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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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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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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Page 2: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장 1

1

오실 이는 이런 이였다 세례요한이 본 예수

‘오실 그이’

주가 그리스도 되시다예수, 그는 ‘주’요 ‘그리스도’

초림은 ‘그리스도’로, 그러나 재림은

이제 주린 자는주린 자에게 진정한 복이란

지금은 은혜 받을(부자 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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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배부른 자여우리의 부요를 바라시는 주님

‘심판주’ 보다는 먼저 ‘그리스도’로

주라 그리하면 줄 것이니더 부자가 되는 법

그냥 주라

우리가 부요하기를 바라시는 까닭

2

Page 4: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3

제 Ⅰ 편

“오실 이는 이런 이였다”

본 문 : 누가복음 제 7장 제 16 ~ 19절

16.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큰 선지자

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

아보셨다 하더라

17. 예수께 대한 이 소문이 온 유대와 사방에 두루 퍼지니라

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고하니

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가로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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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이 본 예수

요단강에서 예수를 만난 세례요한,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심판주’라는

것을 확인하여 증거 했으나 소문으로 의아해한다. 그가 잘못 본 것이었을까?

예수님은 마리아에게서 나셨으며, 세례요한은 마리아의 친족인 엘

리사벳에게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과 세례요한, 이 두 사람은 친척이면서도 같은 한 해에 태어

났으므로, 서로 잘 아는 사이였습니다.

그럼에도 장성한 후 두 사람의 관계를 보면, 친척지간의 동갑내기가

아닌 듯이 보입니다.

서로가 생판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예수께서는 광야로 시험 받으러 가시기 사오십일 전쯤, 요단강으로

가셨습니다.

세례를 받고자 기다리는 무리 가운데서 예수를 본 세례요한은, “하

나님의 아들”(요1:34), “하나님의 어린 양”(요1:36)이라고 증거 합

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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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그렇게 말했던 그였으나 누가복음 7장에서는, “오실 그이가 당

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본문19절) 묻고 있습

니다.

참 이상하지 않습니까?

여러분도 이상히 여길 줄로 압니다.

세례요한은 왜 그런 질문을 했을까요?

이 궁금증부터 풀어드리겠습니다.

요단강에서 예수님을 본 세례요한이, ‘하나님의 아들’로 선언할 수

있었던 데는 그럴만한 원인이 있었습니다.

그 이유를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세례를 주라 하

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요1:33)라

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라고 했다하여, 예수님과 세례요한이 서

로 초면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같은 시기에 태어나 친족 간으로 30여년을 지내는 동안, 당연히 양

쪽 집안끼리 왕래도 잦았을 것이니, 서로 모를 리가 없었을 것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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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이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다’고 했던 것은, 예수가 하나님

의 아들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을 몰랐다는 말입니다.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였노라” (요1:34)

“내가 보고”라는 말은, ‘성령이 예수님 위에 머물러있는 것을 보고’라

는 뜻입니다.

세례요한은 성령이 내려와 예수님 위에 임하신 광경을 보는 순간,

‘이분이야말로 하나님의 아들이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요1:33)

그리고 이를 증거 하였습니다. (34절)

확신할만한 분명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들은 대로, 명받은 대로 했던 것입니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하여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는 겨우 물로서 회개케 하는 세례를 주는 자에 불과하지만, 내 뒤

에 오시는 그분은 나와 달라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라”(눅

3:16)고, 예수님과 자신을 제대로 구분했습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그분은, 장차 불로 심판하실 분이라는 것

도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으로 알 수 있었습니까?

예수님이 하신 말씀으로 확신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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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눅3:17b)

세례요한은 이 말씀과 연관해, 요단강으로 오는 바리새인과 사두개

인을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

라 하더냐”(마3:7b)고 쏘아붙였습니다.

이 말을 다시 풀어보겠습니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이가 나타나, 알곡과 쭉정이를 가르실 것

이라. 그때에 바리새인과 사두개인 너희들에게는 진노가 임할 것이

다. 너희 중 누구도 그 진노에서 피할 자 없을 것이라”

그는 예수님의 ‘불로 심판하실 역할’에다가 더 무게를 두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이 모든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물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거니와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나는 그 신들메를 풀

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

이요” (눅3:16)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눅3:17)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마3:7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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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9: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세례요한은 예수님에게 임했던 성령을, ‘불의 권능’으로 보았습니

다.

‘독생자의 영광과 권위를 가지고 세상에 나타나실 심판주’로 인식하

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불과 몇 날이 안 되어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 그는,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소문인즉 그가 생각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 영광과 권위의 심판주 사역을 하고 계

신 것이 아니라, 불쌍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구원해주고 계시다는 소

문이었습니다.

백성들은 “큰 선지자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셨다 하고 또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눅7:16b)며 예수님을 평가하고 있었습니다.

이 소문은 온 지역 모든 사람들에게 퍼지고 있었습니다.

세례요한의 예상은 완전 빗나갔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소문날 줄 알았습니다.

엄청 환영받으실 줄 알았습니다.

또한 “불로 심판하신다.”는 평가를 받으실 줄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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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그런데』예수를 만나본 백성들의 말이, “하나님께서 자기

(불쌍한) 백성을 돌아보셨다”는 것에 그치고 있었습니다. (눅7:16)

‘영광’이나 ‘심판’이란 말은 전혀 들려오지 않았습니다.

예수에 대한 이런 평가에, 세례요한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소문을 들은 세례요한은 생각합니다.

‘어쩌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닐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기의 제자 둘을 예수께 보냅니다.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는, 오실 그이입니까?”

다른 말로 하면 “만일 당신이 내가 아는 대로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

라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는 물음입니다.

이렇게 질문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세례요한의 입장이었습니

다.

그의 마음은 매우 답답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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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실 그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된 이스라엘은, 이사야가 예언했던 ‘오실 그이’를 더욱

간절히 기다리게 된다. 허나 그분이 하나님의 아들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의 시대 상황과, 이스라엘 백성들의 정서를 짐

작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애타게 기다리는 이가 있었습니다.

심판할 자를 기다렸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자기들이 처해있는 어려운 환경을 면하게 해줄, 구원자를 기다렸던

것입니다.

즉 예언서의 ‘구세주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사실은 성경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동네 사람들로부터 전혀 인정받지 못하는 한 여인이, 수가성에 살

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우물가에서 만난 예수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요4:25)

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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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이 말에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소원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습니다.

평소 그녀는 자신의 생활을 부끄럽게 여긴 나머지, 자랑스럽게 나다

니지도 못하면서 오직 메시아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을 뿐입니

다.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를 기다리고 있는데, 그가 오시면 우

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을 보면 알

수가 있습니다.

수가성 여인이 기다리고 있는 ‘그리스도’와, 세례요한이 ‘오실 그

이’라고 말한 분은, 같은 한 분이었던 것입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만나자,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요1:45)고

말합니다.

‘여러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이’라고 말한 것을 보아서도, 당시 이스

라엘 백성들은 ‘오실 그이’를 기다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오실 줄

로 확신하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막연하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메시아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요4:25a)라고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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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한 가지 더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

고 있는 ‘오실 그이’는, 반드시 하나님의 아들이어야만 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이’가 하나님의 아들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는 말입니다.

세례요한은 한 명(命)을 받은바 있었습니다.

“성령이 머리에 임하여 머물러 있는 사람을 보거든, 그분이 성령으

로 세례를 주실 하나님의 아들이니라. 너는 이를 증거 하라”

얼마 후 이 같은 상황을 목격한 세례요한은, 명받은 그대로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거 했습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예수에 대한 소문들을 접수해보니, 자기가 증거 했

던 내용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백성들은 예수님을 평가하기를, ‘큰 선지자 같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보니 예수님은 실제로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던, 바로 그런

일들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를 확인한 세례요한은, 의아해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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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나님의 아들임이 증거 되었음에도 불

구하고, 세례요한은 지금껏 자기들이 기다려오던 ‘오실 그이’가 예

수님이라고는 생각지를 못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아들’과 ‘오실 그이’가 동일인물이라는 사실

을,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과, 백성들이 기다리는 ‘큰 선지자’ 즉 백성들에게 그

리스도의 역할을 해주실 이를, 별개의 인물로 여겼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제자들을 예수께 보내어 여쭤보았던 것이 아닙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다리던 ‘오실 그이’는 어떤 분이셨습니까?

그들은 무엇을 근거로 그토록 철저하게 기다리고 있었습니까?

‘오실 그이’가 자기들에게 구원을 베풀 것이라는 그 믿음의 근거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이냐는 말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이사야선지의 예언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

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

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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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 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61:1~3)

예언의 요점인즉,

“먼 후일 억압당하며 병들고 가난하여 공포와 두려움 속에 살게 되

더라도 염려하지 말라. 내가 너희를 구출할 한 사람을 보낼 것이

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예수에게 주의

성령으로 기름을 부으셨습니다.

