 갖는 내용과 형식상의 상호 관계와 비교될

    수 있다.

    5.6. 계몽주의극 운율

    바로크의 예술극 작가들이 주로 교육을 받은 소수의 독자층을 겨냥

    하여 작품을 썼던 반면에, 계몽주의에서는 점차 대중을 상대로 한 공공

    극(das öffentliche Theater)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게 된다. 이에는 무엇보

    다도 계몽주의의 시대정신이 커다란 역할을 한다. 문학의 과제를 일차

    적으로 교화와 교육에 있다고 본 계몽주의 작가들에게 공공극은 그들

    의 도덕적․교육학적 프로그램을 위해 환영할만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방랑극단에 의해 이끌어진 공공극은 극본의 변조와 즉흥적 공연으로

    인해 예술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고, 특히 산문을 폭넓게 사용함으

    제5장 시극의 운율 301

    로써 알렉산드리너로 대사의 율격을 통일시킨 바로크극과 대조를 이루

    고 있었다. 고트세드(Johann Christoph Gottsched, 1700-1766)가 독일 연극의

    개혁을 위해 비판적 시학서 Versuch einer Critischen Dichtkunst vor die

    Deutschen를 내놓은 1730년경의 독일 연극은 일반적으로 문학 작품과 무

    대 공연 사이의 괴리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바로크 희곡과 1730년 이후

    프랑스 의고주의의 전형에 따른 새로운 극작술 사이의 중요한 작가인 바

    이제(Christian Weise, 1642-1708)는 학교극과 방랑극단의 무대를 연결시킴

    으로써 학교극에 새로운, 자연스러운 문체를 부여하고자 시도하였다. 바

    이제의 몇 안 되는 비극 작품들은 동시대의 사건들을 산문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바로크 희곡의 전형에서 벗어난다. 즉 바로크 시학이 비

    극 장르에 요구하는 ‘시간적․공간적 거리’와 비극의 이상적 문체로서 간

    주되어 온 운문 사용 원칙을 지키지 않고 있다. 희곡에서 산문을 사용한

    데 대해 바이제는 희곡 대사의 ‘자연성’을 내세워 일상생활에서도 사람들

    이 운문으로 대화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하였다.(Vorrede zur Ungleich und

    gleich gepaarten Liebes-Alliance, 1708), 바이제는 막의 끝부분이나 사건의

    절정에서 부분적으로 운문을 사용함으로써 운문을 극효과의 상승 수단으

    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희곡에서의 산문 사용을 비판하는 고트셰드는 희곡의 언어와

    작품의 질적 수준 사이에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고 보고, 희곡에서 운문을

    사용할 것을 요구하였다. 고트셰드가 희곡에서 운문의 사용을 요구한 것

    은 방랑 극단에 대한 그의 비판과도 연관이 있다. 그는 운문이 텍스트의

    즉흥적인 변조를 막고 연극 예술의 질을 고양시키는 데 기여한다고 보았

    다. 고트셰드의 ‘이성적’ 시학이 예술의 본질을 자연의 모방에 있다고 보

    고, 개연성에 대한 요구를 문학의 중심에 놓고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희곡에서의 운문 사용은 일견 이러한 개연성의 원칙에 어긋나는 것처럼

    보인다. 고트셰드는 작품이 시적으로 작성되었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호라

  • 302 독일 운율학 개론

    티우스의 충고에 따라 작품에서 운율과 운을 제거해야 한다고 하였다. 그

    리고 나서도 단어들이 시적 정신을 담고 있다면 예술적 요구가 충족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렇다고 고트셰드가 문학에서 운문을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그는 운문이 문학의 본질에 속하지는 않지만 문학이

    완전하기 위한 필수적인 부속물이라고 보았다. 고트셰드는 장르의 구분

    없이 희곡에서 운문을 사용할 것을 요구하면서 희곡의 운문은 일상의 언

    어와 거리가 크지 않도록 가벼워야 관객이 무대 위에서 묘사되고 있는

    사건의 개연성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그는 알렉산드리너가 자

    연성과 예술성의 요구를 동시에 충족시키는 운율이라고 보았다. 왜냐하면

    이 율격은 이미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의 운문임을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자연스러우며도 동시에 충분히 양식화되어 일상의

    언어 형태인 산문과 구별된다고 하였다. 희곡에서 오페라와 같이 다양한

    율격을 혼합할 경우에는 일상의 언어 형태와 거리가 너무 크게 되며, 따

    라서 부자연스럽다고 반대하였다.

