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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문학논총 제59집(2011. 12) 145~174쪽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

    - 이성계 전설을 중심으로 -

    1)류경자**․한태문

    ***

    차 례

    Ⅰ. 머리말

    Ⅱ. 이성계 전설의 유형과 분포 양상

    Ⅲ. 남해 금산(錦山) 전설의 생성 및

    전승 요인

    Ⅳ. 이성계 전설의 남해적 확장과 민

    중적 지향

    Ⅴ. 맺음말

    국문초록

    이 글은 남해지역의 이성계 전설을 중심으로 그 전승 양상과 민중적

    지향을 살핀 것이다. 남해지역 이성계 전설의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이태

    조기단(李太祖祈壇)과 연결된 금산(錦山) 전설의 활발한 전승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삶의 터전에 대한 지역민들의 애착이 구비전승물을 통해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남해 금산이 전국의 명산(名山)들을 제치고

    조선왕조의 기도처로 선택되어 전설로서 널리 전승하게 된 데는 신선사

    * 이 논문은 2010학년도 부산대학교 박사후연수과정지원사업에 의하여 연구되었음.

    **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강사

    ***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 146 한국문학논총 제59집

    상의 상징인 삼신산(三神山)의 형상화로, 남해가 지닌 지정학적 조건이

    그 배경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이성계 전설의 각편들이 여러 유형으로 중첩되어

    전승한다는 점인데, 이는 금산 전설의 실재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석가세존과 연결되어 있던 기존의 ‘세

    존도 전설’이 금산 전설과 때를 같이하여 인물의 교체를 통해 변이함으

    로써 이성계 전설로 편입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전승적 특징은 영향력 있는 유명 인물을 지역전설 속에 끌어

    들임으로써 지역전설이 공간적 한계를 넘어 널리 전파될 수 있는 계기

    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지역적 고립성을 극복함과 동시에 정체성을 확

    보하려는 일련의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남해 금산을 배경으

    로 한 이성계 전설은 지역적 경계를 허물고 외부로 전승될 수 있었다.

    그러나 외부로 전파되었던 금산 전설은 새로운 시대의 도래로 인해

    인물에 대한 구심점을 잃게 되자 전승의 의미를 상실하였다. 하지만 남

    해지역에서는 장소에 대한 정서와 애착으로 오히려 더 활발한 전승을

    보이며 대표적인 지역전설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주제어 : 이성계 전설, 남해군, 남해 금산 전설, 삼신산, 각편, 세존도 전

    설, 역사성, 실재성

    Ⅰ. 머리말

    전설은 전승자들이 진실이라고 믿는 믿음의 기초 위에 개별적 증거물

    을 수반하여 전승하기 때문에 지역성이나 인물의 개성을 가장 잘 드러

    내 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전설 중 가장 흔한 형태는 지역의 자연

    물이나 인공물을 대상으로 한 자연ㆍ인문전설과, 인물의 행적이나 신이

  •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 147

    성(神異性)을 그린 인물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들은 각각 고유한

    형태로 존재하는 경우도 있지만 서로 맞물려 혼합구조를 이루는 경우도

    많아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상이한 분류를 보이기도 한다.

    본고에서 살피고자 하는 이성계 전설은 신화적인 측면도 없지는 않지

    만, 인물전설임과 동시에 곳곳의 자연물들과도 관계를 맺고 있는 등 여

    러 형태의 서사구조를 지닌 지역의 자연전설이기도 하다. 인물전설이 다

    양한 형태의 서사구조와 광범위한 분포를 보인다는 것은 인물이 지닌

    이미지나 행적이 전설화의 과정을 거쳐 민중 속에서 회자될 수 있는 필

    요충분조건을 만족시키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성계 전설에 있어서

    는 그것이 널리 알려진 역사적 인물이라는 점, 인물에 대한 민중들의 상

    반된 인식과 평가, 무장(武將)으로서의 무용담, 산신제와 연관된 지역전

    설로의 강한 흡입력 등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구비전승 뿐 아니라 문

    헌설화로도 많은 부분이 전하는데, 그것은 역성혁명으로 왕조를 건국한

    역사적 인물에 대한 민중의 인식과 평가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성계 전설은 다른 역사인물전설에 비해 그 파생력 또한 강

    하게 나타나고 있다. 남해지역 이성계 관련 전설이 이러한 양상을 보이

    는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는데, 자연물과 인물 간의 긴밀한 유기성

    을 토대로 여러 유형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이다. 남해지역에는 이성계

    에 대한 인물전설도 전승하고 있지만, 이태조기단(李太祖祈壇)과 관련된

    남해 금산(錦山) 전설의 기본형이 활발하게 전승하면서, 또한 인근의 자

    연물들을 흡수하는 방식의 확장형도 여러 편이 전승하고 있다. 이러한

    파생적 전승 양상은 타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으로 이성계 전설

    의 전승에 있어 독특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지역적 특수성이라는 것이

    지역적 조건에 의해 형성된 독자성을 말하며, 이를 통해 문화적 정체의

    온전한 해명과, 그리고 지리적 특성 및 역사적 기원을 밝혀낼 수 있음과

    동시에 독창적인 문화 가치들을 다양하게 발견할 수 있다1)고 할 때, 남

    1) 임재해, 민속문화의 지역적 특성을 묻는다 , 민족문화의 지역적 특성을 묻는

  • 148 한국문학논총 제59집

    해지역의 이성계 관련 전설은 지역적 독자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하나

    의 단서가 될 것이다.

    이성계 전설에 대한 연구를 살펴보면, 논의가 그다지 활발하게 전개되

    었다고 볼 수는 없지만 몇몇 방향에 걸쳐 그 성과가 드러나고 있다. 본

    격적인 연구들을 살펴보면 먼저 설화를 통한 역사 인식으로 구비역사의

    가능성을 타진해 본 연구2)가 있으며, 인물 대립담을 통해 역사 인물에

    대한 향유자의 인식을 밝힌 연구3)와 설화에 나타나는 서술 변형, 개별

    구연자의 인식이 이야기에 미치는 영향4) 등을 살핀 연구도 있다. 그 다

    음으로는 이성계 전설의 유형과 전승 집단의 의식, 소설과의 영향 관계

    를 분석한 연구5)와, 전승 지역에 따른 차이와 지역적 변이, 문헌설화와

    구비설화의 차이와 의미를 살핀 연구6)도 있다.

    그리고 지리산 산신과 관련된 특정 유형의 설화를 대상으로 역사적

    관점에서 논의한 연구7)가 있는가 하면, 이 설화를 통해 한국 산신의 성

    격 변화를 구명한 논의8)도 있으며, 역사적 경험을 바탕으로 특정 지역

    에 나타나는 이성계 전설의 공백성에 대해 논의한 연구9)도 있다.

    본고에서는 먼저 구비설화와 문헌설화들을 대상으로 이성계 관련 전

    설의 전국적 유형과 분포 양상을 파악한 뒤, 남해지역에 전승하는 이성

    다, 실천민속학회 편, 2000, 13쪽.2) 유영대, 설화와 역사인식 , 고려대학교 석사논문, 1981.

    3) 이태문, 이성계 전설의 인물인식과 그 특징 , 구비문학연구 4, 한국구비문학회, 1997, 251∼279쪽.

    4) 박기현, 이성계 설화의 서술 특성과 화자 인식 , 국어국문학 23, 동아대학교,2004, 75∼96쪽.

    5) 송명선, 이성계설화 연구 , 경성대학교 교육대학원 석사논문, 2007.

    6) 이화영, 이성계설화의 전승과 의미 연구 , 전주대학교 석사논문, 2010.

    7) 박기용, ‘귀양 간 지리산’ 설화의 전승 배경과 변이 양상 , 우리말글 36, 우리말글학회, 2006, 147∼180쪽.

    8) 최래옥, 한국산신의 성격변화 – 지리산산신과 이성계 설화를 중심으로 , 향토문화연구 1, 원광대학교 향토문화연구소, 1978, 69∼92쪽.