“내게 기름을 부으사”(사61:1)라는 말은, ‘그리스도 되게 하셨다’는 뜻

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령이 내게 기름 부어 그리스도가 되게 하사’, 『성령

의 기름을 부어 그리스도가 되게 하사』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보게 함을, 갇힌 자에게 놓임을, 눌린 자를 자유케 하는,

“여호와의 은혜의 해를 전파할” 그리스도로 나타내셨다는 말입니다.

이사야가 전했던 이 예언을, 이스라엘은 잘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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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 속의 주인공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당시 이스라엘의 형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오실 그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난한 자들이었습니다.

포로 된 자들이었습니다.

로마와 헤롯에게 눌린 자들이었습니다.

앞이 캄캄하여 보지 못하는 눈먼 자들이었습니다.

그야말로 자유가 필요한 자들이었습니다.

자연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복된 소식을 사모하고 있었습니

다.

구원할 자에 대한 간절함이, 최고 절정에 달해 있었던 것입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예언하신바 바로 그 사람, 곧 어려운 자들

에게 구원을 베푸실 그분, 백성들이 고대하고 있는 ‘오실 그이’를 보

내주셨습니다.

오신 ‘그이’는 백성들의 소문처럼, ‘큰 선지자’의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겨 돌아보셨던 것입니다.

이사야서에 예언된 ‘큰 선지자가 할 일’, 곧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불쌍히 여겨 돌아보신다.’는 바로 그런 일을, 예수님이 하신다는 소

문이 백성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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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7: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이사야서가 예언한 그분이 오셨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아주 간절히 기다리던 그 시점에서 말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살펴본 백성들은 ‘이만한 능력을 베풀 수 있

는 분이라면, 이사야가 예언했던 바로 ’그이‘가 아니겠는가?’ 생각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따라서 그 소문은 점점 커져만

갔습니다.

예수님이 나타나 우선적으로 행하신 일은, 세례요한이 생각했던바

‘불의 심판’이 아니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에 기록된 그런 일들이었습니다.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던 바로 그런 일이었습니다.

이 소문을 듣게 된 세례요한은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는 당초 예수님을,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과 권위로 오신 심판

주(審判主)’로 알았기 때문입니다.

‘오실 그이’의 일을 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어찌 예수님께 물어보지 않을 수 있었겠습니까?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이 질문으로 당시 세례요한의 마음을 헤아려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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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8: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주’와 그리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행2:36b)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실 때부터 이름을 주셨으니, “아들을 낳

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마1:21a)하셨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의 뜻까지 설명해주셨습니다.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마1:21b)

‘예수’라는 이름을 부여받았다는 것 자체가, 그리스도의 역할을 할

직임자, 『예수라는 이름은 그리스도의 역할을 할 직임자』라는 의

미를 가지고 있다는 그런 말입니다.

예수로 말미암아 구원 받고, 예수로 말미암아 살게 된 우리는, ‘그리

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떻게 해야 부자가 될 수 있으며, 또 어떻게 해

야 계속 부자로 살아갈 수 있는지, 다음 편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영상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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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19: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이스라엘이 기다린 ‘그이’는, 가난한 자에게 부요를, 눌린 자에게 자

유를, 병든 자에게 나음을 주시는, 바로 그런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바로 그 같은 일을 하시매, 세례요한은 참

으로 의아스러워 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를 ‘주’이시면서 ‘그리

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 주여!

이번 시리즈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음으로 가난에서 부요

를, 눌림에서 자유를, 병듦에서 나음을 얻게 하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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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0: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구약의 선지자들을 통해, 메시아가 어떤 분

인가를 들어 이미 알고 있었으며, 그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

습니다만, 그런데 이해는 달랐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구세주 예수란,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허나 그들이 기다린 예수는, 가난과 질병, 억압과 포로 됨에서 자유

를 줄 구세주였습니다.

오늘의 우리도 ‘예수 이름’에 대한 기대가 그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갈렙 목사님은 우리에게 신랄한 질문을 던지시고, 신앙을 점검하도

록 권고하고 계십니다.

19

Page 21: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장 2

20

제 Ⅱ 편

“주가 그리스도 되시다”

본 문 : 누가복음 제 4장 제 17 ~ 21절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 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 이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

Page 22: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예수, 그는 ‘주’요 ‘그리스도’

예수는 이사야 예언의 ‘오실 그이’가 당신이심을 나사렛회당에서도, 수가성

여인에게도 드러내신다. 하나님은 예수를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

이스라엘이 바라며 기다리고 있던 ‘오실 그이’, 곧 ‘그리스도’가 혹

시 세례요한이 아닐까 하여, 백성들은 심중에 의논했습니다. (눅

3:15)

이에 요한은 단호하게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고 밝힙니다.

그리고는 자기 제자 둘을 예수님께 보내어 여쭈어보게 합니다.

“당신이 오실 그이입니까? 아니면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려야 합니

까?” (눅7:19)

이 질문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자신은 그리스도가 아니라, 다만 회개케 하는 자라는 것.

둘째,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백성들이 기다리던 ‘그이’일 수도 있지

만,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세례요한은 자신의 신분과 역할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지만, 예수

님에 대하여는 긴가민가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질문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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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3: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본문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나사렛에 이르렀을 때는 마침 안식일이었습니다.

당신의 규례에 따라 회당에 들어가 성경을 펼치셨습니다. (눅4:16)

그때 보조자 한 사람이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예수께 드리거늘, 예

수님은 한 곳을 찾아 읽으십니다. (본문17절)

그것이 이사야서 61장 1절로 3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

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신 것이라. 이는 나로 하여금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며, 눈먼 자를 다시 보게 하고, 눌린 자에게 자유를 주는,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이사야선지의 이 예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랫동안 바라고 기다

리던 ‘메시아’, 곧 ‘그리스도’에 대한 내용이었습니다.

이 예언에 따라 와서, 이 예언대로 역사할, 이 예언의 주인공을 기다

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바로 ‘오실 그이’ 예수는, 책(이사야서)을 읽은 다음 맡은 자에게 다

시 주시고 말씀하십니다. (본문20절)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본문21절b)

무슨 말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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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4: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지금 내가 읽은 이 예언서에서 보내 주시겠다고 한 그 사람, 그래서

너희가 지금까지 간절히 기다리는 ‘그이’, 바로 『그이가 오늘날 너

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그토록 바라던 예언이, 오늘날 이루어졌다는 말씀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너희가 기다리는 오실 그이가 바로 나’라는 것입니

다.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을 만나서도, 자신이 ‘메시아’ ‘그리스도’라고

밝히셨습니다.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다”고 하셨습니다.

‘오실 그이’가 예수님 자신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수가성 여인에게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요4:26b)고 분

명히 하셨습니다.

세례요한이나 수가성 여인, 아니 이스라엘 온 백성들이 기다리고 있

는바 ‘메시아’, ‘그리스도’라 하는 ‘그이’가, 바로 예수 당신이라고 하

셨던 것입니다.

빌립도 나다나엘에게 말합니다.

23

Page 25: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모세가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 그래서 우리가 기

다리고 있는 그이”를 만났다고 했습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이사야선지를 통하여 예언하신 바로 그 주인공이, “요셉의 아들 나사

렛 예수”(요1:45b)라고 소개했습니다.

“내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를 만나보니, 바로 그분이 선지자 이

사야를 통하여 예언하신 그 주인공이더라.”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 그렇게 기다려오던 ‘오실 이 그리스도’가, 바로 나사렛

예수였습니다.

사도행전에도 기록되어있습니다.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행2:36)

하나님이 예수를 ‘주’와 그리고 ‘그리스도’가 되게 하신 것을, 하나님

의 백성들은 정녕 알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무엇을 짐작할 수 있습니까?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가 동일인, 『하

나님의 아들과 그리스도는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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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요한이 평가했던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일 뿐 그리스

도는 딴 사람인 줄 알았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물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주’일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까지 되게 하셨

습니다.

이를 “정녕 알찌니”, 『정녕 알찌니』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부음을 받은 직임’이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말입니다.

어떤 기름을 받았다는 것입니까?

불의 심판자로서, 칼날 같은 재판의 능력과 권세를 받았다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부요를, 눌린 자에게는 자유를, 병든 자에게는 나

음을 줄 수 있는, 그런 기름 부음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불쌍한 자들을 돌아보는 직임이, 바로 ‘그리스도’입니다.