    고트셰드파의 의고주의극은 합창단의 제거와 율격의 단일화에 의해 바

    로크 시대의 희곡과 구분된다. 율격의 단일화는 계몽주의 극이 교훈의 전

    달에 비중을 두고 있다는 데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즉 운율의 변

    화는 내용에 집중되어야 할 청중의 주의를 다른 쪽으로 돌릴 수 있기 때

    문에 기피되었다. 알렉산드리너의 운율적 특성이 바로크 시대의 전형적인

    정신적 태도를 표현하는 데 적합하였다면, 이 율격은 또한 계몽주의의 합

    리주의적 시대 정신에도 부합하는 율격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알렉산드

    리너는 강음과 약음의 규칙적 배열, 정해진 음절수, 중간 휴지에 의한 이

    분성, 연속적인 쌍운 등의 형식적 특성으로 인해 논리적인 사고의 기술에

    적합한 율격이기 때문이다.

    운율상으로 보면 초기 계몽주의 희곡에서는 율격의 규칙을 지키기 위

    제5장 시극의 운율 303

    한 무리수가 흔히 나타나는데, 예를 들면 모음의 첨가, 축약, 어미의 생략,

    어순의 도치, 불필요한 중복, 허사 등이 그것이다. 특히 의미가 유사한 단

    어의 반복이 빈번한 것은 계몽주의 극의 대표적 특질이 되고 있다. 예를

    들어 고트셰드의 카토 Cato에서는 “Tod und Gruft”, “Fried und Ruhe”,

    “Thron und Reich”, “Brust und Herz”, “Schmerz und Kummer”, “Not

    und Pein”, “stark und mächtig”, “Schand und Laster”, “Gesetz und

    Rechte”, “Trug und List”, “Hoffen und Verlangen” 등의 동의이어(同意異

    語, Tautologie)가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바로크 극에서 막이나 장의 전

    환부에서 시행을 분할시켰던 것처럼 계몽주의 극에서도 내용상 연속성이

    있는 두 장면을 연결고리운(Stichreim)으로 연결시키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계몽주의 극에서는 알렉산드리너가 갖는 운율상의 가

    능성이 충분히 이용되지 못하고 있으며, 운율이 단조로움을 보여준다. 시

    행의 분리가 드물고 개연성에 근거하여 격행 대화(隔行對話, Sticho-

    mythie)를 피하고 있으며, 인물의 심적 상태의 변화와 대화의 활기가 운율

    에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독백에서, 그리고 영적 체험의 기술에

    서 내용이 중요하였고 방법과 형식이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점

    에서 보면 계몽주의 극에서는 운율과 극 내용의 상관관계가 피상적이라

    고 할 수 있다.

    고트셰드파의 의고주의극에서 알렉산드리너 사용이 지니는 시극사적

    의미는 바로크적 요소의 수용이나 계승에 있다기 보다는 그때까지 주로

    문학극(Literaturdrama)에서 사용되었던 율격을 공공극에서 사용함으로써

    언어 형식면에서 문학과 실제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였다는 점이다.

    무운시행 Blankvers의 도입

    후기 계몽주의를 대표하는 레싱(Gotthold Ephraim Lessing, 1729-1781)도

    초기에는 극의 이론과 실제에서 고트셰드파의 전통을 좇아 알렉산드리

  • 304 독일 운율학 개론

    너를 희곡의 율격으로 선택하였으나 알렉산드리너에서 운율의 특성에

    의한 표현상의 제한을 본 후 극언어의 새로운 형식을 모색하였다. 그는

    사라 삼프손양 Miß Sara Sampson(1755) 이래 시민 비극(Bürgerliches

    Trauerspiel)에서 산문을 도입하였다. 당시 새로운 극 유형인 시민극에서

    산문을 사용한 것은 ‘높은’ 비극(hohe Tragödie)과의 장르적 차이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즉 극의 사건이 정치적․공적 영역에서 도덕적․

    사적 영역으로 옮겨졌으며, 경탄이 아니라 감동이라는 효과를 노리는

    새로운 유형의 극은 보편적이며 인간적인 사건을 관객의 일상 언어로

    표현할 것을 요구하였다. 왜냐하면 관객이 극의 주인공과 동질감을 갖

    는 것이 극의 효과를 위한 전제 조건이기 때문이었다. 레싱은 운문의

    리듬이 지니는 독자적인 법칙성이 자연스러운 언어 표현을 방해한다고

    보았다.(Hamburgische Dramaturgie, 8. Stück, 26. Mai 1767). 그렇다고 레싱

    이 희곡에서 운문보다 산문을 선호했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레싱은 운

    문과 산문이 각기 고유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그가 시민 비극

    에서 산문을 사용한 것은 “운율을 위해 오성과 강조를 희생할 것인가,

    아니면 후자를 위해 전자를 희생시킬 것인가라는 두 가지 악 중에서 가

    장 작은 악을 선택하는 것”이었다.(Hamburgische Dramaturgie, 19. Stück, 3.