    9) 오세정, 구비설화의 상상력과 지역적 특성 – ‘이성계 설화’ 전승의 공백성 , 우리말글 37, 우리말글학회, 2006, 229∼252쪽.

  •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 149

    계 관련 전설의 유형을 밝히고, 남해지역 이성계 전설의 생성 요인과 전

    승적 특성을 살펴보겠다. 이를 통해 지역민들이 향유하며 지향하고자 했

    던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가늠해 보고자 한다.

    Ⅱ. 이성계 전설의 유형과 분포 양상

    이성계 전설은 탄생담에서부터 유년기ㆍ장년기의 행적담과, 무학대사

    ㆍ명태조 주원장ㆍ퉁두란(이지란)ㆍ아지발도 등의 실존 인물들과 연관

    된 일화 등 비교적 다양한 형태의 유형으로 전승하고 있다. 이 설화들은

    한 유형의 설화가 완결된 구조를 갖추고 전승하는 경우도 있지만, 한 이

    야기 속에 여러 유형의 이야기가 복합적으로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이

    는 그만큼 이성계 전설의 유형들이 여러 형태로 민간에 전승해 왔다는

    것을 대변해 준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이성계 전설의 유형과 전국적 분포 양상을 살핌

    에 있어 일단 탄생담ㆍ행적 및 일화담ㆍ대결담으로 나누고 각 유형을

    중심으로 정리하기로 한다.10) 그리고 남해지역에 전승하는 이성계 전

    설은 별도로 정리하여 전국적 유형과의 비교를 통한 전승적 특성을 살

    펴보고자 한다.

    10) 출처에서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한국구비문학대계는 대계, 김현룡의 한국문헌설화는 문헌, 김기창 외의 북한의 구전설화집은 북한구전, 임석재의한국구전설화는 구전, 최상수의 한국민간전설집은 한국민간, 최상수의조선민간전설집은 조선민간, 박영준의 한국의 전설은 전설, 조희웅 외의 영남 구전자료집은 영남, 이시이 마사미의 1923년 조선설화집은 1923,류경자의 한국구전설화집은 구전설화로 표시한다.

  • 150 한국문학논총 제59집

    유형 출처

    1. 유년기의 살인

    대계 1-6, 673∼678쪽, 2-4, 693∼698쪽, 5-1,316∼317쪽, 5-3, 586∼592쪽, 5-7, 228∼230쪽,

    7-16, 599∼608쪽, 8-14, 537∼539쪽, 북한구전,56∼58쪽, 구전 7, 73∼74쪽, 10, 61쪽

    2. 용마의 출현대계 1-6, 673∼678쪽, 2-7, 176∼177쪽, 구전 4,70쪽, 전설 5, 73∼76쪽

    3. 버들잎 띄우는 처녀 만남 대계 7-16, 599∼608쪽4. 호랑이 만남 북한구전, 56∼58쪽5. 명당 구하기 구전 10, 28∼30쪽6. 무술 연마 한국민간, 158∼160쪽, 전설 4, 288∼291쪽7. 구미호 만남

    대계 2-2, 787∼793쪽, 4-4, 750∼751쪽, 4-5, 228∼231쪽

    1. 이성계 전설의 유형과 전국적 분포 양상

    1) 탄생담

    유형 출처

    1. 천자자리와 국왕자리의 다툼한국민간 199∼200쪽, 구전 4, 32∼33쪽, 전설 8, 313∼314쪽

    2. 금관(金棺)과 소 백 마리 자리 대계 2-4, 693∼698쪽, 8-6, 543∼546쪽3. 묘지 지키면서 동침 대계 1-2, 182∼185쪽4. 용신과의 접촉 대계 1-6, 673∼678쪽5. 몽금척(夢金尺) 대계 5-3, 586∼592쪽6. 목조(穆祖)와 적지(赤池) 구전 4, 28∼30쪽, 문헌 6, 490쪽

    탄생담은 이성계 조상들의 이야기로 구비설화에 주로 나타나는데, 크

    게는 묘지 선정과 관련된 것, 용신(龍神)과의 접촉, 몽금척(夢金尺) 등으

    로 이루어진다. 그 중에서도묘지 선정과 관련된 것이 주를 이루는데, 특

    히 천자와 국왕의 자리다툼이 인상적이다. 자리다툼 탄생담에는 중국 쪽

    역사 인물과의 대결 구도가 등장하는데, 함경도 등 이북 지역에서는 청

    태조 누루하치와,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이남에서는 명태조 주원장

    과의 대결 구도가 눈에 띈다.

    2) 행적 및 일화담

  •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 151

    8. 이복형제와의 일화 문헌 2, 354쪽, 7, 116∼117쪽

    9. 득몽

    대계 1-4, 901∼904쪽, 1-7, 468∼470쪽, 1-8, 382∼386쪽, 2-3, 75∼81쪽, 4-4, 592∼595쪽, 4-4, 750∼

    751쪽, 4-6, 637∼638쪽, 5-4, 586∼591쪽, 5-6, 611

    ∼617쪽, 7-8, 308∼310쪽, 7-13, 140∼146쪽, 구전 5, 49∼50쪽, 1923, 95쪽

    10. 산신 제사

    대계 1-4, 901∼904쪽, 2-2, 787∼793쪽, 2-7,163∼167쪽, 4-4, 750∼751쪽, 4-5, 228∼231쪽,

    5-1, 144∼145쪽, 5-1, 183∼185쪽, 5-1, 591∼594

    쪽, 5-3, 586∼592쪽, 5-4, 255∼258쪽, 5-4, 586∼

    591쪽, 5-6, 611∼617쪽, 7-1, 55∼57쪽, 7-13, 140

    ∼146쪽, 8-6, 471∼475쪽, 한국구비전설의연구 부록, 292∼303쪽, 영남 4, 189∼190쪽, 구전 4,97쪽, 문헌 5, 546∼547쪽

    11. 불가사리 문헌 6, 224∼225쪽12. 징조 전설 9, 251∼253쪽, 문헌 6, 489쪽, 489∼490쪽

    13. 무학과 만남

    대계 1-2, 169∼176쪽, 1-4, 901∼904쪽, 1-7, 468∼470쪽, 2-2, 787∼793쪽, 2-3, 75∼81쪽, 5-6, 611∼

    617쪽, 6-11, 164∼166쪽, 6-11, 435∼437쪽, 7-1, 55

    ∼57쪽, 7-8, 308∼310쪽, 8-5, 323∼329쪽, 8-14, 191

    ∼192쪽, 8-14, 241∼243쪽, 8-14, 562∼565쪽, 구전 5, 49∼52쪽, 7, 73∼74쪽, 10, 64∼65쪽, 한국민간, 454∼455쪽. 조선민간, 109∼110쪽, 영남 4,195쪽, 전설 6, 221∼223쪽, 8, 172∼173쪽, 8, 329∼330쪽, 문헌 6, 246∼247쪽, 254쪽, 486∼487쪽

    14. 위화도 회군

    대계 1-2, 182∼185쪽, 1-4, 899∼901쪽, 1-8, 178∼181쪽, 2-2, 669∼670쪽, 2-4, 693∼698쪽, 5-3,585∼586쪽, 5-7, 228∼230쪽, 구전 5, 50∼51쪽

    15. 며느리 겁탈 시도 북한구전, 56∼58쪽16. 왕씨 멸족 대계 6-4, 62∼64쪽, 문헌 5, 261∼262쪽17. 함흥차사

    대계 7-16, 599∼608쪽, 8-5, 323∼329쪽, 전설 6,255∼262쪽, 문헌 2, 277∼278쪽

    18. 기타11)

    대계 1-5, 203∼204쪽, 1-7, 911∼912쪽, 1-8, 178∼181쪽, 2-4, 693∼698쪽, 6-11, 13∼18쪽, 7-3, 705