사랑의 능력을 기름부음 받은 자를, ‘그리스도’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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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의 아들’ 예수야말로, 구원의 능력의 기

름부음을 받은 ‘그리스도’이심이 분명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 아들을 ‘예수’라고 이름 하셨으며, ‘그

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역할까지 하도록 하셨다는 말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주’와, 그리고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따라서 세례요한의 증거도 맞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만나본 백성들이 소문도 맞는다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려 하자, 베드로가 만류합니다.

“아니, 주님이 어떻게 저희의 발을 씻기신단 말입니까?” (요13:6)

무엇을 의미합니까?

발 씻기는 일은 주인이 종에게 하실 일이 아니라, 종이 주인에게 할

일이라는 뜻입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러기에 “너희 말이 옳도다”고 대응하십니다.

“너희가 나를 주라 또는 선생이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

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

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요13: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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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와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다’는 것은, ‘나는 주(主)이지

만 ’주‘의 역할만 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역할도 하러 왔

다’는 그런 뜻으로 하신 말씀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두 역할, ‘주’와 ‘그리스도’ 가운데서 ‘주’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부분만 보았습니다.

아들 부분 중에서도 독생자의 영광과 권세를 발휘할, 불의 심판을

하실 분이라는데 비중을 두었습니다.

요단강에서의 성령의 역사를, 불의 심판으로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세례요한의 견해와 전혀 다르게 역사하셨습니

다.

‘주’이면서도, 『주이면서도 섬김의 종』의 역할도 하셨습니다.

‘주’임에도 불구하고 고침을 주셨으며, 부요를 주셨고, 자유를 주셨

습니다.

섬길 수 있는 능력의 기름부음, 사랑의 기름부음을 받으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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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29: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초림은 ‘그리스도’로, 그러나 재림은

초림예수는 그리스도로 긍휼함을 베푸시나, 재림예수는 인자의 영광으로 보

좌에 앉아 당당히 심판하실 것이니, 그때는 무례히 대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님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한동안 머리 위에 임하셨던

성령은, 세례요한이 생각했던 것처럼 독생자의 영광과, 심판주의 권

위만 나타낸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의 능력보다는 오히려 ‘그리스도’의 역할을 감당할, 사랑의 은사

로 나타난 성령이셨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된 베드로는 고백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마16:16)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또 다른 이름이, ‘그리스도’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주는 그리스도일 뿐만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아들(세례요한이

말한 것처럼)이십니다.”라고 고백하고 있지 않습니까?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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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주이면서 또한 그리스도라는, 두 가지 역할을 다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너에게 복이 있도다. 이를 알게 하신 이는 네 혈육

도, 세상의 지식도 아니고,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 (17절)

주님은 베드로의 고백을 기뻐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그를 축복하셨습니다.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18절)

교회는 베드로의 지식, 베드로의 고백 위에 세워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의 일원이 되어 ‘예수, 오직 예수’ 합니다만, 그 예수는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이십니까?

‘심판주’로서의 예수십니까?

아니면 그저 은혜 베푸시는 ‘그리스도적’인 예수십니까?

이 둘 중 어느 한쪽에만 치우친다면, 온전한 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건강한 교회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베드로가 되어야 합니다.

‘주는 그리스도이실 뿐만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

앙이, 우리들 교회의 반석이 되어야만 합니다.

지금 우리는 세상 권세에 눌려 지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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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1: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병들어서, 가난해서, 포로가 되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예수를 만나게 되면, 그분의 긍휼함으로 자유를 얻

고, 부요를 얻으며, 행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의 능력을 가지고 계시며, 또한 ‘예수’라는 이름

으로 역할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기름 부음’으로 능력을 베풀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로 ‘그리스도인’이 된 우리는, 그 은혜로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초림하신 주님은 지금까지 ‘그리스도 예수’의 역할을 하고 계십니

다.

그러나 다시 오실 때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 곧 ‘인자의 영

광’을 발휘하며 왕으로 나타나실 것입니다.

재림하실 예수님도 지금 우리가 믿고 섬기는 같은 분이지만, 다시

오실 그때는 초림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오실 것입니다. (마

25:31)

그때에는 그리스도 예수 시대에서 대하듯, “예수님. 예수님, 어쩌고

저쩌고 …” 무례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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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2: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영광의 예수’로 천사들과 함께 당당히 나타나실 것이기 때문입니

다.

그때는 영광의 보좌에 당당히 앉아계시기에, 감히 그럴 수도 없을

것입니다. (마25:31)

인자의 날 예수님은 모든 민족을 당신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

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것같이” 분별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32절)

백성들을 심판하실 때에 오른편 왼편으로 나누어, 뜨거운 불에 던질

자는 던지고, 하나님나라로 인도할 자는 인도해 들이실 것입니다.

그때는 구원의 시대에서 하셨던 그리스도 역할을, 다시 하시지 않는

다는 의미입니다.

이 점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허다한 사람들은, 그리스도 예수로 나음과 자유를 얻었다

하여, 예수님을 마치 친구나 형제처럼 가볍게 문안합니다.

무례하게 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날’에는 그럴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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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긍휼하심을 받아내는 일은 천국 문 앞까지, 『주님의 불쌍히

여기심은 천국 문 앞까지』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을, 영원토록 긍휼을 베푸시는 ‘그리스도’로만 알아서

는 안 됩니다.

그런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구원의 역사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인자의 날’ 그때에는, 세례요한의 말대로 예수께서 불로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날에는 예수께서 ‘그리스도’로 우리 곁에 계시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 ‘독생자의 영광을 가진 심판주’, 『영광의 심판

주』로 보좌에 앉으셔서 우리를 심판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런 하나님의 아들, 곧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이 되어

야 할 것입니다.

거듭 말씀드리거니와 주께서 다시 오실 그때에는, 영광스러운 독생

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예수께서 친히 “인자의 영광을 얻을 때가 왔도다”(요12:23b)라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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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4: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이어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

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12:24b)고 하셨습니다.

무엇을 전하려고 이 말씀을 연결하셨던 것일까요?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너희가 기다리는바 오실 이의 역할을, 그리스도 예수로 다 해준 다

음에는, 그때까지의 내가 아닐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너희를 위하여 죽고 난 다음에는, 세례요한이 말한바 하나님의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고, 심판주로 나타날 것이라”고, 성경은 정리

해주고 있습니다.

초림 예수의 ‘그리스도 시기’는, 영원히 계속되지 않을 것입니다.

언제인가는 끝이 납니다.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그리스도 예수’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아직은 심판받는 시대가 아니란 말입니다.

지금 우리는 은혜와 복 받을 기회를 붙잡고 있습니다.

말씀으로 알 수 있는 것은, 오늘의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

아 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기회를 놓치지 말고, 이어지는 말씀들로 [부자가 되는 법]을 발견

하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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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5: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부자로서, 계속 부자로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발견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아직 은혜의 기회가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기 바랍니다.

본 시리즈 제1편과 제2편은 [부자가 되는 법/부자로 사는 법]의 서

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자가 되며, 계속 부자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은, 참으로 중

요한 지혜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으로 영적인 진리의 정보를 얻어서, 이후로는 불쌍한

자가 아니라 부요하고 행복한 자로 사시기를, 축원하며 서론을 마치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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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6: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새로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에는 제대로 모르면서 막연히 외웠던 성경을, 이제는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주는 그리스도시요, 그러실 뿐만 아니라 살아계

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고백하기를 원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안 저희에게 자유를 주시옵소서.

부요를 주시옵소서.

행복을 주시옵소서.

받은바 부요와 행복과 건강을 지속적으로 가지게 해주실 뿐만 아니

라, 훗날 예수께서 하나님 아들의 영광의 모습으로 나타날 때에도,

실패하지 않기를 원하오니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구하여 기도 올렸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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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7: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구세주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神)인 동시에, 그리스도(人子)이

십니다.

교회는 이 두 가지 이름의 특성 위에 세워진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 곧 죄인을 구원하러 오신 “초림 예수”의 능

력과, 죄인을 심판하러 오실 “재림 예수”의 권능이, 함께 역사

하실 것을 믿는 신앙고백 위에 세워진 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기독인이라면 은혜만을 구할 것이 아니라, 영광

의 주로 오실 예수를 영접할 만한 성숙한 신부의 준비가 되어야

합니다.

갈렙 목사님은 믿는 우리에게, 항상 은혜만을 구하며 기적을 사

모하는 어린 아이가 되지 말고, 주의 영광에 참예할 장성한 자

로 성장하기를 권하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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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38: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장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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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Ⅲ 편

“이제 주린 자는”

본 문 : 누가복음 제 6 장 제 20 ~ 23절

20.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21.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

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22.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23.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저희 조상

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Page 39: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주린 자에게 진정한 복이란

마태는 예수님이 산에서 하신 말씀을 8가지로 세분해 기록했다. 그 내용이

‘산상보훈’, ‘8복음’이라면 예수가 그리스도 되어 오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나사렛의 한 회당에 들어가 이사야의 글을 읽으십니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보게 함을, 악령에 눌린 자를 자유케 하

려 하심이라”(사61:1~3)는 구절을 보신 후 말씀하십니다.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본문21절)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눅4:21)

예수께서는 질병과 고통과 악귀 들린 자, 소경을 고쳐주셨습니다.