    Juli 1767).

    레싱은 근본적으로 높은 양식의 비극은 운문으로 작성되어야 한다는 입

    장이었으며, 이 점에서 그는 전통의 연장선상에 있다. 단지 과장체와 기교

    적 어법을 강요하는 알렉산드리너를 대신할 수 있는 새로운 율격을 찾고

    자 하였다. 그는 처음에 자유리듬과 트리메타를 새로운 희곡 율격으로 고

    려했다가 현자 나탄 Nathan der Weise(1799)에서 무운시행으로 결정하게

    된다. 영국에서 유래하는 무운 시행은 자유로운 휴지와 빈번한 월행을 허

    용하는 5양격 얌부스 율격으로 엘리자베드 여왕 시대에 변화가 풍부한 희

    곡의 율격으로 자리 매김을 하였다. 초기에는 운율상의 규범 일탈로 간주

    제5장 시극의 운율 305

    되던 행두의 역강세 운각(Anaklasis), 시행 내부에서의 리듬의 불규칙성 등

    이 점차 예술적 표현 가치로 인정되어 운율상의 변화가 큰 율격으로 정착

    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무엇보다도 셰익스피어의 후기 작품들이 보여주는

    자유로운 운율 취급이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헤르더(Johann Gottfried Herder, 1744-1803)는 무운시행이 “강도(强度)와

    자유와 통합시키고 있어 우리 언어의 본질과 재산이 될” 운율이라고 예

    언하였으며, 호이슬러는 무운시행이 자유리듬과 더불어 “우리의 가장

    가벼운 형식”이라고 평가하였다. 그는 무운시행이 고유한 율격 도식을

    갖고 있기는 하지만 강음의 수, 강음과 약음의 규칙적 교차에 있어서

    운율적 허용(Lizenz)의 폭이 크고, 특히 빈번한 월행으로 인해 시행 단위

    의 폐쇄성이 파기되기 때문에 약강 음절의 배열이 규칙적으로 정돈된

    산문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무운시행은 이미 레싱 이전에도 희곡에

    서 간헐적인 모방이 있었기 때문에 전혀 새로운 율격이 아니었으며, 레

    싱의 관심은 일상 언어의 자연성을 어떻게 무운시행의 운율에 반영시

    킬 수 있는가에 있었다. 그리하여 레싱은 나탄에서 이제까지 시극에

    서 사용된 그 어떤 율격보다도 일상어의 자연성에 접근하는 율격을 창

    조하였다. 나탄의 시행은 종종 시각상의 운문이지 청각상으로는 산문

    과 구분이 힘든 경우가 많다. 일상어의 자연성과 운문의 예술성 사이의

    이상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나탄의 시행은 이후 독일 고전주의 희

    곡의 대표적인 율격으로 정착되면서 독일 시극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

    게 된다.

    5.7. 고전주의극의 운율

    레싱은 근본적으로 희곡에서의 운문사용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었다.

    레싱은 산문이 갖지 못하는 장점을 운문이 지니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 306 독일 운율학 개론

    작가가 운문을 사용할 때 산문을 사용할 때보다 표현상의 제한을 감수

    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그에게 운문은 작품의 소재와는 아무런 내적

    관계가 없는 단순한 외적 장식이었다. 이에 반해 괴테는 운문이 문학

    작품의 시적 가치를 결정짓는 본질적 요소라고 보았다. “모든 시적인

    것은 리듬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확신이었다. 문학은 현

    실과 구분되는 ‘시적 진실’을 지녀야 한다고 요구한 괴테에게 운문의

    리듬은 언어 표현을 고상하게 만드는 시적 고양 수단이었다. 왜냐하면

    운문은 산문보다 표현상으로 제거해야할 결함을 더욱 강하게 부각시키

    므로 결과적으로 작품 전체의 시적 수준을 상승시킨다는 것이 그의 견

    해였다.