    ∼708쪽, 한국민간, 401∼402쪽, 구전 4, 27∼28쪽, 30∼31쪽, 영남 3, 109∼111쪽, 172쪽, 전설 8, 314∼315쪽, 10, 306쪽, 문헌 6, 226∼228쪽, 7,126∼127쪽

    11) 여기에는 활쏘기, 파자점(破字占), 이성계의 등극과 뱃사공의 행위, 이성계의

  • 152 한국문학논총 제59집

    행적 및 일화담에는 수많은 유형들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많

    은 전승을 보이고 있는 것은, 대장놀이를 하던 중 규칙을 어긴 아이를

    실제로 죽이는 유년기의 살인사건, 서까래 3개를 짊어지는 등의 득몽(得

    夢), 잘못 지낸 제사를 소금장수 등을 통해 알려주는 산신 제사담, 그리

    고 무학과의 일화를 다룬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이야기들 중 무학과의

    이야기 몇 편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등극 이전의 일화들이다. 이들 유형

    들 중 호랑이와의 만남, 명당 구하기 등은 조상들의 이야기나 어린 시절

    의 화소들이 이성계의 장년기로 전이했을 뿐이며, 구미호와의 만남과쇠

    를 먹는 불가사리의 등장은 건국의 재정 기반을 마련하는 이야기들이다.

    이러한 유형들을 통하여 볼 때, 이성계 전설에는 인물의 탄생에서부터

    노년에 이르는 생애 전반에 걸쳐 무수한 민중의 상상력이 동원되어 있

    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러한 전승적 특징은 서사의 주인공이 실존 인물, 그것도 영향력이

    강한 역사적 인물이라는 점에 기인한다. 서사의 주인공이 인물일 경우

    서사물은 향유자와 그만큼 가까워지며, 향유자의 기대 심리도 구체화될

    수 있다. 더욱이 주인공이 역사적 실존 인물일 경우 서사물에 대한 향

    유자의 친밀감은 강화되고, 서사물의 효과도 그만큼 커진다고 할 수 있

    다.12) 이때 인물의 행적은 역사적 사실의 기반 위에 향유자들의 인식과

    평가가 어우러져 새롭게 재구성 된다. 그래서 인물의 실제 행적과는 무

    관한 전설상의 인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성계 전설도 이러한 역사

    인물전설의 서사적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즉 역사적 사실의 기반 위

    에 민중적 허구가 어우러져 수많은 유형의 이야기들을 만들어냈으며, 그

    것들은 인물이 지니는 강한 흡인력에 이끌려 끊임없이 회자되어 온 것

    이다.

    탄생 때문에 목숨 건진 갑부, 이성계의 8준마, 이성계의 적룡 퇴치, 적도의 돌

    배, 함경도의 산세, 두문동 이야기, 이성계 능의 잔디 등이 있다.

    12) 이태문, 이성계 전설의 인물인식과 그 특징 , 구비문학연구, 한국구비문학회,251쪽.

  •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 153

    3) 대결담13)

    유형 출처

    1. 주원장과의 대결

    대계 1-2, 528∼531쪽, 1-3, 310∼314쪽, 2-2, 669∼670쪽, 2-4, 693∼698쪽, 2-8, 742∼743쪽, 3-2, 495∼499쪽,

    3-4, 602∼605쪽, 5-6, 611∼617쪽, 6-4, 68∼70쪽, 7-13,

    140∼146쪽, 8-5, 323∼329쪽, 8-13, 301∼303쪽, 구전 10, 28∼30쪽

    2. 퉁두란과의 대결

    대계 1-2, 528∼531쪽, 1-7, 909∼911쪽, 1-8, 382∼386쪽,2-7, 168∼171쪽, 5-3, 586∼592쪽, 5-6, 611∼617쪽, 7-16,

    599∼608쪽, 8-6, 475∼479쪽, 문헌 2, 277∼278쪽3. 아지발도와의 대결

    대계 5-1, 415∼416쪽, 5-1, 580∼583쪽, 8-6, 806∼809쪽, 문헌 2, 277∼278쪽

    이성계 전설의 대결담에 나타나는 특징으로는 그 대상이 모두 외국인

    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퉁두란과 아지발도와의 대결담은 구비설화와

    문헌설화를 막론하고 등장하는데, 역사적 사실을 기초로 전승하고 있는

    이야기들이다. 반면 명태조 주원장과의 연관 설화는 문헌설화에서는 그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이성계 전설과는 관계없이 단독으로 전

    승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특히 퉁두란과 아지발도와의 대결에서 우위

    를 점하는 이성계의 위치가 주원장과의 전설에서는 열세로 몰리고 있을

    뿐 아니라 주원장이 고려 사람으로 그려지고 있어 흥미롭다. 때문에 주

    원장과 이성계와의 대결 구도는 조선과 명나라와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민간의 의식을 조명해 보는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14)

    13) 이성계와 대립적인 인물로 지리산 산신이 만든 ‘우투리’도 등장하지만, 대결은

    나타나지 않으므로 제외한다.

    14) 이화영, 이성계설화의 전승과 의미 연구 , 전주대학교 석사논문, 2010; 정상진,

    연구 , 외대논총 25, 부산외국어대학교, 2002, 473∼489쪽.

  • 154 한국문학논총 제59집

    2. 남해지역 이성계 전설의 유형과 전승적 특징

    유형 출처

    1. 금산과 득몽(得夢)ㆍ

    등극

    구전설화 18, 16∼44쪽, 340∼341쪽, 필자 채록,, 구전 10, 61∼64쪽(남해)

    2. 금산의 배나무 구전설화 18, 27∼31쪽3. 구멍섬 구전설화 18, 27∼31쪽, 91∼92쪽, 340∼341쪽4. 선 바위

    구전설화 18, 27∼31쪽, 342∼349쪽, 구전 10, 24∼25쪽(남해)

    5. 이동면의 군자목 구전설화 18, 252∼255쪽6. 금산 산신제 일화

    구전설화 18, 34∼44쪽, 336∼339쪽, 구전 10, 61∼63쪽(남해), 전설 2, 240∼245쪽

    7. 주원장과 대결 구전설화 18, 342∼349쪽, 350∼353쪽8. 퉁두란과 대결 구전설화 18, 354∼357쪽9. 신돈의 불가사리 구전설화 20, 453∼456쪽10. 용문사의 능과 연(輦) 구전설화 18, 342∼349쪽

    남해지역에 전승하는 이성계 전설에서 보이는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이태조기단(李太祖祈壇)과 연결된 금산(錦山) 전설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성계와 연관되어 지역의 자연물들이 전설화되고 있는데, 구멍난 섬, 선

    바위, 금산의 배나무, 이동면의 군자목 등이 그것이다. 그런가 하면 산신

    제와 연결된 일화들과 이성계 사후의 능(陵)이나 연(輦)과 관련된 이야

    기 등도 등장하는데, 이러한 이야기들은 모두 남해지역 이성계 전설의

    확장형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외에도 전국적으로 분포하는 이성계 전설들 중 일부의 유형이 남

    해군에도 전승하고 있는데, 주원장과 연결된 탄생담 및 대결담,15) 퉁두

    란과의 대결담, 신돈의 불가사리16)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주원장과 연

    15) 타지역에서는 모두 애초부터 명당이 바다 속에 있었다고 전제되는 것에 비해,

    남해지역에서 채록된 한 편은 ‘산꼭대기에 있던 천자봉(天子峰)이 굴러 떨어져

    서 바다 속에 들어앉았다’는 화소가 첨가되어, 이성계 전설에 제시되고 있는 명

    당의 조건인 산꼭대기와 물속을 모두 만족시켜 주고 있어 주목된다.