이사야서에 기록된 그대로를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이사야서에 예언된 ‘오실 그이’의 사역을, 예수님이 친히 하신다는

소문이 세례요한에게 들려옵니다.

요한은 예수께 사람을 보내어 물어봅니다.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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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0: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다른 말로 바꾸면,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는바 오실 그이입니까?”라

고 여쭈어보았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대답하십니다.

“너희가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가서 고하되, 소경이 보며 앉은뱅

이가 걸으며 문둥이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머거리가 들으며 죽은 자

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들에게 복음이 전파된다고 하라”

무슨 말씀입니까?

“그렇다. 너희가 물은바 오실 그이가 바로 나이니라. 수가성 여인이

기다리는 그리스도가 나이니라”

다시 말하면 저들이 기다리던 ‘그이’, 즉 자기네 인생을 확 바꿔줄

이사야서 61장 1절로서 3절에 기록된 예언의 주인공이, 예수 당신

이라는 말씀입니다.

사실인즉 예수님은, 이 예언의 말씀 그대로 역사하고 계셨습니다.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마9:13)

예수님은 가난한 자, 죄인들을 위하여 일하셨습니다.

왜였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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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이 기다리고 있던 ‘그이’, 『그이』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불행을 바꿔주기 위하여 오셨기 때문입니다.

‘제사보다는 긍휼을 원하고, 의인보다는 죄인을 부르러 왔다’고 하

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는 예언서에 기록된바 그대로, 『그리스도를 하

고 계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는 ‘이제 주린 자’, 말하자면 지금 주린 상태에 있는 자에

게는 복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곧 배부를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제 우는 자’에게도 복이 있나니, 곧 웃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본문21절)

이는 ‘지금 우는 자’, ‘지금 주린 자’를 만나러 오셨다는 뜻입니다.

그때에 부요한 자, 그때에 웃고 있는 자들은 이미 만족해있는 자들

로, 예수께서 굳이 만나야할 진정한 대상이 아니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 메시지는 제자 마태도 기록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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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마5:3~12)

마태는 예수께서 산에서 하신 말씀을, 8가지로 세분하여 구체적으

로 기록했습니다.

이 말씀을 우리는 ‘산상 보훈’(寶訓), 곧 ‘산에서 가르친 보배로운 교

훈’이라 지칭하고 있습니다.

이 여덟 가지 경우를 ‘팔복’, 즉 ‘복을 받을 수 있는 여덟 가지 조

건’이라고도 합니다.

과연 그렇게 말해도 될까요?

저 갈렙은 그렇게 생각하지를 않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만약 주께서 산에서 말씀하신 이 여덟 가지가 복 받을 조건이 된다

든지, 그 자체가 ‘팔복’이 된다면, ‘이제 주린 자’, ‘이제 우는 자’에게

‘오실 그이’가 무슨 의미겠습니까?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기다릴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이미 8복이라는 것이 있어, 그 조건만 구비된다면 바로 복으로 연결

될 터인데, 기다릴 것이 뭐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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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43: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다시 묻겠습니다.

만일 ‘8복’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다면, 무엇 때문에 독생자에게 기름

을 부어 세상에 보내셨겠습니까?

기름을 부으신 것은, ‘주’일뿐만 아니라 ‘주’를 ‘그리스도’되게 하시

는 것이었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주며, 주린 자를 배부르게, 갇힌 자를 자유케, 우는 자

를 웃게 해주는, 즉 ‘그리스도’가 되게 해주는 기름이었던 것입니다.

마태가 기록한 8가지 조목들은, 복 받을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정확하게 평가를 한다면, 당시 산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이

제 주린 자’, ‘이제 우는 자’, 바꾸어 말하면 복이라고는 조금도 받은

것이 없어서, 해결할 능력도 희망도 없는 자들에게, 예수가 그리스

도 되어 도와주시겠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제 우는 자, 그제 주린 자, 그제 아무 땅도 갖지 못한 자, 그제 귀

신에 눌린 자들은 복 받을 조건이라곤 하나도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희망이라곤 도무지 없는 저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예수를 ‘그리스도’

되게 하여 보내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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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면 복 받을 조건이 전혀 없는 절망적인 사람들, 두면 둘수

록 더 어려워지기만 하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사,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돌보게 하셨다는 말입니다. (눅7:16)

저들에게 진정한 복이란,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저들에게 복』이 되었습니다.

그 밖에 다른 어떤 조건도 복을 가져다 줄 수는 없었습니다.

예수 외에 다른 것들은, ‘보훈’도 ‘팔복’도 아니었다 그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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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은혜 받을(부자 될) 때

오늘날은 예수가 ‘예수 이름’을 가지고 ‘그리스도’로 일하시는 때이다. 고로

가난한 자는 부자가 되고, 부자는 더 부자가 될 기회요, 은혜 받을 때이다.

예수님은 ‘예수’라는 이름을 받으시고, 그 이름의 역할을 감당하기

위하여 기름부음을 받아 ‘그리스도’가 되셨습니다.

그리고는 예수의 이름 그대로, 불쌍한 백성들을 돌보셨습니다.

이를 본 백성들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아보셨다.”고 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당시 의인이거나, 그제 웃는 자들, 그제 배부른 자들

은 만나지 않으셨습니다.

백성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정을 잘 표현한 말씀이, 우리가 너무나

좋아하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

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3:16)라는

구절입니다.

아무런 희망 없이 살고 있는 불쌍한 자들을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사랑’,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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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하나님과 동등의 자리에서, 동등한 영광을 누리기에 마땅하신

독생자 예수인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저를 ‘그리스도’ 되게

하시어 어려운 자들을 섬기라고, 험한 세상 속에 집어넣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가 아니겠습니까?

그제 배고픈 자들, 그제 우는 자들, 그제 땅 한 평 없는 자들, 그제

병들은 자들, 그제 악한 영에 눌린 자들의 어려운 상황이, 복의 조건

이 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저들이 가진 8가지 조건으로 복을 받는다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주님이 산에서 가르친 ‘보배로운 교훈’도, 복 받는 조건이 아닙니다.

마태복음5장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은, 멸망의 길로 빠져 들어가

던 자들을 8가지로 세분하여 정리했던 것입니다.

따라서 ‘8복’ 자체가 복이 될 수는 없습니다.

구원도 복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하나로 받는 것입니

다.

예수를 믿는 것 밖에, 다른 복의 길은 없습니다.

저들에게 진정한 복이란 누구를 말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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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을 믿으면 자유 할 수 있습니다.

배부를 수 있습니다.

건강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복이란 저들이 가지고 있는 조건이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입니다.

복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예수를

믿는 믿음』때문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은 사람들, 그분으로 행복해진 사람들

을 가리켜서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이라 합니다.

오늘날에는 ‘크리스천’이라고 말합니다.

‘크리스천’이나 ‘그리스도인’이라는 호칭은, 원래 그다지 자랑스러

운 의미를 가진 이름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부끄러운 이름이었습니다.

업신여겨 비하해서 붙여준 이름이었으니 말입니다.

아그립바 왕이 바울에게 한 말을 보면 이해가 될 것입니다.

“너는 몇 마디 안 되는 말로 나를 설득시키려 하느냐? 지금 나더러

그리스도인이 되라는 것이냐?”

“네가 적은 말로 나를 권하여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려 하는도다”

(행26:28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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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무엇을 나타내는 이름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성공할 수도 더 좋아질 수도 없이, 망할 대로

망하여 곧 멸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을, 하나님이 불쌍히

여기시어 예수를 보냄으로, 그나마 팔자를 고친 사람들을 뜻하는 이

름입니다.

따라서 당시에 웃고 있는 자, 당시에 권세를 가진 자, 당시에 행복한

자들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잘 되었다는 말을 듣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 때문이 아니라, 자기들의 의로 말미암아 잘 되

었다는 평가를 더 좋아했다는 뜻입니다.

아그립바 왕의 말도 그런 의미였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우리를 가리켜 “나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시다”고 말하는 것은, ‘나는 원래부터 훌륭하고 복된 사람

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자랑으로 내세우는 이름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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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그 은혜로 오늘날 이렇게 되었

다』는 의미입니다.

‘예수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될 수 없는 자’라는 뜻입니다.