    산문으로 된 이피게니 Iphigenie auf Tauris(1779)의 초고를 운문화하

    면서 괴테는 산문에 비해 운문이 양적으로 팽창되는 경향이 있음을 체

    험한다. 그러나 쉴러가 운문의 이러한 경향을 ‘불가피한 강제’라고 받아

    들인 것과는 달리, 괴테는 이것을 ‘시적인 정취’의 확실한 징후로 보았

    다. 그는 운문의 리듬이 산문이 갖는 표현상의 강렬함을 잠재우고 시문

    학에 필요한 평온을 부여함으로써 작품에 시적 분위기를 창조한다고

    보았으며, 운문이 지니는 이러한 효과를 위해 산문으로 작성된 파우스

    트 Faust의 특정 부분을 운문으로 수정하였다.

    “모든 시적인 것은 리듬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전제 하에 괴테는

    시문학에서 산문을 배제하려고 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운문과 산문

    이 지니는 서로 다른 표현 가치를 강조하고 있다. 파우스트의 음울한

    날 Trüber Tag 장면을 손쉽게 운문화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작품 속에서 유일한 산문 장면으로 남겨 놓은 것에서 볼 수 있듯이 산문

    은 그 “자연성과 강도(强度)”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체험의 직접성을

    표현하는데 운문보다 더 적합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견해였다.

    제5장 시극의 운율 307

    레싱의 나탄이 독일 시극에 무운시행을 도입하였다면 괴테의 이피

    게니는 예술성과 자연성을 조화롭게 결합시킨 운율 취급으로 무운시행

    에 고전주의적 합법성을 부여하고 고전주의 희곡의 율격으로 정착되게

    하였다. 레싱의 무운시행과 괴테의 무운시행은 동일한 율격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커다란 차이점이 있다. 레싱의 무운 시행이 단지 시각적으로

    만 인지될 수 있고, 청각적으로는 약음과 강음이 규칙적으로 교대하는 산

    문과 차이가 없는데 반해, 괴테의 무운시행은 행 전환부에서의 모음 충

    돌, 빈번한 격행 대화 등을 통해 대부분 시행의 단위가 분명하게 지켜지

    고 있다.

    이피게니 Iphigenie이래 고전주의 시극의 운율상 중요한 특징은 무운

    시행이 극 전체를 지배하는 가운데 율격의 파괴와 무운시행 이외의 다른

    율격들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율격의 파괴는 주로 강음의 수가

    5개보다 적은 짧은 시행으로 나타나는데 괴테는 이러한 운율상의 일탈이

    자의적인 것이 아니라 특별한 표현 가치를 지닌 의도적 구성임을 강조한

    다. 이피게니에서 정상보다 짧은 시행들은 극의 중요한 위치에서 운율

    의 급작스러운 변화를 통해 내용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무운시행 이외의 율격들은 독백에서와 같이 독립된 시행그룹으로 나타

    나는데 이 경우 역시 운율의 변화는 인물의 특별한 심리 상태를 두드러

    지게 하는 수단이 되고 있다.

    괴테와 마찬가지로 쉴러 역시 희곡의 언어 형식에 있어서 산문을 거쳐

    운문으로 전환하고 있는데 그에게 운문은 ‘높은’ 장르에 부합하는 언어

    형식이 되고 있다. 그는 돈카를로스 Don Carlos, Infant v. Spanien(1787)를

    처음에 가족 비극으로 구상하여 산문으로 작성했다가 정치․역사극으로

    구상하면서 운문으로 바꾸었으며, 운문이 이 작품에 보다 많은 위엄과 광

    채를 부여할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발렌슈타인 Wallenstein(1800)의 산

  • 308 독일 운율학 개론

    문 초고를 운문화하면서 쉴러는 작품의 소재와 형식 사이에는 밀접한 관

    계가 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쉴러에게 운문은 단순히 율격 도

    식에 맞춘 음절의 정돈이 아니라 현실을 시문학으로 상승시키는 시적 고

    양 수단이다. 괴테처럼 쉴러도 문학이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자명한 것으

    로 전제하고 있다. 현실의 완전한 모방을 추구하는 자는 문학이 “절대적

    으로 참”인 현실과 결코 일치할 수 없다는 심오한 진리를 파악하지 못하

    는 자라고 하였다. 문학은 역사성을 지닌 현실이 아니라 시적인 현실을

    지녀야 하며, 작가에게는 현실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어

    떻게 시적으로 승화시키는가가 중요하다. 이러한 시적 현실은 까다로운

    시적 작업을 통해 도달될 수 있으며, 운문의 리듬은 이러한 과정을 촉진

    시키는 수단이 된다. 왜냐하면 운문은 일상어의 형태인 산문과의 차이를

    통해 현실과의 거리를 나타내는 “시적 징후”로서 시적 현실에 더 접근하

    기 때문이다.