    16) ‘신돈의 불가사리’라는 민담 말미에 이성계의 개국 기반 이야기가 등장한다. 여

  •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 155

    관된 묘지 관련 탄생담을 제외한 이성계의 탄생담이나 유년기의 살인,

    무학과의 일화담 등 전국적으로 광포하는 유형들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Ⅲ. 남해 금산(錦山) 전설의 생성 및 전승 요인

    1. 남해 금산 전설의 전승 양상과 분포

    구전설화는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한다. 특히 지역전설은

    지역 공동체를 결속시킴과 동시에 공동체의 정체성을 획득하는데 있어

    큰 몫을 담당한다. 이성계 전설과 관련하여 남해지역에서 가장 활발한

    전승을 보이고 있는 것은 남해 지역전설의 대표격인 금산 전설이다. 남

    해에 전승하는 금산 전설의 여러 각편들을 통해 그 기본 구조를 화소별

    로 요약하여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① 이성계가 등극을 꿈꾸고 금강산ㆍ지리산ㆍ남해 금산을 삼신산으로

    정하다.

    ② 금강산과 지리산에서 허락을 못 얻고 남해 금산으로 오다.

    (이성계가 산신제를 지내는 동안 고목나무 밑에서 잠자던 부하가 목

    신들의 대화를 듣다.)

    (목신이 누린내가 나서 제사에 응감을 못했다고 해, 가죽 열쇠 끈을

    풀고 다시 제사를 지내다.)

    ③ 백일기도를 예정하고 99일째 되는 날 밤에 꿈을 꾸다.

    ④ 당집의 노파를 찾아갔더니 외출하고, 딸이 대신 해몽해 주면서 나쁜

    꿈이라고 하다.

    ⑤ 돌아오다가 노파를 만났는데, 딸의 뺨 3대를 때리고 꿈을 물리게 하다.

    기에는 불가사리가 만들어진 연유가 등장하는데, ‘운에 맞도록 쇠를 주워 모은

    것’이란 말로 그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데, 바로 이성계의 개국을 의미한다. 따

    라서 남해지역의 불가사리 민담은 고려 멸망의 상징적 의미를 지님과 동시에

    조선 개국의 상징성도 지니고 있다고 할 수 있다.

  • 156 한국문학논총 제59집

    ⑥ 노파가 다시 해몽하더니 왕이 될 꿈이라고 하다.

    ⑦ 이성계가 등극 후 남해 금산을 고마운 산이라고 비단으로 덮으라고

    하다.

    ⑧ 신하들이 어려움을 토로하면서 산의 이름에 비단 금(錦)자를 넣어주

    자고 하다.

    ⑨ 원래 보광산(普光山)17)이었던 산이 금산(錦山)이 되다.

    이 남해 금산 전설은 남해지역을 제외하고는 하동, 남원, 강릉 등 극히

    일부 지역에서만 채록이 되고 있어18) 그 전승 양상을 논하기에 무리가

    따른다. 뿐만 아니라 이들 지역에서 채록된 전설의 내용을 보면 남해지

    역에서 채록된 전설들과는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남해지역에서 채록된

    전설들에는 이성계와 금산을 둘러싼 서사가 여러 화소들로 긴밀하게 짜

    여 있다. 하지만 다른 일부 지역에서 채록된 몇 편들을 보면 이야기의

    구조가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못함을 확인할 수 있다.

    ① 이성계가 남해 금산에 와서 기도를 하자 산신이 허락하다.

    ② 등극 후 산에 비단을 씌워 주려고 하다.

    ③ 여의치 않아 산 이름에 비단 금자를 넣어 주다.

    이것들은 아주 간략한 기본 골격만을 중심으로 다른 이야기 속에 끼

    여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로써 증빙할 수 있는

    것은 이성계와 관련된 금산 전설의 전파권이 비교적 넓다는 것이다. 비

    록 서술 구조상 약화된 면이 없지는 않지만, 금산(錦山)이라는 산명(山

    名) 유래에 이성계가 연결되어 있는 기본 골격은 유지되고 있어 같은 유

    형의 전설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타지역에서의 전승이 이렇듯 약화된

    것은 남해 금산 전설이 지역전설이기 때문에 해당 지역을 벗어나면 그

    17) 원효대사가 이곳에 ‘보광사(普光寺)’라는 사찰을 지은 뒤 보광산으로 불리어 왔

    다고 전한다. - 구전 10, 평민사, 1993, 41쪽. 18) 영남 4, 189∼190쪽(하동), 대계 5-1, 183∼185쪽(남원), 구전 4, 97∼(강릉)

  •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 157

    만큼 전설로서의 의미와 가치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짐작컨대 남해 금산 전설이 널리 전파되어 나간 시기는 조선 중기와

    후기인 것으로 추정된다. 문헌의 기록에 의거해 볼 때 이 시기의 유산록

    들에서 전설 관련 내용들이 확인되기 때문이다. 금산을 찾은 유산객들은

    전설을 외부로 널리 전파시키는 경로가 되었으며, 여기에 본조 건국주의

    기도처라는 신화적 요소가 결합되어 지역전설임에도 불구하고 전파력이

    확산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자신들을 지탱해 주던 왕조가 무너

    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함에 따라 전설도 점차 그 전승력이 약화된 것

    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타지역에 전승하던 이러한 지역전설들은 조사의 단계에

    서부터 누락될 여지가 많아진다. 왜냐하면 채록 시 조사자나 제보자 모

    두가 해당 지역의 전설을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어 의도를 가지고 조사

    에 임하지 않는 이상 타지역의 전설은 쉽게 채록되지 않기 때문이다. 고

    성지역에서 전하던 남해 금산 전설을 보면 이러한 사실은 더욱 명백해

    진다.

    ① 하륜이 벼슬을 못하고 선달로 지내면서 한강 백사장을 거닐다.

    ② 누군가가 뒤에서 ‘하정승’이라고 부르면서 빨리 남해 금산으로 가 보

    라고 하다.

    ③ 하륜이 남해 금산으로 가던 도중 금산 아래에 있는 마을 어귀의 나

    무 밑에서 잠이 들다.

    ④ 목신들의 대화를 듣게 되는데, 이성계가 기도를 하지만 가죽신을 신

    어 응감을 못한다고 하다.

    ⑤ 하륜이 금산으로 올라가 기도드리는 이성계에게 사실을 알리다.

    ⑥ 이성계가 가죽신을 벗고 기도를 드려 산신이 응감을 해 왕이 되다.

    ⑦ 왕이 된 이성계가 금산 신의 고마움에 보답코자 하다.

    ⑧ 산을 비단으로 덮자고 했으나 여의치 못해 산 이름을 바꾸어 주

    다.19)

    19) 이병혁(남, 75세), 부산대 한문학과 명예 교수, 2011년 8월 8일 채록. 이 전설은

  • 158 한국문학논총 제59집

    이 이야기는 구비설화와 문헌설화 어디에도 실려 있지 않은 남해 금

    산 전설의 각편이다. 하륜의 본관인 진주 하씨를 중심으로 생성된 것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해 볼 수 있지만, 고성지역에서도 전승해 온 것으

    로 보아 서부 경남을 무대로 전승하던 각편으로 보인다. 제보자에 따르

    면 ‘가죽신’ 화소 외에도 ‘칼집 끈’ 화소가 전승했다는 것으로 보아 하륜

    과 연결된 금산 전설도 꽤 활발하게 전승했던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다면 어떤 연유에서 절해고도(絶海孤島)에 자리한 남해 금산(錦

    山)이 인근의 거산(巨山)인 지리산(智異山)까지도 제치고 조선의 건국

    주를 품게 되었을까 하는 점이 의문으로 남는다.20) 여기에서는 이 문제

    를 금산이 지니는 지정학적 조건과 연결하여 풀어보고자 한다.