도무지 교만할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따라서 ‘나는 그리스도인이요, 그리스도는 나의 주님이시라’는 말

을, 자신이 훌륭하다거나 자랑스럽다는 뜻으로 사용해서는 아니 될

것입니다.

겸손한 자세로 해야 하는 말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입니다.

아직 주리고 있는 자여, 아직 울고 있는 자여!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을 들어도 좋으니, 어찌 되었건 부자 한 번 되

어보고 싶지 않습니까?

이에 저는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산상에서 예수님이 입을 열어 가르치신 말씀은, 부자가 되는 법이

아닙니다.

부자의 조건도 아닙니다.

가난한 자에게 ‘보훈’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부자가 될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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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면 됩니다.

어떻게 건강할 수 있습니까?

의사에게 가도 희망이 없으면 됩니다.

아파 죽겠는데도 돈이 없어 병원에 갈 형편이 못된다면, 바로 그 환

경이 부자가 될 수 있는 조건이라는 말입니다.

악한 영에 눌려서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면, 그

것이 자유 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는 말입니다.

정리해서 말씀드린다면, 부자가 될 수 있는 법, 건강할 수 있는 법,

자유 할 수 있는 법이 각각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가난하고, 지금 병들어 있으며, 지금 눌려있으면 됩니다.

이런 상태가 부자가 될 수 있는 필요충분조건입니다.

아주 간단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지금 이 세대는 하나님의 아들이 독생자의 영광으로 계시는 때가 아

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주와 그리고 그리스도’ 되어 『주와 그리고 그리

스도 되어』 우리를 만나주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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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입장에서 우리를 만나고 계신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로 우리

의 주인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눌려있는 당신의 백성을 건져주시고자 아들에게 기름

을 부으시어, 우리에게 보내주셨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예수님은, 의인이나 부요한 자를 위하여 보냄을 받은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제사를 원치 않으시며, 영광된 예배도 원치 않는

다고 하셨습니다.

“오히려 긍휼을 원한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아무 다른 길이 없어서 캄캄하고 막막하십니까?

주님의 소식이 들려올 것입니다.

그때에는 그냥 그분을 믿으시면, 『그냥 믿으시면』됩니다.

그분을 영접하면 됩니다.

그분을 소망하면 됩니다.

그분이 나를 완전히 바꿔줄 것을 기대하면 됩니다.

믿는 것이 곧 부자가 되는 법입니다.

『예수가 법이요, 그리스도가 조건』이란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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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2: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오늘날은 하나님의 아들이 ‘독생자의 영광’으로 계시는 때가 아니

라고 했습니다.

세례요한이 그렇게 보았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눌린 자, 주린 자를 위하여 ‘그이’로 존재하십니다.

‘그리스도’ 하고 계십니다.

여전히 ‘예수의 이름’을 이루고 계십니다.

고린도후서에서는 그분을 가리켜,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

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

금은 구원의 날이로다”(6:2)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 받을 때입니다.

오늘날은 예수께서 심판주로 역사하시는 시대가 아닙니다.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의 날입니다.

여러분,

그리스도 예수의 음성이 들려집니까?

그분이 가까이에 오셨습니까?

맞이하십시오.

붙드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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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가난이, 당신의 질병이, 당신의 눌려있음이 그분으로 인하여

부요하게 되며, 배부르게 되고, 웃게 될 것입니다.

그분이 당신을 자유케 해 주실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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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4: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갈렙의 기도

거룩하신 주님,

만왕의 왕으로, 영광스러운 주로, 우리를 심판하러 오신 주님이 아

니라는 현실에 안심이 되는 저희입니다.

심판하심에 앞서 그리스도로 먼저 와주셨음에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는 이제 주리고 있습니다.

이제 병들어 있습니다.

이제 악한 영들에 눌려 있습니다.

오,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더 이상 험한 곳으로 떨어지게 마옵시고, 주님 손 내밀어 우리를 구

원해주시옵소서.

우리로 배부르게 해주시옵소서.

역사하는 악한 영들의 세력을 물리쳐 주시고, 그 자리를 성령으로

충만케 해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구하며 기도드리옵나이

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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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5: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예수께서 말씀하신 ‘산상 8복’은, 복 받는 조건을 말씀한 것이

아닙니다.

죄인 된 우리에게는, 복 받을 조건이나 자격이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구세주의 필요도 인지하지 못하고 요구한 바도 없을 때,

이미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일방적으로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이것이 은혜요, 이것이 복입니다.

예수를 영접한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갈렙 목사님은 분명하고 단호하게 복의 개념을 정의해주시며, 우

리에게 진정 복 받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십니다.

가난한자가 부자 될 다른 방법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김을 필요로 하는 자만이, 복을 받을 수 있습

니다.

아직은 예수께서 ‘영광의 주’로 오시지 않았습니다.

구원 받았다고 해서, 당당하고 자랑스럽게 복을 획득한 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부끄럽고 겸손함으로 복 받은 것을 감사해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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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6: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장 4

55

제 Ⅳ 편

“이제 배부른 자여”

본 문 : 누가복음 제 6장 제 24 ~ 27절a

24. 그러나 화 있을찐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

미 받았도다

25. 화 있을찐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

찐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6.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저희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27.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Page 57: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우리의 부요를 바라시는 주님

주린 자는 복이 있고 부요한 자는 화가 있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두

가 부요하여 천국에 오기를 바라시기에, 독생자에게 기름을 부어 보내셨다.

예수께서는 상반된 환경에 놓여있는 두 종류의 사람들을, 대칭적으

로 비유하여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눅6:21)

이어서 “그러나”로 본문의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

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

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눅6:24~25)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해서, 가난한 자를 부요한 자보다 더 기뻐하시

는 줄로 오해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만일 가난한 자만 불쌍히 여겨 복 주기를 기뻐하셨다면, 왜 독생 하

신 아들을 그리스도 되게 하여 보내셨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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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 예수로 하여금 당신의 백성들을 낫게 하고, 부요하게 하

고, 자유롭게 해주신 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주리며 울

고 사는 것을 원치 아니하신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 아니겠습니까?

바꾸어 설명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이 부요하고 더 부유하기

를, 『하나님은 당신 백성이 더 부요하기를 바라신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옳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천국은, 꺼져가는 등불을 든 처녀들의 몫이 아니었습니

다.

여유 있게 불 밝힌 자들의 몫이었습니다.

한 달란트를 받아 그대로 가지고 있던 자의 몫이 아니었습니다.

둘로 넷을 만들고 다섯으로 열을 남긴 자의 몫이었습니다.

이 비유의 말씀으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 나라는 가난한 자, 없

는 자가 환영받지 못하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남기지 못한 자, 부자 되지 못한 자는 하나님 나라에서도 ‘무익한

종’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있는 것마저도 빼앗아, 이미 있는 자에게 더 주겠다고 하셨습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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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59: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따라서 무릇 있는 자는, 더 받음으로 풍족하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마25:29)

다 빼앗긴 자는 ‘바깥 어두운 곳으로 내쫓겨,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마25:30)고 하셨으니, 없는 자는 천국 문 앞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는 뜻이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는 왜, ‘이제 없는 자는 복’이라고 했을

까요?

“이제 있는 자는… 화 있을진저”라고 했을까요?

여기서 주시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이제’, 『이제』라는 말입니다.

『이제』라는 그때가 중요합니다.

그러면 “이제”란 어느 때를 말하는 것입니까?

저들이 가난하여 기다리던 ‘그이’, 세례 요한이 질문 했던 ‘오실 그

이’, 바로 그 ‘그이’가 오신 때를 ‘이제’라고 합니다.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하고, 병든 자를 낫게 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

게 하기 위하여 보내심을 받아 오신 ‘그이’,

어려운 백성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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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0: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그때에 ‘그이’, 곧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오신 ‘그이’는 저들이 기대하던 그대로 부요를 주시고, 건강을 주시

고, 자유를 주셨습니다.

바로 그 시기를 두고서 ‘이제’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아들이 예수 그리스도 하시는 그 시기’ 『예수 그리스

도하시는 그때를 이제』라고 했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예수 이름’, 곧 저희 백성을 죄에서, 병에서, 가난

에서 구원할 자라는 이름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곧 저희 백성을 섬기는 자가 되어 대신 짐을 져주

시며, 그 짐을 가볍게 해주고자 기름부음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로 충실히 일하고 계시는 동안에는, 의인이나

부자, 건강한 자들은 만나야할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그제에 부요하고 그제에 웃고 있는 사람들은 만나봤자, 특별히 ‘예

수와 그리스도의 역할’을 해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실 그이’ 곧, 저들이 기다리고 있던 ‘그리스도’는, 주린 자를 배부

르게 해주며, 병든 자를 고쳐주고, 눌린 자를 놓아주는 분이시기에,

부자들에게는 그다지 필요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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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1: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가난한 자가 계속 가난해있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고, 병든 자가 계

속 병들어 죽어가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며, 눌려있는 자가 그대로

눌려만 사는 것을 원치 아니하시는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백성들의 어려운 형편을 바꾸어주기 위하여, 예수님

을 세상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으로서는 배부른 자, 웃는 자를 더 기뻐하고 반가

워해야 마땅할 것 같지 않습니까?