    무운시행은 쉴러의 극에서도 계속 극 대사의 중립적 시행으로 사용되

    고 있지만 쉴러의 희곡은 괴테의 무운시행극과 비교하여 율격의 종류와

    리듬의 다양성에 있어서 단일운율 구조(Monometrie)을 벗어나 낭만주의

    의 다운율 구조(Polymetrie)를 향한 경향을 보여준다. 특히 고대 그리스극

    을 모방하여 합창단의 재도입을 시도한 메시나의 신부 Die Braut von

    Messina(1803)에서는 트리메타와 혼합운율 등의 고대 운율뿐 아니라 낭만

    주의극의 특징적 요소인 각운 시행이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쉴러는 율격

    의 다양성을 극의 내용과 결합시켜, 합창단의 시행에서는 합창단의 기능

    변화에 따라 운율에 변화를 주고 있으며, 진지하고 장중한 분위기의 장면

    에서는 트리메타를 사용하여 무운시행의 환경으로부터 두드러지게 하거

    나 공포, 환희, 경악 등 감정상의 돌출을 운율상의 일탈을 통해 강조하며,

    긴 대사나 장과 막의 끝부분에서 다양한 형태의 각운을 사용함으로써 무

    제5장 시극의 운율 309

    운 시행의 단조로움에 변화를 주고 있다.

    5.8. 낭만주의극의 운율

    레싱의 시민극과 질풍노도 시대의 희곡에서 일시적으로 산문이 사용된

    이후 고전주의 희곡에서는 극의 언어가 다시 운문으로 돌아갔으나 낭만

    주의에 이르러서는 산문이 새로운 표현 가치를 지니고 다시 희곡의 언어

    로 등장하게 된다. 다양하고 광범위하게 외국 문학의 수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낭만주의에서는 운문과 산문이 질적인 차이 없이 한 작품 속에서

    동등한 자격을 지니고 사용된다. 낭만주의 극은 무운시행이 여전히 주류

    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산문과 운문의 혼용, 고대 운율의 사용, 악극 요

    소의 도입 등 형식 요소의 다양성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클라이스트(Heinrich von Kleist, 1777-1811)는 동시대인들이 문학 작품의

    외적인 형식에 과도하게 치중하면서 내용을 등한시하는 데 대해 불만을

    토로하였다. 그는 문학 작품에서 리듬이나 호음은 부차적이며, 작품 속에

    담긴 작가의 사상이 “문학의 본질이며 핵심”이라고 강조하였다. 그렇다고

    클라이스트가 형식을 무시한 것은 아니다. 그보다는 문학에서 형식과 내

    용을 분리해서 고찰함으로써 나무를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우(愚)를 경

    고하였다. 형식과 내용이 함께 문학 작품의 전체를 구성한다고 보는 점에

    서 클라이스트는 작품의 내용 못지 않게 형식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그는

    참된 형식은 작가의 생각을 가시적으로 드러나게 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는 “시행의 구조에 의미를, 단어의 울림에 우아함과 생명을” 부

    여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이를 통해 작가의 생각이 보다 잘 나타날 수 있

    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였다.

    클라이스트의 무운시행은 행두와 시행의 중간에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리듬의 변화, 문장 부호를 통한 속도의 조절, 불규칙한 휴지 등을 통해

  • 310 독일 운율학 개론

    그때 그 때의 인물의 심적 상황을 잘 표현하는 변화가 풍부한 운율이라

    는 점에서 레싱의 나탄시행과 유사하나 시행의 단위를 엄격하게 지키

    고 있다는 점에서는 이피게니가 보여주는 고전주의적 특징을 지닌다.