    2. 삼신산(三神山)의 남해적 형상화

    이성계 전설과 관련하여 남해 금산(錦山)에는 이성계의 기도처라고

    일컬어지는 이태조기단(李太祖祈壇)이 자리하고 있다. 문헌의 기록을

    통해 볼 수 있는 이태조기단에 대한 언급은 광해군 1년(1609)에 쓰여진

    조겸(趙㻩)의 문집 봉강집(鳳岡集) 속에 들어 있는 에서 처음으로 보이며, 이후 여러 문집의 금산 유산록에서도 두루

    나타나고 있다.21)

    뿐만 아니라 금산의 이태조기단 전설에 근거하여 대한제국 광무 7년

    (1903)에는 고종황제의 명을 받은 의정부 대신 윤정구(尹定求)가 금산

    제보자가 열 살 가량(1947년경)에 고향인 경남 고성군 구만면의 냉천서당(冷泉

    書堂)에서 스승이신 정헌(靜軒) 곽종천(郭鍾千, 1895∼1970)으로부터 들은 이야

    기라고 한다.

    20) 지리산이 조선왕조의 건국주를 도울 수 없는 조건으로는 전 왕조의 건국주인

    왕건의 어머니 위숙왕후를 여신으로 모시고 있는 산이기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다. 박기용, ‘귀양 간 지리산’ 설화의 전승 배경과 변이 양상 , 우리말글 36,우리말글학회, 2006, 161∼163쪽.

    21) 김해영, 南海郡 錦山의 ‘傳李太祖祈壇’에 관하여 , 남명학연구 19, 경상대학교남명학연구소, 2005, 326∼340쪽.

  •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 159

    의 영험한 기적을 찬술하는 글과, 고종황제의 공덕을 태조의 공덕에 비

    겨 성군이 되기를 축원하는 글을 새기기도 했다. 이 글들은 현재 이태

    조기단으로 전해지는 자리 옆에 세워진 두 개의 비석에 새겨져 경상남

    도 문화재자료(277호)로 지정되어 있다.22) 이러한 기록들을 통해 볼 때

    남해 금산 전설은 남해 인근 뿐 아니라 조정(朝廷)에까지 알려져 수용

    될 정도로 널리 회자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설화는 현실에 바탕을 둔 이야기판의 공인을 받지 않으면 향유되지

    않으며 전승되지 않는다. 청중이 수긍하고 나아가 이야기판의 질서에

    부합될 때 한편의 완성된 이야기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23) 따라서

    남해 금산 전설의 활발한 전승은 그것이 당대의 이야기판 질서에 부합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섬 안의 작은 산에 불과한 남해 금산이 한반

    도의 여러 거산(巨山)들을 제치고 왕조의 건국을 이루어 낸 전설의 명

    산이 될 수 있었던 것에는 금산의풍광과 신령함에 대한 암묵적 동조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암묵적 동조의 배경에는 무엇보다도 시대적

    열망이었던 신선사상의 상징인 삼신산(三神山)과의 관계를 배제할 수

    없을 듯하다.

    삼신산에 대한최초의 기록으로는 사기(史記) 권28, 봉선서(封禪書)제6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제(齊)의] 위왕(威王), 선왕(宣王), 연(燕)의 소왕(昭王)이 사람을 시

    켜서 바다로 보내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를 찾게 했다. 이

    삼신산(三神山)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발해(渤海) 중에 있는데, 인간과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24)

    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삼신산은 발해 중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진22) 김해영, 南海郡 錦山의 ‘傳李太祖祈壇’에 관하여 , 남명학연구 19, 경상대학

    교 남명학연구소, 2005, 317쪽.

    23) 홍태한, 인물전설의 현실인식, 민속원, 2000, 134∼135쪽.24) 自威宣燕昭, 使人入海求蓬萊方丈瀛洲. 此三神山者, 其傳在渤海中, 去人不遠.

  • 160 한국문학논총 제59집

    시황은 불로초를 구하기 위한 삼신산 탐사대를 조직해 바다로 보낸다.

    그런가 하면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에는 삼신산이 원래는 오신산(五神山)으로, 큰 자라 열다섯 마리가 받치고 있었는데, 대인(大人)이

    낚시로 자라 여섯 마리를낚는 바람에 두개의 산이 해중에 가라앉고 세

    개만 남았다고 한다.25) 이러한 기록들에 근거해 볼 때, 삼신산은 해중

    (海中)에 있는 신령한 산임이 분명하다.

    그래서 조선에서는 이 삼신산이 있는 곳을 한반도라고 생각해 금강

    산ㆍ지리산ㆍ한라산을 각각 봉래ㆍ방장ㆍ영주로 일컬어 왔으며 또한

    그렇게 믿어왔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들을 뒷받침이라도 하듯 한반도의

    곳곳에는 불로초를 구하는 진시황의 탐사대가 다녀간 흔적들이 뚜렷이

    남아 있다. 남해지역에도 ‘서불과차(徐市過此)’의 문자와 관련하여 삼신

    산 탐사대의 전설이 전하고 있다.26) 이러한 사상은 이성계 전설에까지

    도 그 모습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어 그 영향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이런 이야기는 아~(아이)들도 알고 있네. 이성계가 삼신산을 금강산,

    지리산, 남해 금산, 그리 가이고 삼신산을 잡았더란네. 삼신산을. 등국

    [登極]헐라꼬.27)

    위에 소개된 전설 첫머리는 남해 금산 전설이 아이들도 다 알 정도로

    널리 알려진 전설임을 강조함과 동시에, 남해 금산을 금강산 지리산과

    함께 삼신산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민중들은 물리적인 환경에

    불과한 ‘공간’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함으로써 자신들의 삶과 친밀한 ‘장

    25) 其中有五山焉. … 而五山之根 無所連著. 常隨潮波 上下往還 不得蹔峙焉. 仙聖

    毒之 訴之於帝. 帝恐流於西極 失羣聖之居 乃命禹彊 使巨鼈十五 擧首而戴之 迭

    爲三番 六萬歲一交焉. 五山始峙 而龍伯之國有大人 擧足不盈數步 而曁五山之

    所. 一釣而連六鼈 合負而趣歸其國 灼其骨以數焉. 於是岱輿員嶠二山 流於北極

    沈於大海.

    26) 구전 10, 평민사, 1993, 48∼49쪽. 27) 구전설화 18, 민속원, 2011, 16쪽.

  •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 161

    소’로 만드는데,28) 이것은 그들의 경험과 인식을 통해 정립된 정서적이

    고 상징적인 하나의 의미 체계에 해당한다. 결국 이 전설은 당시 민간에

    만연했던 신선사상의 민중적 열망과 삶의 터전에 대한 애착이 구비전승

    물을 통해 발현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흔히들 일컫기를 삼신산은 해중(海中)의 산이라고 했다. 때문에 대륙

    (大陸)에서 볼 때는 삼신산이 한반도에 위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을 문자 그대로 한반도에 대입시켜 볼

    때는 섬이 된다. 여기에 더해 진시황이 보낸 삼신산 탐사대의 흔적인

    서불과차(徐市過此)의 상형문자 석각(石刻)이나, 이에 따른 전설이 남해

    와 제주도에 가장 뚜렷이 남아 있다는 것 또한 증빙 자료로서 삼신산을

    섬으로 인식하는 데에 한몫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성계 전설의 공간으로 왜 제주도가 아닌 남해가 선택되

    었는가 하는 점이다. 제주도의 한라산은 이미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瀛

    洲)로 알려져 있지만, 본토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외부인들의 접

    근이 용이하지 않다. 뿐만 아니라 지리적, 문화적 요건으로 볼 때도 한

    라산을 무대로 한 왕조의 건국주 전설은 전파나 수용에 있어 지역 간의

    원활한 소통에 장애를 일으킨다. 이러한 까닭에 소통이 여의치 않은 제

    주도보다는 남해가 건국주의 전설을 배태하기에 용이했을 것으로 짐작

    된다.

    남해 금산은 기암괴석들로 뒤덮인 절경(絶景)과, 노인성(老人星)29)을

    볼 수 있는 신령한 산으로 소문이 나 있어 조선조 선비들로부터 특별한

    28) 이푸 투안(구동회ㆍ심승희 옮김), 공간과 장소 개정판, 대윤, 2007, 7∼20쪽. -‘공간’은 ‘장소’보다 추상적이다. 장소는 개인들이 부여하는 가치들의 안식처이

    며, 안전과 애정을 느낄 수 있는 고요한 중심이다. 이러한 삶의 공간에 대한 애

    착은 토포필리아(Topophilia), 즉 ‘장소애(場所愛)’라는 용어로 규정되기도 한다.