이런 자들만 있다면 힘든 일은 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 없는 저들

웃는 자, 자유 한 자, 배부른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저주하셨습니다.

왜 그러셨는지 잘 헤아려보기 바랍니다.

자본주의 권세자들에게는 부요한 사람이나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

우호의 대상이 될 수 있겠습니다만, 서민의 대변자로서는 아닙니다.

서민을 대변하고 서민의 편에 선 위인이라면, 많이 가진 사람을 마

냥 우대해줄 수만은 없을 것입니다.

칭찬조차 해줄 수 없어 좀 딱딱하게 대하는 것을, 정치적으로도 볼

수 있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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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씀드리면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자에게는 가진 자들이 우호

의 대상이 되겠지만, 서민의 대변자로서 가난한 자에게 복지를 보장

해주겠다는 입장에서는, 부요한 자에게 비중을 둘 수 없다는 것이

상식일 것입니다.

하나님은 과연 어느 편을 좋아하실까요?

성장 위주의 자본주의 사상을 기뻐하실까요?

아니면 분배정책을 쓰는, 소위 사회주의 사상을 기뻐하실까요?

궁금하지 않습니까?

여기서 저는 분명하게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둘 다를 가지신 분으로, 둘 다를 원하시고 둘 다를 기

뻐하십니다.』

예수님이 독생자의 영광을 가지고 보좌에 앉아 심판하실 그때에는,

“무릇 없는 자의 것을 빼앗아 있는 자에게 주라”고 하실 것입니다.

신랑이 오셨을 때 기름이 떨어져 마중할 수 없었던 처녀들, 그래도

들여보내달라고 울며불며 문을 두드리는데도 불구하고, 그때는 전

혀 은혜를 베풀어 주지 않으실 것입니다.

전에 긍휼히 여기시던 모습을, 그때에는 눈을 씻고 찾아보려고 해도

찾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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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3: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이런 것을 볼 때 하나님은 ‘성장 정책에 철저한 자본주의’이심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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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4: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심판주’ 보다는 먼저 그리스도로

가난한 자가 부요케 되기를 바라신 하나님은, 독생자를 ‘예수’요 ‘그리스도’로

먼저 보내시고 심판은 연기하시니, 이것이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아닐까?

예수가 세상에 초림 하셨을 때에는, 심판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

니라고 전편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리스도’부터 하시도록 기름부음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영광의 심판주’로 먼저 보내지 아니하신 것은, 가난한 자의 문제부

터 해결해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간절하게 ‘오실 그이’를 기다리고 있던, 지극히 가난한 자들에게 부

요를 주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가능한 한, 있는 자들의 것을 없는 자들에게 나누어 줌

으로, ‘예수’요 ‘그리스도’로 일하셨습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이제’라고 하는 때는, ‘오실 그이’로서의 역할을

하시던 시기를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요 ‘그리스도’이신 때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리스도’의 역할은 서민을 위한 것입니다.

평민들에게 건강과 부요와 권세를 주시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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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이 그리스도 예수의 정책이었으며, 대책이었고 사역이었습니

다.

예수께서 이 사명에 충실하신 것을 본 가진 자들, 부족함이 없는 자

들은, 예수를 싫어했습니다.

심지어 비난까지 했던 것을 볼 수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전 편까지는 가난한 자가 부요해지는 법에 대하여 말씀드렸습니다.

예수께서 가난한 자를 부요케 해주기 위하여 오셨다고 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부요해진 자들이 많아진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의 시기, 즉 하나님의 아들이 그리스도 예수

하고 계시는 오늘날, 부자 된 사람이 계속 부자로 살 수 있는 법은

없을까요?

여러분의 관심도 여기에 많을 줄 알고 있습니다.

부요해진 자가 그대로 부요하게 사는 법이 정말 있을까요?

네,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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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6: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누가복음 6장 24절과 25절에서는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라고

하시다가, 27절에 가서는 “그러나…”라는 이음씨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너희는 부를 가졌다는 것으로 자랑하며, 그 부로 많은 사람들의 부

러움을 사고, 칭찬받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고 있지만, 그러한 자에

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26절)고 하신 다음, “그러나”로 이어가셨습

니다.

‘그러나’ 이후의 말씀을 잘 살펴보면, 부요를 얻은 자가 다시 주리지

않고, 웃던 자가 다시 울지 않는 법이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부자가 계속 부자로 살아갈 수 있는 법을 발견할 수 있

습니다.

“그러나 너희 듣는 자에게 내가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너

희를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27~28절)

남을 원수 삼고 미워하는 짓은, 대개 없는 자나 빼앗긴 자가 그리합

니다.

가진 것이 많고 부족함이 없는 부자는, 마음까지 넉넉해져서 남을

원수 삼을 일이 별로 없습니다.

미워할 것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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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신여길 수는 있어도, 미워할 이유는 없다는 말입니다.

아래 말씀은 부자를 대상으로 하신 것입니다.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구체적으로 구걸하는

자에게) 주며 네 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다시 달라 하지 말며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29~31절)

없는 자들에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닙니다.

없는 자가 남 줄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 말씀은 『부자가 부자로 살아갈 수 있는 법』 바로 그것입니다.

27절의 “그러나” 이후에 하신 말씀은, 이제 부자인 사람이 앞으로도,

후제에도 계속 부자로 살아갈 수 있는 법이란 말입니다.

부자인 자들이 가진 부요를 계속 지켜갈 수 있는 법을 잘 들으셨습

니까?

이해가 되십니까?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가난한 자들에 대한 무게와 비중에 비하면,

현재 부요한 자들에게 두시는 그것이 더 크다는 것입니다.

주께서는 부요한 자들이 망하는 것을 바라지 않으신다는 의미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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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자들은 지킬 것도 없으며, 해야 할 힘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예수가 그리스도 되어, 친히 그들의 부요가 되어주신 것이

아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께서 없는 자들을 친히 찾아주지 않으신다면, 저들이

부요할 수 없는 것은 물론,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반면 이미 가진 자들은 지킬 것도 많고, 해야 할 것도 많아서, 말씀

하신 것들을 다 지키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자이다가 망하면, 없이 사는 자보다 더 비통해합니다.

그래서 부자가 부자로 연결해 살 수 있는 법만 있다면, 어찌하든지

지켜야 할 것입니다.

망하는 것보다야 나을 것이니 말입니다.

그동안 부자 되기 위하여 노력했던 것보다는, 더 힘들지도 않을 것

입니다.

하나님은 성장 자본주의를 선호하면서도, 서민들을 위한 분배 사회

주의도 원하신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가난한 자에게는 분배를, 가진 자는 더 가질 수 있기를 바라신다는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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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69: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그러므로 지금의 부요 상태 그대로 만족하지 말고, 더 부자 되기를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더 부자가 될 수 있는 법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두는 그 법에 대하여 관심이 많습니다.

다음 제5편에서는 부자가 부자로 살 뿐만 아니라, 더 부자로 살아갈

수 있는 법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의 부자가 앞으로 더 부자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

을 알기에, 이 말씀을 꼭 드려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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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70: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가난한 자, 병든 자, 눌린 자를 불쌍히 여기사, 예수를 그리스도로 보

내어 우리로 자유케 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그런 면만 알아서, 가난한 자만 그리스도에게 맞는 줄로 알

았습니다.

그제에 부요한 자, 그제에 건강한 자, 그제에 자유로운 자는, 예수 그

리스도에게 맞지 않는 것으로 오해했었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통하여 알았습니다.

독생자 아들을 ‘그리스도’로 보내신 것을 보매, 하나님은 우리가 가난

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부요하기를 바라시며, 더 부요하기를 바

라신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여 이제부터는 부요한 자로 더욱 예수를 의지하고 나아가겠나이다.

그러하오니 우리로 하여금, 부요한 가운데 더 부요해질 수 있는 법을

알게 하시어, 심판하실 그때 다섯 달란트 받은 자처럼 많이 남기도록

해주시옵소서.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구하여 기도 올리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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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71: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가난한 자를 위해 예수를 보내심은, 가난한 자로 사는 것을 원

치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배부른 자를 화 있다고 경고하심은, 배부른 상태를 미워하기 때

문이 아니셨습니다.

우리는 흑백 논리로만 생각하여 가난하면 복 받고, 부자는 미움

받는 줄 오해합니다.