    클라이스트는 또한 슈로펜슈타인가 Die Familie Schroffenstein(1803)의

    초고인 고노레츠가 Die Familie Gonorez와 하일브론의 케트헨 Das

    Käthchen von Heilbronn(1810)에서 운문과 산문을 혼용하고 있는데, 운문

    과 산문의 배분은 셰익스피어의 예를 좇고 있다. 즉 고노레츠가에서는

    원칙적으로 귀족 계급의 구성원은 운문을, 하층계급의 구성원은 산문을

    사용하며, 귀족 계급의 구성원이 신분이 낮은 인물과 대화할 때에는 그

    들도 일시적으로 산문을 사용한다. 즉 인물의 사회적 신분의 차이가 언

    어 형식의 차이를 통해 표현되고 있으며, 언어 형식의 동화는 의사소통

    의 징표가 되고 있다. 이와는 달리 하일브론의 케트헨에서는 사건이

    완만하게 진행되는 부분에서는 산문이 사용되다가 긴장이 고조되는 부분

    에서는 운문으로 전환하는 등 운문과 산문의 배분이 사건의 진행과 밀접

    한 관계에 있다.

    운문과 산문의 배분에 있어서 가장 셰익스피어에 가까운 낭만주의 작

    가는 플라텐(August von Platen, 1796-1835)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동화극

    에서 다양한 종류의 율격을 산문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사회적 신분이

    높거나 진지한 성격의 인물들은 주로 운문을 사용하고, 신분이 낮은 인물

    들은 산문을 사용하며, 동화적이거나 비현실적인 내용에서는 주로 운문이,

    현실적인 내용이나 희극적인 내용에서는 주로 산문이 사용되고 있다. 전

    체적으로 산문은 현실에 가까운 영역의 언어 형식으로, 운문은 일상에서

    벗어난 비현실적이며 시적인 영역의 언어 형식으로 나타난다. 플라텐은

    무엇보다도 독일 희곡에 고대 운율을 재도입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

    독일 시극사에서 중요한 인물이 되고 있다. 그는 단조로운 무운시행 대

    신 변화가 풍부한 고대 트리메타를 극의 율격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하

    제5장 시극의 운율 311

    였다. 그는 무운시행이 너무 오랫동안 사용되었고, 사람들이 이 운율에

    익숙해져 있어 운문보다는 산문에 가깝다고 하였다. 플라텐의 의고주의

    는 고대 운율의 규칙을 좇는 엄격한 형식에 의해 특징지워진다. 심미주

    의적 방향의 이러한 형식 강조는 낭만주의의 형식 와해 경향에 대한 저

    항으로 볼 수 있다. 플라텐은 예술의 자율성을 주창하면서 낭만주의 극

    작가들이 현실의 사실적 반영이라는 구실 아래 희곡에서 비극과 희극의

    요소를 혼합시키는 것은 그들이 예술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있다는 것을

    말해줄 뿐이라고 하였다.(Ödipus, V. 1317). 플라텐에게 형식은 문학을 예

    술 작품으로 고양시키는 수단이며, 형식의 완성은 그 자체가 ‘미’였다.

    그는 전적으로 산문으로 쓰여 졌거나 서투른 운문으로 쓰여 진 희곡은

    그 작품에 천재성이 나타나 있다고 하더라도 배척되어야 한다고 주장하

    였다.

    플라텐은 자신의 아리스토파네스풍 희극인 낭만주의 외디푸스 Der

    romantische Ödipus(1829)에서 칼데론(Don Pedro Calderon de la Barca,

    1601-1681)의 전통에 따라 고대 율격과 낭만주의의 각운시행 등 다양한

    종류의 율격을 사용하고 있는데, 운율상의 일탈을 허용하지 않는 등 지

    나치게 형식을 강조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기는 하지만 고대의 율격을 엄

    격하게 도식을 지키면서 독일어로 모방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 주었으

    며, 무엇보다도 율격을 파로디의 수단으로 사용함으로써 시극사에서 새

    로운 전통을 수립하였다.

    19세기 중반 비인을 중심으로 발달하였으며 서민층을 주관객으로 하

    였던 민중극(Das Volksstück)은 운문과 산문의 혼용과 더불어 풍부한 음

    악 요소의 삽입이 특징적이다. 특히 생활의 지혜나 사회의 풍자 등을 내

    용으로 하는 민요풍의 노래가 빈번하게 삽입되고 있는 것은 관객의 구성

    과 관계가 있다. 라이문트(Ferdinand Raimund, 1790-1836)는 그의 낭비자

    Der Verschwender(1834)에서 운문과 표준 독일어를 귀족 계층의 언어로,

  • 312 독일 운율학 개론

    산문과 방언을 서민 계층의 언어로 사용함으로써 인물의 신분상의 차이

    를 언어 형식의 차이를 통해 나타내고 있으며, 네스트로이(Johann

    Nestroy, 1801-1862)는 유디트와 홀로페르네스 Judith und Holofernes

    (1849)에서 일상의 언어 형태인 산문에서 벗어나는 운문의 비자연성을

    트라베스티(Travestie)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5.9. 자연주의 이후 현대극에서의 운문 사용