    29) 남극노인성 또는 남극성이라고 한다. 천구(天球)의 남극 부근에 있어 2월 무렵

    에 남쪽 지평선 가까이에 잠시 보이는 별이다. 중국의 고대 천문학에서는 사람

    의 수명을 맡아보는 별이라 하여, 이 별을 보면 오래 산다고 믿었기 때문에 수

    성(壽星)이라고도 한다.

  • 162 한국문학논총 제59집

    사랑을 받아왔다. 남해를 찾게 된 유산객들은 금산에 있는 사찰의 승려

    로부터 이태조기단에 대한 전설을듣게 되는데, 유산록들에는 승려들이

    남해를 찾은 유산객들에게 이태조기단의 전설을 알리려고 애쓴 흔적

    또한 역력하다. 금산 전설이 어느 시기 어떻게 생성되었는지를 명확하

    게 추정하기는 어렵지만, 내용상 그 생성 시기는 적어도 조선 건국 이

    후이기에 그 시대적 배경과 공간적 배경을 중심으로 전설의 생성 요인

    에 접근해 볼 여지가 있다.

    시간과 공간은 인간이 적극적으로 계획할 때 방향 지어지며, 그 계획

    은 목적을 지니게 된다.30) 남해는 절해고도의 유배지로서, 이 지역적

    고립성은 상대적으로 문화적 취약성을 수반하며31) 내륙에 비해 본토와

    의 결속감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그런데 인간은 자아나 정체성을

    확인하고자 하는 마음을 본질적으로 공유하고 있다. 때문에 지역민들은

    자신들이 가진 인적 물적 자원을 최대한 활용해 그들의 정체성을 획득

    함과 동시에 소통을 통한 결속을 추구하게 된다. 이때 외부와의 소통에

    있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것은 누구나 공유하는 공통분모로, 여기서는

    금산의 명성과 이성계라는 역사적 인물이 된다.

    남해 금산의 명성은 오랜 과거의 이야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산의

    원래 이름은 ‘보광산(普光山)’으로 월지국(月支國)의 허왕후가 가지고

    온 관음불상을 원효대사가 남해 금산에 모셨다는 일화32)로부터 시작된

    다. 이 원효대사와 연결된 보광산 전설은 금산의 자연이 지닌 원시적

    신령함과 더불어 종교적으로도 영험한 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모티

    브가 되었다. 그리고 이 영험함은 왕조의 건국에 큰 몫을 담당하는 기

    도처로서의 금산 전설을 생성하는 기반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30) 이푸 투안(구동회ㆍ심승희 옮김), 공간과 장소 개정판, 도서출판 대윤, 2007,207쪽.

    31) 여기에서의 문화적취약성이란문화 자체의 상하개념이 아니라 지역민들이 느

    끼는 상대적 취약성을 말한다.

    32) 구전 10, 평민사, 1993, 41쪽.

  •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 163

    금산 전설은 지역민들로 하여금 선택받은 신성한 장소에 대한 강한 동

    질적 정서를 공유하게 함과 동시에 외부와의 소통에 있어 통로 역할을

    했다. 때문에 왕조의 건국을 배태한 남해지역의 이성계 전설은 이성계

    의 역성혁명을 운명론적으로 받아들일 뿐 아니라, 인물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인물에 대한 평가는 전승자들의

    가치관과 직결된다. 그것은 이야기되는 인물에 대한 평가를 통해 창조

    자 및 수용자 자신의 가치관을 깊이 있게 표현하기 때문이다.33)

    이렇듯 지역민들의 염원을 담은 남해 금산 전설은 신선사상에 대한

    시대적열망, 본조의 건국주에 대한 기대, 그리고 금산의 신령함에 대한

    믿음 등에 힘입어 손쉽게 외부로 전파되어 회자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

    인다. 그러나 왕조의 시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자 외부로

    전파되었던 이 지역전설은 인물에 대한 구심점을 잃게 되어 전승의 의

    미를 상실하게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남해지역에서는 장소에

    대한 정서와 애착으로 여전히 그 구심점을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에 타

    지역의 전승 단절이나 약화에 비해 오히려 활발한 전승을 보이며, 지역

    의 대표전설로 자리 잡게 된 것 같다. 이러한 남해 금산의 삼신산화는

    유배객들의 의식에도 반영되어 그들의 유배문학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경우가 허다하다.34) 비록몸은절해고도에 유배당해 있지만, 오히려 별

    천지에서 신선처럼 노닐고 있다는 자기 위안이 시대적 의식의 흐름과

    맞물려 문학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33) 조동일, 인물전설의 의미와 기능, 영남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1979, 7쪽.34) 김구(金絿)의 이라는 경기체가의 1장에는 “天之涯 地之頭

    一点仙島 … 偉 天南勝地 景 긔 엇더 ᄒᆞ닝잇고 … ”라고 하여 남해를 신선이

    사는 곳으로 노래했으며, 태소집에 실려 있어 김용(金容)의 작품으로 알려진한시 에도 “笑別逢壺十里路 忽然山雨滿蘿衣 仙靈更欲留今日 故送

    行雲濕翠微”라읊고 있어 이러한 영향을 잘 보여주고 있다. - 남해군지편찬위원

    회, 남해군지, 상권, 2010.

  • 164 한국문학논총 제59집

    Ⅳ. 이성계 전설의 남해적 확장과 민중적 지향

    1. 금산(錦山) 전설의 실재성 확보를 위한 각편들의 생산

    전설의 역사성과 실재성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증거물이 필요하며, 증

    거물에 따른 구체적인 설명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그것이 충족되어야

    만 허구적이고 비현실적인 이야기가 증거물을 통해 현실의 역사로 소급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중들은 끊임없이 전설을 역사화하기 위

    해 노력하며, 그 역사성과 진실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또

    다른 증거물에 의한 각편들을 생산하게 된다.

    남해지역에는 이성계와 관련하여 금산 전설 외에도 여러 각편이 전한

    다. 이성계의 지팡이와 얽힌 배나무, 돌배[石舟]와 연결된 구멍난 섬, 통

    치자의 자질과 능력의 표상으로 상징되는 선 바위, 산신(山神)의 우열

    관계를 논하는 군자목, 이성계의 산신제와 연관된 일화들, 그리고 이성

    계 사후의 능(陵)과 연(輦)에 대한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이들 각편 중

    ‘구멍난 섬’의 전설은 후대에 한차례의 변이를 거쳐 이성계 전설로 편입

    되고 있어 눈길을 끈다.

    먼저 이성계의 지팡이와 얽힌 배나무 전설을 보면 이성계의 남해 입

    성을 더욱 공고하게 하기 위한 보조적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 이성계가

    금산에서 기도를 하던 중 홍역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는데, 한 도사의 도

    움으로 감로수(甘露水)에 목욕을 하고는 나았다. 징표로 지팡이를 꽂아

    두면 성공 여부를 알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성계가 남해를 떠날

    무렵에 자라기 시작하더니 지금도 그 지팡이에서는 야생배가 열린다는

    것이다.35) 이 형상으로 실재하는 금산의 배나무나 감로수 등은 전설의

    역사성과 진실성을 드러내기 위한 산 증거물로 지역민들이 제시하는 역

    사성이라 할 수 있다.

    35) 구전설화 18, 민속원, 2011, 27∼31쪽.

  •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 165

    다음으로는 이성계의능력과 자질에 대한 검증을 자연물인 입석(立石)

    에 연결시켜 드러내고 있는 또 다른 각편을 들 수 있다.