하나님의 본심은 가난한 자는 부자 되고, 부자는 더욱 부자로

살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부자 되어, 예수께서 하신 것 같이 가난한 자

를 위해 나누며 살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갈렙 목사님을 통해 이 사실을 확실히 알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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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72: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장 5

71

제 Ⅴ 편

“주라 그리하면 줄 것이니”

본 문 : 누가복음 제 6장 제 38 ~ 39절

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

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39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Page 73: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부자가 되는 법/부자로 사는 법] 시리즈를 마감하는, 종편의 말씀

이 되겠습니다.

현재 가난하여 부자가 되고자 하는 자, 현재 병들어 낫고자 하는 자,

현재 눌리어 놓이기를 원하는 자들이, 현재 부자가 되고, 건강해지

고, 자유 할 수 있는 법이란, 『예수 그리스도』 밖에 다른 것은 없

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실 그이’ 곧, 『그리스도 예수』만이 행복할 수 있는 법이요, 부요

로 바꾸어주는 법이라고 했습니다.

그밖에는 따로 행할 것도, 지킬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어떻게 하라’는, 그 어떤 주문도 명령도 내리

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하나님은 어려운 자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리스도 예수가 너희에게 다가갈 것이니, 그를 믿고 그가 하는 일

을 바라며, 그가 내어주는 작품을 가짐으로 부요하라”

그리스도 예수만이 행복하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법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독생자의 영광’을 잠시 내

어놓고, ‘그리스도’ 하려고 세상에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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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로 오신 후 이제 배부른 자, 이제 웃는 자, 이제 부자들이

많아지게 된 것입니다.

문제는 지금 배부른 자, 지금 웃고 있는 자, 지금 부자로 사는 자가

계속 부자로 이어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 법이 필요한 자들이 많아졌으니, 관심도 그만큼 커졌습니다.

이미 부요해있는 자들이 많아진 현실입니다.

그들은 지금의 부자 수준만으로는 불만일 것입니다.

더 부자로 살 수 있는 법은 없을까, 고민할 것입니다.

『부자가 더 부자로 살 수 있는 법』은, 모든 부자들의 관심 있는 내

용입니다.

이에 답을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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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살 뿐 아니라, 가진 부를 확장하는 법이 본문 ‘주라’ 안에 들어있으니,

주면 준만큼 헤아려 받되,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받을 것이라고 했다.

부자로 대를 이을 뿐만 아니라 ‘더 부자가 되는 법’을, 본문은 소개

하고 있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

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

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본문38절)

‘주라’고 하셨습니다.

과연 무엇을 줄 것이며, 누구에게 줄 것인지, 그리고 주는 방식은 어

떠해야 하는지, 이것에 대하여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 ‘주라’에 포함되어 있는 내용들이, 바로 『부자로 사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부자로 살 뿐만 아니라 부를 더 확장해 나가는 법이, 이 ‘주라’ 안에

다 들어있다 그것입니다.

주면 주는 만큼 헤아려 도로 받을 것인데, 받을 때는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안겨준다고 하셨습니다.

주는 것에 비하여 훨씬 많은 것을 되돌려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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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76: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그러므로 ‘주라’ 속에 들어있는 핵심을 잘 알아 그대로만 한다면, 더

부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라”, 『주라』가 내포하고 있는 구체적인 내용을 알아보겠습니

다.

그 중 하나가 누가복음 6장 29절의 말씀입니다.

“네 이 뺨을 치는 자에게 저 뺨도 돌려 대며 네 겉옷을 빼앗는 자에게

속옷도 금하지 말라”

부자에게 겉옷이나 속옷 한 벌 정도는, 사실이지 별 것 아닙니다.

살아가는데 있어 크게 부담될 가치 있는 물건이 아니란 말입니다.

뺨이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자신의 높은 자리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입장에서, ‘맞고는 못살

아’라고 여긴다면 큰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높은 지위를 확보한 후 여유가 생김으로, ‘뺨 정도 까짓것 별

것 아니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못 살 때에는 작은 것 하나라도 빼앗기면 억울해 하던 것이, 부자가

된 다음에는 뺨을 맞고도 껄껄 웃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무릇 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그것을 가져가는 자에게 달라지 말라”

(3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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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에서 “구하는 자”라는 것은, 배가 고파 한 끼니를 구걸하는 사

람을 말합니다.

나그네가 하룻밤 재워달라는, 그런 수준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한 끼나 하룻밤을 청하는 자들에게는 베풀어주되, “달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주린 배를 채워주고 하룻밤 잠자리를 제공해준 것에 대하여, 그 값

을 요구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요청해온 상대는 갚을 입장이 못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정도의 사람에게는, 구한 만큼만 주라고 하십니다.

무슨 사업자금이나 주택자금 같은, 큰돈을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한 끼의 밥이나 하룻밤 재워주는 정도라면, 부자 형편에서 크게 축

날 정도가 못 되는 것이니, 갚으라고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부자라도 달라는 대로 큰 것을 마구 주다보면, 가진

재산을 지키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설사 받지 못한다 할지라도 전혀 구애되지 않을 정도, 큰

지장을 받지 않을 수준에서 주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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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들도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느니라 너희가 만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면 칭찬 받을 것이 무엇이뇨 죄인들도 이렇게 하느니라”

(32~33절)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너희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한다면

무슨 칭찬을 받겠느냐? 그리하고서는 칭찬 받기를 기대하지 말라.

만일 칭찬 받았다면 이미 대가를 받은 것이니, 도로 받을 것이 뭐 더

있겠는가?” 이런 말씀입니다.

다시 설명 드립니다.

“너희가 만일 너희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고, 선대하는 자를 선대

하고서야 무슨 칭찬을 받겠으며, 그 대가를 기대할 수 있겠느냐?”

그런 말씀입니다.

내가 해준 만큼 칭찬으로 다 받았다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돌아올 것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를 내가 사랑하고, 나를 선대하는 자를 선대하는

것은, 매우 상식적이며 당연한 일입니다.

상식적인 일을 하고서도,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되 안겨주실 것

으로 기대하는 것은 착각이라는 것입니다.

되받을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를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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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선대하는 사람을 선대합니다.

그런 나머지 수준이 비슷한 사람들끼리만 친합니다.

따라서 부자들은 부자끼리만 놉니다.

한 번 주거니 하면, 받거니 할 수 있어 편한 모양입니다.

내게 기쁨을 주고 호감을 주는 사람들만 교제하는 부자들은, ‘누르

고 흔들어 넘치도록’ 더하여 받을 것은 기대하지도 말라고 하십니

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으며, 심지어 악한 사람도 그런다고 하십니

다.

성경은 수준 차이가 나는 사람이나, 비호감인 사람들을 대할 때에

도, 수준 맞는 사람을 대하듯이, 나를 선대해 주는 사람을 대하듯이

그렇게 대해주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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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80: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그냥 주라

부자는 현재 가진 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더 많은 것을 원한다. 더 부자가 되

기 위해서는 어려운 자에게 주되, 도로 받을 것은 기대하지 말라고 하신다.

성경은 부자 된 사람들에게 권하고 있습니다.

“내게 비호감인 사람, 재산 차이가 많이 나는 사람, 지식적으로나 인

격적으로 차이가 나는 사람, 어울리기 싫은 사람일지라도 그들을 대

할 때에는, 수준 있는 사람을 대하는 것과 똑같이 즐겨 선대해주라”

선대 받지 못하는 사람도 인정하고 존중하라는 말씀입니다.

좋은 마음으로 대해준다면, 넉넉하게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대신 “아무 것도 바라지 말라” 『아무 것도 바라지 말라』(눅

6:35)고 하셨습니다.

되돌려 받을 것을 기대하지 않고 그냥 주면, 그 상이 클 것이라고 하

셨습니다.

성경의 역주에나 또 다른 사본에는, “아무에게 대하여도 실망치 말

고 빌리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고 난 다음 반대급부로 더 많은 것을 바라지 말고, ‘그냥 주라’

『그냥 주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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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81: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큰돈을 주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린 자에게는 그 주림을 면케 해줄 정도이면 된다고 했습니다.

되돌려 받을 생각이 없을 만큼만 주라는 뜻입니다.

특히 부자의 경우, 상대가 갚아줄 기대 같은 것은 아예 하지도 말라

고 하셨습니다.

혹시 받은 사람이 고맙다는 말을 안 해도, “실망치 말고 빌리라”고 하

셨습니다. (35절)

“빌리라”는 말은, ‘달라는 대로 주라’는 뜻입니다.

상대에게 꼭 필요할 것 같으면, 그쪽에서 부탁하지 않아도 주라는

것입니다.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은, 되돌려 받지 못할지라도 실망하거나 섭섭해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바라지 않을 수준에서 거래하라는 것입니다.