    희곡에서의 운문 사용은 19세기 말 “자연에 충실한 묘사”를 예술의 원

    칙으로 내세운 자연주의에 이르러 새로운 국면을 맞이한다. “예술 = 자연

    - x”라는 도식을 내세운 홀츠(Arno Holz, 1863-1929)는 x를 가능한 한 작

    게 설정함으로써 예술 작품에서 예술가의 관여를 최소화하려고 하였으며,

    가르텔만(Henri Gartelmann)은 그의 자연주의 희곡론Dramatik(1892)에서

    희곡에서의 운문 사용을 다음과 같이 비유하고 있다.

    희곡에 운문을 사용하는 것은 독수리에게 공작의 깃을 입히는 것

    과 같아 외관을 보기 좋게 할지는 모르나 독수리의 비상력을 방

    해한다.

    Einem Drama Verse und Reime geben, heißt einen Sdler mit

    Pfaunenfedern ausstaffieren, die ihm zwar ein schönes Ansehen

    geben, ihm aber seine Flugkraft hemmen. (S. 141)

    극은 일상의 언어를 가능한 한 꾸밈없이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는 자연

    주의의 요구 하에 희곡에서 배척되었던 운문은 세기의 전환기에 나타나

    는 다양한 반자연주의 사조들에 의해 다시금 그 효력을 부여받게 되는데,

    언어 형식의 새로운 시도들은 무엇보다도 희곡의 주제가 인간의 내면으

    로 옮겨지고 있는 경향과 병행되어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러나 자연주의

    제5장 시극의 운율 313

    를 거친 후 희곡에서의 운문 사용은 더 이상 자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지

    지 않게 되었으며, 운문을 사용할 경우 일상어의 언어 형태인 산문과의

    거리가 의도적으로 부각되는 것이 자연주의 이후 희곡에서의 운문사용에

    서 나타나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베데킨트(Frank Wedekind, 1864-

    1918)는 니콜로왕 König Nicolo(1901)의 극중극에서 운문을 사용함으로써

    운문을 일상의 영역과 구분되는 예술 영역의 징표로 사용하였다.

    19세기 말~20세기 초 이래 운문은 특히 서정극(das lyrische Drama)과

    서사극(das epische Drama)의 상반된 두 희곡 유형에서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서정극은 독일 시극사에서 특별한 지위를 점하고 있는데, 이것은

    서정극이 희곡의 전래 장르 기준으로 분류될 수 없기 때문이다. 인물의

    행동 대신 과거에 대한 회상이나 몽상이, 인물의 대사 대신 명상적 독백

    이 지배적이다. 예를 들어 호프만스탈(Hugo von Hofmannsthal, 1874-1929)

    의 작은 세계극 Das kleine Welttheater(1897)은 희곡보다는 서정시에 더

    가깝다. 극 전체는 삶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갖는 다양한 형식의 운문으로

    된 독백의 집합인데, 호프만스탈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운율의 형식의미론

    적 특징을 고려하여 각 인물의 성격에 부합하는 운율을 부여하고 있다.

    즉 ‘소녀’는 크니텔 시행을, ‘유랑 악사’는 민요풍의 체비체이스연형을, ‘광

    인’은 불규칙한 리듬의 운율을 사용한다.

    서사극 이론을 내세운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는 언어의 양

    식화는 예술의 본질적 요소로서 언어의 자연성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고양시키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는 자연주의 극작가들이 희곡에서 운문을

    추방하였다고 해서 그들의 작품이 실제 생활의 언어를 모사하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그는 자연주의자들이 ‘자연성’을 내세워 극에서 운문을 배제