    이태조(李太祖) 이성계(李成桂)가 나라를 얻을 생각이 있어 남해(南

    海) 금산(錦山)에 와서 이곳에 기도단(祈禱壇)을 모아놓고 백일기도(百

    日祈禱)를 디렀는디, 백일기도(百日祈禱)를 마치고 보이께 시 바우 중

    두 개는 일어나서 서있고 하나는 그대로 누버 있었다. 만일에 이 바우

    싯이모다 다 일어나서섯드라문 이성계(李成桂)는천자(天子)가댔일틴

    디 두 개만 일어서고 한 개가 그대로 누버 있어서 왕밖이 안댔다 칸

    다.36)

    이 전설 또한 보조 장치로서 남해 금산 전설로 귀속된다. 이 이야기는

    자연물의 감응을 대상으로 미래를 점치는 민간 신앙에 바탕을 두고 있

    지만, 이성계 전설 속에 그럴듯하게 자리 잡음으로써 또 하나의 증거물

    로 금산 전설의 실재성을 드러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러한 증거물의

    중첩을 통한 전설의 실재화는 지역전설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가 하면 이성계 전설에 흔히 등장하는 목신(木神) 화소의 변이형

    도 등장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37) 이성계 전설에 있어 일반적인 목신 화

    소들의 기능은 목신들이 대화를 통해 이성계의 산신제가 잘못되었음을

    알리고, 제대로 된 산신제를 지내 왕으로 등극할 수 있도록 돕는 데에

    있다. 하지만 남해지역에 전승하는 이 변이형의 서사는 좀 다르다. 이성

    계가 천자를 꿈꾸며 금산에 들어와 백일기도를 하던 중 꿈에 금산의 산

    신령으로부터 절굿공이를 받는다. 이성계는 해몽을 하러 지리산 산신령

    을 찾아가지만 해몽을 받지 못하고 돌아온다. 돌아오던 길에 남해의 한

    마을에 있는 군자목(君子木)이라고 하는 고목나무 아래에서 잠이 드는

    36) 구전 10, 평민사, 1993, 24∼25쪽. ; 구전설화 18, 민속원, 2011, 349쪽.

    37) 구전설화 18, 민속원, 2011, 252∼255쪽.

  • 166 한국문학논총 제59집

    데, 자다가 지리산 산신령과 군자목 목신의 대화를듣게 된다. 군자목 목

    신이 해몽하기를 이성계로 하여금 천자의 꿈을 접고, 절굿공이를 베고

    편히 쉬라고 준 것이라고 한다. 이에 이성계는 천자의 꿈을 접고 조선을

    건국했다는 내용이다.

    이 과정에서 군자목의 목신은 지리산 산신령이 풀지 못한 꿈을 해몽

    해 냄으로써, 한낱 마을의 고목나무 목신이 지리산 산신령보다 그 신령

    함에 있어 우위를 차지하게 된다. 이것은 지리산 관련 이성계 전설의 부

    정적인 평가에 대한 남해 지역민들의 반동적(反動的) 표출로서, 인근 지

    역의 정서와는 달리38) 이성계에 대한 긍정적 인식이 그대로 반영된 시

    대적 순응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증거물의 확보와 중첩을 통한 전설의 역사성 추구는 이성계의

    사후에까지 이어진다. 이성계 전설의 말미에붙여진 이성계의능과 가마

    에 대한 서사는 이성계와 남해지역을 연결시키는 또 다른 증거물로 이

    성계 전설의 한 유형을 만들어 내고 있다.39) 이것은 남해지역이 이성계

    라는 인물을 담보로 하여 얼마만큼 그 역사성을 견인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는 예라고 할 수 있다.

    2. 전설의 변이(變移)와 민중적 지향

    남해지역 이성계 전설 중에는 전승 도중 변이(變移)하여 이성계 전설

    속으로 편입된 것도 있어 눈길을 끈다.

    아무리 해도 남해 금산 여기로 참 뭐, 비단을 가지고 둘렀이몬 좋겄

    는디, 그리는 몬 하겄꼬 이름을 비단 금(錦)자, 뫼 산(山)자 이래 갖고

    금산이라꼬 지었는데. 그 어르신이 돌배[石舟]를 무아(만들어) 가지고,

    한개 무아가지고 실패, 두 개 무아가지고 실패, 세 개째 무아가지고 밀

    38) 오세정, 구비설화의 상상력과 지역적 특성 – ‘이성계 설화’ 전승의 공백성 , 우리말글 37, 우리말글학회, 2006, 229∼252쪽.

    39) 구전설화 18, 민속원, 2011, 347∼348쪽.

  •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 167

    어삐나 놓은께너 … 그 세존도 구녕이 풍 뚫어졌다. 그런 말이 있제.

    ….40)

    위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세존도(世尊島)’는 금산에서 마주 보이는 바

    위섬으로 가운데에 구멍이 뚫려 있는 무인도이다. 이 이야기는 ‘구멍난

    섬’의 유래에 대해 밝히고 있는데, 이성계가 소원하던 바를 이루고 남해

    를 떠날 때 돌배를 만들어 끌고 나가면서 섬을 들이받아 남긴 흔적이라

    고 한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유산록 기록을 보면 이 전설들과는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바라보니 대해(大海) 중에 두 섬이 있었다. 전체가 돌로 되어 있는데,

    아래는 둥글고 위는 뾰족하였다. 마치 큰 은쟁반에 두 개의 큰 홀[圭]이

    놓여있는 것 같았는데, 세존도(世尊島)ㆍ용치도라 하였다. 세존도를 바

    라보니 마치 가운데가뚫려 있는 것 같았다. 승려가 말하기를옛날에 세

    존석가(世尊釋迦)가 쌍홍문(雙虹門)에서 돌배[石舟]를 타고 이 섬을 바

    로 뚫고 나갔다고 하니 허황된 말이라 믿을 바는 아니지만 역시 이상하

    다.41)

    위의 내용은 금산을 유람하면서 보리암의 승려로부터 들은 전설들을

    간략하게 기록해 놓은 유산록의 일부로 ‘세존도(世尊島)’에 관한 서술이

    다. 그런데 이 기록에서는 세존도의 구멍이 석가세존이 돌배[石舟]를 타

    고 남해를 나가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이 석가세존 관련 기록은 다른

    유산록들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다.42) 지명에서도 알 수 있듯이

    40) 구전설화 18, 민속원, 2011, 91∼92쪽. . - 이외에도 두 편이더 전하는데 동일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구전설화 18, 민속원, 2011, 29∼30쪽, , 340∼341쪽, )

    41) 望見大海中有二島 全體皆石下圓上尖 如大銀盤置二大圭曰世尊島聳峙島也 世尊

    島望之若通中然 僧曰昔世尊釋迦 自雙虹門乘石舟 直衝是島而去 誕妄之說不可憑

    信 然亦異常也. - 배성호, , 금석문집(錦石文集) 권5.42) 명암정식의 ; 솔성재 박정일의 ; 서비 최우순의

  • 168 한국문학논총 제59집

    이 전설은 원래 석가세존(釋迦世尊)과 연결되어 있었음이 명백하다. 자

    연현상에 대해 설명하려는 인간의 강렬한 욕구43)에 의해 생성된 이 전

    설은 지역민들의 공감을 얻으면서 전승을 거듭해 오다가 어느 한 시점

    을 기해 이성계 전설 속에 편입된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변이가 전승 상의 착오인지 전승자들의 의도인지는 알 수 없

    다. 하지만 이 전설이 널리 분포하는 것으로 보아 전승 과정에서 별다른

    충돌 없이 지역민들에게 수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구술문화에서

    오래 지속되는 사고는 사람과의 대화와 결부되어 있다. 이러한 이야기의

    독창성은 새로운 이야기의 줄거리를 생각해 내는 데에 있지 않고, 그때

    그때 청중들과의 어떤 특별한 교류를 만들어 내는 데에 있는데, 당시의

    상황 속에서청중들에게받아들여지는 방식으로 제시된다. 즉 더욱 직접

    적으로 가까이 알고 있는 인간끼리의 상호관계 속에서 개념화하고 언어

    화하는 것이다.44)

    이성계와 관련하여 세존도 전설을 구연한 제보자에 따르면, 초등학교

    때 금산으로 여행을갔는데, 그곳의스님들이 학생들을 따라다니면서 이

    전설을 들려주었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은 시대만 달리했을 뿐 동일한

    장소에서 변이형의 전설이 다시 전파되고 있음을 확인시켜 준다. 그렇다

    면 이 이야기를 이성계 전설 속으로 끌어들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

    다.