되받지 않아도 괜찮을 만큼만 주라는 말입니다.

‘주라’는 것은, 오늘날의 채권 채무의 차용 수준이 아닙니다.

‘어려운 자를 보거든 그냥 흘려 넘기지 말고 그의 형편에 맞게 주라’

『상대의 형편에 맞게 주라』, 이것이 말씀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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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82: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왜 ‘주라’는 것입니까?

이미 받은바 부를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더 부자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부자가 되려면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 부자가 될 수 있는 유일한 법, 『주는 것이 더 부자가 되

는 유일한 법』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주지 않는다면, 오늘날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나중에는 슬픔이

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무 가진 것이 없는 사람은, 더 이상 울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가진 사람이 망하는 것은, 비통할 일입니다.

배부르던 사람이 주리게 되면 견디기 힘들어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만 하면, 가지고 있는 부를 지킬 수 있으며, 더 확

장할 수 있다고 전편에서도 말씀드렸습니다.

이어지는 내용은 앞의 말씀과 사뭇 다릅니다.

“비판치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비판을 받지 않을 것이요 정죄하지 말라

그리하면 너희가 정죄를 받지 않을 것이요 용서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용서를 받을 것이요” (눅6:37)

“비판치 말라”는 말씀은, ‘주라’는 내용과 반대적인 형태의 명령입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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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을 주라, 뺨을 대주라, 먹을 것도 주라’고 하시다가, “비판치 말

라”, “정죄하지 말라”, “용서하라”고 하셨습니다.

부자로 사는 사람은 못사는 사람을 비판하지 말고, 정죄하지도 말라

는 말씀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누가 못살고 싶어서 못삽니까?

누가 갇히고 싶어서 갇혔습니까?

어쩌다가 잘못되어 옥에 갇힌 자를 보거든, 그 죄를 더 보태어 정죄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없이 살다보니까 일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없는 사람이 부요한 자에게 용서해 달라고 매달릴 때 용서해주기는

커녕, 오히려 자기의 가진 것으로 더 어렵게 만들어서는 아니 됩니

다.

그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비판하지 말라’, ‘정죄하지 말라’의 ‘말라’는 것이, 그냥 ‘주라’에 해

당된다는 것입니다.

저의 설명을 이해하시겠는지요.

쌀을 말에다 담고서 누르고 흔들면 속으로 내려가게 마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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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풍풍 두드리면 더 깊이 들어갑니다.

말이나 되로 곡식을 되어본 사람은 잘 알 것입니다.

누르고 흔들면 곡식이 압축되어 더 많이 들어가므로, 위에다 보태고

또 흔들어 보태기를 반복하여, 넘치도록 안겨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

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

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38절)

‘주라’에 해당되는 말씀들을 힘써 지킨다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

록’ 되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부자로 계속 살아갈 뿐만 아니라, 더욱 부자로 살아가는 법이 바로

이것입니다.

이것이 곧 주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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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85: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우리가 부요하기를 바라시는 까닭은

하나님은 왜 아들을 그리스도로 보내면서까지 우리가 부요하기를 바라실까?

부자가 되는 법을 말씀하시다가 소경의 비유를 말씀하시니 그 의미가 크다.

가난한 자, 불쌍한 자를 더 이상 보실 수 없었던 하나님께서는, 독

생자 예수를 영광스런 ‘심판주’의 자리에서 잠시 내려오게 하십니

다.

그리고는 종의 형체를 입히어 ‘그리스도 예수’가 되게 하여, 당신의

백성들에게 보내십니다.

진정한 소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들이 부요하게 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부요해질 뿐 아니라 더 부요해지며, 그 부요를 지속하게 하기 위하

여 아들을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보내셨던 것입니다.

‘주라’의 내용을 열거하다가, “그러나”(눅6:27)라고 하셨습니다.

‘주라’를 행하면 더 행복해지고 더 부요해질 것이지만, ‘그러나’ 『그

러나』 만일 ‘주라’를 행하지 아니하면, 예외 없이 25절의 말씀대로

애통하며 울게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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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25절)

“지금 배부른 자여, 가난한 자에게 주지 아니하면 너희도 주리리로

다. 화 있을진저!”

‘주라’를 하지 아니하면, 비참하게 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잘 살다가도 망하는 신세가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몇 차례 힘주어 말씀드렸거니와, 예수께서 부요한 자들을 싫어하시

거나, 은근히 망하기를 바라시는 것은 결코 아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연결된 비유가,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있느냐 그렇다면

다 함께 (구덩이에) 빠지게 될 것이다”라는 말씀입니다. (39절)

이 비유를 ‘주라’의 말씀과 연결하셨다는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는 뜻이, 문맥의 흐름으로 볼 때 어떤 내용

이라고 생각됩니까?

“가난한 자가 어찌 가난한 자를 인도할 수 있겠느냐? 그렇다고 부요

한 자를 인도할 능력이 되겠느냐? 가난한 자는 능력이 없어서 가난

하게 된 것이매, 나 예수가 그리스도 되어, 너희의 가난을 면케 해주

겠다.” 그런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가난한 자는 가난한 자를 도울 수 없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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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는 부자 되는 능력을 가진 자가 되는 것이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식을 갖출 능이 있는 사람이 지식인이 됩니다.

힘을 가진 자라야 씨름에서 이길 수 있습니다.

공부 머리는 있지만, 스포츠는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 큰 힘을 발휘할 장사는 될 수 있어도, 지식의 최고봉에 올라갈

수 있는 공부 머리는 없는 자도 있습니다.

재능이 없는 자는 있는 자를 인도할 수 없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망하게 됩니다.

주께서는 왜 이 비유를, ‘부자가 되는 법’에 연결하셨겠습니까?

우리가 부요의 능력을 가짐으로, 큰 기업을 경영하는데 성공하기를

기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룬 성공으로 가난한 자에게 나누어주기를 소원하시기 때문입니

다.

아무쪼록 부자가 되어 없는 자들에게 일자리를 줌으로, 그들도 잘살

게 해줄 것을 원하는 하나님이십니다.

부자가 더 부자 되게 하시려는 것도, 가난한 자를 도와주라는 의도

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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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88: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다 건강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 모두가 다 부요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다고 모두에게 건강하고, 부요할 능력을 주신 것은 아닙니다.

모두가 다 스포츠 선수가 될 힘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모두가 다 박사 될 공부 머리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그럴만한 힘과 재능을 받았기 때문에, 가진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힘이 되었든지, 공부 머리가 되었든지, 경영의 머리가 되었든지, 경

영자를 돕는 스텝의 달란트를 가졌든지, 가진 자는 어떻게 하던지

더 가지십시오.

어떻게 하면 더 가질 수 있다고 했습니까?

앞서 말씀드린바 ‘주라’에 해당되는 내용대로, 그냥 주면 됩니다.

그러나 더 큰 부자가 되었다할지라도, 절대 교만하지 마십시오.

절대 자랑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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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89: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더 커진 부요를 주신 것은, 자신보다 약한 자를 도우라는 하나님의

뜻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재물을, 천국 문 앞에까지 가져갈 수 있습니다.

후손들에게도 이어줄 수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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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90: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갈렙의 기도

하나님 아버지,

[부자가 되는 법/부자로 사는 법] 시리즈를, 주께서 말씀하신 진리에

따라 전하였습니다.

말씀을 듣는 가난한 자들이, 그리스도 예수로 부요하기를 원합니다.

이제 부요한 자는, 가진 부요를 지켜갈 뿐만 아니라 더 부요케 해주시

옵소서.

‘주라’에 해당되는 말씀을 법으로 알아 잘 지킴으로, 부요한 자로 하여

금 계속 부요하고 더 부요해질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함으로 가난한 자로 천국 문 앞에 서게 마옵시고, 있는 자로 넘치

는 자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무릇 있는 자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우리가 되기를 원하나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구하여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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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ge 91: 11 부자가 되는 법, 부자로 사는 법

어느 성도가 보내온 글

이미 예수를 영접하여 부자 된 사람에게는, 그가 가진 것을 가난

한 자들에게 “주라”는 명령이 따릅니다.

아무것도 답례를 바라지 않고, 정죄나 판단하지 말고, 나를 핍박하

거나 내 것을 빼앗는 자에게까지 ‘그냥 주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있는 자에게 더 주시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

까지도 빼앗을 것이라고 경고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미 받은 부요를 지키고, 더욱 부요해지를 바라

십니다.

없는 자는 주고 싶어도 줄 것이 없습니다.

줄 것이 있도록 더욱 부요하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을 지키는

것이 신자의 의무요, 동시에 권리입니다.

갈렙 목사님은 우리에게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

하여 어떻게 부요해야하는지를 확실히 알게 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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