    하고 모든 것을 획일적이고 무미건조하고 특성 없는 산문으로 묘사함으

    로써 자연을 “자연 그대로 모사”하고자 한 그들의 원래 의도와는 정반대

    되는 결과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판한다. 브레히트는 소재와 형식에 관

    하여 Über Stoffe und Form (1929)라는 논문에서 현재의 끊임없이 변화하

  • 314 독일 운율학 개론

    는 세계는 얌부스의 규칙적인 운율과 전통적인 극형식으로 표현될 수

    없다고 하면서 새로운 극작술을 위한 새로운 언어적, 연극적 수단을 요

    구하였다. 그는 ‘게스투스’(Gestus)라는 개념을 앞세워 언어적 표현은 단

    어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 문장론적 구조, 어조, 리듬을 통해 화자의 내

    면 태도까지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하였다. 브레히트에 의하면 이

    러한 게스투스는 일차적으로 운문의 리듬적 구조를 통해 나타날 수 있

    으며, 강약이 규칙적으로 교대되는 운율은 불규칙한 리듬의 운율보다

    게스투스가 빈약하다. 변화하는 감정의 다양한 상태는 불규칙한 리듬으

    로만 제대로 표현될 수 있으며, 일상의 언어는 반어적이 아니고는 규칙

    적이고 매끄러운 리듬으로 포착될 수 없다고 하였다. 브레히트의 극에서

    는 자유리듬의 운문이 전래의 율격 및 산문과 함께 사용되고 있는데,

    산문은 일상생활의 단순한 묘사에, 자유리듬은 인식의 전달이나 의식의

    환기에, 그리고 전래의 율격은 보수적 가치의 파로디에 주로 사용되고

    있다.

    1945년 이후의 희곡에서는 산문이 지배적인 가운데 운문은 주로 해당

    부분의 내용을 강조하는 수단으로 그 기능이 제한되고 있다. 자유리듬과

    무운시행이 운문의 주 형식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냉전 시대의 정치․사

    회적 대립 상황이 극의 언어에도 반영되어 서방 독일어권 국가의 작가들

    이 주로 자유리듬의 운문을 사용한 반면, 동독의 작가들은 고전적 운율

    인 무운시행을 주로 사용한다. 구동독의 학스(Peter Hacks, 1928-2003)는

    현대극에서의 무운시행 사용에 대해 무운시행이 영국 엘리자베드여왕

    시대의 사회구조를 운율적으로 반영하고 있는 것처럼 전후 사회주의 국

    가의 사회 구조에 대한 암호가 되고 있다고 하였다.(Hacks, 1972:38ff.) 학스

    는 브레히트와 달리 무운시행을 파로디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반대

    하였다. 현대의 사회 상황은 브레히트가 처했던 사회의 상황과는 다르기

    때문에 변화된 사회 상황에 맞추어 극에서의 사회 포착 방법도 달라져야

    제5장 시극의 운율 315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귄터 아이히(Günter Eich, 1907-1972), 막스 프리쉬(Max Frisch, 1911-

    1991), 뒤렌마트(Friedrich Dürrenmatt, 1921-1990) 등은 그들의 작품에 브레

    히트적 의미에서 게스투스가 부여된 자유리듬의 대사를 삽입하고 있으

    며, 귄터 그라스(Günter Grass, geb. 1927)는 서민들 반란을 연습하다 Der

    Plebejer proben den Aufstand(1966)에서 무운시행을 사용함으로써 구동독

    의 무운시행으로 된 정치극을 파로디하였다. 호흐후트(Rolf Hochhuth,

    geb. 1931)의 기록극(dokumentarisches Theater)들에서는 무운 시행에 접근

    하는 운문들이 소재의 현실성이 주는 강렬함을 운문의 리듬을 통해 상

    쇄시키는 기능을 지닌다. 전후 독일 시극에서 주목할만한 작품은 페터

    바이스(Peter Weiss, 1916-1982)의 총체극 마라/사드 Die Verfolgung und

    Ermordung Jean-Paul Marats, dargestellt durch die Schauspielgruppe des

    Hospizes zu Charenton unter Anleitung des Herrn de Sade(1964)이다. 바이

    스는 크니텔 시행과 자유리듬을 주된 운율로 사용하면서 쏭과 합창을

    빈번하게 삽입하고 있는데, 형식의 다양성은 사건을 조명하는 각도의 다

    양성과 연관이 있다. 율격의 배분은 극중 인물의 역할과 극의 구조에 따

    라 이루어지고 있는데, 크니텔 시행은 서곡과 에필로그의 율격으로, 자유

    리듬은 인물의 대사에서 극이 다루고 있는 역사적 소재의 현실성과 인식

    의 절실함을 표현할 때 사용되고 있다.

    현대극에서는 극의 언어가 지니는 예술성에 대한 긍정에도 불구하고

    운문이 더 이상 희곡의 자명한 언어 형태가 아니다. 어떤 형태의 운문이

    든 극에서 운문이 사용될 경우에는 작가의 특정 의도에 대한 질문이 제

    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