    무엇보다도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존도 전설이 남해 금산 전

    설과 마찬가지로 한 차례의 역사적 변이(變移)를 경험했다는 점이다. 남

    해 금산이 산명(山名)과 함께 원효대사에서 이성계로 인물적 대치를 이

    룬 것과, 세존도가 석가세존에서 이성계로 인물적 대치를 이룬 것은 동

    일 선상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왜냐하면 구술사회는 이미 현재와의 관련

    이 없어진 기억을 버림으로 해서 균형상태 혹은 항상성을 유지하는 그

    43) 홍태한, 인물전설의 현실인식, 민속원, 2000, 173쪽.44) 월터 J. 옹(이기우ㆍ임명진 옮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문예출판사, 1995, 55

    ∼71쪽.

  •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 169

    런 현재 속에서 영위되기45) 때문이다. 남해 금산이 원효대사의 행적과

    연결되고 불교가 민중의 의식을 지배하던 시대에는 전설의 주인공으로

    서 석가세존이 민중들의 공감을 얻었다. 하지만 세월을 거듭하면서 이

    석가세존은 민중들 사이에서 그야말로 하나의 전설적 존재가 되어버려

    현실감이 결여됨으로써 실재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래서 좀 더 실존감

    있는 인물을 필요로 할 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이성계였던 것이다. 이성

    계는 역사적 실체로서 석가세존보다 역사성과 진실성을 부여하기에 합

    당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이것은 유명한 인물과 사건에 이야기가 흡수되

    는 “강자인력(强者引力)의 현상”46)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역사성의 추구는 남해 금산 전설의 변이에서부터 시작된다. 원

    효대사에서 시작된 금산 전설은 어느 순간 이성계로 대치되는데, 원효가

    마련한 영험의 기반 위에 이성계가 편승하는 것이다. 이로써 지역민들은

    왕조의 건국주라는 역사적 실체로써 삶의 공간을 성역화(聖域化) 시켜

    지역적 정체성을 확보함과 동시에 공동체성을획득하게 되는 것이다. 그

    리고 이러한 전설의 역사성 추구에 편승하여 세존도 전설도 인물의 대

    치가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세존도 전설 역시 지역

    의 자연물전설임과 동시에 역사인물전설로서 남해 금산 전설과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남해지역에서는 금산 전설을 실재화하기 위한 실용적인

    목적 하에 이성계와 관련된 여러 각편들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은 지역의

    정체성과 전설의 역사성을 드러내기 위한 일련의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각편들은 금산 전설에 비해 증거물의 지명도가 낮

    기 때문에 지역의 자연물전설로 귀속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45) 월터 J. 옹(이기우ㆍ임명진옮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 문예출판사, 1995, 75쪽.46) 최래옥, 한국구비전설의연구, 일조각, 1981, 224쪽.

  • 170 한국문학논총 제59집

    Ⅴ. 맺음말

    지금까지 남해지역의 이성계 전설을 중심으로 그 전승 양상과 민중적

    지향을 살펴보았다. 남해지역 이성계 전설의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이태

    조기단(李太祖祈壇)과 연결된 금산(錦山) 전설의 활발한 전승을 들 수

    있다. 이것은 삶의 터전에 대한 지역민들의 애착이 구비전승물을 통해

    발현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금산이 전국의 명산(名山)들을 제치고 조선

    왕조의 기도처로 선택되어 전설로서 널리 전승하게 된 배경에는 신선사

    상의 상징인 삼신산(三神山)의 형상화로, 남해가 지닌 지정학적 조건이

    그 배경으로 작용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다른 특징으로는 이성계 전설의 각편들이 여러 유형으로

    중첩되어 전승한다는 점인데, 이는 금산 전설의 실재성을 확보하기 위한

    방편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석가세존과 연결되어 있던

    기존의 ‘세존도 전설’이 금산 전설과 때를 같이하여 인물의 교체를 통해

    변이함으로써 이성계 전설로 편입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전승적 특징은 지역 전설에 대한 지역민들의 역사성 추구와

    진실성 확보를 위한 염원에서 연유한 것으로 보인다. 즉 영향력 있는 유

    명 인물을 지역전설 속에 끌어들임으로써 지역전설이 공간적 한계를 넘

    어 널리 전파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이를 통해 지역적 고립성을

    극복함과 동시에 정체성을 확보하려는 일련의 노력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 결과 남해 금산을 배경으로 한 이성계 전설은 한 시기 지역의 경계를

    허물고 널리 전파될 수 있었다.

    그러나 외부로 전승되었던 남해 금산 전설은 왕조의 시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자 인물에 대한 구심점을 잃게 되어 전승의 의미

    를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남해지역에서는 장소에 대한 정서와

    애착으로 오히려 더 활발한 전승을 보이며 대표적인 지역전설로 자리

    잡을 수 있게 되었다.

  •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 171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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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2 한국문학논총 제59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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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 173

    A Study on Regional Characteristics of

    Namhae-gun Tale

    - focused on the legend of Lee Seong-gye -

    47)Ryu, Kyung-Ja*ㆍHan, Tai-Moon

    **

    This study focuses on the aspects of transmission and the

    orientation of the people focusing on the legend of Lee Seong-gye.

    The distinctive feature of the legend of Lee Seong-gye in Namhae

    district is the active transmission of the legend of Geumsan related to

    Itaejogidan, which is the mound Lee Seong-gye prayed. It is possible

    to say that the attachment to their livelihood of the local people is

    expressed by oral heritages. The background of the reason why

    Geumsan was selected as the prayer site of the Joseon Dynasty

    rather than the famous mountains in the whole country and widely

    spreaded as a legend is partly because of geopolitical condition of

    Namhae as the projection of Samsinsan, the symbol of Sinseon -

    Taoist hermit with miraculous power - thought.

    Another distinctive feature is that the versions of the legend of Lee

    Seong-gye are transmitted in various types, and that is the way to

    secure the substantiality of the legend of Geumsan. In particular, it is

    the point that the existing legend of Sejondo related to Seokgasejon is

    included in the legend of Lee Seong-gye with the legend of Geumsan,

    * Instructor, Pusan National University

    ** professor of Pusan National University

  • 174 한국문학논총 제59집

    being modified by the replacement of characters.

    These features are the opportunity that local legend was to widely

    spread beyond its spatial boundary was obtained by relating a famous

    person to a local legend, and that was a series of effort to overcome

    local isolation and secure identity at the same time. As a result, the

    legend of Lee Seong-gye related to the legend of Geumsan broke

    down the boundary of an area in a time and spreaded widely.

    Yet, it seems to lose the significance of transmission as the pivot of

    character disappeared because of the collapse of the dynasty and the

    advent of the new era. However In Namhae district, it seems to be

    the reason of more active transmission and its status as the

    representative local legend by the emotion and attachment as to place.

    Key Words : the legend of Lee Seong-gye, Namhae-gun, the legend

    of Namhae Geumsan, Samsinsan, version, the legend of

    Sejondo, historicity, substantiality

    논문접수 : 2011년 11월 10일

    심사완료 : 2011년 12월 8일

    게재확정 : 2011년 12월 12일

    남해군 설화의 지역성 연구국문초록Ⅰ. 머리말Ⅱ. 이성계 전설의 유형과 분포 양상Ⅲ. 남해 금산(錦山) 전설의 생성 및 전승 요인Ⅳ. 이성계 전설의 남해적 확장과 민중적 지향Ⅴ. 맺음말참고문헌〈Abstract〉